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예술의 종말과 현대 예술과거부터 많은 학자들은 예술에 대한 정의를 내리기 위해 노력해왔다. 예술의 기원과 형식, 목적과 같은 기준으로 예술에 대한 정의가 분분하였다. 예술을 사물이나 존재에 대한 모방이라고 여기기도 하였고 즐거움을 주는 도구라고도 생각하기도 했다. 인간을 교화하려는 산물로 여겨지기도 했으며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방법이라고도 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정의는 한부분이 만족되는가 하면 어김없이 다른 부분에서 비판의 여지를 남기곤 했다. 대부분의 예술에 대한 정의는 어느 한 기준을 강조한 나머지 그와 대응하는 속성은 예술에 포함하지 못하는 정의를 내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러 사람들이 내린 예술에 대한 정의는 결국 예술의 일부분만을 포함하여 단지 예술에 대한 정의를 시도하는데 그치는 결과를 가져왔다. ‘예술이란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정의는 여전히 하나로 규정되지 못했다.톨스토이의 저서 ‘예술이란 무엇인가’에서는 이러한 다양한 예술관에 대해서 서술하면서 톨스토이자신의 예술관에 대한 주장을 펼친다. 그의 예술관에는 다분히 도덕적인 가치가 포함되어 있는데 이에 따라 예술을 종교적인 기능과 연결시키며 예술의 최대의 목적을 ‘선’을 추구하는데 둔다.) 다른 사람들의 예술관에 대해 비판하는 톨스토이의 의견은 꽤나 동감이 가지만 그의 예술관 자체에도 여러 가지 비판할 요소가 존재한다. 특히 쾌락을 추구하는 예술이 진정한 예술이 될 수 없다고 정의하는 것은 쉽게 동의하기 어렵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예술이 최대한의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라는 주장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주장 또한 너무나 편협하기 때문이다. 다만 향락적이거나 외설스러움을 나타내는 미술작품이 도덕적인 면을 갖지 못했다고 해서 예술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누군가 외설적인 부분에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고, 누군가는 외설적인 작품에서도 쾌락적인 즐거움 외에 또 다른 방향의 의미와 가치를 발견할 수도 있다. 예술을 도덕적 목표나 진리 관에 종속시키는 것은 너무 제한적인 예술관이다. 예술이 선을 추구하고 사람들을 교화하는 기능은 물론 예술의 중요한 기능이 될 수 있겠지만 이를 예술의 근본적인 요소로 정의하기엔 무리가 따른다.그렇다면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이 존재하는 것일까. 현대의 예술은 ‘무엇’이라는 정의가 불가능 하다. 과거의 예술 또한 예술의 정의와 기준에 대한 논란이 분분하였지만 이러한 정의는 현대 예술에게 있어 더욱 적용하기 힘든 일이다. 현대 예술은 무엇이든, 어떤 것이든 가능한 지점에 놓여있다. 예술의 표현과 방법, 그리고 그 대상에도 제한이 없고 예술의 분야간의 경계도 사라지고 있다. 이렇듯 현대예술이 다양하게 변화하고 복잡하게 결합하면서 정의 자체도 불가능할 뿐더러 장르와 ‘~주의‘와 같은 학파도 나누기 힘들어 졌다. 이렇듯 현대예술에서 그 정의가 불가능 한 것은 흔히 이야기 하듯 현대의 예술작품이 따로 해석을 요구해야 할만큼 의미하는 바가 난해해졌기 때문만 아니라 과거 예술의 경계을 빈번히 무너뜨리면서 예술의 범위가 모호해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과거의 기준과 관례들은 현대예술에 의해 파격적으로 파괴되기 일쑤이며, 이에 따라 ’이것이 과연 예술이라고 할 수 있을까? ‘ 혹은 ’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의문을 불러일으키는 작품들이 출현하고 있다. 아서 단토는 이와 같은 상황을 들어서 ’예술의 종말‘이라고 하였는데 이는 예술가나 예술작품이 사라진다는 의미의 ’종말‘ 이라는 의미로 서술한 것은 아니다. 이같은 그의 주장이 뜻하는 바는 예술 자체의 사라짐이 아니라 과거 서양미술의 형태와 그 기준이 더 이상 유지될 수 없으며 고적적 의미의 예술이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이는 다시 이야기 하면 고전적 잣대로 예술과 비예술을 구분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떤 면에서 보면 오히려 현대 예술은 과거의 관습이나 보편적인 틀에 머무르는 것을 비예술이라 여기는 듯하다. 따라서 현대에 와서 창의성과 이에 따른 새로움의 추구는 없어서는 안 되는 예술작품의 조건이 되었는데 이러한 현상에 의해 더더욱 기존예술의 파괴와 함께 예술의 범위가 변화하였다.현대 예술이 과거의 기준으로 예술이라 정의되기 어려운 이유 중에 하나로 예술의 표현대상의 다변화를 들 수 있다. 과거의 예술의 대상은 대부분 아름다운 것 이었다. 여기서 아름다운 것이란 보편적인 ‘미의식’에 준하여 정의할 수 있는데, 꽃이나 풍경, 미인과 같이 누구나 보면 즐거워지는, 단순히 기분 좋은 느낌과 감각에 해당한다. 과거의 예술가들은 이러한 아름다운 감정을 그려내거나 어떤 대상이 ‘무엇이다‘라는 인식의 차원에서 예술을 행했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작품이 초상화나 풍경화, 정물화와 같이 사실그대로를 아름답게 그리는 것에 치중했다. 그러나 현대 예술의 표현 대상은 이전의 ‘아름다움’에 국한되지 않는다. 현대예술은 죽음과 공포를 표현하고 범죄와 욕망을 그려내고 인간의 추잡한 부분과 세상의 더러움을 표현한다. 물론 이전의 예술작품에서도 인간의 슬픔과 고통을 다루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는 아이를 잃은 부모의 슬픈 모습이나 미모의 여인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과 같이 슬픔을 표현하되 아름다운 그림으로, 혹은 아름다운 이야기로 그려낸 것이다. 현대의 예술에서는 슬픔과 고통 등의 감정을 포장하지 않는다. 슬픔과 공포를 느끼는 그림의 얼굴은 끔찍하게 일그러져 있으며 욕망을 표현한 그림은 아름다운 남녀의 나체가 아닌 더러움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또한 현대의 예술은 현대문명이나 특정 문화 심지어 예술자체를 비판하기도 한다. 프랭크 스텔라의 ‘아마벨’은 비행기의 파편 약 30톤으로 만들어 졌는데 이작품의 이름인 ‘아마벨’은 비행기사고로 인해 죽은 한 소녀의 이름을 딴 것이다. 스텔라는 이 작품을 통해 현대 문명과 기술발전에 방향에 대해 경고를 하였다.현대 예술이 과거의 기준으로 예술이라 정의되기 어려운 두번째 이유로는 표현방법과 수단에 대한 다양한 시도와 변화를 들 수 있다. 장르를 넘나드는 혼합과 기존예술의 형식파괴는 과거의 예술과는 판이하게 다른 다양한 예술작품들을 탄생시켰다. 특히 기술발전에 따라 예술을 표현하는 수단이 다양해졌는데 그 예로 비디오아트와 디지털아트를 들 수 있다. 이러한 표현방법들은 현대 기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예술을 통해 찾아보려는 시도에서 생겨난 것과 동시에 미디어에 의해 의식의 지배를 받는 대중매체 시대에 대한 비판적 의식이 담겨있기도 하다. 비디오 아트의 대표적인 미술가로 한국의 백남준이 있다. 그의 작품은 티비화면을 이용한 것이 대부분인데 그중 가장 세계인을 놀라게 만든 작품은 전세계에 동시에 방영하는 대규모 중계예술이었다. 그는 중계예술에서 각계의 예술인에 의한 공연과 세계를 하나로 연결하는 내용의 편집된 영상을 방영함으로써 인공위성이라는 기술을 예술에 접목시켰다. 티비를 이용한 조형물인 동시에 티비에 틀어지는 영상 또한 그의 작품의 한 부분이라는 점에서 영상과 조형물 그리고 그림과 음악의 접목인 셈이다. 이러한 백남준의 예술은 기존의 움직이지 않고 전시된 예술작품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는 기술의 접목으로 인한 형식의 파괴는 물론이요, 관객에게 찾아가는 예술이자 관객을 참여하게 하는 예술인 것이다. 또한 통속적인 이미지, 다시 말해서 일상생활에 범람하는 기성품을 예술작품을 만드는데 이용함과 같이 표현수단에 대한 발상의 전환이 이루어 졌다. 팝아트의 거장인 앤디 워홀은 수프통조림과 종이상자등과 같은 일상생활의 기성품들을 예술작품화 시켰다. 이러한 기성품의 예술화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마르셀 뒤샹의 샘이란 작품이 있는데 평범한 변기통에 사인을 한 채 전시회에 전시됨으로써 크게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이는 기존의 작품을 제작하는 수단에 대한 관습과 개념을 깨버린 작품으로, 예술이 될 수 없다는 혹독한 비평과 함께 현대예술의 가장 영향력 있는 작품이라는 상반된 평가를 받기도 하였다.현대예술의 방향이나 특성에 대해서 비판을 하는 이들도 많다. 지나친 고전예술의 형식파괴는 창의적인 예술의 발전의 토대가 됨과 동시에 많은 사람들이 이에 반발하게 만드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특히 기술주의적 현대 예술이 비판을 많이 받는데, 기계와 기술에 의해 고전의 ‘미’가 파괴되는 사실이 비판받음은 물론이고, 재생산 가능한 예술작품으로 인해 예술작품의 본질적인 ‘아우라’가 사라졌다는 지적도 받는다. ) 그러나 복제의 가능과 아우라는 관계가 없다. 사진이 여러장 뽑힐 수 있다고 해서 사진의 본질적 아우라와 가치마저 여러장으로 분산되는 것은 아니다. 복제된 예술이라도 각각의 작품이 대중에게 줄 수 있는 감동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또한 변기나 코카콜라와 같은 기성품이 그 자체로 예술작품이 된다는 데에 있어서 비판적인 시선도 많다. 쉽게 말해 어떠한 창작의 노력도 없이 단순히 이미 만들어진 기성품을 전시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예술의 가치는 ‘새로운 시도’그리고 ‘창의성’이다. 현재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고전 작품들이 유명해진 것은 아름다움을 표현했다는 점만이 아니라 획기적인 시도의 시작이었다는 이유도 존재한다. 이러한 예술의 파격적인 변화는 예술의 또 다른 발전으로 보아야 한다. 뒤샹이 평범하고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재들을 예술에 사용함으로써 고급예술과 대중예술. 혹은 순수예술과 대중예술의 경계를 허물었고, 현실과 일상생활을 예술에 끌어들임으로써 예술은 대중의 것이 되었다.
내일의 히어로하늘을 날며 화려한 액션을 선보이는 영웅들. 스파이더맨, 배트맨 그리고 슈퍼맨 등 영화 속에는 소위 말하는 ‘맨’이 붙은 영웅들이 자주 등장하곤 한다. 이러한 영웅들은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구하고 악당을 벌하며 사회정의를 위해 희생한다. 굳이 ‘맨’이라는 수식어가 붙지 않더라도 어린이영화부터 전쟁영화까지 숨은 영웅들은 영화 곳곳에 존재한다. 이렇게 영화 속에 영웅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혹자는 고된 생활에 지친 사람들이 현실의 문제를 타파해줄 영웅을 기다리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혹자는 서민들의 영웅심리를 대리만족 시켜주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이유야 어찌됐든 뻔한 전개의 영웅영화가 어렵지 않게 흥행하는 것으로 봐서 여전히 사람들이 영웅에 대한 환상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듯 하다. 이처럼 현대의 영웅신화는 전통적 영웅신화와는 다른 형태를 보이지만 시대에 맞춰 변화하면서 여전히 우리의 삶의 영향을 미치고 있다.영웅 신화라고 하면 흔히들 건국신화를 떠올리기 쉬운데 주몽, 단군신화 등이 바로 이에 속하며 이외에도 다양한 형태의 영웅신화가 존재한다. 이러한 영웅 신화는 그 시대와 지역에 관계없이 근본적인 구조를 지니고 있는데 약간의 변화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이러한 틀을 따르기 마련이다. 영웅신화의 기본구조가 형성된 이유는 각 단계 속에 영웅으로 성장하기 위한 의미가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구조를 살펴보면 먼저 영웅들은 고귀한 혈통의 집안에서 나오며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출생한다. 그 예로 단군은 신과 곰의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주몽은 알에서 태어났다. 영웅의 고귀한 혈통은 그 인물이 영웅으로 성장하는데 있어서 당위성을 부여한다. 또한 독특한 탄생과정은 영웅의 비범함을 보여줄 수 있는 매개체가 된다. 이렇게 태어날 때부터 남다른 영웅은 어린 시절부터 다양한 능력을 지니며 비범한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어린시절 기아가 되거나 죽을 고비를 맞는 등 위험에 처하게 되고 스승이나 신과 같은 조력자에 의해 이와 같은 위험에서 벗어난다. 영웅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영웅이란 이름에 걸 맞는 능력을 갖추면서 다시금 커다란 시련에 봉착하게 되는데 이를 자신의 능력으로 극복함으로써 승리자가 된다. 영웅 구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영웅이 시련과 고통을 겪고 이를 이겨낸다는 부분이다. 시련을 겪는 이유는 다양한데, 영웅의 능력에 대한 적대자의 시기 때문일 수도 있고 영웅의 오만함 때문일 수도 있다. 조셉 캠벨은 이러한 시련과 고통이 영웅의 용기, 지식, 능력 등의 자질을 판별하기위해 누군가가 예비해놓은 어떤 관문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관문을 통과한 사람만이 영웅이 될 자격을 지닌다는 것이다. 전통적 영웅신화의 구조는 대부분이 변화 없이 답습되어 이후의 영웅신화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현대의 영웅신화 역시 이와 같은 구조를 반영하고 있다.)현대의 영웅신화가 전통적 영웅신화의 토대 아래서 발전해왔음에도 불구하고 고전적 영웅신화와 현대의 영웅신화는 다르게 이해될 필요가 있다. 신화란 한자그대로 풀이하자면 어떤 신 혹은 신격화된 존재에 대한 이야기이다. 과거의 존재한 신화에서는 번개를 치고 인간을 동물로 변화시키는 등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신격체가 존재하였는데 이는 영웅신화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영웅들은 그 비범함과 능력에서 인간이 지니지 못하는 신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었으며 영웅과 신화자체가 신성함을 지녔다. 그러나 과학기술주의에 의해 신화나 전설과 같은 비현실적 이야기가 배척되면서 현대사회에서는 점점 신화의 위치가 하락하였다. 이와 더불어 영웅의 지위 또한 하락하였는데 현대의 영웅은 ‘신’이라기보다는 뛰어난 능력과 업적을 만들어낸 ‘인간’이라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초월적 존재가 아닌 인간의 연장선에 있는 현실적 영웅인 것이다. 이와 같은 측면에서 볼 때 영화에 등장하는 슈퍼맨이나 스파이더맨은 초월적 능력을 지닌 인간이라는 점에서 고대 영웅신화와 현대 영웅신화의 과도기적 형태라고도 볼 수 있다.이처럼 현대에는 평범한 인간이 영웅화 되곤 하는데 이는 당대의 보편적인 욕망을 획득함으로써 이루어진다. 하지만 대중의 욕망을 실현하였다고 해서 모두가 영웅이 되는 것은 아니다. 현대에서 인간이 영웅화되는 경우를 살펴보자면 먼저 당대 사람들의 보편적 욕구가 실현되기 아주 어려운 상황에서 이를 획득했을 때 이다. 둘째로 인간이 획득한 결과가 개인의 결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범국민적으로 엄청난 긍적적 효과를 가져오는 경우이다. 마지막으로는 어떤 이의 업적이나 능력이 시대를 바꾸는 힘을 지녔을 때 그 사람은 영웅화된다. 이에 대한 예로 ‘황우석 영웅화’를 들 수 있는데, 이전에 과학적 업적을 이룬 과학자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황우석이 유독 국민적 영웅으로 전국민의 뜨거운 지지를 받은 것은 배아세포의 복제가 어느 나라에서도 성공하지 못한, 꿈같은 결과이기 때문이었으며 배아세포의 복제가 한국에 가져올 것으로 기대되는 이익이 천문학적인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배아세포의 복제가 성공했다면 인간의 생명을 연장시킬 수 있는 수단으로써 세기의 혁명이 되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황우석박사에게 ‘영웅신화‘라는 타이틀이 붙을 수 있었으며 우리가 그를 ’영웅‘이라 칭하며 존경하고 예찬한 이유이다.영웅신화가 계속해서 양산되고 있는 이유는 영웅신화를 원하는 사람들의 요구가 있기 때문이다. 현대사회의 영웅신화는 사람들의 요구를 수용하고 표출한다. 욕망의 반영은 비단 현대 영웅신화에서만 나타나는 기능은 아니지만 고대의 영웅신화가 민족의 정당성과 우월성을 획득함으로써 사회 구성원들의 사상과 생활에 기반이 되는 역할이 컸다면 현대에 와서는 인간의 욕망을 배출하는 기능이 더 강화되고 구체화되었다. 사회의 부조리 타파와 정의 실현이든 경제적 이익의 달성이든 그 목표가 무엇이건 간에 영웅은 그 시대 사람들의 보편적인 욕망을 획득한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상황이 부정적이고 힘들수록 사람들은 더욱더 영웅을 원하게 되는 것이다. 현재 사람들이 처한 힘든 상황을 극복하고 위대한 결과를 얻어내는 영웅의 모습을 통하여 사람들은 자신의 문제 또한 해결된 것과 같은 심리적 위안을 얻게 되며 이러한 대리만족을 통해 현실상황에 대한 불만을 해소할 수 있는 것이다. 영웅신화의 이와 같은 긍정적 기능은 사회구성원들의 불안을 감소시키고 안정적으로 사회를 유지하는데 일조한다.또한 영웅신화의 영웅은 개인에게 삶의 모델이 됨으로써 가치관과 정체성 형성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사람들은 특정 인물을 역할모델 삼아 그 사람의 삶의 태도와 가치관을 배우는데 영웅이 이러한 역할모델의 기능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영웅신화의 사상과 가치관이 개인의 성장의 방향을 잡아줌으로써 자아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발생 가능한 혼란을 막아줄 수 있다. 현대사회의 영웅은 일반 사람들이 목표로 추구하는 결과를 얻어낸 사람들이며 이 때문에 존경받는다. 이러한 영웅의 업적은 개인에게 목표를 향한 동기를 부여해줌으로써 발전적인 삶을 가능하게 해준다. 현재는 희대의 사기극이라고도 불리게 되었지만 한때 국민영웅이었던 ‘황우석 영웅신화’ 는 학생들 사이에서는 생명공학이라는 학과가 폭발적인 인기를 얻는데 큰 영향을 미쳤으며 이에 따라 제2의 황우석을 꿈꾸는 사람들이 급증하였다. 영웅신화가 개인에게 삶의 모델이 됨으로써 미치는 긍정적 효과는 평범한 사람이 노력을 통해 영웅이 되는 현대의 인간적인 영웅의 모습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현대 영웅신화는 사회적, 개인적으로 긍정적 효과를 미치는 동시에 쉽게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위험하다. 영웅이 하는 일은 정당하고 타당한 업적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이러한 점을 이용하여 자신의 잘못된 행위를 미화하고 합리화 하는 일이 발생한다. 가까운 예로 김정일을 들 수 있다. 김정일은 북한에서 일반 위인이나 영웅주의보다 한층 심화되어 거의 신격화된 존재이다. 북한에서 믿는 이야기를 보면 백두산 기슭에서 태어나 나뭇잎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는 등 김정일은 거의 초능력자를 방불케 하는 능력을 지녔다. 문제는 이러한 신격화가 김정일의 모든 행동과 명령에 무조건적인 당위성을 부여한다는 점이다. 김정일이 전쟁을 하든, 핵을 지니든, 국민들에게 고통을 주든 모든 일은 의심의 여지없이 타당하고 정당한 일이 된다. 김정일의 뜻이 곧 신의 뜻이라면 인간이 반박할 여지도 없을뿐더러 틀릴 리가 없기 때문이다. 김정일과 같은 단적인 사례 외에도 무수히 많은 영웅화가 악행을 변론하고 있다. 전쟁의 지휘자가 세계평화를 위해 용맹하게 싸운 영웅이 되고 자살테러범이 정의 실현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영웅으로 둔갑하는 등 개인을 영웅화함으로써 폭력의 정당성을 획득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저서『주식회사 한국의 구조조정과(신장섭,장하준)』과 논문『기업집단과 재벌정책(신장섭)』은 공통된 기본전제를 바탕으로 그 주장을 전개하고 있는데 이는 ‘재벌’자체에 대해 통념처럼 부정적 입장만을 취하기보다는 긍정적인 입장에서 바라보았다는 것이다. 필자는 금융위기와 대기업중심구조의 고착으로 인해 많은 비판과 부정적 질타를 받아오던 재벌에 대하여 새로운 시각에서 재평가하고 있다. 저자의 재벌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재벌조직의 보편성과 그 확장원리기업집단은 중심적인 지배회사가 없지만 각 참가기업은 법률적 ·경제적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경영상 또는 금융상 공동이익관계에 의하여 결합된 두 개 이상의 기업집중형태를 의미한다. 한국의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에서는 기업집단을 동일인이 단독으로 또는 배우자, 8촌 이내의 혈족, 4촌 이내의 인척 등과 합하여 당해 회사의 발행주식 총수의 30/100 이상을 소유하거나, 또는 임원의 임면 등으로 당해 회사의 경영에 대하여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인정되는 회사로 규정하고 있다.) 이와 같은 기업집단은 매우 보편적인 형태임에도 불구하고 국내 재벌문제의 논의과정에서 그 역할과 기능이 과소평가되고 있다개발도상국에서 기업집단들이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이유는 세가지가 있다.첫째, 기업집단은 19세기 종합은행의 기능과 마찬가지로 자본을 증대시키는 매커니즘이다.독립기업을 통해 다각화하는 것은 기존기업내부에서 다각화하는것보다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둘째, 기업집단 구조는 계열사들의 소형자본시장으로서 기능한다. 셋째, 그룹차원에서 중앙집중화된 의사결정은 사업을 위한 자원들을 절약하게 해줄 수 있다. 이와 같은 기능을 통해 20세기 후반의 기업집단은 후발주자들이 선직국의 우수한 선발주자 기업들과 경쟁하는 데 있어 부족한 자원들을 보완해왔다.한국에서 국가는 민간부문이 상대적으로 저발전한 탓에 큰 역할을 떠맡아야 했다. 한국정부는 상업은행들을 국유화했으며, 대출결정을 전적으로 산업정책에 종속시켰다. 재벌은 1970년대 국가주도 중화학공업화의 산물이었다. 다각화 정도가 높고 중앙집중적 통제를 하는 재벌구조는 중화학산업에서 성공을 결정하는데 핵심적이었다. 국가는 전략산업들을 선정하고, 이러한 새로운 산업들을 건설하는 과제를 떠맡을 회사나 기업집단들을 선정하는 한편 그들을 지원하고 보호해주었다. 이와같은 국가-은행-재벌 연계는 한국 경제시스템의 핵심적 특징이 되었다.재벌구조의 문제점과 그에 대한 반박IMF에서 시행한 구조개혁프로그램만 보아도 금융위기가 한국경제 내부의 구조적인 문제들에 의해 야기되었다는 보편적 인식을 엿볼 수 있다. ‘정실주본주의’와 재벌의 ‘도덕적 해이’와 같은 용어로 설명되는 이른바 구조적인 문제들은 경제시스템의 합리적인 기능을 가로막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재벌기업이 합리적이지 못하며 비효율적이었다는 주장은 다음과 같이 반박될 수 있다. 일단 기업들의 부채비율이 구조적문제가 될 수 없었다. 기업들의 부채비율이 한국에서 유달리 높았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었으며 기업의 부채비율이 높다고 무조건 나쁜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주식발행과 금융기관 차입을 통한 자금조달중 어느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상대적 우위를 따질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기업들이 저수익성을 보였으며 그 때문에 부채가 계속 늘었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 오히려 영업이익이라는 기준에서는 높은 수익률을 보였다.또한 재벌구조의 문제로 지적되는 것은 재벌의 비민주성에 대한 비판이다. 재벌의 비민주성을 둘러싼 논쟁은 실질적으로는 기업집단에서 내부인과 외부인간에 벌어지는 경제갈등이 정치적 용어를 통해 발현된 것이다. 내부인은 기업집단전체를 고려하여 수익성 확장을 하려하기 때문에 사업확장시 수익성높은 기업을 통해 신규사업 보조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대하여 외부인들은 재벌이 계열사보조를 통해 잘나가는 기업의 수익률을 떨어뜨리는 것을 '비합리적'경영의 결과라고 주장한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투자한 기업의 수익률이 저하됨으로써 손해를 보기때문이다. 그러나 신규사업을 보조함으로써 기존 기업의 수익률은 감소할지라도 기업 전체의 이익률을 증가하기 때문에 내부인들 입장에서는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내린 것이다. 그러므로 기업집단운영에서 나타나는 내부인과 외부인간의 갈등은 합리 대 비합리의 대결로 인식하기보다는 서로 다른 합리성의 대결로 인식하는 것이 더욱 바람직하다.금융위기의 원인과 금융위기 이후의 기업구조조정에 대한 평가금융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은 재벌구조에 있지 않다. 물론 재벌과 기업집단의 전지구화의 도전에 대한 대처 실패가 금융위기의 한 원인이 된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이는 부차적인 원인일 뿐이다. 금융위기는 단순히 기업이윤율과 기업정책뿐만 아니라 국민경제의 전반적인 대응체제나 또는 불안정한 국제금융환경등에 더 큰 원인이 있었다. 한국 금융위기의 진정한 원인은 발전국가의 쇠퇴, 그로 인한 금융자유화의 부실운영이었다.그러나 IMF에서는 1997년 금융위기를 전통적인 한국모델의 근본적인 제도적 결함 때문에 야기된 것으로 보았으며 대대적인 재벌구조조정을 시행하였다. 재벌들의 금융 취약성을 줄이기 위하여 기업부채를 급격하게 감축하였으며 과잉설비와 기업다각화를 줄이기 위해 ‘워크아웃’프로그램과 ‘빅딜’프로그램을 시행하였다. 또한 재벌들의 불공정한 확장을 억제하기 위해서 공정거래 구제들이 엄격하게 적용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재벌구조조정은 내부적 거래와 함께 재벌구조가 갖는 다른 특징들을 제거함으로써 그룹구조의 긍정적인 측면들 역시 파괴하고 오히려 경제회복과 발전에 악영향을 미쳤다. 한국기업의 성장세가 크게떨어진 것은 산업금융시스템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에 대한 고려 없이 구조조정만을 진행했기 때문이다. 금융위기 이후 한국의 재벌개혁은 절대주의적 시각에서 진행되었다. 이상화된 영미식 체제를 ‘글로벌스탠다드’ 라는 이름으로 수용하였다. 그러나 영미식 시스템으로의 이행은 애초부터 한국경제에는 바람직하지 않았다. 절대주의적 시각에 입각한 구조조정과정에서 산업금융시스템파괴와 함께 한국기업은 물론 한국경제 그 자체의 성장또한 크게 둔화되었다.재벌정책의 방향공적자금으로 신속하게 금융부문의 자본구조 재조정을 실시하고 금리를 실질적으로 낮춘 케인즈주의적 팽창정책의 결과 한국금융위기는 어느 정도 벗어났다. 이제는 한국경제가 당면한 현실을 인식하고 미래의 경제발전을 이룩해야한다.현재 한국은 선진국도 아니고 후진국도 아니니 중진국이다. 그러므로 선진국 경제를 따라갈 2단계추적을 위한 장치가 필요하다. 이러한 2단계추적을 위해 한국에서 국가의 역할은 축소되기보다는 재활성화 되어야한다. 정부야 말로 국민경제의 궁극적인 시스템관리자로서, 전지구화의 동질하하는 힘과 자국경제의 특유한 성격사이에서 ‘매개자’가 되어야 한다.
목차서론: 국제 정치를 바라보는 패러다임; 현실주의본론: 1. 북핵문제의 배경2. 6자회담에 참가한 국가들의 목적과 관계3. 현실주의에 입각한 1,2,3,4차 6자회담 해석4. 5차 6자회담이후 현재까지의 상황 해석5. 앞으로의 6자회담과 국제정치 예측결론: 북핵문제속의 한국의 입장패러다임이란 어떤 한 시대 사람들의 견해나 사고를 지배하고 있는 이론적 틀이나 개념의 집합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러한 패러다임은 고정관념과 편견이란 의미에서 부정적으로 이야기되기도 하지만 세상을 보는 틀과 방향을 마련해 준다는 의미에서 긍정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국제정치를 바라보는 데에도 패러다임은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그 중 현실주의는 지나치게 비관적이며 비윤리적이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과거부터 현재까지도 국제 정치 전개를 이해하고 설명하는데 핵심적인 이론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이와 같은 현실주의를 통하여 국제정치의 주요 사안인 북핵문제와 6자회담을 조명해보자.북핵문제가 대두되기 시작한 배경은 소련의 붕괴로부터 시작된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유민주주의와 소련을 중심으로 한 사회주의가 대립하는 냉전체제 속에서 양극화된 국제 질서가 오랜 기간 지속되었다. 그러나 소련의 붕괴로 양극체제가 붕괴되면서 국제사회는 미국이라는 거대한 국가에 의해 주도되기 시작하였다. 중국, 일본 그리고 제3국들의 부상으로 인해 다극체제가 등장하였다고는 하나 현재는 물론이고 냉전체제 붕괴 직후 역시 다극체제라고 하기엔 미국의 국제 질서에 대한 권력이 다분히 압도적이었다. 그러나 미국이 국제사회의 중심축으로 대동하면서 국제 질서를 운용하는데 위협요소가 존재하였는데 이는 바로 핵무기와 같은 대량살상 무기이다. 결국 미국은 국제평화의 수호와 질서유지라는 대의명분을 내세워 NPT등을 구축하여 핵의 확산을 방지할 것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인도의 핵 보유를 인정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미국의 핵 확산 방지의 목적은 평화 구축이 아니라 절대적 군사권력 유지와 불온세력의 제거라고 볼 수 있다. 이렇듯 대량살국제 사회에서 고립될 위기에 처해있었고 자국의 생존과 안보에 대한 방위수단으로써 핵을 이용하였다. 그러나 단지 안보수단이라기 보다는 경제적 실익과 보상 등을 지급받을 유인책으로도 이용되었다. 북한은 새롭게 변화하는 국제질서에 합류하려는 움직임을 보였으며 국제사회에서 자신의 안전을 보장받음을 조건으로 핵을 포기하려는 의사도 비추었다. 그러나 미국이 북한을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는 없었고 북한의 미신고 시설에 대해 특별사찰을 요구했다. 결국 개선되는 듯했던 북미간의 관계는 상호불신으로 이어졌으며 북한이 93년 NPT탈퇴를 통고하면서 1차 북핵위기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9.11이후 이라크문제와 이에 따른 전쟁이 발발하면서 미국은 북한문제에 대해서는 군사적인 대응보다는 평화적인 외교로 해결하려는 의사를 밝혔다. 또한 북한 역시 한국과 중국에게 상당부분의 경제지원을 받고 있었으며, 현재와 같이 고립된 외교를 펼치면 국제정치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에 따라 평화적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이 열리게 되었다.한반도 비핵화의 주체인 미국과 북한 그리고 남한과 함께 중국, 일본, 러시아의 참여로 6자회담이 이루어졌다. 6자회담의 목표는 북핵의 폐기이지만 이와 같은 목표이면에는 6개국의 각기 다른 이해관계가 반영되어있다. 미국과 북한이 북핵 문제로 대립과 갈등을 반복하는 것은 본질적으로는 새로운 한반도 질서에 대한 정치, 경제적 권력에 대한 갈등이다. 결국 국제 사회의 평화를 명분으로 하여 두 국가가 서로 최대한의 권력을 획득하려는 전략싸움인 것이다. 이렇게 대한반도, 나아가서는 동아시아와 태평양 국가에서 권력을 획득하려는 것은 권력, 즉 힘이 국제질서를 좌우하기 때문인데, 권력의 획득이 국가의 안보와 이익을 최대화하는 수단이므로 국가는 권력을 놓고 경쟁할 수밖에 없다.소연방의 해체이후 국제 정치에서 쇠퇴하던 러시아는 6자회담에 참가함으로써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목적을 달성하였다. 러시아는 한반도와 인접해있기 때문에 한반도 핵 분쟁이 일어날 핵 안전화는 러시아에게 있어 중요한 문제이다. 중국은 북미 핵 갈등에 대해서 다소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며 중재국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중국은 정치, 경제적으로 북한과 친밀한 외교관계를 가져왔지만 현재 미국과의 관계 또한 상호견제에서 상당히 우호적 협력관계로 변화하고 있다. 중국은 한반도 비핵화에 대해서는 찬성하고 있으나 미국과 북한이 전쟁상태에 돌입하지 않길 바라는데 이는 북한의 붕괴로 인해 중국이 입게 될 정치, 사회, 경제 등 국가 전반의 피해를 우려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과 북한의 전면전이 시행될 경우 역시 대비하고 있는데, 북한이 붕괴될 경우 미국이 한반도 내 통치력을 지니는 것을 견제하기 위하여 6자회담을 통한 대한반도 영향력을 강화시키려 하고 있다. 일본은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맺고 있는데, 이는 동아시아와 태평양지역에 대한 지배권을 주도하는 협력관계를 의미한다. 이에 따라 6자회담의 전개에서 일본이 큰 역할을 하기보다는 미국에 대해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제1차 6자회담에서는 회담 참가국간의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었으며 북한 측도 한반도의 비핵화가 최종목표이고 미국이 대북적대정책을 변경할 경우 핵계획을 포기할 수 있다는 입장을 표명하였다.) 그러나 북미간의 상반된 입장으로 인해 1차 회담은 큰 성과 없이 종결되고 말았다. 북한은 핵 폐기 이행과 함께 상응하는 관련국 조치를 취하는 ‘동시이행’의 원칙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미국은 북한이 먼저 비핵화를 이행하면 지원을 제공하겠다며 ‘선 핵 폐기, 후 보상논의’ 원칙을 주장하였다. 이와 같은 우선순위의 갈등은 이후 회담의 진행에도 영향을 미친다.제1차 회담에서 각 참여국간의 인식의 공유라는 성과만을 획득하였다면 제2차 회담에서는 ‘의장성명’을 통해 상호간 입장의 피력과 이해에 있어 다소 진전을 보였다. 그러나 2차회담 역시 앞선 회담과 같이 북미 간 핵 폐기와 관련된 우선순위에 대한 문제의 논의에 그쳤으며 ’평화적 핵 이용‘논의로 또 다른 입장 차이를 보였다.북 미간 관계개선과 협상에로 미국 내부에 북한이 정말 핵 폐기를 이행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 회의적인 입장을 지닌 사람들도 많다. 반대로 북한에서 ‘동시이행’을 주장하는 것 또한 미국에 대한 신뢰의 부재에서 기인한 것이다. 북한이 먼저 핵 폐기를 할 경우 합의된 보상이 제대로 수행될 지도 알 수 없으며 심지어 핵 폐기 이후 군사적 행위에 대해 무방비하게 노출되면서 국가 안보에 위협이 올 수 있다. 국가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자국의 이익과 생존이므로 이를 위해서는 배신, 거짓말 심지어 전쟁행위마저 정당화 될 수 있다.) 오늘의 친구가 내일의 적이 될 수 있는 국제관계에서 신뢰의 부재현상은 불가피하며 이에 의하면 미국과 북한 모두 합리적 주장을 하는 것이다.제 3차 회담에서는 각국의 입장과 견해차이의 확인에만 그쳤던 앞선 회담들과 달리 사실상 처음으로 핵문제 해결을 위한 구체적인 제안과 의견이 제시되었다. 미국에서는 ‘포괄적 비핵화(comprehensive denuclearization)'를 제안하였으며 북한에서는 이에 상응하여 궁극적 폐기를 전제로 한 핵동결의 대상 및 시설 ,세부일정표를 제시하였다.) 이에 이어서 제 4차 회담에서는 3차 회담에서 언급된 핵 폐기 범위 문제가 주요 의제로 다루어졌다. 1단계 회담에서는 미국이 CVID를 주장하며 다시금 북측의 평화적 핵 이용주장과 대립되었다. 또한 이전부터 제기되어오던 HEU문제 또한 북미간 갈등을 증폭시켰다. 그러나 2단계 회의에서는 극적으로 9.19공동성명이 타결되었다. ‘모든 핵무기와 현존 핵 계획 포기 및 조속한 시일 내에 NPT, IAEA 가입’이라는 협의 내용을 볼 때 핵무기 외에도 핵 프로그램까지 폐기조치 하는 큰 수확을 가져왔다). 2007년 2월13일, 제 3단계 5차 6자회담에서는 9.19 공동성명내용의 전면적인 이행의 의지를 확인하면서 구체적인 계획으로, 이행방법과 이행시기 그리고 조치 등을 논의 하게 되었다.6자회담을 통해 문제 해결의 기본적인 방식과 단계를 담은 2.13합의를 채택함으로써 현재 북미 간 핵 문각하여 변화하였기 때문이다. 지속적인 6자회담과 북미간 관계회복을 위한 노력을 하면서도 미국에서는 대북강경책을 포기하지 않았다. 미국이 대북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개선의 노력을 보이지 않았으며 이를 북한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잦은 6자회담 휴회와 북미간 갈등이 불거져 나온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대북정책의 기반이 되었던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북한과의 합의를 통해 북핵문제를 해결하려는 입장을 피력했다. 이는 중동지역과의 문제가 쉽게 해결되지 않으면서 북한과의 평화수교라는 외교적 성과를 보일 필요가 있기 때문이었는데 다가올 대선을 염두한 방향의 전환으로도 볼 수 있다. 또한 현실적으로 북한의 붕괴가 불가능함을 인식함으로 인해 지속적인 교착상태에서 빨리 벗어나려는 노력의 일부이기도 하다. 이러한 미국의 입장변화를 감지한 북한 역시 미국의 대북강경책이 사라지고 북한의 체제와 안보를 보장해준다면 핵을 포기할 것이라는 입장을 보였다.이와 같은 두 국가간의 현실적 이익을 최대화 하는 방향으로 타협한 결과가 바로 2.13합의문이다. 그러나 미국은 북한이 각종 불법거래의 창구로서 BDA은행을 사용한다고 말함으로써 BDA내 북한관련 계좌를 동결, 결국 북한은 실질적 금융거래가 불가능하게 되었다. 이러한 미국의 금융제재에 반발한 북한에서는 BDA문제에 6자회담을 결부시켜 BDA문제를 선결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미국의 BDA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은 가운데 6차 6자회담은 휴회되었으며 북한 측에서는 금융 제재가 풀리지 않는 한 2.13합의의 이행은 무기한 연기된다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미국이 BDA가 기술적인 문제에 의한 일이며 빠른 해결을 하겠다는 주장과 함께 2.13합의 이행을 요구하였지만 북한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BDA문제에서 동결된 금액은 2500만 달러로 사실 국제외교를 흔들어 놓을 만큼 커다란 액수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BDA문제의 해결에 매달리는 것은 단순히 몇 푼 안되는 자금을 되찾으려는 것이 아니라 미국이 정말로 북한과의 평화수교를 맺으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