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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주4.3사건 인터뷰
    ? 목 차 ?제Ⅰ장 서론1. 들어가며...제Ⅱ장 본론1. 4?3 사건의 요약2. 할아버지와의 인터뷰제Ⅲ장 결론 및 느낀 점[제Ⅰ장] 서론1. 들어가며...우리 집은 증조할아버지 때부터 3대째 제주도에 살아온 토박 제주 고씨 집안이다. 그래서인지 어렸을 때 할아버지나 할머니께서 그동안의 제주도에 있었던 일들을 종종 말해주곤 하셨다. 6?25전쟁이 일어났을 때 할아버지께서 귀가 얇아 북한에 가면 잘 살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북한군을 따라 갈 뻔한 우스운 이야기, 제주도 박물관의 설립과정에서의 어려웠던 점에 관한 생생한 이야기 등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유독 4?3사건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들을 수 없었다. 그래서 중학교 교과서에서 배우기 전까지 4?3사건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러던 중 이번 기회에 할아버지께 4?3사건에 대해 물어보았는데 할아버지의의 표정이 슬퍼 보였다. 6?25전쟁 때보다 4?3사건이 제주도민들에게는 끔찍했다는 할아버지의 말씀과 표정만으로 그 때의 상황이 어느 정도 상상이 되었다. 6?25전쟁은 동족간의 욕심의 충돌이 발생 원인이었지만 4?3사건은 일반 민중들이 아무 죄도 없이 왜 죽어야 하는지 모른 채 죽음을 맞이해야 했던 억울한 사건이었다. 할아버지 역시 이 사건으로 인해 친구를 갑작스레 떠나보내셔야 했다고 하셨다. 밭에서 그냥 일하던 도중 갑자기 군인에 의해서 죽었다고 말씀하시던 할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맺혀있었다. 이렇게 억울한 사건이지만 최근에 와서야 조명 받고 있고 그리고 그런 조명 또한 정부를 주도로 적극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점이 안타까웠다. 조금이나마 4?3사건의 상황을알아보고자 할아버지께 4?3사건의 당시 상황을 인터뷰 해 보기로 하였다.[제Ⅱ장] 본론1. 4?3사건의 요약해방 직후의 상황1945년 8?15해방과 더불어 제주도는 다른 어느 곳보다도 민족 해방 투쟁 세력의 힘이 드세었다. 제주도 인민위원회는 9월 22일 미군이 진주하기 1주일 전에 결성되어 9월말에는 각 마을에 이르기까지 급속도로 조직되었다. 또 그 이라산으로 들어가 은신처를 찾아야 했다.4?3 봉기, 단선 단정 반대 투쟁4월 3일 새벽 한라산에 있던 1500여 명의 무장대는 14개 경찰지서를 습격, 방화했으며 우익 청년 단체를 공격함으로서 4?3 봉기는 시작되었다. 그러나 봉기는 방어적이었으며 희생자도 대부분 경찰, 청년단원에 제한되었다. 상황이 이러하자 미군정은 1000여 명의 서북 청년단을 대규모로 제주도에 파견하였다. 이른바 제주도 초토화 작전이 시작된 것이다. 이후 토벌대는 제주도 전 지역의 싹쓸이에 나서 6월 중순에는 포로의 숫자만 6000명에 달했고 제주도의 거의 모든 마을을 습격했다. 이에 수많은 민중들은 이들을 피해 낮에는 산으로, 밤에는 집으로 들어가야만 했다.10월, 제주도에 계엄령이 선포되고 육군, 해군, 경찰이 통합된 경비 사령부가 설치되어 살 떨리는 대 학살극이 시작된다. 24일 제주시 외곽에 박격포를 퍼부었다. 29일에는 고성리에서 135명이 집단 사살되었다. 12월 14일에는 157명의 토산리 주민이 집단 학살되어 표선 백사장을 피로 물들었다. 무수한 양민들이 폭도나 공산도배로 만들어졌다.북촌 사건과 계속되는 학살1949년 1월 16일, 4?3봉기 이래 가장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나는데 그것이 바로 ‘북촌 사건’이었다. 토벌대 제2연대 3대대 7중대가 이동 도중 북촌리 부근에서 유격대의 기습을 받았는데, 그로 인해 2명의 군인이 죽었다. 이에 군인들은 북촌리 주민들을 학교 운동장에 모아 놓고 무차별 사살했다. 순식간에 5백 명 이상이 죽어갔다.토벌대의 최종 진압 작전과 그 이후1949년 3월 제주도 지구 전투 사령부가 설치되어 최종 진압 작전이 전개되었다. 4월 12일 까지 4000여명이 살해되었다. 이로써 유격대는 거의 전멸했으며 봉기가 일어난 지 1년 만에 표면적으로는 종결되었다. 이에 따라 1949년 5월 5일 전투 사령부가 해체되었다.바람 낳고 돌 많고 여자가 많아서 삼다도라 불렸던 제주도는 이리하여 곳곳에 시체가 널려 있고, 피가 대지를 적시고, 눈물이 바다를 이루는 또 광면단 바로 밑에 신흥아래 왜놈들이 쓰다가 남은, 가분 관사가 이섰습니다. 관사에 또 인민위원회 ? 방엔 인민위원회고, ?짝에선 교무실로 했습니다. 게서 일학년 A학급은 들어가는 입구, 방을 두 개로 만들아서 입구에는 A학급, 다음 안으로 들어 간디는 B학급. 게서 2학급이 일년 동안 공부했습니다. 겐디 공부하는 도중에 자꾸 경찰들이 와서예, 자꾸 주왁 거리는 거예요. 공부를 허겔 허는가 또 선생들 이시문 ?아다가 지서 안에 가돠서. 그때 고문 허믄 여러분 잘 알겁니다마는 행편 어섰어요. 사람 죽지 안 헐 정도로 때렸습니다. 경허고 그 후에 서북청년이란 단체가 들어왔습니다 제주도에. 해가지고 서북청년을 시켜 가지고 무조건 거리에 댕기는 학생들을 심어다가 무조건 종쳤어요. 죽으라고 때려 죽으라고 죽지 안 헐 정도로예. 게서 자꾸 해가니까 우리 A학급이 ?끔 크니까 A학급에서는 ‘아, 우리 영해서는 안 되겠다. 응, 우리 다른 방도가 없는가?’ 이렇게 해가지고 그 방도를 취한 것이 결국 대모지요? 뭐 학교 안에서 대모를 막 했습니다. 경허니까 경찰에서 바로 학원 바로 앞에다 경찰 지서 났습니다. 거기서 매일같이 와요. 와서 공부를 말이야 허단 선생님들을 잡아다가 고문시키고 가돠서 ?룻 저냑 가돵 말이야 내놓고, 또 어떤 선생님들은 본서로 예, 관덕정 앞에 경찰서가 있어나 그딜로 잡아다가 말이야 종치고 거니까 공부가 잘 안돼요, 그니까…. 이젠 뭔 헌 생각을 나냐면은 그 당시에 중앙에서 인민회로 전화오기를 신탁관리절대반대운동이 일어났습니다. 해가지고 우리 학원생들도 “신탁관리 절대반대” 이런 구호 하에 시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도중에 또 뭐해냐면은 “학원에 자유를 달라” 이렇게 해서 주먹질 허면서예 막 외치고 돌아 댕겼습니다. 그 당시에는 학생 때니까예. 게서 일년동안 경행헌디 이학년 되니까 이젠 학급을 1학년을 모집 헌겁니다. 또 모집허니까 그때는 1개 학급만 모집했습니다. 그니까 A, B, C학급이 됐죠예. 3학급된디. 1학년은 C학급 1개 학급뿐이고예 선생님이 뭐냐면 서를, 그땐 선이랜 했습니다 선. 올라가는 선, 선을 ?르촤줘서 그 선으로 해서 도당에 갔습니다. 그 때 갔던 거를 보고 뭐냐면 분시를 몰랐어요. 우린 무조건 거기서 허는데로 그냥 시키는데로 허고 이야기 곧는데로 듣고 경해 가지고 겨울이 들었어요. 겨울이 드니까 이젠 어떻게 돼냐면, 그때 겨울, 그니까 저… 대흘오난예 그 사람들이 어떵 막 갈아 부러요 집을, 집을 막 불 부쩌부려요. 게니까 이젠 살 수 없지. 거기도 이젠 대니지 못하고 허니까 도당에 가보니까 그때는 어디를 갔냐문 교래리 갔습니다. 교래리 올라가 가지고 교래리에서 ?달은 살았죠. 게서 도당 어디 갔냐면 선전부되쿠다예, 지금 말하면 연락병, 연락원 노릇을 했습니다 그 때. 헌데 그때 그 당시에 신문이 색별이옌 헌 신문이 나오니까 색별 회의 해뒁 각 면당으로 갖다가 연락 하는거예요. 연락허고. 그렇게 해연 살다가 결국은 4?3 사건이 일어난 것도 전 몰랐습니다 그전에 이서부니까. 내중에 핵교가 다 폐교 되불고, 선생님들은 다 잡아다가 어떵 종쳐가니까 도망가고, 일본더래 도망간 분도 있고 산에 올라간 사람덜토 있고. 게가지고 그 선생님도 없고 아무 것도 어시니까 이젠 학교가 해단 되부렀습니다. 해서 2학년 중퇼했어요. 졸업이 간 후엔 그 선생 중에 가서 그 인칙이 말했주마는 각 당으로 각 면당으로예, 연락을 했습니다. 등사로 전부 이 신문을 만들았습니다. 그거를 배부허고 그럭저럭 허는 것이 결국은 1년이 됐습니다. 1년 되니까 이젠 맻?됐냐면 그때가 열아홉, 스물됐죠. 열여덥, 열아홉, 스물. 스물되던 해에 뭐 4?3사건이 났던 모양입니다. 우린 몰르고 게서 산에서 어떵 1년 동안 살고 그 후에 제주도에 총 말하자면 토벌예, 총 토벌명령이 내려온 모양입니다. 그때 도당에서는 어떻게 말했냐문, 여기시문 다 잡힐거니까, 3인조로 해가지고 다 하산하라거여. 게서 하산하는 도중에 우리가 어딜로 내려 왔냐면, 저~이제 곹으면 명도암예, 명도암으로 우리가 내려왔습니다. 3인조가 나허고 지금 말 기압은 안받고 우린… 기압은 안받고, 그 하르방 둘허고 나하고 아쪄서 고문을 시작허는 거라예. 고문을 시작허는디 질 중앙에서 온 하르방이 말허기를 “이 사?은 말이야 아무 죄가 없다”고, “이 사?은 우리들 허란데로만 연락병이지, 연락원이지, 뭣은 관계 없는 사?이라”. 게고 이(옆)쪽에 앉은 하르방도 남부올구엔 그 하르방도 “이 사람은 딱 우리만 말이야 죄가 있지 이 사람은 죄가 어따”, 게니까 “이 사람들은 필요 어신 사람이라”고 말이야, 죄가 없는 사람이옌 겅허니까 헌병대장이 “하. 그러냐”고, 헌병대장도 남부올구하고, 중앙올구 하르방들신디예 크게 말 안헙디다. 죄를 말이야 알기 위해서 그렇게 헌 모양입데다. 게서 그분이 저보고, 이제 헌병대장이 “넌 말이야 죄 어시니까 가라”고 말이야, 게서 나왔습니다. 나오니까 그때 지서에서예, 지서에선 아, 오라가라 하고 매일예, 오라가라 허고 와서 보니까 우리 어머니가 이서났습니다. 어머니가 “아, 죽었다”고 “어떵 죽었냐?” 물어보니까 이만저만 해가지고, 군인덜이 조천 가면 옛날엔 비료 창고가 이서났습니다. 비료예 비료창고. 그 창고를 비료를 다~치와두고 그디를 보통 수용소 해났습니다 수용소. 게난 산에 올라간 사? 가족은 전부 잡아다가 그 창고에 수용 시켰습니다. 게서 ?루는 그때가 언제냐면은, 49년도 1월 4일날 비가 무쟈게 왔습니다 그날. 그 겨울비가 막 왔어요. 경헌 도중에도 수용소에 있는 사람들을 전부 비 오는데도 불구하고 끄서서, 지금 말하자면 ?몰듯이예 ?아가지고 웃터레 올라 간거예요. 게난 웃터레 올라가면은 조천서 ?말이야 5백미터쯤 됩니다. 장소가 포젯동산예. 옛날에 거기서 부락에 안영을 해달라고 해서 거기서 제 지내 난딥니다. 제 지내난 그 포젯동산 바로 밑에 오모록한 밭이 있습니다. 거기다 잡앙말이야, 빈 작작 오는디 아 거기 쭉~ 아쩌서예, 아쩌서 총으로도 쏩지 않았어요. 폭발물 놔가지고 예순열명을 말이야 폭사 시겼습니다. 그때 했다고 말 들어가지고 물어보니까 “어머니는 어디 갔습니까” 습니다.
    사회과학| 2011.03.09| 9페이지| 1,500원| 조회(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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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기만의 방 서평
    오백파운드의 돈, 자기만의 방, 그리고...또 하나. 버지니아 울프는 이 책에서 ‘여자들도 오백파운드만큼의 넉넉한 돈과 자기만의 방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 책이 단순히 가부장제 아래 여성의 억압적 상황과 삶을 저자가 역사자료를 들어 실증해주고, 문학적 상상력을 발휘하면서 이를 바탕으로 여성의 경제적 독립의 필요성을 확인시켜주는 페미니스트적인 별로 새로울 것이 없는 에세이구나 하고 넘어가는 것 같다. 그리고 이런 주장을 함에도 불구하고 직접 적극적으로 실천하지 않은 소극적인 활동가 태도를 보이는 버지니아 울프에 대해 실망을 하며 이 책을 덮는 듯하다.물론 울프가 몸소 실천하지 않은 소극적인 측면이 있으나, 나는 이런 일차원적인, 여성의 억압과 그로부터의 해방이라는 관점에서 이 작품을 대하는 것은 맛만 살짝 보고 알맹이를 놓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오백파운드의 돈, 자기만의 방, 그리고 또 중요한 하나가 더 이 책에는 숨어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는 단순히 이런 불평등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자가 아닌 앞으로 진정 나아가야할 여성의 방향과 과제가 나와 있다고 생각한다. 이 글의 끝부분을 보면 이제 여성은 재산권과 투표권이 주어졌으며, 전문직도 많이 늘어났고, 일년에 오백파운드를 벌어들이는 여성들이 적지 않으므로 여성작가가 기회와 훈련, 돈등이 부족하다고 변명하는 것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말한다. 17세기와 19세기에 걸친 여성작가들을 시대적으로 살펴보면서 여성문학이 거의 부재하다고 분노했을 때 그녀는 예전의 여성작가들에게 가부장제의 억압과 분노만 터뜨릴 것이 아니라 여성만의 독특한 가치를 인정하고 표현해내려는 노력을 게을리 했다고 개탄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여성과 남성을 분별하며 서로 대항하는 것이 아닌 조화롭고 창조적인 양성 합일적인 상태, 하나의 인격체의 가치로 문제를 풀어나가라고 하고 있다. 즉, 울프가 말하는 여성주의는 단지 여성의 해방, 남성성에 대한 반란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것들에만 국한된 여성주의는 우리 속에 있는 패배의식과 여성과 남성 사이의 오랜 갈등을 더욱 깊어지게 할 뿐이다. 오랜 세월 가부장적 문화 속에서 억압을 받으며 살아온 여성들은 계속되고 있는 억압의 올가미를 벗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지속하는 동시에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한 인간으로 새롭게 태어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양성적인 마음을 지닌 훌륭한 셰익스피어와 마찬가지로 남성들이 가진 양성 부조화를 일깨워 주고 여성 스스로도 남성과의 조화를 통한 양성성을 이루어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것이 버지니아 울프가 우리에게 남겨준 여성주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되며 문제해결을 위한 중요한 열쇠라고 생각한다.돈과 자기만의 방, 그리고 양성성. 이것을 깨닫는 순간 괜히 버지니아 울프라고 하는 것이 아니구나 라는 생각과 함께 여성문제에 관해 새로운 시각의 신선함에 놀랐다. 우리가 여태까지 여성 불평등에 관한 문제를 다룰 때 무조건 서로 나뉘어 니가 잘났네 내가 잘났네 서로 편 가르기를 했던 우리의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우리의 경험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렇게 따지면 이 세상에 해결 될 문제는 아무것도 없으니깐 말이다. 같은 여자로써 버지니아 울프는 우리가 그동안 간과해오던 사실을 꼭 집어주었다. 물론 이 관점에도 현실적으로 문제가 있을 수 있겠지만 무조건 남성에 대항만 했던 우리에게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독후감/창작| 2011.03.08| 2페이지| 1,000원| 조회(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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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란 무엇인가(카) 서평
    해마다 뉴스에서 대학생들의 도서 대출 순위가 발표된다. 그 중에서 매년 상위순위에 올라가는 책이 바로 E.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이다. 이 책은 학생들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인들의 필독서로 꼽혀왔다. 또한 고등학교 세계사 교과서에는 카의 정의가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한 명쾌한 해답으로 못 박혀 있다. 그야말로 역사학의 바이블인 것이다. 쓰여 진지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명제를 필두로 사람들의 역사관 대부분을 형성하고 있다.『역사란 무엇인가』는 카가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강연했던 내용을 묶어낸 책이다. 총 6장으로 구성되어 각 장마다 카가 역사에 관해 자신의 주장을 제시한 후 여러 근거를 들어 뒷받침하는 형식으로 되어있다. 그 중 제3장 ‘역사와 과학과 도덕’에서는 역사는 과학인가라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 카는 역사를 과학이라 부르는 것을 반박하는 5가지 관점 (‘역사는 전적으로 특수한 것을 취급하나 과학은 일반적인 것을 취급한다.’, ‘역사는 교훈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역사는 예견할 수 없다.’ ‘역사는 불가피하게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역사는 과학과는 달리 종교와 도덕의 문제를 내포한다.’)을 소개한 후 이것에 대해 자기만의 근거를 들어 재반박한다.그리하여 카는 ‘역사는 하나의 과학이다’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렇다면 과연 카의 주장은 옳은 것일까? 이런 카의 주장은 카가 살았던 19세기 실증주의 정신의 산물이다. 즉, 19세기는 자연과학의 우월성에 기초한 지식관이 팽팽한 시대였다. 즉, 실험과 관찰, 추론과 검증 등 객관적인 방법을 사용하는 과학만이 최고라는 사조에 어느 누구도 반기를 들 수 없었다. 객관적인 과학만이 옳고 상대적으로 주관적인 인문학은 무시되었다. 이 사조의 영향력은 실로 대단했다. 단적인 예로 이 영향력은 당시 인문학을 옹호하는 학자들조차 인문학의 상대성, 주관성, 해석의 다양성은 독이며 극복해야 할 문제점으로 치부할 정도였다. 이런 사회 속에서 소크라테스의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말처럼 카가 역사는 과학이라고 끼워 맞추는 것은 당연한 듯이 보인다. 그는 “과학적이고 유용한 지식으로서 역사학의 위상을 확립하기 위해 자연과학의 기법을 습득해야 한다.”)라고 여러 번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카는 분명히 역사와 과학의 상이성을 알고 있었다. 그는 책에서 “인간의 행위에 대한 연구에는 자연과학자들이 직면하는 어려움과는 다른 종류의 어려움이 있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 이후 그 어려움이 무엇인지, 어째서 그 어려움이 발생하는지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 이렇게 말해놓고 곧바로 역사와 자연과학의 동일성을 거듭 강조하며 뜬금없이 결론을 맺을 뿐이다. 얼마나 큰 논리적인 비약인가. 제1장, 제2장에서 뛰어난 논증을 보여준 카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카는 그 어려움에 대해 파고들어 탐구한 결과 나오는 사실이 두려웠던 것이다. 과학과 역사의 차이가 외부로 드러날까 봐 더 이상 언급하지 않는다. 이 부분에서 카는 자신이 연구하는 역사와 과학간이 차이를 좁히려는 무모한 아집을 부렸다.결국 이런 오류를 바탕으로 카는 잘못된 주장을 한다. 물론 카의 주장처럼 과학과 역사의 유사한 점은 있다. 그러나 이는 표면적으로 같게 보이는 것일 뿐, 과학과 역사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는 자연과학이 물리적 현상을 다루는 반면 역사는 인간을 탐구대상으로 삼기 때문이다. 역사와 과학은 탐구 대상과 목적이 다른 개별적인 분야이다. 카는 “역사가도 여느 과학자처럼 ‘왜?’ 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는 동물이다”)라고 주장하며 과학과 역사의 유사성을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질문의 표면상 같게 보이는 것일 뿐 내면을 살펴보면 상황이 달라진다. 예를 들어, 역사가가 ‘왜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 하였는가?’라고 질문했다고 하자. 그리고 자연과학자가 ‘왜 낙엽은 붉게 변하는가?’하고 똑같이 질문했다고 하자. 두 질문이 과연 같은 것인가? 역사가의 질문은 어떤 동기와 의도에서 암살했는지 묻는 반면, 과학자의 질문은 결코 어떤 동기에서 낙엽이 변했는지 묻는 것이 아니다. 즉, 인간은 목적과 자유의지를 지닌 존재로서 물리학적 법칙을 고대로 따르는 생물이 아니다. 동일한 상황에서도 개인마다 다양한 행동을 취하는 존재이다. 인간은 어떤 행위에 의도와 목적이 있으므로 역사학자는 탐구자의 내면에 들어가 그 속에 내재해 있는 의도를 잃어야 한다. 하지만 과학자는 그럴 필요가 없다. 과학자들은 낙엽의 속성을 알기 위해 낙엽의 입장이 되지 않는다. 오직 낙엽을 외부에서 관찰하고 기록하여 물리적인 법칙으로 일반화 할 뿐이다. 이것이 바로 앞에서 카가 말했던 인간의 행위 연구의 어려움인 것이다. 결국 제3장에서 카는 겉으로만 드러난 현상을 바탕으로 과학과 역사는 동일하다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독후감/창작| 2011.03.08| 2페이지| 1,000원| 조회(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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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성애 결혼이 법적으로 정당한 이유
    ? 목 차 ?제Ⅰ장 서론동성혼에 관하여 합법적인 정당성을 인정해야 한다. 다양한 법적 사례와 연구결과를 조사해 봄으로써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알아보기로 한다.제Ⅱ장 본론1. 동성애 혼인의 정의2. 한국헌법상 혼인의 개념3. 동성애 결혼이 법적으로 정당한 이유1) 출산에 대한 정당성2) 부모 자식 관계에 대한 정당성① 부모로서의 적합성② 동성애자의 성 역할③ 자식의 성적 지향에 미치는 영향3) 헌법상의 배우자 선택과 성적 자기 결정권 존중4. 동성혼 불법화 의견에 대한 반론1) 미끄러운 경사길 이론에 대한 반론2) 동성커플은 이성커플보다 에이즈에 걸릴 확률이 높아 합법화를 반대하는 입장에 대한 반론제Ⅲ장 결론동성혼을 법적으로 인정하지 않을 근거와 증거는 없다. 동성애자의 권리를 보호 하고 사회적, 이데올로기적 편견을 최소화하여 동성 간의 결혼을 법적으로 인정해야 한다.Ⅰ.서론네덜란드는 2001년 동성 간의 혼인을 합법화한 최초의 국가가 되었다. 그 후 2003년 벨기에에서, 2003년과 2004년에 걸쳐 캐나다의 일부 주로부터 시작되어 2005년 캐나다 전역에서, 그리고 2005년 스페인과 2006년 남아프리카 공화국 및 2009년 노르웨이에서도 동성 간의 혼인이 합법화 되었다. 혼인은 이성간의 결합이라는 오래된 전통을 깨고 동성 간의 결합도 혼인의 개념에 포함되기에 이른 것이다. 이에 따라 많은 동성커플들이 그들 관계의 법적 정당성과 그에 따른 법적 지위를 요구하고 있다. 이처럼 세계는 이미 동성애자 사이에 발생 될 수 있는 개인적, 사회적, 법적 문제에 대해서 검토하고 있거나 활발히 논쟁중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양성의 결합만을 정당한 법률상의 혼인으로 보호할 수 있다고 보는 현행법 하에 동성애 혼인은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동성혼을 반대하는 쪽에서는 결혼은 전통적으로 남녀 간의 결합이며, 동성혼을 인정할 경우 성적 문란과 가치관의 충돌 등 여러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러한 입장은 합법화를 반대하는 정당한 근거가 될 수 없합 과 파트너 등록제와 같은 동성 "결혼"과는 법적으로, 정의적으로, 상호적으로 다른 법적 장치들이 주요 국가들에 존재한다.)2. 한국헌법상 혼인개념(1)헌법규정한국헌법상 혼인에 관한 개념을 명확히 정의하지 않고 있다. 그나마 혼인에 관한 명시적 규정은 제 36조 제 1항이다.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은 언뜻 혼인의 개념을 이성간의 결합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양성”의 평등을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고, 여기서 말하는 “양성”은 당연히 ‘이성(heterosex)’ 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와 같은 ‘어의적 해석’ 완전히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혼인에 관한 헌법규정은 이성간의 혼인을 헌법현실에서 ‘이미 주어진 당연한 현상’으로 전제하여 양성의 평등을 언급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다시 말해 헌법제정자는 동성 간의 혼인에 대한 논의가 공론의 장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이전의 상황에서 혼인에 관한 규정을 두었기 때문에 양성의 평등이 요구되는 혼인의 개념을 규정할 때는 동성 간의 혼인에 대해서는 전혀 염두해 두고 있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헌법제정자는 동성 간의 혼인이 허용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어떠한 가치결단도 내리지 않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렇다면 특별히 혼인을 헌법적으로 보호하고자 하는 헌법제정자의 입법 의도는 혼인이 아닌 다른 이성간의 결합과 구분하여 보장하려는 데 있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헌법상 보장된 혼인의 개념에 동성 간의 혼인을 포함시킬 수 있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는 여전히 남아 있다. 결국 동성 간의 혼인을 명시적으로 금지하거나 허용하는 규정을 두기 전까지는) 헌법적으로 동성 간의 혼인이 허용되는지에 대해서는 혼인의 개념에 대한 헌법해석의 문제로 남겨놓고 있다고 볼 수 있다.(2)민법규정헌법을 구체화하여 혼인과 가족관계를 규율해야 하는 민법에서도 혼인의 개념에 대한 명확한 정의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불임, 성교불능, 자식을 갖지 않기로 합의하는 경우의 혼인을 설명할 수 없고 혼인허가를 받을 때 이러한 사항까지 조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반박이 가능하다. 또한 과학기술의 눈부신 발전은 동성커플의 경우에도 타인의 정자제공이나 대리모를 통한 출산의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그리고 동성커플의 경우에도 그들의 유전자를 물려받는 자녀는 아니지만 입양을 통해 자녀를 양육할 수 있는 가능성도 여전히 남아있다.출산에 관한 정당성은 동성혼을 인정한 매사추세츠 州 최고법원의 Goodridge v. Department of Public Health 판결에서 입증된다. 최고법원은 친밀성의 다른 형식이나 가족을 구성하는 다른 수단에 우선하여 혼인한 자 사이 생식력 있는 육체관계에 대하여 특권을 주는 혼인에 관한 법은 옳지 않다고 판결하였다. 혼인허가증에 관한 조항은 혼인허가증신청자가 성교를 통해 자식을 임신하는 것에 관한 능력이나 의도의 증명을 요구하지 않는다고 입장을 분명히 하였다. 즉, 이 판결에서와 같이 임신은 혼인의 조건이 아니며, 이혼의 배경도 아니다.) 출산이 혼인의 필수적인 구성물이라면, 제정법은 비 혼인상태의 자식 양육의 허용 가능한 범위와 비 성교 수단에 의한 가족 구성에 있어 허용범위를 더 좁혀야 한다. 혼인의 기본적 권리의 근거로서 출산을 고립시키려는 시도는 혼인, 가족생활, 자식 양육 등의 복잡하고 중복되는 영역에서의 중간단계를 무시하는 태도라 볼 수 있다.2) 부모 자식 관계에 대한 정당성① 부모로서의 적합성미국시민자유연합과 미국심리학회)에 따르면, 많은 수의 연구들이 비슷한 사회, 경제적 조건아래 이성커플에 의해 양육된 자식과 동성커플에 의해 양육된 자식의 정신적, 신체적 건강에 대해 비교한 결과 그들 사이에 차이점을 발견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러나 여전히 동성커플의 입양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들은 동성애자는 이성애자보다 정신적 장애가 있는 경우가 많으므로 동성커플의 입양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사우스 캐롤리나 의과대학의 G. 레즈비언이나 이성애 여성모두 자식의 양육방법에 있어 주목할 만한 차이점이 발견되지 않았으며, 자식을 양육하고 있는 동성커플은 자식의 양육과 관련된 일을 분담하고 있었으며, 부모로서의 지위에도 만족하고 있다고 보고하였다. 심지어 몇몇 연구 결과는 동성애자 부모의 부모역할 기술이 이성커플인 부모보다 더 뛰어날 수 있다고도 보도하였다. 동성애자 부모가 그들의 성적지향에 기초해 부적합한 부모라고 결론을 내리는 것은 어떤 과학적인 근거도 없으며, 동성애자 부모도 이성애자 부모와 동일하게 자식에 대한 부양과 건강한 환경을 제공한다고도 보고된 바 있다. )② 동성애자의 성 역할동성커플의 입양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동성커플 가정이 자식에게 적절한 성 역할을 제공할 수 있는지에 관해 의문을 가진다. 각각 남성과 여성의 역할모델이 없으면 자식은 장래 이성애 관계에서 전통적인 성역할을 수행할 수 없이 성장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편부모 가정을 예로 들면서, 비록 많은 편부모 가정이 잘 유지되고 있지만 경제적 문제, 편부모로 인한 정서적 부양 부족, 가정 밖 사회 부양 부족으로 인해 보통 가정에서 자라는 자식보다 사회적응 능력이 약하다는 몇몇 증거가 나타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편부모 가정 외에도 동성커플 입양을 반대하는 많은 단체들에 의해 이런 특정한 가족유형에 대한 부정적인 보고들이 언급되고 있다.동성애자 부모가 부적합하다는 주장은 편부모 가정의 자식이 성 역할 모델의 부족으로 인해 고통을 받는다는 가정을 조건으로 삼는 것이고, 편부모 가정의 자식은 부모의 보살핌이나 감호의 부족이 원인이 되어 고통을 받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묵인하였다. 따라서 캐나다 사법부가 발표한 보고서)와 같은 맥락에서, 편부모 가정에 대한 연구가 동성커플에 의해 제공되는 부모역할의 질에 불리한 관점을 부여한다고 할 순 없다. 다수의 연구들은 지속적으로 레즈비언 부모에게 양육된 자식이 거의 모든 영역에서 보통의 성 정형에 따라 행동한다고 발표하고 있으며 다만 연구자들은 성 유형 놀이(인형과 떤 성별의 상대방에 대해서 성적 호감을 갖는지를 내용으로 하는 성적 지향도 포함된다.) 또한 성적 자기결정권에는 자녀의 출산을 전제하지 않고 혼인을 하거나 부부로서의 성교행위를 할 수 있는 자유 및 ‘혼인이 아닌’ 또는 ‘혼인과 유사한 생활공동체를 형성하거나 그러한 공동체 안에서 성교행위를 할 수 있는 자유도 포함된다.) 따라서 이러한 권리는 자녀의 출산을 전제로 하는 혼인과 부부로서의 성교행위만을 법적으로 인정하는 전통적인 혼인개념과 충돌한다. 결국 헌법의 명시적 규정에 근거하여 또는 헌법에 대한 해석에 따라 성적 자기결정권이 도출될 수 있다면 자녀의 출산이 가능한 남녀의 혼인과 성교행위만을 법적으로 보호하는 것은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 된다.물론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은 다른 사람의 기본권이나 공익 또는 헌법적 가치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한될 수 있다. 하지만 동성커플에 대한 혼인의 불인정을 통해서 가해지는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제한은 우선 그 제한목적으로서 보호되는 다른 사람의 기본권을 찾기가 어렵다. 동성커플에 대한 혼인을 인정해도 이성커플이 혼인할 수 있는 권리가 전혀 제약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동성커플에 대한 혼인의 불인정을 통해 보호하고자 하는 공익으로는 출산을 통한 사회의 계속성 유지, 자녀의 복지 향상, 공중보건 또는 동성애의 확산방지와 같은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지만 앞서 논의한 것처럼 이에 반대하는 정당한 논거들이 존재한다. 마지막으로 동성커플에 대한 혼인의 불인정으로 보호될 수 있는 헌법적 가치로서 혼인제도의 유지를 고려해 볼 수 있다. 동성커플에게 혼인 제도를 확장하여 인정해줌으로써 혼인의 중요성이 강화될 거시고 동성커플은 기꺼이 혼인의 상호 부양 의무를 받아들일 것이다.4) 동성애자의 차별 감소와 평등권 존중혼인의 개념으로부터 동성 간의 결합을 배제하는 것 자체가 헌법에 보장된 평등권을 침해하는 차별일 수 있다.) 또한 혼인으로 인정하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동성 간의 결합에 대해서 전혀 법적 보호를 제공하지 않거론
    사회과학| 2011.03.08| 8페이지| 1,500원| 조회(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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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도타다오 건축가 조사
    ..PAGE:1Architecture Research나,건축가Ando Tadao..PAGE:2안도 타다오의 작업스타일의 특징은 무엇일까?..PAGE:3안도 타다오의 작업 스타일안도 타다오기하학휴머니즘장소성전통PLUS노출 콘크리트 디테일창호 디테일파라펫 디테일개구부 디테일난간 디테일철골 디테일..PAGE:4장소성건축이 서 있는 장소의의미를 찾고자 노력한다."건축대지는 자연이 지닌 고유의 논리로 판단되고 건축도 또한 고유의 논리를 지니고 있다고 나에게는 느껴진다. 건축대지는 늘 인간에게 끊임없이 부르짖고 있다. 자기에 가장 알맞은 건축을 바라는 그 부르짖음은 그것을 들으려고 귀 기울이는 자에게만 들리게 될 것이다. 이렇게 대지의 요구에 어떻게 호응할 것인가가 건축이라는 행위일 것이다. "PLACE..PAGE:5자연과의 조화뿐만이 아니라 그 지역과 장소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그 지역의 사람과 문화적 환경 등을 구체화하여 건축을 만들어 가는 것이 장소성에 대한 그의 생각이다.주변과의 조화+ 건축의 독립적 영역..PAGE:6기하학GEOMETRY건축물 자체에 있어서완벽한 기하학을 구사하고 있다.(기하학 : 도형의 길이,넓이,각도 등의 양을 측정하거나 공간의 수학적 특성을 연구하는 학문.)..PAGE:7그는 건축의 형태로써 원이나 정방형의 순수한 기하학적 형태를 선택한다. 기하학적 형태를 벽들과 중첩, 결합 그리고 삭제함으로써 기하학의 힘에 의해 지어진 건축의 상징성이 어떻게 주위를 자극하고, 어떻게 존재의지를 표명하는가를 추구하는 것이다.기하학적 형태- 공간구축과 장소구현의 본질..PAGE:8전통TRADITION안도의 건축은 보편성과 그만의지역성이 녹아서 작품화 되어있다.안도의 건축을 보면 일본적인 전통이 잘 나타나있다...PAGE:9전통의 계승은 전통건축의 형태를 모더니즘이 가져온 현대적인 소재를 사용하여 표현한 형태상의 모방 - 지붕, 처마, 격자, 툇마루 형태 등의 직접적인 모방 - 이 아닌 '정신과 감성'을 계승하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역사적인 형태의 복사가 아닌 과거문화의 총체로부터 그 기원을 갖지만 그것이 건축으로 완성되었을 때에는 승화되어 단지 형태가 아닌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안도의 건축 일본적인 특징..PAGE:10건축관 Theory인간을 감동시키는 휴머니즘그의 작품성향은 기하학 구성을 사용하면서 인간을 위한 공간, 인간생활을 위한 장, 공공적 성격이 강한 공간을 창조하는 것이다.그는 추상도가 높은 기하학적 형식을 채용하면서도 그것이 인간생활에 미치는 효과, 인간에게 주는 신선한 감동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Humanism미를 창조하는 시인건축형식에 있어서 강인함 과 섬세함 현대에서 특히 모순된 이런 두 성향을 하나의 인격 속에 공존 시키고 있다.미(美)..PAGE:11그는 디지털적인 방식보다는 아날로그적인 방식을 선호하며, 따라서 컴퓨터로 설계작업을 하지 않고 인간의 숨결이 살아있는 손으로 설계를 하고 도면을 그려나간다. 이러한 정신과 의지는 그가 현재의 대표적인 재료로 사용하는 철과 유리 그리고 콘크리트로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그를 통해 기능적, 경제적으로만 사용되었던 철이, 유리가, 그리고 콘크리트가 살아서 움직이며 숨을 쉰다...PAGE:12노출콘크리트 : 콘크리트를 노출로 사용하는 수법은 숨어있던 노출콘크리트의 미를 시의 차원까지 끌어올린 그의 트레이드마크이며, 전 세계로 유행을 시키고 있다. 노출 콘크리트에 대해서 그는 이렇게 이야기한다."나는 일본사람으로서 스스로 키워 낼 수 있었던 간결의 미의식을, 또 일본사람이기 때문에 만들 수 있는 공간을 현대적인 재료인 콘크리트, 그리고 그것이 만들어 내는 벽을 순화시켜서 사용함으로써 실현시키고 싶다안도 타다오가 기본적으로 사용하는 거푸집의 크기는 세로 900mm×가로 1,800mm 규격의 코팅합판을 쓴다...PAGE:13창호 : 스미요시 주택의 창호 디테일이다. 비교적 초기작에 속하는 이 주택은 안도 타다오의 건축사고의 원형을 볼 수 있다. 창호 프레임은 모두 철제(스테인레스 스틸, 스틸, H형강)으로 이루어져 있다. 주 출입구의 경우 철판문의 구성을 H형강(H-100X50X5X7)으로 틀을 잡아 H형강 플렌지, 웨브면의 변화에 따른 재료미를 극대화하였다. 이는 이후 안도의 철골 디테일에도 유사한 방식을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초기작이어서 프레임을 매입한 것보다는 적게 보이도록 평면과 단면을 주의 깊게 디자인했음을 알 수 있다. 즉 바닥과 천정면에 창호가 최대한 삽입되어 내부와 외부의 경계가 유리나 출입문으로만 구성된 듯 보이게 하는 간결한(미니멀한) 디테일의 추구를 하고 있다...PAGE:14개구부 : 안도는 대부분의 경우 기둥과 보의 역할을 하는 부재의 크기를 동일시한다. 그리고 다른 장치(여기에서는 창을 말함)는 정 가운데나 좌우대칭의 위치에 설치한다. 안도의 창의 디테일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프레임 없이 유리만 사용한 경우, 씰(SILL)만 프레임을 사용하고 헤드(HEAD), 잼(JAMB), 씰(SILL) 모두 프레임이 있는 경우이다. 그러나 극도의 간결함을 유지하려는 안도의 디테일 디자인은 어느 경우나 일맥상통하고 있다. 도면에서 내부에서 외부를 보라. 실제로는 씰(SILL)에만 프레임이 있는 경우이나 프레임 없는 깨끗한 유리 너머로 물이, 바람이 푸르지 않은가. 초기의 안도는 철제프레임을 선호하다가 최근에는 알루미늄 시스템 프레임을 자주 사용한다.
    예체능| 2011.03.08| 16페이지| 1,500원| 조회(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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