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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릴린먼로 마지막 유혹전시회를 다녀온 후 감상문
    마릴린 먼로의 마지막 유혹 展 “The Last Sitting”지난 9월 23일, 학교 가까이에 위치한 종로구 신문로2가 1-116번지 광화문 조선일보 미술관에서 전시중인 사진작가 버트 스턴의 ‘마릴린 먼로 마지막 유혹展’에 다녀왔다.덕수궁 미술관의 ‘페르난도 도페르展’ 과 ‘마릴린 먼로 마지막 유혹展’을 두고 고민했으나, 학교 등굣길에 보이는 프라자 호텔의 외벽에 마릴린 먼로의 매혹적인 핑크빛 포스터와 ‘아시아 최초’라는 수식어가 더욱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이 전시회는 미국이 낳은 20세기의 최고 섹스심벌인 마릴린 먼로가 죽기 6주 전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로 이루어져 있다. 한마디로 마릴린 먼로의 마지막 사진이며, 그녀의 회고전인 셈이다.이 사진전이 19세 미만 관람불가여서 왜 그런지 궁금했는데, 사진전을 관람하면서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사진의 대부분이 누드사진이었다. 올누드는 아니였지만 가슴이 드러나는 세미누드 정도의 수준이었다. 가슴이 다 드러나지는 않고, 하얀 스카프나 꽃 같은 것으로 살짝 가려져 있었다. 사람들이 완전히 벗는 것 보다 살짝 가리는 것이 더 섹시하다고 하는 말이 이해가되었다.마릴린 먼로는 유명한 팝 아티스트인 앤디 워홀(1928-1987)로부터 현대의 팝 아티스트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작품에 단골로 등장하는 인물이다. 항상 이들의 작품에 나오는 먼로의 이미지를 보면 ‘마릴린 먼로의 어떤 점이 이들을 빠져들게 만들었는가’ 하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스턴은 유명 패션잡지 『VOGUE』의 요청에 따라 당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마릴린 먼로를 LA의 벨에어 호텔 스위트룸에서 촬영했다. 겹겹의 두꺼운 화장을 모두 지운 마릴린 먼로의 얼굴과 촬영하기 얼마 전에 받은 수술자국도 드러나 있다.마릴린 먼로展을 보면서 느낀 것은, 이제까지 내가가 알고 있던 마릴린 먼로는 짙은 화장에 새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지하철 환풍구 위에서 바람을 맞고 있는 모습 뿐 이란 것이었다.나는 이 사진전에서는 배우로서의 마릴린 먼로가 아닌, 그냥 보통 여자 마릴린 먼로를 볼 수 있었다. 화장이 짙은 사진도 있지만 노메이크업 사진도 많았다. 요염하고 섹시하고 관능미있게 찍은 것이 아니라 매우 자연스러운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세미누드사진이 많았은데, 그 사진들을 보면 마릴린 먼로의 배에 아주 큰 수술자국도 있다. 정말 자연스러운 마릴린 먼로의 모습인 것이다. 그녀의 누드사진은 인간 자체의 아름다움과 여성의 매력에 대하여 빠지게 하는 흡인력이 있었다.내가 사진전을 관람하면서 궁금했던 것이 있는데, 사진을 보면 밑 부분에 주황색 사인펜 같은 것으로 7/50이나 7/25, 이렇게 써 있었다. 그 의미를 알고 싶어 큐레이터에게 물어보았다. 큐레이터는 이 전시전에 있는 사진들이 한정되어있기 때문이라고 말씀해주셨다. 사진작가들은 일부러 사진의 소장가치를 높이기 위해서 사진을 한정되게 뽑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내가 궁금해한 7/50은 50개 인화 한 것 중에 7번째 사진, 7/25는 25개 인화 한 사진 중 7번째 사진이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숫자가 적히지 않은 사진은 오리지널 사진이었다.또 하나 특이했던 점은, 사진을 관람할 때 옆에는 마릴린 먼로와 사진작가가 사진을 찍을 때 나눈 대화들이 옆에 다 기록되어 있었다.예를 들면,“당신은 나의 누드를 찍고싶은 것이죠?”나의 가슴은 심하게 뛰었지만 이것은 내가 원한 것이 아니었다.이런 식으로 그 때의 상황과 대화가 적혀있어서 마치 내가 마릴린 먼로와 사진 촬영 현장을 함께 느낄 수 있었다.그리고 전시회장 구석쪽으로 들어갔는데, 마릴린 먼로가 출연했던 영화를 조금씩 편집해놓은 영상이 있었다. 뮤직비디오 형식으로 2~3분정도 나왔는데, 나는 사진보다 이게 더 마음에 들었다. 이 영상을 보고 마릴린 먼로는 여자로서 정말 불쌍한 삶을 살았다고 느꼈다. 마릴린 먼로가 나온 영화들을 보면 그녀는 대부분 요부로 나온다. 옷도 정말 야한 것만 입고 나오고 섹스심벌로 인식되었다. 모든 남자들은 마릴린 먼로의 외모와 몸매를 사랑하지만 정말 여자로서의 마릴린 먼로를 사랑했을지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언젠가 인터넷에서 본 글이 생각났다.마릴린, 금세기 최고의 섹스심벌. 역사상 가장 섹시한 여자.노마진, 그녀의 어머니는 정신병을 앓았고, 9살 때 고아가 된다.마릴린, 모든 남성들을 휘어잡으며 열광시키다.노마진, 의붓아버지에게 끝없이 성폭행당하다.마릴린, 1년 동안 30개의 잡지의 표지모델이 됐다.노마진, 굶어죽지 않기 위해 누드사진을 찍어야했다.마릴린, 최고의 야구선수와 화려한 2번째 결혼.노마진, 16살에 한 첫 결혼 후 자살기도.마릴린, 수많은 영화에 출연하며 영화를 제작하기도 했다.노마진, 평생 천박하고 골빈 금발여자라는 낙인이 찍혔다.마릴린, "나는 잠자리에선 아무것도 입지 않아요, 샤넬 5를 제외하곤."
    독후감/창작| 2009.12.04| 3페이지| 1,500원| 조회(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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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IAF를 다녀온 후 감상문
    KIAF/09 Korea International Art Fair나는 지난 9월 20일, 9월 18일부터 9월 22일 까지 COEX에서 열린 2009년 한국국제아트페어에 다녀왔다. 시각예술과 문화 Oral History REPORT를 위해 전시회를 찾던 중, 마침 나와 가장 친한 친구인 명조의 외삼촌께서 ‘2009 한국국제아트페어’에서 전시를 하시는 것을 알게 되었다. 친구의 외삼촌은 대구 공산화랑에 계시는 ‘곽승용’님 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내 집 드나들 듯 다니던 친한 친구였고, 친구의 외삼촌도 친구네 집에서 함께 사셨기 때문에 잘 아는 분이라서 Oral History REPORT를 쓰기에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그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전시회 행사 중에는 눈 코 뜰 새 없이 바쁘셔서 컨택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도 친분의 힘이 정말 대단한 것인지, 한 번의 전화통화와 한 번의 만남으로 나의 지적 궁금증을 해소시켜주셨다.우선, 내가 관람 한 전시인 'Korea International Art Fair' (이하 ‘KIAF’)는 동시대 세계미술의 정점을 보여주고, 미술시장의 활성화와 미술 대중화에 이바지할 목적으로 2002년부터 매년 개최되는 국제 미술 전람회이다. 영문 머리글자를 따서 KIAF로 약칭한다. 문화방송(MBC)·매일경제·(사)한국화랑협회가 주최하고, 한국국제아트페어 운영위원회가 주관한다. 매년 국내외 100여 개 화랑이 참가하는 대규모의 전시회라고 한다.‘KIAF’는 매년 주빈국이 바뀌는데 작년에는 스위스가 주빈국 이였고, 이번 ‘KIAF 2009’의 주빈국은 인도라고 한다. 인도는 떠오르는 신생아트마켓으로 세계미술시장에서 전례 없는 주목을 받고 있다. KIAF는 인도 주빈국 프로그램을 통해 인도미술의 우수성과 아트마켓으로의 잠재적 발전 가능성을 알리는 계기가 될 것이며, 또한 세계 경기침체의 영향으로 둔화 된 한국미술시장 재기의 활력소가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곽승용님은 대구 공산화랑(공산갤러리)에서 활동 중인 화가로, 홍익대 미대와 파리 8대학 조형예술대학원을 졸업하셨다. 과거에는 금호창작스튜디오의 입주작가로 계셨다. 고전미가 넘치는 서구 영화배우와 한복, 그리고 누드라는 언밸런스한 매치로 부조화 속의 조화를 선보이며 독특한 회화 세계를 펼치고 있다.KIAF에서 모든 갤러리들을 다 돌아 볼 시간적 여유가 없었기에, 나는 곽승용님이 소속되어있는 대구 공산갤러리의 D-7 구역을 위주로 최대한 꼼꼼히 둘러보았다. 대부분의 그림이 서양 여인의 얼굴에 한복을 입었는데, 그 옷 속으로 살이 비춰보였다. 사람들의 관음증을 자극하려는 사진 같다는 생각을 했다. X-ray를 찍은 것 같기도 하고, 필름에 비추어 보는 것 같기도 한 이상야릇한 느낌이었다. 이름 모를 여성의 모습을 그린 그림에서는 다채로운 매력이 넘치고 있었다.여기, 한복을 입은 우아하고 단아한 자태의 서양 여인이 있다. 그녀의 치마저고리는 마치 햇살 아래에서 얇은 커텐, 혹은 한지처럼 여인의 알몸을 희미하게 드러낸다. 작품마다 나오는 얼굴은 한 사람. 1930~40년대를 풍미한 헐리우드의 여배우 조앤 폰테인이라고 한다. 캔버스 속의 그녀는 시선을 살짝 피한 채 부드럽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고전미가 넘치는 우아한 분위기이다. 곽승용님의 다른 작품에도 어김없이 그녀가 등장한다.승용이삼촌(친구가 외삼촌을 이렇게 불러서, 나도 ‘승용이삼촌’ 이라고 불렀다.)께 작품과 미술관에 대하여 몇가지 질문을 하고 그에 대한 답변을 들었다.첫째로, ‘조앤 폰테인만 그리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라는 질문에“얼굴은 영혼이 흐르는 통로이고, 제겐 창조적 실험의 대상입니다. 다른 여러 인물을 작품에 표현한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의 영화 를 보며 조앤 폰테인을 만난 후 직접 만나지 않더라도 잡지나 스크린 이미지를 통한 것도 만남의 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계속해서 그녀를 그려왔습니다. 그리면 그릴수록 전에는 발견하지 못한 것이 하나씩 눈에 들어옵니다. 한 사람만 반복해 그리는 것의 장점이지요. 의 조앤 폰테인은 어딘가 신선한 느낌으로 다가왔고, 계속 바라봐도 지루하지 않더군요.” 라고 대답해 주셨다.다음으로는 그림에 관하여 드는 의문점인, 서양 여인인데 옷은 한복인 이유에 대하여 여쭈어 보았다. 삼촌께서는 나의 질문에 대하여 이렇게 답해주셨다.“한복을 입었지만 누드죠. 누드라고 하면 진부한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한복은 현대 미술에서 흔히 택하지 않는 소재인데 이를 통해 새로운 아름다움을 창조하고 싶었습니다. 온고지신이죠. 파리에서 유학할 때 ‘너희 것은 뭐냐?’고 묻는데 할 말이 없더군요. 제가 받은 미술 교육은 이미지도, 재료도 모두 서양식이었으니까요. 우리 것이 무엇인지 인식할 겨를 없이 그냥 받아들인 것이죠. 그래서 캔버스 대신 한지를 써보기도 했고요. 한복도 이것과 같은 맥락입니다.”셋째, 한복을 통해 몸이 비쳐 보이는 것의 의미로는, 19세기 프랑스 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는 “아름다움 이전에 먼저 진실을 표현하라”고 했는데, 이것이 승용이 삼촌께서 매우 의미 있게 생각하는 말이라고 하셨다. 가려진 것과 비쳐 보이는 것은 아름다움과 진실의 기준을 찾는 실험 과정 중 한 시도라고 말씀하셨다.네 번째로는 한복과 누드의 매치는 언밸런스한 느낌도 드는 한편 우아해 보였다. 그래서 그 이유를 여쭈어보았다. 한복을 통해 비치는 누드는 일탈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부드러운 선과 풍만함으로 우아한 여성스러움을 표현했기 때문에 입었거나, 벗었거나 우아한 자태는 그대로라고 설명해주셨다.
    독후감/창작| 2009.12.04| 5페이지| 2,000원| 조회(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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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체리피커에 관하여 ppt
    상품을 실제 구매하지 않고 부가적인 혜택만 누리는 기업 경영에 직접적 도움이 되지 않는 고객 마케팅 분야에서는 기업의 서비스 체계와 유통 구조 등의 허점을 찾아내 상품 구매나 서비스 이용은 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실속만 챙기는 소비자를 빗대어 표현1. 똑똑한(Smart) 소비자의 증가똑똑한 소비자의 증가는 브랜드 커뮤니티 등을 통해 기업 활동에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기업의 허점을 찾아내어 실속만 챙기는 체리피커 또한 증가2. 기업의 눈속임-> 고가의 미끼 경품을 내걸거나 경쟁적 서비스를 시행해 소비심리 부추김-> 화려한 부가서비스로 소비자를 현혹한 뒤 혜택을 줄임일반소비자와 체리피커의 차이1. 일반 소비자미끼상품에 대한 관심 때문에 기업의 마케팅 활동에 참여했지만, 결국은 기업이 원하는 활동을 함2. 체리피커기업이 기대한 행동을 완전히 배반하고 제공한 미끼상품만 구매하거나 소비하고 떠남 빠른 움직임, 정보의 파급력, 마케팅 활동에 대한 신속한 반응, 정보이용에 능숙한 젊은 세대라는 기대요인이 많음
    경영/경제| 2009.12.04| 18페이지| 1,500원| 조회(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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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냉전이 한반도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고찰
    탈냉전이 한반도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고찰목차1.서론. 21세기 국제정세2.본론2-1. 탈냉전시대의 특징2-2. 한반도에 미친영향3.결론. 한국의 대안1.서론 21세기 국제정세국제관계는 다양한 행위자들의 복잡한 상호작용이다. 특히 현대의 21세기 국제관계 혹은 국가들간의 관계를 일컫는 국제정치는 정보통신, 이동수단의 발달로 인한 세계화, 정보화 시대의 물결로 국가간 혹은 초국가적 행위자들간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교류가 활발해짐에 더욱 다변화되고 변화가 가속화 되고 있다.이러한 21세기 국제관계(정치)의 흐름 중에 세계화, 정보화와 더불어 탈냉전이 있다. 탈냉전은 2차세계 대전이후에 미국과 소련을 주축으로 세계가 자본주의 체제를 채택한 나라와 공산주의를 채택한 나라간의 팽팽한 군사적 긴장상태를 일컫는 냉전시대에서 벗어난 것을 일컫는다. 이 장에서는 이런 탈냉전의 흐름은 어떤 특징이 있는가 또 이러한 흐름에 따른 국제정세가 한반도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또 그것이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어떠한가를 논해보도록 하겠다.2.본론2-1. 탈냉전시대의 특징탈냉전시대의 국제정치의 특징은 크게 3가지로 나눌수 있다. ①미국의 일방주의적 패권 강화현상 (일극체제)②안보 딜레마의 증가③안보 패러다임의 변이다. 좀 더 자세히 알아보자면①미국의 일방 주의적 패권 강화현상은 미국과 소련이라는 국제관계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갖는 두 개의 초강대국이 서로 경쟁하며 저울의 균형을 맞추던 냉전시대에서 소련이라는 강대국이 붕괴됨에 따라 반대편 저울에 놓인 미국의 영향력이 크게 강화된 결과이다. 그 이유로는 물론 세계를 압도하는 엄청난 군사력이라는 요소도 있지만 공산주의의 붕괴와 이의 공백을 대체하는 자본주의의 확대의 흐름에서 미국이 경제적인 핵이라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겠다.②안보 딜레마의 증가란 거대한 두 군사력에 의해 팽팽한 긴장을 유지하던 세계의 무력충돌들이 이들을 누르던 긴장과 힘이 없어짐에 따라 자주 일어나게 되었고 인접국가간의 혹은 민족간의 갈등이 대두됨에 따라 서로 간에 군비경쟁이 가속화되고 오히려 이로 인해 국가들간 안보가 더 위험해지는 상황이다. 즉 큰 규모의 분쟁의 위험이 낮아진 대신 작은(상대적으로) 규모의 분쟁의 빈도수가 많아지고 이로 인해 오히려 국제사회 전체의 위험은 증가하게 된 상황이다.③안보 패러다임의 변화란 냉전의 종식에 따라 기존의 공산주의에서 자본주의로 전향한 나라와 자본주의 국가는 물론 국제긴장 완화에 따라 국가 간 교류가 활발해지고 새로운 군사 동맹 등에 의해 국가간의 상호의존성이 심화된 현상이다.그렇다면 이같은 탈냉전시대의 국제정세의 흐름은 한반도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가를 고찰해볼 필요가 있겠다.2-2. 탈 냉전이 한반도에 미친 영향탈냉전이 한반도에 미친 영향은 정치, 경제, 문화 등 사회의 많은면에 영향을 끼쳤고 이를 서술할 수는 있겠지만 본장에서는 위에서 언급한 탈냉전시대의 특징 3가지의 측면에서 경제적으로 분석해 보도록 하겠다.①미국의 일방 주의적 패권 강화현상이 한반도에 미친 경제적 영향은 북한과 남한에 나누어 살펴 볼 수 있다.우선 북한은 소련이 붕괴된 80년대 후반부터 급격한 경제적 쇠퇴를 기록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소련이 붕괴되고 소련과 중국에 의존하던 북한은 미국이라는 거대한 적 앞에 직접 나설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북한은 미국이라는 거대한 패권 앞에 연이은 경제적 실패에도 불구하고 공산주의를 고수하는 방향으로 맞섬에 따라 국제 외교, 경제의 실권을 쥐고 있는 미국에 의해 경제적으로 고립되어 점점 경제가 악화 되었다.남한의 경우에는 미국과 이익과 피해가 공존 상쇄하는 복잡한 상호작용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전통적 동맹관계인 미국이 국제사회에 끼치는 영향력이 강화됨 에따라 이에 편승하여 90년대 중반까지도 고속성장을 이루었다. 또 WTO나 FTA등의 국제경제의 세계화의 흐름에도 비교적 빠르게 적응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반대로 기존의 미국에 많이 의존하던 경제구조를 그대로 유지함에 따라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에 따른 한국경제의 침체등 상호의존성에 기인한 경제적인 피해를 입기도 하였다.이외에도 남한에는 간접적인 피해도 크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의 경제적 쇠퇴에 따른 통일 비용의 증가는 물론이거니와 북한의 경제악화와 북한과 경제적 교류를 하자는 친북정권이 시기적절하게 맞는 것으로 인해 일방적으로 퍼다 주기식의 경제적 교류로 인해 막대한 재화의 지출이 있었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북한이 미국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한 것은 교류와 개방이 아닌 군사력강화를 통한 협박식 외교노선을 택한 것에 따른 안보딜레마의 증가이다. 실제로 지난 20년간 남한은 북한에게 수십조원의 경제적 인적 지원을 해줬음에도 불구하고 2009년 현재 남한의 안보는 더욱 치명적으로 위협받고 있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②안보 딜레마의 증가가 한반도에 미치는 경제적 영향은 한과 남한 그리고 외부 국가로 나누어 살펴 보겠다.북한의 경우 냉전시기에는 소련이나 중국에 편승하여 국제사회에 직접적으로 나서는 경우가 적었으나 소련이 해체되고 실질적으로 기반세력을 잃게 되자 국제사회의 구성원으로 직접 나설 수 밖에 없었다. 비유하자면 북한이라는 군인을 지휘하던 소련이라는 장군이 항복을 선언했는데 이에 따르지 않고 홀로 결사단결을 주장하며 여전히 막강한 전투력을 보유한 상대국에 저항하는 형국이다. 북한과 유사한 상황에 놓여있던 기존의 공산국가들은 이에 대부분 백기를 들고 자본주의라는 국제정세의 대세에 편승해 화해와 발전을 택하였다. 그러나 북한의 경우는 저항과 투쟁을 택함에 따라 경제적인 기반을 잃은채 군사력에만 국가의 기반을 둠에 따라 경제적으로는 계속 쇠퇴하였다. 또 스스로 근방의 국가들에 대해 군비경쟁을 부추겨 오히려 스스로의 안보도 위협하는 어리석은 상황에 놓이고 말았다.남한의 경우 북한의 군사력증감으로 인해 실질적인 대상 적국으로서 이에 상응하여 군비를 증가시킬 수 밖에 없었고 이에 따라 북한에게 해준 경제적 원조의 성과는커녕 안보상황의 악화를 겪고 있으며 여전히 국가경제 전반에 대해 군방비가 막대한 지출로 작용하고 있다. 다만 남한의 경우 경제적인 기반이 있는 상태에서의 지출이라 북한처럼 심각한 경제적 장애를 겪지는 않았다.남한 외에도 북한의 미국에대한 혹은 국제사회에 대한 군사적 도발행위는 주변국 특히 일본에 대해서도 안보적 딜레마를 유발하고 이로 인해 일본의 군사력을 증가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다. 또 일본의 반한감정 (북한이건 남한이건 일본입장에서는 한국)을 부추김에 따라 한일 교류간에 장애를 줄 수 있다. 실제로도 본인은 얼마전에 북한의 미사일 실험 뒤 한국에 대한 일본의 인식이 나빠졌다는 연구결과를 뉴스에서 보았다.③안보 패러다임의 변화가 한반도의 경제에 미친 영향도 북한과 남한 그리고 외국으로 나누어 살펴보겠다.우선 북한의 경우 기존의 교류국이었던 소련이나 중국과의 교류도 줄어들고 미국과 일본의 경제압박으로 인해 사실상 국제적으로 고립됨에 따라 탈냉전의 흐름인 다극적 상호의존 체제에 편승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상호의존도가 떨어지고 이에 따라 경제적으로 또 식량적으로도 자급자족이 안되는 북한경제는 심각한 후퇴를 경험하게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사회과학| 2009.12.04| 4페이지| 2,000원| 조회(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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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양-등장인물에 투영 된 다자이오사무의 삶
    다자이 오사무(太宰治)의 『사양』- 등장인물에 투영된 다자이 오사무의 삶-1. 서론1. 자화상의 작가 다자이오사무(太宰治)소설을 흔히 작가의 생각과 상상력을 동원한 허구의 세계를 통해 삶과 현실의 진실을 드러내는 장르라고 말한다. 그래서 수필이 작가의 인생관이나 사상이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면, 소설은 작가의 인생관이나 사상, 경험 등이 글 속에 숨어있어 은연중에 묻어남을 알 수 있다. 소설 ‘별’의 프랑스의 소설가 알퐁스도데, 한국에서는 소설 ‘GO’로 잘 알려진 재일한국인 소설가 가네시로 카즈키(金城一紀) 등의 유명 작가들의 작품에서도 이러한 것을 찾아볼 수 있다. 이처럼 소설을 읽으면, 작가의 인생관이나 사회관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이러한 자전적 소설을 많이 쓰기고 유명한 사람이 ‘다자이 오사무(太宰治)’이다. 누구보다도 일본에서 꾸준히 젊은 층의 열렬한 사랑을 받고 있는 작가 다자이 오사무를 흔히들 ‘자화상의 작가’라고 한다. 왜 다자이 오사무를 자화상의 작가라고 하는가? 다자이 오사무를 자화상의 작가라고 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우리 조는 다자이 오사무가 왜 자화상의 작가로 불리어지고 있는지 궁금했다.실제로 우리 조는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 ‘사양’을 읽으면서 다자이 오사무의 실제 체험을 글로 엮은 듯한 전개를 느낄 수 있었으며, 그의 인생이 ‘사양(斜陽)’이라는 소설의 내용, 그리고 그 등장인물들과 어떠한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흥미로운 점은 그의 소설 사양에서는 마약중독, 자살과 죽음에 대한 내용이 나오고 2명의 주요 등장인물들이 죽는다. 약물중독과 4번의 자살미수와 죽음에 이른 다자이 오사무의 험난한 삶이 소설의 등장인물들의 모습과 겹쳐 보였다. 또한 몰락한 귀족이 귀족에도 속하지 못하고 서민도 될 수 없는 모습 역시 실제로 소설가 다자이 오사무가 부잣집 자식으로 태어난 것을 자신의 핸디캡으로 생각을 하며 스스로에게 ‘소설을 쓴다’는 것은 집안사람들의 뜻을 거역하는 죄의 길이며, 따라서 스스로를 머나먼 섬의 ‘귀양자’ 처지당히 흡사한 부분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소설에서 등장하는 가즈코의 집안은 대대로 귀족집안이지만 일본의 패전이후 몰락하게 된다. 다자이 역시 아버지는 귀족원의원, 중의원의원을 지낸 아오모리 현 지방의 명사였으며 굴지의 대지주였다. ‘오즈카스'라는 말은 가부장제가 엄격했던 당시 쓰가루 지방에서는 삼남이나 사남을 업신여겨 부르는 말이다. 이렇게 가부장제가 엄격했던 당시, 여섯째 아들로 태어난 다자이 오사무는 있으나마나한 존재였다. 특권층 계급 출신 그리고 집안에서 별로 주목받지 못하는 ‘오즈카스'로서의 위치였던 그는 넓은 집에서 방이 없었고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 그러한 다자이의 상황은 작품에도 영향을 주었는데 사양에서도 그러한 부분을 찾아볼 수 있다.도쿄에서 지내던 가즈코모녀는 형편이 어려워지자 이즈라는 시골로 내려와서 살게 된다. 두 모녀가 평화롭게 살던 중 남동생 나오지가 돌아온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다. 세 사람이 살게 되면 형편이 어려워질 것을 염려한 어머니가 가즈코에게 혼처를 물색하든가 고용살이 할 집을 찾든가 둘 중 한쪽을 택하라고 했다는 외숙의 말을 전한다. 그러자 가즈코는 아들인 나오지에 비해 딸인 자신을 덜 중요하게 여긴다고 생각하여 어머니에게 섭섭함을 나타낸다. 이는 여섯째 아들로 태어나 상대적으로 집안에서 장남보다 덜 중요한 취급을 받고 자라온 다자이의 심리를 반영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다음의 글들은 다자이의 초기 단편 「추억」에 나오는 글로, 「추억」은 작가가 자신의 어린 시절을 거의 사실 그대로 묘사한 작품이다.아버지는 굉장히 바쁜 사람으로 집에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 집에 있어도 아이들과 같이 있지 않았다. 나는 이런 아버지를 두려워하고 있었다.어머니와도 나는 친해질 수 없었다. 유모의 젖으로 자라 숙모의 품에서 성장한 나는 초등학교 2,3 학년 때까지 어머니를 알지 못했다. (중략) 어머니에 대한 추억은 쓸쓸한 것이 많다.이 인용문에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하며 자란 다자이 오사무의 유년시절을 알 수 있다.“언젠가 요. 저는 이제까지 오랜 세월 어머니와 단둘이 지내왔으니, 더이상의 미련은 없어요. 앞으로 나오지가 어머니와 둘이서 오붓하게 살면서 나오지가 넘치도록 효도라면 되겠죠. 저는 이제 이런 삶이 지긋지긋해졌어요. 집을 나가가겠어요.”“속였어요. 어머닌 절 속였어요. 나오지가 올 때까지 저를 이용하셨어요. 저는 어머니의하녀였어요. 이젠 별 볼일 없으니, 이번에는 다른 황족에게로 가라시는 군요.”다자이 오사무의 소설 『사양』속의 글에서 어머니와 가즈코의 사이는 매우 좋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즈코는 어머니의 사랑에 대해 끊임없이 갈망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부모의 사랑을 풍족하게 받지 못한 다자이 오사무의 유년시절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도 볼 수 있다.2.1-2 자살을 택한 마약중독의 나오지와 다자이다자이 오사무는 자신의 암울했던 삶을 투영한 소설을 많이 썼다. 그의 소설 속에는 마약중독과 방탕한 생활을 하고 있는 인물, 복잡한 여자관계의 인물, 자살을 시도하는 인물, 유부남을 사랑하는 인물 등 황폐한 생활을 하며 한없이 타락의 나래로 떨어지는 등장인물들이 많이 등장한다. 그 때문에 그는 ‘절망, 자살, 파멸의 작가’와 동의어가 되었다.실제로 다자이 오사무는 총 네 번의 자살 미수 일화를 남겼다. 1929년 고등학교 기말시험 전날 밤, 다량의 칼모틴을 음복하여 첫 번째 자살 기도, 아오모리에서 도쿄로 자신을 좇아 가출해 온 하쓰요와의 결혼 부담, 생가와의 절연이라는 중압감에서 막다른 도피처로 선택한 자살 기도, 1930년 긴자의 유부녀였던 카페 여급 다나베 아쓰미와 가마쿠라 해안에서 칼모틴 동반자살을 기도했으나 여자만 사망, 1935년 가마쿠라로 가서 산에서 목을 맸으나 생존, 1937년 아내 하쓰요의 부정을 알고 나서 칼모틴 동반자살을 기도했으나 둘 다 생존. 그리고 결국 1948년 약물 중독과 폐병으로 인한 극도의 피로 속에서 「아사히신문」에 연재될 '굿바이'를 기고하고 6월 13일 동거중이였던 애인 야마자키 도미에와 다마 강 수원지에서 투신자살했다.마지막에게 걱정을 끼친 나오지는 한때 마약중독에 걸려 결혼한 누나에게 끊임없이 돈을 요구했다. 그로인해 29살 누나는 6년 전 이혼 후 어머니를 간호하며 살고 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누나 가즈코가 나오지의 스승 우에하라를 찾아가 그와 잔 날, 나오지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다. 소설의 후반에 나오는 나오지의 유서에서는 그가 왜 그렇게 방황하고 어두운 생활을 했는지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유서를 통해 나오지는 귀족이었던 나오지는 고등학교 때부터 자신과 전혀 다른 계급의 강한 사람들의 기세에 눌리지 않으려고 마약과 술을 먹었다고 고백한다. 나오지는 그것만이 민중의 친구가 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작위가 있다고 해서 다 귀족이 아냐. 작위가 없어도, 천작(天爵:남에게 존경받을 만한 선천적인 덕행)을 소유한 훌륭한 귀족들이 있고, 우리처럼 작위만 있을 뿐이지 귀족은 커녕, 천민과 다름없는 사람들도 있다고.”나는 고등학교에 들어가 나와 전혀 다른 계급에서 자란 강하고 다부진 풀 같은 친구와 처음으로 사귀었는데, 그 기세에 눌린 나는 지지 않으려고 마약을 이용해 반미치광이가 되어 저항했습니다. 그리고 군인이 되어서도 역시 생의 최후 수단으로 아편을 이용했습니다. (중략)나는 천박해지고 싶었습니다. 강해지고, 아니, 사나워지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이른바 민중의 친구가 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저는 천박해졌습니다. 천박한 말투를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내 노력의 절반, 아니 60퍼센트는 애석케도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어설픈 잔재주에 불과했습니다. 여전히 나는 민중에게 아니꼽고 거북스런 새침데기 사내였습니다. 그들은 마음을 트고 진심으로 나를 대하지 않았습니다.우리는 소설 속의 나오지를 통해 일본의 어둡고 황폐했던 패전 후를 살아가고 있는 지식인의 절망을 읽을 수 있다. 귀족이라는 신분으로 인해 사회에 어울리지 못하고 방황하며, 술과 마약에 빠져 지내다가 결국 자살을 택한 나오지. 이러한 나오지의 캐릭터는목을 보여주고 있다. 작가가 가장 암담한 생활을 하던 시기에 집필한 작품이어서인지 이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내내 우울하고 음침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대게 자신의 이야기의 한탄하듯이 집필하면 감정이 격해지는 부분이 있을법하기도 한데 그의 작품에서는 그런 부분을 찾아볼 수 없다. 작품을 읽기 전 작가에 대한 사전 정보가 없다면 읽으면서 어떤 부분이 작가의 삶이 투영된 부분인지 쉽게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고해성사를 하듯이 여성스러운 문체로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러한 문체의 영향으로 처음 조원들 역시 처음 이 작품을 읽었을 때는 단지 우울한 내용의 작품이라고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발표 준비를 하기위해 작가에 대해서 조사한 이후에 다시 책을 읽으면서 그냥 단순히 픽션이라고 생각했던 부분이 작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부분으로 재발견을 할 수 있었다. 우리 조가 조사한 부분이외에도 그의 삶이 투영된 여러 가지 부분을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주인공인 가즈코가 마르크스사상을 가진 가장 친한 친구가 자신에게도 그 사상을 전파하려는 것에 거북해하며 절교 하게 되는 장면은 마르크스사상에 심취한 다자이 오사무를 대했던 주변인들을 가즈코의 행동에 빗대어 표현한 부분이라고 생각이 된다. 다자이 오사무가 살았던 삶에 대해 알고 난 후에 그의 소설들을 읽어본다면 읽는 재미는 배가 될 것이라고 생각된다.부록작가소개(다자이 오사무太宰治,1909-1948)다자이는 일본 동북 지방의 아오모리 현(靑森縣) 기타쓰가루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쓰시마 슈지로, 아버지는 그 지방의 대지주이며 귀족원(중의원) 의원이기도 하였다. 8남매 중의 막내로 형제들에 대하여 항상 열등 의식을 지니고 부모의 사랑도 모른 채로 유모의 손에서 성장하였다.다자이는 고등학교 시절 동인 잡지에 아버지의 방탕한 생활과 위선을 폭로한 『무한 나락』을 발표했으며, 3학년 때인 1929년에는 다량의 수면제를 먹고 첫 번째 자살 미수 사건을 벌였다. 1930년 도쿄대학 불문과에 입학한 다자이는 이부세 마스지를된다.
    인문/어학| 2009.12.04| 8페이지| 5,000원| 조회(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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