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에 이르는 여정영화 제목: Amistad (1977)영화 감독: Steven Spielberg역사와 문명 2차 과제01.서문2009년 아프리카 배낭여행 중 나는 묘한 호기심과 애잔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미묘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길을 지나가다 우연히 보았던 모습이 꽤나 강렬했다.큰 배낭을 맨 미국계 아프리칸 여행자와 그를 마주보던 맨발의 까맣고 귀여운 흑인아이. 어딘가 다른 분위기의 여행자를 신기하게 바라보던 똘망똘망한 눈을 가진 어린아이와 그 둘을 멀리서 지켜보던 노란색피부를 가지 나. 제 3자로 그들을 보고 있으니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라는 막연한 호기심이 생겼다. 어렴풋이 알고 있던 잔혹한 흑인노예사는 같은 뿌리지만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살아가는 그들을 신기하고 미묘한 감정으로 바라보게 만들었으리라.02. 본문- 줄거리1839년 대서양을 건너던 스페인 선박 ‘아미스타드’호에 억류된 53몀의 아프리카흑인 노예들이 반란을 일으킨다. 그들은 싱케이라는 용기 있는 흑인의 주도하에 선원들을 모두 살해하고 아프리카로 돌아가기 위한 살려둔다. 아프리카로 돌아가던 중 마실 물을 구하고자 들린 해변에서 미국의 함대에서 붙잡히고 만다.그들이 아프리카의 어딘가라고 생각했던 해변 사실은 미국의 코네티컷 해안이었다. 스페인 선원이 꾀를 내어 미국으로 향했던 것이다. 미국 순찰대에 흑인들은 모두 체포된다. 흑인들은 목에 쇠사슬이 감기고 철 장에 갇힌 채 아프리카 토속어로, 스페인 선원들은 유창한 영어로 자신들의 심정을 토로한다.재판 첫날,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영어와 낯선 환경에서 겁먹은 표정으로 재판정 한구석에 서있는 흑인들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쇠사슬에 묶여있다. 그들을 둘러싸고 아미스타드호 소유주와 스페인왕실 그리고 인양자인 미 해안 순찰대가 각자 선박과 흑인의 소유권을 주장한다. 스페인왕실은 1795년 미국과 체결한 해상조약 9조를 근거로 선박과 노예는 화물이기 때문에 스페인의 소유라고 주장한다. 재판을 지켜보던 해방노예 출신, 테오도어 질서라는 이면에 있는 왜곡된 인간상을 볼 수 있다. 뒤이은 재판에서 스페인은 흑인들이 스페인의 노예라는 거짓 서류를 제출하고, 볼드윈과 조드슨은 이를 반박할 증거를 찾기 위해 아미스타드호에 간다. 조드슨은 흑인들의 학대와 감금 받은 흔적들을 발견하고 항해중의 상황을 연상하며 공포를 느낀다. 그런 비인간적인 일들이 자신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볼드윈은 포르투칼 노예선 테코라호가 서아프리카 리온에서 이들을 잡아와 하바나로 보낸 기록이 담긴 화물 목록 서류를 찾게 된다. 시에라 리온은 영국령으로 노예제를 폐지한 지역이었다. 화물목록, 아프리카 토속어를 아는 해방노예가 통역한 싱케이의 생생하고 참혹한 증언, 영국 해군 장교의 증언, 볼드윈의 뛰어난 변론은 재판을 유리하게 만든다. 싱케이는 “Give us free”라는 영어문장을 배워 절규와 소망이 응어리진 목소리로 내뱉고, 재판장의 모든 사람들은 감동을 받는다. 흑인 전원은 무죄와 동시에 자유 신분이라는 성곡적인 판결을 받는다.한편 스페인의 11살의 이자벨라 여왕은 미국 대통령에게 항의 서한을 보낸다. 스페인이 미국독립혁명을 도운 이유가 ‘노예제도’가 존재 했기 때문이며, 만일 재판에서 흑인들이 승소한다면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내용이다. 재선을 기대하던 미국의 뷰렌 대통령은 스페인과의 불편한 관계로 나라의 혼란을 걱정하는 남부지역의 표를 잃지 않으려 대법원에 항소한다.기쁨의 축제를 즐기던 싱케이는 볼드윈에게 항소와 다시 재판을 받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화를 낸다. 문명을 앞세우던 국가에서 이미 결정된 판결이 정치적인 이해관계 때문에 완전히 뒤집힐 수 있다는 것을 볼드윈과 싱케이는 서로 이해시켜줄 수 도, 이해할 수 도 없었다. 볼드윈은 대통령을 상대로 싸워야 하는 상황에 한계를 느끼고 전 대통령 존 퀸시 아담스를 다시 찾아가 도움을 청한다. 아담스는 대법원 재판에서 이 사건은 단순한 소유권 분쟁이 아니라 인간 본성에 관한 사건이라고 변론한다. 흑인이 아니었다면 수모를 겪지 않고 오히려 영웅대접이르는 여정이 험난했다.영국 해군은 아프리카 시에라 리온에 잡혀있던 흑인 노예를 탈출시키고, 배위에서 노을을 바라보며 싱케이는 부족민들과 아프리카로 귀향한다. 이자벨라 여왕의 아미스타드호 배상요구는 7명의 대통령이 바뀌어도 계속 되었고, 1864년 애틀란타에서 남군이 패하자 종전하였으며 싱케이는 고향으로 돌아갔지만 마을은 파괴되고 가족은 없었다는 자막으로 영화는 마무리된다.- 역사적 사실과의 비교근대 노예무역은 신세계의 발견과 함께 시작 되었으며, 플랜테이션 농업의 성장은 흑인노예들의 수요를 증가시켰다. 15세기 포르투칼과 스페인이 인디언 노예사냥을 시작으로 17세기 후반 영국과 프랑수도 노예 무역에 가담하기 시작했다. 북아메리카에 흑인 노예가 최초로 수입된 것은 1619년 네덜란드 선박을 통해서였다.노예무역은 유럽, 아프리카. 아메리카 대륙을 연결하는 삼각무역의 형태로 이루어 졌다. 유럽 상인들은 아프리카로 술, 화약, 총기, 유리 장식품, 가공한 조개 껍질들을 가져와 흑인노예와 물물교환 하여 아메리카로 실어 날랐다. 유럽 상인은 아메리카에 노예를 팔아 면화, 담배,설탕 등을 구입해 다시 유럽으로 가져왔다. 300여 년 동안 삼각무역으로 유럽의 여러 나라가 아프리카로부터 신세계로 끌고 간 흑인 노예의 수는 대략 4천만 명까지 이른다고 한다.식민지 노예제도와 노예무역은 유럽 상업자본의 식민지 착취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유럽 제국의 번영에 기여도가 컸다. 교회도 이교도에 자행한 일이므로 이것을 묵인하였고, 정부 이것을 비난하지 않았다. 그러나 18세기 후반에 자본주의의 발달과, 인도주의 ·복음주의 ·민주주의 운동이 일어나면서 ‘인간수렵’의 비인간성과 노예선의 비참한 실정이 전해지자 점차 식자의 비난이 일어났다. 1802년에 덴마크가, 1807년에 미국이 노예무역을 금지하였고, 1814년에 프랑스도 1819년부터 금지한다는 협정을 영국과 체결하였다. 기타 유럽 여러 나라와 새로 독립한 라틴아메리카 제국도 노예무역을 금지하였다. 그러나 서인도제도와 미국 남부의 노 노예의 참담한 상황을 다룬 작품은 많았지만 바다에서의 선상 노예 반란을 다룬 영화는 없었다. 이 영화가 기존의 흑인노예사를 다룬 작품과 차별화 되는 이기도하다. 실제로 노예선에는 조그만한 공간에 성냥처럼 첩첩이 밀착시켜 밀어 넣었고 뜨거운 태양 아래에 쇠사슬로 묶여 있어야 했다. 한번에 많이 실어야 이윤이 많이 남기 때문에 감옥같은 방에 이층 삼층으로 쌓아서 밀어넣기도 했다. 삼소부족과 전염병으로 항해중 노예의 1/3이 죽었고 건강하지 못한 노예는 산채로 수장시키기도 했다. 노예들은 서인도제도에 도착해 ‘길들이기’과정으로 현지적응을 거친뒤 간단한 스페인어나 영어를 익히고 노예시장에서 경매에 붙여졌다. 문명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인간이 인간을 저렇게 대할 수 있을까 하는 공포심이 들었다.스필버그 감독은 영화의 완성도를 위해 역사적 고증을 거치고, 미국으로 끌려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유창한 영어를 쓰는 다른 영화의 흑인캐릭터와 달리 아미스타드의 흑인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토속어를 구사하는 연기를 한다. 원주민의 연기가 부시맨처럼 웃길 수도 있었지만, 진지하고 무거운 분위기를 잘 유지했다. 덕분에 "Give us free"라는 문장이 더 빛을 발한것 같다.역사적 고증과 달리 어색한 장면이 몇 군데 있었다. 모건프리먼이 열연한 조드슨의 인물 설정은, 당시 흑인의 위치를 지나치게 과장하였다. 개혁에 앞장서는 흑인 지도자로 설정해서 전직대통령 아담스 앞에서도 장장하고 자신만만하게 행동한다. 하지만 그 당시 아메리카 북부가 흑인노예폐지 정책을 지지했다고 해서, 흑인차별인 전혀 없던 것은 아니었다. 백인과 완벽하게 동등한 대우는 받지 못했다.‘조드슨’이라는 캐릭터는 가공인물로 노예폐지운동을 하던, 제임스 포튼과 로버트 퍼비슨 이라는 두 실존인물을 합성해서 만들었다. 하지만 아미스타드 사건과는 거의 상관이 없다고 한다. 상케이의 절규에 반응하면 점점 인도주의자로 변해가던 젊은 풋내기 변호사 ‘볼드윈’도 실제 인물과 큰 차이가 있었다. 사건 당시 그는 이미 잘나가던 중견 인권려 만든 영화라고 느꼈다. 볼드윈역의 ‘매튜’와 할리우드 배우가 아닌 주연배우 ‘디몬 하운수’의 연기가 신선했다.아미스타드는 자유를 얻고자 하는 자, 자유를 찾아주려는 자들이 자유를 찾는 여정을 그린 이야기 이다.. 노예로 끌려온 노예들을 구제해주려는 변호사 볼드윈의 노력과 퀸시 애덤스를 보면 자유를 수호하려고 미국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작품 전체적으로 보여지는 노예들의 모습은 자유를 갈망하는 인간을 그리고 있다. 억울한 대우와 핍박을 받으면서도 그들이 살던 고향을 향한 마음과 돌아가고자 하는 의지는 매우 강하게 나타난다. 미국 하면 ‘아메리칸 드림’ 같은 단어를 떠올린다. 자수성가의 꿈을 이룰 수 있는 자유와 평등의 땅이라는 국가 이미지에 큰 매력을 느끼고 부러워한다. 미국의 역사 또한 자유와 평등의 역사라 말할 수 있을까?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소중히 여기는 민주주의 국가 미국에서 벌어졌던 아미스타드 법정사건과 참혹한 흑인노예사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나는 왜 다른 문화권에 사는 흑인 두 명을 보며 멈추어서 생각에 잠겼을까? 잊고 있었던 아프리카 여행에서의 호기심을 구체적으로 알아가는 과정이 되었다. 영화를 보며 아프리카와 미국사 유럽사를 동시에 관심가질 수 있었고 미국의 남북전쟁 발발의 계기를 자세하고도 심도 있게 접한 것 같아서 참 얻을 것이 많았던 영화였다선상반란을 일으키면서 살인을 저지른다. 한 두명도 아닌 대규모의 살육을 이끈다. 살인을 행하는 것에 있어서 그들은 명백한 죄를 저질렀다. 살인할 당시의 그들의 모습은 아미스타드 잔혹하게, 냉정하게 그려진다. 소위 악한 존재로서의 모습인 것이다. 그러나 그들을 무조건적인 악을 규정할 수는 없다. 이유 없이 끌려와 인간 이하의 대우와 갖은 핍박과 모욕을 받은 까닭에, 그들에게는 분노가 쌓였다. 원래부터 악한 존재가 아니라, 악한 노예 상인들에게서 받은 인권 탄압의 분노가 고스란히 악마적 복수심으로 변형된 것이라 하겠다. 또한 싱케이 선상반란을 일으키고자 한 목적의식이 뚜렷했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다.
디자인 개론[만든 이 이름 입력][연극 “안녕, 모스크바” 비평 ]1.서두(논점)3학년이 되면서 더욱더 쌓여가는 과제들 때문에 낮과 밤 구분 없는 틀에 박힌 생활을 하게 되었다. 디자인을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문화를 즐기고 상상력과 감각을 키워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와 반대된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생활에 난 회의감을 느꼈고, 이것을 벗어날 무엇인가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오랜만에 찾은 대학로, 명목상 교양과목의 레포트를 위해 연극을 보러 온 것이지만, 활기찬 거리와 그곳을 지나치는 수많은 사람 들에게서 느껴지는 형형색색의 느낌들을 받으며 나에게 이곳을 찾을 구실을 만들어준 이 수업이 너무 고마워졌다.얼마 전 다른 교양수업 시간에 뮤지컬 ‘지킬박사와 하이드’ 를 보았다. 잘 알려진 유명한 이야기라 그리 큰 기대는 없었다. 그런데 주인공이 어릴 적 즐겨보던 외화 시리 즈 ‘전격Z작전’에 나오던 마이클 이었다. 나는 키트와 함께 악당들을 처치하던 파란 눈의 사나이를 기억해 내고는 반가운 마음으로 뮤지컬을 보았다.지킬 박사와 하이드는 인간의 두가지 본성을 그려낸 작품이다. 지킬박사는 교양 있고 착한 헨리와 온갖 악행을 일삼는 하이드를 오가다가 끝내는 죽음을 맞이한다. 두 가지 본성…. 두가지 측면.. 인간은 물론이고 세상의 많은 것들은 양면성을 가진다. 대학로 극장에서 공연된 연극에서도 많은 양면성을 볼 수 있었다.대중을 위한 정책의 이면엔 희생된 소외된 약자들의 희생이 있다. 니꼴라이를 향한 발렌찌나의 사랑의 이면엔 아들에게 가해지는 상처가 있다. . 로라의 거짓된 말로 치장된 세계 뒤엔 병든 현실이 있다. 안나의 미친 듯한 주정 뒤에는 눈물 같은 따뜻한 마음이 있다. 마리아의 천박하고 자학적인 입술은 니꼴라이와의 사랑으로 인한 한가닥의 희망을 찾기도 한다. 심지어 정신병자 샤샤의 머릿속 어딘가 에도 노벨상을 받았던 명석함이 있을 것이다. 어쩌면 나도 삼류들의 이야기 속에서 일종의 고상함을 찾으려 하는지도 모르겠다.2-1.본론-전개대학로 공연장, 그 곳에서 만난 연좌절하지만 서로 감싸주며 사랑과 위안을 한다. 니꼴라이를 기다린다던 마리아는 발렌찌나와의 다툼끝에 클라라를 따라가서 심한 부상을 입고 돌아온다. 마리아에게 니꼴라이를 찾아주기 위해 사랑하는 연인 샤샤와 로라는 이별하게 된다. 결국엔 아들과의 갈등으로 정신적 충격을 받은 발렌찌나의 마음이 돌려지고 이들은 올림픽의 성화봉송의 축제 분위기 속으로 빨려 든다. 마치 죽을 줄 알면서도 불길로 뛰어드는 불나방처럼...연극은 수정 사실주의 형태로 진행된다. 극은 사실적인 무대와 옷차림 인물들을 기본으로 하고 사건 흐름에도 인과관계를 지닌다. 연출자가 내세운 기획의도는 loveholic, violence, hope이다. 이것은 소외된 이들의 사랑, 소수의 힘없는 이들에게 가해지는 사회의 폭력, 그리고 보잘것없는 삶에서의 작은 희망일 것이다.2-2.본론-연출 분석 VIOLENCE AND HOPE그런데 좀 ‘많이 수정 사실 주의’였다. 극은 재미있게 진행되지만 전체적인 느낌이 붕 떠있는 듯 했다. 극을 보고 나서는 주제의 심각성 보다는 배우들의 여러 외침과 웃음이 기억으로 남았다. ‘안나’라는 한 명의 배우가 큰 영향을 미쳤다. 공간과 공간, 인물과 인물간의 사이를 오가며 그것들을 중재시키는 ‘안나’라는 인물의 역할이 인상 깊었는데, 알콜 중독자이자 부랑자인 그녀의 행동은 상당히 엉뚱하고 극단적으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그 누구보다 그 상황의 내면을 가장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고 느껴졌다. 마리아가 피를 흘리며 임시숙소로 다시 돌아왔을 때 그녀를 가장 챙겨준 것 또한 안나 그녀였다.안나의 양면성은 여러가지가 있다. 첫째는 안나 자신에게서 작용하는 것으로 엉뚱한 쾌활함과 그 뒤에 감춰진 슬픔이다. 두 번째는 안나가 연극 속 세계에 작용 하는 것으로 가혹한 현실과 그것을 웃음으로 승화시켜 얻은 희망이다. 결정적인 세 번째는 연극과 관객 사이에 작용하는 것이다. 바로 무대 위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웃음과 희망의 심벌이 되어버려 관객들이 진지한 감동에 빠지는 데 장애가 되어버리는 양면성이웃음을 적재적소에만 강렬하게 배치해서 이른바 ‘칠때는 치고 빠질때는 빠지는’ 완급 조절을 하면 더 좋을 것이다.달리 생각하면 재미있는 결과가 생긴 것 일수도 있다. 안나로 인해 작가의 기획 의도가 묘하게 변형되었기 때문이다. 스토리와 분위기상 violence의 큰 지배 아래 hope가 여리게 싹터야 할 것 같은데 그 반대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연출자의 의도 일지도 모르는 일이다.LOVEHOLIC소외된 그들은 어두운 삶 속에서 한 줄기 빛, 그들만의 사랑을 찾는다. 안나에게 ‘violence’와 ‘hope’가 나왔다면 다른 이들에게서 ‘love’를 찾을 차례이다. 연극에서는 여러 가지 사랑이 존재한다. 그것은 발렌찌나의 아들에 대한 사랑, 니꼴라이와 마리아의 사랑, 샤샤와 로라의 사랑이다. 여기서 연출자에 의해 성공한 사랑은 샤샤와 로라의 사랑밖에 없다. 이뤄 졌다는게 아니라 잘 표현 되었다는 말이다.발렌찌나, 니꼴라이, 마리아의 연출은 부족한 점이 많았다. 시간 분배가 덜 된 것도 같고 잘 표현되지도 않았다. 결말부분의 니꼴라이가 어머니의 목을 조르면서 갈등하다 발렌찌나가 충격을 받는 장면이 거슬렸다. 진작에 발렌찌나의 집착된 사랑과 그에 비례한 니꼴라이의 만성적으로 쌓여진 불만을 잘 표현했으면 연결이 부드러웠을 텐데 보고 나서야 ‘쌓인 것이 많았었구나’ 하고 생각했다. 니꼴라이와 마리아의 사랑은 용두사미와 같은 꼴이었다. 초반에는 로라와 샤샤가 퇴장하고 마치 주인공인 것처럼 등장해 연신 키스를 해대며 싸우다 달래다 서로의 사랑을 관객들에게 자랑을 했다. 그러나 니꼴라이가 경례를 하고 떠난 뒤 후반에 다시 나와서는 둘의 사랑 확인의 시간 분배도 잘 안 되었고 상황 설정만으로 흐지부지 끌고 간 느낌이다. 마리아의 죽음도 좀 갑작스러웠다. 발렌찌나가 마리아의 상처를 보고 괜찮을거라 말했었다. 발렌찌나가 강인하고 믿음직한 캐릭터라서 상처가 정말 괜찮은 정도 인줄 알았는데 마리아는 그만 맥없이 죽어 버렸다.발렌찌나와 마리아와의 관계에서도 미흡한 부분이 발견된다. 발렌과 눈물에서의 이별장면은 연극을 다시 보고 싶을 정도이다.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던 둘은 서로의 생소한 매력 때문에 서로에게 더욱 끌리는 듯 했다. 세 개의 사랑 중 가장 유치하고 가벼운 사랑일 지도 모르지만 그 유치한 사랑이 어두운 강제 숙소에 슬며시 빛을 비쳐주었다. 또한 그 둘의 사랑을 다룬 장면에서 우리는 낭만적이고 환상적인 무대효과를 많이 볼 수 있었는데, 특히 어두운 무대 위 천장 쪽에 빛나던 조그만 조명들은 마치 밤하늘의 은하수를 보는 듯한 낭만적인 분위기를 연출해 주었으며, 안개가 깔린 무대에서 감미로운 음악에 맞춰 로라가 춤을 추는 장면은 낭만적인 분위기를 연출해주는 동시에 매춘부로서의 삶이 아닌 그녀가 진정으로 꿈꾸는 삶을 엿볼 수 있도록 해주었다. 이렇게 이 연극의 여러 가지 무대요소들은 침울했던 공간을 효과적으로 낭만적인 공간으로 변화시켜 주었다.2-3.본론-연기 분석배우들의 연기는 전반적으로 훌륭했다. 앞서 언급했던 안나는 물론이고 특히 로라의 연기가 완벽한 양면을 연기해서 감동을 준다. 앞서 본론1 전개에서 로라를 ‘거짓말쟁이 창녀’가 아닌 ‘꿈꾸는 배우’라 칭했다. 그 것은 인위적으로 붙인 수식이 아니라 로라역 을 맡은 배우(이하 로배)가 ‘거짓말쟁이 창녀’가 아닌 ‘진짜 배우’를 연기 했기 때문이다.즉 로배는 ‘완벽한 배우인척 하는 것을 연기하는 것’을 행한 것이다. 거짓말을 하며 느끼는 불안감과 매춘부라는 것에 대한 자괴감을 보여주는 대신 정말 배우인 듯한 활달한 표정과 말투 몸가짐으로 더욱 더 연민을 불러 일으켰다. 로배는 연인과의 이별 에서 흘린 눈물로 자신의 역할을 훌륭히 마무리 했다.로라의 양면성이란 활기찬 목소리로 배우라고 외칠 때마다 슬픔 또한 함께 얹어지는 것이다.마리아의 연기 또한 자학적이고 삐뚤어진 자아를 표현했다. 마리아역은 니꼴라이 앞 에서는 쾌활해지고 무대를 뛰어다니는 천진한 모습이지만 즐겁지만 그가 없으면 말이 없고 주고 무대 구석의 자기 침대에서 우울하게 기대어 있는 것이었다. 마배(마리아역을 맡은 에 맞게 연극도 사실적으로 디자인 되었다. 조명과 무대 컬러는 현실을 반영하는 어두운 색감이 주를 이루고 쇠창살이 곳곳에 박혀있는 무대는 건조하다. 각자의 희노애락 이야기들은 무대장치들로 인해 생겨난 음침한 강제숙소의 분위기와 한데 어우러져 관객들을 더욱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게 했다. 특히 내가 이 연극의 무대를 보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치는 무대를 크게 감싸고 있는 철장과 그 뒤에 위치한 계단이었다. 그 계단은 외부세계, 즉 그들을 외면한 모스크바와의 연결통로이다. 하지만 철장은 그 연결통로를 막아버린다. 이 장치들로 인해 하나의 무대에서 내부와 외부라는 두 개의 공간이 생겨났으며 이러한 공간의 분리는 극중 인물들을 더욱 고립되고 소외되게 만든다. 올림픽 성화가 모나코 시내를 지나가는 장면에서 그들을 강제숙소로 몰아쳤던 올림픽이지만 그들은 철장 너머 성화가 지나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올림픽이라는 행사가 다가온다는 것에 대해 기뻐하며 설레한다. 인물들이 철장 뒤에서 손을 흔들며 기쁨과 환희에 찬 장면에서 이 극의 조명과 음향의 효과는 대단했다. 빛의 움직임과 음향으로 인해 나 또한 그들과 같이 축제 속에 존재하는 듯 했다. 한편 환희에 찬 그들을 뒤로하고 마리아는 결국 니꼴라이의 품에서 생의 마지막을 맞이하게된다. 이 장면에선 허공에 떠있던 철근들이 무대바닥 가까이 내려오게 되는데, 이 철근들은 올림픽에 대한 사람들의 환희와 마리아의 죽음으로 인한 절망을 구분지어 주는 듯 했다. 그렇게 그곳에는 기쁨과 절망이 공존하기도 나눠져 있기도 했다. 마리아의 죽음 장면에서의 활기찬 행진곡 사용은 대중의 환호뒤에 한 소녀가 죽어가는 사회의 양면성을 보여주었다. 음향도 러시아의 음악이 적재 적소에 사용되어 슬픈 느낌을 배가 했다.또한 발렌찌나역의 강렬한 인상의 분장과 복장, 연극의 초반을 지배하던 그녀의 메마른 구두 소리는 자신의 목소리와 더불어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3.결론앤디 윌리엄스란 가수의 오래된 팝송중에 'THE SHADOW OF YOUR SMILE'라는 노래가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