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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리엔탈리즘과 타자에 관하여
    세계화 시대의 철학 기말 레포트주제 : 오리엔탈리즘과 타자의 문제1. 들어가기오리엔탈리즘이란 단순히 동양에 대한 신비함으로 읽혀지기도 한다. 동양을 신비함으로 채색한다는 것은 일면 동양의 미를 존중해준다는 가당찮은 해석도 가능하겠지만, 그보다 우선 오리엔탈리즘은 우리와는 다른 또 다른 타인의 이미지를 만듦으로써 우리만의 정체성을 공고히 하고자 하는데 그 목적의식이 있다. 오리엔탈리즘의 근원은 매우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그 역사에 비하여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비판적 시각은 매우 최근에서야 일었다. 심지어 동양은 동양에 대한 신비함을 스스로 자찬하면서 서양과 다른 동양의 이미지를 생산하기까지 한다. 그만큼 서양이 출산한 오리엔탈리즘은 무시 못 할 영향력을 두고 있다. 오리엔탈리즘의 가장 왕성한 시기라 할 수 있는 서양 제국주의 시대가 지난 현대에 까지 다소 변형되었지만 오리엔탈리즘은 일주일에 한 번씩 스시를 즐기는 서양인들의 식탁에 배어있다. 그렇다면, 오리엔탈리즘이란 무엇이며 오리엔탈리즘의 현상과 원인, 대안은 무엇인가?2. 오리엔탈리즘이란?오리엔탈리즘이란 보통 ‘동양학’과 관련된 개념으로 이해되어 왔다. 즉 동양의 특수하거나 일반적인 측면을 다루는 것으로, ‘동양연구’나 ‘동양지역연구’라는 말로 사용되기도 했다. 좀 더 넓은 의미에서는 ‘동양’과 ‘서양’의 구별에 근거한 하나의 사고방식을 일컫기도 한다.Edward W.Said 의 저서 ‘오리엔탈리즘’에서 오리엔탈리즘이란 오리엔트, 곧 동양에 관계하는 방식으로서 서양인의 경험 속에 동양이 차지하는 특별한 지위에 근거하는 것이다. 또한, 유럽인의 마음 속 가장 깊은 곳으로부터 반복되어 나타난 타인의 이미지이기도 하다. 18세기 말에 생겨난 오리엔탈리즘은 동양을 지배하고 재구성하며 위압하기 위한 서양의 스타일인 것이다. 이것을 정리해 보면 사이드가 말한 오리엔탈리즘의 개념은 ‘동양에 대한 서양의 사고 - 지배방식’으로서 서양의 방식을 비판한 것으로 풀이된다.3. 오리엔탈리즘과 외국인오리엔탈리즘의 현대적 사례 우리 자본에 이끌려 들어온다. 우리가 고용인의 입장으로써 그들의 이미지를 직접 창조할 수 있는 입장에 서게 되는 것이다. 이 경우 서양인과 마찬가지로 비슷한 부류로서의 동질적 이미지를 가지게 되어 보편적이고 일반화된 경우를 취한다. 즉, 동남아인들은 더럽고 추악하며 서양인들은 깨끗하고 섹시하다는 등의 수식어가 그렇다. 여기에는 전형적인 타자의 문제와 오리엔탈리즘적인 요소가 농후하게 녹아있다.오리엔탈리즘이 발생한 조건이란 무엇인가? 만약 서양이 지금까지 이슬람의 지배에 종속됨의 상태에 머물렀다면, 그렇지 않았던 실제의 경우와 같이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오리엔탈리즘을 사상적 배경으로 삼을 수 있었을까? 그렇지 않다. 그들은 절대적으로 우월하며 막강한 힘을 가짐으로써 타인의 문제로 오리엔탈리즘에 동양적 신비함이며 동양적 야만이며 하는 수식어와 함께 타인의 이미지를 스스로에게 새겨 넣을 수 있었다. 방금 살펴 본 바와 같이 동남아인이 경우가 이와 구조적으로 동일하다. 오리엔탈리즘은 제국주의의 급물살을 타면서부터 더 이상 서양 자체의 지리적 요건을 가장 중요한 요소로서 가지지 않았다. 오리엔탈리즘이 힘을 얻게 된 조건은 힘이며 자본과 권력이었다. 즉, 힘과 자본과 권력이 있는 것이 동양을 바라보는 서양이 된 것이지 애초에 동양과 다른 서양이기 때문에 힘과 자본과 권력을 얻어 동양을 바라볼 수 있게 된 바 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군사적 능력으로 대변되는 힘과 자본과 권력을 가지게 된 이들은 얼마든지 서양적 입장으로 편입되어 그들과 다른 타인의 이미지를 마음대로 창출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맨 처음에 서양에 가장 먼저 편승한 동양은 일본이었다. 그들은 돌연변이 서양의 모습으로 구색을 갖추면서 제국주의 국가로 변모하였고 서양이 이슬람과 인도에게 그러하였듯이 눈엣가시 같았던 조선을 제1의 타자로 내세웠다. 따라서 조선의 민족성을 운운하며 조선사를 편찬하고 식민사관을 퍼뜨렸다. 이는 서양인이 오리엔탈리스트들로 하여금 행한 일들과 너무 흡사하다.다시 원 논의로 돌아가자면 라본다. 이는 한국이 식민지 경험이 있다는 사실로 봤을 때 강한 아이러니를 낳는다. 서양이 헤게모니 전쟁 중에 일방적으로 동양을 동양화하고 이미지를 조작하는 상황이 다소 변형되고 역설적이지만 동양 스스로 힘과 권력의 마약을 먹고 그들이 했던 만행을 스스로 다시 저지르고 있는 꼴이다.4. 오리엔탈리즘과 자연오리엔탈리즘과 타자 문제를 다룸에 있어 가장 근원이 되는 타자문제는 인간과 자연의 문제 아닐까? 인간이 가장 먼저 폭력적 경향으로 ‘나와 다른 것’에 대항한 대상은 자연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원초적 입장에서 당장 옆에 있는 타인은 나와 동족임에 다름 아니며 보다 더 큰 다름은 ‘자연’에 대해 느꼈을 것이다. 물론 자연은 인간이 될 수 없으나 타자의 문제의 근본은 인간인 지 아닌 지의 문제가 아니라 나와 같은 지 다른 지의 문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타자의 문제에 있어서 오리엔탈리즘이 가장 큰 문제점을 갖는 폭력성의 문제를 살펴봄에 있어서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를 살펴보는 것이 상당히 의미 있는 작업이 되겠다.인간은 자연을 파괴할 수밖에 없는 존재다. 아무리 자연친화적으로 산들 지금으로써 동물과 같이 들판에 풀만 뜯어먹으며 살 수는 없다. 인간의 자연적 생존능력은 동물의 생존 본능에 비하여 너무나 형편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은 강한 집단을 이루고 결속을 하여 자연에 대항하여 강력한 생존 기반을 마련한다. 인간이 스스로 우월하기에 그러했음을 주장하는 아기자기함을 보일 수도 있겠으나 그보다 인간은 자연에 비해 열등하기에 자연을 공격했다고 보는 것이 현명하다. 자연에 열등하고 자연이 두렵기에 자연을 먼저 선제공격하고 강력한 성벽을 쌓고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기반을 마련하려고 하는 것이다. 인간의 그러한 작업의 노력이 몇 천 년에 이르러 계속 되었음에도 아직 인간은 기상현상을 정확하게 예측하지도 못하여 온갖 자연재해에 대비할 능력도 없다. 당장 해일이 인다하고 혜성이 충돌한다하면 기도부터 하고 보는 게 몇 천 년 진보된 인간의 보편적인 모습이다.여기급했듯이, 서양은 동양의 이미지를 매우 이분법적으로 구분했다. 서양이 굴복했던 동양은 어디까지나 고대의 동양이며, 고대의 동양은 강력하고 신비하며 미지의 탐구 대상이다. 대신 서양이 정복한 동양은 어디까지나 동시대의 동양으로서 야만적이며 열등하고 미개하기 때문에 서양이 계몽시켜야 할 대상이다. 이는 자연을 대하는 현대의 인간이 취하는 모습과 똑같다. 한 때는 자연에 종속당하며 자연을 숭배하고 복종하였으면서 막상 자연에 대하여 일정한 정도의 확고한 공격과 방어의 기반을 다지자 자연에 대하여 오리엔탈리즘적인 작업을 한다. 인간이 숭배하고 복종했던 자연은 어디까지나 인간에게 유익했던 것이며 인간이 토착신앙과 비슷한 모습으로 자연을 숭배했던 것은 나름대로의 가치가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 보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웰빙’과 ‘자연친화’를 운운하면서 인간 스스로 파괴한 자연에 몇몇 남아 있는 자연 그대로의 자연을 찾기에 급급하기에 이르렀고, 토착신앙과 같은 자연숭배는 인간의 숭고한 가치로서 무형문화재로 지정한다. 반면에 아직도 여전히 자연을 인간에게 가장 위험한 대상으로 인식하고, 더욱 편리함을 추구하기 위해 극단적 과학기술을 개발하기도 하고 때로는 자연현상을 예측하고 자연을 인위적으로 조작하기 위하여 폭력적 작업을 끊임없이 한다. 이때의 자연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생존을 위협하는 장본인이다. 가만히 놔둘 경우 자연은 인간을 공격할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손아귀에 완전히 들어올 그 날을 위해 폭력적 작업의 일환을 끊임없이 해대는 것이다.5. 오리엔탈리즘과 타인의 문제 - 성性 그리고 학벌주의오리엔탈리즘을 타자의 문제로 그대로 들여오자면 당장 사회에 만연한 여러 타자의 문제가 떠오른다. 性에 대한 문제가 그렇고 학벌주의와 같은 사회문제 또한 그렇다. 여성과 남성의 문제도 오리엔탈리즘과 마찬가지로 헤게모니의 메커니즘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조선후기부터 현대의 한국사회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힘과 권위는 남성들의 차지였다. 때문에 타인의 이미지를 창조하는 입장에 주로 남성들남성의 힘과 권위를 얻었지만 그대로 남성이 만든 性 이미지를 따랐다. 기존과 다름없이 여성 이미지에 따라 여성이 남성의 성적 대상으로 남았고, 반대로 여성이 힘과 권위를 가진 경우에도 역시 남성은 남성이 만든 남성의 이미지로서 여성의 성적 대상이 되곤 한다. 남자는 남성적 매력으로써 여성에게 섹시함의 매력을 이미지화되기도 하고 성적 호소를 한다. 또 다른 경우에 여성은 스스로 힘과 권위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여성이미지에 맞춰 다이어트를 하거나 성형을 하는 수도 있었다. 동양이 오리엔탈리즘을 극복하지 못하고 종속되었듯이 기존의 생산되고 조작된 이미지에 무대에 오른 연극배우는 어떤 반기도 들 수 없었던 것이다.학벌주의도 그렇다. 특히 한국의 학벌주의가 심한 경우인데, 이는 해방 후 권력이 지식층과 자본에게 종속되면서 애초부터 타자의 이미지가 조작되어 고정되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교육열도 또한 이를 입증하는 결과이다. 배워야 잘 살 수 있다는 고정관념은 돈을 잘 벌고 학벌 좋은 이들이 스스로 과시하는 조작된 이미지를 모든 이들이 아무런 거부반응 없이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학벌이 좋아 돈을 잘 벌면 기득권이 가지는 보여주기 위한 이미지를 스스로 소유할 수 있음에 대한 확신이 너무나 분명했기에 학벌주의는 더욱 공고해지고 자본에 종속되려는 경향은 심해졌다. 한 번도 불의에 타협하지 않은 자가 권력을 잡아 나라를 바로잡던 적이 없기 때문에 기회주의적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지지 않고서라도 일단 기득권층에 편승하여 스스로의 이미지를 과시하려고 한 것이다. 이는 대학에 가지 않은 이들의 모습을 비참하게 그리고 학벌이 있어 돈 있는 자들을 풍족하고 풍요롭게 보이게 하는 타인의 이미지가 너무도 강력하게 모두에게 박혀있기 때문이다. 또한 자본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 하의 사람들에게는 너무나도 절박하게 자본에 종속되었기에 보이는 타인의 이미지가 아니었나 싶다.6. 오리엔탈리즘의 원인 그리고 잘못된 수용과 대응이렇게 오리엔탈리즘의 현상을 타자의 문제와 관련지어 살펴보았을 때안이다.
    인문/어학| 2010.08.24| 7페이지| 2,000원| 조회(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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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들어진 고대 서평 평가A+최고예요
    만들어진 고대 서평--본 책은 총 4부로 되어 처음의 2개의 장에서는 근대 이후 한국사에서 전개된 한국 고대사에 대한 총체적이고 전면적인 문제 제기에 관한 내용을 다루었고, 후반의 2개의 장에서는 근대 이후 일본에서 형성된 일본사관에 대한 소박한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특히 3부에서는 의도되어 제작된 고대사에 대한 문제제기로서 의미 있다기보다는 이전에 주장되었던 동아시아 문화권에 대한 필자의 견해를 다루고 있다. 본 책의 의의 제기에 대하여 기본적인 문제제기의 양식에 대해서 대체적으로는 동의하는 편이지만 한국사와 관련한 부분에서는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따라서 나의 서평 또한 처음의 2개의 장에 대해서는 필자의 의견에 의문시 되는 부분을 특기할 것이고, 뒷부분의 2개의 장에 대해서는 필자의 견해가 가지는 의의를 주로 서술할 것이다.1부에서는 “고대사에 나타난 국민 국가 이야기”를 먼저 다룬다. 이는 “일본과 아시아를 가로막는 것”이라는 부제를 단다. 근대 이후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아시아 국가들의 자국사에 대한 이해는 대부분 근대 이후로부터 현대에 이르는 우리가 투영된 부분이 상당하다는 것이 그 주요 내용이라 할 수 있다.처음에 “임나일본부설”에 관련하여 4세기 무렵부터 시작하여 7세기에 이르기까지 한반도에서 가지는 고대 일본의 권리로 이해되는 서술은 러일전쟁 당시의 일본의 상황이 고스란히 녹아있다고 필자는 말한다. 실제로 그 당시의 일본 사학자 시라토리 구라키치의 서술내용을 보면 자국의 고대사에 대한 이해가 매우 편협함을 느낄 수 있다. 그의 서술에서 일본은 자기 완결적인 면모를 상당히 갖추고 있다. 자기 완결적인 고대의 일본이 당시 동북아의 강국이던 고구려와 유일한 대립체제를 이루었다고 보는 판단의 근거는 오직 제국주의 일본의 참상에만 그 근원이 있다. 한국으로 보면 삼국시대라 할 수 있는 그 당시의 시대상에 근대 이후에나 가지게 되는 일국으로서의 완결적 면모는 쉽게 찾을 수가 없다. 이는 오직 일본의 사학자 시라토리 구라키치가 제국주의 일본의 사에 관해서만 현대와 관련이 있다고 본다. 실제 남한의 국사 교과서만 보더라도 남북국시대를 현대의 분단문제에 관련해서는 생각해볼 수 없다. 물론 남한도 근대 이후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시대상이 고대사의 서술에 있어 투영된 부분이 있을 수 있는 가능성은 농후하다. 이는 단지 아시아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근대 이후의 역사가들이 가지는 문제에만 그치지도 않는다. 중세의 역사가들도 또한 그들의 의식의 틀 안에서 역사를 서술했을 것이 자연스럽게 가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단지 필자가 자신의 의식의 틀인 “고대사에 스며있는 국민 국가의 고의성”을 설명하기 위해서 아이러니하게도 고의적인 편성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의 견해는 여전히 의미가 있는데, 고대사에 대한 의식 체계 속에 국민 국가의 고의성이 있다는 자각을 할 수 있게 했다는 점이다.그러나 위에서 제기한 문제는 “견당사와 근대일본”에 대한 필자의 의미 있는 견해의 다음에 서술되는 “이야기의 상극이 초래한 것”이라는 부분에서 재발견된다. 거칠게 표현하고자 한다면, “똥”과 “똥 묻은 겨”가 똑같이 더럽다고 하나로 묶어 “똥”이라고 말하는 식의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하물며 “똥 묻은 겨”가 “똥”을 털어낼 만한 여지가 있다면야 말할 여지도 없을 것이다.국민 국가의 시대상이 고의적으로 재편한 고대사에 비판의 근거로 내세우는 것은 대부분 제국주의 시대, 즉 근대 이후의 일본이 만들어낸 허상의 역사들이다. 이는 현대에 와서 자국인 일본의 학자들조차 인정하지 않는 부분들이 대부분이다. 필자 또한 제국주의 일본이 만들어낸 허상으로서의 일본 고대사에 대하여서는 비판을 하고 있다. 견당사를 구미사절단과 억지로 연결 짓는 부분이라든지, 조선에 대한 일본의 우위성이라든지 하는 것들은 이른바 형편없는 허상에 불과하다. 다시 말하면, 그것들은 제국주의 일본이 자국의 위상을 드높이거나 조선에 대한 식민지 정책의 당위성을 설명하는 데에 대한 미사여구나 환상에 불과하단 것이다. 그런데 필자는 용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국주의 일본의 사학자들은 희박한 근거로써 그러한 환상을 만드는 데 일조하였고 이는 틀렸음이 2차 대전 패전 후에 자국 스스로의 자각에 의하여서도 밝혀졌다. 이에 대해서는 필자도 언급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터무니없는 발상에 대하여 똑같은 취급으로 해방 후 한국의 역사학자들의 성과를 다룬다면 불합리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비교와 대조에 대한 합당한 근거를 찾으려 한다면 적어도 패전 후 일본의 사학자들의 성과물에서 찾았어야 했다. 합리적인 판단이 불가능했던 제국주의 일본의 사학자가 아니라.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대사에 나타난 국민 국가 이야기”를 서술한 필자의 견해는 충분한 의미가 있다고 본다. 필자의 견해의 의미 있는 핵심만을 정리하자면, 우리가 현재에 와서 이해하는 자국이나 고대사에는 상당한 부분의 고의성이 포함된다는 것이다. 이는 당시의 현실에 가깝다기보다는 근대 이후의 자국민들이 열망하거나 그들의 필요에 의한 환상에 가깝다. 각각의 자국민들이 의도한 고대사들은 그것이 가지는 애초의 고의성 때문에 각각의 이론이 서로 만날 때는 모순이 생기기 마련이라고 필자는 말한다. 모순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은 “만들어진 고대”가 가질 수밖에 없는 존재적 문제인 것이다. 따라서 창출된 “국사의 이야기”에서 벗어나려는 시도 자체는 이러한 시기에 상당한 가치를 가진다. 이러한 기본적인 틀거리 안에서는 필자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이다.1부의 두 번째 이야기는 “표상으로서의 광개토왕비문”으로 광개토대왕비의 일본 열도 반입 계획으로 시작한다. 학문적 자신감으로 말미암은 근거가 어디인지는 모르겠지만 광개토대왕비의 반입 계획에 대하여 필자는 상당히 편협한 시선을 보인다. 광개토대왕비 반입 계획에 대한 기존의 부정적 견해들에 대하여 강한 추측으로써 맞서는 꼴은 안타깝다고 할 만하다. 근거에 대한 개략적인 표출도 하지 아니했다. 이 때문에 나는 머리말에 들어있는 필자의 견해에서 제국주의 일본의 반입 계획의 의도가 조선 침략의 정당화가 왜 자가 했던 해석보다 일리가 있는 해석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필자가 이 뒤에 제시하는 비문 전체의 텍스트에 대한 이해에 대하여 동의하는 바이므로 나도 한때 고등학교를 다닐 적에 배운 정인보 선생의 반박 견해가 아직까지 명맥을 유지하는 것을 보면 학문에 있어서 ‘패러다임’의 역할이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 지 새삼 깨닫는 바이다. 편향적 시각을 지양하기 위하여 한국의 학설을 비판하자면 제국주의 일본의 조선사관에 대한 반박으로 제시된 한국 사학의 견해들은 피장파장이라고 보는 편이 옳다고 본다. 비문에 주어나 목적어가 빠졌다고 보는 데까지의 논리는 일정한 부분의 일리가 있긴 하지만, 그 논리 자체가 애매모호하기 때문에 그러한 논리를 믿는 학자들조차 어떤 주어와 목적어 어떤 자리에 와야 하는 지 확실한 증거와 함께 명확한 답을 내지 못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일본의 우위성을 강조하는 일본의 조선사관에 대항한다고 하여 정반대의 조선 우위성을 주장하는 견해도 타당하지 못하다고 본다. 단지 문화적 전파의 양상으로서만 파악했더라면 일본의 조선사관의 비합리성을 비판함과 동시에 고대에 실재했던 한반도의 문화적 선진적 역할을 동시에 강조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김석형의 주장이 제시된 내용은 이와 같은 내용을 주로 제시하고 있으나 필자가 해석한 김석형의 주장에는 문화적 우위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나타나 있을 뿐 아니라 김석형의 견해에 대한 나의 지식이 얕으므로 우선 필자의 해석을 따르기로 한다. 그러나 제국주의 시절 전후에 한국의 학설에 대해서는 일면 동조할 수밖에 없는 것이 당시의 한국의 역사학이 민족적 단결을 도모하여 독립적 열망을 꿈꾸게 하는 동기나 당위성을 제공하는 역할을 했다는 데 있다. 물론 학문의 본질이 현실적 필요에 따라서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이 연구한 역사학의 성과가 전혀 터무니없는 것은 아니라는 현대의 역사학의 증언까지 종합해 볼 때 일정한 부분에 있어서 학문은 시대의 감성을 때로는 지니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역로서의 일본의 일이라고 해석하는 데는 문제가 있다. 하물며 ‘전치문’으로 해석하는 데에 대한 필자의 논증이 부족한 경우에서야 말할 여지도 없다.순수한 논증 과정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면, 필자가 ‘석회 도포설’에 대한 반박에서도 논증이 빈약함을 알 수 있다. 석회를 바르지 않았다는 증거로는 오직 충분히 조작 가능한 초천부, 초덕균 부자의 근거만을 들고 있으며 만일 그들이 석회 도포한 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들이 도포한 행위에 일제의 의도가 전혀 없었는지 확인할 수 없으며, 그들이 일제가 원하는 부분에 석회를 도포하지 않았더라도 나중에 일제가 그들의 도포한 부분에 더하여 필요한 부분에 자의적으로 석회를 도포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근거가 없다. 원석 탁본의 가치를 설명하는 부분에서도 필자는 여전히 원석 탁본의 진위 여부나 실재적 가치에 대한 어떠한 실증적 논증 없이 ‘원석 탁본’이라는 표면적 가치에 대해서만 논하고 있다. 이는 필자의 희망사항일 뿐이지 결코 완결된 학문적 성과라 평가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다.하지만 그 뒤에 필자가 광개토대왕릉비의 고구려 텍스트로서의 해석을 한 부분에는 적극적으로 동의한다. 필자의 그러한 견해가 가치 있을 뿐만 아니라 역사의 서술과 그 해석에 있어서 역사가의 역할을 뛰어넘어 자극적일 정도의 근대적 의식을 투영한 근대 이후의 역사가들의 시도에 대해 비판과 반성의 촉구를 요청하는 부분에 대하여도 필자의 견해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바이다.다음으로 2부에서는 “발해사 연구에서의 국가와 민족”을 다룬다. 발해사를 한국사로 편입시키려는 의도적인 작업에 있어서 발해에 대한 구조적인 이해를 멀리하고 지배층의 계승의식만을 강조한다거나 말갈족의 고구려화로 발해의 정체성을 확인하려는 태도에 대해서는 나 또한 반대하는 바이다. 발해가 구조적으로 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 다양하였고 독자적으로 발전하였다는 데에 대해서는 필자의 견해가 가치 있는 발언이라고 본다.그러나 기존의 발해사관에 대한 입장으로서 제시하는 근거를 비판하는 관점에서 신라와의 동족의식에 기초.
    독후감/창작| 2010.08.24| 6페이지| 2,000원| 조회(5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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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술 분야에 대한 검열이 필요하다
    예술 분야에 대한 검열이 필요하다.사회 도처에는 예술이 있다. 그만큼 예술이 미치는 파장도 크겠고, 따라서 예술이 가지는 책무 또한 있겠다. 책임 없는 자유는 방종이라 했다. 우리 조는 예술 분야뿐만 아니라 어떤 분야든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하지만, 보편적 가치를 침해하면서 까지 보장되어야 할 자유는 옳지 못하다고 생각하며 논의를 전개하겠다.근거1. 인간 사회가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가치를 부정하는 길에 이를 수 있다.예술 분야에 대한 검열에 이은 규제 없이 마구잡이로 허용하다 보면 문제가 생긴다. 살인, 강간, 성폭력은 말할 이유도 없고 잔인함, 폭력성, 선정성, 야비함 등이 묘사되는 부분이 있는 그대로 무분별하게 보여 진다면 청소년은 물론이거니와 어른에게도 심리적으로 문제가 된다. 실제로 괴테의 소설 은 출간 이 후 이를 모방한 권총 자살이 잇달아 일어나 사회적 문제가 된 바 있다. 성인에게까지 지나친 자유를 빼앗는 것 아니냐는 반문을 할 수 있지만 이미 예술 때문에 수없이 죽은 젊은이들의 목숨은 누가 보상할 것인가?근거2. 대중문화의 경우 파급효과가 큰 만큼 규제가 필요하다.예술분야를 순수예술 분야와 대중문화 예술의 분야로 나누어 보자면 파급력이 더 큰 것은 대중문화 예술 쪽이다. 수용자의 수준과 상관없이 급속도로 파급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텔레비전만 보더라도 특별한 제재조치 없이 청소년들이 그냥 볼 수 있다. 공영방송인 경우에는 더 심하다. 얼마 전 동방신기의 노래 가사 중 ‘언더 마이 스킨’과 비의 노래 가사 중 ‘매직 스틱’이라는 말이 선정성이 강하여 해당 가사에 대하여 시정조치가 내려진 바 있다. 대중문화 예술의 파급력을 생각해볼 때 충분히 일리 있는 조치였다. ‘네 몸 속에 돌고 있는 내 매직 스틱’이라는 가사를 부르고 다니는 어린아이들을 보면서 규제가 필요하지 않다고만은 할 수 없겠다. 성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예술이 미치는 영향이 어떨 지 생각도 않고 자유를 허용하자는 것은 방종에 가깝다.근거3. 예술은 수용자가 있는 만큼 수용자에 대한 심리적, 정신적 배려도 필요하다.예술에는 수용자가 있기 마련이다. 예술의 가치를 매기는 절대적 기준은 없다 하더라도 대부분의 사람이 충격을 받을 수 있거나 대부분의 사람의 기분이 불편해 질 수 있다는 기준은 있다. 최근에는 일본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후에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하하는 동영상이 UCC로 알려지면서 문제가 일었다. 이는 보편적 가치를 위배하여 보는 이에게 충격을 안겨준다. 백보 양보해서 수용자에 대한 배려를 하지 않아도 되는 예술이 있다 치자. 그렇다면 우리는 피장파장의 오류를 범하지 않는 한에서 그가 표현할 수 있는 자유만 허락하되 그러한 예술이 수용되는 과정에 일체의 규제를 가하지 않을 수는 없겠다.근거 4. 예술이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이용되는 경우 검열이 필요하다.예술이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이용되는 경우에는 특별히 검열이 더욱 필요하다. 예컨대 포르노가 그렇다. 포르노의 경우 예술은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전락하고 선정성 자체가 목적이 된다. 포르노와 같이 극단적 경우를 배제하더라도 예술이 수단으로 쓰이는 경우는 많다. 선정성을 띠고 자극적으로 접근하여 자본적 이득을 얻고자 예술의 형식을 빌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경우에 적절한 검열 조치가 없다면, 한낮에도 19금 프로그램을 방영하는 케이블 채널과 같은 문화예술이 판을 치는 사회가 될 것이다. 예술엔 자유가 있지만 보편적 기준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여지없이 보여주는 바라 하겠다.
    인문/어학| 2010.08.24| 2페이지| 1,000원| 조회(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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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학 기술의 발전은 인간다운 삶을 보장해 준다
    논제 : 과학 기술의 발전은 인간다운 삶을 보장해 준다.서론 : 과학기술의 정의와 발전 과정 및 사례, 인간다운 삶의 정의과학기술이란 사회과학과 자연과학 중에 자연과학을 주로 이용한 기술을 말한다. 기술의 사전적 정의는 “과학 이론을 실제로 적용하여 자연의 사물을 인간 생활에 유용하도록 가공하는 수단”으로 서술되어 있다. 이로써 과학기술이란 자연과학을 주로 이용한 이론을 인간의 생활에 유용하도록 하는 수단으로써 정의되겠다. 과학기술은 신석기 시대 이래 제작된 도기제조용 돌림판과 바퀴를 비롯하여 쟁기, 돌낫, 맷돌 등의 제작으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는 다시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의 관개술과 그리스로마 시대의 제련술로 이어진다. 이후 서양에서는 수력, 풍력등과 같은 자연력을 이용하는 데까지 나아갔고, 18세기 초에는 증기기관이 개발되어 철도시대의 개막을 알렸다. 토마스 에디슨은 후에 전기 분야를 개척하였고, 19세기 중엽에는 도시 가스 공급이 가능하게 되었으며, 후에 정교한 수술을 가능케 한 X선 사용,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의 전화 발명, 컴퓨터의 발전 등은 뒤이은 과학기술의 계보를 잇는다.여기서 우리의 논제 과학기술의 발전이 인간다운 삶을 보장해 준다는 점을 밝히기 위하여 선행되는 인간다운 삶에 대한 정의를 할 필요가 있겠다. 인간다운 삶이란 그 자체로서 인간의 자아실현을 구체적으로 할 수 있음에 의미가 있다. 형식적으로 보장된 인간으로서의 권리만을 의미할 뿐 아니라 그를 구체적으로 실현함에 의미가 있다는 얘기다. 따라서 인간다운 삶 안에서는 개인의 인간이 원하는 자아실현의 폭을 최대치로 끌어올릴 수 있어야 한다. 예컨대, 신석기 시대의 인간은 생존과 종족 번영을 추구하는 당시의 제일 목표에 대하여 자아실현의 폭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이에는 동물을 사냥할 수 있는 도구들과 그들의 가족이 머물 수 있는 주택 양식들이 필요했던 것이다. 역시 현대의 인간인 우리들도 역사와 과학기술 발전의 전제 아래 자아실현의 폭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이에는 역사 이래 발전한 과학기술의 가시적 결과물에 더하여 컴퓨터와 정보통신 기술 등이 필요했던 것이겠다.본론 :근거 ① 과학 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고유성에 유래한 결과이다.인간이 동물과 다름에는 생각하고 판단하는 능력과 도구를 사용하는 능력이 있다. 물론 도구를 사용하는 능력에는 생각하고 판단하는 능력이 함의되어 있다. 이에 따라 신석기 시대에 여러 도구들이 발견됨은 필연이겠고 그 뒤에 이은 수천년 과학기술 발전의 역사 또한 당연한 일이 되겠다. 이처럼 과학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고유성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아까 말했듯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는 자아실현의 폭을 최대치로 끌어올려야 하기에 과학기술이 꼭 있어야 하겠고 과학기술이 인간다운 삶을 보장한다고 하겠다. 물론 발전이 부재하여 인간이 수천 수만년간 신석기 인으로 살아감으로도 그 안에서 인간 개개인이 자아실현의 폭을 최대치로 올리며 삶을 영위해 나갈 수 있기는 하다. 그러나 과학기술은 인간 고유성에 유래하고 그러한 과학기술이 발전함에 있어서는 인간 고유성의 발로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는 바, 인간이 역사의 흐름 속에서 인간다운 삶을 하기 위해 자아실현의 폭을 최대치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과학기술의 발전함이 필요충분 조건이 될 수밖에 없겠다.근거 ② 자연과 인간에 대한 지식의 확장은 인간다운 삶에 대한 가능성의 폭을 넓혀주었다.우리가 현재 가진 자연과 인간에 대한 지식의 수준을 부재함으로 가정하자는 논의는 매우 힘들다. 만약 우리가 지금의 지식 수준을 버린다고 한다면 우리 중 누군가는 태양신을 위해 제물로 바쳐지거나 종교재판에 의해 처결되거나 마녀로 몰려 화형 되었을 것이다. 물론 그렇게 삶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그 속에서 자아실현의 폭을 최대치로 하며 인간다운 삶을 살아나가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과학기술로 말미암은 자연과 인간에 대한 지식의 확장은 그러한 인간다운 삶의 가능성의 폭을 넓혀주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쉽게 말하면 우리가 지금의 지식수준을 버리고 미신을 믿거나 종교에 맹신하는 것도 인간다운 삶으로서의 의미가 충분하다. 그러나 과학기술과 그러한 발전이 가져다 주는 지식의 확장은 미신만 믿어야 되거나 종교에 맹신해야만 하는 당위를 지우고 선택의 기회를 준다. 현재 지식의 수준이 이렇게 발전했지만 여전히 종교에 귀의하여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는 사람도 있고 그러한 삶이 때로는 존경받고 폭넓게 존중되기도 한다. 이처럼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는 자아실현의 폭을 그만큼 넓혀야 하는데 다른 개념으로 정의하자면 실현가능성의 폭이 넓어짐을 의미한다. 그 중 어느 지점을 선택하여 자아실현을 하고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느냐는 개개인에게 달려있다. 이 지점에서 과학기술과 그러한 발전은 실현 가능성의 폭을 최대치로 넓혀줌에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이는 예전에는 항공우주산업에 일생을 바치는 일이 불가능했지만 지금은 가능해 짐에 과학기술과 그러한 발전이 의의를 가지는 것이 되겠다.근거 ③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류의 복지 수준이 향상 되었다.원론적인 논의에서 좀 더 구체적인 근거를 들자면 우선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류의 복지수준이 향상되었다는 것이 그 첫 번째 근거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류의 복지수준이 향상은 거의 동시에 일어났다. 이는 과학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인간이 인간다운 삶을 위하여 필요한 자아실현의 실현가능성의 폭의 최대치가 확장되었음에 연결된다. 초기에는 관개를 하거나 집을 지어 정착 생활을 하는 데 그쳤지만, 이제는 병을 고치거나 예방하는 것에 이르렀고 의식주에 대하여 인간의 절박함이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 빈부격차니 하는 문제는 본 논의에서 제외되므로 논외로 치고, 이제는 단순한 전염병에 의해서 죽어야 하는 일이 없어지고 수도나 전기가 들어오지 못하여 그 전에 할 수 없었던 불가능함을 당연시 여겨야 함이 없어졌다는 얘기다.여기서 한 가지 논의를 추가하자면 과학기술이 발전할 수 밖에 없는 당위에 대한 것이다. 인간은 왜 기존의 과학기술을 가만히 두지 않고, 왜 기존의 복지 수준을 가만히 두지 않고 그 속에서 인간다운 삶을 지속적으로 영위할 방법을 택하지 않을 것일까? 이는 우선 두 가지 정도로 설명할 수 있다.첫 번째, 인간은 끊임없이 더 편함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이 인간의 고유성에서 발로한 것처럼, 그러한 과학기술이 발전함에도 인간의 본성이 기여한 것이다. 인간의 욕망이란 욕구와는 다르게 한 번 채워짐에 만족하지 않고 끊임없이 호소하는 경향이 있는데, 때문에 인간의 욕망은 다나이데스의 항아리에 비유되곤 하는 것이다. 따라서 과학기술은 발전할 수 밖에 없겠다.두 번째, 과학기술의 발전함에 인간다운 삶으로 영위함의 의미를 두는 이들 때문이다. 인간 중에는 과학기술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물론 있다. 지금에 이른 과학기술에 만족하고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려는 이들이 물론 있다. 그러나 인간이 역사의 흐름 속에서 과학기술의 발전을 이룬 것은 애초에 인간의 본성에 말미암아 어느 정도 발전을 이룩한 것도 있겠지만, 발전의 속도를 높이거나 발전의 가능성을 높이는 데에는 과학기술에 자신의 자아실현 목표를 두고 사는 이들의 역할이 크다. 이러함 때문에 과학기술과 그러한 발전은 마땅히 설명될 수 있겠다.
    인문/어학| 2010.08.24| 4페이지| 1,500원| 조회(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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