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지방법원을 문화체험을 다녀와부산광역시 연제구 미남로에 있는 부산지방법원을 지난 금요일(09년 10월 30일)에 문화체험을 다녀왔다. 지하철 거제역에서 내려 구경삼아 천천히 법원으로 향했다. 길거리에는 법무사무소나 공증서들이 많았다. 별로 구경할 거는 없었다. 한 10분 쯤 지나 생각보다 장관하고 예쁜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부산지방법원이다.법원직원의 2시간 동안 친근한 안내에 따라 우리 부산외대 외국인 유학생들은 100년이 넘는 긴 역사 속에서 부산 시민들과 호흡을 같이 한 부산지방법원은 우리나라 제2의 도시인 부산을 관할 구역으로 하는 법원으로서 본원 외에 동부지원, 가정지원과 7개 등기소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2001년 부민동 구청사에서 거제동 신청사로 이전해 왔다는 것을 알았다. 직원의 말로 따르면 법원에서는 주로 각 사건에 대한 심문과 조사 처리과정을 확인하고 사건에 대한 진상을 파악하여 재판을 통해 올바르고 공정한 판결을 통해 사회에서 일어나는 각 종 문제에 대해 법으로서 다스리며 이를 통해 무엇보다도 엄한 것은 법이라는 것. 그리고 법의 규정을 따르며 사회정의를 바로 새우는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고 한다.먼저 법원사 전시실로 직원의 안내에 따라 들어갔다. 이곳은 법원의 역사와 유물들을 일반인들에게 전시하는 공간이다. 법원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것 오늘에야 알았다. 전시실 안에는 부산법원의신·구청사 사진, 재판광경사진, 구 등기필증, 판결문, 법복, 수동타자기 등 50여점의 자료를 전시하고 있으며, VTR을 설치하여 법원 홍보비디오를 볼 수 있다. 그러나 15명~30명의 공간이라 100 정도의 우리는 마지막에 좀 큰 방에 가서 홍보물을 봤다. 전시창 안에 걸려있는 옷은 성별 또는 직위에 따라 판사들이 재판을 할 때 입는 법복이라고 한다.전시실에서 나와 1층 종합민원실의 대해 알아봤다. 민사, 형사사건 등 재판에 관한 서류를 접수하면 해당부서로 넘겨주어 해당부서에서는 절차에 따라 재판을 진행한다고 했다. 지적현장민원실을 돌아 봤다. 거기에서 민원인들이 부동산등기신청에 필요한 각종 증명을 구청에 가지 않고 법원청사 내에서 바로 발급받을 수 있게 하고 있다고 한다.경비원이 지키고 있는 조그만 한 사람 지나갈 때 마다 “삑, 삑” 소리 나는 돌로 된 문을 통해 계단을 통해 3층으로 올라갔다. 3층은 대법정 및 중법정들이 있다. 우리에게 몸소 느낄 수 있는 재판진행과정을 직접 체험할 수 있었다. 사법부에 대한 재인식 그리고 재판할 때 진행 절차 또는 배치된 자리의 의미 등을 알았다. 재판업무를 비롯한 법원의 업무를 직접 보고 느끼는 계기였다. 우리는 평생 못 앉아 볼 수도 있는 재판관 자리에 앉아서 신나게 사진도 많이 찍었다.마지막으로 옆에 건물로 넘어가 4층에서 법원의 대한 홍보비디오를 두 편을 보고 이번 체험을 위해 특별이 시간을 내 주신 판사님과 법원 또는 법의 대해 말씀을 나누었다. 법원은 대법원 고등법원 지방법원과 더불어 지방법원의 지원을 받는 하급법원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최고법원 기관으로는 대법원이다. 이렇게 법원은 그 구조와 기능이 단계적으로 나누어 있어 각 급 법원이 관할하는 지방법원으로 구성되어 있다.1. 재판 : 지방법원과 고등법원의 결정을 거치고도 이에 불만이 있을 경우, 최종적으로 대법원의 결 정을 구할 수 있다. 대법원의 결정은 확정적이다.2. 법령 및 조약 심사 : 법률과 법률의 효력을 지니는 조약은 헌법재판소가 합헌심사를 하고 명령 이 하의 효력을 가지는 법령과 이와 같은 효력을 가지는 조약은 대법원이 합헌 심사를 한다.
자기소개서안녕하십니까? 2002년7월에 중국 북경시 통주구 영락점 고중을(한국의 고등학교) 졸업한 ***입니다. 최고는 아니더라도 모든 일에 항상 최선을 다하는 아버님과 저의 행동에 믿음을 주시는 어머님 밑에서 무슨 일이든 끝까지 책임지고 성실하게 처리하는 태도와 신뢰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공무원과 사기업 임원으로 직장생활을 하신 아버님의 영향을 받아 모든 일을 하면서 완벽하게 끝까지 하려는 끈기와 세밀함이 저에게는 습관처럼 되어버렸습니다. 때로는 이러한 꼼꼼함이 지나쳐 주변에서 좋아하기도 싫어하기도 했지만, 슬기롭게 헤쳐 가는 자세를 어머님께서 가르쳐주셨습니다. 때론 이런 모습이 완벽주의로 비춰질 때도 있지만, 사소한 한 가지 일이라도 성실하고 최선을 다하는 제 자신이 자랑스러웠습니다. 노력하는 사람에게만 기회가 찾아온다는 것을 믿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이룬 작은 성공들은 모두 노력의 결과라고 확신하기 때문입니다.조선족이지만 초등교육부터 중국학교를 다녔습니다. 중국학교를 다니다 보니 조선족 언어와 문화를 제대로 배우지 못하면서 성장하였습니다. 하지만, 나의 민족문화와 언어를 모르고는 정체성을 잃어버릴 것 같아 한국을 이해하고 또 언어, 문화, 관습, 역사에 대해 차근차근 알아가기 시작했던 것이 어느 날 붙어 흥미로 전환되어 **과에서 한국의 역사와 옛 문화의 전통과 관습을 전공하게 되었습니다. 중국의 문화와 비슷한 것도 있지만 대한민국의 섬세하고 수려한 문화재를 보면서 많은 감동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물론 중국에서도 대학에 진학하여 영어를 전공하였지만, 한국에서의 새로운 문화에 적응하는 것이 제게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와 제 인생을 바꾸는 기회가 된 것입니다. 이러한 자그마한 변화와 노력들이 바탕을 이루어 이젠 한국이 제2의 고향이 되어 제게는 새로운 꿈의 터전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한국과 직접적인 인연을 맺은 건 2006년2월에 **대학 어학연수가 그 시작이었습니다. 국제교육원에서 한국어를 체계적으로 공부하면서 학업 이외에 교육원 사무실에서 중국어통역, 출입국사무소와의 행정처리(비자) 등의 일을 담당하였습니다. 앞으로의 사회생활에 도움이 되고 이 경험이 제겐 큰 도움이 되리란 생각에 열심히 하였습니다. 일하면서 느낀 것이지만, 각 국의 외국 친구들과의 교류를 통하여 가치관과 문화가 매우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저에겐 재미있는 경험이었습니다. 그리고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가질 수 있는 배움의 길이 이렇게 흥미로울 줄은 몰랐으나, 많은 것을 생각하고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그 후 어학연수 마치고 2007년 9월 **대학 문화재학과에 입학하여 제 꿈을 무럭무럭 키워왔습니다. 이렇게 숨 가쁘게 배움의 길을 선택하면서 달려온 저에게는 제 인생의 전환점이 된 글이 있었습니다."인생은 100m 달리기가 아니다." 라는 말이 제겐 전환점이 된 글이었습니다. 제가 어느 책에서 우연히 읽은 이 글은 작은 성공에 심취되어 안주하면서 살고 있는 저에게 무언가 생각을 해주게 하는 말이었습니다. 또한 늘 새로운 일에 도전하게 해주고 실패를 경험하여도 무너지지 않게 저를 잡아 주는 말이기도 했습니다.
낙안읍성 민속마을 乐安邑城民俗村 발 표 자 : 조 선 화 발 표 일 : 09/11/27고려후기 왜구가 자주 침입하므로 이곳 출신 의 김빈길(金彬吉) 장군이 흙으로 쌓아 1450년경 석축으로 개축되었다.1955년 세운 3.1운동기념탑은 낙안 지방 애국지사들의 호국 정신을 기리는 기념비다.남 장승은 오른쪽, 천하대장군. 여 장승은 왼쪽, 지하여장군.화재예방과 풍년이 들기를 기원함. 멀리서 잘보여 이정표 역할.전통물건 판매상가관아전통생활모습.국물이나,고춧가루,물 흐름까지 보임.비슷하게 생긴 집들.감옥안에는 고문이 심했던지 다리가 휙 휙 돌아간 남자의 모습이 보임.철퇴를 마네킹다리에 걸어놓은 여자의 모습.몇 백년 된 듯한 가장 큰 나무 옆 장터.5월에는 낙안민속문화축제가 있고 10월에는 남도음식축제가 열린다. 주변 관광지 : 조계산 도립공원, 선암사, 송광사, 동화사, 제석산, 고인돌공원, 주암호, 공용박물관 등의 관광지가 있다.낙안읍성은 중요한 민속자료와 무형무화재가 비교적 잘 보존되어있어 세시풍속과 통과의례 등 전통생활문화를 지켜온 주민이 직접살고있는 민속마을이다. 좀 멀기는하지만 낙안 주변에 한국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장소도 많고 볼거리도 많아서 몇명 친구들 같이 여행코스를 잘 잡아 1박2일로 한번 가보면 한국에서 가장 좋은 추억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09:00~ 18:00입장시간5001,5001,500단체TEL:061)749- 3347 749-38931,0001,5002,000개 인비 고어린이(초등학생)청소년(중/고등학생 및 군인)어린이〟입장료 / 입장시간약15,00030분순천-낙안(터미널/가차역)택시1,00045분순천-낙안(터미널/기차역-63번)시내버스약 13,900약 4시간(지하철)부전역/ 구포역/ 사상역/화명역 → 순천역기차 (무궁화)약 11,3002시간30분부산-순천고속버스약 12,7003시간30분부산동부-순천시외버스교통수단 불편한 원인: 원래 낙안읍은 순천시에 속하지 않았으며 도시가 통합 되면서 순천시로 속해진 것이다.약 11,3002시간30분부산서부-순천시외버스비 고비 용소유시간〟교통수단교통수단{nameOfApplication=Show}
11월 1일 날 남자친구와 함께 자가용으로 약3시간을 운전해 전라남도 승주군 낙안면 남내리, 동내리, 서내리에 걸쳐있는 조선시대의 석축읍성을 다녀왔다. 이 성의 둘레는 1,385m라고 한다. 현재 성벽과 동. 서. 남문지(門址), 옹성(甕城) 등의 시설이 남아 있다. 고려시대 후기에 왜구가 자주 침입하므로 1397년(태조 6) 이곳 출신의 절제사(節制使) 김빈길(金彬吉) 장군이 흙으로 읍성을 쌓았다. << 세종실록>>에 의하면서 본래보다 넓혀서 쌓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1450년경에는 석축으로의 개축이 거의 마무리에 이르렀는데, 이때의 둘레는 2,865척이었고, 성벽의 높이는 평지에서 9.5척, 높은 곳은 8.5척이었다고 한다. 이때는 옹성이 없이 문이 세 곳이었고 적대는 12개가 계획되었으나 4개가 만들어졌다. 당시 성 안에는 우물 2개와 연못 2개가 있었으며, 성 밖의 해자(垓字)는 파지 않았다. 문의 보호시설인 옹성은 그 뒤에 설치되고, 여장도 무너진 다음 다시 수축을 거듭하여 오늘날에 이루었으나, 여장은 모두 붕괴되었다. 현재 남아 있는 읍성은 체성(體城)의 축조에 있어서나 적대를 구비한 점에서 조선 초기의 양식을 그대로 보여준다. 성은 낮은 구릉을 포함한 평지에 동서방향으로 기다란 장방형에 가깝다. 문은 동문(樂樓), 남문(雙淸樓이었다가 鎭南樓로 됨), 서문(樂秋門)의 세 곳이 터를 남기었고, 옹성은 남, 서문 터에서만 흔적을 볼 수 있다. 적대는 동문 터의 좌우에 하나씩, 동북, 동남쪽의 모서리에 하나씩 있어서 <<문종실록>>의 기록과 일치하고 있다. 성벽은 옛날 집과 옛날 사람들도 살고 또는 영화 장금이랑 서편제등도 촬영했던 낙안읍성은 한국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되어 좀 멀기는 하지만 주변에 한국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장소와 볼거리가 많아서 몇 명 친구들이 같이 여행코스를 잘 잡아 1박2일로 한번 가보면 한국에서 가장 좋은 추억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 5월 낙안민속문화축제 열림. 10월 남도음식축제 열림. * 주변에 조계산 도립공원, 선암사, 송광사, 동화사, 제석산, 고인돌공원, 주암호, 공용박물관 등의 관광지가 있음. 입장료/입장시간 어 른 청소년(중/고등학생 및 군인) 어린이(초등학생) 비 고 개 인 2,000 원 1,500 원 1,000 원 TEL:061)749-3347749-3893 단 체 1,500 원 1,500 원 500 원 입장시간 09:00~ 18:00 교통수단 교통수단 시 간 비 용 비 고 시외버스 부산서부-순천 2시간30분 약 11,300 시간 오래 걸리는 원인: 원래 낙안읍은 순천시에 속하지 않았으며 도
전통건축의 이해전통 건축의 이해우리나라는 사계절의 뚜렷한 변화와 고유의 지형 등을 배경으로 독특한 건축문화를 이룩하여왔다. 지세를 존중하여 거스르지 않으며 자연에 순응하면서 조화시키는 슬기를 터득하고, 불교와 유교사상, 풍수지리 등의 인문적 요인들은 건축의 입지에서부터 재치, 그리고 형태에 이르기까지 우리 민족 특우의 조형성을 발전시틴 근간이 되어 왔다.우리의 건축은 나무와 돌, 그리고 흙 등을 주재료로 하여 이들을 적절히 가공하여 사용함으로써 목조건축의 형태를 이루게 된다. 이러한 전통적인 목조건축의 즉성은 매우 다양하며 특히 공포, 구조와 기둥의 배흘림, 안쏠림, 솟음 등의 의장수법과, 지붕의 처마곡선 등이 어우러져 우리의 독특한 전통적 조형언어를 창출해내게 된다.건축은 삶의 도구이자 그것이 지닌 모양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 그 의미는 인간의 정신적 욕구를 충족시켜 줄뿐만 아니라 그 모양에는 당시의 정신문화와 예술을 표현하고 있기에 더욱 가치를 발휘하는 것이다.한국 전통건축의 조형과 그 조형성에 표현된 것들을 아무런 감정 없이 본다면 한갓 장식물에 불과하지만 한국의 역사 문화를 배경으로 바라보면 그것에는 우리 선조들의 문화가 담겨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의 옛 선조들은 매우 상징적이었다. 무늬를 통해 신(神)과 대화를 하려고 애썼으며, 어떤 형상의 부호가 귀신을 내쫓고 어떤 무늬는 복을 빌고 장수를 기원한다고 믿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흔적들이 '집'이라는 조형에 여러 가지 형태로 표현되어 있다. 집은 삶의 안식처로서 가장 신성하게 보호되어야 할 곳이었으므로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닌 무늬들이 사용될 수밖에 없었다.옛날 사람들이 집을 한 마리의 새(鳥)로 상징하고 있는 것은 인간이 추구하는 소망을 '새'라는 매개체를 통하여 이룩해 보려는 의도에서 비롯되었다. '집'이라는 의미를 거슬러 올라가면 이와 같이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소망을 이룩하려는 의지를 형태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집터를 잡고 방위를 정하고 나아가 집을 만들 때 기단에서 지붕에 이르알려진 것으로 초석 밑을 일정한 크기로 파고, 흙·모래·회를 섞어 만든 '삼회물'을 한층한층 단단히 다져 만든 다음 초석을 놓는 방법을 쓴다. 이렇게 만들면 나무뿌리나 벌레가 감히 침범하지 못한다. 심지어 지진에도 끄덕 없다. 또 하나의 방법은 초석 밑에 모래와 자갈을 다져 깔고 초석을 놓기도 한다.초석을 놓을 때 초석 바로 밑에 주먹돌을 고여 움직이지 않게 하는데 이 돌을 적심석(積心石)이라고 한다. 삼국시대 건물 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기법이다.초석은 놓이는 자리와 모양에 따라 부르는 이름이 여러 가지인데, 먼저 놓이는 위치에 따라 건물의 바깥쪽에 놓이면 외진초석(外陣礎石)이라 하고 건물의 안쪽에 놓이면 내진초석(內陣礎石)이라 한다. 그리고 앞쪽에 놓이면 정면초석, 뒤쪽에 놓이면 배면초석, 측면에 놓이면 측면초석이라 부른다. 어떤 건물에서는 가장 중심에 초석을 놓는 경우도 있다. 지금은 없지만 황룡사 9층탑이나 현존하는 법주사 팔상전과 같은 건물에서는 건물 가운데 초석을 놓고 기둥을 세웠다. 이 초석은 옥심주초석(屋心柱礎石)이라고 한다. 이렇듯 초석은 놓이는 자리에 따라 다른 이름으로 부를 수 있다.초석을 만드는 모양에 따라 또한 여러 가지 이름이 있다. 우선 자연석을 다듬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는 '덤벙주초'가 있다. 마치 덤벙덤벙 놓은 것 같다고 해서 붙쳐진 이름이다. 우리 건축에서 가장 자연스런 모습을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덤벙주초에 기둥을 세울 때는 반듯이 그랭이질을 한다. 기둥 밑둥을 울퉁불퉁한 초석 상부에 놓고 본을 뜬 다음 잘라 초석 위에 맞추어 세우는 것을 '그랭이질' 또는 '그래질'이라 한다. 이렇게 기둥을 세우면 초석에 밀착되어 기울지 않는다. 그랭이질에는 '그래자'를 쓴다. 얇은 대나무로 마치 핀셋 같이 만들어 한쪽 가닥에는 칼질을 하여 먹물을 묻힌다. 초석 위에 기둥을 임시로 세운 다음 그래자의 한 가닥은 초석에, 먹을 묻힌 다른 가닥은 기둥 밑둥에 댄다. 그리고 초석에 밀착시킨 다음 기둥둘레를 한바퀴 돌면 초석의 모양대로 기둥에에 따라 배흘림 기둥, 민흘림 기둥이 있다. 배흘림 기둥은 기둥 중간 배가 불룩한 모양이고 민흘림 기둥은 아래가 약간 넓어지는 기둥을 말한다. 그리고 단면에 따라 두리기둥(圓柱), 8모기둥(八角柱), 4모기둥(方柱)이 있다. 이중 두리기둥은 궁궐, 사찰, 사당 등 위엄 있는 건축에 많이 쓰였고 4모기둥은 일반 건축에 흔히 사용되었다.기둥을 만드는 기법에서 또한 가장 인지 공학적 아름다움과 자연스러움을 찾을 수 있다. 아름다운 기술은 배흘림이다. 배흘림 기법은 아무렇게나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인 수법이 있다. 즉 기둥의 전체 높이 중 밑에서 ⅓되는 부분을 가장 굵게 만들어야 한다. 기둥을 만들 때 중간부분을 불룩하게 함으로서 아름다운 안정성을 보여준다. 배흘림은 아무렇게나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둥 높이에 따라 굵기가 달라진다. 그 굵기는 밑둥에서 ⅓ 높이 부분이 가장 불룩해야 최고의 멋이다. 부석사 무량수전, 강릉 객사문 기둥에서 볼 수 있다. 이런 배흘림 기법은 우리 나라 건축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중국이나 일본, 나아가 서양건축에도 사용된 기법이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감각은 동양이나 서양이나 공통적임을 알 수 있다. 민흘림 기둥은 밑둥을 상부보다 굵게 만든 기둥이다. 외형으로 보아 배흘림 기둥보다는 아름답게 보이지 않지만 안정되어 보이는 측면도 있다.가장 자연스러운 기둥은 생긴 그대로의 원목을 이용한 기둥이다. 가공하지 않고 자란 그대로를 그 방위에 맞춰 세우는 기둥이다. 나무가 자란 방위를 다르게 세우면 틀어질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밑둥이 굵어 안정된 모습이기도 하거니와 가공하지 않은 나무의 역학을 최대한 이용하려는 원리이다. 한편 기둥을 세우는 2가지 기법은 인간의 심리를 가장 잘 이용한 기술이다. 하나는 '귀솟음'이고 다른 하나는 '안쏠림'이다. '귀솟음'은 가운데 기둥보다 양쪽 귀퉁이 기둥 높이를 조금 높게 만드는 것이다. 우리나라 건축은 긴 장변이 정면이고 짧은 단변이 측면이 된다. 따라서 건물을 정면에서 보면 양쪽이 쳐져보이는 것이 당연한 진다. 특히 중국, 한국, 일본의 목조건축에서는 이 공포 구조와 모양이 시대에 따라 변천되어 왔다. 이 공포는 위에서 누르는 지붕의 육중한 무게를 받아 기둥에 전달하기도 하지만 한편 처마를 밖으로 길게 내밀기 위하여 추녀와 서까래를 받쳐주는 중요한 구조체이기도 하다.공포는 그 짜여진 모양을 보고 건축이 만들어진 시대를 짚어보기도 한다. 말하자면 시대에 따라 공포가 짜여진 모양이 다르다는 것이다. 이것도 유행과 같이 시대에 따라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공포는 우리나라 목조건축의 구조미를 가장 잘 나타내 주는 부분이다. 즉 기둥과 지붕 사이에 작은 목재가 복잡하게 짜여진 구조를 말한다. 공포는 목조건축이 발달하면서 구조미를 가장 합리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복잡하게 보이는 공포이지만 단순한 구조로 시작되었다. 기둥과 보가 만나는 지점에 '목침'을 받쳐 보강한 것이 공포의 시작이다. 이 '목침'은 점차 발전하면서 구조적 합리성과 건물의 품위를 표현하게 되었다. 나중에는 장식성을 겸하는 구조로 발전하게 된다. 공포는 위에서 누르는 지붕의 육중한 무게를 받아 기둥에 전달하기도 하지만 한편 처마를 밖으로 길게 내밀기 위하여 추녀와 서까래를 받쳐주는 중요한 구조이기도 하다.건물의 앞 뒤 기둥 사이에는 대들보가 걸쳐지는데 이 대들보가 지붕의 무게를 모두 지탱하는 것 같지만 사실 공포가 대들보의 무게를 감소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 즉 공포가 지렛대 받침 역할을 함으로서 처마의 무게로 인해 서까래 뒷부분이 들리게 되므로 대들보에 모든 무게가 실리지 않고 그 중 일부가 기둥에 전달되는 것이다. 따라서 대들보가 받는 무게를 경감시켜 준다. 마치 널뛰기할 때 가운데 받쳐둔 둔덕과 같은 것으로 힘의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처마 길이가 어느 정도 길어야 지렛대 역할을 잘할 수 있게 된다. 처마가 너무 길어도 안되며 기둥 밑둥에서 처마끝선을 그어 기둥과 처마까지의 각도를 30도 내외로 한다. 이는 무게균형 뿐만 아니라 태양의 고도와 실내 채광량 등을 고려한 길으로 공포에 사용된 것은 조선시대부터이다. 이것을 운공(雲工)이라 하며 건물의 외부와 내부 공포에 다같이 표현되기도 한다. 구름은 십장생중 하나이다. 그러한 의미로 구름문양을 넣어 건물의 장구를 빌었던 것이다. 문양을 사용하여 무병장수, 다산화복을 빌었던 것은 비단 건물에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결과적으로 인간에게 그 영향을 미쳐 인간의 행복과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생각했던 것이다.5) 지붕 (屋蓋)지붕이란 집의 덮개로서 벽과 기둥을 보호하는 필수적인 구조 요소일 뿐만 아니라 나아가 자연 환경으로부터 인간의 생활을 보호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지붕은 자연 환경, 재료의 선택, 문화의 차이에 따라 점차 독특하게 발전하여 왔으며 지붕을 통해 건축의 아름다운 모양을 추구하려고 애써 왔다.우리 나라 목조건축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술은 지붕이다. 지붕을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건물의 모습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기본적인 지붕의 형태로는 3가지가 있다. 맞배, 우진각, 팔작이 그것이다. 맞배는 2개의 지붕면이 서로 면을 맞대고 '八'자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이고, 우진각은 사면으로 기와면이 나있는 것이다. 팔작은 우진각 위에 맞배를 올려놓은 듯한 모습인데 양 측면에 3각형의 합각부분이 있고 사방으로 기와골이 만들어진 형태이다. 이 밖에 모임지붕이 있는데 육각일 때 육모지붕, 팔각일 경우 팔모지붕이라 한다. 이 모임지붕은 주로 루, 정 건축에 많이 사용된다.'丁'자 지붕은 왕릉의 정자각에 많이 사용되며, '十'자 지붕은 루정건축에 간혹 사용된다. 솟을지붕은 향교나 반가의 솟을삼문, 행랑채의 솟을대문 사용된다. 가섭지붕은 맞배지붕 측면에 작은 눈썹 지붕처럼 만든 것인데 그리 많이 사용되는 것은 아니고 간혹 사용된다. 경북 영천의 숭열당 측면, 보령향교 동·서재, 추사고택 사랑채 등에 사용되었다. 아주 드물게 사용되는 것으로는 궁륭지붕이 있다. 우리 나라에는 지붕에 사용된 사례가 없지만 석굴암의 천장에는 사용되었다. 석굴암의 경우 안에서 보면 궁륭이지만 밖에서 보면 전혀 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