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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차라투스트라, 너도 최후의 인간이야
    1.차라투스트라에 따르면, 사람은 극복되어야 할 그 무엇이다. 그리고 어떤 사람이 그가 설정한 극복해야 할 것들을 스스로 극복할 때에 그를 '초인'이라 이름 한다. 차라투스트라는 나이 서른부터 마흔까지의 십년 동안 정녕 초인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그는 그가 규정한 '최후의 인간'의 특성들-이웃의 따뜻한 기운을 찾아 부비기, 자기 자신의 안위를 최대가치로 여기기, 일은 어디까지나 소일거리로서 규정하기, 딱 중간만큼 행동하기, 평등을 벗어나지 않기, 세상과 화해하기, 건강을 위해 쾌락도 조절하기-을 극복하고, 산정에서 "자신의 정신과 고독을 즐기면서 십년을 보냈"기에 정녕 초인에 가까웠다. 그런데 그는 도대체 왜! 그가 그토록 열망하던 초인의 삶에서 중도하차했을까? 왜 그는 산정에서 산 아래로 내려왔을까?텍스트에 충실해 답한다면, 차라투스트라는 산 아래의 군중들에게 초인이 될 것을 가르치기 위해 하산하였다. 꽉 차고 꽉 차고 또 꽉 차다 못해 철철 넘쳐나는 자신의 지혜를 통해, 산 아래 군중들에게 초인이 될 것을 말해주기 위해 하산하였다.그러나 위의 이유는 표면적인 이유일 뿐이다. 보다 더 근본적인 까닭은 바로 이것이다. "차라투스트라 자신이 초인을 향한 발걸음을 또다시 디딜 수 있도록, 초인을 향한 밧줄의 길이를 마련해야 했기 때문에." 이에 대해 더 설명하기 위해 본론으로 들어가자.2."사람은 짐승과 위버멘쉬(초인) 사이를 잇는 밧줄, 하나의 심연 위에 걸쳐져 있는 하나의 밧줄이다."그렇다. 우리는 밧줄이다. 밧줄이거나 아니면 그 밧줄 위를 걷는 하나의 생명체다. 밧줄의 왼쪽 끝에는 초인이, 오른 쪽 끝에는 벌레가 있다. 그런데 우리는 어디까지나 밧줄이기 때문에, 아니면 언제나 밧줄 위를 걸어야만 하며 밧줄 위를 벗어날 수 없는 숙명을 지닌 생명체이기 때문에, 왼쪽 끝에 우뚝 설 수도 오른 쪽 끝에 풍덩 빠질 수도 없다. 왼쪽 끝에는 초인이라는 장벽이, 오른쪽 끝에는 벌레라는 늪이 우리로 하여금 그곳에 당도하지 못하도록 가로막고 있다.차라투스트라가 산정에서 그의 정신과 고독을 즐길 때 그는 밧줄의 어디쯤에 서있었을까. 초인과 가까운 여기 어디쯤에 서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밧줄 위를 걷다 걷다 마침내 그는 장벽을 만났을 것이다. 이렇게. 그래서 그는 발걸음을 되돌릴 수 밖에 없었겠지. (이것이 바로 '하산'이다.) 발걸음을 되돌리지 않으면, 그는 장벽에 부딪쳐 낙하하여 떨어질 테니까. (그런 점에서 차라투스트라도 자신의 생명을 추구하는 하나의 최후의 인간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차라투스트라는 용케 홀로 장장 10년의 세월을 버텨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그 때 그는 그림2처럼 초인의 장벽이 있는 쪽의 밧줄 맨 끝을 밟았다. 그래서 그는 그가 말한 '최후의 인간'쪽, 더 나아가 '벌레'쪽 밧줄을 향해 다시 발걸음을 돌리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안 그러면 떨어져 죽으니까.3.그는 10년 동안 초인이 있는 밧줄을 향해 한발 한발 내딛었다. 그러나 사람은 초인이 아니기에 초인이 서있는 밧줄의 끝에는 도달할 수 없었고, 그래서 다시 뒤돌았다. 그래서 밧줄의 맨 끝- 벌레의 늪 -쪽, 아니 어쩌면 한가운데의 최후의 인간과 가까운 곳으로 다시 돌아가야 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그는 산 아래 사람들과 사는 것을 관두고 다시 산으로 올라간다. 즉 다시 초인의 길을 걷고자 한다. "나는 나의 목표를 향해 나의 길을 가련다. 나는 머뭇거리는 자와 게으른 자들을 뛰어넘어 가리라. 나의 길이 그들에게는 몰락의 길이 되기를!" 이라고 말하면서.그런데 이는 그가 산을 내려와 잠시라도 다른 사람들을 만나보는 과정에서 "초인을 향한 밧줄의 길이"가 늘어났기 때문에, 그래서 그가 걸을 수 있는 초인을 향한 밧줄의 길이가 다시금 길어졌기 때문에, 위와 같은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이었다."머뭇거리는 자와 게으른 자"들이 되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고, 그가 자신의 목표를 향해 내딛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순전히 그가 사람들이 있는 사회 속에 발을 들여놓고, 초인을 향한 고된 여정을 잠시 쉬어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래서 초인을 향한 밧줄의 길이가 다시금 넉넉해졌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즉, 차라투스트라는 초인을 향한 열정을 지니고 밧줄의 끝에 다다랐고, 다시 발걸음을 되돌려 사람들을 만남으로써 힘을 얻고, 그 힘을 원동력으로 다시 초인의 길을 걸으려고 한 것이 아닐까. 그래서 하산한 건 아니었을까.차라투스트라는 사람과 더불어 있는 것이 짐승들과 더불어 있는 것보다 더 위험한 일임을 깨달았다고 하는데 글쎄다? 사람과 더불어 있어보았기에 그는 자신의 목표를 설정하고 초인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었다.4.어쨌든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우리는 초인과 벌레 사이 양쪽을 왔다 갔다 할 수 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초인으로 향하는 길이 정답도 아니고, 벌레로 향하는 길이 정답도 아니다. 초인이 있는 목적지에는 우리가 도달할 수 없는 장벽으로 가로막혀있고, 벌레가 있는 목적지에는 깊은 늪이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초인이 서있는 목적지에 도달 할랑 말랑 하다가도, 장벽에 부딪치는 운명으로 인해 다시 벌레-까지는 아니더라도 최후의 인간-를 향해 다시 다가간다. (차라투스트라에겐 이것이 하산이었다.) 벌레가 기다리고 있는 곳에 한쪽 발을 내딛으려고 하면 늪이 기다리고 있기에, 우리는 다시 초인을 향해 다가간다. 이렇게 저울추처럼 왔다 갔다 하는 존재. 그것이 바로 사람이다.
    인문/어학| 2008.09.25| 3페이지| 1,000원| 조회(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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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을 통해 배우는 유목민적 삶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을 통해 배우는 유목민적 삶다산 정약용과 연암 박지원의 사상에 대한 내 이해 수준은 고등학교 윤리, 국사 시간에 배운 선에서 그친다. 윤리 선생님께 배운 바에 따르면, ‘주체적 결단’, ‘실천의지’, ‘인간의 자율성’, ‘혈기적 존재’ 등의 단어가 나오면 다산 정약용의 사상이다. 국사 선생님께 배운 바에 따르면, 청나라의 문물에 대해 우호적인 입장을 취해 북학파의 연원이 되었으며, 화폐의 유통을 강조했던 사람은 연암 박지원이다. 이처럼 몇몇 단어를 통해 다산과 연암을 구별할 뿐, 나에게 다산과 연암은 그저 ‘조선시대 후기를 주름 잡았던 실학자 두 명’ 에 다름 아니었다.그런데 을 읽으면, 다산과 연암은 인생에 대한 가치관이 매우 달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르다고 표현하는 것도 모자랐는지, 저자는 둘의 가치관이 ‘정반대’였다고 표현했다. 비유컨대, 연암이 유목민이었다면 다산은 정주민이었다고 한다.연암은 유목민처럼 살았다. 어린아이 뺨치는 왕성한 호기심으로 이곳저곳을 돌아다닌다. 험난한 길도 마다하지 않고 오히려 그 속에서 즐거움과 놀라움을 발견하는 긍정적이고 유쾌한 사람이다. 또한 우정을 최고의 덕목으로 여기고 친구 사귀기를 좋아하여, 가는 곳마다 새로운 사람과 대화 나누기를 즐겼다. 반면에 다산은 정주민의 특성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 책상 앞에 차분하게 앉아 평생 동안 중앙권력을 향해 학문을 닦았는데, 물론 단순한 권력욕 때문은 아닐 것이다. 사회에 만연한 문제점을 바로잡고 싶었을 터. 또한 효(孝)를 최고의 덕목으로 여기고 가문을 중시했다.유목민 연암과 정주민 다산. 나는 과연 어느 쪽에 가까울까? 다산이다. “중앙권력에 있어서 연암은 원심력을 가진 셈이고, 다산은 구심력을 가진 셈”인데, 나는 늘 사회의 중심에 서려고 노력하고 있기에 다산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적 이슈에 대해 얄팍한 지식 밖에 갖고 있지 못함에도 많은 것을 아는 양, 후일 정치인이 되어 사회문제를 바로잡아가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살아가는 나. 늘 중심을 향해 달리고 있는 나. 확실히 중앙정계에 대해 원심력을 가진 연암 스타일은 아니다. 또한 연암은 객지에서조차 친구사귀기를 즐겼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쉽사리 인연을 맺으려 하지 않는다. 어차피 혼자 살아가는 인생, 괜히 인연을 맺으면 후에 인연의 끈에 집착하여 마음에 병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도 나는 친구가 적은 편이던 다산과 가깝다.그런데 나는 정주민 다산이고 싶지가 않다. 유목민 연암이고 싶다. 물론 중앙정계에 진출하여 사회를 위해 헌신하는 다산의 삶 또한 훌륭하다. 소수의 친구를 깊이 있게 사귀는 것, 효도와 가문의 안정을 중시했던 것들 역시 결코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정주민의 성격이기에 필연적으로 생기는 ‘집착’은 어찌할 것인가. 나는 그 집착이 괴롭기에 다산이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다. “다산=정주민=집착 많은 괴로운 사람”이라는 공식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비유적인 표현으로서 다산이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다.과거에 집착하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훌훌 털고 제 갈 길을 걸어갈 수 있는 사람을 유목민이라고 한다면, 나는 유목민과 정반대되는 사람이다. 내가 이와 같은 성격이기에 겪었던 괴로움을 소개하고자 한다.나의 첫사랑은 사이버 상으로 시작되었다. 나와 같은 학년이었던 그 남자애는 고등학교 2학년 초에 네이버 수만휘 카페에서 만났다. 모의고사를 본 후 점수를 공개하며 서로의 성적향상에 자극제가 되어주던 관계가 점점 발전하더니, 수능이 끝난 후에는 면대면으로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그 남자애는 그저 얼굴 한번 보자는 정도의 취지였을 것이나, 나는 그것이 데이트 신청인 양 혼자 설렜던 것이다. 그런데 웬일. 그 아이는 재수를 결심했고, 나와의 약속은 새카맣게 잊은 듯이 연락을 끊어버렸다. “뭐해?”라는 문자를 저녁 8시쯤 꼬박꼬박 보내오던 아이였는데, 이제는 내가 “뭐해?”라는 문자를 선심 써서 먼저 보내주어도 그 아이의 반응은 시큰둥하기만 했다. 이 상황에서 유목민 연암 박지원은 어떻게 대처했을까. 한번 ‘하하하’ 호방하게 웃으며, 제 할 일 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나의 경우, 그것이 참 어려웠다. 거의 한달 간 그 아이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나 자신에게, 그 아이 역시 나를 좋아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착각일 뿐이라고 주문을 걸곤 했다. “착각은 자유다. 그러나 그 착각은 나를 구속한다.”라는 말을 지어놓고,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써놓기도 했다. 내 정신은 피폐해 질대로 피폐해졌다. 얼마나 심각했느냐 하면, 그 아이가 ‘언수외111이었던 자신의 성적이 뜻대로 안 나오자 상처를 받아, 자살을 했나?’ 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리고 살아있음을 확인하기 위해 전화까지 해보았다. (물론 핸드폰 발신자 표시는 나지 않도록 설정을 한 후, 살아있음을 확인한 후 재빨리 끊었다.) 나는 정말 심각했고, 하루종일 울상이었다. 정말 미칠 것만 같은 광적인 집착이었다.또 한 번은 성균관대 논술을 준비하기 위해 이슈&논술 아카데미라는 학원을 다닐 때였다. 서울대, 연 고대 반만 개설되어 있어서 나는 연대 반에서 공부를 했다. 학생들 모두 제 공부, 제 코가 석자이다 보니 그다지 많이 친해지지는 못했지만, 수업시간 웃음 바이러스의 영향으로 알게 모르게 끈끈한 정이 싹텄다. 그런데 성균관대 논술일자가 가장 빠르다 보니, 내가 제일 먼저 논술학원을 그만 다니게 되었다. 그렇게 나로서는 학원에 가는 마지막 날이 다가왔다. 그 날 나는 친해지고 싶었던 남자아이들에게 연락처를 물어볼까 말까, 고민을 하다가 결국엔 실행하지 못했다. (아, 참고로 그 학원은 기숙학원이라는 특성 탓인지, 연대반에서 여자는 나 혼자였다.) 그래도 반 아이들에게 연대 꼭 붙으라는 말과 함께 ABC초콜릿을 하나씩 주고 왔다. 어찌됬건 그렇게 나는 아쉬운 이별을 경험하고 지하철을 탔다. 그런데 그 때 갑자기 눈물이 주룩 흘러내렸다. 인생은 이상한 것 투성이였다.‘약 열흘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만나긴 했지만, 수업시간 선생님의 말씀에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으려다 웃고, 그 웃음에 또 웃고 했으면서 어떻게 이토록 간단하게 헤어질 수 있는 것일까. 앞으로 한 평생을 살면서 두 번 다시는 만나지 못할 수도 있는데, 그들은 슬프지도 않단 말인가.’
    독후감/창작| 2008.09.25| 4페이지| 1,000원| 조회(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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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잔티움 정교회 건축물의 상징적 구조가 갖는 의미-성베드로 성당과 하기아 소피아사원을 중심으로
    비잔티움 정교회 건축의 상징적 구조가 가지는 의미 - ‘성 베드로 성당’과 ‘하기아 소피아 사원’을 중심으로0. 리포트의 방향『비잔티움, 빛의 모자이크』를 읽다가, 바티칸 시국에 있는 성 베드로 성당과 터키의 이스탄불에 위치한 하기아 소피아 사원에 관심이 생겼다. 그런데 성 베드로 성당은 카톨릭의 총본산인 반면, 하기아 소피아 사원은 비잔티움 제국의 발전을 가능케 한 유스티니아누스 대제 때 재건축되었다. 따라서 두 개의 건축물 중, 하기아 소피아 사원이 비잔티움 건축물의 특징을 더 잘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번 리포트에서는 성 베드로 성당과 하기아 소피아 사원의 비교를 통해 하기아 소피아 사원에서 더 잘 나타나는 건축의 특징에 대해 알아봄으로써 비잔티움 건축물의 구조를 파악하고, 그 구조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려 한다.1. 비잔티움 정교회 건축물에서의 창문의 의미1.1. 성 베드로 성당과 하기아 소피아 사원의 공통점-창문을 중심으로성 베드로 성당과 하기아 소피아 사원의 공통점을 알아보기 위해, 아래의 사진을 보자.성 베드로 성당과 하기아 소피아 사원의 공통점은 창문이 있다는 것이다. 창문은 환기와 통풍을 위해, 혹은 빛을 들어오게 함으로써 실내의 밝기를 조절하기 위해 만들어졌을 것이다. 그런데 창문이 이와 같은 기본적인 기능에만 충실하여 만들어졌다고 결론짓기에는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이 예사롭지가 않다. 즉, 창문은 이 밖에 다른 기능을 하고 있는데, 그것은 창문에서 들어오는 빛을 통해 건물 내부에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신비스러운 분위기는 신 앞에서 경건한 마음을 갖게 하고, 건축물 내부를 종교적이고 신성한 장소로 느끼게 한다.1.2 성 베드로 성당과 하기아 소피아 사원의 차이점-창문을 중심으로그렇다면 성 베드로 성당과 하기아 소피아 사원의 차이점을 알아보기 위해 아래의 사진을 보자.성 베드로 성당과 하기아 소피아 사원의 창문을 비교해보면, 그 형태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성 베드로 성당과 하기아 소피아 사원 모두 돔에 창문이 뚫려 있다는 것은 같지만, 그 돔의 형태가 다르며, 이는 창문의 형태를 변화시킴으로써 들어오는 빛의 양을 다르게 한다. 위의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성 베드로 성당의 돔은 ←이러한 형태이다. 단순히 원형의 건축물을 덮은 후, 창문을 뚫었다. 그런데 하기아 소피아 사원은 팬던티브 돔의 형태를 이용함으로써, 빛을 들어오게 하려는 창문의 효과를 더 잘 살렸다. 방식은 이렇다. ← 이러한 장방형 또는 정방형 위에 원형의 돔을 얹는다. 그리고 장방형 또는 정방형 주위로 삐져나온 부분을 잘라낸다. 그러면 그곳이 구멍이 뚫리고 그곳을 통해 더 많은 빛을 들어오게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빛의 예술을 보여주는 팬던티브 돔은 성 베드로 성당에는 없었던 형태이나, 비잔티움 양식이 정착될 즈음에 건축된 하기아 소피아 성당에서 나타나는 돔 형식이다. 즉, 비잔티움 정교회 건축물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비잔티움 건축물에 만들어지는 창문, 특히 빛의 신비성을 강조하기 위해 고안된 팬던티브 돔은, 빛이 들어오게 함으로써 신 그리스도의 현현을 나타내고자 했던 비잔티움 정교회에서의 창문의 의미를 잘 보여준다. 이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다.그리스도교적 요소를 바탕으로 한 비잔티움 제국 사람들에게, 교회는 신의 집이었다. 지상에 건설된 신의 세계나 다름 아니었다. 또한 그들은 콘스탄티누스 대제 때부터 그들의 비잔티움 제국을 하느님 나라로 여겨왔다. 더 나아가 교회건축은 지상의 그리스도, 즉 그리스도의 몸으로 여겨지기도 했다¹. 그런데 이러한 교회에, 신 그리스도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인들의 신에 대한 믿음은 약해질 것이다. 따라서 신의 집인 교회에 신 그리스도가 현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리스도가 직접 나타나는 것은 불가능 하므로, 그리스도가 나타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는 그 무엇이 필요했고, 그것은 바로 '빛'이었다. 어두운 공간에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몇 줄기 빛은 신비스러운 분위기와 함께 경이로움을 느끼게 했고, 이는 '신의 현현'으로 여겨졌다. 비잔티움 건축물에 있는 창문은 빛을 들어오게 함으로써, 교회내부를 신의 세계처럼 느끼도록 하는 기능을 했던 것이다. 비잔티움 건축물의 '창문'은 신 그리스도가 들어오게 하는 통로로 여겨졌을지도 모른다.또한 빛의 신비성을 강조하기 위한 창문과 팬던티브 돔 구조는 비잔티움 제국의 종교적 가치관에서 기인한다. 비잔티움 제국은 초월적이고 신비적이며 비현실적인 것을 통해 절대자를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했다. 초월적이고 신비적이며 비현실적인 분위기를 만들기에는 빛이 중요했고, 따라서 '빛의 예술'을 위한 창문과 팬던티브 돔은 매우 중요한 요소였을 것이다.정리하자면, 비잔티움 건축물의 '빛을 중시하는 창문'과 이러한 효과를 배가시키기 위한 '팬던티브 돔' 은 특정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첫째,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여기던 당시의 가치관으로 인해 신의 현현을 중시했다는 것이다. 둘째, 비잔티움 제국은 초월적이고 신비적인 방식으로 절대자를 만나고자 했다는 것이다.2. 비잔티움 건축물에서의 중앙집중형 그리스 십자가 구조가 갖는 의미중앙집중형 그리스 십자가 구조에는 비잔티움 제국의 인식론과 가치관이 담겨있다. 이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아래의 단면도부터 살펴보자.단면도에서 볼 수 있듯이, 성 베드로 성당은 라틴 십자가형 구조를 취하고 있다. 반면에, 비잔티움 양식이 등장했던 유스티니아누스 대제 때 재건축 된 하기아 소피아 사원은 그리스 십자가형 구조를 취한다. 이 그리스 십자가형 구조는, 그리스도교를 기반으로 한 보편주의를 추구하고 있었던 비잔티움 제국의 인식론과 정교합일주의를 보여준다. 그렇다면 라틴 십자가형과 그리스 십자가형의 비교를 통해, 이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자.먼저, 그리스도교를 바탕으로 한 보편주의에 대해 알아보겠다. 라틴 십자가형은 십자가의 가로와 세로 길이가 다르다. 반면 그리스 십자가형은 가로와 세로의 길이가 같다. 이러한 그리스 십자가형 건축은 세계의 중심을 표현하기에 적당한 구조다. ╋ ←이 십자가의 가운데 정 중앙에 돔을 올려놓으면, 그 돔은 세계의 중심 또는 우주를 뜻했다. 그리하여 세계의 중심인 돔의 천장에는 우주의 지배자를 상징하는 모자이크나 프레스코 작품을 표현하게 된다. 실제로 하기아 소피아 사원의 돔에는 ‘만물의 지배자’를 의미하는 ‘판토크라토르’ 그리스도 모자이크가 설치되어있다. 이와 같이, 하기아 소피아 사원과 같은 성당 건축물에서 세계의 중심을 표현했던 비잔티움 제국. 바로 이 문장에 ‘그리스도교를 기반으로 한 보편주의’에 대한 힌트가 있다.비잔티움 제국은 종교적으로 그리스도교라는 이름 아래 하나로 묶일 수 있었다. 지나치게 그리스도교적 이데올로기에 종속된 나머지, 금욕과 절제가 미덕이며 매춘과 동성애, 간통 등은 죄악시하는 생활방식이 퍼지기도 한다². 즉, 비잔티움 제국은 그리스도교를 통한 종교적 보편주의를 바탕으로 하고 있었기에 일반 민중들은 그리스도교를 윤리적 가치척도로 삼고 있었고, 또 이러한 사고방식에 익숙했다. 이렇게 그리스도교를 바탕으로 보편적 사고를 하던 이들에게 이방인³의 개념이 있을 자리는 없었다. 또한 비잔티움 제국 사람들의 ‘시간’ 개념에 대한 인식은 늘 교회의 시간에 맞춰져 돌아가는 등 그리스도교는 사람들의 모든 일상 속에 개입되어있었다⁴. 이 정도로 그리스도교는 비잔티움 제국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렇게 그리스도교에 대한 거부감이 전혀 없고, 오히려 삶의 일부분이 되어버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그리스 십자가형 성당 건축을 통해 성당이 세계의 중심임을 표현하는 행위는 거부반응을 불러일으킬 만한 성질의 것이 못되었다. 오히려 세계의 중심을 성당에 표현함으로써 그리스도교에 대한 믿음을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었을 것이다. 반면에 서로마의 경우에는 사회 저변에 비잔티움 제국보다 그리스도교적 요소가 덜 보편화 되어 있었기 때문에 구지 교회를 세계의 중심으로 표현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을 수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를 통해 종교적 보편주의를 지향한 비잔티움 제국으로서는 성당을 우주의 중심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고, 이를 반영한 것이 그리스 십자가형 건축이 아니었을까.또한 그리스 십자가형 건축물은 비잔티움 제국이 정교합일주의임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서로마 사회의 경우, 우주의 중심을 나타내기에 용이한 그리스 십자가형을 이용하여 교회 건축을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을 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엄연히 황제가 따로 있었기에 교회를 세계의 중심으로 표현하는 것은, 자칫 잘못하면 교권 남용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비잔티움 제국의 경우, 정교합일주의가 적용되고 있었고, 이는 그리스 십자가형 교회 건축에 대한 부담을 덜어주는 효과를 가져왔을 것이다. 실제로 하기아 소피아 사원을 재건축한 유스티니아누스 대제는 『로마법 대전』편찬 등의 업적을 통해 황제권을 높여 중앙집권화를 꾀했고, 이처럼 강력한 황제권으로 정치와 종교를 함께 지배할 수 있었다. 종교까지 지배한 예로는, 유스티니아누스 대제가 그리스도교의 수호군주를 자처하면서, 이교도 근절에 힘썼던 것을 들 수 있는데, 그는 아테네의 학문기관 '아카데미아' 가 이교적인 내용을 가르친다는 이유로, '아카데미아' 를 폐지하기도 하였다. 비잔티움 제국을 그리스도교 세계와 같은 것으로 여기는 인식 하에 정치뿐만 아니라 종교를 더불어 지배할 수 있는 리더가 있었기에, 종교적 건축물, 즉 성당에서 세계의 중심을 표현하는 그리스 십자가형 건축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인문/어학| 2008.09.25| 7페이지| 1,000원| 조회(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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