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해의 함성은 끝나지 않았다.백범 김구선생이라 함은 그저 일제치하에 있던 조국을 위해 단순히 독립운동을 한 사람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단순한 독립 운동가는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확고한 사상을 가지고 독립운동을 하고 국민을 위해 애국계몽운동을 하였으며 한사람의 정치가였다. 그는 오로지 조국을 위하여 국민을 위하여 산 위인이 였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일제의 잔인한 침약, 약탈에 소름이 돋았고, 백범의 올 바른 것이 무엇인지 아는 자기희생정신에 눈물이 났으며, 현재의 평안하고도 자기만을 생각하고 사는 삶과 행동에 많은 충격을 받고 반성을 하게 되었다.백범이 태어나고 자라고 죽은 시기는 우리나라가 혼란한 시기였다. 백범이 태어난 시기는 조선왕조 500년의 망해가는 말기시대로 이 시기에는 안동 김씨와 풍양 조씨의 세도정치로 인하여 국민들을 날로 심한 어려움을 격고 있었던 때 이다. 백범은 상놈으로 태어나 온갖 서러움을 받고 살았지만, 백범의 부모님들은 올바른 사람으로 백범을 올바른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하였다. 백범을 유일한 신분상승의 기회인 과거시험에 도전한다. 하지만 매관매직이 횡횡하던 시기에 낙방하고 만다. 백범의 낙방은 당연한 것이 였다. 과거시험에서 낙방한 백범은 그 당시의 매관매직행위에 울분을 품고 혁명을 꿈꾸고, 당시 개혁사상과 혁명사상으로 백성의 메시아 역할을 한 동학에 들어가 황해도 해주라는 직책을 맞게 된다. 이에 19세의 나이에 황해도 해주성의 양동작전을 전개하였으나 당시 정규군을 일길 수는 없었다. 이런 경험이 나중에 독립운동전개에서 큰 도움이 된다. 이후에도 백범은 동학혁명과 의병운동에 참가하였으나 많은 실패를 경험한다.이에 백범은 무력 항쟁의 한계성을 깨닫고 고향에서 백성들을 위해여 사립학교를 설립하고 애국 계몽 운동을 한다. 이 후 단발령이 선포되고 백범은 중국으로 길을 가던 중 안악에서 한 일본인을 만나게 된다. 백범은 이 일본인을 조국에 해되는 인물이라 생각하고 단번에 해치운 후 소지품에서 나온 돈으로 가난한 자를 돕고 다시 길을 떠난다. 3개월 쯤 지난 후에 백범은 체포되었고, 일제가 조작한 105인 사건에도 휘말리고 만다. 이런 일을 통해 일본은 협상의 대상이아니라 배척의 대상이라는 것을 확신한다. 수감 중에 백범은 서대문형무소에서 온갖 고문을 경험한다. 일제의고문은 참 혹한 것이고 잔인하고 백범을 심문하는데 사람의 인격이라고는 존재하지 않을 고문을 자행하였다. 이후 신문을 통해 자신의 사형선고 소식을 들으나 백범은 이에 동요하지 않았고, 기적은 일어났다.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진 백범은 탈옥한다.을사조약으로 우리나라의 주권을 빼앗겨 가는 과정에서 백범은 조국의 위기를 외면하지 않고 나라를 위하여 계속 힘써왔다. 하지만 일제는 한일협약을 통해 실권을 장악하고 고종을 퇴위시키고, 신문법을 통해 언론의 자유를 통지하고 사립학교법을 제정하여 애국 계몽 운동을 차단하였다. 이 후에도 출판물의 사전 검열을 하고 경찰권을 장악하는 등의 행위로 조국의 백성들은 점점 힘든 생활을 하게 되었다. 일제의 무파별적 통치는 계속되고 있었다.1919년 3월 1일 3.1운동이 발발하였다. 이에 백범은 청운에 뜻을 품고 국내에서 독립운동의 한계성을 깨닫고 상해로 망명한다. 백범은 1945년 광복까지 조국의 땅을 밟아 보지 못 한다. 하지만 상해에서 라고 해서 독립운동이 자유롭거나 쉬운 것은 아니다. 인재난 재정난으로 독립운동이 수령에 빠져있을 때 백범은 그 옛날의 동학운동과 의병운동의 경험으로 일제의 집요한 첩보행위와 체포공작을 무산시키며 특무공작을 강행한다. 백범은 어려운 시기에 “한인애국단”을 창설하는데 한인애국단의 의거로는 이봉창의사와 윤봉길의사를 들 수 있다.윤봉길의사는 도시락폭탄으로 우리에게도 유명 한 인물이다. 윤봉길 의사는 자신의 목숨을 버릴 각오를 하고 백범에게 찾아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요청했고 마침 이런 인재가 필요했던 백범은 윤봉길의사와 함께 홍구공원 사건을 계획 일행에 옮겼다. 홍구공원 사건은 천왕생일의 축제에 일어난 사건으로 윤봉길의사는 일본의 국가가 끝나기 전에 도시락과 물통 모양의 폭탄을 던지고 대한독립만세를 목이 터져라 외쳤다. 한 인물이 대한의 자주독립을 위하며 목숨을 바친 것이다. 윤봉길 의사는 홍구공원 사건 이전에 생명을 초월했다고 한다. 이봉창 의사는 사전 폭탄실험을 하지 못하여 비록 실패했지만, 그의 의거도 대단한 것이 였다.이후 재국주의 일본은 무차별적으로 전쟁을 이르켰고, 군사력의 한계에 다다랐을 때 쯤 태편양 전쟁이 일어나 일본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 폭탄을 맞고 무조건적 항복을 하는데, 백범은 이러한 광복의 참된 의미를 알고 있었다. 외세의 도움을 받은 완전한 자주 독립이 아닌 것이다. 백범일지에서도 알 수 있듯이 백범의 소원은 대한민국의 자주 독립이 었다.해방 이후에도 백범선생은 어떤 것이 옳은지를 알고 조국의 발언권강화와 자주권행사를 위해여 힘썼지만, 미국과 소련이 합의한 5년간 신탁통치를 하였고 백범은 이를 반대하는 반탁운동을 하였다. 백범은 신탁통치 또한 국가의 완전한 자주가 없다 생각하였고 완전한 독립의 의미가 없었다. 또한 미국과 소련의 신탁통치는 우리민족의 동족상잔의 아픔을 불러올 것이라고 생각하며 통일운동을 하였다. 백범은 조국의 위기를 외면하지 않고 극복하려고 언제나 힘써온 사람이 였다. 이에 통일한국을 위하여 북한과 남북협상을 하였지만 백범은 공산당의 독제에 불신하고 마르크스주의로 통일이 된다면 민족의 큰 불행이라고 생각하였다.
반역의 책-옹정제와 사상통제-웨중치는 공식적인 행사를 마치고 가는 길에 ‘장씨성을 가진 밝은 사람’에게 의문의 편지를 받게 되는데 웨중치는 편지 겉에 써져있는 글인 ‘천리원수’를 보고 그 편지가 역모를 도모하는 것임을 짐작한다. 웨중치의 짐작대로 그 편지는 황제의 극악무도함과 황제가 비도덕적이라는 비판, 그리고 웨중치가 동의 할 경우에 6개의 성이 반역을 할 것이라는 것이라는 내용의 역모를 도모하는 편지였다. 편지를 본 웨중치는 우선 장씨를 잡아드린다.웨중치라는 인물은 청나라의 총독으로 한족출신이다. 또한 그의 조상은 웨페이 장군으로 송나라 때의 야만적인 정복자로부터 빼앗긴 화베이지방을 되찾기 위해 힘을 쓴 사람이다. 그래서 웨중치에게는 반역을 도모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의심을 받고 있다. 예전에도 반역자로 의심을 받아 황제의 철저한 조사 끝에 그 오해를 풀 수 있었다.웨중치가 편지를 받는 것을 여러 사람이 보았음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장씨를 심문함과 동시에 반역의 편지를 받은 것이 황제의 귀에 들어갈 것을 걱정하여 황제에게 주접을 올린다. 주접이란 황제와 고위관료들 간의 직접적인 의사소통수단이 였다. 아무리 사소한 사건이라 하더라도 청조에 위협이 될 소지가 있는 행동을 하나라도 숨기지 않아야 목숨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접을 통하여 웨중치는 지금 현재의 문제 상황에 대해 글을 올린다. 처음에 올린 주접에는 반역의 편지내용과 장씨를 잡아드린 사실, 또한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의 내용을 올린다. 황제는 이런 주접을 받고 답장을 하는데 그것이 주비라는 것으로 주접의 행간에 붉은 글씨로 답을 한다. 처음 웨중치가 올린 주접에 대한 답으로 황제는 사건의 해결방안-궁금한 사실을 발설 할 때까지 편지심부름꾼을 느긋하게 대하라는 점, 다른 반역의 도모자가 장씨를 염탐하러 올 것을 예상하여 장씨를 감시하는 점, 웨중치가 편지심부름꾼과 허심탄회하게 생각을 나누는 것 처럼 위장-을 제시하는데 이미 웨중치는 사건을 해결하고 있었다.웨중치는 장씨를 잡아들인 장씨는 처음 편지를 보며 예사로운 사건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한다. 이후 반역의 도모자를 알게된 황제는 사건을 은밀하고 철저하게 조사를 한다. 황제는 장시의 스승인 쩡찡의 편지와 그에 대한 반박을 인쇄한다. 그리고 베이징의 모든 관리들을 모아 문서를 낭독한다.황제가 반역 도모자를 잡아드리기 위해 난징성의 판스이에게 시켜, 처씨형제와 순융커를 잡아드리게 하고, 저장성의 리웨이에게 옌홍쿠이와 선짜이관을 잡아드리고, 뤼류량과 그 집안의 사란들이 어느 정도 장시에게 영향을 주었는지, 뤼류량의 가문이 중국전체에 반청사상으로 얼마나 영향을 끼쳤는지 조사하게 한다.(저장성은 황제가 주시하고 있던 도시로 동생들이 있던 도시이자, 왕권침탈의 가능성이 있던 도시였다.) 후난 성에서는 부도통 하이란이 옹정제가 내린 정기와 반역자의 명단을 갖고 장시의 가족을 체포하고, 쩡징을 잡아드리기 위해 후난 성으로 간다.판스이는 난징성과 화이안에서 잡아들인 처씨형제와 쑨융커를 심문하는데 처씨형제는 장씨를 어머니의 생신 때 온 사람으로 손님대접을 한 사람일 뿐이라 한다. 그리고 처씨형제의 가정교사인 순융커는 장씨를 수준이 낮은 사람으로 잘 모른다고 한다. 그리고 처씨형제의 집을 수색하여 나온 글 중에서 새해를 맞이하여 쓴다고 하여 치란은 하늘이 정한다는 글이 있었는데 이글은 해석하기에 따라서 황제를 무시하는 글이었다.한편 후난성에서는 장시의 가족과 쩡징을 잡아드려 심문하기 시작한다. 심문의 초기에는 황제가 항이루를 보내 심문을 도왔음에도 불구하고 후난성의 심문관들은 쩡징이 웨중치에게 보낸 편지와 장시를 위해 쓴 두권의 책에 담긴 패역무도한 이야기의 출처를 밝히지 못한다. 후난성의 심문관들이 강도 높은 심문을 진행하는 동안 저장성과 베이징의 관료들은 뤼류량과 제자들의 모든 저작을 체계적으로 낱낱이 조사하여 황제에게 보고하였다. 황제는 뤼류량의 일기와 편지를 읽으면 읽을수록 분노가 치밀었다. 반세기 전 뤼류량의 편지와 일기에는 만주족을 비꼬고, 지금의 황제가 세상을 다스리면 세상이 평탄치 못할 것이라 하였고,있던 죄인들은 황제의 명에 따라 베이징에 수송되는데 그 행렬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사람들의 행렬이었다.황제는 쩡징이 편지에 쓴 내용을 어디에서부터 들었는지에 대해 의문을 가졌는데, 리웨이가 이를 조사하였다. 그리고 쩡징은 이 내용을 1706년 과거에서 진사학위를 취득한 왕수하는 자에게서 들었다고 하지만 1706년에 왕수하는 자가 진사학위를 취득한 사실이 없었다. 이후 황제에 대한 소문은 베이징에서 저장성에 이르는 넓은 지역으로 퍼져갔으며, 중국의 영토가 끝나는 곳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소문도 잦아들었다. 이 사실로 황제가 깨달은 바는 한가롭게 오고간 대화를 잘 못 듣거나 혹은 누군가가 악의를 가지고 의도적으로 유언비어를 퍼뜨리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악의적인 소문은 전달통로가 차단되지 않을 때는 끊임없이 퍼져간다는 것이었다. 옹정제는 이런 봉황의 노래를 어떻게 진정시킬지에 대한 고민에 빠졌다. 옹정제는 후난 성의 역모자들과 뤼류량의 추종자들이 명조의 황제들을 중국의 도덕적 모범으로 치켜세우기로 결심한 듯한 상황에서 청조의 역사속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사실에 대해 정확한 설명을 유포하고 악의적인 소문들을 잠재우기 위해 명대의 전례를 적절히 이용하려 했다. 이후 황제는 뤼류량과 그 추종자에 대해 어떤 처벌을 내려야 하는지에 대해 간언하라는 요청을 하였지만 아무도 섣불리 의견을 제시하지 않았다. 계속해서 황제는 소문의 출처를 밝히기 위해 추적하였는데, 소문의 진상은 밝혀지지 않고,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이 산적해 있었다. 황제는 조용히 그리고 끈질기게 쩡징을 설득해가고 있었다.쩡징을 폄하하거나 그가 반역을 도모하게 된 경로를 하나씩 추적하는 것도 결코 상책이 아닌 것 같았다. 가장 좋은 방법은 쩡징 스스로 자신의 잘못을 비판하게 하는 것이다. 쩡징을 황제의 편으로 끌여들여 대역 죄인에서 기꺼이 개과천선하여 이번에는 황제의 대변자로 변신시키는 것이다. 처벌이 아닌 교화가 쩡징이 죗값을 치르기 위해 걸어가야 할 길이었다. 옹정제는 자기가 관대하고 인정 많다는 것를 통해 쩡징은 지극히 사소한 일에 세밀한 주의를 기울이는 옹정제의 정성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쩡징은 옹정제의 행동이 고대 성군들의 행동과 부합할 뿐 아니라 비범함은 선제 강희제에 비견된다고 썼다. 마침내 쩡징은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고, 황제의 인품을 헐뜯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알게 되었으며, 뤼류량과 같은 자들의 패역무도함을 깊이 통찰하게 되었다. 쩡징은 그의 행위에 대해 세 가지 변명을 했다. 그가 궁벽한 시골에서 자란 점, 황제를 배신한 형제들과 측근들이 퍼트린 소문에 마음의 평정을 잃은 점, 뤼류량의 저작이 그의 배우지 못한 마음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신하들에게는 쩡징이 반성했다는 사실에 대해 큰 감명을 받지 못 했다. 법은 법일 뿐 관용을 베푼다는 것은 전혀 고려의 대상이 될 수 없었고, 황제의 견해와 반대된다고 하더라도 관료들은 쩡징을 용서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후 쩡징은 자성하며 『귀인설』이라는 책을 쓰게 되고 황제는 쩡징과의 대화와 문서를 바탕으로 『대의각미록』을 편찬하게 된다. 한편 탕쑨가오는 황제의 쩡징 용서에 대한 반대를 하며 뤼류량의 행위를 역사적으로 정당화하려했다.『대의각미록』은 규모가 방대한데 간행기간이 넉넉하지 못했으므로 옹정제는 지난해 반포했던 상유와 역모자들을 심문하는데 이용했던 문서들을 자료로 많이 활용하였다. 『대의각미록』권1의 대부분은 쩡징의 편지를 반박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졌고, 군1의 두 번째 부분 말미에는 쩡징의 목소리가 덤겨 있었다. 『대의각미록』은 황제의 독백이 아니라 쩡징과 길게 토론하는 형식을 띠게 했다. 『대의각미록』의 권3에는 방향을 바꾸어 쩡징의 죄에 합당한 처벌이 무엇인지를 논의하는 주접과 주비를 수록하였다. 그리고 권4에는 사건을 연대기적으로 살펴보면서 뤼류량과 그의 문인 옌훙쿠이의 저작에 포함된 반청사상을 집중적으로 언급했다. 그리고 『대의각미록』의 마지막부분에는 쩡징이 잘못을 뉘우치며 조심스럽게 진술한 귀인설을 수록하였다. 이런 『대의각미록』은 한여름까지는 후난에서 가장의각미록』이 나오니 백성들은 쩡징을 물에 처넣어 죽이라고 할 정도로 반발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그에 비해 『대의각미록』을 읽고서 자기가 왕수에게 속았다거나 그 내용에 대해 교화 받았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어떤 이는 책에서 불쾌한 사실들을 찾아낼 뿐 아니라 자신에게 위태롭고 수치스러운 내용도 발견했다고 말했다. 특히 웨중치의 경우에는 쩡징의 역모의 전말을 드러내기 위해 정시에게 거짓으로 동의하는 척 했는데, 그러한 모습이 『대의각미록』에 충분한 설명 없이 기록됨으로 인해 자신이 불충한 사람으로 여겨지게 되었다고 했다. 덧붙여 웨중치는 전쟁에서 여러 번 패하게 되자 황제의 신임을 잃고 죽음에 이르기 까지 한다.『대의각미록』에는 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등장했다. 그런데 이 책을 편집할 당시에는 서로다른 대목에서 불쑥불쑥 거명되는 사람들에게 미칠 결과를 아무도 배려하지 않았다. 그러나 『대의각미록』은 우연히 이름이 언급된 사람들의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렸다. 여러 방식으로 『대의각미록』의 영향을 받은 일반백성들의 반응도 직접 거명된 자들이 보여준 반응 못지않게 사회적인 문제로 떠올랐다.가오교유는 이미죽은 뤼류량을 처벌하고 청찡을 용서한 것에 대한 비판을 하였고 시를 지어 방을 붙이는 데 이런 가오의 작전은 완벽하게 성공하였다. 1731년 늦봄에 접어들자 황제는 『대의각미록』을 간행하고 생감층의 견해를 제출토록 하여 분위기를 쇄신해 보려는 자신의 야심찬 시도가 아무런 공간대도 형성하지 못했다는 결정적인 증거를 갖게 되었다.이후 옹정제는 두 조의 특별대책반을 조직하였다. 한 조는 산시성 내지의 주현으로 가서 황제의 상유를 전파하고 교화하는 임무를 수행하게 한다. 나머지 한 조는 유교경전에 주석을 달거나 뜻을 풀이한 뤼류량의 저작을 체계적이고 철저하게 비판하는 임부를 맡긴다. 그러나 『대의각미록』이 일반백성에게 끼친 영향력은 관료들이 인식하는 것과 달리 예측불가능한 것이었다. 쩡징 사건에 대한 또 다른 반향들이 끓이지 않고 중국의 다른 지역에서 울려 펴졌다. 이
I. 의의 버제스 모형의 기본사고는 도시의 성장 내지 확대과정이 중심부로부터 바깥쪽으로 기능 지역들이 동심원 모양으로 배열되면서 이루어진다. 이 모형은 도시내부의 공간구조가 단순히 개성을 달리하는 지대들이 동심원으로 배열된다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이 모델의 중요한 사고는 각 지대의 기능이 그 외측 지대에 침입해가면서 동심원의 천이과정을 거친다는 것이다. II. 동심원모형1. 중심업무지역(CBD) 중심업무지역은 상업활동, 사회생활과 시민생활의 초점이 되는 도심지역으로 그 심장부에는 도심 소매업무지구가 있다. 금융, 백화점, 호텔, 은행, 극장, 사무실 등 비거주기능이 탁월한 지역으로 시카고에서는 일명 시카고 루프(Chicago loop)라고도 한다.2. 점이지대점이지대는 일반적으로 도심을 둘러싸고 있으며 여기에는 일부 업무지고와 소규모 공장, 슬럼, 이민해옴 소수민족 사회가 혼재되어 있다. 점이지대라는 것은 안쪽으 중심업무지구로부터 업무나 공업기능이 침입해옴에 따라 전에는 주거지역이었던 곳이 상업지역으로 변해가는 경향을 뜻한다.3. 저소득 근로자 주거지역주거지역이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것은 제 3 지대는 점이지대(황폐한 지대)는 벗어났지만 일터에 근접해 살아야 하는 저소득층 공장근로자들이 주로 거주한다.4. 중산층 주거지역 중산층 주거지역은 제 3 지대 보다 소득수준이 높은 중산층들이 거주하는 고급아파트나 단독주택들로 구성된다. 이 지대의 교통요지에는 위성도심라고 불리는 국지적 업무중심지역이 형성되어 도시 전역에서 매력적인 장소가 된다. 5. 통근자지대 도시외곽에 있는 통근자지대는 도시내부와 그림벨트에 의해 분리되어 있다. 흔히 교외지역이라고 불리는 이 지대는 도시로 통근하는 사람들이 많이 거주하지만 여전히 전원적인 풍경을 가지고 있으며 위성도시로 발달한다.
우리 헌법에서의 환경권- 목 차 -Ⅰ. 서Ⅱ. 환경권의 의의Ⅲ. 환경권의 내용Ⅳ. 결Ⅰ. 서문명이 발달하고 사람들의 삶의 질이 향상되면서 현대사회는 환경권의 중요성이 한 층 더 중요해지고 있다. 이를 우리나라에서는 법적으로 보호하고 있으며, 헌법에도 규정을 두고 있다. 이런 환경권에 대해서 알아보겠다.Ⅱ. 환경권의 의의1. 헌법 제 35 조제 1 항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와 국민은 환경보전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제 2 항 환경권의 내용과 행사에 관하여는 법률로 정한다.제 3 항 국가는 주택개발정책 등을 통하여 모든 국민이 쾌적한 주거생활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2. 개념환경권이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공해 없는 생활을 누릴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이때 건강이란 육체적 건강과 정신적 건강을 모두 포함한다. 이런 환경권의 개념에 관하여는 좁은 의미로써 오염되거나 불결한 환경으로 말미암아 건강을 훼손당하거나 훼손당할 위험에 놓인 자가 오염되거나 불결한 환경에 대하여 책임이 있는 공권력이나 제3자에 대하여 그 원인을 예방 도는 배제하여 주도록 요구할 수 있는 권리라고 보는 견해와 환경권을 넓은 의미로 파악하여 청정한 환경에서 쾌적한 생활을 누릴 수 있는 권리까지도 포함한다는 견해가 있다. 이러한 환경권은 모든 기본권의 전제가 되는 기본권이다.3. 주체환경권의 주체는 모든 자연인과 국가는 물론 미래세대의 기본권이기도 하므로 미래인도 포함된다.Ⅲ. 환경권의 내용1. 대국가적 방어권 (침해배제권)대국가적 방어권이라 함은 국가에 의하여 환경권이 침해된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국민은 국가에 대하여 환경침해의 배제를 청구 할 수 있다. 이런 권리는 자유권적 측면에서 국가 활동으로 인한 공해의 배제와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이다.2. 공해배제청구권공해배제청구권이라 함은 국가 이외의 사인 등의 행위로 말미암아 발생하는 공해나 환경오염을 국가가 방지하고 배제하여 주도록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이러한 공해배제청구권은 국가가 환경보전의무를 부담하는 결과 당연히 인정된다.3. 생활환경조성청구권생활환경조성청구권이란 국가에 대하여 건강하고 쾌적한 생활환경을 조성하고 보전해 줄 것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4. 쾌적한 주거생활권헌법 제35조 제3항은 쾌적한 주거생활권을 보장하고 있는 바, 이는 인간다움 생활에 필수적인 쾌적한 주거생활의 확보를 위하여 국가에 대하여 일정한 배려와 급부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국민은 국가에 대하여 쾌적한 주거생활에 관한 권리를 가지며, 국가는 적절한 공공주택, 영구임대주택 등을 제공할 의무가 있다.
lean on me1. 줄거리한 선생님 미국 동부 어느 마을에 조. 클라크는 고등학교의 교사였다. 그는 열의가 강한 선생님이었다. 하지만 그를 곱지 않게 보는 다른 선생님들과 이사회는 그를 초등학교에 보내는 조건으로 다른 선생님의 월급을 올려주고 초등학교로 보낸다. 그가 초등학교로 전근 간 20년 후 고등학교는 학생들은 마약밀매를 하고, 교내에서 담배를 피우고, 폭력이 성행하는 학교로 점점 타락되어 갔다. 그런데 국회의원을 하려는 이사가 선거일을 앞두고 자기가 맡은 고등학교가 주에서 실시하는 기초학력테스트를 통과한 학생이 75%가 되어야 사립학교를 유지할 수 있는 문제가 발생한다. 그런데 동부고교는 기초학력을 통과하는 학생이 33% 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아이들을 75%가 기초학력테스틀 통과할 수 있도록 만들 방법을 강구하는데 선생님들은 클라크만이 이 일을 할 수 있다고 보고, 그를 다시 고등학교로 불러 온다. 그는 동부 고교의 교장선생님으로 취임하고, 체제를 정비하기 시작한다.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마약을 하거나 마약을 파는 학생을 퇴학시키는 것이다. 그는 경비원을 동원하여 그 학생들을 다른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강제 퇴학시킨다. 그리고 다른 학생에게 이런 이 있으면 퇴학시키겠다고 한다. 또한 그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이들이 교가를 부르는 것이다. 퇴학을 시키는 학생들을 강당에 세워놓고 시킨 것도 교가를 부르게 한 것이다.이후 셈이라는 학생이 복학을 요청하는데 마약을 다시 하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그를 다시 받아들인다. 그리고 이후 퇴학당한 학생이 찾아와서 식당에서 싸움이 일어나는데 그것을 교장선생님이 말린 후, 그 학생이 어떻게 학교에 들어왔는지 질책한 후 학교 안에서 문을 열어주면 마약상이 들어 올 수 있다는 생각아래 학교를 쇠사슬로 봉쇄한다. 이런 과정에서 학부모와 사람들에게는 교장선생님과의 오해가 쌓여간다. 어느 학부모가 소방법 위반이라고 소방처장과 함께 와서 쇠사슬을 풀게 요구하고, 이를 못 들어오게 막자, 그 학부모는 이사장을 찾아가서 아는 사람들이 많은데 당신의 지지를 반대하는 운동을 하겠다고 이야기 하고, 교장을 쫓아낼 것을 요구한다. 정치를 하는 이사는 기초학력고사가 있을 때까지만 교장을 이용하려고 하고, 소방처장에게는 학력고사 후에 교장을 채포하라고 한다.이후 점점 교장선생님과 학생들 사이에는 신뢰가 형성되기 시작한다. 교장선생님은 학생에게 “문제가 있으면 내방으로 오라”고 하며 상담한다. 그리고 문제가 있으면 내방으로 오라. 문제가 있는 학생들에게 일으켜서 교가를 부르게 한다. 교가를 못 부르면 3일 동안 교가를 가르친다. 그리고 음악선생님 학생들에게 교과를 가르치라고 하니까 모차르트 같은 노래만 가르치자 음악교사는 교과보다 모차르트가 더 중요하다고 한다. 교사가 수긍하지 않자 음악선생님을 자른다. 쌤이라는 아이가 다른 아이들과 노래를 부르며 지나간다. 쌤에게 교가를 불러보게 한다. 교가를 6명이 함께 새롭게 편곡해서 부른다. 누가 이렇게 가르쳤냐고 하니 새로운 음악 선생님이라고 하였다. 여자 음악선생이 지루한 교가를 새롭게 만들어서 매우 잘했다고 칭찬한다. 클라크는 형식과 틀을 지키는 교육을 한다. 그러면서 아이들의 어려움을 해결해주고 학생들도 교장선생님을 믿고 공부를 한다. 이후 기초학력고사가 있고, 클라크는 소방법 위반으로 체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