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주사의 석탑에 대하여32090081 사학과 조민희목 차Ⅰ. 서론Ⅱ. 석탑의 양식적 특성1. 고려시대 석탑2. 운주사 석탑3. 목조건축 요소와 백제계 석탑의 양식Ⅲ. 건탑의 주체와 시기, 건립기간1. 건립 주체와 시기2. 건립 기간Ⅳ. 석탑의 분포상황Ⅴ. 결론Ⅰ. 서론운주사는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대초리와 용강리 일대에 자리하고 있는 불교유적으로 고려시대의 절터이다. 운주사는 도선국사가 하룻밤 사이에 천불 천탑을 만들어 세웠다는 전설과 함께 수많은 석탑과 석불이 있지만 관련기록이 많지 않아 더욱 신비감을 주고 있다. 이러한 신비감은 세간에 알려서 역사스페셜에도 소개된바 있고 이전보다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고 있다. 현재 돌부처 70구와 석탑 18기만 남아 있으나 1941년도 집계로는 석탑이 22기이고 석불이 71구였다고 하니 조선시대)에는 천불 천탑의 말 그대로 천 여 구에 가까운 불상과 탑이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보통 사찰과 불탑은 1탑 1금당 배치나 2탑 1금당 배치가 대부분인데, 운주사는 많은 탑이 한 지역에 빽빽이 들어서 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더군다나 다른 시기에 건립되어가며 축적되어진 것이 아니라 동시대의 건축물이라는 점에서 다른 사찰과 탑과는 차별성을 보인다. 18여 기의 석탑은 층수도 다양하지만 새겨진 모양이나 무늬의 표현 방식도 매우 독특하다. 탑의 표면에는 네 잎의 꽃무늬나 빗줄기 같은 수직선 무늬, ‘X’, ‘XX’, ‘◇’과 같은 기하학 무늬들이 새겨져 있는데, 이는 다른 탑에서는 볼 수 없는 문양이어서 주목받고 있다. 또한 탑의 형태가 둥근 공모양의 원형탑이나 호떡 모양의 돌을 올려놓은 듯한 원판형탑 등 특이한 모양을 하고 있어 기존의 틀을 벗어난 독창성을 엿볼 수 있다.운주사 석탑은 고려시대의 석탑으로서 그 시대 석탑 양식의 특징을 잘 담고 있다. 앞에서설명한 것과 같이 방형석탑은 물론 원형석탑 등 특수형 석탑을 찾아볼 수 있고, 다층석탑과 면석에 새겨진 문양의 특이성을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다양한 특징을 한 곳에서 만나볼 수 지방적 특색이 그리 두드러지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는데, 신라시대에는 중앙에서 지방으로 석탑이 보급됨에 따라 지방적 특색을 나타내지 못하였던 것이다.) 고려시대 지방적 특색을 현저하게 보이고 있는 석탑은 신라의 옛 땅인 경상도 지방에서는 신라시대 석탑의 계통을 충실하게 계승한 데 비하여 백제의 옛 땅인 충청남도와 전라북도 지역에서는 백제시대 석탑의 양식을 따르고 있는 유례가 많다. 그래서 고려시대 석탑의 유형을 구분할 때 다음의 표와 같이 고구려계, 신라계, 백제계 등으로 나뉘어지는 논의들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고려전기 석탑의 유형구분의 예)이 름유 형 분 류杉山信三고구려계석탑 - 백제계석탑- 신라계석탑李暻會신라식계승양식 - 백제식계승양식 - 절충양식 - 혼합양식 - 특수양식尹張變초기탑파(신라계승양식 - 백제계승양식 - 절충형식 - 특수형식)중기탑파(절충형식 - 모전탑)朴慶植고구려계석탑 - 백제계석탑 - 신라계석탑 - 복고풍양식申龍撤고구려식다각다층탑 - 백제식결구형탑 - 신라식이중기단석탑 - 고려식이중기단탑고려시대에 건립된 석탑이 삼국시대에 확립된 석탑양식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는 이유는 정신적, 문화적으로 회귀하고자 하는 그 지역민의 염원이 석탑에 표출된 것이다. 이같은 옛 문화의 표출은 호족연합체로 출범한 고려시대의 정치적, 사회적 상황이 주된 원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앞전의 시대의 양식과 고려가 낳은 양식의 특성을 고루 접할 수 있는 고려시대의 탑은 그야말로 한국 석탑의 전모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둘째, 새로운 특수 형식의 탑이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특수형식이란 방형 중층의 일반형 석탑의 벗어나 전체적으로나 부분적으로 새로운 특수한 양식이 더해지는 것을 말함이다.) 이러한 특수 양식의 탑은 이미 신라시대부터 나타나고 있지만 고려시대에 양식적으로나 수적으로 더 활성화되었다. 고려시대의 새로운 특수 양식은 방형의 범주에서 벗어나 다각형이나 원형의 모습을 갖는 것 또는 층의 수가 늘어나는 다층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모습 9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데, 3층 석탑이 2기, 4층석탑이 1기, 5층 석탑이 2기, 6층석탑 1기, 7층 석탑이 5기, 9층 석탑이 1기, 원형석탑 4기가 있으며 이외에 층수 미상의 석탑 2기가 현존하고 있다.)셋째, 전형적인 기단이 없고 자연 암반이나 커다란 단일석 석괴를 지대석 겸 기단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보통 하층기단과 상층기단으로 이루어진 2층 기단위에 탑신을 건립하는데, 운주사 석탑의 대부분은 자연석으로서 기단을 대체하고 있다. 그러나 자연석 위에 탑신을 바로 세우지 않고 갑석을 각출한 석탑이 있는데, 운주사 9층 석탑은 자연암반 윗면에 각형 3-4단의 상층기단이 있고, 7층 석탑 중 하나는 자연석을 방형으로 가공한 후 원형 1단 받침을 둔 것도 있다.기단을 자연석으로 대체하여 약하게 표현하고 초층 탑신을 높게 조성함으로서 부각시킨 것은 백제석탑인 미륵사지 석탑을 연상케 한다. 미륵사지 석탑도 낮은 기단과 2층 탑신석보다 월등하고 높은 초층 탑신의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운주사 석탑의 양식적 근원은 백제임을 알 수 있게 해준다.넷째, 초층탑신의 우주 안에 보조 우주가 모각되어 있다는 점이다. 보조 우주는 주로 5층 이상의 석탑에서 나타나는데, 비교적 높은 석탑에서 보조우주가 나타나는 것은 이들 석탑이 기반이 약한 반면 초층 탑신이 높아 이에 안정감을 부여하고 아울러 목조 건축의 공간성을 석탑에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보조 우주는 고려시대 석탑에서 가끔 볼 수 있는데, 보조우주를 지닌 석탑으로는 운주사 석탑이 대표적이다.다섯째, 탑신에 새긴 장엄문양이 독특하다는 점이다. 주로 탑신부에는 내부의 공간이 있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한 문을 새겨 넣거나 수호신으로서 사천왕이나 인왕을 새겨 넣기도 하는데, 운주사의 석탑처럼 단순하면서도 기하학적인 문양이 등장하는 사실은 특이한 점이다. 새겨진 문양에는 이중 마름모꼴의 안쪽에 새겨진 연꽃 문양, 마름모꼴 모양, 볼록한 엑스자 문양(X), 엑스엑스자 문양(XX) 등이 있는데, 이러한 특이한 문양 18기의 탑마다 목조건축이 재현된 요소가 다르겠지만, 일반적으로 보이는 요소들을 설명하고자 하며, 운주사 석탑의 양식에서 드러난 백제계 석탑 양식도 짚어보겠다. 먼저 목조건축의 재현에 대해서 말하고자 하며 대부분의 내용이 운주사 석탑에서 언급했던 내용이므로 간략화하겠다. 운주사 석탑은 커다란 자연 암반을 기단으로 삼고 있는데, 그 기단이 대체로 낮다는 점이다. 기단부가 약한 반면 초층 탑신은 높게 조성되어있는데 2층 탑신보다도 높다. 층수가 올라갈수록 일정 비율로 너비와 높이가 체감비를 보이며 줄어드는데, 이는 삼각형 구도로서 안정감을 주고 있다. 그리고 우주는 목조건축의 기둥을 표현한 것으로 원형 다층석탑은 10각의 면석으로 이루어져 있어서인지 기둥이 표현되지 못했지만, 이 탑 이외의 석탑은 우주가 나타나 있다.옥개석에 보이는 목조건축의 요소로는 낙수면의 우동선이 두툼하게 표현되어 합각대를 형성한 경우와 낙수면의 처마 끝이 넓게 표현된 것, 탑신에 비해 넓고 평판적인 옥개석 등 다양한 면을 보이고 있는데, 이와 같은 구성요인은 대부분의 백제계 석탑에서 볼 수 있는 요소로 이들의 양식이 백제 석탑에서 유래한 것이고, 백제계 석탑에 보이는 목조건축의 양식을 운주사의 석탑에 재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면석에 새겨진 독특한 문양은 신라의 양식 전통에서 탈피하고자 시도한 새로운 문양으로 백제계 석탑의 양식을 보이는 점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전라남도가 백제의 옛 땅이고 고려시대 때에 백제부흥운동이 일어났던 점을 고려한다면 운주사의 나타난 석탑의 특징을 백제계 석탑 양식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주의할 점은 운주사의 모든 석탑이 백제계 석탑 양식을 띠는 것은 아니며 부분적으로 신라계 석탑 양식이 있다는 점은 기억해둬야 할 것이다.Ⅲ. 건탑의 주체와 시기, 건립기간1. 건립주체와 시기발굴 결과 추정된 운주사 석탑의 건립된 시기는 11세기 초이다. 10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해무리굽청자편이 출토되면서 운주사의 창건시기가 11세기 초반이연년이 난을 일으켜 백제의 부흥을 표방한 점은 전남지역에 팽배해 있던 백제부흥의 의지가 무력으로 표출된 현상으로 생각되며, 운주사의 창건은 이와 같은 행동을 뒷받침한 정신적인 지주로서의 역할을 수행했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운주사 석탑에는 백제계뿐 아니라 신라계 양식도 보이기 때문에 신라계 사람들이 운주사 석탑 창건에 힘을 보탰을 것으로 여겨진다. 즉, 백제계 지방 세력들을 주축으로 현지 주민과 신라계 사람들이 힘을 모아 운주사를 건립한 것으로 추정된다.2. 석탑의 건립 기간건립 시기가 11세기 초로 추정되었다면, 다음에 논란이 되는 것이 건립기간이다. 운주사의 모든 탑이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은 이미 밝혀진 사실이고, 고려시대의 11세 초부터 건립을 시작하여 고려시대의 언제까지 만들어졌는가가 의문이다. 당시에는 모든 작업을 손에 의지해 만든 것을 감안하면 석탑 1기를 만든다고 할 때 꽤 많은 시간이 걸린 것이다. 그런데 운주사는 천기의 석탑이 있었다고 하니, 이 모든 석탑이 일시에 건립되기는 힘들었을 것이고, 몇 차례에 걸쳐 만들어졌으리라 예상된다. 즉, 운주사가 지어졌을 때 몇 기의 석탑이 건립되고 중간 중간에 새로운 석탑이 추가적으로 건립된 것 같다. 특히 운주사 석탑들이 몇 가지의 양식을 보이고 있다는 점은 일시에 만들어진 작품이 아니라는 것을 뒷받침해주는데,) 일시에 만들어졌다면 약간식의 변형은 주어지더라도 석탑들 간의 일정한 틀은 유지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운주사의 탑들은 서로간의 너무나도 다른 다양한 모습들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백제계와 신라계 양식이 두루 나타나있는 것도 건립시기와 연관이 있을 수도 있다. 백제계 양식을 보이는 석탑과 신라계 석탑은 건립시기가 달라서 건립주체도 달라졌고, 그래서 서로 다른 양식을 갖게 되었다고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이 문제에 대해서 김창현 교수는 운주사가 11세기에 창건되었고 12세기에 이르러 중심 축선이 바뀌는 대규모의 불사에 의해 사찰로서의 모든 기능을 갖추게 되어 최대의 전성기를 맞이하였다고 한다. 그다.
경영자 VS 마케터화성에서 온 경영자 금성에서 온 마케터, 그 시각차와 해법경영자와 마케터의 경영목표는 동일할 것이다. 최종점은 같지만 목표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과 방법에서 경영자와 마케터는 많은 차이를 보인다. 그들이 어떤 점의 어떻게 다른 지에 대해 이 책에서는 25가지로 나눠 흥미진진하게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경영자와 마케터가 끊임없이 갈등을 일으키는 이유를 경영자들은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사고를 하는 좌뇌형이고, 마케터들은 통합적이고 직관적 사고를 하는 우뇌형이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그들은 서로 다른 별에서 온 사람처럼 말하는 방식이나 상품을 바라보는 사고방식, 결과적으로 추구하고자 하는 전략과 전술 등 모든 점에서 다르다고 한다. 이렇게 좌뇌형과 우뇌형의 성향 차이는 사고방식과 행동이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늘 평행선을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어디에서든 시각 차이와 의견 충돌은 존재한다. 하지만 서로를 더 잘 알게 되고 이해하게 된다면 합의점에 이르기 쉬워질 것이다. 따라서 경영자와 마케터, 그리고 그들이 되기 위해 준비하는 모든 이들에게 꼭 필요한 책이라고 생각된다.새로운 제품을 출시하고 많은 매출을 올려 성공을 이루기 위해서 고려해야할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한 제품 출시하는 데만 해도 수 십 가지의 다양한 상황과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 나는 이중에서도 제품의 품질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이것이 고객의 만족을 실현시킬 수 있는데 가장 큰 비중을 끼칠 것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이 책을 보면서, 나의 생각들의 대부분은 좌뇌형인 경영자의 생각 쪽과 닮아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경영자와 마케터의 생각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른지 살펴보고자 한다.경영자는 제품이 시장에서 좋은 호응을 얻지 못할 때, 제품이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상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자동차의 경우, 안전한 차는 볼보이고 잘 만든차는 도요타, 스포츠카는 포르쉐라는 인식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처럼 자동차의 차이는 품질의 차이보다는 사람들의 생각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콜라도 마찬가지인데, 펩시와 코카콜라를 가지고 시음테스트를 한 결과 사람들은 펩시가 더 맛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코카콜라가 펩시보다 50%이상 더 많이 팔렸는데 그 이유가 콜라 중에는 코카콜라가 ‘진짜’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더 좋은 제품 = 더 좋은 브랜드’라는 말이 나오게 된 것이다.이처럼 마케터는 브랜드와 소비자의 인식에 집중한다. 소비자에게 한번 박혀버린 인식은 쉽게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미제차
디퍼런트 - 넘버원을 넘어 온리원으로성공과 실패를 좌우하는 큰 갈림길은 제품의 차별화가 될 것이다. 하지만 카테고리가 성숙할수록 카테고리 내 기업들은 이종의 단계에서 동종의 단계로 진화해간다. 이 말은 제품의 차이가 완전히 사라지는 게 아니라 차이의 경계가 희미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소비자들은 제품의 선택권은 넓어졌다고 해도 제품 간의 유효한 차이점을 발견하지 못하고 결국 단순한 기준으로 제품을 선택한다. 가령 주부는 가격이 제일 싼 세제를 고르고, 노트북 마니아들은 가장 최근에 출시된 모델을 선택한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선택이 될 수도 있지만, 단순한 선택을 한다는 것은 제품들의 장점이나 단점이 ‘거기서 거기’라는 전제가 밑바탕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보여 진다.‘거기서 거기’라는 인식을 탈피하기 위해선 모든 것을 갖추려는 노력보다는 특정 한 분야에 최고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즉 차별화는 포기를 의미하며, 한 분야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 다른 분야를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볼보와 아우디 운전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볼보가 더 섹시했으면 좋겠다와 아우디가 더 견고하게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나왔다. 결국 상대적으로 갖지 못한 특성이 지적되었고, 이 설문조사에 따라 기업의 나아가야 할 방향이 정해진다면 그것은 아우디는 볼보를 향해, 볼보는 아우디를 향해 가야한다는 결론이 나올 것이다. 즉, 많은 기업들은 시장분석을 통해 나온 결과를 SWOT분석에 적용하고, 강점 보다는 약점을 보완하기 위한 지표로 사용한다. 약점에 치중하기보다는 강점을 더욱 강하게 만드는 것이 새로운 차별화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래서 저자는 최고가 되고 싶다면 설문조사에 집착하는 태도를 멀리하라고 조언한다. 이 글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사전의 설문조사를 하는 것은 일을 시작하기 위한 기본 단계라고 생각해왔고, 설문조사의 결과에 따른 대응책이 곧 해결책이라고 생각해왔는데, 이 책에서는 설문조사를 하지 말라는 말이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중간 목표로 하고 있다면 얼마든지 설문조사를 활용하라는 말에 공감하게 되었다.차별화에는 2가지 종류가 있다고 한다. 별로 의미가 없는 차별화와 중대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차별화가 존재한다. 아침식사를 만드는 스타벅스나 맥카페를 만드는 맥도날드의 경우 별로 의미 없는 차별화에 해당된다. 각자의 장점을 더 강화하기보다는 다른 업종의 강점을 받아들임으로써 소비자는 커피를 마시기 위해 더 이상 커피전문점을 찾을 필요성이 약해지게 된다. 차별화가 오히려 평범하고 식상함을 초래하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중대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차별화는 보편적인 흐름에서 빠져나온 자신의 고유함을 드러내는 진정한 차별화이다. 사람들은 중요한 의미의 차별화에만 반응을 보이며, 이는 사회적으로 반향을 일으킨다. 이에 해당하는 차별화 전략은 구글이나 이케아가 부수적인 가치들을 제거하여 차별화를 두었다든지, 킴벌리의 팬티 기저귀를 팬티에 접목시켜 판매한 사례 등을 들 수 있다.특히 최근 다시 주목받는 차별화 전략에는 적대적 브랜드가 있다. 수요보다 공급이 부족하던 때에는 소비자보다는 기업에게 많은 권한이 있었지만, 공급이 많아지면서 고객만족이 우선시 되어 왔다. 하지만 과잉만족의 시장에서 소비자들은 특별대우에 대한 고마운 감정을 점차 망각하게 되었고, 기존의 마케팅 방식에 싫증난 소비자들은 ‘더’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덜’을 요구하였다. 그래서 다시 공급이 부족했던 시대의 마케팅 방식으로 돌아가는 기업도 생기게 되었다. “싫으면 그냥 떠나세요”, “맛없으면 먹지마라”라는 문구를 내거는가 하면 줄서서 기다리라고 명령하는 오만한 자세를 취하기도 한다. 이들은 소비자가 왕이던 시절의 종말을 당당하게 이야기하듯이, 소비자들을 설득하려고 하지 않고 외면도 두려워하지 않는 다. 사회적 비난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감한 브랜드에 사람들은 열광하고, 평준화되어가는 시장에서 남들과 다른 방향성을 걸어가는 브랜드에 끌리게 된다. 소비자들은 자신의 개성과 정체성을 이런 상품을 상용함으로써 드러내기도 한다.
코카콜라는 어떻게 산타에게 빨간 옷을 입혔는가- 위기를 돌파하는 마케팅 -제목부터 강한 인상을 주는 책이다. 하지만 이 제목을 읽으면서 의아해했던 부분이 있었다. 산타에게 빨간 옷을 입힌 것은 코카콜라라고? 나는 산타의 옷 색깔이 원래부터 빨간색인줄 알았고, 이에 대해 의문을 갖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산타가 빨간 옷을 입게 된 것이 코카콜라 때문이라는 사실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전 세계의 산타 모습을 하나로 통일시킬 수 있었던 코카콜라의 위력은 대단했다. 사실 코카콜라는 마케팅을 설명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례이다. 그만큼 마케팅 전략을 잘 수행하여 세계적으로 널리 인정받는 대표 브랜드이다.마케팅이란 무엇일까? 수업시간에 ‘고객의 만족을 통해 이익을 극대화 하는 것’이라고 배웠다. 하지만 다양한 고객이 존재하고, 만족시키기 위한 수단을 효과적으로 선택하기 어렵기 때문에 고객을 만족시키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객 만족이 중요성은 높아지고 있다.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가 쏟아져 나오는 시대에서, 없어서는 안될 꼭 필요한 물건 이외의 부수적인 물건을 구매하도록 유도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 구매에 이르도록 하는 요소는 ‘고객 만족’일 것이다. 고객이 만족하고자 하는 욕구가 없다면 생필품 이외의 물건은 구매하려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객의 만족을 통해 이익을 극대화시키기 위한 마케팅은 다른 경영학 분야 못지않게 중요하다.그러나 소비자 니즈가 다양해지고, 고객의 제품 및 서비스에 대한 기대 수준이 한 층 높아지고, 기업 간 경쟁은 더욱 격화되고 제품 차별하는 더욱 어려워졌다. 이에 따라 마케팅의 생산성은 점점 저하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케팅은 효과를 측정하기 난해하다는 이유로 전략 수립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전략을 세우더라도 장기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요인은 마케팅을 위기로 몰아넣고 있지만, 저자는 CRM, 브랜드 사이언스, 끊임없는 테스트를 통한 학습, 제휴마케팅, 제품 및 서비스 개념의 확장, 다채널 관리의 6가지 해결 대안을 알려줌으로써 마케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준다.인터넷 서점 아마존은 고객들의 중복구매를 통해서 얻어지는 이익을 포기하고 구매이력 데이터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고객의 충성도를 높이고, 아마존만의 경쟁력을 가질 수 있었다. 이렇게 고객과의 관계를 관리하는 것을 CRM이라고 한다. CRM은 세분화된 고객을 잘 관리할 수 있게 해주었는데, GM자동차를 예로 들면 고객을 소득별로 세분화하여 이에 맞는 다양한 자동차모델을 출시함으로써 큰 성공을 이룰 수 있었다.CRM을 현실적 이론으로 만들 수 있었던 환경변화는 소비자의 욕구 변화, 정보통신 비용의 하락으로 고객의 정보를 저렴하게 수집·분석하게 되고 고객관리비용이 감소된 점을 들 수 있다. 이러한 마케팅 환경변화를 바탕으로 CRM이 가능하게 되었지만, CRM은 서구적 개념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3가지 주의사항이 있다. 첫 번째는 기업내부에 CRM을 리드할 수 있는 핵심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것이다. CRM 프로그램만 적용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경영자가 어떻게 사용하는 지가 중요하다. 두 번째로는 우리나라에 경영환경에 맞춘 CRM을 하라는 것이다. 미국과는 다르게 한국은 보험회사나 자동차 제조업체는 유통기관과의 협조가 상대적으로 용이하기 때문에 이를 활용할 수 있다. 세 번째로는 고객 데이터의 판매나 교환이 법으로 금지되어있어서 고객데이터 수집 비용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기업은 개인 정보의 거래를 원하고 개인은 사생활 침해를 막고자하는 대립 속에서 CRM 도입은 어려움을 겪게 된다. 불법적으로 고객의 정보가 거래되고 있다는 뉴스를 자주 접하게 되는데, 그만큼 고객 정보가 중요하며 CRM의 필수조건임을 인지하게 된다. 따라서 어느 정도 기본적인 데이터는 판매나 교환을 법으로 허용해주고, 프라이버시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있는 데이터 항목에 한정해 규제하는 형식의 법 개정이 필요하겠다.브랜드 사이언스라는 말만 듣고는 그것이 무엇인지 쉽게 이해되지 않지만, 그 뜻은 의외로 간단하다. 브랜드가 미치는 판매증진 효과나 가치를 결정하는 요소, 브랜드와 기업 가치와의 관계를 계량적으로 측정할 수 있게 되면서, 브랜드 관리가 과학적으로 설명 가능해지게 되었다. 브랜드 관리를 잘하는 대표적인 기업은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코카콜라를 들 수 있다. 사람들은 산타를 보면 코카콜라를 떠올리게 하였고, 2차 세계대전을 콜라 홍보에 활용하는 등 맛을 강조하기 보다는 마시는 상황을 강조하였다. 코카콜라의 일관적이고 혁신적인 브랜드 관리는 코카콜라를 세계적으로 알렸으며, 미국의 한 문화가 되었다. 브랜드가 중요한 이유는 제품의 품질이 평준화되어있는 시점에서 고객 만족을 높일 수 있는 수단 중 하나가 브랜드이기 때문이다. 소비자는 비슷한 성능과 품질의 제품이 있다면 브랜드 가치가 더 높은 제품을 선택한다. 그 제품이 조금 비싸더라도, 아니면 기능면에서 조금 부족하더라도 말이다. 이러한 선택을 유도하는 게 브랜드 가치이며, 브랜드 가치가 주는 신뢰성과 인지도가 소비자의 구매를 집중시키는 것이다.마케팅을 잘하기 위해서는 미래를 얼마나 정확히 예측하느냐에 달려있다. 미래를 정확히 예측하기 위한 방법에는 현장 마케팅 경험과 마케팅 이론교육이 있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은 테스트이다. 좋은 테스트는 좋은 가설로부터 시작 되는데, 좋은 가설은 풍부한 실무 마케팅 경험과 지속적인 마케팅 이론교육으로부터 연마되는 것이다.경험과 이론, 테스트를 통해 축척된 지적자산은 기업의 최대 자원이며, 경쟁 우위의 요소가 된다. 이를 지식경영이라 하는데, 지식은 기업 소유가 아닌 직원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것이어서 공유가 절실하다. 효율적인 지식경영을 위해서는 공유할 지식의 종류를 명확히 하고, 문서화하며, 지식공유가 원활하게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맥킨지는 지적자산을 중요하게 인식한 회사로, 컨설턴트에게 높은 비용의 교육투자와 지식을 공유할 수 있는 정보인프라를 구축하였고, 유연한 매트릭스 조직을 도입하여 커뮤니케이션을 증진시켰다.제휴 마케팅이란 각자의 경영목표를 달성하고자 두 개 이상의 조직이 모여 자원을 공유하는 조직 간 협동행위를 말하는데, 이때 제휴는 수평적인 파트너쉽을 말한다. 제휴마케팅을 통해 외주와 자가 생산의 중간점에 위치한 것으로 궁극적 목표는 외주와 자가 생산의 장점만을 살리기 위함이다. 나날이 기술이 발전하고 신속함이 요구될수록 한 기업에서 모든 걸 감수하기 힘들어짐에 따라 서로 자원을 공유하여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생산과 이익을 얻기 위한 것이다. 음반 쇼핑 사이트 시디나우는 레코드회사인 게펜과 제휴협정을 맺어 배너를 달았다. 그 결과 광고비용을 줄이고 고객만족과 매출증가를 가져올 수 있게 되었는데, 서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결과라 할 수 있다.
세르반테스의 32090081 조민희목 차Ⅰ. 서론Ⅱ. 작가 ‘미겔 데 세르반테스 사아베드라’Ⅲ. 돈키호테 읽기Ⅳ. 작품 배경Ⅴ. 작품에 나타난 시대 요소Ⅵ. 결론Ⅰ. 서론는 세계 문학의 걸작 가운데 하나로써 최초의 근대 소설이며 에스파냐의 국민문학이다. 정식 표제인 를 줄여 부르는 말이 이다. 전편과 후편으로 나뉘어 출간되었는데, 전편은 1605년에, 후편은 1615년에 출간되었다. 에스파냐의 국왕 필리프 3세는 어떤 사람이 길에서 책을 읽으면서 눈물을 줄줄 흘리고 배꼽이 빠져라 웃어대는 꼴을 보고는 이렇게 말했다. “저건 미친 놈 아니면, 를 읽는 놈이로군.”) 이는 돈키호테가 얼마나 탁월한 유머 소설인지를 보여주는 일화이다.에스파냐의 시골 귀족인 주인공이 기사도 이야기에 빠져든 나머지 정신이 이상해져 자기 스스로 기사가 되어 세상을 떠돌고자 하는데, 이름도 ‘돈키호테 데 라만차’라고 지은 다음 갑옷을 입고 말을 타고 근처에 사는 농부 산초를 꾀어 종자로 거느리고 떠나며 겪는 이야기인데, 엉터리 기사 돈키호테의 행동은 우스강스럽기 그지없다. 작가인 세르반테스는 주인공의 행동을 통해 ‘당시의 풍미했던 기사도 이야기의 권위와 인기 타도’를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더불어 16세기에서 17세기 사이의 스페인 사회의 부조리함을 비판하고 있다.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돈키호테의 간략한 내용은 알고 있지만, 작품에 내포되어 있는 의미라든지 작가의 의도를 간과하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다. 대개는 돈키호테를 세계적인 문학작품 혹은 돈키호테의 바보스러운 행동이나 그의 성격에 대한 간단한 명사나 몇 가지 이미지만을 떠올리는게 보통이다.따라서 필자는 이러한 차원에서의 읽기를 넘어서,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바를 파헤치고 그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역사적 사실을 알아보고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전에 작가인 세르반테스의 일생과 작품의 줄거리를 살펴보고, 이를 바탕으로 작품의 배경이 되는 스페인의 역사를 알아보도록 하겠다. 그리고 작품에 나타난 시대적 요소를 짚어봄으로써 작가가 시대상을 어떻레판토의 외팔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1575년 총독의 추천장을 갖고 스페인 왕에게 대위 승진을 청원하기 위해 가던 도중, 알제리 해적들에게 잡혀 아프리카로 간 후 5년간 알제리에서 고달픈 포로 생활을 시작한다. 4차례에 걸쳐 탈출을 시도하였으나 매 번 실패하였고, 결국 스페인의 삼위일체 수도회의 신부들이 몸값을 치러줘 마드리드로 귀환한다.마드리드에 정착하여 첫 번째 극작품 을 집필하였고, 1584년에 카탈리나와 결혼하여 이듬해에는 를 출간한다. 그는 1587년까지 30여 편의 희곡 작품을 집필하지만, 오늘날 남아있는 작품은 과 뿐이다. 그 후 세금 징수원 으로 근무하지만 회계 문제가 발생하여 세비야 )감옥에서 3개월간 투옥된다. 그리고 다시 감옥에 투옥되는데, 그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으며 이 때 집필한 것이 이다. 세르반테스는 조국을 위해 싸우다가 한쪽 팔까지 잃었는데도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하자 사회의 모순과 불의를 실감하고, 사회악과 부패한 사회 현실을 냉철하게 풍자한 돈키호테를 구상하게 된 것이다.1605년 돈키호테 1부 출간으로 성공을 거두지만 여전히 빈곤한 생활은 계속되었고, 계속해서 12편의 단편소설이 수록된 과 시집 , 을 출간하게 된다. 그리고 돈키호테 2편을 통해 호평을 받으면서 그의 명성은 확고해졌다. 그러나 1616년에 병환으로 쓰러져 운명하게 되고 유작으로 을 남겼다.세르반테스는 제국의 영광과 몰락을 함께 맛보면서, 국가의 운명이 그의 삶에도 반영되었고 낙관적이면서도 비관적인 두 측면을 작품에 잘 담아내고 있다. 즉, 돈키호테가 모험을 떠나는 모습은 세르반테스 자신의 모습이고, 정의를 실현시키기 위해 싸우려는 돈키호테를 통해 몰락해가는 사회를 나타내고 있다. 더욱이 그 사회 속에서 희생당한 자신의 처지를 바라봤을 때 사회비판적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사회에서는 자유롭게 자기 생각을 드러내며 글을 쓰기 어려웠기 때문에 돈키호테의 광기를 이용해서 사회를 비판하고, 이상적인 사회를 꿈꾸었다.Ⅲ. 돈키호테 읽기소설 돈키호테는 당 여겼다. 그리고 여관 주인에게 기사 서임식을 부탁하여, 서임식을 받고 진정한 기사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는 돈과 약, 종자를 데리고 오기위해 집으로 가는 도중에, 그의 광기와 이상한 행동이 원인이 되어 매를 맞기도 한다. 돈키호테는 겨우 집에 돌아오게 되고, 신부와 이발사는 돈키호테의 책을 불태움으로서 그의 광기를 치료하고자 결심한다. 하지만 돈키호테는 그 책들이 마법사의 소행으로 사라졌다고 생각한다.돈키호테는 이웃집 농부 산초 판사를 섬의 영주가 되게 해주겠다고 약속하고, 그를 자신의 종자로 삼아 두 번째 출정을 떠난다. 돈키호테는 풍차를 거인으로 착각하고 창을 들어 풍차를 공격한다. 자기 책을 훔쳐갔던 마법사가 거인을 풍차로 바꿔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뿐만이 아니라 양 떼를 군대로 오인하여 양들을 향해 창을 휘드르기도 하고, 쓸데없이 갤리선의 노예를 석방하는가 하면 이발사에게서 놋대야를 빼앗아 대야투구를 쓰고 다니기도 했다. 이처럼 우스운 짓을 당하지만 정작 본인은 정의를 위해 싸우는 것으로 알고 있다. 돈키호테는 사랑하는 여인 둘시네아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산초 판사에게 메시지를 주어 둘시네아에게 보낸다. 돈키호테의 친구들인 이발사와 신부는 산초를 붙잡아 그의 주인의 행방을 알게 되고 돈키호테를 다시 집으로 데려온다.또다시 돈키호테는 모험을 떠나게 되고, 산초는 돈키호테에게 못된 마법사가 둘시네아를 시골여자로 변신 시켰다고 거짓말을 한다. 이 마법을 푸는 것이 돈키호테의 주요 목표가 된다. 그들의 모험은 계속되었고, 시골의 공작내외와 만나게 된다. 이미 돈키호테 1부를 읽어던 공작내외는 돈키호테를 진짜 편력기사처럼 대하며 장난을 꾸민다. 공작의 집에서 머무는 동안 산초는 섬을 통치하게 되지만, 공격을 받고나서 통치자보다는 농부가 더 낫다고 생각하고 돈키호테의 곁으로 돌아온다. 돈키호테와 산초는 바르셀로나를 갔고, 거기서 백월의 기사에게 도전을 받고 패한다. 약속에 따라 돈키호테는 고향에 돌아가고, 이내 병에 걸리고 “나는 미쳤었지만 이제는 제계 최강국으로서 광대한 영토와 강력한 군사력을 가진 전성기였다. 신대륙을 발견함으로서 신대륙에서 황금이 쏟아져 들어왔고, 광대한 식민지를 거느리고 있었다. 그러나 식민지에서 거둬들인 부는 효율적으로 이용하지 못해 금은을 낭비하였고, 유럽 열강들의 잦은 공격과 약탈은 스페인을 곤경에 빠뜨렸다. 그래서 광대한 영토의 보전과 신대륙 사업을 위해서는 막대한 경비와 군대가 필요하였기에 경제적 부담도 컸다. 더구나 몇 년간의 연이은 흉작과 페스트까지 돌아 인구는 격감하였고, 무어 인들과 유태인들을 국외로 추방시켜서 스페인의 문화 및 산업, 경제활동 등에 타격을 주었다. 식민지에서 가져온 재화는 왕족 및 상류층이 사치하는 데에 쓰였으며, 펠리페 3세의 무능함이 더해져 사회는 부패되어가고 있었다. 스페인 사람들은 이러한 위기에 내몰린 스페인 제국의 임종을 지켜보면서 환멸을 느꼈고, 세르반테스는 그러한 환멸의 시대를 돈키호테에 담아냈다.하지만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스페인 예술은 부흥기를 맞았다. 스페인은 특히 예술과 문학이 발전하였는데, 당시의 사치와 향락에 빠져 과학보다는 예술에 더욱 심취해있었고, 귀족들은 자신을 과시하는 방편으로 예술가들을 후원하기도 했다. 더욱이 상류층뿐만 아니라 평민도 어느 정도의 문학을 즐길 수 있었기에 스페인 문학이 발전할 수 있었다.Ⅴ. 작품에 나타난 시대 요소앞에서 언급했듯이 돈키호테는 16세기에서 17세기로 넘어가는 펠리페 국왕시대의 스페인 사회상에 대한 완벽한 기록으로서 모든 계급의 등장인물, 다양한 직업과 직종, 민간 신앙과 관습을 재현하고 있다. 작품의 드러난 시대적 요소를 살펴봄으로써 당시의 상황을 알아보고자 하겠다.키하노가 편력기사가 되어 모험을 떠나게 되는 원인은 기사소설 때문이었다. 기사 소설은 1500년대 중반에 스페인에서 크게 유행한 소설이었는데, 기사들의 놀라운 모험담과 사랑하는 여인에 대한 고결한 사랑, 국왕에 대한 충성 등이 주된 내용이었다. 이는 신대륙을 발견했을 당시 스페인 사람들이 가졌던 미지에 대한 꿈과 모험심 기사소설을 태운 것은 기사 소설이 기독교 정신에 맞지 않다는 이유에서 보여주고 있다.당시 사회는 중세에서 근대로 가는 사이에 있던 르네상스 시대였다. 이전 중세 시대에는 인간보다 신이 더 중요하게 여겨지던 때였고, 기독교가 사회의 모든 부분을 지배하던 때였다. 그러나 르네상스는 이를 벗어나, 신보다 인간을 중요하게 여기려는 움직임이 일어났고, 과학과 예술이 발달하게 된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자유를 중요하게 여기고, 계급을 떠나 모든 사람이 평등하며, 결혼과 연애의 자유, 여성도 남성과 동등하다는 인식이 차츰 왕성해진다. 이러한 주제를 돈키호테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자유를 중요하게 여기던 부분은 돈키호테가 끌려가던 죄수들을 풀어주는 장면에서 백성들의 자유를 이야기하고 있다. 또한 마르셀라의 입을 통해 결혼에 있어서 여자들이 자유 의지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결혼은 사랑하는 남녀의 자유 의지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세르반테스의 생각이 잘 드러나 있다. 도로테아가 남장을 하는 부분은 여성도 남성과 동등한 인간이라는 것을 반영한 부분이다.노예를 구출하는 장면에서 총을 찬 교도관이 나오는데, 세르반테스가 젊었을 때 레판토 해전에 참전하였던 때에 총이 사용된 것과 연관된다. 레판토 항구 앞바다에서 스페인, 베네치아, 로마 교황의 기독교 연합 함대가 오스만 제국의 함대와 싸웠는데, 소총 덕분에 전투에서 승리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세르반테스는 레판토 해전에서 소총을 맞아 왼팔을 잃게 된다. 작품에서 총의 등장은 당시에 총이 사용되었던 사실과 총으로 왼팔을 못 쓰게 된 자신의 삶을 나타낸 것 같다.세르반테스가 작품에서 환기시킨 중세적 이상은 바로 북유럽의 종교개혁에 반하는 스페인의 반종교개혁이다. 스페인이 중심이 되어 예수회와 트리엔트 공의회를 두 축으로 전개되었던 반종교개혁은 바로크 문화의 꽃을 피웠다. 세르반테스 개인적으로도 신앙심이 확고부동했으며 스스로도 자신이 착실한 구교도임을 끊임없이 강조했다. 돈키호테 역시 비록 광기와 르네상스적 이성을 보여주지만 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