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建築) -人間, 時間, 空間☆어원 (Architecture)그리스어 - Architekton Archi + Tectura라틴어 - Architectura (大) + (기술)※ 건축이란 종합적으로 계획하고 구축하는 기술☆건축의 정의 (A Definition of Architecture)단순한 shelter의 개념이 아니라건물의 구조와 디자인에서 나타나는 과학이며 예술☆건축은 예술과 과학의 중간적인 존재건축은 과학적 요소와 예술적인 요소를 상호 포함하는예술과 과학의 중간적인 존재라 할 수 있다.과학과 예술 두 가지는 건축의 양면으로서 과학과 예술 단독으로는 그 일면에 지나지 않는다.로마시대의 건축가 비트루비우스는 한 사람이 이 양면을 다하였다.그는 과학자임과 동시에 우수한 예술가이기도 했다.- Herman Sorgel☆건축 속에 포함된 과학과 예술의 정도시대 : 건축에 대한 사회의 관점, 요구사람 : 건축을 만드는 사람, 이용하는 사람종류 : 건축이 공장인가 또는 미술관인가 하는 용도 에 의하여 달라진다.건축은 동결된 음악이다. - John von Geothe■ 음악에 있는 멜로디와 리듬 그리고 하모니----- 사람에게 감동을 전달 예술적 감명■ 건축 또한 음악과 같이 사람에게 전달 되었을 때예술적 감명을 받는다.음악 : 시간의 경과와 더불어 흐르는 무형의 것건축 : 시간의 경과 더불어 흐르는 유형의 존재물음악이 얼어서 단단해진 것과 같은 것이 건축이다-고딕성당의 뾰족한 첨탑은 파이프 오르간의 장중한 음을 듣는 것 같으며 바로크 궁전은 경쾌한 음악을 듣는 것 같다.건축은 전달하기 위해 기술과 과정을 거쳐 건물을 매개체로 이용하는 개념이며, 그 이상의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건축은 폭 넓은 사회적?정치적?문화적 영향력에 달려있고, 사회를 반영하거나 그 사회의 가치를 전달하여 준다.☆건축가건축가의 목표는 다양한 여러 가지 요소가 일관성을 지닌 구조적 합일체를 이루도록 합성시키는 것이다. 건축가는 추상적 관념과 상징을 취하여 그것들이 실체화 되도록 돕는 역할을 ugendstil): 아르누보와 같은 곡선 양식의 독일, 오스트리아에서 호칭Henry van de Velde(1863~1957),*Weimar 응용미술학교August Endell(1871~1925), *Elvira 사진작업실Peter Behrens(1868~1940), *자택,☆세제션(Secession)- 과거양식으로의 분리를 표방- 절충적 사고방식의 철저한 추방과 예술적 자유를 주창- 아르누보의 곡선장식이 직선적이고 기하학적 장식으로 발전- 완벽한 고전주의의 탈피는 이루지 못하였으며, 이를 새로운 재료와 공법으로 극복하려고 노력Otto Wagner(1841~1918) : Mackintosh에게서 영향을 받음* 우편저금국(1903-1912)Josef Hoffmann(1870~1956), *Palais Stoclet(1905~1911)Joseph Maria Olbrich(1867~1908),*Secession Pavillion(1898) *결혼기념탑(1907)Kolo Moser(조각가)Gustav Klimpt(1862~1918), Der Kuß☆독일공작연맹(1907)- 기계기술의 발달에 의한 대량생산은 제품의 질을 저하;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 자국의 제품이 국제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도록 제품의 질적 향상을 목적으로 설립된 건축가, 장인, 실업가, 교육가, 정치평론가의 연합단체- 수공업적인 것에서 기계를 긍정하는 산업예술로의 전환을 도모- 기계생산형식의 절대적 요건인 규준형식 (독일공작연맹)- 예술의 절대적 기본인 개인의지 표현의욕 (표현주의)Hermann Muthesius(1861~1927) : 중심인물, 영국 미술운동에 영향을 받음Peter Behrens(1868~1940), *AEG 터빈공장Walter Groupius(1883~1969)*Fagus 구두공장(1910~1914),독일공작연맹 공장 및 사무소(1914)☆시카고파(Chicago School)- 18세기 산업혁명 이후 미국에서도 새로운 구조방식 도입- Chicago School 이란 1871년적 요소의 노출Kasimir Malevich(1878~1935), 절대주의의 창시자Wassily KandinskyVladimir Tatlin(1885~1953) *제3인터네셔날 기념비 (1919)El. Lissitzky(1890~1941) *스카이 훅 (1924)☆데 스틸(De Stijl, 1917-1931)- 네델란드에서 발생한 근대건축운동? 근대 초기의 네델란드는 Amsterdam파와 Rotterdam파로 양분? Amsterdam파 : 표현주의적 건축 외관만을 과제대상으로 삼음.? Rotterdam파 : 합리적이고 기하학적 건축이념을 통한 공간과 형태를 구성→ De Stijl(The Style)- De Stijl : 화가, 조각가, 건축가로 구성된 진보적 집단- Kandinsky의 조형언어와 Mondrian의 신조형주의(직선, 직각의 추상적 표현), Theo van Doesburg의 요소주의(분절된 면의 표현)로 발전- 입방체와 사각형, 직선적 요소의 사용, 입체구성의 미적 이론을 구성, 단순성과 금욕적 미학으로 표현Piet Mondrian(1872~1944), 평면 구성작품Theo van Doesburg(1883~1931), 화가 *Cafe L'Aubette(1926~28), 자택 및 스튜디오J.J.P 오우드 * 카페 드 유니 (1924-25)Gerrit Rietveld(1888~1964), 가구설계자 *Schroder House(1924)☆바우하우스(Bauhaus,1919)- 설립목적? 전환기의 침체된 독일의 국제적 경쟁력을 고취? 예술분야 인재 교육의 필요성- W. Gropius - 기계화 공정에 의한 생산력 향상, 예술가와 기능인의 협력을 강조대공미술학교와 고등공예학교를 합쳐 Weimar국립바우하우스 설립- 바우하우스의 이념? "종합예술로서의 건축"? 순수예술과 응용예술의 벽을 파괴- 바우하우스의 교과과정? 건축, 광고, 조형, 직물, 사진……? 예비교육과정 : 공작교육 6개월 → "도제(Lehrling)"? 전문교육과정 : 실습 및 이론/ 형태교육ion 등에 의해 국제적 단체(CIAM)로 활동하며 국제양식과 공업주의 건축으로 이어짐- CIAM 1928년 스위스에서 결성? Weissenhof전에 참가한 건축가 중심? 건축가와 전위적예술가들의 국제적 연대를 위한 논의 결과? 세기초 변화에서 근대건축과 도시계획의 이념과 사고 확대S. Giedion, Le Corbusier, Walter Gropius,Mies van der Rohe *Tugendhat House(1930)☆공업주의(Productivism)- 1950년대 이후 공업재료를 적극적으로 건축에 표현하고자 한 것으로 미국에서 나타남- 광대한 유리벽면과 규격화된 단순한 구조형태에 특성 있슴- 철근콘크리트 구조기술의 진보로 Shell구조 등에 의한 곡면구조, Precast철근콘크리트와 철골 Space Frame이 등장Mies van der Rohe(1886-1969) 시그램 빌딩(1950, 뉴욕)SOM Lever House(1952)Eero Saarinen(1910-1961) MIT 오디토리움(1953)☆유기적 건축- 근대 공업주의적 경향의 결함을 극복하려는 의도에서 인간과 자연의 유기적 관계를 회복하려는 건축경향- 북유럽과 북미에서 발생하여 지역적 특성과 전통성, 상징성 등의 표현으로 발전- 합리적, 기하학적 원리와 유기적 원리를 결합시켜 총체적으로 구성Frank Lloyd Wright(1867-1959)* Frank Lloyd Wright Home (1889-1909)* Robie House (1909) * Fallingwater (the Edgar Kaufmann house) (1936)* Johnson Wax Building (1936) *The Meeting House of the Unitarian Church(1947)Alvar Alto(1898-1976)*시이네찰로 Town HallHans Scharoun*베를린 필하모니 홀☆구조방식에 따른 건축 유형- 조적식(組積式) 구조압축강도에 비해 인장강도가 적은 석재, 벽돌 등의 재료 사용 - 벽돌 응용하여 디자인하는 방법◎건축의 역사건축은 시대를 반영하는 거울이다.그 시대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의 총체그 시대의 인간실체건축의 시대성과 역사성오늘날의 건축 구조물은 지난날의 건축에 의해 결정된다. 역사는 과거의 단순한 현상만이 아니라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예측하기 위한 도구건축은 양식(Style)이다.Style의 어원 : 라틴어의 스틸리우스(펜)에서 유래서체, 문체를 의미15세기 르네상스 이후 가구의 형태적 특성을 유형화 하는 용어가 되면서 역사가들에 의해 건축의 시대적 특성을 양식으로 설명건축을 이해하는 잣대, 틀로서 유효1)원시시대? 인류의 탄생(5000만년전) 이후 수렵, 공동체 생활 : 맹수와 대항하기 위해 돌(石) 사용(창, 칼 등 무기) → 구석기(타제석기), 신석기(마제석기) 시대? 불을 사용(금속 주조기술)하면서 무기, 농구가 청동으로 대체 → 청동기 시대? 주거 : 동굴 생활에서 시작 ,수혈주거(최초 건축물) 구축2)고대 문명시대 : 제 1양식기(약 3500년간)?농경목축생활 : 철로서 무기제작, 도끼, 괭이 등의 농구 제작 (철기시대)메소포타미아(5000년전), 에집트문명, 인도문명, 중국문명 출현 → 역사시대(1) Egypt 문명? 왕권 형성(BC 3200년경 통일국가) Papyrus 사용(Paper의 시초)문자(상형문자)사용건축재료 : 巨石(화강암, Pyramid), 흙(진흙벽돌)? 유렵건축에 영향을 끼친 가장 오래된 양식2) Greece 문명? 도시국가형성(BC 3000년경, polis에 의한 시민자치정치)? 유럽문화의 원천, 선구자적 건축 Agora(광장)와 Stoa(주랑, 一字형)? 신전Oder(Doric, Ionic, Corinthian) Lintel구조(3) Roma 문명? BC, 8세기 (BC, 753)에 건국? 그리스 문화 수용? Arch 구조와 Concrete(석재, 모래, 자갈)사용으로 Vault와 Dome구조 개발Roman Order는 구조적 의미보다 장식적으로 사용그리스 3 Order외에 Tuskan,750)
‘바로크의 꿈’을 읽고...‘바로크의 꿈’은 책 제목과 그대로 바로크 시대에 대한 이야기였다.평소에 알고 있었던 ‘바로크’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화려함’이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그 ‘화려함’에 추가가 되었던 단어는 ‘확장’과 ‘새로움’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나침’이었다.초반부에 보면 특히 ‘확장’이라는 단어가 떠오르게끔 공감이 가는 건축에 관한 이야기들이 많았다. 수도원 성당의 성장이나 개신교 교회들 그 뿐만이 아니라 도시까지도 재건축으로 확장된 것을 눈으로 볼 수 있었다.그리고 르네상스 시대의 건축가들이 지녔던 조화와 비례에 대한 원칙의 영감을 받고 있는 듯하나 평면계획에 있어서나 오더, 장식에 있어서 나름의 방식들을 도입해 새로운 효과를 창출하였다. 바로크는 일관성 있는 예술의 법칙에 따르지 않으며 예술에 혁명을 일으키고 예술을 왜곡시키면서 즐거움, 편리함, 변덕이라는 또 하나의 법칙을 따르고 있었다. 똑같은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이다.그리고 예전부터 알고 있었던 ‘화려함’이라는 것은 이 시기의 모든 건물에 빠질 수 없었던 요소였다. 특히 장식으로 그 화려함을 많이 나타내고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흔히 알고있는 건축물을 말하자면 [베르사유궁전]이다. [베르사유궁전]이 정확히 어떻게 생겼는지 디테일하게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바로크 시대의 대표적인 건축물이라는 것은 다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책의 말을 인용하자면 베르사유 궁전은 ‘고전주의 미학의 전형이다.’라고 한다. 왜냐면 그 궁전을 보면 건축 양식이 화려한 장식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조화롭고 질서가 있으며 고요와 위엄의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또한 정원의 꽃밭이 기하학적으로 배치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고전주의 미학을 지니고 있음에도 내부의 장식의 화려함이라든지 거울 회랑같은 것은 바로크적이라고 한다. 이렇게 바로크 시대 르네상스의 건축물들을 보면 장식을 하는 재료도 금색으로 칠하여 화려함을 많이 나타내고 그 전의 시대에서 비례와 균형을 따져 규칙적인 미를 강조했던 것과 달리 곡선들의 사용이 많다.바로크 시대에는 오더의 사용에 있어서 후반기에 접어들어 비틀림, 중단된 회전, 늘임, 병렬들 지나친 변용의 대상이 된다. 1720년경의 별채들에서 보면 오더가 완전히 해체된 것을 볼 수 있다. 오더의 분산된 요소들은 장식에 통합된 채로만 존재하게 되었고 입구들의 이음, 조각의 과잉, 입체감의 우아함만이 중요하게 되었다. 사진을 통해 보았을 때도 ‘화려한 것은 좋은데 너무 지나치게 장식이 많은 것 같네’라고 생각이 들 정도로 ‘지나침’이라는 거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래서 ‘바로크’의 의미에 대해서 더 이해가 잘 되었다. (‘바로크’란 프랑스인들은 이상하고 기이한 것의 동의어로써 브로미니와 구마리니 같은 작가들의 대담성을 비난하기 위해서 이 말을 사용했다. 원리의 엄격성을 중요시 하던 고전주의와 대립적으로 자연과 초자연에 대한 인간반응의 다양성과 심오함에서 영감을 받은 표현 방식이다. )
[고대 로마를 찾아서]를 읽고이집트, 메소포타미아, 그리스 시대에 이어 고대 로마시대... 현재 우리는 문화의 시대별 상황을 보면서 여러 문명들을 파악, 분석하고 인식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대 로마는 수세기에 걸쳐 여러 번 파괴되고 파묻히면서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영원의 도시”라는 수식어가 붙고 위대한 지적, 정치적, 예술적 수도라는 로마는 비록 전설의 베일이 그 폐허를 덮어 왔음에도 살아 남았다.역대 고대 도시들의 형태와 비슷하게 고대 로마의 역사들도 땅 아래에 파묻혀있었는데 그 중에서 한 가지 예를 들자면 트라야누스라는 목욕탕이 네로의 황금궁전 잔해 위에 세운 것을 말한다. 트라야누스 목욕탕 아래에 묻혀진 네로의 황금궁전은 프레스코화와 스투코로 천정이 장식되어있다. 그림들은 주로 천사와 신들의 그림도 많고 신앙적인 그림도 많은데 대체적으로 화려한 그림이 많다. 이 그림들로 천정이 디자인 되어있고 그로테스크라불리는 장식적으로 디자인된 벽화, 신화적인 조각상들과 함께 그로토라 불리는 회랑들도 있다.로마라는 도시는 모든 고대 문화의 융합이며 서유럽 문화의 기초를 마련한 도시다. 이론적인 그리스에 비해서 로마는 법률이나 건축에 있어서 실용적인 것을 많이 강조하였고 그리스 달리 변화가 많이 일어났던 시기였다.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로 개종한 이후 기독교화 되었고 신전들이 교회로 바뀌었다. 최초의 로마황제가 세운 판테욘은 609년에 순교자들의 성 마리아 성당에 바쳐지고 쿠리아는 성 아드리아누스 성당에 헌정되었다. 그리고 도시의 모습은 빠르게 변모하였다.로마시대의 문명들은 대부분 그리스문화에서 발전되어 많이 화려하고 거대하다. 그리스 건축과 함께 서양 고전건축의 원형을 이루는 이 로마 건축들은 실용성을 바탕으로 하는 내부 공간을 중시한다. 그리스 시대의 건축 파르테논 신전을 보면 입구부분에 기둥을 두어 하중을 받는 지지대 역할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출입 시 장식적으로 느낄 수 있게끔 되어있어서 외관을 중시하는데 로마시대는 거기서 내부의 장식적인 부분을 더 첨가하였다.로마시대의 건축물들 중에 하나인 하드리아누스별장을 보면 내부의 장식적인 부분에서 좀더 기능적으로 공간을 분할하기도 했다. 하드리아누스 별장을 본 여행객중 한명은 이 별장을 보고 말했다. “도시만큼이나 컸고 부분들은 리키움, 아카데미, 카노푸스, 포이킬레, 지옥같은, 제국에서 유명한 장소들의 이름을 따왔다.”이 하드리아누스 별장을 최초로 탐험한 건축가이자 지지학 저자인 피로 리고리오는 발굴된 아우구스투스 개선문을 보고 그 개선문을 구성하고 있는 기둥들과 다른 부분들이 드러나면서 상상할 수 없던 것을 보았다고 한다. 그러나 도서관, 극장, 건물 장식품들이 가축시장에 내놓은 짐승들처럼 밖으로 팔려가고 훼손되어서 안타까움도 있다.
근린생활시설 사례 조사 ( 국내 )광주 230 대지위치 : 광주광역시 동 구 동명동 지역지구 : 일반 주거지역 대지면적 : 334.3㎡( 101.19 평 ) 건축면적 : 155.82㎡( 47.14 평 ) 연면적 : 741.10㎡(224.18 평 ) 건폐율 : 46.61 % 용적률 : 179.77 % 규모 : 지하 1 층 , 지상 4 층 구조 : 철근 콘크리트 외부마감 : 노출 콘크리트가로를 따라 3, 4 층의 작은 빌딩들이 나열 - 일조권을 고려하여 건물을 도로에 밀착 배치 - 도로 형상에 맞추어 도로 전면부분에는 곡면을 사용옥상의 휴게공간 하늘을 향해 트인 계단 - 공간의 연속성과 일체성을 표현 자연광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중앙 옹벽의 절개된 부분을 통하여 개방감과 시각적 효소를 나타냄 계단의 내 외부 전경지하공간은 대지와의 틈을 만들고 수공간과 계단을 끼워 넣어 동선의 원활과 자연요소를 활용 -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입구백선 디자인 스튜디오 위치 : 서울시 강남구 논현동 243-17 지역지구 : 일반주거지역 용도 : 근린생활 및 다세대 주택 대지면적 : 341.3 ㎡ 건축면적 : 194.36 ㎡ 연면적 : 783.62 ㎡ 건폐율 : 56.95 % 용적률 : 149.96 % 규모 : 지하 1 층 , 지상 4 층 구조 : 철근콘크리트나즈막한 오르막길을 따라가다 만나는 군더더기 없는 매끈한 파사드 . 지하층과 사무실을 제외하고는 네 가구가 모여 사는 주택 사무실로 들어가기 위해 좁은 틈 앞에 서면 보이는 유리벽 너머 항아리와 멀리 배경처럼 서 있는 나무 한 그루간접 조명이 비추는 2 층 높이의 천장과 투명한 전면 유리를 통해 보이는 뒤뜰의 나무 , 다소곳이 자리잡고 있는 가구와 오브제 욕실에는 천장에 커다란 창 기능적 충족 외에 욕조에 누워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을 보거나 밤하늘의 별을 볼 수 있게 함대나무와 돌로 된 오브제만 있는 비워진 중정은 하늘을 향해 있으면서 내부와 외부를 연결하는 공간이 된다 .STEP 대지위치 : 서울 마포구 연남동 504-39 지역지구 : 일반주거 , 주차장정비지구 대지면적 : 302.10 ㎡ (91 평 ) 건축면적 : 177.90 ㎡ (54 평 ) 연면적 : 643.12 ㎡ (194 평 ) 건폐율 : 58.89 % 용적률 : 143.89 % 규모 : 지하 1 층 , 지상 3 층 구조 : 철근 콘크리트조이 건물은 폐쇄되기 보다는 개방적이길 원하며 대지 경계선 바깥쪽 도시 ( 도로측 ) 와 격리되지 않고 상호 교감을 가지며 , 도시로부터 개개의 공간에 이르는 중간적 영역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공간 을 가지고 있다 . 시간의 변위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연출하는 전경도로와 연장선 상에 있는 건축적 산책로 역할을 하는 계단 역동성이 강조된 외부 수직계단의 전경건물 외부로 돌출된 외부 계단부 . 이 공간은 위치 이동을 목표로 하는 단순한 통로의 개념뿐 아니라 사색과 대화의 기능성이 부여된 공간구조로 고시의 개념을 갖는다 .다락방이 있는 원룸 내부전경 정방형의 개구부가 리듬감있게 뚫려있어 밝은 표정을 연출하는 원룸 주택내부 사무실 내부전경{nameOfApplication=Show}
‘크노소스 그리스의 원형 미노아 문명’을 읽고...이 책은 크레타섬을 위주로 이야기를 엮어 나간다. 그리스 민족의 운명과 대대로 그들의 천재성이 발휘된 다양한 예술로 가득찬 그리스의 역사를 추적해 가는 과정에서 크레타 섬은 희미한 흔적밖에 드러나지 않았다. 고대 사람들은 크레타 섬에 대해 2가지의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해적과 위선자들의 고향, 당당하고 격렬한 힘의 고향이다.’, ‘제우스가 태어난 섬이며 헤라클래스와 테세우스가 싸워 물리친 황소의 섬, 법률과 예술의 고향이다.’ 이처럼 크레타섬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오디세이 시대에 그리스 세계의 지성과 교역의 중심지로 등장했으며 그리스의 원시예술로 표현된 종교적인 관념과 전설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고고학자들사이에서 크레타섬은 ‘영원한 위선자, 더러운 짐승, 게으른 배불뚝이’ 라 불리었고 그런 좋지 않은 견해 때문에 초기에는 크레타 섬의 문명을 발굴하는 사람이 소수였다.그러나 이 섬에서 유업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되고 긴 비문이라는 고르틴비문의 발견과 함께 다른 유물들이 발견되면서부터 크레타섬의 발굴 작업이 많이 늘어나게 되었다. 특히 트로이와 미테네 발굴로 인해 유럽에 대단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하인리히 슐리만이라는 고고학자는 크레타섬이 미케네 세계의 기원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그에 대한 논문도 발표했다. 이렇듯 옛날 초기의 고고학자들은 크레타 섬이 “미케네”의 중심지로 생각했다. 그러나 에번스라는 학자가 발견한 유물을 통해서 “미케네”문명에 속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리스 본토 문명과의 유사점이 없는 숱한 유물들을 보면서 미케네 문명보다 앞선 시대의 문명일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미노스에서 파생된 “미노아문명”이라 명명하였다.그가 발굴한 유적지는 많은데 그 중에서 라비린토스 궁전, 크노소스궁전, 파이스토스 궁전 등이 있다. 이 궁전들을 살펴보자면 주로 요새의 성격을 지니지 않았다. 많은 발굴된 수백개의 유물들이 전쟁, 군대와 관련있는 것은 극히 적었다. 보통 궁전이라 함은 철저한 경비 속에 위대한 권위자가 머무르는 곳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궁전은 전혀 그런 느낌이 없다. 왕비의 사실을 봐도 화장실, 욕실, 채광창 달린 방으로만 구성되어있을 뿐 베르사유 궁전이라던가 다른 화려한 궁전들과는 다르게 소박한 느낌이 든다. 돌로 된 계단들이 다른 방으로 각각 연결되어있고 전혀 궁전같다고 말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그러나 고대의 유적들인데도 방의 환기나 밝기를 조절할 수 있는 채광 시설이 갖추어져있고, 인공수도관 시설, 배수시설 등등이 잘 되어있다. 마치 현대식 건물처럼 말이다. 미노스 궁전의 동쪽 측면에 보면 현대식 화장실고 있을뿐더러 일반 주거가정에도 방 온도를 낮춰 서늘하게 할 수 있는 물탱크가 갖추어져있다. 현대에서 방 안의 온도를 낮추기 위해 에어컨을 설치하는 것처럼 말이다. 기술이 많이 발전하지 못했는데도 불구하고 과학적인 방법까지 생각하다니 대단하다. 건축에서 뿐만이 아니라 크노소스의 대벽화 조각은 영국 아르누보의 창시자 중의 하나인 윌리엄 모리스의 공예품에 비유했다. 라그랑주 신부는 그 대벽화에 대해 “고전 예술을 뛰어 넘어 아주 단순한 형태에서 우리는 더 친근하고 인상적인 우아함을 지닌 현대세계를 발견했다.” 라고 했을 정도니 그때의 문화들은 정말 현대적이고 뭔가 친근함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