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감,우리 외할머니댁앞 마당에빤히 보고 선감,손 대일 듯 말 듯빠알갛 듯 말 듯터질 듯 말 듯동그랄 듯 말 듯여문 듯 덜 여문 듯할머니 사랑먹고 자란저 단 하나의주홍감.엄마 사랑 먹고 자란내가지금보다 더 잘 익어저 감 꼭 잡고 말란다,지금보다 더 잘 커서엄마 위해주신 할머니 사랑저 감으로 느껴 볼란다저 감으로 알아볼란다.
현대에는 다양한 가치관의 혼재와 그에 따른 윤리적 문제가 발생하고, 여러 집단간의 이해관계가 대립함으로서 리더의 역할이 더욱 중요시 되게 되었다. 현대는 변화속도가 매우 빠르고 넓은 범위에서 다변화하여 좀더 발빠르고 효율적인 리더의 자질이 요구된다. 이런 리더의 특성을 마키아밸리의 '군주론'에서 찾을 수 있다.현대사회의 리더는 첫 번째로, 이해타산의 계산을 발빠르게 할 줄 알아야 한다. 현대는 자본중심의 사회로, 자본에 의해 기업과 국가의 힘이 커지기도, 작아지기도 한다. 그러나 현대사회는 세계화로 인해 범국가적인 교류가 이루어지게 되었고, 이로인해 버릴건 버리고 얻을건 얻는 윈윈 전략이 가장 바람직해 보인다. 즉, 현대사회의 리더는 여우의 자질을 갖추고 잠시도 긴장의 끈을 늦추어서는 안된다.두 번째로는 과감한 실천력에 있다. 현대사회에는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매우 많다. 그러나 역대 대통령들을 보면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으면서도 국민들의 비난이 두려워 '쌓여진 폐단'을 해소하는 일에 망설이고, 주춤했다. 이는 지도자의 임무를 저버린 것이라고 할 수 있다.세 번째로는 하드파워와 소프트파워를 동시에 갖추는 데 있다. 하드파워란 리더로서의 통솔력을 말하고, 소프트파워는 서민저인 경영이나 치국을 통해 사랑을 얻는 것이다. 두 가지가 서로 조화가 이루어 질 때에, 비로소 리더는 리더로서의 통솔력을 가지게 되고 효율적인 활동을 할 수 있게 된다. 이에 대해 마키아밸리는 "군주는 사랑도 받고 동시에 두려움의 대상도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둘 다 얻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굳이 선택해야 한다면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게 낫다"고 말했다.
동성애를 어떤 시각으로 보아야 하는 것인가? 동성애는 도덕적으로 용납 받을 수 있는가? 동성애는 도덕의 범주에 속하는 것이 아니므로 '동성애는 도덕적으로 용납받을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은 애초에 논의의 여지가 없을뿐더러 문제의 본질을 잘못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동성애를 도덕적으로 용납하고 안하고의 관점을 떠나서 동성애를 어떤 시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할 때다.우리는 흔히 도덕적으로 '나쁘다', '좋다'라는 판단을 내릴때 다음과 같은 기준을 따르게 된다. 첫 번째로는 '스스로 선택한 것'이라는 전제하에 평가적 의미로서의 도덕적 책임 여하에 관한 논의가 허용된다. 그러나 동성애는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다. 동성애는 성 지향성 즉, 특별한 성의 상대에게 성적, 감정적으로 관심을 나타내는 것이며 이는 동성애 성향이든, 이성애 성향이든 개인의 의지나 선택과는 상관없이 주어지는 것이다. 특히 남녀의 역할과 성지향성(sexual orientation)이 생물학적, 사회적 요인 등에 의해 결정된다는 '성별 이론'에 따르면 동성애자들의 성적취향은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동성애에 대한 도덕적 책임을 물을 수 없게 된다. 두 번째로는 '행위가 사회전체에 직, 간접적으로 악영향을 끼쳤을때' 도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다. 그런데 동성애는 지극히 개인적인 사생활의 한 양식으로, 단지 개인의 성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일종의 행복추구권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그들의 성행위를 '불결하다'거나 '용납할 수 없다'고 단언하는 것은 동성애자들의 행복추구권을 침해하는 것이고 또한, 소수에 대한 위화감에서부터 발생하는 지극히 이기적인 행위이다.'동성애는 도덕적 기준의 잣대가 적용되지 못하기 때문에 도덕적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주장에 대해 몇가지 반론이 제기 되기도 하는데 그 대표적인 예로 '동성애는 스스로 선택한 것'이라는 주장에 대한 반론이다. 이에 대해 '스스로 선택한 동성애자도 있다'는 근거를 들어 동성애는 부도덕 하다고 주장 하는데, '동성애를 스스로 선택한 동성애자들' 즉, 단순한 성적인 쾌락만을 추구하여 일탈감을 느끼려는 자들은 극소수 이며, 대부분의 동성애자는 선천적이거나 후천적인 요인에 의해 또는 불가항력적인 유전적 요인에 의해 동성에게서만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이는 과학적으로도 증명된 사실이며, 실례로 동성애를 관장하는 DNA가 있어 쌍둥이중 하나가 동성애자이면 다른 하나도 80%의 확률로 동성애자일 것이라는 연구결과가 있다. 또 다른 반론으로는 '동성애를 통해서는 종족번식을 이룰 수 없기' 때문에 이는 반인류적인 행위로 도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이 또한 지나친 과장이다. 이 반론은 두 가지 측면에서 재반론 할 수 있다. 첫 번째로, '동성애자는 선천적인 요인으로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들이 종족번식을 이루지 않는 것 또한 못하는 것으로 규정하여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따라서 개인의 의지에 의한 것이 아니므로 도덕적 책임을 물을 수 없게 된다. 설령, 동성애자가 이성과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다고 해도 이는 사랑이 없는 단순한 번식의 행위에 해당하게 되고 종족번식의 의무불이행보다 더 사회적으로 지탄받아 마땅할 일이다. 두 번째로, 종족번식을 하지 않는 것을 반인류적인 행위로 볼 수 있는가? 에 관한 의문이다. 최근에 선진국에서는 이성애자들의 출산율도 급격이 저하되고 있고, 국가에서는 출산장려정책을 펴고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전세계적으로 지구상의 인구수는 폭발할 지경에 이르렀고, 범지구적으로 인구가 줄어들어야 한다. 따라서 지금과 같은 시점에서 범인류적 행위는 종족번식을 자제하는 것이고, 국지적인 의미에서만 일부국가의 출산율 증가가 요구되는데 이는 단순히 국가유지를 위한 이해적 차원의 것이고, 따라서 인구감소는 반인류적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