• 전문가 요청 쿠폰 이벤트
*형*
Bronze개인
팔로워0 팔로우
소개
등록된 소개글이 없습니다.
전문분야 등록된 전문분야가 없습니다.
판매자 정보
학교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직장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자격증
  •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판매지수
전체자료 6
검색어 입력폼
  • 한국의 5대궁궐에 대해서
    『한국의 5대 궁궐에 대해서』1. 궁궐에 대한 기본적인 내용궁궐 건축의 형성은 고대 국가의 성립과 깊은 관계가 있다. 우리나라의 초기 국가가 형성, 발전되어 온 단계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는데 대개 촌락사회에서 성읍(城邑)국가로, 다시 소국(小國)으로, 나중에는 중앙집권적 왕국으로 발전되어 왔으리라 추정된다. 이러한 발전 과정에서 지배 계급과 피지배 계급이 발생하고 또한 지배자의 거처 및 정치 집회소가 생겨났으며 정치, 견제, 종교의 중심지가 발생하였다. 정치적으로는 중앙 정부 조직, 지방 통치 조직, 군사 동원 체제가 갖추어지고 경제적으로는 수취제도가 만들어졌다.왕의 거처는 중앙 정부 조직과 함께 정치 중심지에 자리 잡았으며 대개 성을 주위에 둘러 외부 세계와 구별하였다. 단군 왕검이 다스린 고조선의 왕검성, 고구려 고주몽의 흘승골성, 백제의 한성, 가락국(가야)의 나성, 신라의 금성 등은 그러한 예이다.소국들은 처음에는 연맹 관계를 유지하다가 차차 강력한 소국 연맹에 의하여 병합되면서 좀더 커다란 나라를 형성하게 되며, 그 결과 왕의 지위가 확립되고 권력이 강화된다. 왕의 세습권이 확립되자 동시에 지배 귀족 세력의 성장한다. 이에 따라 신분도 세분화되는데 정복국의 주민은 왕경인, 정복당한 나라의 주민은 지방인으로 편성되고 거주 지역도 신분에 따라 나뉘었다. 이러한 단계에 있는 정치 지배자를 군왕이라 하고 더 나아가 중앙집권적 왕국의 단계에 이르렀을 때 왕이라 부른다. 이때의 왕과 지배 세력의 존재 형태에 대해서는 고분과 그 안에 부장된 유물을 통하여 이해할 수 있고, 나아가서 궁성과 그 안의 궁전 또는 정청의 존재를 통하여 왕권의 성장과 통치 조직의 강화를 생각할 수 있다.고구려, 백제, 신라 세 나라가 각각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한 고대 국가를 형성하고 평양, 공주, 경주 등에 수도를 정하여 비약적으로 발전해 나간 것과 병행하여 각 나라의 도성, 궁성은 크게 확대, 발전되었다. 이 때의 궁성은 도성 계획의 일부로서 조서오딘 것이며 궁궐 건축의 역사에 우리나라의 궁궐모습에는 차이가 있다.우리 문화가 여러 면에서 중국의 영향을 받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고, 그런 까닭에 중국의 궁궐방식과 공통점이 상당히 많다. 그렇지만 그 형식을 여러 가지로 변용해서 나름대로 독창적이고 아름다운 모습을 만들었다. 울의 궁궐들을 보더라도 궁궐 조성의 기본 원칙은 중국의 것을 받아왔지만, 우리 궁궐들은 그 원칙을 지키면서도 제각각 땅의 모양, 필요에 알맞는 모습으로 독창성을 지니고 있다.궁궐의 구조는 조선시대 궁궐의 공간 구조는 크게 내전과 외전, 동궁, 생활주거공간, 후원. 궐내각사, 궁성 문 및 궐외각사 등으로 나뉜다. 전은 왕과 왕비의 공식 활동과 일상적인 생활이 이루어지는 공간으로서 위치상으로 궁궐의 중앙부를 차지할 뿐만 아니라 그 기능에서도 궁궐의 중심이 되는 곳이다. 궁궐의 내전은 크게 보아 대전과 중궁전으로 구성된다. 대전이란 왕의 기거공간을 가리킨다. 여러 채의 건물이 있는데, 그 가운데에서도 연거지소의 역할이 가장 크다. 연거지소는 왕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주요 인물을 만나 국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곳이라는 점에서도 가장 중요한 곳이었다. 편전은 궁궐에 따라서 내전에 포함되기도 하고 외전에 포함되기도 한다. 중궁전은 왕비의 활동 공간을 말하며 중전, 중궁이라고도 부른다. 전은 왕이 공식적으로 신하들을 만나 의식, 연회 행사를 치르는 공간이다. 외전은 중심은 정전(법전)이라고 부르는 건물이며 회랑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그 회랑으로 둘러싸인 네모난 넓은 마당이 조정이다. 왕은 조정에서 신료들과 조회를 하거나 외국 사신을 접견하는 들의 국가의 공식적인 의식을 거행하였다.동궁은 차기 왕의 계승자인 세자의 활동 공간이었다. 동궁은 내전의 동편에 배치하고 동궁 일대에는 세자를 교육하고 보필하는 업무를 맡았던 세자시강원(춘방)과 세자를 경호하는 임무를 띠고 있는 세자익위사(계방)이라고 하는 관서 이 함께 있었다. 원은 궁궐의 북쪽 산자락에 있는 원유를 가리킨다. 위치에 따라 북원, 금원이라고도 불렸다. 후원은 태조 때의 궁궐 북서쪽에 있는 소규모건물을 궁궐 서쪽으로 옮김1426년 10월(세종 8년) 각 문의 다리와 이름이 정해짐1456년 3월(세조 2년) 수강굴터에 창경궁 영건1484년 (성종 15년) 후원에 취로정을 짓고 연을 파종1473년 7월(성종 4년) 7월경에 경회루 수리공사가 시작되어 이듬해 3월에 완료1505년 11월(연산군 11년) 11월에 경복궁의 보루각을 창덕궁으로 옮기고 간의대도 철거1543년 정월(중종 38년) 정월에 큰 불이 나서 동궁이 불에 탔으며 복구가 착수되기 전 경복궁에 다시 불이 남1592년 4월(선조 25년) 임진년 4월에 왜군이 쳐들어와 도성은 불바다가 되고 경복궁도 모두 불타 터전만 남긴 체 소멸1865년 4월(고종 2년) 4월 2일 대왕대비인 신정왕후가 대원군의 건의를 받아 경복궁 재건 시작1868년 6월(고종 5년) 경복궁 재건공사가 사실상 끝남1896년 2월(건양 1년) 경복궁의 수리 공사를 착공하여 97년 5월에 경복궁의 만화당을 경운궁에 이건○경복궁에 대해서경복궁은 태조4년(1395)에 조선왕조 5대 궁궐 가운데 최초로 창건되었다. 선조 25년(1592)임진왜란 때 소실되었고, 그 후 270여 년이 지나도록 방치되어 있었다. 고종 5년(1868)년에 중건했으나 명성황후가 건청궁에서 일본 낭인들에게 시해되던 1895년까지 28년밖에 사용되지 못했다. 그러나 고종 32년(1895) 경복궁에서 명성황후가 일본 낭인에 의해 시해 당하자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파천하면서 마침내 궁궐로써 기능을 마감한다. 그 때문에 정궁이면서도 조선 519년 동안 그 반도 못되는 226년 밖에 사용되지 않았다. 그 뒤 일제에 의해 총독부 건물이 들어서는 등 조직적으로 훼손되어 현재는 원래 규모의 약 15%만 남게 되었다. 경복궁은 5대 궁궐 가운데 유일하게 정문·중문·정전·편전· 침전으로 이어지는 정연한 축선을 갖는다. 이는 경복궁이 창덕궁이나 창경궁에 비해 비교적 평지에 가까운 부지 조건을 가진 이유가 크겠지만 정궁으로서 갖는 상징성과 품격을소요정, 청의정, 태극정 건설1647년 (인조 25) 인조반정으로 소실된 건물 중건 (선정전, 대조전, 희정당, 징광루 등)1649년 (효종 즉) 창덕궁 인정문에서 즉위1659년 (현종 즉) 창덕궁 인정문에서 즉위1674년 (숙종 즉) 창덕궁 인정문에서 즉위1704년 (숙종 30) 후원에 대보단 건설1724년 (영조 즉) 창덕궁 인정문에서 즉위1749년 (영조 25) 대보단 중수1776년 (정조 즉) 2층 누각을 세워 위층에는 주합루, 아래층에는 규장각이라 함1800년 (순조 즉) 창덕궁 인정문에서 즉위1803년 (순조 3) 인정전 소실, 1804년에 재건1833년 (순조 33) 대조전, 희정당 등 소실. 1834년 재건1849년 (철종 즉) 창덕궁 인정문에서 즉위1863년 (고종 즉) 창덕궁 인정문에서 즉위1882년 (고종 20) 창덕궁에서 임오군란이 일어남1884년 (고종 22) 창덕궁 관물헌에서 갑신정변이 일어남1910년 경술국치1917년 (순종 11) 대 화재로 침전 건물 소실1920년 (순종 14) 경복궁 일부건물을 옮겨 창덕궁 건물 재건1926년 (순종 20) 창덕궁 대조전에서 승하1990-1999년 대규모 복원 사업(돈화문 월대, 낙선재 일대, 진선문 , 숙장문등)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창덕궁에 대해서창덕궁은 태종5년(1405)에 이궁으로 건립되었으며 경복궁의 동쪽에 있다 하여 창경궁과 함께 동궐이라 불린다. 창건 연대는 경복궁에 이어 두 번째로 선조 25년(1592)임진왜란 때 경복궁, 창경궁과 함께 소실되었던 것을 선조 말년에 창덕궁 재건에 착수하여 1608년에 주요 전각을 복원하였다. 고종5년(1868)에 경복궁을 중건하기까지 약 300여년 동안 경복궁을 대신해 조선왕조의 정궁역할을 했다. 창덕궁은 크게 네 개의 영역으로 나뉜다. 정전인 인정전과 편전은 선정전을 중심으로 한 외전, 침전인 대조전을 중심으로 한 내전, 왕의 연침으로 쓰였던 낙선재, 그리고 창덕궁의 후원(비원)이 그것이다. 경복궁이 평지에 가까운 부지에 자리한 사성당 등을 건축함광무2년 10월(1896) 이 때 경운궁의 정문은 인화문임광무6년 5월(1902) 법전의 이름을 중화전이라 하고 전의 중화전을 즉조당으로 바꾸어 부름광무8년 4월(1904) 경운궁이 불에 탐. 함녕전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중화전, 즉조당, 석어당, 경효전, 흠문각 등이 탐광무8년 12월(1904) 즉조당, 석어당, 경효전, 흠문각을 중건함이 때 정문은 대안문(大安門)이었음광무10년 1월(1906) 중화전이 준공되었음광무10년 4월(1906) 대안문을 수리하여 대한문으로 개칭함광무11년 7월1907고종이 순종에게 왕위를 물려줌광무11년 8월1907고종의 궁을 덕수궁이라 함융희3년(1909)석조전이 준공됨1919 고종이 함녕전에서 승하함○덕수궁에 대해서조선왕조 5대궁의 하나인 덕수궁은 원래는 경운궁으로 창건되었다. 선조가 임진왜란으로 의주로 몽진하였다가 26년(1593) 10월에 환도했더니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의 3대 궁궐이 손실되어, 선조 26년(1593) 10월 1일에 정릉동 소재 옛 월산대군가에 들어가 행궁을 삼게되어 경운궁의 창궁이 시작되었다.선조는 40년(1607) 4월 행궁 북쪽에 별전을 건립하였고, 41년(1608)에 행궁의 정침에서 서거하자, 서청에서 광해군이 증위하였다. 광해군은 3년(1611) 10월 창덕궁으로 이어 하고 이 정릉동 행궁을 경운궁으로 개명함으로써 조선왕조의 오대궁의 네 번째 궁궐이 이루어진 것이다.광해군은 3년(1611) 12월에 경운궁으로 환어하였다가 광해군 7년(1615) 4월 창덕궁으로 이어하고 12년(1620)10월 경운궁을 수리하였다.고종 32년(1895) 경복구에서 이 궁으로 이어하고 다시 경운궁이라 하였고, 규모를 넓혔다. 고종 33년(1896) 9월에는 경복궁 집옥재에 봉안하던 열성어진을 경운궁에 옮겨 봉안하였으며 건양 2년(1897)에 선원전, 함령전, 보문각을 조영하고 광무 4년(1900)궁장을 세웠다.또 광무 6년(1902) 8월 궁궐 정전의 대문인 중화문 정초가 있었고 10월 건립하였다. 전 화재
    인문/어학| 2008.06.22| 8페이지| 1,500원| 조회(512)
    미리보기
  • 종묘와 창경궁을 다녀와서 평가B괜찮아요
    『종묘와 창경궁을 다녀와서』종묘는 조선왕조 역대 및 추존된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유교 사당이다. 그래서 동양의 파르테논이라고 불리 운다. 먼저 종묘의 역사에 대해서 소개하자면, 종묘는 조선왕조의 역대 왕과 왕비, 추존된 왕과 왕비의 신주를 봉안하고 제사를 받드는 곳이다. 조선왕조를 건국한 태조는 수도를 개성에서 한양으로 옮기고, 궁궐의 동쪽에 종묘를 건립하고 서쪽에 사직단을 세웠다. 현재의 종묘는 정전과 영녕전으로 되어 있는데, 종묘는 원래 정전만을 지칭하는 말이었다.정전 건물은 태조3년(1394)에 짓기 시작하여 이듬해 9월에 완공되었고, 영녕전은 세종 3년(1421)에 완공되었다. 전정과 영녕전은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어 광해군 즉위년(1608)에 재건되었으며, 그 후 몇 차례의 증축을 거쳐 지금의 모습으로 남아있다.사적 제 125호인 종묘는 뛰어난 건축적 가치와 600년이 넘도록 이어져 온 제혜 행상 등의 문화적 가치가 인정되어 1995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으며, 2001년에는 종묘제례 및 제례악이 국내 최초로 유네스코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걸작]으로 등록되었다.종묘에 대해서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안내원의 자세한 설명을 들으면서 관람을 할 수 있어서 종묘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종묘는 들어오는 문부터 임금이 들어와서 걸어가는 길과 죽은 함이 들어와서 가는 길과 신하들이 들어와서 걸어가는 길이 정해져 있었다. 죽은 자에 대한 예의를 지키고자하는 우리 선조들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종묘는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정전과 영녕전으로 되어 있다. 정전은 종묘의 중심건물로서 국보 제227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정전은 왕과 왕비의 혼백이 머무는 곳이므로 하늘에 있는 궁이라는 뜻에서 ‘천상각’이라 부르기도 하며, 정전으로 오르는 계단에 해와 구름을 새겨 정전이 하늘나라임을 표현했다. 조선 초에는 태조의 4대조(고조부, 증조부, 조부, 부)의 신주를 모셨으나, 이후엔 당시 재위 왕의 4 않고 살로 되어 있다. 살로 만든 이유는 혼백이 드나들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여기서 혼은 하늘로 올라간 넋을 말하며, 제사를 지낼 때 향을 피우는 이유이며, 백은 땅에 있는 넋을 말하며, 땅에 술을 붓는 이유이다. 그리고 정전의 맞은 편에는 공신당이 있다. 공신당은 공이 높은 신하의 신주가 모셔져 있다. 종묘 건축이 다른 건물과 다른 점은 건물 내부에 모실 신위의 수가 증가함에 따라 몇 차례에 걸쳐 건물을 옆으로 증축하여 길게 늘린 점에 있다.그리고 영녕전은 보물 제821호로 지정되었으며, 정전에서 옮겨진 왕과 왕비, 그리고 추존된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시고 있는 별묘이다. 영녕전에는 꼭 왕이 오지 않아도 되며, 대신 세자가 와서 제사를 지낼 수도 있다고 한다. 영녕전에는 왕의 신주 16위, 왕비의 신주 18위, 총 34위가 모셔져 있다. 그리고 정전과 달리 공신당은 없다. 영녕전의 신위 봉안도를 보면 가운데 4개의 방에 태조의 4대 조상이 모셔져 있으며, 그 다음부터는 왼쪽으로 차례대로 모셔져 있다. 태조의 4대 조상이 모셔져 있는 방은 뚫려 있다고 한다. 종묘에는 광해군과, 연산군을 제외한 조선의 역대왕의 신주가 모셔져 있으며, 역대 왕 신주이외에도, 추존된 9명의 왕과 마지막 황태자의 신주가 모셔져 있다고 한다. 정전과 영녕전의의 용마루를 보게 되면 백시멘트를 바른 것처럼 하얗게 보인다. 그래서 ‘보수공사 중이구나’ 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알고 보니 백시멘트를 바른 것이 아니라, 백시멘트보다 훨씬 더 견고한 ‘삼화토’를 바른 것이라고 하였다. 이 ‘삼화토’를 바르는 이유는 날짐승이나 구렁이가 기와 틈에 둥지를 틀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삼화토’를 바른 곳은 임금과 왕비가 사용하는 곳을 표시하는 역할도 하였다. 왕과 왕비가 아닌 다른 사람들은 일반 기와 용마루를 사용한다고 하낟. 그러나 왕과 왕비가 이용하는 건물중에서도 침실만은 흰색 용마루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아마도 임금의 목숨을 노리는 자들에 대한 대비인 것 같았다. 이런 깊은있다. 그리고 이런 종묘제례를 지낼 때 연주되는 음악이 있는 데 이 음악이 바로 주요무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된 종묘제례악이다. 종묘제례악은 세종 때 지은 보태평과 정대업을 세조가 정리한 것인데, 음율의 장엄함으 크게 돋보이는 음악이다. 보태평은 조선왕조 역대 왕들의 학문과 덕망을 기른 것으로 종묘대제의 영신례, 초헌례때 연주되며, 정대업은 외적과 맞서 군사상의 공적을 세운 선왕들을 기린 내용으로 아헌례, 종헌례때 연주된다, 종묘제례악은 동양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고전악으로써 2001년에 종묘제례와 더불어 유네스코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걸작으로 선정되었다.종묘를 관람한 이후 우리는 창경궁으로 자리를 옮겼다. 창경궁 또한 역사의 숨결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창경궁의 처음 이름은 수강궁이었다. 1418년 세종대왕이 왕위에 오르자 생존한 상황인 태종을 편안히 모시기 위하여 수강궁을 지었다. 그 후 세조의 비 정희왕후, 덕종의 비 소혜왕후, 예종의 비 안순왕후를 모시기 위하여 성종 15년(1484)에 명정전, 문정전, 통명전 등 궁궐을 크게 짓고 창경궁이라 이름을 고쳤다. 이 궁은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으로 모두 불타버렸던 것을 광해군 8년(1616)에 다시 복구하였다.순조 30년 (1830)에 또 큰 화재가 나서 많은 궁궐건물이 부타버렸던 것을 순조 34년(1834)에 대부분 다시 지었으나 정전인 명정전은 광해군 8년(161)에 중건된 이래 원형대로 보존되어 조선 왕궁의 정전 중 가장 오래된 건물로 국보 제 226호로 지정되어 있다. 순종 3년(1909) 창경궁에 동물원과 식물원을 개설하고 일반인에게 관람하게 하였다. 1911년에는 일제가 궁내에 박물관을 설치하면서도 동?식물원을 포함하여 창경원이라 이름을 고쳐 그 격을 떨어뜨렸다. 1983년 12월부터 1986년 8월까지 3년간에 걸쳐 일제가 파괴?변형시킨 창경궁을 궁궐 본래의 모습으로 복구하는 중창공사가 진행되었다. 이에 창경원으로 격하시킨 궁의 이름을 창경궁으로 회복시키고 궁내에 건립된 동물원과 놀이터 시설을 보이고 있다. 정면의 3칸에는 각각 판문을 달고 그 위로는 홍살을 하였으며, 북쪽에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마련돼 있다. 이층은 우물마루에 연등천장을 꾸몄다. 홍화문의 좌우로는 궁장(宮墻)이 남북십자각을 지나 궁역을 형성하였다. 전체적으로 붉은 기운이 강한 홍화문은 웅장한 외형과는 달리 푸근한 느낌을 갖게 한다. 정문을 지나 법전인 명정전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옥천교를 건너야 한다. 궁궐의 정문과 법전의 정문 사이에는 금천이 놓인다. 금천은 백성의 구역과 임금의 구역을 경계하는 상징성과 함께 궁으로 들어서는 이들은 몸가짐을 삼가라는 의미를 지나고 있다. 옥천교는 금천교로 성종 14년(1483)에 건립되었다. 그 다음으로는 명정전으로 자리를 옮겨보자. 명정전에 들어가기 앞서 전의 정문인 명정문을 만나 볼 수 있다. 명전문은 명정전을 둘러싼 월랑 중 명정전과 마주보고 있는 동월랑의 중앙부에 있으며, 창경궁의 외문인 홍화문보다 안쪽에 놓여 중문의 기능을 갖는 평삼문이다. 위치로 보아서 명정전의 동서 중심축선상에 정확히 놓이지 않고 남쪽으로 약 1.2미터 벗어나 있다. 문의 좌우에 연결된 동월랑을 어느 정도 명정문에 맞추어 배치하였기 때문에, 이에 의하여 둘러싸인 명정전의 중정(中庭)은 정확한 방형이 아니고 기울어져 있다. 이 건물은 포작(包作)과 건축의 형식으로 보아 명정전과 함께 광해군 때 재건되어 지금까지 보존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명정문을 지나 명정전으로 들어가면 창경궁의 정전으로 정문인 명정문과 동서 일직선상에 위치하면서도 좌향이 약간 틀어있어 다른 궁궐의 정전과 그 정문 (예:덕수궁의 중화문과 중화전)의 위치관계와는 사뭇 다른 율동감이 느껴진다. 명정전은 대부분의 궁중전각이 남향을 한데 반해 동향을 한 것이 특징이며, 다른 전각으로의 이동시 비를 피할 수 있는 천랑이 부설되어 있다. 성종 14년에 건축되었다가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던 것을 광해군 8년에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리고 문정전은 창경궁의 편전으로 평상시 임금이 정사를 보던 곳이 접견하고 시험을 치르기도 하고 주연을 베풀기도 했다. 명정전 뒤쪽에 있는 건물로 경춘전이 있다. 경춘전은 명정전 뒤쪽 내전 건물의 하나로 성종 때 대비를 위해 지어졌으나 점차 왕비들의 거처로 사용되었던 곳으로 정조와 헌종이 이곳에서 태어나셨다. 지금의 건물은 순조 34년에 재건된 것이며 현재 창덕궁에 속해있는 낙선재 후원과 연결되어 있다. 연산군 10년에 소혜왕후 한씨, 숙종 27년에 인현왕후 민씨, 순종15년에는 헌경왕후 한씨가 승하하신 곳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임금님의 정침으로 알려진 환경전은 임금님의 정침으로 알려진 환경전은 순조 34년에 재건된 건물로 임진왜란에 중종이 승하하신 곳이기도 하다. 왕의 침소라고는 하지만 왕비의 침전인 통명전에 비해 규모가 소박한 것이 독특하다. 그리고 통명전은 창경궁의 중궁전으로 내전 전각 중 규모가 제일 크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던 것을 광해군8년에 재건했으나 정조 때에 또 한번화재로 없어진 것을 순조 34년에 다시 지은 것이 오늘에 이른다. 다른 궁궐의 중궁전과 마찬가지로 용마루가 없는 깔끔한 팔작지붕과 건물에 비해 상당히 넓은 월대가 안정된 조화를 보여준다. 한편에 마련된 인공 연못인 연당이 이채롭다. 현판은 순조의 어필이다. 환경전의 남쪽에 위치해 있는 비교적 큰 정자인 함인정은 예전엔 부속건물들과 함께 따로 일곽을 이루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는 넓은 뜰에 덩그러니 홀로 서 있다. 특별한 특징은 없지만 사방이 뚫려있어 정자다운 모습이 단아하다. 함인정은 인조가 인경궁의 함인당을 옮겨온 것으로 화재로 소실되었던 것을 순조 때에 다시 지은 것이다. 영조는 이곳에서 과거에 장원급제한사람들을 접견하기도 했다. 그리고 한때 일본인에 의해 창경궁 관리사무소로 사용되기도 했던 전각으로 쓰라린 역사의 아픔을 간직한 곳인 양화당은 병자호란 당시에는 청에게 굴복했던 인조가 남한산성에서 돌아와 머물렀던 곳이 바로 양화당 이곳이다. 중궁전인 통명전 보다 규모가 작음에도 불구하고 왕의 침소로 사용되기도 했던 흥미로운 곳이다
    인문/어학| 2008.06.22| 4페이지| 1,000원| 조회(230)
    미리보기
  • 과학 보고서. 동물의 생김새 단원 재구성
    과학 보고서4학년 2학기 과학1. 동물의 생김새와동물의 암수Ⅰ. 단원에 대한 소개※ 동물에 관한 개념도? 동물의 전체적인 개념도? 척추동물 - 무양막류? 척추동물 - 유양막류? 절지동물1. 동물의 생김새1) 단원명 : 1. 동물의 생김새2) 단원의 개관이 단원은 교육과정의 4학년 ‘여러 가지 동물의 생김새’와 ‘동물의 생활 관찰하기'에 관련된 단원으로서 주위에 살고 있는 여러 가지 동물의 생김새와 사는 장소, 생활 방식에 대하여 먼저 여러 가지 동물 중에서 좋아하는 동물과 싫어하는 동물을 알아봄으로써 학생들이 동물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도록 한다.그리고 우리 주위에 살고 있는 여러 가지 동물을 비교하여 생김새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발견한다. 이때, 우리 주위에 살고 있는 여러 가지 동물을 형태적으로 구별하여 특징을 찾아내고 특징에 따라 동물을 분류하되, 분류학적인 측면은 설명하지 않는다.그런 다음, 우리 주위에 살고 잇는 동물을 조사하여 사는 곳에 따른 생활 방식의 특징을 찾아보고, 동물이 사는 곳, 생활 방식, 특징에 알맞은 상상의 동물을 만들거나 그려보게 함으로써 동물의 생김새, 생활방식의 특징을 이해하게 한다.3) 단원의 학습 목표(1) 여러 가지 동물의 이름을 말할 수 있다.(2) 여러 가지 동물의 사진이나 그림을 보고 생김새와 특징을 이야기할 수 있다.(3) 각 동물이 가진 공통점과 차이점에 따라 동물을 나눌 수 있다.(4) 우리 주위에 살고 있는 동물을 조사하여 특징을 이야기할 수 있다.(5) 동물이 사는 곳에 따른 생활 방식의 특징을 찾아낼 수 있다.(6) 동물이 사는 곳, 생활 방식, 특징과 관련하여 상상의 동물을 그리거나 만들 수 있다.선수 학습이 단원의 학습후속 학습살기 좋은 우리 집(슬기로운 생활 2-1)동물의 생김새동물의 암수(4-2)? 동물이나 식물이 자라나는 모습 관찰하기? 동물이나 식물을 더 잘 기를 수 있는 방법 알아보기? 여러 가지 동물의 종류 알아보기? 동물의 생김새와 특징 알아보기? 우리 주위에 있는 동물 알아보기? 동물이 사는 것이 옳다고 생각된다.활동▶ 우리 주위에 살고 있는 동물에 대해 조사하는 활동과 그 동물들이 갖는 공통점에 대해 알아보는 활동을 한다. 또한 우리 주위를 의미하는 ‘집과 동네’와 ‘다른 곳’에 사는 동물들의 차이점에 대해서도 알아보고 있다.우선 조사학습은 학습자로 하여금 생활 경험에서 비롯한 살아 있는 ‘조사’를 해본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이것은 1차시의 수업일 때는 그 의미가 크지만, ‘생김새의 특징’과 ‘사는 곳과 생활 방식’에 대한 학습 사이의 수업으로는 큰 의미가 없고 수업의 흐름을 고려했을 때 연계성마저 낮다고 여겨진다.집과 동네에 사는 동물의 종류와 사는 곳을 조사하는 것은 자칫 생략하고 넘어갈 수 있는 활동이 되어버리기 쉽다. 11쪽의 그 동물들이 공통적으로 가지는 특성이나 다른 곳에 사는 동물과의 차이점등은 질문이 너무 포괄적이고 ‘다른 곳’이라는 말의 구체적 범위도 어느 정도인지 모호하다.삽화 또한 도시와 시골이 양분화 되어 있는데 도시 쪽은 애완견이나 붕어 등의 애완동물 위주로 시골은 소나 닭과 같은 사육하는 동물이나 새나 거미 같은 자연 상태의 동물들이 나와 있다. 이렇게 도시와 시골이라는 공간적 개념으로 나누기보다는 차라리 자연 상태의 동물과 동물원의 동물이나 애완동물 등에 대해서 제시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고 본다.▷ 이번 차시에서 의도한 생활경험과 관련된 ‘조사학습’의 의미는 최대한 살려서 4차시 수업을 하기 위한 학습자의 조사학습으로 대체하고자 한다. 여기서의 조사학습은 ‘우리 주위에 살고 있는 동물을 비롯하여 관심 있는 동물에 대한 조사’를 하도록 한다. 이것을 4차시와의 통합을 통해서 동물의 사는 곳과 생활방식의 관계에 연관 지어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동물원에 가보자’라는 주제 활동은 학교에서의 체험 학습 등을 통해 이루어 질 수 있기 때문에 좀 더 실생활과 연관지을 수 있을 것이다.동물이 사는 곳과 생활 방식동물이 사는 곳과 생활 방식p.12,13활동활동▶ 활동 1에서 산과 바다로 나누어 각각의 지역에찰과 합리적인 근거 기준이 필요한데 이에 대한 평가를 따로 항목으로 정해야 한다. 과학적 ‘창의성’을 함양하고 평가할 수 있는 항목이 필요한데 이 단원에서 이 부분이 들어가 있는 것은 ‘상상의 동물을 그리거나 만들기’뿐이다. 다른 차시도 과학적 상상력을 측정할 수 있는 평가 기준을 만든다.▷ 전반적으로 평가의 예시가 아동의 학습 능력과 이를 통한 사고의 확산을 평가하기에 평가 항목이 적고 구체적이지 않으므로 보다 세분화하여 제시하여야 한다. 성취도 문항 평가를 활용하고 포트폴리오 방식을 적용하여 평가 항목을 늘려 종합적인 평가가 되어야 한다. 직접 활동 후 보고서 제출 시에는 평가 항목을 세분하여 제시해 주고 관찰을 통해서 생긴 궁금한 부분을 2개 이상 제시하는 것도 활동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하고 확산적 사고와 과학적 상상력을 촉진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가장 큰 문제점은 확산적 사고를 촉진하는 활동과 질문이나 과제가 제시되어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는 평가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본 수업 활동과는 크게 관련이 적은 내용의 참고 글이 있었고 아동의 흥미를 끌만한 내용의 자료와 그 양이 또한 부족하였다.교사용 지도서인 만큼 교사에게 수업활동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보여주어야 하는데 탐구과정에 대한 언급으로 끝났고 활동별로 구체적 제시는 부족하였다. 또한 단순한 자료의 나열에 불과한 경우도 있었다. 물론 어려운 부분이지만 평가항목에서 지식, 기능적 측면에 치중하였고 태도에 대한 평가는 소홀하였던 점도 문제점으로 꼽을 수 있었다.지도서 자체가 너무 교과서의 내용을 그대로 답습하는 데 지나지 않다 보니 교사가 지도서를 그대로 따라가는 수업이 될 경우에는 너무 지루하고 자칫 지식전달에만 급급한 과학수업이 될 우려도 있다. 한 가지 방식만을 제시하고, 교과서의 내용을 좀 더 길게 풀어쓴 정도에 지나지 않는 또 다른 이름의 교과서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보니 기존의 교사용 지도서는 참고사항으로 제시된 내용들도 백과사전식의 단순한 지식의 나열에 그치고 있다.▷ 참고사류는 어미와 새끼의 생김새가 비슷한 동물로, 곤충류는 어미 와 새끼의 생김새가 다른 동물로 나타내고 있어, 교과서와 마 찬가지로 아이들에게 포유류만이 어미와 새끼의 모습이 비슷 하다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가 있다▷ 그림이 아니라 실제 사진으로 대체하여, 도시에 살아서 동 물을 접할 기회가 없는 아이들에게 조금이나 사실적으로 접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포유류뿐만 아니라, 제비와 같 이 알을 낳는 동물도 알에서 새끼가 깨어나면, 생김새가 비슷 하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사진 자료를 다양하게 제시해야 한다.동물은 대를 이어 살아갑니다.활동▶ 교과서가 지금 볼 수 있는 동물과 볼 수 없는 동물을 보여 주는 것으로 바뀌기 때문에, 실험관찰도 교과서와 비슷하게 질문을 해야 할 것이다. 또한 이 단원의 학습 목표가 ‘오늘날 에도 볼 수 있는 이유와 볼 수 없는 이유를 말할 수 있다’ 이 므로 실험관찰에도 그 내용을 반영해야 한다.▷ 따라서 실험관찰에 지금에도 볼 수 있는 동물과 볼 수 없 는 동물의 사진을 제시하고, 오늘날에도 볼 수 있는 동물은 왜 볼 수 있는지, 볼 수 없는 동물은 왜 볼 수 없는지에 대해 서 질문을 해야 한다.(3) 교과서 지도서분석 대상문제점(▶) 및 개선 ? 발전안(▷)동물의 암수를 구분하여 봅시다학습목표▶ 두 번째 학습 목표가 아이들의 사고력, 논리성과 같은 고 차원적인 정신 활동이 아닌 단순한 지식암기위주의 목표를 제 시하고 있다.▷ 아동들이 생김만으로 구분이 되지 않는 동물을 단순히 외 워서 말하는 것에 목표를 두는 것 보단, 왜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까지 말하는 것이 평가에 좀 더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 주위에 있는 동물의 암컷과 수컷을 구별할 수 있으 며, 구분되지 않는 동물을 말할 수 있다.형성 평가▶ 암컷과 수컷이 뚜렷이 구별되는 동물과 구별되지 않는 동 물의 이름을 말하는 것으로 끝나기 때문에 지나치게 지식만을 평가하게 될 수 있다.▷ 동물의 암수구분과 함께 생김새에 대해서 어떤 차이가 있 는지를 반드시 언급해야 한다. 말할 수 없이 큰 도움을 주는 고마운 친구이기도 합니다.(2) 미생물은 어디에 살고 있을까?현미경이 없었다면 우리는 미생물이 살고 있는 세계를 확인할 수조차 없었을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미생물이 어디서 얼마나 많이 살고 있는지 쉽게 알 수가 없는데요. 도대체 미생물은 어디에 살고 있을까요? 미생물은 우리가 숨 쉬고 있는 공기 속에도 있고 흙 속에도 살고 있으며 우리가 오늘 마신 물속에도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서 눈을 비비는 손에도 살고 있고 냉장고안에도 살고 있으며 버스에 있는 손잡이에도 미생물이 살고 있습니다. 심지어 도저히 생명이 살 것 같지 않은 남극의 빙하나 펄펄 끓는 물속에도 있습니다. 이렇게 미생물은 우리가 사는 모든 곳에 같이 살고 있습니다.(3) 미생물은 얼마나 많이 살고 있을까?흙 한 줌에서부터 손바닥과 발바닥까지, 수많은 곳에서 살고 있는 미생물! 그 숫자도 엄청나겠죠? 지구상에 살고 있는 사람의 수는 약 64억이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지구와는 크기를 비교할 수조차 없는 흙 한 줌 안에서 영양분만 풍부하다면 세계 인구와 비슷한 숫자의 미생물들이 살아갈 수 있습니다.(4) 미생물의 나이는?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의 나이는 약 46억년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지구에서 최초의 생명체가 태어난 시기는 약 38억 년 전이라고 하는데, 이 최초의 생명체가 바로 미생물입니다. 38억 살이라는 미생물의 나이가 가늠이 안 된다고요?지구의 역사를 한 달의 시간으로 계산해서 설명해 보겠습니다.- 지구가 만들어지고 3일째 되는 날에 최초의 생명체, 미생물이 지구에 나타납니다.- 14일에는 시아노박테리아가 나타나 광합성을 통해 대기의 산소농도를 높이기 시작합니다.- 20일에는 미생물 형태의 최초의 진핵세포가 나타납니다.- 24일경에야 비로소 다세포로 된 생명체가 나타납니다.- 27일에는 수생 동식물이 다양하게 진화합니다.- 28일에는 동식물이 육지에 나타납니다.- 29일에는 공룡이 지구를 지배하고 최초의 곤충과 포유류가 지구에 나타납니다.다.
    교육학| 2008.06.20| 92페이지| 4,000원| 조회(659)
    미리보기
  • 특수교사와 일반교사 협력방안 평가C아쉬워요
    특수교사와 일반교사들이 서로 협력할 수 있는 방법과 기술수평적 평등화가 강조되고 있는 현실 상황과 발맞춰 학교의 학급 안에서도 수평적 평등화 현상을 볼 수 있다. 예전에는 학급 안에서 장애 아동을 찾기가 힘들었으나 요즘은 학급 안에서 장애 아동을 쉽게 찾을 수가 있으며, 그 학급 구성원들을 지도하는 선생님들이 어려움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쉽게 들을 수가 있다. 현장에서 이러한 어려움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이유는 사회의 변화에 따라 가지 못하는 교육 정책과 장애 학생을 대하는 선생님과 학생, 학부모의 자세와 교수방법과 기술의 개발이 아직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여건의 부족으로 인하여 학생들을 지도하는데 있어서 전문가인 경력이 풍부한 선생님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우리와 같은 새내기 교사들이 겪을 어려움은 상당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기 때문에 미리 지도 방안에 대하여 관심을 갖고 생각해보는 것이 앞으로 현직에 나가서 많은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장애 학생을 지도하는데 있어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지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일반교사와 특수교사의 협력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생각은 모든 사람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하다고 생각은 하지만 가장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이러한 좋은 방법이 잘 이루어지지 않은 이유는 일반교사와 특수교사의 업무가 명확하게 분담되어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누가 어느 정도까지 역할을 맡고 가르칠 것인가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결여되어 있기에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거나 서로의 도움을 무시하는 경우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에는 일반교사와 특수교사간의 협력의 필요성을 서로 느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서로가 서로의 부족한 점과 장점을 인정하고 배우지는 않고, 누가 주도를 할 것인가와 같은 자존심 싸움에 치중하고, 서열의식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서로간의 협력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하고 서로간의 협력을 통하여 장애 아동을 잘 지도하기 위해서는 먼저 일반교사와 특수교사가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의 필요성을 느끼도록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서로를 이해하고 필요성을 느낄 때 자존심을 버릴 수 있으며 협력하려는 마음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반교사와 특수교사 사이에 대화를 통한 역할 분담을 확실하게 할 필요가 있다. 서로의 역할이 겹치거나 서로 맡지 않을 때에는 협력의 효과가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서로의 역할을 확실하게 인식하였을 때 장애 학생과 일반교사와 특수 교사 서로에게 책임감을 느끼게 될 것이고 이러한 책임감은 맡은 바 역할 완벽하게 수행하게 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며, 그 결과 협력 수업의 효과가 장애 학생의 행동으로 직접적으로 드러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교사들이 자신 보다 학생들을 생각하는 처음의 마음을 잊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서로의 자존심과 서열을 생각하기 보다는 학생들을 사랑하는 사람과의 만남이라는 인식과 학생들의 위하는 마음이 먼저 나올 때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서로에게 다가가고 협력체계를 굳건하고 확실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교육학| 2008.06.19| 1페이지| 1,000원| 조회(2,605)
    미리보기
  • 학교경영과 학교장의 지도성
    학교경영과 학교장의 지도성교육학을 공부하면서 가끔 내가 만약 학교장이 된다면 어떤 지도성을 발휘하여 학교를 이끌어나갈까 하는 생각을 가졌었다. 그런 생각의 결과 상황적 접근의 지도성과 변혁지향적 지도성이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각각의 지도성에 대한 설명보다 먼저 지도성의 개념부터 알아보고 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지도성은 관점에 따라 다양하기 때문에 어느 하나의 정의를 확인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Sergiovanni는 지도성을 정의하기는 생각처럼 쉽지 않고 모든 견해를 포괄하는 하나의 정의를 내리기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관점에서 지도성의 의미를 다섯 가지로 요약하였다. 첫째 지도성은 학부모, 교사, 학생들이 지도자의 비전에 따르도록 영향을 주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 지도성은 학부모, 교사, 학생들이 그들이 당면한 문제를 확인하고 이해하며 해결책을 찾도록 영향을 주는 것을 의미한다. 셋째 지도성은 학부모, 교사. 학생들의 욕구를 충족할 유용한 목표를 추구할 뿐 아니라 목표가 그들을 보다 더 높은 도덕적 수준으로 향상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넷째 지도성은 학부모, 교사, 학생들이 공동의 이념과 이상에 기여함으로써 그들이 경험하는 목적과 의미 및 의의를 고양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다섯째 지도성은 학교의 이완결합된, 혼란스러우면서도 비선형적인 특성을 고려하여 목적을 성취할 수 있는 방법을 실제적으로 선택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상의 정의를 종합해 보면 “지도성이란 조직의 목표를 효율적으로 달성하기 위하여 교육과 관련된 모든 주체들 즉 학부모, 교사, 학생들에의 만족과 사기를 높이고 자율성 및 전문성을 증진시키며, 또한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협조하게 하는 일종의 기술 또는 영향력”으로 정의할 수 있다.이러한 지도성에 관한 접근은 크게 전통적 접근과 현대적 접근으로 대별할 수 있다. 전통적 접근에는 심리학적 접근, 사회학적 접근, 행위론적 접근, 그리고 상황적응론적 접근이며 현대적 접근은 카리스마적 지도성과 변혁적 지도성, 문화적 지도성, 도덕적 지도성, 수퍼 지도성 등등 많은 종류가 있다. 내가 학교장이 되면 발휘하고 싶은 지도성이 전통적 접근과 현대적 접근 방법에서 각각 하나씩 있다. 앞에서도 밝혔듯이 상황적 접근과 변혁지향적 지도성이 바로 그것이다.지금부터 각각의 지도성의 특징과 이론에 대해서 알아보고 내가 선택한 이유를 밝히고자 한다. 첫 번째로 전통적 접근 방법에 속하는 상황적응론적 접근 방법에 대하여 알아보자. 상황적응론적 접근 방법은 1960년대부터 대두된 접근 방법이다. 상황적 접근은 지도자로서 일정한 자질이나 특성의 중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지도자가 처해 있는 그때의 상황을 분석하여 지도성을 설명하려는 입장이다. 즉 어느 한 가지 요인이 아닌 각 요인들간의 상호작용에 의하여 결정된다고 보는 입장인 것이다. 이러한 접근에서 대표적인 것으로 Fiedler의 상황이론, House의 경로-목표이론, Reddin의 삼차원 지도성 유형, Hersey와 Blanchard의 상황적 지도성 유형이 있다. 이 중에서 Fiedler의 상황이론과 Hersey와 Blanchard의 상황적 지도성 유형이 괜찮다고 생각하였다. Fiedler의 상황이론은 조직 효과성이 지도성 유형과 상황적 호의성과의 결합을 통하여 나타난다고 가정한다. 상황의 호의성은 지도자와 조직구성원간의 관계, 과업의 구조화 정도, 그리고 직위에 부여된 권력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보았다. 이들 요인들은 학교 조직과 관련시켜 볼 때 학교장과 교사들과의 관계가 교장이 지도성을 발휘하는데 있어. 상황의 호의성을 결정하는데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된다. 따라서 교장과 교사들 사이의 관계가 좋으면 호의적 상황을 형성하게 될 것이고. 이때 에는 과업 지향적인 지도성을 행사하는 것이 보다 효과적이고, 이들 간의 관계가 나쁘면 비호의적인 상황을 이루게 되며 이 때에는 인화 지향적인 지도성이 보다 효과적이다. 학교에서 일을 하는 주체는 바로 교사이다. 그리고 교사들이 하는 일을 관리하고, 방향을 바로 잡고, 업무를 분담하는 것은 교장의 몫이다. 여러 조직의 경우를 보면 조직 구성원 간의 관계가 좋은 조직의 업무 결과가 관계가 좋지 않은 조직의 업무 결과 보다 훨씬 좋다. 마찬가지도 학교에서도 교장과 교사의 관계가 좋을 때 업무의 효율성이 높아질 것이다.그리고 Hersey와 Blanchard의 상황적 지도성 유형 또한 현장에 적용하면 괜찮은 이론이라고 생각한다. 이 이론은 지도성 행위를 과업 행위와 관계성 행위로 구분하고, 과업 및 관계 행동의 효과가 부하의 성숙도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가를 연구한 이론이다. 이 연구에서 상황적 요인으로는 과업과 관련된 조직 성원들의 성취 수준을 들고 있으며, 여기에는 직무 성숙과 심리적 성숙 등이 포함된다. 직무 성숙은 능력 수준의 뜻하며, 성숙 수준은 과업동기 수준을 의미한다. Hersey와 Blanchard는 이와 같은 구성원의 성숙도와 지도자의 지도성 유형에 따라 지시형, 지도형, 지원형, 위임형의 네 가지 효과적인 지도성 유형을 제시하였다. 조직 구성원들의 성숙 수준이 낮을 때는 지시형이 효과적이며 성숙 수준이 점점 높아질수록 위임형 쪽으로 가는 것이 효과적이다. 학교에는 여러 특성을 지닌 선생님들이 존재한다. 교장은 그 선생님들의 특성을 정확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다. 선생님들 중에서도 초임 교사와 중견 교사 남녀교사, 연령별로 그들의 성숙 수준이 다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교장이 된다면 그들의 성숙수준을 정확히 파악하여 그들의 성숙 수준에 맞추어 지도성을 행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그러나 이런 전통적 지도성 이론은 지도자와 추종자의 관계를 지도자가 추종자에게 행하는 일방적인 관계로 보고 있다는 점에서는 문제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전통적 지도성의 전제에는 지도성은 지도자가 이미 가지고 있는 선척적인 것으로 보기 때문에 지도성이 학습될 수 없다는 관점을 가지고 있다. 이 관점은 지도성 자체를 왜곡하는 것이며, 지도성 개발에 가장 큰 장애요인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단점을 극복하기 위하여 현대적 접근 방법으로 새로운 지도성이 나오게 되었는데, 그 중에서 변혁지향적 지도성이 괜찮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변혁지향적 지도성은 추종자의 신념, 가치관, 목적과 조직 문화를 변화시켜 그들로 하여금 기대 이상의 직무 수행을 하도록 동기를 유발시킨다. 이를 위해 변혁적 지도자는 추종자의 욕구를 확대시키고, 과업의 중요성과 가치를 이식시키며, 추종자의 고급 욕구를 자극함으로써 추종자의 과업 달성에 대한 유인가를 높이고, 나아가 조직 문화를 변화시킴으로써, 추종자가 과업달성을 위한 동기 수준을 높이도록 자극한다. 즉, 변혁적 지도성은 추종자들의 욕구와 능력을 인정하고, 그들의 잠재력을 일깨워 사람들로 하여금 보다 더 훌륭한 사람으로 향상시키는 지도성이며, 지도성의 과정을 통하여 지도자와 추종자들이 상대방을 더 높은 수준의 동기유발과 지도성을 갖도록 고양시킨다., 이러한 지도성은 궁극적으로 지도자와 추종자 모두의 인간적 행위와 열망의 수준을 높인다는 점에서 도덕적이라 할 수 있으며 그것은 지도자와 추종자 모두에게 변혁적인 효과를 갖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변혁적인 지도성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Bass가 제시한 4가지 요인을 갖추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먼저 이상화돤 감화력을 갖추어야 한다. 이는 추종자들에게 신뢰와 존경심을 형성하고 급진적이고 기본적인 변화를 개인과 조직이 수용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두 번째 영감적인 동기부여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조직의 목표를 이끌 비전과 그것을 운영할 방법을 개발하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 번째 추종자들에게 지적 자극을 주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개별적 배려를 할 수 있어야 한다. 변혁적 지도자는 성취와 성장에 대한 개개인의 욕우에 관해 특별한 관심을 갖는다. 개별적 관심의 목적은 타인의 욕구와 장점을 알기 위해서이다. 특별히 이 마지막 요인이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최근의 지도성 이론들의 특징을 보면 추종자들의 잠재력을 일깨우고, 지도자와 추종자로 하여금 높은 수준의 헌신과 직무 수행을 할 수 있도록 동기를 유발하게 하는 조성(助成)의 지도성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교사에게는 꼭 필요한 것이다. 교사에게 요구되는 역할 중에서 교수자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교수자의 역할은 스스로 자신의 역할을 자각하고 실천해나가야 하기 때문에 자신의 잠재력을 일깨우고 스스로 동기유발이 되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능력을 교사가 얻을 수 있도록 교장이 지도성을 발휘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지도성을 발휘할 때 상황에 맞게 지도성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상황에 맞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지도성을 발휘해도 원하는 효과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학교장은 상황에 맞는 지도성을 변혁지향적인 방법으로 발휘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이 이제 일반적인 사회의 한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고 있는 상황에서 하나의 통합적인 관점을 취하기보다는 여러 가지 지도성에 존재하는 각각의 장단점을 다양한 각도에서 살펴보고 그런 장단점을 적절히 조화와 균형을 이루면서 종합적으로 발휘하여야 좋은 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도성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상황 판단을 정확히 할 수 있는 능력과 한가지 방법에 얽매이지 않는 유연성을 갖추고 있어야 할 것이다.
    교육학| 2008.06.19| 3페이지| 1,000원| 조회(293)
    미리보기
전체보기
받은후기 2
2개 리뷰 평점
  • A+최고예요
    0
  • A좋아요
    0
  • B괜찮아요
    1
  • C아쉬워요
    1
  • D별로예요
    0
전체보기
해캠 AI 챗봇과 대화하기
챗봇으로 간편하게 상담해보세요.
2026년 04월 18일 토요일
AI 챗봇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 AI 챗봇입니다. 무엇이 궁금하신가요?
11:58 오전
문서 초안을 생성해주는 EasyAI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의 20년의 운영 노하우를 이용하여 당신만의 초안을 만들어주는 EasyAI 입니다.
저는 아래와 같이 작업을 도와드립니다.
- 주제만 입력하면 AI가 방대한 정보를 재가공하여, 최적의 목차와 내용을 자동으로 만들어 드립니다.
- 장문의 콘텐츠를 쉽고 빠르게 작성해 드립니다.
- 스토어에서 무료 이용권를 계정별로 1회 발급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체험해 보세요!
이런 주제들을 입력해 보세요.
- 유아에게 적합한 문학작품의 기준과 특성
- 한국인의 가치관 중에서 정신적 가치관을 이루는 것들을 문화적 문법으로 정리하고, 현대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를 비교하여 자신의 의견으로 기술하세요
- 작별인사 독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