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잉글리시 페이션트’를 읽고 -REPORT1. 서론‘잉글리시 페이션트’라는 작품을 접하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물론 과제를 하기위한 목적도 있었지만 세계 3대 문학상인 부커상을 수상했을 뿐 만 아니라 영화화되어 아카데미 9개 부문을 수상 작품이라는 점에서 작품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 그리고 무엇보다 흥미로웠던 점은 기존에 내가 접한 전쟁을 주제로 한 다른 작품과는 달리 각기 다른 국적을 지닌 네 사람의 등장이다.작품을 펼치고 감상함에 따라 이 책은 다른 두 편의 작품과는 사뭇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작품의 구성이나 간결한 문장이 다른 소설과는 다르다는 생각을 했다. 전쟁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다루고 있음에도 그와 상반되게 간결한 문장은 감상하는 나로 하여금 더욱 집중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던 것 같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의 상처와 아픔 그리고 상처 받은 사람들로 하여금 작가가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자 했는지를 생각하며 작품을 감상하였다.2. 작가 소개1943년 9월 12일 스리랑카의 콜롬보 출생으로 빅토리아 시대의 시를 좋아하고 연극학교를 운영하던 어머니에게서 문학적인 영향을 받았다. 부모님이 이혼한 후에 어머니와 함께 영국으로 건너가 학교를 다녔고, 이후 캐나다의 비숍 대학을 다니면서 문학과 시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토론토 대학에서 학부를 마쳤고 이때 엡스타인 상 시 부문에서 수상했다. 그는 퀸즈 대학에서 석사 과정을 거친 후 웨스턴 온타리오 대학에서 강의하다가 글렌든 대학으로 옮겨서 현재 캐나다와 미국 문학을 강의하고 있다. 1978년, 25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가서 자신의 뿌리를 만나게 되었는데, 이것이 '혈통(Running in the Family)'(1982)이라는 책으로 나왔다. '사자의 가죽에(In the Skin of a Lion)'(1987)에는 사막에 추락하는 남자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것이 '잉글리시 페이션트'의 모태가 되었다. 이 소설은 1992년에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부커상을 수상했고 전 세계 30여 개국에 소개되었으며, 앤서니 밍겔라 감독의 영화로 만들어져 1997년 작품상과 감독상을 포함한 아카데미 9개 부문에서 수상했다.3. 줄거리‘잉글리시 페이션트’라는 작품은 제 2차 세계대전이라는 인류의 가장 큰 전쟁 중 하나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전쟁은 늘 그렇듯이 사람들로부터 소중한 것을 빼앗아 가는데, 이 작품에서 역시 전쟁으로 인해 상처받고 소중한 것을 잃은 네 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헝가리인 임에도 불구하고 영국인으로 불리며, 자신의 일생을 보낸 사막에서 사랑하는 이를 잃게 되는 알마시와 전쟁으로 아버지를 잃고 그녀 자신의 자아 또한 잃게 되는 해나의 만남을 시작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 후 이탈리아인 도둑이지만 전쟁에 휘말리게 되어 엄지손가락을 잘리고 자신감을 상실하게 되는 카라바지오와 인도인이지만 영국군을 위해 일하는 킵이 등장하게 된다.알바시라는 이름보다 영국인으로 더 많이 불리는 남자는 사람의 오아시스를 지도로 만들기 위해 사막을 여행하는 지리학자이다. 그는 헝가리인임에도 불구하고 사막여행을 통해 국경과 국경을 넘나들게 됨에 따라 자신의 국가를 지우고 자신의 성도 지우게 된다. 그러던 중 그는 영국 정보부 소속 클리프턴의 아내 캐서린을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남편에 대한 죄책감으로 캐서린은 이별을 고하지만, 남편이 이 사실을 알게 되고 고의적인 비행기사고를 낸다. 이 사고로 인해 크게 부상당한 캐서린을 구하기 위해 알마시는 그녀를 남겨두고 길을 떠나지만 스파이로 몰리게 되고 그녀를 자신의 아내라고 말함에 따라 그녀를 구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된다. 그 후 그가 헤엄치는 사람들의 동굴로 돌아갔을 때 그녀는 홀로 그 동굴에서 죽음을 맞이한 후였다. 그녀의 시신을 비행기로 옮기던 도중 불이 그에게로 옮겨가게 되었고 그는 큰 화상을 입게 된다. 사막에 추락한 그를 베두인이 구하게 되고 결국 빌라 산 지롤라모에서 해나를 만나게 된다. 해나는 빌라의 유일한 여자로, 전쟁 속에서 간호사로서 일을 하게 됨에 따라 전쟁의 참혹함을 직접적으로 목격하고 그녀 또한 상처를 입게 된다. 전쟁 속에서의 임신과 전쟁에 참전한 그녀의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소식을 듣게 된 것이다. 그녀는 손수 머리를 자르면서 생기를 잃고 자신의 자아 또한 잃게 된다. 그녀는 이 소설에서 중심인물로 장면장면에 등장하면서 세 남자를 이어주는 연결고리와 같은 역할 또한 하고 있다. 또 다른 인물로 카라바지오가 등장하게 된다. 그는 해나 아버지의 친구로 캐나다에서 도둑질로 삶을 이어가는 도중 전쟁으로 원하지 않게 그 속에 휘말리게 되는 인물이다. 연합군의 스파이로서 활동하던 그는 독일군에게 잡혀 엄지손가락을 잘린 후 자신감을 잃고 모르핀 중독자가 되어버린다. 이 작품의 마지막 주인공인 킵도 역시 키르팔 싱이라는 자신의 실제 이름이 있음에도 빌라에서 킵이라 불린다. 시크교도인 그는 나라를 잃는 식민지 국민이며 연합군의 공병으로서 폭탄을 해체작업을 하는 군인이다. 폭탄 해체작업도중 자신이 믿고 따르던 지도자를 잃게 된다.이렇게 전쟁으로 각기 다른 상처를 지니고 살아가는 인물들은 빌라라는 공간에서 만나 서로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서 자신의 아픔을 공유하며 치유해 간다. 그 작품에서는 전쟁으로 인한 인간들의 상처 뿐 만아니라 영국인과 캐서린의 사랑, 해나와 킵의 사랑을 다루고 있다.4. 작품 감상 및 비평‘잉글리시 페이션트’는 필수 3편중 내가 마지막으로 감상한 작품으로, 내 경우에는 다른 두 편의 작품과 달리 이해하기 어려웠던 작품이었다. 때문에 작품에 더욱 몰입하여 감상할 수밖에 없었다. 이 작품은 전쟁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배경으로 전개되는데, 그에 비해서 이 작품의 문장 하나하나는 간결하고도 감각적인 묘사로 이루어져있었다. 또한 어떤 문장은 끝맺음이 정확하지도 않고 시와 같이 간결하게 표현된 문장이 소설이라기보다는 한편의 시가 연결되어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렇게 무거운 소재와 가벼운 느낌의 문장의 만남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또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서술하는 다른 소설과는 달리 그 어떠한 언급도 없이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시간에 대한 구성 방식 때문에 감상하는 내내 집중해야 했고 몇 번씩 앞장을 다시 넘겨 확인해야 했던 점에서 힘이 들기도 했지만 과거 사건의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그 과거의 과거를 찾아가는 과정이 재미나기도 했다. 또 이 책은 헤로도토스의 역사라는 책의 내용을 인용한 부분이 많은데, 역사라는 책에 대한 이야기는 세계문화사라는 교양과목을 배울 때 익히 들어 낯설지 않게 느껴졌다. 다만 나는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이렇게 역사라는 책이 그 때를 떠올리게 하는 것처럼 보통 소설은 어떤 시점으로 되돌아가게 하는 계기나 소재가 등장한다. 하지만 이와 달리 잉글리시 페이션트에서는 그러한 소재의 등장 없이 과거의 이야기가 전개되기도 하여 어리둥절해 하기도 했다.이 작품은 빌라 산 지롤라모라는 특정 공간에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 공간 안에서 네 명의 주인공들은 각자의 상처를 가슴에 안은 채 만나게 된다. 그들은 표면적으로 자신의 아픔을 표현하지 않는 것 같다. 다만 너무도 담담한 어조로 자신들의 상처와 슬픔을 타인에게 이야기 한다는 것이 더욱 슬프게 느껴졌다. 그들은 빌라라는 공간 속에서 또 상처받은 이들 사이에서 그들의 상처를 치유해 간다. 그렇게 그들은 전쟁의 상처로 인해 잃었던 소중한 무언가를 그 속에서 찾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주인공 네 명의 이야기 중에서 영국인의 이야기는 실제로 나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 주었다. 오늘날 많이 사람들이 중요하게 여기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지리학자로서 자신의 국적을 잊고 국경과 국경을 넘나드는 여행을 하면서 그와 그의 동료들은 베두인을 만나게 되고, 베두인은 세계에서의 그들 국가의 위치와는 상관없이 그들의 대해주었고 이에 영국인들은 이들을 아름답다고 표현했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시기에는 식민지 통치가 이루어졌던 시기인 만큼 국적에 따른 대우가 달랐기 때문 일 것이다. 하지만 지구촌이라고 불리는 21세기에도 이러한 차별은 주위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어쩌면 인간은 사고하는 측면에서 진화하는 것이 아니라 퇴행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영국인의 이야기에서 두 번째로 의미 있는 공간이 등장한다. 사막이다. 영국인은 사막을 소유할 수 없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그 누구도 권리를 주장 할 수 없다 말한다. 그 안에서 그는 자신의 국적도 자신의 이름도 지워버렸다 말한다. 그리곤 자신의 흔적, 허영심을 남기고자 하는 이를 비난한다. 이러한 그의 외침이 오히려 나에게는 현대인을 비난 하는 것처럼 들렸다. 하지만 그가 이토록 순수한 대상으로 생각한 사막도 전쟁의 화염 속에 휩싸이게 된다. 우습게도 바로 그 때문에, 그가 사랑하는 친구의 아내 때문에. 그는 동료의 아내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나 또한 작품을 감상하는 동안 그들의 사랑 이야기로 인해 설렘을 느끼고 정열을 느꼈다. 소유권이 싫다 말하면서도 서로를 소유하고 싶었던 그들의 사랑이 해피엔딩이 아니라는 점에서 크게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그들의 사랑은 순수하다고 말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 동료의 아내. 불륜. 이런 점에서 영국인의 사랑을 완전히 이해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나로 하여금 그들의 사랑이 아름답다 여기게 만드는 이유는 그녀가 이미 죽은 후에도 그의 그리움과 사랑 그리고 미안함이 담담하게 말하는 그의 말을 통해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 ‘인도로 가는 길’을 읽고 -REPORT1. 서론‘인도로 가는 길’이라는 책의 제목은 인도라는 나라에 대한 나의 이미지를 먼저 떠올리게 해 주었다. 인도를 다녀온 주위 사람들 혹은 인터넷과 책을 통해 전해들은 인도에 대한 반응은 보통 극명하게 나뉜다. 어떤 이는 인도는 사람이 죽기 전에 꼭 한번 가봐야 할 나라이며 욕심을 버리고 나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곳이라 칭찬하는 반면, 또 다른 이는 지저분하고 소매치기도 많다며 좋지 않은 인상을 가진 사람들도 많다. 물론 나는 인도를 방문한 적은 없지만 여러 매체를 통해 접한 인도는 매력적인 나라이며, 나는 인도인의 크고 맑은 눈망울이 참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인도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고 싶고 언젠가는 인도를 여행하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그래서 ‘인도로 가는 길’이라는 책은 나에게 또 다른 인도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책을 읽기 시작하였다.2. 작가 소개작가‘에드워드 모건 포스터’는 1879년 영국 태생의 소설가로서 제임스 조이스, 버지니아 울프, D.H. 로렌스와 더불어서 20세기 영국 소설을 대표하는 작가이다. 그는 영국 사회 계급 간의 갈등과 가치관의 대립을 유머와 아이러니 가득한 필체로 그려냄과 동시에 모든 관계에 내재되어 있는 단절과 장벽에 대한 관심을 그의 작품 전체에서 발견할 수 있다. 특히 ‘인도로 가는 길’에서 그는 정치적, 사회적 문제들만이 아닌 인간의 보다 근원적이고 보편적인 문제를 담고 있으며 남성과 여성의 분리, 서로 다른 계층과 문화 사이의 분리, 심지어 자신으로부터의 분리에 대한 관심이 영국과 인도의 민족적 갈등이라는 극적인 균열과 만나 하나의 정점을 이루고 있다고 볼 수 있다.3. 줄거리‘인도로 가는 길’의 배경은 인도가 영국의 식민통치하에 있었을 때이다. 이 책의 첫 부분에 인도인들이 모여 살던 시장 골목으로 시작하여 영국인들의 거주지에 대한 묘사가 이루어지는데 이 내용을 통해 영국인의 지위가 인도인의 지위보다 상대적으로 높게 평가되고 있음을 눈치 챌 수 있다. 또한 앞서 마라바르동굴이 특별하다고 소개함으로서 그 장소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낸다.이 책의 주인공인 아지즈는 인도인 의사로서 성격이 변덕스럽지만 마음이 따듯하고, 주위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는 인물이다. 그와 그 친구들은 아무리 좋은 영국인도 인도에서 1년만 지내게 되면 다른 영국인들에게 물들어 오만하게 변한다고 말한다. 이 이야기는 아지즈가 아델라와 무어 부인이라는 영국인을 만나게 되면서 본 이야기로 출발한다. 무어 부인은 아들인 로니와 비공식적으로 약혼한 아델라와 함께 인도를 방문하게 된다. 아델라는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분방한 여자이고 그녀와 무어 부인은 진정한 인도를 경험하고 싶어 한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아지즈와 무어 부인은 우연히 한 이슬람 사원에서 만나게 되고, 아지즈는 다른 영국인들과는 달리 사원을 존중해줄 뿐만 아니라 소박하고 친절한 무어 부인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갖게 되고 둘은 친구가 된다. 아지즈는 그녀와 우정을 나눌 수 있음에 그저 기뻐한다.어느 날 아지즈는 무어부인과 아델라에게 인도를 소개 시켜주기 위해 엄청난 공을 들여 마라바르동굴 여행을 계획하게 된다. 하지만 함께 가기로 한 영국인 필딩과 힌두교 교수인 고드볼이 기차를 놓치게 되면서 여행에 차질이 생긴다. 하지만 아지즈는 두 영국인 숙녀가 자신에게 의지하고 있다는 사실에 의기양양해 진다. 마라바르동굴에 도착한 그들은 한 동굴에 들어서게 된다. 그곳에서 불쾌하고 혼란스러운 경험을 한 무어부인은 자신은 쉬겠다며 남게 되고 아지즈와 아델라 그리고 하인 한명이 동행하게 된다. 다른 동굴로 이동하던 중 아델라는 로니와 자신의 관계에 사랑이 없음을 알게 되고 혼란스러워하던 중 다른 동굴에 들어가게 된다. 이때 아델라는 누군가가 자신을 범하려했다는 망상에 사로잡히게 되고 범인으로 아지즈가 지목받게 된다. 이러한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인해 영국인들은 분노하지만 아지즈의 무죄를 믿는 영국인 필딩과 아지즈의 인도인 친구들은 그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노력한다. 결국 재판장에서 자신의 실수임을 깨달은 아델라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게 됨에 따라 아지즈는 혐의에서 벗어나고 필딩은 명예를 회복하게 된다.한편 아지즈와 필딩은 민족을 초월하는 우정을 나누게 되지만 아지즈의 사소한 오해로 인해 둘의 사이는 멀어지게 된다. 하지만 2년 뒤 다시 만나게 된 둘은 서로가 그리워했고 오해가 있었음을 알게 된다.4. 작품 감상 및 비평‘인도로 가는 길’이라는 작품이 영국의 식민지 통치하에 있는 인도인과 영국인과의 민족적, 문화적 갈등을 바탕으로 진행된다는 것은 작품의 제목을 접하고 내가 상상한 내용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일단 이 작품에서는 영국인과 인도인사이의 민족적, 문화적 갈등, 이슬람교와 힌두교라는 종교적 갈등 그리고 남자와 여자, 인도의 사회적 계층의 분리를 살펴 볼 수 있었다.인도인들은 영국인들이 인도에서 삶을 시작하게 되고 얼마 후 그들은 인색해지고 인도인들에 대한 불신을 드러내는 행동에 대해 불평을 한다. 또한 영국인들은 인도인들의 알 수 없는 속내를 불쾌해하며 못마땅해 한다. 하지만 그들은 결코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려 노력하지 않는다. 어쩌면 이러한 상황은 인도와 영국이라는 국가의 문화적 혹은 상이한 성향 때문인지도 모른다. 인도인들은 영국의 직설적인 성향을 너무도 분명하고 삭막하다고 표현한다. 그리고 인도인들이 하는 말과 진짜 감정은 거의 일치하지 않는 다는 점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거짓된 친절 혹은 빈말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떠한 상황에서 상대방이 기분을 좋게 만들기 위한 진실로 행해지지 못할 말, 단지 말로서만 친절을 베푸는 그런 상황이 떠올랐다. 이 소설은 크게 바라보면 영국인과 인도인과의 갈등처럼 보이고 인도인이 그러한 상황을 불평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인도인 사이에서도 이러한 분리와 갈등이 존재한다. 특히 이슬람교와 힌두교 사이의 분리는 나에게 웃음을 자아냈다. 특히 주인공 아지즈는 같은 인도인임에도 불구하고 힌두교인 이라는 이유로 그들은 태만하다고 여기며 힌두교가 만병의 근원이라는 둥의 표현이 우스웠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 표면적으로 두 종교가 결합된 것처럼 보이나 서로 속으로는 상대를 비하하는 표현들이 재미있으면서도 결코 결합되지 못한 인도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해 안타까움이 느껴지기도 했다.이러한 분리에 대한 관심이외에도 나는 인간과 문화 사이의 관계를 다시 집어보게 되었다. 작품을 앞부분에 아델라가 인도를 보고 싶어 하자 다른 영국인들은 인도인을 만나보라며 비아냥거렸다. 나는 문화는 그 나라 사람들의 생활 습관이기 때문에 그 국민이 그 문화를 표현하며 대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두 관계를 동일시 여겼기 때문에 영국인들의 말에 아무런 이상함 또는 의심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작품의 끝 부분에 필딩과 아델라의 대화에서 큰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아델라는 인도를 보고 느끼길 원했지만 인도인을 이해하거나 좋아하진 않았던 것이다. 즉, 두 관계를 동일시 할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인도를 좋아 한다 해서 꼭 인도인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며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 ‘오만과 편견’을 읽고 -REPORT1. 서론작품‘오만과 편견’은 약 200년 전에 쓰인 여류작가, 제인 오스틴의 작품이다. 이 작품은 그 당대 주류소설이 담아내었던 주제와 달리 여성의 결혼과정 혹은 결혼관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다.내가 여섯 편의 다른 작품 중 마지막 감상 작품으로서 ‘오만과 편견’ 선택한 이유는 이 소설이 고등학교 시절 필독도서로 선정될 만큼 작품성이 뛰어난 작품인 이유도 있지만, 그보다는 제인 오스틴이라는 작가에 대한 흥미와 관심이 더 크기 때문이다. 내가 제인 오스틴이라는 작가를 알게 된 것은 ‘비커밍 제인’이라는 영화를 통해서였다. 이 영화는 제인 오스틴의 삶을 영화화 한 것이고 그녀의 삶이 이 작품 ‘오만과 편견’을 집필하는데 큰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영화를 통해서 그 당시 시대적 배경뿐만 아니라 작품의 소재에 대한 한계 그리고 소설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엿 볼 수 있었다. 때문에 그녀가 그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그녀의 작품을 어떻게 완성시켰고 상이한 계층 간의 사랑 그리고 그 당시의 결혼관에 대해서 ‘오만과 편견’이라는 작품에서 어떻게 그려냈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갖고 작품을 감상하였다.2. 작가 소개작품‘오만과 편견’을 쓴 영국 소설가로서 담담한 필치로 인생의 기미를 포착하고 은근한 유머를 담은 그녀의 작품은 특히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높이 평가되었고 영국의 한 여류작가로 머물지 않고 세계 문학의 대표적 작가의 한 사람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녀는 21세에 ‘첫인상’이라는 작품을 쓰기 시작하여 이듬해에 완성, 아버지가 런던의 출판사에 보냈으나 거절당했다. 이것이 대표작 ‘오만과 편견 Pride and Prejudice》’(1813)의 바탕이 되었다. 그 후 처녀 출판된 ‘이성과 감성 Sense and Sensibility’(1811)를 비롯하여 ‘오만과 편견’(1813) ‘맨스필드 공원 Mansfield Park’(1814) ‘에마 Emma’(1815) 등의 걸작이 햇빛을 보았으나, ‘설복 Persuasion’(1818)을 탈고한 16년경부터 건강을 해쳐 이듬해 42세에 죽었다. 평생을 독신으로 지냈는데, 담담한 필치로 인생의 기미(機微)를 포착하고 은근한 유머를 담은 그녀의 작품은 특히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높이 평가되었고, 영국의 한 여류작가로 머물지 않고 세계 문학의 대표적 작가의 한 사람으로 평가되고 있다.3. 줄거리베넷씨와 그의 부인 그리고 다섯 명의 딸이 살고 있는 롱본의 이웃 네덜필드 파크에 어느 날 빙리라는 남자가 이사를 오게 된다. 그는 명랑하고 솔직했으며 온유한 성질을 갖은 남자였다. 그 뿐만 아니라 그가 상류계급이며 부자였기 때문에 딸을 가진 이웃 여자들은 빙리씨의 마음에 들기 위해서 여러 방법을 모색한다. 베넷씨의 부인 역시 딸을 가진 부모로서 빙리씨를 사위로 맞고 싶은 마음에 그녀의 딸들 중 가장 예쁜 제인을 앞세워 무도회장을 방문하게 된다. 그녀의 바람대로 빙리씨는 제인의 미모에 반해 두 사람은 좋은 관계를 유지하게 된다. 빙리씨의 친구 다르시 또한 빙리의 초대를 받아 무도회장에 왔으나 그의 거만하고 무례한 태도에 모든 사람들은 반감을 품게 된다. 또한 그는 엘리자베스가 예쁘지 않다는 이유로 그녀에게 춤을 권하지 않게 됨에 따라 엘리자베스는 그를 거만하고 오만한 사람이라고 단정 지어 버린다. 하지만 그녀와 달리, 처음 그녀의 외모를 보고 거절한 다르시는 유쾌하고 총명하며 자연스럽고 명랑한 그녀의 품위에 마음이 끌리기 시작한다.그러던 어느 날 베넷씨 집에 콜린스라는 한 남자가 방문한다. 그는 베넷씨가 죽고 난 뒤 그의 토지를 상속받을 남자였다. 그 당시 한정 상속이라 하여 한 집안의 남자만이 재산을 상속 받을 수 있으면 아들이 없을 시에는 남자 친척이 양도 받게 되는 법적 규제였다. 콜린스는 자신이 토지는 상속받는 보상으로 그들의 딸 중 한명과 결혼하고자 하여 엘리자베스에게 청혼하지만, 그녀는 그와는 행복할 수 없다는 이유로 거절을 하게 된다. 그리고 얼마 후 그는 엘리자의 친구 샬롯에게 청혼을 하고, 샬롯은 안정적인 삶을 위해 그와 결혼을 한다.엘리자베스의 동생 리디아와 키티는 사관들을 만나기 위해 종종 친척집을 방문했는데, 그러던 중 엘리자는 다르시와 위컴이라는 사관사이에 사연이 있다는 것을 눈치 채고 위컴을 만나게 된다. 그녀는 이미 다르시에게 안 좋은 감정을 품고 있었기 때문에 위컴씨의 의심스러운 행동과 이야기를 그대로 믿게 되고, 다르시를 더욱 더 혐오하게 된다. 그리고 친구 샬롯이 살고 있는 메리턴에 초대를 받아 방문하게 되고 그곳에서 다시 한 번 다르시와 마주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다르시는 엘리자베스를 방문하여 그녀에게 사랑하고 있음을 고백하지만 애정보다는 자존심, 그녀의 낮은 신분을 언급하면서도 그녀가 승낙할 것이라고 의심하지 않는 태도에 엘리자베스는 그동안 그녀가 그를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를 폭로한다. 하지만 그는 편지로서 그동안 그녀가 오해한 사실들의 진상을 규명하게 되고, 그녀는 그동안 그녀가 그를 공정하게 판단하고자 하는 노력도 없이 그는 마냥 오만하고 무례한 사람이라 단정 지었던 것에 대해 자괴한다. 그리고 다비셔에 방문했을 때 다르시를 만난 일과 그녀의 동생 리디아가 위컴과 도망갔을 때 그녀를 위해 힘을 써준 다르시를 발견하게 됨에 따라 그의 친절함과 따스함에 점점 끌리게 된다. 이러한 사실을 눈치 챈 다르시의 친척인 캐서린 영부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 둘은 서로에 대한 오해를 벗고 결혼을 하게 된다.4. 작품 감상 및 비평작품‘오만과 편견’은 제인 오스틴의 작품으로서 1813년, 지금으로부터 거의 200년 전에 집필된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현대에 살고 있는 그리고 얼마 후에는 결혼을 하게 될 미래의 나에게도 커더란 깨달음과 귀감을 주었다. 이 소설에서는 베넷가의 딸들의 사랑과 결혼의 과정을 통해서 그 당시의 결혼을 통해 출세하고 신분상승을 하고자 하는 기회주의적인 태도 비판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진정한 행복을 위해서 선택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는 듯 했다.보통의 사람들이 누군가를 만날 때, 그 상대방의 첫인상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규정 혹은 평가할 때 크게 작용한다고 한다. 하지만 첫인상은 단지 겉모습이나 누군가의 일부모습일 뿐임에도 불구하고 나로 하여금 나의 기준에 타인을 단정 짓는 오만을 저지르게 하기도하고, 보여 지는 일부의 모습을 나의 잣대로 판단함으로서 좋고 싫다는 편견을 저지르게도 만든다. 이 소설은 바로 무도회장에서 엘리자베스와 다르시가 서로의 첫인상에 대한 자신의 오만과 편견으로부터 시작된다. 때문에 엘리자베스는 위컴이 다르시에 대해 안 좋은 이야기를 함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편견 때문에 아무런 의심도 없이 위컴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버린다. 이러한 엘리자베스와 같은 실수 혹은 편견은 살면서 누구나 한 번씩을 해보았거나 당해 보았을 것이다. 나또한 이러한 실수를 저지르고 상대방에 대해 미안함을 감추지 못한 적이 여러 번 있다. 때문에 첫인상은 나의 일부분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좋은 첫인상을 남기기 위해 노력하는데, 가끔 이런 나를 발견할 때마다 조금 가식적이지 않은지에 대해 생각하게 되다. 결국엔 서로에 대한 편견을 만들지 않고 좋은 첫인상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 그 사람의 진실 된 모습을 볼 수 없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안타까움이 들기도 하였다.그리고 이 소설이 쓰인지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사람들이 갖고 있는 결혼관을 비판하는 듯 한 느낌이 들어서 많이 놀라웠다. 200년 전이나 현재나 어쩌면 좀 더 높은 곳으로 가고 좀 더 풍족한 삶을 원하는 사람들의 욕망은 변하지 않는 것 같았다. 대표적인 예로 엘리자베스의 어머니는 다르시를 혐오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부자인 그가 딸에게 청혼했다는 사실만으로 그에 대한 태도가 돌변하는 기회주의적 태도를 통해 알 수 있었다. 또한 엘리자베스의 친구인 샬롯도 콜린스를 사랑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좀 더 안정되고 그의 친척과 지위를 생각할 때 좀 더 전망 있는 결혼생활을 하기위해 그와 결혼을 결심하는 모습을 비판하는 엘리자베스를 통해 이러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오랜 시간동안 결혼은 당사자 서로에 대한 사랑과 믿음을 바탕으로 이루어 져야 된다고 생각하고 믿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어느 시대에나 존재했던 것 같다. 소설의 바탕이 되었던 중세에도 지금 현재에도 말이다. 하지만 사랑을 하고 결혼했음에도 불구하고 이혼을 하는 부부가 많은 것을 보면 꼭 사랑이 그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물론 사랑을 위해서 결혼을 하면 좋지만 출세 혹은 금전적인 이유를 위해서 결혼을 선택한다고 해서 과연 우리에게 그들을 비판할 자격이 있는지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왜냐하면 거의 모든 사람은 출세하고 안정적인 삶을 원하는 욕구를 지녔기 때문이다.
- ‘양들의 침묵’을 읽고 -REPORT1. 서론이 ‘양들의 침묵’이라는 작품의 작품성이 뛰어나다는 점은 어린 시적부터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었던 사실이지만, 읽을 책을 고르는데 있어서 편식이 심했던 나는 지금까지도 이 작품을 감상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과제를 위한 목록에서 이 작품을 보았을 때 이번 기회엔 꼭 감상해 봐야겠다고 다짐하고 생각했었다.이 작품을 감상하기에 앞서 나는 영화를 먼저 감상했다. 이 작품이 영화화 되었을 때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였기 때문이다. 과연 20여 년 전 작품이라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았다. 연쇄 살인이라는 소재가 자극적이고 흥미로웠을 뿐만이 아니라 인물들 역시 강한 개성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궁금해 졌다. 또한 나는 늘 책을 읽을 때 그 제목과 내용이 어떤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 지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데, 과연 양들의 침묵이라는 제목과 연쇄 살인이라는 소재가 어떤 관련성을 갖고 있는 지 궁금함이 더해 졌다. 그리고 책 표지의 표지의 한 여성의 입을 가리고 있는 나방 혹은 나비는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고 작품 감상을 시작하였다.2. 작가 소개미국의 추리작가로 ‘와코 뉴스 트리뷴’지의 경찰 출입기자로 일하면서 상세한 정보 수집으로 이름 높았고, 1968년 AP 통신사에 사회부 기자로 입사한 뒤에는 다년간 엽기적인 사건을 주로 다루었다.1975년 ‘블랙 선데이’로 데뷔한 이래 ‘레드 드래곤’(1981년), ‘양들의 침묵’(1988년) 등 3편의 소설을 발표, 모두 베스트셀러가 되고 영화화되었다. ‘레드 드래곤’은 1986년 마이클 만 감독에 의해 ‘맨 헌터’란 제목으로 영화화 되었고, ‘양들의 침묵’은 1992년도에 영화화되어 그해 오스카상의 5개 부문을 거머쥐고, 1억 3천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올렸다.3. 줄거리FBI의 연수생인 클라리스 스탈링은 어느 날 FBI 행동과학부의 과장 잭 크로포드로부터 부름을 받는다. 그는 연쇄 살인범 버팔로 빌에 대해 수사중이였고, 그 연쇄 살인범에 대한 정보 수집을 위해 분석심리학자 한니발 렉터 박사에게 몇 차례 접촉하였다. 하지만 거절당한 크로포드는 스탈링에게 범죄심리학적 데이터베이스 구축을 위한 작업의 일환으로서 렉터박사를 인터뷰할 것을 부탁한다. 하지만 분석심리학자 한니발 렉터 박사라는 인물은 그냥 단순한 심리학자가 아니라 공식적으로 자신의 환자 9명을 죽이고 그 인육을 먹은 연쇄 살인범으로서 범죄성 정신이상자 수용병원에 수감되어있는 범죄자였다. 그럼에도 그들의 그의 조언을 얻고 싶어 했다. 결국 스탈링은 크로포드을 돕기로 결정하고 렉터 박사를 만나러 범죄성 정신이상자 수용병원으로 가게 된다. 그 곳에서 스탈링은 렉터 박사를 만나게 되고 그는 그녀의 행동과 옷차림새를 통해 그녀의 취향과 어린 시절을 유추해낸다. 렉터 박사로 인해 스탈링은 어린 시절 어두운 과거를 떠올리게 된다.그녀는 어렸을 때 야간순찰대원이였던 아버지가 강도사건으로 살해당하고 그로 인해 어려웠던 집안 살림 때문에 몬타나의 친척집으로 이사를 가게 된다. 그곳은 일종의 농장같이 보였지만 실제로는 말들을 죽이는 말 도살장이었다. 어느 날 늦은 밤 스탈링은 잠 에서 깨어 양들이 우는 소리를 듣게 되고 자신이 아끼던 말인 한나만 데리고 친척지에서 탈출하게 된다. 그리고 그 후로도 성인된 스탈링은 그 양들의 울음소리를 꿈속에서 이따금씩 듣게 된다.렉터 박사는 이러한 스탈링의 과거를 듣는 대신 버팔로 빌에 대한 힌트를 하나하나 주고 받는 퀴드 프로 쿠오(주고받기)를 제안하고 그녀는 선택의 여지없이 그에게 과거의 사건에 대해서 하나하나 말해주기 시작한다. 즉 버팔로 빌에대한 정보를 얻는 대신 자신의 어두운 과거와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그 대신 렉터 박사는 버팔로 빌에 대한 힌트를 주기 시작하고 그녀는 그이 악마적인 천재성에 놀라움을 금치 못 한다. 그리고 스탈링과 크로포드는 이 정보를 통해 범인 추적을 시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생자의 시신이 계속해서 발견되고 어느 날 상원의원의 딸이 납치되고 범인의 추적은 급물살을 타게 된다.버팔로 빌은 피해자의 등가죽을 벗겼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 그 뿐만 아니라 그는 죽은 피해자들의 목안에 번데기 상태의 나방을 넣어 둔 것이었다. 이러한 버팔로 빌의 행동을 렉터 박사는 그가 현재의 상태에서 벗어나 새로운 존재가 되고 싶어 한다는 것과 가지고 싶다는 열망에 휩싸인 자라는 힌트를 주고 이러한 정보를 이용해 추적하던 스탈링은 버팔로 빌의 집까지 찾아가게 되고 몸싸움 끝에 버팔로 빌을 총으로 쏴 죽이게 된다. 또 상원의원의 협상을 위해 정신이상자 수용병원에서 멤피스로 이동하게 되고 이곳에서 교묘하면서도 잔악한 방법으로 감시 경찰을 살해하고 유유히 탈출하여 다시 자유로운 삶은 찾게 된다.4. 작품 감상 및 비평앞서 말했듯이 나는 늘 작품을 감상할 때 작품의 제목과 그 내용의 연관성을 찾으려는 데에 집착하는 경우가 있다. 실제로 이 작품을 감상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과거 이 작품을 접할 때 마다 연쇄살인과 그 사건을 추적하는 미모의 FBI형사(연수생)의 이야기가 과연 양들의 침묵이라는 제목과 무슨 관련성이 있을지에 대해 늘 궁금해 하였었다. 그리고 감상을 통해 그 해답을 얻게 되었다. 어렸을 적 스탈링은 아버지의 죽음이후 친척의 목장으로 보내지는데 그 곳이 말 도살장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결국 어린 스탈링은 양들의 울음을 뒤로하고 자기가 아끼던 한나라는 말만 데리고 도망을 치게 된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이 구하지 못한 양들의 울음소리를 성장한 이후에도 듣게 된다. 그녀는 렉터 박사와 퀴드 프로 쿠오식으로 자신들의 원하는 정보를 주고, 받음에 따라 연쇄살인범 버팔로 빌에 대한 정보를 얻게 되지만 정작 그녀 자신은 어두운 과거를 상기하게 되고 이에 직면하게 된다. 아마도 그녀는 어린 시절 그 목장에서 울고 있는 양들 모두를 구하지 못한 채 도망 나온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그러한 이유로 그녀의 정신은 온전히 성장하지 못한 채 가슴 깊은 곳에서 스스로에게 생채기를 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녀는 사람들의 손에 의해 희생되는 어린 양들을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세상에 남겨진 어린 그녀와 동일시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한 마리의 말을 데리고 도망친 그녀의 행동은 어쩌면 위험한 세상에 대한 어린 그녀의 반항이 아니까 생각해 보았다. 때문에 그녀는 범인을 잡기 위해 더더욱 집착하고 매진하는 것이다. 결국 양들의 침묵이라는 것은 스탈링이 범인을 잡음으로서 과거의 양들 또는 그녀와 동일시 여겨지는 피해자를 구출하고 양을 구하지 못 했다는 과거의 억압으로부터 벗어나게 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실제로 이 작품은 위험천만한 세상에 대한 스탈링의 작은 반항의 메시지를 담고 있음과 동시에 대부분의 소설에서 남자가 범인을 잡는 것과 달리 여자인 스탈링이 범인을 죽였다는 점에서 남성우월주의적인 사회 풍토를 비웃는 듯 한 내용 또한 엿 볼 수 있었기 때문에 여자로서 통쾌한 감정을 느끼기도 했다.
- ‘벌레이야기’를 읽고 -REPORT1. 서론‘벌레이야기’를 첫 감상 작품으로서 택하게 된 이유는 아마도 영화 ‘밀양’의 원작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비록 이 때 당시 나는 그 작품은 감상하기 전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이 영화의 작품성은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원작의 제목, 벌레이야기는 밀양의 아름다운 속 뜻(비밀의 햇빛)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기 때문에 더욱 관심이 간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작품 앞쪽에서 작가의 서문을 보면 하나님의 사랑 앞에서 사람은 무엇이며 인간의 존엄과 권리가 무엇이냐는 그의 말이 기독교인이 아닌 나에게는 안타깝게 느껴지고 과연 인간이 인간의 존엄성을 잃었을 때도 인간으로서의 삶을 지탱해 나갈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나 스스로에게 던져보는 계기가 되었다.2. 작가 소개소설가 ‘이청준’은 주로 인간 생활과 예술,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갈등에 초점을 두고 이에서 비롯되는 문제를 문학적으로 형상화하는 데 일생을 바친 작가이다. 그의 초기작에서 현실과 관념, 허무와 의지 등의 대응관계를 구조적으로 파악함으로서 경험적 현실을 관념적으로 해석하고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경향이 강하였다. 또한 이청준의 소설적 작업은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매우 활발하게 전개되어 소설에서 정치·사회적인 메커니즘과 그 횡포에 대한 인간 정신의 대결 관계를 주로 형상화하였으며, 1980년대 접어들면서 보다 궁극적인 삶의 본질적 양상에 대한 소설적 규명에 나서고 있다.‘이청준’의 소설은 정치적 견해나 지역, 계층을 떠나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고 감동할 수밖에 없는 매력을 지녔다. 당대현실에 대한 예리한 문제의식과 그것을 삶의 모습으로 끌어안는 정신성을 그의 작품에서 엿 볼 수 있다. 따라서 작품의 경향은 다소 관념적이기는 하나 집요하게 삶의 진실을 추구하는 작가로 평가되기도 한다. 그리고 사라져 가는 전통에 대한 끈질긴 애착과 집념의 작가 정신을 지닌 분으로도 정평이 나 있다.영화로서 많이 알려진은 그의 작품를 영화화한 것이며 그 작품이외에도 , , 이라는 작품이 영화화 되었다.3. 줄거리소설 ‘벌레이야기’는 ‘나는 하나님의 품에 안겨 평화로운 마음으로 떠나가며, 그 자비가 희생자와 가족에게도 베풀어지기를 빌겠다’라는 어린이 유괴살해 사건의 범인의 말을 모티브로 이청준작가가 집필한 단편 소설이다. 이 소설은 피해아동의 아버지 시점에서 알암이 엄마에 대해 관찰자적 입장으로 쓴 이야기이다.이 소설은 알암이 엄마가 마흔 가까이에 얻은 아들의 유괴에 의한 실종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다리 한쪽이 불편하고 유순했던 알암이는 학교나 밖에서 눈에 뛰는 아이가 아니었지만 다른 부모에게 제 자식이 귀하듯 두 부부에게도 소중한 존재였다. 그런 아이의 실종이 확실시됨에 따라 두 부부는 절망하게 되지만 두 부부는 어떤 결과에 대한 불길함이나 절망감을 견디고 반드시 아이를 찾아내겠다는 희망과 기원으로 자신을 지탱해 가게 된다.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알암이 엄마가 지칠 만도 했지만 그녀는 끈질긴 진념으로 하루하루를 버텨나간다. 하지만 그녀의 노력과 희생에도 불구하고 알암이는 어느 건물 지하에서 시체로 발견되고 그 범인이 알암이의 주산학원 원장으로 밝혀진다. 알암이 엄마는 절망과 자학에서 자신을 가다듬고 일어나 이번엔 범인에 대한 원망과 분노와 복수의 진념으로 자신을 지탱해가기 시작하다.이 소설에는 또한 알암이 엄마가 섭리자인 하나님과 만날 수 있도록 인도하는 김집사 아주머니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그녀는 알암이 엄마에게 믿음을 권유하며 교회로 이끌게 된다. 처음에 거절하고 하나님을 원망하던 알암이 엄마도 차츰 주님에게 의지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아이의 구원을 위한 기도를 하면서 주님의 참사랑을 깨닫게 되자 김집사는 범인을 용서하도록 인도하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아내는 범인에 대한 진정한 용서를 위해 그를 만나러가게 된다. 그리고 그녀는 절망의 끝을 보게 된다. 자신의 아들을 죽이고 죽음의 문턱 앞에서 괴로워해야 마땅한 사형수는 알암이 엄마가 용서하기도전에 주님의 용서를 받고 그 누구보다 편안한 죽음을 맞이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영화 ‘밀양’으로도 잘 알려진 이 소설은 한 인간이 절대자의 용서 앞에 자신의 존엄성을 증명하지도 못한 채, 절대자의 섭리와 인간이라는 존재 사이에서 절망하고 결국엔 둘 다를 버리고 죽음을 택하게 되는 것으로 끝이 난다.4. 작품 감상 및 비평이청준작가의 단편소설 ‘벌레이야기’의 마지막장을 넘기면서 나는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믿음으로 충만한 신도와 지극히 객관적, 어쩌면 철저히 인간의 입장을 마음속으로 옹호하던 나와의 괴리감에 나 자신도 많이 놀랐다. 나 역시도 종교를 떠나 용서는 죄를 지은사람보다 나 자신을 위해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사람 중 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 살인마 김도섭이 주님으로부터 용서를 받음으로서 마음의 평화를 찾았기 때문에, 오히려 그를 옹호하고 용서해야한다는 김집사 아주머니의 견해를 접하게 될수록 도대체 얼마나 인간의 마음이 하나님께 닿아야 그녀의 견해를 이해할 수 있을지 생각을 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기독교인이 아닌 나로서는 실제 절실한 기독교인이 과연 김집사 아주머니와 같은 견해를 갖을 것인지에 대한 의문과 의심이 동시에 들었다. 실제로 기독교인의 감상평을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이청준작가의 ‘벌레이야기’는 어쩌면 많은 사람들에게 ‘밀양’이라는 주제도 더 많이 알려져 있을 것이다. 아마 나 또한 문학과 영상이라는 과목을 수강하지 않았더라면 모르고 지나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를 통해 감상하게 된 ‘벌레이야기’라는 작품에서 처음에는 아들을 찾으려는 희망으로 그리고 범인에 대한 원망과 분노 그리고 복수라는 일념으로 자신의 삶을 이어가는 알암이 엄마를 보게 되었다. 결국 그녀를 통해 인간이 자신의 존엄성을 증명하기위한 용서와 주님의 섭리를 받아들이기 위한 용서사이에서 절망하는 인간을 만날 수 있도록 한다. 이는 결국 용서라는 소재를 통해 사람의 존엄성을 지키는 일과 섭리자의 사랑사이에서의 갈등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내 짧은 소견으로는 많은 사람들이 어쩌면 약간은 잔인하면서도 자극적인 이야기에 호기심을 갖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실제로 책이나 영화에서 유괴라는 소재를 주된 이야기로서 많이 사용하기도 한다. 그에 반해, ‘벌레이야기’는 어린이 유괴살인 사건이라는 강한 소재로 시작됨에도 불구하고 그 이야기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기보다는 오히려 회상하는 듯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듯해서 알암이 엄마의 내적 갈등에 대한 호기심에 더욱 집중하고 호기심을 갖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