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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교육 열풍
    사교육 열풍-원인과 결과-사교육은 양이나 질적으로 더욱 강화되고 있고, 그 대상은 고등, 중, 초등학생부터 유치원, 미취학 아동에게까지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양상은 국내 열풍뿐만 아니라 국외 연수나 유학 형태로 이어지고 있다. 전 세계에서 보기 어려운 한국적 현상, 괴물적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어떠한 이유로 사교육이 이렇게 성행하고 있는 것일까? 이번 발표에서는 사교육 열풍의 실태와 원인, 그리고 사교육의 문제점과 해결방안에 관하여 다뤄보겠다.우선, 사교육의 실태에 대하여 살펴보자. 지난해 우리나라 교육비의 총 지출액은 40조 원에 달했었는데, 그중 사교육비 지출이 전체 교육비의 절반에 가까운 19조 원을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소비자 보호원 조사 자료에 의하면 사교육을 받는 학생의 비율이 초등학생 85%, 중학생 80%, 재수생을 포함하여 고등학생이 75%로 대부분의 학생들이 사교육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같은 사실들이 우리나라의 사교육 열풍을 잘 보여준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 이와 같은 사교육 열풍이 부는 원인은 무엇일까? 사교육 열풍의 원인을 다섯 가지정도로 살펴보자.첫 번째 원인은 부실한 학교 교육이다. 학부모의 교육열이 높고 대학입학을 위한 경쟁이 큰 것에 비해서 학교 교육은 교육의 수요자인 학부모와 학생의 요구를 충족시키기에 충분한 여건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 학교는 지금도 학생들의 개별학습욕구를 채워줄 수 없는 과밀 학급상황에서 획일적인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부 교사들은 공교육의 부실성을 인정하며 학생들에게 사교육을 권하기도 한다.두 번째 원인은 대학의 서열화와 이에 따른 학벌사회의 고착화 현상이다. 서열화 된 대학으로 인해 우리는 우리의 능력을 출신대학으로 평가받는 학벌사회에 살고 있다. 즉, 사교육을 하면 ‘뭔가 된다’는 기대감과 투자해서 저 대학만 가면, 이 단계만 넘어서면 된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단선화 된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회에서 학생들은 명문 대학에 가기 위한 좋은 점수를 획득하기 위해 서로 무한 경쟁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사교육이 공교육을 보충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성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었고, 대부분의 학생들은 사교육에 참여할 수밖에 없게 되면서 사교육 열풍이 크게 불고 있는 것이다.세 번째 원인으로는 신분상승의 기대감과 불안이데올로기의 결합을 들 수 있다. 교육에 대한 환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 바로 사교육 열풍이다. 우리나라의 대중들이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데 공동으로 참여하고 기여하는 길을 찾기 보다는 자신들의 삶의 길을 찾아 구조화한다. 이 안에서 탄력을 받은 것이 사교육이다. 쉽게 말하면, 서민들은 민중의 삶을 살면서 자신들의 삶을 실패한 것으로 본다. 그래서 그들은 ‘내 자식만은 이렇게 살면 안돼.’라는 생각을 가지고 내 자식만의 계층 상승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남들도 다하는데 내 자식도 해야 한다는 불안감이 이데올로기화 되면서 사교육 열풍이 불고 있다.마지막 네 번째 원인은 신자유주의 교육개혁의 도입이다. 사교육 열풍은 국가 정책 속에서 만들어졌다. 95년 5.31교육 개혁안이 제출되고, 그 흐름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데, 이 흐름 속에서 교사는 서비스 공급자, 학생들은 서비스의 수요자로 해석된다. 이와 더불어 서열체제가 더욱 공고화되고, 입시교육에 몰입하는 사회전반의 분위기가 확산되었으며, 더 어릴 때 투자해야 한다는 흐름이 형성되면서 한참을 또래 아이들과 어울려 사회성을 쌓아야 할 시기에 초등학생이 학원을 적게는 2~3군데 많게는 6~7군데나 다니는 심각한 사교육 열풍이 불게 된 것이다.이렇듯 사교육 열풍이 심각하게 부는 상황에서 사교육의 문제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사교육의 문제는 무엇인가? 첫 번째 문제는 바로 사교육이 지역 간 대학 진학률의 차이를 발생시킨다는 것이다. 그것은 한 예로 강북과 강남지역의 대학 진학률 차이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서울 학생들의 평균 대학 진학률은 53.3%이다. 강남 학생들의 대학 진학률은 74%로 평균을 훨씬 웃도는 수준이다. 그러나 강북 학생들의 대학 진학률은 40%로 평균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왜 그럴까? 강남의 학생들이 강북의 학생들보다 학교 수업을 잘 듣고, 열심히 공부해서? 그렇지 않다. 그 이유는 바로 사교육이 자본의 논리에 의해서 운영되고, 사교육을 이용하는 수요자가 늘어남으로써 질과 양의 차이가 발생하는 데에 있다. 강북 학생들의 연간 사교육비 지출액은 657만 원이고, 강남 학생들의 연간 사교육비 지출액은 3,304만 원이다. 경제적 능력에 따라 접근 할 수 있는 사교육의 질적, 양적인 차이가 급격하게 나는 상황이 지역 간 대학 진학률의 차이를 발생시킨다. 위와 비슷한 사례로 지역 간 서울대 정시 입학률 차이를 보면 사교육에 대한 접근정도가 진학률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09년 서울대 정시 입학생 중 서울 출신학생이 36.7%, 기타 시 지역 학생이 34.3%, 광역시 지역 학생이 24.9%, 군 이하 지역 학생이 4.1%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현상은 지역 간, 계층 간 위화감 조성의 원인이 될 수 있다.두 번째 문제는 학교 교육의 소홀, 경시 풍토의 만연을 들 수 있다. 학생들이 학습의 필요와 욕구를 학교 밖의 사교육에서 충족시키는 정도가 심하면 심할수록, 즉 사교육 참여와 사교육비 지출을 많이 할수록 학교 교육에 대한 불신의 폭은 증대되는 것이고, 자연히 학교 교육을 소홀히 하는 풍토가 조성된다. 그리고 학교에 대한 학생들의 이런 불신으로 학교는 학생들에게 제대로 된 인성 교육을 하지 못 한다. 이뿐만 아니라 학생들이 학교를 벗어나 계속 사교육을 선호한다면 교원의 사기가 저하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학교 교육의 질은 지금보다 떨어지게 될 것이며 교육의 빈곤이 악순환 될 것이다.세 번째 문제는 부동산 가격의 격차와 인구의 밀집현상이다. 부동산 가격 격차의 주된 원인이 사교육은 아니다. 하지만 사교육이 하나의 원인으로 작용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한 예로 서울시 노원구 중계동의 아파트 가격을 비교해 보자. 중계동 은행사거리는 주변에 이름 있는 종합입시학원, 명문학원 뿐 아니라 외국어 영재특별 교육센터, 유학을 다녀온 귀국학생 전문센터까지 들어서 있다. 이 지역은 주변 학원가 등 교육시설이 잘 갖춰져 있어 늘 전입희망수요가 많다. 인근 도봉구, 성북구, 강북구는 물론 의정부, 남양주, 구리지역에서 전학 오는 학생이 늘고 있다. 이러한 학원프리미엄을 등에 업은 이곳의 32평 아파트 가격은 3억 3,300만 원~ 3억 7,000만 원 내외이다. 그러나 같은 노원구에 있는 상계동의 32평 아파트는 1억 8,000만 원~2억 2,000만 원 내외이다. 이 두 아파트는 입주 시기도 비슷하고 대지 지분도 거의 같아 90년대 중반까지 분양가의 큰 차이가 없었는데 은행사거리에 유명학원들이 들어서면서 현재 두 아파트의 매매가는 웬만한 아파트 전세가격인 1억 원 이상의 차이가 난다. 이는 사교육 열풍으로 인해 교육여건에 따른 지역 유명학원가의 밀집이 부동산 가격 형성에 영향을 미치고, 인구의 밀집현상을 유발한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이러한 사교육의 문제들에 대한 해결방안에는 무엇이 있을까? 해결방안으로는 학벌에 의한 독점 권력의 폐지, 대학의 서열철폐, 교육에 대한 관점의 변화 등이 있다.첫째,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우리나라는 대학의 서열화로 인해 학벌중시 풍토가 만연한 사 회이다. 좋은 대학만 가면 성공할 확률이 높은 사회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아이들은 18년이라는 시간을 명문 대학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치열한 경쟁을 하고, 사교육시장을 전전하는 대기 인생을 산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학벌에 의한 독점 권력의 폐지가 필요하다. 학벌문제가 현실적으로 해결되기 위해서는 새로운 법령이 제정되어야 한다. 이 법은 학벌이 자유경쟁을 저해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정성 확보를 위해 학벌에 의한 권력의 독점이 금지되어야 한다는 내용을 담아야 한다. 우리의 학벌이 일종의 현대판 신분제도임을 감안한다면, 이와 같은 법안의 제정은 필수불가결하다. 우리가 말하는 '할당'과 '제한'이란 원칙적으로 '공정한 경쟁'을 추구하기 위한 것이다. 법령은 적극적인 면과 소극적인 면에서 두 방향으로 제정되어야 한다. 적극적으로는 지역인재를 할당하여 등용하는 것이며, 소극적으로는 공직자 채용과 임명 시 각 대학의 비율을 제한하는 것이다. 특정 대학출신들이 사회의 지배계층의 위치를 대부분 점령하고 있는 것은 대학이 출세의 지름길이라는 인식을 주고, 그로 인해 학생들은 무한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교육시장을 전전하게 되므로 학벌에 의한 독점 권력의 폐지가 필요하다.
    사회과학| 2014.04.03| 4페이지| 1,000원| 조회(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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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구려사 정리 평가A+최고예요
    유물로 보는 고구려 이야기(고구려사 정리)강 의 명: xxxx강의교수님: xxxx학 과: xxxx학 번: xxxx이 름: xxxx제 출 일: xxxx목차Ⅰ. 서론(1) 레포트 목적(2) 레포트 의의∥. 본론(1) 고구려의 건국(2) 고구려 건국 설화(3) 고구려의 성장과 발전(4) 고구려의 전성기(5) 고구려의 쇠퇴기Ⅲ. 결론(1) 맺음말Ⅳ. 참고 문헌Ⅰ. 서론(1) 레포트 목적본 레포트는 고구려의 건국설화에서부터 성장과 발전과정 및 전성기, 그리고 멸망의 과정을 단순한 연표정리가 아닌 고구려를 주요 시기별로 나누어 각 시기의 전반적 모습을 조사하고, 정리해봄으로써 고구려사를 이해하는데 그 목표가 있다.(2) 레포트 의의고구려사는 고조선의 멸망에서 신라의 통일에 이르는 시기까지 한반도 북부와 중국 동북지방에서 700여 년을 존속해온 자랑스럽고 위대한 우리의 역사이다. 본 레포트는 이런 고구려사를 중국이 계속해서 왜곡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단순한 왕조정리의 목적이 아닌 보다 쉽고 포괄적이며 종합적으로 우리의 고구려사를 깊이 생각해 보고 이해하기위한 기본 자료로써 의의가 있다.Ⅱ. 본론(1) 고구려의 건국고구려는 송화강 유역에 자리 잡고 있던 부여로부터 남쪽으로 내려온 주몽이 압록강 물줄기인 동가강 유역 졸본에다 기원전 37년에 세운 나라이다. 주몽이 나라를 세운 곳 동가강 유역은 산골짜기로 토지가 척박한 곳이다. 그래서 경제적으로 빈곤하였던 주몽은 일찍부터 철기문화를 받아들여 주변의 다른 나라들을 정복하여 빠른 속도로 정치적 통합을 이루어갔다. 고구려의 건국과정은 건국설화를 통해 자세히 알아볼 수 있다.(2) 고구려 건국 설화고구려의 건국신화를 아는 것은 단군신화를 아는 것만큼이나 중요하고, 우리 역사의 모태를 아는 것과 같다. 고구려의 건국 설화는 천제인 해모수와 물의 신 하백의 큰 딸 유화의 만남에서부터 출발할 수 있다. 천제인 해모수는 물의 신 하백의 세 딸의 아름다움에 반하였다. 그 중 큰 딸 유화와 잠자리를 가졌기에 하백이 해모수를 사위로 인정하려 하였낳았다. 금와왕은 이를 상서롭지 못한 징조라 여겨 알을 버리도록 했다. 그러나 온갖 짐승들은 알을 먹거나 밟기는커녕 알을 피해 다니고 감싸주었다. 결국 금와왕은 알을 도로 유화에게 돌려주었고 유화가 정성껏 알을 품자 마침내 알에서 사내아이가 태어났다. 그 아이는 키가 크고 훤칠하게 잘 생겼다. 그리고 활쏘기에 능숙하여 화살만 쏘면 백발백중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아이를 주몽(활을 잘 쏘는 사람)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금와왕의 일곱 왕자는 이런 주몽의 능력을 시기하여 늘 괴롭히고 죽일 궁리만 하였다. 이런 상황을 한탄하며 주몽은 남쪽으로 내려가 나라를 세울 마음을 먹고 그를 따르던 무리들과 함께 도주를 하게 된다. 이를 알아차린 일곱 왕자들과 금와왕의 신하들은 주몽의 무리를 추격한다. 주몽의 무리는 검푸른 강물이 앞을 가로 막고 있는 곳에 도착하였다. 아무리 생각을 해보아도 강을 건널 도리가 없었다. 이때 주몽이 하늘을 항해 자신은 물의 신의 외손자이니 도와달라며 소리를 쳤다. 그러자 수많은 고기떼와 자라들이 떠올라 다리를 만들어 주었다. 주몽의 무리는 남쪽으로 달려 압록강 지류인 동가강에 다달았다. 기원전 37년 주몽은 그곳을 수도로 정하고 나라의 이름을 고구려라고 했다.(3) 고구려의 성장과 발전주몽이 죽은 뒤 그의 아들 유리왕이 기원전 19년에 왕위에 오르고 이후 고구려는 뛰어난 군사력으로 다른 나라를 정복 하여 큰 영토를 차지한다. 1세기 초에 ‘왕’의 칭호를 사용하고 제가회의라는 군장회의를 통해 범죄를 다스렸다. 또한 딸을 결혼시킨 뒤 시댁에 보내지 않고 사위를 데리고 사는 데릴사위 풍속이 있었으며, 10월에는 추수감사제와 같은 동맹이라는 제천행사가 있었다. 유리왕이 왕위에 오른 후 금와왕의 뒤를 이은 대소왕이 이끄는 부여가 한나라 세력에 의지해 고구려를 위협하고 있었고, 만주 흥안령 동쪽에 근거한 선비족이 고구려를 위협하여 많은 시련이 있었다. 그러나 이후 대무신왕(18~44년)이 동부여를 대소의 목을 베고 동부여의 대부분의 땅을 빼앗았고, 구다국한 왕위 계승을 시작하여 왕권을 강화하고, 관료조직을 갖추는 등 고대국가로써 확고한 기반을 다진다. 고국천왕(179~197년) 시기에는 왕권이 더욱 강화 된다. 연노부, 순노부, 관노부, 절노부, 계루부의 5부족의 부족장을 중앙귀족으로 편입시키고, 형에서 아우의 왕위 계승을 부자상속으로 변화시킨다. 또한 을파소와 함께 진대법이라는 최초의 농민구호제도를 실시하여 땅 없는 농민을 보호하고 귀족의 노예가 되는 것을 방지 하였다. 이렇게 정치의 기강을 바로잡아 관료의 횡포를 줄이고, 백성들이 세금과 부역의 부담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힘썼다. 동천왕(227~248년)때에는 중국에서 위. 촉한. 오 삼국이 세력 다툼을 하고 있었는데 이 틈을 타 요동지방으로 세력을 확장하여 공손씨 세력과 대립을 지속했으나, 238년 위를 도와 공손씨 세력을 멸망시킨다. 이후 위나라와 국경을 접하게 되면서 고구려가 위나라의 서안평을 먼저 공격한다. 244년 위나라는 관구검이 이끄는 군사 1만을 데리고 지금의 동가강 상류 비류수까지 공격해오나 전쟁에서 패하고 만다. 고구려의 군사 활동은 4세기에 더욱 활발한 모습을 보인다. 미천왕(300~331년)은 북쪽의 현도군을 공격하여 적군 8천여명을, 낙랑을 공격 2천여명을 포로로 삼는다. 결국 대동강 유역을 차지하고 한나라가 고조선의 옛 땅에 세운 한 4군을 정복하여 한나라 세력을 몰아낸다. 이렇듯 활발한 군사활동을 펼치던 고구려에게도 위기가 찾아온다. 고국원왕(331~371년) 12년에 중국 선비족 묘용황은 많은 군사를 이끌고 고구려를 기습하여 환도성을 함락시킨다. 이에 선왕들이 지속해오던 북진을 포기하고 남진 정책을 펼치려 했으나 371년에 백제의 근초고왕이 군사 3만을 이끌고 평양성까지 쳐들어와 결국 고국원왕은 죽음을 맞는다. 그러나 이러한 위기 속에서 소수림왕(371~384년)은 고구려 사회의 동요를 잠재우기 위해 국가체제의 정비를 도모한다. 372년에는 불교 법령을 발표했으며, 유교 교육 기관인 태학을 설립하여 공자의 말씀을 배우도록 하 태어나면서부터 웅대한 기상을 지니고 의젓한 용모와 총명한 지혜를 겸비해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그런 그는 그동안 고구려가 남쪽으로는 백제와 신라 북쪽으로는 거란과 후연이 있어 적들로부터 수도를 방어하기에 급급했던 것을 생각하며 적들을 물리치고 영토를 없앨 계획을 가졌다. 392년 고국원왕 때부터 본격화 되어 소수림왕 고국원왕까지 3대에 걸쳐 20여 년 동안 충돌을 빚어온 백제를 치기위해 군사를 일으켜 396년에 수군과 육군 5만을 동원해 백제를 공격하여 50여개의 성을 빼앗고 북쪽으로는 거란족을 무찌른다. 또한 백제, 가야, 왜 연합군이 신라를 공격하여 신라가 구원을 요청하였을 때 신라를 도와 연합군을 정벌한다. 연합군으로부터의 보호를 명분으로 신라의 영토에 군사를 주둔시키고 이때부터 신라의 정치에 내정간섭을 시작한다. 이 무렵 후연이 고구려 군사가 연합군과 싸우기 위해 남쪽으로 내려가 북쪽 국경의 경계가 약해진 틈을 타 고구려의 남소성과 신성을 공격하여 고구려는 700여리의 땅을 빼앗기나 고구려 군사가 요하를 건너 후연의 땅 깊숙이 들어가 요하의 동쪽을 완전히 차지한다. 이시기 고구려의 영토는 남쪽의 한강에서 북쪽의 송화강까지 서쪽의 요하에서 동쪽의 연해주까지 이르렀다. 이러한 광개토대왕의 정복사업은 당시 고구려의 수도였던 국내성에 남아있는 거대한 광개토대왕릉비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또 광개토대왕은 평양성에 영명사를 비롯한 9개의 절을 세워 불교가 빠르게 전파되는데 공을 세우고 나라의 번영을 기원하였으며, 조정의 관리제도를 개선하여 나라 안의 안정을 도모하였다. 광개토대왕이 죽고 그의 맏아들인 장수왕(413~491)이 왕에 즉위한다. 장수왕은 427년에 수도를 국내성에서 평양으로 옮겨 백제와 신라 방면으로 진출을 적극 추진하여 454년 신라의 북쪽 국경지대를 공격하여 땅을 빼앗고 475년 백제에 쳐들어가 한성을 함락한다. 이에 백제는 수도를 웅진으로 옮기게 된다. 고구려의 계속되는 남진정책에 불안을 느낀 신라가 백제와 군사동맹을 맺자 장수왕은 4세력의 내분 및 사치 등으로 인해 왕권과 국력이 급격히 약해졌다. 양원왕(545~559년) 시기에는 유목민족인 돌궐이 새로 일어나 고구려의 북쪽 국경지대인 신성과 백암성을 공격하였다. 이 싸움에서 고구려는 크게 이겼으나 백제와 신라에 마음을 쓸 겨를이 없었다. 5세기말 삼국의 주도권은 고구려에게 넘어갔으나 이후 신라는 금관가야를 병합하고 나머지 가야세력에 압력을 가해 영토 확장을 하고 있었으며 백제도 잃어버린 한강유역을 되찾고자 힘을 키우고 있었다. 백제는 신라와 연합하고 고구려를 치기위해 군사를 일으켰다. 고구려는 연합군의 공격에 동쪽으로는 죽령이북의 고구려 땅을 빼앗기고, 서쪽으로는 한강 이남의 땅을 빼앗겼다. 평원왕(559~590)시기에는 고구려 사회에 많은 변동이 일어났다. 철로 만든 농기구와 소로 논, 밭을 가는 방법이 널리 보급되면서 생산력이 높아졌으며, 상업과 수공업이 발전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풍요로움이 나라의 기강을 흔들어 놓았다. 지배세력들은 사치를 일삼았으며, 사유재산의 개념이 강해져 서로의 이익을 챙기기에만 몰두하는 일이 비일비재 하여 민심이 흉흉하였다. 영류왕(618~642년)시기에 중국은 수나라에 이어 당나라가 들어섰다. 고구려는 수나라와의 전쟁에서 입은 피해를 복구하고 당나라와의 우호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당 태종은 고구려에게 계속해서 트집을 잡아왔고 이상한 느낌이 든 영류왕은 당나라의 침입을 막기 위해 요동 땅에 긴 성벽(천리장성)을 쌓기로 하고 그 책임을 연개소문에게 맡겼다. 그러나 왕과 대신들은 연개소문을 처리할 궁리를 하고 있었고 이를 눈치 챈 연개소문은 대신들과 영류왕의 목을 베고 보장을 왕위에 올리고 대막리지가 되었다. 이 무렵 신라는 고구려에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김춘추를 사신으로 보냈지만 고구려는 도리어 백제와 손을 잡고 신라의 당항성을 빼앗았다. 이에 신라는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어 고구려를 칠 계획을 하였다. 당 태종은 육군 6만은 요동으로, 수군 4만 3천의 군사는 평양으로 보내서 공격을 했고 이에 고였다.
    사회과학| 2014.04.03| 8페이지| 1,000원| 조회(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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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인 빈곤문제 및 인터뷰
    빈곤 노인 체험 및 이슈보고서한국의 보편적 노인문제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문제는 경제적 빈곤문제라는 생각에서는 잠재적으로 평균수명의 연장과 급속하게 늘어나는 노인인구의 증가로 어느 개인이나 가족의 결함이나 문제로 비롯된 것이라기보다는 급속한 고령화 사회 도래에서 겪어야하는 사회문제로의 제기에는 이의가 없을 것이다.따라서 점점 확대되어야할 노인복지 정책의 중요성으로 기초생활보장, 건강관리 강화, 재가복지서비스 확충, 노인의 여가선용 및 사회참여 기회 확충과 현재 보험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공적연금제도의 전환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할 것이다.1. 서 론21세기 출산율, 사망률 감소로 노인인구 비율이 급속하게 증가하고 있는 한국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여러 노인문제 가운데 경제적 빈곤은 가장 심각한 문제라 할 수 있다. 노인 빈곤 문제의 원인을 대략 세 가지 요인으로 들어본다면, 사회적 요인으로 직업 또는 사회참여 기회의 상실로 인한 소득감소 및 단절을 들 수 있으며, 가족 또는 개인적 요인으로 노후준비의 부족과 노부모 부양기능 약화, 자녀에 대한 양육과 사회발전에 기여, 노후생활의 장기화를 들 수 있고, 사회에서의 적응력 부족 요인으로 사회보장제도의 미비, 미성숙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노인빈곤의 원인이 생물학적 및 사회적인 요인에 의해 일어나기 때문에 사회적 차원에서 노인에 대한 소득보장 대책의 필요성이 절실하다 할 것이다. 이를 위해 경제적으로 어려운 노인을 찾아 직접 인터뷰하고자하며 이를 통해 우리나라에서 활용 가능한 프로그램과 서비스를 조사하여 이에 맞는 계획을 세우고자 한다.2. 본 론(1) 인터뷰선정 사유 및 인적 기본사항○ 일 시 : 2009.11.25(수) 14:30~15:00(30분)○ 장 소 : 00종합복지관○ 인적사항 : 74세(여), 10여년전 황혼이혼 경험. 슬하에 1남 2녀를 둠.○ 주거형태 : 현재 19평형 임대아파트에 거주하며, 동거형태는 딸 동거가족임.(2) 인터뷰 주요 내용1. 인적사항 관련 주요 질문1) 할머인적사항 관련 주요 답변최ㅇㅇ 할머니는 74세로 슬하에 아들과 딸을 각 한명씩 두고 있으며 15년 전 경제적 여력이 없는 상황 속에서 59세에 이혼 후 거주할 곳이 없어 큰 딸(모자가정)과 함께 거주하고 있다고 함.2. 경제관련 주요 질문1) 자녀들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상황인가요?2) 그렇지 않다면 할머니는 경제적으로 어떻게 생활을 이어가시나요?3) 정부보조금을 받는다면 그것으로 기본적인 생활이 안정적으로 이루어 지고 있나요?4) 아니라면 정책적으로 어떠한 지원이 더 이루어 졌으면 하고 바라시는게 있나요?2-1. 경제관련 주요 답변최 할머니를 모시고 있는 큰딸은 할머니와 마찬가지로 이혼 후 19평의 작은 임대 아파트에 중학생인 딸 한명, 고등학생인 딸 한명과 함께 거주중이라고 하며 식당에서 일을 하며 생계를 꾸려나가고 있다고 함. 아들은 지방에서 조그만 가게를 하고 있으나 그마저도 잘 되지 않아 현재 신용불량자로 등록이 되어 있는 상태라고 함. 최할머니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자신의 경제생활의 목적이 아닌 딸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기초생활수급자로 신청하고자 하였으나 이 또한 현재 무슨 이유인지 어려움이 있다고 함. 현재 최할머니의 주 수입원은 노원종합사회복지관에서 운영하는 발 맛사지 강좌를 수료한 후 한 주에 3일 생활노인, 독거노인, 복지관이용노인, 재가노인 등 노인을 상대로 발 맛사지를 하며 월 20만원을 받고 있고 노인수당으로 8만원 가량 청각장애 4급으로 3만원을 받아 총 월 31만 원 정도의 국가 공공부조에 의존하여 경제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고 함. 그러나 자녀들의 경제적 수입이 적으며 그나마도 고정적이지 않다는 점에서 기본적인 생활을 안정적으로 영위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함. 할머니는 자신이 인간으로서 기본적 삶의 영위보단 자식과 손녀들이 보다 나은 생활을 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으며 정책적으로 엄마 혼자 일정 소득 없이 자녀를 키우면 그 자녀들이 적어도 대학에 들어갈 때 까지는 돈 걱정 없이 일하면서 공부 하지 않고 공부만 할 수 있게이 어떻게 불편하세요?3) 심리적으로는 속으로는 어떤 마음을 지니고 계세요?3-1. 건강관련 주요 답변최 할머니는 청각 장애 4급으로 보청기에 의존하며 주변사람과의 대화가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아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느끼는 등 일상생활에 불편을 겪으면서 자신감의 상실과 모든 신체적 기능의 저하로 신체적 능력과 건강의 쇠퇴에 대한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면서도 최소한의 생활을 영위하고자 신체적으로 힘에 부치는 발 맛사지를 어쩔 수 없이 다녀야한다고 함. 그 소득으로 자식이 부담을 지녀야 하는 자신의 병원비를 보태고 있다고 함. 그럴 때면 자신이 죽어야지 왜 살아서 이렇게 자식들에게 부담을 주고 있나 라는 생각하게 된다고 함. 최 할머니는 젊은 시절을 부유하게 보냈으나 집안의 사업실패로 인해 모든 것을 잃었고 노후에 대한 대비도 없는 상황에서 이혼을 맞이하게 되었고 극복능력의 결핍으로 인해 자식들에게 부담을 주고 있다는 생각에 심리적으로 매우 슬프고 좌절감이 있다고 함.○ 심리건강과 장애 : 박00 할머니는 74세임에도 불구하고 젊었을 때 고등학교까지 졸업한 인테리로 젊은 시절 생활하는데 그다지 어려움이 없었으나, 집안의 사업실패로 인해 모든 것이 무너졌고 이혼까지 감당해야하는 현실을 맞게 됨. 또한 자식은 있으나 부양능력이 없으며 노후대비 예비자금도 없어 장애노인들이 경험하는 이중고의 문제점을 안고 있는 실정임.이외에도 극복능력의 결핍으로 의기소침과 자신감 결여, 낙심, 비관주의 등의 심리적 특성과 소외감 등 심리건강상태의 내면성 증가로 장애를 겪고 있음.○ 사회적 역할의 변화 : 환경적 또는 외생적 요소로 역할상실, 역할의 모호성, 역할의 단절, 재사회화, 역할모델 등으로 노인의 고립 소외감, 청각장애로 인한 생물학적 변화로 모든 사회생활을 꺼려하며 특히 여러 사람이 모이는 장소는 기피하는 사회적 심리적 적응 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갈등상황에 접하게 된다.3. 결 론(1) 빈곤노인의 영향을 미치는 요인 및 원인○ 노인의 사회적 욕구충족과 문제 해, 연금제도, 주택대책, 의료대책, 수용보호 및 거택노인을 위한 서비스 등을 들수 있다. 이중에서도 특히 노인빈곤의 현황으로 노인으로만 이루어진 65세이상 가구주인 가구를 대상으로 빈곤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을 살펴보면,첫째, 국민기초생활보장 제도를 들 수 있다. 우리나라의 국민기초생활수급자의 선정에 있어서 부양의무자 기준 등 엄격한 기준으로, 인터뷰에서 본 실제 어려운 환경에 있는 빈곤노인의 경우에도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현재 기초생활급여의 기준 금액이 매우 낮게 책정되어 있어, 실질적인 최저생계의 보장에 한계가 따른다.둘째, 보건서비스 제도를 들 수 있다. 65세 이상 노인의 경우 다양한 차이는 있지만 대체적으로 인간 성장발달 과정의 필연적 과정으로 다양한 퇴행성 질환이 나타나며 신체적 생리적으로 기능이 감퇴되면서 보건서비스의 필요성이 절실하지만 노인을 위한 의료정책이 미흡한 실정이다. 노인장기요양보험이 실시되고 있지만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하여 많은 노인이 이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서비스 또한 전문성이 부족하고 이용대상 범위가 제한되어 있는 실정이다.또한 노인성 질환은 단기 치료되기 보다는 장기간 치료로 비용이 많이 소요되기 때문에 빈곤노인의 경우 더 극심한 빈곤에 놓이게 될 가능성이 크다. 또한 가정에서 부양에 어려운 노인성질환을 앓고 있는 노인 및 빈곤노인을 보호해줄 요양시설이 적고, 시설 이용비용이 높아 저소득층 노인이용에 어려움이 따른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요양시설 확충과 전문화된 서비스향상이 시급하다 할 것이다.셋째, 노인일자리 창출의 필요성이다. 우리나라 노인은 시대적으로 자녀들의 부양에 온힘을 쏟아 양육하였으며 이로 인해 노후생활에 대한 미 대비와, 자녀들의 생활환경 사고의 변화로 인해 부양을 기피하는 등 현실적으로 개인적 책임보다는 사회적 책임으로 노인들의 사회적 기대가 증폭되고 있으나, 시설 및 서비스가 매우 부족한 현실이다. 이런 장기적으로 수반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노인들의 공공부분의 일자리 요성이 절실하다 할 것이다.(2) 사회복지적 접근 모색을 위한 정책과 실천1) 노인복지정책의 방향과 관련법○ 현행 노인복지정책은 상호보완적인 접근으로 노인복지법에 근거하여 노인만을 대상으로 한 급여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특수한 집단으로 따로 분리하여 접근하고 있으며, 노인이 지닌 문제 중심으로 노년기 4고라 일컫는 빈곤, 질병, 고독과 소외, 무위의 문제를 중심으로 급여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음. 이를 구분하여 살펴보면- 의식주 등 기본생계를 해결하는데 어려움이 있는 빈곤문제는 소득보장, 주택보장,- 질병과 보호부양 등의 애로와 같은 건강문제는 건강 및 의료보장,- 고독과 소외, 무위의 문제는 고용보장과 사회적 서비스를 통해 접근되어지고 있음.○ 노인복지 정책의 발전을 보면 1981년 노인복지법 제정이후, 1990년대 노인복지 대상을 빈곤노인에서 전체노인으로 확대하고 2004년 저출산 고령사회 대응을 위한 국가실천전략 종합적인 계획을 수립 추진하였으며, 2007년 노인장기요양보험법과 시행령 시행규칙을 제정 공포하고 2008년 7월부터 시행하고 있음.2) 노인복지 관련법○ 노인복지법 : 1981.6.5일 법률 제3453호로 확정?공포, 동법 시행령은 1982.2.17일 대통령령 제10731호로, 동법 시행규칙은 1982.9.20일 보건사회부령 제714호로 공포되어 완성되었으며, 목적으로 노인의 질환을 사전예방 또는 조기발견하고 질환상태에 따른 적절한 치료, 요양으로 심심의 건강을 유지하고, 노후의 생활안정을 위하여 필요한 조치를 강구함으로써 노인의 복건복지증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함.○ 고령자고용촉진법: 1991.12.31일 법률 제4487호로 제정되었으며, 목적으로 고령자가 그 능력에 적합한 직업에 취업 l;하는 것을 지원, 촉진함으로써 고령자의 고용안정과 국민경제의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함.○ 사회복지사업법 : 1970.1.1일 법률 제 2131호로 제정되었으며, 목적으로 사회복지사업에 관한 기본적 사항을 규정하여 사회복지를 필요로 하는 사람의 인간
    사회과학| 2014.04.03| 6페이지| 1,500원| 조회(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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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1964년 겨울 발표문
    도시적 삶의 익명성과 소외현상- 김승옥의 ≪서울, 1964년 겨울≫1.작가 소개1960년대를 대표하는 작가 김승옥은 1941년 12월 23일 일본 오사카에서 출생하고, 1945년 해방과 함께 귀국하여 전라남도 순천에서 성장하였고 순천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였다. 4·19혁명이 일어나던 해인 1960년에 대학에 입학해서 4·19세대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1962년 단편 《생명연습》이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등단하였으며, 같은 해 김현, 최하림 등과 더불어 동인지 《산문시대》를 창간하고, 이 동인지에 《건》(1962), 《환상수첩》(1962),≪누이를 이해하기 위하여≫(1963) 등을 발표하며 본격적인 문단활동을 시작하였다.이후 《무진기행》(1964), 《역사(力士)》(1964), 등의 단편을 1960년대에 걸쳐 지속적으로 발표하였다. 그 후 김승옥은 1965년에 단편 “서울,1964년 겨울”을 발표하여 최연소 동인문학상을 수상 하였고, 1977년에는 “서울의 달빛 0장”으로 제1회 이상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1970년대 소설 창작보다는 시나리오 집필에 몰두했던 그는 1980년대 새로운 의욕을 갖고 장편“먼지의 방”을 동아일보에 연재하기 시작했으나, ‘광주사태’ 로 인한 집필의욕 상실을 이유로 15회 만에 자진 중단했으며 그로부터 1년 뒤인 1981년에는 종교적 계시를 받는 극적인 체험을 하고 ‘나는 이제 허무주의자가 아니다’라는 기독교 입문 선언문을 발표한 뒤 소설 창작을 중단하고 전도활동에 전념하게 된다.1995년 ‘김승옥 전집’이 전 5권으로 기획, 간행되기 시작하면서 작가는 십오 년 만에 창작 재개를 선언하고 1998년 ≪세계의 문학≫겨울호에 ≪시내산에서≫, ≪뤼순감옥에서≫ 등 ‘성지 순례기’2편을 특별기고 형식으로 발표하였다. 그 이후 김승옥은 1999년 세종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부임하였으나,2003년 뇌경색으로 쓰러져 왼쪽 뇌의 3분의 2의 기능을 상실하게 되어 결국 2004년 세종대학교 교수직을 정식으로 퇴직, 현재는 법칙성을 인정하면서 변화하기 시작하며, 그의 후기소설은 초기의 아웃사이더를 향한 열정 대신에 꿈이나 환상을 잃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삶에 대한 환멸과 허무의지로 가득 찬다.《서울 1964년 겨울》 《야행》 《차나 한잔》 《염소는 힘이 세다》 《1960년대식》 《서울 달빛 0장》 등 김승옥의 후기소설은 산업사회의 한 기호로서 살아가는 인간들의 상실감을 주로 형상화한다. 그러므로 김승옥의 작품 속 인물들은 반짝이는 빛의 내면과 동시에 속된 일상의 외관을 동시에 지닌 역설적인 인물들이다. 그들은 빛의 아름다움을 알고 있지만, 그와 동시에 일상 속에서 존재할 수밖에 없는 타락한 윤리와 무책임성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김승옥 소설은 감각적인 문체, 배경과 인물의 적절한 배치, 소설적 완결성 등 소설의 구성 원리 면에서 새로운 기원을 열었다고 할 수 있으며, 또한 4·19혁명의 열광적인 분위기를 문학적 언어로 환치시키면서 전후세대문학의 무기력증을 뛰어넘었다는 점에서 문학사적 의의가 높다.3.작품 분석1)줄거리구청 병사계에서 근무하는 '나'는 선술집에서 대학원생인 '안'과 만나 대화를 나눈다. 새까맣게 구운 참새를 입에 넣고 씹으며 날개를 연상했던지, 날지 못하고 잡혀서 죽는 '파리'에 자신들을 비유한다. '나'는 이미 삶의 현실에서 좌절을 맛본 후였기 때문에 감각이 다소 둔해진 상태다. 부잣집 아들인 '안' 역시 밤거리에 나온 이유는 '나'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그저 낭만적이고 환상적인 미소를 짓는 예쁜 여자가 아니면 명멸하는 네온사인들에 도취해 보기 위해서이다. 자리를 옮기려고 일어섰을 때, 기운 없어 보이는 삼십대 사내가 동행을 간청한다. 중국집에 들어가 음식을 사면서, 자신은 서적 판매원이며 행복한 결혼 생활을 했으나 오늘 아내가 죽었다는 것, 그리고 그 시체를 병원에 해부용으로 팔았지만 아무래도 그 돈을 오늘 안으로 다 써 버려야 하겠는데 같이 있어 줄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셋은 음식점을 나온다. 그때 소방차가 지나간다. 셋은 택시를 타고 그 뒤를 따라 불구경다. 내가 잔을 비우고 났을 때 그도 잔을 입에 대고 눈을 감고 마시고 있는 게 보였다. 나는 이젠 자리를 떠나야 할 때가 되었다고 다소 서글픈 기분으로 생각했다. 결국 그렇고 그렇다. 또 한 번 확인된 것에 지나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자 그럼 다음에 또……’라고 말할까 ‘재미있었습니다’라고 말할까, 궁리하고 있는데 술잔을 비운 안이 갑자기 한 손으로 내 한쪽 손을 살며시 잡으면서 말했다.“우리가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아니오.” 나는 좀 귀찮은 생각이 들었다.)위의 글에서 볼 수 있듯이 ‘나’는 다시 혼자가 되어야한다는 생각에 외로움을 느끼며 슬픈 생각에 빠진다. 그러나 곧 ‘안’이 질문을 던지자 바로 귀찮다는 생각을 하는 인물로 현실에서 외로움을 느끼지만, 주관이 없이 무중심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인다.‘안’ - 부잣집 아들로 대학원 학생. 극도의 염세적 태도를 지녔으며, 개인주의적이고 비윤리적인 모습을 나타내는 인물.다음날 아침 일찍 안이 나를 깨웠다.“그 양반 역시 죽어 버렸습니다.” 안이 내 귀에 입을 대고 그렇게 속사였다.“예?” 나는 잠이 깨끗이 깨어 버렸다.“방금 그 방에 들어가 보았는데 역시 죽어 버렸습니다.”“역시 ……” 나는 말했다.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까?”“아직까진 아무도 모르는 것 같습니다. 우선 빨리 도망해 버리는 게 시끄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중략)“난 그가 죽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안이 말했다.“난 짐작도 못했습니다.”라고 나는 사실대로 이야기했다.“난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코트의 깃을 세우며 말했다. “그렇지만 어떻게 합니까?”“그렇지요. 할 수 없지요. 난 짐작도 못 했는데…….” 내가 말했다.“짐작했다고 하면 어떻게 하겠어요?” 그가 내게 물었다.“씨팔것, 어떻게 합니까? 그 양반 우리더러 어떡하라는 건지…….”“그러게 말입니다. 혼자 놓아두면 죽지 않을 줄 알았습니다. 그게 내가 생각해 본 최선의, 그리고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이처럼 ‘안’은 ‘사내’의 절망이 죽음을 알아보려고 했습니다만 어딘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냥 울타리 곁에 앉아서 병원의 큰 굴뚝에서 나오는 희끄무레한 연기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아내는 어떻게 될까요? 학생들이 해부 실습하느라고 톱으로 머리를 가르고 칼로 배를 째고 한다는데 정말 그러겠지요?”우리는 입을 다물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사환이 다쿠앙과 양파가 담긴 접시를 갖다 놓고 나갔다.“기분 나쁜 얘길 해서 미안합니다. 다만 누구에게라도 얘기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습니다. 한 가지만 의논해 보고 싶은데, 이 돈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저는 오늘 저녁에 다 써버리고 싶은데요.”(중략)이전의 부분에서 보면 ‘사내’는 아내가 아이를 가질 수 도 없고, 돈도 넉넉지 못했지만 아내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행복감을 느꼈다. 이것은 이 소설의 등장인물 중에서 ‘사내’가 가장 인간적이고 순수한 모습을 지녔다는 것을 나타내준다. (중략)이후의 부분에서 ‘사내’의 후회와 죄책감이 잘 나타나있다.3)인물들의 관계“서대문 버스 정류장에는 사람이 서른두 명 있는데 그 중 여자가 열일곱 명이고 어린애는 다섯 명, 젊은이는 스물한 명, 노인이 여섯 명입니다.”“그건 언제 일이지요?”“오늘 저녁 일곱 시 십오 분 현재입니다.”“아” 하고 나는 잠깐 절망적인 기분이었다. 그 반작용인 듯 굉장히 기분이 좋아져서 털어놓기 시작했다.“단성사 옆 골목의 첫번째 쓰레기통에는 초콜릿 포장지가 두 장 있습니다.”“그건 언제?”“지난 십사일 저녁 아홉 시 현재입니다.”“적십자 병원 정문 앞에 있는 호도나무의 가지 하나는 부러져 있습니다.”“을지로 삼가에 있는 간판 없는 한 술집에는 미자라는 이름을 가진 색시가 다섯 명 있는데, 그 집에 들어온 순서대로 큰 미자, 둘째 미자, 셋째 미자, 넷째 미자, 막내 미자라고 합니다.”)‘나’와 ‘안’은 선술집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는 25세 동갑내기이다. 두 사람의 대화는 상대방을 이해하기 위한 진신된 것이 아니라 무의미한 말놀이에 불과하다. 이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 느꼈던 것만을 이야기하고 상낮에 제 아내가 죽었습니다.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하고 있었는데…….”)반면 아내를 병원에 해부용 시체로 팔아버리고 절망한 ‘사내’는 자신이 겪고 있는 괴로움과 상황을 ‘안’그리고 ‘나’와 함께 공유하길 요구하고 있다. 이런 ‘사내’의 요구는 의사소통, 인간의 ‘연대의식’ 에 대한 요구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결국 의사소통은 제대로 이루어 지지 못하고 자신의 고통을 나눌 사람을 찾지 못한 사내는 죽음을 택하게 된다.4) 불명명을 통한 익명성(1) 불명명의 효과이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이름을 확인하지 않는다. ‘나’와 ‘안’만이 서로의 호칭을 위해서 성을 밝힐 뿐이다. 이 익명성은 근대적인 도시에서의 인간관계를 표상한다. 어느 날 잠깐 만나 관계를 맺고는 다시 헤어지는, 관계의 유지나 발전, 그에 대한 집착은 전혀 없다. 심지어 같이 하룻밤을 지낸 사내가 자살했음에도 불구하고 나와 안은 그 자리를 피할 뿐 다시 만날 기약 같은 것도 없다. 즉 명명을 하지 않는 것은 소외의식을 심화시키는 기능을 한다.(2) 익명성이 드러나는 부분ㄱ. 선술집 : 많은 선술집 중 우연히 들르게 된 곳일 뿐 상호가 있거나 주인의 매력 때문에 혹은 음식 맛이 유달라서 들른 곳이 아니다. 그러기에 아무런 의미도 관계도 없는 곳이 다. 그저 지나가다가 한잔하기 위해 임시로 머물렀던 곳이다.ㄴ. 거리 :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은 광고에 구속받지 않는다. 사람들은 서로를 신경 쓰지 않은 체 스쳐지나가고, 추운 거리에 어깨를 웅크리고 엎드려 있는 거지 앞을 무심히 그 존재를 생각하지도 않고 재빨리 지나쳐 버릴 뿐이다.ㄷ. 화재현장 : 여기서 사람들은 시종 구경꾼으로만 있다. 그들은 그저 불이 오래 타기를 바랄 뿐 화재와 자신들은 아무런 관계도 없다고 이야기한다.ㄹ. 가로수 밑에서 나누는 대화 : 끝까지 ‘안’과 ‘나’는 서로의 이름도 모른 채 '재미 많이 보세요' 라는 인사를 나누고 헤어진다. 이는 그들이 서로가 누구든 상관하지 않겠다는 익명성에 바탕을 둔 것이다.ㅁ.여관 : ‘안’과 ‘나’ 그리고)
    인문/어학| 2012.12.19| 11페이지| 1,000원| 조회(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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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양미술의 이해
    이 레포트는 〈다시만난 반가운 클림트〉 라는 제목으로 이번전시에 대한 설명 그리고 이번전시의 주인공인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에 대한 소개와 인상 깊었던 작품에 대한 이해 및 감상을 중심으로 한국에서도 아주 유명한 작가인 클림트의 작품세계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각하고, 빠져봄으로서 그의 작품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어렵게만 생각했던 미술작품의 감상에 대하여 한 발자국 더 가까이 다가갈수 있는 계기가 되길바라면서 작성하였다.우선 이번 클림트전의 의미는 상당히 크다. 왜냐하면 첫째로 이번 전시는 아시아 최초로 클림트 전을 단독 전시할 뿐만 아니라 세계최대의 규모의 전시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키스), (유디트Ⅰ)등을 포함해 클림트의 작품을 가장 많이 소유하고 있는 벨베데레 미술관은 이번 한국전시를 마지막으로 향후 100년간은 해외전시를 하지않을 예정이기 때문에 이번 전시기 21세기의 마지막 클림트 전시회가 될수도 있기에 그 의미가 더욱 커서 이렇게 이번전시의 의미를 우선적으로 언급해본다.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는 1862년 7월14일 바움가르텐의 한 작은 마을에서 가난한 대장장이인 에른스트 클림트와 안나 클림트의 일곱자녀중 둘째로 출생한다. 가난한 어린시절을 보냈지만 그는 예술적 재능을 일찍이 인정받고 1876년 비엔나 미술공예학교의 장학생으로 발탁되어 입학한다. 그의 초기 주제는 여성이었다. 성적 주제와 직설적인 표현을 담은 그의 독특한 작품세계는 19세기에 많은 비판을 받았다. 그리고 그는 회화와 건축의 통합을 시도한 ‘토탈아트’의 대가 이기도하다. 그 대표작으로는 ‘베토벤 프리즈’이다. 그는 작품을 위해서 수많은 습작을 그린 작가이기도하며, 그 습작들은 드로잉 그 자체로 작품으로서의 가치는 지니는 것들이 많다. 그는 1897년 종전의 미술과 결별한다는 의미의 비엔나 분리파(Vienna Secession)를 결성하고 회장을 맡는다. 그는 또한 그의 작품 중 1/4이 풍경화일 만큼 적지 않은 수의 풍경화를 그렸다. 그 풍경화는다. 그 이유는 아버지가 뇌일혈로 사망, 그의 동생도 뇌일혈로 사망해서 뇌일혈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그는 우려대로 1918년 1월11일 뇌일혈로 쓰러져 반신불수 상태가되고, 다음달 6일에 독감에걸려 사망하게 된다.그럼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이번 전시를 통해서 가장 인상깊었던 몇 작품을 살펴보고자 한다. 첫 번째로는 팜므파탈(치명적 여인 - 자신의 욕망을 실현시키기 위해 남자를 유혹한뒤 파멸시키는 여인)을 잘 나타내고 있는 클림트의 대표작품 중 하나인 1901년 작품인 유디트Ⅰ(JudithⅠ)이다. 이 작품을 보면서 나는 인물의 얼굴이 주위의 배경과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생생하다고 느꼈다. 마치 놀이동산에 가면 볼수있는 얼굴에만 구멍이 뚫어져있는 조형물에 얼굴을 밀어넣고 사진을 찍은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여성의 어깨위쪽에 황금빛의 색채가 이 여성에게서 강인함을 뽑아내게 하고 있는 느낌이들었다. 그리고 작품의 오른쪽 하단을 보게 되면 남자의 얼굴이 보이는데 반이 잘려있고, 위의 여성의 약간붉으스름한 생기있는 얼굴과는 달리 아주 검은 모습으로 표현되어 죽어있는 남자의 모습을 느꼈다. 그리고 화면에 반쯤 잘린 남자의 모습을 보면서 수업시간에 낭만주의 작가 들라크로아의 ‘키오스의 학살, 1824년’을 보면서 배웠던 비대칭적 파편구조란 말과 그려지지않은 부분을 더 적극적으로 상상할수있다는 그효과에 대해서 떠올리기도 했다. 이 작품정확히 감상하기위해 조사를 더 해보고 다른 팜므파탈을 나타내는 작품엔 무었이있는지도 알아보았다. 유디트Ⅰ은 캔버스에 유채, 84 × 42cm크기, 현재 벨베데레 미술관에 보관되어있다. 이 작품은 1901년 다섯 번째 분리파 전시회에서 처음 선보였고 본래 제목은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 였다고 한다. 이 작품의 배경은 구약성서의 이야기로서 내용은 다음과 같다.이스라엘을 괴롭혀온 앗시리아의 홀로페르네스 총사령관의 군대가 아스라엘을 포위하자 남편과 사별한 과부 유디트는 아름다운 몸을 무기삼아 앗시리아의 군대에 임의 투항한다.를 구석구석채우고있다. 이러한 기법을 통해 클림트는 여성 이미지들을 주제에있어 이전의 전통과는 상당히 다른 남성성과 여성성이 공존하는 화면전체를 압도하는 이미지로 우뚝서있는 팜프파탈적인 모습으로 표현하였다. 이 작품에서 유디트는 손을 홀로페르네스의 머리에 살며시 얹어놓고 졸린듯 살짝 감긴 눈을하고 입술을 살짝벌리고 있는데 이러한 모습은 에로틱한 향기를 더욱 진하게 만든다. 상대적으로 액자의 일부로 잘려나간 듯 어두운 그림자에 묻혀있는 홀로페르네스는 존재감을 거의 상실한상태이다. 이는 남녀를 한 화면에 배치하면서 여성의 내면에 잠재된 치명적 파워를 드러내고자 했던 라파엘전파들의 전도된 남녀 배치방법과 연관이 있다. 하지만 클림트는 여기에서 한 걸음 나아가 갑옷을 입은 유디트를 표현함으로써 보다 강한 남성성을 담은 팜므파탈의 프로타입을 제시하고 있다. 다른 작가들의 팜므파탈을 다룬 작품이 꽤 있지만 그 중에서 가장인상깊게 봤던것은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의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이다. 이 작품에서 유디트는 클림트의 유디트의 모습과 달리 직접 칼로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고있다. 그 옆에서 신하는 그 일을 도와 주고 있고, 칼에 베어지고 있는 홀로페르네스의 목에서는 붉은 피가 솟아오르는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있어서 여성의 남성성이, 팜므파탈적요소가 더욱 짖게 나타난다.두 번째로 다뤄볼 작품은 아담과 이브(Adam and Eve)이다. 이 작품을 보면서 나는 고개를 떨구고 도도한 표정을 한 채 정면을 응시하는 이브와 눈을 마주치고 소통을 해보려고 노력했다. 무엇을 표현하고 있는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것인지... 작품 속 인물과의 대화는 작가와의 대화일거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물론 정확한 답을 얻을수는 없었다. 다만, 이브의 새침한 얼굴과 그 뒤 눈을 감고 우울한 듯한 얼굴의 아담 그리고 밝게 칠해진 화사하고 아름다운 모습의 이브의 몸과 이브에 가려져 형태를 제대로 알수없지만 어두운 빛의 아담의 몸의 비교를 통해 무기력한 남성의 모습을 떠올렸고, 그 모습담과 이브(Adam and Eve, 1917년)는 캔버스에 유채, 크기 173×60cm로 현재 벨베데레 미술관에 보관되어있다. 이 작품은 위에서 이야기한 유디트Ⅰ과 마찬가지로 남성성과 여성성이 공존하는 화면전채를 압도하는 그런 여성의 잠재된 파괴성 즉, 팜프파탈적 이미지로 클림트에의해 그려졌다. 이브의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해준다고 느꼈던 꽃들은 아네모네이면 그것은 다산의 상징으로서 여성의 강력한 힘을 상징한다. 아담과 이브는 팜므파탈의 첫 시작이다. 이브는 뱀의 혀가 속삭이는 달콤한 거짓말을 아담에게 전하고 아담이 결국 선악과를 먹게해서 에덴낙원에서 추방당하게하는 파괴의 운명을 지닌 여자이기 때문이다. 아래의 호피무늬는 에로스를 상징하고 이런 배경적 요소들을 통해 이브가 비단 남성만이 아닌 인류타락의 근원이 될만큼 파괴적힘을 내재한 존재로서 작가는 이브를 표현했다.마지막으로 다뤄볼 작품은 작가의 소개에서 살며시 언급했던 토탈아트의 대표작 베토벤프리즈이다(Beethoven Frieze, 1902년). 작품에 대한 느낌이나 감상을 이야기하기전 ‘토탈아트’에 대하여 알아보도록기로 했다. 그의 야심찬 알레고리적 작품들, 하려한 초상화들과 평온한 풍경화들은 대단히 광범위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을 토탈아트(총체예술)이라는 오스트리아 - 독일적인 개념으로 통합될수있다. ‘총체예술’이란 개념은 19세기의 사회, 경제적인 대격변의 시대를 반영하는 것이다. ‘토탈아트’는 본래 혼란스럽고 놀라운 세계에 질서를 부여하려는 광범위한 철학적시도이며 예술가를 영적인 지도자로보는 낭만주의적 믿음과의 일치에 대한 유토피아적 탐구이기도 하다. 이런 ‘토탈아트’는 디자인과 제조업의 실질적인 재통합에서부터 전체주의적 정치이데올로기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모습을 드러내고있다는걸 알수있었다. ‘베토벤프리즈’는 1902년 막스 클링거의 베토벤 조각을 전시하도록 되어있었다. 설치는 호프만이 디자인했고 여기에는 클링거의 조각과 클림트의 벽화 그리고 분리파의 다른회원들의것이 다양하게 포함되어있다. 이 작품을대한 설명은 이러했다. ‘첫 패널에 등장하는 부유하는 여인들은(행복의 열망)을 상징한다. 인간의 연악함을 의미하는 세명의 누드 인물들은 황금기사로부터 구원과 보호를 구한다. 이 황금기사는 두 번째패널의 적의 무리들과 싸워야하는 것이다.’ 이렇게 작품의 해석을 읽고 첫 번째 패널의 벽화를 보았다. 그 벽면은 밝은 흰색같은 회색과 흰색 그리고 황금색이 평온하고 부드러우며 경견한 느낌을 주고있다는걸 느꼈다. 그리고 그 바탕속에는 설명에서 본 것과 같이 누드의 세 사람이 정말로 무언갈 갈구하듯이 두 손을 꼭 모아 항금색을 옷을 입은 황금기사에게 빌고있었다. 그 황금기사의 황금색옷은 벽면의 흰색과 어우러져서 더욱더 강인하고 정의로운 느낌을 자아내는 듯 했다. 또 황금기사의 위의 두 여인의 모습은 너무나도 여유롭고 자비로우면서 평화로운 모습이였다. 두 번째 패널에 대한 설명은 ‘황금기사가 싸워야할 적의 무리들(질병,광기, 정욕, 문란한 성, 방종 등과 같은 부정적인 삶의 감정들)이 나타나있다’라고 되어있었다. 정말로 두 번째 패널을 보는 순간 첫 번째 패널의 분위기와는 너무나 다르다는것을 알수있었다. 누가 봐도 알수있을것이다. 우선 전체적으로 평화로운 느낌을주던 밝은 색의 배경은 사라지고 어두운 색깔들이 벽면의 대부분을 차지하고있어서 음산하고 어두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첫 패널에 등장하던 인물들의 모습과는 달리 앙상한 해골 같은 모습의 여자와 눈이 풀린듯이 서있는 누드의 여자들 그리고 검고 커다란 원숭이 한 마리 또 임신한듯 배가 부른 여자위의 교활한 표정의 여자둘의 모습이 첫 번째 패널과 너무 대조적이며 보는 나로 하여금 속이 매스꺼울정도의 좋지 못한 느낌을 제대로 나타내고있다. 마지막 패널의 소개는 “행복의 열망은 악기를 들고있는 인물의 읊조리는 ‘시’를 통하여 보답하고 ‘천사들의 합창’과 함께 이어서 ‘세상을 향한 입맞춤’에서 벽화 내용은 클라이막스로 치닺는다.”라고 되어있다. 이 마지막 패널에서는 두 번째 패널의 어두운 바탕에서 벗어나 다시 처음의 밝은 배경으로 .
    독후감/창작| 2012.12.19| 4페이지| 1,000원| 조회(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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