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문제의 전 지구적 확산- 지구온난화 -차 례1. 더워지는 지구2. 지구온난화의 영향3. 지구온난화의 예방 및 한계4. 지구온난화의 대책과 목 명담당교수명학 과학 번이 름제 출 일환경 문제의 전 지구적 확산- 지구온난화 -1. 더워지는 지구지구의 온도는 항상 변하지만 온실 효과로 인해 약 15°C의 평균 온도를 유지한다. 즉, 지표에서 방사되는 적외선의 일부를 대기 중의 온실 기체가 흡수해 지표를 적절한 기온으로 유지하는 것이다. 그런데 인류의 산업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온실 기체의 농도가 증가하였고, 그 결과 온실 효과의 균형이 깨지게 되었다. 이처럼 지나친 온실 효과로 인해 지구는 점점 더워지고 있으며, 예상하지 못한 사건들을 연쇄적으로 발생시키고 있다.[브리핑] 한라산 고산식물 19종 지구온난화로 사라질 위기암매·솜다리·들쭉나무·시로미(사진)·한라구절초 등 한라산에 서식하는 고산식물 19종이 지구온난화로 인해 사라질 위기에 처할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경희대 공우석 교수는 ‘지구온난화와 고산생태’라는 논문에서 “1970년대 이후 기온이 올라가면서 해발 고도가 더 높은 곳으로 이들 식물의 서식지가 옮겨가고 있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논문은 국립생물자원관 개관 1주년 기념으로 9일 열리는 국제 심포지엄에서 발표할 예정이다. 공 교수는 60~70년대 1500m에서도 관찰되는 암매가 최근에는 1850m로, 눈향나무는 1400m에서 1700m로, 들쭉나무는 1500m에서 1850m로 서식지가 올라간 것으로 분석했다. 기온이 앞으로 상승하면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어져 설악산에서도 눈잣나무와 분비나무가 사라질 것이라고 공 교수는 예측했다.[중앙일보] 기사입력 2008-10-09 02:56 |최종수정2008-10-09 03:05위의 예는 우리나라에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다. 전 세계에 닥친 지구온난화 문제는 위의 사례보다도 훨씬 강하게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2. 지구온난화의 영향온실 효과로 인해 지구의 기온이 상승할 때 가장 심각한 영향은 물의 순환 체계의 변화이다. 세계의 빙하가 녹아서 해수면이 상승하면 섬나라 및 저지대가 물에 잠기는 것은 물론, 바다와 육지의 비율에 따른 기후 변화가 발생하게 된다. 이는 극심한 홍수 또는 가뭄을 초래하여 궁극적으로 자연 생태계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그렇기 때문에 방글라데시와 같이 인구가 해변에 밀집되어 있는 국가에서는 바닷물 범람에 의한 심각한 피해가 우려되며, 투발루의 경우에는 이미 해수면이 상승하여 많은 인구가 호주나 뉴질랜드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몰디브 역시 사정이 비슷하여 2100년까지 해수면이 최대 88cm까지 상승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3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섬이 많은 우리나라도 안심할 수 없는 것이다.한편, 건조 지대 및 열대 지역은 가뭄과 고온 현상으로 식량 생산이 어려워지고 전 세계적으로도 곡물 생산량이 감소하게 되며, 삼림 한계와 서식지의 급격한 변화는 결국 인류와 동물 모두에게 심각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지구온난화는 이제 피해갈 수 없는, 당장 해결해야 할 재앙이다.3. 지구온난화의 예방 및 한계지구온난화의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 농도를 줄여야 한다. 기후변화협약(氣候變化協約, United Nations Framework Convention on Climate Change) 이후 교토의정서[京都議定書, Kyoto protocol]까지 선진국에서는 이미 이산화탄소 배출량에 따른 부담금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예를 들어 독일은 1999년 ‘환경 친화적 조세 개혁 도입에 관한 법률’에 따라 환경세를 신설했다. 2001년 기후변화 부담금 제도를 도입한 영국은 감축 목표를 달성한 기업에 대해 부담금의 80%를 면제해 주고 있다. 프랑스는 올 들어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기준치 이하인 차량은 가격을 깎아주고, 초과하면 세금을 부과하는 ‘CO2 배출 할인할증제’를 도입했다.)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의 양을 줄이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화석 연료 대신 이산화탄소를 발생시키지 않는 대체 에너지를 사용해야 하며, 지구의 온도 조절 및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삼림을 가꾸고 보전해야 한다.그렇지만 화석 연료의 제한 문제와 삼림 보호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예를들어 삼림 보호는 국지적인 보호에 앞서, 아마존의 열대 우림과 같은 몇몇 지역부터 보호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는 매우 어렵다. 또한 화석 연료의 제한 문제는 선진국의 입장과 개발 도상국의 입장이 정반대라는 점에서 마찬가지로 어렵다. 선진국에서는 환경 기술이 발달하고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막대한 재정 지출을 하는 반면, 개발 도상국은 환경 보전보다는 경제 개발에 중점을 두어서 화석 연료 사용량을 늘려 가면서라도 산업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과 핀란드의 교육 비교- ‘평등과 자율’을 중심으로 한 접근< 목 차 >1. 시작하며2. 한국 교육의 허상3. 핀란드 교육과의 비교4. 글을 마치며과 목 명담당교수명학 과학 번이 름제 출 일1. 시작하며대개 한국 교육의 특수한 현상으로 ‘심각한 교육열’을 꼽는다. 사실 교육열이란 경쟁 사회라면 어느 곳이든 존재하는 보편적 현상이며 불가결한 현상임을 상기해 볼 때, 비단 한국 교육의 특수한 현상으로만 이해할 수는 없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한국의 특수한 교육적 병폐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출혈’이라 표현되는 엄청난 사교육비 지출, ‘기러기 아빠’로 대변되는 조기 유학 등 ‘입시 지옥’ 한국의 교육 병리 현상 때문이다.한편, 놀랍도록 빠르게 경제 성장을 이룩한 한국에 있어 교육열은 일종의 ‘원동력’의 성격을 지닌다. 이러한 맥락에서 교육열을 비롯한 교육 현상들은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한국인이 스스로 구성한 사회적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요컨대, 교육열을 비롯한 수많은 교육 현상들은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현상이며, 사회적 조건과 어떻게 반응하여 어떻게 구성되느냐에 따라 달라질 뿐이다. 같은 한국인이더라도 재미교포와 재일교포의 교육적 차이가 나는 것은 그들이 속한 사회적 조건이 다르기 때문이다.여기에서 다루게 될 한국과 핀란드의 교육도 여기에 기인한다. 다시 말해, 교육이라는 인류 보편적 활동이 어떻게 다르게 발현되는가를 살펴봄으로써 핀란드와는 다른 한국의 사회적 조건을 알아보는 것이 목적인 것이다.무엇보다도 이러한 비교가 줄 수 있는 가장 큰 교훈이 ‘타인을 통한 자기 각성’이라면, 궁극적인 목적은 한국 사회를 더 잘 이해하는 것이라고 하겠다.2. 한국 교육의 허상한국은 경기 침체와 물가 폭등에도 불구하고, 치솟는 교육비는 좀처럼 내려올 줄을 모른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가계 소비에서 그 비중이 커지면 커졌지 결코 줄어드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이를 증명하듯 좁은 강의실의 환연한 불빛 아래, 아이들의 그림자로 드리워진 학원은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희망인지 욕망인지 분간할 수 없는 것으로 가득 차 있다.한때는 명문대 입학이 목표이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에 비하면 한낱 옛 이야기로 치부될 일이다. 특목고를 기웃기웃 엿보며, 목을 길게 빼고 눈을 크게 뜨던 사람들조차도 기억에서 아득하다. 그렇다고 특목고가 잊혀진 것은 아니다. 잠시 가슴에 품어두었을 뿐이다. 일단은 국제중으로 가는 것이 최우선이기 때문이다.얼마 전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한국의 교육을 모범 사례라고 해서 한바탕 떠들썩한 적이 있었다. 물론 거의 대부분이 ‘어떤 착오가 있던 것이 아니냐?’ 하는 반응이었으며, 덩달아 한국 교육의 여러 문제들도 언급되었다.사실 한국 교육의 성과가 그렇게 졸렬한 것은 아니다. OECD회원국 중에서 한국도 항상 상위 순위권에 선정되고 있으며, 공부하는 것으로는 남부럽지 않을 정도로 많은 시간을 교육에 투자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위기’를 맞았다고는 하지만, 한국의 공교육이 다른 나라의 공교육과 비교해서 곧 ‘붕괴’될 정도로 약하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비록 그렇기는 하나, 한국 교육이 하나의 모범적 사례가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인으로서 한국 교육이 가지는 의미는 외국인이 바라보는 시선과는 또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굳이 문제를 복잡하게 끌고 들어가지 않더라도, 소위 ‘핀란드 모델’의 존재가 이를 보여준다. 이 말은, 한국의 교육이 전 세계의 전범이 되기 위해서는 핀란드의 교육을 넘어서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옛말에 ‘적을 알고 나를 알면,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라고 했다. 한국 교육을 핀란드 교육과 비교하는 것은 단순히 공통점과 차이점을 대비하는 것이 아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궁극적으로는 한국 교육을 고찰하여 잘못된 것을 바로 잡고자 하는 것이다.3. 핀란드의 교육과의 비교핀란드의 국토는 한국의 약 3배로서 유럽에서 여섯 번째로 넓은 나라에 속하지만, 인구는 한국의 10분의 1정도인 530만 명이다.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이 나라는, 막대한 조세 부담률에 상응하는 훌륭한 복지 제도와 투명하고 깨끗한 반부패 국가로 유명하다. 아울러 국제 학업성취도 평가와 국제 경쟁력 평가에서 최상위 권에 선정되는 등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나라이다.이처럼 훌륭한 성과의 뒤에는 늘 그렇듯이 교육의 힘이 있기 마련이다. 특히 자원이라고는 숲뿐인 핀란드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한데, 이는 한국도 마찬가지이다.핀란드는 학업 성취면에서 학생들의 편차가 매우 적다. 학생들의 편차가 작다는 것은 또 다른 의미로 학교 간 편차가 매우 적음을 뜻한다. 즉, 교육의 결과에 있어서 균질적이라고 할 수 있다. 국제 학업성취도 평가 보고서에서도 밝혀졌듯이, 대부분의 국가에서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 변량은 학교 내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학교 간에서도 두드러지게 나타났다.한국의 경우만 보더라도, 소위 말하는 ‘명문’ 출신 학생들이 보여주는 대학 진학률은 이를 잘 증명한다. 달리 표현하자면, 학생들의 학업 성취는 학교 내 격차보다도 학교 간 격차에서 이미 결정 난다는 것이다. 이는 한국뿐만 아니라 범세계적인 현상이기도 하다.이와 달리 핀란드의 경우 학교 간 격차는 그리 크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러한 사실은 핀란드 학생들의 학업 성취 격차가 오직 학교 내 격차임을 의미하며, 핀란드의 복지 수준을 짐작하게 한다. 왜냐하면 학교 간 격차가 없다는 것은 그만큼 사회적 불평등이 없다는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이러한 핀란드 교육정책의 핵심은 철저한 평준화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시민에게 동등하게 교육을 제공한다는 것인데, 취학 전 과정부터 학위를 수여 받는 대학교까지 전 과정에 걸쳐 무상으로 진행된다.취학 전 과정과 대학교 사이에는 의무 교육의 초·중학교 9년, 일반 과정과 직업 훈련 과정으로 양분되는 고등학교 3년이 있다. 초·중학교의 9학년 과정에서 처음 6년은 한국의 초등학교에 해당되며, 학급 담임교사가 모든 과목을 가르친다. 이후 3년 과정에서는 한국의 중학교처럼 과목별 교사가 가르친다. 교재로는 교과서가 있으며, 교과서는 교사가 재량으로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교과서보다는 교사가 자율적으로 준비한 다양한 자료를 더 많이 활용한다.가장 중요한 것은 초등교육과 중등교육을 나누지 않는다는 것이다. 7~16살 학생들은 모두 같은 수준의 학교에서 공부를 시작하며, 학교는 이들을 학업 성취도에 따라 나누지 않는다. 모든 학생들에게 9년 동안 동등한 교육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교육 과정을 마치고 16살이 되면, 학생들은 대학으로 가거나 직업 교육 학교로 가게 된다.또 모든 교육 과정에는 ‘페어플레이’ 원칙이 적용된다. 즉, 모든 학생들이 교육에 참여하여 학습할 수 있는 기회를 똑같이 가지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학생들이 스스로 무엇을 잘하고 무엇이 부족한지 알 수 있다.학생들이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도 눈여겨 볼만 하다. 핀란드에서는 7살이 돼야 학교에 갈 수 있다. 얼핏 한국과 비교해서 놀라울 일도 아니지만, 영국에서 5살부터 공교육을 시작하는 것에 비한다면 다소 더디다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게다가 학교에서는 반나절만 지내고, 방학도 길다. 그렇다고 성적표의 등수가 있는 것도 아니다. 영재교육도 없다. 학교 밖의 사교육은 더더욱 없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핀란드 교육이 훌륭한 성취를 이루게 된 것은 탄탄한 공교육 덕분이다. 핀란드는 중학교는 근거리 배정, 고교는 선택제다. 더구나 학년으로 학생의 능력과 자질을 제한하지 않기 때문에, 학생들은 자신의 수준에 맞는 수업 계획을 스스로 짜야 한다. 그러므로 자연히 스스로 공부하는 습관이 들게 된다.또한 학생이 능력만 있으면 얼마든지 뒷받침해 주고 공부가 뒤지는 학생은 특별 교육을 해 주기 때문에, 평준화를 지향하면서도 모두 실력이 향상되는 상향평준화를 이룬 것이다. 핀란드의 교육이 전 세계의 부러움을 사고 있는 것은 아마도 이 때문일 것이다.4. 글을 마치며앞서 살펴본 것처럼 핀란드의 학업성취도가 높은 것은 우수한 학생들이 많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성적이 낮은 학생들에 대한 보완이 잘 이루어짐으로써 우수한 학생과 부진한 학생간의 상대적인 격차가 줄어들었고, 이로 인해 전체 평균이 다른 나라에 비해 높을 수 있었던 것이다.
사실성과 허구성의 미학-?崔娘傳?, ?梁山璹傳?-< 목 차 >1. 들어가며2. 소설적 형상화의 사실성3. 한문학 장르로서의 傳4. 소설적 허구와 진실5. 사실과 허구의 딜레마과 목 명담당교수명학 과학 번이 름제 출 일사실성과 허구성의 미학-?崔娘傳?, ?梁山璹傳?-..1. 들어가며우리의 小說史를 논할 때, 金時習의 金鰲新話 를 그 嚆矢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물론 論者에 따라서는 그보다 위의 시대로 遡及해야 한다는 견해)가 있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소설의 시작으로 金鰲新話 를 꼽는 데에 커다란 이견이 없을 것이다.그런데 잘 알려진 바와 같이 金鰲新話 의 작품들은 傳奇的 要素를 지니고 있다. 이는 다시 말해, 現實性이 결여된 작품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소설은 事實的이지 않은 작품으로부터 비롯되어 발전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그러나 소설이 시대에 따라 발전 ? 변천되었더라도, 또 아무리 사실적이지 않다 하더라도, 소설이 현실을 반영한다는 점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그 形式과 技法에서 시대적인 차이는 있을지 모르지만,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것은 우리들이 살아가는 현실의 복잡하고 多難한 모습을 그려낸다는 점이다.이러한 사실에 주목하여, 실제적인 사건이나 인물을 소재로 하여 작품화 된 寫實系 小說들이 지니는 構造 一般과 美學에 대해 考察하고자 하였다. 이에 따라 傳, 傳奇로 이어지는 巨視的인 흐름과 ‘傳記와 傳奇’, 그리고 ‘虛構의 兩價性’ 등 다양한 談論이 있었다.그러나 이후의 논의 및 토론은 실질적으로 用語와 槪念에 대해 중점적으로 이루어지는 경향을 보였다. 또한 ?崔娘傳?을 중심으로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爭點은 작품의 핵심보다는 주로 작품 주변을 대상으로 삼은 것들이 많았다.그 까닭으로는 기존논의를 검토함에 있어, 요약 및 정리가 다소 미흡했던 점을 들 수 있다. 발표가 선행 연구자들의 논의로 이루어져 있는데다가, 각각의 논지가 한데 섞여 있어, 오히려 논지 전개를 흐리기 때문이다.결과적으로, 이 모든 것들이 內面的 意味로까지 이어지지 못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2. 소설적 형상화의 사실성?崔娘傳?은 孝宗朝를 배경으로 삼아 이여택과 최랑의 비극적인 사랑을 그린 작품이다. 아직 작품의 창작시기와 작자에 대해 정확히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대략 효종 대를 前後로 창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울러 글의 문체로 볼 때, 상당한 학식을 겸비한 文士의 저작물로 생각된다.?崔娘傳?의 가장 큰 특징은 이여택이라는 사실적인 인물의 행적과 효종 대에 실시되었던 奴婢推刷令 등의 역사적인 사건을 교묘히 조합하여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는 점이다.우선 이여택이라는 인물은 曲江太守에서 파직되었다가 2년 후 安州通判으로 부임하는 등 실재했던 그의 행적과 작품 속에 서술된 이여택의 행적이 일치하고 있다. 또한 작품 속 노비추쇄령은 실제로 효종 6년(1655)에 처음 실시되었으며, 그로부터 2년 뒤 발생한 長吏致死 사건 또한 효종 8년에 있었던 이여택의 일과 일치하고 있다.)이처럼 ?崔娘傳?의 내용이 傳記的 ? 歷史的 사실과 일치하고 있으므로, 이여택과 최랑의 인연 또한 실재했을 가능성이 있다.?梁山璹傳?은 壬辰倭亂을 배경으로 삼아 양산숙이라는 비극적 영웅의 삶을 그린 작품으로, 안동김씨 문중에서 간행한 金祖淳(1765~1832)의 楓皐集 15권에 실려 있다.한편, 양산숙에 대한 기록은 宣祖修正實錄 의 것이 가장 자세하고 믿을 만한데, 대부분 진주성 싸움에 할애되어 있다. 실록 이외에도 현재 남아 있는 그에 대한 언급들은 거의 모두 진주성 싸움과 죽음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이처럼 ?梁山璹傳? 또한 앞서 살펴보았던 ?崔娘傳?과 같이, 양산숙이라는 사실적인 인물의 행적과 임진왜란 당시의 진주성 전투라는 역사적인 사건을 교묘히 조합하여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아울러 최랑이 그랬던 것처럼, 양산숙 역시 잘 알려진 인물은 아니므로 ?梁山璹傳?의 서술에는 어떤 방식으로든 작자의 상상력과 의식이 투영될 수밖에 없다.즉, 직접적인 論評이나 架空의 사건을 창작하는 것이 아니라 수집된 事蹟을 取捨選擇하고 서로 관련 지워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사실을 형상화)하는 것이다.3. 한문학 장르로서의 傳앞서 살펴본 작품들이 傳을 빌려왔다는 것은 題名에서도 알 수 있다. 따라서 傳의 특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한마디로 말해서 傳은 轉이다. 그 구성은 趣意部(自序) - 行蹟部(本贊) - 評結部(論纂)의 3단 구성으로 짜여지는데, 정통의 傳이 아니면 자서나 사찬은 없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볼 때, ?崔娘傳?과 ?梁山璹傳?의 구성 방식은 傳의 그것과 흡사하다고 할 수 있다.한편 傳은 대상을 간명하게 槪括하는데, 여타의 장르에 비해 사태를 명료히 드러내는 특징을 지닌다. 그러므로 ?崔娘傳?과 ?梁山璹傳?이 일반적인 傳奇小說이나 野談系小說과 비교하여 개괄적 묘사가 두드러지는 점)은 눈여겨 볼만 하다.이상의 고찰에서 살펴본 바에 의하면 ?崔娘傳?과 ?梁山璹傳?은 傳 양식을 차용하고 있다. 그러나 傳의 기록 전통과는 달리, 작자가 사실과 그에 대한 상상을 바탕으로 형상화하였다는 점에서 虛僞의 사실화로 볼 수도 있다.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崔娘傳?과 ?梁山璹傳?의 작자가 지닌 의식이다. 傳을 표방하고 있는 만큼 작자는 사실을 전한다는 생각으로 글을 쓰지만, 동시에 자신도 모르게 허구가 개입되는 것이다. 이 경우 據事直書의 정신을 존중하는 객관적 ? 사실적 서술 태도에 감동이 더해졌으므로, 문학적으로 ‘構成된 허구’ 즉, 事實과 虛構가 혼합된 작품이 되는 것이다.그러므로 아무리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내용이 있다고 해서 그것을 순전히 허구로는 볼 수 없다. 무엇보다도 허구적 서사 양식이 주축을 이루는 서양의 경우와 달리, 사실과 관련된 문학이 문학사의 주축을 담당해왔다고 할 수 있는 동양의 경우라면 더욱 그러하다.?崔娘傳?과 ?梁山璹傳?의 상식을 넘어서는 행동들이 오히려 서술의 사실성을 강조하는 證據로서 활용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즉, 傳의 영향으로 인한 주인공에 대한 유별난 관심은, 인물에 대한 평가를 특정한 방향으로 유도함으로써 입전 인물에 대한 사실성과 필연성을 부여하는 것이다.4. 소설적 허구와 진실‘○○傳’ 등에서 보이는 사실성이 傳에 기인하면서도, 정통 한문학 장르의 傳과 다르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에 따라 사실과 허구 사이의 관계 또한 상당히 다름을 알 수 있는데, ?崔娘傳?과 ?梁山璹傳? 등과 같이 허구성을 지닌 소설이 사실의 서술을 표방하는 逆說은, 곧 그것들의 갈등 관계를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앞서 언급했듯이 ?崔娘傳?과 ?梁山璹傳?은 사실성을 지니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사실성이 객관적 사실임은 물론이다. 최랑과 이여택이 만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노비추쇄령이 있었으며, 양산숙의 비장하고도 숭고함이 빛날 수 있었던 것도 임진왜란이 있었기 때문이다.이러한 사실들은 작품에 사실성을 부여할 뿐만 아니라, 필연성을 부여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우연적인 사건도, 언뜻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던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예를 들어, 최랑은 미모가 이를 데가 없었고, 또한 바느질이 뛰어나 칭찬하지 않는 사람이 없는 인물이다. 그런 그녀를 첩으로 맞이하려는 양반들은 당연히 헤아릴 수조차 없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그녀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작품 속에서는 나이를 이유라고 했지만, 진정한 이유라고 볼 수는 없다. 이는 二八靑春이라는 말처럼 관습적으로 여성 주인공이 16세로 설정된다는 점에서도 그러하다.한편, 여기에는 자연히 작자 자신의 의도가 문학적 표현으로 발현되기 마련이다. 진주성에서 치열하게 고군분투하던 양산숙의 모습이나, 죽어가면서도 이여택의 살갗에 닿고자했던 최랑의 행동에 대해 작자가 느꼈을 욕망이 무엇인지는 짐작할 수 있다.이를 달리 표현하면, 당대 사대부들의 낭만적인 꿈이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꿈이라는 것은 현실세계에서는 실질적으로 ‘존재하기 어렵다’는 것이며, 이 꿈이 낭만적이라는 것은 예외를 통해서만이 가능하기 때문이다.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이 있으니, 그것은 최랑의 변모 과정에서 드러나는 진실성이다. 최랑의 심경 변화를 따라가다 보면, 그녀는 필연적으로 그러한 소원을 지닐 수밖에 없음을 알 수 있다.결국, ?崔娘傳?은 사실성과 허구성의 결합에 기인하여, 현실에서는 보이지 않는 진실이 드러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는 작자가 의도한 것이 아니며, 의도할 수도 없던 부분이다. 따라서 최랑의 죽음이 갖는 의미는 이중적인 성격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5. 사실과 허구의 딜레마역사적 사실과 관련지어 추정한 연구들은 대체로 어떤 가정에 의존하는데, 역사적 사실을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추정하는 것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으며 불가피하기도 하다. 그러나 뚜렷한 근거 없이 오로지 어떤 가정에만 의존하거나 거리가 먼 추정은, 주관적 몽상에 불과할 뿐이며 전혀 사실 여부를 입증할 수 없다.
역옹패설 의 기록 분석- 차 례 -1. 머리말2. 역옹패설 의 저술배경3. ‘事大’와 역사의식4. 인물기록과 그 성격1) 역사적 기록성2) 이념적 표상성3) 풍자적 골계성5. 맺음말※ 참고문헌과 목 명담당교수명학 과학 번이 름제 출 일1.머리말무신정변이 일어난 100년 뒤. 1270년(원종 11년) 무인집정이 끝이 나고, 새로운 혁신 세력인 신흥사대부가 대두한다. 이들은 立身行道의 유교사상을 기본교양으로 하였고 자신의 출신과 역사에 대한 사명의식을 자각하고 있었다. 이에 따라 밖으로는 元에 사대교린의 외교관계를 유지하면서, 안으로는 무신정권의 유제를 청산하여 국정을 쇄신하고자 하였다.李齊賢(1287~1367)은 이러한 신흥사대부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제국의 힘에 기대어 왕권에 혈안이 되어 있었던 附元輩와는 달리 왕권을 강화하고 무신집정기의 유제를 청산하여 古制를 회복하였다. 아울러 이 일련의 과정을 역옹패설 이라는 筆記로 남겼는데, 여기에는 고려의 역사와 초기 신흥사대부의 역사적 인식과 전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지금까지 역옹패설 의 연구는 갈래와 내용성격의 구명으로 진행되어 왔다. 갈래에 관한 것은 다음 장에서 저술배경과 아울러 언급하기로 한다. 본고는 역옹패설 ?전집?의 인물기록과 그 성격구명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기왕의 연구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신용호는 ‘익재의 문학관’을 구명하면서 역옹패설 ?전집? 부분에서 이제현이 살았던 시대인 신흥사대부세력이 등장한 시기, 안향?백이정?권보의 성리학 전래와 興學을 주목하여 논하였다.) 박성규도 역옹패설 ?전집?에서 왕조의 정통성과 제도, 사회적 규범과 고려의 이데올로기 등에 관한 문제를 논의 하였다. 특히 역옹패설 속에서 보이고 있는 지식인으로서 현실문제의 인식과 대응방식에 대해 논하였다.)역옹패설 전체의 내용분류는 장덕철에 의해 이루어졌다. ?전집?의 인물기록을 政事逸話와 人物逸話로 나누었으며, 이를 記事類에 포함하였다.) 그런데 구분한 일화의 구체적인 전개 양상에 대해 충분한 논의가 이루어지지는 않았다리매김하였고, 고려왕실의 姓名의 혐의점을 해명하였다. 그리고 昭穆論을 거론하여 제후국으로 위상을 정립시키기도 하였다. ?전집1?에서 서술된 역사의식의 핵심은 대외적으로서는 사대주의 노선을 취하였으며, 안으로는 유교이념에 근간한 古制를 회복하는 것이다.이 사대주의에 관한 것은 몽고의 침략과정을 기록한 부분에 나타난다. 몽고의 제1차 침략은 1231년이었다. 몽고의 장군 撒禮塔가 대군을 이끌고 압록강을 건너 북계의 여러 성을 함락시키고 개경을 포위하기에 이르렀다. 수도가 포위되자 화의를 청하게 되었고, 이에 몽고군은 서북쪽에 達魯花赤을 설치한 후 철수하였다. 이제현은 여기서 강동성 전투 때에 고려인 洪大宣이 향도가 된 것을 거론하였다. 원나라 규장각 학사 虞集 등이 撰述한 경세대전 에 고려인 홍대선이 향도가 되어 지원한 것으로 기록되었으니 잘못이라고 한 것이다.)오히려 강동성 안에 大遼收國의 잔당을 정벌하는데, 고려가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연합작전을 하였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시선은 당시 패권을 장악한 元나라의 폭력에 더 큰 화를 초래하지 않으려는 의식의 발로로 보아도 무방하다. 곧 신흥사대부이면서 집정자인 이제현이 자기 시대까지 계속된 대제국 원의 강권적 위협과 횡포에 대한 대응방법의 하나였던 셈이다. 여기서 ‘事大’는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섬기면 그 작은 나라를 지켜 주어야 하는 논리로 이해될 필요가 있다.한편, 이제현은 원이 고려에 征東行省을 설치하고자 할 때 그 부당성을 반박하는 글을 올리기도 하였다. 여기서 사대관계가 유지되는 한, 천자의 나라는 제후국을 공격하지 않는다는 중용 장구를 예를 들어 설득하고 있다. 행성을 설치한다면 천자가 제후국을 滅하는 침략 행위라는 것이다.) 그 결과 우리나라에 행성을 두자는 주장이 마침내 종식되었다. 경전인 중용 장구를 들어 원나라 천자가 제후국 고려를 보전해야 한다고 하여 상대를 높이고 또 고려의 자주성을 지키는 외교적 수완을 발휘한 것이었다. 중세인의 보편이념을 내세워 고려의 보존을 강구한 예인데, 이제현에게 유학 삼대가 출세하였다는 것이다. 이 두 내용에 이어 무신 정권시기 폭압적 살생을 금한 진준과 김부의 짤막한 언행과 그 음덕을 입은 후손들에 대한 내용도 언급되어 있다.그런데 이 네 개의 인물은 서로 상관된다. 서신일이 사냥꾼의 화살에 맞은 사슴을 살려 주어 그 후손들이 대대로 재상이 된 사실과 박세통이 밀물을 타고 포구에 밀려온 거북을 놓아 주어 삼대가 재상이 되는 복을 받은 일, 그리고 무신정권 때에 진준과 김부가 朝臣과 文士를 살육하지 않아 그 후손들이 출세했다는 것은 모두 일개인의 음덕으로 그 후손이 복을 입은 공통점이 있는 것이다. 그런 한편 무력으로 살생을 서슴치 않는 무신 정권을 은근히 부정하였던 바, 이는 바로 이제현의 역사의식의 화두이기도 했다.이어서 강화도 천도와 관련한 인물이 등장하는데, 바로 兪升旦이다.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섬기는 것은 도리입니다. 예의로써 섬기고 신의로써 사귄다면 저들이 또한 무슨 명분으로 번번이 우리를 곤란하게 하겠습니까? 성곽을 버리고 종묘와 사직을 남겨둔 채 바다 섬으로 도망해 가 엎드려서 구차스럽게 세월만 끌어가는 사이에 변두리의 백성들로 하여금 젊은이와 아낙네 할 것 없이 붙잡혀 종이 되고 포로가 되게 하는 것은 나라를 위한 좋은 계책이 아닙니다.)유승단의 사대논리로, 이제현 자신의 사대논리의 하나이기도 한데, 결과적으로 강화도 천도의 부당함을 제시한 것이다. 강화도 천도는 오히려 원나라를 자극하여 침략을 조장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이는 무인집정자의 자기 권력유지를 위한 것이었을 뿐이며, 결국 民이 무인집권의 파행과 원의 침략 속에서 희생될 수밖에 없음을 역설한 예이다. 이제현 자신도 강화도 천도를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한편 이러한 사대논리의 또 한 축으로 강동성 전투의 金就礪를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그는 몽골을 도와 강동성 전투를 승리로 이끈 인물이다. 당시 東晋에서 몽골과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황제의 예를 취할 것을 요구하자, 하늘에는 두 개의 해가 없고, 백성에게는 두 임금이 없는 법인데 어찌 황제, 허공과 홍자번의 ‘勤愼’, 김방경의 ‘節義’, 유천우의 ‘孝誠’과 설문경의 ‘公正’ ? ‘儉素’등으로 인물 품평을 하기도 했는데, 이 모두 유가적 가치로써 인물을 기록한 예이다. 그리고 治者로서의 용맹하고 과감했던 김지대ㆍ김경손ㆍ김상훤, 소송사건을 지혜롭게 판결했던 손변, 유석이 안동의 수령으로 있을 때에 온 고을의 백성들이 ‘부모처럼 敬愛’하고, ‘神明처럼 그를 공경’하였던 일을 기록하기도 하였다.그런데 위에 열거된 인물은 대부분 공경대부들이지만 살다간 시대도 다르고, 또 인물 간에 특정한 이념적인 연대도 이루고 있지 않은 편이다. 이것을 이제현은 유교적 지향점으로 묶어 일체화시킨 셈이다. 위에 제시한 바 이제현이 인물들을 表彰한 품평어‘孝誠 ? 勤愼 ? 淸廉 ? 儉素 ? 好禮 ? 公正 ? 爲政’등을 통해 신하의 모범적인 修身과 신하로서의 齊家 ? 治國한 인물을 표상한 것이다. 즉 사람 되는 근본은 효인데, 유천우를 그 대상이었으며, 수신의 준범이 될 인물(한광연?허공?홍자번)과 수신을 바탕으로 제가?치국(김방경?설문경?김지대?김경손?김상훤?손변?유석)한 인물들의 사례도 기록하였다. 이는 유교이념에 근간한 古制를 회복한 표창할 만한 인물을 선택하여 제시한 것이라고 본다. 이것이 이제현이 지향하는 자기시대의 모범적인 지표이면서 궁극적으로는 유학의 이념을 표상하는 과정이기도 했다.3) 풍자적 골계성?전집2?의 元?甲까지 인물기록은 역사적 성격을 지닌 것이었다. 곧 인물의 역사적 삶을 서술하였으며, 그 내용은 고려사 해당 인물 ?열전?에 그대로 수용되었다. 그런데 이런 역사서에 수용되지 않은 인물들이 역옹패설 에는 있다. 이들은 대개 골계적 성격을 보여주는데, 이제현 스스로도 인물의 풍자에 주목한 사실이 있었다.손이 역옹에게 말하였다. 그대가 전집에서 기술한 바는 조종세계의 먼 내용과 이름난 공경의 언행도 자못 많이 실려 있으나 골계의 말로 끝을 맺었다. (중략) 내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둥둥 북을 치는 격고장도 국풍에 들어 있고 너울너울 춤을 추는 빈지초연장용은 그 풍자가 신랄하다. 중서성에서 이 두 사람 사이에 있었던 상황을 객관적으로 기록한 것 같으나, 대상인물의 처한 자리와 그에 맞는 행위의 괴리를 적시하여 예리한 노림수를 두고 있다. 다음은 두 인물이 ‘중서성에 앉아’자신들의 ‘주먹질’에 관하여 대화한 내용이다.이의민이 두경승에게 자랑하여 말하기를, 아무개가 제 용력을 자랑하기에 내가 한번 쳐서 넘어뜨리기를 이와 같이 하였소. 하면서 주먹으로 기둥을 치니, 서까래가 흔들렸다. 두경승이 대답하기를, 어느 때의 일인데, 내가 맨주먹으로 힘껏 휘두르니 사람들이 다 흩어져 달아났고 또한 주먹으로 벽을 치니 벽을 뚫고 나갔소. 라고 하였다.)우선 이런 주먹 자랑이 중서성이란 국가의 최고 의결기관에서 벌어졌다는 점 자체가 매우 아이러니컬한 상황이다. 이것은 한마디로 인물과 시대를 연결시켜 세상을 비꼬는 이제현의 풍자적 글쓰기의 묘미이며, 나아가 무인정권에 대한 부정의식을 구체화한 예로서도 제격이 아닐 수 없다. 이 내용의 마지막 부분에서 다음과 같은 시가 첨부되어 있다.吾畏李與杜 내가 두려워하는 것 이씨와 두씨,屹然眞宰輔 높이 군림한 참 재상일세.黃閣三四年 재상의 지위는 3,4년이지만拳風一萬古 주먹 바람은 만고에 떨치리.비정상적인 폭력으로 권력을 잡은 두 인물의 勇力을 통렬히 풍자하고 있다.이에 반해 인물이 어떤 시대적 의미나 사회적 비판의 대상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그야말로 일개인의 성격이나 기질에 초점이 맞춰 기술된 경우도 적지 않은데, 본격적인 ‘골계성’을 따져 볼 대상이기도 하다. 이 경우 독립된 인물의 순간적인 상황에 관심이 모아진다. 그리고 그 양태는 생활 속에 일어난 일을 그대로 옮긴 것으로 웃음 자체를 유발하기 위한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尙書 朴?가 당시 여자가 많고 남자가 적으니 일부일처는 폐단이라고 하면서 축첩 허용의 箚子를 올렸는데, 생각지도 않게 고려의 부녀자들이면 귀천 구분할 것 없이 모두 성을 내면서도 두려워하였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아마도 당시 전란으로 인하여 남녀 비율의 불균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