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
Bronze개인
팔로워0 팔로우
소개
등록된 소개글이 없습니다.
전문분야 등록된 전문분야가 없습니다.
판매자 정보
학교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직장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자격증
  •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판매지수
전체자료 2
검색어 입력폼
  • 우리역사 최전선 감상문
    우리 역사 최전선을 읽고- 여러 가지 시각에 따라 역사는 재편성된다.나는 그 누구보다 한국역사에 대해 무식하다고 할 수 있다. 어렸을 때부터 한국역사가 아닌 세계사에 온갖 관심이 몰두해있었고, 중 고등학교 시절 국사시간만큼 나에게 고통을 안겨주는 수업이 따로 없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그 당시에 많은 생각을 하였다. 물론 현대에는 많은 서양 문물들이 들어와 한국만의 색깔이 발하는 영토가 아니지만, 세계사를 공부하면서 이때까지 보지 못했던 문명, 우리와 다른 가치관으로 역사를 편성해가는 모습에 매료되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요즘 들어서 새로운 생각이 지배하고 있다. 내가 왜 세계사에 관심을 갖고 한국사를 등한시하였는가라고 생각해보면, 한국역사는 그 당시 지배계층이 만들어 논 마치 야사 같은 느낌이 물씬 느껴진다. 영화 광해를 통해서도 느낄 수 있듯이 광해군의 재위기간 중 3년(정확한 것은 아님)정도가 그 어떠한 기록이 없는 것도 있고, 영화를 통해서 그 부분을 새롭게 유추하는 것에서도 느낄 수 있는 것이 있다. 역사는 그 당시 지배계층에 의해 표현 하고 싶은 부분은 표현하고, 표현하기 싫은 부분은 표현을 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했을 것이라고 판단한다. 지배계층의 잘잘못을 과연 당사자가 역사에 기록하기를 원하겠는가? 대한민국의 한민족처럼 자신의 잘잘못을 부끄러워하고 감추려하는 민족도 없을 것이다. 최근의 드라마 ‘장옥정 사랑에 살다’를 보아도 장옥정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담겨져 있다. 물론 나의 주관적인 판단일지 모르겠지만, 세계사에 비해 감춰지고 왜곡된 한국역사가 빗살처럼 줄지어 빽빽하게 늘어서 있다고 판단한다.역사는 항상 재평가되고 재편성한다. 현재의 순간에서 보는 여러 가지 시각에 따라 어느 한부분이 익이 될 때가 있고, 해가 될 때가 있는 법이다. 어렸을 때부터 내 지식으로서 존재하는 역사의 시각은 단 한가지였다. 왜냐하면 모두가 똑같이 배우는 국사, 사회를 통해 교과서를 쓴 필자의 일관된 시각에서 바라본 책만 배워왔기 때문이다. 물론 국사나 사회같은 교과서를 한 사람이 쓴 것은 아니지만, 집필자들의 공통된 의견을 통한 한 가지 시점으로 수렴된 글을 보고 배운 샘이다.그러나 ‘우리 역사 최전선’이라는 책을 통해서 더욱 더 넓은 시야의 역사를 바라볼 수 있었다. 역사 뿐만이 아닌, 나 자신에 대한 제 3자의 시각도 느껴볼 수 있었고, 현재 한국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 또한 느껴볼 수 있었다. 내가 얼마나 편협된 생각을 가지고, 편협된 지식을 가지고 역사를 바라보면서 살아왔는지 극명히 들어나게 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어느 부분하나 놓칠 수 없는 부분이다. 하지만 가장 마음에 와 닿고 놓치고 싶지 않은 부분이 있었다. 바로 “중국 이후 대비 못한 100년 전의 실패 반복 말이야”이다. ‘한국 역사와 문화’ 수업에도 나오는 부분이다. 우리는 100년전과 유사한 시기에 놓여있다. 근대화의 시발점으로 볼 수 있는 1876년과 지금의 시점과 굉장히 비슷하다는 것이다. 물론 다른 점이 있다면 100년전 개혁의 실패의 책임은 지배계층이었지만, 현재 개혁이 시작되었을 때 책임이라고 하면 나 그리고 모든 국민이다. 우리는 서양의 공업사회를 본받아 빠른 성장,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 냈다. 하지만 아직도 서양문물과 영향력의 그늘에 가려져 있는 현실이다. 과연 우리는 이대로 서양의 모든 모습을 똑같이 보고 따라하는 역할만 하는 것이 올바른 길인가? 박노자 교수의 말처럼 100년 전에는 공장을 세우는 것이 급선무였지만, 이제는 외국 학생들이 몰려올 만한 대학교를 만들고, 세계인들이 즐길 수 있는 영화나 음악 등을 창작하는 일이 시급하다. 미래의 경제에는 공업 제품등이 아닌 지식경제 사회로서 부가가치가 훨씬 더 높을 것이라고 판단한다. 물론 현시대의 최대가치를 배제하라는 뜻은 절대 아니다. 조선시대의 개혁파들이 말했듯이, 서구의 무기등을 보고 배우되, 국가의 모든 문화를 등 돌려서는 안 된다. 그리고 덧붙여서 우리가 한 나라로서 세계에 널리 알릴 수 있고 영향력을 행세하려면 현재까지의 최대가치가 아닌 유망가치를 찾아내고 빛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과거 조선의 지배계층은 유교 윤리가 일체의 사회관계를 임금과 신하 부모와 자식, 친구 등의 사적인 관계로 압축시켰다. 량치차오 논리에 입각하여 서구의 물질문화 수입은 재앙만 낳을 수 밖에 없다고 본다.그리고 100년 전의 과거처럼 우리 한반도가 중국과 미국의 갈등의 무대가 될 수 있는 시점에 있다. 100년 전 청, 일본, 중국, 러시아등의 열강의 갈등의 중심에 있었던 한반도이다. 많은 열강들의 요충지일 수 밖에 없는 반도는 침략의 발판이자 주요 전장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이러한 시점에서 미국 한 쪽에 기대어 있는 모습을 확인 할 수 있다. 이렇게 한쪽에 편협하게 된다면, 중국과 등을 돌리는 경우가 생길 수 있는데, 요즈음 시기에 가장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국가가 중국이다. 우리가 미국쪽에 편협에 있다간 미국의 패권이 몰락하는 순간 맞게 될 한반도의 모습은 상상하고 싶지도 않다. 그러므로 박 교수의 말처럼 한반도의 죽립화와 외국군의 주둔 불가론을 주장했던 100년전의 제안을 다시 한번 깊게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이렇게 우리는 실패의 역사 속에서 미래의 교훈을 찾아야 한다. 단순히 100년전의 역사가 실패의 역사이다라고 단정짓고 넘어 갈 것이 아닌, 100년전의 역사는 현시대의 역사와 비슷하다라는 것을 느끼고, 역사를 역사가 아닌 현실의 해결책으로 판단해야함이 더 올바른 학습이라고 생각한다.윤치호와 영어 배우기에서도 우리는 한국 현실의 실태를 느낄 수 있다. 나 또한 어렸을 때부터 영어교육에 시달려온 피해자 중에 하나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영어를 배제한다는 것은 국제, 세계화사회에서는 말도 안되는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모국어를 배제하고 영어를 최우선시하는 시각자체가 말이 안된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경희대학교 졸업사정에서 보면 이런 것을 느낄 수 있다. 학점 이외에 우리가 취득해야 할 것들이 많다. 봉사시간이 필요한 점도 있고, 가장 중요한 건 국가인증 영어 점수를 어느 이상 획득하여야 한다. 물론 국제화된 세계에서 영어를 대학교에서 의무화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면 대학교에서 우리 모국어인 한국어를 논한 적은 있는가? 우리가 한국어에 대해서 능숙하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 할 수 있을까? 내가 봤을 땐 아니라고 본다. 박노자 교수만 보더라도 내가 얼마나 모국어에 대해서 등한시했는지 알 수 있다. 외국인 교수가 한국어로 쓴 글을 보고 사전으로 그 뜻을 찾는 상황자체가 너무 부끄러운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나만 해당되는 사항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그리고 지금은 많이 없어진 한문, 한글의 많은 모습이 한자와 일치한다. 수업에서도 그랬듯이 우리는 고전문학이 한문으로 되어있는 경우 한글자도 읽지 못한다. 한문을 읽을 수 있더라고 해석를 기대할 수가 없다. 그러나 영국이나 미국의 고전문학을 보고 우리는 영한사전을 통해 해석이 가능하다. 이런 상황이 아무렇지도 않게 우리에게 일어나고 있는 것이 정말 안타까운 현실이다고 할 수 있다.책에서 ‘지나친 친미는 좌절만 가져다줄 뿐’이라고 한다. 현시대에서 미국은 한국의 가장 친한 친구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것은 우리가 잘 못 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저 껍데기만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100년전만 해도 미국은 우리에게 중립적인 입장을 표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우리는 계륵에 불과하였기 때문이다. 미국이 우리에게서 지리적 군사적 경제적으로 얻어 갈 수 있는 것이 일본에 비해 극히 작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요즈음은 어떠한가? 북한과 중국의 모든 문제를 가깝게 느낄 수 있도록 미국은 한국에 거머리마냥 달라붙어 있다. 한국을 친구가 아닌 군사적 경제적 정치적 요충지로밖에 생각을 안하는 것이다. 이런 모습에 우리는 단단히 속고 있다. 우리는 친미를 해야될 것이 아닌 용미를 해야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을까?윤치호는 허 교수가 말했듯이 요괴 인간 증후군이다. 그는 서양의 문화나 문물을 배우고 그 것을 통해 고급 인간으로 다시 태어 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하지만 이것은 분명히 잘 못 된 것이다. 마치 집을 버리고 호텔이 좋아 호텔에서 사는 격이라고나 할까? 집은 모든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안전한 곳이다. 집과 같은 국가를 등한시하고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윤치호의 태도는 대단히 잘못 되었다. 유길준처럼 미국의 영어를 배우고 문물과 문화를 배우되 한국의 정체성을 절대 잃지 말아야 할 것이다. 미국은 유길준의 말처럼 “위급함을 구해주는 우방으로 믿을 바 못 된다”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좀 더 객관적으로 미굮에 대한 종래의 고정 이미지를 버리고 살아야 함이 분명하다. 역사는 항상 새롭게 변화하고 발생하듯이 미국이 앞으로의 모든 역사의 주인공이지 않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독후감/창작| 2013.07.31| 5페이지| 1,000원| 조회(117)
    미리보기
  • 수원 화성 답사
    수원 화성 답사문-정조의 내외적 고뇌를 느낄 수 있는 수원화성을 다녀오며벌써 수원에서 생활한지도 횟수로 6년이 되었다. 이렇게 오랜 시간동안 여행과 기행을 좋아하는 나는 단 한 차례도 수원의 명물이나 유산 등을 구경하러 가보지 않았다. 서울에 있는 경복궁은 3차례나 갔다 왔는데 수원화성이라는 곳은 들어만 보고 별 거 없을 거란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러나 한국역사와 문화라는 수업을 들으면서 수원화성을 가보게 될 계기가 생겨서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게 되었다.하필이면 마음먹고 가기로 한 날에 비가 온다는 소식이 있었다. 하지만, 문화유산을 비가 오는 정적인 분위기에서 보고 느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서슴없이 출발하였다. 수원화성은 생각보다 장엄하고 거대하였다. 경복궁을 갔다 오면서 한 시간에서 두 시간이면 돌았던 기억이 있어서 2시간 안에 모든 곳을 다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예상대로 되지 않았다. 처음에 도착하였을 때 비가 많이 쏟아지는 바람에 지체했던 시간도 있어서 화성의 모든 유적지를 돌아 볼 수 있는 시간이 되지 않았음을 너무나도 아쉽게 생각하고 있다.처음 도착했던 곳은 화성행궁(신풍루) 주변의 주차장이었다. 비 맞은 화성행구의 모습은 마치 정조가 고뇌하고 있는 모습처럼 보였다. 간다하게 화성에 대해 알아보면 수원화성은 아버지 장헌세자에 대한 효심으로 부친의 원침을 수원 화산으로 옮긴 조선 제 22대 정조대왕이 1794년 1월에 착공하여 2년 9개월만인 1796년 9월에 완성한 성이다. 둘레는 5.7km, 성곽의 높이가 4~6m정도로, 실학자인 유형원과 정약용이 설계하였고, 석재와 벽돌의 병용, 화살과 창검, 총포를 방어하는 근대적 성곽 구조를 가졌다고 한다. 여기서 집고 넘어갈 부분이 있다. 과연 정조대왕은 아버지 장헌세자에 대하여 호심만으로 수원화성을 단 기간 안에 심혈을 기울여서 만들었을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세종대왕처럼 정조 대왕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정조 또한 민심을 크게 받아들이고 정치를 다른 왕들과는 다른 수준 높은 정치를 하였기 때문이다. 정조는 수원에 있는 평민들의 귀가 될 수 있는 수원화성을 만들었던 것이다. 현재 수원화성 주변을 보면 시장도 있고, 수원의 꽤 큰 번화가라고 모두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현대에 와서 이 주변이 그러한 장소로 발전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내가 느꼈을 때에는 과거 정조 정권 때에도 이곳은 꽤나 큰 중심지 였을 거라 감히 추측해 본다. 이렇게 수원화성은 여러 가지 의미를 담고 있는 유적지이다.-남치남포루와 남치를 시작으로 조금씩 답사를 시작했다. 남포루는 굉장히 위대했다. 벽돌을 이용하여 만든 5개의 3층 포루가 있는데 지대 위에 혈석을 전면 2개, 좌우 3개씩 놓았으며, 그 위에 벽돌을 쌓았고 안쪽으로 판자를 잇대어 2층을 구분하였다. 이렇게 외부의 공격에도 안전하게 방어할 수 있는 철벽화성이었다. 외부의 적이 들어올 수 있는 모든 각도에서 적군을 타멸할 수 있도록 만든 완벽한 설계가 아닌가 싶다.조금 더 지나가보니 효원의 종이라는 것이 있었다. 현대에 와서는 1,2,3회 칠 때마다 복이 온다는 의미로 돈을 받고 있다. 물론 좋은 경제기획임에 분명하지만, 고대 유물을 상업화하기 위해 그렇게 유지하고 있는 것은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조금 더 지나면 서장대와 서노대를 발견 할 수 있다. 장대는 서장대와 동장대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중 서장대는 팔달산 정상에서 성 주변을 살피면서 군사를 지휘했던 곳이다. 사방100리가 한 눈에 보이는 이곳은 수원화성의 군사지휘본부로, 일명 화성장대라고 한다고 한다. 실제로 날씨가 굉장히 흐려서 아주 먼 곳을 바라볼 수는 없었지만, 수원자체가 하나의 사진에 담기듯 내 시야에 모두 확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서장대 옆에는 도망칠 수 있는 문도 있었는데, 외적의 공격에 방어를 못하였을 때 몰래 도망칠 수 있는 곳도 마련한 것으로 보아 설계자의 위대함을 한층 더 느낄 수 있었다. 또한 그 암문은 군수물자를 성안으로 공급할 수도 있게 만들었고 돌과 흙으로 암문을 매워 폐쇄하도록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화성을 걷다보면 각루를 많이 발견할 수 있다. 각루는 군사적 요새지에 건물을 세워서 주변을 감시하기도 하고 때로 휴식을 즐길 수 있도록 한 곳이라고 한다. 각루에서 바라보는 수원의 모습 또한 절경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독후감/창작| 2013.07.31| 3페이지| 1,000원| 조회(384)
    미리보기
전체보기
해캠 AI 챗봇과 대화하기
챗봇으로 간편하게 상담해보세요.
2026년 05월 02일 토요일
AI 챗봇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 AI 챗봇입니다. 무엇이 궁금하신가요?
8:04 오전
문서 초안을 생성해주는 EasyAI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의 20년의 운영 노하우를 이용하여 당신만의 초안을 만들어주는 EasyAI 입니다.
저는 아래와 같이 작업을 도와드립니다.
- 주제만 입력하면 AI가 방대한 정보를 재가공하여, 최적의 목차와 내용을 자동으로 만들어 드립니다.
- 장문의 콘텐츠를 쉽고 빠르게 작성해 드립니다.
- 스토어에서 무료 이용권를 계정별로 1회 발급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체험해 보세요!
이런 주제들을 입력해 보세요.
- 유아에게 적합한 문학작품의 기준과 특성
- 한국인의 가치관 중에서 정신적 가치관을 이루는 것들을 문화적 문법으로 정리하고, 현대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를 비교하여 자신의 의견으로 기술하세요
- 작별인사 독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