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집 토토로’ 를 보고서론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나는 방학동안 볼 만한 것이 무엇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친구네 집에 놀러갔다 책꽂이에 있는 ‘이웃집 토토로’라는 제목과 표지 그림을 보고 나도 모를 동심으로 빠져들게 되어 친구에게 빌려달라고 해서 보게 되었습니다.본론한 시골마을에 메이의 가족들이 이사를 오면서 이웃들과 생활을 하면서 일어나는 신기한 일들을 그림으로 그려놨습니다.메이의 가족은 모두 네 식구입니다. 엄마는 편찮으셔 병원에 입원을 하시고, 아빠는 학교에서 연구원으로 일을 하시고. 사츠키는 학교를 다니고 메이는 아직은 어린이입니다.이사를 하며 집 청소를 하다가 지붕위 다락에 까막 검둥이라는 먼지 뭉치를 발견하고, 이곳저곳 집을 돌아다니면서 집주위에서 도토리를 찾아다니는 신기하게 생긴 동물을 발견하여서 그 동물을 따라가다 보니 우리의 주인공인 토토로가 잠들어있는 신비의 동굴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잠들어있는 토토로를 보는 메이의 눈이 마치 나도 그 장소에 있는 것처럼 실감이 나서 나도 모를 웃음을 지어보이곤 했습니다.그 시각 언니인 사츠키와 아빠가 없어진 메이를 찾았는데 메이는 집뒤 덩굴속에서 곤히 잠든 채 발견이 되었습니다. 잠에서 깨어난 메이는 아빠에게 자랑을 합니다.토토로를 봤다고 아주 아주 큰 토토로를 봤다고 그러나 아무리 말을 해도 아빠와 언니는 믿지 않았습니다.시골생활을 하면서 메이와 언니는 하루 하루 즐겁게 보내고 있던 어느 날 아빠가 늦게 오신다고 해서 메이와 사츠키는 아빠마중은 나가서 다시 한번 토토로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비를 맞고있는 토토로에게 자신의 우산을 빌려주고 토토로는 빗방울 놀이를 하다 고양이 버스를 타고 갔습니다. 정말루 실제로 저렇게 생긴 동물이 내 옆에서 있다면 그냥 그 자체만으로 신기하고 그 푹신한 몸에 살며시 기대에 볼 듯하다.그런데 드디어 일이 터지고 말았다.옆집 할머니 댁 텃밭에서 신선한 야채와 과일을 따서 우물에 넣고 차가워지기를 기다리고 있던중 병원에서 전보가왔다는 말을 듣고 사츠키는 옆집 할머니에게 메이를 맡기고 전보를 받으러 가는데, 철없던 메이가 따라간다고 나서다 그만 길을 잃은 것이다. 그거 때문에 언니와도 길이 엇갈려 온 동네 어른들은 없어진 메이를 찾아서 동네를 전부 뒤져보기도 했는데 찾은건 메이의 신발뿐이었다메이를 찾으며 울고 있던 사츠키를 토토로가 도와주었다.자기들만이 타고 다니는 고양이 버스를 불러서 부탁을 하여 그 고양이 버스를 타고 메이를 찾아다니다 동네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울고 있던 메이를 찾은 것이었습니다.사츠키는 메이에게 왜 말 안듣고 따라왔냐며 혼을 내니 메이는 자기가 딴 옥수수를 엄마에게 가져다 주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고양이 버스는 그 자매를 엄마가 있는 병원에 데려다 주고 메이가 그렇게 엄마에게 주고싶었던 옥수수를 엄마의 병실 창문에 놓고왔습니다.
1. 책을 읽기 전...‘택리지’ 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선생님에게 한번정도는 들어보고 지리 교과서에서도 언급이 되었던 책이었다. 하지만 지리학에 특별한 관심이 없어서 인지 쉽게 읽어보지 않았던 책이었다. 택리지의 원문은 당연히 한자로 되어있어서 내가 보기에는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번역되어있는 책 중에 한권을 읽기로 했다.‘택리지’책을 읽으려고 책을 찾던 중에 이중환이라는 작가에 대해서 궁금증이 생겼다.처음 책을 쓸 때 어떤 의도로 책을 써나갔으며 지역 한곳 한곳의 특색 있는 자료 직접 발품을 팔아 모았는지에 대해서도 궁금증이 생겨났다.이중환 이란 인물은 조선후기 문신으로 본관은 여주, 자는 휘조(輝祖), 호 청담(淸潭)·청화산인(靑華山人)이다. 성호 이익의 문하에서 학문을 배워 일찍부터 실사구시의 학풍을 이어 받았다. 1722년(경종 2) 노론 대신들이 세가지 방법을 동원하여 경종을 제거하고 왕위를 찬탈하려고 모의했다는 목호룡의 고변으로 임인옥이 발생하였을 때 그가 말을 빌려 준 것이 문제가 되어 영조가 즉위한 후 구금되었다. 이 일로 인해 1726년 절도에 유배되었다가 이듬해 풀려났으나 사헌부의 탄핵으로 다시 유배되었다.유배에서 풀려난 후에는 전국 각지를 지역의 교통 지리 문화 인물 특산물 등을 정리하여 인문지리서인 ‘택리지’를 저술 하였다고 한다.2.택리지의 구성‘택리지(擇里志)’는 크게 사민총론(四民總論), 팔도총론(八都總論), 복거총론(卜居總論), 총론(總論)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팔도총론과 복거총론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1)사민총론(四民總論)옛날에는 사대부가 따로 없고 모두 민이었다라고 하였다. 사대부의 신분이 농?공?상으로 달라지게 된 원인과 내력을 서술하였다.옛날에는 사?농?공?상의 의미가 신분적 의미가 아니라 단지 그들이 종사하는 업종의 명칭에 불과했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 요순시대에는 임금도 밭을 갈며 즐거워했고 선비가 되지 못한 자도 진실로 성인의 법을 따라 예도를 지켰다고 한다. 하지만 후세에 이르러 사대부는 농?공?상의 일을 할 수 있지만 농?공?상은 어리석고 술법에 막힘이 있어 사대부의 일을 하지 못하게 되니 사대부를 중하게 여기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중환의 생각에는 계급 차별을 없애야 한다는 개방적이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2) 팔도총론(八都總論)팔도총론에서는 한반도의 역사와 지리를 말하였다. 책을 읽으면서 ‘택지리’가 지리서적이 아닌 역사서적으로 보이게 되어 새로이 우리나라 역사를 읽는 것 같았다. 그때 당시의 행정 구역에 해당하는 팔도산맥과 물의 흐름을 말하며 풍수학적 의견을 말하고 있다. 여기서 팔도에 해당하는 곳은 평안도, 함경도, 황해도, 강원도, 경상도, 전라도, 경기 순으로 서술하고 있는데 지금의 행정 구역과 비교해 봐도 별다른 차이는 없는 것 같다. 그 많은 팔도 가운데 유독 눈길이 갔던 곳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경기도 였다. 경기도는 죽산의 칠장산은 경기도와 충청도의 경계에 우뚝 솟아있다고 했다. 여주는 장헌대왕 세종을 모신 땅이며 ‘마땅히 동방의 성인을 장사 지낼 곳이다’라는 말이새겨진 표석을 얻었던 곳이며, 바닷길의 요충지 강화와 강화의 작은 포구 교동도, 옛날 학이 물속 돌줄기 위를 걸어가는 것을 보고 섬사람들이 길을 찾아냈다는 제부도등 경기도 지역의 곳곳의 특색을 설명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반도의 길이가 남북3척, 동서5백리라고 처음으로 설명하였다. 또, 팔도총론에서 지리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그 지역과 관계있는 인물과 사건을 설명하여 인문 지리적인 성격을 보이기도 했다. 이러한 사건의 열거해 놓아서 인지 책을 읽는 중간 중간의 지루함을 달랠 수 있었다.3) 복거총론(卜居總論)처음 눈에 들어온 문장이 있었다.「무릇 사람이 살터를 정할 때는 첫째 지리가 좋아야 하고, 둘째는 생리가 좋아야하며, 셋째 인심이 좋아야 하고, 넷째 산수가 좋아야 한다고 한다. 이중하나라도 모자라면 좋은 땅이라 할 수 없다.지리가 아무리 좋아도 생리가 부족하면 오래 살 수 없고, 생리가 아무리 좋아도 지리가 나쁘면 그 또한 오래 살 수 없다. 지리와 생리가 모두 좋아도 인심이 나쁘면 반드시 후회할 일이 생기고, 가까운 곳에 즐길만한 산수가 없으면 마음을 풍요롭게 가꿀 수 없다.」라고 하는 이 문장이었다.이 짧은 문장을 보면서도 복거총론 부분에서는 사람이 살만한 곳의 조건을 들어 설명하며, 지리와 생리, 인심, 산수를 나누어서 설명하였다.첫째로 지리를 보면 수구는 닫혀있어야 하고, 사람들은 밝은 기운을 받고 사는데 하늘이 곧 밝은 빛이라서 하늘이 보이지 않는 곳은 살기 어려운 땅이라고 하였다. 또 사방에 산이 우뚝 솟아 있어서도 안 되고, 주산은 청명하며 아담한 것을 으뜸으로 삼으며, 산줄기는 약하고 둔하며 생기가 없으면 안 되고, 물은 물가를 가릴 것 없이 토질이 모래로서 굳고 조밀하면 우물물이나 샘물이 맑고 차고 살기에 적당하다고 한다.책을 읽어 내려가면서 ‘수구’라는 단어를 모르겠어서 사전을 찾아보니 ‘저수지의 물이나 하수를 끌어들이거나 흘러 내 보내는 곳’ 이라고 적혀있었다. 사람이 사는 장소가 중요하다고 말은 들었으나 옛 선조들이 이렇게 하나하나 신경 쓰며 집터를 잡는다는 생각은 하지 못 하였다.둘째 생리를 말하였다. 생리라 하면 인간들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물질적인 모든 재화를 말하는 것이다. 좋은 땅이라고 평가하는 한마지기의 땅에 60두의 곡물을 거두어들여야 하며 30두 이하를 거두는 땅은 메마른 땅이라서 사람이 살지 못한다고 하였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옥한 땅은 전라도의 남원과 구례, 경상도의 성주와 진주등지이다. 이곳은 벼를 140두를 거두어들이고 가장 적은 곳이라도 80두는 거두어들인다고 하였다. 땀 흘려 거두어들이는 곡식을 보면 뿌듯했을 것 같다. 또한 농사뿐만이 아니라 배로 왕래를 하면서 물자를 운반하여 운반비를 절약하기도하였다. 우리나라는 바람이 세고 물살이 거세어 경상도 동해안 여러 고을과 강원도 영동, 함경도 전 지역에서 배가 왕래하기도 하였다. 배를 움직이는 물살이 거센 곳에서만 교역이 활발히 이루어지는 것을 알았고, 세금을 운반하는 배에는 항시 관원들이 철저히 관리하는 것도 알게 되었다. 지금의 모습과 별반 다르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셋째 인심을 보면 옛 선조들은 사는 고장이 어진 풍속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후손들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이 간다하여 그 지역의 풍속을 살폈다고 한다.그리고 우리나라의 인심은 평안도가 가장 후하고, 경상도는 진실하고, 함경도는 백성이 굳세고, 황해도는 사납고 모질다. 또한 강원도는 어리석고 거칠며 전라도는 간사한 것을 좋아해 쉽게 일을 그르친다고 하였다. 경기도는 백성이나 물자가 시들하고, 충청도는 오로지 세도와 이익만을 챙긴다하였다. 한사람을 알기도 어려운데 한지역의 사람들을 격어서 정의를 내려놓은 것을 보면 이중환은 한쪽으로 치우치기보다는 중립이라는 입장에서 있는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