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으로 보는 한국 문화1970년대 하층민 계급의 남성과 여성- 조선작「영자의 전성시대」,「고압선」을 중심으로 -목차1.「영자의 전성시대」의 줄거리2.「영자의 전성시대」에서 볼 수 있는 하층민 계급의 여성상3.「고압선」의 줄거리4.「고압선」에서 볼 수 있는 하층민 계급의 남성상5. 결론내가 이번 과제에서 다룰 작가는 1970년대 영화와 문학이라는 주제로 접한 ‘영자의 전성시대’의 조선작이다. 조선작은 1940년 2월 3일에 충남 대전에서 태어났다. 그는 1970년도에 데뷔를 했는데, 내가 이번에 다룰 작품들 또한 1970년대 작품이다. 다른 강의 주제와 달리 영화와 문학이라는 애매한 주제를 탈피해서 나는 하층민 계급의 삶과 당시 남성과 여성의 모습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려한다.먼저 수업시간에 다루었던 ‘영자의 전성시대’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월남에서 ‘나’가 돌아와 우연히 ‘영자’를 만나는 것으로 시작한다. 월남에서 돌아온 ‘나’는 공동목욕탕에서 일자리를 구해 약간의 여유가 생긴다. 그래서 ‘나’는 군대 들어가기 전에 사귀었던 계집 ‘창숙이’를 찾아 나선다. 그러나 ‘창숙이’를 찾겠다는 의지보다 자신의 욕구를 해소시키고자 하는 의지가 더 컸기 때문에 ‘나’는 서울 바닥의 요소요소에 진을 치고 있는 사창굴들을 모조리 순례하게 된다. 그러다 세칭 ‘오팔팔’이라고 불리는 사창굴에 가서 ‘영자’를 만나게 된다. ‘영자’는 ‘나’가 군대 들어가기 전, 철공장에서 용접공으로 빌붙어 밥을 얻어먹고 있었을 때 주인집 식모였다. 당시 ‘나’는 ‘영자’를 좋아했고, ‘영자’를 한 번 이라도 더 만나 보기 위해서, 부지런히 심부름도 다녔다. 하지만 영자는 길들여지지 않는 독종 애완동물과 같았고, 그래서 ‘나’는 ‘영자’를 길들이려 생각을 하다 군대로 떠나게 되었다. 그 후 ‘오팔팔’에서 만난 ‘영자’는 외팔뚝이가 되어있었다. ‘나’는 ‘영자’에게 왜 외팔뚝이가 되었냐고 물었지만, ‘영자’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대화를 계속 이어가다 예전과는 달라진 ‘영자’를 보고 ‘나’는 화가었다. ‘나’의 생각대로 의수가 생긴 ‘영자’는 더욱 손님을 잘 받을 수 있었고, 마찬가지로 돈도 더욱 벌 수 있었다. 물론 손님과의 트러블이 없던 것은 아니다. ‘영자’가 팔이 없다는 걸 알게 된 손님이 돈을 안내겠다고 ‘영자’와 티격태격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손님의 돈을 뺏다가 경찰에게 끌려가게 된다. 경찰서에 있는 동안 ‘영자’는 ‘나’를 자주 찾아왔는데, 어느날, ‘영자’는 나에게 “전세방 값만 모은다면 이젠 발씻고 살림을 차릴 테야.” 라고 말한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영자’가 자신이 아닌 다른 놈팽이와 살림을 차리는 것이 아닐까 의심을 하게 되고, 결국 ‘영자’를 찾아가서 때리게 된다. ‘영자’와의 대화 후에 ‘나’는 오해를 풀게 된다. 그 후에 ‘불도저 작전’으로 인해 ‘오팔팔’이 위협받게 되어서 ‘영자’는 탈출할 계획을 짠다. 무사히 ‘영자’는 탈출을 했지만, 나일롱 아줌마에게서 맡긴 돈을 찾고자 다시 돌아갔을 때 화재로 죽게 된다. 이렇게 소설 ‘영자의 전성시대’는 끝이 나고, 1975년도에 나온 영화 ‘영자의 전성시대’의 결말은 ‘영자’가 다른 남자와 잘 먹고 잘 사는 것으로 끝이 난다.조선작의 ‘영자의 전성시대’에서는 창녀 등 밑바닥 인생을 살아가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현실의 문제성을 실감나게 서술한다. 그렇다면 소설과 영화가 출시된 1970년대는 어땠을까? 1970년대 초중반은 대중문화에 있어 이른바 ‘한글세대’로 지칭되는 전후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가 소비층으로 부각된 시기였다. 이들은 한글 교육을 받고 자라나 20대에 이르러서는 높은 경제성장률과 1인당 소득 증가의 혜택을 문화 소비에 적극 누리게 된 젊은이들이었다. 1970년대에는 상위 소득 계층은 물론, 고도성장으로 인해 소득이 높아진 중간 소득층, 하위 소득층도 일정 부분 문화 소비가 가능하게 됨으로써 문화 상품의 대량 소비가 가능해졌다고도 할 수 있다. 한국 영화에서 하위 소득층을 관객으로 소구할 수 있었기에, 폭력과 에로물이 많아졌고 그로 인해 영화의 질은 , 여공, 버스차장, 호스티스, 창녀 등의 젊은 여성들로, 사회적으로 볼 때 이들은 ‘사회의 기강과 질서’를 위협하는 위험한 여자들이었고 사회와 국가에 의해 보호되어야할 타자였다. 이들은 또한 대체로 어린 나이에 집을 뛰쳐나와 가정의 보호를 받지못하고 있는 상황이기에 국가와 사회는 이들의 성을 적극적으로 보호해야한다는 논리는 당시로서는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들 하층민 여성들은 보호받았다기보다는 성적 수치심을 이용하거나 회유함으로써 통제하려는 대상이었을 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들의 문화적 소비가 당시의 담론에서 긍정적인 차원으로 혹은 진지한 사회적 현상으로서 다뤄질 가능성은 희박했었다. 그러나 ‘영자의 전성시대’에서 주인공으로 하층민 여성이 나오고, 그로 인해 하층민 여성의 쾌락과 욕망의 정체를 보여준다. 그럼 ‘영자의 전성시대’에서의 결말은 남성의 욕망을 반영하는 것일까? 아니면 여성의 욕망을 반영하는 것일까? 관음증적 쾌락의 경우 내러티브 영화에서의 시각적 쾌락이 여성을 수동적으로 대상화하는 능동적인 남성 관객의 쾌락이라는 로라멀비의 잘 알려진 논의를 통해서 입증될 수 있다. 한편으로 ‘창녀’에 대한 연민은 소설과 영화 텍스트 모두에서도 알 수 있듯이 계층적으로 ‘영자’와 동일한 그러나 젠더적으로 우월한 남성이 스스로의 권력을 확인하는 방법이다. 전자의 관음증적 쾌락과 후자의 대상에 대한 연민은 모두 남성 주체의 행위라는 점에서 상통하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남성을 대변하는 ‘창수’가 가진 내러티브를 통합하는 지위 혹은 능동적 통제력은 ‘영자’의 변신에 급작스럽게 힘을 잃는다. 말하자면 영자가 급작스럽게 사라짐과 동시에 ‘창수’는 ‘영자’라는 인물이 벌이는 사건들을 내러티브로 통합할 능력을 잃게 되는 것이다. 몇 년 후 ‘영자’가 ‘창수’ 앞에 아이를 안고 등장해도 영화는 점프 컷으로 인해 생겨난 창수의 인지적 공백을 메우려 하지 않고 현재 ‘영자’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영화의 결말에서 ‘영자’의 시선을 새로운 여공이나 식모 등 하층민 여성들에게 ‘지옥 같은 현장을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바로 ‘결혼’이었고, 가부장제는 여성들에게 일반적으로 억압적 기제이지만 하층민 여성들에게 안정적인 결혼 생활은 이들에게 있어서 거부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선망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그녀들이 바라는 ‘결혼’은 공적 영역에서 노동을 하지 않고 주부로서 가정 안에서 살고 싶어 했던 하층민 여성의 욕망을 표현한다고 할 수 있는데 그 만큼 산업화시기에 노동자로 편입된 하층민 여성이 사회에 의해 타자화되었던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여공과 식모는 성적으로 ‘난잡하다’는 편견 그리고 낮은 사회경제적 계층으로 인해 결혼 시장에서 배제되기 쉬운 결혼 장애를 겪었다. 창녀인 ‘영자’는 이보다 훨씬 심각한 결혼 장애에 직면해 있다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영자’의 결혼은 비록 장애인 남편과의 결혼이기는 하지만 판타지에 가깝다. 실제로 영화텍스트는 ‘영자’가 사망하는 소설 텍스트와는 달리 그녀가 가진 욕망의 결과를 비약적으로 보여줌으로써 그 판타지적인 속성을 강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판타지적 속성의 강조는 이러한 욕망이 그만큼 실현되기 어려운 점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부르주아 계층과 남성들이 부여한 진입장벽이 일시에 비약적으로 무너질 수 있다는 역설적인 메시지를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가정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가정을 이루는 것, 즉 창녀에게 부과되었던 진입 장벽을 거두는 것이 그만큼 어렵지만 비약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 그 역설의 내용이다. 그러므로 ‘영자의 전성시대’의 결말은 여성의 욕망을 판타지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그렇다면 그 당시 남성들의 모습은 어땠을까? 나는 조선작의 ‘고압선’이라는 작품에서 1970년대 가장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고압선’에서는 월급장이인 ‘나’와 ‘나’의 가족들이 등장한다. 그들 역시 ‘영자의 전성시대’에서 보았던 자기 소유의 집이 없는 하층민 계급에 속한다. 그래서 ‘나’는 일금 일백 삼십만 으로 가게 된다. 그래서 나는 이문동과 석관동을, 중화동과 망우동을, 상봉동과 면목동을, 중곡동과 화양동을, 그리고 구의동과 천호동을 개처럼 뛰어다녔지만, 집들에 결함이 있어서 결국 허탕을 치게 된다. 집에 돌아오니 아내는 ‘나’에게 보고 온 집들에 대해 물었고, 목동에 다녀오라고 권유한다. 그렇게 석 달 동안을 돌아다니다 결국 중곡동의 새로운 구획정리지구에서 대망의 집을 찾을 수 있게 된다. 그 집은 결함이 없는 집이었다. 그래서 ‘나’는 바로 복덕방 주인에게 달려가 얼마까지 에누리를 할 수 있는지 물었다. 복덕방 주인은 안 된다고 하지만, ‘나’는 무언가 캥기는게 있어 하는 걸 보고 추궁한다. 긴 추궁 끝에 복덕방 주인은 ‘나’에게 이 집을 반드시 살 거냐고 묻는다. ‘나’는 산다하고 집으로 돌아와 가족들과 놀러갈 준비를 했다. 후에 복덕방 주인에게서 전화가 와서 ‘나’와 가족들은 복덕방으로 가는데 이백 육십만 원까지 깎았다는 소리를 듣고, 난감해진 ‘나’는 가족들과 함께 집을 보고 오겠다고 말한다. 집을 보러 가는 도중 ‘나’는 지붕 위를 거쳐서 달리는 고압선을 확인하고 복덕방 주인에게 불만을 터뜨린다. 그러나 복덕방 주인은 고압선을 결함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 됐다고 하고, 서양 사람들은 일부러 고압선 밑만 찾아다닌다며 말을 한다. 하물며 고압선이 피뢰침 역할을 해준다고도 한다. ‘나’는 화를 내며 집으로 돌아갔지만, 그 집을 사게 되기까지 얼마 걸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의 아내가 성급하게도 동네 아낙네들에게 우리가 중곡동에 새 집을 사서 이사하게 되었노라고 자랑을 해버렸다. 그리고 전세방을 복덕방에 미련없이 내놓아 버렸다. 그러니까 금방 새로운 사람들이 나타나 주인집과 계약을 맺어 버렸다. 그 새로운 사람들은 신혼부부라고 했다. 결혼식이 끝나면 쳐들어와서 살 모양이었는데, 그때까지 집을 비워 주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와 가족은 그 집에서 별탈 없이 지내다가, 이듬해 봄에 사고가 일어나게 된다. 옥상에서 연을 날리던 소
삼성과 소니- 목 차 -1. 장세진 교수의 저술동기 12. 핵심내용요약 23. 중심개념 및 설명 24. 수업과 관련하여 배운 것 55. 내용비판 및 나의 의견 611. 장세진 교수의 저술동기저자인 장세진 교수가 이 책을 저술하게 된 동기는 소니의 갑작스런 쇠퇴와 삼성의 새로운 부상의 이유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되었다. 이 책의 파트 1에서는 그동안의 그리고 현재 두 기업 각각의 전략(Strategies)에 대하여 서술하고 있고, 파트 2에서는 두 기업이 각각의 그 전략들을 실행할 수 있는 만큼의 역량(Capabilities)을 가지고 있었는지에 대하여 두 기업의 조직, 프로세스, 기업문화, 리더십을 조명해보고 있다. 즉 삼성과 소니 각각의 비즈니스 모델(Business model)을 이 책을 통해 분석하여 앞으로 마주하게 될 미래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와 단지 외형적인 글로벌이 아닌 본질적인 글로벌 기업이 되기 위하여, 두 기업 스스로 하여금 현재 두 기업이 가지고 있는 역량과 진정한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의 길에 대하여 숙고해봐야 하는 때임을 저자는 제안하고 있다.2. 핵심내용요약 3. 중심개념 및 설명소니삼성경영진모리타 아키오, 이부타 마사루 → 이데이 노부유키, 안도 구니타케 → 하워드 스트링거, 주바치 료지이병철 → 이건희(가족중심, 세습)벤처기업 형태로 설립무역업체로 설립(삼성물산)기업이념 및 문화자유·활달, 개방적, 직원의 창의력 중시, 통합 분산형 경영실행중심, 내부기능의 통합과 효율성, 관리방식의 규정화 및 제도화, 충성심 강조, Can-do정신, 삼성의 기업문화 및 경영시스템 → 모든 삼성 계열사와 공유지나치게 독립된 사업부로 인한 시너지창출X강한 규율, 공포경영, 오너중심, 비서실(전략기획실)중심 → 조직의 피로도, 직원들의 중압감, 창의력 부재, 한국적 가치관 및 문화 → 글로벌 경영에 필요한 인력 부족사업 방향새롭고 혁신적인 제품(유일한)개발추구, 네트워크를 강조과감한 투자, 비용우위, 핵심부품 생산에 집중, 일상재 제품생산사업 분야 및 제품, 기술· AV 사업 - 트리니트론기술 이용한 컬러CRT TV, 워크맨, 고화질 컴퓨터 모니터, 가정용 VTR, 캠코더, 디지털 카메라, 3.5인치 플로피디스크, CD, 미니디스크, DVD 디지털 기술 이용한 WEGA TV· 엔터테인먼트 사업 - 소니BMG, 소니 픽처스 엔터테인먼트· 게임 사업 - 플레이스테이션1·2·3(가정용 비디오 게임기) 및 소프트웨어· 네트워크, IT 및 금융 사업 - VAIO 컴퓨터시리즈(컴퓨터, AV, 가전 융합), SoNet(인터넷 통신서비스), 소니 에릭슨, 소니생명, 네트뱅크· 초기 사업(1990년대) - 1970년대 흑백TV생산으로 시작, 가전사업(냉장고, 세탁기, 컬러TV, 컴퓨터용 모니터, 전자레인지 등) → 대형할인매장대상, 저가 제품이미지, 기술력 부족· 2000년대 - 대형 프로젝션 TV, LCD TV, PDP TV, DVD플레이어, 캠코더, MP3 플레이어, 노트북, 프린터 등(2006년 LCD TV, PDP TV, 브라운관 TV 전 세계 시장점유율 1위)· 반도체 및 LCD 사업 - 메모리사업부(메모리형 반도체, 디램, 에스램, 플래시메모리, 전 세계 시장점유율 1위), 비메모리사업부(칩 솔루션, 주문형 반도체사업, 아직 미미), LCD사업부(TFT방식의 LCD사업, 소니와 합작 투자한 S-LCD)· 통신 - CDMA 통신기술 표준으로 한 휴대폰(삼성전자의 주력제품, 시장선도)신제품 개발 및 브랜드,전략· 신제품개발 -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을 만드는 것, 더 뛰어난 제품개발에 주력, 제품디자인을 통한 가격 프리미엄· 브랜드 - 일찍이 브랜드의 중요성 인식, 관리 철저 → 신제품 내지 못함에 따라 브랜드가치 하락함⇒ 강력한 브랜드 구축과 제품개발 능력· 신제품 개발 - 제품개발, 제품 디자인기능강화노력(IDS, 사내 디자인 학교설립), 전략상품제도, 소비자 인터뷰, 브레인스토밍· 브랜드 - 초기 내부 브랜드마케팅에 관한 인식 전무하였음 → 사내교육을 통한 인식제고(‘브랜드 = 자산’), 스포츠마케팅(올림픽, 첼시 스폰서) → 브랜드가치 상승유통 및 가격 전략· 유통 - 유통업자 들에게 소니 제품구매를 유도하도록 높은 마진보장의 혜택주는 것보단 최종소비자들의 직접구매를 통한 커뮤니케이션⇒ 유통 및 가격정책에 대해선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가짐· 유통 - 유통업자 들과의 파트너십, 채널 정비에 주력, 유통업자 들에게 높은 마진을 보장하는 대신 고가격정책과 비용절감에 힘씀· 가격 - 브랜드 이미지제고와 제품 포지셔닝을 위한 제값 or 고가격정책글로벌 전략· 현지 법인설립 - 현지화와 글로벌화 간 최적의 균형추구 하였으나, 사업부별로 글로벌화의 진행과 수준이 다르고, 일본인 경영자들이 중역의 대부분이며, 전형적인 일본 기업문화, 국가책임자(Country manager)의 실권X· 해외 자회사에 대한 본사의 통제 역량의 부족(본사와 해외법인의 갈등)· 전자복합단지 - 계열사들의 시너지창출을 기대하였으나, 별다른 효과를 내지 못함· 지역별 해외본사제도 - 복합단지의 효율적 운영과 해외자회사로의 권한 이양 목적으로 실시· GBM 제도(Global business managager) - 단순한 제품개념에서 제품이 속한 산업을 바라보도록 하여 각각의 사업부의 글로벌 운영의 최적화 및 손익의 최대화를 이끌기 위해 도입소니의쇠락· 산업의 변화(아날로그 → 디지털)에 유연하지 못한 ‘Legacy’의 문제 - 과거 제품에 안주로 인해 새로 부상하는 디지털산업으로 과감한 투자를 하지 못함· 내부의 독자적인 연구개발과 독자적인 표준에 집착· 지나치게 독립된 사업부로 인한 시너지창출X, 사일로 현상· 트렌드 파악(반도체가 모든 산업에 파급을 줄 수 있는 혁신적인 주요 부품으로 생각), 과감하고 적극적인 투자- 진화발전 방향이 뚜렷한 기술에 집중(반도체) → 범용기술을 사용하여 빨리 상품화, 생산효율성증가· 산업의 변화(아날로그 → 디지털)를 정확하게 파악하여 플랫 패널인 LCD와 PDP에 적극 투자· 산업표준을 채택, 활용· 스피드 → 빠른 의사결정과 실행역량· 수직계열화 - 주요 부품을 자체적으로 생산하여 납품 → 최종제품의 경쟁력을 높여줌, 생산원가 낮춤, 스피드 높임(빠른 출시), 사업부간 긴밀한 협조삼성의 부상아날로그 시대에는 소니와 삼성전자의 기술차이가 컸으나, 디지털 시대에는 산업표준을 통해 모든 기술과 제품의 품질에 큰 차이가 없다.4. 수업과 관련하여 배운 것MIS 교재와 그동안의 서평 책에서 배운 것들이 이 책에도 나와 있었다. 지배구조, 가치사슬, ERP, SCM, 무어의 법칙, PLC, ROI 등을 볼 수 있었다. 특히나 지지난 서평 책이었던 ‘미래기업의 조건’에서 나오는 파괴적 기술과 혁신에 대해서도 나온다.5. 내용비판 및 나의 의견사실 그동안 이름만 줄기차게 들어보았고 현재 데스크톱과 노트북 모두 삼성을 사용하는 유저임에도 불구 딱히 삼성에 대하여 아는 것이 없었다. 소니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우선 이 책이 삼성과 소니 두 기업의 그동안의 역사를 번역본이 아닌 한국인이 쓴 책으로 읽게 되어 쉽게 이해하고 읽을 수 있어 좋았다.이 책을 읽는 내내 내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비즈니스 모델에서 전략과 역량에 관한 부분이었다. 아무리 좋은 전략을 수립했을 지라도 그것을 실행할 수 있을만한 그럴 역량이 되느냐 하는 것이다. 이 책의 목차와 내용을 봤을 때에도 주로 파트 1에선 삼성과 소니가 각각 취했던 전략에 대해 이야기 하고, 파트 2에선 조직, 프로세스, 기업문화, 리더십 같은 조직의 역량에 대해서 다루고 있었다.특히나 이것은 소니의 글로벌 전략에 관한 부분을 읽었을 때 절실히 떠올랐다. 즉 소니의 역량이 그들이 수립한 전략을 컨트롤하기에는 부족했단 것인데, 몇 가지 사례들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소니 아메리카의 현지 경영자인 미키 슐호프의 지나친 독립적인 운영과 소니 아메리카의 콘텐츠 사업과 소니 본사의 하드웨어 사업의 융합을 통한 시너지를 창출하려는 시도에 대해 미국의 경영진들이 협조하지 않았던 점, 디자인 반대 등 소니 본사와 소니 아메리카의 의견대립과 갈등은 무엇보다도 소니 본사 경영진들이 그들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고 이를 고려하지 않았단 것이다. 그리고 나는 소니의 쇠락을 앞에서 말한 역량부족과 비슷한 맥락에서 또 한 가지에 더 초점을 두고 읽었다.
대중문화와 젠더에세이 과제 ? ‘경력과 사랑과 여성의 삶그녀들의 삶은 왜 슬픈가?1. 그녀들의 삶은 왜 슬픈가?2. 영화가 그린 그녀들의 모습(1) (2) (3) 3.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1) 남편의 그늘(2) 좋은 엄마이자 예술가가 되는 것은 불가능할까?4. 죽음에 대한 희망1. 그녀들의 삶은 왜 슬픈가?여기 세 명의 여자가 있다. 그녀들은 누군가의 딸이자 아내였고 무엇보다 한 예술가였다. 세 편의 영화를 보며 나는 이들 세 여자가 싱그럽게 피어났다가 각자 어떤 삶의 경험을 거쳐 어떤 모양으로 시들어 가는지 지켜보았다. 그 과정은 삶에 놓인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행복과 불행, 고통이기도 했지만 그들이 ‘여성 예술가’이기 때문에 처했던 상황이기도 했다.예술가에게 한과 고통은 필연적이다. 예술적 깊이와 영감은 그 것으로부터 출발하니까. 그러나 때로 그녀들은 한과 고통에 짓눌려 빛을 못 보았다. 그 한과 고통은 그녀들이 살던 시대와 사회로부터, 그녀들이 사랑했던 남자들로부터 혹은 그녀 자신들로부터 왔을 것이다.이들 세 여자, 버지니아 울프(1882영국-1941), 프리다 칼로(1907멕시코-1954), 실비아 플라스(1932미국?1963)를 다룬 세 영화와 그들의 삶에 관해 이야기 하려 한다.2. 영화가 그린 그녀들의 모습(1) 치열한 그녀 언젠가 책 속에 실려 있는 한 그림을 보고 운 적이 있다. 프리다 칼로의 그림, ‘떠 있는 침대(Henry Ford hospital)’였다. 나는 프리다 칼로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했고 초현실주의 그림도 잘 알지 못했고 유산을 경험해 본 적도 없었지만, 잘 알지도 못 하면서 마음 한 구석이 서늘해졌다. 이렇게 내 마음을 움직인 그녀에 대해, 영화는 어떻게 그려냈을지 기대가 컸다. 영화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줄리 테이머 감독의 는 그 자체로 너무나 매혹적이었다. 멕시코 특유의 색감과 음악, 그리고 셀마 해이웩의 끝없는 우아함!특히 사고 후 남자친구를 떠나보내는 장면은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자신의 가슴을 칭칭 감싼 깁스 위에 나비를 그리기 시작하며, “내가 이 나비를 다 그리기 전에 떠나.” 라고 말하는 프리다. 나는 이렇게 도도하고 가슴 아픈 이별 장면을 어디서도 보지 못 했다.그렇게 나는 의 로맨틱함에 흠뻑 취해서 에세이를 쓰고 있었다. 그 때 흥미로운 리뷰를 하나 발견했다.는 여성 감독이 만들었지만, 남성 화가를 사랑한 여성 화가의 고통을 만큼 정치하게 그리지 못한다. 그녀는 남편의 해외여행에 동행하는 동안, 작품을 하지 않지만 이를 괴로워하지 않는다. 그녀를 괴롭히는 것은 오직 남편의 바람기이며, 이에 맞서 동성애를 즐기거나 트로츠키와 사귀기도 한다. 그녀의 고통은 이름을 잃고 재능을 소진해버린 여성 예술가의 고통이 아니라, 난봉꾼 남편을 둔 유부녀의 고통이다. 건강이 악화된 뒤 그녀의 그림들에서 여성 혹은 장애 여성으로서의 실존적 자아에 대한 탐색이 보이지만, 그러한 그림들이 영화의 내용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알기 어려우며, “그와의 만남은 사고이지만, 나는 그를 사랑한다”는 말로 흡사 ‘부부싸움 칼로 물베기’ 식의 물타기를 감행한다.그러니까 이 리뷰는 영화가 프리다의 예술적 재능과 그 역량에 대해 충분히 다루지 못했다고 주장하고 있었다.(2) 사랑과 광기 사이 실비아 플라스는 그녀의 책상에서 천사를 찾으려고 했다. 시로 세속의 성공을 누리길 원했고, 그 책상 곁에는 연인으로서 그녀를 영원히 사랑하는 동반자가 서 있기를 꿈꾸었다. 재능있는 소녀는 숱한 시험을 통과하고 장학금을 따낸다. 그러나 결벽증적 투지는 자주 그녀를 죽음과 한뼘 거리까지 몰아세웠다. 스물한살에 자살을 기도했다 실패한 실비아(기네스 팰트로)는 영국의 케임브리지로 유학을 떠난다. 그리고 훗날 계관시인이 된 남편 테드 휴스(대니얼 크레이그)를 만난다. 는 남편에 대한 동업자적 시기와 성적인 질투심으로 출렁거린 시인의 결혼생활에 집중한다. 테드 휴스는 정말 부정을 저질렀을까? 아니면 그녀의 병적인 의심이 테드로 하여금 배신을 선택하도록 내몰았을까? 실비아 플라스의 충실한 팬이라는 크리스틴 제프스 감독은 모든 논란과 혼돈을 그대로 놓아둔 채 플라스의 우울증이 고인 물처럼 썩어가는 과정을 묘사하는 데 주력한다.테드를 소개시키려 데려 온 실비아에게, 그녀의 엄마는 묻는다.“How’s he going to support you? “ (어떻게 널 먹여 살린다니?)“I don’t want to be supported. He will be a great poet.” (날 먹여 살릴 필요 없어요. 그는 위대한 시인이 될 거에요.)위 대화에서도 알 수 있듯 실비아는 그의 문학적 재능에 반해서 결혼했고, 그의 재능과 야망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생활고를 감당할 준비도 되어있었다.신혼 초, 시가 잘 써지지 않는 실비아는 자신에겐 시적 주제가 없다며 한탄하고, 테드는 자신이 이미 진짜 주제인데 모르고 있다며 그녀를 나무란다. 그런 이야기를 나누는 그들을 태운 배가 조류에 떠밀려 망망대해로 한 없이 나아갈 위험에 처한다. 그 둘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실감하게 하는 장면이었다. 그 상황에서 실비아는 죽은 아빠를 회상하며 시를 읊는다.그 후 둘 다 시 관련 된 강의로 돈을 벌지만 테드가 좀 더 잘 나가는 강사이다. 잔뜩 치장하고 강의를 들으러 와서 그를 흠모하는 여자들도 눈에 띈다. 강연이 끝난 뒤엔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가 쏟아진다. 그런 테드에게 실비아는 점점 열등감을 느끼고, 거기에 테드에 바람기까지 더해 둘의 결혼생활은 더욱 위태로워진다.“나쁜 놈. 난 시를 쓰는 대신에 시를 가르치며 뒷바라지 했는데. 나쁜놈 자기는 영광 속에 살면서. 집안일만 아니면 나도 잘할 수 있었어. 집안일하랴, 뒤치다꺼리 하랴...”과연 이것은 테드와 실비아의 작업환경의 차이일까? 아니면 재능의 차이일까? 여기 또 다른 시선이 있다.막 등단한 그녀는 유명한 남성 시인에게 반해 결혼한다. 그녀는 강의하랴 남편의 원고 타자 치랴살림하랴, 시를 쓰지 못한다. 왜 시를 안 쓰냐는 남편의 질책에 “시가 잘 안 써지니 빵이라도 굽는다”고 하다가 “시 쓸 시간이 어디 있냐?”고 반문한다. 이는 가사노동이라는 성역할에 대한 항변이 아니라, ‘무늬만 시인’인 여자의 변명으로밖에 안 들린다. 그러다가 그녀는 의부증에 미쳐간다. 남편과 별거를 하자 시가 써진다고 하다가(잠깐 원 나이트 스탠드도 암시된다) 남편을 유혹하여 섹스하며, “다시 시작하자”고 매달리다, 거절당하자 자살한다.영화 속 그녀는 고학력 여성이었지만, 연애를 신봉하여 결혼하고, 생계와 가사를 짊어지다, 남편에게 ‘사랑받지 못하여’ 죽은 여자이다. 우리 영화 가 이미 연애와 가사는 여성의 자아실현에 쥐약임을 주지시켰고, 의 영선은 자기 시나리오로 감독 만든 남편이 바람피우자, 의부증으로 자살하는 꼴을 이미 보여주었다. 는 그녀가 언제 시를 썼으며, 무슨 시를 썼다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게 그리면서, 그녀가 ‘사랑 밖에 난 몰라서’ 죽었다고 서술하는 것은 진부할 뿐 아니라 악의적 왜곡이다.실제 그녀는 글쓰기에 천착하여 결혼생활 도중에도 꾸준히 시를 썼고, 별거 뒤 썼던, 아버지를 파시스트에 비유해 “아빠, 아빠, 이 개자식 이젠 끝났어” 등의 시구에는 남성 중심의 역사에 대한 영민한 자의식이 환상적으로 녹아 있다. 영화는 이 모든 것을 백안시하며, 부부싸움에만 초점을 맞추는데, 이는 흡사 유명인의 사생활을 가십으로 좇는 파파라치의 눈이거나, 누구에게 결혼 파탄의 책임이 있는지 따지는 가사조정실의 입장이다. 심지어 카메라는 기네스 팰트로의 얼굴이나 나체를 관음증적으로 잡는다. 말하는 주체인 여성 작가를 여성 감독이 그렸건만, 여성 시인과 여배우를 한갓 볼거리 대상으로 전락시키고 말았다는 데 분개한다.(3) 그녀는 정말 미친 것일까? 디아워스는 책을 쓰는 버지니아, 책을 읽는 부인, 그리고 책 속의 등장하는 댈러웨이 부인의 하루를 동시에 그려나간 영화이다. 세 겹으로 되어 있는 영화다.의 그녀는 유일하게, 남편 때문에 죽거나 미치지 않는다. 감독은 그녀의 불안하고 우울한 표정과 내면의 (살)풍경을 예민하게 잡아내며, 그녀의 불가해한 자살을 소설 의 이후 독자들의 삶과 병치시킨다. 그녀가 왜 자살을 택했는지, 또는 자살이 옳았는지, 관객이 모두 수긍하지 못하더라도, 남편의 근심을 뒤로하고 기꺼이 강물로 걸어가는 그녀의 모습은, 그녀가 고민의 최종 심급으로 자살을 선택했음을 인정케 하며, 그녀의 작품세계에 대한 어렴풋한 이해와 더불어 ‘초극의 의지’마저 느끼게 해준다.3.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그녀들은 자살하거나, 미치거나, 극심한 고통 속에 살다 갔다. 그녀들의 생애는 한마디로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였다. 재능있고 매혹적이고 아름다웠던 그녀들의 삶을 병들게 만든 문제의 요소들은 무엇일까?(1) 남편의 그늘프리다와 실비아와 모두 재능 있는 남편을 둔 아내들이었다. 남성우월주의적인 사회와 남편에 대한 열등감은 그녀들의 재능을 가리게 하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다음은 디에고를 따라 뉴욕에 간 프리다를 묘사한 내용이다.‘그녀는 디에고의 곁에 있는 작은 인형 같았다. 그러나 키만 작을 뿐 강하고 아름다웠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놀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 볼 정도였다.’ 뉴욕에서 체류하기 시작한 뒤 몇 달 간은 프리다에게 아주 힘든 시기였다. 멕시코 스타일의 치마와 장신구를 몸에 두른 그녀는 이 거칠고 더러운 도시에 질려서 남편의 뒤에 숨어 있었다. 프리다는 뉴욕에서 디에고처럼 창조를 통해 세상과 소통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그녀는 그녀 자신과 단절하고 열정의 원천을 빼앗겼다고 느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에고를 세상의 무엇보다 사랑했기에 그를 위해 집과 부모로부터 아주 멀리 떠나는 일을 받아들였고 어떤 점에서는 자신의 예술을 희생시키는 일까지도 받아들였다. 그러다 그녀는 다시 아이를 가질 생각을 하게 되었고 디에고에게 한 마디 상의도 없이 이 일을 결정했다.(2) 좋은 엄마이자 탁월한 예술가가 되는 것은 불가능할까?
디트리히 본회퍼, 사진으로 보는 그의 삶. 레나테 베트게, 정성묵 역, 가치창조, 2010그는 독일 부유한 중산층의 자식이었다. 좋은 교육환경과 가정환경이 그의 신앙에 영향을 주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냥 믿는 것 뿐만이 아니라 행동….행동으로 그는 실천에 옮겼다. 히틀러 암살 사건에 자신도 참여 함으로서 독일을 미치고 또 타락으로 빠트리고 있는 악을 제거하기 위하여 직접 나섰다. 결국 실패로 돌아갔지만 죽음을 각오 하고 하는 그의 행동은 감옥에서의 편지, 사진 등에서 숙연하게 느껴졌다. 이렇게 그는 죽었다. 어두운 흑백사진과 편지 몇 통 그리고 신앙에 관한 큰 울림 이것을 세상에 놓고 갔다.디트리히 본회퍼.. 솔직하게 처음 들어보는 이름 이었다. 나는 종교인이 아니다. 하지만 이 책에서 맘에 들었던 것은 기독교 신앙의 힘으로 가족의 연대 공동체의 연대의 끈으로 기존 세력에 저항하는 성실하고 우직한 사람을 보여 줌으로서 기독교에 회의감을 가지고 있는 나한테도 하나의 위인전을 읽듯이 위화감이 없었다. 교회라는 이름이 거부감으로 언제나 다가 왔었는데 다시 한번 이러한 생각에 대해 혹시 내가 오해가 있지 않았나 생각해 보았다. 사진과 함께 읽어서 그런지 훨씬 읽기도 편했고 그때의 감정을 쉽게 느낄 수가 있었다.바르셀로나, 베를린, 뉴욕 과 런던등 그는 많은 여행을 다녔다. 여행을 다니면서 그는 신앙에 대해서 생각을 했고 또 확고한 믿음이 싹트게 되었다. 수많은 경험 그 속에 있는 어떠한 우정이나 사람 같은 것이 그에게 많은 영향을 준 것 같았다. 그리고 그 것을 지키기 위하여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것이 진정한 종교인의 길이라고 믿는 모습이 정말 아름다웠다. 끈끈한 가족의 사랑을 느끼고 올 곧게 자라난 것이 가족의 사랑에 대해서 확실한 신념을 갖게 하고 이것이 발전해서 가족뿐만이 아니라 마을 지방 나라 세계로 그의 신념의 실천에 대해 책임감을 갖게 한 것 같다. 나 또한 여행을 통해서 많은 것을 느끼고 보면서 나의 생각이 자라났기 때문에 이 모습에 굉장히 공감이 갔다.독일의 불안한 정세에 순응하고 사는 사람들은 안정적이라고 느낄지 모르지만 이것은 진정한 평화가 아니라고 말 하는 것에도 큰 충격이었다. 그리고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어떠한 노력도 해야 한다는 것이 행동하는 종교인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의 아들의 길을 가기로 결정한 사람이라면은 당연히 나라의 평화 하나님의 말씀의 실천을 위해서 단지 기도만 할 뿐만이 아니라 당당하게 정부에 요구하는 모습이 일제 시대의 우리나라의 독립투사 같이 보이기도 했다.신앙이란 무엇일까 하고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그가 어떠한 목숨이 걸린 선택을 할 때도 언제나 하나님이 그의 옆에 있었고 지혜를 구하는 것 같았다. 그에게 하나님은 어떠한 존재 이었을까? 나도 한때 하나님을 믿었었다. 중학교 때는 꽤 하나님을 믿고 따랐고 교회도 매주 갔었다. 나쁜 짓을 했을 때 회계하려고 하나님을 찾지 말고 언제나 하나님을 찾아야 한다는 목사님 말씀이 굉장히 일리가 있어 보였고 또 하나님이 기적을 보여주지 않는 이유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존중 하기 때문에 심지어 자신을 믿을지 안 믿을지에 대한 결정권도 주셨다는 말씀도 맞아 보였다. 많은 의심이 있었지만 하나 확실했었던 건 하나님께서 존재 하신다는 사실이었다. 고등학교를 미션 스쿨로 갔었는데 그 때 하나님은 내 마음에서 사라 지셨다. 장로 출신 선생님들이 자신의 교회에 오면 기적을 보여 준다고 또 기적을 행하신다고 말씀했을 때 이상하게 더욱 불신이 생겼다. 또 타 종교 사람들은 모두다 지옥 불에 떨어지니 최선을 다해 전도를 해야 한다고 했다. 우리 나라를 위해 독립 투쟁을 했던 사람들이 지옥에 가있을 생각을 하니 너무 가슴이 아프고 회의감이 몰려 들었다. 그리고 너무 종교인들이 이기적으로 보였다. 선택에 기로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고 부응하며 올곧은 선택을 했던 디트리티 본회피처럼 신앙을 갖는 것이 너무 어렵게 느껴 졌고 점점 멀어 졌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솔직한 심정은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라는 것보다는 신앙 안에서 한 종교인이 신념을 위해 목숨을 바쳐가며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한 것들을 지키기 위한 투쟁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그 것을 따라 하려고 노력 하고 행동 했던 주인공의 업적은 정말 감동 적이었다. 오히려 사진과 함께 봤기에 잘 몰라도 이해가 되는 것 같았다. 현재의 교회에서 엄숙하게 모금하고 기도하는 것 보다 아침에 밥을 퍼주는 자원봉사 단체가 더 사회에 공헌하고 있다고 느끼는 것처럼 말이다.물론 많은 좋은 교회가 있다는 것도 안다. 우리나라에도 주인공 같은 목사 신부님 들이 존재 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몇 번 교회를 가려고 시도했던 나의 경험만으로 비추어 보면 주인공처럼 강한 끌림을 가지게 하는 사람은 없었다. 내가 운이 없었던 것일까? 아니면 나의 마음가짐이 잘 못 된 것일까? 하지만 확실한 것은 그러한 신념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너무 부러웠다. 나는 과연 그런 적이 있고 또 그럴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정말 많이 해보았다. 지금에 나는 사진 속의 결연한 표정의 디트리티 본회피처럼 신념에 차서 행동을 절 때 못할 것이다. 자신의 나약함에 대해 많이 느끼고 있는 지금 나의 등불이 되어줄 하나님을 다시 한번 맞이하기 위해 조금 더 내가 다가가야 함을 느꼈다.
대학생 혼전동거의 현황과대학생 혼전동거가 이야기 되는 방식1. 혼전 동거와 대학생 혼전 동거혼전 동거는 결혼하지 않은 남녀가 같은 주거지에서 생활을 함께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혼전 동거는 단어에서 나타나듯이 결혼과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혼전동거는 미래의 결혼을 위한 준비 단계 혹은 상대가 결혼하기에 적합한 상대인지를 판단하는 실험단계이거나, 혹은 가치관 등의 이유로 인해 결혼을 원치 않는 커플들에게 전통적인 결혼의 대안이 되는 형태의 동거를 말합니다. 그런 점에서 단순한 룸메이트와는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성소수자의 동거는 한국사회 내에서 ‘결혼’과는 다른 층위의 문제에서 다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해 ‘혼전동거’에는 포함시키지 않았습니다. 다만 성소수자 대학생의 경우, ‘대학생 혼전동거’의 범위 내에 포함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이 발제에서 다루고자 하는 주제는 ‘대학생 혼전 동거’입니다. 대학생 혼전 동거는 일반적인 혼전 동거와는 달리, 결혼과는 크게 결부되지 않는 특성이 있습니다. 대학생 혼전 동거는 나이든 세대와 비교해 자유로운 성문화와 대학생들의 자취문화와 같은 생활 패턴 혹은 주거 형태와 더 깊은 관계를 가집니다. 대학생 혼전 동거의 확산은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자연스러운 현상인 동시에 ‘젊은 층의 성문화 혼란’등을 이유로 윤리적 측면에서 비난 받거나 논쟁이 되는 현상이기도 합니다.또한, 대학생을 비롯한 젊은 층의 혼전 동거는 미디어에서 빈번하게 다뤄지고 있는 주제이기도 합니다. 2003년 드라마 「옥탑방 고양이」를 시작으로 많은 드라마에서 혼전 동거를 다루거나 유사 동거의 형태로 이야기를 끌어가는 방향을 택하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서는 TV 케이블 채널을 중심으로 실제 커플들의 동거를 다룬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나, 모르는 남녀를 한 장소에 살게 함으로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다루는 「발칙한 동거」와 같은 리얼리티 쇼를 방영하고 있습니다.2. 대학생 혼전동거에 관한 대학생들의 인식과 혼전 동거 현황2-1. 대학생 혼전동거 인식2007년 한국대학신문이 전국 2000여명의 대학생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동거할 수 있다는 응답자가 74%이었고 그 중에서 모르는 사람과도 동거할 수 있다고 답한 사람이 30%에 달했습니다.관련 자료 1. 혼전 동거 인식 관련 전세대적 통계 (2010, 통계청)찬성반대전국20-29세전국20-29세200842.3?57.7·201040.559.359.540.7(단위 %)* 위 통계자료에서는 혼전 동거를 ‘결혼하지 않는 남녀가 같이 살 수 있다’로 정의 하였습니다. 전세대적 자료 중 20대에 관한 부분만을 참고 했음을 밝힙니다.위의 통계자료를 보면 반수가 넘는 59.3 %의 학생들이 혼전 동거에 관해 긍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위의 통계는 젊은 층의 혼전 동거에 관한 인식이 다른 세대에 비해 긍정적인 것을 보여줍니다. 이는 젊은 층이 비교적 자유로운 성문화를 가지고 있으며, 동거 문화에 익숙하다는 것으로 분석 될 수 있습니다.한국대학신문의 설문에 혼전 동거에 긍정적으로 답한 인원 중 30%가 모르는 사람과의 동거에 대해 역시 긍정적으로 답한 것은, 역시 젊은 층이 동거 문화에 비교적 익숙함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모르는 사람과의 동거란, 룸메이트의 확장 개념으로 연인이 아닌 이성과 같은 주거공간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2-2. 대학생 혼전 동거 현황대학생 혼전 동거 현황에 대한 조사는 활발히 되어 있지 않고, 조사가 이뤄진 경우에도 인터넷을 통한 조사거나 소수의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조사이기 때문에 신빙성이 떨어집니다. 우리나라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지금까지 실시된 조사의 결과로는 2004년 허은주의 연구에서 동거경험이 있는 대학생이 2.4%, 2005년 우남식의 연구에서 한국 대학생의 5.7%가 동거경험이 있다고 응답하였습니다.조사의 특성상 다수를 대상으로 할 때 솔직한 응답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에 신뢰도가 떨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훨씬 더 많은 대학생들이 동거를 하고 있거나 경험 했을 것으로 예상 됩니다.아래의 자료는 동거를 경험해보거나 동거를 하고 있는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입니다.관련자료 1. 우리나라 대학생들의 동거 이유의 남녀 차이남성여성사랑해서 (46.2)한번 살아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서(30.8)혼자 있기 싫어서(15.4)어차피 결혼 할 사이이기 때문에(7.7)사랑해서(28.6)경제적인 도움이 될 것 같아서(28.6)혼자 있기 싫어서(14.4)어차피 결혼할 사이이기 때문에(14.4)(단위 %)3. 대학생 혼전 동거 원인 분석- 사회적 현상으로서의 원인과 개인적 원인들앞서 다룬 자료들에 의하면 대학생들의 혼전 동거 문화는 몇 가지 원인을 가집니다.첫째로, 젊은 세대의 동거에 관한 비교적 자유로운 인식을 들 수 있습니다. 젊은 세대들은 비교적 자유로운 성문화가 대학생들의 주거 형태와 만나면서 혼전 동거라는 현상을 만들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과거와는 달리 남녀 간의 혼전 동거를 ‘옳지 못한 것’으로 보지 않고 ‘선택적인 것’으로 보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이는 일반적으로 부모세대가 가지고 있는 가치관과는 대비되어 부모님과 동거 하는 대학생들 간의 갈등이 있기도 합니다.둘째로, 자취 생활로 인해 동거를 하기 편리한 환경에 있는 대학생들이 있습니다. 동거를 하는 대학생 커플들 중 양 쪽 다 부모와 살지 않고 자취를 하는 학생들이 많습니다. 이는 비교적 서로가 서로의 집에 드나들기 쉬운 환경을 만들고, 서로의 집을 오가며 오는 불편함을 줄이고 집세나 생활비를 줄일 수 있다는 이유로 동거를 하는 대학생들이 있습니다. 이와 더불어 자취 생활로 인한 외로움이나 혼자 사는 어려움 등도 대학생들이 동거를 하는 이유가 되고 있습니다.실제로 동거를 하는 친구(성공회대 10학번)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혼전 동거의 장?단점을 정리해 보았습니다.장점- 두 사람이 다 자취하는 대학생일 경우, 집세와 생활비를 줄일 수 있다.- 밖에서 밥을 사 먹거나 하는 지출이 줄어들어 데이트 비용을 줄일 수 있다.- 덜 외롭다.- 시간을 쪼개 데이트를 하지 않아도 함께 있는 시간이 늘어난다.- 함께 생활하면서 서로에 대해 더 많이 알아갈 수 있다.- 성생활이 자유로워진다.단점- 주위의 시선이 불편하다.- 부모님께 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부모님이 집에 오시는 경우 곤란하다.- 섹스나 피임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 데이트와 생활이 결합되다보니 생활이 나태해진다.- 상대에 대한 의존성이 높아진다.- 서로에게 보여주기 싫은 부분을 보여주게 되거나, 상대의 보기 싫은 부분을 보게 된다.- 사생활을 보호하기 힘들어진다.- 서로의 단점이 극명하게 드러나 대립하는 부분이 많아진다.- 가사분담이 어려운 점이 있다.위에서 원인을 찾은 것과 같이, 위 친구의 경우 동거를 본인이 결정할 수 있는 문제로 보고 있었으며, 경제적 이유를 동거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았습니다. 활동의 제약이나 서로에 대한 의존이 높아지는 문제와 섹스와 피임에 관한 문제가 가장 큰 단점으로 꼽혔지만, 그에 비해 경제적 장점과 함께 있을 수 있다는 장점이 크기 때문에 동거를 하고 있다는 대답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4. 대학생 혼전동거가 이야기 되는 방식- 찬반양론의 층위우리사회에서 대학생 혼전 동거를 이야기하는 방식은 주로 대학생들의 혼전동거에 대해 찬성이냐 반대냐 하는 찬반양론의 측면입니다. 하지만 대학생 혼전동거를 사회적인 문제로 비추어볼 때 찬반양론으로 평가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회문제는 개개인들의 과 복잡한 사회구조가 맡물릴 때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대학생 혼전동거는 보다 이면에서 그 문제를 발생시킨 여러 가지 사회적 원인들을 분석하고 그에 따른 절충안을 모색하는 방향으로 이야기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