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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로버트 풋남의 `사회적 자본과 민주주의` 서평
    “사회적 자본과 민주주의” 서평내용 요약원제는 “Making Democracy work: Civic Tradition in Modern Italy”이다. 저자는 하버드 대학교의 정치학자 Robert D. Putnam이다.사회적 자본으로서의 신뢰와 시민적 참여가 어떻게 민주주의에 영향을 미치는 지질적 연구와 계량적 분석을 통해 밝힌다. 이탈리아의 정치변화와 민주주의 이론과 실재를 담고 잇는 책이다. 지역정부 개혁을 위한 헌법조항을 실천하는 문제가 어떻게 해결되는지 살펴본다. 이 연구는 1970년의 인터뷰에서 출발하여 25년간 제도발전을 측정하며 그 연속성과 변화의 추적을 담아내었다.총 6장으로 서술하였으나 내용상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본다.첫 번째, 제도의 성취에 대한 연구에서 민주주의 제도의 성취(performance)의 문제를 다룬다.즉 공식제도가 정부 혹은 정치 실체에 영향을 미치는가, 제도 개혁 시 실질적인 변화가 이루어지나, 제도 성취와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환경, 민주적 제도의 이식, 새 환경의 적응 문제 그리고 마지막으로 민주주의의 질과 시민의 질에 대하여 탐구한다. 여기서 특이한 점은 민주주의 제도가 독립변수로서 변화에 기여하는 것과 종속변수로서 결과에 기여하는 측면 모두 연구하였다는 것이다.연구 대상은 1970년부터 25년동안 20개의 지역정부를 대상으로 한다. 이들의 지방자치 실현이 각기 서로 다른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여건에서 어떻게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했는가를 살펴본다.연구 방법에서 가설로 사용된 것은 (1)제도는 역사를 틀지운다 (2)제도는 역사에 의해 형성된다 (3)제도의 성취는 제도가 작동하는 사회적 맥락에 의해 규정된다.라고 밝혔으며 사회적 맥락에 의해 제도의 성취가 규정된다는 것은 잉그라트와 같은 설명이다.제도의 성취 측정은 사회적 요구가 정치적 상호작용에 영향을 미치고 그것이 정책으로 선택되어 실행된 것을 성취라고 한다. 또 높은 성취의 민주적 제도는 반응성과 효과성을 갖고 있다. 여기서 효과성은 보다 경제학적 관점에서 시민이 원하는 것을 산출(output)해 내는 가에 대한 기준이다.연구 방법으로는 통계기법과 역사적 접근을 쓰고 있다.두 번째, 제도의 개혁과 지방정치의 변화이다. “제도개혁은 어떠한 변화를 가져오는가?”를 독립변수로서의 제도 측면에서 살펴본 결과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결론을 얻는다. 지역개혁은 풀뿌리 정치에 영향을 미친다. 또 새 제도는 정착, 자율적으로 작동, 유권자의 지지를 얻는다. 제도개혁을 통해 지역정부가 유권자와 더 가까워지나 행적적인 효율성의 문제가 발생하여 지역간의 차이를 심화시킨다. 제도개혁에 대한 지역단위의 평가는 남부와 북부 모두 긍정적인 것으로 나타났다.초기의 변화는 지역정부로의 권한 이양의 요구에서 시작 되었다. 변화의 과정에서 지역의회가 구성되고 이념적 탈분극화와 정당간 관용도의 증가, 정치인의 실용성 증가 등등 정치권 전반의 특징이 변화되었다.이 결과 지역자율성이 심화되었으며 선거행태가 변화되었다. 예전에 정당일체감에 기반한 투표 행태는 후보 개개인의 역량에 따라 선호를 표현하게 되었다. 지역정부에 대한 만족도는 북부가 남부보다 컸으나 새 제도를 거부하지는 않았다.대의 정부의 효율성과 반응성의 측정으로 12개의 지표를 관찰하였다. 내각의 안정성, 예산정책의 신속성, 통계,정보 서비스, 개혁입법, 입법혁신, 탁아시설, 보건소, 산업정책수단, 농업예산 집행능력, 보건정책집행, 주택 및 도시개발, 관료의 반응성 등이 있다.마지막으로 6장에서 사회적 자본과 제도의 성공을 논한다. 집단행동이 딜레마를 소개하고 사회적 자본, 신뢰 그리고 계에서 그것을 어떻게 해결하려고 하는지 소개한다. 호혜성의 규범과 시민적 참여의 네트워크가 죄수의 딜레마를 푸는 열쇠이다. 역사와 제도의 성과가 사회적으로 균형이 이뤄질 때 제도의 성공이 있다고 저자는 역설하고 있다.비판연구방법론적인 면에서 비판을 가하자면 다양한 도구를 썼기 때문에 원하는 결과를 의도적으로 도출해 낸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점이다. 통제변인이 존재하고 비교할 대조실험군이 있었더라면 더 측정결과의 신뢰성을 높일 수 있었을 것이다.한편 시민 공동체의 이론적 검증에서 그 지표를 개발하는 데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 결사체생활과 신문구독율이다. 결사체생활은 조류관찰 클럽, 조기 축구회 등과 같은 소모임이 몇 개나 있고 거기에 사람들이 얼마나 참여하는 지를 측정하여 시민 공동체가 발달했는지 판단한다. 과연 그 클럽들을 선정하는 기준은 자의적이지 않은가? 또 신문구독율을 보자. 신문구독도 문화, 스포츠 활동과 마찬가지로 경제적 기반이 있어야 하는 활동이다. 즉 풋남의 지표 중 다수는 그 지역의 경제적인 수준을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에 시민 공동체만을 이론적으로 검증해 내었다고 하기 어렵다.마지막으로 역사적인 유추에서 왜 하필이면 11세기의 이탈리아 인가 하는 설명이 충분히 되어 있지 않다. 다른 세기를 선택하여 설명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결론적으로 이 연구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 한 가지는 사회적 맥락과 역사가 제도의 효과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즉 지역적 토양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활성화된 시민사회가 있는 곳에는 민주적 정부가 약화되는 것이 아니라 더욱 강화된다는 토크빌의 견해가 옳았던 셈이다. 이탈리아 남부의 지역자치 연구 결과를 토대로 제도의 역사는 매우 느리게 움직인다는 점을 확인하였으나 호혜성 규범과 시민적 참여의 네트워크를 만들기 위해 국가적 차원에서의 주도권에 의존하기 보다 지역 내의 구조를 바꿀 수 있는 지방적 차원의 개혁을 도모하는 것이 중요하다. PAGE * MERGEFORMAT 1
    독후감/창작| 2009.12.21| 3페이지| 1,000원| 조회(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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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끼리는 생각하지마 서평 평가A+최고예요
    2009년 2학기 선거와 의회 2009.12.1“코끼리는 생각하지마”(조지 레이코프 저) 서평저자 소개조지 레이코프(Geroge Lakoff)세계적으로 저명한 언어학자로, 진보적 비당파 연구기관인 로크리지 연구소의 창립 선임 연구원이면서 리처드&로다 골드만 기금 교수로서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에서 인지과학과 언어학을 가르치고 있다. 1980년대 중반부터 정치적 논쟁을 프레임으로 구성하는 데에 인지언어학을 응용해왔다.1960년대에 대학원생이었던 레이코프는 자신의 스승이자 20세기 언어학의 대가인 촘스키에게 도전장을 내밀었고, 후일 ‘언어학 전쟁’이라고 불리게 될 대논쟁을 일으켰다. 당시 언어학계 전체가 거의 두 쪽으로 갈라지다시피 한 이 논쟁은 한마디로 합리주의와 경험주의의 대립이 요약될 수 있다. 촘스키는 인간의 감각경험과 상관없이 존재하는 보편적인 통사 법칙이 모든 언어의 기저에 존재하며, 이를 발견하는 것이 언어학의 목적이라는 입자이었던 데 반해, 레이코프는 언어가 본질적으로 마음의 작용이며 신체와 감각 기관의 산물이라고 주장했다.촘스키가 자신의 정치비평과 언어학 이론의 상관관계를 (적어도 명시적으로는) 강하게 부정하는 것과 달리, 레이코프는 자신의 인지 이론을 정치 분석에 직접 적용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현실 정치에 활용하고 있다.그는 1970년대부터 은유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해서, 그 연구결과를 “삶으로서의 은유” “인지의미론”등의 책으로 발표했다. 전통적으로 은유는 시 같은 문학 작품에만 쓰이는 특수한 수사법의 하나라고만 여겨져 왔는데, 그는 우리가 사고하고 행동하는 개념 체계가 본질적으로 은유적 성격을 띠고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추상적인 개념에 대해 말하려면 언제나 무의식적으로 은유의 층을 빌려야 하며, 비은유적인 사고는 순수하게 물질적인 것에 대해 말할 때만 가능하다는 것이다.그는 이러한 자신의 은유이론을 정치학에 적용하여 미국 정치를 언어적으로 분석한 “도덕의 정치”라는 책을 집필했다. 이 책에서 그는, 미국인들은 무의식적으로 ‘가족’이라는 은유를 통해서 정치 이데올로기를 인식한다고 주장한다. 그에 다르면 미국의 보수주의 정치는 가족들에게 강한 도덕적 질서를 부과하는 ‘엄격한 아버지’ 모델을 통해, 진보주의정치는 자식들을 돌보고 자식들로 하여금 남을 돌보도록 가르치는 ‘자상한 부모’모델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 미국의 유권자들 대부분은 두뇌 안에 두 가지 프레임을 다 지니고 있으며, 정치인들이 어떤 프레임에 의거한 언어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이 중 어떤 모델이 작동되는가가 결정된다고 한다.서평레이코프가 말하는 Family value의 적용에 있어서 유교 문화권에서도 그것이 설명력을 가질 수 있을까 하는 의문과 함께 책의 첫 부분부터 나의 관심을 끌었다. 그리고 이 책을 재미있게 속독하고 난 후 답을 얻을 수 있었다.제 1부 3장 결혼이란 말이 의미하는 것에서는 게이 결혼에 대하여 주 정부가 동성과 결혼하지 말라고 제한할 이유가 없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부시가 진보주의자들의 지지르 잃지 않기 위해 ‘게이 결혼’이라는 단어 사용을 자제했다고 설명한다. 부시의 보수주의자들은 ‘엄격한 아버지 모델’의 프레임으로 동성간의 결혼을 불허하는 입장이지만 진보주의자들은 ‘자상한 부모 모델’에 입각해 동등한 부모 두 명이 존재하고 자녀들을 공감하고 책임지며 양육하도록 인도한다. 그들에게 동성 간의 결혼을 배제하는 요소가 없다는 뜻이다. 만약 부시가 연설에서 ‘게이 결혼’이라는 말을 계속 사용했다면 동성 간의 결혼이라는 개념은 더욱 정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질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신들의 가치를 지켜내기 위해 전략적으로 행동한 것이다.최근 한국에서 ‘혼인빙자간음죄’가 위헌이라고 판결이 났다. 아직도 일부 보수주의자들은 여성들을 보호할 수 있어야 한다고 성화지만 성생활에 대한 결정권은 여자도 충분히 가지고 있고 또 이런 사적인 영역까지 법에서 성생활 결정권을 여자도 가지고 있고, 사적인 영역까지 법에서 규제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 여성평등에 대한 이슈는 조금 오래되긴 했지만 진보주의자들이 작동시킨 ‘여성 해방’ ‘여성권리찾기’ ‘성차별금지법안’등을 통해 대중들의 두뇌에 깊숙이 자리잡는데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이제는 보수주의자들도 유권자들을 의식해 반대하기 어려운 쟁점이 되어버린 것이다.레이코프는 기자들의 역할을 언급하며,“보수주의적 프레임을 불러일으키는 구절을 계속해서 반복하여 들려주고, 그런 식으로 쟁점을 정의하는 것은 우익이 오랫동안 써먹어온 전략이다. 이런 반복을 거치면서 그들의 언어는 정상적인 일상 용어가 되며, 그들의 프레임은 정상적이고 일상적인 사고방식이 된다. 기자들은 이를 똑똑히 깨닫고 여기에 말려들지 말아야 할 의무가 있다.”라고 서술한다.나는 이 쯤에서 기자들의 역할에서 더 나아가 방송언론의 독립성을 지적해 보고 싶다.현재 독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는 지상파 3개사는 과연 공정성을 유지하고 있는가? KBS와 같은 국영방송은 프레임을 국민에게 쇠뇌시키는 것이 아닌가? 대통령이 임명한 신임 사장을 직원들이 반대하고 시민단체에서도 반대를 표명하는 이유는 무엇일까?레이코프가 말한대로 프레임을 반복시키기 위해서는 언론을 장악하는 것이 정치세력들에게 중요한 일이 될 것이고, 광고비로 운영되는 언론사들의 사정으로 추측컨대, 미국이나 한국의 프레임을 조성하는 데 언론이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보수주의자들은 대중 매체의 영향력이 매우 파급효과가 크기 때문에 그 사업자를 제한할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이지만, 거꾸로 리버럴한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여러 가지 시각을 공감하고, 다른 사람들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는인식의 통로가 아예 차단되는 것이다한편 1부의 4장 테러의 은유에서는 9 11 이후 보수주의자들의 국가안보 프레임 작동에 대해 설명한다. “징벌이 곧 정의이다”라는 ‘엄격한 아버지 모델’에 입각한 기치이다.그는 또 미국의 민주당 진보주의자들이 논의의 프레임을 재구성해야 한다고 역설하며 “변화를 원하면 스스로 변화가 되십시오”라고충고했다.08년 미국 대선에서 오바마의 연설 가운데유권자들의 마음을 흔든 한마디는 “We needa CHANGE”였다. 외국인들도 쉽게 알아들을수 있는 그의 간결하면서도 명확한 수사학은공감과 책임이라는 진보주의의 자상한 부모 프레임의 적절한 예라고 생각한다.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경제 위기에 봉착했고, 부시의 대테러리즘 전쟁으로 지쳐있는 가운데 미국의 번영을 되찾기 위해서는 모두가 자신의 책임을 통감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돌봐야겠다, 변화가 필요하다는 정신적인 유대감을 형성해야했다. 오바마는 그 것을 해냈고, 그의 성장 배경과 정치적 경험, 그리고 조지코프가 말한대로 프레임 작동에 성공했기 때문에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이다.저자는 급진적 테러리즘의 원인을 사회정치적 조건, 종교적 세계관, 물리적 수단으로 보면서, 부시를 비롯한 네오콘들이 물리적 수단의 원인으로만 시각을 좁히고 있다고 비판한다.급진적 이슬람주의자들을 설득하는 것은 서구가 해낼 수 없고, 온건한 이슬람주의자가 해 내야 한다고 말한다.또 부시 행정부가 테러에 테러로 응징하는 방법은 똑 같은 테러리스트가 되는 것뿐이라고 하면서 대테러리즘의 중심 개념이 ‘책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진보주의/리버럴의 도덕은 공감에서 시작되며,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돕는 책임감은 모두 공감을 전제로 한다.책임감은 능력과 효율성을 요구한다. 대규모 폭격은 무책임한 행동이다. 테러의 사회적치적 조건, 종교적 세계관, 물리적 수단 의 원인을 모두 다루는 국제적인 협력과 행동을 시작하는 것이 책임 있는 반응이다.부시가 아프가니스탄에서 발전소,급수 공장, 병원 등의 기반시설을 파괴하여 민간인들을 죽게 만들었다. 테러리스트들이 한 일과 다른 것이 무엇인가?아프가니스탄 재파병을 한국에 요청했고한국은 사실상 재건팀을 파병하기로 약속했다. 악에 대항하는 것이 세계국의 의무이자책임이고,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의 입지를굳힐 수 있을 것이라는 찬성 의견들이 있다.허나 어떤 명분이든 민간인 살상이 우려되는 곳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위해 싸워야하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선과 악의 싸움 한가운데에 있는 보수주의자의 도덕에서는, ‘사소한 악’은 묵인되며 심지어 불가피하게 일어날 수 있는 일로 여겨진다.” 전체를 위해서 작은 것을 희생시킬 것이냐의 문제는 정말 풀기 어려운 문제이다.2부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에서 구체적으로 우익이 원하는 것, 그리고 극우들의 사고 방식에 대해 이야기한다.인간은 신의 율법을 사람들은 따라야 하고 그를 위해 훈육받아야 한다. 잘 따르면 상을 주고 그렇지 않으면 벌을 받는다도덕적 질서는 우위가 정해져 있다. 자연
    독후감/창작| 2009.12.21| 8페이지| 2,000원| 조회(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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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민국 선거이야기 서평 평가B괜찮아요
    2009년 가을학기선거와 의회“대한민국 선거이야기” 서평목차저자 소개내용 요약1강 쟁점이 많은 초기의 선거들2강 이승만, 자신이 쳐놓은 직선제 덫에 걸리다3강 박정희는 국민의 지지를 받았나4강 유신체제와 전두환 정권을 뒤흔든 두 총선5강 민주화 시대의 선거와 지역주의느낀 점선거제도와 엘리트 민주주의지역 감정성장 제일주의저자 소개서중석1948년 충남 논산에서 출생했다. 서울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서울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9년부터 1988년까지 동아일보사 기자로 재직했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역사문제연구소 소장을 거쳐 현재는 연구소 고문을 맡고 있다.주요 저서로 『1980년대 민중의 삶과 투쟁』, 『한국현대민족운동연구 1·2』, 『조봉암과 1950년대 상·하』,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현대사』, 『한국현대사 60년』, 『이승만과 제 1공화국』 등이 있다.내용 요약1강 쟁점이 많은 초기의 선거들1948년 5·10 선거자유민주주의는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로 넘어오면서 노동운동 등이 격렬해지고, 자본주의 사회를 전복시키려는 폭력적·혁명적 투쟁이 고취되는 사태에 직면했을 때 부르주아 계급을 중심으로 한 대타협의 결과로서, 보통선거제도가 그 특징이라고 얘기할 수 있다.그 이전에는 제한선거로 일반 노동자, 농민한테는 표를 안 주거나 혹은 주더라도 일부만 주는 등 지주나 부르주아 또는 귀족에게 투표권이 한정되어 있었다. 노동계급이 성장하면서 그들을 대변하는 정치세력이 강화되자 일정 연령 이상의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한 표를 주는 보통선거제도가 성립된 것이다.그렇다면 우리나라의 보통선거는 언제 최초로 실시되었는가? 1948년 5·10선거이다. 일제지배에서 해방되어 유엔에 의해 탄생된 대한민국이 미국과 유엔의 관리하에 치른 선거이며 이것이 과연 제대로 된 선거인가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5·10선거는 선거인등록제가 실시되었는데 선거 한 달 전1,262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억지로 등록자, 이승만 정권은 그들을 투옥하는 등 온갖 방법을 동원해 탄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에서는 조소앙이 조병옥을 누르고 전국 최다득표로 당선되었고, 무소속이 과반수를 넘는 126석을 차지했다. 한민당을 계승한 민국당은 참패했다. 제 2대 국회는 문을 연지 얼마되지않아 전쟁이 발발해 중도파 정치인들이 납북되는 등 어려움을 겪었지만, 전쟁 중 피해대중의 입장에서 그들을 대변하는 역할을 많이 했다. 이 선거에서 당선된 조소앙이나 안재홍 등의 중도파 의원들은 정치력도 있고 명망이 높았던 사람들이라 납북된 것이 안타깝고 이들이 있었다면 전쟁으로 극우반공주의가 강력히 작동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이승만 독재가 강화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2강 이승만, 자신이 쳐놓은 직선제 덫에 걸리다1956년 5·15 제3대 대통령 및 제4대 부통령 선거1956년 5·15 정부통령 선거는 격전의 연속이었고, 야당 후보가 돌풍을 일으켰다. 이 선거에는 대통령 후보와 부통령 후보로 자유당에서 이승만과 이기붕이, 민주당에서 신익희와 장면이, 진보당 추진위원회에서 조봉암과 박기출이 나왔다. 야당에서 두 명의 대통령 후보가 나오자 각계에서 야당 후보 단일화를 요구하였다. 신익희 후보가 선거운동 도중 서거함으로써 야당 후보 단일화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듯했다.그러나 민주당은 조봉암보다는 이승만을 선호했다. 그래서 조봉암에게 표가 가지 못하도록 신익희 추모표를 던지라는 희한한 투표를 권장했다. 이승만은 자유당 후보로 지명되자마자 또다시 선거에 나가지 않겠다고 해서, 대규모 민의 소동이 벌어졌다. 이 선거에서는 대도시 중심으로 야당의 인기가 대단했고, 자유당은 크게 미움을 받고 있다는 것이 역력했다. 이때 민주당의 “못 살겠다 갈아보자”는 구호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1958년 5·2총선과 1960년 3·15 부정선거1958년 5·2 선거는 그때까지 치른 선거 중 가장 혼탁한 선거였다. 공직자들이 대거 동원되고, 경찰이 노골적으로 개입해 폭력이 난무했다. 개표도 별의별 부정이 다 동원되었고, 3월 15일 마산항쟁에서 8명이 경찰 발포로 사망했다. 4월 19일 서울·부산·광주 등지에서 수십만 명이 참여한 대규모 유혈시위가 벌어져 서울에서만 100명이 사망하는 일이 벌어졌고 4월 26일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 성명을 낸다.3강 박정희는 국민의 지지를 받았나1971년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 선거1971년 4월 27일의 대통령 선거는 박정희가 3선개헌 이후 이후 처음 치르는 대통령 선거로서 큰 전환점이었다. 야당에서는 40대 기수론을 내세운 김영삼과 김대중이 부각되었다. 1970년 9월 신민당 대통령 후보 지명대회 2차 투표에서 김영삼을 누르고 역전승한 김대중은 빈부 격차의 해결, 4대국 안전보장, 남북 간 비 정치적 교류 등 파격적인 공약으로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 이에 비해 박정희는 “이번이 마지막 출마”임을 강조하며 눈물로 표를 호소하였다. 이 선거에서는 영남 지방 중심으로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흑색선전이 난무했다. 개표 결과 영남에서 몰표를 받은 박정희가 김대중을 누르고 다시 당선되었다.민심이 변화를 원한다는 것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드러났다. 1971년 5월 25일에 치러진 국회의원 선거에 이변이 일어났다. 전체 의석 204석 중 공화당은 113석, 신민당은 89석으로 개헌 저지선을 20석이나 상회했다. 역사상 최초의 균형 국회가 탄생한 것이다.4강 유신체제와 전두환 정권을 뒤흔든 두 총선1972년 유신헌법과 선거1971년 대선과 총선 결과를 지켜본 박정희는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재집권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여, 1972년 10월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국회를 강제로 해산시켰다. 그리고 11월 21일 유신헌법을 통과시키고, 12월 27일 이를 공포했다. 대통령 선거는 직선제가 폐지되고, 유신 헌법에 따라 조직된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간접선거를 하도록 했다.국회의원 선거방식도 바뀌었다. 총의석 3분의 2는 한 선거구에서 2명씩 뽑는 중선거구제 방식을 택했다. 또한 국회는 국정감사권도 박탈당하고, 정기국회·임시국회 회기도 줄어들어 활동기반이 상당히 취약국민들의 지지를 잃었다는 징표로 이해되었다. 이에 용기를 얻은 야당과 ‘민주세력’들의 반유신투쟁이 강화되어, 1979년 부마항쟁으로 전개되었다. 12·12 선거 후 기울기 시작한 유신독재 권력은 결국 궁정동 사건으로 몰락하였다.5강 민주화 시대의 선거와 지역주의1987년 대통령 선거와 1988년 국회의원 선거6.29 개헌으로 마련된 신헌법에 의거해 제 13대 대통령 선거가 1987년 12월 16일 실시되었다. 개헌안이 확정되기 이전에 이미 야당의 대통령 후보 각축전은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김영삼과 김대중 후보의 단일화 요구가 높았으나 성사되지 못하고, ‘4자필승론’을 제기하며 김대중은 평화민주당 후보로 김영삼은 통일민주당 후보로 각각 대선에 출마했다. 16년 만에 실시된 대통령 직선이었던 만큼 국민들의 관심도 아주 높았다. 후보들은 세 과시를 위해 청중 동원에 힘을 다했으며, 상대방에 대한 흑색선전도 대단하였다.또 처음으로 후보자들이 텔레비전에 출연하여 유세를 하였다.이 선거에서 노태우는 야권의 분열 덕분에 36.6퍼센트라는 낮은 득표를 했음에도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제 13대 대선에서 지역감정이 기승을 부리는 등 부정적인 사태들이 적지 않게 발생했다. 1988년 4·26총선은 17년 만에 처음으로 소선거구제로 치러진 선거였다. 그 전해 치러진 대통령 선거보다 더 지역주의가 위력을 보인 선거였다. 민정당은 34퍼센트, 민주당은 24퍼센트, 평민당은 19퍼센트, 공화당은 16퍼센트를 획득했는데, 거의 다 지역표였다.느낀 점선거제도와 엘리트 민주주의이 책을 읽으면서 현재의 보통선거제도에 대해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건국 초기에 헌법을 기초할 때부터 소수의 엘리트들이 주도했듯이 선거제도도 국민적 합의로 성립된 것이 아니라 일부 정치 엘리트들이 원하는 제도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정치의식이라고 하는 민중들의 시각은 소수 엘리트에 의해 조작된 측면이 분명히 있다. 일례로 이승만 박사가 2선까지 대선에서 승리하고 3선에는 나가지 않겠다고 정치적인 이끌었다는 평가이다. 하지만 성장제일주의로 인해 민족간의 감정이 상하게 되고 무슨 짓을 해서든지 돈만 벌면 된다, 남한테 해를 끼쳐도 된다, 나만 잘살면 된다 등의 사고 방식이 국민의 머리에 자리잡게 되었다.경제발전이 우선이고 인권이나 정의, 성실과 같은 가치관들은 그 후에 실현이 되도 마땅하다는 사람들의 평가는 박정희 시대의 천민자본주의와 이기주의가 몸에 배어있는 것이다. 세계에서 11번째 경제대국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해외언론에서 한국을 보도할 때면 , 국회의사당에서 격렬하게 몸싸움을 하고 있는 의원들의 사진이 빈번히 실리고 총선이나 대선 후에 선거법 위반으로 상당수가 재보궐 선거를 치르는 것을 보면 경제 수준과 정치 의식 간에 균형 부재로 아직까지는 선진국이라고 당당하게 칭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성장 제일주의와 물질 만능주의로 사회전체의 부를 증대시키더라도 그 안에서 소득의 불균형과 인간존중 상실의 결과가 오늘날의 높은 자살률이라고 말하고 싶다. 현 정부가 ‘4대강 살리기 사업’ 을 추진하면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개발 독재’시절을 떠올리게 된다. 그 때의 국민의식과 참여는 마땅히 현재의 그것들과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다. 진정한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하루빨리 ‘성장 제일주의’ 의 잔재를 버려야 할 것이다.지역주의와 선거서중석 교수가 5강에서 1987년의 대통령선거가 1971년의 선거 못지않게 지역주의로 상처투성이가 되었다고 평했다. 1988년 총선에서는 민정당 34%, 민주당 24%, 평민당 19%, 공화당은 16%를 획득했는데, 거의 다 지역표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이다.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이렇게 크게 세 지역으로 대한민국이 갈라져 서로 싸운 것이다.그 이유로 이승만, 박정희 정권 이후에 유권자가 민주시민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었다는 점을 들고 있다. 6월 민주항쟁에서 ‘호헌 철폐·독재 타도·직선제 쟁취’와 같은 구호를 국민들이 외쳤는데, 이것이 이루어지고 나니 막상 그 후에 주장할 것이 없었던 것이다.또 지역이기주의가 압도적인 위력을 보인.
    독후감/창작| 2009.12.21| 8페이지| 2,000원| 조회(4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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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일전쟁
    청일 전쟁 The Sino-Japanese War (1894년 6월~1895년 4월)전쟁 직전의 상황전쟁 이전의 청-일 관계일본은 1876년 조선과의 강화도 조약을 체결하여 조선이 자주국임을 인정하고 다음해 부산에 거류지를 설정 곡물의 매점과 무관세 특권으로 공산품을 수출하며 조선에 진출하였다. 82년 최초의 반일운동인 임오군란이 일어나자 일본은 제물포조약을 체결하여 일본공사관 주둔병의 허용을 내용으로 하는 주병권을 장악하고, 84년에는 김옥균, 박영효 등 개화파를 후원, 갑신정변을 일으켰으나 실패하여 오히려 텐진 조약을 체결하였다. 이 내용은 군대의 철수를 약속하고 이후 한국에 출병할 때는 상호 통고하기로 약속하였다.전쟁 전 일본의 상황1880년대 후반 값싼 노동력을 발판으로 급속히 발전한 일본자본주의는 1890년에 시작된 경제공황을 통해 그 모순을 드러냈다. 값싼 노동력의 국내시장 발전 제약과 섬유공업.군수공업 등에 대한 수년간의 투자확장이 공황의 원인이었다. 1889년 흉작으로 인한 쌀 생간의 감소도 공황을 더욱 촉진시켰다. 결국 1890년도의 일본 경제는 심한 수입초과를 나타냈으며 일본은 무역불균형을 타개하기 위해 해외시장 침략을 꾀하게 되었다. 1890-94년 일본 의회에서 나타난 일본 지배층 내부의 대립 격화와 농민. 노동자들의 경제상태 악화 및 불만의 증대는 지배층의 침략기도를 부추겼다.전쟁 전 청나라의 상황텐진조약 체결으로 청나라와 일본의 군대는 조선으로부터 철수하였으나, 청은 위안스카이를 조선에 상주시키고 조선의 내정, 외교에 대한 간섭을 강화하고, 경제적으로도 청국의 진출이 크게 향상되는 등, 청은 조선에서의 패권을 계속 유지하려고 하였다.청일 전쟁의 전개 과정1894년 6월 1일, 조선에서 동학농민운동 발생동학농민운동을 진압하기 위해 조선 정부는 청나라에 지원을 요청하였다. 양력 6월 6일에 청나라가 2,400명을 파병하자 6월 8일 일본도 톈진조약에 근거하여 동시에 조선에 파병함으로써 세력 만회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1894년 6월 21대문을 장악하였다.한편, 조선 정부는 일본의 강요로 청나라와의 통상무역장정을 폐기한다고 발표함으로써, 조-청간의 국교를 단절시키고, 일본군은 조선 정부의 요청을 받은 것처럼 위장하여 Hyperlink "http://100.naver.com/100.nhn?docid=104994" 아산만에 주둔중인 청군을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아산만 앞바다에 있는 풍도(豊島)에서는 청의 육군을 싣고 오는 청의 함정을 일본군이 습격하여 참패시키고 말았다. 여기서 청나라 군사 1,200여명이 익사하였다. 이미 청·일 두 나라 군대가 조선 내에서 충돌한 것이다(1894. 7. 25, 새벽). 이어서 성환(成歡)에서도 두 나라 군대가 충돌하여 일본군이 압승하였다. 이 마당에 양국은 선전포고를 하고 이제야 전면전으로 돌입하게 되었다(8.1).그 후 평양 전투에서도 역시 일본이 승리하였으며 Hyperlink "http://100.naver.com/100.nhn?docid=107975" 압록강 어귀에서 벌어진 해전에서도 청군이 패주하였으며, 일본은 Hyperlink "http://100.naver.com/100.nhn?docid=54371" 랴오둥 반도의 뤼순을 함락하였다. 일본 해군은 우세한 전력으로 연승하며, Hyperlink "http://100.naver.com/100.nhn?docid=85047" 산둥반도의 웨이하이웨이[威海衛]까지 점령한 후, 최후로 유공도(劉公島)의 함대를 격파하여, 결국 북양함대(北洋艦隊)는 전멸하고 말았다. 청나라 북양수사제독(北洋水師提督) Hyperlink "http://100.naver.com/search.nhn?query=%C1%A4%BF%A9%C3%A2" 정여창은 항복문서와 함께 모든 군사물자를 일본에 양도하고 자결하였다. 일본군은 랴오둥반도·발해(보하이이)만·산둥반도를 장악하고, 북경·천진을 위협하였다. 남쪽에서는 펑후섬을 점령하고, 끝내는 청국 전체를 정복할 기세였다.1895년 열강의 중재와 시모노세키 조약일본이 청국 전체를 정복할 기세를 보이자 영을 할양받았다. 그러나 만주로의 진출을 꾀하는 러시아는 일본이 랴오둥 반도를 장악하는 것에 위기감을 느끼고, 러시아 프랑스 독일 3국이 이에 간섭하여 랴오둥반도를 중국에 반환토록 압박하였다. 이에 따라 일본은 랴오둥 반도를 중국에 반환하였다.청일 전쟁의 역사적 의미동양패권의 이전-양무운동과 메이지 유신, 그리고 청일 전쟁청일 전쟁 이전까지 동양에서 중국이 하나의 패권으로 위력을 떨쳤다면 일본은 이제 청일전쟁의 승리로 동양의 패권을 쥐게 되었다. 이것은 서양문명에 대한 개항 태도와 관련이 있다. 1840-42년 청나라는 영국과 아편전쟁으로 서양에 개방을 하게 된다. 이보다 10여 년 늦은 일본도 1853년 개항을 하게 된다. 10년의 기간 차이보다 중요한 것은 청나라는 양무운동, 일본은 메이지 유신으로 근대화가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청나라의 양무운동은 지배층에서 개혁을 주도하였지만 집권층인 서태후의 반대로 실패하였으며 일본의 메이지유신은 지배층과 집권층이 뜻을 같이한 성공한 개혁이라고 볼 수 있다. 근대화 방식의 차이가 경제, 군사력에서의 우위를 유인했고 그 결과 청일전쟁,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함으로써 동양패권이 청에서 일본으로 이전되었다.일본-조선 지배권 강화일본은 강화도 조약에서 청으로부터 ‘조선의 독립’을 규정한 이래 일본의 1차 목표는 조선에 대한 중국의 전통적 영향력 배제였지만 현실적으로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일본은 1884년 갑신정변을 지원함으로써 조선에 대한 청국과의 공동 출병권을 확보하는 성과를 올렸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으로 인한 조선의 혼란은 일본이 기다렸던 일이었고, 조선의 요청도 없이 파병하여 청군에 도발함으로써 조선 확보 결전에 나선 것이다. 청일전쟁에서 승리하여 시모노세키 조약으로 조선의 완전 독립을 못박고, 대내적으로 국권론과 민권론으로 분열되었던 국론을 국권 우선의 팽창론으로 통합하는 계기가 되었다. 조선 지배권을 이 때부터 공고화하여 미국과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함으로써 ‘free handle’을 인정받게 된다.중국-제국주의1년 만주사변, 1937년의 중일전쟁을 거치며 일본과의 전면전이 1945년까지 지속되었다. 또 1941-1945의 태평양전쟁은 제 2차 세계대전의 일부이지만 그 핵심은 중국을 둘러싼 미국·일본 양국의 반세기 상쟁의 최종 결전이기도 했다. 근대화로 서양에게 배운 제국주의를 동양에게 엄격하게 적용하고 있는 반(伴)서구의 일본과 미국, 러시아, 독일 등이 중국에 관심을 가지고 간섭, 개입함으로써 중국은 동양 패권국에서 제국주의 종속국가로 몰락하였다.조선-표면적인 독립, 또 다른 지배조선의 Hyperlink "http://ko.wikipedia.org/wiki/%EB%AA%85%EC%84%B1%ED%99%A9%ED%9B%84" o "명성황후" 명성황후는 러시아의 힘을 빌려 일본 세력을 몰아내고자 하였다. 일본은 이에 큰 위협을 느꼈고, Hyperlink "http://ko.wikipedia.org/wiki/1895%EB%85%84" o "1895년" 1895년 Hyperlink "http://ko.wikipedia.org/wiki/%EC%9D%8C%EB%A0%A5_6%EC%9B%94_21%EC%9D%BC" o "음력 6월 21일" 음력 6월 21일에는 일본 공사 Hyperlink "http://ko.wikipedia.org/w/index.php?title=%EB%A7%88%EC%9A%B0%EB%9D%BC&action=edit&redlink=1" o "마우라 (아직 생성되지 않음)" 마우라가 지휘하는 일본군의 2개 대대가 Hyperlink "http://ko.wikipedia.org/wiki/%EB%AA%85%EC%84%B1%ED%99%A9%ED%9B%84" o "명성황후" 명성황후의 침소인 Hyperlink "http://ko.wikipedia.org/w/index.php?title=%EA%B1%B4%EC%B2%AD%EA%B6%81&action=edit&redlink=1" o "건청궁 (아직 생성되지 않음)" 건청궁에 난입하여, Hyperlink "http서에 서명을 강요하며 위협하였다. 그러나 Hyperlink "http://ko.wikipedia.org/wiki/%EA%B3%A0%EC%A2%85" o "고종" 고종이 그것을 거부하자 Hyperlink "http://ko.wikipedia.org/wiki/%EC%84%B8%EC%9E%90" o "세자" 세자에게 칼을 휘두르는 등의 만행을 저질렀다. 일본은 조선을 압박하여 Hyperlink "http://ko.wikipedia.org/wiki/%EC%9D%84%EB%AF%B8%EA%B0%9C%ED%98%81" o "을미개혁" 을미개혁을 실행하였으나, 민중들의 반발로 무산되었다.1896년 2월,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이동한 Hyperlink "http://ko.wikipedia.org/wiki/%EC%95%84%EA%B4%80%ED%8C%8C%EC%B2%9C" o "아관파천" 아관파천을 감행하여 조선 내에서 일본의 세력은 감소하였다. 이듬해 고종은 Hyperlink "http://ko.wikipedia.org/wiki/%EB%8D%95%EC%88%98%EA%B6%81" o "덕수궁" 덕수궁으로 환궁하여 Hyperlink "http://ko.wikipedia.org/wiki/%EB%8C%80%ED%95%9C%EC%A0%9C%EA%B5%AD" o "대한제국" 대한제국을 선포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러일전쟁으로 또 다시 일본이 승리하면서 1910년 한일합병부터 외교권까지 상실하고 45년까지 35년의 식민지배를 받게 된다.청일전쟁에 대한 의견청일전쟁은 중국이 동아시아의 거대 패권국가에서 밀려나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에 휘말려 들게 됨으로써 근대 역사의 판도를 바꾸어 놓았다. 역사적 상상력을 동원하여, 청일전쟁에서 병력 63만의 청나라가 24만의 일본군대를 이겼다고 생각해보면, 조선의 미래는 어떻게 되었을까? 일본이 패하고 조선에서 영향력을 상실하여 청나라가 한반도를 장악하게 되면 러시아가 위험에 빠질 것이므로 청러 전쟁이 일어났을 것이다.중화적 유교 질서에 편 과제
    인문/어학| 2009.12.21| 5페이지| 2,000원| 조회(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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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야쿠르트 기업 개괄
    한국 야쿠르트건강(健康)사회(社會)건설(建設)유산균, 발효유유산균?발효유 제품- 액상상발효유 야쿠르트, 호상발효유 슈퍼 100, 농후발효유 윌발효유/우유액상발효유요러케, 야쿠르트, 야쿠르트 400, 뿌요, 에이스,쿠퍼스,농후발효유윌, 메치니코프호상발효유슈퍼100 premium우유청정농장 깨끗한 우유, 하루우유채소주스하루야채, 350밸런스 하루야채, kids흑마늘 음료라면왕뚜껑, 도시락, 비빔면, 장라면, 일품(짜장, 해물짬뽕),틈새라면, 기타봉지, 기타용기음료비락식혜,비락수정과,칡즙, 홍삼,샘물지리산 맑은샘한국야쿠르트 는 1969년 ‘건강사회 건설’이라는 창업 이념으로 우리나라에 유산균 발효유를 처음 소개했다. 현재 1만3000명의 ‘야쿠르트 아줌마’들이 고객을 직접 찾는 방문판매를 계속하고 있다. 이 덕분에 발효유 시장에서 43%가 넘는 시장점유율로 선두 자리를 지키고 있다.그런데 한국야쿠르트의 성장은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중앙연구소의 연구개발(R&D) 능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경기도 용인시 기흥에 위치한 중앙연구소는 특허 균주 24개를 비롯해 총 65종 2000여 개 이상의 유산균을 보유하고 있다. 95년에는 한국인 유아의 장에서 분리한 한국형 비피더스 유산균 HY8001을 개발해 처음 제품에 적용했다. 국내 최초로 발효유의 종균을 생산해 낸 것이다.기능성을 강화한 발효유도 적극 개발하고 있다. 2000년 탄생한 ‘헬리코박터 프로젝트 윌’은 기능성 발효유의 신기원을 이룩한 제품이다. 연구소에서 개발한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억제 항체계는 국내외에서 특허를 획득했고, 위암을 억제하는 생약 추출물도 특허 기술을 인정받았다.2004년 9월 출시된 ‘쿠퍼스’도 이 연구소의 작품이다. 쿠퍼스는 간 기능 활성화에 초점을 맞춘 발효유로 임상시험을 통해 그 효능이 입증됐다. 2009년 8월 헛개나무 열매 추출 분말을 추가한 ‘헛개나무 프로젝트 쿠퍼스’도 개발했다.중앙연구소는 80여 명의 전문가들이 유산균을 중심으로 생명공학에서부터 신소재 부문까지 연구 분야를 확대하고 있다. 유산균과 유전공학을 접목하는 연구와 함께 다양한 고기능성 제품도 개발 중이다. 유산균 발효유 제품 외에도 유기농 야채즙 ‘하루야채’와 흑마늘 음료 ‘천년의 식물 산’도 개발했다. 2005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배리 마셜 박사와 공동 연구도 내년 12월까지 진행할 예정이다. 허철성 중앙연구소장은 “지속적인 R&D 투자를 통해 프랑스의 파스퇴르 연구소와 같은 세계적인 연구소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헛개나무 추출 음료 봇물`헛개나무프로젝트 쿠퍼스, 헛개나무 닥터제로, 헛개 컨디션파워….``헛개나무` 열매 추출물을 담은 음료들이 잇따라 출시되고 있다.헛개나무는 중국 고서 본초강목, 본초습유, 당본초 등에 `술독을 푸는 데 으뜸이 가는 약`으로 전해져 왔고, 일반인들이 가정에서 헛개나무 열매나 줄기, 잎 등을 달여 마시는 경우도 많았다.한국야쿠르트는 지난 8월 `헛개나무프로젝트 쿠퍼스` 제품을 선보였다. 헛개나무 중에서도 가장 효능이 좋은 열매 부위를 공급받아 이 추출물 2460㎎을 제품에 함유했다.한국야쿠르트 관계자는 "매출이 예상을 뛰어넘어 생산라인을 밤낮 없이 가동하고 있다"며 "단순히 발효유가 아닌 건강기능식품으로 식품의약품안전청에서 인증받은 제품"이라고 밝혔다.한국야쿠르트는 또 숙취해소음료인 `닥터제로`에 헛개나무 성분을 넣은 `헛개나무 닥터제로`를 내놨다.CJ제일제당은 지난 7월 헛개나무 열매로 만든 `헬프칸` 제품을 내놓은 데 이어 스테디셀러 숙취해소음료인 `컨디션`에 헛개나무 열매 추출물을 12%가량 첨가한 `헛개컨디션파워`를 출시했다.이 제품에는 헛개나무 열매 외에 글루메이트, 글루타티온, 자리, 황기, 연꽃씨 추출물, 타우린, 니아신 등 숙취해소에 좋은 성분이 포함돼 기존 컨디션파워보다 숙취 증세를 완화시키는 효과가 뛰어난 것으로 알려졌다.이밖에 유산균식품 제조업체인 `앤텍바이오`는 발효건강기능식품 `청인해장환`에 헛개나무 열매와 갈근을 넣었다.2009년 11월 웹진양기락 사장님 말씀2009년 9월 식품업계 최초로 국가고객만족도 12년 연속 1위로 선정영업경쟁력 강화-고객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마케팅 전략의 전개, 더 높은 고객가치 창출을 위한 새로운 고개관리시스템 도입, 그리고 고객에게 좀 더 가까이 가기 위한 현장영업 전개여사님 활동- 전동카 지급과 난지고 오토바이 지급 확대 계획,수금 및 고객관리 문제 해결 위해 결제 방법 다양화 준비장기애음 고객을 위한 마일리지 제도제품개발-8월 출시된 ‘헛개나무 프로젝트 쿠퍼스’+친절대상 수상자 아주머니-강북지점 노인, 장애우 들 지구 내 쓰러진 사람 발견해 119에 신고하기도.마케팅 전략슈퍼 100 프리미엄 화이트 신제품!광고-유승호… 20대 여성 공략. 꽃남을 모델로 경쟁사와의 차별화 시도경쟁사는 ‘로망의 대상’을 모델로.. 김연아,(매일 유업 바이오거트 퓨어)매일유업 프로모션-바이오거트 퓨어 뚜껑 8개 모아서 우편으로 보내면 캐나다 여행 또는 김연아 금메달. 김연아 기념 set 주는 행사 (2009.11.16-2010.1.15) 응모된 제품개수마다 1%씩에 해당되는 금액을 불우이웃돕기로 기부85g 650원 정도/무색소, 무향료, 무안정제로 웰빙에 목마른 소비자 공략.-떠먹는 불가리스 650원 100g 문근영스포츠 마케팅-왕뚜껑 홈런존. 올해 프로야구 역대 최다관중600만 들어 ‘왕뚜껑’ 브랜드 노출 많아짐수춢 시장83년 팔도라면 으로 수출 시작. 러시아에서 도시락 라면 인기가 매우 높음2007년 3천 5백만 불. 2010년 목표는 4천9백만불..
    경영/경제| 2009.12.21| 4페이지| 1,000원| 조회(8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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