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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 선교학 총론 요약 및 서평 평가A+최고예요
    현대 선교학 총론* 책 내용 요약Ⅰ. 선교학의 신학적 위치와 정의1. 선교학의 역사적 발전 과정초대 교회로부터 시작해서 로마 제국이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인 이후 서로마가 멸망한 시기를 일반적으로 교회사가들은 AD 500년으로 규정한다. 이 기간 동안에 선교란 복음의 내재적인 생명력으로 교회가 확장되어지는 과정 속에서 이방 문화와 종교에 대한 기독교의 정체성 확립과 전도를 목적으로 한 변증적인 신학적 동기 속에서 수행되어졌다.AD 500년 이후부터 종교개혁 이전까지의 중세에 대한 교회사가들의 평가는 부정적이고 암울하다. 그러나 수도원 운동을 중심으로 한 교회 개혁과 갱생의 몸부림이 있어 왔는데, 이것은 종종 강력한 선교 운동으로 나타났다. 중세 후기에 일어난 프란시스 수도원 선교운동은 회교도를 복음화하려는 시도를 하였다. 당시 8차에 걸쳐 계속된 십자군 전쟁은 성지를 회교도인들의 손에서 해방시킨다는 종교적 이유를 가지고 시작했으나 실상은 세속적인 동인이 강했으며 후대에 와서 오히려 회교도 선교를 어렵게 하는 요인이 되었다. 중세 시대에 이루어진 선교학적 연구에는 세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1) 제도주의와 관료주의로 인하여 황무해진 교회 내에 개혁과 갱생의 몸부림으로 일어난 부흥 운동이 내면적인 생명력으로 작용하고 실제적인 선교 운동을 일으켰고, 이것은 선교의 동기를 성찰하고 타문화권과 이방 종교에 대한 구체적인 선교 방법을 논했다는 사실이다. 2) 이슬람교의 발흥과 기독교에 대한 도전으로 인하여 선교의 선각자들이 회교도 선교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이것을 계기로 이방 종교인에 대한 선교를 주장했다는 것이다. 3) 로마교회와 비잔틴 동방 교회의 교회론과 구원론의 문제점으로서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사상과 수도사 자신의 성화를 위한 공덕 사상이다.종교개혁 이후에 독일을 중심으로 경건주의 선교 운동이 발흥했고 근대 선교 운동의 아버지라고 불리우는 윌리암 캐리의 선교가 시작되었다. 종교개혁가들의 신학사상에 선교학이 내포되어 있었으므로 북구라파가 개신교회로 복음 선교학은 다른 신학분야와 구별되는 몇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교회적인 사역이며 종족들과 문화들이 신학연구의 대상이 되며 복음전파와 관계된 것과 우주적인 범위의 종말론적인 하나님 나라의 신학을 지향한다는 것이다.선교학은 크게 세 분야로 나누어서 설명할 수 있다.1) 신학적인 범주가 있다 : 이것은 성경 66권이 선교에 대해서 무엇을 말씀하고 잇는지를 규명하는 일이다. 선교의 성서신학 연구, 교의신학적인 연구가 있다.2) 역사적인 범주가 있다 : 교회가 역사 속에서 어떻게 선교의 사명을 감당했는지를 규명하는 학문이다. 교회가 선교사역을 수행함에 있어서 지리적인 확장, 종족들, 전달매체, 섭리성, 선교방법과 전략, 신학 이해, 영적 원동력, 선교구조, 교회특성, 지도력 그리고 복음화의 과정을 총체적으로 연구한다. 상호 연관되어 유기체적 특성을 지니고 이것들이 오늘의 교회로 하여금 선교사역을 올바르게 수행하도록 역사적 통찰력과 방향성을 제시해 주는 것이다.3) 타문화권 교회 설립 및 교회 성장 범주가 있다 : 이 분야는 선교의 대상이 되는 세상에 관련된 것으로 선교상황, 선교방법, 선교결과 등이 모두 포함된다.Ⅱ. 현대 선교학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제 학자들현대 선교학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선교학자들의 신학적 경향과 연구방향을 이해하는 일은 오늘날의 선교학이 어느 위치에 있는가를 분별하는 일로서 선교학의 동향과 현주소를 파악하게 한다.레슬리 뉴비긴은 그의 책에서 삼위일체적 관점으로 선교를 연구하였다는 것을 볼 수 있고 다원주의와의 차이점을 천명한다. 그럼에도, 타종교인들 가운데 역사하는 하나님의 주권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가운데서 복음의 접촉이 이루어지지 않은 타종교인들에게서 구원의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단언할 수 없다는 그의 개방적인 면모를 볼 수 있다.막스 워렌은 선교기구의 자발성을 중요시 여기며 그리스도의 현존 개념을 주장했다. 이러한 워렌의 그리스도의 현존개념은 워렌 자신에게 있어서는 복음선포를 전제로 한 복음의 접촉점으로서의 선재적 은총개념이었지련된 분야이다.요한네스 호켄다이크는 교회가 세상 속의 사도적 교회로서 모든 교인들이 그리스도인의 변혁된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선교를 수행하는 샬롬의 변화를 가져올 것을 주장하였다.요한네스 버카일은 특히 유대인 선교에 대한 선교신학적 연구를 시도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이 가까이 올수록 종말의 한 징조로서 유대인들 중에 예수 믿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라는 예측이다.케네스 스코트 라토렛은 구속사가 역사의 주축임을 전제하고 하나님께서 그의 구속의 뜻을 성취함에 있어서 제도적인 교회보다 우선적으로 하나님께 특별히 부름받은 영적으로 각성되어 있고 선교의 사명을 받은 소수의 선각자 그룹에 의하여 선교 운동이 확산되어지고 결국은 제도적인 교회도 선교에의 각성으로 변혁을 일으키는 촉매제가 된다고 하였다. 그의 선교관은 이러한 교회병행 선교단체와 제도적인 교회가 서로 연합하고 일치하여 세계 복음화의 사명을 감당하게 될 때 그것을 바람직한 교회의 선교 모습으로 결론을 내린다.도날드 앤더슨 맥가브란은 그의 책에서 전통적인 선교방법인 선교기지 중심의 개인주의적 전도 방법을 비판하고 사람들의 삶의 근저인 문화 속에 들어가서 문화 변혁의 메커니즘을 인식하여 문화속의 사람들의 공동체를 변화시켜 그리스도께로 인도한다는 사람들의 운동을 주장하였다. 이것이 후에 ‘교회 성장학’이론으로 선교계에 알려지기 시작하였고 전세계 선교학계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쳤다.허버트 케인은 선교의 광범위한 주제를 가지고 글을 썼는데 다작가이며 복음주의 선교학을 확립하는 데 공헌을 하였다. 그의 선교신학적인 공적은 삼위일체의 하나님께서 선교의 주체이심을 깊이 인식하고 이를 성경신학적이고 교의신학적으로 연구하여 선교와 연관시키려고 노력했다는 점이다.조지 피터스는 세대주의 신학을 가진 선교학자로서 미국의 복음주의 진여으이 선교학계의 큰 영향을 미쳤는데 특히 선교의 성서신학 분야와 교회 성장에 대한 신학적 성찰 등이 그러하다.로버트 피어스 비버는 미국 교회에게 최신의 선교정보와 선교이론을 제공하고 미국을 나타내고 있다.한국의 선교학은 크게 네 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다. 1) 외국의 선교학자들의 대표적인 저서가 번역되어 그들의 선교사상이 그대로 한국교회에 소개되고 있는 것이다. 2) 외국의 선교학자들의 이론과 글을 거의 옮기다시피 하여 모자이크 식으로 조합하여 한국교회에 외국 선교학자들의 선교사상을 대변하여 그대로 소개하는 경우이다. 3) 선교의 경험을 가지고 선교의 실제적인 면이나 한국교회의 선교를 논하며 한국교회의 실제적인 선교에 통찰력과 방향성을 제시하는 경우이다. 4) 나름대로의 신학적인 주관과 학문적인 자율성을 가지고 외국의 선교학자들의 이론이나 글도 신학적으로 재성찰하며 한국교회 상황에서의 창의적이고 한국교회의 선교에 기여할 수 있는 선교학을 구축하려는 시도이다.Ⅲ. 현대 선교학에 있어서의 선교 개념선교학의 신학적 입장에 따라 선교 용어의 의미가 제각기 다르게 해석 되어지고 있다. 여기서 선교 용어의 성경적 근거를 살펴보고 선교 개념이 교회역사를 통해서 어떻게 발전이 되었는지를 간략하게 살펴볼 것이다.1. 선교 용어의 성경적 근거선교라는 용어는 ‘보낸다’의 어원인 ‘아포스텔로’와 ‘가서’의 어원인 ‘펨포’의 뜻이 결합되어 선교라는 용어 의미를 결정 짓게 되었다는 것이 대다수의 선교학자들이 인정하는 사실이다. 이 용어를 라틴어로 번역하여 ‘Missio'라는 용어를 씀으로 ’보냄을 받은 자‘라는 의미로 사용하였다. 그리고 이것이 결국 영어의 ’Mission', 즉 선교라는 말로 사용이 된 것이다.이렇듯이 개신교회에 있어서 선교용어는 ‘보냄을 받은 자’와 ‘가라’라는 의미가 결합이 되어서 사용이 되어졌고 이에 따른 선교의 개념이 정립되었다. 대체적으로 선교는 크게 두 가지 입장으로 정의되었는데 광의적이요 포괄적인 것과 실제적이요 협의적인 것이다. 광의적인 의미에서의 선교는 선교의 주체로서의 삼위 하나님의 주재권을 강조하면서 전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백성들의 말씀과 행위로 이루어지는 복음증거의 삶이라는 의미로 해석한다. 실제적이요 협의적인 선교 의미는 교립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복음주의 진영 안의 총체적인 선교에 대한 신학적 적립은 마닐라 선언문에서 ‘검증된 복음’이라는 용어를 등장하게 만들었다. 이 뜻은 전도적 명령이 기능적인 측면에서 우선권이 있으나 신학적으로는 복음은 말씀과 행위로서 증거되어져야 하고 복음은 구체적으로 선한 행실도 포함되기에 이것은 분리할 수 없는 총체적인 복음이며 그 영역 안에 전도와 사회적인 책임의 동등한 자리 매김이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이 서구의 복음주의 진영의 선교학자들은 1974년의 로잔느 복음화 대회시의 선교 개념을 받아들이느냐 아니면 1989의 로잔느 두 번째 대회시의 총체적인 선교 개념을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크게 둘로 양분되어 있는 것이다.5. 전도명령과 문화명령칼빈은 보통은총 안에 있는 인간의 재능, 예술, 과학 등은 결국 죄의 영향력하에서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온전히 드러내지 못한 채 왜곡되거나 변질될 수 밖에 없다고 단언하였다. 따라서 인간 삶의 모든 영역에 특별은총으로서의 성령의 구속적 사역이 필요하며 이러한 성령의 특별한 역사 속에 모든 것이 새롭게 시작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칼빈의 입장은 결국 정치, 경제, 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성령의 구속적 사역을 요청하게 되고 그것은 논리적으로 전도 명령이 기반이 된 그위에서의 문화적 명령의 수행으로 나타나게 된다. 성령의 구속적 사역으로서의 전도명령이 문화명령보다 우선권이 있지만 문화명령이 중요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선교는 교회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 선포의 중요성이 있으며 이것은 총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의 주 되신 삼위 하나님의 주재권을 확립하고 증거하며 삼위 하나님이 마땅히 받으셔야 할 그의 영광을 돌려드리는 일이어야 한다.6. 선교현장과 선교 개념네비우스 선교정책은 토착교회의 자급, 자치, 자전의 능력을 최대한 배양하고 토착교회의 지도력을 키우는 데 있어서 선교의 총력을 기울였다. 문화적 명력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시한 것은 토다.
    독후감/창작| 2015.04.17| 11페이지| 1,000원| 조회(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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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뱅의 자유사상, 이론과 실제
    칼뱅의 자유사상 :이론과 실제제1장 헬레니즘 전통에서의 자유와 기독교적 요소칼뱅은 1523년 파리로 올라가서 인문교육을 마치고 1528-1531년 사이에 오를레앙과 부르주에서 법학을 공부했다. 칼뱅의 문학적 토양과 취향은, 비록 부친의 의도이긴 했으나, 법학과 묘하게 어우러졌다. 칼뱅이 접하게 되는 인문주의의 두 가지 형태는 수사학적 인문주의와 법률적 인문주의이다. 칼뱅이 관심을 가지고 만나게 되는 인문주의는 우선적으로 수사학적 인문주의이다. 칼뱅의 인문주의적 태도는 회심이후에도 여전히 나타난다. 오를레앙과 부르주 시절에 그는 법률적 인문주의를 접하게 되고 이것이 그의 생애에 지대한 영향을 주게 된다.칼뱅의 처녀작은 바로 [세네카 관용론 주석]이다. 그는 여기에서 세네카를 합당한 위엄의 자리에 복귀시키려 했다. 논박에서는 세네카를 공격한 사람들 중 쿠인틸리카누스와 아울루스 겔리우스를 언급한다. 마지막으로 확언에서 칼뱅은 세네카를 매우 뛰어난 인물로 주장한다. 칼뱅은 세네카가 철학자의 온건한 특성을 지니고 있음을 지적한다. 세네카를 주석하는 칼뱅의 텍스트에서 도덕적이고 정치적인 개념을 찾을 수 있다. 프랑스 왕국이라는 군주제의 배경 속에서 로마 제국 시절의 세네카를 주석하며 외치고 싶었던 칼뱅의 말은 관용이었다. 세네카의 책에서 법으로서의 정의와 그 이념으로서의 평등이 있는 곳에 자유가 있다. 칼뱅은 일반적으로 권력을 가진 자들이 취하는 못된 습성을 묘사하면서 세네카 주석을 시작한다. 한편 백성의 안전과 자유는 국가의 통치에 복종하는데 있다. 관용에 있어서 풀어야 할 오해는 잘못된 관용 개념과 관용에서 생기는 그릇된 이름의 관용이다. 관용이 용서는 아니지만, 이따금 용서로 나타나는 것은 사실이다. 여기서 자연법과 인간성에의 강조는 인문주의자 칼뱅의 국가관 내지는 사회관을 잘 보여준다. 군주는 자신의 대한 복수 아니면 타인을 위한 복수를 이유로 정의의 법을 사용한다. 그러나 타인을 위한 복수에 있어서만 타당하다. 세네카가 주장한 관용의 정의에서 칼뱅은 처벌하려 할 나타난 기독교 전통의 자유와 인문주의적인 요소들개혁신앙의 변증가로서의 칼뱅에게 자유는 무엇보다도 먼저 그리스도인의 자유다. 이 자유는 시민의 자유나 인간의 자유와 구분된다. 이제 자유라는 말은 점점 더 다원적 의미를 갖는다. [기독교 강요]에 등장하는 순서에 따라 지적하자면 인간의 자유, 그리스도인의 자유, 시민의 자유 순이다. 비록 ‘그리스도인의 자유’라는 장이 별도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자유들이 너무도 혼합되어 있어서 설명하기가 용이하지 않다. 개혁신앙의 자유는 인간의 자유의 일부인 사회-정치적 자유와 혼합되어 있다. 하지만 새 신앙에 대한 칼뱅의 변증서는 필히 그의 회심과 관련하는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포함한다. 게다가 이 회심은 그리스도인의 자유와 인간의 자유 사시의 긴 갈등의 결과이기도 하다.칼뱅은 “기독교 강요”를 프랑수아 1세에게 헌정하면서 프랑스의 박해당하는 자들을 변호한다. 거기서 그는 그가 이미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맛본 것을 암시한다. 칼뱅에게 있어서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시민의 자유와 충돌하지 않는다. 개혁 교리는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따른 진리 추구의 결과다. 하늘의 시민권이 땅의 시민권보다 앞선다. 칼뱅은 그의 그리스도인의 자유 이론을 “복음 교리의 총화”라고 선언하면서 시작한다. 칼뱅은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율법, 아디아포라, 스캔들이라는 세 가지 주제와 연결해서 설명한다.칼뱅에 의하면 신자의 양심이 율법의 필연성에 의해 억지로 율법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율법에서 해방되어 자유롭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다. 또한 칼뱅은 자유를 아디아포라 문제와 관련시키는데 그 중 물질의 사용 문제에 대해서 그가 갖는 기본적인 성경관은 “나그네 인생”과 관련된 것이다. 그는 물질 사용에 있어서 엄격주의와 방종의 두 극단을 피하고자 한다. 이렇게 칼뱅은 자유를 자신의 욕망의 구실로 삼는 자들에게 자유의 법을 세웠다면, 이제 그는 사람들 앞에 보이기 위해 무분별하게 자유를 행사하는 자들에게 사랑의 법을 세운다. 물론 칼뱅은 사람들 앞에 해서 자유의지는 거부되고 인간은 자신의 행동이 선하고 바르게 여겨지기 위해서 의지의 회심을 필요로 하게 된다. 심지어 타인들보다 우월한 지성의 활동도 하나님의 특별은총에 속한다.제3장 피기우스 논박 : 의지와 자유피기우스는 죽기 얼마 전에 [인간의 자유선택과 신의 은총에 대한 10권의 책]을 출판하여, [기독교 강요]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했다. 칼뱅은 자유의지에 대해 글을 쓰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기독교 강요]에서 칼뱅은 인간에 대한 지식의 출발을 원죄의 결과로서의 인간 타락에서 시작한다. 피기우스는 루터를 공격하는데 그것은 1)사람이 자신의 자연적인 힘으로는 하나님의 은총을 받아들일 준비를 할 수 없다는 것, 2)우리의 본성은 부패하여 무가치하게 된다는 것, 3)율법을 지키는 것이 우리에게는 불가능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의 능력을 초월하는 그것을 지키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잘못을 행하게 된다는 것, 4)가톨릭교회의 원죄의 교리가 이것과 관련된다는 것, 5)의로운 자들도 심지어 그들의 선행 가운데서 죄를 진다는 것이다. 칼뱅은 루터를 옹호하면서 처음 네 가지에 대한 설명을 뒤로 돌리고 마지막 선행에 대한 문제를 잠시 다룬다. 어떤 선행이 언급되어져도 그것은 하나님을 그들 자신의 덕으로 기쁘시게 할 수 없다는 것이며 오히려 하나님의 은총의 호의로만 가능하다고 말이다.피기우스가 주장하는 “보편 교회의 합의”에 대해서, 칼뱅은 “교회의 유일한 합의는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완전히 적합하게 일치할 때” 이루어질 뿐만 아니라 “성령이 선지자들과 사도들에게 분명하게 명령하신 것을 인간의 판단에 맞추기 위해 왜곡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칼뱅은 결코 전통을 무시하지 않지만, 그것은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 밑에 있다고 강조한다.칼뱅은 자신이 [기독교 강요]에서 인용한 아우구스티누스의 글들이 피기우스의 주장과 달리 바르게 해석되었음을 밝히고, 곧이어 피기우스를 따라 아우구스티누스의 작품들을 세 시기로 나누어 설명한다.논쟁은 주로 자유의지와 은총과의 관계였다. 하는 자유이다. 우상을 섬기면서 그것이 우상 숭배인지도 모르는 것은 진리에 대한 인식 부족이다. 진리에 대한 약간의 지식이 있으면서도 그것을 추구함에 있어서 미지근했던 사람들도 결국은 우상 숭배에 참여하며 어쩔 수 없이 진리와 하나님을 배반하게 되었다. 문제는 이들이 자신들의 잘못에 대해 인정하기는커녕 오히려 그것을 합리화하는데 있었다. 하나님을 섬기는데 있어서 진리의 절대성이 있다. 그러므로 진리를 추구하는 자유는 아디아포라의 문제가 아니다. 하나님을 옳게 섬기는 것을 못하게 하는 곳에 자유란 없다. 그런 곳에서 자유의 실천은 둘 중 하나의 선택일 뿐이다. 박해와 죽음을 견디는 것과 진리가 선포되는 자유의 장소로 향해 떠나는 것이다. 하나의 신앙만을 인정했던 기독교 국가의 시대에서 신앙의 자유는 개인적인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공동체의 차원으로 나아간다. 칼뱅의 제네바는, 도처에 흩어져 있으면서도 말씀에 입각한 개혁 신앙의 자유를 추구하는 “모든 경건한 자들의 공통된 조국”이었다.제5장 재세례파와 리베르탱파 논박 : 자유와 책임니고데모파에게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나오라고 외쳤던 칼뱅은 이제 “개혁된 교회” 안에서 또 다시 분리를 주장하는 “급진” 세력들과 만난다. 이 세력들은 재세례파와 리베르탱파라고 불리는 심령주의자들이었다. 칼뱅이 니고데모파에게 군주에 대한 지나친 충성과 세상사에 대한 애착을 지적했다면, 재세례파에게는 그들의 무정부적 성격을 비난한다. 칼뱅이 니고데모파를 향해서 자유의 추구를 강조했다면, 이제 그는 리베르탱파자들의 방종을 지적하며 이 자유의 한계를 말한다. 이것은 결국 자유와 책임과의 관계로 귀결된다. 기독교 진리를 되찾은 교회와 정부가 자신들에게 맡겨진 공동체에 대한 책임을 수행하려 할 때, 자유는 필연적으로 제한된다.재세례파에 대한 칼뱅에 공격은 그들의 신학적 오류에서 출발한다. 그는 이미 [영혼 수면론 논박] 이라는 글에서 이 분파의 입장을 논박했다. 인간의 영혼에 관하여 칼뱅이 주장하는 재세례파의 입장은, 비록 그들 사이에 약간의 차이바뀌어간다. 그러나 칼뱅에 따르면 율법의 준엄성에서 해방된 그리스도인은 동시에 율법의 가르침을 준수하는 것이 타당하다. 직업적 소명에 있어서는 자신의 유익의 적합한 것이나 마음에 내키는 것을 따라 행하고 사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와 같이 칼뱅은 하나님이 바르다고 인정하는 생활 방식과 신분만을 소명으로 여기는데 비해 리베르탱파는 세상의 모든 신분과 그 신분에 따른 삶의 방식을 소명으로 여긴다. 따라서 리베르탱파는 세상의 모든 신분에 자리 잡은 악습이 결코 악하지는 않다고 주장한다. 재산 소유의 문제에서 리베르탱파는 공동소유를 주장한다. 그러나 칼뱅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소유를 팔 준비를 해야 할 것은 인정하나, 당장 재산을 포기하지 않고는 그리스도의 완전에 이르지 못한다는 주장은 거부한다.재세례파와 리베르탱파가 칼뱅에게 던진 문제는 윤리적 책임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두 종파의 자유는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을 비켜간다. 반대로 칼뱅의 자유의 윤리는 그리스도인의 책임을 배제하지 않는다. 이 책임은 정치, 경제, 그리고 선악에 대한 인식과 관계한다.제6장 칼뱅과 카스텔리오에 있어서 양심의 자유세르베투스 사건은 양심의 자유문제에 있어서 서구 사회에 중대한 이정표이다. 재세례파와 심령주의 리베르탱파의 문제가 제네바 외부의 문제였다면, 세르베투스와 관련된 사건은 그 내부의 문제였다.세르베투스는 [삼위일체 오류론], [삼위일체에 대한 문답], [그리스도 왕국의 의], [기독교의 회복] 등의 글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주장했다. 칼뱅과도 몇 번의 서신 교류가 있었으나 그의 주장은 이단 저술의 걸작이었다. 그는 결국 제네바에서 붙들렸고 화형 당했다.칼뱅은 [기독교 강요]의 초판부터 양심의 자유를 선언하고 있다. 양심은 “사람들에게 달라붙어 그들이 죄를 숨기지 못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향해 부추기는 증인처럼, 이 하나님의 심판의 감정과 가책을 갖는 것”이다. 이와 같은 양심의 정의를 놓고 볼 때 그리스도인은 근본적으로 양심의 자유를 갖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자유의 제약있다.
    독후감/창작| 2015.04.17| 9페이지| 1,500원| 조회(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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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애굽기 산책 요약 및 서평
    출애굽기 산책* 내용요약1장_서론출애굽기는 “노역에서 예배로”, 그리고 하나님ㅂ의 “부재에서 임재로”, “하나님에 대한 앎에서 하나님에 대한 섬김으로”의 틀을 갖고 있다. 그리고 그 안에 출애굽의 이야기, 광야에서의 돌보심, 언약과 율법, 성막 건설 등의 다양한 이야기들이 풍부하게 담겨 있다. 이런 면에서 출애굽기는 신앙과 신학의 보고이다.“출애굽”이라는 주제는 오경, 구약, 신약의 중심을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주제들 중의 하나이다. 십계명, 성막 신학, 레위기의 많은 계명들, 이사야서와 호세아서 등의 많은 선지서들도 출애굽기의 주제들과 근본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신약에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은 자주 출애굽 사건과 연결된다. 이런 점은 출애굽기의 다른 주제들인 광야에서의 돌보심, 율법, 성막 등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출애굽기의 구조는 다음이 가장 설득력 있어 보인다. 1) 서론(1:1-7) 2) 출애굽(1:8-15:21) 3) 광야여정(15:22-18:27) 4) 시내산 언약(19:1-24:11) 5) 성막 건설(24:12-40:38)2장_출애굽기 1:1-7저자가 이 단원을 창세기와 출애굽기 사이의 가교의 역할을 하도록 의도한 것 같다. 내레이터는 이 짧은 단원 내에서 야곱의 아들들로 구성된 한 가족이 하나의 민족으로서의 이스라엘로 변모한 것을 나타낸다. 생략된 몇 백 년의 기간은 하나님이 섭리하시는 기간이었고, 하나님의 뜻을 성취해 나가시는 기간이었다. 출애굽기 1:7과 그와 관련 구절들(1:12,20)은 원역사(창 1:1-11:26)와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게 특화되어 사용된 축복과 약속의 용어들을 정교하게 빌려오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이렇게 함으로써 이 구절은 창세기의 축복과 약속들이 드디어 출애굽 대에 이스라엘에게 성취되었음을 선포하고 있다. 1:7의 신학적인 선언은 이어지는 출애굽기의 본문들의 사건들을 창조 신학적으로 읽게 만들어주며 여기서 강조하고 있는 성취는 창세기에 나오는 약속들 중 생육과 번성의 약속, 그리고 족장들에게 주어진 약속들 중 많은 후손의 약속과 연결되어 있다. 이 약속들이 성취되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들 중 남은 약속, 즉 땅의 약속의 성취가 멀지 않았음을 예고한다.3장_출애굽기 1:8-15:211:8-2:25은 이스라엘에게 닥친 위기와 이 위기 속에서 베풀어지는 하나님의 은밀한 은혜를 다루고 있는 이 소단원은 출3-4장의 모세의 소명에 대한 본문과 그 이후의 다른 본문들의 배경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3-4장에서는 평범한 날의 비범한 사건으로 모세를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보여준다. 5장부터는 본격적으로 하나님의 구원과 출애굽 사건이 시작된다. 여기서 하나님의 구원이라는 주제보다 하나님이 누구신가 하는 주제가 더 중요하다. 여기서 해결적 플롯만이 아니라 드러냄의 플롯으로도 읽을 수 있다. 출5-15장을 드러남을 플롯으로 이해하는 것은 열 재앙의 신학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준다. 기존까지 내려오던 “자연주의적 시각”과 “신들의 전쟁”이라는 관점보다 더 적절한 것 같다. 이 재앙들은 바로와 애굽에게는 여호와 하나님이 온 땅의 유일한 주권자임을 보여주는 역할을 했고, 이스라엘에게는 신앙의 증거가 되는 역할을 했다.야곱 가족은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둘로 갈라진 모습과 장자권을 두고 두 아들이 보여주는 행태가 담겨 있다. 욕망과 경솔함으로 인해 이들은 오랫동안 어두움의 그림자 속에 살게 된다. 이러한 모습을 우리가 보고 겸손히 배우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4장_출애굽기 15:22-18:33모세오경에서 광야 사건에 대한 내용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시내 산 이전 부분과 시내 산 이후 부분인데 이 두 부분은 여러 가지 면에서 서로 상응하면서도 다른 모습들을 보여주므로 이해가 필요하다.광야 시대 제1기와 제2기는 어떤 주제를 따라 선별된 것으로 보이며 “하나님의 징벌”이란 요소의 유무가 이 둘을 나누는 가장 커다란 특징이 된다. 광야 시대의 사건들의 가장 큰 특징은 이스라엘 백성의 투덜거림 혹은 불평이다. 광야는 이스라엘의 반항과 반역의 장소인 동시에 하나님의 계속적인 돌보심과 계시가 있었던 장소이다.5장_출애굽기 19:1-24:11출 19-40장은 이중 인클루지오, 새로운 문학적 맥, 시간의 틈 등을 근거로 두 부분으로 나뉜다. 그 중 19:1-24:11은 다섯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서는 언약과 거룩, 십계명, 두려워말고 두려워하라, 언약의 책, 앞서가시는 하나님, 언약의 체결 등이 나온다. 그 중에서 언약의 책에 대한 내용은 남녀 노예에 대한 율법, 동해동형법, 사회적 약자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이 나타난다.6장_출애굽기 24:12-40:38이 본문은 크게 “성막 이야기”와 “황금 송아지”의 두 개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원래는 시내산 언약을 통해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맺어진 언약은 성막의 건설을 통해 이 두 언약 당사자가 함께 하는 것으로 막을 내리도록 되어 있었다. 그런데 모세가 성막 건설에 대한 하나님의 지시를 듣는 40일의 기간을 견디지 못하고 이스라엘은 황금 송아지의 우상을 만든다. 이로 인해 시내산 언약은 무효화되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진노로 인해 멸절을 당할 위험에 빠지게 된다. 이 문제는 오직 모세의 수차례에 걸친 중보기도를 통해서야 겨우 무마된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은 다시 언약을 세운다. 성막은 그 이후에야 겨우 건설된다.성막 이야기와 황금 송아지 이야기는 내용상 서로를 비추고 있는 부분이 아주 많다. 그리고 성막은 회막과 동일시하는 것이 맞는 듯 하다. 이것은 부록에서 살펴볼 것이다.부록1_출애굽기의 관점에서 본 하나님과 시내산의 관계 : 선천적인가, 후천적인가?많은 학자들, 그 중에서도 특히 역사비평학을 바탕으로 하는 학자들은 “고대로부터 야웨와 시내 산 사이에는 특별한 관계가 존재했는데, 이 관계는 출애굽과 이스라엘의 등장 이전부터 이미 존재했던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공간적 배경과 관련하여 출애굽기는 전체적으로 일관되게 뚜렷한 목적론적인 지향점을 나타내고 있으며 시내산이 야웨와 맺고 있는 특별한 관계에서 파생된 거룩성 등과 같은 특별한 속성을 본래적으로 띠고 있다고 말해주지 않는다. 또한 야웨나 이스라엘 백성은 시내 산을 떠나는 것에 대해서 꺼려하지 않으며 출애굽기는 성막이 시내 산을 계승하고 있는 것으로 이야기해주고 있기는 하지만 이것은 시내 산이 야웨와 근본적으로 특별한 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시내 산에서 맺어진 특별한 사건들을 기념하기 위한 것일 뿐이다.부록2_유월절(출12-13장) 본문의 구원 설교 어떻게 할 것인가?유월절 규례에 대한 본문이 담고 있는 신학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1)유월절 사건은 여호와의 권능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2)유월절 사건은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소유권을 보여준다. 3)유월절 사건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에 대한 천명이다. 4)유월절 예식의 참여는 할례를 받은 모든 자에게 열려 있다. 5) 유월절의 구원은 피의 표시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으로 판가름 난다. 6)이 사건은 대대로 기억되어야 하는 사건이었으며, 유월절 규례는 영원히 반복적으로 지켜야 할 규례였다.신약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유월절 사건과 명백하게 연결시키고 있다. 출애굽기의 유월절 사건이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큰 의미로 다가오는 것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및 대속 사역을 통해서이다.부록3_출애굽기 33:7-11의 “회막”기사에 대한 서사비평적인 해석 : 이 본문을 몰시간법적 기법의 한 예로 읽기성막과 회막을 단순히 동일시하기에는 곤란한 난점들이 몇 가지 있다. 1)성막은 오경 내의 여러 본문들에 따르면 진 한가운데 위치한다. 2)출 33_7-11의 “회막”은 출35-40장에서 “성막” 건설이 이루어지기 전에 등장한다.그러나 내레이터는 “전시간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야기상의 사건들을 담론 속에서 자신이 의도하는 그 어떤 순서로도 재배열 할 수 있다. 몰시간법은 내레이터의 이러한 능력을 보여주는 가장 두드러진 예이며 따라서 2번 난점은 해결된다. 그리고 1번 난점 역시 해석의 문제이다. 두 장막 이론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진 밖의 회막의 문제는 몰시간적 본문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죄를 저지름으로써 부정해진 상황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부록4_두려워 말고 두려워하라 : 출애굽기 19-40장의 해설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임하시는 이유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두려움은 이스라엘이 죄를 짓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다. 이처럼 이스라엘에게 두려움을 불러일으키게 할 목적으로 하나님이 임하시는데 이 구절은 이것을 “두려워 말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진정한 관계는 두려움만으로는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비평1. 모세, 신중함과 정의감 VS 교활함과 혈기그레스만이나 그린버그는 2:11 이하의 본문이 모세의 성품을 보여주며 신중함과 정의감을 보여준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출애굽기 산책의 저자가 언급하듯이, 짧은 본문이 그러한 성품을 선명하게 드러내주는지는 의문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모세의 후반의 삶을 보면 그에게 그런 성품들이 보이지만 그것은 빚어서 만들어진 결과일 것이다. 오히려 2:11의 본문은 살인을 행함에 있어 치밀함을 보여주는 교활함과 싸움의 중재가 아닌 보복으로서의 성급한 혈기를 보여줌으로써, 전통적인 해석처럼 그의 완숙치 못한 모습으로 인한 실패를 묘사하는 것으로 보인다.
    독후감/창작| 2015.04.17| 4페이지| 1,000원| 조회(5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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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죽음에 이르는 7가지 죄 서평
    죽음에 이르는 7가지 죄 서평 평가C아쉬워요
    죽음에 이르는 7가지 죄Ⅰ.서론기독교 전통이 우리에게 전해 준 ‘일곱 가지 대죄’는 교만, 시기, 탐욕, 탐식, 분노, 정욕, 나태다. ‘대죄’라는 용어는 교부들이 처음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성경에서 다른 죄들에 비해 죄책이 훨씬 큰 죄들이 있음을 시사하는 구절들 속에서 신학적으로 유추하고 발전시켜 붙인 이름이다. 7대죄 교리의 영향력은 종교개혁 이후로 교회 전통 안에서 빠른 속도로 약화되었다. 개신교회는 성경적 근거가 미흡하다는 이유로 이것을 공식 교리로 채택하지 않았는데, 그런 결정에는 로마 가톨릭 교회에 대한 경계심도 한 요인이 되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피할 수 없는 죄에 문제에 있어서 교회는 죄가하나님과의 관계와 사람과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파괴하고 온갖 사회적 갈등과 불의를 일으키는 중심 실체임을 폭로하고, 죄에 대항하는 교회의 오래된 지혜를 새롭게 증거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7대죄의 가르침은 오늘날 교회가 다시 돌아보아야 할 중요한 주제들을 담고 있다.Ⅱ.본론1. 교만, 뭇별 위의 보좌교만은 인간을 타락시키고 죄의 불행을 이 세상에 가져온 가장 무겁고 핵심적인 죄다. 교만은 자기를 높이는 것이다. 인간은 이 세상에서 피조물을 다스리고 그것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도록 창조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대리자로서의 역할을 망각하고 마음이 높아져 스스로 세상을 통치하고자 했다. 이것이 바로 첫 인간의 타락이다. 성경은 교만은 단순히 자기를 높이는 것을 넘어, 하나님을 떠나 스스로 자신과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려는 태도라고 가르친다. 그러므로 교만은 결국 스스로 ‘하나님이 되려는 것’과 다름없다. 교만은 스스로를 속이는 자기 기만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교만한 사람은 타인의 의견을 존중하거나 경청하지 못한다. 또한 경건한 자들도 교만에 빠질 수 있는데, 바로 영적 교만이다.사람이 자기를 높이는 이유 중 하나는, 자신의 참 모습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신의 실상을 바로 보는 것은 교만의 기초를 제거함으로써 교만을 극복하는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사람이 자신을 제대로 보려면 사람이 아닌 하나님께 눈을 돌려야 한다. 인간이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야말로 자신의 정직한 모습을 노출시키는 핵심적인 방법인데, 그렇게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하고 실제적인 통로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다. 율법이 하나님의 의와 인간의 악을 동시에 보여 주는 거울 기능을 하며 인간은 이 거울을 통해 자신의 비참한 실상을 알고 절망하고 낮아질 수 있다. 또한 공동체 생활이 도움이 되는데 여기에는 공동의 질서와 규율과 특정한 삶의 방식을 따르는 것이 전제된다. 이는 새로운 자아를 형성하고 겸손을 비롯한 소중한 덕목을 익히는 데 실제적인 도움이 된다. 진정으로 마음을 낮추기 위해서는 자신은 하나님이 창조한 피조물이며 하나님이 자비를 베푸시지 않으면 심판을 피할 수 없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고, 일상생활에서 다른 사람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고 낮은 자리를 찾아 앉도록 의지적으로 노력해야 한다.2. 시기, 녹색 눈의 괴수시기는 자기 행복을 위해 친구의 불행을 제물로 삼는 잔인하고 비틀어진 자기 사랑이다. 이렇듯 이기의 독특한 점은, 그 대상이 일반적인 사람이 아니라 가까운 지인이나 친구라는 점이다. 질투는 시기와 나란히 쓰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질투란 이웃이 지닌 것을 자기가 소유하지 못한 사실에 슬퍼하는 것이고, 시기란 자기가 갖지 못한 좋은 것을 이웃이 가진 사실에 슬퍼하는 것으로 정의했다. 질투는 초점이 자신에게 있고 성장의 동력으로 쓰일 수 있다. 그러나 시기는 초점이 상대방에게 있고 늘 다른 사람을 의식하면서, 그저 친구가 잘되거나 좋은 것을 지니고 있는 상황을 불편해하는 마음이다. 시기의 날선 칼은 상대방을 벤 후 부메랑이 되어 자신에게로 돌아온다. 시기는 자신이 다치면서까지 상대방을 넘어뜨리려 하는 것이다. 또한 시기가 낳는 또 다른 극단적인 모습은 의욕 상실이다.시기를 멀리하는 아주 실제적인 방법 중 하나는 한담을 피하는 것이다. 그리고 시기를 근본적 차원에서 극복하기 위해서는 ‘선의 총량은 한정되어 있다’는 잘못된 의식을 교정해야 한다. 그리고 눈을 자신에게로 돌려 자신이 가진 것을 보아야 한다. 또한 함께 있는 사람이 나에게 필요한 존재로 인식되기 시작하면 시기는 힘을 잃는다. 시기를 물리치는 궁극적이고 최종적인 무기는 사랑이다. 원수라도, 사랑의 근원이신 하나님의 사랑을 힘입는다면 사랑할 수 있다.3. 분노, 사탄의 화로분노에 대한 성경적 가르침의 큰 줄기는 그것이 통제해야 할 악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분노는 인간이 지닌 자연스런 감정 중 하나이기도 하다. 성을 내는 것, 즉 분노는 어떤 면에서는 선과 정의를 구현하는 방편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이 화를 낼 때 그것이 치명적인 문제가 되는 이유는, 그 화가 의로운 것이든 아니든 좀처럼 통제하기 쉽지 않다는 데 있다. 또한 분노는 감정을 넘어 의지와 결합한다. 보복하려는 의지를 담고 있는 분노는 필연적으로 상대방을 적으로 만든다.분노는 상처받은 자의 반응이다. 타인에게 공격받고 상처받을 때 우리는 분노하게 되는데, 특히 무시나 모욕을 당했다는 느낌을 받을 경우 더욱 극심해진다. 분노의 또 다른 이유는 좌절된 욕구다. 또한 교만도 분노의 한 원인이 된다. 교만한 사람일수록 자신의 생각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자존심이 상하고 큰 모독감을 느낀다. 분노가 가져오는 치명적인 결과는 무엇보다 그 파괴성에 있다. 그리고 분노는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한다.분노를 이기는 길은 원수 갚는 일은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을 믿는 것이다. 그리고 용서해야 한다. 이것이 쉽지는 않지만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자녀이자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삶을 살아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분석하고 소통한다면 관계 회복에 도움이 된다. 화가 나는 순간, 바로 표출하는 것이 아니라 냉정하게 생각할 수 있을 때까지 지연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또한 분노는 엄청난 에너지를 발산하므로 이 점을 이용해서 생산적인 힘으로 전환시켜야 한다.4. 나태, 정오의 마귀나태는 단순히 몸이 느슨하고 느린 상태가 아니라, 영혼이 병든 것처럼 의욕과 활력을 잃어 움직이지 않는 상태에 빠진 것으로 이해했다. 나태는 겉으로 드러나기 이전의 보다 깊은 내적 태도와 관련 있다. 이처럼 나태는 의욕이 없어서 무기력해지고 어떤 일에도 감정이 동하지 않아 마침내 손을 놓고 아무것도 행하려 하지 않는 마음의 상태를 가리킨다. 나태가 다른 죄들에 비해 독특한 점은, ‘행하는 죄’가 아니라 ‘행하지 않는 죄’라는 점이다. 어떤 흉악한 악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마땅히 행해야 할 선을 행하지 않는 것이다. 교회와 신학자들이 나태를 문제 삼는 핵심적인 이유는, 이것이 무엇보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계명을 거스르는 심각한 성격을 지녔기 때문이다. 나태란, 하나님께 드려야 할 예배와 섬김과 사랑을 충분히 드리지 않는 것이다. 나태는 영적 메마름, 정신적 고갈, 마음 내키지 않음, 지루함, 기쁨의 부재 등과 같은 특징을 갖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이 우울함과 지루함이다. 또한 나태의 특징 중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은 미루는 성향이다. 게으른 사람은 상대적으로 자기 연민에 잘 빠지는 경향이 있다.나태를 예방하거나 극복하기 위해 요구되는 가장 우선적인 작업은 ‘자신이 왜 태어났고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를 확인하는 것, 즉 삶의 목적을 재수립하거나 재확인하는 것이다. 자신이 어떤 구체적인 일이나 영역에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도록 부름 받았는지 안다면 우리는 삶을 훨씬 더 성실하게 살아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사막 수도사들은 나태를 이기기위한 덕목들을 많이 제시하고 훈련에 힘썼다. 에바그리우스가 제시한 덕목 중 가장 핵심적인 세 가지는 분별과 자기 절제와 순종이다. 카시아누스는 신약 사도들의 가르침과 모범을 근거로 수도사들을 권고했는데, 몸과 마음이 느슨해져 있는 수도사에게는 무엇보다 육체적인 노동이 좋은 치유책이 된다고 말했다. 7세기 수도사 요한 클리마쿠스는 공동생활이야말로 나태를 이기는 핵심적인 방법이라고 보았다. 또한 하나님의 정의가 결국 승리한다는 분명한 믿음과 함께 소망을 가져야 한다. 마지막으로 나태를 극복하는 가장 핵심적인 방법은 사랑하는 마음을 회복하는 것이다.5. 탐욕, 불룩 나온 올챙이 배탐욕은 오늘날 어떤 이데올로기보다도 강력한 힘이다. 왜냐하면 탐욕이야말로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핵심 동력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사회에서 사람들이 가장 큰 행복으로 여기는 것은, 무엇보다 돈을 많이 소유하는 것이다. 탐욕이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맹위를 떨치는 악이라고 해서 비단 현대 사회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예전에는 탐욕이 얼굴을 숨긴 채 활동했다면, 오늘날에는 아예 드러내 놓고 활개를 치고 있을 뿐이다.재물을 탐하는 사람에게 재물은 곧 하나님과 동일한 힘을 지니기 때문에 탐욕은 곧 우상숭배다. 소유가 많아지면 하나님을 무시하고 재물에 의지하여 살게 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물욕이 강한 사람은 소유로 자신을 규정하고 또 그와 동일한 관점으로 타인을 대하고 판단하는 성향을 보인다. 탐욕을 가진 사람은 이웃에 대해 무정하고 무관심하게 된다. 탐욕을 일으키는 근본적인 원인으로 사막 수도사들이 제시하는 것은, 자신을 지키고 삶을 안전하게 유지하려는 마음과 내적 결핍이다.탐욕을 물리치는 구체적인 방법은 자족하며 단순하게 사는 것이다. 삶의 규모를 죽이고 단순화하는 것이다. 삶을 이렇게 단순하게 살아가는 것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더 나누기 위함이다. 또한 나눔은 버리는 행위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하나님 앞에 쌓는 행위이다.
    독후감/창작| 2015.04.17| 4페이지| 1,000원| 조회(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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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존 머레이의 구속 기독론 부분 서평
    존 머레이의 구속 기독론 부분 서평
    머레이의 [구속], 기독론 부분을 읽고(~118p)존 머레이는 1966년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은퇴할때까지 조직신학 교수로 지내면서 개혁신학의 기초를 놓았고, 자유주의와 인본주의적 세속 사상들로부터 성경적 진리를 지키며 30여 년간 개혁신학의 대표적인 조직신학자로서 자리매김했다.그리스도의 죽음은 우리의 대속을 위하여 반드시 필요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무한하신 지혜로 보셨을 때, 인간의 속죄에 있어서 자신의 본성과 대치되지 않는 가장 적합하고도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정하신 그 방법 외에 다른 방법은 가능성조차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그리스도의 죽음은 자신의 몸을 드려 우리를 구원하신 대속의 죽음이셨다. 그것은 흔히 말하듯 레위기에 나오는 희생 제사의 실체이다. 즉 레위기의 제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제사의 모형이었으며 그것은 예언으로서의 기능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오히려 그것을 본 뜬 것이라는 말이 더 합당하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건이 하나님께서 인간의 형상으로 오셨다는 의미가 되기도 하지만 인간이 하나님, 즉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 떠 만들어졌다는 사실과 같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흘림의 제사를 드리심의 모형으로 레위기의 제사를 명하신 것이며 그것을 인간의 방식으로 맞추어주신 것이다. 이것은 시간 역시 하나님의 창조물이며 하나님의 작정은 영원 전에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근거하여 역시간적 오류를 피할 수 있다.예수님께서는 이 땅에서 모든 율법을 만족시키셨고 죄가 없으셨기에 우리의 온전한 제물이 되실 수 있었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종하심으로써 자신의 사역을 온전히 이루셨다. 이것은 기계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능력을 제한하심까지 사랑하시고 고난당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볼 수 있는 것이다.이러한 아가페적 사랑은 하나님 자신의 공의로운 진노를 만족시키시고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회복시킬 수 있는 근거를 제공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는 이러한 사역의 불가능을 하루 빨리 깨닫고 하나님 앞에 나아와 자신을 의탁해야 하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이 하나님에 대한 적개심을 가진 것은 죄로 말미암아 스스로가 선택한 결과이지만 그 적개심을 없애는 것은 인간의 사역으로서는 불가능함을 역설한다.그리스도의 사역으로 인간은 타락으로 인한 죄책과 죄의 권세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단번에 드리신 그리스도의 속죄로 그 공로를 의지하고 믿는 자는 지금까지 지은 모든 죄와 앞으로 지을 모든 죄까지도 사함 받는 것이다. 또한 죄의 권세에서도 놓임을 얻게 되었고 최후 승리를 확신할 수 있게 되었다. 때문에 우리의 연약함으로 죄 앞에 넘어질 때에도 일어날 근거와 책임을 동시에 알 수 있다. 우리가 넘어질 때에 절망하지 않고 다시 일어날 힘을 줌과 동시에 신자가 거룩하게 되는 토대를 제공함으로써 삶에서의 성화를 끊임없이 촉구하고 독려하게 하는 근거가 된다. 때문에 인간의 나약함을 핑계로 죄를 짓는 일들은 없어야 할 것이며 정말 죄에서의 자유됨을 믿는다면 그리스도 보혈의 능력을 날마다 의지하며 닮아가야 한다.
    독후감/창작| 2015.04.17| 2페이지| 1,000원| 조회(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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