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직한 교사에 대하여 - 「에스메이의 일기」를 읽고에스메이의 일기는 스물 네 살의 초임 여 선생님이 1년 동안 겪은 일을 적은 에세이다. 에스메이는 아이들 대부분이 흑인인 시카고 도심에 새로 문을 연 공립초등학교에서 5학년 담임을 맡게 되었고, 그녀의 1년 간의 일기는 교사가 되고자 하는 많은 이에게 감화를 주는 소설이다.에스메이는 진정한 교사의 재량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그녀는 학생들이 의도하지 않은 상태에서 자연스럽게 흡수할 수 있도록 교육 환경을 만들어갔다. 이를 테면 에스메이에 의해 ‘국어’시간이 ‘언어예술’이 되었고, ‘수학’시간은 ‘퍼즐 풀기’, ‘사회’시간은 ‘시간여행과 세계탐험’으로 바뀌었다. 또한, 알파벳을 모르는 아이들을 위하여 ‘알파펫 박물관’을 만들고, 글을 읽고 쓰는 데에 익숙하지 못한 아이들이 친근하게 책을 친근하게 느끼도록 연극공연을 주도하며, 자신의 책으로 학급문고를 만들었다. 나는 교사가 가져야 하는 창조성이나 상상력, 학생들을 위한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로써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흔히 생각하기 어려운 기발한 활동계획과 수업교구들은 교사가 학생의 눈높이에 맞추어 학생들을 이해하려 했음을 알게 해주었으며, 흥미로운 자극이 교육의 능률을 얼마나 높여주었다. 이 점은 학생들 간의 갈등에 있어서도 다르지 않았다. 에스메이는 갈등을 해결하는데 있어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갈등을 해결하려 하였기 때문에 적절한 타협점을 찾을 수 있었다.에스메이가 그랫듯 언제나 교육은 지식전수의 차원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예를 들어, 에스메이는 한 학생이 작가의 꿈을 포기하지 않도록 작가를 섭외하였고, 그 학생을 만나게 해주어 그 학생이 작가의 꿈을 포기하지 않도록 하였다. 이는 모든 교사들이 본받아야 할 교사의 자세이다. 아침마다 집에서 짊어지고 온 고민을 담는 고민 바구니를 마련하고, 모든 학생과 매일 눈 맞추어 인사하는 것은 훗날 교사가 될 사람이라면 누구든 시도해봄즉 하다. 특히, 아이들을 대하는 데 있어 적정선을 유지하며 아이들을 대하는 모습은 교사가 될 사람들에게 호소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된다. 바람직한 교사라면 학생들에게 항상 헌신적으로 사랑을 나누어주는 아가페적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생에게 무한한 사랑을 베풀어줄 때, 더 많은 아이들이 잘 따라와 줄 수 있을 것이다. 많은 문제는 ‘사랑’으로써 해결될 수 있다. 그러나 학생의 자립심을 키울 수 있도록 교사는 주어진 상황에 맞게 적정선을 지켜서 학생과 함께해야 한다. 또한 에스메이가 그랬듯이 흔히 교사가 ‘정신적 보상’이나 ‘만족감’을 이야기하기에 앞서서, 스스로 진정한 ‘선생님’이 되어야한다고 생각한다.그렇다면 한국의 교육은 지식전수의 차원에서 얼마나 더 나아가 있는가를 생각해본다. 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려보면, 교과의 수업진행은 완전히 입시교육에 집중되어 있다. 윤리교과를 대표적으로 생각해보면, 수능에 주로 자주 출제가 되는 “윤리와 사상”에서 동/서양 사상부분의 경우 교과서 한줄 한줄에서 더 나아가 심화된 교육을 한다. 그러나 “전통윤리”의 경우 대부분의 영역이 수능에 출제되지 않기 때문에 매우 빠르게 진도를 나가게 되었다. 그렇다면 수능문제는 얼마나 지식전수의 차원을 벗어나는 가를 생각해본다. 인간의 예술성, 심미성을 담당하는 음악, 미술교과는 애초에 수능의 시험 영역에 해당하지 않는다. 인간의 도덕성을 담당하는 윤리교과는 선택과목에 불과하다. 지초지식학이라고 할 수 있는 국어, 영어, 수학은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다. 그렇다면 학교에서 가르치는 교과시수의 조정을 생각해보자. 정해진 교과시간과는 달리 단위학교에서는 교과시수를 조정하는 경우가 다수 있다. 이를테면 사회시간에 영어나 수학을 가르치는 것이다. 결국, 지덕체 모두를 강조하는 교육이 되기보다는 기초지식학에 치중한 입시교육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학교의 모든 시스템은 “수능” 또는 “입시”에 초점을 맞추어 이루어졌다고 학생입장에서는 생각될 수 밖에 없었다. 따라서 교사의 역할 또한 에스메이의 학교처럼 이루어지기 힘든 것이 실정이었다. 꿈을 키워주는 교사의 역할은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다는 꿈을 키워주는데 급급했던게 사실인 듯 하다. 물론, 이러한 체제 속에서도 교사는 스스로 에스메이와 같은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노력을 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그럴 수 있는 대한민국의 교사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는 교사의 문제라기보다 전체적인 교육의 체제와 밀접한 문제라고 여겨진다.물론, 에스메이의 학교와 한국의 학교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사소한 호칭이 문제가 되고, 사소한 일 하나로 소송이 걸리는 것은 한국의 학교에서는 쉽게 있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진정한 교육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할 때, 수많은 장벽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공통적인 듯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학교수업의 제한된 시간 속에서 학생들에게 규정된 교육과정을 전부 교육하여야 하고, 그렇기 때문에 ‘진도’에 얽메여 선생님은 스스로 생각하는 교육의 가치를 실현하는데 어려움을 가진다. 또한 입시위주의 교육 실태는 학교가 전인교육의 장이 되는 것에 어려움을 가중하며, 많은 학부모들이 학교조차도 입시교육을 위주로 이루어지길 원하는 대한민국에서 에스메이가 하였던 교육이 실현가능 할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이에 나는 맹자의 귀중한 한 말씀이 떠올랐다. “그것은 못하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은 것이다.” 훗날 꼭 에스메이를 본받아 에너지 넘치고, 세심하며, 창의적인 선생님이 되어야겠다고 다시 한 번 다짐해 본다.
[문학과 윤리]I. 서론.현대의 일반인들에게 문화는 획일적이고 고정적인 사회에서 벗어나 메마른 정서를 촉촉이 적셔주는 소중한 삶의 활력소가 된다. 이 문화에는 영화, 연극, 문학, 각종 여가생활 등 여러 가지가 있는데, 우리는 지금부터 글로써 우리를 즐겁게 하고, 또 슬프게 하는 문학에 대하여 말하고자 한다. 1)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문학은 인간이 주위에 있는 것을 모방하려는 충동을 항상 느끼며, 모방된 것에 대해서는 기쁨을 느끼기 때문에 모방의 욕구로 문학이 처음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렇듯 문학의 내용은 작가 주변의 것으로 구성된다. 이것은 필자가 자신의 지식체계?사고체계 안에서 글을 써내려 갈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당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문학 속에는 글쓴이 주위의 사회와 그 사회의 사상, 사고관 등이 반영되어 있고, 동시에 글쓴이의 사고관과 자신의 의사 등이 나타나 있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2)정약용은 목민심서에서 예로부터의 지방장관의 사적을 수록하여 치민(治民)의 도리를 논하였다. 이 목민심서에는 부패의 극에 달한 조선후기의 사회상이 나타나 있으며, 동시에 ‘인간의지의 자율성을 중시하는 인간의 도덕적 책임을 중요시 해야한다.’는 정약용의 윤리의식이 나타나 있다. 이와 같이 우리는 문학작품을 통해 당대의 사회와 윤리를 파악할 수 있다.II. 본론.1. 한국의 고전문학 속에 드러나는 윤리의식.① 부부윤리(夫婦倫理).: 부부윤리는 고대뿐만 아니라 현대에 이르기까지도 계속 중요시되는 윤리 중의 하나이 다. 하지만 고대의 부부윤리와 현대의 그것이 완전히 같지는 않다. 3)고대에서는 현대 윤리에 비해 열(烈)윤리를 강조하고 있다. 이는 조선시대에 두드러지는 데, 그것은 당대 의 유교윤리가 남존여비(男尊女卑)사상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남존여비 사상으로 인해 여성들은 더욱더 예속된 생활을 해야 했으며, 그로 인해 자의든 타의든 간에 가문에 욕 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 철저하게 윤리규정을 지켜야 했다. 은 조선시대의 부부윤리가 잘 드러난 작품이라)이다. 이처럼 조선시대의 열(烈)의식은 여성의 정절을 관행적으로 의무화, 윤리화 한다. 그리하여 지금까지도 열녀(烈女)라는 단어가 생겼고, 열남(烈男)이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의식 은 이광수의 과 같은 근-현대 작품을 봤을 때, 20세기 초에 이르러서야 고전적인 열(烈)의식과 현대적 양성평등의식이 대립하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다.② 군신윤리(君臣倫理).: 조선시대와 그 이전의 시대가 현대와 차별화 되는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최고 지배 자가 대통령이 아닌 왕이라는 것일 것이다. 수많은 문학작품은 이러한 왕들을 조명하고 있고, 또한 그 충신을 조명한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군신사이에서의 윤리로, 그것의 긍정적 부분을 충(忠)윤리라 일컫는다. 다음은 송강 정철의 훈민가 중 두 번째 연이다.님금과 백성과 사이 하늘과 땅이로다.내의 셜운 일을 다 아로려 하시거든우린들 살진 미나리 홈자 엇디 머그리.훈민가 중 위의 부분은 바로 군신(君臣)을 주제로 한 부분이다. 먼저 첫 행을 보자. 임금과 백성의 사이가 하늘과 땅이라고 되어있다. 4)일단 여기서 우리는 당대에 군주는 반드시 신하 위에 군림해야 한다는 의식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이것은 절대로 흔들릴 수 없는 원칙이니 천하를 사람의 몸에 비유한다면, 황제는 머리가 되고 신하는 곧 심장이나 눈 혹은 귀가 된다는 군신의 도를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두 번째와 세 번 째 행을 보면, 신하로서의 임금에 대한 도리가 간접적으로 나타나 있다. 즉, 임금이라는 분은 백성을 살피어주시는 분이므로 신하로서의 백성은 임금을 향한 충(忠)을 다하여야 한다는 내용으로 볼 수 있다. 아래의 조선의 작가가 밝혀지지 않은 이라는 소설을 보자.)5)주인공 조웅과 문제(文帝)의 태자가 간신 이두병(李斗柄)의 발호로 나라가 위태로워 지자 후일을 기약하고 작별한다. 방랑하던 조웅이 장소저(張小姐)를 만나 장래를 약속한 뒤, 위기에 빠진 태자를 구출하고 수십만 대군으로 간신 이두병을 무찔러 송나라를 회복 시킨다.위의 글 이른 다는 효적충 정신을 가지고 있었기에, 조선인들에게 효사상은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윤리였다고 볼 수 있다. 이 윤리가 현대에 까지 이르러,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효사상이 강조되고 있으며, 효가 덕의 근본이자, 모든 가르침의 출발로 여겨지고 있다. 물론 사회가 다원화 되고 외부로부터 다양한 문물이 전래되면서 청소년들이 부모에게 함부로 하는 경우가 생기긴 하였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효사상은 여전히 가장 한국적인 사상이다)고전문학을 위처럼 군신윤리, 부부윤리, 부자윤리 등으로 나누어 보는 것도 가능하지만, 이는 작품을 일정한 방향으로만 해석해야한다는 것이 아니다. 즉, 한 개의 작품도 여러 가지 방향으로 해석 가능하다. 이것은 앞에서 예로 들었던 작품들도 마찬가지이다. 위에 서 부자 윤리(효사상)의 예로 들어졌던 심청전을 한번 살펴보자. 6)심청은 지극한 효를 실천하기위해 자신의 목숨을 던진다. 심청의 효는 아무런 보장도 받을 수 없는 선택을 고난의 해결을 위해 한 것이기에 더욱 숭고하게 여기어 진다. 그러나 심청전은 다른 방향 에서도 해석 가능하다. 심봉사는 심청이 죽은 후 뺑덕어미를 만나고 비속함이 크게 확대 되어 심청에 의해 이루어진 숭고성을 스스로 무너뜨린다. 곧 심봉사는 유교 윤리의 온갖 외피를 벗어버리고 비속하고 골계스러운 인물로 전환되는 것이다. 이처럼 해석할 경우, 심청전은 탈-유교적, 일탈적 작품으로 해석 될 수 있다. 또는 유교와 반-유교적인 것의 대립에 대한 논쟁을 가져오는 작품이라고 해석 될 수도 있다. 이와 같이 한 개의 작품도 여러 가지 방향으로 해석 가능함을 인지하고, 작품을 한 가지 관점으로 고정적으로 해석 하는 실수를 하지 않도록 주의 하여야 한다.2. 한국의 근?현대문학 속에 드러난 윤리의식.: 현대에 이르러 나타난 문학의 계열은 너무나도 다양하다. 생태주의 문학, 계급(프롤레타 리아)문학, 민족주의 문학, 모더니즘, 리얼리즘, 사이버 문학 등 그 수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여기에서는 현대 사회에서 최근 중요한 의미를 지니 전선 한 줄이 아주 먼 곳까지 연결되어 있다새들의 높은 고향을 지나머나먼 가없는 푸른 하늘을 지나그 아래 다람쥐들이 모여 사는 나지막한 마을까지그 속에 강한 전휴와 뜨거운 불꽃을 간직한 채산업화 이후, 한반도 내에는 인적이 드믄 깊은 산골에서도 전기 줄을 볼 수 있다. 그 줄 들은 인간의 인위적 산물의 대표적인 것이며, 아름다운 자연의 경관을 망쳐놓고 있기도 하다. 이처럼 생태주의 문학은 환경을 무분별하게 개발하는 인간을 고발하고 비판한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김광섭 시인의 , 정희성 시인의 같은 작품도 이 생태주의의 영향이 미친 작품으로 볼 수 있다. 생태주의와 같은 현대의 문학은 이처럼 단순히 작품자체의 아름다움과 동시에 강렬하고도 날카로운 현실 비판의식을 가지고 있다.② 사이버 문학.: 컴퓨터의 발달로 인하여 인간의 삶에는 많은 변화가 생겼다. 회사나 각종 관공서에서의 사무가 자동화 되었고, 가정에서의 생활도 점차 자동화 되어 단순 노동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 또한 과학기술의 발달은 문화영역에도 여러 변화를 가지고 왔다. 미술에 있어서는 비디오 아트, 사이버 그래픽 아트 등이 생겨났으며, 음악도 전자기기를 통해 제작하고 또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변화는 문학에 있어서도 나타났다. 인터넷이 수많은 사람에게 보급됨에 따라,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글을 쓰는 활동에 참여 하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전문 작가가 아니면서도 한 책의 저자가 된 사람들이 크게 늘어났다. 또한 인터넷 사용이 매우 많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판타지 소설의 수가 급증 하였으며, 많은 사이버 문학 이 영화화 되기도 하였다. 이를테면, ‘퇴마록’, ‘엽기적인 그녀’, ‘동갑내기 과외하기’, ‘내 사랑 싸가지’, ‘늑대의 유혹’ 등은 사이버 세계에 연재되었다가 영화화 되었으며, 인터넷 소설인 ‘옥탑방의 고양이’, ‘1%의 어떤 것’등은 TV드라마가 되기도 하였다. 이처럼 사이 버 문학은 이미 우리의 문화전반에 널리 확산되어 있으며, 대부분이 아마추어 문학이기는 하지만 훌륭한 작품다.)3. 문학의 윤리적 가치.① 정서기능 강화와 이해력 및 수용력 증대.: 각기의 문학작품은 각기 다른 내용 품고 있기 때문에, 독자는 작품에 따라 각각 다른 감정이나 정서를 느낄 수 있다. 또한, 여러 권의 책을 읽음으로서 독자는 책 속에서 다양 한 간접경험을 얻을 수 있으며, 다양한 감정을 느껴볼 수 있다. 이로 인해, 독자의 감정은 더욱 풍부해 질 수 있다. 여기서 감정이 풍부해 진다는 것은 인간이 더욱 인간다워 진다 는 것으로 해석 가능하다. 또한, 독자는 문학작품 속에 나타나는 다양한 사건과 상황을 경험함으로써 사람과 사회 등에 대한 폭넓은 이해력과 수용력을 가지게 된다. 이는, 독자 의 배려적 사고력을 증대시켜주며, 또한 보다 더 고차적인 수준의 가치관을 가질 수 있게 된다.② 문학의 교훈과 가치의 재인식.: 11)문학은 독자에게 즐거움과 가르침을 주는 것이므로, 독자는 이를 통하여 즐거움과 함께 인생이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배우게 된다. 이러한 것을 독자가 스스로 지각하게 됨으로써 독자는 보다 반성적이고 깊이가 깊은 사고를 할 수 있게 된다. 인생 또는 미래에 대한 특별한 생각 없이 살아가는 것이 아닌 계획과 목적을 가진 능동적 인간 형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문학이 주는 즐거움과 가르침을 통해 인간은 행복, 사랑과 같은 진정한 가치들을 무엇인지에 대해 새로이 인식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랑에 빠져있는 독자가 막스 뮐러의 ‘독일인의 사랑’이나 로버트 제임스 윌러의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읽고 현재 사랑하는 사람이 근처에 있거나, 살아있는 것 자체가 행복한 것임을 느끼고, 그 소중함을 새롭게 인식 할 수 있는 것이다.III. 결론 (느낀 점)1. 전통윤리의 분별적 계승과 미래를 향한 날개짓고전의 문학과 윤리는 크게 효(孝)와 충(忠), 그리고 열(烈)윤리를 다룬 것으로 보여 진다. 그리고 당대의 사회를 비판한 작품들도 많이 볼 수 있다. 이러한 작품들을 단순히 해석하려고만 해서는 안 된다고 여겨진다. 즉, 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