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제 목 : 고려시대의 부마과 목 명:학 과:학 번:이 름:제 출 일:담당교수:목 차1. 들어가며2. 왕족으로서의 부마3. 정치·경제적 지위4. 맺는말1. 들어가며부마(駙馬)란 왕의 사위를 일컫는 말로 왕녀(王女)와 혼인한 사람, 즉 공주(公主:왕의 적녀)?옹주(翁主:왕의 서녀)의 남편을 의미한다. 부마라는 명칭은 중국의 부마도위(駙馬都尉)라는 관직명에서 유래한 말로 전한(前漢) 무제(武帝) 때 처음 설치되었으며, 위(魏) 진(晉)대 이후부터 공주와 혼인한 자에게 그 관직을 맡긴 것에서 유래되었다.고려(高麗)는 세습된 왕(王)이 다스리는 왕조 사회였다. 왕은 왕이라는 지위와 제도적 장치를 통해 통치권을 보장 받을 수 있었지만, 지방 호족(豪族) 또는 귀족 관료집단에 대한 원활한 통솔을 통해서 왕위를 유지하며 통치 행위를 할 수 있었다. 왕위를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해서는 왕실 세력 기반의 확충이 필요하였다. 호족 및 귀족 관료들과의 혼인은 왕실세력의 확장과 동시에 위협세력의 견제도 가능하게 했다. 그러므로 왕권의 강화와 유지라는 목적을 가지고 왕실혼이 이루어졌다. 한편 관료 집단의 측면에서 보면 왕실과의 혼인 관계를 맺는 것은 통치권자와의 혈연적 관계를 맺는 것으로 다른 집단과의 경쟁에서의 우위를 차지함으로써 그들의 세력 기반의 확대와 경제적 사회적 지위 유지에 크게 기여할 수 있었다.개국 초기는 왕실이 통치권을 확보하며 지배체제를 구축하는 시기로 왕위계승과 왕권 장악을 둘러싸고 내부적인 갈등과 대립이 진행되는 시기이다. 그러므로 건국초기에는 왕위계승이 순탄치 않거나 무력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러한 상황에서 왕이 즉위하기 위해서는 정치세력의 협조와 지원이 필수적이다. 왕위 계승과정에서는 이미 혼인을 맺은 가문과 그 지원세력을 활용하며, 즉위 후에는 집권에 협력한 인물이나 유력한 인물과의 혼인을 맺음으로서 통치기반을 확고히 하였다. 그러나 왕권이 안정화 되면 부마를 포함한 측근들은 왕의 지위를 위협하거나 혹은 물의를 빚어서 왕의 권위를 손상시키기도 하였기에 이간에 혼인하였다. 이러한 족내혼을 통한 모계세력과의 협력은 훗날 광종이 즉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다. 왕실 족내혼은 왕위 계승에도 영향을 미쳤다.족내혼은 신라의 유습(遺習)이라 볼 수 있는데 족내혼으로 인해 신라의 경우에는 왕자뿐 아니라 사위인 부마까지 왕위 계승이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예는 남해차차웅(南解次次雄, 재위4~24)과 탈해이사금(脫解尼師今, 재위57~80)의 예, 박혁거세가 알영씨족(閼英氏族)의 거서간(居西干)이라 한 예, 김씨인 미추이사금(味鄒尼師今, 재위262~284)이 석씨(昔氏)인 첨해이사금(沾解尼師今, 재위247~261)의 뒤를 이어 왕위를 계승한 예, 내물마립간(奈勿麻立干, 재위356~402)과 실성마립간(實聖麻立干, 재위402~417)이 미추이사금을 계승한 예 등을 통해 알 수 있다. 즉, 신라는 왕의 아들과 사위를 구별하지 않고 왕위계승권자로 인정하였다.고려시대에도 왕실 동성 족내혼을 통해 부마가 왕위 계승권자로 인정되고 왕이 된 사례가 있었다. 5대 경종(景宗, 재위 975~981), 6대 성종(成宗, 재위 981~997), 7대 목종(穆宗, 재위 997~1009), 8대 현종(顯宗, 재위 1009~1031)은 부마로 왕위를 계승하였다.부마가 왕위를 계승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근친 동성 족내혼의 한계성 때문이었다. 광종은 즉위 후 왕권강화를 위해 왕실의 여러 왕자와 호족들을 숙청하였고, 근친 동성 왕족으로 족내혼을 실시하였다. 이러한 근친 족내혼을 통해 경종은 1명의 왕자밖에 얻지 못하였다. 성종은 광종의 딸과의 사이에는 자식이 없었고, 근친혼이 아닌 왕비에서 2명의 공주만 있었다. 태조의 증손대인 목종은 자녀가 없었다. 이렇듯 세대가 내려갈수록 자녀수가 감소되어 왕위를 계승할 인물이 부족한 현상이 나타났다. 따라서 양측적 친속제도 하에서 부계와 모계 모두 왕족이어야 왕위계승권을 인정하는 제도에 의거해 광종 이후 목종까지 부마가 왕위를 계승하게 되었다.하지만 현종의 즉위를 기점으로 혼인에 유교적 입장이 반영되기 시작하위1031~1034) 이후부터는 왕위 계승권자가 귀족 출신 왕비의 소생자이다.이러한 왕실혼과 왕위계승방식의 변화는 부마의 왕위계승권이 박탈되는 등의 지위 축소로 이어졌다. 하지만 고려 말까지 공주와의 동성 족내혼을 통해 왕족으로서 지위와 예우는 계속 이어졌다. 1대 태조부터 마지막 34대 공양왕(恭讓王, 재위 1389~1392)에 이르기까지 사료에 나온 부마와 공주간의 혼인관계를 살펴보면, 동성혼의 경우가 더 많다. 왕은 왕족 아닌 귀족에게서 왕비를 맞아들이면서 공주만은 고려 말까지 왕족과의 족내혼을 지속하였다. 그 이유는 왕(王)씨는 용종(龍種)이라는 의식에 따라 왕실 혈통의 순수성을 유지함과 동시에 왕실의 특권의식, 왕통의식을 강화시켜 왕실의 신성화, 안정화를 기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또, 부계 우선의 친족의식이 작용한 결과였을 가능성이 있다. 부계가 왕족이면 모계와 상관없이 왕족이 되지만 모계가 왕족이라도 부계가 왕족이 아니고 귀족이면 그 자손은 귀족신분으로 전락하게 된다. 따라서 공주와 그 후손을 왕족의 신분으로 묶어둘 수 있는 방법은 공주를 왕실 종친과 혼인시키는 방법밖에 없다. 왕은 일부다처제적 혼인관계 속에서 왕족 및 귀족 출신과 혼인함으로써 족내혼의 기본 틀을 깨지 않으면서 혼인을 할 수 있지만, 공주는 한번 출가하면 끝나기 때문이다.공주 족내혼 초기의 부마는 근친(近親) 중심이었으나, 후대로 가면서 점차 부계는 4촌 이상으로 멀어지고 모계는 4촌 혹은 5촌 관계로 왕실과 가까운 혈족이 그 혼인 대상이었다. 8대 현종 이후인 9대 덕종부터는 현종의 자녀 간과 혼인을 맺고 이들 자손들과만 연속적 교환혼을 함으로써 부마를 계속 배출하는 왕족 통혼 가계가 형성되었다.왕실과 통혼하는 부마 가계는 여타의 귀족 가계에 비해 좀 더 유력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적장자 중심의 왕권 강화와 모계세력의 도태 등의 영향으로 왕위는 계승할 수 없었으며, 부마의 영향력이 발휘되려하면 다른 종실 가계로 통혼을 하면서 최대한 통혼 가계의 영향력을 줄였으며, 왕실 기강을가족 및 왕의 친인척들이 최고의 작위와 봉록은 물론 중요 관직을 독점하였다. 그러나 고려시대부터는 녹봉(祿俸)과 작위(爵位)만 후하게 주고 벼슬에 오르는 것은 원칙적으로 금지시키기에 이르렀다.문종 이후 부마에 대한 명예관직으로는 삼사(三司)·삼공(三公)과 상서령(尙書令) 관직을 주로 수여하였다. 여기서 삼사?삼공은 정1품의 최고 품직이었으며, 상서령도 종1품과 종2품에 해당하는 높은 직위였다. 이러한 부마의 직위는 왕이 교체되거나, 부마가 국구(國舅:왕의 장인)가 되거나, 특별한 공이 인정될 때 진급하거나 관직이 첨가되어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관직은 실직(實職:실제의 벼슬)이 아닌 산직(散職:일정한 직무가 없는 벼슬)이었고 명예직으로서 실제로 정치적 활동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었다.고려 왕족봉작제는 왕족을 대상으로 하였고 왕족들은 족내혼을 통해 연결되어 있기에 두 가지 특징을 갖고 있다. 첫 번째는 왕자, 부마, 국구들이 독자적인 부(府)를 설치하고 필요한 관료들을 배속 받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고려왕실이 족내혼을 하였기에 왕자, 부마, 왕의 친가와 외가, 처가, 국구 등을 구분하여 관리할 수 없었다. 또한 봉작이 상속되지 않아 그 수가 많지 않았기에, 왕실을 관리하는 관부를 따로 만들지 않고 각각 부를 개설하여 관련 업무를 처리하였던 것이다.두 번째로, 고려의 봉작은 상속되지 않았지만 고려 공주의 혼인이 철저히 족내혼을 취했기 때문에 당대에 한정될 뿐인 봉작이 연속될 수 있었다. 만일 공?후?백의 자식이 공주의 부마 또는 비부(妃父)가 될 경우 백이나 후로 봉작되었고, 이들의 다음 대는 사도(司徒)나 사공(司空)을 수여받을 수 있었다.부마에게 주어지는 경제적 혜택인 식읍(食邑)과 녹봉(祿俸)이다. 식읍은 국가에서 왕족·공신·봉작자(封爵者)에게 수조지(收租地), 수조호(收租戶)를 지급한 일정한 지역을 의미한다. 문종 이후 의종까지의 부마들은 대개 2천호 정도의 식읍을 지급받은 것으로 왕족인 부마는 공신에게 지급하는 식읍보다 많이 지급되었다. 녹봉의 .· 고려 중기의 부마/ 김은영· 조선 초기 公主·翁主 연구 / 차호연· 고려와 조선시대 부마 비교 연구 / 장현국· 네이버 지식백과 terms.naver.com1) 전한(前漢) 당시에는 황제의 수레를 끄는 말을 돌보는 관리를 의미했다. 하지만 녹봉(祿俸)이 2천석(二千石)에 달해 점차 왕실내 사람이나 유력 외척 또는 제후(諸侯) 내에서 부마도위를 맡게 되었으며, 위(魏)·진(晉)·남북조(南北朝) 이후로 황제의 사위가 부마도위를 전담해 이들을 일컫는 용어로 정착했다. 후한(後漢) 명제(明帝)가 자신의 여동생인 관도공주(館陶公主) 유홍부(劉紅夫)를 당시 부마도위를 맡고 있던 한광(韓光)에게 시집보낸 것이 황제의 사위가 부마도위를 맡게 된 첫 사례이며, 북송(北宋)의《책부원귀(?府元龜)》에 의하면 위나라와 서진 시대에 들어 두예(杜預), 환온(桓溫), 하집(何?) 등 황제의 사위가 부마도위에 임명되는 것이 관례화되었다고 전해진다. 이후 점차 관직으로서의 실체는 사라졌으며, 청(淸)나라 시대에 이르러서는 액부(額駙)라는 명칭으로 대신 불리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고구려 시대에 처음으로 등장했으며, 이후 고려나 조선 시대에 부마를 임명하였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부마 대신 국서(國?) 또는 의빈(儀賓)이라는 명칭이 사용되기도 했다.2) 고려 제1대 왕으로 이름은 왕건(王建, 877~943)이다. 후고구려(後考) 궁예(弓裔)의 휘하에서 후백제(後百濟) 견훤(甄萱)의 군사를 격파하였고 정벌한 지방의 구휼(救恤)에도 힘써 백성의 신망을 얻었다. 고려를 세운 후, 수도를 송악(松嶽)으로 옮기고 불교를 호국신앙(護國信仰)으로 삼았으며 신라(新羅)와 후백제를 합병하여 후삼국(後三國)을 통일하였다.3) 고려의 제2대 왕으로 이름은 왕무(王武, 912~945)이다. 태조 왕건의 큰아들이며 즉위 후, 호족 출신이자 왕실의 외척인 왕규(王規), 서경(西京:평양) 세력인 왕식렴(王式廉) 일파 등의 적대세력으로 인해 곤란을 겪었으며 권신들의 왕권다툼 속에서 일찍 병으로 죽었다.4) 고려의 제다.
보고서제 목 : 숲체험활동의 개념 및 실제과 목 명:학 과:학 번:이 름:제 출 일:담당교수:목 차1. 숲체험활동의 개념 및 교육적 의의2. 숲체험활동과 유아교육3. 숲체험활동의 실제최근 유아의 숲체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으며 숲으로 가는 활동에 동참하는 기관들의 수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현대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유아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실내에서 성인들의 지도아래 구조화된 프로그램을 하면서 보내고 있으며, 실외활동을 경험할 기회를 잃어가고 있다. 유아들은 TV나 컴퓨터, 게임, 핸드폰 등의 실내에서 하는 놀이나 활동을 주로 하며 신체를 이용해 실외 놀이하는 경험이 적다. 운동부족으로 인한 소아비만, 면역체계 이상으로 오는 아토피, 천식 등에 걸린 유아들이 많으며 미디어 노출 등으로 인해 각종 사회·정서적 부적응 문제가 만연하고 있어 그로 인해 건강하지 못한 유아기를 보내고 있다.유아기는 자연 속에서 뛰어 놀면서 자연의 생명체와 상호작용을 통해 살아있는 모든 것에 대한 경외심을 배울 수 있는 시기다. 현대사회 속에서 정신적, 육체적으로 피폐해져가고 있는 유아들에게 몸과 마음 그리고 정신을 회복시켜주는 교육으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으며, 사람과 자연의 상생, 공존을 추구하는 시대적 요청과 사명에 부흥하는 생명교육, 살림교육, 지속가능한 미래 지향적 교육으로 주목받고 있다.현대사회에서 유아들에게 자연을 경험하는 것은 교육과정의 일부가 되어 있다. 유아들은 즐겁게 놀고 자고 먹을 때가 가장 행복할 때이다. 기존의 유아교육이 아이들을 일정한 틀 안에 넣어두고 가두는 것이라면, 새로운 패러다임의 유아교육은 실외로 자연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 자유롭게 키우는 것이다. 획일화된 교육이 아닌 자연 속에서 창의적이고 자유롭게 교육하자는 것이다. 1897년 우리나라 최초로 유치원(幼稚園, Kindergarten)이 설립된 이래 유아교육 현장에서 가장 많이 거론되었던 용어는 바로 아동중심, 놀이중심, 생화중심, 발현(發現)적 유아교육이었다. 그러나 실제 유아들의 삶통합하는 유형 중 우리나라에서 적용하는 것이 정규적으로 월 2~4회 숲에 가서 숲체험활동을 하는 ‘숲의 날’이다. 이것 외에도 프로젝트 활동으로 특정기간 숲체험활동을 진행할 수도 있고, 숲체험활동을 혼합연령으로 전개하기 위해 연령이 다른 두 학급이 함께 숲체험 활동하는 ‘숲의 날’을 전개하는 방법도 있다. 숲체험 전담교사가 있을 경우, 각 학급에서 자유선택활동을 숲 놀이로 선택한 유아들을 모아서 별도의 숲 그룹을 구성하여 일정 기간 동안 숲체험활동에 숲그룹으로 참여하게 할 수도 있다. 또한 숲체험활동을 좀 더 확장하여 오전에는 숲에서 활동하고 오후에는 일반 유아교육기관으로 돌아와 활동하는 숲 유치원과 일반 유아교육기관 프로그램을 연계한 형태로도 전개할 수 있다.숲은 우리 모두에게 매우 중요한 교육공간이며, 특히 유아들에게 있어 그 어느 곳보다도 교육을 하기에 최적의 장소이다. 다시 말해 유아는 본능적으로 주변의 사물을 만지며, 살피고 느끼면서 배우고 익혀나간다. 그러므로 자연 즉, 숲이야말로 최고의 교육공간이며 동시에 유아들에게는 최고의 ‘교육’ 그 자체이다. 자연, 숲에서의 경험을 통해 유아들은 자연관을 형성하게 되며 이 시기에 획득한 자연에 대한 태도와 지식은 유아의 삶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따라서 유아 숲체험활동이란 숲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활동들을 뜻하며 이 활동들이 유아들의 감각을 일깨우고, 자연물을 이용한 놀이와 탐구 및 다양한 표현활동 등을 통해 생태계를 이해하며, 유아들로 하여금 자연친화적인 태도를 기르게 하는 체험위주의 활동을 의미한다.(2) 숲체험활동의 교육적 의의숲체험활동이란 자연 속에서 유아들의 오감을 통해 직접 자연체험활동을 하면서 유아들의 놀이 속에서 통합적으로 모든 활동을 구성하여 유아의 전인성장 발달을 돕는데 있다. 숲체험활동에 대한 근본적인 주체 대상인 ‘숲’에 대해 살펴보면 숲은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어 유아들에게 몰입할 기회를 제공해 주고 지루하지 않게 다양한 소재들을 접하게 해주는 자연 학습장이다. 숲에서 하는 모화들을 보면서 자연에 대한 경이로움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숲에서 일어나는 작은 변화에도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느끼는 모든 것들을 아이들은 알고 싶어 하는 지적욕구의 동기로 작용하게 한다.다섯째, 숲체험활동은 유아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해 보면서 자립심과 성취감을 느끼게 된다. 숲체험활동을 하며 유아들은 자유놀이시간을 충분히 함으로서, 숲에 펼쳐져 있는 다양한 자연물들을 이용하여 자신이 상상하는 놀이를 계획하고 구체화해가며 수많은 시행착오의 과정들을 겪는다. 유아들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한 일에 대해 유아 자신들이 받아들임으로써 자연스럽게 익힌다. 숲에서 이루어지는 활동은 정해진 규칙이 없으므로 여러 시행착오를 반복하면서 유아들의 판단 능력은 향상된다. 그리고 이러한 시행착오 속에서 얻게 된 결과를 통해서 진정한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 인간이 가진 감정 중에서 성취감이란 가장 강렬한 것으로 이것은 곧 자신감을 키우는 일이다.이처럼 숲체험활동은 단순히 숲에서 뛰어 노는 활동이 아니라 유아들의 신체 및 정신 건강을 비롯하여 전인적인 발달을 돕는다.2. 숲체험활동과 유아교육(1) 숲체험활동의 실태 및 동향전국 유아교육기관 숲 유치원 운영현황과 실태분석을 통한 한국형 숲 유치원 발전 방안에 관한 연구(2014)에 의하면 숲체험활동을 하는 기관은 전국 유치원 8,708곳 중 3,574곳(41%), 전국 어린이집 43,324곳 중 2,056곳(23%) 이었으며, 동네 숲을 이용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우리나라의 숲체험활동 운영 실태를 크게 둘로 나누면 매일형 숲반과 정기적인 숲의 날 운영하는 반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숲체험활동을 하는 기관의 실질적 운영횟수는 ‘주1회’가 가장 높게 나타났으나, 주5회에 걸쳐 매일활동이 이루어지는 곳부터 주1-2회, 주 3-4회, 월1-2회 이루어지는 곳까지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다.숲 유치원에 대한 유아교사 인식도와 운영실태(2016)에 관한 연구에 의하면 유아교사의 숲 유치원 인식도는 높은 수준이었으며 숲 유치원 운영육을 전공한 학생들이 최초로 덴마크의 숲 유치원을 방문하고, 자신들의 대학부속 유치원에 숲 유치원을 도입하였다. 영국에서 숲 유치원은 아직 실험 단계에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영국의 숲 유치원은 기본적으로 실내에서 운영하면서 일주일중 일부분은 야외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이 대부분이다.우리나라에 가장 많이 알려진 독일에서 최초의 숲 유치원의 근거는 Ursula Sube 여사가 비스바덴(Wiesbaden)시에 속한 숲에서 1968년부터 시작한 숲 산책 그룹에서 찾아볼 수 있다. 독일의 숲 산책 집단은 정식 유아교육기관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가 덴마크의 숲 유치원을 1993년 플렌스부르크(Flensburg)시에서 모델로 하여 첫 번째 숲 유치원을 설립하게 되면서 결정적인 전환기를 맞게 된다. 이 숲 유치원은 플렌스부르크시의 일반유치원 교사였던 Petta Jager와 Kerstein Jebsen이 유아교육 잡지에서 덴마크 숲 유치원의 기사를 읽고 감명을 받아 덴마크의 숲 유치원을 방문하고 6개월간 현장연구를 한 후 설립한 것이다. 이와 같이 숲 유치원이 독일에서 공식적으로 유아교육기관으로 인정을 받고 주의 보조금들을 받게 되자 숲 유치원의 교육비는 점차 감소하고, 그 인기는 급격히 증가하였다. 그 결과 2005년 숲 유치원이 독일 전역에 약 450개의 원에서 활발히 운영되었으며, 이중 독일 남서부 바덴뷔르템베르크(Baden-Wuert temberg)주에 1/4정도가 위치해 있다. 이처럼 덴마크 숲 유치원을 기반으로 우리나라는 매일형 숲반과 정기적인 숲 운영반으로 나누어 운영되고 있다.(2) 숲 체험 활동의 유아 교육적 효과숲에서의 체험 활동이 유아의 정서발달에 효과적임으로 유아교육현장에서는 숲체험활동을 잘 연계하여 유아의 정서발달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며, 유아들이 거대한 숲이라는 자연 앞에서 직접 듣고, 보고, 만지는 경험을 체험할 수 있도록 교육을 시행하는데 노력을 기하고 도시에 위치한 유아교육기관에서도 숲에서 이루어지는 활동이나 교실에서 만나체험하면서 유아들이 구체적으로 사물을 경험할 수 있는 충분한 기회를 준다. 숲에서의 경험은 감각적 인식과 환경에 대한 깊은 통찰을 가능하게 하고, 유아의 호기심을 자극하여 학습에 대한 높은 동기 부여 및 만족감을 주며, 유아가 같이 계획하고 평가하는 활동을 통하여 교육과정을 풍부하게 한다. 종합해 보면 숲체험활동이 유아들을 위한 교육의 장으로 새롭게 떠오르고, 숲체험이 무엇보다 자연 그 자체가 우리에게 중요한 대상이며, 우리는 자연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숲체험이 유아교육에 있어 중요한 이유이다. 특히 유아기는 인격 형성의 기초적 시기이자 결정적 시기로써 이때 형성된 가치관과 생활 태도가 그 이후 삶의 태도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기에 더욱 중요하다고 하겠다. 따라서 종합해보면 숲체험의 유아 교육적 효과는 체험적 경험들을 통해 유아교육에서 추구하는 유아의 심신의 건강과 조화로운 발달을 도와 민주시민의 기초를 형성할 수 있도록 돕는다고 할 수 있다.3. 숲체험 활동의 실제(1) 숲체험 활동에서의 교사의 자질 및 역할유아 교사의 자연에 대한 인식과 태도는 유아의 교육은 물론이고 자연관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자연에 관한 교사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유아교사들은 자연을 사랑하고 자연에 대한 호기심을 두려움 없이 느끼며 탐색하고 다양한 자연 경험을 통하여 바른 자연관과 자연친화적인 태도를 지니는 것이 중요하고 또 필요하다. 나아가 전문적 지식만을 전달하는 것이 유아교사의 역할이 아니라 유아교사는 유아와 함께 자연을 경험하며 자연을 즐기며 탐구하는 자세가 유아교사 자신도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숲체험활동에서 바람직한 유아 교사의 역할과 태도는 매우 중요하다. 교사가 자연주의 유아교육사상에 기초하여 유아들을 숲으로 잘 안내하고, 유아들이 숲과 교감하며 즐겁게 활동하도록 적절히 지원해 줄 때 유아들은 자신의 타고난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며 신체·영혼·정신이 건강한 전인으로 성장하기 때문이다.1) 누리과정과 연계한 숲체험 교육활동에서 숲체험활동이 유아 교사이다.
보고서제 목 : 경복궁의 입지 및 공간구조과 목 명:학 과:학 번:이 름:제 출 일:담당교수:목 차1. 경복궁의 창건과 변천과정2. 경복궁의 입지3. 경복궁의 공간 구조4. 경복궁의 경관1. 경복궁의 창건과 변천과정(1) 창건 과정경복궁(景福宮)은 조선의 법궁(法宮)으로 세워진 궁궐이다. 경복궁 창건은 조선 건국 초기 한양 천도(遷都)의 역사적인 배경 속에서 이루어졌다. 혼란하던 고려 말, 백성과 신하들의 지지를 받은 고려 무장 이성계(李成桂, 1335~1408: 태조(太祖))는 1392년 7월에 개경(開京)에서 왕으로 즉위하여 조선 왕조를 개창하였다. 건국 초기의 5개월 동안 다섯 번이나 반란이 일어날 정도로 왕권이 불안한 상태에서 태조는 천도를 서둘러 추진하고자 했다. 그러나 신하들의 반대로 천도는 바로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천도 후보지로는 한양(漢陽), 계룡산(鷄龍山) 기슭, 한양의 무악(鞍山)이 차례로 거론되었지만, 모두 신하들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태조와 천도 자체를 무산시킨 신하들과의 논쟁 끝에 “우리나라 안에서는 송악의 땅이 최고이고, 남경(南京:한양)이 그 다음입니다.” 라는 서운관(書雲觀) 관원의 대답과 “반드시 도읍을 옮기고자 하시면 이곳이 좋습니다.” 라는 대다수의 신하의 의견으로 한양 천도가 결정되었다.태조는 1394년(태조3) 8월에 한양을 새로운 도읍지로 확정하였고, 한양에 궁궐 건설을 위한 신도궁궐조성도감(新都宮闕造成都監)을 설치하였다. 그리고 태조는 새 수도 한양의 도시계획을 천도를 반대하던 정도전(鄭道傳, 1342~1398)에게 맡겼다. 10월에 태조는 개경을 떠나 아직 궁궐과 종묘(宗廟)의 건축 공사가 시작되지 않은 한양으로 천도를 하였다. 태조는 먼저 종묘와 사직단(社稷壇)을 건축하였고, 12월에 궁궐 공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다. 궁궐 공사에 동원한 인력은 각 지방에서 온 총 1만 5천명이었으며 공사를 급진전시켜 10개월만인 이듬해 1395년(태조4) 9월에 준공하였다. 태조는 한양부(漢陽府)를 한성부(漢城府)로 개칭해 부르와 강원도 일대) 및 서북면(북계(北界):평안도)과의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었다.국가 중앙에 위치한 한양은 국토 전역과 연결되어 교통이 편리하였다. 조선시대 육상 도로는 행정이나 군사적 용도로 전국 각 지방을 연결하는데 주로 이용되었고, 물자의 운반은 수로를 통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한양은 전국의 육상 교통로가 수렴하는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고대부터 오랜 시간에 거쳐 한반도에 형성된 X자형의 육상도로망이 모이는 곳이 한양이었다. 수로에 있어 한양에 인접한 한강은 사람과 물자를 운송하는 교통 기능을 담당하였다. 한양은 한강을 통하여 전국 각 지역과의 물산 운송이 이루어지는 수운상의 요충지였다.한양은 교통의 편리성으로, 조운(漕運) 및 상업, 무역 등의 경제적 활동에도 유리한 입지다. 한양은 한강을 통하여 전국의 물산을 효율적으로 집산(集散)할 수 있어 상업 활동이 수월한 곳이었다. 특히 국가의 재정기반이 되던 세곡 조운의 편리성은 수도 입지의 중요한 조건이 되었다.한양은 군사적 방어에 효율적인 입지다. 내사산과 외사산, 즉 한양은 두 겹의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외적의 침입을 막기에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한강은 한양의 남쪽에서의 침입을 억제할 수 있어 중요한 방어선 역할을 한다. 또한 한양 북쪽에 가로놓인 임진강(臨津江)은 북부로부터의 침입을 차단하는 역할을 하였다. 한양은 수도로서 필요한 각종 국가 기반 시설과 많은 인구를 수용할 수 있는 규모의 공간을 가진 입지였다. 즉 한양은 종묘, 사직단, 시장, 조정, 문묘(文廟) 및 성균관(成均館) 등의 시설들이 세워질만한 규모의 토지를 지니고 있었다. 태조가 계룡산을 포기한 후 물색한 한양 무악은 땅이 좁다는 이유로 수도 후보지로 선택되지 못하였다.(2) 경복궁의 입지1) 자연 조건경복궁의 입지에 대하여 라는 『한경지략(漢京識略)』의 기록이 있었다.경복궁은 북쪽으로는 백악산, 서쪽으로는 인왕산, 동쪽으로는 낙산, 남쪽으로는 남산 서쪽의 낮은 언덕을 마주한다. 경복궁은 백악산 아래에 자리 잡으며 한성이 지배적이다.이 중심축은 육조거리에서 시작하여 정문인 광화문, 흥례문(興禮門: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과 근정전의 정문인 근정문 사이에 있는 중문), 영제교(永濟橋), 근정문(勤政門), 정전인 근정전, 편전인 사정전, 왕의 침전인 강녕전, 왕비의 침전인 교태전 등을 이으며 남에서 북으로 뻗는다. 이 중심축에는 총 6개의 문이 놓여 있는데 첫 번째는 광화문, 두 번째는 흥례문, 세 번째는 근정문, 네 번째는 사정문(四正門), 다섯 번째는 향오문(嚮五門), 여섯 번째는 양의문(兩儀門)이다. 근정문과 흥례문 사이에 영제교가 있으며 영제교 밑으로는 금천(禁川)이 흐르는데, 경복궁의 명당수의 역할을 한다. 광화문에서 근정문을 잇는 공간은 『주례 고공기』에 따르면 삼조의 외조공간이라 한다.근정문을 들어서면 이중으로 높이 쌓은 월대(月臺) 위에 웅장하게 세워진 근정전이 나타난다. 근정전은 경복궁에서 명당 중의 명당에 해당되며 이를 풍수지리 용어로 혈(穴)이라 한다. 근정전은 경복궁의 정전으로서 조선 왕조의 위엄을 상징하는 가장 최고의 격식을 갖춘 건물이다. 는 뜻으로 근정전(勤政殿)이라는 이름을 지었다. 근정전은 국가의 의식이나 조회를 행한 공간이다. 매월 5일, 11일, 21일, 25일 아침에 조참(朝參) 의례가 열리는데, 근정전 앞마당에서는 중앙에 있는 문무백관이 모여 임금에게 문안을 드리고 정사를 보고하였다.근정전 뒤에 세워진 사정문은 경복궁의 네 번째 문이자 사정전(思政殿)의 정문이다. 사정문을 중심으로 하여 동서의 사현문(思賢門)과 숭현문(崇賢門)이 있다. 사정문을 통해 연결되는 사정전은 왕의 편전이다. 왕의 공식 집무실로서 왕이 평소 거처하면서 정사를 보는 곳이다. 근정전에서 아침 조회를 마친 왕은 사정전으로 옮겨와 각 기관의 업무보고를 받거나 관리들을 만나 국정을 논의하였다. 사정전의 이름은 는 뜻으로 지었다. 사정전을 중심으로 동쪽에 만춘전(萬春殿), 서쪽에 천추전(千秋殿)이라는 부속건물이 배치되었다. 이곳은 임금이 편하게 신하들과 나랏일을 의논하거나 독에 당시의 이념과 주술적 의미의 내면적 조형의식이 내재되어 있다. 전각별 격식에 따라 다른 색채로 장식하여 기품 있고 웅장한 느낌을 주는데 일반적으로 고려시대 단청보다 다소 차분한 분위기이다. 유교는 검소함을 중요시하여 건물의 색채에도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중국 불교 건축의 영향을 받아서 붉은색으로 화려하게 치장하던 고려와 달리 조선의 건축은 화려한 색채 사용을 자제하였다. 한국 궁궐 건축에서는 녹색계열의 이미지가 강하다. 경복궁의 외관을 보면 기본적으로 장엄함을 추구해서 밝은 금색이나 빨간색은 많이 쓰지 않고 심녹색, 암홍색, 자색 등을 많이 사용하였다. 대표적인 사례로 근정전 외부는 다른 전각들에 비해 녹색을 많이 사용하였으나 내부에는 정교한 단청 문양과 빨간색, 금색 등 화려한 색깔을 사용하였다.특히 주요 구조부는 모두 양(陽)의 색으로 칠하고, 음(陰)의 색들은 양의 색이 돋보이도록 사용되었다. 또한 지붕기와의 검은색은 물에 약한 목조건축의 단점과, 춥고 비가 많은 한국의 기후특성, 당시 대외적인 정치적 상황 등으로부터 피하고자하는 주술적 의미가 공통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2) 문양 및 조각경복궁에는 왕의 신분을 과시하기 위해 왕을 상징하는 문양이 상당히 많이 사용되었다. 특히 왕의 전용 공간에는 용이나 봉황 문양을 치장한 것이 일반적이다. 첫 번째 사례는 근정전의 어좌 위 천장 중앙에서 볼 수 있다. 황금빛 용 두 마리가 여의주를 가운데 두고 힘차게 하늘로 날아오르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강력한 왕권을 상징하는 것으로 발톱이 일곱 개여서 칠조룡(七爪龍)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어좌의 등널(의자의 등받이에 대는 널빤지)과 곡병(曲屛: 머릿병풍)의 머리와 어깨 부분에도 황금색 용이 조각되어 있으며, 정상에는 최고의 상서를 상징하는 서일상운문(瑞日祥雲紋)이 장식되어 있다. 서일상운문은 용문과 같이 임금 전용 문양이다. 서일상운은 서기 어린 햇빛과 상서로운 구름이라는 뜻으로 존귀한 인품인 왕과 태평성대를 상징한다. 두 번째 사례는 근정전 앞에 설간은 자연 속에서 태어나 자연의 이치에 따라 살아가는 존재이므로 하나의 소우주라고 생각하였다. 자연과 인간이 둘이 아니라 하나라고 생각하는 천인합일(天人合一)사상은 전통건축에도 중요하게 적용되었다. 따라서 자연과 하나가 되고 싶은 소망이 인간이 세운 인공적 건축물에 반영되었다. 이는 주로 연못, 화계(花階:화단), 석조, 괴석(塊石), 인공산 등으로 형상화되었다. 경복궁의 자연과의 조화는 영제교 아래로 흐르는 물길, 경회루와 향원정이 세워진 연못, 교태전 뒤뜰에 인공산인 아미산, 근정전에 배치된 일월오봉병(日月五峰屛), 꽃담장 등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자연과 하나가 되기 위한 핵심 조건으로, 궁궐을 비롯해서 사찰(寺刹), 서원(書院) 등 전통 건축물의 진입 공간에 계곡이나 연못을 조성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물이 집 앞에 흐르는 것은 풍수사상에서 명당을 이루는 중요한 조건으로, 궁궐에서도 이러한 명당수 개념이 중요하게 적용되어 궁궐 앞으로 물이 흐르도록 조성하였다. 경복궁 안에서 흐르는 물길은 북악산에서 흘러내려오는 물줄기를 끌어들여서 작은 개천을 내고 그 위에 영제교를 건설하였다. 이 물은 경복궁 서쪽에서 흘러들어와 경회루 연못물과 합쳐져서 동쪽으로 흘러 영제교를 지난 다음 동남쪽으로 빠져나가며 명당수라고 여긴다.경복궁의 연못과 기둥에는 인간과 우주가 하나가 되고 싶은 소망을 담았다. 이러한 소망을 표현하기 위해 건축물 안에 우주의 모형을 조성하였는데 천원지방(天圓地方)이라는 이념이 중요하게 적용되었다. 『주역(周易)』에서 고 말한 것에서부터 라는 천원지방설이 탄생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원형과 방형이 하늘과 땅, 나아가서는 우주의 모형이 된다는 개념이 형성되었다. 대표적인 사례로, 경회루와 향원지(香遠池)를 꼽을 수 있는데, 연못은 사각형, 연못 안의 섬은 원형으로 만들어 천원지방의 원리를 구현한 것이다. 또한 전각을 건축할 때도 원기둥과 네모기둥을 적절히 조합하여 세웠다. 경회루의 누각 아래 기둥은 바깥쪽 스물네 개의 네모기둥과 안쪽 스물네 개의 원기
보고서제 목 : 부모의 양육태도와아동의 사회성 관계과 목 명:학 과:학 번:이 름:제 출 일:담당교수:목 차1. 서론2. 양육태도3. 자아존중감4. 사회성5. 결론1. 서론인간은 출생을 하고 성장해 가는 동안 본인의 의사와는 전혀 관계없이 사회의 일원으로 소속이 되며 출생 후 만나게 되는 가정이라는 사회에서, 부모와 관계를 맺는다. 이곳에서 사회의 일원으로서의 필요한 소통방법이나 여러 가지 기술들을 익히고 하나둘씩 역할을 배우게 된다. 부모 중 특히 어머니는 아동의 최고 교육자이자 상담자이고 아동이 동일시 여기는대상이 되기도 한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다양한 물리적, 인적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성장하는 아동의 발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성장 발달의 기반을 형성하게 된다. 특히 아동은 부모, 형제와의 접촉에서 사랑과 인정, 격려 등을 경험하며 발달을 하게 되고 이때 부모는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된다. 또한, 부모의 양육태도가 어떠한가에 따라 아이들의 인성과 성격이 달라진다.과거에는 효를 중시하던 전통적인 가족제도의 울타리 안에서 조부모와 부모 등 가족구성원 속에서 자연스럽게 부모역할을 배울 수 있었다. 현대의 부모들은 핵가족 속에서 여성들의 사회활동 증가와 더불어 가족의 구조변화, 기능변화, 역할변화, 저 출산 등 급격히 변화하는 시대상황 속에 부모역할에 대해 습득하지 못한 채 부모가 되고 아이를 양육함에 있어서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아동이 올바르고 건강한 사회의 일원으로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출생으로 인한 첫 사회관계인 부모가 어떠한 태도로 아이를 양육하고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는지에 따라 아동청소년기의 행동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되며 자녀의 인생태도 및 인생각본이 변할 수 있다. 최근 청소년문제가 사회문제로 대두되면서 학교폭력, 또래 폭력 등이 해마다 증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아동 청소년 문제의 가해학생의 경우 원가족의 가족력 및 부모의 양육태도를 살펴보면 자녀의 의사 등은 무시하고 부모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체벌을 가하거나 방관하적으로 자녀들이 의존적이고 순종적이며 예의가 바르기를 원하며, 반면에 자녀들은 반항적이고 불안 해 하며 자학적인 행동이 많이 나타나고 자립심이나 창조성이 결여될 수 있다. 맹목적인 복종형의 부모는 자녀를 위해 부모의 모든 시간을 소비하고 그로 인한 즐거움의 보상을 얻으려 한다. 따라서 자녀들은 정서적으로 간섭을 받아 늘 유아기적인 상태로 머물게 될 경향이 많아지고, 자기중심적이고 지배적이어서 공격적인 성향을 나타낸다. 보호(수용)형의 부모는 필요 이상으로 자녀를 보호하며 이 유형의 부모를 둔 자녀들은 사회적으로 의존성이 강하고 성숙이 늦어지며, 활발한 교우관계가 성립되지 않아 고립되는 상태에 높이기 쉽다. 거부형의 부모는 자녀가 필요로 할 때에 애정을 거부하며 대신 애정을 주는 데에 있어서 조건부를 정하여 주는 등의 행동을 보이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의 애정을 요구 하는 데에 있어서 자녀들은, 주위의 시선을 끌려고 하며 반항적이기도 하고 거짓말 등을 일삼는 등 문제행동의 양상을 나타내 보이기도 한다.Symonds의 양육태도 유형은 국내외 학자들에게도 계속 사용되며, 많은 학자들에 의해 가설적 모형이 받아들여지고 있으나 시몬즈는 정신분석학에 근거한 임상적이고 병리병적인 사례에만 의존하였기 때문에 부모의 양육태도를 정상적인 범위에 의거하여 설명하기에는 적당하지 않은 점도 있다.최근 연구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는 C. Schaefer의 양육태도에는 애정-자율적 양육태도, 애정-통제적 양육태도, 거부-자율적 양육태도, 거부-통제적 양육태도로 4가지 양육태도로 분류하였다. 애정-자율적 양육태도는 자녀에게 허용적, 민주적, 수용적, 자율적인 태도를 보임으로서, 자녀에게 부정적인 감정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게 함으로서 자녀의 정서적인 안정을 돕는다. 애정적-통제적 양육태도는 자녀의 행동에 많은 제약을 하고, 거부-자율적 양육태도는 자녀를 수용하고 자녀가 마음대로 행동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거부-통제적 양육태도는 심리적, 언어적 통제를 하는 양육태도이다. 매사에 불안정하며 공격적인 행동이 나타난다고 하였다.교류분석양육태도를 보면 권위적 양육태도에서 자라난 아동은 공격적이고 비우호적이다. 두려움이 많고 수줍음을 많이 타고 기분의 변화가 심하게 나타난다. 또한 자신의 처지를 불행하다고 느끼면서 수동적이며 내면으로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는다. 보호적 태도에서 자라난 아동은 부모의 높은 표준이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비현실적 기대를 스스로 세우는 경향이 있고 부모의 지도와 승인을 얻기 위해 순종과 의존성을 키우게 된다. 방임적 양육태도에서 자라난 아동은 부모로부터의 무관심으로 인해 충동적이고 공격적인 성향을 나타내며 어른에게 반항적이고 자기스스로의 통제력이 부족하고 감정기복이 심하게 나타난다.자녀의 정서적 행동특성, 가치관, 성격 등 부모양육태도가 어떠하냐에 따라 중요하게 작용한다고 볼 수 있다. 아동은 부모의 양육태도로 인해 사회성 및 인성, 자존감등이 형성되므로 뚜렷한 지침이나 명확한 개념을 갖추어 아이와 눈을 맞추고 먼저 아동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태도를 가지고 잘못 된 것에 대해서는 올바른 훈육을 함으로서 아동이 올바른 사고력을 가지게 도와주고 타인을 배려할 줄 아는 인성을 지닌 인격체 형성을 위해 자녀양육에 대해 올바르게 인식하고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3. 자아존중감(1) 자아존중감의 개념자아존중감이란 자기가치와 자신감을 뜻하는 것으로서 부모의 양육태도로 인하여 형성되어진 자기 자신에 대한 신뢰도가 얼마인가에 따라 긍정적 자아존중감인지 부정적 자아존중감이 형성되어 있는지를 알 수 있다.긍정적 자아존중감을 지닌 아동은 외부환경으로부터 오는 자극에 대해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탁월하고 스트레스를 잘 극복할 수 있는 정신력이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타인에 대한 배려와 또래관계가 좋은 것으로 나타나 있다. 자아존중감이 낮은 아동은 가족에 대한 애정도도 낮고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보다는 부정적인 평가를 하는 것으로 나타난다.William James는 자아존중감에 대한 개념적 정의를 ‘The Principles 고. 자아존중감의 수준이 낮은 사람은 높은 사람에 비해 불안이 강하고, 대인관계가 좋지 않고 독립되어 있으며, 자신감, 지도력이 결여되어 있고, 이상은 높으나 실패를 두려워하는 등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또한 자아존중감이 높은 사람은 타인이 자기에게 동의하지 않을 때에도 당황하지 않으며, 실패할 때라도 변명하지 않고, 타인들을 사회적 지위에 관계없이 동일하게 대우하며 타인들의 복제에 공헌하는 자신의 능력을 의심하지 않고 그렇게 하려고 시도한다고 하였다.높은 자아존중감을 형성하려면 자아발달 단계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반대로 요구되는 행동 양식과 발달과업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 낮은 자아존중감이 형성된다. 자아존중감은 정서적인 개인반응을 결정하는 것과 연관되어있고, 행동목표에서 실패하면 부끄러움과 화남, 슬픔과 강력한 부정적 감정 등이 증가하고 자아존중감과 연관된 목표에 달성을 하면 긍정적 감정이 증가 한다.자아존중감의 발달은 첫 번째, 발달초기에 부모와의 상호작용에서 형성되어진 자아개념은 인간관계를 통하여 형성, 발달하고 변화된다. 두 번째 특징은 타인에 의한 평가나 성공과 실패 등의 경험에 의해서 자기 개념은 더욱 부정적 혹은 긍정적으로 변화된다. 세 번째 특징으로는 가정적 결손과 분열적 생의 경험은 부정적 자기개념을 형성시키는 중요한 요소이며 특히 정서적 동요는 자기 개념의 변화에 영향을 준다. 네 번째 특징은 연령이 증가할수록 자기개념은 더욱 견고해지고 강화되는 특성을 가지며 성년기를 통하여 안정을 유지한다. 다섯 번째 특징은 여자가 남자보다 자기개념의 형성에 있어서 가정환경의 영향을 더 받는다.(3) 자아존중감 발달에 미치는 요인Eric Homberger Erikson은 인간의 발달단계 중 자율성과 수치심과의 단계(2∼3세)에서 부모의 역할이 자아존중감이 형성되는 과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보았다.는 자아존중감의 발달에 대해 남근기(18개월∼6세)에 부모가 주는 벌과 칭찬이 자녀의 자아존중감 발달과 관련이 있다고 하였는데 이때 벌과 칭찬의 비례에 따따라 사회성이 높은 아동은 협동적이며 집단생활을 즐겁고 적극적으로 즐기고 친구들 간의 또래관계도 원만하며 친구도 대체로 많은 편이며 따뜻함과 정이 많아 다른 사람의 의견을 잘 수용하며 대인관계가 원만하다. 또한 사회성이 높은 아동은 직면한 사회적 문제들에 효율적으로 대처할 줄 안다. 반면에 사회성이 낮은 아동은 대체로 충동적이며 대인관계에 대처를 잘 하지 못해 많은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례가 많다. 대인관계가 원만하지 못하면 정서적 위축감과 더불어 아동의 정서적인 성장을 더디게 한다. 사회성이 낮은 아동은 사회적응과 기능의 발달이 저하되어 문제행동을 일으키거나 정신 건강상의 문제가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초등학교 아동들의 사회적 행동특성을 보면 첫 번째, 교우 집단에서 민감성을 가지며 자기중심성 에서 사회화로의 전환을 의미 하는 중요한 심리적 특징을 가진다. 두 번째, 지적 활동 시기로서 학업에 있어서 칭찬과 질책이 따른다. 세 번째, 집단의 지도자에게 스스로 동조현상을 보인다. 네 번째, 동물이나 나이 어린 아동, 여자 아동을 괴롭힌다. 다섯 번째, 학업이나 집단 활동에서 경쟁을 많이 하게 되며 이 시기에 있어서 경쟁은 상당한 동기유발의 가치를 지닌다. 여섯 번째, 아동은 점차로 감정을 감추는 법이라든지 가장하는 것을 배운다. 아동은 자기를 공격하는 인물을 도피하고 성질이 자신과 맞는 인물을 찾아내는 기술을 배워간다.초등학교 고학년의 사회성 발달의 특징을 살펴보면, 모험심이 강하고 경쟁심이 강하며 소속감과 사회적 지위에 대한 의식이 생기는 시기이다. 또한 어른의 의견보다는 친구들의 의견을 중요시하게 여기며 집단적 행동을 취한다. 더불어 집단의 기능과 인간관계에 대한 이해도도 한층 높아지며 책임감을 지각한다. 또한 동료 집단이나 그룹생활에 가담하여 활동하기를 즐기며 가정, 학교생활 이외의 집단에 참가하여 협동과 참여하기를 좋아한다.사회성의 여러 가지 요인 중에서 협동성과 또래상호작용을 중점적으로 보면, 협동심의 넓은 의미는 인성의 한 영역으로써 인간관계에 필요한 다.
보고서제 목 : 자아방어기제의 개념과 종류 및 특징과 목 명:학 과:학 번:이 름:제 출 일:담당교수:목 차1. 프로이트의 불안2. 자아방어기제의 개념3. 자아방어기제의 분류와 특성1. 프로이트의 불안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는 신경증(神經症, neurosis)의 원인을 환자의 무의식 속에 생기는 심적 갈등이라고 보았다. 이 심적 강등은 특히 성적인 문제와 관련되어 있는 것이 보통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무의식 하에서 심적 갈등을 자아가 적절히 처리하여 이드(Id)나 초자아(super ego)와 균형을 적절히 유지해 가면서 해결하면 문제가 없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신경증의 증상이 나타나 보인다.프로이트에 있어서 신경증을 문제로 삼을 때는 불안(anxiety)이라는 개념이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불안은 정신분석 이론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 중의 하나이다. 불안은 성격의 역동에서뿐만 아니라 발달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더욱이 신경증과 정신병에 대한 프로이트의 이론과 치료에 매우 중요하다. 불안은 신체 내부의 흥분으로 인해 발생하는 고통스러운 정서적 경험이다. 이 흥분은 내적 혹은 외적 자극에 의한 것으로 자율 신경 계통의 지배를 받는다. 예를 들어 사람이 위험에 직면하게 되면 심장의 고동이 빨라지게 되고 호흡이 가빠지며 입에 마르고 땀이 난다. 불안은 특별한 성질을 가지고 있어서 긴장·고통·우울 등의 다른 고통스러운 상태와는 다르다. 무엇이 이러한 성질을 결정하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프로이트는 그것이 내적 흥분의 독특한 특성일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불안은 그것을 느끼는 사람이 이것이 고통·의기소침·우울·식욕·갈증·성욕 그리고 그 밖의 신체적 욕구 때문에 생기는 긴장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의식의 상태이다. 무의식적인 통증이 있을 수 없는 것처럼 무의식적인 불안도 없다. 사람들은 자신이 불안한 이유를 모를 수는 있다. 그러나 자신이 불안하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경험되지 않는 불안은 존재하지 부담이 된다. 우리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외부의 위험을 다루거나 피하는 방법을 발당시키게 된다. 그리고 심지어 아이들도 위험한 물건이나 상황으로부터 언제나 도망갈 수 있다. 그러나 신경증적 불안은 그 원천이 우리의 성격 내에 있으므로 신경증적 불안을 다루는 일은 더욱 어렵고, 그것으로부터 달아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3) 도덕적 불안(moral anxiety)자아의 죄의식·수치심으로 경험되는 도덕적 불안은 양심으로부터 위험에 대한 지각이 있을 때 나타난다. 부모의 권위와 내면화된 것인 양심은 부모에 의해 심어진 완전주의적 목표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거나 생각을 하면 벌을 내리겠다고 위협한다. 도덕적 공포를 일으키는 최초의 공포는 객관적인 것이다. 그것은 처벌을 하는 부모에 대한 공포이다.신경증적 불안과 마찬가지로 도덕적 불안의 원천도 성격 내에 있고 또 죄책감에서 벗어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 이 갈등은 순전히 정신 내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갈등이 구조적인 것이고 도덕적 불안이 처음에 부모에 대한 객관적 공포에서 생겨난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환경과 아무런 연관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불안은 자아에서 위험을 알리는 신호의 기능을 한다. 이 신호가 의식에 나타나면 자아는 위험에 대처할 수단들을 강구할 수가 있다. 사람들은 불안이 고통스럽기 때문에 싫어하지만, 내적 위험과 외적 위험을 일어난다는 것을 경고하는 불안의 기능은 매우 중요하다. 경고를 받게 되면 사람은 위험을 피하거나 대처할 행동을 할 수가 있다. 그런데 위험을 피할 수 없으면 불안이 누적되어 마침내 그 사람을 압도해 버린다. 뿐만 아니라 개인의 의식에서 나오는 불안 외에 외부의 환경에서 야기되는 현실불안은 자아의 본능에 따라 자기보존본능이 발현될 수 있으며, 이는 자아를 외부로부터 방어하게 되는 현상으로 이어진다.2. 자아방어기제의 개념자아에게 부과된 주요 과제들 중의 하나가 그 개인을 둘러싸고 있는 불안을 일으키는 위협과 위험을 처리하는 일이다. 자아는 현실적인 문제 해결 방법을 채택해서 위험을 있는 일에 대해서는 기억을 하지 못하도록 억압이 작용한다.2) 부정(denial)현실의 고통스러운 측면을 회피하고자 하는 것으로 느끼고 지각한 것을 왜곡하는 것이다. 억압과는 다르게 이 기제는 외부 현실의 지각과정에 영향을 미친다. 사건 자체에 대한, 사건이나 경험과 관련되는 감정에 대한 부정이 있다.3) 투사(projection)투사는 자신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충동, 바람 또는 특성들을 다른 누군가에게 돌림으로써 불안이 감소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투사는 자신이 싫어하는 자신의 측면을 인식하지 않게 하는 방법을 제공한다.투사의 다양한 요소들은 세 가지 범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외부 대상에게 투사함과 동시에 이러한 감정을 자신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기도 한다. 투사는 자신의 감정, 생각, 자기 이미지를 타인에게 일반화하는 것이며, 이러한 투사작용은 인지적 약점, 즉 자기와 타인을 구별하지 못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두 번째 범주는 자기와 타인의 분명한 경계를 가지고 있고, 바람직하지 못한 특징을 자기 것으로 알고 있지만 그 원인이 타인에게 있다고 보는 것이다. 또 다른 경우에는 이러한 특징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자기 안에 존재하지만 인지하지 못하고 사고, 감정, 소망, 충동이 타인에게 있다고 믿는 것이다.투사는 불안을 경감시키는 데 한몫을 담당하고 있다. 그것은 또한 그 자신의 진정한 느낌을 표현하기 위한 구실을 주는 것이다.4) 동일시(identification)자기가 두려워하는 외부의 대상을 자신의 마음속으로 집어놓고 오히려 두려워하는 대상과 닮아지려는 현상으로 발전하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예컨대 다른 사람의 특징이나 특권, 업적, 제도 등을 받아들여 자신의 것으로 함으로써 자기의 가치를 높이고, 자기의 가계나 소속 학교 또는 회사의 우월성을 자기 자신의 우월성으로 느끼고 만족감을 얻는 것을 말한다.5) 퇴행(regression)이전의 발달 단계로 역행하여 보다 미숙하고 미분화된 반응을 행동(passive-aggressive behavior)다른 사람에 대한 공격적인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간접적으로 수동적인 저항행동으로 표현함으로써 공격적인 감정을 처리하는 것으로 이러한 행동으로는 실수, 꾸물거리는 행동, 저항적인 묵묵부답, 심술궂거나 짓궂은 행동 등이 있다. 이는 어느 시기까지는 개인 자신보다 상대방에게 자극을 주게 되지만, 나중에는 개인 자신에게 해롭고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13) 신체화(somatization)무의식의 갈등이나 욕망이 정신적인 내용을 담고 의식으로 올라오지 않고 신체 증상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대개 이유 없이 몸이 아프다고 호소하곤 한다. 심리적 상태를 말로 표현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어린아이가 정서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 흔히 신체화로 정서적 불편함을 표현한다. 아직 심리 발달이 성숙하지 않은 초등학생이나 10대는 스트레스에 대한 표현이 신체화 증상으로 드러날 수 있다.이혼을 고려할 정도로 갈등이 심한 부모 밑에서 자라는 10대 초반의 아들이 이유 없이 머리가 아프다며 조퇴를 반복하는데 검사해도 별다른 이유가 없는 것이 전형적인 신체화다. 건강 염려증과는 달리 심한 병에 걸렸다고 걱정하지는 않으며, 신체 증상에 대한 통증과 불편함만을 호소한다.14) 이타주의(altruism)본능적인 욕구 충족을 타인을 돕는 일로 대신하는 행동으로 이타적 포기라는 말도 있는데, 이는 자신이 직접 욕구를 충족하는 대신 다른 사람이 충족할 수 있도록 도와서 대리 만족을 느끼는 것이다. 가족을 위해 자신의 즐거움을 모두 희생하는 어머니라든가, 월급의 일부를 쪼개서 구호 단체에 기부하는 것도 이타주의의 예다.15) 금욕주의(asceticism)현실에서 경험할 수 있는 욕망의 충족과 쾌락을 없애고, 금욕을 통해 만족을 얻는 태도다. 도덕적인 면이 강하게 작용한다. 놀고 싶고 갖고 싶은 것도 많지만, 대학 진학을 위해 모두 포기하고 공부만 하는 것도 금욕주의적 행동이다.16) 유머(humor)다른 사람에게 불쾌한 자극을 주지고 있는데, 이 감정과 감정을 유발했던 일 또는 생각이 분리되는 현상을 말한다. 즉, 동시에 존재하는 양립하기 힘든 감정이 다른 대상이나 장면에 분리하여 나타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어릴 적에 부모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한 아이는 커서 막연하게 사회에 대한 증오감을 나타내거나 느끼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고아가 된 중학생이 부모의 죽음을 두고 ‘사람은 누구나 죽는 거다’라며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다.26) 섭입(introjection)외부 대상의 여러 속성들을 받아들여 자신의 것으로 삼는 것을 말한다. 섭입은 외계에 있는 것을 자기 속으로 집어넣어 자기의 일부를 만드는 형상으로서 생물학에서의 동화(同化)와 같다.27) 보상(compensation)자신의 바람직한 특성을 강조함으로써 약점을 감추거나 한 영역에서의 욕구불만을 다른 영역에서 보상함으로써 자존심을 고양시키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면 자기가 지니고 있는 약점이나 결함을 극복하고 생산적인 행위를 하는 경우라든지, 이와는 반대로 자기의 약점이나 결함을 보상하기 위하여 반사회적인 행위를 하는 행동을 말한다.28) 지성화(intellectualization)자신의 경험에서 감정적인 면을 떠나서 지적으로 객관화시킴으로써 심리적 거리를 두고 바라보고 감정적인 혼란이나 두려움으로부터 회피하려는 기제이다. 지성화는 정서적으로 위협이 되는 상황을 추상적이고 지적인 용어로 취급함으로써 초연해지려는 것으로 특히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의학적 입장에서 두드러진다.29) 고착(fixation)애착의 대상이 어릴 때의 발달 단계에 정착되는 현상으로 정신적 발달 단계 중에서 어떠한 단계에 머물러 있으면서 다음 단계로 발달해 가지 못하는 경우를 말한다. 고착 현상은 심리적 위험 때문이며 그 중에서도 중요한 것은 불안(처리 능력 부족), 실패(타인의 조소), 징벌(징벌 공포) 등이다.30) 전이(transference)과거에 어떤 대상에게 느낀 감정이나 사고를 현재의 다른 대상으로 옮기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전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