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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씨의 연원과 발전
    李氏의 淵源과 發展이씨의 연원에 관한 몇 가지 학설1. ?姓에서 기원했다는 설이다. 堯임금 때 고요가 일찍이 大理라는 관직을 역임하였고, 그의 아들 伯益이 영성을 사성 받았다. 그 후 자손들이 虞, 夏, 商 三代 동안 대리라는 관직을 역임하였는데, 그 자손들의 당시의 풍습에 따라 관직으로 성씨를 삼아서 理氏라 하였다. 理氏를 李氏로 바꾼 사람에 관해서는 李利貞이라는 설과 老子라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첫 번째 설의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李利貞이 은나라 말기에 紂王의 폭정을 피하여 어머니 契和氏와 함께 伊侯之墟(지금의 하남성 洛陽市 嵩縣 伊水가, 일설에는 洛陽市 伊川縣 伊水가)로 피신하였다. 이이정과 그의 어머니 契和氏는 도중에 먹을 것이 없어서 산에 있는 자두를 먹어서 허기를 채웠다. 은나라가 망하고 나서 契和氏의 고국인 陳(수도는 지금의 하남성 周口市 淮陽縣)나라와 멀지 않은 苦縣(지금의 하남성 周口市 鹿邑縣)에 정착하게 되었다. 그 후 이이정은 자두나무의 은혜를 기억하여 理氏에서 李氏로 바꾸었다. 이 설은 당나라 때 李延壽가 최초로 주장한 것이다. 두 번째 설의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姓氏考略』의 내용에 근거하면 주나라 이전에는 史書에 이씨가 보이지 않는데, 노자 이후에 史書에 이씨가 보인다고 한다. 노자는 이이정의 후예인데, 조상들이 대대로 理官을 지냈다. 理자와 李자는 古音이 서로 통하기 때문에 곧 李를 성으로 삼았다고 한다.2. 자두나무를 가리켜서 성으로 삼았다는 설이다. 『史記正義』는 『玄妙內篇』을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노자의 어머니가 노자를 81년 동안 임신하였다가 자두나무 아래를 거닐다가 왼쪽 겨드랑이를 갈라서 노자를 낳았다.” 이 설은 노자를 이씨의 득성시조로 간주하는 것이다. 지금의 河南省 周口市 鹿邑縣의 민간전설에 의하면 노자의 어머니가 노자를 81년 동안 임산하였다가 자두나무 아래에서 노자를 낳았는데, 노자를 낳았을 때 노자는 이미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었기 때문에 노자의 어머니가 노자를 ‘나의 늙은 아들[我的老兒온다. 당시의 苦縣 일대의 방언에서는 호랑이를 ‘狸兒[LI Er]’라고 불렀는데, 친척들과 이웃들이 노자를 농담조로 狸兒라 불렀다. 훗날 점차로 ‘李耳[LI Er]’로 바뀌었다. 호랑이 토템설은 중국 南方李氏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5. 老姓에서 기원했다는 설이다. 이러한 설은 주로 노자의 성씨에 대한 고증으로부터 기원한다. 즉 노자는 성이 李氏가 아니라 老氏이며, 이씨가 노씨로부터 기원했다는 설이다. 고문자학자 唐蘭은 노자의 성이 李, 이름이 耳라는 주장은 불확실하다고 생각하였다. 郭沫若, 馬敍倫, 陳獨秀 등도 당란의 이 설에 동의하였다. 高亨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당시에 子라 칭해졌던 사람들, 예컨대 공자, 증자, 묵자, 맹자, 장자, 혜자 등은 모두 그 성을 칭하였다. 하지만 유독 노자만이 ‘老聃’이라 칭하고 ‘李聃’이라 칭하지 않았다. 또한 ‘老子’라 칭하고 ‘李子’라 칭하지 않았다. 따라서 “노자의 원래의 성이 老氏라는 것을 명확히 알 수 있다.”라고 하였다.6. 소수민족이 이씨로 성을 바꿈으로써 이씨가 된 경우이다. 삼국시대에 제갈량이 서남지방의 소수민족을 평정하고 나서 그들에게 趙, 張, 楊, 李氏 등을 사성하였다. 선비족 중에는 복성인 叱李氏가 있었는데, 한화된 후 이씨로 성을 바꾸었다. 이 선비족 이씨는 洛陽李氏이다. 北魏시대에 代北의 복성 중에 高護氏가 있었는데, 효문제를 따라 중원으로 들어온 후 이씨로 바꾸었다.7. 타성에서 이씨로 성을 바꿈으로써 이씨가 된 경우이다. 관련 자료에 의하면 당나라의 건국 공신들 중에서 徐, 丙, 安, 杜, 胡, 弘, 郭, 麻, 張, 董, 羅, 鮮于, 阿布, 阿跌, 舍利, 朱邪 등의 성을 가진 장수들에게 국성인 이씨를 사성하였다고 한다.중국 이씨의 世系黃帝軒轅氏: 중화민족의 공통 시조이다. 본래의 성은 公孫인데, 有熊(지금의 하남성 鄭州市 新鄭市)에서 출생하고 창업하고 도읍을 정했기 때문에 有熊氏라고도 한다. 일설에는 姬水(渭河 유역, 지금의 陝西省 延安市 黃陵縣 沮河 혹은 陝西省 武功縣 漆水河)에서 출생하고 의 曾孫이라고도 한다. 참고로 소호금천씨의 이름은 摯이며, ?水(지금의 ?汶河)에서 태어났다. 金德으로 왕이 되어 다스렸으며, 窮桑(지금의 산동성 제녕시 곡부시 일대)에 도읍을 정하였다가 훗날 偃땅(지금의 산동성 濟寧市 曲阜市)으로 도읍을 옮겼다. 父系는 동이족 少昊氏族이며, 母系는 황제의 손자인 ?頊의 후손이라고도 한다. ?陶는 상고시기의 위대한 사상가, 교육자, 정치가이다. 사학계와 사법계에서는 그를 중국의 ‘司法鼻祖’라 간주한다.『元和姓纂』ㆍ『北史』ㆍ『新唐書』「宗室世系表」의 내용에 근거하면 전욱고양씨가 大業을 낳았다. 大業이 女華를 낳았고, 女華가 ?陶를 낳았다고 한다. 참고로 ?陶의 世系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주장들이 있다.1. 황제헌원씨→창의→전욱고양씨→대업→女華→고요(고요의 어머니 여화가 전욱고양씨의 손녀라는 설, 고요의 모계 위주로 설명, 『元和姓纂』ㆍ『北史』ㆍ『新唐書』「宗室世系表」의 설)→백익2. 소호금천씨→◎→◎→고요(고요의 증조부가 소호금천씨라는 설, 고요의 부계 위주로 설명)→백익3. 황제헌원씨→창의→전욱고양씨→◎→女修+大業→고요(고요의 어머니 여수가 전욱고양씨의 손녀라는 설, 『史記』ㆍ『路史』의 설)→백익4. 황제헌원씨→창의→전욱고양씨→◎→女修→고요+女華(고요의 어머니 여수가 전욱고양씨의 손녀이며, 그의 부인이 여화라는 설, 『史記』「秦本紀」의 설)→백익5. 황제헌원씨→창의→전욱고양씨→◎→◎→大業→고요(고요의 아버지가 대업이며, 대업이 전욱고양씨의 외증손이라는 설)→백익6. 황제헌원씨→소호금천씨→◎→◎→고요(소호금천씨가 황제헌원씨의 아들이며, 고요는 소호금천씨의 증손자라는 설)→백익7. 황제헌원씨→淸→소호금천씨→◎→大業→고요(소호금천씨가 황제헌원씨의 손자이며, 고요는 소호금천씨의 증손자라는 설)→백익8. 태호복희씨→該+여와씨족의 수령 皇娥→소호금천씨→◎→◎→고요(소호금천씨가 태호복희씨의 후손이며, 고요는 소호금천씨의 증손자라는 설)→백익9. 태호복희씨→該+여와씨족의 수령 皇娥→소호금천씨→女修→고요(고요의 어머니 여수가 소호금천씨의 딸이라는(지금의 安徽省 六安市)에 봉하였다. 우임금은 아울러 帝位를 고요의 아들인 백익에게 물려주려고 하였지만 우임금의 아들인 啓로 인하여 실현되지 못하였다. ?城(지금의 安徽省 六安市)은 偃姓 고요부족의 활동무대이자 거주지였다. ?陶는 요, 순, 우임금과 함께 ‘上古四聖’이라 칭해진다. 고요의 자손들은 대대로 大理라는 관직을 세습하였기 때문에 商代에 이르러 당시의 관습에 따라 관직으로 성씨를 삼아 理氏라 하였다. 당현종은 이씨의 혈연 시조가 고요라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여 天寶 2년(743년)에 그를 ‘德明皇帝’로 추봉하였다. 지금의 安徽省 六安市 소재지 동쪽 二十里鋪 小廟村에 고요의 古墓가 있다고 한다. 고요에게는 아들이 3명이었다. 맏아들 백익은 舜임금으로부터 ?땅(지금의 산동성 萊蕪市 羊里鎭)을 식읍으로 받았다. 참고로 ?땅은 지금의 산동성 萊蕪市와 泰安市 교차 지점에 있었다. ?城의 故地는 지금의 산동성 萊蕪市 羊里鎭 城子縣村에 있다. 둘째 아들 仲甄은 六땅(安徽省 六安市)에 봉해졌다. 셋째 아들은 偃땅(지금의 산동성 濟寧市 曲阜市)에 봉해졌다. 백익은 고요가 죽은 이후에 ?땅에 봉해졌다. 고요의 후예 성씨로는 李, 趙, 黃, 徐, 馬, 梁, 蕭, 沈, 廖, 鍾, 汪, 康, 秦, 葉, 阮, 江, 段, 龍, 葛, 費, 瞿, 谷, 廉, 時, 舒, 甄, 耿, 陽, 裴, 解, 車, 房, 藍, 原, 桑, 蒲, 宗, 巴, 勞, ?, 寧, 諸葛, 繆, 英, 益, ?, 鹽, 祁, 理, 里, 相里, 京, 恩, 利, ?, 聃, 眈, 徵, 崇, 段干, 老, 老陽, 柱, 丙, 廣武, 老萊, 賀蘭, 堅吾, 大野, 徒何 등이 있다.伯益: ?姓의 공동 시조이다. 새를 토템으로 하는 동이족의 수령이다. 伯?, 柏?, 柏益, 伯?, 化益이라고도 하며, 費땅(지금의 산동성 臨沂市 費縣)에 봉해졌기 때문에 大費, 費侯라고도 한다. 고요의 맏아들인데, 舜임금으로부터 ?땅을 식읍으로 받았다. 그는 원래 舜임금의 畜馬官이었다. 말을 기르는데 공이 많아서 舜임금이 ?姓으로 사성하였다. 주로 활동한 어났다고 한다. 대략 기원전 471년에 죽었다고 한다. 李利貞의 11세손이다. 일설에는 13세손 혹은 17세손이라고도 한다. 『元和姓纂』에는 이이가 이이정의 11세손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唐書』「李氏通族世表」에는 이이가 이이정의 13세손이라 기록되어 있다. 최신의 연구에 의하면 이이는 이이정의 17세손이라고 한다. 陳나라 苦縣 ?鄕 曲仁里(지금의 河南省 周口市 鹿邑縣 太淸宮鎭 太淸宮, 일설에는 安徽省 ?州市 渦陽縣 閘北鎭 鄭店村 天靜宮) 사람이다. 陳나라는 훗날 楚나라에 병합되었다. ?鄕은 賴鄕, 瀨鄕이라고도 하였다. 太淸宮鎭은 鹿邑縣 소재지에서 동쪽으로 5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太淸宮鎭을 옛날에는 猶龍鎭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이 지역은 한 때 안휘성 ?州에 속하기도 하였다. 李耳는 이씨의 공인된 先祖이다. 주나라 수장실의 柱下史를 역임하였다. 그는 위대한 철학자이자 도가학파의 창시자이다. 일명 老子라고도 한다. 당나라 황실에서는 노자를 자신들의 조상으로 여겼다. 唐高宗 乾封 1년(666년)에 太上玄元皇帝에 추봉되었다. 唐玄宗 天寶 2년(743년)에는 大聖祖太上玄元皇帝에 추봉되었다. 天寶 3년(744년)에는 開元天寶聖文神武應道皇帝에 추봉되었다. 天寶 8년(749년)에는 聖祖大道玄元皇帝에 추봉되었다. 天寶 18년(759년)에는 大聖祖大道金闕玄元皇帝에 추봉되었다. 北宋 眞宗 大中祥符 6년(1013년)에는 太上老君混元上德皇帝에 추봉되었다. 중국의 북방이씨와 남방이씨 모두 노자를 그들의 조상으로 간주하는 것은 공통적이다.李曇: 이이의 8세손이다. 趙나라의 柏人侯에 봉해졌다. 훗날 秦나라에 들어가서 御使大夫를 역임하였다. 사후에 柏人(지금의 河北省 邢台市 隆堯縣)에 안장되었다.李崇: 이이의 9세손이며, ?西房의 시조이다. 그는 秦나라의 ?西守를 역임하였다. 南鄭公에 봉해졌다.李璣: 이이의 9세손이다. 그는 秦나라의 太傅를 역임하였다.李牧: 이이의 10세손이며, 趙郡房의 시조이다. 이기의 둘째 아들 李牧은 趙나라 장군이 되었는데, 군공으로 武安君에 봉해지현
    독후감/창작| 2010.12.09| 12페이지| 1,000원| 조회(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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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간추린 중국철학사 강의안
    장기간 천인합일(天人合一)이 주도하였던 중국철학사중국철학사는 은ㆍ주의 교체기에 시작되어 춘추시대(春秋時代) 말기에 형성되었으며, 5ㆍ4신문화 운동 시기에 이르기까지 다음과 같이 3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즉 선진철학, 진ㆍ한에서부터 명ㆍ청 교체기까지의 철학, 명ㆍ청 교체기에서부터 5ㆍ4신문화 운동 시기의 철학이다. 5ㆍ4신문화 운동 시기의 철학은 근대철학(近代哲學)이라고도 부를 수 있다.중국철학사의 주요 문제와 주요 특징1. 중국철학사는 장기간 천인합일을 주도원칙으로 하는 것으로부터 주객이분(主客二分)으로 전환한 발전사이다.명ㆍ청 교체기, 특히 왕부지(王夫之) 이전의 중국철학의 주류는 사람과 자연 혹은 세계를 대하는 문제에 있어서 천인합일의 관점을 취하였다. 다만 왕부지에 이르러 비로소 ‘주객이분’ 즉 사유(思惟)와 존재(存在)의 이분이라는 관점을 발전시키기 시작하였다. 중국의 천인합일사상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 유가(儒家)의 도덕적인 의의가 있는 ‘천(天)’과 인간의 합일사상이다. 둘째, 도가(道家)의 도덕적 의의가 없는 ‘도(道)’와 인간의 합일사상이다. 유가의 천인합일은 또한 두 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 맹자에게서 발단하여 송명도학(리학)에 이르러 집대성된 천인상통(天人相通)사상이다. 둘째, 한대의 동중서(董仲舒)의 천인상류(天人相類)사상이다. 천인상통사상은 다시 두 가지 유파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 주희(朱熹)를 대표로 하는 이른바 인간은 천으로부터 명을 받았으며, “리(理)와 하나이다.”라는 사상이다. 둘째, 왕수인(王守仁)을 대표로 하는 “인심(人心)이 즉 천리(天理)이다.”라는 사상이다.천인합일은 실제적으로는 즉 주체와 객체, 사유와 존재를 구분하지 않고, 이 양자를 혼연한 일체로 간주하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원인으로 인하여 중국전통철학의 각 학파는 일반적으로 주체와 객체, 사유와 존재 양자를 무엇이 우선이고 무엇이 차후인가, 무엇이 근원적이고 무엇이 부차적인가라는 관점으로 구분하고 평가하는 것중국철학사를 장기간 개인과 개인간의 분쟁과 조화를 연구하는 것을 위주로 하였던 사상사라고 한다면, 명ㆍ청 교체기 이후의 중국철학사는 즉 자연에 대하여 인간이 투쟁을 하는 것을 중시하기 시작한 사상사라고 할 수 있다.3. 중국철학사는 장기간 ‘천리(天理)’로써 사람의 사상을 억압하던 것이 주도하던 것으로부터 ‘천리’를 반대하기 시작한 발전사이다.선진철학은 비록 제자백가가 여러 학파로 나뉘어져 있었지만, 공자 때에는 기타의 학파들은 유가와 경쟁할 수 없었다. 공자 때에는 “천하의 말은 양주(楊朱)에게로 돌아가지 않으면 즉 묵적(墨翟)에게로 돌아간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묵적의 말은 또한 단지 잠깐 한 때에 유행하였을 뿐이다. 선진철학의 제자백가들을 종합해 보면 여전히 공맹(孔孟)을 대표로 하는 유가가 사상계의 주류였다. 공자는 비록 ‘천명’에 관하여 매우 드물게 언급하였지만, 결코 ‘천명’을 언급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는 “오직 하늘만이 위대하다.”라고 생각하였다. 당시의 사람들도 공자가 하늘로부터 천명을 받았다고 생각하였다. 맹자의 ‘천(天)’은 주로 의리지천(義理之天)을 가리킨다. 인의예지(仁義禮智)의 사단(四端)은 “하늘이 나에게 준 것”이다. 맹자는 명확하게 봉건도덕원리를 절대화ㆍ객관화하여 형이상학적인 의리의 ‘천(天)’으로 탈바꿈시켰다. 그 이후에 또 이러한 의리의 ‘천(天)’으로 사람을 억압하였다. 맹자는 중국철학사에서 ‘천리(天理)’로써 사람의 사상을 억압하였던 최초의 철학자이다.한대에는 유학만을 존숭하였는데, 동중서의 천인상류설은 더욱 노골적으로 봉건적인 삼강오상(三綱五常)을 ‘천의(天意)’라고 말하였으며, ‘천의’로써 인권을 억압하였다.위진현학에는 비록 혜강(?康)ㆍ완적(阮籍) 등의 “명교(名敎)를 초월하여 자연(自然)에 맡긴다.”라는 학설이 있기는 하지만, 위진현학의 주류는 도리어 명교와 자연을 조화시키는 것을 중심사상으로 한다. 예컨대 왕필(王弼)이 주장한 “성인(聖人)은 무(無)를 체득하였다.”와 “도와 같아진다.”와 같은 것은 실제적으상ㆍ주 교체기에 수ㆍ화ㆍ목ㆍ금ㆍ토 오행(五行)을 5종의 기본 물질로 간주하는 사상이 있었다. 주대에는 자연현상을 해석하는 팔괘사상(八卦思想)과 음양사상(陰陽思想)이 있었지만, 모두 농후한 종교적ㆍ미신적인 색채를 띠고 있었다. 이런 사상은 결코 과학적 지식의 기초에서 형성된 것이 아니다.공자(孔子)는 비교적 완정한 사상체계를 세웠다. 공자는 천도(天道)에 대해서 거의 말하지 않았지만 오직 천(天)만이 위대하다고 생각하였다. 공자가 말하는 ‘천’은 대부분 의지가 있는 ‘천’이며, 그것은 모든 것을 통치하는 주재자이다. 공자는 ‘인(仁)’이 근본이며, ‘인’은 모든 덕목의 으뜸이라고 생각하였다. 또한 그는 그가 짊어지고 있는 ‘천명’은 곧 사람들에게 인을 행하라고 가르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인’의 기본적 함의는 곧 ‘극기복례(克己復禮)’인데, 즉 보고 듣는 것과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예(禮)에 합치되는 도덕행위이다. 공자는 인도(人道)를 중시하고, ‘천명’과 사람의 인덕(仁德)의 결합을 중시하였지만, 지식을 경시하고 과학을 경시하였다. 이것은 그의 철학이 주객이분사상이 결핍되어 있으며, 주체성을 원칙으로 삼는 것이 결핍되어 있다는 것을 드러내어 주는 것이다. 공자의 이러한 사상은 이후의 전체 중국철학사에서의 유가사상의 특징을 형성하였다.묵자(墨子)는 비록 의지가 있는 ‘상제(上帝)’를 주장하기는 하였지만, 동시에 ‘비명(非命)’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이것은 공자가 말한 명정론(命定論)과 서로 다른 것이다. 묵자도 ‘인’을 말하였지만, 그가 말하는 ‘인’의 함의는 ‘겸애(兼愛)’이다. 그는 공자가 극기복례를 인이라고 하는 것에 반대하였다.맹자(孟子)는 최초로 비교적 명확한 천인합일사상을 제기하였다. 맹자가 보기에 사람과 천지만물은 하나의 통일된 유기체이다. 사람의 선한 단초인 사단(四端)은 모두 천으로부터 품부 받은 것이며, 천으로부터 기원한다. 이처럼 맹자는 봉건도덕원리의 형이상학적 근거인 천을 발견하였다. 그는 이러한 봉건도덕의의를 지니고 있는 ‘천’은 사람때문에 마땅히 이 양자를 구분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순자의 이러한 사상은 공ㆍ맹의 ‘천명’관에 반대한 것이다.2. 진ㆍ한에서부터 수ㆍ당시기까지의 철학진시황(秦始皇)이 유가사상을 채용한 측면이 매우 많으며, 한무제와 동중서는 더욱이 유가를 정통사상으로 확립하였다. 따라서 진한 이후, 특히 한무제 이후부터 중국철학사는 장기간 유가사상이 주류를 이룬 역사였다. 줄곧 명ㆍ청 교체기에 이르기까지 이런 상황이 지속되었다. 특히 아편전쟁 이후에야 비로소 점차적으로 이러한 국면이 바뀌기 시작하였다.동중서는 진한 교체기에 음양오행학설을 유가사상에 포함시키는 역사적 배경에서 천인상류와 비슷한 천인합일 즉 ‘천인감응’설을 제기하였다. 그는 ‘천’은 ‘모든 신의 대군(大君)’이며, ‘천’은 의식적으로 만물을 창조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사람은 천에 근본하며, 사람은 천수(天數)에 부합한다고 생각하였다. 또한 그는 천의(天意)는 재이(災異)로써 사람을 ‘견고(譴告)’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이것은 일종의 매우 명확하게 ‘천’으로써 사람을 억압하는 학설이다.양한시기에 음양가는 유가와 거의 일체가 되었으며, 천인감응(天人感應)사상ㆍ참위(讖緯)사상이 주도적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러나 음양가의 학설에는 또한 과학의 맹아도 있다.전한 말기에 양웅(揚雄)은 한편으로는 참위사상을 비판하면서 아울러 음양가의 말이 성인에 부합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였는데, 유가사상을 음양학설로부터 벗어나도록 시도하였다. 한편으로는 또한 노장(老莊)을 칭찬하였는데, 도가의 일부 사상을 흡수하였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유가를 주류이자 정통이라고 생각하였으며, 일찍이 스스로를 맹자에 비견하기도 하였다.후한 시기에 참위학이 여전히 성행하였지만, 도가의 자연주의도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왕충(王充)은 이런 배경에서 도가의 자연주의적 관점을 흡수하여 천인감응사상ㆍ참위사상ㆍ음양학설을 비판하였다. 왕충은 자연무위(自然無爲)를 강조하였으며, ‘원기(元氣)’는 천지만물의 본원이며, 만물은 의지가 있는 ‘천’이 창조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배위는 무를 귀하게 여기면 반드시 명교에 대한 경시를 초래하게 된다고 주장하였다. 이는 배위가 유를 숭상하는 이유인데, 유가의 명교를 공고하게 하기 위함이다.곽상(郭象)도 배위와 비슷하게 또한 “유가 무에서 생겨난다.”라는 관점을 부정하였으며, 또한 의지가 있는 ‘진재(眞宰)’를 부정하였다. 그러나 곽상은 “만물은 각각 저절로 생겨난다.”, “이유 없이 저절로 그러한 것이다.”라고 주장하였는데, 이것은 만물이 모두 저절로 이러한 것이라는 말이다. 또한 무엇을 필요로 하지도 무엇에 의거하지도 않는데, 이것을 ‘독화(獨化)’라 불렀다. 곽상은 왕필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명교는 즉 자연이며, 자연은 즉 명교인데, 명교에 따르는 것이 곧 자연에 순응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도가의 자연주의사상은 곽상에 의해 유가화(儒家化)되었다.동진과 남북조시기에 불교는 중국에 날로 성행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필연적으로 당시에 주류를 형성하고 있었던 현학과 서로 결합하게 되었다. 불교 중에서 대승(大乘) 공종(空宗)의 일체개공(一切皆空)에 관한 이론과 현학의 ‘귀무’론의 이론은 비슷한 점이 있었다. 따라서 현학에서 집중적으로 토론한 유무문제(有無問題)와 불교에서 집중적으로 토론한 공유문제는 당시에 서로 영향을 주고받은 공통의 초점이 되었다.동진의 승려 혜원(慧遠)은 유교와 도교에 대하여 이미 연구하였으며, 출가한 후에 또한 불교를 연구하였다. 혜원은 ‘본무(本無)’사상을 발전시켰는데, ‘신(神: 정신)’은 불생불멸(不生不滅)하며, 만물을 화생(化生)하는 근본이라고 생각하였다. 불교이론은 원래 유가의 인륜도덕관념과 합치되지 않지만, 혜원은 도리어 “석가모니와 요임금ㆍ공자가 나아간 것이 다르지 않다.”는 이론을 정립하여 이로써 유가의 정통사상에 영합하였다.승조(僧肇)도 불학과 현학을 섞어서 논하였다. 그는 명확이 음양으로 ‘신(神)’과 ‘심(心)’을 구분하였다. 그가 보기에 아(我)와 비아(非我)는 주관(主觀)과 객관(客觀)의 대립인데, 모두 ‘일념미(一念迷)’로
    인문/어학| 2010.08.25| 12페이지| 1,000원| 조회(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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