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교육 필요성과 현황에 대한 고찰1. 통일의 필요성통일 교육이라 함은, 통일을 목표로 한다는 전제아래 이뤄지는 교육이다. 그렇다면 통일 교육의 필요성을 논하기 전에, 통일의 필요성을 논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통일을 왜 해야 하고, 어떤 방식으로 통일을 해야 하고, 통일 후에 어떻게 관리를 해야 하는지를 논의하고 난 다음에 통일 교육의 필요성과 어떻게 통일 교육을 해나가야 할지에 대한 과제를 선정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통일 교육의 필요성에 대해 언급하기 이전에 통일의 필요성부터 살펴보고자 한다.최근 몇 년 사이에 남·북한의 관계는 여러 가지 충돌을 보여주었다. 대표적으로 연평해전 및 서해교전이 있었고, 또한 최근에 가장 심각한 이슈로서 천안함 침몰 사건)과 연평도 포격은 너무나도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물론 천안함 침몰 사건과 연평도 포격 사건을 계기로, 국민들의 실제 의견이 통일보다는 북한에 대한 적대감을 표출했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 보았을때, 북한과 통일만 된다면 이런 일들이 일어났을지 생각해보면서 반감보다는 하루 빨리 통일이 되는게 더 이득이라는 의견도 제시해 볼 수 있다. 그리고 중국의 동북아 공정과 관련하여, 중국이 자신들에게 기대고 있는 북한을 흡수하여 영토확장을 시도한다는 나름대로 일리가 있는 학자들의 견해를 보면서도 얼른 통일을 서두르게 된다.) 그렇다면 통일은 왜 해야 하는가? 통일의 필요성에 대해서 대표적인 범주를 통해 세 가지 이유를 제시해 보고자 한다.① 경제적 필요성통일이 이루어져야 하는 경제적 이유는 분단 상황이 남북 국민 모두에게 엄청난 경제적 부담을 주고 있다는 점이다. 분단은 남북의 경제적 보완 관계를 파괴하여 각기 자립적인 경제 발전을 도모하기에 큰 어려움을 야기하고 있다. 한반도의 북쪽은 지하 자원, 수력 자원 등이 풍부하여 공업 발전의 훌륭한 입지 조건을 갖추고 있고, 남쪽은 기후가 온화하고 토질이 비옥하며 평야가 넓어 전민족의 식량 공급지 역할을 우리 민족이 안고 있는 최대의 과제이며 이는 전 민족의 일치 단결된 노력에 의해서만 가능하다.2. 통일 교육의 필요성앞에서 통일의 필요성으로서 세 가지 정도를 언급하였다. 하고자 하는 말은, 앞의 세 가지 이유로 인해 통일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통일을 하는데 있어서 정책적이고 경제적인 준비 이외에도 교육이 왜 필요한 것일까? 통일교육이 필요한 이유로서 대표적인 두 가지를 제시해 보고자 한다.① 분단의 장기화시간은 흘러 어느새 분단은 60년을 맞이하였고 이 긴 시간동안 남과 북은 서로 상이한 가치관,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형성하게 되었다. 통일이라고 하면 당연히 정치체제나 경제적으로의 통일을 의미할 수 있을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들이 전부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하나의 민족임을 보여줄 수 있는 대표적인 것이 공유된 의식이나 행동 양식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러나 남한과 북한은 분단의 장기화로 인해 민족적인 이질감이 서로에게 강해지고 있다. 게다가 이런 민족적 이질감은 서로를 마치 ‘다른 국가의 국민’이라고 무의식중에 여기게 된다. 이것은 심각성은, 그런 사고방식이 결국 통일의지를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이 부분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제도적 차원의 접근 보다는 교육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고 볼 수 있다.)② 남북 관계의 이중구조지금까지의 남북 관계를 살펴보면 매우 이중적인 구조를 지니고 있다. 다시 말해 우리는 북한과의 교류를 활발히 하기 위해 노력하면서도, 군사적인 대립을 늘 경험하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에서 수재민이 발생할 때마다 지원해준 식량이나 현대그룹의 ‘소떼 방북’과 금강산 관광 개발 및 유치, 남북정상회담, 올림픽 남북단일팀, 개성 공단을 보면 평화일로를 걷고 있는 듯 보인다. 하지만 이런 평화로운 모습들과 더불어 연평 해전 및 서해 교전, 천안함 사건, 연평도 포격 사건 등 군사적 자극이 지속적으로 이어져왔다는 점이다. 이에 우리는 교육을 통하여, 통일 과업을 수행하고 있는 현세대와 이 과업을 계속해서 북한 관계의 단절에서 생기는 이질화와 적대감 및 불신감을 들 수 있다. 우리의 민족적 전통이 인위적인 국토 분단으로 말미암아 반세기 이상 단절되었다. 그로 인해 사상과 이념, 모든 생활 방식과 제도 등에서 동질성을 잃고 심각한 이질화 과정을 걸어왔다. 이러한 이질적은 문화 속에서 남북한 주민들은 장벽을 쌓게 되었다. 또한 동족상잔의 6 ? 25 전쟁은 남북한 간의 적대감과 불신감을 더욱 심화시켰다. 한국이 북한을 불신하게 된 것은 북한의 끊임없는 대남 도발 행위와 남북한이 협의한 사항을 북한이 일방적으로 파기해 온 데서 기인한다.현재의 교육과정 속에는 급격한 북한 내부의 정세 변화와 국제 질서의 변화, 가치관의 변화가 거의 반영되어 있지 않다고 보여진다. 그러다보니 역시 통일의 촉진 요인을 설명함에 있어서도 이와 관련된 구체적인 사안 반영하여 분석하기 보다는 그저 민족의식에 기대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5천 년이라는 단일 민족사에서 비롯된 통일의 당위성에 대한 인식과 통일 의지가 강하다는 점은 통일의 긍정적 요인이다. 즉, 이질화가 심화되었더라도 대부분의 언어가 공통적 기반을 가지고 있으며, 한민족으로서 지리적 일체성과 민족의 동질성에 입각한 단일 민족 의식은 통일의 필연성으로 확고하게 남겨 주었다. 오랜 분단에도 불구하고 통일의 당위성에 대한 의식은 변함이 없고, 최근 들어 증가하고 있는 남북 상호간의 교류, 협력과 상호 경제적 이익의 접근 방식도 통일에 도움이 되고 있으며, 통일 국가의 역사적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도 귀중한 자신이 되고 있다.물론 이와 같은 교육 내용이 틀렸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짚고 넘어가고자 하는 것은, 이와 같은 교육 내용에 공감하는 학습자가 얼마나 있을까 하는 점이다. 앞에서도 살펴보았듯이 대부분의 통일 교육은 민족의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민족의식이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약화되어 가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현재 통일 교육과 관련하여 다문화 교육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주장은 이런 사회적 흐름을 흐름 가운데 발생한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 사건과 관련해서도 국제 질서를 파악하는데 도움을 준다. 다시 말해 북한의 대남 도발 사건을 계기로 인해 이뤄진 한미 군사 훈련은, 남과 북의 관계속에서 이해되어져야 하는 것보다 미국과 중국의 헤게모니를 둘러싼 대리전 양상으로 이해될 정도로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국제 정세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다.이러한 국제 정세의 흐름은 통일과 관련된 사안을 바라보는데 있어서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치고 있는것이 사실이다. 결국 통일에 대한 인식 변화에 국제 질서의 변화가 미친 영향을 무시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2) 북한 정세의 변화최근 들어서 북한 체제와 관련해 가장 주목할 점은 3대 세습이다. 김정일은 3대 세습 체계를 준비하면서 2009년 말 북한 당국은 화폐개혁으로 통제경제체제의 복구를 시도했다. 화폐개혁은 더 이상 심각한 수준의 시장화와 체제해체를 방치할 수 없다는 상황 판단에서 단행된 조치였다. 상인 자본의 몰수로 시장 세력을 몰락시켜 국가통제력을 회복하고자 했다. 또한 이 조치는 광범위한 시장 세력과, 그와 결탁하거나 연계된 반사회주의 세력의 물질적 기반을 와해시켜 후계자체제의 토대를 굳히겠다는 시도였다. 그러나 시장 세력과 상인을 겨냥한 전략은 되려 일반 주민들에게 직접적인 타격을 입히게 되었다. 2010년 새해를 넘기자 엄청난 인플레와 식량 부족 등으로 대부분 주민의 생존이 위협받는 상황에 처했다. 만성적인 식량난도 해결하지 못한 상태에서 반사회주의 세력의 타도 차원으로 단행된 화폐개혁은 향후 북한 체제의 내파 가능성을 한층 높였다. 그로 인한 여파를 받게 된 세습 후계 체제 관련 사안은 더욱더 불확실해지는 형국이 초래되었다.김일성 생전에 김정일은 김일성을 제치고 실제 국정 모든 부분에서 실권을 장악한 상태였다. 여기에다 당시 냉전체제 아래서 북한 내부의 권력구조나 경제적 어려움이 충분히 드러나지 않았고 주민들의 김일성, 김정일 부자에 대한 충성심도 약화되지 않았다. 즉, 김일성에서 김정일로의 세습은 별 탈이 없다는한 공동체가 자신의 개인적이고 일상적인 삶에 실제로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를 깊이 있게 인식하도록 하고, 공동체에 대한 참여가 바로 자기 자신에게 즐거운 삶의 과정이 된다는 것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보다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 교육에 대한 기존의 접근 방식에 대하여 좀 더 깊은 논의가 필요하다.5. 통일 교육의 직면 과제현재 우리는 다문화 시대에 접어들게 되었다. 그리고 그 다문화에는 북한도 포함되어 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분단 기간이 장기화됨에 따라 문화 부분에서 이질감이 느껴질 정도로 남북간에 많은 차이가 발생했기 때문일 것이다. 때문에 교육의 방향성은 다문화 교육으로서 통일 교육이 되어야 하겠다. 더불어 반편견 교육이 이뤄져야 함은 따른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다문화적 내용과 반편견적인 내용들을 어떤 방식을 통해 아이들에게 전달할 지가 가장 큰 과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부분에 대한 내용을 제시하기 이전에 먼저 지금까지 중 · 고등학교 통일교육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해 보고자 한다.첫째, 중 · 고등학교 교육과정에 있어서, 국가가 지정한 통일교육의 기본 수업 시간이 17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17시간 이하로 시행하는 학교가 대부분이며, 그것마저도 형식적으로 진행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둘째, 그나마 이뤄지는 통일 교육에서는 학생들이 타과목과 같은 딱딱한 수업 방식을 원하지 않는 경향을 보여서 가르치는 교사의 열의도 저하되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셋째, 교사의 열의 저하로 인해 수업이 무미건조해지고, 그러다 보니 학생들도 그저 시간을 때우고 마는 침체된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넷째, 그러다 보니 교사의 준비된 학습을 통해 가치 중립적인 입장에서 통일 관련 정보를 접하기 보다는, 대중매체에 무분별하게 노출되어 있어 매우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다섯째, 이런 문제점들의 발생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사회 구조적인 차원의 원인도 분석을 해보아야 한다)
북한의 문화‘문화’의 정의문화란, 한 민족이나 사회의 전반적인 삶의 모습을 얘기하는 것이다. 한민족이 살아온 삶의 모습 전반으로서 정신적·예술적 표현의 총체라는 의미가 있다. 대부분에 있어서, 교양 있고 세련되었으며 예술적인 면을 가리키는 일반적인 개념으로 지칭되기도 한다.북한의 문화북한은 정치적으로는 수령중심의 일당독재, 경제적으로는 중앙집권적 계획경제, 사회적으로는 조직적 통제사회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전반적인 문화도 이와 비슷한 성향을 나타내게 되었다.북한은 문화적으로 주체사상의 유일사상화를 중심으로 하는 전체주의적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북한의 문화를 한마디로 규정지어 보자면, ‘통제’, ‘규제’, ‘계획’ 등의 표현으로서 정의 내릴 수 있을 것이다. 북한 대부분의 문화는 ‘사회체제를 유지’라는 목표를 지향하면서 형성된 것들이 대부분이며, 그로 인해 예술활동들 역시도 사회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하나의 보조수단으로서 작용되어지고 있다. 그래서 행여라도 반사회체제적 성향을 지닌 문화가 형성되려고 하면 철저히 제재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1) 북한의 전반적인 모습북한의 생활은 ‘노동당’이라는 초헌법적인 권력기관에 의해 철저히 통제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인간이라는 존재는 아무리 통제를 한다고 해서 완벽하게 통제되어지는 존재가 아니다. 즉, 북한 주민들이 노동당의 통제에 의해 전적으로 움직여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들은 표면적으로는 당국이 지향하는 가치관을 받아들이는 반면 내면적으로는 특정 상황에서 자신의 이해에 부합하는 현실적 가치관을 발달시킴으로 인해서 ‘이중성’이라는 문화적 특징을 엿볼 수 있다. 특히 북한은 사회주의 정권을 수립한 이후 여러 생산수단을 국유화함으로서 이념적으로는 평등주의를 강조하였다. 그러나 북한이 제시하는 평등이념은 사회주의 혁명 및 권력의 일인 집중을 정당화하기 위한 전략에 불과하고 요근래 들어서는 ‘우리식 사회주의’라는 표현을 통해 그런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놓기도 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북한 주민들도 자연스럽게 지도자급들과 노동자들간의 차별, 여성과 소수자에 대한 차별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식량 배급이나 의복 배급에 있어서도 이런 차별이 나타나고 있다. 1995년 말에 이르러 특정계층을 제외하고 배급이 중단된 점, 중앙공급대상자는 고급 모직물을 배급해주고 아래 급수로 내려갈수록 질 나쁜 옷감을 배급받는 점, 직장과 직위를 기준으로 다른 주택을 배급해주는 점들이 북한 불평등의 실상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심지어는 병원에서 진료를 받을때 조차도 직위에 따라 진찰 받는 곳이 다르다고 하니 북한에서 지향하는 사회주의의 이상과 현실이 얼마나 모순되어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2) 북한의 예술북한 초기의 예술은 소련과의 교류를 통하여 소련의 사회주의를 찬양하여 북한 내에 사회주의를 정착시키는 것을 우선과제로 삼았다. 이런 역할을 담당했던 대표적인 단체가 ‘조쏘문화협회’로서 이들은 소련의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여서 북한 내에 널리 전파시켰고, 동시에 사회주의 사상이 뿌리내릴 수 있도록 계획하기도 하였다. 물론 소련이 붕괴하고 난 뒤에 북한 주민들을 통제하기 위해서,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문화예술 단체를 구성하여 ‘우리식 사회주의’ 사상을 뿌리내리고자 노력하였다. 그래서 북한의 문학과 예술은 조직적인 체계속에서 일관된 지향성을 나타내고 있다보니 구체적인 목표도 제시되고 있다. 이러한 점을 통해 북한의 문학과 예술을 특징을 살펴볼 수 있는데 다음과 같다.① 북한의 문학예술은 해방 후 사회주의체제 수립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한편 이에 대한 적극적인 참여를 독려하는 수단으로 이용되었다.② 북한의 문예정책은 지도자에 대한 정당성과 충성심을 확보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김정일의 권력승계가 공식화되는 1980년대에 이르면 김정일의 우상화 작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면서 김정일의 권력승계를 찬양하는 작품들이 만들어지기도 하였다.③ 북한의 문학과 예술은 남한의 현실을 비판하고 반자본주의적 이념을 강조하면서 ‘남조선혁명’의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한다.이런 대표적인 특징을 통해 볼 수 있듯이, 북한의 모든 예술 작품은 당성, 계급성, 인민성이라는 세 가지 요건을 늘 충족시키는 모습으로 창작되어지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 들어서는 주민의 호응도와 인기를 고려하여 대중성이 약간 가미된 모습도 찾아볼 수 있다. 좀 더 분야별로 실태를 살펴보자.문학북한에서 문학은 모든 예술의 기본으로 인식된다. 왜냐하면 문학이 모든 장르의 기본이 되는 이야기를 창조해내기 때문이다.북한의 문학은 주민들에게 혁명적 낙관주의와 집단주의적 영웅주의를 심어주고 혁명 발전의 단계에 맞게 당원들과 근로자들을 유일사상으로 무장시켜 온 사회의 혁명화 및 노동계급화에 이바지하는 것을 중점으로 하고 있다. 요즘 들어서는 주민의 선호도를 고려하여 남녀의 애정을 소재로 다루고 있으나 그 이면에는 당과 수령에게 충성하는 모습을 그려냄으로서 사회체제 유지 목표를 여전히 지향하고 있다.음악북한의 음악은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위한 투쟁을 담고 있어야 하고 사람들을 혁명적인 사상으로 교양하는데 이바지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인민의 계급의식과 공산혁명의식을 고양시키는 가사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 외에도 민족 개념을 강조하고자 전통 민요를 많이 발굴하여, 전통 음악을 양악화 하려는 모습도 함께 나타나고 있다.무용북한의 무용은 다른 예술분야에 비해 독자적 정체성이 미약하고 음악이나 코미디와 곁들여 소부문으로 삽입되는 정도이다. 대부분에 있어서 무용의 동작은 우리의 고전무용의 춤사위가 기본을 이루나 무용형식에 있어서는 힘, 규모, 조직을 과시하는 것이 특징이며, 무용수의 보조기구도 군인들의 총기류, 노동자들의 생산도구라는 점들로 미루어 보아 전체주의, 군국주의, 사회주의 체제를 견고히 하고자 하는 목표의식을 엿볼 수 있다.
구조주의와 포스트 구조주의1. ‘구조주의’란‘구조’라는 말은 인문과학이나 사회과학에서 가장 흔히 사용되는 개념 중의 하나일 것이다. 언어구조, 사회구조, 경제구조, 정치구조 등의 말들이 이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구조주의라는 표현은 넓은 의미와 좁은 의미에서 풀이해 볼 수 있다. 먼저 특정 구조를 가정하고 그 구조가 반복적으로 다양한 현상들을 만들어낸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다양한 현상들 근저에 있는 구조를 찾아내려고 하는 시도가 넓은 의미로서의 구조주의가 될 수 있다. 반면, 언어의 일반적이고 공통된 구조를 찾으려 한 구조언어학을 지칭하거나 그 영향을 받아 구조언어학에서의 방법론을 사용하는 학문적인 시도가 좁은 의미로서 구조주의라고 할 수 있다.구조언어학의 기본적인 틀을 간략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첫째, 하나하나의 항은 다른 항과의 대립적 관계속에서 만들어진다.둘째, 각각의 요소들은 전체 체계를 이룬다.셋째, 이 체계 속에서만 의미나 기능이 정해진다.이제부터 살펴볼 구조주의는 대체적으로 이와 같은 방법론을 수용하거나 혹은 변형하여 인간 사유의 근저에 있는 무언가에 대해 설명하고자 노력했다. 물론 포스트 구조주의자들은 기존의 구조주의자들이 상정한 고정된 구조를 다시 한번 해체하는 작업을 시도하기도 하였다.2. 레비스트로스1) 무의식의 기초에 대한 관심레비스트로스는 인간의 사유 활동은 그 자체로 독립적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의식 너머에 있는 무의식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고 보았다. 물론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데 있어서는 야콥슨의 구조언어학이 많은 영향을 주었다. 야콥슨은 모든 언어에 공통된 어떤 보편적 구조를 발견하려고 노력하였는데, 레비스트로스는 야콥슨의 이런 연구 방법론에 착안하여 무의식에 대한 관심을 지니게 된 것이다. 그런데 언어의 구조가 각 개인을 넘어서서 전세계 모든 사람에게 고정적인 체계로서 드러난다는 점은, 서로 다른 인간들이 비슷한 사유 방식을 지니게 된다는 점과 동일한 맥락을 지니게 된다. 이를 통해 언어의 구조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의식에 혼돈속에서 나름대로 질서를 파악하려는 노력은 과학과 다를바가 없다고 생각했고, 오히려 이런 점에서는 야성적 사고가 과학의 이전 단계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결국 이런 야성적 사고는 현재 이뤄지는 사유 방식, 다시 말해 과학적 이성의 근간이 되는 무의식적인 기초라고 할 수 있다.4) 탈근대적이고 동시에 근대적인 이중적 구조레비스트로스는 앞의 논의를 통해 근대적인 인간관을 해체하고 근대적인 주체를 해체하였다. 다시 말해 과학적 이성을 절대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그렇지 못한 것을 미개한 것으로 본 이분법적인 계몽주의적 사고방식에 반하는 접근을 시도 한 것이다. 그러나 그런 해체에 있어서 중심적 역할을 차지하는 무의식적 기초를 고정된 형태로 파악하였고, 더 나아가서는 그런 무의식(야성적 사고)을 과학적 이성보다 더 우위에 두게 되었다. 그로 인해 계몽주의가 가지는 이분법 자체를 하나로 융화시키지는 못했다는 평가를 받게 되며,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는 탈근대적인 문제의식을 가지고 출발해서 근대적인 기획으로 돌아가게 되었다.3. 라캉1) 타자의 담론무의식에 대한 라캉의 탐구는, 그 시작에 있어서 레비스트로스와 매우 유사한 맥락을 지닌다. 레비스트로스가 인간의 시작을 근친상간 금지에서 찾은것처럼, 라캉도 동물과 구별되는 존재로서 인간의 시작을 오이디푸스적 욕망에 대한 금지에서 찾게 된다. 이러한 금지는 레비스트로스에서 마찬가지로 무의식의 기초를 형성하게 되는데, 그 무의식이야 말로 인간 이성의 근저에서 사유를 좌지우지하는 요소로서 작용하게 된다. 라캉은 무의식의 체계를 고찰하면서, 무의식이 구조언어학에서 보여지는 방식과 비슷한 방식으로 무의식이 드러남을 알게 되었다. 다시 말해 언어가 의미를 드러내는 방식과 유사한 방식으로 무의식의 체계가 드러나는 것으로 보아, 무의식은 언어와 같은 구조를 지니고 있을 것이 판단하게 된다. 이를 통해 라캉은, 레비스트로스와 마찬가지로 그런 무의식은 일정한 체계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언어의 구조는 주체와 독립적으로 형성되어 된다. 그렇게 나의 사유는 나의 독립적 요소로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타자의 지시속에서 이뤄지게 된다.4) 근대와 탈근대를 넘어서이런 라캉의 주장은 근대의 존재론과는 분명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는 셈이다. 더 나아가 라캉은 레비스트로스가 주장한 무의식 구조의 고정성 또한 부정한다.무의식의 탐구는 기표를 통해서 이뤄지는데 기표는 기의를 정확하게 담고 있지 못한다. 때문에 기표와 기표간의 관계속에서 나름대로 기의를 유추하게 된다. 그러다보니 기표는 계속 기의와 완전하게 부합되지 못한다. 그러다보니 결국 차선책을 기표의 의미를 잠정적으로 고정해놓게 된다. 이와 같은 ‘잠정성’은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 그 기표가 지향하는 의미가 다른 것을 바뀔 수 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요소는, 무의식속에 형성되어 있는 구조를 설정함으로서 탈근대를 시도했으나 구조의 고정성을 설정함으로서 다시 근대적 사고방식으로 돌아온 레비스트로스의 이중성으로부터 다시 한번 벗어나고자 하는 시도로서 여겨지게 된다.3. 알튀세르1) 마르크스 사상의 위기일부 사람들은 마르크스의 사상을, 이전에 확립되어 권력을 발휘하고 있는 권위적인 이론체계를 무너뜨리기 위한 하나의 대립적 이론으로 재해석하였다. 그러나 이런 시도는 실패하였다. 이러한 실패는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신뢰를 상실하게 만들었고, 그로 인해 전 세계에 퍼져있는 공산당원들이 공산주의에 대해 불신하는 결과로 이어지려는 조짐을 보였다. 이에 알튀세르는 마르크스의 사상을 과학적으로 정립하려고 노력한다. 이런 노력을 통해 마르크스의 사상이 여전히 현실에 대한 객관적인 판단 기준임을 제시하려고 한다. 이러한 계획하에 가장 먼저 시도한 작업이 마르크스 사상에 대한 분석이었다.2) 마르크스 사상에 대한 알튀세르의 분석알튀세르는 그 어떤 이론도 처음에는 기존에 지배적으로 자리잡아 있는 이론을 바탕으로 시작된다는 점을 착안하였다. 그래서 그는 마르크스의 사상을 청년기와 완숙기로 구분한다. 청년기는 마르크스의 사상이 막 정립되고 있는 초기로서, 헤겔과 포이어나게 된다. 그렇게 기존의 사고방식과는 단절된 형태를 취함으로서 과학화가 시도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는 이성이 근저에 있는 새로운 매커니즘으로 '이데올로기'를 제시하고 있다. 그로 인해 이데올로기는 의식적 차원에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적 표상체계로서 새로이 정의된다.4) 이데올로기에 대한 고찰표상은, 특정 단어를 보거나 들으면 자연스럽게 특정 현상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또한 같은 맥락에서, 특정 현상을 보거나 들으면 자연스럽게 특정 단어를 떠올리는 경우도 해당이 된다. 이렇게 특정 개념을 통해 그에 상응하는 특정 현상을 떠올리게끔, 또는 특정 현상을 통해 그에 상응하는 특정 개념을 떠올리게끔 하는 체계를 표상체계라고 한다. 알튀세르는 이런 표상체계가 개인마다 약간의 편차는 있으나, 대부분 동일 집단에서는 유사한 구조로 나타나게 된다고 설명한다. 왜냐하면 집단에 의해 주입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데올로기는 무의식의 표상체계이면서 동시에, 동일한 집단에게 유사한 구조로 나타난다고 대중적인 표상체계라고도 한다. 그렇게 주입된 이데올로기에 의해 나의 정체성이 확립되고, 그에 따른 역할을 자각한다. 더 나아가 이데올로기 없이는 나의 지위와 역할을 자각할 수 없다고 알튀세르는 설명한다. 이러한 설명은, 이데올로기가 예전부터 지금까지 늘 자리하고 있었다는 논리적 귀결에 이르게 된다.이로써 알튀세르의 사상은 매우 모순적인 위치에 이르게 된다. 마르크스 사상을 기존의 이론에 종속되지 않는 독립적인 과학적 이론으로서 재정립하려고 했으나, 그 결론에 이르러서는 결국 마르크스 역시 특정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사고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이란 사실을 깨닫게 된다. 결국 알튀세르는 탈근대성을 시도하려다 되려 근대적으로 사고한 자신의 태도를 반성하면서, 무의식의 구조로서 이데올로기라는 개념에 집중한다. 이에 알튀세르는 이데올로기가 집단에 의해 주입된다는 부분에 대해 좀 더 고찰하기 시작한다.5) 무의식의 구조로서 이데올로기집단에 의해 주입된다는 것은, 전세대가 특정 의도를 가 하나는 동일자와 타자를 가르는 경계를 분석하여 해체시키는 것이다. 푸코는 후자의 방법을 선택한다. 또한 푸코는 동일자와 타자를 가르는 경계선을 분석하기 위해 타자가 성립되어진 과정을 살펴보고, 동시에 동일자가 그러한 경계를 만들어온 과정을 살펴보았다.(1) 타자의 역사동일자와 타자의 구분이 이뤄지기 전에는, 그러한 구분이 없었다. 즉, 동일자나 타자나 그저 '존재자'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특정 집단이 '존재자'를 구체적인 '인간'으로 정의하려고 시도하였다. 그런 시도 속에서 '인간'이란 개념이 등장하게 되었고, 그런 정의에 부합하는 존재만을 '인간'으로 그리고 '정상'으로 간주하였다. 그러한 정의내림은, 현재 타자라고 불려지는 존재자들이 지닌 공통적인 특징을 '비정상'적인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다시 말해 그러한 정의내림이 행해지기 전에는 그저 하나의 특징에 불과했던 요소가 이제는 가치 판단이 개입되어 나쁜 것으로 정해진 것이다. 그렇게 정상적인 것(동일자)으로부터 벗어난 것(타자)이라고 여기게 되었고, 결국 그들은 치료의 대상이 된다. 타자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렇다면 어째서 이런 과정이 생겨나게 되었는가. 이 부분에 대해서 푸코는 동일자가 경계를 만들어 온 과정을 설명하면서 함께 언급한다.(2) 동일자의 역사인간의 의식 활동은 무의식의 기초 속에서 이뤄진다고 보았다. 푸코는 이런 무의식적 기초를 '에피스테메'라고 하였는데, 쉽게 말해 인식틀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런데 역사를 통해 보았을 때, 이러한 에피스테메는 매우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을 푸코는 알게 되었다. 때문에 르네상스 시대에는 일반 시민들과 부랑자들이 같은 개념으로 여겨졌으나, 합리성을 인간의 고유 특징으로 보게 된 근대에 이르러서는 일반 시민과 부랑자들이 구분되었던 것이다. 즉 르네상스 시대의 에피스테메는 '인간의 고유 특성으로서 합리성'이 아니었기 때문에 일반 시민과 부랑자들이 함께 공존할 수 있었다. 마찬가지의 맥락에서, 근대에 이르.
한국 윤리사상의 쟁점과 도덕 교육2010431132 윤리교육전공3학기 신용균1. 인간과 윤리‘인간은 윤리적 존재인가’라는 물음에 대하여 자연론적 답변과 형이상학적 답변이 모두 가능하고, 각각에 있어서 반론 또한 가능하기 때문에 쉽게 결론을 내리기는 어렵다. 그러나 윤리로부터 자유로운 인간을 상정하기란 쉽지 않다. 물론 성인과 같이 윤리를 초월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고, 유아들과 같이 아예 윤리적 판단의 대상이 될 수 없는 대상은 있다. 하지만 일상속의 모든 인간들은 대체로 윤리를 의식하거나 윤리적 기준에 의해 평가받으면서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그렇다면 이런 윤리는 어떻게 형성되어지는가?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특정 공동체에 소속되어 태어난다. 그로 인해 자연스럽게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문화를 습득하면서 자라나게 되고, 그 결과 공동체의 윤리의식이 훈습되어진다. 살아가면서 그렇게 훈습되어진 윤리적 기준에 의해 다른 것들을 수용하거나 거부하게 된다. 때문에 한 개인의 성향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점들을 고려하여 그 개인이 속한 사회(내지 시대)를 지배하고 있는 도덕적 기준과 그 기준을 뒷받침하고 있는 사상적 배경(윤리학적)을 알고자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한 개인의 도덕적 성장과정(도덕 심리학적) 또한 파악해야 한다. 만일 도덕 교육을 모색할 경우 이 두 가지 부분에서의 탐색을 통해 파악한 것들을 통해, 얼마만큼 우리가 이런 과정에 관여할 수 있는지(도덕 교육론적)도 알아볼 수 있다.오늘날 대부분에 있어서 주요 관심 대상은 사상적 배경(윤리학적)이다. 이렇게 사상적 배경을 중요시하는 이유는 도덕 교육의 목표를 구체적인 행동으로 보았을 때, 그런 행동을 유발할 수 있는 경우는 도덕성이 함양 되었을 때 가능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물론 도덕성의 함양은 이론적 지식의 습득을 전제로 한다. 물론 이런 윤리학적인 부분은 도덕 심리학적인 부분과 도덕 교육론적인 부분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그렇다면 본격적으로 윤리학적인 측면에서 더 나아가서는 ‘한국인’이라는 공통적인 심리적 내지 도덕적 정체성을 형성하게 되는 것일까? 현재의 관점에서 살펴본다면 여러 가지 윤리적 성향을 파악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크리스트교나 불교의 윤리, 공리주의적 윤리, 법가적 현실주의 윤리 등이 나열될 수 있겠지만, 그 어느 하나 ‘한국 윤리’라고 지칭할 만한 것이 없다. 그나마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유교나 불교가 될 것인데, 이것마저도 확고한 기준이라고 말하기에는 자신이 없다. 그렇다면 두 손 놓고 있어야 하는 것인가? 이전부터 형성되어져 온 정체성의 근간은 모호한 것에 지나지 않으며, 앞으로 심리적 내지 도덕적 정체성을 형성해주는데 있어서 더 이상 ‘한국 윤리’의 역할은 필요 없어도 된다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우리는 무의식중에 전통적으로 계승되어온 윤리적 기준을 지니고 살아간다. 한국인 중에서 한국 윤리사상과의 관련성을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그 동안 연락도 없던 친척이 대뜸 연락해서 조상님 무덤에 상석을 세운다고 돈을 달라고 한다. 이에 우리는 ‘왜 돈을 줘야 하는 거지?’라는 나름대로의 의문을 품으면서도 결국에는 돈을 주게 된다. 어째서 그들은 당연한 듯이 돈을 내라고 하는 것인가? 어째서 우리는 결국엔 당연하다는 듯이 돈을 내는 것인가? 이 모든 것은 지난날의 역사 흐름 속에서 윤리적 기준이 훈습되어진 결과이다. 이런 당혹스러운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훈습되어진 윤리적 기준에 대한 사상적 배경을 공부해야 한다. 물론 여기서 그치면 안 된다. 이런 공부를 통해서 주체적인 도덕성을 함양해야 하고, 그것을 토대로 변화하는 현실에 적용하여 적절한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결국 한국 윤리사상을 정립하는 것은, 한국인으로서의 도덕성 함양이란 교육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더 나아가 이와 관계된 교육 내용을 구성하는데 있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2. 한국 윤리사상에 대하여앞의 논의를 살펴봤을 때 우리는 다음 질문으로 이어갈 수 있다. 그렇다면 라는 점을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전제는 한국 윤리사상의 범위와 내용을 좀 더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런 전제를 상정하지 않고서는, 현재에 이르기까지 존재해왔던 모든 사상들과 현재에 존재하고 있는 모든 사상들을 한국 윤리사상이라고 착각할 수 있다. 윤리 사상이라는 것이 실시간으로 그 외연을 넓혀가고 있다는 점을 전제하였을 때, 우리는 한국 윤리사상의 범위를 어떻게 한정 시켜야 하는 것인가? 이에 대해서는 세 가지 범위를 제시할 수 있다.① 우리의 고유한 전통 윤리사상에만 주목② 외래 사상이지만, 오랜 기간에 걸쳐 우리 문화 속에 뿌리내려 자리 잡은 유 ? 불 ? 도까지 포함③ 근대 이후 수용된, 크리스트교 사상이나 독일의 이상주의, 그리고 공리주의까지 포함이 세 가지 범위에 있어서, 세 번째 범위 규정은 아직 어려움이 많다. 첫 번째로 이와 관련해서 학계의 논의가 이뤄지지 않아 보편성이 획득되었다고 하기 어렵다. 두 번째로 한국인의 삶 속에서 크리스트교적 삶의 방식이나, 공리주의적 삶의 방식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고 할 수 없으며, 그런 부분들이 확인되어져야만 진정으로 한국 윤리사상으로 포함시킬 수 있다.한국 윤리사상의 범위를 한정하는데 있어서 대부분 ①번과 ②번, 다시 말해서 전통 윤리사상에서 유 ? 불 ? 도를 포함한 것을 그 범위로 본다. 여기서 전통 윤리사상이라고 하면 풍류도를 들 수 있다. 그런데 이 풍류도나 도교의 경우에는 고유한 모습이 많이 변화되어, 유교와 불교가 주류를 이룰 때 그 속에 흡수되어 버렸다. 게다가 흡수되기 이전의 고유한 모습을 살펴보기 위한 자료가 많지 않다. 그러다 보니 실제에 있어서 주로 한국 윤리사상의 형태를 결정짓는 핵심 요소는 유교와 불교로 요약된다. 그렇다면 한국 불교와 한국 유교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자.1) 한국 불교모든 불교에 있어서는 그 목표를 ‘깨달음’에 두고 있다. 이것은 근본불교도 그렇고, 부파불교도 마찬가지이며, 중국으로 전래된 불교와 한국 불교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다철 스님에게로 이어졌다. 물론 이렇게 이어져 오는 과정에 있어서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에 대한 논의는 많이 있어왔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결국 깨달음을 중요시 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중요한 깨달음의 다음 과정이다. 일반적으로 불교에 있어서 깨달음의 목적은 열반에 들기 위함이다. 하지만 한국 불교에 있어서 깨달음에 목적은 열반에 들기 위함이라기보다는 현생에서의 중생을 구제하기 위함이었다. 이런 부분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가 원효 대사였고, 일제 식민지 시기의 만해와 용성, 경허에서 이후 해인사 중심의 용성 문중과 수덕사 중심의 덕숭 문중으로 현재까지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현재성이야말로 한국 불교만의 특수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특수성이 ‘한국인’이라는 공통적인 심리적 내지 도덕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많은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이런 한국 불교의 특수성과 관련하여 깨달음을 얻기 위한 공부 방법을 살펴보고자 한다. 한국 불교에서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계, 정, 혜(삼학) 세 가지를 중요시 여겼는데, 중요한 것은 이 세 가지 중 몇 가지 방법만으로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하는 것이 아닌, 세 가지의 조화를 통해서만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한 것이다(이것은 분명 한국 불교에서만 나타나는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경전공부를 통한 지혜 추구와 (간화선적인)참선을 통해 마음을 수양하며 깨달음을 얻는다. 그리고 자율적인 계율 준수를 통해 그 깨달음을 유지함으로서 비로소 진정한 깨달음에 이르는 것이다. 이 자체는 가히 도덕 공부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이런 방식의 공부법은 오늘날의 도덕 교육과 관련해서도 다음과 같이 적용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적절하게 재구성된 도덕 교과서를 선정해서 학생과 교사가 함께 공부해가는 것(혜)- 그런 공부 속에서, 학생들 수준의 문제의식을 선정하여 함께 토론하고 체험하면서 그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정)- 위와 같은 과정을 통해 함양된 도덕성을 바탕으로 현재 제정되어 있는 규칙이나 규율을 재검토하고 자율적으로 유교농업 중심의 사회 형성은 많은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특히 주목할 만한 변화는 ‘하늘에 대한 인식’이다. 농경 사회가 시작되면서, 자연 조건은 매우 중요해졌다. 특히 농사의 당락을 좌우하는 비는 매우 중요한 요소로 부각되었다. 때문에 그런 비를 내려주는 하늘이 자신들의 생존을 결정하는 절대적인 힘을 갖고 있다는 점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시간이 흐르면서 종교적인 색채를 띠게 된다. 즉, 하늘이 종교적 숭배 대상이 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에 하늘은 국가 권력의 원천으로 여겨지기도 하였는데, 특히 중국의 주나라에 있어서 ‘천자’라는 개념은 이런 배경을 토대로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하늘은 마치 크리스트교의 하나님과 같은 존재가 되어 선과 악을 관장하는 개념으로 자리 잡게 되었고, 그런 하늘의 명령을 따르는 국가권력에게는 자연스럽게 덕이 요구되어졌다. 허나 공자시기에 이르렀을 때, 공자는 기존에 여겨져 오던 하늘의 주술적이고 신비주의적인 성향을 벗겨내었다. 뒤이어 맹자에 이르렀을 때, 맹자는 공자의 사상을 이어 신비주의를 벗어낸 하늘을 철학적으로 분석하고 파악하기 시작하였다. 이런 작업이 주희에까지 이르면서 ‘이’와 ‘기’의 개념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와 ‘기’는 우주론과 인간학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핵심 개념이 되었고, 더 나아가 동아시아 사상의 핵심 개념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주희의 이기론이 우리나라에 전해지면서 ‘‘이’와 ‘기’의 관계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논쟁을 중심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이런 논쟁의 중심에 있었던 것의 이황과 기대승의 사단칠정론이고, 그 뒤를 이은 이이와 성혼의 인심도심론이다. 이런 주장들을 바탕으로 해서 인간의 행동 방식을 제시하였는데, 그로 인해 유교를 근간으로 하여 한국에서만 나타나는 특수한 행동방식과 사고방식을 지니게 되었다. 물론 각 사상가의 사상들은 그 자체로 많은 의의를 지니고 있다. 여기서는 각 사상가들의 사상을 세부적으로 살펴보려는 것이.
양적 공리주의에서 질적 공리주의로의 전환과그것이 가지는 정치철학적 의미윤리교육전공 3학기2010431132 신용균1. 들어가는 말 : 공리주의에 대하여우리가 쉽게 그리고 익숙하게 접한 사상의 조류 중 대표적인 하나가 바로 공리주의이다. 심지어 비전공자들도 한번쯤은 들어봤을법한 문장이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일만큼, 공리주의는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하다. 대부분에 있어서 공리주의 사상의 윤리적인 의미들만을 많이 접했을 것이다. 허나 벤담과 밀 모두 자신의 사상에서 정치철학적인 의미들을 담아내고 있다. 벤담은 철학자이면서 법학자로서 입법에 관심이 많았다는 점을 상기했을 때, 자연스럽게 공리주의가 정치철학적인 색채를 가지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또한 그의 제자이자 지적 계승자라고 할 수 있는 밀 역시도 벤담을 충실히 계승하였기 때문에 윤리학적인 탐구와 더불어 정치철학적인 논의를 결코 제외하지 않았다.여기서는 공리주의가 가지는 정치철학적인 의미를 논의해보고자 한다. 그리고 그런 논의의 중심은 벤담의 공리주의에서 밀의 공리주의)로 전환되는 과정에 초점을 두어 얘기해보려 한다. 벤담의 공리주의와 밀의 공리주의는 같은 맥락을 지니고 있지만 엄연히 차이점이 존재한다. 그 차이점은 단순히 윤리적인 견해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더 나아가, 윤리적 견해와 같은 맥락에서 정치철학적인 측면에서도 차이를 드러낸다. 물론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밀은 벤담의 충실한 계승자이기 때문에 그의 사상을 뒤엎으려는 시도는 하지 않았다. 그저 벤담의 사상을 토대로 좀 더 보완을 하고자 노력했을 뿐이고, 앞에서 말한 차이는 여기에 기인한다. 그래서 벤담의 사상과 밀의 사상이 ‘다르다’라고 표현하는 것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렇다면 밀의 그러한 노력은 어떤 형태로 나타나게 되었는가? 이런 내용을 짚어보기 전에 먼저 공리주의에 대한 개략적인 이해가 필요할 듯 하다. 물론 뒤에 가서 좀 더 자세히 다룰 예정이니,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측면에서 간략하게 소개하는 방식으로 이 글을 시작해보고자 한나지 않는다는 것이다.우리는 때로 쾌락적이지도 않고 고통적이지도 않는 상태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에피쿠로스 학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쾌락이라는 것은 곧 ‘고통의 부재’이다. 다시 말해 쾌락을 추구하면 할수록 너무나도 당연하게 쾌락이 늘어난 양만큼 고통의 양이 줄어든다. 반대로 고통도 ‘쾌락의 부재’로서 앞에서 설명한 바와 마찬가지의 원리를 내포하고 있다. 때문에 행복을 증진시키는 방법은 ‘쾌락만을 추구’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반대로 ‘고통을 줄여나가는 것’도 또 다른 쾌락의 추구인 셈이 된다. 이런 맥락은 공리주의로까지 이어진다.벤담(더 나아가서는 밀이) 줄기차게 외치고 있는 ‘효용’의 정확한 의미는 무엇인가? 공리주의에 대해 탐구하는데 있어서 이 ‘효용’의 의미를 파악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작업이다. ‘효용적’이라고 했을 때 그것은 어떤 상태를 나타내는가? 지금까지 계속 언급했듯이, 어떤 행동을 했을때 행복이 최대한 추구될 수 있으면 그 행동에 대해 ‘효용적’이라고 평가한다. 그래서 ‘효용’이라는 것은 ‘행복의 최대한 추구 가능성’이다. 하지만 그것은 ‘쾌락에 집중하여 그것의 최대한 증진만을 추구’하는 방식일수도 있고, ‘쾌락에만 집중한 추구는 다소 어렵더라도, 고통을 최대한 줄여나가는’ 방식일수도 있다. 결국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은, 그저 많은 사람을 기쁘게만 해주는 것도 해당되겠지만 더 나아가서는 더 많은 사람이 슬프지 않게 방지하거나 그 슬픔을 덜어주는 것도 해당된다는 말이다.) 이런 부분들을 통해 공리주의는 진정으로 ‘최대 다수’의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다. 이와 같은 설명은, 개인적 차원의 윤리적 행동 양식이 사회적 차원의 윤리적 행동 양식으로 확대될 수 있는 논점을 제공한다. 이 말은 무슨 의미인가? 공리주의의 쾌락 추구 정신을 개인적인 차원에서만 받아들인다면, 자신의 쾌락 추구를 위해 타인의 쾌락을 침해할 수 있는 아주 천박한 형태의 쾌락 추구 행동이 나타날 수 있다. 이것은 전혀 윤리적이지 못하다. 이런 윤리적 동일한 도덕적 가치 기준을 지니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부분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면, 인지하고 있는 그 사람은 자신의 행동이 가져올 결과에 대해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결과를 고려하는 방식은, 서로 다른 도덕적 가치 기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생길 수 있는 갈등을 해결해 줄 수 있는 해결책이다.) 때문에 우리는 결과를 좀 더 정확하게 예측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밀은 양적 수량화가 그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이뤄진 하나의 수단적 작업에 불과하다며 수량화의 비판에 대한 옹호를 시작한다. 물론 밀의 설명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벤담이 자신의 사상에서 시도한 극단적인 수량화가 많은 비판의 대상이 되었던 이유는 ‘수량화할 수 없는 정신적인 무엇’ 다시 말해, 여러 가지 ‘질적으로 등급매겨질 수 있는 것들’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밀은 벤담의 수량화를 있는 그대로 옹호하면서 동시에 자신만의 극복방법을 연구하게 된다. 그 연구의 결과로서 등장하게 되는 것이 쾌락에 대한 질적 접근이다.벤담에게 있어서 쾌락은 쾌락이고, 고통은 고통일 뿐이다. 어떤 행동에 대한 유일한 ‘공통의 판단 기준’은, 그 행동으로 인해 야기된 결과가 행복인가 불행인가에 불과하며 한발 더 나아가 그 쾌락의 강도와 지속성만이 행복을 책정하는 단위이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취향에 대해서 그 누구도 감히 등급을 판단할 수 없다. 과연 누가 이 쾌락이 저 쾌락보다 더 고급이라거나 더 가치 있다거나 더 고상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이런 사적 판단의 배제는 벤담 공리주의의 핵심이며, 벤담의 사상이 상당한 설득력을 가지게 되는 하나의 원천이다. 이런 벤담의 사상을 계승하는 밀의 입장에서는, 벤담 사상의 원천을 훼손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벤담의 사상을 토대로 해서 매우 조심스럽게 쾌락의 등급을 나누고자, 다소 형식적인 설명을 하게 된다.)쾌락의 질적 차이가 무슨 뜻인지 혹은 양이 더 많다는 것을 제외하고 어떤 쾌락을 다른 쾌락보다 더 가치있게 만드는 것이 무엇이냐고 질대한 맥락을 구성하기도 한다. 본격적인 설명을 전개함에 있어서 지금부터는 ‘소수의 행복 배제’를 좀 더 익숙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는 ‘다수의 횡포’라고 바꿔 사용한다는 점을 명시하고 이 글을 시작해보고자 한다.공리주의를 비판하는 모든 사람들이 ‘다수의 횡포’라고 바라보는 부분에 대해서, 밀은 다음과 같이 풀어낸다. 개인의 의식과 지적 능력이 신장된다는 것을 전제하면, ‘다수의 횡포’는 나은 사회의 발전을 위한 ‘소수의 자발적 희생’으로 나타난다.) 물론 이런 부분에 대해서 여전히 불만을 가지는 비판세력들이 있을 수있다. 실제에 있어서 여전히 다수에 의해 결정되는 법과 제도와 관련하여 거기에 동의하지 않는 소수는 ‘횡포’라고 여길 수 있기 때문이다. 밀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소수자들을 어리석은 사람들로 보고 있다. 그런 불만을 가지는 사람들은 배부른 돼지이며, 만족하는 바보의 지적 수준을 가진 인간이다. 앞에서 수량화에 대한 논의를 하면서 결과를 예측할 수 밖에 없는 필연성에 대해서 이야기 하였다. 결과를 예측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예측’이라는 것은 지적 수준이 어느 정도 소양되어 있어야 가능하다. 그러한 지적 수준을 소양하고 있어 결과를 예측한다는 것은, 필요 여하에 따라 자신의 희생도 마다하지 않는 희생정신이 가능하다는 점으로 논의가 전개될 수 있다. 누구라도 배고픈 인간이나 불만족하는 소크라테스 수준의 인간이 된다면 장기적인 관점에서 사회의 행복을 바라볼 줄 알고 필요성을 절감할 수 있으며 희생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이 내용은 토대로 하여, ‘다수의 횡포’가 ‘소수의 의미있는 자발적 희생’으로 탈바꿈되는 시도가 이뤄지게 된다.) 이같은 내용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밀은 자신의 저서 ‘공리주의’에서 공리주의의 원리를 두 가지 제시하고 있다.첫째, 모든 개인의 행복 또는 이익이 전체의 이익과 가능하면 최대한 조화를 이루도록 법과 사회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둘째, 교육과 여론이 사람의 성격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만큼, 모든 개인이 자신의복을 위한 걸림돌이 아니다. 그들은 충분히 양보할 수 있고, 때문에 그들이 의도적으로 스스로의 ‘사회적 감정’을 말살하지 않는한 그들의 권리 행사도 충분히 존중해 줄 수 있다.) 다시 한번 인간의 합리성에 대한 옹호가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옹호와 더불어 우리는 한 가지를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벤담의 공리주의나 밀의 공리주의에서 객관적인 혹은 초월적인 도덕적 판단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은 앞에서 언급했었다. 이 부분이 가지는 의미를 좀 더 자세히 살펴봐야 한다.벤담과 밀의 그러한 전제는 그들에게 ‘상대주의자’라는 타이틀을 안겨주었다. 벤담은 상대주의적인 관점에서 각 개인을 존중하고자 했다. 그래서 모두를 평등한 위치에 놓았고, 공리주의의 목표도 평등한 그들의 ‘평등한 상태의 이익’을 최대한 높게 실현하는 것을 자신의 사상 체계로 갖추었다. 그런 벤담에게는 결과의 예측이 필요하게 되었고, 거기서 쾌락 계산법이라는 것을 시도하게 된다.밀 역시도 상대주의적인 관점을 가졌다는 점에서는 벤담의 태도와 동일하지만, 그 관점에 대한 자신의 사상적 체계를 갖추는데 있어서는 벤담과 다른 견해를 가졌다. 그 누구도 쾌락이나 고통에 대한 선호만이 가능할 뿐이다. 어느 쾌락이 더 강렬한지, 어느 고통이 더 아픈지를 결정하는 수단은 경험되어진 것에 대한 ‘느낌’과 그것의 연장선상으로서의 ‘선호’, 마지막 과정으로서 ‘판단’이외는 없다.) 그러나 벤담식의 계산을 하기 위해서는, 각 개인의 감정을 넘어서서 각각의 쾌락과 고통에 정해진 값이 있어야 한다. ‘정해진 값’은 마치 절대적이고 불변하는 가치를 나타내는 것 같다. 이런 정해진 가치에 의해서 다수와 소수가 갈라질 수 있는 것이고, 소수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다수를 위해 희생되어야 한다. 벤담의 맹점이 여기에 있었다. 밀은 이런 계산법조차도 너무나도 상대주의적인 관점을 바탕으로 해서 거부한다. 때문에 현재 보여지는 모습으로서 다수의 쾌락은 그 자체로 절대적인 힘을 지니고 있지 않는다. 소수의 쾌락도 충분히 존중받아질 수 있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