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굿 윌 헌팅’의 교육비평Ⅰ. 들어가며 -비평대상 선정 및 사유학기 초에 과제를 부여받고 지난 학기동안 참 많은 교육영화를 접했다. 딱히 과제를 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교육적’인 컨텐츠에 많은 관심이 갔다. 인터넷 기사나 평소 같으면 지나쳐버릴 교육도서에 손이 갔고 특히나, TV 채널을 돌리다 교육과 관련되었다 싶은 영화가 있으면 하던 일을 멈추고 오히려 과제를 핑계 삼아 재미있게 감상했던 기억이 난다. 영화 ‘선생김봉두'는 감동적이긴 하지만 ’촌지‘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본질적인 교육활동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이런 문제들을 배제하기 위해 되도록 학교가 등장하지 않는 영화를 고르려고 했다. ’파인딩 포레스터‘의 경우 가르치는 사람과 가르침을 받는 사람간의 신뢰구도가 집중적으로 다뤄지고 작가는 글쓰기를 소년에게 가르치고 소년은 사회로 나와 어울려 사는 법을 은둔 작가에게 가르쳐 줌으로써 서로에게 멘토가 되어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지만, 별도의 지도과정이 없이 붓 가는대로 글을 쓰는 경험을 하게 하여 학생의 잠재성을 일깨워주고, 인성적인 지도를 하는데 그쳐 교육적으로 다루기에 소재가 약했다.영화 ‘굿윌헌팅’은 이미 널리 알려진 교육영화임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제대로 감상해 본 적이 없었다. 내가 가장 감명 깊게 보았던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님 역을 맡았던 로빈 윌리암스의 연기도 기대가 됐지만 무엇보다도 ‘굿윌헌팅’이라는 영화가 왜 단연 교육영화 1순위로 사랑을 받는지 궁금했다. 기본에 충실하자는 생각에서 영화를 감상하게 되었다. 영화에 대한 교육적 분석과 비평을 토대로 나의 교육관을 검토하고 보충하겠다.Ⅱ. 영화 굿윌 헌팅(Good Will Hunting)1. 영화의 줄거리어린시절 두 번의 파양과 양부의 학대로 인해 마음을 굳게 닫은 채 살아가는 스무살의 청년 윌. 그는 뛰어난 머리와 수학적 재능을 가졌지만 남부 보스턴의 빈민가에 살면서 전철로 40분씩이나 걸리는 MIT대학의 청소부로 일하고 있다. 청소를 하다가 제임스 램보 교수가 칠판에 반해 윌은 어린시절 겪었던 구타와 재 입양, 남부 보스턴의 빈민가라는 태생적으로 기인한 불우한 환경 때문에 마음의 문을 굳게 닫았다. 완벽하지 않은 자신의 모습에 실망해서 사랑하는 사람들이 떠나 갈까봐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버림받는 것에 병적인 두려움을 느끼는 윌은 자신을 갖가지 이론으로 포장함으로써 사랑하는 스카일라나 진심으로 그를 도우려는 숀교수를 밀어내고 자신만의 세계 안에서 새로운 경험을 거부한다. 이러한 윌의 모습은 에릭 에릭슨의 8단계 이론을 통해 설명할 수 있다. 0~18개월 사이에 윌은 사랑을 받지 못함으로써 신뢰감을 형성될 기회를 잃었다. 18개월~3세 사이에 자율성이 결여되고 스스로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다. 3세~6세까지는 주도성, 6세~12세 사이에 근면성이 발현되어야 했지만 그런 모습은 윌에게서 찾아보기 힘들다. 더군다나 12세~18세 사이에 겪게 되는 정체성과 역할혼동 단계에서는 자신의 개성과 자아를 지각하고 목표와 소망을 가지게 되지만 타인의 기대를 수용해야 하는 혼란의 시기를 겪게 되는데, 갈등의 시기를 거친 보통 아이들과 다르게 윌은 숀 교수가 "What do you want?"라고 묻는 질문에 전혀 대답하지 못한다.윌은 분명 천재적이다. 그러나 ‘피아노를 보고 모차르트나 베토벤은 악상을 떠올렸을 테지만 자신에게는 피아노가 그저 몇 개의 나무상자와 페달로 보인다’고 말하는 대목에서 가드너의 다중지능 이론에 따라 일반적인 학습자로 확대해서 이해해 볼 수 있다. 세상에 완벽한 인간은 존재하지 않고, 그 전에 사람을 완벽하게 나눌 수 있는 기준 또한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윌 또한 한 명의 불완전한 인간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옳다.Ⅲ. 교육행위의 분석교육 또한 인간의 행위이자 사건임을 감안하여 육하원칙을 적용해 영화에 등장하는 교육적 행위를 분석해 보았다.1. 누가 가르치는가? - 윌에게 영감을 주는 사람(물건)들1) 램보 교수램보교수에 의해 자신의 재능을 발견할 수 있었던 윌은 조교인 탐의 말대로 행복한 기회를 손에 넣은 것이다은 무엇이니? 그림을 잘 그리니? 예술? 음악? 등등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 학습자에 대한 관찰을 선행한다. 이런 관심에도 불구하고 윌은 지금까지 읽은 심리학 서적들을 토대로 병으로 죽은 숀 교수의 아내를 모욕한다. 보통의 상식이라면 참지 못했을 테지만 숀 교수는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윌을 세기의 천재 취급하는 램보교수와 반대로 숀 교수는 윌에게 너는 보스턴을 떠나보지 못한 한낱 어린아이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시스티나 대성당의 천장벽화를 직접 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내음, 전쟁사를 읊을 수는 있어도 죽어가는 전우의 곁을 지키는 마음, 살아가면서 느낄 수 있는 진정한 행복을 너는 모른다고 말한다. 윌의 불행함을 ‘올리버 트위스트’라는 소설책 한권으로 모든 걸 설명할 수 없듯이 이 세상은 지식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 숀 교수가 진심으로 윌에게 건넨 말이다. 여기서 보스턴이 상징하는 것은 ‘자신만의 세계, 고립된 세계’ 이다. 램보 교수가 숀에게 윌을 부탁할 당시 너와 경우가 비슷하다며, 동향출신이라고 말한 것도 비주류로서 틀어박혀있는 숀 교수를 빗댄 말이다. 숀 교수도 윌 처럼 알콜중독자인 아버지 밑에서 폭력과 구타를 당하며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남부 보스턴 출신이었던 것이다.같은 지역 출신이기 때문에 숀 교수는 윌의 언어로 소통할 수 있었다. 바에서 만나서 ‘페리에’를 주문하는 램보교수의 말을 ‘클럽소다’라고 번역해주는데서 알 수 있듯이 MIT‘얌전이들’과 보스턴 ‘사나이들’은 그만큼 다른 것이다. 숀의 말투에서 드러나는 적절한 상황맥락에서의 비속어가 윌에게 좀 더 효과적으로 들리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스카일라와의 이야기를 숀에게 털어놓으며 윌은 그와 ‘친구’라고 생각하게 된다. 상하관계가 아니라 인생의 선배이자 친구로서 사랑과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함께 하면서 윌은 서서히 변화해 간다.3) 친구 처키부모도 변변한 직장도 없는 현실에서 친구들은 유일한 윌의 안식처이다. 친구들과 바에 가기도 하지만 대화 중 인상 깊었던 장면은 뒷좌석에서 ‘내 샌드위치’를뻔 한 것이다. 스카일라와의 관계를 통해 윌은 참다운 자기 이해에 대해 고민할 수 있었고 고립된 보스턴에서 나아가 더 넓은 세계로 자신을 던질 수 있었다.5) 책정규 교육을 받지 않고도 윌이 뛰어난 지적능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방대한 독서량 때문이었다. 교육받지 않은 천재라는 설정을 위해 책을 등장시켰을 수도 있지만 지난 학기 작성한 교육학개론 ‘성공하는 사람들의 자녀교육 요건’과제에서 행정대학원 김광웅 교수님 외 4명을 분석한 결과 독서는 성공을 위한 필수품이었다. 하버드 대학가 바에서 대뜸 남부 시장경제에 대한 입장을 말해보라는 오만한 역사학과 학생에게, 역사학자들의 서적을 줄줄이 꿰고 있던 윌은 학생에게 면박을 주며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충고를 한다. 첫째, 남의 생각을 도용하지 말 것, 둘째, 학비로 1만 5천불을 탕진하기보다 1.50센트를 내고 도서관에 가는 게 낫다는 것. 물론 중요한 말이지만 윌 또한 어떠한 자신의 의견도 말하고 있지는 않았다. ‘나는 적어도 학위를 얻지만 너는 영원히 종업원으로 일하게 될 것’이라는 역사학과 학생의 마지막 말은 의미심장하다. 표절로 얼룩진 논문으로 받은 학위와 자유로운 생각으로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려는 사람 중에 사회는 ‘학위’의 손을 들어주는 구조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독서를 할 때 숀 교수가 지적했던 것으로 유의해야 할 점이 있다. 친구 처키를 제외하고 너의 ‘소울메이트’가 누구냐고 묻는 교수의 질문에 윌은 칸트, 니체, 프로이트 등의 떠나버린 학자들의 이름을 읇는다. 윌이 그들의 서적을 읽고 영감을 받는 것은 사실이지만 대화나 교감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더욱 자신만의 세계로 빠져 들어갈 위험성도 있는 것이다.2. 언제 가르치는가?언제 가르쳐야 하는지 생각해 볼 때 변하지 않는 최상의 원칙은 ‘학습자가 원할 때’ 가르쳐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기 위해선 상대방에 대한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하며 학습자가 원하도록 하는 것도 가르치는 자의 역량일 수도 있다.윌의 경우 램보 교수가 수학문제 풀기교육은 사람을 기르는 행위이다. 교과는 삶을 사랑하는데 필요한 능력들을 분화해서 사회에서 어린 아이들이 배워야 할 것들에 대한 암묵적인 약속에 불과한데 교과지도를 우선시 해 주객을 전도시킨 것이다. 교과적 지식전달도 중요하지만 인지적, 정의적, 행동적 영역의 고른 발달을 위해 학습자의 심리상태를 고려하고 잠재성을 인정하는 교수자의 태도가 필요하다.지금 우리의 교육 현실은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을 모두 학교가 가르쳐 주지는 못하고 있다. 시대가 변했음에도 교과내용에는 부분적인 수정이 있을 뿐 사회적 가치가 변화함에도 도덕책은 여전히 암기과목이다. 어쩌면 인생을 사는데 가장 중요한 것, 숀 교수가 충고했던 바와 같이 사랑하는 데는 불완전한 서로의 세계를 받아들이고 서로에게 얼마나 완벽한가를 반성하는 것이 중요하며 천재인 윌, 너조차 노력해야 한다는 그런 단순한 메시지를 부모님과의 대화에서 간간히 들을 수 있을 뿐이다. 신혼부부의 80%이상이 맞벌이를 선호하는) 요즘 세상에 가정교육에 책임을 전가하기는 쉽지 않다.그렇다면 사회적 시각을 배제하고 교육이 본질적으로 담아야 할 내용은 어떤 것이 있을까. 나는 그 무엇보다도 고대 희랍의 7자유학과로 돌아가 보고 싶다.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 기술/가정, 미술, 음악, 체육, 도덕, 국사, 진로와탐색’ 의 고등학교 1학년 과정과 비교해 볼 때 지향하는 바를 비교해 보면 희랍의 자유학과나 고등학교 교과과정이나 그 기본적인 관점은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요구되는 기본적인 기술과 논리 사고력이라고 볼 수 있다. 교과에 한정시켜 교과교육을 통해 얻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경시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5. 어떻게 가르치는가? - 교육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따라야 하는 법칙?어떻게 가르쳐야 하는 문제는 램보와 숀 교수를 비교함으로써 알 수 있다. 램보 교수는 분명 필즈메달까지 수상한 성공한 수학자이자 교수이다. 그는 정규 교육과정을 충실히 이행하여 소위 엘리트라고 불리며 사회의 주류가 되었다. 반면에 자유로운 영혼 숀 교수는 삶.
갈등론적 관점에서 바라본 학교의 재생산 기능1. 들어가며2. 갈등론적 관점과 교육학에서의 적용2.1. 기본 관점2.2. 교육학에서의 적용3. 갈등론적 관점에서 본 우리 교육5. 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5.1. 사회적 차원5.2. 개인적 차원6. 나가며1. 들어가며 : “부잣집 아이에게는 특별한 것이 있다?!”부잣집 아이가 상대적으로 공부를 더 잘한다는 말이 있는가 하면 성적은 전적으로 학생의 의지에 달려있다는 말도 있다. 몇 해 전 발표된 연구 결과에 의하면, 부모의 소득수준과 학력이 높은 가정의 자녀일수록 학업성적이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은 4월부터 5개월 동안 전국의 중학교 3학년생 2000명과 일반계, 실업계 고교 3학년생 2000명씩 모두 6000명을 조사한 결과 가구소득, 부모 학력, 가정 문화생활 등이 학생의 성적과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 연구결과는 널리 알려진 상식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국내에서는 처음 대규모 조사를 통해 확인된 것이어서 관심을 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수능 성적 원자료 공개’도 자녀의 수능 성적이 부모의 학력?소득과 비례 관계에 있음을 입증하고 있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의 채창균 연구의원이 2005년 이후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을 분석했다. 승용차 2대 이상 보유 가구를 고소득층으로 설정하고 자료를 분석한 결과 성적 상위 20개 시?군?구의 고소득층 비율이 더 높게 나타났다. 반대로 기초생활수급권자의 비율은 상위 20위 이내의 지역일수록 낮게 나타났다. 수능 성적은 부모의 학력과 직업과도 함수관계를 나타냈다. 수능 성적 상위 20개 시?군?구 지역 내 학부모 연령층 인구 가운데 전문대졸 이상의 비율과 전문직 종사자 비율이 전국 평균치를 웃돌았다.) 주의할 것은, 이러한 연구결과가 곧 부모의 사회적 지위가 자녀의 성적을 결정하는 직접적이고 유일한 요인이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다만, 부모의 사회 경제적 능력과 자녀의 학업성적 사이에 모종의 상관관계가 있음을 보여줄 뿐이적 시각(애플, 지루, 프레이리)을 강조하는 부류로 구별되며, 베버를 기점으로 콜린스, 헌과 같이 계급보다 계층의 개념을 중심으로 보는 이들도 있다.‘갈등’에 주목하는 학자들은 교육의 기능이 다음과 같다는 데 대체로 동의한다. 첫째, 교육은 지배집단의 권익을 정당화하고 주입하여 기존 지배계층의 구조를 영속화하고 재생산하는 도구적 기능을 수행한다. 둘째, 학교교육은 지배집단의 가치체계인 이데올로기를 학생들에게 강제적으로 사회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셋째, 교육과정은 지배집단의 이데올로기를 수용하여 사회에 실재하는 불평등, 빈곤, 부정 등을 교묘하게 위장하여 지배집단의 가치를 맹목적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넷째, 학교란 지배계층의 이익을 영속화하거나 재생산하는 지적 무기이다. 다섯째, 갈등이론의 교육적 주요관심사는 교육의 불평등과 불공정성을 파헤치고 사회적 불평등이 현행 학교 교육을 통하여 어떻게 강화, 유지되는가를 밝히려 한다.교재에 언급된 맥스웰의 연구 결과(p.115)는 사회적 지위의 재생산에 대한 관심이 새로운 것이 아니며 이와 같은 연구 결과들은 학교의 재생산 기능이 한 국가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 전체에 해당하는 현상임을 보여준다.사회적 갈등 상황에 봉착했을 때 자본주의 체제를 무너뜨리고 완전히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려는 생각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마르크스의 계급 갈등론에 가까운 생각이다. 한편 학교의 이데올로기적인 속성과 사회적 지위의 재생산을 인지하면서도 이와 같은 갈등 관계가 결국에는 사회적 통합을 이끌어 내리라고 보는 것은 짐멜의 의견과 가깝다. 짐멜의 이론은 사회구조를 유기체적으로 보고 있었다는 점에서 기능주의와 연결되는 부분이 있다. 또한 갈등이 사회체계에 만연해 있는 피할 수 없는 현상이라고 보고 갈등의 해결을 통해 사회를 지속할 수 있다고 주장한 점에서 기존질서를 존중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이처럼 갈등론적 관점에서는 교육이 인간을 평등하게 한다거나 평등의 이념을 실현시킨다기보다는 오히려 불평등을 심화하는 기제라는 비관적 입장을 보 구성원간 전반적인 불신과 갈등최근의 조사에 의하면 학교교육에 대한 일반국민의 불신이 심각한 상태이다. 일반 국민이 인식하는 학교교육의 위기는 학교교육에 대한 불신과 이로 인한 사교육의 성행 및 조기유학의 증가로 예시되는 학교교육 이탈로 나타나고 있다. 상호간의 불신의 증가로 공동체 상호간 대화 협력의 부족, 교사의 권위상실, 학생의 수업무관심, 학부모의 교단 침범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조기유학의 증가는 조기유학을 보낼 형편이 되는 집단과 그렇지 못한 집단 간의 갈등을 유발한다. 조기 유학을 다녀온 아이들은 부모의 경제자본과 문화자본을 그대로 물려받아 사회 지배계층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지만, 그렇지 못한 아이들은 교육에 있어서 실패를 확인하고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그대로 물려받기 쉽다. 이런 현실 속에서 학생들은 무력감에 빠져 수업에 무관심하게 되기 쉽고, 학부모 또한 학교에서 교사들이 자기 자녀의 미래를 위해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사실에 분노하고 교사를 비난하게 된다. 이와 같은 갈등은 뒤르껭이 강조했던 사회통합을 저해하는 것이다.셋째, 사교육의 양극화 및 사회적 소외계층의 상대적 교육기회 박탈사교육 확대와 조기유학을 통한 지배계층의 교육기회 세습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연적인 현상으로 법적으로 제한하기에 무리가 따른다. 실제로 80년대 사교육을 금지시킨 법안이 발효되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불법적인 사교육이 암암리에 성행하여 실효성에 의문을 남긴 채 법안은 폐지되었다. 지난 정권에서도 사교육에 대한 제재는 이어져 왔지만 경험적으로 보더라도 방과 후 과외와 학원사업은 불황을 모른 채 성행하고 있다. 법원은 헌법으로 개인 선택의 자유와 행복추구권을 보호하고 있기 때문에 사교육 시장 자체를 문제 삼아 전면적인 사교육을 금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사교육의 양극화를 직접적으로 뒷받침하는 통계 자료들이 있어 매우 흥미롭다. 2005년 소비지출 비중 가운데 교육비 지출의 경우를 살펴보면 소득에 따라 10개 분위로 나누었을 때, 최저 소득층인 소득 1분 인해 교육에서 소외된 학생이 주변 환경으로 인해 공부를 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면 사회적 갈등은 더욱 증폭될 것이다. 지난 2005년 11월 파리 교외에서 이민자들을 중심으로 일어난 소요사태도, 교육기회의 사회적 박탈로 인한 빈곤의 세습과 무관하지 않다.논란의 핵심이 되고 있는 사회적 지위 재생산으로 인한 문제점은 경제적으로 약자인 학생들이 상대적으로 교육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정책의 시행이 필요하다.5.1. 사회적 차원2002년도 기준 우리나라 국내 총생산(GDP)대비 학교교육비 비율은 7.1%로 높은 편이지만 이 중에서 정부 부담률은 4.2%로서 OECD국가평균인 5.1%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그에 반해 민간 부담률은 2.9%로 OECD국가 평균인 0.7%보다 월등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고등교육 교육비 총액은 평균의 57%) 또한 정부부담 교육비를 가지고 평가한 교육투자의 효율성은 OECD 22개국 중 2위지만 민간부담 교육비를 포함한 투자의 효율성은 19위에 머무르는 것으로 추정되었다.)먼저 우리나라 사교육비 시장은 2003년도 기준 정부 예산의 55%에 달하지만 교육 만족도는 높지 않다. 국가 차원에서 그 비용이 효율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만 잘 갖추어져 있다면, 적절한 증세와 세금운용으로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교육도 실현 가능할 것이라고 본다. 뒤르껭은 현대 교육제도에서는 더 이상 아동의 출생에 기인한 교육 기회에의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되며 개인의 능력에 입각해서 교육의 기회를 기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과연 미국과 유럽에서는 이와 같은 교육 기회의 평등을 어떻게 실현하고 있는지 알아보겠다. 현재 우리나라처럼 공교육이 불신 받고 사교육 열풍이 드센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눈여겨보자.첫째, 개인의 선택에 따른 의무교육기간의 연장우리나라의 의무교육은 중학교까지이고, 공부를 하고자 하는 학생이 고등학교 학비를 지원받는다고 해도 대학 등록금은 충당하기가 어렵다.때문에 행정조직의 유지만을 위해서 부담 지워진 행정절차는 간소화될 필요가 있다. 막연히 교육자로서의 사명감이 교사들에게 강요됨을 지양하고 현실적인 처우 개선을 통한 교사들의 동기부여가 필요하다. 공교육을 활성화를 위한 방과후 교습이나 수업 외적인 생활지도는, 교육의 주체인 교사들을 통해서 학교교육 안으로 끌어안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셋째, 새로운 교육형태의 도입이다. - 미국의 차터스쿨(Charter School)1983년 '위기에 처한 국가(A Nations at Risk)'라는 보고서를 기점으로 미국의 공교육은 큰 위기를 맞았다. 기존 공교육 체제로는 더 이상 기초학력의 저하와 학업성취율의 하락을 막을 수 없다는 시각이 팽배해졌다. 이렇게 공교육이 불신 받고 있을 때 나타난 교육개혁 운동의 결과가 바로 차터스쿨이다. 차터스쿨이라는 이름은 학교에서 자치적으로 교육기획한 차터(Charter)를 제출함으로써 자율권을 얻은 데서 유래했다. 차터스쿨은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학교 선택권을 부여하고 학교에는 운영 자율권을 부여함으로써 교육의 질 향상을 목표로 하는 것이다.)미국의 차터스쿨을 모방한 개방형 자율학교 제도가 우리나라에서도 작년부터 시행되고 있다. 개방형 자율학교란 혁신의지가 강한 운영주체에게 학교 운영권을 위탁하고 대폭적인 자율권과 책무성을 부여함으로써 교육과정 운영 및 교수?학습방법 등을 혁신적으로 운영하는 학교를 말한다. 아직 전국적으로 4곳에 불과하지만, 전폭적으로 평교사를 교장으로 임용하고 교사들이 사교육 없는 학교를 만들기 위해 열정을 보이는 등 긍정적인 효과를 이끌어 내고 있다고 한다.차터스쿨 정책은 우리 교육 정책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무엇보다도 학교 경쟁력 신장을 통해 공교육의 질 향상을 추구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하지만 ‘자유’가 국가 정책으로서 사용되었을 때는 다양한 부작용도 따를 수 있다. 차터스쿨이 등장하게 된 배후의 이념을 분석함으로써 그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짚어보겠다.차터스쿨로 대변되는 공교육 체제의 변화는 첫째로 '책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