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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illiam Shakespeare
    영미문학 입문 (수 12, 김근평 교수님)1. William Shakespeare (1564~1616)1) 르네상스 시대 (16세기, 문예부흥)르네상스는 중세 이후 유럽에서 14세기 후반에 비롯되어 16세기까지 지속된 예술의 절정기를 말하는 것으로서 르네상스라는 말로 불어 ‘르네르트’에서 유래한 말이다. 르네상스는 기독교 문명 중심에서 그리스 · 로마 고전 문명의 재생을 의미하며 영혼과 신 중심 사회에서 육체의 재생을 의미한고 종교 예술에서 인간 예술로의 재탄생을 의미한다. 영국에서는 15세기 후반부터 시작되어 엘리자베스 여왕시대에 절정에 이르렀다. 이 시대의 커다란 두 줄기의 사상적인 배경은 인문주의와 종교개혁인데 우선 인문주의는 르네상스의 근본적인 지적경향으로서 중세의 신성한 지식보다는 인간적인 지식을 추구하려는 사상적 움직임이었다. 종교개혁이란 순수한 기독교 신앙을 다시 회복하자는 운동이다. 다시 말해서 지난 몇 세기 동안 누적되어 왔던 모든 부정과 우상 숭배를 교회로부터 몰아내자는 것이다.이 시대의 문학적 배경은 ‘지적 부활’을 그 근본으로 한다. 이 시대에 와서는 중세적 관점이 점차 현세로 전환되며 고전과 자국어에 대한 숭배로 많은 번역 작품이 나타난다. 또한 개인적 삶을 추구하는 개인주의가 태동하게 되어 중세 봉건제와 교회의 엄격함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노력이 나타나게 된다. 르네상스의 영향이 영문학에 보편적으로 나타날 수 있었던 것은 고전문학과 유럽 선진국들의 작품을 번역한데서 비롯되었다. 당시 영국은 영어가 외래어에 오염되는 것을 막기 위해 순수한 영어를 사용할 것을 주장하고 고전시의 운율법에서 리듬의 원리를 이해하고 그 원리를 이용하였다. 이 시대의 대표적인 시 형식은 sonnet이었고 아울러 연극이 예술의 중심이 되었다. 주요 작가로는 Edmund Spense (대표작 연시, 선녀 여왕), 필립 시드니(Astrophel and Stella), 크리스토퍼 말로우, 윌리엄 셰익스피어, 벤 존슨 등이 있다.2) 그의 생애셰익스피어는 1564년 4월 23일 영국 런던의 한 교외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곡물상과 잡화상을 경영하였고 비교적 부유했다. 그러나 부친의 실패로 셰익스피어가 13세가 되기까지에는 이미 가운이 몰락해버렸다. 셰익스피어는 1582년에 그보다 8년 연상의 앤 해서웨이라는 여자와 결혼을 하였고, 1586년 경 가족을 남겨둔 채 고향을 떠나 런던에 가서 극장의 고용원이 되어 일했다. 그는 1590년에 창단된 베브르크 백작 극단에 들어갔다. 여기서 그는 배우, 무대 감독 등을 지내며 각본도 썼다. 그 무렵부터 셰익스피어는 인기가 아주 높아졌다. 라는 시를 발표함으로써 시에도 뛰어난 재능이 있다고 인정받았다. 그가 생전에 발표한 희곡은 모두 37편인데, 그는 약 20년 동안 극작에 전념하여 극작가로서 이름을 크게 떨쳤는데 작품의 구분은 대개 4기로 나누어지고 있다. 제1기는 1591-1595년까지로 극작연습을 하던 때이다. 그 때의 작품으로는 , 등의 사극과, 희극 , , 비극 등이 있다. 제2기는 1596-1600년까지로 희극과 사극의 완성기이다. 그 때의 작품은 , , 등의 희극과 , 등의 사극이 있다. 제3기는 1601-1609년으로 4대 비극이라 일컬어지는 , , , 등의 걸작을 잇달아 발표했다. 제4기는 1610-1611년으로 , 등이 있다. 1609년 이후 그는 주로 자신의 고향에서만 살았다. 세계 최고의 문학가로 추앙 받는 셰익스피어는 짧은 병치레 끝에 1616년 4월 23일 52세의 나이로 고향에서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그의 최초의 희곡전집은 1623년 런던에서 발간되었다. 그의 문학은 각국어로 번역되어 세계문학에 큰 영향을 주었다.3) 그의 주요 작품(1) 햄릿 (Hemlet, 1601)- 줄거리덴마크의 왕자인 햄릿은 얼마 전 갑자기 죽은 햄릿 왕과 왕비 거투루드의 아들이다. 왕비는 남편이 죽고 얼마 후 왕위를 물려받은 시동생 클로디어스와 결혼하는데, 이는 아들 햄릿에게 있어 부친의 죽음만큼이나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마침내 부왕의 망령이 아들을 찾아와 숙부인 클로디어스가 거투루드를 유쳬構i 자신을 독살한 것이라는 말과 함께 복수를 부탁한다. 감수성이 예민한 햄릿은 그 망령이 자신을 미치게 만들려는 악마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여 복수하기를 주저한다. 그는 숙부의 의심스런 눈길을 피하기 위해 거짓으로 미친 척하며 사랑하는 여인 오필리아에게도 냉랭하게 대한다. 마침 그곳에 유랑극단이 들어오자 햄릿은 숙부를 떠보기 위해 국왕살해의 연극대본을 써서 상연케 한다. 그것을 본 클로디어스는 안색이 변해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린다. 그후 햄릿은 기도를 올리고 있는 무방비 상태의 숙부를 발견하게 되고, 그의 죄를 확신하게 되지만 죽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놓치고 만다. 햄릿은 문 뒤에서 숨어 엿듣고 있던 오필리아의 아버지를 숙부로 오인하여 그를 죽이고 이에 충격을 받은 오필리아는 머리가 돌아 물에 빠져죽는다. 이윽고 이 일로 햄릿을 의심하게 된 클로디어스는 그를 영국으로 보내고 영국왕에게 그를 죽여달라고 부탁하지만 뜻을 이루지 못한다. 오필리아의 오빠 레어티스는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귀국하고 왕은 감언이설로 그를 속여 독을 바른 칼로 왕과 왕비가 지켜보는 가운데 햄릿과 펜싱시합을 하게 한다. 햄릿은 상처를 입지만 그 칼을 빼앗아 레어티스에게 치명상을 입히고 죽어가는 그의 입을 통해 왕의 음모를 알게 된다. 그러는 사이 왕비는 국왕이 햄릿에게 마시게 하기 위해 준비해둔 독주를 마시고 숨이 끊어지며 햄릿 역시 국왕을 죽인 뒤 숨을 거둔다.- 작품 해설멕베스, 오셀로, 리어왕 과 함께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로 꼽힌다. 중세 이래 덴마크 사람들에게 구전되어 내려오던 슬픈 왕자의 전설을 소재로 하여 영국문학은 물론 세계 문학 속에 항상 새로운 문제를 제공해주며 시간이 흐를수록 새로운 매력이 발견되는 작품이다. 작품의 절반 이상이 햄릿의 독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주인공 내면의 갈등을 나타냄으로 인간의 깊은 내면세계를 철학적으로 깊이 관찰한 점이 높게 평가받는다. 햄릿은 생각만 하다가 죽는 인물로 흔히 돈키호테의 행동력과 햄릿의 사고력이 흔히 비교되곤 한다. 햄릿이 복수는 못하고 생각만하다가 죽는 이유로는 여러 비평이 있다. 셰익스피어의 성격 비극적 인생관은 다른 작품에도 잘 나타나 있는데 리어왕에서는 리어왕의 오만함, 멕베스에서는 주인공의 야심, 오셀로에서는 질투심이 이들을 비극으로 이끌게 된다.(2) 리어왕 (King Lear)- 줄거리영국의 전설상의 왕인 리어에게는 고네릴, 리건, 코델리아의 세 딸이 있었다. 그는 이제 늙었기 때문에 딸들에게 국토를 나누어주려고 했다. 두 언니가 마음에도 없는 아부를 하는 것을 보고 진실한 코델리아는 화가 나서 일부러 매정하게 응답했으므로 부왕에게 추방당한다. 러어는 두 딸들에게 교대로 머물기로 했으나 양쪽 모두에게 심한 학대를 받게 되자 궁정의 광대와 충신인 켄트 백작 두 사람만을 데리고 폭풍우가 몰아치는 광야에게 두 딸을 저주하며 광란한다. 여기에서 리어는 결국 '왕도 역시 일개의 인간에 지나지 않으며 인간은 벌거벗은 동물'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프랑스 왕비가 된 코델리아는 부왕의 참상을 듣고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군대를 이끌고 영국으로 가지만 리어와 함께 포로가 되고 그녀는 죽는다. 리어는 딸의 주검을 보고 슬퍼하여 절명한다. 두 딸은 불륜의 사랑으로 신세를 망치고 고네릴의 남편인 앨버니 공작이 왕위에 오른다.- 작품해설등장인물은 어느 정도 보편성을 띠고 있는데 충성과 미덕의 인물(켄트, 글로스터 백작, 셋째딸)은 악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식의 전환을 보여 주고, 배은(背恩)과 악덕의 인물(에드먼드, 둘째딸, 셋째딸)은 구제할 수 없는 지경이 이른다. 이 작품에서는 선만이 파멸되는 것이 아니라 악도 비참하게 끝을 맺는다. 리어왕이 광증에 빠지고서야 인생을 올바르게 관조하게 되었듯이 글로시스터 역시 두 눈을 뽑히고 맹인이 되어서야 적자인 에드거의 효심을 깨닫는다. 다시 말하면 위선에 눈이 멀어 진실을 모르다가 뼈를 깎는 고통 속에서 마음의 눈을 뜨는 새로운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늙은 왕 리어는 효성이 지극한 막내딸 코델리아를 믿지 않고 오히려 부실한 맏딸과 둘째딸의 감언이설(甘言利說)에 속아 나라를 물려주었기 때문에 배신한 그 두 딸에게 쫓겨나 황야를 헤맨다. 프랑스 왕에게 시집간 코델리아는 왕과 함께 군사를 이끌고 오지만 오히려 패하여 그녀는 포로가 되었다가 교살되고 리어는 번민하다가 죽는다는 것이 주된 줄거리이다. 극중에서 특히 유명한 것은 리어왕이 폭풍의 광야에서 광란하는 장면인데, 여기에 고뇌하는 리어왕에게 불후의 광대적인 성격을 부여하여 드물게 보는 비극적 효과를 높이고 있다.2. John Milton (1608~1674) and his time1) 청교도 시대(1625~1660)제임스 1세와 찰스 1세는 가톨릭교도인으로 매사에 국민과 대립했다. 게다가 세금을 징수하기 위해서 의회를 탄압했기 때문에 의회의 주력인 청교도는 의회군(Round Heads)을 만들어 왕당군과 무력투쟁 끝에, 왕당군을 격파하고 왕을 붙들어 처형해서 공화국을 세웠다. 이러한 공화제 시대를 반영한 것이 바로 청교도 문학이다. 청교도 문학을 대표하는 시인으로 존 밀턴을 꼽을 수 있다.2) 그의 생애와 주요 작품17세기 문학의 가장 위대한 천재인 존 밀턴은 런던에서 태어나고 자랐기 때문에 르네상스의 모든 지적 흥미를 경험할 수 있었다. 20대 초반에
    인문/어학| 2010.10.24| 11페이지| 1,500원| 조회(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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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1세기 한국, 왜 러시아인가?
    21세기 한국, 왜 러시아인가?- 러시아의 잠재력과 한국의 대러정책과목명 : 러시아 문화담당 :제출일 :학번 :이름 :* 내용 정리와 그에 대한 본인의 견해프롤로그 : 러시아 '띄우기'에 대한 변(辯)- 러시아를 바라보는 한국사회의 시각이 경직되고 왜곡되어 있었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던 홍완석 교수님께서 러시아에 대한 편견을 해명하시기 앞서 그 이유를 설명하신 부분이다. 교수님께서는 오랜 기간 동안 주변국들이 제공한 러시아에 대한 시각이 우리에게 굳어진 것이 그 원인이라 지적하셨다. 그리고 러시아에 대한 굴절된 시각을 바로잡기 위해 우리 '내부의 창'을 통해 러시아를 바라보아야 한다고 하셨다.본인의 생각도 그렇다. 지난번 러시아문화 강의 시간에 최아영 교수님께서 말씀해주신 바로는 현재 국내에 알려지고 있는 러시아에 대한 기사 자체도 한국이 직접적으로 러시아에서 보고 얻어온 기사가 아니라 다른 나라를 통해 얻어온 기사라고 하셨다. 이처럼 대중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언론조차 다른 나라의 시각을 통해 정보를 들여오니 국내에서 러시아에 대한 자주적인 견해를 갖기란 어려운 일 일 수밖에 없다. 때문에 본인도 홍완석교수님께서 언급하신 것처럼 한국이 러시아의 다중적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고 러시아를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그리고 21세기 한국의 국가적 번영을 위한 유용한 전략적 자산으로 인식하여 좀 더 적극적이고 직접적인 방법으로 러시아에 다가갔으면 한다.1. 소련의 잔영에 짓눌린 신 러시아- 소련이 침몰하고 러시아가 그 자리를 메운 지 스무해가 지났다. 그러나 아직도 소련과 러시아를 하나로 보고 얘기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유가 무엇일까? 그 이유로 홍완석 교수님은 세계정세의 변화를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는 우리 국민들의 국제정치적 현실감각 지체현상을 언급하셨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과거 냉전시절 사회주의 종주국으로서 미국과 함께 세계의 절반을 나누어 지배했던 초강대국 소련의 위상에 압도된 측면이 있음과 동시에 북한의 후원자로서 한반도의 운명에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했을 공식적으로 선언했고 신 러시아가 스스로 소련의 법적 계승 국임을 대내외에 선포했다. 이는 러시아가 소련을 대신해 모든 국제적 의무(대외 채무)와 권리(전략핵무기, 유엔안보리상임이사국 지위)를 이러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소련의 영토보다 러시아의 영토는 더 작은 면적을 가진다. 소련의 영토의 약 78%인 1,708만km를 물려받았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시장민주주의 국가로의 환골탈태라고 할 수 있다. 소련의 해체 이후 신 러시아는 스스로 공산주의와 단절을 선언하고, 국제적 인권과 인류의 보편적 가치규범을 준수하는 서구적 시장민주주의 국가로 환골탈태했다. 마지막으로 북한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과거 소련은 북한 정권의 수립과 발전의 결정적 후원자이자, 철의 단결을 과시하는 동맹국이었다. 하지만 신 러시아는 이러한 대북 특수관계를 과감히 청산하고 군사동맹조약도 일방적으로 파기하였다. 뿐만 아니라 옐친(B.Yeltsin)대통령 재임 8년 동안 러시아는 자발적으로 대한반도 정책의 무게중심을 남한으로 옮긴 친남한일변도 노선을 펼쳤다.본인에게 가장 흥미롭게 와 닿은 부분은 러시아와 소련의 국가체제의 성격이 달라졌다는 점이다. 본인을 비롯한 대다수의 사람들이 공산주의라는 말을 들으면 바로 연상하는 것이 소련인데 그를 법적으로 계승한 러시아는 시장민주주의라니. 국가의 체제를 바꾼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님은 분명하다. 하지만 한 나라가 쇠하고 새로운 나라가 등장하는 등 크나큰 변화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새로운 체제에 적응하기까지 국민들과, 새로운 체제에 맞는 정책을 세우고 시행했어야 했던 정치인들이 얼마나 많은 수고를 겪었을지 생각을 해보니 신기할 따름이고 러시아가 새로 보인다.3. 침체된 한·러관계, 무엇이 문제였나?- 1991년 12월 소련의 붕괴이후, 사실상 한국과 러시아는 과거에 비해 우호적이고 더 깊은 관계로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현 시점에서 돌아봤을 때 그런 기회를 가질 소모하기보다는 대북 접근 강화를 통해 한반도에서 위축된 출구를 찾고자 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국내에 존재하는 러시아에 대한 냉정전 시각을 이유로 들 수 있다. 국제관계의 본질적 변화와는 상관없이 러시아를 무조건 부정적인 국가로 인식하는 우리 정부의 편향된 시각과 이해 부족을 홍완석 교수님은 지적하셨다. 하지만 한국의 잘못만 있는 것은 아니다. 러시아는 소연방 해체 이후 동시다발적으로 분출된 민족문제, 보혁간 첨예한 권력투쟁. 체첸전쟁, 중앙과 지방 간의 갈등 등 일련의 국내적 내홍에 휩싸여 있었다. 한동안 지속된 이런 정치적 혼돈은 한국에게 러시아의 가치를 평가절하하게 만들어 대러 접근의 적극성을 약화시킨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이와 같이 러시아와 한국 사이에는 관계를 발전시키기엔 보이지 않는 장애물이 분명 존재했다. 때문에 이번 해가 더 중요하고 관심을 받는 것이다. 한·러 수교 20주년을 맞아 양국의 그간 있었던 오해와 잘못을 해명하고 반성하여 전혀 새로운 관계 발전을 위해 힘써야 할 때인 것이다. 본인은 그래서 노어과에 입학한 사실이 더욱 자랑스럽다. 홍완석 교수님께서 말씀하시길 한반도에 살면서 러시아에 대한 정보와 배움은 이젠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하셨다. 본인이 러시아와 한국의 외교에 관한 일을 하고 싶어 함과 더불어 사회에 나서서 한국 정부에 작게나마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재량을 갖게 되었을 때를 위해서도 러시아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제대로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4. 러시아의 잠재적·현실적 국력- 러시아를 과소평가하는 이들이 범하는 오류는 소련의 몰락을 러시아의 몰락과 동일시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잠재적인 힘의 여러 요소를 볼 때, 그리고 모스크바의 정책담당자들이 과거 3세기 동안 범세계적 행위 주체였고, 북해에서 남미에 이르는 거대한 제국을 경략한 경험을 갖고 있는 제정 러시아와 소련 책략가들의 후손들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러시아의 대외적 영향력은 여전히 유효하고 세계의 중심국가로 남아 있기에 충분하다. 먼저 그 첫 번째 증거로 러시아가 지구상에 러시아뿐이다. 네 번째 증거로는 러시아가 지구상의 최대의 지하자원 보유국이라는 점이다. 영토가 광활한 만큼 러시아에는 다양한 지질구조가 발달하여 지구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종류의 자원이 묻혀있다. 그것도 매장량 선두를 달릴 정도로 풍부하다. 광활한 국토 안에 매장된 다양하고도 풍부한 천연자원, 특히 전략자원인 엄청난 석유·가스 자원의 부존은 향후 러시아의 국가적 발전 잠재력을 가늠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평가 요소다. 다섯 번째 증거로는 러시아가 첨단 기초과학 및 우주항공기술 분야에 있어서 강국이라는 점이다. 러시아는 기초과학 연구 부문은 이미 세계적으로 정평이 나있다. 러시아 과학기술의 저력은 노벨상 수상자의 수에서도 확인 할 수 있을 정도다. 여섯 번째 증거로는 러시아가 브릭스의 선두주자라는 점이다. 미국의 세계적 투자기관인 골드만 삭스가 러시아를 2050년에 세계 경제의 거인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렇다면 골드만 삭스가 러시아의 잠재성장력을 높게 평가한 이유는 무엇일까. 러시아의 높은 교육 수준, 잘 정비된 사회간접자본시설, 구매력이 높은 대규모 시장 보유, 세게 제2위 산유국으로서 무궁무진한 천연가스 등 풍부한 지하자원, 항공기 및 인공위성 제작·통신기술 등 세계 최고 수준의 첨단 과학기술력 보유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주의해야할 점은 미국과 중국에 관심을 빼앗겨 러시아를 간과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러시아가 잠시 비틀거리고 있으나 내적 동력을 확보하고 전열을 갖추면 언제든지 다시 초강대국으로의 웅비를 재현할 수 있는 객관적인 저력을 구비하고 있다는 점을 우리는 명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홍완석 교수님이 러시아를 예찬하시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이 든 부분이다. 러시아는 우리가 간과하고 넘어가기에는 너무나도 매력적이고 아까운 나라다. 지극히 외교적인 차원에서 볼 때에도 자원이나 기술력, 그리고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 러시아가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당연하거니와 단순히 경제적인 차원에서 러시아를 살펴볼 때도 앞으로 다 중동을 대체하는 새로운 '건설 및 플랜트 시장'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서로 함께 공존하고 공영하기 위해서도 한국은 러시아와 친해질 필요가 있다. 한국의 대륙적 정체성을 강화시켜 주는 '민족이념적 공간'이며 한국의 문화를 풍요롭게 하는 선진 문화예술의 '유입처'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15만 제러 동포들의 안정적 삶을 마련해주는 고마운 '보장자'의 역할도 러시아가 임하고 있다.역사를 뒤돌아보면 러시아와 한반도의 관계는 깊고 또 오래되었다. 북방의 추운 지역에 위치한 러시아로서는 부동항을 차지하기 위해 남하하는 일이 당연지사였고 한반도는 국경을 접하고 있는 만큼 러시아와 부딪히기도 하고 협력을 하기도 했다. 더군다나 조선시대 때 고종이 집권했을 당시에는 명성황후의 청으로 명성황후와 정치적으로 대립했던 대원군을 납치하는 일도 벌였으며 한 국가의 왕이 머물러 역사적으로 이슈가 되었던 아관파천이라는 사건을 한반도 역사에 새기기도 했다. 이처럼 오래된 역사 외에도 앞에서 계속되어 언급되듯이 러시아와 한국이 친해져야하는 이유는 너무나도 분명하다. 한국의 입장에서 국익을 높이고자 하는 이유도 상당하지만 아시아인의 정교함과 과학분야에서 명성높은 한국의 인재들과의 교류가 러시아에도 전혀 나쁠 것이 없기에 양국 모두가 관계개선을 위해 노력했으면 하는 것이 본인의 바람이다.6. 평화번영정책과 러시아- 한·러 관계는 숙명적이라고 할 수 있다. 첫째는 국경선을 마주한 지리적 인접국으로서 한·러관계의 ‘지정학적 숙명성’이다. 이는 러시아가 한반도에 대해 갖고 있는 다양한 수준의 중요한 국가이익들을 숙고해봄으로써 알 수 있다. 두 번째 이유는 시간의 경과와 함께, 특히 21세기에 접어들어 한국과 러시아가 공동의 이익에 바탕 해 협력을 강화할 경우 상호국익창출의 시너지 효과를 배가시킬 수 있는 ‘지경학적 연계성’이 현저히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세 번째 이유는 한·러 양국이 한반도 주요 현안에 대해 동일한 ‘지전략적 안보관’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또한 북핵 문제에 대한 러시아것이다.
    사회과학| 2010.10.24| 7페이지| 1,500원| 조회(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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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이 있는 곳에 신이 있다
    ‘사랑이 있는 곳에 신이 있다’는 어느 구두장이가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들을 모두 잃은 뒤 삶의 의미를 잃고 방황하다가, 성경을 읽게 되면서 자신이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깨닫는 톨스토이의 동화를 그림책으로 새롭게 펴낸 책이다. 이 이야기는 삶을 사는 방법이 아니라, 먼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를 깨닫게 해준다.구두장이 마틴 아브제비치는 가장 소중하게 여겼던 가족을 차례로 모두 잃는다. 마지막으로 어린 아들마저 죽자 그는 신에게 죽게 해달라고 기도하며 신을 원망하고 신을 더 이상 믿지 않는다. 마틴은 삶의 의미마저 상실하고 방황한다.한번은 성지를 순례하다 들른 같은 고향사람인 한 노인이 마틴을 찾아와 우리가 주님 안에서 기쁘게 살아가는 것이 주님의 뜻이며 주님을 위해 살아가야 된다고 충고한다. 마틴은 그날로 성경을 읽기 시작한다. 성경을 읽으면 읽을수록 마틴은 마음이 평화로워지고, 신이 그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신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게 되면서 그의 마음도 점점 더 가벼워졌다. 그의 삶의 모든 것이 바뀌었다.그러던 어느 날 마틴은 꿈인지 생시인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마틴, 내일 거리를 내다보거라. 내가 갈 것이다”라는 그리스도의 말을 듣는다. 그 음성이 너무도 또렷해서 다음 날 마틴은 하루 종일 거리를 내다보며 예수님을 기다렸지만 그리스도는 오지 않았다. 다만 거리의 청소부, 아기를 안고 있는 여인, 그리고 날품팔이 할머니와 소매치기 소년 등 불쌍하고 보잘것없는 사람들을 만나 그들에게 따뜻한 사랑을 베푼다. 마틴 앞에 직접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그리스도는 그 날 밤 다시 이들의 모습으로 나타나 마틴이 만난 사람들이 모두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이었다는 사실을 마틴에게 깨우쳐준다. 마틴은 이 날 확실히 그리스도를 만났고, 자신이 그리스도를 대접했다는 것을 깨닫고 기뻐한다. 그는 자신이 신에게 쓰임 받을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느끼고 삶의 의미를 되찾게 된다.스테파니츠는 청소부라는 사회적으로 낮다고 여기는 직업을 가지고 있었고, 아기엄마는 남편을 잃고 어린 아이와 함께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 과부였으며, 날품팔이 할머니는 손자들을 위해 장사를 하면서 하루하루 생활을 이어나가는 사람이었다. 마틴이 만났던 사람들은 모두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이었다. 마틴 스스로도 넉넉한 생활은 아니었지만 그는 자신보다 더 어려운 이웃들을 도우면서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신을 위해 사는 삶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다.이 작품의 핵심은 이야기의 맨 뒷부분에 나오는 다음의 성경구절이다.“내가 굶주릴 때 너희는 나에게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라 할 때 너희는 나에게 마실 물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가 되었을 때에 따뜻하게 맞아 주었다. 왜냐하면 너희가 여기 있는 내 형제 중에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해 준 것이기 때문이다.(마태 25장)”곧, 사랑이 있는 곳에 곧 신이 있다는 믿음이다.기독교인으로 살아가는 수많은 우리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넘치는 사랑을 받고 있다.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가지고 있는 수많은 기독교인들은 성경에 나타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본 받아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여러 가지 핑계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방법에 대한 오해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그 사랑을 주변의 소외된 사람들에게 흘려 보내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우리 안에 가둬 둔다. 고인 물은 썩듯이 사랑도 나누지 않고 가둬두면 더 자라지 않고 정체된다. 그러나 물을 계속 사용하면 더 신선하고 깨끗한 물로 새롭게 채워진다.
    독후감/창작| 2010.10.20| 2페이지| 1,500원| 조회(3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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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가 소개
    0. 국호한국의 국호는 한(韓), 조선(朝鮮), 동국(東國), 청구(靑丘), 해동(海東), 대동(大東), 진(震) 등과 근역(槿域),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 금수강산(錦繡江山), 소화(小華) 등으로 불려 왔다. ‘한’ 또는 ‘대한(大韓)’은 우리 민족이 한족(韓族)을 중심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생긴 말로서, 고대 사회의 삼한(三韓)인 마한(馬韓), 진한(辰韓), 변한(弁韓)을 비롯하여, 1897년 8월 국호로 정한 대한 제국(大韓帝國), 1919년 4월 중국 상하이[上海]에 세운 대한민국 임시 정부, 그리고 오늘의 대한민국은 한(韓)에서 비롯된 것이다.‘조선’은 《전국책(戰國策)》, 《산해경(山海經)》, 《사기(史記)》 등 중국의 고전에 일찍부터 전해지는 한국 최초의 이름으로, 고조선, 단군 조선, 기자 조선(箕子朝鮮), 한씨 조선(韓氏朝鮮), 위만 조선(衛滿朝鮮)에 이어 새 왕조를 개창(開創)한 이성계도 조선이라고 국호를 정하였다. 조선이란 말에는 동방과 광명의 뜻이 담겨 있다. 즉 땅이 동쪽에 있어 해 뜨는 곳의 모습을 형용한 것이라고도 하고, 선(鮮)은 선비산(鮮卑山)의 약칭으로서 선비산 동쪽의 나라를 뜻한다고도 하며, 양곡(陽谷), 즉 양달의 마을 이름이 나라 이름으로 바뀐 것이라는 주장도 있고, 신 또는 빛[光明]의 뜻에서 전화된 것이라고도 한다.동국·청구·해동·대동의 이름은 모두 한국이 중국 동쪽에 있는 까닭에 생겨난 명칭으로서, 《동국통감(東國通鑑)》, 《해동역사(海東繹史)》, 《청구영언(靑丘永言)》, 《대동야승(大東野乘)》 등 책 이름으로 많이 쓰였다. 진(震)이란 주역(周易)의 팔괘(八卦) 중의 '?'을 가리키는데, 이 말을 따서 이름을 붙인 것으로는 진국(震國), 진역(震域), 진단(震壇, 震檀)이 있고, 또한 궁예(弓裔)가 세운 마진(摩震), 발해(渤海)의 첫 국호인 진국(震國) 등이 알려져 있다. 동방예의지국이란 중국에서 불렀던 나라 이름이다.중국은 문화가 발달하여 예로부터 스스로 세계의 중심인 중화(中華)로 자처하고 다른 민족을 야기간은 북부 지방이 길고 남부 지방은 짧으며 봄과 가을의 기간은 북부 지방일수록 매우 짧다. 벚꽃 개화일이나 무상 기일의 분포는 남북 간의 기후 차를 잘 반영하고 있다. 한극(寒極)은 중강진으로 1933년 1월 12일 -43.6℃를 기록한 바 있고, 1월 평균 기온은 -20.8℃이다.(4) 겨울 몬순과 삼한사온(三寒四溫): 한국에서 겨울 기후의 특색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삼한사온 현상이다. 이는 북서 몬순의 강약에 따라 이루어지는 기온 추이의 하나의 파동 현상이다. 즉 겨울철 기온은 대체로 7∼10일 주기로 내습하는 한파(寒波)에 의해 승강 현상이 되풀이된다. 이 한파는 시베리아 기단의 성쇠에 따라 결정되는데 시베리아 고기압이 발달하여 남쪽으로 확장되면 한반도는 한파에 휩싸여 기온이 급격히 하강한다. 이때 한국 주변의 기압 배치는 서고동저형(西高東低型)이 된다. 고기압이 약화되면 서고동저형의 기압 배치는 무너지고 중국 내륙으로부터 이동성 고기압이나 때로는 저기압이 동진해 온다. 이동성 고기압이 통과할 때는 엄동(嚴冬) 중의 봄 날씨가 되기도 하며 저기압이 통과할 때에는 눈 또는 비를 내린다. 한파는 11월 중순부터 나타나기 시작하여 2월 말까지 여러 차례 내습하는데 때로는 3월에도 ‘되돌이 한파'가 내습하여 이른바 ‘꽃샘추위’가 나타난다.2. 지리면적은 9만 9461㎢(남한), 인구는 4764만 명(2002)이다. 인구 밀도는 479명/㎢(2002)이며 통칭 한국이라고도 한다. 남북으로 길게 뻗은 반도와 3,200여 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극북(極北)은 북위 43° 1'(함경북도 온성군 유포진 북단), 극남(極南)은 북위 33° 6'(제주 남제주군 마라도 남단), 극동(極東)은 동경 131° 52'(경상북도 울릉군 독도 동단), 극서(極西)는 동경 124° 11'(평안북도 용천군 마안면 서단)이다.북쪽은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너 중국의 만주와 러시아의 연해주에 접하고, 동쪽과 남쪽은 동해와 남해를 건너 일본에 면하며, 서쪽은 황해를 사이에 두고 중국 본토에山), 전북의 마이산(馬耳山), 충남의 가야산(伽倻山) 등지에서 발견되는 타포니(Tafoni)는 한국이 현재보다 건조했을 때 형성되었으리라고 추측되는데, 현재 그 생성 환경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2. 하천한국의 산맥 분포는 우리 국토의 지형 특색을 크게 결정짓는다. 한국의 산맥 가운데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태백산맥(太白山脈)과 낭림산맥(狼林山脈) 등 이른바 한국 방향의 산맥이다. 그리고 랴오둥[遼東] 방향의 산맥과 중국 방향의 산맥으로 나눌 수 있다. 그중 강남산맥(江南山脈), 적유령산맥(狄踰嶺山脈), 묘향산맥(妙香山脈), 언진산맥(彦眞山脈), 멸악산맥(滅惡山脈), 함경산맥(咸鏡山脈) 등은 랴오둥 방향 산맥이고, 마식령산맥(馬息嶺山脈), 광주산맥(廣州山脈), 차령산맥(車嶺山脈), 소백산맥(小白山脈), 노령산맥(蘆嶺山脈) 등은 중국 방향 산맥에 속한다.그들 산맥에는 백두산(白頭山:2,744m), 관모봉(冠帽峰:2,540m)을 비롯한 고봉들이 솟아 있는데, 휴전선 이남에 있는 주요 산은 소백산맥에 속하는 지리산(智異山:1,915m), 태백산맥에 속하는 설악산(雪嶽山:1,708m), 태백산(太白山:1,567m) 등이다. 제주의 한라산(漢拏山:1,950m)은 휴전선 이남에서 가장 높은 산이지만 그 성인이 육지부의 산과는 상이하다. 산맥에는 교통의 요충지 역할을 하는 재[峙:고개]가 많이 분포해 있고 이 중 고도가 높은 재들은 대부분 휴전선 이북에 있다. 휴전선 이남에서는 대관령(大關嶺:832m), 육십령(六十嶺:734m), 죽령(竹嶺:689m) 등이 널리 알려져 있다.한국의 산지에는 일정한 고도에 평탄면이 있는데, 해발 고도에 따라 고위면, 중위면, 저위면 등으로 나뉜다. 고위면은 해발 고도 900m 이상의 고도에 300m 내외의 소기복을 이루면서 나타나고 중위면은 300∼700m에 걸친 고도에 나타난다. 저위면은 원주와 충주를 잇는 선의 서쪽 남한강 하류 등지에 나타나는 평탄면으로, 해발 고도 30∼70m의 산록 완사면과 70∼80m의 저구릉성 침식 지형이안을 따라 넓은 평지가 있고, 배후 산지가 비교적 멀리 떨어져 있는 해안부에서는 곳에 따라 사구의 발달도 볼 수 있다.비교적 규모가 큰 사구는 충남 서산시 원북면(遠北面) 신두리(新斗里) 해안, 안면면(安眠面) 장곡리(長谷里) 해안, 전북 고창군 상하면(上下面) 해안 등지에 발달하였다. 그 밖에 곳곳에 암석 해안도 형성되어 있고, 대천(大川)해수욕장 북쪽, 무창포(武昌浦) 해수욕장 남쪽 등지에는 파식대(波蝕臺)도 발달하였다.3. 역사1. 원시사회원시 사회는 가족이나 씨족이 사회 구성의 단위를 이루면서 석기(石器)와 같은 유치한 연모를 사용한 선사 시대(先史時代)의 사회를 말하는데, 한국사에서는 구석기(舊石器) 시대, 중석기(中石器) 시대, 신석기(新石器) 시대의 단계를 거쳐 진전되었다. 원시 사회에서는 정치 생활을 엿볼 수 없었고, 경제적으로 사유 재산의 개념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따라서 구성원 전원의 사회적 지위는 평등하였다. 한국의 구석기 시대는 약 50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연천 전곡리(全谷里), 상원 검은모루, 공주 석장리(石壯里), 제천 점말동굴, 청원 두루봉동굴, 웅기 굴포리(屈浦里) 등은 구석기 시대의 유적으로 밝혀지고 있다. 이 밖에도 한국의 여러 곳에서 구석기 시대의 유물, 유적이 계속 발굴되고 있다. 이로 보아 구석기 시대에 이미 한국 전역에 사람들이 널리 퍼져 살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구석기 시대에는 가족을 단위로 하여 옮겨 다니면서 강가나 바닷가에 움막을 짓고 거친 뗀석기[打製石器]를 이용하여 사냥을 하거나 물고기를 잡아먹고 살았다. 한국의 중석기 문화는 아직 확연하게 밝혀져 있지는 않으나, 석장리의 최상층 문화와 점말동굴의 위층 문화는 중석기적 특색을 보여 준다. 이 시대의 생활 단위는 여전히 가족이었으며, 화살촉, 작살 같은 석기가 만들어지고, 고기잡이, 조개잡이 외에 활을 이용하여 사냥하는 방법을 터득하였다.또한 이때에는 예술에 대한 초보적 감각을 발휘하여 울산 반구대(盤龜臺) 암각화에 나타난 사슴의 그림을 남겨 놓았대 국가로 성장하였다. 이들과 아울러 낙동강 하류에는 가야연맹(伽倻聯盟)이 독자적 발전을 보였으나, 고대 국가로 발전하지 못하고 6세기에 신라에 병합되었다.3국의 융성은 3국 간의 경쟁적 각축 속에서 이루어졌다. 고구려는 모용씨(慕容氏)와 백제의 침입으로 한때 시련을 겪었으나, 소수림왕(小獸林王) 때 불교를 수용하고 태학(太學)을 세우며 율령(律令)을 반포하여 국가 체제를 정비하고, 이어서 광개토왕(廣開土王), 장수왕(長壽王) 때에는 밖으로 비약적 발전을 보였다. 그리하여 5세기에 고구려의 판도는 북으로 쑹화강[松花江], 남으로 아산만과 죽령(竹嶺)에 이르는 선, 동으로 동해안, 서로 랴오허강까지 이르는 대제국이었다. 서울도 산골짜기의 국내성(國內城)에서 넓은 평야가 있는 평양성(平壤城)으로 옮겨 정치, 경제 제도를 완비하고 문화를 꽃피웠다.백제는 4세기에 벌써 중앙 집권적인 귀족 국가의 체제를 정비하고, 밖으로 마한을 완전히 복속시키고 서쪽으로 동진(東晉), 남쪽으로 왜(倭)와 통하면서 국제적 지위를 확고히 하였다. 그러나 5세기 말부터 국세가 약해져 성왕(聖王)이 서울을 사비(泗? 부여)로 옮기고 한때 중흥을 시도하였지만 실패하였다. 가장 늦게 일어난 신라는 5세기 초 지증왕(智證王) 때 우경(牛耕), 수리 사업을 통하여 경제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하여, 뒤이은 법흥왕(法興王) 때에는 율령을 반포하고 연호(年號)를 사용하며 불교를 공인하는 등 내정 개혁을 단행하여 중앙 집권적인 귀족 국가로서의 통치 체제를 갖추었다. 마침내 6세기 중엽 진흥왕(眞興王) 때에는 대외적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보여, 화랑도(花郞徒)를 중심으로 한 신라군은 한강 유역, 낙동강 유역을 장악하고, 더 나아가 동북으로 함흥평야에까지 진출하였다.3국의 발전은 중국의 왕조 교체와 깊은 관계를 가지면서 복잡하게 전개되었는데, 마침내 신라는 당(唐)과 연합하여 백제와 고구려를 무너뜨리고 다시 고구려, 백제 유민과 힘을 합쳐 당의 세력을 이 땅에서 내쫓고 자주적인 통일을 성취하였다. 고대 사회의 발전다.
    인문/어학| 2010.05.06| 11페이지| 2,500원| 조회(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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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급 한국어 문법
    고[형태1] 고 : 받침 없는 명사에 사용[형태2] 이고 : 받침 있는 명사에 사용=> 둘 이상의 사물을 같은 자격으로 똑같이 선택함을 나타내는 조사-고 싶다[형태] -고 싶다=> 말하는 사람이 어떤 행위를 하기 원함을 나타내는 표현어미‘-고’와 형용사 ‘싶다’가 함께 쓰인 표현-고 있다[형태] -고 있다=> 어떤 동작이 진행되고 있음을 나타내는 표현어미 ‘-고’와 동사 ‘있다’가 함께 쓰인 표현과[형태1] 과 : 받침있는 명사 뒤에 사용[형태2] 와 : 받침 없는 명사 뒤에 사용=> 여러 사물이나 사람을 열거하거나 행위를 함께하는 대상-기 때문[형태] -기 때문=> 어떤 일의 이유나 원임임을 나타내는 표현어미 ‘-기’와 의존명사 ‘때문’이 함께 쓰인 표현-기 위해(서)[형태] -기 위해(서)=> 목적이나 의도를 나타내는 표현.어미 ‘-기’와 동사 ‘위하다’의 활용형 ‘위해(서)’가 함께 쓰인 표현-기 전에[형태] -기 전에=> 어떤 행위나 상태가 앞에 오는 사실보다 시간상 앞섬을 나타내는 표현어미 ‘-기’와 명사 ‘전’, 조사 ‘에’가 함께 쓰인 표현-네요[형태] -네요=> 말하는 사람이 새삼스럽게 알게 된 사실에 대해 감탄함을 나타내는 표현어미 ‘-네’에 높임의 ‘요’가 붙은 표현는[형태1] 는 : 받침 없는 명사에 사용[형태2] 은 : 받침 있는 명사에 사용=> 그 성분이 문장에서 주제임을 나타내거나 대조 및 강조의 뜻을 표현[형태1] 는 : 동사 어간, ‘있다’, ‘없다’에 사용[형태2] 은 : ‘ㄹ’을 제외한 받침 있는 형용사 어간에 사용[형태3] -ㄴ : 받침 없는 형용사 어간이나 ‘ㄹ’받침으로 끝나는 형용사 어간,‘이다’, ‘아니다’에 사용=> 동사 ‘있다’, ‘없다’, ‘계시다’ 등의 어간에 붙어 명사를 수식하게 하고 그 사건이나 행위가 현재 일어남을 나타내는 의미-는 것 같다[형태] -는 것 같다=> 동사 어간이나 ‘있다’, ‘없다’에 붙어 추측의 뜻을 나타내는 표현어미 ‘는’과 의존명사 ‘것’, 형용사 ‘같다’가 함께 쓰인 표현-는 군요[형태받침 없는 형용사 어간이나 ‘ㄹ’ 받침으로 끝나는 형용사 어간,‘이다’, ‘아니다’에 사용=> 친구나 아랫사람에게 쓰여 어떤 사실에 대해 감탄하며 문장을 끝맺는 어미-는데요[형태1] -는대요 : 동사 어간이나 ‘있다’, ‘없다’, ‘-았-’, ‘-겠-’ 뒤에 사용[형태2] -은데요 : ‘ㄹ’을 제외한 받침 있는 형용사 어간에 사용[형태3] -ㄴ데요 : 받침 없는 형용사 어간이나 ‘ㄹ’ 받침으로 끝나는 형용사 어간,‘이다’, ‘아니다’에 사용=> 어떤 사실에 대해 감탄하며 문장을 끝맺는 표현어미 ‘-는데’ㅇ[ 높임의 ‘요’가 붙은 표현-는 편이다[형태1] -는 편이다 : 동사 어간이나 ‘있다’, ‘없다’ 뒤에 사용[형태2] -은 편이다 : ‘ㄹ’을 제외한 받침 있는 형용사 어간에 사용[형태3] -ㄴ 편이다 : 받침 없는 형용사 어간이나 ‘ㄹ’ 받침으로 끝나는 형용사어간에 사용=> 대체로 어떤 부류에 속함을 나타내는 표현어미 ‘-는’과 의존명사 ‘편’, ‘이다’가 함께 쓰인 표현-다가[형태] -다가=> 어떤 행위나 상태가 중단되고 다른 행위나 상태로 바뀜을 나타내는 어미-더군요[형태] -더군요=> 과거에 직접 경험하여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을 지금 상대방에게 옮겨 전달하며,그 사실에 대해 감탄함을 나타내는 표현‘-더군’에 높음의 ‘요’가 붙은 표현도[형태] 도=> 여러 가지 대상이나 사태를 나열하거나 어떤 대상이나 사태에 더함을 나타내는 조사밖에[형태] 밖에=> 다른 가능성이나 선택의 여지가 없음을 나타내는 조사보다[형태] 보다=> 비교되는 대상임을 나타내는 조사-습니까[형태1] -습니까 : ‘ㄹ’을 제외한 받침 있는 동사나 형용사 어간, ‘-았-’, ‘-겠-’뒤에 사용[형태2] -ㅂ니까 : 받침 없는 동사나 형용사 어간, ‘ㄹ’ 받침으로 끝나는 동사나형용사 어간, ‘이다’, ‘아니다’에 사용=> 정중하게 물어보면서 문장을 끝맺는 어미-습니다[형태1] -습니다 : ‘ㄹ’을 제외한 받침 있는 동사나 형용사 어간, ‘-았-’, ‘-겠-’뒤에 사용[형태2] -ㅂ니다 : ’로 사용=> 가정이나 양보의 뜻을 나타내는 어미-아서[형태1] -아서 : 동사 어간의 끝 음절 모음이 ‘ㅏ, ㅗ’인 경우 사용[형태2] -어서 : 동사나 형용사 어간의 끝 음절 모음이 ‘ㅏ, ㅗ’가 아닌 경우,‘이다’, ‘아니다’에 사용[형태3] -여서 : 동사 ‘하다’에 사용하는데, 주로 줄어든 형태 ‘해’로 사용=> 두 행위나 상태, 사실을 연결함을 나타내는 어미-아야겠-[형태1] -아야겠 : 동사 어간의 끝 음절 모음이 ‘ㅏ, ㅗ’인 경우 사용[형태2] -어야겠 : 동사나 형용사 어간의 끝 음절 모음이 ‘ㅏ, ㅗ’가 아닌 경우나‘이다’, ‘아니다’에 사용[형태3] -여야겠 : 동사 ‘하다’에 사용하는데, 주로 줄어든 형태 ‘해’로 사용=> 의지나 추측을 나타내는 표현어미 ‘-아야’와 동사 ‘하다’의 활용형 ‘하겠-’이 함께 쓰인 ‘-아야 하겠-’의줄어든 표현-아요[형태1] -아요 : 동사나 형용사 어간의 끝 음절 모음이 ‘ㅏ, ㅗ’인 경우 사용[형태2] -어요 : 동사나 형용사 어간의 끝 음절 모음이 ‘ㅏ, ㅗ’가 아닌 경우,‘이다’, ‘아니다’, ‘-았-’에 사용[형태3] -여요 : 동사 ‘하다’에 사용하는데, 주로 줄어든 형태 ‘해’로 사용=> 조건이나 가정, 양보의 의미를 나타내는 의미-아지다[형태1] -아지다 : 동사나 형용사 어간의 끝 음절 모음이 ‘ㅏ, ㅗ’인 경우 사용[형태2] -어지다 : 동사나 형용사 어간의 끝 음절 모음이 ‘ㅏ, ㅗ’가 아닌 경우사용[형태3] -여지다 : ‘하다’에 사용하는데, 주로 줄어든 형태 ‘해’로 사용=> 어떠한 행위를 하게 되거나 어떠한 상태로 됨을 나타내는 표현,어미 ‘-아’와 동사 ‘지다’가 함께 쓰인 표현-았-[형태1] -았- : 동사나 형용사 어간의 끝 음절 모음이 ‘ㅏ, ㅗ’인 경우 사용[형태2] -었- : 동사나 형용사 어간의 끝 음절 모음이 ‘ㅏ, ㅗ’가 아닌 경우,‘이다’, ‘아니다’, ‘-았-’에 사용[형태3] -였- : 동사 ‘하다’에 사용하는데, 주로 줄어든 형태 ‘해’로 사용=> 문장이 나] -려고 : 받침 없는 동사 어간이나 ‘ㄹ’ 받침으로 끝나는 동사 어간에 사용=> 어떤 행위의 의도를 나타내거나 곧 일어날 움직임임을 나타내는 어미[형태1] -으려고 : ‘ㄹ’을 제외한 받침 있는 동사 어간이나 형용사 어간,‘-았-’ 뒤에 사용[형태2] -려고 : 받침 없는 동사 어간이나 형용사 어간, ‘ㄹ’ 받침으로 끝나는동사 어간이나 형용사 어간, ‘이다’, ‘아니다’에 사용=> 친구나 아랫사람에게 주어진 상황에 대하여 의심이나 반문을 나타내는 어미-으려고 하다[형태1] -으려고 하다 : ‘ㄹ’을 제외한 받침 있는 동사 어간 뒤에 사용[형태2] -려고 하다 : 받침 없는 동사 어간이나 ‘ㄹ’ 받침으로 끝나는 동사 어간에사용=> 어떤 행위의 의도를 나타내거나 곧 일어날 움직임임을 나타내는 표현어미 ‘-으려고’와 동사 ‘하다’가 함께 쓰인 표현-으려면[형태1] -으려고 : ‘ㄹ’을 제외한 받침 있는 동사나 형용사 어간, 뒤에 사용[형태2] -려고 : 받침 없는 동사 어간이나 형용사 어간, ‘ㄹ’ 받침으로 끝나는동사나 형용사 어간, ‘이다’뒤에 사용=> 어떤 상황을 가정함을 나타내는 어미으로[형태1] 으로 : ‘ㄹ’을 제외한 받침 있는 명사에 사용[형태2] 로 : 받침 없는 명사나 ‘ㄹ’ 받침으로 끝나는 명사에 사용=> 이동의 방향, 도구나 수단, 재료, 변화의 방향, 자격이나 신분, 이유나 원인임을나타내는 조사-으면[형태1] -으면 : ‘ㄹ’을 제외한 받침 있는 동사나 형용사 어간, ‘-았-’, ‘-겠-’뒤에 사용[형태2] -면 : 받침 없는 동사나 형용사 어간, ‘ㄹ’ 받침으로 끝나는 동사나 형용사 어간, ‘이다’, ‘아니다’에 사용=> 조건이나 가정의 뜻을 나타내는 어미-으면 되다[형태1] -으면 되다 : ‘ㄹ’을 제외한 받침 있는 동사나 형용사 어간 뒤에 사용[형태2] -면 되다 : 받침 없는 동사나 형용사 어간, ‘ㄹ’ 받침으로 끝나는 동사나형용사 어간, ‘이다’, ‘아니다’에 사용=> 어떤 결과나 기준을 만족시킬 만한 조건이나 정도를 나타내는 표현어으면서 : ‘ㄹ’을 제외한 받침 있는 동사나 형용사 어간 뒤에 사용[형태2] -면서 : 받침 없는 동사나 형용사 어간, ‘ㄹ’ 받침으로 끝나는 동사나형용사 어간, ‘이다’, ‘아니다’에 사용=> 둘 이상의 사실을 겸하고 있음을 나타내거나 둘 이상의 사실이 서로 상반되는관계에 있음을 나타내는 어미-으면 안 되다[형태1] -으면 안 되다 : ‘ㄹ’을 제외한 받침 있는 동사나 형용사 어간 뒤에 사용[형태2] -면 안 되다 : 받침 없는 동사나 형용사 어간, ‘ㄹ’ 받침으로 끝나는 동사,형용사 어간, ‘이다’, ‘아니다’에 사용=> 금지의 듯을 나타내는 표현어미 ‘-으면’과 부정 부사 ‘안’, 동사 ‘되다’가 함께 쓰인 표현-으세요[형태1] -으세요 : ‘ㄹ’을 제외한 받침 있는 동사나 형용사 어간 뒤에 사용[형태2] -세요 : 받침 없는 동사나 형용사 어간, ‘ㄹ’ 받침으로 끝나는 동사나형용사 어간, ‘이다’, ‘아니다’에 사용=> 문장의 주어를 높이면서 엄떤 사실을 서술하거나 물음, 명령, 요청을 나타내며문장을 끝맺는 어미어미 ‘-으시-’와 ‘-아요’가 함께 쓰인 ‘으시어요’의 준말-으시-[형태1] -으시 : ‘ㄹ’을 제외한 받침 있는 동사나 형용사 어간 뒤에 사용[형태2] -시- : 받침 없는 동사나 형용사 어간, ‘ㄹ’ 받침으로 끝나는 동사나형용사 어간, ‘이다’, ‘아니다’에 사용=> 문장의 주어를 존대하는 의미를 나타내는 어미-으십시오[형태1] -으십시오 : ‘ㄹ’을 제외한 받침 있는 동사 어간 뒤에 사용[형태2] -십시오 : 받침 없는 동사 어간이나, ‘ㄹ’ 받침으로 끝나는 동사나 어간에사용=> 윗사람이나 높임의 대상인 상대방에게 쓰여 어떤 행위를 할 것을 정중하게명령하거나 권유함을 나타내는 표현은[형태1] -은 : 받침 있는 명사에 사용[형태2] -는 : 받침 없는 명사에 사용=> 그 성분이 문장에서 주제임을 나타내거나 대조 및 강조의 뜻을 나타내는 조사[형태1] -은 : ‘ㄹ’을 제외한 받침 있는 동사 어간에 사용[형태2] -ㄴ : 받침 없는 동사 어 사용
    인문/어학| 2010.05.06| 11페이지| 3,000원| 조회(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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