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렌 니어링의 소박한 밥상을 읽고헬렌 니어링의 소박한 밥상에 차려진 음식을은 우리가 흔히 보는 곡물이나 야채가 아니다. 왜냐면 그녀가 살았던 미국 버본트나 메인에서 주로 나는 작물이며 그녀와 스코트가 그들의 밭에 길렀거나 아니면 주위에서 흔히 채취할 수 있었던 것들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이 책을 새로운 요리법을 개발하고자 하는 사람이 찾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이용하는 도서관에 이책의 색인을 찾아봤을때 이책이 그녀의 다른 서적들과 같이 문학쪽이 아닌 요리책들 사이에 있는 것이 의아하게 느껴지기 까지 했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지자면 도서관이 옳았다. 이책은 요리법에 관한 책이다. 그리고 더 넓게는 삶을 어떻게 조리하느냐에 관한 책이다.이 책의 요리법중에 우리가 바로 써먹을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생소한 이름의 야채들 허브들이 우리를 혼란하게한다. 그리고 수적으로 적지않은 요리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요리들에 쓰인 재료는 거의 공통된 5가지 정도에 국한 되어있다.그녀의 요리법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마도 건강한 식탁을 꾸미는 몇가지 기본적이 지표들일 것이다. 신선한 재료를 빨리 조리하여 가능항 영양소를 파괴하지않고 자극적인 향신료는 적게 사용하며 소금의 양도 줄인다. 그녀 자신이 이름 붙인것 같이 그들의 식사는 거의 ´말먹이´의 수준이다. 그들의 식사를 몸에 좋을 것이라고 무작정 따라한다면 자극적인 음식에 길들여있는 우리들은 아마 3일을 못버틸것이다.이런 조리법을 이용하면 물론 자연에 가까운 형태로 섭취하기 때문에 건강에 좋은 것은 말할 것도 없겠지만 그 이외의 효용도 있다. 일단 돈이 덜든다. 많은 재료가 들지 않기 때문이다. 시간이 덜든다 재료를 다듬는 시간, 조리하는 시간 모두에서 그렇다. 자극적인 맛으로 입맛을 돗구지 않기 때문에 사실 불필요하게 많이 먹지 않게된다. 맛이 없는 것은 어떡하냐구? 맛이란 상당히 상대적이다.예를 들면 나는 셀러드에 드레싱을 치지 않는 다. 헬렌 니어링 조차도 올리브 오일과 식초 또는 레몬즙을 첨가하지만 나는 전쳐 아무것도 넣지 않는 다. 누가 시켜서 그런 것은 아니었고 야채의 신선한 맛, 각각의 맛이 드레싱에 의해서 뭉그러지는 것이 싫어서였다. 몇번 그렇게 먹어보니 그게 더 맛있었다. 나는 종종 비빔밥이나 회덮밥에도 고추장을 넣지 않거나 조금만 넣는 다. 옆사람이 빨갛게 비며놓은 것을 보면 어중띤 색깔의 내 밥그릇은 영 맛있어 보이지 않는 다. 그러나 고추장이 들어가기 이전에도 벌써 나물은 충분히 간이 되있어서 결코 싱겁지도 않을 뿐더러 고추장에 비비면 이건 고추장 맛에 먹는 것이지 그이외에는 아무 맛도 나지 않는 다. 대부부의 생선 매운탕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식당에서는 지리의 형태로 나오는 것이 매운탕 보다는 신선할 확률이 놓다.
한(恨) - 오세영시집을 읽고한(恨)이란 무엇인가? 오세영이란 시인은 한을 이렇게 표현했다. 한이란 앞으로 나아갈 수도 뒤로 돌아갈 수도 없는 자기모순의 감정이라고. 나는 그 말뜻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별로 국어는 잘하는 편이 아니라서 조금이라도 어려운 말이 있으면 이해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나는 한을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 한은 모든 감정의 집합체일 수 있다고…….아무것도 모르는 평범한 학생이 뭘 안다고 그런 말을 하냐고 모두들 비웃을 수 있다. 하지만 난 어렵게 돌려 말하는 것 보다는 직설적으로 한 번에 내 뜻을 전하는 게 더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모든 감정의 집합체라는 표현으로…….김소월씨는 우리가 잘 아는 시인 중 한 분이시다. 이 분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시는 바로 진달래꽃. 마야가 부른 진달래꽃이란 노래에 익숙한 우리는 이 노래가 김소월씨라는 것을 알기 전에 이 시를 다 외웠다. 나 또한 그랬다. 노래가 하도 많이 들려서 같이 부르다 보니 외워지게 되었고 이게 진짜 시였다는 사실은 나중에 안 일이다. 이 시를 외워야 했을 때는 가수 마야가 너무나도 고맙게만 여겨졌었다.하지만 내가 여기서 소재로 다룰 시는 진달래꽃이 아닌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라는 시이다.이 시는 책의 맨 첫 장에 나오는 시인데, 한 번에 내 눈의 시선을 빼앗겨버린 시이다. 이 시에서는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라는 구절이 반복되는 짧은 4행시이다. 하지만 이 시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한(恨)이 모두 이 구절에 담겨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구절을 볼 때마다 예전에 미처 알지 못했던 후회와 자신에 대한 원망이 담겨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하지만 지나간 일인 것을 어찌 하리요’라는 체념 또한 드러나 있다.이 시를 보면 자꾸 머릿속에 베란다에서 밝게 빛나는 달을 쳐다보며 눈물을 흘리는 한 여인이 그려진다.김소월씨는 왜 이렇게 한을 좋아하는 것일까? 김소월씨의 시집을 읽어보면 한, 사랑, 그리움, 슬픔 등을 주제로 한 시들이 참으로 많다. 아마 김소월씨는 풍부한 감성과 눈물이 많은 분이였던 것 같다. 시 하나하나 자신의 감정을 넣어서 쓰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닌데……. 나도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는 글짓기를 배우는 사람이었다.그 때는 곧 잘 써서 선생님께 칭찬도 많이 받고 상도 많이 탔었는데 지금은 시랑 글짓기라고 하면 눈앞부터 깜깜해진다. 그래서 감정을 넣어서 시를 쓴다는 것은 어려운 일임을 알고 있다.또한 시는 작가의 마음에 들어야 그제야 완성이 되는 것인데, 남들 보기에는 잘 쓴 것 같았어도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아 그냥 버리는 작가들이 허다하다. 그런데 자신의 감정을 꾸준히 넣어가며 시를 이렇게나 많이 쓰다니 김소월씨는 정말 대단한 것 같다. 살아 계셨다면 한 번 쯤은 만나서 꼭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는데 너무 아쉬웠다.
한국인은 왜 틀을 거부하는가?명창 안숙선은 무슨 초능력이 있어 춘향가를 완창했는가?판소리의 대가 안숙선은 체구가 왜소하다. 그럼에도 그녀가 춘향가를 완창하거나 판소리 한 마당을 연주할 때 그녀는 커 보인다. 이건 분명 물리적 사실에 위배되는 착각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판소리를 하는 안숙선은 왜 실제의 몸집보다 커 보일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안숙선은 몸에서 소리를 뽑아내며 미친 탓이다. 그 미침이 그녀의 작은 몸집 위로 커다란 후광을 덮어씌운다. 실제보다 그녀의 몸집이 커보이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이런 소리에 미침, 또는 소리의 미침은 그녀가 ‘망아경’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안숙선의 망아는 그녀만의 경험이 아니다. 그녀의 소리에 빠져든 청중들 역시 자기자신으로부터 이탈된다. 망아는 전염성이 강한, 육체의 들림현상이다. 그건 감각의 틀, 공간의 틀, 그리고 시간의 틀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경험이다. 이런 초(超)경계적인 이탈과 몰입은 무당의 신기와 같은 것이다.「한국인은 왜 틀을 거부하는가?」는 한국 문화의 기저를 이런 무기(巫氣)에서 찾는다. 이화여대 한국학과 교수인 글쓴이 최준식은 이 책의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우리 민족이 단군과 함께 역사를 시작했다면, 우리는 무교와 더불어 문화의 전개를 시작한 것이 된다. 단군이 무당이었다는 것은 학계의 정설로 자리매김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무교는 상층부의 종교가 불교와 유교로 교체되는 기나긴 과정 속에서도즉, 신라와 고려, 그리고 조선이라는 기나긴 역사 속에서도기층부의 대표적인 종교로서 그 자리를 내어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더구나 민족예술을 논할 때 무교를 거론하지 않는 것은 차라리 어불성설에 가깝다.”(p.12)아울러 글쓴이는 우리가 흔히 쓰는 ‘무속’이란 말 또한 조선조 유학자들이 ‘저속하다’‘속되다’는 의미로 무교를 낮춰 말한 것에 기인한다고 밝힌다. 올바른 표현은 ‘무교’다. 이런 신들림, 망아의 경지가 한국인 특유의 즉흥성과 익살, 그리고 일정한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역동성과 자유분방함을 이끌어낸다. 한국 문화의 그런 특성은 인사불성이 되도록 술을 마시고 가무에 취해 스스로를 잊는 현재의 음주 문화를 살펴봐도 잘 알 수 있다.우리 전통문화가 도가의 무위자연이나 유교의 천지인(天地人) 사상에 기반하고 있다는 사실에 반기를 드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 기본 정신들을 우리 문화에 직접 적용해 구체적인 실례들을 점검한 일은 그닥 흔하지 않다. 이 책은 동북아시아 문화권 전체에 깔려있는 도가와 유교 사상이 어떤 형태로 우리 문화 속에 스며있는지를 파격적으로 밝힌다. 글쓴이가 최초에 던지는 질문은 이렇다. 소위 ‘한국미는 자연주의에 근거하고 있다’고 말할 때, 그 ‘한국적인 미’라는 개념이 전역사를 통해 지금까지 존재했던 모든 한국인에게 통째로 적용될 수 있을까? 라는 것. 음악, 춤, 미술/공예, 건축 등 한국적인 미의 원류를 꼼꼼하게 살핀 글쓴이에 의하면, 가장 한국적인 미가 형성된 건 조선 중/후기다. 그리고 그 시기 예인들을 지배했던 세계관이 바로 무교가 중심이 된 민간 신앙이었다.익살과 기지로 가득찬 민화, 춤추는 듯한 기둥들로 이뤄진 사찰 건축, 일본인들이 모셔놓고 절까지 했다는 막사발 등 우리 문화에서 무교적인 망아경, 무질서한 자유분방함을 나타내는 것은 많다. 그 중에서도 가장 절정은 역시 춤과 음악이다. 다시, 춘향가를 완창하는 안숙선으로 돌아가자.
지형프랑스는 낮고 평활한 지형의 나라이다. 지형구조상 기본선은 동부의 보주와 쥐라의 산지 사이로부터 손강·론강 하천 골짜기 우변을 따라 남하하여 지중해 해안평야 북쪽 가장자리를 거쳐 피레네 북쪽에서 대서양으로 나간다. 일반적으로 북서쪽은 완만한 경사면, 남동쪽은 험한 벼랑이 이어져 피레네 북쪽 기슭을 제외하고는 비대칭 능선을 이루며, 동시에 중요한 분수계가 되어 있다. J자형을 그리는 이 기본구조선의 북서쪽에서는 경사면에 따라 모젤강과 센강이 영국해협을 향해 있고, 루아르강과 가론강 등이 대서양을 향하여 흐르며 남동쪽에서는 손강·론강이 지중해로 흘러든다. 북서쪽으로 길게 유역면적이 넓고 경사가 완만한 대하천이 많다. 기본구조선의 북서쪽은 동유럽부터 북서유럽으로 이어져 있는 평야·대지·고원이 주요 부분을 차지하는데, 약 3억∼4억년 전 헤르시니아조산운동으로 형성된 것으로 오랜 세월 동안 침식되어 고원 모양으로 낮아진 고생대 산지를 골격으로 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이 헤르시니아기 산지가 V자 모양으로 형성되어 있고, 북서부에는 아르모리칸산지, 중남부에는 마시프상트랄(중앙산지), 북동부에는 아르덴산지와 보주산지가 있다. 이들 산지 사이의 산마루에 해당되는 부분은 문턱(seuil)이라 불릴 만큼 낮고 북서부와 중남부에는 푸아투문턱, 중남부와 북동부에는 부르고뉴문턱이 있다. 뒤의 것은 마시프상트랄과 피레네 사이에 있는 로레게문턱과 함께 기본구조선상 지중해·대서양 분수계 일부이기도 하다. 마시프상트랄에는 그 뒤에 분화한 화산지형도 볼 수 있는데, 이암과 편암이 침식되어 단단한 석회암이 남아 있으며, 지질구조가 지형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V자의 바닥에 해당되는 지방에는 코스(causse)라 불리는 석회암대지가 퍼져 있고 종유동이나 깊은 협곡을 볼 수 있다. V자 모양의 산지에 둘러싸인 부분에 파리분지, V자의 아래에 아키텐분지가 형성되었으며, 이들 분지에는 주변 산지에서 흘러온 토사가 중생대부터 제 3 기에 걸쳐 퇴적하여 중앙부에서 약간 낮게 주변부를 향하여 높아지는 지층을 형성한다. 여기서도 석회암이 침식되지 않고 남아 있는 경우가 있어 파리분지에서는 동쪽에서 남동쪽에 걸쳐 안쪽은 거의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의 완경사, 바깥쪽은 험준한 벼랑이 된 케스타지형을 이룬다. 이 가파른 벼랑을 일단 통과하면 평탄한 토지가 펼쳐진다. 또 파리 남쪽 보스평야와 같이 석회암을 기반으로 하는 대지는 투수성이 높아 작은 하천은 적으나 큰 하천은 강 나비도 넓고, 센강·모젤강은 유량도 안정되어 내륙 하천교통이 발달하였다. 그러나 마시프상트랄고원지방을 출발하는 루아르강 등은 이른 봄 해빙으로 인한 증수와 여름철 갈수의 유량차가 심하여 하천교통은 하구 부근에 한정된다. V자의 오른쪽은 기본 구조선에 연하여 험준한 골짜기가 형성되어 있으며, 이 남동쪽 프랑스는 알프스조산대에 의하여 조성된 알프스·피레네·쥐라의 대산맥과 이것들을 꿰뚫은 하곡으로 대표된다. 이들 산맥은 제 3 기 약 8000만 년 전 아프리카 플레이트와 유럽 플레이트가 부딪쳐 형성된 것으로서, 단층이나 습곡(褶曲)이 많으며 보주산지나 마시프상트랄에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 제 4 기 빙하기의 영향을 정면으로 받은 이 남동쪽은 빙하에 의하여 조성된 U자형 골짜기가 리옹 가까이까지 밀고 나와 모레인(氷堆石)을 남기고 있다. 유럽 제 1 의 고봉 몽블랑을 비롯한 많은 고산에는 빙하로 깎여진 험준한 바위가 많으며 아직 빙하도 남아 있다. 이러한 산의 물이 모여서 흘러내리는 론강은 급류로서 운반되는 토사량도 많아 하구에는 카마르그(camargue)라 불리는 삼각주지대를 형성, 에그모르트와 같이 이전의 항구를 내륙으로 거둬들이는 한편 쌀농사나 방목에 이용할 토지를 확대시키고 있다.기후프랑스는 대체로 대서양·지중해·대륙의 영향이 결합된 온대기후를 보인다. 겨울은 산지와 북동부의 알자스 지방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온화하다. 북서부는 기온의 월교차가 적어 브레스트에서는 1월 평균기온이 6℃, 7월 평균기온이 16℃이다. 이곳은 습도가 매우 높지만 연강우량 900㎜로 적당한 편이며, 세찬 바람이 빈번하게 부는 것이 특징이다. 파리 분지는 해양성과 대륙성의 혼합기후를 나타낸다. 파리의 연평균기온은 11℃이고, 연평균강우량은 약 585㎜이다. 남동부의 지중해성 기후는 온난한 겨울, 강우량이 많은 봄·가을, 건조한 여름, 미스트랄이라고 하는 맹렬한 북풍을 특징으로 한다. 지중해 연안에 있는 니스는 1월 평균기온이 8℃이고, 불과 2, 3일밖에 서리가 내리지 않는다. 연평균강우량은 국토의 대부분에서 760~1,000㎜에 이르며, 산지에서는 1,500㎜ 이상, 때로는 2,000㎜에 이른다.동.식물식생은 생물지리학상 전북구(全北區)와 지중해 지역으로 나뉜다. 프랑스의 대부분은 전북구 식물지리구에 속하며, 이는 다시 3개 지역으로 나뉜다. 파리 분지 대부분을 포함하는 서프랑스에서는 참나무·밤나무·소나무·자작나무가 수목의 주류를 이룬다. 전북구 제2의 식물구인 동프랑스의 식생은 중유럽형에 가까워 노르웨이단풍나무·자작나무·유럽졸참나무·잎갈나무 등이 흔하다. 3번째로 고산지대의 경우 고도가 낮은 곳은 자작나무 숲으로 덮여 있고, 높이 올라갈수록 젓나무와 산소나무(mountain pine)가 많아진다. 수목한계선 위로는 제대로 자라지 못한 나무와 목초지가 있다. 한편 또다른 식물구는 지중해성기후대 안에 있는데, 이곳에서는 여름에 가뭄으로 인해 구근식물은 죽고,
프랑스의 음식문화프랑스 음식 (위치적 관점)프랑스의 위치를 보면, 추운 북쪽과 더운 남쪽의 땅에서 한대성 식물과 열대성 식물이 골고루 자라므로 북쪽의 추운 나라인 영국, 도이칠란트, 스칸디나비아에서 나지 않는 채소와 과일이 풍부하고 더운나라인 에스파냐, 이탈리아에서 나지않는 북쪽의 과일과 채소도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데다가 북해와 대서양에서 잡히는 한류의 물고기와 해산물, 따뜻한 지중해에서 잡히는 난류의 물고기와 해산물등 수산 자원이 풍부한 이점도 있으며, 유럽 대륙에서 가장 기름진 평야를 독차지 아여 품질 좋은 곡식과 포도가 자라고 끝없는 풀밭에 수천 마리의 소, 1천여 마리의 돼지, 같은 수의 양과 염소에서 얻는 고기와 젖도 이들의 식생활을 풍부하게 해주고 있습니다. 게다가 서로 다른 민족이 얽혀 살기 때문에 여러가지 색다른 음식 맛을 예로부터 익힌 데다가 왕과 귀족들의 호화 찬란한 생활과 까다로운 입맛이 프랑스 요리의 고급화를 추구해 오늘의 명성을 얻게되었습니다프랑스 음식(역사적 관점1)고대 그리스: 음식은 과식하지 않고 천천히 즐겁게 음식을 먹으면서 손님에겐 인색하지 않는것을 원칙으로 삼았다고 합니다.독일(게르만인)+프랑스(켈트족):많이 먹는 사람은 긍정적으로 가치를 부여하여 과음,과식을 우월함으로 생각하였다고 합니다.중세유럽(종교적 색체강함-절약,금욕이 결부됨):육식이 기피되고 채식주의자(빵,스프)가 나타났다.이 당시 포도주가 있었습니다.서민들=흑빵,주요리는(감자, 옥수수)귀족,사제=흰빵,육식을 많이했다.(쇠고기,오리,말 등 사냥해서 먹을 수 있는 고기는 다먹었다고 합니다.)법적으로 서민들에겐 사냥이 금지되었고 그러므로 서민들이 고기 먹는건 당연히 금지되었다고 하네요!이 당시 바베큐조리법과 향신료(이 당시 건강에 좋다라는 생각과 자신을 과시하는 것으로 사용)를 사용하여 조리하였다고 합니다.음식보관방법은 건조,훈재,염장,설탕에 저린것들이 있었다1년에 3분의1을 육식 금지의 날로 정했다.만찬의 구실은 혼인,전쟁승리,성직자,기사임명 등이 있구요 만찬을 위해 광대,악사,음유시인(troubadour)들을 필요로 했다고 합니다.프랑스 음식(역사적 관점2)현재haute cuisine(궁중요리) : 고급레스토랑에서 나오는 음식cuisine regionale(향토음식) : 가정에서 편하게 즐길수 있는 음식레스토랑의 출현 : 프랑스대혁명 직후 생김(18C말)귀족저택의 주방장들이 귀족이 몰락하면서 일자리를 잃어 생계유지를 위해 식당을 하였다.이때 많은 사람들의 입맛을 맞추기위해 요리법이 발전하였다고 하네요.요리법엔 야생초를 말려(herbe허브) 고기,생선요리에 넣거나 버터(18C말)를 사용하였다고 합니다.서민들은 18C까지 음식은 단순하게 먹었고 주재료는 감자(북부)와 옥수수(남부)였다.frites(감자튀김-올리브기름으로 튀김),puree(감자전분가루로 죽 비슷하게 만든음식)19c : 식료품 시장의 발달과 지역의 농산물들 교환으로 음식이 다양해졌다.그러나 19C말까지도 한상에 차리는게 유지되었고, 19C말 드디어 오늘날의 서양의 상차림으로 바뀌게 되었다고 한다.20C : 건강식,식이요법에 관심이 많아지면서 맛이 많이 담백해졌다고 합니다.프랑스인의 기본적인 아침 점심 저녁프랑스인들의 아침 : 거의 식사를 하지 않는다. 만약 하는 경우엔 바게트,코코아(어린아이),포스트(프랑스에선씨리얼이라 한다.)아침+점심(10-11시):아침을먹지 않은 사람들이 아침겸 점심을 먹는다. 크와상안을 갈라 샌드위치로 만들어 먹거나 briche나 pain au chocolat을 먹는다.점심 : 1.바게트샌드위치를 대부분의 사람들이 먹는다.샐러드-고기or생선,야채-치즈-후식(아이스크림,케잌,푸딩-아주단걸먹는다는군요)-커피저녁(7시-8시): 점심2와 같으나 샐러드를 먹기전 수프를 먹는다.프랑스인들이 뽑은 근사한 요리는 foisgar(거위간,오리간으로 만듬-옥수수를 먹여키운다고함.)이다.서민-pot au feu(소리꼬, 당근, 양파를 끓여서 만듬)고기를 겨자에찍어먹는다프랑스 음식문화의 특징① 포도주는 프랑스 요리에서 없어서는 안 됨.② 프랑스 요리는 소스가 중요한 역할을 함③ 그릇의 선택이나 식탁의 조화를 찾는 테이블 분화가크게 비중을 가지고 있는 것이 특징④ 식사시간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프랑스인의 음식 예절1.스프를 먹을 때 접시는 앞쪽이아니라 뒤쪽으로 기울여 먹어야한다.2.절대로 쩝쩝, 후루룩 소리나 트름을 해서 안된다.3.야채샐러드를 먹을 때에는 나이프로 잘라 먹으면 안되고 포크로만 먹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