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우리 한국 사회에서 중국이라는 나라가 가지는 영향력은 매우 크다. 경제적으로는 우리의 최대 교역국으로 성장하고 있고, 6자 회담, 북한과의 관계, 장차 통일을 향한 관점에서 봤을 때도 그 위치와 영향력은 가히 이루 말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중국과 우리나라의 관계를 논함에 있어서 그 영향력은 최근의 일이 아니다. 오랜 역사동안 중국은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나라였고, 역사적으로 한때 조공을 바치며 섬기던 나라였으니 그 친밀함 정도만을 봤을 때는 중국의 역사가 우리에게 전혀 낯설지 않은 것이 정상일 것이다. 하지만 중국의 역사를 공부한 것이 내 머리 한 구석에 남아 있는지 어쩐지 도저히 찾을 수 없을 만큼 가물가물했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한국 근현대사 부분만큼은 자신 있었던 터라 한국사와 그간의 현지 체험을 합쳐 책을 읽는 동안에 하나의 연결고리로 연결하는 것이 어렵지만은 않았다. 역시 근대 아시아 국가들의 공통적인 아픔이라고 할까. 제국주의 국가들의 침입과 근대 문물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의 수많은 피와 눈물은 흡사 한국의 근대사를 보는 것과 같은 착각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제1차 중영전쟁(아편전쟁,1840-1842)으로 쓰디쓴 패배를 맛보기 전 중국은 아시아의 대표적인 국가이자 세계 최강국으로서의 역량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청 말에 이르면서 인구증가 등 내부적 변화와 정치체제의 부패, 밀매된 아편 등의 요인으로 사회전체가 피폐해져 갔으며 중국은 그 힘을 상실해 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서도 중국은 중화사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임칙서의 단호한 정책에도 불구하고 아편문제는 해결되지 못한 채 전쟁이 일어나게 되고, 남경조약으로 인한 개국은 오히려 외국 열강의 제국주의 침략의 발판을 제공하게 되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를 계기로 반식민, 반봉건 사회를 타파하려는 운동 곧 근대화의 시발점이 되기도 하였으니 이는 중국역사의 전환점이 되기도 했다. 마치 조선이 일본의 강화도 조약에 의해 강제로 개화의 물꼬를 튼 것처럼 말이다. 외부의 충격이 아편전쟁이었다면 연이어 중국은 태평천국이라는 내부의 도전에 직면한다. 태평천국운동의 영향으로 청조가 혼란스러워 할 즈음, 애로호 사건을 빌미로 영국과 프랑스는 제2차 중영전쟁(1856-1860)을 일으킨다. 전쟁 이후 청 정부는 국가적 치욕을 당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일시적인 안일을 위해서 외세와 결탁하여 국민의 반항을 진압하였다. 1864년 지도층의 내분과 서구열강의 간섭 등으로 14년에 걸친 태평천국운동은 실패로 끝났지만, 그것은 중국의 봉건 통치계급에 타격을 주었고, 이후의 개혁운동과 혁명운동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이와 같은 대내적, 대외적 도전 속에서 청은 자강과 부강을 표방하며 강력한 군사력과 각종 근대 산업의 육성을 통해 위기 상황을 극복하려고 했는데 그것이 양무운동이다. 하지만 대만사건(1874)으로 유구(오키나와), 청불전쟁(1884-1885)으로 베트남, 청일전쟁(1894-1895)으로 조선의 종주권을 각각 잃게 되면서 그때까지 놓지 않았던 양무운동의 희망을 실패로 인정하게 되었고, 근본적 개혁으로 나아가고자 노력했던 변법운동과 신정 및 입헌 운동도 모두 실패에 그치고 만다. 한편 강요된 개항 후 반외세운동으로 반기독교운동이 일어나고 의화단 사건으로 혁명론에 불이 지펴지게 된다. 유민들, 실업자등이 외세에 대한 강력한 반발에 의해 일어난 의화단의 세력은 점점 커져 나갔는데 그것은 곧 당시 중국의 농업기반이 크게 흔들리고 있음을 뜻한다고 해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나아가 이러한 투쟁을 청조는 권력을 유지하려는 이기심으로 결국 공식적으로 이용하여 앞세우게 되는데 이 또한 당시 국가 기반이 흔들리고 있었던 청조의 최후의 방법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결국 이 최후의 투쟁이 막강한 서구 열강에 의해 참패하면서 신축조약의 체결과 함께 열강의 분할통치라는 굴욕적인 경험을 하게 되는데, 이는 결과적으로 중국 내부의 반청 혁명운동을 활성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그 후 공화혁명(신해혁명)으로 중화민국이 탄생하며 전제군주제가 폐지되고 공화제가 도입, 동시에 서구 자본주의 경제로 돌입하였다. 그러나 삼민주의로 혁명을 이끈 손문이 아닌, 청조의 전권을 위임받아 총통이 된 원세개의 독재와 제제운동 등이 중국을 여전히 혼란스럽게 했다. 그것을 극복하고자 한 것이 바로 신문화 운동으로, 그 중 일어난 5·4운동은 민중이 역사의 전면에 나섰다고 해서 중국 현대사의 시발점이라고도 평가한다. 또, 5·4운동은 우리나라의 3·1운동에 영향을 받아 일어난 운동인 만큼, 우리나라와 중국 역사의 밀접함을 가늠케 하기도 한다. 원세개의 죽음 이후, 그의 직계 부대는 파벌로 나뉘어 중국을 지배하기에 이르는데, 잦은 군대 간 충돌과 군벌세력의 교체, 가혹한 경제수탈 등으로 장기적이고 안정된 정국을 유지하지 못했는데 이 시기를 군벌시대라 부른다. 중국역사상 최악의 시대라 불리는 이시기 동안 주객전도된 군인들의 행동으로 국민들 역시 최악의 상황을 경험하지만 한편으로는 해가 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는 말처럼 암흑의 시대기 때문에 새로운 빛의 출현(신문화운동, 계몽운동 등)이 더욱 더 밝을 수 있었던 것 같다.
황하문명.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세계 4대문명중 하나이다. 하지만 근대이후 중국의 각 지역에서 다양한 유형의 신석기 문화가 발견되면서 더 이상 황하문명이라고 부르기 보다는 ‘중국문명’ 또는 ‘황하.양자강문명’이라는 용어가 보다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렇다. 역사는 변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아니 나는 언제부터인가 국사책에 나오는 것들을 달달 암기한 채로 역사는 변하지 않는 사실 인냥 착각했던 것 같다. 이렇게 얼마든지 새로운 유적과 유물의 발견으로 끝없이 새로 쓰여질수 있는 것인데 말이다. 특히 비교적 그 사실을 명확히 알수 있는 근현대사보다는 사료가 적은 고대의 역사를 논할 때는 그 발견이 상당히 가치 있고 어쩌면 한 나라의 민족기원이 바뀔 수 있을 만큼 의미가 있다. 게다가 우리와 뗄레야 뗄수 없는 관계에 있는 중국의 고대역사를 배우는 것은 우리에게 더욱 가치가 있을 것이다.중국인들은 오래 전부터 문명 발달 이전의 단계를 문화 창조의 영웅을 중심으로 한 신화와 전설의 형태로 간직해 왔다. 구석기시대부터 인류의 생활이 시작된 중국은 그 흔적들이 각지에서 발견되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170만 년 전부터 인류는 인공적인 불과 타제석기를 사용했으며, 직립보행을 하면서 수렵과 채집, 어로 등으로 생활을 유지해갔고, 후기 구석기시대가 되면서 초보적인 농경의 흔적이 발견되기도 한다. 신석기로 옮겨가면서 본격적인 농경이 시작되고, 가축을 사용함으로써 생산력의 발달에 따른 잉여물에 의해 빈부의 격차, 남녀의 분업과 차별, 단혼가정의 독립 등의 현상이 발생하였다. 이러한 신석기문화를 바탕으로 중국에서는 고대국가가 건립되는데, 삼황오제의 뒤를 이어 우왕이 건립한 최초의 왕조라 알려져 있는 하왕조는 현재까지는 그 역사적 실체가 정확히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최근에 이리두 문화와 관련해 지속적인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하왕조의 문화를 보면서 우리 고조선이 떠올랐다. 고조선은 현재 우리의 국사책에 아무 의심의 여지도 없이 우리 민족의 기원으로 쓰여져있지만 실제로는 자료가(그것도 고조선 자체의 자료가 아니라 고조선을 멸망시킨 한나라의 자료)너무 빈약해서 확실히 알 수 없는 측면이 더 많다고 한다. 우리 민족의 기원인 고조선의 역사연구도 지속적이고 심도있게 이루어져 더 이상 그 어떤 나라의 왜곡도 없게끔 당당하게 국사책에 올려지길 바란다. 하왕조에 비해 갑골문의 고고학적 발굴과 조사를 통해 일찍이 모습을 드러낸 상왕조는 봉건제라는 연결고리로 누층적인 읍제국가를 발전시켰다. 상왕조은 원시적인 태양관과 선조숭배가 결합된 왕조제사를 행하며 정치와 종교가 일치된 신정국가의 성격을 띠었다. 그러나 후기로 갈수록 신정적인성격은 약화되고 전제적인 부자세속왕권을 지닌 상왕으로서의 성격이 강화되었다. 상은 은주혁명에 의해 멸망하게 되는데, 이후 등장한 서주는 봉건제를 착수하고 수도를 옮기는 등 새로운 통치원리를 확립했다. 천의 의지를 수행했다는 천명사상으로 무력정벌을 합리화시킨 주의 통치이념은 역대 중국 황제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주왕조는 상나라의 봉건제를 채용함과 동시에 주 왕실을 중심으로 종법제를 결합시켜 왕실과 제후와의 관계를 확고히 하였고, 정전제를 실시하여 소농민을 보호하는 이상적인 국가를 완성하였다. 요.순의 시대를 이어받은 理想의 治世라 일컬을 만한 주왕조였지만 제후들의 토지쟁탈이나 병합으로 인한 균열로 종법적 봉건제와 씨족질서가 와해되어 가면서 그 힘은 점점 약화되어갔고, 이 후 춘추전국시대라 불리는 난세가 도래하게 된다. 춘추전국시대에는 각국의 제후들이 독립적인 성향을 드러내며 상호경쟁과 대립의 시기였지만 한편으로 다양한 사상적 경향으로 등장한 제자백가들에 의해 동서양을 막론하고 가장 많은 사상의 꽃을 피웠다. 이 후 진시황의 통일로 인해 중국은 중앙집권적인 통치체제를 구축하면서 최초로 황제지배체제가 출현하게 된다. 진시황은 통일제국에 대한 지나친 집착으로 인해 폭군으로 평가되기도 하는 등 그의 업적에 대한 해석은 현재까지 각양각색이지만 최초로 중국을 통일하는 과업을 이루었다는 점에서 중국역사상 독보적인 존재로 평가받기도 한다. 이후 등장한 한은 유교이념을 기반으로 한 통치 이데올로기를 채택하면서 중앙집권체제를 완성하고 이민족에 대한 적극적인 대외정책을 추진, 실크로드의 개척을 계기로 전성기를 맞이한다. 이후 왕망의 한제국 찬탈이 있었지만 호족세력을 등에 업은 광무제가 다시 지배계층으로 성장한다. 그러나 후한중기 이후부터는 왕조 말기의 전형적인 폐해들이 잇달아 나타나면서 황건의 난으로 멸망하게 된다.
☞ 들어가며한 사람이 태어나 일련의 사회화 과정을 거치고 나면 그 사회에 대한 비판을 하기가 어렵다. 알게 모르게 사회 지배층의 이데올로기를 흡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너져가는 공산주의 국가 소련에서 태어나 지금은 한국인으로 귀화한 박노자, 그의 독특한 사회화 과정이 바로 ‘당신들의 대한민국’을 보다 객관적으로 저술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고 그의 날카로운 시선은 우리사회에 커다란 시사점을 주고 있다.☞ 본론- 무궁화꽃은 과연 피었을까?고등학교 때 읽었던 김진명의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는 나에게 있어 그때까지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근현대사에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그와 더불어 독재정권이라고만 막연히 알고 있었던 박정희 정권을 새로 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이런 인식이 비단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니였던 것 같다. 베스트셀러였던 이 한권의 책으로 인해 박정희는 ‘핵무기를 개발하려다 미국인에게 살해당한 진정한 민족주의자’ 라고 인식되었으며 그의 독재행태의 만행은 덮어지고 우리의 눈을 가리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나 역시 이런 인식이 완전히 바뀌기 전까지는 한참의 세월이 더 흘렀고 최근 이휘소박사에 관한 다큐를 보면서 더욱 확고해졌다. 박노자가 책의 첫 소절에 이 문제를 언급할 만큼 그에게는 한국사회의 단면적인 초상을 보여주는,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상한 일이었다. 16년 동안 대한민국을 좌지우지한 독재 정권으로 인해 우리 사회는 여전히 그가 만들어낸 유산 -전근대적인 ‘충’과 근대적 군국주의의 연결- 속에 갇혀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역사를 왜곡하는 것이 일본뿐인가?우리는 지금껏 일본의 역사왜곡을 항상 문제시하고 비판해왔다. 하지만 그가 언급하고 있듯이 우리는 결코 우리의 역사교육은 객관적인 잣대로 되돌아보지 못했던 것 같다. 우리는 역사책에서 유명한 정치인의 이름은 쉽게 발견할 수 있지만 묵묵히 나라를 위해 일하고 나라의 발전에 없어서는 안되는 노동자, 기술자의 이름은 찾기 힘들다. 나폴레옹이 ‘역사는 승자의 우화’라고 말했듯이 우리가 배우고 있는 역사도 권력을 소유하고 있는 자들의 우화라는 생각이 든다. 한정권이 끝나면 그 다음 권력을 잡는 사람들은 앞 정권의 비리를 캐내어 현 정권의 상대적 정당성을 강조하는 모습에서도 이러한 사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몇해 전 우리나라의 근현대사 왜곡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뉴라이트의 새 역사 교과서에 대해 한나라당 대변인이 ‘뉴라이트의 역사교과서는 한국 근현대사를 새롭게 인식해 나가는 과정으로 학문의 진일보로 평가할 수 있다.’라는 뉴스보도를 보고 상당히 놀란 적이 있다. 더불어 작년 초 김문수 경기도지사의 신년 연설 중 ‘일제 식민지와 남북전쟁 위기를 통해 대한민국이 한강의 기적을 이룩했다’ 는 말을 듣고 개탄을 금치 못했다. 그렇다면 진정 일제 강점기를 '근대화문명전환과정'으로 평가하는 것인가? 5.16군사쿠데타를 혁명이라 칭송하고, 광주항쟁을 지역주의감정에서 시작되었다고 폄하한 내용에 대해 동의하는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있다는 말인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일본이나 중국의 역사 왜곡 문제만 부각하고 그에 대해 분노하지 말고 그 이전에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를 우리 스스로 왜곡한 사실을 잊어버려서는 안된다. 우리는 우리 역사를 최고위 정치인들의 이데올로기에 동원되어 그들의 입맛에 맞게 쓰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객관적인 자료를 토대로 올바른 역사를 통해 올바른 사고를 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취업학원이 되어버린 대학자본주의에 의해 일그러져 버린 사회부문을 꼽으라면 그것은 그가 언급했던 대한민국의 대학이다. 현재 우리나라 대학은 상아탑이 허물어져 가고 있다. 기초 학문이 경시되고 오직 취직이 잘되는 전도유망한 학과를 중심으로 배움의 전당이 아니라, 취직 알선소로 전락해 버린 지 오래다. 대학이라는 상징적 의미가 허물어져 가는 것이 안타깝지만 청년 실업이 심각한 현실에서 학생들이 취업에 도움이 되는 실용 학문 쪽으로 쏠리는 현상을 비판할 수만은 없다. 그가 언급했던 우리사회의 학력과잉 현상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학문에 대한 목마름으로 배우기보다는 경쟁사회에서 다른 이와 차별되는 더 나은 학벌을 소유하기 위해서 우리 사회는 그토록 학력에 집착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얼마 전 이슈가 되었던 '김예슬 선언' 은 대한민국의 수많은 대학생에게 아니 현실에 안주하고 있는 모든 사회인들에게 시사 하는 바가 클 것이다. 물론 모든 이들이 그녀와 같은 결단을 내리지는 못할 것이다. 그녀를 ‘치기 어린 돈키호테’라고 비난하는 이도 있다. 하지만 그녀로 인해 찬반토론이 일어나고 사회적 문제로 반향이 일어났다고 하는 것은 분명 같은 위기를 겪고 있는 대학생에게 진지하고 가치 있는 고민거리를 안겨 주었을 것이다. 나는 그녀의 선택에 찬성의 목소리도 반대의 목소리도 내지 않을 것이다. 단지 격려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한국식 오리엔탈리즘책에서는 교수에서 불법 노동자가 된 몽골인 바트자갈에 대한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우리 사회의 유색인종에 대한 시선과 차별을 엿볼 수 있다.요즘 외국인 노동자들을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그들을 다른 세계의 사람들이라 치부하지 않고 그들을 받아들여야 한다. 미국의 인종주의 원조들보다 어쩌면 더 지독한 후진국에 대한 경시의 풍조와 인종주의적 사고방식이라는 박노자의 날카로운 비판을 새겨들어야하고 한국인들의 폭력 폭언 차별을 견디다 못한 외국인이 저지른 여러 끔찍한 사건들을 보며 반성하고 대책을 세워야한다. 외국인에게 동등한 노동권을 부여해야하고 그들을 우리보다 열등한 존재로 보는 잘못된 시선을 버려야하는 것이다. 그들의 문제가 하루빨리 해결되지 않는 한 선진한국의 모습은 환상일 뿐인 것이다.그리고 또 한가지 언급되었던 우리사회에 고려인과 조선족에 대한 멸시와 천대, 북한에 대한 우월의식도 한국식 오리엔탈리즘의 한 모습이다. 우리는 그들을 동포라고 보기보다는 단지 불쌍히 여겨 동냥해야 할 하층민으로 여기고 있다. 우리의 이런 인식은 언론의 영향도 있겠지만 단지 경제적 우위를 가지고 사람을 판단하는 잘못된 사고 때문이기도 하다. 조선족이나 고려인 동포, 북한동포들에 대한 우리나라의 경제적 우월이 분명하다면 우리는 단지 우월감을 만끽 할 것이 아니라 관용과 수용, 공존의 관점에서 그들을 바라보는 시각을 발전 시켜야 할 것이다.- 다른체제 같은기만민군합동조사단에 의해 천안함 사건의 원인이 북한 어뢰공격으로 최종발표가 난 현 시점에 여전히 각계각층에서 갑론을박이 지속되고 있다.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북풍몰이를 이용하려는 이명박 정권의 야욕인가? 아님 북한의 도발인가? 현 대한민국의 상황을 박노자는 뭐라고 했을까? 박노자가 ‘당신들의 대한민국’을 지필하기 위한 구상을 했을 당시의 대한민국이라면 혹시 모른다. 이 모든 것이 북한의 소행이라 우리는 단단히 뭉쳐야 되고 그로 인해 보수정당을 지지해야 하는 쪽으로 말 그대로 정부가 원하는 북풍몰이가 되었을지도.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조금은 달라졌다고 생각한다. 그가 언급했던, 정권에 대한 국민의 실망을 극단적인 민족주의에 호소하여 원천 봉쇄하려는 의도가 그 이면에 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제 알고 있다.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극우와 극좌의 집단의식 저변에는 아주 흡사하다는 점이 많다는 사실, 그래서 가끔 남한의 정부와 북한의 정부가 징검다리를 놓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제 깨닫고 있는 것이다. 9.11 테러가 발생하고 부시의 지지율이 올라갔지만 그와 더불어 빈라덴과 부시가 적이 아니라 동지가 아니냐 라는 세간의 시선이 있었던 것도 이와 같은 이유가 아닌가? 물론 나는 우파도 좌파도 아니다. 천안함 사건의 원인이 무엇이라고 정확히 판명할 뛰어난 지식도 갖추고 있지 않다. 하지만 이제는 10년전 보다는 훨씬 더 대한민국 사회가 의식적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군대 = 구타 ?책의 가장 큰 줄기인 박노자가 본 한국사회에 대한 ‘비판’들은 그 누군가가 그랬던가? 비판을 위한 비판인 것 같은 느낌을 배제할 수 없었다. 그의 비판은 지나친 비약과 전체화 경향이 없지 않다. 특히 내가 느낀 군대에 대한 비판은 그의 주변에 있는 일부의 경험이었고, 그의 개인적인 극단성에 치우쳐 나머지 일부분을 전체화시킨 측면이 짙다는 느낌을 받았다. 군대를 폭력의 왕국으로 보았으며 개개인의 인간성과 국민 전체의 정신을 망가뜨리는 주범이라고 보고 있는데, 물론 군대에 구타가 즐비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상하관계가 변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몇 살이든, 어디 출신이든, 계급이 높으면 그것으로 모든 생활들이 이루어지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하지만 이것이 군대에서만 존재하는 현실인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에 존재하고 있는 대부분의 사회 시스템들이 이러하다. 기업이나 관공서 기관에서도 엄연히 상하직급에 따라 대우를 해주며 일을 하고 있다. 오히려 이런 곳이 회사나 조직의 이익창출 및 효율성증대를 목표로 하기 때문에 군대보다 더 피터지는 현장일 것이다. 그래서 군대란 곳이 고등학교를 졸업한 청년들이 최초로 사회생활을 간접적으로 경험해 볼수 있는 곳이란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는 이런 회사내, 사회내에서의 직급에 따른 상하관계를 역시 제2의 군대로 충복을 맹세하는 곳이라 비판하는 데,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의문점은 모든 인간이 동등하게 대우받는 사회가 사회주의, 공산주의 체제가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 내 존재하긴 하는 것인가? 자본주의 제1원칙이 경쟁이 아니던가? 그가 너무나 이상적인 것을 목표로 그렇지 않은 대한민국을 비판하며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컬 링1. 경기 방법한 게임은 10 end로 구성되고 2시간 40분 정도 소요되며 각 팀은 4명(후보 1명외)의 선수로 이루어진다. 일반적으로 lead, second, third (vice-skip), skip의 순서로 투구를 하며 경기가 진행중일 경우 선수들의 투구 순서는 임의로 변경할 수 없다. 한팀당 8개의 스톤을 상대팀과 한 개씩 번갈아 투구하며 (선수 1인당 1개 씩 2회 투구) 양팀 16개의 stone이 모두 투구되면 한 end가 끝난다. 최초 end는 토스로 선공과 후공를 결정하며 2end부터는 각 end에서 진팀이 다음 end에서 후공으로 유리하게 된다.점수의 확인은 각 팀의 Vice-Skip이 한다. 양팀 stone의 중심으로부터 의 거리 측정을 필요로 할 때는 모든 stone이 투구되고 난 후 Vice-Skip 만이 심판에게 요구할 수 있다. 12피트의 house(원) 안에 (12ft선상의 스톤 도 유효) 있는 stone으로서 상대편 stone보다 House의 중심(button)에 더 가까이 있는 것은 모두 그 end의 점수가 된다.스위핑스위핑은 어느 쪽을 스위핑 하는가, 또 브러시를 어떻게 잡고스위핑 하는가에 따라 '오픈 스위핑'과 '크로스 스위핑'으로 나뉜다. 오픈 스위핑의 경우 전방 관측이 용이하며, 크로스 스위핑은 오픈 스위핑에 비해 스위핑의 효과를 극대화시킬 수 있다. 스위핑은 두 선수가 스톤을 사이에 두고 양 사이드 에 서 할 수도 있고, 스톤의 한쪽에서 두 선수가 같이 할 수도 있다. 얼음을 닦아 줄 경우 닦지 않을 때 보다 스톤을 약 3-5m정도 더 나아가게 할 수 있고, 컬의 각도를 펴 주어 장 애가 되는 스톤을 우회하여 목적지까지 보낼 수 있다. 이러한 얼음 쓸기는 스톤이 나아가는 길의 먼지와 불순물 등을 제거 하고, 기압을 줄여서 스톤을 끌어당겨 주며, 얼음 표면을 잠 시 녹여서 스톤이 진행하는데 마찰을 줄여준다.스톤각팀의 스톤은 핸들의 색깔로 구분하며, 실수로 상대팀의 스 톤을 가지고 투구했을 경우, 투구된 스톤은 유효하며, 스톤 이 정지한 후 그 위치에 자신의 스톤으로 교체한다. Hog line 을 넘지 못하거나 선상에 위치한 스톤은 즉시 치워져야하 며, Back line을 넘는 스톤은 즉시 치워져야 한다. (단, Back line 선상에 위치한 스톤은 유효 함)투구스톤을 던지는 Curler의 동작을 투구라고 한다.투구는 핵에서 부 터 미끄러져 투구하는 동작인데 밸런스와 슬라이딩 동작을 필요로 하며, 스톤의 조절은 슬라이딩 동작과 투구하는 스피드에 달려있다. 선수는 팔을 곧게 뻗고 손잡이를 약간 돌려 회전을 주어 던진다.점수의 결정점수의 결정은 하우스의 안에 있는 스톤만이 점수에 가산된다.상대편보다 링 중심에 가까이 있는 스톤마다 1점이 가산되며, 만약 한 END에 양팀 모두 점수를 얻지 못하면, 바로 앞 END에서 이긴팀이 다음 END를 먼저 시작한다.프리가드존호그라인과 티라인 사이에서 하우스를 제외한 영역을 말한다.각 end마다 처음 4개의 스톤은 프리 가드존에 위치할 경우 take-out할 수 없으며, 만일 take-out을 했을 경우 쳐낸 스톤은 치워야 하며, 먼저 있던 스톤은 제자리에 다시 놓아야 한다.5번째의 스톤부터는 take-out 을 할수 있다.2. 경기장 규격컬링은 1개 팀 4명(lead, second, third, skip)으로 구성된 두 팀이 화강암 재질의 둥근 돌(stone, 19.96kg)을 얼음판 위에서 밀어 던져, 지름 1.83m 과녁모양의 하우스(house)라고 하는 목표 구역 내 표적(button)에 누가 더 가까이 접근시키느냐를 겨루는 경기이다.컬링은 실내뿐만 아니라 실외에서도 경기가 가능하다. 주로 컬링전용링크에서 게임을 하나, 전용링크가 없거나 큰 대회를 위해 많은 관중석이 필요할 때는 Ice Hockey Rink에 컬링 시트를 설치하고 경기장으로 사용한다. 기존의 아이스링크 표면에 패블이라는 작은 물방울을 뿌려 스톤과의 마찰을 줄여서 사용한다. 따라서 패블의 상태에 따라 경기장의 컨디션이 좌우된다고 할 수 있다. 컬링전용링크는 훈련용으로 시트가 한 면만 있어도 가능하지만 보통 4-5면 보유한 곳이 일반적이며 큰 링크 는 20면 이상 보유한 컬링링크도 있다.스코어 보드A 타입 B 타입Scoreboard는 경기장 뒤쪽에 설치한다. 전세계적으로 쓰이는 스코어보드는 2가지 종류로 구분을 할 수 있다. 공통적으로 두 개의 스코어보드의 색깔은 팀의 핸들 색깔을 의미한다.A타입은 엔드를 기준으로 점수를 팀별로 표시하게 되고, B타 입은 점수를 얻은 엔드를 팀별로 표시하게 되어 있다. 맨 아랫줄의 B.E.는 0:0인 엔드 (Blank End)를 의미한다. 현재 A타입의 점수는 7엔드가 끝난 상황이며 6:5로 파란색 핸들을 사용하는 팀이 이기고 있는 상황이고, B타입의 점수는 7:5로 파란 색 핸들을 사용하는 팀이 경기를 이겼다. 공식경기에서는 A타입의 스코어보드를 많 이 사용하고, 일반 컬링 클럽에서는 B타입의 스코어보드를 많이 사용한다. 우리나라 는 A타입의 스코어보드를 사용한다.스피드 스케이팅1. 경기 규칙① 더블 트랙 레이스(double track race)올림픽, 세계 선수권, 한국 선수권 대회 등의 중요한 대회에서는 대개 이 경기 방법으로 행해진다. 짝짓기, 스타트 순서 및 안쪽 트랙이냐 바깥쪽 트랙이냐 하는 것은 추첨에 의해서 결정한다. 안쪽에서 스타트하는 경기자는 흰색의, 바깥쪽에서 스타트하는 경기자는 빨간색의 완장 또는 허리띠를 착용해야 한다.(1) 교차교차선에 도착할 때마다 경기자는 트랙을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바깥쪽에서 안쪽으로 교대해야 한다. 또한 커브가 끝난 부분(교차선이 시작되는 부분)에서 안쪽트랙에서 바깥쪽 트랙으로 이행하려 하는 경기자는, 바깥쪽 트랙에서 안쪽 트랙으로 들어오는 상대를 방해해서는 안된다.(2) 순위의 결정더블 트랙 레이스에서는 예선, 결승을 행하지 않고, 조합에 의해 한 조씩 차례대로 경기하여, 그 결과를 하나의 거리마다 일괄하여 판정한다. 더블 트랙 레이스에는 하나하나의 거리 경기 외에 종합 경기라는 것이 있다. 이 경기는 500-1000m의 거리 중에서 2-4종류의 거리를 조합, 한 사람의 경기자가 그 2-4종류의 모든 거리에 출전하여, 그 총득점에 의해서 순위를 결정하는 것이다. 500m에서는 그 얻은 타임이 그대로 득점이 되고, 그 밖의 거리에서는 그 얻은 타 임을 500m로 환산한 것을 득점으로 한다. 그리고 한 경기자는 얻은 득점의 합계를 그 경기자의 총득점으로 하며, 총득점이 적은 경기자를 승리자로 한다.
‘죽은 시인의 사회’는 20년 전에 만들어졌고 50년 전의 미국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학벌사회, 입시위주의 수업, 주입식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는 한국 교육의 현실과 별반 다를 게 없어보였다. 우리는 여전히 치열한 경쟁 속에서 국제중, 특목고, 명문대, 대기업에 가기 위해 오직 앞만 보고 뛰고 있지 않는가? 영화 속에 자살을 선택한 닐의 모습은 얼마 전 이슈가 되었던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의 김예슬 선언의 그녀가 떠올랐다. 둘은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고민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었다면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에서는 차이가 있다. 닐은 그의 내면 속 두려움이 결국 자신의 가치와 신념을 장악해버리고 그것을 이겨내지 못한 채 자살을 선택 하지만, 그녀는 ‘누가 더 강한지는 두고 볼 일이다’ 라고 대자보 마지막 구절을 적으며 오로지 자신의 신념을 통한 결단을 내린다. 물론 나는 그녀의 선택을 지지하는 것도 그렇다고 반대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최소한 현재 대한민국의 교육을 냉정하게 들여다볼 기회를 제공한 것만은 사실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교육현실,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에 의해 일그러져 버린 대한민국의 교단에서 키팅 선생님과 같은 존재는 어떤 의미를 지닐까? ‘ 현재를 즐겨라 ’ ‘사물을 다른 각도에서 보아라’ ‘과감하게 부딪혀 새로운 세계를 찾아라’ ‘자신의 독특한 신념을 믿어라’ 혹자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 대한민국에서 입시를 무시한 교사가 과연 이상적일 수 있는가? ’ 물론 아무리 이상적이라 하더라도 대한민국의 교육현실을 무시하고서는 그것 역시 좋은 교사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입시에만 연연해서 창의력과 비판적 사고는 무시한 채 성적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교사도 결코 좋은 교사는 아니다. 이런 극단의 상황이 용납되지 않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미래의 ‘교사’라고 하는 나에게 영화 속의 키팅 선생님에게 배운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아이들의 가치를 스스로 일깨워주는 것이다. 아이들의 눈을 보고 아이들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그들이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아는 것은 단순히 경험만으로는 알 수 없는 것이다. 더구나 획일화 되고 있는 대한민국 교육에서 학생 스스로의 가치를 깨닫게 해주는 것은 최근에 더욱 문제가 되고 있는 교육 병리현상을 치유할 수 있는 방법 중에 하나가 되지 않을까? 그들이 어떤 가치를 지닌 존재인지 그들의 무한한 가능성을 일깨워주고 그들의 목소리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바로 그들 스스로는 절대로 찾기 힘든, 그래서 더더욱 교사가 해야 할 사명이 아닌가 라고 생각한다. 두 번째는 이 영화에서 절대로 빼놓아서는 안 되는 ‘까르페디엠’ 이다. 키팅 선생님은 영화에서 미래라는 미명하에 현재의 삶의 낭만과 즐거움을 포기해야만 하는 아이들에게 지금 살고 있는 이 순간이 무엇보다도 확실하며 중요한 순간임을 일깨워주었다. 물론 미래에 대한 준비는 중요하다. 그러나 그 준비되어진 미래에서 삶을 즐기기에는 우리네 인생은 너무나 짧다. 매순간순간 우리의 삶을 보람되게 만족스럽게 산다면 미래의 순간이 오는 날은 이미 즐거운 삶이 되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