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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왕의춤 감상문
    감상문 (왕의 춤)정치란 포괄적으론 관계 그 자체,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의미 혹은 의도를 내포하고 있는 모든 행동들을 정치라고 생각한다. 내가 앞에 있는 친구를 툭 치면서 부르는 것은 권위적으로 보일법한 행위를 통해 상대적 우위에 서기위한 내면적 의도가 숨어 있을 수 있으며, 필자는 우리가 하는 대부분의 행위엔 의도가 있고(본인은 모를지라도) 그런 모든 행위는 정치적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인간은 모두가 두 신체를 가지고 있는데 그 하나는 병들어 죽는 나약한 자연적 신체이고, 다른 하나는 정치적 신체 이다. 인간은 모두가 병들어 죽지만 그러한 인간 역시 누군가에겐 뭐든지 잘할 것 같은 권위 있는 선배로 보일 수도 있고, 어머니에겐 물가에 내놓기 항상 불안한 아들 일수도 있다. 이렇듯 인간은 누구나 정치적 신체를 가지고 있다고 설명할 수 있는데 영화 ‘왕의 춤’은 그러한 인간의 자연적인 신체와 정치적인 신체를 잘 구분해 놓은 영화라고 할 수 있다.루이14세는 어머니와 재상사이에서 자신의 뜻을 펼치지 못하는 허수아비 같은 왕이다. 그러한 어린 루이가 자신의 삶의 의미를 표현할 곳은 오로지 춤뿐이다. 그런 그가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 륄리의 음악에 매료되고 륄리는 왕의 권력을 등에 없고 마치 자신이 왕이라도 된 듯한 권력의 맛을 보게 된다. 륄리라는 인물은 오히려 정치적 신체보단 인간의 나약함 즉 자연적 신체를 더 많이 노출 시키는 인물이다. 그의 성품이나 행동엔 경박함이 묻어나고, 자신의 욕구에 솔직하며 영화의 결말엔 처량하게 죽고 만다. 그에게 있어 정치적 신체란 왕 그 자체라고 볼 수 있다. 왕이 그의 음악에 매료된 순간, 륄리에게 있어 왕은 자신의 모든 것이며 이탈리아인으로서 맛보았던 모든 굴욕을 갚는 수단으로서 왕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왕과 자신을 동일시 하려 노력한다. 왕이 권위를 갖게 되면 자신도 그러하고 왕이 추락하면 자신역시 추락하는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왕이 죽으려 할 때 어떻게든 왕을 살리려는 그의 노력에서도 잘 보여 진다. 륄리의 정치적 신체가 왕 그 자체이기 때문에 영화의 결말 부분에서 왕이 륄리를 버린 순간 륄리는 그의 자연적 신체를 드러내며 허망하게 죽고 만다. 왕은 영화에서 정치적 신체를 많이 노출시키며 왕으로서의 권위에 집착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준다. 허나 왕 역시 나약한 자연적 신체를 드러내는데 필자의 시점에선 제후가 죽고 나서 기도를 하며 어머니를 설득시켜야 한다고 두려워 하며 다짐하는 모습과, 어려운 동작에 집착하며 태양형상을 한체로 점프에서 실수 하는 모습이 특히 그렇게 다가왔다. 또한 초상화를 그리고 시각적기호로서 불완전한 본래 몸과 완전한 정치적 신체 사이의 전이를 하려는 집착이 되려 역설적으로 사라질 수밖에 없는 나약한 왕으로서의 모습을 노출시켰다.
    독후감/창작| 2010.04.17| 1페이지| 1,000원| 조회(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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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사회 내의 감시와 역감시 (파놉티콘) 평가A+최고예요
    지역사회 내의 감시와 역감시-감시자의 측면으로 바라본 지역사회Ⅰ. 서 론-연구배경과 목적Ⅱ. 파놉티콘Ⅲ. 생활세계내의 감시체계Ⅳ. 사이버공간상의 감시체계Ⅳ-1 방문자의 숫자가 지닌 권력관계Ⅳ-2 ‘1촌’의 권력관계Ⅳ-3 알 수 없는 방문자의 실체로부터 생성되는 관계Ⅴ.사이버공간과 파놉티콘의 유사성과 차이Ⅵ. 역감시, 시놉티콘Ⅶ. 결 론Ⅷ. 글을 마치며Ⅰ. 서론- 연구배경과 목적이제 우리의 모든 행동과 언어적인 표현들은 (심지어 사이버공간에서도) 비단 우리만이 향유하는 것이 아니다. 이제 인간의 행동과 모습은 특정한 공간 내에서 감시자의 제어를 받아야 한다. 최근에는 현금인출기 공간 안에서 얼굴식별이 불가능할 경우, 현금이 인출되지 않도록 하는 문제까지 등장하고 있다. 또한 범죄를 예방하고, 범죄의 수사를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기 위해 길거리의 주요지점에 감시카메라를 설치하는 사례가 늘어가고 있다. 이것은 모두 ‘감시’의 문제이다. 감시의 문제는 누군가가 지금 나를 보고 있다는 ‘현재성’을 전제하지만 보다 강력한 힘은 바로 그 ‘감시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전제’를 가능하게 하는 내제적인 측면이다. 파놉티콘에 수용된 죄수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항상 자신을 감시하고 있을 간수의 시선 때문에 규율에 벗어나는 행동을 못하다가 점차 규율을 ‘내면화’해서 스스로 자심을 감시하게 된다고, 하는데 이 ‘감시의 내재화’는 인간의 행동과 행위를 조절할 수 있는 권력으로서 작동할 수 있다. 감시는 이제 외부적인 측면에서 작동하기 보다는 인간의 내면적인 전제로부터 발생하는 내부의 권력이 된다. 미셀 푸코는 권력의 작용점에 대해 계보학적 연구를 시행하고, 권력의 작용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폭로하고 있다. 감시와 처벌이라는 측면에서는 미셀 푸코의 권력론적 측면일 수 있지만 필자는 본 논문에서 감시와 권력관의 관계뿐만 아니라 우리 지역사회를 감시자의 측면으로서 바라보며 우리의 생활세계는 감시적인 면에서 어떠한 체계성을 띄고 있으며 우리자가 그것을 지나치고 무심코 내제화하고 있는 지의 대명당 5파운드의 벌금을 물어야 했으며, 따라서 죄수의 건강은 파놉티콘의 운영자에게도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벤담의 설계에 따르면 파놉티콘의 방에는 위생적 화장실 설비가 있었고, 환기는 물론 중앙 난방과심지어 냉방까지 제공했으며, 시민에게 공개되어 시민이 그 운영을 감시하도록 했다. 죄수들은 적어도 억압고 굶주림 질병과 죽음의 공포에서 해방되었고, 이 점에서 셈플은 파놉티콘이 더 인간적이고 합리적이었다고 강조했던 것이다. 이러한 점은 파놉티콘을 “잔인한 새장”이라고 불렀던 푸코도 지적한 점이다. 벤담은 파놉티콘의 운영자가 될 야심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이루기 위해 약 20여년 간 온갖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렇지만 계약으로 운영되는 사설 감옥, 죄수의 노동에 의존하는 공장형 감옥인 파놉티콘은 당시 영국의 개혁세력 일부가 추진하던 공공 감옥, 격리식 감옥과 정반대였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벤담의 영향력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1811년에 영국 정부는 파놉티콘을 포기했다.이러한 파놉티콘의 특성을 정리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시선거리의 일정함이다. 동등한 시선의 거리는 원형적인 형태를 요구한다. 중앙에서 바라보는 시선의 권력은 거리의 일정함을 통해 거리차이로부터 발생할 수 있는 요소를 극소화 한다. 이 감옥이 만약 사각형의 형태를 취했더라면, 거리에서 오는 시선의 차이가 생겼을 것이다. 원형으로 배열된 각 감옥을 감시하는 중앙의 시선은 동일한 거리를 가짐으로써 시선의 평준화가 이루어진다. 둘째, 시선의 일방향성이다. 수감자의 시선은 중앙에 있는 감독자의 존재를 확인할 수 없고, 감독자만이 감옥을 볼 수 있다. 이 구조의 가장 큰 특징은 여기에 있다. 즉 일망감시가 가능한 구조를 가진 것이다. “감시탑은 바깥을 환히 내려다 볼 수 있는 발로 가려진 복도로 둘러싸여 있다. 이 장치(발)로 인해 감독관들은 수감자들에게 잘 보이지 않으면서 수용실 전체를 구석구석 감시할 수 있다.” 즉 감독관 시선의 부재는 수감자들에게 부재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셋째, 일방향 시선은 감옥없다는 시선의 일방향성은 나(학생)들을 내제시키고 부정행위를 할 수 없도록 내제시킨다. 여러 프렌차이즈 레스토랑 같은 곳에는 감시자가 손님인척 가장하여 서비스 및 음식의 질을 살펴 보는 검사들이 있다. 감시대상자들은 감시자가 손님으로 가장하여 감시를 올 수 있다는 사실만 인지할 뿐 누가 감시자인지는 알 수 없다. 감시자가 와서 레스토랑 종업원과 마주하여 주문을 하고 있더라도 그 상황은 서로가 양방향으로 쳐다보는 것이 아닌 일방향적인 시선일 뿐이다. 이러한 행위적 측면들에서의 감시뿐만 아니라 구조적 측면에서의 감시 또한 우리 사회 내엔 팽배하다. 푸코는 다음과 같이 논평했다. “감옥이 공장, 학교, 군대의 막사 병원과 비슷하고, 이것들이 다시 감옥을 닮았다는 것이 놀라운 사실일까?” 실제로 현 군부대의 내무반의 구조는 출입문을 좌우로 일렬 종대식의 구조를 취하고 있다. 좌우의 일렬 종대의 구조는 병사들로 하여금 서로를 바라보는 양방향성 감시체계의 구조를 띄고 있다. 병사들은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고 감시자는 출입문에서 모든 병사들을 효과적으로 감시할 수 있다. 피감시자들에게는 양방향의 시선을 부여함으로서 서로의 행동을 통제하고 억제하게끔 하고 감시자에게는 일방향의 시선을 갖게 함으로써 감시의 효율성을 극대화 시키고 돌발상황의 발생요소를 최소한으로 저하시키는 구조적 효율성을 보여주고 있다. 병원 역시 이와 유사한 구조를 띄고 있다. 또한 불과 몇미터 마다 설치되어 있는 CCTV들은 도시 전체를 거대한 파놉티콘으로 만들고 있다.푸코가 고안한 사회의 파놉티콘화는 현재의 기술진화로 인해 이제 무서울 정도로 실현가능해졌다. 이것이 다름 아닌 전자감시사회의 출현이다. 정보주체의 초상을 무단으로 촬영하여 승낙이나 동의 없이 개인정보를 수집, 저장함으로 인해 해당 개인의 사생활 침해를 가져오고 있다는 데에서 법제적 개선책 마련이 시급하며, 정보통신기술의 발달과 첨단기기의 편리함 이면에는 사생활침해의 우려가 상존하고 있기 때문에 전자적 감시의 우려는 배가되어진다. 더욱이 인간에 는 자기노출이라는 전제로부터 시작된다. 왜냐하면 자기가 노출되는 빈도수에 따라 만족도가 좌우되기 때문이다. 대인커뮤니케이션은 미니홈피라는 매개체를 통해 이루어지며 직접 대면이 아닌 간접대면이지만, 이를 통해 소외를 느끼기도 하고 소외감을 주기도 한다. 방문표시 및 조회수는 서비스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방문자의 방문숫자는 서비스 업체가 제공한 권력의 관계를 드러낸다. 사용자는 이 정보를 방문자의 숫자의 합으로만 파악하지 않고 ‘대인관계의 인지도’로 인식하려고 한다. 방문자를 늘리려는 노력은 더 많은 방문을 유도하고 더 많은 게시글을 유도한다. 결국 방문자를 늘리려면 그만큼 방문해야하는 관계가 있다. 결국 방문자 수는 타인의 방문을 표시하기도 하지만, 나의 활동지수를 의미한다. 사용자들은 1,000명의 방문자가 있는 미니홈피를 보면, 1,000명이 다녀간 것을 인식하지만 그 구조 속에는 1,000번에 준하는 활동이 있었다는 것을 알아채기는 어렵다. 방문자라는 명칭과 숫자의 권력은 방문자를 가장한 채, 자기의 활동을 감춘다. 즉 1,000번의 방문 수에는 1,000번에 비례하는 방문유도 행위가 숨겨져 있다.Ⅳ-2긴밀한 인맥형성관계인 ‘1촌’의 권력관계둘째, ‘1촌’의 기능은 보다 긴밀한 인맥관계를 맺기 위한 기능이지만 인맥을 배제하기 위한 기능이기도 하다. 게시글의 보기를 제한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 바로 1촌이라는 기능이다. 1촌이라는 계급적 친밀도는 자기노출의 범위를 규정한다. 따라서 이러한 친밀도가 형성되지 않으면 게시글을 볼 수 없다. 1이라는 사용자가 2와 1촌을 맺고 3과는 맺지 않는다면 3은 1과 2의 관계로부터 소외된다. 따라서 1촌맺기는 친밀한 인맥관계형성을 위한 수단이면서 배재하기 위한 수단과 시스템이다. 게시글의 보기설정은 타자의 보기를 통한 인맥형성의 권력관계를 보여준다. 이때 권력은 배제하는 관계로부터 전제된다. 미니홈피의 주인에게 10명의 1촌이 존재한다면, 그 이외의 수가 배제된 상태로 있을 수 있다. 결국 ‘1촌’의 유무는본다면 수평적인 소통관계만을 제공하지는 않는다. 파놉티콘의 권력의 상층에서 일방적 바라봄을 지향한다면, 미니홈피는 1촌이라는 인맥관계로부터 한정된 바라보기를 제공한다. 또한 누군가가 나의 미니홈피에 다녀갔는지는 확인할 수 있지만, 그 존재의 명확성은 얻을 수 없다. 결국 방문자의 숫자정보로부터 누군가가 왔었는지를 추측할 뿐이다. 두 관계의 유서성과 차이점을 살펴보자. 첫째 시선형태의 차이이다. 파놉티콘은 일망감시를 통해 수감자의 저항의지를 내면화하는 권력관계를 지향한다. 미니홈피의 경우, 다망응시가 가능하다. 즉 나에게 다수의 방문자가 시선을 보낼 수 있다. 그러나 1촌의 형태로 제한된다면, 시선을 통해 획득할 수 있는 정보는 한정된다. 둘의 관계는 결국 제한된 시선의 구조를 가지는 유사성이 있지만, 시선 받는 자의 의지와 자율성에 의해 차이를 보인다. 둘째, 소통의 방법에 차이가 있다. 파놉티콘은 소통이 한정되어 일방향성을 보이는데 반해 미니홈피는 양방향 소통이 가능하다. 그러나 관계로부터 한정되면 특정정보를 접근할 수 없기 때문에 이런 경우, 정보를 매개로한 소통에서는 양방향성이 계급적으로 제한된다. 셋째, 타자의 시선에 대한 정보에는 유사성과 차이가 있다. 미니홈피는 몰래보기가 가능하지만 봄의 정보는 남는다. 그러나 파놉티콘은 봄의 정보 자체를 제공하지 않는다. 엄밀히 말한다면 봄의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다기 보다는 언제나 보고 있음이 전제되는 것이다. 결국 보고 음의 유사성을 전제하지만 미니홈피의 경우 봄의 정보를 남김으로써 누군가가 보았다는 소통의 여지를 준다. 넷째, 방문자나 관찰자의 상대성과 타자성이 전제된다. 파놉티콘은 감시자가 일망하는 형태로만 제한된다. 그러나 미니홈피는 불특정 다수에게도 방문의 기회가 제공된다. 그러나 역시 방문자의 정보를 알 수 없어 누군가가 왔다갔다는 사실만 알뿐이다.이 네 가지의 시선과 소통의 문제는 유사점이 있다. 그 유사점은 바라봄의 명확한 정보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미니홈피의 경우 누군가가 볼 수 있거나 본 정있다.
    사회과학| 2010.04.17| 10페이지| 2,000원| 조회(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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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브라질의 미래와 가능성
    ‘미래의 땅’ 브라질의 가능성Ⅰ. 글을 시작하며-선정배경과 연구목적Ⅱ. 미래의 땅 브라질-브라질의 기회와 총체적 개관Ⅲ. 사회문제1.인종2.종교 및 여성차별문제Ⅳ. 정치과정1.국가의 형태와 구성2.현 정치상황2-1.피할 수 없는 브라질공산당의 몰락2-2.거스를 수 없는 노동자당의 성장2-3.부패폭발3.브라질 선거제도의 정치적 영향Ⅴ.미래의 땅의 가능성Ⅵ.글을 마치며Ⅰ. 글을 시작하며글에 들어가기에 앞서 누군가 나에게 많은 제3세계 국가들 중 굳이 브라질을 조사대상으로 꼽은 이유를 대라하면 주저 않고 브라질이 축구를 잘해서라고 말할 것이다. 말 그대로 단지 흥미 위주의 접근이자 그것은 브라질이라는 국가와의 첫 만남이었다. 정열적인 삼바와 축구로 대표되는 브라질에 대한 통념이 제3세계로서의 접근으로 보았을 때 화려한 이미지와 브라질현실의 차이는 얼마나 되는지, 그들의 풍부한 자원만큼이나 사회전반과 정치과정에 있어 얼마나 많은 문제점과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지 알아보는 것이 이 짧고 부족한 글의 주제이다.Ⅱ. 미래의 땅 브라질브라질은 흔히들 ‘미래의 땅’이라고도 한다. 북쪽에는 아마존강이 흐르고, 열대 다우 삼림지대가 펼쳐져 있으며, 그 습기에 찬 정글의 서편은 안데스 산맥, 북쪽은 기아나 고지, 남쪽은 브라질고원으로 둘러 쌓여 있어, 브라질 동북부 지방은 건조하고 별로 쓸모없는 지대가 되었다. 그러나 이 메마른 땅과 이어지는 중부와 남부의 광할한 아열대의 그다지 높지 않은 고원지대는 적절한 우량과 비옥한 토양으로 농축업의 보고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광대함은 러시아, 중국, 캐나다, 미국 다음으로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큰 영토를 자랑한다. 브라질의 산물은 흔히 말하는 5C(coffee, cotton, corn, cacao, cattle) 외에도 수많은 농산물과 광산물이 있고, 그 밖에도 석유, 천연가스, 고무, 목재 등 자원이 풍부하니 브라질이 지니고 있는 가능성은 거의 무궁무진하다. 이러한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브라질은 극심한 빈부격차와 치솟는 인플레, 여성차별 4% 개신교 18.6% 무속 신앙적 카톨릭 16% 무속신앙 4.8% 무종교/기타 2,4% 불교 0.2% 회교 0.1% 유대교 0.06%로 종교가 없는 국민이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러한 카톨릭 문화는 앞서 언급한 아프리카에서 노예로 건너오게 된 흑인들의 영향인 아프로 브라질 종교를 만들어냈다. 아프로 브라질 종교는 최근에 이주해온 독일계, 이탈리아계, 일본계 이민사회에도 많은 신도를 확보하고 있다. 또한 빈자들에서 중간지식계층과 고위 관료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아프리카에서 전래한 신앙들은 낮은 형태의 강신술로 저평가되기도 하지만 신자들은 영적인치유뿐만 아니라 육신의 치유까지도 기대한다. 브라질 인들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큰 위안이 되기 때문에 초자연의 힘에 의존하기를 좋아한다. 신도들은 예배 중 무아지경에 이르고, 신들린 상태가 되면 그들을 괴롭혔던 온갖 고통도 있고, 신과 혼연일체가 된다. 이때 흑인들은 인종차별에서 오는 열등감을 말끔히 씻어내고, 백인 하층민 역시 빈곤의 고통을 잊고 재정적으로나 사생활의 많은 면에서 위협받는 중산층도 이 종교의 도움으로 위안을 삼는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위안으로 일종의 샤머니즘을 카톨릭에 융합시킨 것이 아프로 브라질 종교의 확산 요소이다. 하지만 자신들의 문화로 변형 내지 정착시킨 종교가 매우 가부장적인 카톨릭 형태로 정착되다. 그로인해 심각한 수준의 여성차별 문제가 파생되고 있다. 극단적인 예로 브라질은 1916년 이래로 첫날밤 처녀가 아닌 것이 밝혀질 경우 신랑은 신부를 소박 놓을 수 있다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법 조항이 생겼으며 무려 100년가까이 지난 현재에야 법이 개정되었다. 현재도 여성차별은 브라질 사회 내 에선 매우 흔하고 암묵적인 현상이며 이러한 현상은 빈민층에 특히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국민성은 자유분방한 반면 일반 가정에서는 상당히 남성중심적인 전통이 유지되고 가정 내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이 다반사 로 벌어지면서 여성이 남편을 살해하는 등의 강력사건으로 확대되는 일이 잦다. 이렇게 남성우월가능하며 현 룰라 대통령은 재임에 성공해 2003년부터 집권하고 있다. 사법부는 연방최고법원, 고등법원, 지방법원으로 나뉜다. 브라질의 정당은 군부통치가 말기에 접어들던 1979년부터 민주화바람이 거세게 일면서 양당제가 폐지되고 다당제가 채택되었다. 하지만 뚜렷한 정당정치의 전통이 없던 브라질은 선거 때마다 정치인들의 이합집산이 이루어지면서 군소정당들이 탄생하였는데 현재 그 수가 20여개를 상회한다. 이러한 관계로 주요정당들의 정강이나 이념에는 큰 차이가 없으며 대다수 중도 좌파적인 성향을 보이고 있다. 한 가지 특징이 있다면 우리나라와는 달리 공산당 등 극좌 정당들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들의 영향력은 매우 미미한 수준이다. 현재의 주요정당들은 노동자당, 브라질사회민주당, 브라질민주운동당, 자유전선당, 브라질노동당, 민주노동당 등이 있다.Ⅳ-Ⅱ.현 정치상황2006년 재임에 성공한 노동자당 당수 룰라 대통령이 2002년에 브라질 대통령으로 선출된 것을 두고 당시 많은 논평가들은 브라질 노동자계급의 매우 중요한 정치적 승리라고 생각했다. 또한 룰라의 승리는 지난 20년간 국제적 좌파 진영이 얻은 가장 중요한 정치적 성과 중의 하나이자, 남미의 정치 지형에서 좌파의 영향력 확대를 뚜렷이 보여주는 모범적인 사례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룰라 행정부는 씁쓸하게도 브라질 국내외에서 오랫동안 그를 지지해 왔던 많은 사람들을 실망시켰다. 그리고 그러한 실망은 노동자당 내 좌파 세력의 분열을 가속화했다. 당 내의 몇몇 고위급 지지자들은 당을 떠났고, 수 천 명의 당내 활동가들이 점차 드러나는 당의 변질에 대해 불만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들이 보기에 ‘노동자당’ 정부는 도저히 정당하다고 인정할 수 없는 방식으로, 이미 망한, 이전 행정부의 신자유주의적 정책들과 완전히 똑같은 정책들을 추진하고 있었던 것이다. 비록 이런 정책들이 물가를 보전하고, 환율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데 나름의 기여를 했으며 국가 위기 지표들의 안정을 확보해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브라질의 상대적 경기 주의당과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동맹을 형성할 수 있었다. 이들 ‘부르주아’ 정당들과의 동맹은 매우 높은 평가를 받았는데, 이는 민주적이고 민족적인 발전 전략을 전개하기 위한 필요조건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브라질공산당이 당시의 브라질이 농업 지주와 제국주의 파벌의 지배를 받는 반봉건적 사회였기에 진보적인 사회 변화를 위해서는 노동자 계급과 국내 부르주아 계급사이의 정치적 동맹이 필요하다고 역설하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러한 제휴는 비록 사회주의로의 이행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제국주의로부터 브라질을 해방시키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하고, 지방의 생산 세력을 발전시키며, 이를 통해 간접적으로는 노동자들의 운동을 진전시킨다는 것이었다. 위와 같은 브라질공산당의 전략은 1964년 전반적으로 실패한 것으로 판명이 났다. 국내 부르주아지와 대부분의 중산계급은 브라질공산당이 지지했던 인민주의적이고 개혁주의적인 후안 굴라트대통령에게 등을 돌렸고, 대신 극우 정치 노선에 보조를 맞춰 주었다. 굴라트 대통령은 4월에 미국 정부와 지방의 이익세력과 사회단체들 사이의 동맹에 의해 적극적 지지를 받았던 군부 쿠데타에 의해 축출되었다. 쿠데타 지지 동맹 세력의 하나인 사회단체들의 경우는 특히 브라질공산당이 동맹을 결성하려고 희망했던 단체들이었는데, 이들은 주로 국내 산업 부르주아지들이 대부분이었다. 노동자들은 고립되었고, 그들의 조직은 분쇄되었다. 군부 쿠데타 세력은 정치적 민주주의를 완전히 파괴했으며, 정치적으로 조직된 국내 좌파를 체계적으로 해체시키는 데 주력했다. 이것은 결국 전후 시기 브라질 좌파 정치의 첫 번째 주기의 종식을 가져왔다. 좌파의 퇴조와 브라질공산당 전략의 실패는 당의 분열에 일조했고, 좌파 이데올로기에 영향을 받은 소수의 소규모 급진적 조직 설립으로 귀결되었다. 그들 중 일부는 독재 정치에 대항한 무장 투쟁을 지지하거나 직접적으로 후원했으며, 특히 1968년 12월 폭력적인 독재정권의 등장 직후 그러했다. 그러나 도시와 농촌의 게릴라전에서 보이는, 상대적대중운동 진영의 새로운 세대가 급속히 성장함에 따라 거대한 도전에 직면하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1978년 5월 30만 명의 노동자들이 실질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300 여개 공장에서 파업을 단행했다. 비록 그 파업이 불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군부 정권은 이들 노동자들의 파업을 물리력으로는 도저히 저지할 수가 없었다. 결국 노동자들은 국내 기업 및 다국적 기업에서 대사용자 교섭을 보장받았고 결과적으로 그 파업은 노동자들에게 중요한 경제적 이득을 가져다주었다. 그것은 또한 저항은 잠재적인 보상들을 가져다 줄 수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과 독재 정권이 대중 운동에 매우 취약하다는 점을 국민에게 알린 계기가 되었다. 결국 그 파업으로 인해 금속 노동자들은 브라질 노동자 계급의 전면에 나서게 되었고, 그들의 카리스마적 지도자였던 룰라는 브라질 정치에서 반드시 고려해야만 하는 중요한 정치적 지도자가 되었다. 전후 시대 브라질 좌파 정치의 두 번째 주기는 위에서 언급했던 바와 같이, 좌파 운동의 ‘정치적’ 세력과 ‘노조주의’ 세력 사이의 동맹에 기초해 있었다. 1980년에 룰라의 지휘 하에 노동자당이 창당되었고, 여기에는 가톨릭교회와 긴밀한 관계를 가진 활동가 그룹 등 각기 색채가 뚜렷한 그룹들도 광범위하게 포괄되었다. 노동자당은 비정상적일 정도로 급속하게 성장했는데, 10년도 채 못 된 기간 동안 당원은 80만 명에 이르렀다. 노동자당은 학생운동 진영 안에 중요한 지위를 확보해가고 있었다. ‘노동자당’은 브라질에서 그 자체로 가장 중요한 좌파 정당의 하나로 성장해가고 있었다. 그 다음 몇 년이 지나자 노동자당은 더욱 성장하여 브라질 좌파 진영 내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게 되었다. 대부분의 좌파 단체들과 조직들은 노동자당에 가입하거나 노동자당 활동가에 의해 운영되었고, 대부분의 좌파 정당들은 노동자당의 위성 조직이 되거나 더 이상 실질적으로 독자적 정치 활동을 전개할 수 없게 되었다. 노동자당의 이와 같은 이례적인 성공은 2002년 룰라의 대통령 선거에서 절정을 이뤘고, 압도적 .
    사회과학| 2009.07.11| 9페이지| 1,500원| 조회(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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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네 이웃을 사랑하라 를 읽고
    지구촌이란 이름의 위선- 피터마쓰의 ‘네 이웃을 사랑하라’를 읽고‘우리의 반쪽만이 제정신이다. 우리의 다른 반쪽은 거의 미치광이다.’ 피터 마쓰는 보스니아 내전에 대한 자세하고 깊은 내용을 이야기함으로써 우리 내면의 야수성 혹은 비겁함을 용기 있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솔직하게 서술하였다. 발칸반도는 제 몸 위 에 뿌려진 피로 인간이 얼마만큼 추악해질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추악함을 직면한 인간은 얼마나 비겁해질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 소위 글로벌 시대라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우리의 이웃을 얼마만큼이나 사랑하고 있는가. 아니 사랑을 베풀지 못할지라도 그들의 고통을 직시하고 그들의 고통을 치유해줄 용기가 있는가.나는 이 글을 통해 피터 마쓰가 전하고자 한 바와 그를 통해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이 책에 내재된 특징적인 키워드를 잡고 그 키워드를 통해 서술해 보도록 하겠다.Ⅰ. 우리안의 야수보스니아 내전은 1990년대 초에서 중까지, 유고가 무너진 후 세르비아가 민족주의 정책을 내세우며 보스니아 내 세르비아인들을 보호한다는 명목 하에 일으킨 전쟁이다. 하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민족보호의 측면 보단 유고 붕괴 후 불안정한 정세를 틈타 조금이라도 더 많은 영토를 차지하려는 민족 간 침략의 역사이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며 역사 속 많은 전쟁들과 그 전쟁의 폐해를 접할 땐 그 세계는 이미 나와 한참 동떨어진 과거의 세계이기에 그 당대의 사람들이 지닌 가치관과 시대상황을 통해 그 사건을 받아들인다. 역사 속 전쟁과 현재의 우리 사이엔 수백 년의 시공간이 존재함으로 그 잔혹함과 불평등은 문화의 미개함으로 치부할 수 있었다. 허나 때는 20세기 말 오늘날의 인류는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가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 되고 세계 곳곳 여행을 다니며 지구라는 공간의 개념은 점점 좁아지고 있는 중이었다. 27만 명이 사망하고 200만 명 이상의 난민을 발생시킨 이 참혹한 사건이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나와 동시대에 발생한 사건이라는 것이 나를 경악케 했다. 우리가 즐겁게 가족들과 저녁식사를 하고 담소를 나누는 행복을 향유하고 있을 때 지구 반대편에선 이웃끼리 서로에게 총칼을 휘두르며 다치고 죽어가고 있었다. 이 끔찍한 전쟁의 참상들을 굳이 나열 하고 싶진 않다. 하지만 내가 이 글에서 진정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부분은 어떻게 우리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문명인이란 불리는 사람들이 이러한 참상을 저지를 수 있었으며 그렇다면 우리 역시 그 상황에 처해있을 때 우리 내면의 야수성은 양심이란 최후의 방어선을 무너뜨리지 않을 수 있었을까 하는 것이다.세르비아의 청년들은 18살이 되면 군에 징집되었다. 마쓰는 그 청년 중 한명인 보리스에게 물었다. ‘군 입대 명령을 받으면 어떻게 할 겁니까?’ 보리스는 대답 한다. ‘군대에 가야죠, 감옥보다는 나으니까요’. 우리나라나 몇몇 국가에 최근 일어나는 양심적 병역거부는 나라가 평화로울 때나 내세 울 수 있는 용기이다. 누가 내 머리에 총구를 겨눠도 어디다 항변할 곳 없는 전쟁 통에 자신의 양심과 도덕, 가치관은 사치일 뿐이다. 그들은 별 생각 없이 총을 쥐고 자신이 죽지 않기 위해 상대에게 총구를 겨눈다. 그리고 그 죽음같이 어두운 분위기는 우리안의 야수성을 깨운다. 책을 읽으며 진지하게 생각해본바 중 하나는 나 자신을 세르비아 군이 되었음을 가정해 보는 것이었다. 내가 세르비아 군이고 손에 총을 지워 주었다면 나는 무슬림들을 죽이지 않았을까. 동료 병사들이 직무와 상관없는 강도와 강간 등의 무자비하고 부도덕한 행위를 저지르고 있을 때 나는 끝까지 양심을 지킬 수 있었을까. 마쓰의 말을 빌리자면 “흔들리는 대중, 침묵하는 대다수, 선한 사람들, 그들도 첫 총성을 울린 무뢰한들과 마찬가지로 손에 피를 묻힌 것처럼 느끼게 만들어야 한다. 이들을 범죄의 공범으로 만들어야 한다. 일단 그렇게 되면, 그들의 도덕적 중추가 무너지면 그들은 그야말로 무슨 짓이라도 하게 된다.” 개인이 집단에 영향을 미치는 것 보단 집단이 개인에 영향을 미치기가 쉽다. (물론 개인이 집단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그 영향력은 훨씬 강하게 나타날 수 있다. 이에 대해선 세 번째 단락에서 다루겠다.) 같은 인간으로서 보스니아 인들은 개개인이 의식으로 인한 부도덕하거나 비이성적인 행동을 일삼는 광기라기 보단 그 집합과 군중의 무서움이 그러한 광기를 낳지 않았나, 하고 대신 변명하고 싶다.Ⅱ. 서방의 관망적 태도와 무책임보스니아 내전이 벌어지고 있을 당시 미국 내지 서구 열강들이 이웃에서 벌어지고 있는 참혹한 일들을 과연 모르고 있었을까. 그들은 누구 보다 자세히 알고 있었다. 기막힌 대사가 나온다. ‘보스니아 사람들이 차라리 사람이 아니라 고래였다면 전 세계가 살육을 중단시키기 위해 무슨 조처든지 취하겠지요.’ 내 생각 역시 그렇다. 27 만 명의 보스니아 인들이 죽어가는 것이 아니라 단 20마리의 고래를 죽이는 것이었다면 전 세계가 세르비아를 가만 두지 않았을 것이다.내전이 벌어지고 있을 당시 미국은 부시와 클린턴이 대선경합 중이었고 클린턴이 승리해 집권하고 안정을 다져가는 중이였다. 그런 상황에서 보스니아는 미국에게 피할 순 없지만 피하고 싶은 말썽꾸러기로 밖에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보스니아 입장에선 자국의 영토와 국민을 보호하는 것이 당연하고 그를 위해 압도적인 무력차이에도 총칼을 휘둘렀다. 이를 미국은 ‘양측이 모두 포를 쏘고 있다. 이는 제3자가 관여해서는 안 되는 내전이다.’ 라고 생각했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는 척 했다. 유럽역시 발칸반도를 외면했다. UN 또한 이름에 걸맞지 않는 행동들만을 취했다. 하루에 수백 수천 명씩 죽어가는 전쟁을 단지 집안싸움 정도로만 간주한 것이다. 책 내용에 미국의 저명한 외교관이었다가 보스니아 내전을 계속 축소하고 외면하려는 미국에 염증을 느껴 안정된 삶을 포기하고 외교관을 사직한 조지 케니의 인터뷰 내용이 나온다. 그와의 인터뷰 내용엔 ‘국무부 고위 관리들은 마치 자기 귀를 막고 큰 소리로 떠들어 남들의 소리를 막는 어린아이들 같았다.’ 라는 내용이 나온다. 오늘날의 정치는 더 이상 자국 내의 것일 수 없다. 국제정치보단 지구정치라는 개념이 보다 어울리는 시대이다. 모두들 저 편할 때만, 자기네 이익에 위배되지 않을 때만 ‘지구촌이다. 지구는 하나 다’ 라는 말을 한다. 강대국들은 지구촌에 즉 전 세계적인 국가에 책임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들이 눈부신 경제 발전을 이루기 위해 그 밑거름으로 이용한 식민지들과 그들이 망가뜨린 지구 환경에 책임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민주주의와 인권을 사랑하는 미국에게 20세기에 유럽에서 벌어지는 집단 학살을 왜 막지 않느냐고 묻는 다면 미국은 말 할 것이다. ‘미안하지만, 저는 어느 편도 들 수 없습니다.’지나가던 행인이 보스니아 군인에게 묻는다. ‘왜 그렇게 깊게 파고 있습니까? 2m 정도면 충분한데’. 군인은 대답한다. ‘압니다. 그래도 정말 깊이 파면 기름이라도 나올지 압니까? 그러면 미국이 보스니아도 구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할 것 아닙니까?’ 그렇다. 보스니아에서 석유라도 나지 않는 이상 보스니아는 미국에겐 외면하고 싶은 골칫거리일 뿐이다.Ⅲ. 개인이 집단에 미치는 영향개인이 한 집단 그것도 한 국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그것도 모자라 모두를 미치광이로 만드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런 면에서 밀로세비치는 최악의 권력자이기 전에 엄청난 천재라고 말하고 싶다. 그를 희대의 사기꾼이자 피도 눈물도 없는 독재자로 만드는 데는 그의 암울한 가정사도 한 몫 했을 것이다. 밀로세비치의 아버지는 목사였지만 자살했고, 열렬한 공산주의자였던 어머니 또한 자살했다. 그가 좋아했던 삼촌마저 자살했다고 한다. 어렸을 적부터 그의 주위엔 죽음이 맴돌아서였을까 책에서 표현되는 밀로세비치는 죽음에 대한 진지함이 결여된 듯 보인다.세르비아엔 24시간 공영방송이 나가고 쉴 새 없이 뉴스가 보도된다. 무슬림들이 수만의 세르비아인들을 살육하고 있으며 매일 밤 강간과 강도로 세르비아인들이 잠 못 이루는 밤을 지새우고 있다고 한다. 한 개인 혹은 소수집단의 계획적이고 정치적인 거짓말은 인간을 바보로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 어젯밤까진 참 친절한 이웃이라 여기며 정겹게 인사를 나누던 사이인데 보스니아 인들이 세르비아 남자들을 모두 죽여 그들 성경에 나오는 하렘을 만들려고 한다는 방송을 듣고는 이웃이 잡혀 간걸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제 3자인 우리가 보기엔 세르비아인들은 참 어리석다고 쉽게 말할 수 있겠지만 만약 우리가 동일한 상황에 놓여 져 있었다면 우리는 이성적인 판단으로 사리분별을 정확히 할 수 있었을까. 우리는 모두 비슷한 구조를 지닌 같은 인간이다. 세르비아인들은 그저 밀로세비치의 광기에 사로잡혔을 뿐이다. 보스니아인들 뿐만 아니라 그들의 이웃을 잃은 세르비아인들도 정치적 목적에 의한 희생양이라는 생각이 든다.
    독후감/창작| 2009.07.11| 5페이지| 1,000원| 조회(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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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를 위한 변명을 읽고 평가B괜찮아요
    비판예찬-‘역사를 위한 변명’을 읽고안타깝게도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살아내야 할 세계는 거짓과 왜곡이 난무하는 세계이다. 이 거짓과 왜곡이 누군가의 생명을 앗아가기도 하며 평화롭던 세상을 뒤흔들어 놓기도 한다. 이러한 세상에서 현실적으로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또는 아름다운 미래를 지향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거짓과 왜곡을 가려내는 혜안(慧眼)이 필요한 때이다.Marc Bloch 의 역사를 위한 변명을 통해 역사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과 전제에 대해 보았다. 그가 쓴 이 서적에서 오늘날 우리가 배우고 있는 역사를 바라보는 이론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그 중 나는 그가 서술하고 있는 ‘역사적 비판’이라는 대목에서 어떤 깨달음을 얻었고 동의를 보내는 바이며, 이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오늘날 많은 연구와 학문에서 쓰이며 우리 생활 깊숙이 그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의식인 ‘비판’이 있다. 단순히 ‘비판’이란 말을 접했을 때에는 무언가 따지고 반대하고 부정하는 비판의 성격에서 비롯된 어떤 부정적이거나 공격적 감정들을 이끌어낸다. 그 까닭은 우리가 흔히 행하고 있는 ‘맹목적 비판’ 즉, 명확한 근거 없이 매도하고 부정하는 방식으로 이 숭고한 단어가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하지만 이 ‘비판’이란 것은 사물의 옳고 그름을 가리어 판단하는 긍정적인 과정이다. 이는 역사를 바라보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것이며 필요로 하는 것이다. 역사 속에 감추어져 있는 왜곡된 진실을 찾아내어 이를 바로잡고 진실된 진실을 찾는 과정이 비로소 이 ‘비판’을 통해서 가능해 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역사뿐만 아니라 온 세계를 바라보고 살아나감에 있어서 이제 그 ‘비판’이라 하는 것의 위치는 더욱 확고히 자리를 잡고 있다.“비판은 고대라는 어두운 길을 가는 우리에게 빛을 비춰주었으며, 올바른 길로 인도 했고, 진위를 식별할 수 있도록 도와준 횃불” -엘리 뒤팽특히 역사를 바라보는데 있어서 이 ‘비판’이란 것의 존재는 우리가 바라보는 역사를 가능케 하는 것 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역사란 인간을 주체로 인간에 의해 성립된 것이기 때문에, 인간이 가진 조작이라는 재밌는 행위를 통해 왜곡되고 변질 될 수 있다. 따라서 이 ‘비판’이란 것을 통해 인간이 틈틈이 나름 교모하거나 허술하게 주입해놓은 이 ‘조작된’ 부분을 찾아내어 진실된 역사에 가까운 모습을 우리가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역사는 과거에 관한 학문’이라는데 동의하지 않는 블로크의 의견처럼 역사는 오늘날을 살아가는 인간들에 의한 ‘현재’와 나아가 ‘미래’를 위한 것이며, 이 현재와 미래를 비춰주기 위해서는 ‘비판’이라는 밝은 빛이 반드시 필요로 한다.이는 다만 역사에만 적용되는 것이다.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조작과 왜곡된 시선이 난무하는 현실세계에서 이를 한 번 더 바라보고 이를 ‘회의(懷疑)’하고 옳고 그름을 가리는 ‘비판’의 과정은 오늘날의 우리에게 필수이다.“어떤 사실을 검토하는 데 ‘회의’(懷疑)라는 방법을 도입했을 때, 달리 표현하면 객관적인 법칙이 서서히 확립됨으로써 허위와 진실 사이의 구분이 가능해지면서 진정한 진보가 이루어졌다.” - 볼네더불어 비판과 유사한 의미를 지닌 이 ‘회의(懷疑)’라는 것에 대해 이야기 해보겠다. 이 ‘회의’라는 것은 성급한 판단이나 경솔하게 수용하지 않는 비판에 앞선 의식으로써, 상식적으로 자명한 일이라 할지라도 전통적인 권위를 무조건적으로 긍정하지 아니하고 부정적인 태도로 의심하여 보는 일을 말한다. 왜곡과 조작이라 우리가 느끼는 것 뿐 만 아니라 우리가 확고히 믿고 있는 상식이나 진실이라 여기고 있는 역사 또한 깊숙이 우리가 눈치 챌 수 없을 정도로 깊숙이 자리 잡은 거짓일 수 도 있다. 이러한 의심으로 비롯되는 ‘회의’는 어찌하면 모든 것을 부정하고 의심하는 극단으로 빠질 수 도 있다. 그러하기에 ‘회의적’ ‘회의적 인간’이란 말은 그다지 반갑지 만은 않은 지칭 일 수 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학문을 하는 데 있어서 더욱이 역사나 철학을 학문하는데 있어서 이 ‘회의’란 것은 근본이 된다.
    독후감/창작| 2009.07.11| 3페이지| 1,000원| 조회(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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