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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르네상스의 예술가들
    르네상스의 예술가들필리포 브루넬레스키 (Filippo Brunelleschi 1404~1472)피렌체 출생. 15세기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건축양식 창시자의 한 사람이다. 아버지는 공증인이었고 어머니는 귀족 출신이었다. 차남인 그는 아버지의 직업을 계승하는 대신 금속 공예의 기술을 익혀 조각가가 되려고 하였다. 1401년 피렌체세례당 출입문의 양각(陽刻) 콩쿠르에 응모하여 L.로렌초 기베르티의 작품과 끝까지 경쟁한 결과, 결국 그가 사퇴함으로써 기베르티가 영광을 차지하였다. 그러나 현존하는 당시 시작품(試作品) 《이삭의 희생》(피렌체 바르젤로미술관 소장)은 하나하나의 조각상이 매스로서 정확하게 파악되어 있고, 또 그것들이 극적으로 힘차게 구성되어 있어서 산타마리아노벨라성당의 목각상 《그리스도의 책형(刑)》(1409?)과 더불어 조각가로서의 뛰어난 자질을 보여주고 있었다.콩쿠르 이후에 주로 건축가로서의 활동에 전념하였다. 첫 업적에는 피렌체의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대성당의 커다란 돔(1436 낙성식)이 있으며, 고대 로마의 판테온의 가구(架構) 기술을 도입하여 전통을 중요시하면서도 새로운 구성미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하였다. 또 피렌체의 첫 사회시설인 오스페달레 델리 인노첸티(고아양육원: 1421∼1444)에서는 9단의 계단 위에 연속된 아케이드의 전망 효과를 노리고 있으며, 명쾌하고 새로운 율동감을 주고 있다. 또한 산로렌초성당(1418 이후)과 산토 스피리토성당(1436 이후)에서는 저마다 질서 있고 지적(知的)인 공간구성이 특색이다. 후자의 본당에서는 집중식 형태에 대한 관심이 엿보이는데 이는 산로렌초성당의 성기실(聖器室: 1428), 파치가(家)의 예배당(1429 기공), 산타마리아 델리 안젤리성당(1434 기공) 등에서 실현되고 있다. 특히 산타마리아 델리 안젤리성당은 순전히 집중식 형태를 노려서 건립된 것으로 그의 건축양식에 대한 한 가지 해답을 제시하는 것이었는데, 불행히도 1437년에 공사가 중지되어 지금은 1층 벽면만 남아 있을 뿐이다. 그의 위대성은 밑그림은 파괴되었고, 그 후 얼마 안 되어 피렌체를 떠나게 되자 벽화는 그대로 버려졌다. 지금은 벽화를 위한 많은 습작소묘와 루벤스의 중심부 모사(模寫:군기쟁탈의 장면)밖에 남아 있지 않다. 이 시기에도 과학연구는 착실히 진행되어 새의 비상이나 지질·지지학·식물학·입체기하학 등을 연구하였다.《안기아리의 전투》를 그렸고, 그 뒤는 밀라노·피렌체·로마 등을 돌아다니는 동안에 《모나리자(루브르 소장)》를 그렸고, 제자 프레디스의 《암굴의 성모(런던 내셔널갤러리)》를 지도했고, 그 뒤 《성 안나와 성 모자》 《세례자 요한(모두 루브르 소장)》을 그렸다. 1513년, 교황 레오 10세의 아우의 초청으로 로마로 옮겼는데, 16년에는 프랑수아 1세의 초빙으로 향발, 17년에는 앙부아즈왕성 근교 크루성관에 입주한 뒤, 갖가지 연구를 했는데, 그는 여기서 67세로 죽을 때까지 평생을 보냈다.회화작품 중 지금까지도 남아 있는 것은 많지 않다. 어렸을 때 있던 공방시절(제1차피렌체시절)에는 스승 및 동문과의 합동작품인 《그리스도의 세례(피렌체의 우피치미술관 소장)》 《지네브라데벤치의 초상(워싱턴의 내셔널갤러리 소장)》 《수태고지;우피치와루브르미술관 소장)》와, 미완품인 《3박사의 예배(우피치 소장)》 《성히에로니무스(바티칸미술관 소장)》가 있다. 제1차밀라노 시절에는 산타마리아델레그라체성당 식당의 《최후의 만찬》 외에 성프란체스코교회 무원죄회태예배당을 위한 제단화 《암굴의 성모(루브르미술관 소장)》와, 소묘만이 현존하는 조각 《스폴차기마상》이 만들어졌다. 1499년 10월의 프랑스군의 밀라노 점령으로 일 모로는 몰락하고 레오나르도는 L.파치올리 및 제자들과 함께 밀라노를 떠났다. 그리고 1500년 2월 만토바에서 공비 이사벨라 데스테의 초상을 그렸다. 소묘단계에서 끝난 조각 《트리푸르치오장군 기마상》 등을 추가해도 그의 예술상의 유작은 많지 않으나, 미술역사상에 남긴 발자취는 매우 크다. 즉, 회화역사상에서는 원근법 및 해부학의 연구로 콰트로첸토(15세기)의 정밀한 자연묘사를 이름을 얻었다. 지참금은 겨우 170플로린. 삼십 년 뒤 리자의 조카딸 카산드라가 시집가면서 챙겨간 1400플로린에 비하면 거저나 다름없다. 그러고 보면 피렌체에서 비단 장사로 큰 돈을 번 남편은 어린 리자의 미모에 단단히 반했던 모양이다. 리자의 초상 그림을 당대 최고의 화가 레오나르도에게 부탁한 것도 아내 사랑이 지극하지 않고서야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다. 는 미소가 일품이다. 만약 보험설계사한테 미소의 가치를 매겨보라고 맡기면 클레오파트라의 콧대나 양귀비의 발바닥보다 더 후하게 쳐줄지 모른다. 실제로 루브르 박물관도 그 덕에 한 몫 알뜰히 챙기고 있으니까. 미소 이야기는 1550년 바사리가 레오나르도의 생애를 정리하면서 처음 썼다.“물기 밴 두 눈의 광채는 흡사 살아 있는 사람을 보는 듯하다. 눈가에 더없이 섬세한 연보랏빛 그림자가 드리웠고, 믿을 수 없이 정교한 붓으로 완성된 속눈썹도 기가 막힐 따름이다. 눈썹은 보일 듯 말 듯 솜털부터 시작해서 점차 짙어지는 터럭들이 하나하나 솟아 나와 이마와 눈 사이에 융기한 눈썹뼈의 흐름을 따라 새겨졌는데, 살아 있는 자연이라도 이보다 더 나을 수는 없다. 코의 생김새와 발그레한 콧구멍은 살아서 숨쉬는 듯하다. 입술 가장자리는 알 듯 모를 듯 부풀어올랐고, 바로 여기서 입술의 붉은 색조와 뺨의 살색조가 만난다. 그래서 이 여성은 붓으로 그린 그림이 아니라 피와 살로 빚어낸 창조물처럼 보인다. 목우물에서 맥박이 느껴진다…얼굴 표정에서 사랑스런 미소가 피어나는데, 이 미소는 지상보다는 천상에 속한 것 같다. 어찌나 생생한지 사람들은 그림을 보고 한결같이 입을 모아 예술의 기적이 탄생했노라고 말한다.”의 미소가 그후 크게 유명세를 타게 된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유명해지자 이를 못마땅하게 생각한 사람들도 있었다. 예컨대 1858년 테오필 고티에는 사랑스런 천상의 미소는 커녕 “뱀처럼 꼬여드는 입술이 도도하고 우아하고 달콤한 미소를 뿌리며 남성을 제압하고 쪼그라들게 만든다”고 탄식했고, 1873년 월터 예》 《승리》 《젊은 노예》 《수염을 기른 노예》 《아틀라스의 노예》 《잠을 깬 노예》 등은 묘당을 장식하기 위해서 제작된 것이다. 묘당 하단의 중앙에 《모세》, 왼쪽에 《라헬》, 오른쪽에 《레아》를 두었는데 모두 그의 손으로 제작된 조상이다.1520년 45세 때에는 메디치가의 선조의 위패를 모신 산 로렌초성당의 새 성기실에 메디치가의 묘당 제작을 의뢰받게 되었다. 메디치의 묘는 새 성기실의 제단으로 향하여 왼쪽에 로렌초(우르비노공작), 오른쪽에 줄리아노(누므레공작)의 조상 및 석관이 놓여 있고 각 석관 위에 각기 2체의 우의상이 놓여 있다. 즉 로렌초의 석관에는 《새벽》과 《저녁》, 줄리아노에는 《낮》과 《밤》의 몸길이 2m의 조상이 놓여 있다.또 제단 맞은편에는 《성모자》가 세워져 있다. 미켈란젤로는 젊은 시절부터 피에타상 제작에 집념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앞서 말한 성베드로대성당의 《피에타》 외에 피렌체대성당의 《피에타》, 밀라노 스포르차성 미술관의 《론다니니의 피에타》를 남겼다. 피렌체의 《피에타》는 75세 무렵 제작한 것인데 중도에서 포기했기 때문에 후에 제자의 손에 의해 오늘날의 상태로 완성되었다. 따라서 좌단의 막달라 마리아는 비례를 잃고 있다. 뒤쪽 중앙의 니고데모의 얼굴은 미켈란젤로의 자화상이라고 한다. 《론다니니의 피에타》는 미켈란젤로가 죽음을 앞둔 6일 전까지 끌을 휘둘렀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미완의 조상으로서 손질이 되어 있는 예수의 두 다리와 왼쪽 허리, 떨어진 위치에 남겨져 있는 오른쪽 팔은 당초 계획에 의한 제작일 것이다. 이 피에타의 조상은 이례적인 것으로 죽은 예수가 살아 있는 마리아를 업고 서 있는 포즈인데 거장의 만년의 신앙·예술·철학이 결정된 지고한 경지를 나타내는 것이다.1504년 피렌체 시청에《카시나의 싸움:Battle of Cascina》의 벽화를 의뢰받아, 건너편 벽면에 안기리의 기마전》을 그리게되어 있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경쟁하였다. 그러나 미켈란젤로는 이듬해 율리우스 2세에게 불려 로마로 가서, 그 기념 묘비를 구약성서의 의미를, 개별적 주제가 하나로 융합되게끔 재현시키고 있다. 이 벽화들 중에 는 일반적으로 가장 많이 알려진 작품이다시스틴 천장 벽화를 구성하는 창세기 이야기들은 성당 제단 쪽에서 시작해 입구 쪽으로 주제별로 전개되고 있다. 이 작품은 벽화들 중 가운데 부분에 해당하는 그림에 속하며, 나체상을 뜻하는 4명의 이그누디를 작은 형태와 큰 형태 교대로 배열하면서 펼쳐진다. 창세기 1장 1절에서 19절에 해당되는 이야기, 즉 해와 달, 별, 식물을 창조하는 내용이 담겨 있는데, 이는 내용상으로 두 번째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밝은 빛을 품고 해와 달, 별을 창조하는 역동적이며 힘있는 하나님의 비상하는 모습과 더불어, 식물을 창조하는 하나님이 저 멀리 등을 보이며 사라지는 모습이 한 벽화 안에 그려져 있다. 구약에 등장하는 하나님이라는 존재는 두려우면서도 경이로운 존경심을 함께 불러일으키는 절대적 존재이다.이 그림 뒤에 나오는 에서도 하나님은 인간이 다다를 수 없는 거리를 두면서 강력한 추진력으로 이 세계를 창조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미켈란젤로의 이 천장 벽화에는 여느 화가들이 감히 시도하지 못했던 "하나님"이라는 신의 존재를 뛰어난 상상력과 필치로 형상화시키고 있다. 여기서는 입구 쪽의 벽화 장면에서 보는 바와 같이, 실내 장면이 천지창조가 이루어지는 외부 공간으로 바뀌고, 장엄하게 이루어지는 천지창조의 순간들이 성스러운 예배당이라는 공간에 역동적으로 넘치고 있다에서 노아의 이야기들에 이르기까지 9구분으로 된 구약성서 내용의 천정 중심 화면 전 후 좌우에 12체의 선지자, 그리고 무녀가 그 아래 건축적인 틀에 억눌려 있는 그리스도의 선조 그림들보다 훨씬 위풍있게 그려졌다. 그런 예언자의 위치는 입구 바로 위에 있는 선지자 자카리아(Zaccaria)를 비롯하여 첫째 그림, 를 두고 왼쪽에 와 오른쪽에 , 그 다음의 삼각 벽면을 건너서, 를 두고 왼쪽에 선지자 이사야와 오른쪽의 에리트레아의 무녀와 그림을 두고, 구마의 무녀와 선지자 에제키엘, 를 두고, 선다.
    인문/어학| 2011.12.28| 38페이지| 1,500원| 조회(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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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속의 로마네스크
    한국 속의 로마네스크, 서울 성공회 성당처음 서울 성공회 성당이 눈 앞에 보였을 때 조금만 과장을 보태서 나는 내가 지금 서울에 서 있는 것인지 유럽에 와 있는 것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이 뒤에 갔던 명동성당과 함께 말로만 듣고 글로만 배웠던 유럽의 건축물들을 실제로 눈 앞에서 보는 느낌에 기분이 묘했다. 명동성당과는 확연히 구분이 되는 외관은 아무리 보아도 로마네스크 시대의 성당들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명동성당이 수직적인 고딕양식에 영향을 받아 지어졌다면 성공회 성당은 이에 대응하는 방식으로 단순하며 소박한 로마네스크 양식을 택하여 지어졌다. 같은 성당이지만 서로 다른 양식으로 지어져 전혀 다른 느낌을 주었다. 내부의 돔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근엄한 분위기도 달랐고, 공간감도 다르게 느껴졌다. 같은 성당이지만 건축양식에 따라서 이러한 느낌의 차이가 발생하는 점을 보고 건축의 매력에 한층 더 빠져들게 되었다. 성공회 성당의 원 설계도에는 하나의 성가대석, 7개 주간(bays)의 신도석(nave)과 통로(aisle), 양 날개 부(trancept)로 설계 되었는데. 준공 당시엔 3개 주간의 신도석과 통로 부, 양 날개 부 일부, 지하 현실만 건립되었다고 한다. 평면은 긴 십자형(latin cross) 평면으로 전형적인 로마네스크의 바실리카식 성당의 모습이라고 볼 수 있다. 오른쪽 사진과 같이 외벽 재료로는 주요 벽면엔 화강암, 그 사이에는 적벽돌을 사용하였다. 들어가는 입구는 반원 아치로 되어 있으며 그 윗부분엔 원형 창을 두었고 좌우 통로에는 돌출된 출구와 그 위쪽에 반원 아치를 두었다. 또한 내부 제단 양측 면에 있는 네 개의 아치에 여러 가지 모자이크를 하여 한층 더 아름답게 보이도록 하였다. 이런 성공회 성당의 아름다운 모습은 후에 갔던 고딕 양식의 명동성당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쌍벽을 이루는 성당 건축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독후감/창작| 2011.12.28| 1페이지| 1,000원| 조회(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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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쇼펜 하우어
    행복에 관한 책을 찾아 도서관을 돌아다니던 중, 흥미로운 이름의 책을 발견하였다. 그것은 이라는 책이었다. 철학에는 거의 지식이 없는지라 쇼펜하우어가 누군지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일단 불행한 철학자가 말하는 행복은 무엇일까 하는 흥미로움에 일단 빌리기로 하였다. 집에 돌아와 쇼펜 하우어에 대해 찾아보니, 그는 독일의 철학자로 흔히 '염세주의 철학자'로 불린다고 한다. 쉽게 말하면 비관주위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헤겔의 관념론에 정면으로 반대하는 의지의 형이상학을 주창한 인물로 중요하며 그의 글은 나중에 실존철학과 프로이트 심리학에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쇼펜하우어는 소책자 형식의 행복론을 구상하고 집필에 착수했으나 완성하지 못하고 죽게되었다. 그러나 볼피가 이 사실에 주목하여 쇼펜하우어의 유고를 토대로 발간된 수많은 전집과 편찬서 여러 곳에 산재해 있는 생활원칙들을 찾아내었다. 또한 쇼펜하우어 문서실 등의 자필 원고 뭉치들을 샅샅이 헤쳐서 아직 어디에도 수록된 적이 없는 몇몇 원칙들까지 발굴하여 연대순을 배열하면서 쇼펜하우어의 기록과 메모를 통해 원래 구상에 따라 재구성 하였다. 쇼펜하우어 미완의 저작인 동시에 오직 볼피의 노작이라 할 수밖에 없을 이 책은 이러한 광범위 하고도 치밀한 작업의 결과로 빛을 보게 되었다.그렇다면 불행한 철학자가 생각하는 행복은 과연 무엇일까? 그 구성을 살펴보자면 이 책은 행복론-〔행복을 위한 비결〕, 50가지의 삶의 원칙, 행복론으로 구성되어있다. 행복이 무엇인가부터 행복을 위한 비결을 담은 첫 번째 행복론 그리고 그 행복을 위한 50가지의 삶의 원칙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행복론에 대하여, 언젠가는 죽어야할 운명이지만 그 운명을 다르게 만드는 법에 대하여 소개하고 있다.일단 첫번째 행복론-행복을 위한 비결의 내용을 간단하게 말하자면 ‘우리에게 적극적이고 완벽한 행복은 불가능 하며, 비교적 덜 고통스러운 상태만 기대할 수 있다.’ 이다. 이 책에서는 완곡한 표현을 사용하여 행복한 삶이란 결국 조금이나마 덜 불행한 삶이나 그럭저럭 견딜 수 있을 만한 삶을 의미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 책에선 우리가 삶이 허용하는 만큼의 행복을 누리는 데 도움이 되는 수단 중 극히 일부만이 우리가 가진 권능의 범위 내에 있다고 한다. 첫 번째로는 우리 자신에 대한 행동 원칙들이며 두 번째로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행동원칙들이다. 그리고 이 전에 인간에게 가능하다고 규정된 행복의 본질은 무엇이고, 그 행복을 위해 본질적으로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를 좀 더 상세히 규정하고 논의한다. 그 첫째가 명랑한 정서 둘째가 명랑하기 위해 필요한 몸의 건강 셋째는 정신적인 평온 네 번째는 아주 약간만 필요한 외부의 자신이라고 한다.그 다음에 이어서 ‘50가지 삶의 원칙’에서는 제목 그대로 삶의 원칙 50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그중 인상 깊었던 몇 가지만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삶의 원칙 1 은 ‘우리 모두는 이상향에서 태어났다’라는 말로 시작한다. 우리는 모두 행복한 삶을 꿈꾸며 태어나지만 그러한 행복에 권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운명에게 있으며 우리의 모든 것, 재산과 소득, 팔과 다리와 귀, 심지어 얼굴 한복판의 코에 대한 권리마저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경험을 통해 행복을 추구 하는 것이 얼마나 허황된 일이며 또한 반대로 번민과 고통은 실재하며 환상이나 갈망 없이 출현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삶의 원칙 5에선 이러한 고통은 개개인의 본성에 의해 범위가 정해지고 그대로 유지 된다는 가설을 세우고 있다. 개개인이 겪는 고통의 외적인 형식은 바뀔 수도 있으나 고통의 양은 정해진 범위의 상한선을 초과하거나 하한선에 미달 하지는 않기 때문에 고통과 행복은 외적인 상황에 의해 좌우되지 않고, 오직 본성의 척도와 개인적 소양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는 의견이다. 한가지 간단한 예를 들어 보자면, 자신이 몹시 바쁘고 짜증나 있는 상태에 있다면 아주 사소한 일이라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불쾌해 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 반대의 경우에 같은 상황이 발생한다면 대부분은 대수롭지 않게 여길 것이다.다소 놀라운 내용 이였던 삶의 원칙 42에서는 ‘삶을 위해 방대한 준비를 하는 것’ 이 가장 심각하며 흔한 어리석음이라고 이야기 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늘 큰 꿈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리고 그 큰 꿈을 이루기 위하여 준비하고 노력한다. 그러나 쇼펜 하우어는 사람들은 완벽한 삶이 가능하다고 여기지만 그런 삶에 이르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고 생각하였다. 나아가서 사람들이 아무리 오래 산다 하더라도 그들의 계획에 비하면 그 삶은 너무나도 짧다고 한다. 만약 이루어 진다 하더라도 사람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고 무엇인가를 하거나 즐길 수 있는 능력도 전과 다르게 되기 때문에 미처 고려하지 않았던 결말에 봉착한다고 한다.삶의 원칙 45에서는 ‘세상에는 두 종류의 ‘자살’이 있는데 한가지는 무뚝뚝함에서 비롯된 병자의 자살이고, 다른 하나는 불행에서 비롯된 건강한 사람의 자살이다. 그러나 두 종류의 ‘자살’은 본질상 궁극적으로 동일하고 자살에서 중요한 것은 동기와 이에 대한 반응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누구에게나 자살을 할 가능성이 존재하며 완벽하게 건강한 사람이라고 해서 어떠한 불행에도 삶의 의욕이 꺾이지 않을 만큼 명랑하다고 가정 할 수 없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마지막 그의 행복론에서는 이성에 관한 이야기와 주관적인 행복의 성격, 그리고 재산과 평판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있다. 끝을 마무리하는 글이라기보다는 앞에서 나왔던 바와 같이 행복에 대한 구체적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부분에서는 우리는 언젠가는 죽어야만 하는 자들의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서로 다르게 만드는 원천이 세 가지 있어 서로 다른 삶을 살고 서로 다른 것을 느끼며 서로 다른 행복을 경험하게 되는데 그것은 누구인가(인격), 무엇을 갖고 있는가(재물과 자산), 무엇을 내세우는가(평판과 위신)이다. 라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50가지 삶의 원칙 중 어떤 것은 무척이나 공감하였지만 몇 가지 원칙들은 어쩔 수 없이 그의 염세주의적 성향이 묻어나기도 하고 이해하기 힘든 부분도 많았다. 물론 쇼펜하우어는 염세주의 철학으로 유명하기에 당연한 사실이지만 비록 염세주의적 성향이 묻어난다 하더라도 그것이 무조건적인 비관이 아닌 현실적으로 와 닿는 내용들 이었기에 다소 의아했던 이야기들도 끝에는 이해하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여태껏 행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왔나 뒤돌아 보게 되었고 또 앞으로 행복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하나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다. 쇼펜하우어는 머릿속으로 이상적인 인생에 대한 설계를 하며 그것에 눈이 멀어 그 본래의 목적과 정의를 잃어버린 나에게 날카로운 시선으로 올바른 행복을 추구 할 것을 알려 주었다.
    독후감/창작| 2011.12.28| 2페이지| 1,000원| 조회(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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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Ⅰ中 「여성철학」부분 요약1. 여성은 약자인가 ? - ‘여성은 약자이다’ 과연 옳은 말인가. 여성이 육체적으로 약한지, 정서적으로 약한지 기준은 명확하지 않다. 힘에 있어서 남성이 여성보다 우월하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그 힘이 어디에 쓰이는지에 따라 달라 질 수 있는 문제이다. 남자는 모체에서 여자보다 저항력이 떨어진다고 한다. 그렇다면 남성이 여성보다 약하다고 말할 수도 있는 것인가. 빈약한 믿음을 바탕으로 남성과 여성에 대해 인간의 우열을 가릴 수 없다.그러나 현대에 여전히 ‘여성이 약자’ 라는 판단이 판을 치고 있다.2. 성차별의 역사적 배경 - 여자가 약하고 열등하다는 편견은 경험이나 사실적 근거에 기인한다기보다는 여러 가지 종교적,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환경 속에서 조장된 것이다. 기독교에서의 만인의 평등에서도 남녀의 진정한 평등은 제외되어 있고 유교 역시 동양사회에서 성차별은 완전히 제거 불가능한 악성적 뿌리가 되었다. 과거 사회에도 경제상태의 차원이 높아짐에 따라 경제가 발전되고 남자들이 경제적 강자가 되었다. 그러함과 동시에 여성은 공적지위와 권리를 박탈당했고 여자에게만 일방적인 정절과 순결이 요구되었다. 또한 산업화의 진전에 따라 여성의 가사노동은 평가 절하 당하게 되었고 봉건제의 붕괴와 더불어 국왕이 국민을 다스림으로써 가부장제가 더욱 강화되었다.3. 여성해방과 남성해방 - 성차별이 필연적이라고 여겨지는 것은 빈부격차가 마치 정당하고 불가피하다고 여겨지는 것과 같이 잘못된 생각이다. 따라서 성차별은 신분철폐와 노예해방 그리고 흑인해방과 같이 강력하게 항거되어야 한다. 성차별은 여성의 입장에서 뿐만 아니라 가장으로서 임무를 평생 짊어져야하는 남성에게 또한 해당되므로 기필코 제거되어야 한다. 그것은 악이라 말할 수 있다.4. 여성성과 남성성 - 여성과 남성은 신체부터 영혼까지 다르다. 여기에서 우리는 과연 여성성과 남성성이 진실로 존재하는지, 아니면 사회에 의해 권장되는 이상적 모습에 불과한지에 관한 물음이 생긴다. 경험론자 로크의 의 우열을 따져서 성차별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고 본다. 여성은 유전인자 XX와 여성적인 신체를 가지고 난자를 보유하며 출산을 한다. 이 성염색체 (X, Y)에 따라 여성인지 남성인지 한 마디로 말할 수 없는 중간적 존재들도 존재할 수 있다. 또한 정상적인 여성 또는 남성이 성립하려면 유전자가 정상일 뿐만 아니라 두뇌 또한 남성 또는 여성으로 정상적으로 분화되어야 한다. 예를 들면 남성호르몬인 ‘안드로젠‘ 의 분비랑에 따라 남성이지만 여성의 뇌를 가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남녀관계 또한 선천적으로 구비된 요소에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이것을 단서로 해서 인간 영혼 전체가 선천적 요소에 의해 전적으로 결정되는 것이라고 결론짓는 것은 너무 성급한 일이다. 성의 문화적이나 지성적조건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인간은 성호르몬에 따라 꼭두각시처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의 정신적 절제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에 대한 남성의 성적 욕구, 남성에 대한 여성의 성적 욕구조차도 생물학적 요인에만 전적으로 의존하여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애정소설이나 영화 같은 지적요소에 의해 자극을 받아 일어날 수도 있다. 남녀의 심적 기질은 상당할 정도로 문화적 영향에 따라 가변적일 수 있다. 문화에 따라 여성과 남성의 기질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두뇌와 생식기, 지성과 성은 필수적으로 상호 연결되고 영향을 서로 주고받는다. 따라서 생식기가 전적으로 두뇌의 능력과 활동을 지배한다거나 성이 지성을 전적으로 결정한다는 식의 일방적 결정론은 타당하지 못하다.Ⅱ < 추가 조사와 견해>>‘성차별’에 대하여 이야기 하기 전, 성차별에 대한 정확한 정의를 보면, ‘성 차별은 성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이성에 대해 차별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다. 성차별은 다음처럼 조금씩 다른 믿음과 태도를 보일 수 있다고 한다. 첫 번째, 한쪽 성이 다른 성보다 우월하고, 가치가 있다는 믿음. 두 번째, 성에 따라 개개인의 성격이 다를 것이라는 믿음. 세 번째, 남성(여성)에 대한 혐오 또는 불신. 네 번째게 찾아볼 수 있는 성차별에 관련한 사례들을 조사 해 보았다. 첫 번째로 일상 생활에서의 성 차별이다. 일상 생활에서의 성 차별은 힘든 일은 남자가 해야 한다는 편견, 남자가 흡연하는 것은 아무도 상관하지 않지만, 여자가 흡연하는 것은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것 등이 있다. 두 번째로는 대중 매체에서의 성 차별이 있는데, 하드 뉴스는 주로 전문적이고 중후한 남성 앵커가 진행하며, 소프트 뉴스는 젊고 아름다운 여성이 보조적인 역할로 진행 하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세 번째로는 개인적으로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하며 얼른 고쳐져야 할 경제 활동에서의 성 차별이다. 여성은 주로 남성 보조 직이나 부차적인 단순 직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으며 동일 학력, 같은 나이, 동일 노동가치여도 여성은 남성에 비해 취업률이 낮은 것은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다. 이 외에도 여의사, 여경, 여성 대통령, 남자 간호사, 남자 미용사 등의 언어적 성 차별, 여자 대학은 존재하나 남자대학은 존재 하지 않는 교육에서의 성차별, 종교적, 정치적인 성차별 등 우리 주위에서는 성차별이 매우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그렇다면 이러한 성차별은 왜 일어나는 것인가? 알기 쉬운 철학의 세계의 내용에서 기인하면 여자가 약하고 열등하다는 편견은 경험이나 사실적 근거에 기인한다기 보다는 여러 가지 종교적,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환경 속에서 조장된 것이라고 한다. 만인의 평등을 내세우는 듯 하지만 그저 빈부 차이의 평등이지 남녀의 진정한 평등을 말하지 않는 기독교나, 음양원리에 기초하여 우주론에 기반을 두고 남성의 우월성 및 지배권 그리고 여성의 열등성 및 예속성을 불멸에 자연 법칙으로 고정시킨 유교 등은 성차별의 완전히 제거 불가능한 악성적 뿌리이다. 또한 과거의 모권제 사회는 공산제이며 만민 평등의 사회였으나, 부권의 발흥은 사유 재산의 지배와 더불어 여성의 예속과 억압을 초래했다. 경제 상태가 아주 낮은 차원 이였을 때는 남녀간의 삶의 차이가 없었으나, 분업과 도구의 발달에 따라 경제가 발전되고 도구와 기계어떤 지위나 직업으로도 인정되지 않는다고 한다.이것은 당장에 뿌리뽑아 고쳐져야 할 일일 것이다. 인간이 정말로 평등하다면 빈부 차이는 물론 남녀 사이에서도 평등해야 할 것이다. 여성의 어느 면이 남성보다 열등하기에 평등한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것인가. 육체? 마음? 알기 쉬운 철학의 세계의 내용에 따르면 남성의 근육은 여성의 근육보다 강하다는 이론이 있다고 한다. 반면 여성의 근육은 남성보다 더 유연하다고 하는데, 이러한 사실만으로 남성이 여성보다 우월하다고 말 할 수는 없다. 인간의 육체는 얼마든지 훈련되어 길들여 질 수 있기 때문에 여성도 훈련을 통해 강한 근육을 가질 수 있고 남성도 훈련을 통해 유연한 근육을 가질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경우에는 누가 더 우월하다 말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편견들은 여성은 물론 남성에게 또한 해당되는 것이다. 여성에겐 여성적 역할, 남성에겐 남성적 역할을 부여하고 강요하여 여성은 여성대로 남성은 남성대로의 부담감과 압박감을 가지고 살게 될 것이다. 여성이라고 해서 자신의 꿈을 펼치지 못한다거나, 남성이라고 해서 가장으로서의 임무를 평생 짊어져야 한다는 것은 부당하며 사라져야 할 것이다.사실 이 주제를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나는 건축학과에 다니는 학생으로써 성차별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부터 건축학과에 들어오고 싶었던 나는 꿈이 건축가라는 말을 할 때면 늘 “여자가 건축하기 힘든데..”, “네가 건축학과? 힘들겠네” 등의 말을 들었다. 이것이야 말로 앞서 얘기한 우리가 흔히 겪을 수 있는 성차별일 것이다.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건축을 좋아해서 과에 들어오기 위해 공부했고, 입학했으며, 현재 동등한 위치에서 같은 수업을 받으며 같은 과제를 하며 살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왜 이렇게 같은 기회를 가지고 같은 교육을 받은 내가, 여성이 건축을 하는 데 있어서 불리하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의 머리 속에는 건축=남성의 직업 이라고 생각 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생 부딪치는 일이 많을 것이다. 아마도 내 생각에는 사람들이 이러한 건축의 특성을 가지고 여성이 건축을 하기 어렵다고 말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은 타당한 이유가 되질 못한다. 여성이라고 해서 남성보다 밤을 새기 어려운가? 여성이라고 해서 남성보다 현장에 나가 사람들과 부딪치는 일을 어려워하는가? 이것은 기본적으로 여성이 남성보다 약하다는 생각에서 비롯 된 생각일 것이다. 여성이 남성보다 약하기 때문에 밤을 새며 일을 하는데 남성보다 어려움이 있을 것이고, 현장에 나가 사람들을 대하는데 있어서 뒤떨어 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의 생각은 다르다. 남성이라고 해서 무조건 강하고 밤을 새고, 사람들을 능수능란하게 대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또 여성이라고 해서 무조건 그러지 못한다는 것은 경솔한 편견일 것이다. 실제로 우리 과의 경우를 들자면, 우리 과는 어려움 때문에 전과를 하는 학생들이 다른 과보다 유난히 많은 편이다. 앞서 사람들의 생각대로라면 여성의 전과율이 남성보다 높아야 하겠지만, 여태까지 전과한 친구들을 보면 여성보다 남성이 훨씬 많았다. 그렇다면 이것은 어떻게 설명 되어야 하는가? 이렇게 우리 주위만 봐도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 그저 편견일 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다르게 생각해 보면 여성의 어떤 부분이 약하기에 밤을 새는 데 무리가 있는 것인가? 여성의 신체가 남성의 신체보다 구조상 힘을 쓰는 데 있어서 떨어지는 지 모른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남성이 건축 일을 하는데 무조건 여성보다 월등한 위치에 놓여있다는 것은 아닐 것이다. 힘을 잘 쓰는 것 만이 일을 하는 데 있어서 필요한 조건이 아니기 때문이다.나는 여태껏 다른 남자 학우들과 똑 같은 교육을 받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똑 같은 과제를 하며 똑같이 밤을 새 왔고 앞으로도 과제를 하며 수많은 밤들을 새게 될 것이다. 동등한 위치에서 경쟁을 해야 함이 옳지만, 역시나 아직까지 사회에서는 여성 건축가 보다는 남성 건축가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은 부정 할 수가것이다.
    인문/어학| 2011.12.28| 4페이지| 1,000원| 조회(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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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우헌 감상문
    이 동영상을 보기 전까진 내게 있어서 한옥이라 함은 그저 ‘지붕이 기와인 집’ 일 뿐이었다. 한옥의 ‘조화미’, ‘곡선미’는 늘 귀를 통해 들었지 눈을 통해 본적도 마음으로 느껴진 적도 없었다. 워낙에 한국 건축에 대해 무지했고 그 무지를 깨우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목우헌 영상은 나에게 한옥의 ‘조화미’를 귀가 아닌 눈으로, 마음으로 보고 느끼게 하는데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어떻게 보면 너무나 당연하고 식상하게 느껴 질 수도 있지만, 나는 한옥(한국건축)의 특성을 이루는 요소들 중 ‘조화로움’를 일순위로 얘기하고자 한다. 자연과의 조화를 위해 건물의 배치를 풍수지리에 근거를 두고 좌향을 보는 것부터 못질을 최소한으로 하고 재료와 재료들 사이의 조화를 이용해 집을 짓는 방법까지 한옥에서 ‘조화’를 제외하고선 그 어떤 얘기도 성립할 수 없을 것 같다. 이러한 재료와 재료사이의 조화를 가장 크게 느낀 부분은 기둥을 세울 때 사용하는 기법인 ‘그랭이질’이였다. 이 그랭이 기법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건축 기법이라고 한다. 주춧돌로 쓰일만한 돌을 생긴 그대로 놓고 기둥으로 쓸 나무의 밑동을 주춧돌의 굴곡에 맞춰 깍은 후 돌 위에 기둥을 세우는 이 공법은 재료와 재료사이의 조화를 가장 잘 나타낸 것 같다. 주춧돌을 판판하게 다듬고, 기둥의 밑 부분을 판판하게 잘라내어 그저 주춧돌 위에 기둥을 세워도 되지만 한옥은 그렇지 않다. 인위적으로 잘라내 사용하지 않고 재료와 재료가 조화롭게 맞물릴 수 있도록 하여 보기에도 편하고 견고해서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도록 한다. 기둥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재료들이 조화롭게 맞물리고 끼워져서 실제로도 못은 거의 사용하지 않고서 한옥이 만들어진다. 이런 것들을 한옥의 ‘조화’라고 하는 것이 맞는지는 사실상 나는 잘 모른다. 하지만 어긋남 없이 보기 좋은 것을 우리는 ‘조화롭다’라고 얘기한다. 인위적으로 깎아낸 재료들을 못을 박아 세워 올리는 것을 ‘조화롭다’라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재료와 재료들 못 하나 박아 넣는 일 없이 서로의 맞물림으로만 지어낸 한옥은 재료와 재료사이의 조화로 세워진 건축물일 것이다. 이렇게 한옥에는 자연과의 외적인 조화로움도 있지만 그 안에는 내적인 조화로움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내적인 조화로움은 눈에 띄게 보이진 않지만 외적인 조화로움 만큼 아름답다. 여담이지만 지난학기 설계 과제로 공포 만들기를 하면서 그 작은 것 하나 제대로 맞추기 어려워 결국 접착제를 사용하며 만들었던 내 모습을 떠올리면서 새삼스레 한옥과 그 한옥을 만드는 장인의 대단함에 대해 감탄하였다.또 하나의 한옥의 특성을 이루는 요소는 ‘자연스러움’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집을 지을 때 가장 기초가 되는 주춧돌에서부터 확인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고 건축물들은 땅에 기둥을 박지 않는다. 자연을 변형시키지 않고 ‘자연 그대로의’모습으로 놔둔다. 대신 그 위에 주춧돌을 놓고 기둥을 세우는데 주춧돌을 선택할 때 깎아서 똑같은 크기, 똑같은 모양이 된 것들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석을 그대로를 사용해 높낮이가 들쑥날쑥 하다. 이것은 ‘덤벙주초’라는 말에서 알 수 있다. 기둥 재목 또한 굳이 반듯한 나무를 쓰지 않는다. 그래서 본래 모양대로 휘어진 기둥을 발견 할 수 있다. 물론 일직선으로 딱딱 맞아 떨어지는 우리의 눈에는 이런 ‘자연스러움’이 어색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선조들은 자연 재료 그대로를 우리 한옥에 담으려 하였고 그것이 한옥의 ‘자연스러움’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그것은 한옥의 빠질 수 없는 특징이 된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이 ‘자연스러움’이란 ‘억지로 꾸미지 아니하여 어색함이 없다‘라는 뜻뿐만 아니라 말 그대로 ’자연‘스럽다 라는 뜻이 된다고 생각한다.
    독후감/창작| 2011.12.28| 2페이지| 1,000원| 조회(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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