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
Bronze개인
팔로워0 팔로우
소개
등록된 소개글이 없습니다.
전문분야 등록된 전문분야가 없습니다.
판매자 정보
학교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직장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자격증
  •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판매지수
전체자료 6
검색어 입력폼
  • 청년실업해소방안
    그대, 청년실업이여!앨빈 토플러의 은 고전이 된 지 오래되었지만, 그 내용은 여전히 우리에게 몇 가지 교훈을 준다. 그의 주장을 요약하면, 현대 사회에서는 정보와 지식을 가진 사람이 권력(=돈)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은 더 많은 정보와 지식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게 된다. 더 긴 교육기간이 더 많은 돈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희망은 여기서 생겨나게 된다. 그래서 우리의 결론은 '더 열심히 배워서 더 잘살아야지'가 된다. 경쟁은 더 심해지겠지만, 내가 그 경쟁의 꼭대기에 올라가 승자가 되면 된다는 생각 말이다. 84%에 달하는 대학진학률은 이러한 희망에 부푼 한국인들의 꿈을 보여준다.물론 이것이 가능하던 때도 있었다. 고졸자의 대학진학률이 30%도 채 되지 않았던 80년대 초반까지는 대학만 가더라도 먹고 살 수 있는 희망이 있었으며, 개천에서 용이 나서 한 순간에 집안을 부흥시킬 수 있는 기회가 열려 있었다. 하지만, 교육기간이 길어지고 그만큼 투자되어야 하는 액수가 커지면서 이 가능성은 점점 줄어들게 되었다. 더군다나 이 시대가 갖고 있는 고통의 본질적인 원인은 이것이 아니다. 문제의 본질은 지식사회가 되면서, 인간의 노동이 불필요해진다는 것에 있다. 우리는 토지로부터 이탈하면서, 먹을 것을 생산하는 대신 일정한 생활보조비를 받기 위해 노동을 하게 되었지만, 아쉽게도 이러한 인간 노동의 부분이 점점 줄어든다는 것이다.문제는 기술의 진보에 따른 자동화에 있다. 과거 1000명이 필요했던 공장은 이제 최신식 컴퓨터 1대와 이를 관리할 수 있는 1명의 고급 인력만 있으면 된다. 999명의 행방은 알 길이 없다. 이 문제는 더욱 심화될 것이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은 그 1명의 관리직이 되기 위해 경쟁할 것이고, 학교의 교사들은, 부모님들은, 어른들은 그 1명이 되는 것이 인생의 승리자라고 가르칠 것이다. 하지만, 기술이 발달하면 그 1명마저도 컴퓨터로 대체되고, 더 상위의 관리자만 남게 될 것은 뻔한 일이다.이것은 능력의 문제가 아니다. 실업자들은 무능력하여 실업상태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 아니다. 능력의 문제를 학벌의 문제와 연관시키거나, 능력의 문제를 소득의 문제와 연관시키는 것은 매우 단순한 사고방식에 불과하다. 능력이 제 아무리 좋아도, 비슷한 능력의 사람이 많다면 경쟁이 더욱 심할 뿐이다. 나 혼자 잘 살아보겠다고 해봤자, 내가 져야할 사회적 부담은 전혀 줄어들지 않는다.게다가 1명의 관리자가 되기 위해 뛰어들었다가 실업자 신세가 될 가능성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절반이라도 거두면 다행이건만, 투자되었던 비용의 10분의 1도 회수하지 못하는 최악의 수익률을 거둘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꼭대기로 올라서려 하지만, 올라서지 못할 가능성이 더 커지면서 이제 문제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거기에 이제는 좋은 대학이라는 간판이 우리의 평생 소득을 보장해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되면서 패러다임의 전환이 요청되는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어차피 자리를 얻을 수 있는 사람은 매우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 확실하다면, 그 경쟁으로 인하여 사람들끼리의 적대감만 더 늘어가는 것이 확실하다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취업에 대한 병목 현상을 해결해야 한다. 현재의 상황은 무리하게 교육기간을 길게 잡음으로써 혹은 교육성과를 높게 잡음으로써, 초기투자비용이 올라가고 이 부담이 모두 활동기의 세대들에게 전가되고 있다. 이에 따라 가장 큰 세수원인 활동기의 세대들의 생활상의 부담이 날로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것은 개인의 고민이라기보다는 국가적 고민이어야 한다.그렇다면, 첫 번째 해결책은 준비기를 줄이는 것에 있다. 모든 사람이 대학에 갈 필요는 없다. 취업 시기를 7-8년 앞당기고 스스로 돈을 벌게 하고, 활동기를 더 길게 해주면 된다. 그들에게 소득이 생기면 그로부터 세금이 나오게 된다. 하지만 이렇게 반문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바로 취업을 해야 한다는 것인데, 그럴 배짱을 가진 고졸자가 어디 있겠는가! 맞는 말이다. 고졸자와 대졸자의 임금차가 분명한 상황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이 분명한 상황에서 과연 스스로 낮은 단계의 삶의 수준을 감당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하지만 대학가서, 대학원가서 비싼 돈 들여가며 공부하고 백수로 나앉는 것보다는 그 길이 개인에게도, 사회에게도 유익한 길이다. 모든 사람들이 대기업에 다니며 중형차를 타고, 명품 슈트에 멋진 구두를 신고 모닝커피를 마시며 출근할 이유가 없다. 그리고 당연히 자동화로 인해 인간 노동의 절대적 수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당연히 그럴 수 있는 사람은 매우 한정될 수밖에 없다. 지금의 상황은 자의적으로든 타의적으로든 준비기를 줄여야 하는 상황이다.그동안 사람들이 소위 육체적 기술을 가진 일을 등한시 했던 이유는 그만큼 소득이 보장되지 않고, 착취 구조 속에서 차별받으며 살았기 때문이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기술의 가치를 인정해주지 않은 것이다. 그런 결과 단순 노동직으로부터 공장의 기술자까지 모두 외국인 노동자들이 차지하게 되었으며, 그 일자리로 가지 않은 많은 이들이 대학에 매달리고 백수의 길로 치달은 것이다. 돈을 들여가며 배워놓고 노는 것보다는 돈을 적게 들이더라도 일을 하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그리고 이를 위해서 비정규직의 차별 문제는 반드시 해결되어야 하는 상황이다. 정규직이 가지는 고용안정성이 우리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 효과와 더불어, 인센티브 제도를 통해 비효율과 태업의 단점이 극복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어야 할 것이다. 고졸 비정규직도 나름의 삶을 안전하게 영위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겨야만 준비기는 줄어들게 된다.이렇게 준비기를 줄이기 위해서는 또 이에 마땅히 유인책이 필요하다. 왜냐면 '대학 가지마라'고 권장하더라도 애초의 불만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강제될 수 없는 이이기 때문이다. 가령 대학에 그토록 매달리는 이유는 취업이 가능하기 때문이고, 취업을 하려는 이유는 당연히 돈을 벌기 위해서이다. 이것은 먹고 사는 문제와도 관련이 있지만, 그걸 뛰어넘어 한국이라는 사회가 요구하는 체류비용 자체가 매우 비싸기 때문에 나타나는 문제이기도 하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취업해봤자 얼마 벌지도 못하거니와 그 돈으로 한국 사회에서 살아남기가 매우 힘들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아는 것이다.대표적인 것이 바로 주택-교육-의료의 죽음의 삼각 편대다. 자고-배우고-고치는 데 필요한 비용이 엄청나기 때문에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그렇게 함으로써 삶의 안정성을 갖추기 위해서라도 돈은 반드시 필요하고, 꽤 많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이런 두려움에 대해 해결하는 것이 준비기를 줄일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 된다.이것은 굳이 대학이나 학벌이 아니더라도 삶의 질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사회적 안전망에 관한 것이다. 국가가 정책적으로 이들의 삶의 안정성을 되찾아주는 것이 백수를 양산해내는 경쟁을 권장하는 것보다는 당연히 더욱 효율적일 것이다. 돈을 쓰고도 돈을 벌지 못하는 것보다는, 돈을 쓰지 않았지만 돈을 벌 게 해주는 것이 더욱 좋은 일 아닌가?그러기 위해서는 3각 편대를 해체시켜야 한다. 특히나 무상의료와 무상교육. 이것은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교육 기회의 제공과 직업교육의 혜택, 또한 어떠한 사고로부터도 경제적 안정성을 잃지 않게 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로서 반드시 실현되어야 하는 항목들이다. 돈이 없어서 죽을 수 있다는 부담은, 당연히 돈만 있으면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는 단순한 사고로 사람들을 이끈다. 마찬가지의 논리로, 백혈병이나 암과 같은 비싼 치료비를 요구하는 질병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항상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다. 국가를 믿지 못하고 사적 안전망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국가는 더욱 더 세금을 걷기 어려워진다. 사람들은 각개약진하기 위해 사람들과의 연대를 끊고 1인용 땅굴을 파고 들 것이다.회사원들은 회사원대로 세금에 대해 거부감을 가질 것이고, 자영업자들은 자영업자대로 세금을 피하기 위해 애쓸 것이다. 국가에게 세금 몰아줘봤자 공무원이 착복하거나 보도블록 뒤집는 데 쓰고 국회위원들 품위유지비 따위에나 쓰니 말이다. 결국, 복지혜택을 위한 세수 확보는 점점 더 어려워지게 된다. 국가적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국가가 국민을 위해서 안정성을 제공해준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더군다나 무상의료와 무상교육이 된다면 활동기 세대들의 부담도 한결 줄어들게 된다. 물론 세금의 부담이야 늘겠지만, 그만큼 그들은 좀 더 자신의 삶에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된다. 영혼을 팔면서까지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위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들 사이의 연대감 또한 필요하다. 쉽게 말해서, 개개인들 역시 이러한 구조 속에서 제 아무리 버젓한 대학 나와서 대기업에 취직해봤자 삶의 불안정성의 문제는 언제든 밀어닥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내 옆자리의 사람에게 닥친 불행은 나의 행복이 아니다. 구조조정의 화살을 피했다고 '아싸- 난 살았다'라고 외쳐봐야 잠깐이다. 경쟁이 내면화된 교육 속에서 커온 사람들은 남들의 불행을 자신의 우월함으로 오역하는 실수를 흔히 범한다. 하지만, 옆자리의 사람이 경험했던 불행은 한국 사회에서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불행인 것이다. 구조조정의 다음 차례가 누구인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노동자로서 그런 상황에 처하게 된 것에 대해 동질감을 느끼고 같이 고민해야 할 문제를 이렇듯 오역하는 바람에 사람들은 서로 분열되게 된다. 이것은 왜곡된 시스템이 초래한 불행이다.삶의 불안정성은 이렇듯, 다양한 영역에서 우리를 덮치게 된다. 준비기를 좀 더 길게 가지려는 사람들의 현실적 인식, 즉 삶의 불안정성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발버둥에 대해 우리가 그 사회공학적 움직임을 이해해주고, 이에 대해 대처해줄 때 말도 안 되는 대학 쏠림현상은 사라진다. 84%가 대학을 가지만, 그래봤자 모두 대학을 취업 학원으로 생각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은 대학이라는 회사만 배부르게 해줄 뿐이다.
    독후감/창작| 2009.07.14| 4페이지| 1,500원| 조회(116)
    미리보기
  • 행복에이르는 10가지방법
    나는 환경과 철학이라는 교양 과목 덕분에 다시 한번 ‘행복’이라는 것을 생각할 수 있었고 이에 이르는 방법을 생각해 보았다. 비록 딱딱해 보이기는 하나 공대생답게 나의 생각을 순번에 맞추어 하나하나 정리해 가보도록 하겠다.1. 시간을 파괴하기시간이라는 허상은 시계를 보며 깨닫게 되는 착각이다. '18살의 젊음'이란 시간이 측정된 이후에나 생겨난 이미지일 뿐이지, 애초에 18살이 젊음의 무엇을 온통 가지고 있을 리는 없다. 18살임에도 18살의 기능을 못하거나, 나이다운 행동을 하지 못하거나 하는 것은 우리들의 착각이다. 우리가 나이를 떠올리는 것, 1년에 얼마나 많이 벌었는가를 계산하는 것, 몇 살에 무엇을 했는지를 생각하는 것 등 그 모든 계산은 무엇을 비교하기 위한 우리들의 착각이다. 분절된 시간의 잣대가 사라진다면, 나는 나를 빠르고 느림의 노예로 만들 수도 없고, 나와 너를 비교하려는 습관도 불가능하게 된다. 인간이 만들었기에 그 기준이란 결국 필요한 순간에만 작용하여도 무방한 것이다. 인간이 만들었으니, 없애는 것도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겠는가. 나는 요즘 개인적으로 '시간'을 파괴하도록 촉구하고 있다.2. 선입견을 없애기선입견은 극복될 수 없을지 모른다. 안정성을 희구하는 인간인 이상 낯선 존재에 대해 불안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어떠한 잣대를 들이대고 얕은 평가라도 한 자락 내려놔야 자신의 불안감이 해소된다. 하지만, 그러한 평가에 나의 자유는 구속될 수밖에 없다. 입체적 인간을 그저 한 방향에서만 살피게 되기 때문이다. 내가 그에게서 얻을 수 있는 '자유로운 판단'이 한순간 선입견에 차압당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난 단정 짓지 않으려 한다. 나의 선입견 안에 누군가를 넣어놓고 손쉽게 판단하려는 편안함에서 벗어나 불편하더라도 다시 한 번 살펴보고 조금씩 알아가려 한다. 그것은 존재의 소중함을 알아가려는 것이지, 존재의 불완전함을 알아내 나의 적을 만들어내기 위함이 아니다. '내가 그 자리에 여전히 있을 거라고 생각치 말고, 내가 여전히 이 자리에 있어야 한다고 요구하지도 말라.'는 푸코의 말처럼 사람은 계속 변한다.3. 자기만의 꿈을 갖고 살기꿈은 '가능성 있는 계획'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실질적으로 10년 후에 그렇게 될 일이 전혀 없어 보인다고 하더라도, 아무리 계산해도 도저히 그럴 수 없는 꿈이라도 그저 그렇게 놔둬야 한다. 꿈은 이루라고 꾸는 것이 아니라, 그저 꾸라고 꾸는 것이다. 그것의 실현가능성 여부는 철저히 개인의 몫이다. 개인이 알아서 할 일이다. 우리가 옆에서 도와주고 쓰러지지 않게 받쳐주는 일을 하는 것까지는 몰라도, 우리가 꾸라 마라 할 것도 없다. 그것이 성공했다고 인생의 성공도 아니고, 실패했다고 인생의 실패도 아니다. 꿈꾸는 순간 우리는 행복할 뿐이다. 그 외에 우리가 남의 꿈에 대해 이야기할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우리의 꿈은 우리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자신의 경험과 이성을 통해 찾아낸 것에 대해 꿈을 꾸고 또 현실화시키기 위해 오늘 하루를 살았고, 또 내일을 살아간다. 그것이 인간이 할 수 있는 꿈에 관한 완전한 일이다.4. 적응력을 높이기과거의 기준으로 현재를 잴 수도, 현재의 기준을 무조건 맞출 수도 없는 애매한 상황이 종종 탄생한다. 시간이 변해서 시대가 변하든, 나의 환경이 바뀌었든 모든 것들은 정리되어야 한다. 새로운 환경에는 새로운 기준이 필요하다. 정리 없이 그저 과거의 기준으로 들이대는 것도, 정리 없이 흐름에 따라 현재의 것을 무조건 수용하는 것도 서로에게 오해의 골만 만드는 것이다. 나는 다양한 사람들과 지내기 때문에, 더욱 다양한 사회 환경 속에서 적응력을 높일 필요가 생기게 된다. 그것은 해야 할 일과 할 수 있는 일, 하고 싶은 일을 정리하고, 마땅히 지켜져야 할 틀림과 다름의 구분선을 정리하고, 각 사람들에 맞게 대우하는 법을 익히고, 마찰을 일으키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며, 성의 있는 관찰로써 대화를 웃음으로 마무리 짓는 것이며, 우리 모두의 공동의 궁극적 이익을 찾아내는 일이다. '세상 다 그런거 아니겠어?'라는 어줍잖은 포기를 하지 않으려면.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사회생활, 혹은 철이 들어가는 것이라고 말한다고 하더라도) 그렇고 그런 평범한 부조리의 인간이 되지 않으려면, 왜 사는지 이유도 없지만, 죽으려니 이유도 별로 없는 인간이 되지 않으려면, 난 적응력을 더욱 높일 필요가 생긴다.5. 서열에서 초연하기서열경쟁에 패배할 위기에 처해있다고, '꼭대기로 올라앉을 수 있는 또 다른 서열'을 상상해주는 것보다는 아예 그 모든 서열을 없애는 것이 낫다. 남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갖가지 서열'을 아예 모두 머리 속에서 삭제해 버리는 것이다. 1등을 보고 슬프다면, 그 서열경쟁에서 슬그머니 나 자신을 빼면 그만인 것이다. 자질에도 안 맞는 서열경쟁에서 굳이 패배자의 멍에를 둘러쓸 필요는 없다. 인생이란, 결국 혼자 달리는 레이스일 뿐이다. 내 기록은 나 자신에 대한 만족과 불만족을 체크하는 잣대일 뿐이다. 누구에게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누구를 누르고 승리를 하는 것 따위의 문제가 아니다. 굳이 서열을 가리고 싶다면, 우리는 우리의 인생에서 언제나 1등일 뿐이다. 그것은 스스로 느껴도 좋고, 아니어도 좋다. 중요한 것은 우린 패배자도 아니고 승리자도 아니고, 그저 자기만의 인생을 살아갈 뿐이라는 것이다. 남대문이 소중한 이유는 국보 1호라는 '1'의 타이틀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우리 역사의 소중한 자산이기 때문이다.6. 누군가와 이야기하기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은 단순히 정보를 교환한다는 것이 아니다. 서로의 눈을 보며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는 것은 자신에게도, 상대방에게도 서로의 존재를 인정해주는 일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의미 있는 대화를 통해 존재감을 확보하게 된다. 대화로 시간을 유의미하게 보냄으로써 그래도 오늘은 의미가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하루 종일 그저 부품으로, 구성원으로만 취급받았지만, 이 대화에서는 서로가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집 가까이에 서로를 소중히 여겨주는 친구들이 산다는 것은 그래서 매우 즐거운 일이다. 동네의 편의점에서 만나서, 공원에서 만나서, 별 것 아닌 그런 일상을 수다스럽게 털어놓는다는 것은 그래서 너무나 소중한 일상인 것이다.7. 의미 있는 타인이 되기나이를 먹고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점점 더 감각이 무뎌진다는 것을 느낀다. 순수했던 시절엔 좀 더 깜짝놀랐을 일도, 좀 더 귀를 기울였을 이야기들도 바쁘다는 핑계로, 귀찮다는 이유로 멀리하게 된다. 자신과 관련없는 것들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은 로 취급하는 어른들의 수법에 너무 쉽게 익숙해진 탓에 자연스레 남의 일에 흥미를 잃게 된다. 그렇게 의미없는 타인들이 내 주변을 채우게 되고, 사람들은 점점 더 외로워진다. 어떤 사건도 흥미를 끌지 못하며, 어떤 인간도 재미있지 못하다. 그저 일상 속에서 몇몇의 공적인 타인들이 내 주변을 스쳐가며 의례적인 이야기를 건네고, 하루를 마무리할 뿐이다. 물론 이것은 개인의 선택이다. 아무와도 인연을 쌓지 않고 홀로 지내려는 사람들은 그래도 상관이 없을 것이다. 혼자가 즐거운 사람들은 그래도 되는 것이다. 하지만, 난 알고 있다. 혼자가 즐거운 사람도 결국 영원히 혼자로 남는 것은 두려워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다. 사람은 사람들 속에서 살아야 한다. 누군가에 대한 관심은 그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서로를 위한 것이다. 서로에게 의미 있는 타인이 되어, 서로에게 관심을 쏟고 소통을 하고 그래서 안정감을 느끼고 존재감을 느낄 때, 우리는 행복의 첫 단추를 낄 수 있게 된다.
    독후감/창작| 2009.07.12| 3페이지| 1,000원| 조회(238)
    미리보기
  • 행복한 삶이란 (행복의역사는인정투쟁의역사)
    행복의 역사는 인정 투쟁의 역사현대 사회의 인간은 더욱 더 잘 생존하고 더욱 더 종족보존의 기능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인정투쟁을 벌인다. 동물이 가진 생존을 위한 에너지는 이제 '남에게서 받는 인정'으로부터 온다고 여겨진다. 자신의 가치를 남에게서 인정받는 행위란 자신의 생존가능성이 더욱 높아지는 것이며, 자신의 존재가 더욱 더 확실해지는 것이다. 나의 존재가 확실해짐으로서 나의 존재가 더욱 더 잘 유지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된다.잘 알고 있겠지만 우리는 치열한 인정투쟁의 광풍 속에서 살아간다. '대학이름' 하나만 놓고 벌이는 싸움만 봐도 그렇다. 좀 더 좋은 차와 넓은 집, 비싼 브랜드를 갖고 싶어 하는 욕망이나, 남들로부터 흠집 없는 평판을 유지하고 싶어 하는 것이나 모두 매한가지의 일이다. 모두 다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고 싶어 한다.존재를 인정받지 못한 사람들은 슬프다. 사람들로부터 관심 받지 못하고 사랑받지 못한 사람들은 그래서 슬프다. 누군가로부터의 무시는 결국 자기 존재에 대한 무시가 된다. 자기 존재에 대한 무시 혹은 경멸은 인간에게 있어 삶의 근간을 뒤흔드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동물적 개체로서, 혹은 사회적 인간 개체로서도 마찬가지로 우리의 생존에 대해 '불필요함'를 선고하는 일이다. 무시당하는 일은 존재에 대한 무시가 되며, 그것은 나의 생존본능에 대한 공격이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무시받기 싫어하며, 조금이라도 더 남에게서 인정을 받으려고 발버둥 친다.사람이라면 누구나 관심을 받고 싶어 하고 사랑을 받고 싶어 한다. 그것은 생존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존재확인 작업이다. 자기 존재에 대한 인정은 삶을 유지시키는 근본에너지가 아닌가. 그러므로 내가 사랑받고 싶듯 누군가에게 사랑을 베풀면 된다. 그것은 떨리는 가슴으로 눈도 제대로 맞추지 못하는 개인적인 사랑이 아니라, 따뜻한 가슴으로 눈을 맞추는 보편적인 사랑이다.하지만 타인으로부터 얻어오는 사랑이 우리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가장 단순한 방법이라면, 스스로부터 얻어오는 사랑은 우리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방법이다. 좀 더 잘 살고 싶다면 우선 자기 자신의 존재를 확실히 인정하면 된다.동물로서의 인간에게 좀 더 잘 살라고 말해야 한다면 좀 더 자신을 좋아하라고 말하는 수밖에 없다. 어차피 동물로서 생존의 본능을 지녔다면 그 생존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우리 존재의 인정이라면, 우리 존재를 우리가 먼저 나서서 인정하면 되지 않겠는가?물론 이런 인정이 쉽지 않다는 것 나도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가장 강력하지만 어려운 방법인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자기 자신에게 존재감을 심어주는 일은 많은 노력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 다양한 이해관계 속에 얽혀있는 인간일수록 무엇으로 인정받아야 하는지를 모르는 경우가 매우 많기 때문이다. 대학을 잘 나와야 하나, 연봉이 많아야 하나, 좋은 차를 타야 하나, 좋은 옷을 입어야 하나 따위로 스스로에게 존재감을 심으려는 일도 부지기수인 것은 어쩜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독후감/창작| 2009.07.12| 1페이지| 1,000원| 조회(188)
    미리보기
  • 마시멜로이야기독후감 평가A좋아요
    마시멜로 이야기대한민국은 양극화라는 이름의 고속도로에서 가속 페달을 한껏 밟고 있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가장 막대한 힘을 가진 은, 재무적 성과를 개선하여 규모의 경제를 실현한다는 말로 수많은 비정규직들을 양산해 낸다. 제 배를 채우기 위해 남을 쥐어짜고, 억누르는 가진 자의 횡포. 부를 지니지 못했다는 핸디캡으로 열약한 조건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는 저소득계층. 사회전반에 걸쳐 서로에 대한 불신과 피해의식이 만연해있고, 있는 자와 없는 자는 제 나름대로 정부 탓 대통령 탓을 하며 내일은 나아지겠지, 내년엔 괜찮겠지, 하는 막연한 희망에 기대 하루하루를 소일한다.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적자생존의 법칙이 존재하기 마련이기에, 불투명한 미래 앞에 모든 시민은 생존게임에서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빈부간의 격차가 점점 벌어지는 오늘날의 대한민국, 남과 같아서는 살아남을 수가 없기에 자신만의 지표를 추구하고자 하는 소망으로, 사람들은 성공을 위해, 부를 위해, 서점에 들러 위안을 줄 책을 찾는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걱정을 희석시키기 위해, 변혁과 도전을 추구하기 위해, 나르시즘에 빠진 자신을 채찍질하기 위해, 많은 이들이 자기계발서적을 현실은 한편으로는 애달프기도 하다. 성공이 보장되는 확실한 방법론을 찾을 수 있다면 그 누가 길을 마다하지 않겠는가?본문의 중심제재인 마시멜로는, 달콤하고 맛있는 과자임이 분명하다. 앞에 놓여 있으면 금방이라도 한 입에 베어 먹어야만 직성이 풀릴 듯 하다. 본능을 통제하기 힘든 유아들 중, 눈앞에 보이는 맛있는 마시멜로의 유혹을 참아낸 이들이 향후 성인이 되었을 때 성공의 가도를 달리는 경우가 많았다는 통계적 결론을 '만족유예'라는 실험을 통해 제시하며 이야기는 전개된다. 이어지는 사회 실험적 결론에 비추어 저자는 다양한 현실적 실례와 함께 사장과 종업원의 입장에 비춰져 있는 두 인물간의 간극을 실감나는 대화체 형식을 빌려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한다.순간적인 달콤함의 유혹에 빠져 미래를 보지 못하고 현실에 안주하려는 찰리에게 조나단은 마시멜로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동기부여를 한다. 이러한 구성은 저자가 수용자들에게 말하고자 하는 교훈을 명확하게 제시한다. 당장의 편안한 현재에 안주하여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역량을 깨닫지 못한 채 살아가는 지금의 많은 이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것이다.사람은 누구나 살면서 자신만의 ‘성공’을 꿈꾸지만, 좀처럼 성공은 우리들의 손에 잡히지 않는다. 쉽게 좁혀지지 않는 꿈과 현실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많은 사람들은 결국 꿈보다는 현실을 선택하고 만다. 꿈을 이루기 위해 현실을 변화시키기보다는, 현실을 위해 꿈을 포기하는 쪽이 한결 손쉽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순간순간의 만족에 너나 할 것 없이 열중한다.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오랫동안 잊고 지낸 ‘성공’이라는 단어를 접하면 머리를 얻어맞은 듯한 느낌을 갖고는 한다.
    독후감/창작| 2009.07.12| 1페이지| 1,000원| 조회(186)
    미리보기
  • 양성평등, 사회비판
    의 신데렐라 신드롬 비판라는 드라마가 있다. 방영 되는 내내 화제였는데, 당시에는 구준표가 얼마나 인기였는지 여자 셋만 모이면 너도 나도 이야기에 바쁘고, 여차저차해서 남자 네 명만 모이면 F4니 뭐니 할 정도였다.를 비판하는 많은 이들은, 라는 드라마가 갖는 상투적 화법이나 비현실적 판타지를 비판한다. 민주주의와 담 쌓고 지내는 신화 고등학교의 신분차별 제도나, 고등학생이 1년의 70% 가량을 해외에서 놀면서 보내는 어이없는 얘기는 드라마의 현실성을 떨어뜨리고, 시청자에게 허황된 꿈을 심어줄 가능성이 있다.하지만 나는 드라마가 포함하고 있는 핵심 테제인 신데렐라 신드롬을 비판하고 싶다. 드라마의 주인공 금잔디라는 캐릭터는 어떠한 문제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모든 것을 F4에게 의존하는 무기력한 인물이다. 심지어 자신의 퇴학문제마저도 F4의 승마대결이라는 웃지 못 할 쇼에 걸어버린다. 드라마에서 유일하게 금잔디의 존재 가치를 확인할 수 있는 구준표와의 사랑에서도 적극적인 행동을 하지 못하고 상대방이 거는 행동에 반응하는 객체에 머물고 있다. 이런 무책임한 인물상이 여성이라는 점과 맞물리면 는 단순한 삼류 드라마의 한계를 까발리는 것을 초월해 사회적 병폐로까지 확장된다.금잔디는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여성도 아니고, 자신의 매력을 이용해 남성을 휘어잡는 팜므파탈도 아니다. 단지 얼굴이 예쁜 일반 여고생일 뿐이다. 그런 금잔디에게 F4가 바치는 관심과 애정은 은총에 가깝다. 이렇게 어쩌다 걸린 엄청난 행운아를 선망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대다수의 현실 세계 여성을 어떻게 봐야하는가. 물론 자신이 금잔디가 될 수 있다고 착각하는 사람은 많지는 않겠지만, 여성을 자신의 의지가 없는 인형처럼 취급하는 이 드라마에 대해 분노하기는커녕 마냥 좋아하고 있는 여성은 대다수이다.여자가 구혜선 정도만 생겼으면 F4 만큼은 아니더라도 뭐든 다 해주는 게 옳다고 생각하는 이들의 입장은 무엇일까. 남성의 입장으로 보면 그건 지독한 남성 우월주의에다 사람을 인격체가 아닌 노리개로 보아 끝없이 재원을 낭비하는 우행이며, 여성 입장으로서는 스스로가 인격 없는 인형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노예근성이 아닌가? 신데렐라 신드롬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전부터 현대까지 쉼 없이 예술에서 재탄생 되어 온 강력한 테제이고, 분명 로또에 버금가는 매력적인 대박이다. 하지만 페미니즘의 입장에서 보지 않더라도 스스로의 인생을 전적으로 남에게 거는 행위란 얼마나 위험천만한가.얼굴이 어떻고 몸매가 어떻고 하지만, 신체의 아름다움이 사라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젊은 시절의 아름다움이 몇 년이나 유지가 가능한가. 아름다움을 밑천 삼아 인생역전을 꿈꾸며 돈 많은 사람의 일시적인 노리개 인형으로 살겠다는 것은 얼마나 무모한 생각인가. 금잔디의 올바른 심성은 분명 타의 귀감이 되어 표창장을 받을 일이지만, 심성이라는 것은 자신의 일은 자신이 해결하는 독립된 인격체여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지난 수천 년 동안 갇혀 있던 가정이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 사회에서의 확립된 자아성취를 이루고자 했던 여성들의 노력은 결국 예쁘고 착한 부잣집 며느리로 끝을 맺겠다는 것인가.
    독후감/창작| 2009.07.12| 1페이지| 1,000원| 조회(109)
    미리보기
전체보기
받은후기 2
2개 리뷰 평점
  • A+최고예요
    0
  • A좋아요
    2
  • B괜찮아요
    0
  • C아쉬워요
    0
  • D별로예요
    0
전체보기
해캠 AI 챗봇과 대화하기
챗봇으로 간편하게 상담해보세요.
2026년 05월 05일 화요일
AI 챗봇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 AI 챗봇입니다. 무엇이 궁금하신가요?
8:26 오전
문서 초안을 생성해주는 EasyAI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의 20년의 운영 노하우를 이용하여 당신만의 초안을 만들어주는 EasyAI 입니다.
저는 아래와 같이 작업을 도와드립니다.
- 주제만 입력하면 AI가 방대한 정보를 재가공하여, 최적의 목차와 내용을 자동으로 만들어 드립니다.
- 장문의 콘텐츠를 쉽고 빠르게 작성해 드립니다.
- 스토어에서 무료 이용권를 계정별로 1회 발급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체험해 보세요!
이런 주제들을 입력해 보세요.
- 유아에게 적합한 문학작품의 기준과 특성
- 한국인의 가치관 중에서 정신적 가치관을 이루는 것들을 문화적 문법으로 정리하고, 현대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를 비교하여 자신의 의견으로 기술하세요
- 작별인사 독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