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수첩」은 정말 환상에 지나지 않는가- 서커스단 훈련부장 이씨를 중심으로환상. Fantasy. 사전에는 이 단어의 정의가 이렇게 내려져 있다. 환상 : 현실적인 기초나 가능성이 없는 헛된 생각이나 공상.천재 소설가 김승옥의 단편 「환상수첩(幻想手帖)」은 폐병을 앓고 있는 임수영이라는 화자가 친구인 정우의 수기를 이야기해주는(작품에서 임수영은 “발표”라는 표현을 쓴다) 형식으로 진행된다. 흔히 들어본 “내 친구 이야긴데…”, 또는 “저번에 내 친구가….”로 시작되는 패턴이다. 이렇게 시작된 하나의 스토리는 등장인물 과반수가 죽음에 이르는 대단히 비극적인 결말로 마무리된다. 그렇다면 왜 김승옥은 죽음이라는 내용과 환상이라는 제목을 결합시켰을까.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먼저 등장인물들을 살펴보자. 실질적인 주인공 정우와 그의 수기를 읽어주는 동시에 작품 내에도 등장하는 임수영, 오영빈, 윤수, 형기, 선애, 진영, 서커스 훈련부장 이씨, 그 외에도 미아, 수영 모(母), 야경반장, 향자 등 각양각색의 등장인물들이 나와 이런 저런 사건들을 통해 스토리 진행을 이끌어간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그다지 비중이 크지 않은 수영 모친과 야경반장을 제쳐놓으면 나머지 등장인물들은 전부 20~30대 젊은이들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이 범주에 속하지 않는 인물이 한명 더 있다. 이제부터 그에 대한 추측 및 분석을 해보자. 이 인물을 탐구하는 것이 위에서 언급한 궁금증을 푸는 데 큰 도움이 되리라고 본다.그의 이야기는 정우의 여행으로부터 시작된다. 정우가 방황하는 모습을 보다 못한 정우의 부모님은 어느 날 정우를 불러 돈뭉치를 건네며 어디 여행이라도 다녀올 것을 종용한다. 그리하여 마침 집으로 찾아온 윤수와 함께 떠난 남도 여행길에서 여수에 도착하여 여관에 짐을 푼다. 그리고 순전히 재미를 위하여 같은 여관에 투숙하고 있는 서커스단을 따라 거문도로 떠날 계획을 세운 후 화장실에 다녀오던 정우는 마치 운명처럼 어느 한 인물을 만나게 된다. “마루 끝에 얼빠진 표정으로 앉아”있던 서커스단 훈련부장 이씨였다. 정우는 묘한 감정을 느끼며 사내를 지나친다.방에 들어온 정우는 윤수가 사들고 온 소주를 마시려다 여느 청년들과 다른 행동을 보인다. 바로 방금 전에 보았던 그 사내와 함께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욕구에서 나온 행동이었다.“면도 자국이 파아란 볼”과 “체구가 작은” 특징을 지닌 이 “사십이 넘어 보이는” 이 사내는 ‘고작’ 사십대임에도 불구하고 작품 전체적으로 봤을 때 가장 나이가 들어 보이며 안정감을 주는 인물이다. 그러나 사내-이씨는 결국 자살로 추정되는 죽음을 맞이하고 만다. 도대체 이 사내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정우와 윤수 두 청년과 함께 술을 마시던 이씨는 처음엔 말을 아끼다 몇 잔의 술이 들어가고 난 후 점점 자신의 이야기, 곧 정우가 듣고 싶었던 이야기를 해준다. 어찌 보면 신세한탄일 수도 있는 이야기를 듣고 정우는 만족하는 듯하다. 사실 처음 보는 사람과 밤이 이슥하도록 술을 먹는다는 건 쌍방이 이 술자리에 만족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아무튼 이씨의 이야기로 돌아가면 삼십여 년 동안의 공연 끝에 운영난으로 인해 해체하게 되는 서커스단에 미련이 남아 마음 아파하는데, 거기에다 해체 이후의 삶도 막막하다는 이야기였다.몇 년 전 우연히 기회가 닿아 동춘서커스를 보러 간 적이 있었다. 서커스에서는 곡예사들이 관객들의 애간장을 태우며 아슬아슬한 묘기를 선보였다. 활짝 웃고 있는 그들의 얼굴엔 얼핏 관객들을 위해 공연할 수 있어 정말로 행복하다는 표정이 담겨 있는 듯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생각해보니 그것은 거짓된 미소였을지도 모르겠다. 남들처럼 살 수 없는 서커스단원들의 삶을 돌이켜보면 항상 그들의 삶에는 갈망이 있었을 것이다. 보통 사람들처럼 퇴근하고 집에서 아이의 재롱을 보며 아내가 해주는 따뜻한 저녁을 먹고 함께 잠드는 삶이 아니기 때문이다. 공연이 끝이 나야 몇 주간 오지 못한 집에 돌아와 잠깐뿐인 휴식을 취하고 다시 일터로 나가는, 특히 이 작품에선 그야말로 돌아갈 안락한 집조차 없는 삶. 서커스단원들이 가족이고 친구의 전부인 삶. 누구보다도 외롭고 힘들지만 공연이 시작되면 억지로 웃는 연기를 선보여야 하는 삶. 이런 삶을 이미 삼십년이 넘게 살아온 이씨는 말 그대로 무언가를 초월한 사람이 아닐까 한다. 한숨과 함께 농담처럼 “과부라도 하나 얻어서 살림이나 차리고 싶지만...”라며 신세를 한탄하는 이씨의 말은 단순하게 떠오른 생각이 아니라 몇 달, 몇 년에 걸친 생각일 터였다. 반평생 서커스 하나만을 보고 살아온 이씨에게 세상은 선택권을 많이 주지 않았다.세 명이서 소주 세 병은 그리 많은 양이 아니었지만, 오랜만에 넋두리를 풀어낸 이씨는 결국 밖으로 나가 토한다. 정이 많은 사람이었던지 한 무리의 여자들이 와서 챙겨준다. 나중에 미아와의 일에서도 알 수 있는 점이다. 이씨는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며 정이 많아 사람들을 보살필 줄 아는 사람이다. 무언가 어디서 많이 보던 인물과 닮았다. 전형적인 착한 사람, 요즈음 인기절정을 달리고 있는 TV프로그램 《무한도전》 속의 코너인 의 캐릭터 정 과장이다. 코미디언 정준하가 연기하고 있는 정 과장은 일을 특출나게 잘하지는 않는다. 아니, 오히려 그 반대로 일을 해서 무언가를 망치는 경우가 더 많다. 하지만 그는 무조건 열심히 일한다. 그러면서 주변 사람들을 챙기는데 특히 신입 인턴들을 격려하고 위로하며 항상 사람 좋은 웃음을 짓는다. 갑자기 정 과장 이야기가 왜 나오냐면 정 과장이야말로 이 시대 사람들이 모두 이해하고 공감하는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가장 인기가 많다. 아랫사람들도 불편하지 않게 대하고 윗사람들도 측은하게 생각하지만 성실성은 인정해주는 그런 인물이 바로 정 과장이다. 서커스단 훈련부장 이씨는 바로 이 인물과 맞닿아있다.
Toward Barcelona예상 소요 경비 및 준비물 비행기 티켓 : T-10 : about 10 EURO 숙박비 : 비상금 , 여권 , 카메라 , 지갑 , 필기도구 , 수면용품 , 옷 , 속옷 , 세면도구 , 수건 , 슬리퍼 , 수영복 , 학생증 , 기념품 구입비 , 유흥비 , 벌레 퇴치제 , 마데카솔 , 멀티탭 , 등 . 총 입장료 : 37.5 EURO사그리다 파밀리아 성당 캄프 누 바르셀로나타 해변 몬주익 언덕 올림픽 경기장 람블라스 거리 고딕 성당 피카소 미술관 구엘 공원 숙 소 까탈루냐 음악당입장료 : 성인 14 EURO, 학생 11 EURO 사그리다 파밀리아 성당 숙 소캄프 누 견학 : 학생 16.5 EURO 사그리다 파밀리아 성당 캄프 누 바르셀로나타 해변 몬주익 언덕 올림픽 경기장 람블라스 거리 고딕 성당 피카소 미술관 구엘 공원 숙 소 까탈루냐 음악당짐 보관비 4 EURO 사그리다 파밀리아 성당 캄프 누 바르셀로나타 해변 몬주익 언덕 올림픽 경기장 람블라스 거리 고딕 성당 피카소 미술관 구엘 공원 숙 소 까탈루냐 음악당Of coursly Free! ※ 유의 : 분수 개장 시간 목 ~ 일 21 시 ~23 시 반 사그리다 파밀리아 성당 캄프 누 바르셀로나타 해변 몬주익 언덕 올림픽 경기장 람블라스 거리 고딕 성당 피카소 미술관 구엘 공원 숙 소 까탈루냐 음악당피카소 박물관 입장료 학생 6 EURO 사그리다 파밀리아 성당 캄프 누 바르셀로나타 해변 몬주익 언덕 올림픽 경기장 람블라스 거리 고딕 성당 피카소 미술관 구엘 공원 숙 소 까탈루냐 음악당All Free!!! 사그리다 파밀리아 성당 캄프 누 바르셀로나타 해변 몬주익 언덕 올림픽 경기장 람블라스 거리 고딕 성당 피카소 미술관 구엘 공원 숙 소 까탈루냐 음악당공연 관람 Minimum 20 EURO 사그리다 파밀리아 성당 캄프 누 바르셀로나타 해변 몬주익 언덕 올림픽 경기장 람블라스 거리 고딕 성당 피카소 미술관 구엘 공원 숙 소 까탈루냐 음악당사그리다 파밀리아 성당 캄프 누 바르셀로나타 해변 몬주익 언덕 올림픽 경기장 람블라스 거리 고딕 성당 피카소 미술관 구엘 공원 숙 소 까탈루냐 음악당고딕 성당 람블라스 거리 피카소 미술관 몬주익 언덕 올림픽 경기장 마법분수 사그리다 파밀리아 성당 구엘 공원 카탈루냐 음악당 타파스 바 몬셰라트 수도원 와이너리 캄프 누 바르셀로나타 해변 9/2 9/3 9/4 9/5 1 시간 2 시간 ( 식사 ) 1 시간 2 시간 이상 2 시간 2 시간 30 분 1 시간 ( 식사 ) 패키지 패키지 2 시간 4 시간 ? ? 6 유로 Free 11 유로 Free Free ? ? ? 16.5 유로 4 유로 총 40 유로 + 패키지 식사 : 8 번 각각 10 유로 예상 → 80 유로 술값 : 대략 30 유로 기념품 : 대략 30 유로 숙박비 : 첫날 숙박비 제외 75 유로 합계 : 305 유로 대략 50 유로맛집 Dim sum wok 에스파냐역 – 몬주익 해산물 맛집 살라망카 – 바르셀로나타 해산물 맛집 바 타파스 레스토랑 – 그라시아 거리 빠에야 맛집사그리다 파밀리아 성당 캄프 누 바르셀로나타 해변 몬주익 언덕 올림픽 경기장 람블라스 거리 고딕 성당 피카소 미술관 구엘 공원 숙 소 까탈루냐 음악당{nameOfApplication=Show}
MB 정권의 나팔수가 되길 거부한 언론 노동자들의 파업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MBC 노동자들은 한 달 가까이 파업을 벌여 보도본부장을 끌어내렸다.간판 앵커들이 마이크를 내려놓고, 부ㆍ국장들까지 직책을 버리고 파업 대열에 합류하는 등 열기를 더해 가고 있다. 지방MBC 노동자들도 파업 동참 채비를 시작했다.KBSㆍYTN 노조도 3월 6일과 9일 파업에 돌입할 예정이다. KBS 새노조 김현석 위원장은 “이번 파업은 열화와 같은 조합원들의 목소리에 노조가 끌려간 것”이라며 최근 노조 가입 문의도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이로써 사상 초유의 방송 3사 공동 파업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이 노조들은 별도의 인터넷 방송을 위한 총선 공동 기획단을 구성하며 ‘총선 보도를 명분으로 쉽게 복귀하지 않겠다’는 뜻도 밝혔다., , 노동자들도 파업과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레임덕이라는 “유리한 조건”에서 언론 노동자들의 반격이 시작된 것이다.이 투쟁은 지금 1퍼센트 정권에 맞선 저항의 초점으로 부상하고 있다.그래서 야당들은 물론이고, 새누리당의 정두언ㆍ남경필조차 “낙하산 사장이 문제”라며 MBC 파업 노동자들을 편들었다.MBC와 의 지분(각각 30과 1백 퍼센트)을 소유한 박근혜는 언론 파업 얘기만 나오면 “분위기 안 좋아진다”고 고개를 돌리고 있다.정부와 지배자들은 여기서 밀리면 언론 통제가 어려워지고 더 넓은 층의 저항을 자극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할 것이다.그래서 낙하산 사장들은 쉽게 물러나지 않고 반격을 시작했다. MBC 사장 김재철은 제작 거부를 주도한 박성호 기자회 회장을 해고했고, 추가 징계도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사측은 신문 광고를 내 “불법” 운운하며 파업을 비난했고, 대체인력 투입과 비상체제 운영을 선언했다.그러나 노조는 박성호 회장 해고에 즉시 반발해 “당신들의 칼부림은 우리를 더 강하게 할 뿐”이라며 파업 미참가자들에게 “이제 결단해야 할 때”라고 촉구했다. 아직 파업에 동참하지 않은 드라마국에서도 PD 51명 중 50명이 성명을 내 파업 지지를 선언했다.정말이지, 이제 중대한 결단을 해야 한다. 파업 효과를 극대화해 제대로 “종결” 투쟁을 벌여야 한다.“우리는 김재철의 액받이가 아니다”라고 선언한 드라마국 PD들도 파업에 동참할 필요가 있다. 1백50억 원 이상의 광고 수익이 예상될 만큼 인기를 끌고 있는 이 제작 차질을 빚는다면, 파업 효과는 매우 커질 것이다. 드라마의 인기 만큼 MBC 파업에 대한 국민적 관심도 더한층 뜨거워질 것이다.MBCㆍKBSㆍYTN 방송 3사 공동 파업을 꼭 현실화하고, 더 넓은 연대 투쟁을 건설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사실 언론노조 지도부는 그동안 MBC 파업에 열의있게 뛰어들지 않았는데, 더는 그래서는 안 된다. 다행히 언론노조는 최근 대의원대회를 열고 3월 집중 투쟁을 결의했다. 또 언론노조, 민주노총을 비롯해 진보정당과 시민사회단체 들이 ‘MB 방송장악 심판, MB 낙하산 퇴출, 공정보도 쟁취를 위한 공동행동(준)’을 구성하고 연대 건설을 논의하기 시작한 것도 반가운 일이다.진보진영은 이 파업을 집중 엄호하며 우파 결집과 위기 탈출을 시도하는 정부를 압박해야 한다. 방송사 파업을 중심으로 최근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투쟁의 기운들을 모아낸다면, 그 힘은 배가 될 것이다.1)MBC는 2010년 5월경에 긴 파업을 했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약 2개월에 가까운 초유의 파업이었고 무한도전을 2개월간 끊어야 하는 고통도 느끼었습니다. 하지만 긴 파업에도 이렇다할 성과도 얻지 못하고 끝이 났습니다.MBC뉴스는 2009년 신경민 앵커를 끝으로 특유의 날카로운 정권 비판의 목소리를 SBS와 KBS라는 두 정권찬양 방송과 궤를 같이 했습니다. 그렇게 KBS, SBS와 동조화 하더니 최근에는 김비서라는 KBS와 MB의 시녀방송국인 SBS보다 더 정권찬양적인 뉴스만 선보이더군요대표적인게 한미FTA반대 시위가 있었지만 거론도 안한 점과 SBS와 KBS에서 방송한 김문수 경기도지사의 어처구니 없는 행동을 보도하지 않았고 이 일이 크게 이슈가 되자 뒤 늦게 김문수 경기도지사의 소방과난 전보 철회를 기사화 했습니다.이렇게 보도 해야 할 중요한 사안을 정권 혹은 여당에 불리한 기사는 쏙 빼는 모습, 이런 너더분하고 추잡스러운 뉴스를 더이상 사람들은 보지 않습니다. 이미 MBC 뉴스데스크의 시청률은 SBS8시 뉴스에도 밀렸고 공중파 3사중 가장 하위의 뉴스 시청률를 기록합니다. MBC기자가 거리에서 취재를 하면 조롱을 받고 꺼지라는 소리를 듣는 시대가 되었습니다2008년 광우병 사태때는 MBC와 한겨레 경향 오마이등 진보색채가 강한 언론들이 무등을 태우고 다닐 정도로 시민들의 애정을 받았지만 지금은 조중동과 동급으로 봅니다.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히면 그 고통은 더 심합니다. 이렇게 3위로 추락한 뉴스시청률을 보면서 MBC기자들은 많은 자괴감을 느꼈다고 하는데 그럼 그 동안 뭐했습니까? 만신창이가 되어서야 움직이고요.※ MBC 파업 현 상황그동안 방송문화진흥회는 정권을 비롯한 외부세력으로부터 MBC의 독립을 지켜주는 완충장치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현 정권이 들어서면서 방송문화진흥회(김우룡 이사장)는 어느새 MBC를 조종하는 총독부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엄기영 사장이 이에 실망감을 표출하며 사퇴하자, 방송문화진흥회는 이명박의 측근이었던 김재철을 새 사장으로 임명한다. MBC 구성원들은 출근 저지 투쟁 등으로 낙하산 인사에 반대 입장을 표명했으나 낙하산 본부장 임명을 철회하겠다며 자신의 진성정을 호소하는 김재철 사장의 기자회견에 파업을 중단했다. 그러나 김재철은 기자회견과 달리 친정권 성향의 인사들을 대거 요직에 포함시키고 계속 말과 행동이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에 격분한 MBC노조는 장기전이 될 수도 있는 파업에 들어가게 되었다.
신생 장르에 대한 잡박 논쟁한국어문학부 0711027 신희성은 동방 가전사 위에서 꺼지지 않는 이름으로 남은 불후의 명품이었다. 그러나 불후의 명품으로 남겨진 이 작품이 아이러니하게도 여러 가지 논쟁을 안고 시작했던 일이 있다. 일개 사물에 인격을 불어넣은 전기형식의 시도는 중국 산문학 사상 파격적인 일임은 틀림없다. 한유가 일개 사물을 사람인양 살려다가 이런저런 사설을 끌어낸 시도는 중국 산문학사상 미중유의 파격적인 기획이다.한편 한유와는 동시대 문인이었던 장적(張籍)는 한유가 지은 어떤 형태의 작문에 대한 부정적인 성조가 진즉에 따라 있었다. 한유에게 보낸 서한을 통하였으니, 그는 한유의 작문 행위가 군자의 수신 및 덕성 함양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노름과 다를 바 없고 실없는 이야기 따위에 불과하니 그만둘 것을 충언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전부터 한유와 정작 사이의 교계가 도타운 것인 것으로 보아 글의 취지는 비난이 아닌 충정어린 권고를 하려는데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일단은 장적인 한유의 그 어떤 문장에 대해서 실없는 담설 정도로 간주했고, 더 나아가 이단적인 창작 행위쯤으로 판단했던 것만큼은 명백하다.한편 한유 자신은 어디까지나 성인지도의 기본 궤적을 따르고자 힘쓰고 있다고 말하고, 선대의 전고까지 내세워 더욱 적극적으로 논박에 대응하는 모습을 보인다.사실은 이단을 끊고 유가의 문장에 빛을 내보라는 이 충고가 노,불 이단에 대해 누구보다 배타적이던 한유에게는 별 의미 없는 설득으로 보였을 터이다. 실제로 한유는 잡박하다는 비평에 대해서도 ‘팽팽히 당기기만 하고 느슨히 풀지 않는 것은 문왕?무왕도 하지 않으셨다’와 같은 옛 선인들의 말을 예로 들며 반박했다. 그리하여 남에게 오해를 사는 일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자신은 어디까지나 성인지도의 기본 궤적을 따르고자 힘쓰는 일면, 노자나 석가와 같은 이단을 배척하는 의지가 굳건함을 재삼 못 박고 있다.그렇다면 이 두 사람이 주고받은 논란거리였던 그 ‘무실박잡지설’이란 구체적으로 한유의 어떠한 창작 근거를 놓고서 그리 일컬은 것인가. 양자의 서한 사이에는 구체적인 작품명이 언급되어있지 않지만 한창려집과 답장적서, 유종원이 쓴 여양회지서에 실린 글을 보면 그 글은 이라 추정된다. 우선 한유의 문집이 그 자신이 아니라 사위가 펴낸 것이고 목판 인쇄술이 발달함에 따라 여러 주가 들어갔기 때문에 어느 정도까지 주어진 정보를 신빙해야 할지는 잘 모르는 것이다. 하지만 당시 한유와 같이 산문학의 거장으로 이름 높았던 유종원이 에 ‘한생의 을 갖고 오셨을 때 저는 매우 그 글을 기이하게 여겼으나, 세상 사람들이 비난할까 걱정됩니다’라고 한 대목을 보면, 그에게도 은 모험적인 글로 보였음이 분명하다.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그 글이 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그 근거는 한유가 장적과 편지 교환한 시기와 모영전 제작의 시기를 서로 대조하는데 두었다. 한유가 장적과 편지를 교환한 것은 그의 나이 29세 때로 추정되는데 이 창작된 것은 한유의 나이가 48세 때이기 때문이다.이렇듯 은 뒷시대 새로운 장르적 기반을 구축한 도양 가전의 원조라는 막중한 지위를 차지하게 된 그 위상만큼이나, 일찍부터 이 작품을 둘러싼 그것 창작의 온당성 여부라든지, 지어진 연대에 대한 논란 등의 흡사 치루지 않으면 안 될 유명세와도 같이 따라붙어 있었다. 그러나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 작품이 당대에 처음 만들어지고 같은 시대 유종원에 의해 적극적인 좌단을 받았던 이래, 그 다음 송원명청 내지는 한국의 여한 문단에 이세동조의 엄청난 파급효과를 야기시켰다는 것이다.
술, 거북열전을 쓴 동기와 시기한국어문학부 0711027 신희성이규보는 고려 후기의 뛰어난 문인으로 한국문학사에 굴지의 큰 이름과 자취를 남긴 우뚝한 존재지만, 동시에 오늘날에는 가전의 작자로서도 유명해진 인물이기도 하다. 이규보가 무슨 이유로 사물과 동물 대상의 열전을 짓게 되었는가 하는 이른바 창작의 동기는, 이규보 가전의 주제란 말과도 그 맥이 통한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는 이규보의 가전 작품인 과 에 시선을 쏟고자 한다. 이규보 가전의 특징을 작가의 인간적ㆍ문학적 개성과의 대조를 통해 알아보고, 소재론적인 측면에서 이규보의 창작시기를 가늠해 볼 수 있는 문헌 자료를 살펴보고자한다. 더 나아가 그의 정치적 생애와 긴밀한 대조를 통해 창작의 시기에 관해 한 단계 더 접근해 보도록 한다.전 창작의 우선적인 동기는 무엇보다도 사물에 대한 애정과 의인화에 대한 비상한 관심에 있다고 본다. 곧 그는 누구보다도 사물에 대한 애착이 깊은 작자였다 함은 그가 남긴 상당수의 영물시가 충분히 입증시켜 주고 있다. 박성규는 이규보 영물시에 관해 논하는 자리에서 특히 빈도 높고 의미 있는 소재로 금, 주, 죽 세 가지를 꼽고, 이를 중심으로 이규보의 사유를 도출해 내려 했다. 이규보의 물에 대한 관조는 장르상의 시와 문을 가리지 아니한 채 훨씬 그 폭이 넓고 다양하다. 바로 이러한 내용들이 이규보 의인화의 단초가 되는 것이다.이규보가 가전을 창작한 동기로 작용하였을 또 다른 가능성의 한 가지는 새로운 장르에 대한 실험 정신에 둘 것이다. 고려시대에는 새로운 장르가 많이 생성되는 시기이기도 하였다. 그중 시조와 가사는 그 첫 개창자를 알 길이 없이 되어버렸지만, 가전과 경기체가는 그 초기 작자의 분명한 모습을 확인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대조적이다. 그리고 가전과 경기체가 두 개의 장르에 공통적으로 참여의 얼굴을 나타내 보인 사람이 다름 아닌 이규보였다. 즉, 그가 당대에 보여 주었던바 여러 다양한 문학 장르에 대한 실험정신 및 도전정신의 여실한 자취가 그 같은 예측을 충분히 가능하도록 만드는 것이다.이규보가 가전을 창작한 동기의 세 번째 개연성은 처세론에 대한 그의 비상한 관심에 둘 것이다. 결국 관을 중심한 출세 및 처세에 대한 생각은 전 생애에 일관된 확신의 것이었다기보다는, 오히려 끊임없는 갈등거리일 수밖에 없었다고 보겠다. 그렇다고 한다면 이규보가 가전 우화에 주목하고 지은 동기도 바로 출입 진퇴 등의 처세론적 고민 같은 데에서 모색이 가능하리라 사유된다.마지막으로, 이규보의 이 임춘의 술 의인화인 에 대한 반론을 편 것이라는 기존의 견해도 생각해 볼만 하지만 이규보는 동시대 문인인 임춘에 대해 특별히 신경 쓰고 의식한 자취가 잘 나타나 보이지 않는다. 다만 임춘이 일찍이 가전이라는 새로운 문체, 참신한 용기안에다 술을 인격화한 시도에 일정한 자극을 얻어 창작에 임했을 것이라는 예측이 충분히 임춘이 이규보의 견제대상이었을 것이라는 가능성이 있다.다음은 이규보의 과 두 작품의 창작 시기에 대하여 알아본다. 지금 이규보의 두 가전이 창작된 시기를 가늠하고자 하는 마당에서 반드시 이규보의 두 작품과 『태평어람』의 관계를 거듭하여 천명하고 분석할 필요 앞에 서게 된다. 그 이유는 이규보의 두 작품의 경우 『태평어람』 안에서 대규모의 취용이 이루어졌으므로 두 가전의 창작 시기를 알아내려면 두 작품과 『태평어람』의 관계를 밝히고 분석해야 하는 것이다.의 희귀한 부분 출전의 막강한 열쇠를 『태평어람』이 쥐고 있다 했을 때, 이규보가 본서를 보았을 가능성이 새삼 부각된다. 『태평어람』이 중국 황실로부터 고려에 수입된 해가 고려 숙종 6년(1101)이고, 이규보의 관로 진출(1199)은 그보다 약 100년이나 뒤의 일이니 선후 간에 무리가 없다. 아울러 의 제작은 이규보 현달 이후일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본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니라 이 책이 고려는 물론이고 이후 조선조에 들어서조차 거의 궁정 단위의 전용서 구실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에 있다. 따라서 그러한 특수한 여건 속에서, 그가 출사하여 궁내에 자유로 드나들던 때의 개연성이 높다. 이는 을 놓고 보아도 다를 것이 없다. 정보의 양과 편리성, 이용 가능성 등을 보았을 때 손꼽을 수 있는 문헌은 『사기』의 , 『장자』, 『사문유취』 등이나, 『태평어람』 안에서 가장 완벽에 가까운 정보의 수용을 보인다. 『태평어람』은 에서 필요한 정보의 90% 이상을 가지고 있어 그 절대적인 영향 관계를 부정하기 어렵다. 같은 송대의 유서라도 약 40% 정도를 가진 『사문유취』에 비할 바가 아니며, 고작 2~3가지 닮은 부분이 있는 『태평광기』는 말할 것도 없다. 따라서 『태평어람』이 고려의 조정에 수입된 시기로부터 약 100년 뒤, 곧 관운이 열리기 시작한 그의 32세(1199), 혹은 한림에 발탁되어 조정 내의 출입이 자유로워진 그의 40세(1207)이후, 왕실 전용의 서고 가운데서 이 『태평어람』을 열람 참조한 연후 짓기에 착수했을 개연성이 높다고 추정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