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버의 자본주의 정신과 우리나라의 자본주의사회교육과 200810554문 성 욱1. 들어가며2. 프로테스탄티즘과 자본주의 정신3. 문제제기4. 우리나라의 자본주의5. 나오며들어가며에서는 베버가 이 책에서 던졌던 화두에 대해 제시하고 프로테스탄티즘과 자본주의 정신에서는 저서의 내용을 요약, 제시하였다. 문제제기에서는 베버가 제시했던 자본주의 정신의 한계에 대해 서술하였고 이를 우리나라의 자본주의와 연결시켜보았으며 나오며에서는 전체적인 정리를 통해 글을 갈무리하였다.1. 들어가며「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은 막스 베버의 업적 중 가장 주목받는 그의 연구 중 하나였고 현재에도 그러하다. 베버는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진지한 학술작업이 불가능했던 대략 4년간의 우울증에서 벗어난 직후인, 자신의 지적 경력의 핵심적인 시기에 썼다.베버는 질문을 던진다. ‘이미 근대성의 핵심적 요소이자 씨앗인 ‘합리성’을 지니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서양과 동양의 여러 문명 중 왜 오직 서구 문명만이 근대성이 성공하였는가?‘ 이에 대하여 베버는 맑스와는 달리 문화에 주목하였고, 종교에 주목하였다. 베버는 그가 던진 화두에 ’서구문명만이 지닌 문화적 총체성, 즉 일정한 종교적 관념이 합리성에 기반한 근대 자본주의를 꽃피웠다.‘ 라는 가설을 세우고 그것을 논증해 나가는 것으로 이 책이 전개가 된다.2. 프로테스탄티즘과 자본주의 정신베버는 먼저 종파와 계층에 대한 설명을 시작한다. 베버는 근대적 기업의 자본가와 기업 경영자, 또는 상층 숙련 노동자층, 특히 기술적 혹은 상업적으로 훈련 받은 수뇌들은 두드러지게 프로테스탄트적인 색채를 띠고 있다고 말한다. 베버는 자본의 소유자나 기업 경영인, 상급의 숙련노동자층(기능공), 기술적-상인적 훈련을 받은 구성원들 등의 계층이 주로 프로테스탄트적 성격을 가진다는 것과 경제적으로 발전된 지역(부유한 도시)들이 프로테스탄트로의 개종이 쉬웠다는 종교개혁의 역사적 사례들로부터 특정 종파(프로테스탄트)와 특정 계층(자본 친화적 계층 상관성을 발견한다. 그러나 베버는 이러한 상관성을 시대적 정황에서 찾기보다 지속적인 내적 특징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즉 프로테스탄트의 순수한 종교적 성격이 자본주의적 영리활동을 정당화하고 있다는 것이다프로테스탄티즘의 종교적 성격을 논하기 위해 베버는 루터에서 칼뱅까지의 종교개혁에 주목하는데 루터의 소명(Beruf) 개념, 그리고 칼뱅의 예정설로 인해 신교가 구교와는 완전히 다른 양상의 금욕주의적 성격을 지니게 되었음을 설명한다.먼저 루터의 소명은 ‘~으로부터 부름받다’란 뜻을 지닌다. 직업의 소명이란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임무란 뜻이 함축되어있다. 여기에서 세속적 일상의 노동이 종교적 의미를 갖는다는 생각이 발생하였고 직업노동이 장려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루터의 논의가 종교의 세속화-주술성으로부터의 탈피-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아니였으며 오히려 삶의 많은 부분에 결쳐서 섭리를 강조하는 전통적 운명사상에 머물렀다.이후 종교적 실천은 칼뱅의 구원예정설을 통해서 세속화된다. “신은 이미 현세에서의 삶과 무관하게 구원받을 자와 받지 못할 자를 예정해두었다.”는 논지의 칼뱅의 교리해석은 더 이상 신의 뜻이 아닌 자기 자신의 자유의지 하에 놓이게 되었고 각기 자신의 믿음의 크기를 세속적인 방식으로 증명해야 할 필요성이 생겼으며 현세적 금욕주의는 발현되었다. 인간은 이제 교회를 거치지 않고 세속적인 직업노동을 통해 자신의 금욕적 이상을 추구하며 자신의 신실한 믿음을 증명하게 되었다.이렇게 확정된 직업의 금욕적 중요성에 대한 강조는 전문화된 근대적 분업의 윤리적 정당성을 부여했고, 이윤 획득은 섭리라는 해석은 실업가의 활동을 정당화하였고 직접적으로 신에 의해 의도된 이윤추구와, 금욕적 절약의 강제를 통한 부의 소비에 강요된 제한은, 자본의 생산적 투자를 가능케 하여 자연히 부를 증대시킬 수 있었고 자본을 축적할 수 있게 하였고 근대 자본주의의 시작이라는 것이 베버의 입장이다.3. 문제제기베버가 밝히고자 했던 것은 ‘왜 서구에서만 자본주의라는 독특한 경제 형태가 등장’이였고 자본주의의 형성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생각되는 정치 ? 경제 ? 문화적 측면을 모두 망라한 것이 아니라 그 중에서 가장 연구가치가 있을 것이라 생각되는 한 측면만을 선정하여 연구하였다. 그것이 바로 프로테스탄티즘적 윤리였던 것이다.베버에 의하면 전통적 세계와 자본주의 사회는 합리성에 기초하여 그 차이점이 드러난다.그렇다면 어떻게 자본주의가 전통주의를 뚫고 나올 수 있었던 것인가? 베버는 이러한 역사적 현실에 대한 설명으로 반드시 경제적인 요인만으로 자본주의가 형성된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프로테스탄티즘 윤리가 자본주의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거나, 프로테스탄티즘 윤리가 자본주의로의 이행을 가능하게 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베버는 단지 역사적 특수성을 강조할 뿐이며 서구의 특수한 상황 속에서 프로테스탄트가 우연히 존재하고 있었는데 그것이 어떠한 형태로든 자본주의의 형성에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는 논지이다. 이것은 맑스와의 논리전개와 극명하게 드러나는 차이점이기도 하다.이러한 관점은 자본주의의 발생을 사람들이 갖는 '특수한 태도'라는 측면에서 연구했다는 점에서 그 독특한 입지를 갖고 또한 서구 자본주의를 일종의 '도덕'에 기반하는 것으로 파악했다는 점도 흥미롭다. 이는 자본주의라고 하면 단지 탐욕에 의한 부의 축적만을 생각하는 일반적인 생각과 대비되는 것으로, 이것의 연원을 프로테스탄티즘적 윤리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하지만 이 책에서 베버는 전형적인 오리엔탈리즘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것은 그 당시 시대 상황이기도 하였다. 물론 베버는 서구의 자본주의의 특수성에 대하여 설명한 것이기 때문에 그의 논지가 반드시 틀렸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합리성은 서구에서만 존재하는 것이며, 자본주의의 형성 또한 합리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서구에서만 진정한 형태로 존재할 수 있다고 주장은 비난을 피해갈 수는 없을 것이며 자본주의 정신을 ‘서구의 자본주의 정신’이 아닌 일반적인 자본주의 정신으로 상는 태도를 보았을 때 베버는 특정 문화의 우수성만을 기준으로 이 책을 집필한 것이 틀림없다. 이런 점에서 비롯된 베버의 자본주의에 대한 생각은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이라 불리는 유교 문화권에 속한 아시아의 신흥 공업국가에 의해 그 한계가 드러난다.4. 우리나라의 자본주의베버는 서구사회에서의 자본주의 정신에 대하여 서술하고 있지만 그것은 이제 지나간 과거의 이야기이고 현대사회에서 자본주의는 전 세계적으로 뿌리내려 대부분 국가의 경제적 측면의 이념으로까지 확산되기에 이르렀다. 우리 한국 사회에서도 자본주의 제도를 따르고 있으며 이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간의 냉전이 종식되고 자본주의의 승리가 거의 확실시되고 있는 지금 시점에서 무시할 수 없는 세계사적 흐름이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에도 베버가 주장하고 있는 자본주의 정신이 존재하고 있는 것일까.근대 서구문명에서는 프로테스탄티즘이 핵심적 문화로서 자리 잡았기 때문에 그러한 자본주의 정신이 발달하였다고 할 수 있지만 한국에서는 프로테스탄티즘이 특정한 사유방식을 형성하기엔 부족하지 않은가라는 의문을 갖을 수 있다. 하지만 자본주의 정신이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인간의 쾌락에 대한 충동을 억제하고 노동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정신적 생활양식을 뜻한다. 물론 서구의 프로테스탄티즘에서 형성된 자본주의 정신과는 구별되는 특징들을 지니고 있지만 한국에서도 위의 정의와 같은 측면에서 본다면 자본주의 정신이라고 할 만한 것들이 나타나고 있다. 물론 한국의 자본주의 정신은 제가 생각할 때 아직 성립되지 못하였지만 충분히 우리도 자본주의 정신을 발전시킬 수 있는 문화?사상적 토대를 지니고 있다.유교사상은 한국인의 정신세계 깊은 영향을 주었고 하나의 윤리적 틀을 형성하여 세계관, 직업관을 마련해 주었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여 진다. 유교에서 비롯된 인의 사상은 알게 모르게 우리의 기업의식 속에 나타난다. 인간관계를 중시하는 윤리관은 종신고용체제를 나타나게 하였고 가족주의는 기업 내의 가족적 분람직한 것으로 생각하게 하였다. 산업의 질서도 모두 가정과 동일한 구조물로 파악한 것으로 이는 여러 가지 역할을 가져다주었는데 가족주의에서 발전한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가 기업 정신으로 등장하면서 기업과 상관에게 충성을 다해야 한다는 윤리가 형성되게 되었다. 또한 기업가의 측면에서 본다면 가족을 최선을 다해 부양하고 입신양명(立身揚名)을 지향하며 사회와 국가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의(義)를 추구해야 한다는 가치관을 지니게 됨으로써 기업을 설립하고 운영하는데 있어서의 일종의 동기를 부여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기도 하다. 이것은 노동이 종교적 의미를 갖는 것, 즉 프로테스탄티즘에서 말하는 소명이 나타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에 충실했고 엄청난 경제 성장을 이룩하였다. 물론 자본주의에 대한 정신적 기틀이 결여되어있기 때문에 이것을 성립된 정신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다. 사회 환원이 서구에서는 매우 일반적인 것에 비하여 한국의 기업가들은 오히려 탈세와 불법적인 증여에 관심을 두고 있을 뿐 사회 환원에 대하여 무지하거나 극히 형식적인 방법을 취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기업을 있게 해 준 사회에 보답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악영향을 주고 있는 셈인 것이다.또한 계속해서 주지해 온 사실인 물질만능주의가 판을 치고 있는 것도 한 몫을 하고 있다. 이것을 베버는 천민자본주의라고 부르고 있는데, 기본적으로 이윤을 얻기 위해 직업을 갖고 일을 한다는 것은 누구나 같다. 하지만 천민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노동을 함으로써 얻게 되는 수많은 정신적 ? 사회적 결과에는 무관심하고 오로지 개인의 향락과 쾌락을 위한 화폐의 획득에만 관심을 두고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또한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불법을 저지르고, 우월한 지위를 이용하여 노동자의 권리를 무시하고, 환경오염 등의 공해를 신경 쓰지 않고, 점점 대중에게 말초적이고 자극적인 문화를 배포하는 등의 배금주의가 한국인들에게 확산되어 있다. 그렇다면 어째서 유교사상 등의 정신적 기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자본주의 정신이 형성되지 못한
조선 말기 문인화에 대한 연구(추사 김정희 일파를 중심으로)사회교육과 *************-06-16문성욱목 차1. 서론2. 조선 문인화의 전개와 추사 일파가 끼친 영향1) 조선 문인화의 전개과정2) 추사 김정희의 화론과 특징3) 추사 일파의 문인화3. 결론주요 단어 : 조선 말기, 문인화, 김정희, 남종화풍1. 서론문인화(文人畵)라는 용어는 명대의 문인(文人) 동기창(董其昌))에 의해서 처음 등장하였다.. 당시 그러나 동기창은 문인화에 대한 정의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듯 하며 역대의 이론가들 또한 문인화의 특징을 많이 언급했지만 정의를 굳이 내리지는 않았다. 간단히 문인화에 대해 정의를 내리면, 문인이 여기(餘技))로 자신들의 학식 또는 글솜씨를 조형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문인화는 어떠한 목적이 있어서 그렸던 그림이 아니라 순수한 선비정신이 투영된 선비들의 취미생활이었다.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이미 후한(後漢) 말 2세기 장형(張衡)·채옹(蔡邕) 때에 문인화가 그려졌다는 말이 되기 때문에 그 시작에 대한 시점의 문제가 존재한다. 그러나 그 후 당송대(唐宋代) 북송(北宋)에서 소동파(蘇東披)나 문동(文同)을 중심으로 한 일종의 문인화 집단이 형성되고, 문인화란 외형적 닮음을 추구할 뿐만 아니라 마음에 품은 뜻을 그려내야 한다는 문인화론의 대체적 윤곽을 제시하였으며 그 화론이 이후의 회화에 큰 영향을 끼쳤기 때문에 북송대인 11C 중엽을 문인화가 시작된 시점으로 봐야한다. 북송 대에서 시작된 문인화는 남송, 원, 명 그리고 청대를 거치면서 그 체계가 바뀌어왔고 화풍에 따라 발전하였고 중국의 영향을 받아 한국에도 문인화가 유입되었다. 하지만 문인화는 상거래의 대상이 아닌 선비들의 취미활동이기 때문에 대개 판본을 통해서 접할 수 있었고 수준 또한 질 낮은 작품들이였기 때문에 제대로 이해했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다른 문제점은 중국에서 유입된 문인화를 시대별로 체계적으로 받은 것이 아니라 중국에서 오랜 세월에 걸쳐 변형된 여러 체계의 문인화들국의 자연과 한국인들의 생활상을 소재로 한 조선 후기의 회화의 발전은 매우 밀접한 추이를 보였다. 이후에 명, 청대의 회화를 수용하면서 문인화의 영향이 두드러졌는데 윤두서(尹斗緖)에 의해 시작된 문인화풍은 진경산수의 창시자이자 완성자였던 겸재 정선(謙齋 鄭敾 1676~1759년)을 비롯해 조선 남종화풍을 완성시킨 심사정, 조영석, 이인문, 윤두서, 김두량 김홍도, 신윤복, 강세황, 이인상, 박제가, 최북, 정약용, 신위 등 다수의 빼어난 화가들이 배출되었다.이러한 조선후기화단은 진경산수화와 풍속화, 사실적인 영모화와 초상화, 서양화풍의 영향 그리고 문인화의 유행과 여항(閭巷)문화의 대두를 그 특징으로 하고 있다. 진경산수화는 우리나라 산천을 그림의 소재로 삼아독자적인 양식으로 화면에 전개시킴으로써 그 독창성을 드러낸다.[그림 1]겸재 정선, , 1734, 삼성 리움박물관 소장정선이 확립한 진경산수화)라는 독자적인 양식과 당시 생활상을 그대로 옮긴 김홍도로 대표되는 풍속화로 이어졌다. 문인화는 사의(寫意))를 중요시 여겼고 이 점이 실학과 결합하여 참신한 화풍의 태동을 가능하게 하였다. 이후 강세황, 심사정, 이인상 등은 중국의 화풍을 참조하여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화풍을 완성하였고 이들이 본격적으로 문인화풍을 수용하면서 전면적으로 확산되었다. 문인화가들을 중심으로 확산된 문인화는 직업화가, 중인 화가들에게까지 영향을 끼쳐서 문인화는 조선 화단에 정착하게 되었다. 이후 남종화풍의 유행으로 진경산수화와 풍속화는 쇠퇴하고 조선 말기에 이르러 남종문인화는 김정희 일파를 중심으로 화단이 편성되었다.조선 말기는 서세동점으로 요약할 수 있는 서양 열강들의 제국주의적 침입과 이로 인해 벌어지는 국내에서의 세력다툼, 그리고 외국 문물과 함께 들어온 기독교의 전래 등으로 사회가 어지럽게 급변하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시대상황은 회화에도 영향을 미쳐 조선 후기의 회화와는 많은 차이를 드러내었다. 특히 조선말기의 회화에서 무엇보다도 관심을 끄는 주된 경향은 역시 남종문인화였다. 문인화 하여 개성적인 취향을 더한 이색화풍의 출현 배경이 되었으며 새로운 화풍을 형성하게 만든 원동력이 되었다. 자연히 김정희가 추구했던 학문과 예술이 일치한다는 사상, 즉 서화불분론(書畵不分論)이 바탕이 되어 조선말기 회화에서 한국적인 남종문인화의 절대적 위치를 가져오고 김정희는 당대 최고의 문인화가이자 서화가의 위치에 올랐다.2)추사 김정희의 화론과 특징김정희는 완당(阮堂), 추사(秋史), 예당(禮堂), 시암(詩庵), 노과(老果) 등 다양한 호로 불린 실학자이자 서예가로 정치가 안정이 되고 학문이 성했던 조선왕조 후기에 태어났다. 이 시기는 실학이 크게 일어난 시기였다. 그 영향을 받아 그는 실사구시를 주장하고 실학과 금석학을 공부하여 큰 업적을 쌓은 인물로 24세가 되던 해에 부친 김노경을 따라 연경에 가서 당시 중국 유학사상의 거두인 완원 옹방강(翁方綱)) 등과 교류하면서 그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금석문의 감식법과 서법을 익혔다. 옹방강은 당대의 금석학자이자 서예가이며 스스로 경학의 대가로 자부하는 연경학계의 원로였다. 옹방강은 김정희의 박식과 총명함에 놀라 경술문장 해동제일(經術文章 海東第一)이라고 칭찬하기도 하였다. 김정희는 불교에도 조예가 깊었으며 다양한 학문의 완성된 이해는 후에 그의 서화에 물씬 묻어나왔다. 한편 김정희가 성장하던 정조 이후 조선사회는 급격한 변화를 겪게 되는데 성리학적 사회질서가 해체되어감에 따라 재야에서 성리학 연구를 하던 계층들이 사라지고 서울에 살며 대대로 번영했던 집안의 자제들이 중앙학계에서 점차 영향력을 확장해 나가게 된다. 이들은 노론 계열의 거대가문 출신들로서 전통 성리학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 북학풍의 학문을 지향하였는데 신진 학자들은 앞 시대의 화이론(華夷論))을 완전히 극복하고, 단순히 청대의 선진문물을 수용하여 낙후된 조선의 현실을 개선한다는 실제적 필요성이 아닌 청대 학술 자체에 대한 학문적 관심을 보이면서 고증학을 비롯한 청대 문화를 적극 수용해 나간다.김정희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평가는 조선 후기 실학 중요하다고 하였는데 이는 필묵에는 학문의 깊이가 드러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창작 훈련의 축적을 강조하며 다작(多作)을 통한 끊임없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하였다.[그림2] 김정희, , 1844, 개인 소장그의 작품 중 손에 꼽는 세한도를 보면 소나무 두 그루, 초가집 한 채, 잣나무 두 그루가 있는 매우 단순한 그림이다. 하지만 그 속을 바라보면 제주에 유배되어 있는 완당자신과 이상적을 적절히 상징하고 있으며, 간결한 남종화(南宗畵)의 법도에 다가서고 있고 또 다른 작품인 불이선란을 보면 화면 전체에 문자향 서권기)가 충만되어 있고 김정희의 선비다운 교양과 인품을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조선 시대 문인화의 전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화법에 얽매이지 않는 담대하고 자유로운 화면구성과 그의 예서의 조형미와 추상미를 느끼게 하는 강력한 필치로 개성이 아주 강한 독자적인 문인화풍을 보여주는 추사의 묵란화라 할 수 있겠다.[그림 3]김정희, , 년도미상, 개인 소장그림으로 살펴보아도 김정희의 화론은 시·서·화로 표출되는 사대부 예술의 전통을 이론화하고자 했으며 이들이 공유하는 예술성에 대해 강하게 의식하고 체계적이고 구체적으로 명시하는 것이 목표였던 것 같다. 김정희의 화론을 종합해 보면 문자향 서권기에 바탕한 화론으로 시서화로 표출되는 사대부 예술의 전통을 이론화하고자 했으며 고전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많은 진작을 풍부하게 경험하는 데 그 배경이 될 수 있는 것이 청대 고증학으로 이러한 명 청대 예술론을 정교하고 종합적으로 절충하고자 했던 것이다.)3)추사 일파의 문인화김정희의 화론은 사대부는 물론 중인과 직업화가, 그리고 이색화풍에까지 영향을 미쳤고 조선 말기에는 김정희 일파라고 할 만큼 김정희의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이 없었는데 그 유형을 대체로 세 부류로 나눈다. 신분에 따라 정통 사대부 문인과 여항문인으로 나오고 양식에 따라 이색화풍이 갈라져 나온다. 김정희는 그 자신의 신분이 정통 사대부였기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사대부 문인들과 교류했었다. 그중 서화를 지도 받았는데 김정희 일파 중 묵란화 분야에서 가장 독특한 경지를 이룬 사람이다.여항문인들은 성리학적 질서 속에서는 그들의 역량과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지 못했고 사회, 문화적으로도 소외된 계층이였다. 하지만 김정희는 이들을 적극적으로 문하에 들여 길러냈고 그 중에서 허련, 조희룡, 전기가 이름을 떨쳤다. 허련은 김정희가 추구한 남종문인화를 계승, 발전시킨 인물로 산수를 비롯한 묵모란과 매화등 다양한 소재 및 지두화)에도 뛰어났다. 그의 작품 경향은 농묵 위주에 건필이 구사된 거친 필치와 다소 성근 화면구성 등이 화풍으로 정리되는 것이다. 조희룡은 김정희의 영향을 받은 문인화가로 시문과 서화에 모두 뛰어났으며, 산수, 매화, 묵죽, 난초, 나비 등을 잘 그렸다.[그림 5]조희룡, 묵매도, 국립중앙박물관또한, 김홍도를 비롯한 화가들의 전기를 담은 유명한 호산외사를 편찬하여 몇몇 화가들의 전기를 담은 유명한 호산외사를 편찬하여 몇몇 화가들에 관한 우리의 이해에 크게 공헌하고 있다. 조희룡은 산수화뿐만 아니라 묵죽에서도 높은 경지의 독자적인 세계를 개척하였으며 사대부 문화를 바탕으로 중인 예술 사상을 형성하였다. 그의 작품 에서는 그가 좋아했던 매화를 그렸는데 담묵의 꽃잎 끝에 진한 먹을 써서 찍어낸 꽃술과 꽃받침에서 경쾌함이 느껴지고 그 획은 인장과 함께 그윽하고 곧은 정취를 드러낸다. 전기는 김정희의 애제자로 스승의 각별한 사랑을 받던 전기는 불과 30세의 아까운 나이로 요절한 서화가이다.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는 스승 김정희의 보다도 소슬함이 더 감지되는 그림이다.이색화풍은 남종문인화에 서양기법이 부분적으로 수용되면서 전통적인 화법이 아닌 개성있고 독창적인 새로운 시각으로 대상을 바라본 화풍이다. 여항문인화가인 김수철은[그림 6]김수철, , 간송미술관 소장추사한테 뽑혀 평가의 대상이 된 여덟 화가 중 한 사람이기도 하며 시정이 무르녹는 듯한 화면, 정취, 능숙한 구도, 너른 여백, 해맑은 화면, 설채, 과감한 생략 등에서 그의 뛰어난 개성을 엿볼 수 있
세한도(歲寒圖);그 내용과 조형성에 대하여◎ 학 과: 사회교육과◎ 학 번: 200810554◎ 이 름: 문 성 욱목 차Ⅰ. 세한도Ⅱ. 세한도의 제작 배경Ⅲ. 세한도의 내용적 특징Ⅳ. 세한도의 조형성Ⅴ. 결론참고문헌歲寒圖Ⅰ. 세한도(歲寒圖)는 완당이 제주도에 유배하던 시절인 1844년에 그린 작품으로 보인다. 이 작품은 완당이 그린 작품 중 가장 명작으로 꼽히며 조선시대 최고의 문인화로 여겨진다. 발문을 살펴보면 알겠지만 이 작품은 완당이 이상적에게 그려준 것이다. 이상적은 완당이 귀양살이하는 동안 연경의 책을 보냈다. 이에 감복한 완당이 를 그려 이상적의 공로에 답하기 위해 그린 그림이다.대략적으로 를 설명한다면 위와 같다. 그러나 이 의 의미와 성격을 보다 침잠(沈潛)하기 위해서는 의 제작배경에 담겨 있는 의문을 해결하고, 이를 통해 완당이 그린 시점과 배경을 좀 더 구체적으로 파악해서 완당의 내면세계와 의 조형성에 대해 탐구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완당이 왜 를 그렸는지, 의 내용과 특징, 그리고 그것에서 나타나는 조형성은 어떤지? 에 대해 알아보겠다. 그리고 이를 통해 그의 절실하고 강렬했던 실존적 경험이 남긴 것을 살펴보고자 한다.Ⅱ. 의 제작 배경우선, 왜 를 그렸는지에 대한 세한도의 제작 배경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세한도는 완당이 보여주었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느낌의 그림이다. 또한 통상 회화사적 논증과 고증학적인 지식을 과시하던 완당이 그림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가슴 뭉클한 편지형식의 독특한 문장으로 의 발문을 썼다. 또한 제발(題跋)까지 그림의 본질적인 조형요소로 간주하고 그 통합성을 강조하여 철저히 지키던 완당이 유독 의 발문만 별지(別紙)에 자를 대고 방안(方眼)까지 쳐서 엄격한 해서체로 썼다. 나아가 의 발문은 제발에 포함되지 않고 서독(書牘)편에 이상적에게 보내는 편지로 수록되어 있다. 현재 이를 풀 수 있는 유일하고 가장 완벽한 단서는 완당과 이상적의 관계를 알아보는 것이다.추사 김정희는 북학이 유행하던 19세기의가 높아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차원에서의 자신만의 경지를 구축했다. 당시 북학은 시대의 유행이자 지식인의 척도였고, 연행)은 지식인으로 대접받기 위한 필수 코스였다. 그에 따라 당연히 중국어가 유창한 역관들이 필요했고 그 중요성을 김정희는 일찌감치 인식하고 있었다. 김정희에게 역관들과의 교류는 청조 문사들과의 교류이기도 하였고 새로운 문물에 대한 지식의 공급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역관들 중에서도 문장이나 학문이 뛰어난 인물들이 등장했다. 즉, 단순한 통역자가 아닌 외교관의 역할을 담당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지게 된 셈이었다. 이들은 그 역량을 바탕으로 청나라 문사들과 직접적인 교류를 시작하였고 그들에게 인정을 받았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우선 이상적이다.)이상적은 연행을 시작하면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그 인적 인프라는 막강했다. 이런 이상적의 뒤에는 단 한 차례에 불과한 연행을 다녀왔지만 그 한번으로 “경술문장 해동제일”의 칭호에 오른 김정희가 있었다. 수시로 연행을 다니는 이상적을 통해 김정희는 중국 학계의 움직임을 누구보다 빨리 알 수 있었다. 김정희와 이상적이 언제 처음 만났는지는 확인할 수는 없지만 역관을 중요시 했던 김정희로서는 일찍부터 이상적과 알고 지냈을 것으로 생각된다.그렇다면 완당은 왜 를 그렸는가? 이는 이상적이 유배중인 완당을 위해 연경으로 가서 그가 부탁한 여러 책을 구해주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김정희가 유배를 가기 전에 이상적은 이미 5차례에 걸친 연행을 했었다. 연행마다 청 학계의 최신정보를 전해주었고 서적도 구해주었다. 유배 후에도 이상적은 베이징으로 갈 때마다 최신 서적들을 구해와 김정희에게 보내주었고 언제나 최근 소식을 같이 전해주었다. 그 덕에 김정희는 유배생활 중에도 연경의 소식을 알 수 있었고 동생 김상희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상적에게 부탁했던 책 보퉁이는 어느 때나 부쳐올지 모르겠네.” 라고 궁금해했던 것도 늘상 이상적이 보내주는 책들에 대한 소식인듯 하다). 그러나 완당이 안동김씨에 의해 무고한 죽음에 이를실상 정치적 생명이 끝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이상적은 역관으로서의 생명이 위태로울 수도 있는 정치적인 위험성을 무릅쓰고, 정치적 역량에 아무런 이득도 없는 완당에게 변치 않은 마음으로 중국의 새로운 자료를 구해서 제주의 완당에게 보내주었다. 유배 전이나 유배 후에나 변함없는 이상적의 행동에 유배 생활 중 많이 외로웠을 김정희는 보답을 하고자 를 그려주게 되었던 것이다.3. 의 내용적 특징세한도는 매우 간단한 그림과 구조를 가지고 있다. 집 한 채, 나무 네그루. 다만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릴 때 재료를 중요히 생각하던 추사는 왜 를 한 장에 그리지 않고, 더군다나 최고급 종이도 아닌 까칠한 종이조각을 이어붙여 그린 것일까? 우연일수도 있지만 김정희는 이를 계산하고 그렸을 것이라 생각된다. 유배 중 그의 삶은 힘들고 궁핍했으며 를 그림으로써 자신의 처지와 이상적의 의리에 대한 보답을 모두 표현하고자 했다. 만약 그림을 받은 이상적이 를 여러 문사들에게 보여줬을 때 최고급 종이였다면 제 3자는 추사의 처지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을 것이다.그림을 보면 먼저 나무들이 보인다. 그 나무들은 이상적의 의리를 표현하기 위한 소나무와 잣나무이다. 이는 “겨울이 되어서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라는 공자의 말을 생각하여 그린 듯하다. 하지만 그 나무들은 오랜 풍상을 겪어 몸통이 성하지 않고 가지 끝에 솔잎 몇 개만 남아있다. 오랜 풍상 속에서 그 자리에 있는 나무들은 끝까지 의리를 시키는 이상적의 모습이자 추사 자신의 현재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즉, 중의적 표현이라 할 수 있다.그리고 그 옆의 초가집역시 외롭게 한 채가 서 있어 처연한 느낌을 더 주고 있다. 그런데 집의 생김새가 여간 어색하지 않다. 단순하게 외롭다고 볼 수도 있지만 집모양이 우리네의 그것과는 상당히 다르다. 물론 ‘문인화’라고 하고 그냥 넘어 갈 수도 있지만, 이 집의 모습은 내 호기심을 이끌어 내기에 충분했다. 이 집의 형태는 단층의 길쭉한 일자집에 삼각형의 맞배 갖고 있다.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집은 긴 변을 정면으로 삼아 출입구를 뒀고, 몇몇의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고서는 원형의 창호를 갖지 않는 점을 볼 때 특이하다. 또 벽체도 나무골조로 만들고 그 사이 빈 공간을 흙벽으로 마감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어서 이 그림에서와 같이 밋밋한 담집은 보기 힘들다. 이런저런 이유로 의 집은 아무래도 우리나라 집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아무래도 어릴 때연경을 갔었던 완당 자신이 중국의 집을 보고 그렸을 것으로 추정되기도 하며, 그야말로 논어의 한 구절을 따라 그린 것이라 볼 수도 있다. 어쨌든 이 집은 중국풍의 색깔이 강하다. 하지만 그 의미는 귀양살이중인 완당의 너무나 처연하고 초췌한 유배공간을 상징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이처럼 는 소나무 두 그루, 초가집 한 채, 잣나무 두 그루가 있는 매우 단순한 그림이다. 하지만 그 속을 바라보면 제주에 유배되어 있는 완당자신과 이상적을 적절히 상징하고 있으며, 간결한 남종화(南宗畵)의 법도에 다가서고 있다.전체적으로 보면 는 크게 표제, 화면, 발문이라는 이질적인 요소로 되어 있다. 이는 보통의 회화와는 다른 모습이다. 또한 이러한 구성은 다시 ‘완당-세한-우선’이라는 의 핵심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그래서 는 기본적으로 완당-세한-우선이라는 세 가지의 이질적인 것이 표제-화면-발문이라는 요소와 함께 계속 모습이 바뀌면서 유기적으로 전개되어 나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먼저 도입부는 우선 이것을 감상해 보게라고 쓴 표제와 관서(?書)를 통해, 의 핵심적인 내용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그림이 전개되면서 상징적인 풍경과 함께 앞서 말했던 완당 자신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마지막으로는 ‘발문’에서 완당의 우선에 대한 고마움에 답하는 글이 해서로 쓰여 있어 그림의 의미를 잘 나태내고 있다. 이는 그림의 의미가 잘 나타날 뿐만 아니라, 도입부의 서예적인 문자와 다시 유기적인 호응을 이루며 마무리되고 있다.또 완당은 오랜 시간동안 잡았던 필묵의 도를 익혀온 까닭에 고도의 필력과 능숙작 를 그려냈다. 특히 초묵만을 이용함으로써 거의 물기가 없는 갈필)의 상태에서 그려서 흐려 보이면서도 황량하고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는 완당이 오랜 유배시간동안의 그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의도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완당이 추구하고 있었던 본질적인 그림의 경계를 실현한 것이고, 완당이 평생에 걸쳐서 지향하고 있었던 학예일치와 서화 일치의 인문적인 경계를 실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완당이 를 통해서 이와 같은 경지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폭넓고 풍부했던 고전적 경험과 제주유배의 절실하고 강렬했던 경험에서 왔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경험을 통해서 탄생한 역작이 바로 인 것이다.그런 점에서 의 예술적 경계와 성격은 정말 어렵고도 어렵다. 하지만 분명히 말할 수 있는 사실은 완당의 는 완당 자신의 오랜 학문적 경험과 현실적 경험이 우러난 그의 학문과 인생을 결집시킨 하나의 명작이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4. 의 조형성문인화의 표현양식은 그 정신성과 함께 동양화의 조형요소로써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러한 문인화의 표현양식을 조형성이라 부른다. 세한도는 김정희가 나타내고자 했던 조형성이 아주 잘 드러난 작품이다. 추사가 평생에 걸쳐 지향했던 “글씨는 그림처럼, 그림은 글씨처럼”이라는 말에 함축되어서 나오는데 선에 의한 묘법, 필묵에 의한 필법,묵법, 여백이나 농담, 구도에 있어서의 취세와 균형, 시·서·화·인등으로 조형성을 설명할 수 있다.세한도의 경우 갈필과 검묵을 사용한 문인화의 최고봉이다. 그 조형적 특징은 전체적인 구도를 봤을 때 옆으로 긴 화면에 집 좌우에 각각 나무 두 그루씩이 그려져 이루어진 화면이다. 이 화면에서 추사는 여백을 활용해 화면을 짜임새 있게 만들었다. 또한 조그만 집 한 채와 소나무 두 그루만 대칭을 이루어서 묘사되어 있어 여백이 많지만, 그 여백이 이 그림에 안정감을 부여한다. 갈필로 그린 소나무의 휘어진 모습과 수직으로 자란 소나무는 간결하게 선 위주로 표현되어 있다. 간결하게 묘사해서 깔끔하다는 느
교수-학습 과정안단 원 명Ⅳ.국제사회와 정치3. 국제 관계의 변화(2) 국제 관계 속에서의 지구촌 문제일 시2012년 5월 1일 (화) 5교시대 상속초고등학교 2학년 1반(36명)지 도 교 사문 성 욱결재담당부장교감교장Ⅰ.단원학습계획1.교재 및 단원명2. 단원개관3. 단원의 계열성4. 단원 지도 계획5. 학습목표6. 단원 지도 방안Ⅱ. 본시 교수-학습 계획1. 본시의 학습목표2. 본시 지도상의 유의점3. 본시 교수-학습 지도안Ⅲ. 교수-학습 자료1. 탐구활동지2. 참고자료3. 형성평가지4. PPT 자료Ⅳ. 평가-평가지 자료Ⅰ. 단원 학습 계획1. 교재 및 단원명(1) 교재 : 고등학교 정치 - [법문사](2) 단원명대단원Ⅳ.국제사회와 정치중단원3. 국제 관계의 변화소단원(2) 국제 관계 속에서의 지구촌 문제2. 단원 개관냉전 체제붕괴 후 국제 사회는 많은 변화를 보이고 있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는 등 자국의 이해에 따라 그 관계가 수시로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국제 사회의 변화 모습을 이해하고 적응해 나가는것은 세계화 시대를 살아가야 할 학생들에게 필요한 사항이다. 이에 이 단원에서는 국제 사회의 발달 과정, 국제 관계의 근본적 특성과 국제 관계의 변화, 국제 기구들의 종류와 그 역할, 우리나라의 국제 관계 등을 학습하면서 국제 사회에서 우리의 역할과 자세를 알아보고자 한다.3. 단원의 계열성선행학습본시학습8학년 사회Ⅳ.국제사회와 정치Ⅳ.현대 세계의 전개제1, 2차 세계대전과 전후 세계2. 국제 관계와 국제 기구- 국제법과 국내법 비교- 국제 정치 체계의 작용- 국제 기구의 변화 과정- 국제 연합의 과제9학년 사회Ⅶ. 지구촌 사회와 한국국제 협력과 국가 간 경쟁10학년 사회Ⅴ. 문화권과 지구촌의 형성세계화와 지역화의 의미4. 단원 지도 계획중단원소단원주요 학습 내용차시교과서 쪽1.국제사회의발달(1)근대 국제 사회의 형성 .과 전개 과정- 근대 국제 사회의 형성- 국제 사회의 전개 과정1170~172(2)국제 사회의 특징과 주 .권의 의미- 국제사한다.전시학습(2분)-전 시간에 배운 내용(냉전 체제의 붕괴와 새로운 세계질서)을 간단한 질문을 통해 간단히 상기시킨다.-냉전체제란?-현 국제질서의 특징-ppt를 보면서 지난 시간에 배웠던 내용을 떠올리며 대답한다.-2차 세계 대전 이후 자본주의 진영와 공산주의 진영간의 양극체제-?단-다극체제 ?상호 의존성 증대 ?경제적 실리 추구 ?세계화 및 지역 블록화 현상 ⑤종교적, 민족적, 인종적 분쟁 증대문답법ppt잘 대답하지 못할 경우엔 학생들의 대답을 유도하는 질문을 던진다.흥미유발(3분)-‘북극곰의 눈물&온난화의 비극’이라는 온난화로 인해 북극해의 얼음이 녹아 북극곰의 서식지가 급격히 줄어드는 내용의 동영상을 보여준다.-동영상을 보고 드는 생각을 자연스레 말해보게 한다.-이 온난화 현상은 어느 한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가 노력해서 해결해야 할 문제임을 알리고 오늘 배울 내용들을 잘 듣고 해결방안을 탐색할 수 있도록 하자고 한다.-시각자료에 관심을 가지고 집중하여 시청한다.-북극곰이 너무 불쌍해요/ 온난화를 빨리 막야 할 것 같아요-세계시민으로서의 자질을 함양할 수 있도록 오늘 들을 내용에 집중하도록 노력하는 마음을 가지면서 교사의 말을 잘 듣는다.문답법동영상학습목표(1분)-미리 판서된 학습목표를 읽게 하고 본 수업에 들어간다.-학습목표를 큰 소리로 읽으며 오늘 수업을 파악한다.1.지구촌을 둘러 싼 문제가 어떤 것이 있는지 설명할 수 있다.2.세계적으로 일어나는 지구촌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방안을 탐색한다.3.지구촌 문제는 한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므로 세계시민으로서의 의식을 함양하도록 한다.판서미리 칠판에 판서 해 둔다.전개(31분)모둠구성을위한 소주제선택(10분)-전 차시에 미리 정해둔 모둠별로 앉았는지 확인한다.-수업의 전체적인 틀과 진행흐름에 대해 설명한다.→ 소주제 모둠 내에서 미니주제발표→소주제 모둠별 발표준비→발표→평가 및 반성-지난시간에 미리 정해 둔 지구촌 문제와 관련된 4개의 소주제에 대해 협동학습을 할 것임을 알린다.주제1.국지적 분쟁주무엇일까요??생각넓히기, 둘중국사람들은 티베트의 천연자원을 뻔뻔스럽고 난폭하게 약탈하고 있는데, 금과 석유와 석탄과 광물들이 파올려져서 트럭에 실려 나가고 완만한 풀밭들은 과도하게 방목되고 있으며 가파른 산기슭에도 쟁기질이 가해져 있다. 거기에 핵무기들이설치되어 왔고, 핵과 유독성 폐기물이 버려져 있다고 한다. 화학전 연습이 인민해방군에 의해서 수행되어 왔다. (중략) 예를 들어 1983년에서 1987년 사이에 이루어진 삼림 벌채 덕분에 동쪽 및 동남아시아의 대부분의 중요한 강들이 심대한 영향을 받았다. 그런데 브라마푸트라강, 메콩강, 살윈강, 양자강과 황하와 같은 이러한 강들은 대개 티베트 고원에서 발원하고 있는 것이다. 숲이 없어지자 수백만톤의 흙이 강으로 쓸려들어갔고, 강들의 하구에 토사가 쌓였으며, 댐이나 저수지들의 기능이 상실되고 홍수와 가뭄을 증가시켰다. 사실들 자체가 그동안의 사정을 잘 말해주고 있다. 동부 티베트 지역에서 중국인의 점령이 시작된 이후 68퍼센트의 삼림이 상실되었다. 어떤 여행자의 기록에 따르면, 1987년에 그가 양자강의 지류인 민계곡을 버스를 타고 올라가면서 본 것이라곤 190마일에 걸친 빽빽한“벌목차량들”뿐이었다. 티베트 고원의 높이와 규모 때문에 이러한 삼림벌채는 예를 들어 몬순을 약화시키는 것과 같은, 전지구적인 차원의 기후 변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의견이 있다. 점령 이전에 티베트에는 도로가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가장 궁벽한 지역까지 열어놓은 수천마일의 도로가 뚫려있다. 예전에 티베트의 암도지방에 속했던 변경지역 킹하이는 중국의 클론다이크(캐나다 유콘강 유역의 유명한 금광지대 - 역주)라 할 만한 곳으로 여기서 해마다 억만파운드어치의 금이 광포하고 무분별한 채광을 통해서 상실되었다. 그런가하면 북부 티베트에서 대량으로 추출된, 광범위하게 이용되는 산업용 광문인 봉사는 중소(中蘇)분열 이전에 소련에 졌던 부채를 모두 갚을 수 있게 해주었다고 한다.[유린되는 티베트, 데이빗 니콜슨-로드]1. 중국이 티베트의 독립을 반대하는번지고 있다. 중국 발 공해물질로 최대 피해를 보는 쪽은 인접국인 대한민국이다. 인구 약14억명을 보유하고 있는 중국은 경제신장과 함께 엄청난 에너지를 소비하고 있어 공해배출이 심각한데도 교토협약에 참여하지 않고 있고 이에 따른 국제적인 비난도 확산되고 있다. 올해 2월부터 발효되는 교토기후협약은 55개국이 참여하지만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는 국가인 미국·중국·인도 등의 불참으로 지구온난화 방지에 차질이 예상된다. 중국이 경제발전을 위해 가시적으로 노력하지만 공해방지시설은 소홀하다. 하수처리시설, 화력발전소의 탈황설비, 쓰레기 매립시설 미비로 광활한 지역에 쓰레기가 곳곳에 산적하게 널려있다. 바다에도 오염물질을 마구 배출해 주변 해역을 심하게 오염시키고 있다.이에 한, 중, 일 3개국 환경 장관은 황사 방지를 위해 황사 모니터링 구축과 공동 워크숍 개최 등에 공동 협력하기로 했다. 특히, 우리나라는 황사 발생 예측 기능 강화를 위해 중국 측의 황사 측정 정보와 분석 자료를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한국 방면의 측정소를 설치하기로 합의했다. 3개국 장관은 황사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3개국 전문가 공동 워크숍을 개최하기로 하는 한편, 황사 방지 사업이 많은 시간과 예산을 필요로 하는만큼 국제 기구의 자금 지원을 요청하기로 의견을 모았다.1. 공해 물질이 섞인 황사가 우리나라에 온다면 어떤 피해가 있게 될까요?2.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제적인 협력이 요구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2. 국제 관계 속에서의 지구촌 문제( )반 이름( )? 생각 넓히기, 하나-2006년 나이키사는 자사에 수제 축구공을 공급하던 파키스탄의 사가스포츠사와 계약종료를 선언했다. 지금까지 약 4만5,000명의 파키스탄 노동자들이 사가스포츠에서 축구공을 만들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축구공을 만드는 노동력의 대부분는 어린이들이었다. 이들이 축구공 하나를 만들때마다 버는 돈은 100~150원정도이다. 작업과정에서 유독물질로 인해 시각을 잃어버리는 아이들도 있다. 최근 나이키뿐만 아니라 푸서 기존 省에 편입시켰고 역사적인 티베트영토중 중부 지역과 동쪽 일부 지역만을 T.A.R로 선포하였다. 엄밀히 따지자면 티베트의 고유 영토중 반 이상이 중국으로 흡수된 셈이다.5 . 오늘날 티베트는 의사표현과 종교, 언론등과 같은 기본적인 자유가 철저하게 제한되고 있으며 임의 체포가 계속되고 있다. 인권 단체들에 따르면 현재 티베트에는 천 이백명 이상의 정치범이 있으며 이 들 중에는 풀브라이트 장학생인 나왕 쵸펠과 1995년 중국당국에 의해 납치된 9살의 뺀첸 라마(티베트에서 매우 존경받는 종교적 인물)를 비롯하여 수백명의 승려와 비구니, 일반 시민들이 중국 강제노동수용소와 감옥에서 신음하고 있다.6 . 중국정부는 티베트 여성들에 대한 강제적인 낙태와 불임수술을 자행하고 있으며 수만명의 중국인들을 티베트로 이주시키는 정책을 펴고 있어 티베트 문화의 생존 자체에 커다란 위협이 되고 있다. 중국인 정착자들은 현재 대부분의 도시지역과 많은 농촌지역에서 이미 티베트인들의 인구를 넘어서 티베트인들은 자신의 나라에서조차 소수민족이 되어 가고 있다. 반면에 지금도 수천명의 티베트인들은 점령된 티베트를 빠져나와 험준한 산을 넘는 생명을 건 탈출을 통해 미래가 불확실한 망명세계로 그들의 운명을 맡기고 있다.7 . 역사적으로 티베트는 매우 넓은 영토를 가진 국가로 그 크기는 어림잡아 서부 유럽 전체를 합한 만큼과 맞먹는다. 대부분의 티베트 고원은 14,000 피트이상에 자리잡고 있다. 또한 티베트는 아시아의 가장 큰 다섯 개 강들의 발원지로 20억의 사람들에게 물을 공급하고 있다. 1959년 이래로 중국은 노천채굴과 핵폐기물 매립, 광대한 삼림훼손등을 통해 티베트의 연약한 자연 환경을 위협하여 왔다. 이러한 삼림훼손의 결과로 대규모의 홍수가 발생하여 수백만 에이커의 농경지가 쓸려갔고, 수천명의 사람과 가축들이 죽음을 당했으며, 집없고 비참한 더 많은 수의 이재민들을 만들었다. 게다가 티베트에서 가장 성스럽게 여겨지는 얌독 쵸(Yamdrok Tso) 호수는 현재 정부의 수력발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