렉서스와 올리브나무저번 학기에 ‘세계화와 지구촌 사회의 이해’라는 원어교양 과목을 수강하였다. 이 수업을 들으면서 내가 생각하던 세계화라는 것은 긍정적인 부분에 대해서만 한정적으로 생각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세계화에 대해 생각을 하면 할수록 더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느낌이었다. 그만큼 광범위하고 추상적인 개념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북리뷰로 선택한 ‘렉서스와 올리브나무’라는 책의 부제는 ‘세계화는 덫인가, 기회인가?’이다. 책의 제목만 보았을 때는 어떤 내용의 책인지 가늠할 수 없었으나 부제를 보고 대충은 짐작할 수 있었다. 렉서스와 올리브나무라는 것이 냉전 이후 시대의 꽤 좋은 상징물이란 생각이 들어 저자가 지은 이름이라 한다. 세상의 반쪽은 더 좋은 렉서스를 만들고자 노력하며 냉전으로부터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가 하면, 다른 반쪽은 아직도 누가 어느 올리브 나무의 주인인지를 놓고 싸우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한쪽은 세계화 체제에서 번영을 추구하고자 현대화에 진력하면서 경제체제를 합리화하고 우선순위를 명확히 정하고 있는데 반해, 다른 한쪽은 과거사를 매듭짓지 못하고 그에 얽매여 있다는 의미이다. 이렇게 그 의미를 각각 알고 나니 책의 제목이 참 잘 어울리는 것 같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세계화란 피할 수 없는 이슈이다. 문명과 과학 등이 발전하면서 단일 국가로 살던 모습에서 국가가 점점 넓어지기 시작했다. 한 나라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로 인하여 지구 반대편에 있는 작은 나라의 한 기업에서 득을 얻기도 하고 무언가를 잃기도 한다. 미국에서 야기된 금융위기로 인하여 현재 전 세계가 경제 회복을 위하여 고군분투하고 있다. 세계화는 우리 생활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 영향이 긍정적일수도 있고 부정적일 수도 있다. 이 책에서는 양 날의 칼을 모두 언급하고 있다.저자는 세계화는 일종의 경제적 유행이나 한번 지나쳐 버리고 마는 한때의 추세가 아닌 오늘날 거의 모든 나라의 국제관계는 물론 국내의 정치판까지도 결정짓는 국제 시스템이라 정의하고 있다자의 명료한 정의에 동의하는 바이다. 세계화를 정의하기에는 너무 광범위한 개념이라 생각했다. 이렇게 정의하자니 어떤 부분이 빠진 것 같고 또 다르게 정의하자니 전에 포함되었던 개념이 빠진 것 같은 부족함이 매번 있었는데, 이 책에서는 적절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 같다.세계화는 어떤 점에서 보면 개성을 없애고 획일화시키는 경향이 있는 듯 하다. 민족 고유의 특징이나 개성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세계화로 인하여 한 풍조가 유행하기 시작하면 모든 나라에 침투되어 기존에 있었던 고유의 것들을 누르고 세계화로 만들어진 새 문화가 들어오게 된다. 그러면 사용되지 않는 즉 환영받지 못한 기존의 문화는 점점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지속된다면 세계는 똑같은 옷을 입고, 동일한 문화를 좇는 개성이 무시된 하나의 국가가 될 것 같다. 나는 세계화에 대하여 이런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책에서는 세계화 체제로 들어가게 되면 그 나라의 엘리트들은 이 같은 통합의 세계관을 내면화시키기 시작한다고 말하고 있다.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들이었다. 나는 그 문화가 단순히 없어질 것이라 예상하였는데 저자는 그것이 끝이 아니라 그 속에서 기존의 것들을 살릴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든다는 것이다. 처음에 들어오는 것은 동일한 통합의 세계관이지만 그 나라의 고유의 특성에 맞게 내면화시킨다면 더 발전된 문화를 만들 수 있게 될 것이다. 새로운 것을 고유의 문화와 결합시키는 일이 분명 쉽지는 않을 것이지만 성공한다면 발전된 사회를 만들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세계화로 인하여 사람들의 이동 및 접촉범위를 제한하던 각종 장벽들이 무너지고 지구가 네트워크로 연결되었다. 이 또한 양날의 칼로 작용되는 것 같다. 얼마 전 한 가수의 발언이 화제가 되었었다. 그 발언으로 인하여 한국의 언론이 뜨거웠다. 그 발언으로 인하여 일어난 모든 일들이 전 세계에 알려졌다. 한국이라는 나라의 인터넷상에서 시작된 일이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로 퍼진 것이다. 그 힘은 실로 대단했다. 네트워크가 하나기에 그 영향력이 더욱 커졌다. 오늘날 개인들은 시장과 국가 모두에 대해 전에 없던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되었다. 한 사람의 발언이 국가를 변화시키기도 하고 더 큰 발전을 이끌어 오기도 한다. 예전처럼 공적인 기구나 민간기구 등을 통하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직접 전할 수 있어서 신속성을 추구할 수도 있게 되었다.세계화되기 이전의 시대를 냉전시대라 부르고 있다. 나는 세계화에 대해서 부정적인 견해들을 더 많이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책을 읽다 보니 긍정적인 점에 대하여 더 주목하게 되었다. 세계화가 되기 전에는 국가 간의 소통이 있다 하더라도 의례적인 것이었고 적극적인 변화를 추구하지 않고 하나의 울타리 안에 살았다.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으면서 냉전시대를 상상해 보니 여간 답답한 것이 아니다.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한 사회 안에서 만족하며 사는 모습을 상상하니 그 시대 사람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좋은 문화를 누리지 못하고 더 나은 것들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에 조금 안타까웠다. 이렇게 고립된 것과 같은 삶에 세계화라는 것이 들이닥쳤을 때 사람들의 반응을 어떠하였을까 하는 점도 궁금하였다.세계화 덕분에 많은 부분들이 오픈 되면서 그 만큼 경쟁이 치열해졌다. 가장 대표적인 것을 예로 들어보자면 정보의 민주화가 아닐까 한다. 정보가 오픈 되면서 많은 정보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 수많은 정보 가운데서 내가 원하는 정보를 올바르게 찾는 것이 쉬운 일만은 아니다. 어떤 이들은 많은 정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필요한 자료를 찾지 못하는 반면 어떤 이들은 많은 정보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자료들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이로 인하여 정보의 격차가 생기게 된다. 부의 빈부 차이처럼 정보에도 차이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정보로 인하여서도 가지지 못했다는 열등감에 사로잡힐 수도 있게 되었다.저자는 우리 사회에서 경제가 차지하는 비중은 늘어나고 정치는 위축된다고 말하고 있다. 지금 현실에서 보면 정치적인 문제보다 경제적인 문제가 사람의 관심을. 이 부분에 대하여는 아무런 의문이 없었는데 책을 보니 이 또한 세계화의 영향으로 이루어진 결과 중 하나인 것 같다. 환율의 변동이 심하였을 때 우리나라가 고정 환율을 정하여 놓고 쓰면 이런 불편이 없을 텐데 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세계화 시대에 낙오자로 남게 되는 생각임을 책을 통하여 다시 한 번 느꼈다. 세계화에 함께 따라가지 못한다면 그 흐름에서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 흐름에서 떨어지는 국가가 우리나라뿐 이라면 고립과 같은 상황이다. 고립된 나라에서 어떤 발전이 가능할까. 그저 우물 안의 개구리로 돌아가는 퇴보적인 나라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세계화는 선택사항이 아닌 이 시대를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요소이다.투자에 관한 분야 또한 세계화를 피해갈 수 없다.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온 다양한 투자 상품과 투자기회는 선진국들이나 개발도상국, 그리고 기업들에게 뜻밖의 횡재를 안겨다 주었다. 이 덕분에 일부 국가와 기업들은 종래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빠른 속도로 성장할 수 있었다. 성장의 기반을 가져다 준 것이다. 또, 저자는 인터넷이 세계화의 터보 엔진이라 말하고 있다. 인터넷을 통하여 사이버 상에서도 투자가 이루어지는 시장이 형성되고 그 시장이 활발해질 수 있었다. 한 국가 안에서 형성되는 시장보다는 더 큰 시장이 형성되고 더 많은 투자자들이 참여하는 시장이 득이라 생각한다. 세계화가 삶을 더 풍부하게 한 요인이 된 것 같다. 저자는 제대로 활용될 경우 전자투자가 집단은 어느 국가든 더 좋은 운영 체제와 더 좋은 소프트웨어 등 민주주의의 특질을 더 잘 갖추도록 만든다고 한다. 전자투자가 집단이 세계 각국에 민주화를 향한 압력을 행사하는데, 그 요소는 다음과 같다. 투명성, 기준, 부패, 자유언론, 채권시장, 주식시장. 금융기관들을 상대로 세계 각국의 정치적 위험도를 분석해 주는 리처드 메들리는 투명성의 결여가 최악의 사태를 촉발시킨다고 강조했다. 그는 투명성 부족이야말로 낙천적 망상가들이건 편집광적 망상가들이건 모든 사람들을 완로 날뛰게끔 만드는 최대 불안 요인이라고 역설한다. 이러한 점들로 볼 때 어떤 분야나 방면이든 투명성이 지켜져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음 기준에 관한 것은 한국의 금융위기 이후에 전자투자집단이 세계 어느 곳에나 통용되는 보다 정확하고 통일된 회계기준을 요구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세계화가 우리 사회와 경제 등의 분야에 더 큰 발전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요구를 통해서 우리는 각 분야에 대하여 더 깊은 연구를 할 수 있었다. 세계화가 우리를 발전시킬 수 있게 한 채찍질이 된 셈이다. 세계화 체제가 부패문제와 관련해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선택의 기회가 무수히 많은 오늘날의 세계에서 다른 모든 조건이 동일할 때 이쪽 저쪽 모든 사람에게 뇌물을 주어야만 하는 국가에 투자하는 수고를 자청할 투자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투자자들은 더욱이 자신의 이익 창출만을 위해 움직이는 집단이다. 똑같은 인건비에 그 누구에게도 뇌물을 건네지 않아도 되는 국가가 분명 존재할 것이다. 이러한 국가에 투자를 하지 뇌물을 주어야 하는 국가에 투자를 하는 우를 범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러한 예도 세계화의 긍정적인 면에 해당한다. 이러한 경향이 국내의 각 분야에도 적용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자유언론 또한 세계화에서 빠질 수 없는 부분이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언론에 관하여 말들이 많다. 언론의 힘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강하다. 언론으로 인하여 없었던 것이 생겨나기도 하고 있던 것이 사라지기도 하게 하는 것이 언론이다. 전자투자 집단은 오래 전부터 채권시장 개설을 권장해 왔다. 이는 스스로의 투자기회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잘 관리되는 채권시장과 주식시장은 금융의 민주화와 투명성을 촉진, 증대시키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실업가들 입장에서는 채권시장과 주식시장이야말로 일종의 해방구라고 할 수 있다. 주식시장과 채권시장에서 필요한 자금을 직접 조달해 쓰게 되면 소수의 한정된 은행가들과 관계를 맺고자 노심초사 하지 문이다.
동양고대사 08129546 조가영1. 동양 고대 문화상 왕조 후기의 유물 가운데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갑골에 새겨진 명문이다. 이것은 중국인의 언어일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도 동아시아 문명을 지배하고 있는 한자의 초기 형태이기도 하다. 동아시아 문명권이라는 커다란 통합체 역시 주로 한자 체계에 의존하여 형성되었다.상대의 유적지에서 발견된 유물 가운데서 문자와 더불어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대부분 무기나 정교한 예기로 만들어진 당당한 크기의 청동 기물들이다. 예기들은 날카롭게 음각된 선이나 높게 양각된 풍부한 문양에 의해 장식되어 있어, 그 원형이 흙이나 나무로 만들어졌던 것임을 시사한다. 상말에 주조된 청동기의 품질은 대단히 우수하여서 세계 어느 곳에서도 이를 능가한 것이 발견된 적이 없었다.주대의 주신은 천이었다. 주왕은 스스로 천자를 자칭하였으며 자기들이 하느님의 명령을 받았다는 근거에 의존하여 상을 정복한 행위를 정당화하였다. 왕실의 주요한 전례 행사는 그들의 조상 천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서방에서 1000여 년 정도 앞서 출현하였던 철이 기원전 5세기에는 중국에서도 이미 일반화되기 시작하였다. 무기의 재료가 청동기에서 철로 바뀌어졌으며, 철제 농기구와 소가 끄는 쟁기는 중국에 농업 혁명을 가져다주었다. 그 당시까지 경작되지 못하였던 북중국의 황무지도 쟁기에 의해 개간되었으며, 고립 상태로 남아 있었던 주변 민족의 거주 지역도 선진 문화권 안으로 흡수되었다.동주는 고도의 경제적 성장, 사회적 변동, 정치적 발달의 시기였다. 이 시기는 모든 문명 세계를 통하여 굉장한 수준의 사상적 활동이 전개되었던 때였다. 시경, 서경, 역경, 주역, 춘추 등 각 방면의 연구와 역사들을 기록해 놓은 문헌도 많이 발견되었다. 진 이전 시대의 사상 유파 가운데서 뚜렷이 구별되고 상호 배타적인 철학 체계로서 한대까지 살아남은 것은 하나도 없다. 낡은 사상을 구성하였던 요소의 조각들은 단편적으로 되살아났다. 그 중의 하나가 주대 말기 자연주의자들의 ‘음양 이원론’과 ‘오행’설이었다. 높은 지적 수준의, 학문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고대의 저작을 복원하는 일에 열중하였다. 사상서와 역사서에 대한 진의 금령이 기원전 191년에 정식으로 해제된 뒤, 몇몇 연로한 학자들이 일부 경전의 내용을 기억으로 되살릴 수 있었으며, 어떤 사람들은 벽 속에 감추어진 고전들을 발견할 수도 있었다. 한대의 저작 가운데서도 가장 위대한 성과는 역사 서술 분야에서 이루어졌다. 사마천의 는 중국의 역사 연구를 도약하게 한 위대한 첫걸음이었다. 사마천은 세계사를 쓰려고 시도하였으며, 그 결과는 어느 누구보다도 성공적이었다. 본기, 연표, 서, 세가, 열전으로 나누어 기록해 놓았다. 후대의 많은 중국인 사가들은 사마천의 모형을 본받았다. 반고는 를 편찬하였다. 통사를 쓴 와는 달리 서술의 범위를 전한이라는 단일 왕조에 국한하였다.전?후한 양대에 걸친 중앙아시아의 지배로 인해, 서역과의 육로 무역이 크게 번성하였다. 서역과의 무역은 미술, 음악 및 새로운 농산품 등 다방면에서 외국의 영향을 중국에 가져다 주었다. 고도한 수준의 한대 천문학과 수학 연구도 인도나 서아시아로부터의 자극을 반영한 것일지도 모른다. 중국인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인 종이와 자기가 처음 만들어진 것도 한대였다.7세기는 중국에서 불교의 전성기였으며, 이 시기의 한국인들에게 가장 매력적이었던 것도 유교가 아니라 이 인도의 종교였다. 직사각형의 돌과벽돌로 만든 신라 시대의 수많은 사탑과 돌이나 청동으로 만든 수많은 불상들이 남한 전역에서 발견되는데, 그 예술적 수준은 당대(當代)의 중국에서 만들어진 그 어떤 것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신라의 문화 발전을 제한하는 한 가지 요인은 고유한 언어를 옮겨 쓰기 위한 적절한 문자 체제가 결여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초기 유일한 문자 체계는 한자였다. 외국어로 적는다는 불리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신라에서 역사 기록, 불교 서적, 한시 등의 기술과 같은 문학 활동이 많이 이루어졌다. 그 결과 고유한 한국어 어휘와 이름들을 한 음절 한 음절씩 한자로 옮겨 쓰기 위한 이두라고 불리는 기록 방식이 개발되었다.일본 초기 불상들의 일부는 한국으로부터 전해진 것이거나 한국 이민들의 창작품들이었으나, 이미 7세기에 일본인들 자신이 완벽한 아름다움을 지닌 작품들을 만들어 내고 있었으며, 나라 시대의 전신 불상과 사실적인 인물상은 이 시대 동아시아 예술 중에서 최상의 작품들에 속하는 것이었다. 일본의 조각가들은 중국인이나 한국인들과 달리 거의 돌을 사용하지 않고 청동, 나무, 진흙 및 옻칠을 능란하게 사용하였다. 일본인들은 중국의 건축술과 교량 건설의 기술, 그리고 다른 많은 기술들을 완벽하게 습득하였다. 처음에 불교는 주로 수도에 집중되어 있었고 일반적으로 지배 계급에 한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8, 9세기에 그것은 전국으로 점차 확산되어 나갔고 불교 사상이 사회 전체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였다. 일본은 중국의 한자를 차용하였지만 상형 문자인 한자는 다음절이며 고도의 굴절어인 일본어를 표기하는 데 잘 맞지 않았다.2. 서양 고대 문화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문명은 전체주의, 초자연주의 및 집단에 대한 예속으로 특정 지어졌다. 동방의 정치 체제는 절대군주와 강력한 사제계급의 지배에 의한 것이었다. 거기서 문화는 단순히 지배층과 사제계급의 특권을 상징한 것이었다. 이에 반하여 그리스 문명은 자유와 독창성이 발휘된 문화였다. 자유는 그리스 문화의 기반이었다. 특히 아테네의 경우 자유, 낙관주의적 진보관, 세속주의, 합리주의, 조화된 아름다움, 개인의 독자적 가치에 대한 존중 등이 문화 활동의 바탕이 되었다. 그리스인은 메소포타미아나 이집트를 비롯하여 고대 동방의 문화유산을 이어받아 나름대로 창의성이 풍부한 문화를 이룩하였다. ‘서양적인’ 모든 것은 고대 그리스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그리스 문화의 기본특성은 휴머니즘, 이상주의, 합리주의에 있다. 신화에서 일상생활에 이르기까지 인간 중심적 사고가 지배적이었다.근동에서 나온 가장 중요한 문화적 자산은 알파벳이다. 그리스인은 BC 10세기에 페니키아인으로부터 알파벳을 빌려왔다. 그리스인 자음만으로 이루어진 페니키아 알파벳을 기존 문자 몇 개는 모음으로 사용하고 거기에 새로운 문자들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언어에 맞춰 변형시켰다.그리스인들은 기후가 온화하고 건조한 풍토에서 옥외 생활을 즐겼다. 그들은 운동과 경기를 통해 심신을 단련시키는 생활을 했고, 나체로 체육 경기를 할 만큼 인간의 자연스러운 육체미를 찬미했다. 이승을 무척이나 사랑했고 사후 생활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호메로스의 작품 에서 죽은 아킬레우스는 “죽은 왕보다 오히려 산 노예가 낫다.”고 푸념할 정도였다. 그리스인들은 낙천주의, 현세주의, 자연주의, 쾌락주의를 열정적으로 추구했고 인간주의와 각 개인의 독특한 개성을 중시했다.고대 그리스의 폴리스, 즉 도시 국가는 외적의 공격에 대비하고 비상시에는 시민의 안전한 피난처가 될 수 있는 산맥을 경계로 삼았다. 평지는 국가의 근거지였으므로, 대체로 그 부근의 구릉 지대에 성벽을 쌓아서 국가의 최후 방어 거점으로 정했다. 그리스 건축 양식에는 도리스식, 이오니아식, 코린트식의 세 가지가 있다.종교는 일상생활과 깊이 연결되고 고대 그리스와도 연결되어 있었다. 그래서 신과 신전 그리고 신상들에 대하여 합당한 경건한 대우를 하는 것이 단순한 애국심에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스 종교는 전지전능한 유일신 야훼를 모시는 기독교와는 그 성격이 판이하게 달랐다. 그리스인들은 올림푸스 신들이 인간보다 훨씬 더 강하고 스마트한 것 외에는 그들과 거의 대동소이한 존재로 간주했다. 그리스의 종교는 다신교였다. 특히 호메로스가 서사시에서 묘사한 뒤로 신들은 의인화된 존재로 간주되었다. 그리스 종교에 공식적인 교리는 없었다.
화려한 휴가는 김지훈 감독이 제작한 영화이다. 김지훈 감독은 이 영화로 대한민국 영화연기대상 최우수작품상과 감독상을 수상하였다. 그는 대구 출생으로 단편영화로 영화계에 입문하였다. 화려한 휴가 외에도 비밀, 목포는 항구다의 감독으로 영화를 제작하였다. 영화에는 김상경, 안성기, 이요원, 이준기 배우 외에 여러 배우들이 등장하였다. 이들은 각각 강민우, 박흥수, 박신애, 강진우 역을 맡았다. 강민우 라는 인물은 택시운전자로 가톨릭농민회 회원들과 시위에 가담했다가 도청 앞에서 총을 맞아 사망하게 된 김복만과 홍순권을 모티브로 재구성한 인물이다. 그는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동생 진우를 돌보며 열심히 살아가는 평범한 택시 기사이다. 전교 1등을 하는 동생 진우에게 부모처럼 헌신적인 사랑을 주면서 짝사랑의 상대자 신애에게는 제대로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평범한 광주시민이다. 그러나 계엄군의 무자비한 진압으로 사랑하는 동생과 여자를 위해 죽음을 맞는 자가 된다. 박신애 라는 인물은 광주 시민군의 최후 항쟁이 있던 날 탱크를 앞세운 계엄군 시내로 진입할 때 “계엄군이 쳐들어옵니다. 시민여러분, 우리를 도와주십시오.”라는 가두방송을 했던 주인공인 실제인물 전옥주를 재구성한 인물이다. 군인 출신의 아버지 흥수와 살고 있는 간호사로 따뜻한 성품을 가진 그녀는 남자 못지않은 담대함으로 항쟁 기간 동안 간호 요원으로 자진해 많은 희생자들의 아픔을 감싸주고 어루만져준다. 역사의 어려웠던 상황 속에서 민우와 사랑을 만들어 가기도 한다. 총소리가 나서 내다보니 신음소리를 내며 쓰러져있는 생존자를 구하기 위해 나갔다가 총에 복부를 맞아 사망한 실존인물 양회남을 재구성한 인물로 강진우가 등장한다.이 영화는 실제사건을 극화한 것이다. 5.18 광주 민주화 항쟁을 영화로 극화시켰다. 1979년 10.26을 계기로 유신독재가 끝나고 억눌렸던 국민들은 민주화의 ‘봄’이 올 것을 열망했으나, 신군부세력은 12.12쿠데타를 통해 권력을 장악한다. 80년 봄, 전국적으로 민주화의 요구가 거세어지자 ‘비상계엄령 전국확대’를 선포하고 전국의 주요 도시 및 대학에 계엄군을 주둔시킨다. 1980년 5월의 광주. 광주에 사는 택시기사인 민우는 어릴 적 부모님을 여의고 진우와 단둘이 사는 그는 오직 진우만을 아끼고 바라보며 평범한 일상을 살아간다. 진우와 같은 성당에 다니는 신애를 마음에 두고 순수한 구애를 한다. 이러한 그들의 삶에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진다. 무고한 시민들이 무장한 시위대 진압군에게 폭행을 당하고 심지어 죽임을 당한다. 영화를 보러갔던 5월 18일. 그 날 광주에는 무장한 군인들이 들이닥쳤다. 그들은 시민들을 무차별 공격을 하였다. 이 날 진우의 친구인 상필이는 계엄군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친구의 죽음으로 진우는 친구들과 나가 계엄군과 맞서 싸울 것을 다짐한다. 광주시민들은 계엄군이 물러갈 것을 요구하며 시위를 한다. 민우는 부상당한 시민을 택시에 태워 주었다는 이유로 계엄군에게 끌려가게 되는데 가는 도중에 탈출한다. 계엄군들은 광주시민을 무차별 공격하는 것을 사회주의자들의 난동을 잡기 위한 것이라고 합리화 시켰다. 그리고 광주 시민들을 폭도로 몰아갔다. 5월 21일 진우는 시위에 참가하였다가 계엄군으로부터 죽임을 당한다. 사랑하는 친구, 가족의 죽음을 보면서 광주 시민들은 퇴역장교인 흥수를 중심으로 시민군을 결성하여 계엄군에 맞서 싸우고자 한다. 광주 시민들의 항쟁으로 5월 22일 계엄군은 물러갔고 시민들은 전남도청을 다시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끝이 아니라 광주를 고립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5월 27일 시민군과 계엄군은 새벽에 도청에서 항쟁을 벌인다. 이 날이 마지막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시민들은 자진해서 항쟁에 참여한다. 민우의 ‘우리는 폭도가 아니다’라는 말을 남기며 계엄군의 총에 맞아 죽게 되고 신애는 광주 시내를 돌면서 광주를 지키기 위해 싸워주었던 이들을 기억해달라는 가두방송으로 이 영화는 끝이 난다.나는 이 영화를 고3 기말고사가 끝나는 날 보았다. 시험이 끝나고 수능 전 우리에게 주어졌던 잠시의 자유시간을 틈타 영화를 보러갔었다. 함께 보러 갔던 친구들이 시험도 끝났는데 이런 정치적인 이야기가 섞인 종류 말고 재밌는 영화를 보자면서 그랬었는데 너무 보고 싶었던 영화라 보게 되었다. 이 영화는 그저 웃음만을 주는 영화가 아니다. 영화 속 인물을 통해서 가끔 웃음을 유발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영화이다. 평소에 역사와 관련된 부분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이 영화에 대한 기대감이나 보고 싶어 했던 마음이 더 컸다. 영화가 개봉된 것을 알고 보았는데 처음에 보러갈 때는 영화에 대해 추상적이었다. 하지만 내가 추상적으로 알고 있던 부분들에 대해서 어쩌면 그냥 역사의 한 부분으로 가볍게 생각하며 넘길 수 있었던 부분에 대해 영화는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표현 해 주었다. 그래서 그 상황을 더 잘 알 수 있었고 조금이나마 더 이해할 수 있었다. 5.18 광주민주항쟁. 80년대 우리나라에 군부세력에 의해서 민중이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은 물론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정도가 어디까지였는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는데 이 영화를 통해서 극히 일부분이었지만 민주화 운동이 얼마나 참혹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더 기억에 남았다. 영화에서는 민우와 신애의 사랑과 함께 민주화 운동을 보여주었다.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말하고자 했던 두 가지가 아닌가 생각된다. 말로 표현할 수 없었던 그 고통과 아픔을 하지만 우리가 쟁취해 내었던 자유의 열망을 영상을 통해서 대체적으로 나타내고자 하였던 영화인 것 같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권력을 얻으려했던 인물을 비판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나는 영화에서 민우와 신애의 사랑보다 민주화 운동을 나타낸 데에 더 의미를 두고 싶다. 그리고 영화에 대해서 보다 영화를 통해 보여주었던 항쟁의 모습을 이야기하고 싶다. 광주 시민들은 참 용감했다. 만약 내가 그 상황에 처했다면 나는 그 항쟁에 참가하지 못했을 것 같다. 분명 항쟁에 참여하여 계엄군에 대항하는 것 광주를 살리는 데, 정의를 회복하는 데 동참하여야 했겠지만 나에게는 두려움이 먼저 앞섰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달랐다. 마지막 항쟁이 있기 전날 시민군에 참여했던 이들 중 일부는 가족들의 만류로 인해 그들에게로 돌아가야 했다. 하지만 그들은 사랑하는 가족들을 남겨 두고 다시 항쟁의 장소로 돌아와 자신의 자리를 지켰다. 나는 영화를 보면서 이 부분을 보면서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이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의 삶이 점점 풍요로워 지면서 우리는 점점 더 이기적인 모습으로 변하고 있다. 타인을 배려할 줄 모르고 자기만 만족하면 된다는 생각을 가진 이가 다수가 되어 버린 현실이다. 영화에서 항쟁에 참여하는 것은 자신을 포기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앞으로의 삶, 사랑, 자신에게 있어 가치가 높은 일들을 포기하고 다른 이들을 위해서, 한 도시를 위해서, 나라를 더 생각하며 희생했던 그들의 모습을 배울 수 있어야 한다. 나는 그 시대를 살지 않았다. 그래서 어떠한 아픔이 있었고 고통이 있었는지 몸으로 체험할 수는 없다. 하지만 영화를 통해서 더 깊이 알게 되었다. 광주민주화운동은 군부시절에는 폭도, 반역으로 분류되었다. 민주화운동이라는 명칭을 달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고 알고 있다. 우리의 역사에 대한 관심과 의식의 성장이 정의를 구현하고자 하였던 역사의 모습을 원래의 취지에 맞게 변화시켜주고 있는 것 같다. 우리가 바른 것을 알고 향유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노력 또한 요구됨을 이러한 사실과 영화를 통하여 알 수 있었다.
[인터넷국제통상론 Book Review] 퓨처코드 : 대한민국 미래트렌드트렌드라는 것은 너무 자주 그리고 쉽게 변해서 예측하기 어렵다고 생각하던 부분이었다. 그렇지만 선택한 북리뷰 책에서는 트렌드를 예측하고 있었다. 그것도 미래의 트랜드를. 국내 최고의 석학 23명이 미래에 대해 추측하고 트렌드가 어떻게 잡혀갈 것인가를 작성해 놓은 책이었는데 여러 목록 중에서 내가 선택한 것은 ‘중국의 성장과 한국 기업의 과제’ 라는 부분과 ‘한국 영화 르네상스여, 다시 한 번’ 이라는 부분이다. 두 부분 모두 내가 평소에 관심을 가지던 분야여서 전문가들은 이 분야에 관하여 어떻게 예측해 놓았을까 하는 궁금증을 가지며 읽을 수 있었다.영화 보는 것은 좋아하지만 영화가 이렇다 저렇다 평가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는 이런 점이 좋고 또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어떠한 점이 나쁘다는 것을 평가할 줄 모른다. 늘 영화를 보는 것에서 그쳤었다. 하지만 최근에 영화를 많이 보면서 이 영화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라던지 왜 이러한 부분이 삽입됐을까 하는 등의 궁금증이 생기기 시작했고 영화비평을 찾아보게 되었다. 그러면서 영화에 대해 예전보다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책에서는 영화가 흥행하기 위해서는 영화만을 잘 만들어서는 안 되고 스타급 배우가 출연한다던지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주인공들이 나오는 등의 홍보효과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이 주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영화가 영화답기 위해서는 그 내용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최근 19~23세의 여성들이 영화를 가장 많이 본다는 조사 결과가 헤럴드 신문에 보도된 것을 보았다. 주 소비층을 대상으로 한 영화를 만드는 것 또한 영화제작의 마케팅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또한 책에서는 한국영화의 성장요인 중의 하나로 대기업의 비디오 사업 추진을 들고 있다. 영화를 지지해 줄 수 있는 재정적인 지원도 무시할 수 없는 분야임을 알고 있다. 한국영화는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다. 영화를 보러 가면 보통 친구들과 가는데 그 중에는 한국영화는 절대 안 보겠다는 친구가 있었다. 한국영화는 외국영화에 비해 재미도 없고 기술도 떨어진다는 것이 그 친구가 한국영화를 보지 않는 이유였다. 하지만 이런 태도는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고 성장하고 있다. 국민이 인정해 주지 않는다면 영화산업은 더 이상 발전하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된다. 문화산업. 미래를 이끌어 갈 수 있는 주요 키워드이자 산업의 큰 부분을 차지할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가 이러한 문화산업에 강점을 가지기 위해서는 이 책에서 제시한 것 외에도 새로운 아이디어가 있어야한다. 또한 영화라는 산업 안에서도 체계적이고 탄탄한 컨텐츠가 존재해야 한다. 문화 콘텐츠는 고부가가치 산업이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하여 우월한 위치를 차지한다면 경제 성장에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영화와 같은 문화산업에는 한국만의 정서를 담을 수도 있는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다.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각 나라의 전통적인 모습들이 사라져가고 있는 현실이다. 하지만 문화를 이용한다면 더 쉬운 방법으로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모습을 지키면서도 다른 나라에 전통문화를 알릴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영화는 원소스-멀티유즈소싱을 할 수 있는 분야가 될 수 있다. 영화에 나온 ost를 모은다던지, 영화에 나왔던 악세사리나 소품들을 판매하는 등의 멀티유즈소싱으로 더욱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산업이다. 이러한 다양한 강점을 가질 수 있는 산업을 차지하기 위해서 지금부터 아이디어를 생각하고 미래를 생각하며 준비해나가는 모습들이 필요하다.한국은 무역을 하지 않는다면 살아갈 수 없는 나라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무역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다. 우리나라와 수출입을 하고 있는 최대 교역국은 중국이다. 최근 몇 년간 중국은 눈부시게 발전했다. 최근 세계적인 경기침체로 그 성장의 폭이 많이 둔화되었지만 여전히 큰 성장의 폭을 보여주고 있다. 중국의 경제도시라 할 수 있는 상하이는 상상하지 못했던 화려함을 지니고 있다. 서울과 맞먹을 정도의 물가를 가지고 있다. 한국의 많은 기업들이 중국에 진출을 했다. 많은 기업이 진출하였지만 진출한 모든 기업이 성공의 신화를 기록한 것은 아니다. 많은 기업들이 실패를 하였고 도산하여 한국으로 돌아오는 기업 또한 적지 않았다. 중국은 거대한 시장의 규모를 지니고 있다. 중국의 인구만을 생각하고 진출한 기업이 대다수인데 이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점들이 있다. 중국에는 수십억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 이들은 모두 각자의 취향을 가지고 있고 지역마다 그 지역만의 특색을 지니고 있다. 예를 들면 북방의 사람들은 신맛을 좋아하지만 남방의 사람들은 단맛을 좋아한다. 또, 사천사람들은 매운 맛을 좋아하는 등의 지역만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어느 기업이 북방에 단 도넛가게를 열었다면 이 기업은 실패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많은 기업들이 이러한 점들을 간과하고 중국의 거대한 시장만을 보고 진출했기 때문에 실패사례가 더 많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