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Contents작가 황석영객지삼포 가는 길그의 작품활동황석영1943년 1월 4일 출생 8·15해방 후 귀국하여 서울에서 성장했으며 경복고등학교를 거쳐 1970년 동국대학교 철학과를 졸업 1985년 자유실천문인협의회 대표실행위원 1985~86년 전남민중문화연구회 대표실행위원 1985~87년 민중문화협의회 대표실행위원 1988년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 및 민족문화연구소 소장 1989년 민족예술인총연합회 대변인 등을 역임 1989년 평양을 임의로 방문한 뒤 국내에 들어오지 않고 독일·미국에서 생활했고, 1993년 6월 귀국하여 수감되었다가 1998년 사면되었다.작품활동고교 재학시절인 1962년 〈사상계〉 신인상에 〈입석부근〉이 입선된 후 10여 년 간 떠돌이 생활과 베트남 전쟁 참전으로 문학활동을 중단했다. 그러나 이 시기의 체험은 1970년대 그의 문학을 꽃피우는 데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 1970년 베트남 전쟁을 배경으로 한 〈탑〉이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창작활동을 재개했으며, 이듬해 장편소설 〈객지〉를 발표해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간척지 공사판의 날품 노동자를 다룬 〈객지〉는 그의 대표작이며 분단 이후 남한 최초의 노동소설로 평가된다. 그 뒤 분단과정에서 처절하게 희생당한 의사를 다룬 〈한씨연대기〉(창작과 비평, 1972. 3), 민중들의 애환을 다룬 〈삼포가는 길〉(신동아, 1973. 9) 등을 연이어 발표해 1970년대 민중문학의 대표작가로 떠올랐다. 1974~83년 〈한국일보〉에 연재한 〈장길산〉은 홍명희의 〈임꺽정〉과 비견되는 역사소설로 평가된다. 그 외에도 광주민주화운동을 그려낸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와 베트남 전쟁을 제3세계적 입장에서 그려낸 〈무기의 그늘〉을 발표했다 1998년 사면된 이후 2000년 〈오래된 정원〉. 2001년 〈손님〉 등을 발표했다. 우리에게는 모랫말 아이들 , 자전적 성장소설 개밥바라기 별 의 저자로 더욱 널리 알려져 있다.객지 갈래 – 장편소설, 현대 소설 성격 – 사회소설, 사실적타는 인물. 급한 성격 때문에 쟁의를 주도할 치밀함을 갖추지 못했지만, 자신의 신념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인물 ▷장씨 : 오랜 부랑 노무자 생활에 저항 의지마저 포기한 인물. 결국 회사측의 회유에 넘어 가 동료들을 와해시키는 역할을 함 ▷벙어리 오가 : 다정다감하고 순진한 인물. 쟁의의 와중에 희생양이 됨 ▷소장 : 치밀하고 노동자들의 성향을 꿰뚫어보고 있는 인물. 파업의 와중에 잠시 당황하지만, 노동자들을 회유하여 자신의 목적을 이루는 인물 ▷감독조 : 소장과 노동자들의 사이에서, 노동자들을 억압하는 암적인 존재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는 무슨 일이라도 하는 기회주의적인 인물들줄거리 이동혁은 숙부의 도움으로 간신히 고등학교를 마치고 군에 입대 했으나 제대하 고 보니 숙부는 이민을 떠나고 없었다. 그래서 일자리를 찾아 떠돌던 중 간척 공사장까지 오게 된다. 동혁은 5함바에 속하여 일을 하는데, 처음 듣던 것과 달리 노임도 지나치게 싸고 거기에 십장(감독)의 착취가 더해져 노동자들은 돈 을 벌기는 커녕 도리어 빚에 시달리고 있다. 하는 일도 험하여 심한 부상을 당 하기도 하지만 제대로 보상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회사측은 깡패들로 이른바 감독조를 구성하여 노동자들의 불만을 강압적으로 억누른다. 감독조의 횡포와 불합리한 노동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대위와 동혁이 주동이 되어 파업계획을 세 우며, 마침 곧 국회 답사단이 오기로 되어있어 그 기회를 이용하기로 한다. 노 동자들의 파업 선언에 소장과 감독조는 당황하나, 소장은 그들을 회유해 결국 쟁의는 실패로 돌아간다. 하지만 동혁은 소장의 거짓말을 알고 있기에,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며 다이너마이트를 입에 문다.이해와 감상 산업화에 박차를 가하던 1970년대 노동자의 노동과 투쟁의 과정을 그렸다는 점에서 본격적인 노동소설의 문을 연 작품으로 꼽힌다. 황석영은 이 작품에서 간척공사장의 노무자들이 자신들의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하여 투쟁하는 과 정을 짜임새 있는 구성 위에서 사실적이고 긴박한 문체로 묘사함으로써, 산업 화에편 소설, 여로 소설 ★성격 : 사실주의적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배경 : 1970년대 초의 어느 시골 ★표현 : 1970년대 산업화가 초래한 고향 상실의 아픔을 형상화함 간결한 문장과 대화. 생략법. 극적 제시방법 ★주제 : ①급속한 산업화 속에서 고향을 상실하고 떠돌아 다니는 뜨 내기 인생의 애환. ②산업화의 물결 속에서 고향을 상실한 민중들의 궁핍한 삶과 그들 사이에서 피어나는 따뜻한 연대의식. ★삼포의 상징의미 ▷가공의 지명이며 떠도는 자의 영원한 마음의 고향 ▷산업화로 고장의 성격이 바뀐 농어촌 ▷정씨의 안식처였으나, 개발 과정을 통해 이제 더 이상 고향의 포근함을 잃고, 삭막한 곳으로 변하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의 고향.★구성 -발단 : 정처 없이 길을 나선 영달이 삼포로 가는 정씨를 만나 동행이 된다. -전개 : 삼포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월출로 향해 가던 중 백화를 만나 동행 이 된다. -절정 : 백화가 영달에게 호감을 느껴 자기 고향으로 함께 가자는 제안을 하지만 영달은 이에 응하지 않는다. -결말 : 삼포에도 공사판이 벌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정씨는 발걸음이 내키 질 않는다. ★등장인물 -노영달 :부랑 노동자. 착암기 기술자. 공사판을 찾아 돌아다니는 뜨내기 노동자로, 한 때는 술집 작부와 동거를 하기도 했지만, 가난 때문에 헤어질 정도로 궁핍한 삶을 살아간다. 행동과 말은 거칠지만 따듯한 인간미를 지닌 인물이다. -정씨 : 부랑 노동자. 출옥한 후 고향인 삼포로 찾아가고 있는 인물로써 생각이 깊고 인정 이 있는 긍정적 인물. 삼포가 관광지 개발로 마구 파헤쳐지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고향 잃은 떠돌이 신세가 된다. -백화 : 본명은 '이점례'. 18세에 가출하여 군부대 주변의 술집을 4년여 간 전전하며 군인들에게 몸을 팔았던 인물로서. 군인부대가 있는 작은 시골 마을 술집에서 고 향을 찾아 도망친 작부이다.줄거리 공사판을 떠돌아다니는 '영달'은 넉 달 동안 머물러 있던 공사판의 공사가 중단되자 밥값을 떼어먹고 도망쳐 나온다. 시 길을 나선다. 눈길을 걷다가 백화가 발을 다쳐 걷지 못하게 되자 영달이 백화를 업는다. 감천 읍내에 도착하여 역으로 향하면서 백화는 영달에게 갈 곳을 묻는다. 마땅한 곳이 없으면 자기 고향에 가 일자리를 잡아 주겠다고 한다. 그러나 영달은 이에 응하지 않고 자신의 비상금을 모두 털어 백화에게 차표와 요깃거리를 사주고 백화를 떠나 보낸다. 백화가 떠난 후 영달과 정씨는 삼포로 가는 기차를 기다리던 중 삼포에도 공사판이 벌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영달이는 일자리가 생겨 반가웠지만 정씨는 발걸음이 내키지 않는다. 마음의 정처를 잃어버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본문 들여다보기 “한 열집살까? ~ 고기두 얼마든지 잡을 수 있구 말이지.” (258p) : 정씨가 영달에게 말하는 장면, 이를 통해 정씨에게 삼포는 물질적으로 매우 풍요로울 뿐만 아니라 그 곳에 가면 매우 안정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낙원과 같은 공간으로 여겨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실제의 삶이 힘들고 고통스러울수록 환상의 정도는 커지는 것이라 할 때, 이렇게 정 씨가 고향에 대한 환상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역으로 그가 그 동안 세파에 찌들어 살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 씨가 회색으로 흐려 가는 하늘을 ~ 간신히 매어 달려 있는 것 같았다.(258p) : 읍내의 풍경을 묘사. 읍내는 매우 암울하고 쌀쌀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곳으로 묘사된다. 이는 등장 인물의 심리 상태나 앞으로의 전망이 밝지 않음을 암시한다. 또한 이 작품에서 공간의 의미는 특정한 한 읍내의 모습을 나타내는 데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당시의 시대적인 배경과 연관된 기형적인 형태의 마을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이렇게 군대의 주둔지가 있는 전형적인 읍내의 모습을 묘사함으로써 앞으로 '백화'라는 여인이 등장하는 데 개연성을 부여한다.“낸들 아나, 뭐 관광 호텔을 여러 채 짓는담서. 복잡하기가 말할 수 없대.” (278p) : 삼포에 관한 소식을 듣는 장면이다. 바닷가의 조그만 마을이었던 곳이 근대화의 바람에 벗어나지 못하고 무분별하게 개발되이 서게 된 것이다. 위로 받아야 할 자로부터 위로 받는 자야말로 가장 불쌍한 종재임은 말할 필요가 없다. 이런 면에서 기차를 타버린 백화도 고향에서 이전의 삶을 회복하지 못할 것이란 짐작을 가능하게 한다. 이제 모두에게 고향은 사라진 것이다. 도시화, 산업화는 고향을 상실케 했고, 정신적 공허를 불러 온 것이다. 문명의 발달은 이런 부정적 요소를 안고 우리의 삶을 제약한다. 우리가 꿈꾸는 삶이 사랑과 평화가 넘치는 곳이라 한다면, 그것을 송두리째 앗아가는 산업화는 부정적일 수 밖에 없다. 작가는 그것을 초점화하고 있는 것이다.작품 해설 2 이 작품은 근대화의 물결이 드세게 일었던 1970년대의 우리 농촌 사회를 배경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또한 겨울을 계절적 배경으로 설정하여 작품의 주제를 더욱 부각시켜 나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추수가 끝난 황량한 들판'과 '새벽 겨울 바람'이 암시하듯 겨울이라는 계절은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더욱 견디기 힘든 계절이다. 특히 겨울철이면 일거리가 없는 공사판의 노동자에게는 삶의 수단을 상실하게 하는 계절로 또다시 다른 곳을 향해 떠돌게 만든다는 점에서, '겨울'이라는 배경 설정은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이 작품은 막노동자인 노영달과 정 씨, 작부인 백화 세 사람을 중심 인물로 하여 구성되었다. 우연히 길에서 만나 함께 길을 걷게 되는 이들은 모두 근대화의 그늘 속에서 '뿌리 뽑힌 자'들이라는 점에서 서로 다를 바가 없는 처지이다. 이 작품은 이러한 인물들이 길에서 만나 서로 의지하며 길을 걸어가는 것을 통해, 이들이 서로의 상처를 치유해 가는 훈훈한 인간애의 정조를 드러내고 있다.이해와 감상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부랑 노동자와 작부로 나타난 것은 작가의 정신이 지닌 밑바닥 지향성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역설적이지만 이러한 정신적 지향성은 밑바닥으로 내려가 본 자만이 진정한 하늘의 의미를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작중 인물들이 찾아가고자 하는 삼포는 단순한 지명으로서의 고향이 아니라 도달 할 수 없는 일종의 이상향으로ow}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Michelangelo Buonarroti] (1475.3.6~1564.2.18 ) 르네상스시대의 대표적 화가이자 조각가이며, 건축가이자 시인.그의 생애와 작품들1475. 3. 6 카프레세 출생 13살에 피렌체의 도메니코 기를란다요 문하에 입문해 3년간 도제 수업 로렌초 데 메디치의 후원 이듬해 베르톨도에게 도나텔로의 작품배우면서 메디치가의 고대 조각연구 이 시기 켄타우로스의 전투 와 계단의 성모 제작계단의 성모 1490-92년.1494년 피렌체를 떠나 볼로냐로 감 1498년 프랑스 추기경의 의뢰로 현재 성 배드로 대성당에 있는 피에타 를 제작. 1499년 완성피에타 1498-1499년 피에타는 십자가에서 내려진 그리스도를 끌어안고 슬픔에 잠긴 마리아의 모습. 미켈란젤로가 마리아의 옷자락에 서명을 한 작품으로 유명1501년 피렌체로 돌아와, 시청으로부터 다비드 의 대리석상을 부탁 받아 1504년에 완성다비드 1501-1504년 다비드는 구약성서 사무엘서 17장에 나오는 골리앗을 죽인 16세의 소년이다. 미켈란젤로의 다비드는 물매돌을 어깨에 둘러메고 강렬한 눈빛으로 골리앗을 노려보고 있는 싸움 직전의 긴장된 순간으로 표현이 무렵의 작품으로 성모자를 다룬 2개의 원형 부조와 원형화 성가족 제작성가족 1503-1506년 안제로 도니와 막달레나 스토롯치의 결혼 기념으로 만들어진 미켈란젤로 최초의 회화 작품1504년 피렌체 시청의 벽화 의뢰. 건너편 벽면에 그림을 그리게 되어있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경쟁. 그러나 양쪽 모두 진전이 없던 중에 중단. 1508년 교황 율리우스 2세가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장화의뢰. 창세기에서 따온 천지창조,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 노아의 이야기를 3장면씩 9개의 장면으로 채움. 4년만인 1512년에 완성아담의 창조 1508-1512년 시스티나 성당의 천정화 중 아담의 탄생을 표현.천장화 완성 다음해 율리우스 묘비의 중심조상(彫像)이 될 모세 상과 부속 인물인 노예 상 2점 제작모세 1513-1516년율리우스의 묘반항하는 노예 상죽어가는 노예 상교황 레오10세가 피렌체의 산 로렌초성당의 개조를 위한 건축을 강요하였기 때문에, 그 후 율리우스 2세의 묘비는 중단 1520년 피렌체의 메디치가 묘소의 제작을 의뢰받음줄리아노 디 메디치의 무덤로렌초 디 메디치의 무덤1534년 피란체를 떠나 로마로 감 그 해 새 교황 바오로 3세가 시스티나 성당의 안쪽 벽을 그려달라고 의뢰 다음 해부터 혼자 착수 6년 후인 1541년에 최후의 심판 을 완성조각보다 회화와 시, 건축 캄파둘리오 광장 성베드로 성당 둥근지붕 파울루스 성당의 벽화 자신을 위해 조각한 니코데모 상과 론다니니 피에타 1564년 숨을 거두고 피란체의 산타 크로체 성당에 안치십자가에 처형되는 성 베드로니고데모상 1546-1555년론다니니 피에타 1552-1564년http://cafe.daum.net/Hac/6x3M/19?docid=d1f6|6x3M|19|*************3 srchid=IIMHyCf110http://blog.daum.net/micha22kr/9203758{nameOfApplication=Show}
Contents낙 산 사낙산일출의상과 원효원통보전 돌담낙산사 그림낙산사- 강원도 양양군 오봉산에 있는 절로 3대 관음기도도량 가운데 하나이며 관동팔경의 하나로 유명하다. 강원도 유형문화재 35호 소재지 : 강원도 양양군 강현면 전진리 55 671년(신라 문무왕1) 의상이 세웠으며, 858년(헌안왕2) 범일의 중건을 비롯하여 몇차례 중건을 거듭하였으나 6.25전쟁으로 소실되어 지금의 건물은 1953년 다시 창건하였다. - 명산의 하나로 손꼽히는 오봉산 자락에 자리잡은 낙산사는 관음보살이 설법을 펼치며 항상 머무는 곳을 이르는 보타낙가산에서 그 이름이 유래한 것으로, 역대로 지위와 신분을 떠나 관음진신을 친견하려는 참배객들의 간절한 발원이 끊이지 않고 이어져 왔다.특히 낙산사는 동해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천혜의 풍광과 부처님진신사리가 출현한 공중사리탑, 보물로 지정된 건칠관음보살좌상, 동양 최대의 해수관음상, 천수관음상 칠관음상 등 모든 관음상이 봉안된 보타전, 창건주 의상대사의 유물이 봉안된 의상기념관 등 숱한 성보문화재를 갖추고 있어 관음성지이자 천년고찰이다. 낙산사는 2005년 4월 대형 산불로 인해 많은 당우가 소실되고, 아름다움을 자랑하던 경관이 크게 훼손되었기 때문에, 30년생 소나무 1300여 그루를 옮겨 심는고, 문화재청, 국립문화재 연구소, 강원도 및 양양군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낙산사 건물복구 지원단'의 자문과 발굴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조화롭고 여유로운 21세기형 가람으로 복원한다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낙산사의 귀중한 문화유산 ]낙 산 일 출레츠고!!발심수행장 “행자라도 마음이 맑으면 온 하늘이 함께 찬양하지만 도인이라도 속세에 연연하면 착한 신이 버린다.”법성게 “하나가 모두이고 모두가 곧 하나이다.”대중적. 사상과 행적에 국가적 내지 호국적 면모가 없음강렬한 국가의식유학포기 스스로 깨달음을 실천당나라 유학(화엄종 체계를 배움) 거대한 불교체제 속에서 깨우침 강조육두품 출신진골귀족 출신원효의상의상과 원효의 차이의상대사의 낙산사 창건설화 - 삼국유사 에 자세히 묘사 - 옛날에 의상이 관음보살이 이 해안 굴 속에 산다는 말들 듣고 인하여 낙산이라 하였다. 의상이 재계한지 7일만에 앉은 자리를 새벽물에 띄었더니 천, 용 등 팔부중(사천왕이 거느리는 여덟 귀신)이 굴 속으로 그를 인도하였다. 의상이 공중을 향하여 예를 올리니 수정염주 한 꾸러미를 내어주어 그것을 받아 물러나왔다. 그러자 동해의 용이 또한 여의주 한 알을 바치므로 그것도 받았다. 의상이 다시 7일 동안 재계하니 비로소 관음의 진신을 보게 되었다. 관음 보살이 의상에게 말하기를 “앉은 자리 위 산꼭대기에 한 쌍의 대가 솟아날 것이니 그 자리에 불전을 짓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 말대로 금당을 지었고 이로 인하여 그 절을 낙산사라 하고 의상은 그가 받은 수정염주와 여의주를 성전에 모셔두고 떠났다.원효대사의 낙산사 봉변 _ 삼국유사 에서 낙산사 전설에서 의상의 신통력 얘기에 뒤이어 나옴 훗날 원효가 뒤이어 낙산사에 와서 예를 보이려 하였다. 그는 논 한가운데 흰옷 입고 벼를 베는 여인에게 벼를 달라며 희롱하였더니 그 여인 역시 희롱하며 대답하였다. 또 원효가 길가다가 다리 밑에 한 여인이 월경대를 빨고 있는 것을 보고 물을 달라고 청하니 그 여인이 더러운 물을 떠서 주었다. 이때 파랑새가 “휴제호 화상아!” 라고 하였고 소나무 밑에는 신 한짝이 벗겨져 있었다. 원효가 낙산사 관음보살상 자리 밑에서 전에 보았던 신 한짝을 보고 그제야 전에 만났던 여인이 관음의 진신임을 알았다. = 원효는 관음을 만나고도 알아보지 못한 스님이고, 관음에게 수정염주는 커녕 월경대 빨던 물이나 얻은 스님이었다.왜 원효대사의 봉변기가 등장했을까?? *원효대사 봉변기는 일종의 유언비어로서 이것이 나오게 된 배경에는 사회사적 의미가 들어있다. *신라가 통일전쟁을 마치고 새로운 국가체제를 갖추어나갈 시점에서 원효같은 자율성이 아니라 의상 같은 체제질서가 필요했다. *그리하여 의상의 일거수 일투족은 거의 신격화되어 황당무계한 전설까지 생기고 그 전설뒤에는 원효의 그림자가 따라다닌다. 원효의 그림자는 항시 의상에 못미치는 신통력, 별볼일 없는 것 등이다. = 지배층이 필요로 하는 것은 의상의 정신인데 대중들은 오히려 원효의 사상을 더욱 신봉하였으니 그것을 뒤엎을 유언비어가 필요했었다.원통보전의 돌담보물로 지정되지 않았으나 낙산사에서 가장 볼만한 유물로 원통보전을 둘러 쌓고 있는 담장이다.암키와와 진흙을 교대로 쌓으면서 사이 사이 화강암을 동그랗게 다듬어 끼워 넣음으로써 아름다운 별무늬를 장식하고 있다. 흙과 돌과 기와, 자연과 인공이 소담스럽게 만나 편안함과 즐거움을 지녔으며 단출하면서도 멋부린 태가 없는 고고한 멋이 있다.1989년 저자 유흥준이 낙산사를 다시 찾았을 때는 이 담장이 모두 별무늬 담장으로 말끔히 복원되어 있었다.홍예문원통보전을 나와 조계문과 사천왕문을 지나 나가다보면 일주문 못미쳐 무지개 모양의 석문(石門)인 홍예문(虹霓門)이 있다. 이 홍예문은 위는 누각(樓閣)이고 그 아래가 무지개 모양을 이룬다. 누각은 산불로 인해 소실되었다. 홍예문은 1467년(세조 13)에 축조되었다고 전하며, 그 위의 누각은 1963년 10월에 지은 것이다.낙산사 그림일본 다이도꾸지 소장 다른 수월관음도와 달리 그림 아래쪽에 의상대사의 낙산사 창건설화와 연결되는 동해 용왕과 여의주가 그려져 있고, 관음보살 머리 위로는 예의 파랑새가 날고 있다.1. 수월관음도겸재는 자랑과 애정 어린 시각으로 금간상, 한강주변, 관동팔경을 사생하여 조선 산수화라는 새 장르를 열어놓은바, '낙산일출'은 그가 감동적으로 그린 훌륭한 소재. 낙산일출의 모습은 장대한 영화의 서막 같고, 위대한 교향곡의 한 소절 같다.2. 낙산사 -정선3. 동해바다 -손장섭우리 시대의 동해바다를 가장 극명하게 그린 그림이다. 짙푸른 먼바다, 하얀 포말의 앞바다. 그러나 화면 전면을 낡은 철조망으로 가로막은 '동해바다'를 그렸다. 여기에 나오는 철조망은 흐느적거리는 애잔한 슬픔의 율동이 서려 있다.낙산사에 가서 바닷가를 가면 푸른 먼바다 좌우에 철조망과 군대초소가 시야를 가로 막는다. 작가는 이를 안타까워 하고 있다.Thank you!! _{nameOfApplication=Show}
의학의 발달과 생활수준의 향상으로 이제 우리나라도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고 있다. 그리고 그에 따라 노인부양 문제 등 노인들에 대한 문제가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1960년 이후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한 사회변동과 가치관의 변화는 전통사회에서 가정의 실권자였던 노인의 가부장적 지위를 약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어떤 의미에서는 소외 계층으로 전락시켰다. 현재, 우리 사회는 과거의 어느 시기보다 노인을 위한 자리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노인인구의 증가는 노인문제에 대한 보다 질적인 접근을 필요로 하고 있으며 다각적인 측면에서 노인인구에 대한 이해를 필요로 하고 있다.자식들이 뻔히 있는데도 불구하고 마땅히 거처할 곳이 없어 방황하는 이들. 가출한 사춘기 소년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누구보다 편안하게 노년의 삶을 살아갈 이유가 있는 노인들의 이야기 이다. 우리가 시청한 영상에선 그 제목처럼 ‘벼랑 끝에 선 노인’들이 나온다. 먼저 등장한 영상은 66세의 아들이 나온다. 그는 피의자다. 피해자는 바로 아버지다. 친구의 아버지, 이웃의 아버지가 아닌 친아버지를 죽였다. 그리고 그는 현재 입원 중이다. 주변사람들의 말을 들어오면 그가 아버지를 죽일 것이라고는 어느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물론, ‘자기 아버지를 죽일 사람’이라고 눈에 보이는 사람은 없겠지만, 그만큼 평소 그를 보아왔을 때, 그런 끔찍한 일을 벌일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던 것이다. 그는 넉넉지 않은 생활 속에서 자신까지 몸이 아프게 되자 아버지를 양로원에 보내려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외아들이 아니었다. 2남 2녀의 형제들이 있지만 여동생과 누나 모두 아버지를 모실 형편이 안 된다고 한다. 자녀들이 있었기 때문에 아무리 생활이 어려워도 기초생활 수급자에 해당이 되지 않아, 어떤 외부의 도움도 받지 못했다. 이처럼 계속되는 경제 위기 속에서 버려지는 노인들이 급증하고 있다. 영상에 나온 또 다른 할머니는 늘 생활비를 보내주던 둘째아들의 생활이 어려워져서 돈을 보내주지 못해서 방세를 내지 못해 거리로 나왔다. 면사무소에서 이틀을 자고 요양원으로 왔다. 큰아들은 심근경색에 둘째아들은 안좋은 형편으로 연락조차 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그마저도 여의치 않다. 할머니가 곧 요양원을 떠나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거동이 불편한 중증환자가 아니라 보험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따라서 장기요양 보호 대상자들 인원이 모두 차면 할머니는 또 다시 목적 없는 발길을 돌려야 한다. 장기요양 보험 제도의 사각지대 속에서 또 버려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 그러나 할머니는 자식들을 조금도 원망하지 않으며, 자식들에게 가려고 하지도 않는다. 자신들 살기도 어려운데 어떻게 부담을 줄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면서 할머니는 자식들을 이해한다고 했다. 자신이 고생스러웠던 만큼 자식들도 고생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어머니의 마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가슴 한켠이 짠했다. 할머니의 상황에 나조차도 당신의 자식들이 원망스럽고 미운 생각을 했었는데, 할머니의 말씀에 ‘정말 자식들은 감히 어머니의 마음, 부모의 마음을 헤아릴 수 없다.’는 말이 떠올랐다. 어떻게 보면 부모를 그렇게 사회에 내맡긴 건 다른 이름의 ‘버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오히려 자식들을 이해하고, 챙기는 부모의 마음. 그런 마음을 조금이라도 느낀다면, 자식으로서 부모를 외면하는 일은 없을 것이고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상 속 또 다른 가슴 아픈 사연 속에서도 부모의 마음을 볼 수 있다. 아들의 친구에 의해 인근 모텔에 버려진 치매 할머니가 있다. 현재는 노인시설에 있지만 자신이 왜 그곳에 오게 됐는지도 모르는 할머니였지만, 인터뷰 중에서 아들 이야기가 나올 때만큼은 정말 할머니가 아픈 것이 맞나 싶을 정도로 활기가 넘친다. 보호자도 없이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는 2달을 혼자 지냈다. 화장실을 어떻게 가는지 모텔주인이 묻자 엉금엉금 기어서 화장실로 간다고 했다는 그 말이 너무도 가슴을 아프게 했다. 아들이 한번은 요양원을 찾아왔지만 연락처도 남기지 않고 가버렸다고 한다. 아들이 보고싶냐는 질문에 아들인데 당연히 보고 싶다고 말하는 할머니에게 아직도 아들이라는 두 글자가 그를 살아가게 하는 버팀목인듯 보였다.
어른을 위한 동화-허클베리 핀의 모험-굉장히 재미있어서 많은 분량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짧은 시간 안에 읽을 수 있었다. 처음에는 유치하고 지겨울 것 같았는데 책이 읽다보니 나도 모르게 순식간에 읽어 버린 것이다. 어느새 책에 푹 빠져 읽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서 나도 깜짝 놀랐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영악하고 생활력이 강하며 자기 멋대로 살아가는 헉의 삶은 나도 한번쯤은 그렇게 살아보고 싶다는 충동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그 충동은 소설을 읽으면서 허크의 모험을 머릿속 상상으로 그려가며 충족시켜나갔다. 소설의 장면 장면들이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절로 머릿속에 그려졌다. 오히려 책을 읽으면서 장면들이 너무 생생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열 두 살의 나이에 담배를 훔쳐 피우고 어른들에게 거짓말을 해대고 어른들의 세계를 비아냥 섞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헉은 분명 그 시대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문제아였을 것이다. 그러나 입시에 목을 매고 매일 좁은 교실 안에서 시들어가는 우리 청소년 보다는 훨씬 건강한 모습이라 생각한다. 그 외에도 생생히 살아있는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노예 해방 문제에 대한 얘기, 인간미가 풍기는 생생한 조연들. 그런 모든 것들이 풍자하고 있는 인간의 위선성. 이 모든 것을 함께 담아냈다는 것에서 작가 마크 트웨인의 문학적 소질을 감히 가늠해 보게 한다. 문명사회에 살고 있는 인간들의 타락한 모습들을 아버지, 공작, 왕 등의 캐릭터들을 통해 보여주고 허크과 짐, 톰 소여는 이들을 조롱하는 대립되는 인물로 묘사된다. 그러나 헉, 짐, 톰이 다른 이들을 비판하는 것이 아닌 조롱하는 형태를 취함으로써 작가는 재미를 부각시키려한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내가 소설을 읽는 내내 놀랐던 것은 어떻게 이렇게 다양한 삶의 모습들을 그려 낼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헉은 뗏목으로 여행을 하면서 여러 장소를 가게 되고 또 그 곳에서 여러 사람들을 만난다. 바로 이런 장면들 속에서 글을 읽을수록 사실주의적인 특징을 볼 수 있었다. 인물의 성격과 허크가 떠돌아 다니면서 겪는 상황 속에서 현실에 대한 세부 묘사가 치밀하고 구체적이어서 정말 그런 곳이 또는 그런 사람들이 있지는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했다.허크는 술주정뱅이 아빠와 답답한 관습과 예절을 종용하는 후견인 더글러스 과부댁, 왓츤 아줌마를 피해, 짐은 가족과 영영 만날 길 없는 곳으로 팔려가지 않기 위해 뗏목 여행을 시작한다. 기독교적인 성향을 많이 가지고 있는 미국사회의 모습과 관습에 매어 있던 당시의 생활을 엿 볼 수 있는 더글러스 아줌마, 쇠가죽으로 채찍질을 해대는 아빠, 허위와 위선에 가득 차 있는 자신을 왕과 공작이라고 하는 사기꾼들 그리고 상속을 둘러싼 추악한 모습을 한 사람들. 이것은 순수한 아이들의 눈에서 보여주는 어른들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속을 둘러싼은 정형화된 사회와 아버지로부터, 짐은 인종 차별로부터 도망쳐 함께 여러 사건, 사고를 겪으며 서로에게 노예와 백인으로서가 아닌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맺어가게 된다. 속크과 짐의 여행은 순탄지만은 않기 때문에 ‘여행’이라기보다는 ‘모험’이라는 표현을 택한 것 같다. 속크와 짐에게 뗏목 여행은 값비싼 요트 여행처럼 안전하고 안락하지만은 않았다. 사람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밤에만 뗏목을 탔으며, 짙은 안개와 급류로 위험천만한 위기를 겪기도 하고, 뗏목을 잠시 멈추는 곳마다 온갖 사건에 휘말린다. 게다가 짐은 백인에게 붙잡힐까 봐 불안해하고, 허크는 짐이 자유로워지도록 함께하는 일이 옳은지, 그른지 확신할 수 없어 죄스럽다. 그러나 허크는 끝내 짐을 배반하지 않는다. 인간의 따뜻한 심향크는따라 짐이 자유를 찾도록 도와주고 자신은 “지옥”에 가는 길을 선택한다. 오늘날로 치면 허크는 문제아 악동t따뜻짐은 열악한 노동 환경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이지만, 그들은 낙천적이고 다른 사람의 고통에 민옐늘날로인간에 대한 연볼인으휴머니즘을 간직한 멋진 짝이다. 속크와 짐이 경계 없이 나누는 우정과 인간애는 더없이 아름답낙천적이고 다무엇보다 이 않는서 대두되고 있는 것은 속크과 짐이 함께 하는 대한 연통해서 인종 차별에 대한 모순을 지적하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생각된다. 속크와 짐의 뗏목 대한은 릍지막에 등장하는 톰 소여와의 대소동으로 행복크과 마무리된다. 대한소설에 심취한 톰앀 대한의 온갖 원칙 온됖먹이며 속크와 짐에게 터무니없는 일들을 제안한다. 하지만적이토록 우스꽝스러운 일들을 모연통해내기는 현실에서 불가능한 법, 그러자 톰앀 암묵적인 머니을 한낙천적이렇게 했다고 치자고. 이 부분에서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와주고 릴 때나누는 모든 놀이도 대개 머니을 덧입힌 현실에서 이루어고 다무누더기 7대한화려한 드레스로, 호박을 근사한 마차로, 쥐를 위엄 있는 마부 릍지꾼 요정 할머니처럼 내가 머니하는 씜해하나를 둘러싼 일상적인 현실앀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 낙천적이것이 무엇이든 특별크과 변화시킬 줄 아는 아이들의 순수한 마법이 아닐까. 행복한 마법의 시간을 통과해 온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