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13093 장우린 0813087 김용진 0813088 김지영 0813089 김채주 1013043 최성준 1013044 최자인 1013045 최정우 1013046 최한나 1013047 황진화 6 조 분묘분묘 분묘란 ..? 죽은 자를 매장하는 시설의 총칭 사천 늑도 47 호 움무덤 경주 대왕암 녹유골호분묘 무덤의 주인을 알 수 있을 때 - 능 , 원 , 묘 무덤의 주인을 알 수 없을 때 - 총 , 분분묘 시대별분묘분묘 chapter1. 분묘의 기본 구조 1. 지석묘 ( 支石墓 ) - 흔히 고인돌 이라 부르는 무덤 형식 (3 가지 ) 북방식 고인돌 ( 탁자식 고인돌 )분묘 남방식 고인돌 ( 바둑판식 고인돌 ) 개석식 고인돌 ( 한반도에 가장 많이 분포해있는 고인돌 형태 ) 분묘의 기본 구조분묘 Chapter1. 분묘의구조 2. 돌널무덤 ( 石棺墓 ) - 지하에 직사각형의 널을 잇댄 돌널 시설을 만들고 시체 및 부장품을 넣은 무덤 양식분묘 서울 석초동 백제 돌무지 무덤 Chapter1. 분묘의구조 3. 돌무지무덤 ( 積石塚 )- 시체를 넣은 곳 또는 구덩이 없이 시체를 놓고 그 위를 봉토를 덮지 않고 돌을 쌓아 묘역을 만든 무덤 양식분묘 장군총 장군총의 내부구조 Chapter1. 분묘의구조분묘 김해 예안리 76 호분 Chapter1. 분묘의구조 4. 널무덤 ( 土壙墓 )- 땅에 구덩이를 파고 직접 시체를 묻은 무덤 양식분묘 Chapter1. 분묘의구조 5. 독무덤 ( 甕棺墓 )- 크고 작은 항아리 EH 는 독 두 개를 맞붙여서 관으로 쓰는 무덤 양식분묘 경주 조양동 무덤 60 호 Chapter1. 분묘의구조 6. 덧널무덤 ( 土壙木槨墓 )- 무덤속에 관을 넣어두는 묘실을 나무로 짜 만든 무덤 양식분묘 천마총 Chapter1. 분묘의구조 7. 돌무지덧널무덤 - 신라 고유의 무덤 양식 . 지하에 무덤광을 파고 상자형 나무 덧널을 넣은 뒤 그 주위와 위를 돌로 덮은 다음 다시 그 바깥을 봉토로 씌운 무덤 양식분묘 운림동 석실고분 Chapter1. 분묘의구조 8. 돌방무덤 ( 石室墳 )- 널길을 갖춘 굴식돌방을 판돌 , 깬돌을 이용하여 반지하 또는 지면 가까이에 축조한 무덤양식 . 돌덧널무덤의 형태가 대형화 된 것으로 보면 되나 차이점으로는 남쪽벽에 널길이 달린점과 천장의 구조가 다양한 것이 다르다 .분묘 신암리 Chapter1. 분묘의구조 9. 굴식돌방무덤 - 판모양의 돌 , 깬돌을 이용하여 널을 안치하는 방을 만들고 널방 벽의 한쪽에 외부로 통하는 출입구를 만든 뒤 봉토를 씌운 무덤 양식분묘 Chapter2. 분묘의 시대적 변천 ( 신라 - 통일신라 시대 ) 대략적인 신라고분의 변천은 신라건국기인 원삼국시대 단계 ( 제 1 기 ) 돌무지 덧널 무덤이 축조되는 단계 ( 제 2 기 ) 굴식 돌방무덤 이 축조되는 단계 ( 제 3 기 )분묘 Chapter2. 분묘의 시대적 변천 ( 신라 - 통일신라 시대 ) ◉제 1 기 - 널무덤과 덧널무덤을 사용한 시기분묘 Chapter2. 분묘의 시대적 변천 ( 신라 - 통일신라 시대 ) ◉제 2 기 - 돌무지덧널무덤이 만들어진 시기 ( 신라시대 )분묘 Chapter2. 분묘의 시대적 변천 ( 신라 - 통일신라 시대 ) 제 3 기 - 돌무지덧널무덤이 점차 사라지고 굴식 돌방무덤이 만들어진 시기 ( 통일신라시대 )분묘 통일신라시대에는 불교의 성행으로 화장하여 뼈를 항아리 ( 골호 ) 에담아 매장 Chapter2. 분묘의 시대적 변천 ( 신라 - 통일신라 시대 )분묘 Chapter3. 릉 대릉원 - 경상북도 경주시 황남동에 있는 신라시대의 고분군 총면적은 12 만 5400 평으로 신라시대의 왕 · 왕비 · 귀족 등의 무덤 23 기가 모여 있으며 모두 평지에 자리잡고 있는 신라시대만의 독특한 무덤군 ( 群 ) 으로 크게 7 개 지역으로 나뉨분묘 chapter.3 릉분묘 chapter.3 릉 서수형토기 금제감장보검 신라미추왕릉 ( 사적 175)분묘 금제수식 ( 보물 633 호 ) 삼강유리옥부경식 ( 보물 634 호 ) chapter.3 릉 신라미추왕릉 ( 사적 175) 3 태극 문양 장식보검분묘 금관 허리장식 ( 상 ) 과 천마도장니 ( 하 ) chapter.3 릉 경주 황남리 고분군 ( 사적 제 40 호 )- 천마총분묘 황남대총남분은관 황남대총 남분 금과대 , 금요패 chapter.3 릉 ▪경주 황남리 고분군 ( 사적 제 40 호 )- 황남대총분묘 황남대총 북분 금제완 황남대총 북분 은제합 chapter.3 릉 ▪경주 황남리 고분군 ( 사적 제 40 호 )- 황남대총분묘 금관총 출토 금관 chapter.3 릉 ▪경주 노서리 고분군 - 금관총분묘 서봉총 금관 은제합 chapter.3 릉 ▪경주 노서리 고분군 - 서봉총분묘 chapter.3 릉 신라오릉분묘 chapter.3 릉 경주 동부사적지대 - 내물왕릉분묘 chapter.3 릉 경주 노동리 고분군 - 봉황대 , 식리총 , 금령총분묘 식리총에서 발견된 금동 신발 ( 식리 ) 의 바닥 부분 chapter.3 릉 경주 노동리 고분군 - 식리총분묘 금령총에서 발견 된 금관 chapter.3 릉 경주 노동리 고분군 - 금 령 총분묘 도제 기마인물상 – 주인상 , 하인상 chapter.3 릉 경주 노동리 고분군 - 금 령 총분묘 주형토기 ( 배모양 토기 ) 금제 허리띠 그리고 금령 chapter.3 릉 경주 노동리 고분군 - 금 령 총분묘 재매정분묘 chapter.4 괘릉 - 신라 제 38 대 원성왕의 릉이라고 알려져 있다 .분묘 봉분 : 원형토분으로 지름 약 23m, 높이 약 6m 규모 봉토를 보호하기 위한 호석 설치 탱석에는 두 칸 건너서 하나씩 무복을 입고 무기를 잡고 있는 십이지신상 을 조각 chapter.4 괘릉 괘릉의 구조 - 봉분 , 주위 석조물십이지신상 분묘 chapter.4 괘릉 괘릉의 구조 - 봉분 , 주위 석조물분묘 주위 석조물 - 화표석 한 쌍 - 무인석 한 쌍 - 문인석 한 쌍 - 돌사자 두 쌍 chapter.4 괘릉 괘릉의 구조 - 봉분 , 주위 석조물분묘 화표석 : 신의 길임을 표시하는 것인데 여기서 신은 죽은 왕의 영혼을 나타낸다 . chapter.4 괘릉 괘릉의 구조 - 봉분 , 주위 석조물분묘 무인석 : 키 2.4m 부리부리한 눈 오똑한 코 덥수룩한 구렛나루를 한 서역인의 모습 당시 신라가 당나라뿐만 아니라 먼 서역과도 활발한 교류가 있었음을 보여줌 chapter.4 괘릉 괘릉의 구조 - 봉분 , 주위 석조물분묘 문인석 : 당시 신라의 복식을 잘 나타냄 chapter.4 괘릉 괘릉의 구조 - 봉분 , 주위 석조물분 묘 돌사자 : 동서남북의 네 방위를 바라 봄 (4 방위를 지키는 수호신 ) chapter.4 괘릉 괘릉의 구조 - 봉분 , 주위 석조물{nameOfApplication=Show}
역사문화학부1013047황진화우리나라는 식민지 지배를 겪으면서 단일민족이라는 단어가 고착화 되었다. 이것은 민족을 강력하게 하나로 묶기 위한 수단으로 시작한 것인데 현재는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이런 고착화된 교육 때문에 다문화 가정은 사회에서 차별을 당하고 있다. 이와 같이 민족을 정의 하는 것은 잘못된 점들이 많다. 그렇다면 르낭은 민족을 어떻게 정의 했는지, 그가 지적하는 문제점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알아보자.르낭은 잘못된 민족의 구분법들에 대해 몇가지 설명했는데, 먼저 ‘왕조’에 의한 구분이다. 그 예로 스위스와 미국을 들었다. 그 둘은 끊임없이 추가되는 집단들로 형성되었지만 어떠한 왕조적 기반도 존재하지 않았다. 반대로 프랑스는 왕조가 붕괴한다 해도 민족이 왕조 없이 지탱할 수 있었다. 하나의 민족은 왕조라는 원칙 없이도 존재 할 수 있으며 반대로 왕조 때문에 형성 되었던 민족들도 왕조 때문에 존재를 멈추는 일 없이 그 왕조와 분리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두 번째는 ‘종족’이다. 종족은 형성되기도 하고 모습이 바뀌기도 하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순수한 종족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르낭은 종족적 분석에 정치의 기초를 두는 것은 공상에 기초를 두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비난했다.세 번째는 ‘언어’이다. 미국인, 영국인, 스페인계 아메리카 인들은 같은 언어를 사용하지만 하나의 민족이 아니다. 반대로 스위스는 서너 개의 언어로 사고하는 서로 다른 집단이 하나의 민족을 이루고 있다. 여기서 르낭은 언어를 초월하는 무언가가 있는데 그것이 인간의 의지라고 말한다.그 외에 ‘종교’ 역시 국가차원의 종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영토’는 중요하긴 하지만 마찬가지로 민족을 구분짓지 못한다고 말한다.결국 르낭은 ‘하나의 민족은 하나의 영혼이며 정신적 원리이다.’ 라고 민족에 대한 정의를 내렸다. 과거에 공통된 영광을 누렸으며 현재에 공통된 의지를 갖고 있는 것. 단 하나의 정당한 기준은 민족적 결의라고 말한다.이 글을 읽고 민족에 대한 나의 편견이 깨지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나라가 반드시 배워야 할 점이라고 생각했다. 여러 매체에서 전달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이미 단일민족이라고 할 수 없다. 그렇게 규정지어 놓는다면 세계화 시대의 흐름에도 맞지 않다고 본다. 우리는 혼혈인들이 우리나라에서 사는 것이 얼마나 큰 고통인지 익히 들어 알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가 주권을 빼앗긴 적이 있었기 때문에 민족의식을 강조하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유명한 가수 윤미래나 유명한 미식축구선수 하인스 워드에는 그렇게 열광하면서 정작 우리 주변의 많은 혼혈인들은 얼마나 차별을 하고 있었는지 반성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