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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주역사문화스토리텔링 문제족보 평가A+최고예요
    [1주차]- 기본지식체크1. 제주는 화산섬이며, 화산활동이 크게 4회의 분출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정답 : X해설 : 제주는 신생기 제3기말에서 신생대 제4기 걸친 화산활동의 산물로 화산활동은 크게 5회의 분출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2. 제주는 12세이 초 고려의 한 군현으로 편입되기전까지 독립된 국가였다.정답 : O해설 : 제주는 선사문화를 거쳐 A.D1세기 경에도 소위 탐라국이라는 국가를 성립하였고 12세기 초 숙종10년 고려의 한 군현으로 편입되어 탐라국이 해체되었다.- 점검하기1. 제주에 대한 설명으로 잘못된 것은?① 제주의 유인도는 제주도를 비롯하여 우도, 비양도, 가파도, 마라도, 상추자도, 하추자도, 추포도, 횡간도이다.② 오름은 제주도 전역에산재해 있는 조그마한 산을 일컫는 제주도 방언이다.③ 곶자왈은 숲을 의미하는 ‘곶(磊林)’과 돌을 의미하는 자왈(磊野)가 결합된 말이다.④ 삼다(三多)는 돌 · 바람 · 물을 의미하며, 삼무(三無)는 대문, 도둑, 거지를 말한다.정답 : 4해설 : 삼다는 돌, 바람, 여자를 말한다.2. 제주도 사람들에게 늘 피해를 주었던 세 가지 재난이 아닌 것은?① 풍재(風災)② 여재(女災)③ 수재(水災)④ 한재(旱災)정답 : 2해설 : 전통적으로 제주 사람들은 여자 낳는 것을 좋아했다. 그것은 여자가 집안의 경제활동에 많은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다.3. 제주의 역사적 특징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① 탐라국은 섬 지역이었기 때문에 폐쇄적인 국가였다.② 한말 제주해녀들은 물산이 풍부한 타 지역에 나가 물질활동을 전개하였고, 이를 출가 해녀라 한다.③ 일제강점기 제주 인들은 일본 오사카 지역에 노동자로 많이 진출하였다.④ 제주의 마을은 전통적으로 반농반어, 반농반목 현상이 강하였는데, 농업 어업 목축업이든 간에 공동체성이 강하였다.정답 : 1해설 : 탐라국은 주변 국가와의 교류를 활발하게 전개하였던 해상왕국이었다. 바다는 문화와 문화를 연결시켜 주는 매개고리적 역할을 하였다.- 기본지식체크1. 창조신화는 건국신화보다도 더 넓은 가 쌓은 것이고, 최영 장군은 목호토벌을 주도한 인물이다.3. 삼별초와 제주도민에 대한 설명으로 올바르지 않은 것은?① 삼별초 이문경 부대에 대해 제주도민들은 해방군으로 인식하였다.② 삼별초 군대의 무리한 방어시설의 구축은 제주도민들의 삶을 어렵게 만들었다.③ 김통정 장군에 대하여 제주도민들을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④ 제주에 전해지는 아기업개의 전설은 삼별초와 관련된 것이다.정답 : 3해설 : 김통정 장군에 대한 제주도민들의 인식은 영웅적 설화와 제주도민들로부터 버림받아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으므로 긍정적 평가만 있는 것은 아니다.[4주차]- 기본지식체크1. 몽골은 제주에 탐라총관부를 설치하고 내정에 간섭하였다.정답 : O해설 : 탐라총관부는 몽골이 제주의 내정에 간섭하면서 직할 통치해 나가기 위하여 설치한 관부이다.2. 탐라는 원나라에 목마장을 설치하여 제주의 조랑말을 사육하였다.정답 : X해설 : 탐라가 원나라에 목마장을 설치한 것이 아니라, 원나라가 제주에 목마장을 설치한 것이다.- 점검하기1. 몽골의 제주에 관심을 갖게 된 배경과 관계가 없는 것은?① 몽골의 세조는 탐라의 성주가 몽골에 입조하도록 고려를 통해 강요하였다.② 몽골의 세조 남송과 고려에 대한 전략상의 요충지로서 제주를 매우 중요시하였다.③ 1268년 몽골은 사신을 파견하여 일본 정벌에 필요한 100척의 군함을 건조해 줄 것을 요하였다.④ 1269년 몽골의 사신 파견은 남송과 일본정벌에 필요한 바닷길을 탐사하기 위한 것이었다.정답 : 2해설 : 몽골은 남송과 고려가 아니라, 남송과 일본에 대한 전략적 요충지로 제주를 인식하였다.2. 원이 탐라를 지배, 관리하기 위해 설치한 관부(官府)의 명칭 변천사가 맞는 것은?① 군민도다루가치총관부 → 군민안무사 → 탐라국초토사 → 탐라총관부 → 고려환부 → 군민만호부② 탐라국초토사 → 군민도다루가치총관부 → 군민안무사 → 고려환부 → 탐라총관부 → 군민만호부③ 탐라국초토사 → 군민안무사 → 군민도다루가치총관부 → 고려환부 → : 2해설 : 동계 정온의 적거지에 송죽사를 건립해 그를 배향하였다. 유배지인 대정현 일대의 자연경관을 배경으로 많은 시를 남긴 것은 임징하이다.[6주차]- 기본지식체크1.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조선과 교역을 하면서 서양과 교류를 시작하게 되었다.정답 : X해설 :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중국, 일본, 인도네시아 등과의 활발한 교역을 통해 동양무역을 주도하였다. 이 과정에서 일본은 네덜란드와 조선이 직접 교역을 맺는 것을 교묘하게 방해하였다.2. 벨테브레는 최초로 조선인으로 귀화한 서양인이다.정답 : O해설 : 인조 5년(1627) 네덜란드의 벨테브레가 일본으로 항해 중에 물을 구하기 위하여 제주에 상륙하였다가 제주 군인들에게 붙잡혀 서울로 압송되었다. 그후 벨테브레는 조선인으로 귀화하여 이름을 박연이라 하였는데, 조선에 귀화한 최초의 서양인이었다.- 점검하기1. 네덜란드의 무역선 우베르케르크호를 타고 일본으로 가던 중 음료수를 구하려고 제주에 상륙하였다가조선에 정착하게 된 서양인은?① 벨테브레 ② 하멜 ③ 히아베르츠 ④ 피에테르츠정답 : 1해설 : 벨테브레는 조선에 귀화한 최초의 서양인으로 귀화한 이름은 박연이었으며 조선인 여자와 혼인하였다.2. 다음 중 하멜 일행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① 박연이 조선에 남을 것을 회유하였으나 하멜 일행은 네덜란드로 돌아가기를 희망하였다.② 서울로 이송된 하멜 일행은 청나라 사신과 같이 환대를 받았다.③ 하멜 일행은 제주 표착 후 13년 만에 일본을 거쳐 네덜란드로 귀환하였다.④ 하멜 일행은 조선에서 활과 화살 만드는 일을 하였다.정답 : 2해설 : 서울로 압송된 하멜 일행은 청나라 사신의 눈에 띄지 않도록 남한산성, 전라병영 등에서 억류생활을 하였다.3. 제주를 처음 발견하고 해도에 켈파트라고 표기하면서 유럽 세계에 이 명칭으로 알려지게 한 나라는?① 네덜란드 ② 프랑스 ③ 영국 ④ 이탈리아정답 : 1해설 : 네덜란드 갤리선 켈파트가 제주를 처음 발견하고 켈파트호가 발견했다는 의미에서 켈파트로 부르게 되었다.- 기: 명월조점해설 : 1702년(숙종 28년) 11월 13일의 순력(巡歷) 및 숙소(宿所). 명월진(明月鎭) 성정군의 훈련 모습과 말을 점검하는 그림이다.2. 다음 설명에 해당하는 그림은 무엇인가?제주의 민호(民戶) 7,319호, 제주목 편제가 읍 3리, 동면(東面) 34리, 서면(西面) 53리, 남면(南面) 5리 등 3면 95리임을 알 수 있는 그림정답 : 제주조점해설 : 1702년(숙종 28년) 11월 15일 순력(巡歷). 제주읍성에서의 성정군(城丁軍)의 조련(군사훈련)과 제반 사항을 점검하는 그림. 가중군(假中軍:임시로 임명된 중군) 이항(李항), 성장(城將) 4명, 치총(雉摠) 2명, 민호(民戶) 7,319호, 전답(田畓) 3,357결, 성정군(城丁軍) 1,263명, 창고의 곡식 30,040여석, 향교의 제기(祭器).제복(祭服).서책(書冊), 군기(軍器)를 일일이 점거하였음을 알 수 있다. 당시 제주목의 편제는 읍 3리, 동면(東面) 34리, 서면(西面) 53리, 남면(南面) 5리 등 3면 95리이다.3. 다음 설명에 해당하는 그림은 무엇인가?영주십경(瀛州十景)의 하나로 용연야범(龍淵夜泛)이라 하여 휘영청 밝은 밤에 용연을 찾아와 밤 뱃놀이를 주로 즐기는 곳인데, 바위나 절벽에 유람의 흔적을 남긴 기념비적인 마애명(磨崖銘)들이 전해지고 있기도 하다. 취병담에 배를 띄워 놓고 기녀들과 놀이를 즐기고 있는 모습이 이채롭게 그려진 그림정답 : 병담범주해설 : 용두암이 있는 용연 취병담(翠屛潭)에서의 뱃놀이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기본지식체크1. 김만덕은 원래 가난한 집 태생으로 본래부터 기녀가 되었다.정답 : X해설 : 김만덕은 본래 양가 출신이나 부모를 잃고 기녀가 되었으나 23세에 기녀 명단에서 제명받았다.2. 김만덕은 흉년에 제주도민을 위해 기부한 것으로 인해 정조를 알현하고 의녀반수 벼슬을 받았다.정답 : O해설 : 김만덕의 덕행이 조정까지 알려져 정조는 김만덕의 소원이 임금 알현을 허락하고 내의원의 의녀반수 벼슬을 내렸다.- 점검하기1. 다음 중 조가장 동쪽에 위치한 섬인 퉁다오(童島)의 북동쪽 133해리(247km), 일본 도리시마[鳥島] 서쪽 149해리(276km)에 위치하고 있어서 거리상으로 한국이 가장 가깝다.- 점검하기1. 다음 설명에 해당하는 것은?한·중·일의 방공식별구역 발표 및 조정으로 한국과 중국간에 갈등이 생겨날 수 있는 곳정답 : 이어도, 이어도 과학기지해설 : 한·중·일의 방공식별구역 발표 및 조정으로 한국은 이어도, 중국은 댜오위다오(釣魚島), 일본은 센카쿠열도, 미국은 미공군 폭격훈련장(고비쇼, 세키비쇼)이 서로 중첩되고 있어 갈등할 가능성이 높아졌다.2. 다음 설명에 해당하는 정부는?‘평화선 선언’을 앞두고 영토문제, 수산업, 군사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해 파랑도 탐사를 시도했던 정부정답 : 이승만 정부해설 : 이승만 정부는 ‘평화선 선언’을 앞두고 영토문제, 수산업, 군사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해 파랑도 탐사를 시도하였으며 1951년8월 이승만 대통령이 지시로 해군조사단이 파랑초를 현지 답사했으나 간출암 발견에는 실패하였다.3. 다음 설명에 해당하는 국가는?1938년에 나가사키~五島~제주도~스코트라 암초[波浪ス] ~화조산도~상해를 연결하는 920km의 해저케이블 계획을 수립했던 국가정답 : 일본해설 : 일본은 1938년에 나가사키~五島~제주도~스코트라 암초[波浪ス]~화조산도~상해를 연결하는 920km의 해저케이블 계획을 수립하였으나 태평양전쟁 등으로 이 계획은 실현되지 못하였다.- 기본지식체크1. 1945년 해방 이후 제주도에서 발생한 소요사태로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에서 주민들이 집단 희생된 사건을 한국전쟁이라 한다.정답 : X해설 : 1945년 해방 이후 제주도에서 발생한 소요사태로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에서주민들이 집단 희생된 사건을 4·3이라고 한다.2. 제주4·3평화공원은 4·3희생자들에 넋을 위로하고 그 역사적 기록을 되새기고자 조성한 곳이다.정답 : O해설 : 4·3사건의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고 역사를 되새기고자 제주시 봉개동에 2004년 조성된 4·
    학교| 2016.06.20| 32페이지| 1,500원| 조회(3,5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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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주역사문화스토리텔링 레포트 - 해녀를 관광자원으로 활용방안 평가A+최고예요
    < 제주해양문화자원 스토리텔링과 활용 방안 - 해 녀 >제 출 일 자과 목 명제주역사문화스토리텔링담 당 교 수학 과학 번이 름1. 목 적주변에서 해녀를 이용한 관광사례를 통하여 제주해양문화자원 스토리텔링과 활용 방안을 제시할 수 있다.2. 서 론해녀 박물관에 도착하면 주차장 스피커에서부터 해녀의 노래가 들린다. 누가 봐도 해녀의 대한 곳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입구로 들어가게 되면 ‘자연과 인간의 공존’ 이라는 철제 조형물이 있는데, 우리네 제주해녀를 형상화한 작품인데 앉아있는 모습이나 서서 허리를 짚고 있는 해녀의 모습이 너무나 생생하게 잘 표현되어 있다. 오래전부터 있었던 제주의 해녀, 그리고 그 해녀들의 항일투쟁과 강인한 삶의 정신력, 공동체 문화를 해녀박물관을 관람하면서 잘 알 수 있었다.3. 본 론1층 매표소에서 제주도민 할인을 받고 표를 사서 오른쪽 모퉁이로 들어가는 곳으로 관람은 시작된다. 처음 들어가서 볼 수 있는 것이 과거의 해녀들이 살았던 집이 있다. 집안에 들어갈 수는 없지만 막힌 유리를 통하여 안을 볼 수 있었는데 소박한 상차림과 초라한 괘짝과 부엌을 볼 수 있다. 모형 집을 돌고나면 해녀들이 썼던 물품들을 볼 수 있다. 처음으로 보였던 것이 ‘물허벅과 물구덕’을 볼 수 있는데 옛날에 물을 길러 날랐던 통이라고 한다. 그 옆으로 ‘지세 항아리’ 가 있다. 물을 기르고 나서 여기에 물을 담아놓고 보관 했던 것 같이 생겼다. 1층 첫 모퉁이의 마지막으로 2층을 올라가기 전 보이는 것이 해녀들의 한 해 좋은 수확과 무사안녕을 기리기 위해 굿을 하는 작은 모형물들을 구경 할 수 있다. 해녀강의 중에 나왔던 ‘잠수 굿’ 이 눈에 띄었다. 바로 뒤에 모형집의 아궁이 있었는데 불을 지피는 곳이었다. 실제로 불이 지펴지는 것처럼 안에 빨갛게 불도 나오고 탈것을 지피는 긴 막대도 직접 만지면서 간접적이나 느낄 수 있었다. 다음 계단으로 2층을 올라가게 되면 더 많은 것들을 구경 할 수 있었다. 2층에서 처음보이는 것은 해녀들의 물질영상과 불턱의 모형 이었다. 해녀들이 가운데 화로를 중심으로 오순도순 모여 몸을 녹이며 쉬는 모습이다. 그 옆으로 어린여자애들이 구경하는 모습도 있다. 이렇게 쉬면서 서로 이야기도 나누고 물질에 대해 지식을 공유하게 되고 그 옆에 어린 여자애들은 이런걸 보고 자랐다는 것을 잘 표현해주는 모형인 것 같다. 그 뒤로 보게 되면 실제 해녀들이 물질에 사용했던 각종 장비들과 도구들이 박물관에 기증되어 전시되어있는데 ‘올수건’, ‘물소중이’, ‘족쉐눈’, ‘쉐눈’, ‘눈곽’, ‘빗창’, ‘돌추’, ‘테왁망사리’, ‘왕눈’, ‘본조갱이’, ‘까꾸리’, ‘해녀구덕’ 등이 전시되어있는데 정감이 많이 갔다. 정감이 많이 갔던 이유가 예전에 나의 외할머니께서도 물질을 하셨기 때문에 지금은 90세가 넘으셔서 물질을 더 이상 하지 않으시지만 아직도 외할머니 집에 가보면 허름한 창고 한구석이 예전에 사용했던 물질도구들이 정리되어 있다. 여기서 보던 것들이 박물관에서 보니 정이 느껴졌다. 이제 그 옆으로 둘러보게 되면 제주해녀 항일운동의 해녀대표 5인인 부춘화, 김옥련, 부덕량, 고효순(본명 고차동), 김계석에 대한 내용과 노무현대통령 재임시절 당시 받았던 포장증과 훈장, 독립유공자 포상신청서가 전시되어 있다. 사실 해녀가 항일 운동을 했었다는 것과 지금 해녀박물관에 와서 이런 항일운동을 했던 물증을 보기전까지 해녀의 항일 투쟁의식이 이렇게 강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지만 해녀들을 다시 한 번 보게된 계기가 되었다. 이제 그 옆으로 보게되면 고문헌속의 해녀가 소개되는데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이건의 『제주풍토기』, 『조선왕조실록』, 이익태의 『지영록』, 위백규의 『존재전서』등의 설명이 되어있다. 그리고 잠녀가라는 문헌도 참고로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2층을 다돌고 1층으로 내려가려는 길에 ‘테우’ 라는 배가 큼지막하게 전시되어있다. 이런 허스름한 배로 바다 위를 다녔다는 것도 매우 신기했다. 1층으로 내려가는 길 옆에 가지런히 해녀들이 썼던 용어들이 쭉 나열되어 설명되 있다. 바람의 종류, 그리고 그 바람의 설명과 방향, 물때와 바람의 관계, 물때의 명칭 들이 설명되어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오는 곳에는 벽 쪽으로 브라운관 tv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그 브라운관 속에는 해녀들의 인터뷰 영상들이 담겨있었고 거기를 지나 나잠어업자의 출가지침이 전시되어 내용을 볼 수 있었다. 마지막 나가는 문 가기전엔 해녀들이 물품을 정리해둔 창고 같은 공간이였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외 할머니 댁의 창고와 거의 비슷한 것 같다. 제주해녀하면 당사자들의 고달픔보다는 정겹고그리운 풍속화처럼 언제나 우리 곁에 와있음을 느끼게 한다. 그런 제주해녀가 매년 100여명씩 줄고 있을 뿐만 아니라 60~70대 고령자가 전체 현업 종사자 5,095명의 75%나 된다는 딱한 현실에 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30대는 고작 7명, 40대까지 합쳐도 겨우 4.1%에 지나지 않으니 이러다간 제주도에서 해녀구경하기조차 어렵게 될 것은 너무나 뻔하다. 이제 제주도는 해녀들만의 생업으로만 남겨두지 말고 천혜의 섬 제주를 찾는 관광명물로 재구성해야 한다. 배우 못지않는 민속 연예인으로 예우하고 제주다운 해녀관광과 민속자원으로 영구히 키우고 지켜 나가야한다고 생각한다.
    인문/어학| 2016.06.20| 4페이지| 1,000원| 조회(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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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주 4.3의 이해 - 4.3 평화기념관 관람기
    < 제주4.3평화기념관 감상문 >제 출 일 자과 목 명제주4.3의이해교 수 명유 철 인학 과학 번이 름1. 서 론제주 4.3 평화공원내에 위치해 있는 제주 4.3 평화기념관에는 어떤 비문의 내용도 적혀있지 않은 비석이 놓여있다. 이러한 비석을 백비라고 부른다. 아득한 햇살 한줌 들어올 수 있는 높은 박물관의 천정에서 오롯이 빛을 받고 누워있는 이 백비 아래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혀있다.“언젠가 이 비에 제주 4.3의 이름을 새기고 일으켜 세우리라.”백비, 어떤 까닭이 있어 글을 새기지 못한 비석을 일컫는다. ‘봉기.항쟁.폭동.사태.사건’등으로 다양하게 불려온 제주 4.3은 아직까지도 올바른 역사의 이름을 얻지 못하고 있다.2. 본 론제주 4.3 사건이 일어나기 이전 역사에 대해 소개한 전시실이다. 제주는 일제가 패망하기전 최후의 결전지로 지정했던 가슴아픈 섬이었다. 제주 땅 전체는 일본군의 요새가 되었고 일본본토를 방어하기위한 기지로 철저히 유린되었다. 그러나 일본군들이 7만이나 배치되었던 1945년 그해 8월 우리는 해방을 맞게 된다. 해방이후 전국적으로 빠르게 건국준비위원회가 결성되었다. 제주도 역시 건국준비위원회가 결성되었으며 친일파를 배제시키고 좌우익이 모두 힘을 합쳐 대중의 지지를 받는 인민위원회로 거듭나는등 빛나는 활동을 보여주었다. 제주 인민위원회는 실질적인 제주도의 행정업무를 주관했으며 학교와 관청을 세우고 치안업무까지 담당하는등 해방 이후 제주는 인민위원회 덕분에 빠르게 안정되는 모습을 보였다. 이 와중에 미군정이 실시되었다. 일장기가 내려진 자리에는 태극기 대신 성조기가 펄럭이게 되었다. 미군정은 관리상 편의의 이유를 들어 일제의 관리와 경찰을 그대로 등용했다. 식민지 통치기구들도 그대로 존속시켰다. 친일파들은 해방이후 쫒겨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큰소리를 치며 사는 세상이 되었다. 미군정을 계기로 제주도의 자치활동은 위축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47년 3월 1일 3.1절 기념대회를 마친 군중들 사이로 군정경찰들이 총탄을 쏘았다. 그 총탄에 맞아 숨진 사람들은 시위군중이 아닌 기념대회를 관람하는 관람관중들이었다. 사망자 가운데에는 이제 겨우 초등학교 5학년인 15세 허두용과 젖먹이를 안은 여인 21세 박재옥도 끼어있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제주도는 들끓기 시작한다. 미군정은 제주도를 결국 ‘레드 아일랜드(빨갱이섬)’으로 규정했다. 이승만정권은 제주도가 총파업을 벌이며 항의하자 서북청년단이라는 단원들을 제주에 파견했다. 이들은 빨갱이 사냥이라는 구실을 들어 1년동안 경찰, 행정기관, 교육기관을 장악하고 테러를 일삼았다. 서북청년단에 의해 거의 2500여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잡혀와 고문을 당했다. 1948년 4월 3일 서청의 탄압에 대한 저항, 단독선거와 단독정부의 반대를 기치로 제주도내 남로당 무장대가 봉기했다. 봉기는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이 과정에서 1948년 8월 15일 남한은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하는 단독정부가 수립되었다. 이승만은 같은 해 11월 17일 제주도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한라산 중간산 지역 일대에 대대적인 진압작전을 펼쳤다. 이 과정에서 수 많은 평범한 제주도민들이 희생되었다. 한라산 중간산 마을 사람들은 산간지역에 살았다는 이유로 무장대로 규정되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무참하게 학살되었다. 1948년 10월 19일 제주도로 파견되었던 여수주둔 제 14연대는 동족을 학살할 수 없다며 총부리를 돌려 여순사건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바다로 둘러싸인 제주도는 거대한 감옥이자 킬링필드였다. 1949년 6월 7일 무장대의 대장이었던 이덕구가 사살되면서 무장대는 사실상 와해되었다. 이로서 모든 것이 끝난줄 알았으나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 다시 4.3 관련자들이 대거 처형되었고 전쟁이 끝난후 1954년 9월 21일 한라산의 금족령이 해제되면서 비로소 4.3 사건은 발발 이후 7년 7개월만에 막을 내렸다. 도민의 9분의 1, 약 2만 5펀명~ 3만명 가량이 사살당했고 평화롭고 아름답게 이어져오던 제주공동체가 무참하게 파괴된 실로 우리 역사상 가장 비참하고 서글픈 사건이었다.
    인문/어학| 2016.06.20| 4페이지| 1,000원| 조회(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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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주해녀의 이해 - 해녀박물관 관람기 평가A+최고예요
    제주해녀의 이해과목명제주해녀의 이해교수명유철인 교수님제출일자학과물리학과학번이름해녀 박물관에 도착하면 주차장 스피커에서부터 해녀의 노래가 들린다. 누가 봐도 해녀의 대한 곳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입구로 들어가게 되면 ‘자연과 인간의 공존’ 이라는 철제 조형물이 있는데, 우리네 제주해녀를 형상화한 작품인데 앉아있는 모습이나 서서 허리를 짚고 있는 해녀의 모습이 너무나 생생하게 잘 표현되어 있다. 1층 매표소에서 제주도민 할인을 받고 표를 사서 오른쪽 모퉁이로 들어가는 곳으로 관람은 시작된다. 처음 들어가서 볼 수 있는 것이 과거의 해녀들이 살았던 집이 있다. 집안에 들어갈 수는 없지만 막힌 유리를 통하여 안을 볼 수 있었는데 소박한 상차림과 초라한 괘짝과 부엌을 볼 수 있다. 모형 집을 돌고나면 해녀들이 썼던 물품들을 볼 수 있다. 처음으로 보였던 것이 ‘물허벅과 물구덕’을 볼 수 있는데 옛날에 물을 길러 날랐던 통이라고 한다. 그 옆으로 ‘지세 항아리’ 가 있다. 물을 기르고 나서 여기에 물을 담아놓고 보관 했던 것 같이 생겼다. 1층 첫 모퉁이의 마지막으로 2층을 올라가기 전 보이는 것이 해녀들의 한 해 좋은 수확과 무사안녕을 기리기 위해 굿을 하는 작은 모형물들을 구경 할 수 있다. 해녀강의 중에 나왔던 ‘잠수 굿’ 이 눈에 띄었다. 바로 뒤에 모형집의 아궁이 있었는데 불을 지피는 곳이었다. 사실 해녀박물관 관람 때 어머니랑 같이 갔었는데, 실제 자기의 어릴 때 집도 이런 것이 있었다고 한다. 실제로 불이 지펴지는 것처럼 안에 빨갛게 불도 나오고 탈것을 지피는 긴 막대도 직접 만지면서 간접적이나 느낄 수 있었다. 다음 계단으로 2층을 올라가게 되면 더 많은 것들을 구경 할 수 있었다. 2층에서 처음보이는 것은 해녀들의 물질영상과 불턱의 모형 이었다. 해녀들이 가운데 화로를 중심으로 오순도순 모여 몸을 녹이며 쉬는 모습이다. 그 옆으로 어린여자애들이 구경하는 모습도 있다. 이렇게 쉬면서 서로 이야기도 나누고 물질에 대해 지식을 공유하게 되고 그 옆에 어린 여자애들은 이런걸 보고 자랐다는 것을 잘 표현해주는 모형인 것 같다. 그 뒤로 보게 되면 실제 해녀들이 물질에 사용했던 각종 장비들과 도구들이 박물관에 기증되어 전시되어있는데 ‘올수건’, ‘물소중이’, ‘족쉐눈’, ‘쉐눈’, ‘눈곽’, ‘빗창’, ‘돌추’, ‘테왁망사리’, ‘왕눈’, ‘본조갱이’, ‘까꾸리’, ‘해녀구덕’ 등이 전시되어있는데 정감이 많이 갔다. 정감이 많이 갔던 이유가 예전에 나의 외할머니께서도 물질을 하셨기 때문에 지금은 90세가 넘으셔서 물질을 더 이상 하지 않으시지만 아직도 외할머니 집에 가보면 허름한 창고 한구석이 예전에 사용했던 물질도구들이 정리되어 있다. 여기서 보던 것들이 박물관에서 보니 정이 느껴졌다. 이제 그 옆으로 둘러보게 되면 제주해녀 항일운동의 해녀대표 5인인 부춘화, 김옥련, 부덕량, 고효순(본명 고차동), 김계석에 대한 내용과 노무현대통령 재임시절 당시 받았던 포장증과 훈장, 독립유공자 포상신청서가 전시되어 있다. 사실 나는 제주해녀의 이해라는 이러닝 강의를 듣기전까지는 해녀가 항일 운동을 했었다는 것과 지금 해녀박물관에 와서 이런 항일운동을 했던 물증을 보기전까지 해녀의 항일 투쟁의식이 이렇게 강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지만 해녀들을 다시 한 번 보게된 계기가 되었다. 이제 그 옆으로 보게되면 고문헌속의 해녀가 소개되는데 이러닝강의에서도 들었지만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이건의 『제주풍토기』, 『조선왕조실록』, 이익태의 『지영록』, 위백규의 『존재전서』등의 설명이 되어있다. 그리고 잠녀가라는 문헌도 참고로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2층을 다돌고 1층으로 내려가려는 길에 ‘테우’ 라는 배가 큼지막하게 전시되어있다. 이런 허스름한 배로 바다 위를 다녔다는 것도 매우 신기했다. 1층으로 내려가는 길 옆에 가지런히 해녀들이 썼던 용어들이 쭉 나열되어 설명되 있다. 바람의 종류, 그리고 그 바람의 설명과 방향, 물때와 바람의 관계, 물때의 명칭 들이 설명되어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오는 곳에는 벽 쪽으로 브라운관 tv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그 브라운관 속에는 해녀들의 인터뷰 영상들이 담겨있었고 거기를 지나 나잠어업자의 출가지침이 전시되어 내용을 볼 수 있었다. 마지막 나가는 문 가기전엔 해녀들이 물품을 정리해둔 창고 같은 공간이였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외 할머니 댁의 창고와 거의 비슷한 것 같다.
    인문/어학| 2016.06.20| 3페이지| 1,000원| 조회(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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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형상의 탐라순력도를 활용한 스토리텔링 사례
    제 출 일 자과 목 명제주역사문화스토리텔링담 당 교 수학 과학 번이 름1. 목 적이형상의 ‘탐라순력도’ 소재가 현재까지 어떻게 스토리텔링되어 역사문화관광자원으로 활용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알고 활성화 시킬 수 있는지 파악할 수 있다.2. 서 론탐라순려도는 제주도의 대한 순력과 장면들을 일종의 기록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탐라순력도는 국가지정 보물 제 652-6호로 1979년 2월8일에 지정되어졌다. 병화 이형상이 1702년 제주목사로 부임해와서 순력의 내용과 기행의 장면을 그림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제주목사 이형상은 매년 본 가을 두차례 행해지는 순력의 예의따라서 음력 1702년 10월29일~11월29일 출발해서 21일동안 실시를 하였다. 순력의 내용을 담은 각 행사장면과 제주도의 주벼도서의 지도 ‘한라장촉’등 이러한 그림들을 총 40 도를 화공 김남길로 하여금 그리게 하였고 매그림의 상단에 4글자로 제목을 달았고 하단에는 그 그림 행사장면과 관련된 설명을 첨가하여 그림 40도를 완성하였다. 여기에 호연금서를 더하여 총 그림 41면을 완성하였고, 탐라순력도의 서문 2면, 오노필에게 화첩요청을 하여 비단으로 장식하였다. 이것을 탐라순력도라 지칭하였다. 탐라순력도의 완성시기는 내용에서 말미에 보면 1703년 5월 13일로 추정이 된다. 현재는 이형상의 종손 이수창 선생이 소장하였고, 이것을 제주시에서 구입하였는데 보관할 곳이 마땅하지 않아서 현재는 제주국립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3. 본 론탐라순력도의 역사적 가치는 첫째로는 당시황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으로는 유일하고 한라장촉에서 보는바와 같이 제주도를 단독적으로 그려진지도이고 가장 오래된 것이다. 현재 서울대 도서관 규장각에 보관되어 진 탐라지도병서(1709)보다 앞선 지도이다. 둘째는 순력시에 그 대상이 되는 내용의 가늠이 가능하다. 삼읍의 제반저인 사항 민호, 전결, 성장군, 마필수, 향교, 군기등 각목장의 마필수 점검, 각 진과 관련된 내용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세 번째는 탐라순력도의 그림을 통해서 제주도의 과거지리 및 오늘날의 변화에 대해 이해 할 수 있다. 네 번째는 삼읍 읍성의 모습과 관아건물의 배치상황뿐 아니라 각 진의 위치와 구조 봉수와 연대의 위치를 이해할 수 있다. 다섯 번째로는 제주도를 중심으로 한 주변 도서와의 거리 및 위치를 파악 할 수 있다.남쪽을 중심으로 표현 한 것이 탐라 순력도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탐라순력도에는 제주도의 명승지탐승과 관련된 내용이 많이 들어가 있다. 성산관일(성산일출봉), 정방탐승(정방폭폭에서뱃노리), 천연사후(천지연폭포에서 화살쏘는 광경), 현폭사후(천지연폭포에서 화살쏘는 광경), 고원방고(옛 유적지를 탐방해서 살피는 과정), 산방배작(산방산에서 유흥을 즐기는 광경), 병담범주(용담에서 뱃놀이광경)등 이러한 그림들을 잘 보관해서 해놓는다면 이러한 명승지들이 오늘날 관광명소로 이용되고있기 때문에 이러한 자료를 잘 되새긴다면 관광객들에게 의미 있는 자료가 될 것이다. 이용되는 사례로는 이런 것이 있다. 제주도 기생화산 중에서 군산 다음으로 큰 산체를 갖고 있다. 정상에는 둘레 약 250m가량의 원형 화구호가 있으나 늘 물이 고여있지는 않다. 남서쪽에는 외도천 상류, 동쪽에는 도근천 상류를 끼고 있다. 오름 정상에는 일제시대 일본군이 설치했던 화포시설 잔해가 남아있으며, 남사면 중턱에는 샘이 있다. 자연림의 울창한 숨을 이루며, 꽝꽝나무, 청미래덩굴, 주목 등이 있고, 어리목광장 잔디밭 앞의 습원을 낀 개울지대는 수태의 자생지로서, 제주도 특산인 솔비나무 등의 독립된 임상을 볼 수 있고, 고유의 수생식물이 자라고 있다. 이형상의 탐라순력도에는 ‘어승생, 어승악’으로 이원진의 탐라지에 ‘어승생오름’은 제주 남쪽 25리의 거리에 있다. 그 산 꼭대기에 못이 있는데, 둘레가 100보나 된다. 예로부터 전하기를 ‘이 오름 아래에서 임금이 타는 말이 났다.’고 하므로 그렇게 불리는 기록이 나온다. 정조 21년 산밑에서 용마가 태어나 조정에 바치자 어승마로서 노정이라는 이름을 내리고 가자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어승생’을 ‘어스솜’의 몽골식 지명으로 보기도하그대로 보기도하고, ‘올시섬’의 ‘올’에서 나온 것으로 보기도하고, 한자의 뜻 그대로 ‘어승마’가 났다는 뜻으로 보기도 한다. ‘어승생오름’ 북쪽 기슭에 한밝저수지가 있는데, 명마의 산지로 이름났던 ‘어승생’에서 발원하는 물이 계곡을 탓 이곳에 모인다. 현재는 중산간 지대의 수원인 ‘어승생저수지’로 사용되고 있다. 한라산국립공원관리사무소 옆으로 오름정상까지 등반로가 개설되어 있으며, 왕복 약 1시간정도가 소요되어 누구나 쉽게 오를 수 있고, 오름 정상에서는 제주시내를 한눈에 관망할 수 있다. 이외에도 탐라순력도에 있는 감귤껍질을 이용해 한방재료로 쓰는 내용도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감기걸렸을때나 환절기때 차로 끓여마시는등 이용되고있고, 이렇게 옛날에 조상들이 만들어놓은 탐라순력도의 내용이 전해져 내려와 오늘날에는 옛날의 명승지들과 많은 이용방법이 오늘날에 관광 자원으로 많이 활용되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문/어학| 2016.06.20| 3페이지| 1,000원| 조회(8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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