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에서 공동체로-국제관계의 새로운 접근-전 세계에는 약 200여개가 넘는 국가들이 존재 한다. 국가들의 수가 다양한 만큼 각 국가들이 추구하는 가치 또한 다양하다. 세계가 발전하는 동시에 다양한 국가들의 입장을 수용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방안이 필요한 것일까? 이 책의 저자는 이에 대한 해답으로서 공동체주의를 제시한다. 저자는 앞으로 세계가 발전적인 방향으로 걸음을 내딛기 위하여 범지구적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비록 이 대안이 완벽한 대안이 아니긴 하지만, 수십년간 지속되었던 여러 국가간의 갈등관계를 해소할 수 있는 하나의 대안으로 자리잡을 수 있다는 것은 확실한 것처럼 보인다. 물론 저자의 주장은 굉장히 이상적인 측면에서 현재의 국가관계를 해결하려고 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저자의 주장이 약점을 가지고 있다는 비판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에 대한 비판과 대안, 그리고 저자의 주장으로 이뤄질 수 있는 범지구적인 공동체에 대한 논의를 이끌어 보자.저자가 가장 핵심적으로 주장하는 범지구적 공동체에 대하여 논의하기에 앞서, 독자들은 범지구적 공동체를 형성하는 기본 테제가 되는 “범지구적 규범종합”에 대한 이해를 우선적으로 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즉, 우리들은 저자의 이론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위하여, 저자가 만들어 나가고자 하는 좋은 사회란 어떤 사회인가에 대해 알아야만 한다는 이야기이다.저자는 “공동체주의적인 관점에서 규범종합이 바람직한 사회의 규범적 특징들을 지향하는 방향으로 나아감에 따라 더 많은 진보가 이루어져야 한다”) 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저자는 서양의 가치만을 우월하게 여겨왔던 기존의 서양 중심적인 사상에 날카로운 비수를 꽂는다. 서구인들의 사회는 개인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반면, 동양인들의 사회는 사회질서의 유지를 위한 공동체적인 사고를 중요하게 여긴다. 하지만 저자가 주장하는 범지구적 공동체적인 사회는 과거와 같이 하나만의 사고를 강조하는 사회가 아니다. 저자는 많은 동 ? 서양 국가들의 국가관리 체제가 양 극에서 중간지대로 이동해가고 있음을(비록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다양한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세계를 하나의 범지구적 공동체로 묶어가는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또한 사회질서의 유지가 무력과 같은 강압보다 설득과 도덕적인 기반에 의존하여 이루어질수록 좋은 사회로 보았다. 개개인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좋은 사회의 모습은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형성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사회에 대한 모든 사람들의 공통된 합의를 유도해 낸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저자가 제시하는 좋은 사회의 기본적인 틀에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동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어떠한 신념에 대한 절대적인 신봉이 아니라, 다양한 신념들을 아우를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규범을 공유하지 못한다면 범지구적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저자는 이라크 전쟁을 예로 들어 미국이 규범에 대한 동의나 공유 없이 독단적으로 국제관계를 주도해 나갔을 때, 많은 동맹들의 반대에 큰 어려움을 겪었던 사례를 언급한다. 이는 범지구적인 사회뿐만 아니라 모든 사회에서도 통용되는 사실인 것 같다. 우리나라의 사례만 보더라도, 지도자의 독단적인 국가 운영이 행해질 때 대중들은 매번 두 팔을 걷고 지도자에게 저항하였었다. 이는 정부가 국민들과 공유하는 규범이 없이 독단적으로 정책을 시행하였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그리고 범지구적 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하여 행해져야 할 다양한 외교책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정책은 “봉사를 통한 학습법” 이라는 정책이었다. 소위 말하는 개발도상국가 혹은 후진국들에 대한 원조는 대부분 강대국이 후진국에게 물자를 지원하는 수준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봉사라는 것은 일방적으로 행해져서는 본래의 의미를 상실할 수 밖에 없다. 상대적으로 약자라고 인식되는 사람들에게도 그들에게 봉사를 하면서 봉사를 제공하는 사람들이 그들로부터 다양한 것들을 배워간다는 사실을 인식시켜줘야 생산적인 활동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외교정책은 현재 우리나라의 대북관계를 호전시키는데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이러한 종류의 미래를 바라본 외교정책보다 더욱 중요한 건 현대사회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범지구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우선시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이러한 부분도 놓치지 않고 기술하고 있는데, 우선 테러를 예방하기 위한 대책으로 불량국가들에 대한 개방과 탈확산화를 이야기한다. 사실 테러라는 사실이 발생하여 많은 인명피해가 일어나는 것 보다 더 무서운 것은 테러를 지원하는 “불량국가”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테러보다 더 무서운 것은 대량살상무기의 확산이다. 저자는 이를 저지하기 위하여 불량국가들의 개방을 이끌어 내야하며 그들을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들과의 타협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강제적인 방법(군사력)을 동원하서라도 탈확산을 유도해내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바이다. 그러나 저자가 주장하는 방식은 굉장히 큰 위험을 야기할 수도 있는 방법중에 하나이다. 현재 발생하고 있는 테러들을 살펴보면, 이슬람 국가들의 비이슬람 국가에 대한 테러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과연 이 문제가 무슬림들의 비이성적인 사고방식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미국과 그 외의 강대국들이 행사하는 패권주의적 성향과 횡포로 인하여 이러한 문제가 기인한다는 생각이 다분히 드는 부분이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이러한 것들에 대한 고민이 요구된다는 생각이 든다.또한 테러로 인한 인명피해 혹은 테러확산을 통한 인명 피해의 방지에만 중점을 두고, 강대국 주도의 전쟁에는 별다른 주안점을 주지 않았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강대국 주도의 전쟁에서도 테러와 비슷한 혹은 그 이상의 인명 피해가 발생한다. 비록 필자가 이라크전쟁에 대한 언급을 하였던 건 사실이지만, 이라크 전쟁의 비인간성과 인명 살상에 관하여 강력하게 비난한 부분은 찾아보기 힘들다. 국가의 국제적인 관계에서 가장 중요시 여겨지는 부분 중 하나는 국가간의 갈등과 분쟁을 막고 전쟁을 방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는 이에 대한 언급이 잘 되어있지 않다. 지금까지 생각해오고 배워왔던 올바른 국제관계는 강대국위주의 힘의 행사가 아닌 다양한 국가의 목소리가 잘 어우러질 수 있는 그런 관계라고 생각한다.이책에서 주장하는 범지구적 공동체를 이룩하기 위한 핵심 도구는, 초국경적인 공동체주의 조직(TCBs)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현재 한 국가에 국한되지 않고, 세계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테러나 초국경적 조직적 범죄, 인신매매, 환경파괴, 전염병, 불법 복제, 사이버 범죄등과 같은 사건들을 해결하기 위하여 존재하는 기존의 조직들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심각한 한계를 가지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기존의 조직(UN과 같은 기구)들은 어떠한 국가에게 명령을 할 수 있는 입장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권고를 할 수 있는 입장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의 영향력을 넘어설 수 있는 그러한 압도적인 위치를 가진 조직이 필요 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역할을 비교적 잘 수행하고 있는 기구들에 대한 예를 들며, 이러한 조직들이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한 설명 또한 제시한다. 범지구 안보권위체(GSA)와 같은 단체들의 활동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문제는 그러한 단체들이 각 국가들의 동의를 어떻게 이끌어 낼 것인가라는 것이다. 국가들의 합의를 이끌어 내지 못한 채, 그들이 생각하는 정당성에 근거하여 수많은 국가에게 일방적으로 명령한다면 그들의 주장은 아무런 효력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의 주장이 정당성을 가지고 모든 국가들에게 영향력을 미치기 위해서는, 과연 어떠한 대안이 필요한 것일까? 이에 대한 명확한 대안이 필요하다. 또한 모든 국가들이 “정당하다”고 여길 수 있는 대안은 어떤 것인지, 그에 대한 명확한 정의 또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면 작가의 주장은 그저 무릉도원에서 뜬구름 잡는 수준의 논의에 그치게 될 가능성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문화를 읽자!글쎄, 문화란 무엇일까? 사실 내가 지금까지 문화라고 생각했던 것들은 헬레니즘이나 르네상스와 같은 예술문화, 그중에서도 특히 서양의 고전 예술이 대부분이었다. 나뿐만 아니라 입시를 위하여 열심히 달려온 많은 대학생들 또한 이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전에서 문화란 무엇인가 찾아보니, 문화란 “자연 상태에서 벗어나 일정한 목적 또는 생활 이상을 실현하고자 사회 구성원에 의하여 습득, 공유, 전달되는 행동 양식이나 생활양식의 과정 및 그 과정에서 이룩하여 낸 물질적·정신적 소득을 통틀어 이르는 말. 의식주를 비롯하여 언어, 풍습, 종교, 학문, 예술, 제도 따위를 모두 포함한다.)”라고 나와있었다. 사실, 이러한 정의를 보고 약간의 충격을 받았다. 거창한 예술만이 문화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던 사회의 모든 양식들이 문화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말이다. “문화의 발견”이라는 책 또한 이러한 사실을 충분히 깨닫게 해준다. 이 책의 부제를 봤을 때 이런게 어떻게 문화가 될 수 있는지 많은 의심이 들었다. KTX라든지 찜질방은 우리 생활 주변에 있는 일상에 불과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소소한 일상에서도 충분히 문화에 대해서, 좀 더 범위를 좁히자면 현대 한국 사회의 문화가 어떤 것인지를 파악해 낼 수가 있었다. 지금까지 나는 사회 현상을 눈으로 보기만 했지, 사회 현상의 내면을 깊게 파악하고 읽어내지 못했었다. 아니 그러한 시도조차 하지 않았었다.대부분의 인간들은 변화하는 걸 싫어하고, 규격화된 제도속에서 마음 편하게 웅크려 사는걸 좋아한다. 그리고 사회는 인간의 이러한 본성을 악용하여 모든 인간들이 규격화 되도록 강요한다. “편의점”은 이러한 인간들의 본성을 매우 잘 이용한 시설이다. 내가 처음 편의점을 봤을 때의 느낌을 표현하자면 충격 그 자체였다. 24시간 내내 화려하게 켜져 있는 조명, 들어가면 반갑게 인사해주는 아르바이트생들, 갑자기 필요한 물품이 생기면 언제든지 가서 물품을 살 수 있는 그런 곳,,,물론 할인마트에 비하면 가격이 약간 비싸긴 하다는 게 흠이긴 하였지만,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다는 편리함에 가격문제 따윈 신경 쓸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편하기만 한 편의점의 운영 시스템을 알게 되니 처음 편의점을 접했을 때와는 다른 충격을 받게 되었다. 어느 편의점을 가든지 비슷한 인테리어를 가지고 있으며, 종업원들의 동일한 접대 멘트들에 익숙해진 것이 내가 편의점에 자주 가는 가장 큰 이유중에 하나였다. 허나 “맥도날드와 맥도날드화)”에 제시된 ‘각본에 의한 고객과의 상호 작용’에 의해 내가 편의점을 가고 있었다는 걸 깨닫고 나니 공포감이 밀려오기 시작하였다. 각 편의점의 본사에서는 POS시스템을 이용하여 각 가맹점마다 완전 맞춤형의 물품을 공급한다. 심지어 CCTV를 통하여 고객들의 정보를 입수한다. 나이별로 어떤 물품을 좋아하는지, 어느 정도 수량의 물품을 구입하는지도 녹화된 영상을 통해 본사로 전송된다. 나는 더 이상 구멍가게에서 아저씨와 반갑게 인사하는 그런 고객이 아니다. 그저 던힐상표가 붙은 담배를 사고 신라면을 사고 참치김치김밥을 사가는 20대초반의 남자가 될 뿐이다. 소름이 끼친다. 편의점은 겉으로는 “모든 사람들에게 편안함을 주는 공간”이지만 그저 ‘남들에게 신경 쓰는 걸 귀찮아하는 도시인들의 이기주의를 고착화 시키는 공간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자꾸만 들게 되었다.이는 비단 편의점에서만 발생하는 문제는 아니다. 학교라는 공간 또한 마찬가지이다. 혹자는 학교에서 친구들과 부대끼면서 많은걸 배우는데 그게 무슨 헛소리냐? 라고 반문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아는 대한민국의 학교는 1+1=2 라고 강요하고 이와 같은 규격화된 사실을 외우고 규격화된 사실에 의하여 행동하는 인간이 되도록 강요한다. 대한민국의 학교, 특히 고등학교는 더더욱 그렇다. 오로지 대학 입시만을 위하여 학생들을 공부시키고, 시험에서 뒤처지는 학생들은 과감히 잘라내버린다. 그리고 학생들에게는 무한경쟁을 요구하며 똑같은 교과서로 공부하고 똑같은 생각을 해야만 답을 낼 수 있도록 한다. 2000년에 있었던 OECD 회원국들의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학업성취도 조사결과 한국학생들의 협동 학습 능력이 가장 뒤떨어졌다고 한다. 이는 학교에서 타인과의 관계맺음을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 규격화된 틀에 박혀 남들과 경쟁하는 법만을 가르쳐 주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의 저자 김찬호 씨가 그랬듯이 학교란 관심의 그물망 속에서 마음의 부피를 키우는 관계, 지적 정서적 상호작용을 통해 각자의 잠재력을 이끌어 주는 공간이 되어야만 한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학생들은 모던 타임즈의 찰리 채플린과 같은 기계 부품이 되어버리고 말 것이다.둘째로, 현대사회는 인간을 규격화 시킬 뿐만 아니라 타인과 단절되어 살도록 강요한다. 물론 직접적으로 강요하지는 않지만 말이다. 서울로 대학을 다니기 전까지 20년을 아파트에서만 살았는데, 남들과 단절되어 살고 싶어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살펴볼 수 있었다. 나만해도 그랬었다. 아니 지금도 그렇다. 일단 비밀번호를 누르고 아파트로 들어간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른다. 그리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 아무도 오지 않기를 내심 바란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같은 라인에 사는 “얼굴만 아는” 누군가가 오면 정말 불편하고 갑갑하다. 그리고 엘리베이터가 도착하면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12층 버튼을 누른다. 그리고 다시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으로 들어간다. 다시 아무런 사람도 마주치지 않았다는 안도의 한숨을 쉰다. 이제 내가 할 일은 편안히 집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 일밖에 남지 않았다. 우리 가족이 아파트 관리에 노력하지 않아도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모든 일을 다 처리 해준다. 우리가족이 할 일은 제때제때 관리비를 납부하는 것이다. 이 얼마나 좋은 세상인가? 하지만 뒤집어 생각해보면 콘크리트 벽속에 갇혀서 나 혼자 지내는게 과연 옳은 것일까? 라는 생각이 들어 속이 쓰리다.아! 물론 우리주변의 모든 것들이 현대인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지 메이킹이니 뭐니 해서 항상 자기를 포장하려고만 하고 거짓된 겉치레로써 갑갑하게 세상을 살아간다. 적어도 내 기준으로는 그렇다. 그리고 갑갑하게 포장된 상자 속에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아간다. 이러한 사회에서 아주 가끔은 가면을 벗고 유희를 즐기고 싶다. 그러나 축제 문화가 멸종된 우리 사회에서 유희를 즐길 공간을 찾기는 매우 힘든 일이다. 이러한 현실 사회에서, 노래방은 현대인들이 아주 손쉽게 유희를 즐길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특히 술이라는 매개체의 도움을 받을 때 그 유희는 극대화된다. 저자가 그랬듯이 노래방에 들어가는 순간 소리의 즐거움으로 가득 채워지는 그 시공간에서 우리는 체면이라는 가면을 벗고 호모루덴스적인 본능에 충실할 수 있게 된다. 사람들은 각양각색의 나르시스트가 되어 현실을 잊고 유희를 즐긴다. 이전까지 어색했던 관계를 맺고 있던 사람들도 노래방 속에서 자신의 진실된 모습을 드러내며 서로에게 한걸음씩 다가갈 수 있게 된다.또한 북적대는 길거리에서 사람들의 진솔한 냄새를 맡고 유희를 즐기고자하는 자신의 에너지를 마음껏 분출하기도 한다. 2002년 월드컵에서 대한민국 국민들은 시청앞 광장에 모여 약체인 우리나라가 이탈리아, 스페인과 같은 강팀들을 격파해 나가는 것을 미치도록 응원하였다. 이뿐만 아니라 길거리에서는 B-Boy들의 공연도 볼 수 있으며, 사회에서 소위 비주류라는 소리를 듣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 .길거리에서부터 출발한 응원문화를 통하여 축제문화가 부족한 우리나라에서 잠시나마 유희를 즐기며 강자에 의해 억눌렸던 약자의 의견을 표출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가부장 권력의 표현으로서의 성희롱 문제1. 들어가는 말가부장 권력의 표현으로서의 성희롱 문제에 대하여 논의하기 전에, “성희롱”이라는 개념에 대한 정리가 우선되어야 생각한다. 백과사전에서 정의하는 한국사회에서의 “성희롱”이라는 개념은 “업무, 고용 기타 관계에서 공공기관의 종사자, 사용자 또는 근로자가 그 지위를 이용하거나 업무 등과 관련하여 성적 언동 등으로 성적 굴욕감 또는 혐오감을 느끼게 하거나 성적 언동 기타 요구 등에 대한 불응을 이유로 고용상의 불이익을 주는 것") 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정의는 현실 사회에서의 일반 대중들이 인식하는 성희롱이라는 개념과는 상당한 거리감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성희롱이라는 개념을 “성적 성질의 언행 또는 수용자의 성 등에 근거한, 상대방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성적 성질의 시각적,언어적, 또는 신체적 행태 등이며 상대방의 심리적, 신체적, 정신적, 또는 경제적 및 물질적 피해를 초래하는 언행”)으로 정의하려고 한다.이러한 성희롱은 특히 남성들에 의하여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러한 상황은 봉건 사회에서 가장권(家長權)의 주체가 되는 존재인 가부장에 의한 “가부장적 권력”이 우리사회에 뿌리 깊게 박혀있는 현실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위에서 지칭한 가장권이 행해지는 공간은 단순히 개인적 측면의 가정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 혹은 사회 등등의 다양한 집단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과연 성희롱은 어떠한 점에서 가부장적 권력의 표현의 한 방식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 필자는 성희롱으로 대변되어 표현되는 가부장적 권력의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한다.2. 가부장적 권력에서 기인하는 성희롱혹자는 성희롱이라는 것이 단순히 성적인 농담의 수준이며 대수롭지 않은 문제로 치부해 버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는 성희롱에 대한 정확한 이해의 부족에서 기인하는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사례가 있다.『외국인 기업에 정규직으로 알고 입사했으나, 채용 후 3 개월간을 임시직으로 일하나는 말에 수습 기간으로 알고 받아들였다. 그런데 60세 지사장이 “너를 좋아한다”는 등의 말로 수차례 치근거리기 시작하였다.........어느날 지사장은 그녀에게 강제로 키스를하며 성적인 행위를 하려고 하였다. 뿌리치고 방을 나와버린 오후, 지사장으로부터 회사를 그만두라는 통지를 받았다. 이유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과연 그녀의 능력이 정말 부족하였던 것이었을까? 그녀에게 성희롱을 행한 가해자는 그녀를 고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를 전제로 그녀에게 성희롱하였고, 그녀가 이를 거부하자 그녀를 해고시켜버렸다. 이는 회사 내부에서 가부장적 권력을 가진 지사장이 그의 권력을 바탕으로 그녀에게 사회적으로 억압을 가한 것이다. 이렇게 고용과 직결된 문제뿐만 아니라, 자신의 행위가 다른 사람들에게 성적인 불쾌감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한 후에도 이러한 행위를 반복하는 경우에도 이는 성희롱에 포함 될 수 있다.특히나 이러한 사례들은 대부분 남성에 의하여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통계청의 자료에 의하면 여성 직장인 중 성희롱을 당한 경험이 있는 여성은 60%를 넘는다고 한다. 이에 반해 남자에 대한 성희롱은 이의 절반 수준도 안되는 수치를 띄고 있었다. 남성에 의한 성희롱이 압도적인 비율을 차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사회 전체적인 구조에서 기인하는 문제라고 볼 수 있다. 들어가는 말에서 언급했듯이 대한민국 사회는 가부장적 악습이 아직까지 존재하는 사회이다.(물론 이는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여러 국가에서도 현존하는 문제이지만, 대한민국에서는 문제의 심각성이 타 국가에 비해 굉장히 심각한 편이다.)3. 현재 상황의 문제점현실적으로 남녀간의 사회적 지위의 격차가 존재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러한 사회에서 남성이 여성의 위에서 권력을 행사하는 행위는 사회적 약자인 여성들을 억압하는 행위이다. 특히 지금까지 계속 언급해왔던 성희롱은 이러한 억압의 대표적인 사례로서 현재의 모순된 사회구조를 유지해가는 기제인 것이다. 물론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활발해진 현대 사회에서 남성들과 여성들의 상대적인 사회적 지위의 격차는 과거의 사회와 비교하여 상당히 줄어든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문제는 여성들의 지속적인 사회진출에도 불구하고 가부장적 권력의 답습으로 인하여 여성들의 공식적인 권위가 더 이상 향상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대다수의 남성들이 이러한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거리낌 없이 성희롱을 행하고 있다는 것도 큰 문제이다.사회전체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측면에서도 성범죄는 피해자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기 때문에 비윤리적이고 반인권적인 범죄행위이다. 특히, 가부장적인 사회구조 속에서 여성은 사회적인 약자의 위치에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누군가에게 성희롱을 당하더라도 이를 해결할 방법을 찾지 못한 채 홀로 마음 속 깊은 곳에 이 상처를 묻어두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성희롱을 당한 여성이 가해자에게 이를 항의하면 돌아오는 말들은 대부분 “뭐, 장난으로 한걸 가지고 그래?” “너무 예민하게 반응 하는 것 아니야?”라는 수준의 답변이다. 또한 이러한 문제를 법적으로나 어떠한 규범적으로 해결하는 건 상당히 번거롭고 힘든 일이기 때문에, 피해자는 이중 삼중의 고통을 겪게 될 수 밖에 없다. 성희롱 피해자의 대다수가 청소년 혹은 사회에 갓 진출한 여성들이라는 것을 감안 한다면 이는 앞으로 사회를 이끌어나갈 주역들에게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할 무거운 짐을 주게 되는 것이다.4. 대안- 제도적 차원의 보완이러한 상황을 바꾸기 위해서는 어떠한 대안이 필요한 것일까?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하여 잠재적으로 성희롱이 발생할 수 있는 상황들을 조기에 단절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출퇴근 하는 시간대에 지하철에서는 성희롱 문제가 빈번하게 발생하곤 한다. CCTV를 통하여 이러한 상황을 예방하겠다고는 하지만 이러한 대안이 큰 효력을 이끌어 내는 것처럼 보이진 않는다. 출퇴근시 지하철 여성 전용칸 설치와 같은 구체적인 대안을 통해 성희롱을 미연에 예방해야 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