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석헌 사상의 가능성과 재조명의 필요성-‘함석헌 평전’을 읽고-나는 수능 사회탐구 영역의 여러 과목 중 국사와 근현대사를 선택했었다. 교과서 속 작은글씨 하나도 놓치지 않고 훑어봤었던 나는 어디에서도 함석헌의 이름을 본 기억이 없다. 교과서 뿐 아니라 그 어느 곳에서도 말이다. 그러나 속에서 그려지고 있는 함석헌은 여러 의미에서 교과서에 당당히 이름을 올릴 만한 충분한 여지가 있어 보인다. 그럼에도 이토록 함석헌이 대중에게 배제된 이유는 무엇일까?을 완독한 뒤 내게 다가온 함석헌은 바로 '민족 운동가'였다. 한국 역사의 격동기였던 20세기를 온몸으로 살아온 그는 일제 때에는 일제에 맞서 대항하였고, 이승만 정권과 박정희 정권 때는 각각 그들에 반하여 민주화와 ‘씨알’들의 인권 향상을 위해 활동한 민족 운동가였다. 그는 객체가 아닌 주체로서의 민중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하여 씨알이라는 단어를 특히 많이 구사하였는데, 이것만 보아도 함석헌은 우리 민족에 대한 많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함석헌은 참 특이한 인물이었다. 좌익도 우익도 아니었고, 기독교인도 탈기독교인도 아니었다. 언뜻 너무 중립적 입장을 고수하는 것이 아닌가 하여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함석헌의 생애에 걸친 다양한 체험 등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간다. 함석헌은 어린 시절에 기독교를 체험했다. 당시의 기독교는 식민지를 살아가던 씨알들에게 잠시나마 일본의 늪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구실을 하였다. 함석헌은 대체로 순종 온순파 청소년이었으므로 별다른 사건 없이 성장하였지만 계몽 의식을 가지고 있던 친척들의 영향을 입어 비로소 자신의 인생 전환점이 된 3.1운동을 맞이하게 된다. 3.1운동 당시 마음껏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며 민족의식에 고취되었던 그는 곧 이어진 일제의 문화·분열 정책으로 인해 교회가 점점 탈정치화의 성향을 띠게 되는 것을 느끼고 자신의 종교에 대해 의구심을 느낀다. 그러던 중 두 스승인 이승훈과 다석 유영모를 만나 독립의 중요성과 각종 동양의 고전 철학에 대한 지식을 쌓는다. 그는 동경에서 생활하며 우치무라를 만나 종교적 신앙과 민족애를 접합시키는 방법에 대해 배우고 무교회에 참여하게 되지만, 곧 현실에 참여하지 않는 무교회에 회의를 느낀다. 그 후 함석헌은 무교회에 대한 회의를 감옥에서 습득한 동·서양의 철학, 특히 노장 사상으로 극복하게 된다. 더 나아가 그는 탈기독교 선언을 하기도 하지만, 이것이 기독교에 대한 본질적인 이탈은 아니다. 훗날 함석헌이 몸을 담게 되는 퀘이커회도 기독교의 한 종파이기 때문이다. 함석헌은 개인적인 스캔들로 인한 진통을 겪은 후에 앞에서 말한 교리에 대한 믿음만큼 현실 문제에 대한 관심과 인도주의적인 활동도 동등하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퀘이커 교도가 된다.이처럼 함석헌은 진리를 포착하기 위해서는 고정 관념을 깨는 탄력적인 사고가 요구된다고 주장하며 다양한 종교를 보편적 시각에서 포용하려는 노력을 보였다. 그러나 기독교 신자로서 다른 종교에 대한 함석헌의 관용과 사상적 포용성은 그와 동시대를 살았던 대부분의 한국 기독교인들로부터 환영받지 못했다. 오늘날조차 어떤 기독교인들은 함석헌의 종교적 관용성을 이상한 시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하물며 함석헌이 활동했던 시기는 다원적인 사고가 아직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때이다. 전통적으로 뿌리 깊게 박혀있는 유교 사상, 교조적인 풍토로 흘러가고 있는 한국 기독교. 지금까지 이어져오던 전통 사상과 한국 기독교 사고에 위배되는 함석헌의 사상은 이런 면에서 우리에게 널리 알려지지 못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실제로 기독교 중심주의로부터 이탈하여 노장 사상 등의 동양 철학까지 널리 수용하고자 했던 함석헌의 시도는 대부분의 교회 지도자들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었으므로, 한국 교회계에서는 그를 이단자로 낙인찍기도 했었다.또한 함석헌이 알려지지 않은 것에는 함석헌 자신의 개인적인 이유도 있는 듯한데, 그것은 바로 여성 문제였다. 이에 대해 함석헌은 자신이 변명의 여지가 없는 죄를 지었다고 직접 언급한 바 있다. 사건의 전말은 속 시원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 사건으로 인해 함석헌은 스승 다석 유영모에게도 버림받았으며 사회 전체로부터 질타를 받고 고립되었다. 그 당시나 지금이나 이성과의 스캔들이 가시화되는 것은 한 개인에게 모든 면에서 치명타가 될 수 있다. 지금까지 쌓아온 업적이나 이미지가 한꺼번에 무너질 수 있을 정도의 사건인 것이다. 여러 사람의 존경과 선망의 대상이 되는 인물에게 이런 단점이 발견되는 것은, 일차적으로 인간적인 면모를 생각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엄청난 실망으로 이어질 수 있고, 이는 반대 세력에게도 좋은 기회로 작용했을 것이다. 이 하나의 사건으로 함석헌은 자신을 따르던 무리와 자신을 비난하던 무리 둘 모두에게 엄청난 타격을 받았고, 이는 곧 함석헌 개인에 대한 평가 절하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언어의 마법으로 새롭게 창조된 세계-오규원 시집을 읽고-시인을 언어를 최대한으로 자유자재로 이용하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나는 오규원 시인을 언어의 마술사라고 말하고 싶다. 그의 시집을 읽으면서 나는 이제까지의 시들과는 색다른 면에서 시를 읽는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시인의 화려한 마법에 정신을 놓아버린 나는 시인의 삶이라든지 사상, 또는 시에 반영된 현실보다는 시 자체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시집에서 그는 세계의 사물들에 의미를 부여하고 강조하는 방법으로 뛰어난 상상력과 독창적인 언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의 시에서 나타나는 세계가 나에게 너무나 낯설고 적응하기 어려웠다. 그만큼 그의 시는 글자 그대로 이해하려고 하면 읽기가 어려운 시였다. 하지만 시어들을 천천히 꼭꼭 씹어 삼키면서 이미지를 떠올리며 읽자 그가 그려내고 있는 세계는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상상의 세계가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고 있는 장면들임을 알 수 있었다. 예를 들어서 “글쎄, 이빨사이에 끼인 죽은 바다는 빼냈다니까”라든가 “그해 죽은 사람의 헛기침 소리 하나가 느닷없이 행인의 뒷덜미를 후려치고 간다.”와 같은 표현들을 살펴보면 얼핏 보기에는 의미상으로 전혀 이상한 표현들로 일관하고 있다. 하지만 그 시어가 갖고 있는 느낌에 집중해서 이미지와 장면을 떠올리면 시인이 어떤 말을 하고자 하는지 이해가 가능하다. 이처럼 언어들이 가지고 있는 특성을 이용해서 의미상으로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표현을 통해서도 마주칠 수 있을법한 장면들임을 알게 해준다는 점에서 시인의 뛰어난 관찰력과 표현력이 돋보이는 것 같다.사실 그의 시 대부분에서는 특별한 주장이나 이데올로기 같은 관념적인 의미보다는 대상이 가지고 있는 속성을 시적으로 표현하려고 하고 있어서 어떤 의도적인 공통점을 찾기가 어려웠다. “쓸쓸한 도시 빌딩의 창문” 이라는 표현이 자주 쓰인다는 점에 있어서 그의 감정을 약간이나마 추측할 수 있었을 뿐이다. 이러한 점에 있어서 오규원 시인의 시는 어떻게 보면 수수께끼 이거나 말장난 같은 시로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의 시는 분명 그의 주변 세계와 그의 생각이 반영되어 있다. 그 방법으로 그는 주로 의인법을 사용하고 있다. 사물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의지와 감정을 가질 수 있게 만들어 버림으로써 사물이 가지고 있는 특성이 강조되어진다. 하지만 의미를 지니고 있지는 않았다. 특정한 주장이나 관념은 독자에게 맡긴 것 같다고 생각되는데 시에서 사용되는 시어들은 독특하지만 어떤 고정된 의미를 지니고 있지 않기 때문에 또한 다양하게 해석될 수도 있을 것이다. 시인의 상상력에 의해서 사용된 어휘는 나의 상상력에 의해서 이해되고 있었다. 시집을 넘기며 내가 느꼈던 풍성함이나 화려함은 아마도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느껴졌던 것이리라. 사물의 특성을 파악하고, 그것을 적절하게 표현해낼 수 있는 시어를 선정하는 뛰어난 능력은 시를 읽는 나에게 마치 마법을 부리는 것과도 같은 효과를 나타나냈다. 이러한 느낌은 이번이 처음이었기에 이제까지 시가 품고 있는 의미에 중점적으로 감상을 하고 있던 나에게 있어서 충격이었고 시를 읽는 동안에 뭔가에 홀린 기분이었다. 마치 마법에 걸린 것처럼… 이번 시집은 언어의 찬란하면서도 신기한 힘을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던 정말 좋은 경험이었다. 오규원 시인의 뛰어난 표현력과 상상력에 찬사를 아끼고 싶지 않다.
연암 박지원의 문학론 에 나타난 소설관1. 박지원 소설관의 특징박지원의 문학론에서 나타나고 있는 주장을 바탕으로 박지원이 갖고 있는 소설관의 특징은 네 가지 특성으로서 정리해 볼 수 있다. 이 네 가지 소설관에는 조선시대에서 마땅히 그래야 하는 것으로서 고수되어 오고 있던 문학의 경향에 대한 비판정신이 드러나 있다. 또한 연암의 소설작품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데 그것은 그의 이러한 주장에 대한 예를 자신의 글로서 설명해 주고 있다. 즉, 자신의 이론을 모두 연암이 직접 작품에서 실천함으로써 보여주고 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가.【사실주의적 문학관】㉠ 생각이나 느낌을 있는 그대로 나타내야 한다.㉡ 이를 위해 뜻과 글자를 꾸미지 말아야 한다.㉢ 사소한(하찮은) 것, 혐오스러운 것도 기꺼이 표현해야 한다.글이란 뜻을 표현하면 그만일 따름이다. 저 제목을 대하여 붓을 잡은 이가 갑자기 옛말을 생각하고는 억지로 경전의 지취(旨趣)를 찾아 뜻을 근엄하게 꾸미고 글자마다 장중하게 만들려고 애쓰는 것은 비유하자면 화가를 불러서 초상을 그릴 때에 용모를 고쳐 앞에 내놓는 것과 같다. 눈동자는 구르지 않고 옷의 주름살은 잡히지 않아서 보통 때의 모습을 잃어버리고 마니, 비록 훌륭한 화가라 할지라도 그 참모습을 얻기란 어려울 것이다. 글을 짓는 사람도 역시 이와 무엇이 다르겠는가?)말이란 반드시 큰 것만 말할 필요는 없다. 한 푼, 한 호(毫), 한 이(釐)만한 것도 다 말할 수 있는 것이니, 기왓장이나 조약돌이라고 해서 어찌 버릴 것인가? 그런 까닭에 도올(??)은 모진 짐승이지만 초 나라의 역사책은 그 이름을 빌려서 썼고, 사람을 때려 죽여 묻는 흉악한 도적놈이라도 사마천(司馬遷)이나 반고(班固)는 이를 서술하였으니, 글을 짓는 이는 오직 진실해야 할 따름이다.)위의 글에서 주장하는 박지원의 사소한 것, 하찮은 것, 추하고 혐오스러운 대상 따위도 버리지 말고 있는 그대로 표현해야 한다는 주장은 소설문학을 위해 아주 필요한 주장이다. 소설이란 생생한 장면의 전달을 생명으로이 아닐 따름인 것이어서 나는 그것이 저것이 됨을 알지 못하겠노라.)연암의 인식체계에서 중요한 점은 대상의 가치를 상대적 관점에서 파악하려 했다는 점이다. 연암에 의하면 옛 사람들은 그들의 현재적 시점에서 대상을 인식했기 때문에 우리가 옛 사람들을 중시한다면 우리도 그들이 그랬던 것처럼 대상을 현재적 시점에서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는 것인 만큼 현재인이 현재적 시점을 버리고 과거의 시점을 기준으로 대상을 인식하려 한다면 올바른 대상인식에 도달할 수가 없으며. 그 걸과 거짓에 떨어지고 만다는 것이다. 그래서 연암은 옛 것과 같아지려 하고 옛 것에다 비교하려는 행위를 부정했다. 연암의 이런 주장은 당시의 보수적 고문론자나 의고주의자들을 겨냥하고 한 말이었지만 또한 전통적 가치관을 뒤엎고 가치인식상의 새로움을 보여주는 것이어서 주목된다.)‘지금(현재)’의 시점에서 대상을 인식하고 ‘지금(현재)’의 모습과 정태를 사실적으로 표현해야 한다는 연암의 주장은 다른 어떤 문학 양식보다도 소설이란 문학양식에 잘 부합되는 주장이다. 소설이란 특정의 시대상황 속에서 살아가는 인물의 모습을 생동감 있게 그리는 것을 생명으로 삼는다. 그렇기 때문에 작자는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그가 처한 상황을 제시할 때 지금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인 양 실제와 같은 사실감을 자아내기 위해 심혈을 기울인다. 독자가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의 삶 속으로 빠져들어 가게 되는 것은 인물과 그가 처한 상황의 모습과 정태가 지금 눈 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처럼 실제와 같이 묘사되어 있기 때문이다.실제로 연암이 ‘현재’와 ‘즉사’를 강조한 것은 그가 창작한 소설의 보편적 특성과도 잘 연결된다. 연암은 ‘지금(현재)’의 모습과 정태를 ‘지금(현재)’의 시점에서 눈에 보이듯이 그려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런 주장에 걸맞게 연암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그가 살던 당대의 실제 인물들이었다. 그의 소설에는 소재를 과거에서 취택했거나 현실을 넘어선 환상 속에서 가져온어나 조선 중심적 사고를 지녀야 한다.㉢ 조선의 언어와 운율을 바탕으로 조선의 인정과 풍습을 노래해야 한다.연암의 이런 문학관은 대체로 시를 대상으로 한 것이지만 그렇다고 반드시 시의 경우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연암의 소설 속에서 이런 문학정신은 더욱 잘 구현되어 나타난다. 연암소설이 하나 같이 당대 현실을 그린 것이라는 사실은 앞에서 이미 살펴보았다. 또 연암소설은 모두 당대 현실을 그리고 이를 문제 삼은 것이라는 점에서 조선 중심적 사고가 잘 구현된 문학이라 평가할 수 있다.연암은 비록 한문으로 소설을 지었지만 소설체 문장에 걸맞는 문자의식을 지니고 있었다. 앞에서 이미 살펴보았듯이 연암은 뜻을 근엄하게 꾸미고 글자마다 장중하게 만들려는 행위를 거부하고 필요하다면 사소한 것, 혐오스러운 것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이런 의식은 연암이 「소단적치인(騷壇赤幟引)」에서 글자의 운용의 문제와 관련하여 어떤 글자도 버릴 것이 없다고 한 문자의식과)도 잘 통하는 점이다. 어떤 글자든 잘 운용하여야 하며, 뜻이나 글자를 꾸미지 말아야 한다는 이런 문자의식은 현상에 대한 핍진한 묘사를 생명으로 삼는 소설에 매우 적절한 문자의식이라 할 수 있다.)연암의 이런 문자의식은 그가 소설 속에 우리말식 표현이나 속담, 격언 등을 사용하고 있는 점과도 무관하지 않다. 연암의 작품 속에는 ‘의원이 자기 병 못 고치고 무당이 제 굿 못한다.“()라든가, ”열 번 찍어 넘어가지 않는 나무가 없다.“, ”구둘목에 아첨할 바에는 차라리 아궁이에 아첨한다.“()와 같은 우리 말 속담이나 격언 따위가 자연스럽게 등장하고 있는데, 이런 우리말 속담이나 격언이 등장하는 것은 뜻이나 글자를 꾸미지 말고 어떤 글자든 효과적으로 운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문장의식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우리말 속담이나 격언의 등장은 연암 문장의 문체적 특성을 대변하는 것이며 구어적 표현을 통한 소설체 문장의 확립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특히 연암이 자신의 작품 속에 우리말 이 형식이나 시각의 개발이다. 즉 매일 접하는 즉사들도 새로운 맛과 정이 나도록 새 그릇에다 담아야 한다는 것이 연암의 생각이다. 연암은 ‘오래 묵은 장도 그릇을 바꾸어 담으면 새로운 맛이 나고, 항상 느끼던 정도 경우가 달라지면 생각하는 마음과 바라보는 눈이 함께 옮아간다’고 했다. 여기서 ‘오래 묵은 장’이란 ‘비이’나 ‘측루’에 해당하는 일상의 ‘즉사’를 비유하여 한 말로, ‘그릇을 바꾸어 담는다’는 것은 일상의 진부한 대상을 새로운 형식의 옷을 입혀 내놓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경우가 달라진다'는 것은 같은 대상을 전혀 다른 상황에 같다놓고 바라보는 것, 다시 말해 시각을 달리하여 대상을 바라보는 것으로, '생각하는 마음과 바라보는 눈이 함께 옮아간다'는 것은 대상을 바라보는(또는 대상에서 느끼는) 마음이나 시각이 새로워진다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연암의 이 말은 일상의 현상을 그리되 대상을 새로운 형식에 담아 그릴 것을, 새로운 마음이나 감각에 젖어들 수 있도록 새로운 시각에서 그릴 것을 요구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연암의 이런 문학관도 그의 소설 속에 잘 구현되어 나타난다. 연암소설의 중요한 특성 중의 하나는 형식의 새로움에 있다. 먼저 연암소설의 형식상의 새로움은 전통 「전」의 형식을 취했으면서도 전통 「전」과는 크게 다른 모습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연암의 소설에서는 인물의 일대기 형식은 사라져 버렸고, 행적의 사실적 제시보다는 인물의 개성적 형상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설명적?사건 중심적 서술보다는 묘사적? 장면 제시적 서술이 강화되었으며, 사건과 사건 사이의 인과적 논리성이 강하고, 세계를 향한 작자의 목소리나 의도가 보다 뚜렷이 드러나 있다. 한 마디로 연암의 「전」은 전통 「전」에서 멀리 벗어나 소설로서의 성격을 보다 뚜렷이 갖추고 있다.뿐만 아니라 연암의 소설은 작품마다의 특성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독특한 형식적 기법을 개척했다. 예를 들면 , , 등은 대체로 작자가 직접 보았거나 사귀었인 성향을 지니게 되었다. 한편 대부분의 고전소설은 현실이 아닌 몽환의 세계나 현재가 아닌 과거의 사건을 즐겨 다루었다는 점에서 볼 때 연암은 우리의 소설비평사상 특히 사실주의적이면서도 현실주의적인 소설관을 정립시키는데 큰 공헌을 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생각이나 느낌을 있는 그대로 나타내야 한다’는 그의 주장 속에는 이러한 사실주의적 소설관이 그대로 드러나 있으며, 더 나아가 이를 위한 구체적인 방법론으로써 남다른 문자(언어)의식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할 만하다. 그것은 사소하고 혐오스러운 것까지도 기꺼이 표현해야 하며, 사실의 참모습을 위해 글자를 꾸미지 말 것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이것들은 사실주의적 문학을 위한 구체적 방법론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일상의 현상을 그리되 새 형식에 담아야 한다거나 조선의 인정과 풍습을 노래해야 한다는 주장은 현실주의적 소설관의 구체적인 방법론으로서 마땅히 주목되어도 좋을 만한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소설비평사상 연암은 사실주의적이면서도 현실주의적인 소설론을 개척한 공로자로 높이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나. 19세기 프랑스의 보들레르와의 비교)연암은 문학인으로서의 글 쓰는 방법에 대해 논하고 있으며, 비평적 수준에 있어서 서구에서 유입된 비평문화가 아닌 국문학에 있어서 이미 비평문학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 특히 그의 이론은 19세기 중엽 이후 최근에 이르기까지의 모더니즘 운동의 선구자로 평가받고 있는 프랑스의 보들레르의 비평이론과 많은 부분에 있어서 비슷한 점이 발견된다. 우선 첫째로, 보들레르와 박지원은 당시 절대적으로 우선시하던 미적 가치 판단 기준과 이를 무분별하게 따르는 작품에 대해 비판하고, 상대적인 가치와 그 시대에 맞는 가치로서의 미학을 주장했다는 점이 같다.) 두 번째로 보들레르는 자신이 추구했던 새로움에 대해서도 단순히 새로움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불변하는 미적 가치의 존재를 작자 주변의 현대적인 것에서 찾고자 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형식주의적 특
허균의 한문소설과 박지원의 한문소설의 공통점과 차이점1. 들어가며허균이 남긴 문학작품은 참으로 방대하다. 산문문학 작품으로는 허균의 산문의식이나 사상을 첨예하게 드러내고 있는 「論」·「序」·「說」·「跋」등의 글, 시화집인 ·, · 등의 「記」 및 ···· 등의 전과 우리나라 최초의 국문소설이라 일컬어지는 이 있으며, 운문문학 작품으로는 방대한 양의 한시가 전해져 오고 있다. 이처럼 다양하고 풍부한 문학유산 때문에 종래 국문학계에서는 허균에 관한 연구가 활발하게 전개되어 왔으며, 그 결과 괄목할 만한 연구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연암 박지원은 당시의 집권 계층인 노론 명문가에서 태어났으나, 그의 자유 분방하고 진보적인 체질을 그를 고답적인 성리학 세계나 지위 지향적인 과거의 길에서 벗어나게 하여 새로운 문학과 사상을 추구하게 하였다. 연암은 조선 후기 변모하던 서울의 도시적 분위기에서 성장하며, 북학파 선비들과 깊게 사귀며 그만의 문학과 사상을 형성하게 된다. 연암은 문학을 할 때 옛 글을 그대로 따르거나 중국의 전범을 답습하지 않고 당시의 조선 현실에 맞는 문학을 추구하여 수많은 작품을 남겨 놓았다. 그의 문집인 『연암집』에는 「記」·「序」·「跋」 등과 같은 전통적인 한문학의 양식으로 쓰인 글들과 함께 당시 시정의 인물들을 주로 등장시킨 한문 단편 소설, 즉 연암 소설이 실려 있다. 연암의 소설 가운데 먼저 제1기 젊은 시절에 지은 작품으로는 , , , , , , , , 이 있는데 이 가운데 , 은 서문만 전하고 있다. 제2기 『열하일기』소재의 작품으로는 , 이 있는데, 그의 원숙한 실학사상이 유감없이 형상화되어 있다. 제3기에는 만년 안의 현감 재직시에 지은 이 있다.)2. 허균의 한문소설과 박지원의 한문소설의 공통점허균이 활동했던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초반은 견고하게 정립됐던 유교적 질서가 모순을 드러내고 서서히 변화하기 시작했던 유교사회의 전환기에 해당한다. 기존의 사회 기강과 가치관이 크게 혼란을 일으키며, 그 결과 조선 초기의 확고했던 유교적 질서 특징은 전통적 문학관에서 벗어나 새로운 문학세계를 지향하고자 한 데서 찾아질 수 있다.)허균이 전통적 문학관을 거부하고 새로운 문학세계를 지향했다는 사실은 그가 산문작품을 창작하게 된 사실과도 무관하지 않다. 전통적 문학관을 거부하고 새로운 문학세계를 지향하고자 한 의식은 기존의 문학형식을 거부하고 새로운 형식의 문학을 지향하고자 하는 의식과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가 실제로 전통 한문양식인 「記」와 「傳」을 과감히 변용하여 새로운 문학양식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었던 것(특정인물의 삶을 허균 나름대로 재구해 본 것으로 작가 나름대로의 창작적 의식을 가미해 이루어 놓은 새롭고도 독특한 문학 양식)도 새로운 문학세계를 지향하고자 한 의식이 밑받침이 됐던 때문이다.) (연암소설의 중요한 특성 중의 하나는 형식의 새로움에 있다. 먼저 연암소설의 형식상의 새로움은 전통 「전」의 형식을 취했으면서도 전통 「전」과는 크게 다른 모습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연암의 소설에서는 인물의 일대기 형식은 사라져 버렸고, 행적의 사실적 제시보다는 인물의 개성적 형상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설명적?사건 중심적 서술보다는 묘사적? 장면 제시적 서술이 강화되었으며, 사건과 사건 사이의 인과적 논리성이 강하고, 세계를 향한 작자의 목소리나 의도가 보다 뚜렷이 드러나 있다. 한 마디로 연암의 「전」은 전통 「전」에서 멀리 벗어나 소설로서의 성격을 보다 뚜렷이 갖추고 있다.)허균과 박지원은 모두 조선시대에 마땅히 그래야 하는 것으로서 고수되어 오고 있던 문학의 경향에 대한 비판정신을 가졌던 인물들이다. 이러한 의식은 작품 속에 고스란히 반영되었으며, 여기에서 둘의 공통점이 파생된다.2-1. 등장인물허균과 박지원의 한문소설에는 한미한 신분의 인물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허균이 관심을 기울이고 형상화하고 있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신분상 보잘것없는 인물들이다. 이달은 천첩소생의 서출이며, 남궁두는 아전출신의 중인이며, 장생은 비렁뱅이 천민이며, 엄처사는 몰락한 양반으로 보이고제를 더욱 효과적으로 드러내었다.2-2. 사회비판허균과 박지원이 작품 속에서 제기하고 있는 문제는 위의 등장인물들을 불우하게 만들고 있었던 당대사회의 문제였다. 허균의 속의 이달이 일생을 불우하게 지낼 수밖에 없었던 것은 속례를 거부하는 성격 때문이기도 하나 보다 본질적인 원인은 그가 서출이라는 신분적 제약 때문이었다. 또한 중인과 걸식하며 살아간다는 신분적 이유로 장산인이나 장생의 능력을 알아주지 않는 모습은 인재의 가치를 저버리는 경직된 유교사회의 모순을 나타낸다. 이런 소설을 통해서 현실의 장벽을 넘지 못하여 불우하게 살아가는 특별한 능력의 소유자를 통하여 당시 사회가 내포한 대립적 현상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은 타락한 유교사회를 문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약간 성격을 달리하는데, 엄처사는 모범적 유자의 삶을 살아감으로써 타락된 유교사회를 비판한다. 따라서 이 작품은 유교사회 자체의 모순의 심각성을 보다 포괄적으로 고발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상에서 보듯 허균의 한문소설들은 모두 당대사회의 모순을 심각하게 거론하고 있는 작품들이다.박지원은 좀 더 다양한 방향으로 사회 비판 의식을 드러낸다. 에서는 양반의 본분을 지키지 않고 곡학아세하며 결국 자신의 신분마저 팔아버리는 양반의 무능을 고발·폭로하며, 에서는 풍자의 주체인 호랑이를 내세워 북곽선생으로 하여금 스스로 모든 가식과 위선을 폭로하도록 구성하여 양반들의 허구성을 풍자했다. 또한 에서는 위선의 탈을 쓴 군자들의 친구 사귐을 드러내면서 교우관계의 비진실성을 풍자하기도 하고, 에서는 엄행수를 통해 당시 양반들의 허식적 생활을 비판하고 서민의식을 부각시켰다.위에서 보듯이, 박지원은 사회 풍습에 관한 관심도 가지고 있었다. 에서는 정절이란 미명아래 당시 여성들이 겪었어야 했던 당시 모순된 사회제도 비판하며 열녀를 통해 사회 제도를 풍자한다. 이처럼 허균과 박지원은 소설이라는 장치를 통해 사회 비판 의식을 유감없이 내뿜었다.2-3. 현실중시허균과 박지원의 문학관으로 미루어볼 때, 이들은 뚜렷한기도 한다. 그러나 이 작품들에 비친 도교적 사고는 현실극복의지 표현의 한 부분에 불과한 것이고, 죽은 후에 다시 살아난다든가, 다시 살아나 피안의 세계로 향하는 따위의 이야기는 현실적 고뇌를 극복해 보려는 상징적 의미가 짙은 표현들)로 볼 수 있으므로, 허균의 초점은 현실에 맞춰져 있다고 볼 수 있다.박지원은 생각이나 느낌을 있는 그대로 나타내며, 사소하고 하찮은 것, 혐오스러운 것도 기꺼이 표현해야 하고, 옛 사람을 모방해서 글을 짓지 않고, ‘현재’의 시점에서 대상을 인식하며, ‘현재’의 모습과 정태를 사실적으로 표현해야한다는 사실주의적·현실주의적 문학관을 지니고 있었다.) 이러한 문학관은 허균의 것과 대부분 일치하는 것으로 그에 걸맞게 연암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그가 살던 당대의 실제 인물들이었다. 그의 소설에는 소재를 과거에서 취택했거나 현실을 넘어선 환상 속에서 가져온 것이 없다. 그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당시의 현실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인물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연암은 이들을 현재의 시점에서 다루었고, 등장인물의 현재의 모습과 정태를 사실적 필치로 그려낼 수 있었던 것이다.내가 일찍이 마음이 우울한 병이 있었다. 그 때 들으니 김신선이 방기(方技)가 있어서 더러 기특한 효험을 본다는 것이었다. 나는 꼭 그를 한번 만나보고 싶었다. 윤생(尹生)과 신생(申生)을 시켜 몰래 그를 알아봤으나 열흘이 지나도록 찾아지지 않았다. 윤생의 말이 다음과 같았다.“일찍이 들으니 홍기가 서학동(西學洞)에 살고 있다고 하는데 지금은 거기가 아니고 사촌의 집에 그의 처자를 붙여 두었더군요. 그의 아들한테 물어보니,‘저희 아버지는 일 년 중에 대개 서너 번 들르지요. 친구분들로는 체부동(體府洞)에 술을 좋아하시고 노래 잘하시는 김봉사(金奉事)가 있고, 누각동(樓閣洞)에 김첨지(金僉知)는 바둑을 잘 두시고, 그 뒷집 이만호(李萬戶)는 거문고를 잘 타시고, 삼청동(三淸洞)의 이만호는 손(客)을 좋아하고, 미원동(美垣洞) 서초관(徐哨官)과 모교(毛橋) 장첨.)여기서 보듯 연암은 당대의 현실을 눈에 보이듯이 포착하여 제시하고 있다. 연암이 김신선을 만나보기 위해 사용한 수법은 탐문의 수법이었다. 연암이 에서 이 수법을 사용했던 것은 김신선의 신비성을 돋보이게 하려는 목적과 동시에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시정인들의 삶의 모습을 제시하기 위해서였다.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가 연암 당대에 서울에 살던 시정인들이다. 체부동의 김봉사, 누각동의 김첨지, 삼청동의 이만호 등은 그리 대단할 것도 없는 서울시정의 일상인들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들은 그들 나름의 독특한 삶의 방식을 지니고 살아가기 때문에 전체적으로는 강한 생동감을 주는 인물들이기도 하다. 작자는 이들의 독특한 삶의 모습을, 비록 간단한 묘사에 불과한 것이기는 하지만, 재치 있게 표현해 냈는데, 이 덕분에 독자는 이 글을 접하면서 당시 서울 여항인들의 여유롭고 운치 있는 삶의 모습에 그대로 젖어 들게 된다. 이 밖에도 에는 서울시정 상인배들의 상품거래현장이, 에는 도시 빈민층인 거지들의 삶과 약국 점원, 혹은 도시 건달로서의 광문의 행적이, 에는 이야기꾼 민옹을 중심으로 한 저녁 한때의 사랑방의 정경이, 에는 당시의 몰락한 양반이나 신분상승을 꿈꾸던 신흥 상인들의 욕망 등이 눈에 잡힐 듯이 그려져 있는 등 이러한 사실적인 묘사가 현실을 더욱 실감나게 표현한다.3. 허균의 한문소설과 박지원의 한문소설의 차이점3-1. 등장인물허균과 박지원의 한문소설에는 한미한 신분의 인물들이 주로 등장하지만, 박지원의 소설에는 , , 처럼 사대부가 직접 등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양반들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주로 양반의 위선을 비판하기 위한 것이다. 또한 박지원의 소설에는 일반 사람들이 멸시할 정도의 하층민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대표적으로 의 걸인 광문과 똥을 지고 나르는 의 엄행수가 있다. 이에 비해 허균의 작품에는 하층민보다는 양반도 서민도 아니면서도 부조리를 인식할 수 있는 지성인들이 등장한다.또한 허균 작품의 인물들은 한미한 신분이라는 것과 함께 비범한 능력을 가졌다.
여성작가와 작가 사이강경애「원고료 이백원」,「지하촌」백신애「어느 전원의 풍경」,「적빈」, 「복선이」최정희「흉가」, 「점례」 를 읽고이번 작가들은 모두 여성작가이다. 유감스럽게도 20세기의 여성작가들은 별로 접해본 적이 없어 거의 무지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이다. 무지하니 그만큼 편견도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소설을 읽기 시작했지만, 여성작가들이라는 것만으로도 나는 읽자마자 편견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우선, 유난히 여성 주인공들이 많았다는 점이다. 이것은 편견일 수도 있겠고, 남성작가들과의 상대성으로 봤을 땐 사실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초반부에서 ‘여성작가 = 여성 주인공’이라고 아주 잠깐, 1초나마 스쳐갔던 내 생각은 분명히 편견이다. 그러나 내 편견과는 별개로 내가 감상한 작품들 중 3편을 제외하고는 모두 여자 주인공이 등장한 것이 사실이다. 여성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는 공통점 말고도 또 하나 비슷한 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소설 속에 등장하는 남성 인물 중 그 어느 한 사람도 매력적인 캐릭터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강경애의 에는 아내를 위하기보다는 친구와 사회가 먼저인 남편이 등장하고, 백신애의 에 등장하는 매촌댁 늙은이의 아들들 또한 모두 집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사고를 터뜨리고 산후조리를 해야 할 벙어리 아내의 양식까지 탐하는 무력하고 이기적인 인물이다. 백신애의 와 최정희의 에 각 여성 주인공들과 짝을 이루게 되는 남성들은 그렇게 못되었다고 할 순 없지만, 매력적이고 멋있다고 할 수도 없는 인물들이다. 심지어 최정희의 에는 한 집안의 가장이 여성으로 등장하는데, 주인공이 겪는 가장으로서의 어려움은 여성 가장이기 때문에 겪는 성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같은 형편의 가장이라면 누구나 겪는 공통적인 어려움이기 때문에 특별히 남성의 도움은 필요치도 않아 보인다.이처럼 많은 작품들에서 구원자격인 캐릭터가 거의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작품 속 여성들은 수난 속에 살아간다. 열네 살 밖에 안 된 복선이는 입을 하나라도 덜기 위해 팔리듯이 시집을 가고 매촌댁 늙은이는 자신의 신분도 잊은 채 ‘히이히’ 웃으면서 구걸하듯 살아가며, 며느리 벙어리는 출산 중에도 한 끼도 제대로 챙겨먹지 못한다. 점례 또한 지주가 던진 돌에 맞고서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해 허무하게 죽는데도 점례의 죽음을 진심으로 슬퍼해주는 사람들은 기껏해야 가족들밖에 없다. 하지만 과 의 여성들은 위의 주인공들과 약간 다르다. 이들에게서도 역시 여성으로서 겪는 어려움이 나타나지만, 아까의 여성들보다 사회진출 면에서나 지적인 면에서나 상대적으로 더 깨어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나 의 주인공은 동생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오직 너의 사회적 가치를 향상시킴에 힘써야 한다.” 라고 말하며 동생이 받은 교육을 민중들을 위해 쓰기를 바란다. 자신 역시도 오랜만에 생긴 수입인 원고료 이백원을 조선의 빈한한 군중을 위해 쓰기로 한다. 남편 친구 아내가 신던 신발을 얻어 신고, 번듯한 옷 한 벌 없는 형편인데도 말이다. 이런 사회의식은 에도 드러난다. 주인공 칠성의 주변에 있는 인물들은 대부분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다. 우선 칠성이 자신도 그렇고, 칠성이가 좋아하는 큰년이도 장님이며, 큰년이를 위해 옷감을 떼러 간 읍내에서 만난 다리가 불편한 사내 역시 장애를 가지고 있다. 다리가 불편한 사내는 칠성이에게 자신들이 몸이 성치 않은 것은 자신들의 탓이 아니라 사회의 탓이라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는 말을 한다. 실제로 에는 참혹한 가난의 모습이 처절하게 그려져 있는데, 초반부에 파리가 빠진 국과 바퀴 떼가 몰려든 밥을 먹는 칠성이의 모습으로 시작해서, 후반부에 비로 인해 그나마 있던 논과 밭이 떠내려가고 동생 영애의 상처에서 구더기가 몰려나오는 모습으로 가난 묘사는 절정을 이룬다. 이 모든 일을 겪고 난 칠성이가 마지막에 하늘을 노려보는 모습에서 사회에 대한 분노가 느껴졌다. 작품 속에 실제로 지하 공간이 나타나진 않지만, 그들이 사는 곳 자체가 이미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는 없는 지하촌이었던 것이다. 작가는 이 모든 것이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의한 것임을 다리가 불편한 사내의 말과 곧 그 말을 깨닫는 칠성의 모습으로 나타내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백신애는 에서 이런 사회의 모순을 특별한 소재로 드러내는데, 그것은 바로 법률이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마치 현대의 드라마를 보는듯한 느낌을 받았는데, 그것은 법률이라는 소재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정작 법률에 대해선 자세히 알지 못하면서 단지 법률의 존재 자체만 알고 기뻐했다가 슬퍼했다가 하는 그의 모습이 어리석어 보이면서도, 법률이라는 개념이 막 들어오기 시작한 때의 느낌이 나서 색달랐다. 초기인 만큼 그것에 대해 더 잘 아는 사람을 법률을 이용하여 부당하게 이익을 얻고, 잘 모르는 사람은 그대로 당할 수밖에 없는 모습이 드라마 주인공들이 수난을 당하는 모습과 비슷했다. 물론 주인공의 욕심에 의한 결과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며느리를 쫓아내려던 주인공이 나중에 죄책감을 느껴 마음을 돌리는 모습을 보면서 후에 당할 일을 생각하니 주인공에게 괜한 동정이 간 것이다. 또한 다른 등장인물들과는 달리 그래도 돈 푼 꽤나 있는 사람이었으나 단지 무지하다는 이유로 지인에게 배신을 당하고, 현재에도 많이 볼 수 있는 보증 때문에 곤란을 겪는 상황이라 가난한 사람들이 주구장창 나오던 참에 좀 더 현실적인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사실 이 작품에는 주인공이 완벽하게 배신을 당하는 것으로 끝이 나지는 않는다. 그런 불안감이 엄습하고 친구 집으로 달려가면서 소설이 끝이 난다. 이 작품 뿐 아니라 같은 작가의 작품인 과 에서도 작가는 자신의 문체로 끝까지 이야기를 진행시키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열린 결말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분명 그 뒤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누구라도 예측할 수 있을 정도에서 소설을 끝맺기 때문이다. 그 정도에서 소설이 끝나버리기 때문인지, 그 뒷이야기를 나의 머릿속에서 더 생생하게 구현하게 되고, 그 기분을 함께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백신애와 달리 강경애는 작가 자신이 직접 자세하게 묘사를 한다. 주인공의 내면심리나 고백이 더 자세하게 드러나고, 그에 따라 작가 자신의 의식 또한 투영된다. 최정희 역시 에 유산 싸움이 일어나고 에 지주에 만행을 그려내는 등 뛰어난 현실 인식을 보여주지만, 강경애처럼 실천을 요구하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