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와 플라톤■ 플라톤과 공자1. 사상적 배경철학자의 심상을 이해하는데 있어서는 그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상황을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들의 사상의 출발점이 시대의 인식과 고민 끝에 올바른 방향의 제시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플라톤과 공자가 살았던 시대와 그 당시의 상황을 살펴보고, 그들의 정치철학의 시발점을 알아보도록 하자.플라톤은 그리스 도시국가인 아테네에서 태어났으며, 이때의 아테네는 무역을 통해서 한동안 부를 누렸고, 페리클레스 시대에는 민주주의 통치를 누렸는가 하면, 학문적으로 위대한 도덕 철학자인 소크라테스에서 그 전성의 극에 달하고 전례 없는 번성을 했던 때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아테네를 패망시키고 잠시 동안의 폭정 시대를 초래했던 전쟁기간 중에 플라톤 자신은 성장했다.당시 소크라테스의 주된 관심은 우리가 옳게 사는 방법을 어떻게 하면 알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고, 이러한 관심은 플라톤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으며, 플라톤은 사람들이 익혀온 인습적인 견해를 의문시하여, 그것을 타파하고자 했다는 죄목으로 자기 스승을 처형한데 대해 깊은 충격을 받았다.당시의 정치와 철학에 환멸을 느낀 플라톤은 우주에 대한 진리뿐만 아니라 사회의 병폐를 고칠 수 있는 치유책이 무엇인가를 알고자 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플라톤의 사상이 형성되어졌다고 볼 수 있다.그러면 공자가 살았던 시대의 현실은 어떠했는가?일반 백성들은 가혹하게 억압받았으며, 거의 아무런 권리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지배자들은 기분 내키는 대로 백성들을 부릴 수가 있었지만, 그들을 견제할 수 있는 것은 어쩌다가 일어나는 반란뿐이었다.지배층에 속하는 사람들도 그 시대의 일반적인 무법상태나 잦은 전쟁의 피해자였다.군주와 중신들은 모두 세습귀족의 후예들이었지만 여러 세대에 걸쳐 권력과 부를 부자상전해 온 가문들도 퇴폐풍조에 빠진 것이 보통이었고, 예외는 아주 드물었다. 그들에게는 전쟁에서의 용맹과 권모술수의 수단이란 두 가지 장점이 필요하였기 때문에, 이것을 연마하는 데 최선을 다것도 불가능한 세상이 되고 말았다.공자는 바로 인간의 존엄성과 행복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었기 때문에 깊은 번뇌에 빠졌고, 보다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일생을 바쳤다.위와 같이 두 철학자는 현실에 대한 상황에 대해 회의와 의문 사색을 통해 그들의 정치철학적 견해를 시작한다.2. 플라톤과 공자의 인간관우리들은 국가에서 철인들이 군주가 되거나 또는 우리가 군주나 지도자라 부르는 자들이 철학을 진지하고 적절하게 탐구하며 그리하여 이 둘, 즉 정치적 능력과 철학 또는 인식의 사랑이 합쳐지는 한편으로 현재로서는 각자 서로 다른 방향으로 제 갈 길을 찾아가는 다양한 본성들이 그러지 못하게끔 강제로라도 저지되지 안는 한, 글라우콘이여, 우리의 나라에게나 또는 인류에게나 악과 불행이 그치지 않을 것일세 《국가》위와 같이 플라톤적인 국가는 현대의 정치, 경제, 군사 지향적 국가와는 사뭇 다르게 인간 영혼의 관리를 지향한다. 국가의 기원을 경제적 욕구의 반영으로 본 플라톤은 모든 사람이 모든 다른 업무에서 벗어나 그에게 본성적으로 적합한 한 가지 일에 전념할 때, 좀더 많은 것들이 생산될 수 있고, 작업도 좀더 쉽고 훌륭하게 실행된다 고 말하고 있다.그렇다면, 플라톤은 인간의 본성(영혼)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에 대해 먼저 알아보는 것이 순서인 것 같다.플라톤은 「국가론」에서 인간의 영혼을 이성, 기개, 욕망의 세 부분으로 나누고 있다. 이 영혼의 연장으로 국가의 세 계급. 즉, 생산계급(욕망), 전사계급(기개) - 재산과 부인의 공동소유 - , 통치자 계급(이성)이 형성되는 것이다.이때 국가의 구성원들은 통치자의 이성에 따라 가슴과 손발의 역할을 조화롭게 수행할 때 비로소 공동체는 정의가 지배하는 이상적인 공동체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 플라톤의 견해라고 볼 수 있다.그러나 플라톤은 백성들이 국가내의 이러한 계급조직을 받아들이는 것은 결코 단순한 문제가 아님을 알고 있었기에 고상한 거짓말 로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다.(전제조건으로서 교육실시) 그 고상한 거짓말은 모든 인간을 창조인들에게는 쇠와 구리를 섞었다 는 것이다. 물론 이론적으로는 높은 계급에로의 진출허용과 유아들의 경우에는 그들이 양친들과 동일한 품성을 가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다.( 장인에게서 금이나 은을 지닌 자식이 태어나면 그들은 그를 그의 가치에 맞게 대우해야 할 것이다.... )공자의 경우는 어떠한가?얼마 전 베스트셀러였던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라는 책에서는 유교의 이상사회는 픽션이며, 유교의 출발은 역사의 왜곡, 왜곡의 역사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공자의 도덕은 사람 을 위한 도덕이 아닌 정치 를 위한 도덕이었고, 남성 을 위한 도덕이었고 어른 을 위한 도덕이었고, 기득권자 를 위한 도덕이었으며, 심지어 주검을 위한 도덕이었다. 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문화적 폐쇄성과 함께 혈연주의 , 권위주의, 지역 패권주의, 남녀차별, 왜곡된 민주주의 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나라를 망치는 유교는 이제 우리의 삶 속에서 폐기처분 되어야한다는 것이 작가 김경일 교수의 주장이다.하지만 이 주장은 독단과 독선에 빠져있다. 현실문제의 주된 원인을 유교와 공자로 귀결시키는 부분에서 필자도 그러한 부분을 느낄 수 있었다. 현재 통용되고 있는 공자에 관한 지식은 후대에 왜곡되고 윤색된 부분이 적지 않다는 점을 필자도 분명 인정한다. 하지만 그것이 공자의 전부일까?공자 똑바로 알기를 언급하며, 그가 생각했던 인간에 관한 부분을 알아보도록 하자.공자는 플라톤처럼 저술을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공자가 이상국가의 청사진을 제시하였다고 할지라도, 오늘날에 전하는 것은 없다. 공자가 살았던 세상은 이상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그 시대에 현저하게 결여된 것을 갖춘 국가. 즉, 백성이 평화나 안전 및 풍요를 향유할 수 있는 국가를 최선의 국가로 생각하고 있었다.플라톤과는 달리 공자의 깊은 관심은 거의 전적으로 인간생활에 관한 것이었고, 그것도 현재의 인간생활에 관한 것이었다.(《論語》顔淵篇, 樊遲問仁 子曰 愛人 問知 子曰 知人)공자의 사상은 구질서를 회복해도 제시되고 있으나 실제로 그는 전면적인 사회적, 정치적 개혁을 주장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 구현에도 기여한 사람이기 때문에 위대한 개혁가, 혁명가의 한 사람으로 간주하지 않으면 안된다.공자는 주변 도처에서 사람들이 서로 싸우는 것을 목격하였으나 그것이 사회의 본래 상태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으며, 각자가 서로 남을 능가하려 하지 않고, 공동의 복리를 증진하려고 노력하는 상호협동이 인간의 정신적인 상태라고 생각하였다. 인간의 본성은 모두 비슷한데 그 배움과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 그렇기에 공자는 백성의 빈곤이 일단 해결되면 그들을 교육시켜야 한다고 말하였다. 최소한의 교육은 모든 사람에게 베풀어야 하며, 아무리 비천한 출신일지라도 진리를 찾기 위해 자기에게 오는 사람에게 문제를 해결하는데 필요한 시간이라면 언제라도 할애할 용의가 있다고 선언한 일도 있었다. 그는 학생을 사절한 적이 한번도 없었다고 자랑하였고, 똑똑하고 부지런한 사람이면 가문이나 빈부차이 따위는 일체 무시하고 모두 받아들여 정치기술을 가르친 것은 사실인 것 같다.이처럼 공자는 모든 사람에게 교육을 베풀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또 패기있는 평민을 교육받은 군자 로 만들려고 노력한 것은 결국 세습적인 귀족질서에 최후의 일격을 가한 것이었고 혁명적인 것이었다. 확실히 그는 백성들의 편이었고, 공자가 생각한 인간의 모습이었다.3. 플라톤과 공자의 민주주의에 대한 견해플라톤의 이상국가는 귀족국가였다. 하지만 지배자와 시민들의 도덕적 성격의 점진적인 타락으로 명예제, 금권제, 민주제, 참주제의 순으로 귀결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견해다. 플라톤은 공자와 달리 민주제에 대해서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다. 즉, 평등과 자유의 권리는 퇴락한 인간의 모습을 반영하며, 평등한 자유라는 명목하에 온갖 욕망을 추구한다는 것이다.이때의 민주제는 직접민주제(모든 시민이 정부에 참여할 권리를 갖는다.)를 뜻했다. 이는 그의 생각 - 한 국가의 통치는 특수한 재능을 본유하며 통치를 위해 교육된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져립을 과시한다. 결국 금권제하에서는 부자와 빈자가 대결하고, 결국 거기서 권한이 야기되며 빈자가 승리할 때, 민주제가 발생한다 그리하여 방종과 자유 분방한 주장들이 여기저기서 난무하여 모든 사람에게는 그가 원하는 대로 행할 기회가 주어진다이러한 정치적 평등과 자유는 질서가 흩어진 영혼으로부터 발생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영혼의 욕망들은 이제 모두 평등하고 자유로우며, 격정이라는 폭도 로서 활개친다. 자유와 평등의 생활은 하나의 욕망은 다른 것만큼 선하며, 모든 것은 나름대로의 동등한 권리들을 소유한다 고 선언한다.그러나 욕망에로의 끊임없는 탐닉은 불가피하게 인간을 결국 하나의 지배적인 감정이 영혼을 노예로 만드는 지경에로 이끈다. 인간이 추구하는 모든 욕망은 결국 가장 강하고 가장 지속적인 격정에 굴복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단계에서 인간은 자신의 지배적인 욕망의 독재하에 들어가는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국가의 경우도 이와 유사하다. 돈과 쾌락에 대한 갈망은 대중들이 부자를 강탈하도록 고무하며, 부자들이 항거할 때, 대중들은 한 명의 강자를 뽑아 그를 그들의 투사로 삼는다. 그러나 그 인물은 절대 권력을 요구하며 또한 그것을 획득하녀 백성을 자신의 노예로 삼는다. 그 백성들은 조금 지나서야 그들이 얼마나 깊이 그에게 종속해 버렸는가를 깨닫게 된다. 바로 이것이 정의롭지 못한 사회이며 정의롭지 못한 영혼의 확장이다. 결국 민주제는 참주제로 자연스럽게 귀결되는 것이다.하지만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플라톤은 현대 의회 민주주의의 기본사상 - 정부는 일정 기간 내에 재선거로 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사상은 통치자들을 면직할 수 있는 제도적인 안전장치를 마련해 주고 있는데도 그의 국가론에서는 완전히 배제되고 있다.다음으로 공자의 경우를 살펴보자.공자가 민주적이었는가? 를 알기 위해선 민주주의와 공자의 비교가 필요한 것 같다는 생각에 매리앰의 민주주의의 기본적인 가정 과 공자와의 비교를 해 보았다.1. 인간의 기본적인 존엄성, 차별보다는 우애 원칙에 근거한 개성의 보호 폐지.
나는 평소에 일본 대중 문화에 대해서 관심이 많다. 그래서인지 이 책을 리포트라는 생각보다 흥미 있는 책으로 접할 수가 있었다. 이 책은 우리가 일본문화에 대해 단순히 접하는 정도를 넘어서 평소에 생각하지 못하던 부분까지 끄집어내 주는 것 같다. 선동렬과 이종범의 사례만 해도 그렇다. 우리는 두 선수의 활약과 성과에 대해서 기뻐하고 많은 찬사를 보내는 것에 그치는 데에 비해 이 글의 작자는 일본의 주류?비주류라는 사회적 일면을 끄집어내어 일본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보다 쉽게 일본이라는 나라의 여러 면을 알 수 있게 해준다.우리는 일본 문화에 대해 특히 애니메이션, 영화, 가요 등 대중문화에 폐쇄적인 입장을 취해왔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고 글로벌화 되가면서 일본문화에 대한 개방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하지만 일본문화개방을 하기 이전에도 암암리에 일본의 여러 대중문화들이 여러 경로를 통해 우리나라 이곳저곳에 넘어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정상적인 방법으로 들어오지 않은 그 문화들은 외설적이고, 선정적인 것인 경우가 많다. 그렇게 접하는 일본문화의 일면만 보고 가지게 된 편견도 만만치 않은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우선 편견을 버리고 일본문화에 대해 무조건적인 추종도 비판도 아닌 객관적인 입장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이 책이 일본문화에 대해 좀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었던 견인차 역할을 해준 것 같다.우선 일본문화에 일조 하는 일본문화의 파워인 두 가지 문화에 대해 알수 있었다. 그 첫째로, 오타쿠 문화이다. 오타쿠는 원래 일본어의 ‘당신, 댁’을 뜻하는 이인칭 대명사이다. 그러나 오타쿠란 말이 가타카나로 쓰이면 얘기가 달라진다. 본래의 의미가 아닌 ‘이상한 것을 연구하는 사람’이라는 뜻이 된다. 보통 일본의 만화나 애니메이션 마니아를 지칭하는 말로써 미국이나 유럽 등 세계적으로 ‘otaku'라고 통용된다. 오타쿠란 팬, 마니아, 그 다음의 단계이다. 무엇인가를 너무 좋아하다 보니 득도의 경지에 오른 사람을 말한다. 하지만 이런 단순한 정의와는 달리 일본의 구시대를 살아왔던 계층의 사람들은 오카타를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고 있고, 우리나라에도 일본의 어두운 문화의 한 일례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얼핏 보면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낭비하는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들이 일본 전체를 변화시키고 세계 경쟁력을 창출하고 있는 것이다. 오타쿠의 세계는 무한하고 다양하다. 오타쿠들의 전문성, 독특한 사고 방식들이 일본을 전문성과 창조력이 넘치는 사회로 만들었으며, 특히 일본의 대중문화 각 분야에서 이들은 세계 최고를 달리고 있다. 물론, 이들이 긍적적인 측면만을 가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긍적적인 측면을 부각시키고 단점을 보완해서 우리나라에도 이런 류의 문화가 발전한다면 세계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둘째로, 일본의 인디 문화를 들 수 있다. 인디 밴드들은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음악에 충실한 면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인디 레벨에서 바로 해외로 진출하는 경우가 더 많을 정도이다. 이들은 메이저로 성공하기 위한 단계가 아니라 자신들이 정말로 하고 싶은 음악을 하기 위해서라는 방법론적인 성격을 띄고 있다. 이러한 이들의 정신이 일본음악의 튼튼한 모체가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 외에도 인디 미디어, 서브컬쳐(젊은이들의 문화) 등 일본에서의 인디문화는 하나의 커다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실력을 떠나 메이져를 크게 인정하고 인디에 대해서 그다지 비중을 두지 않는 우리나라와는 사뭇 다른 느낌을 받았다.일본 문화의 성공 비결은 마케팅이다. 마케팅이란 것은 문화의 홍보에 커다란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일본 가요계를 휘여 잡은 고무로 데츠야 사단 중 성공케이스인 아무로 나미에의 경우 철저히 여고생을 공략하고 있는데, 직설적이고 자극적인 가사는 그들의 심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해 준다. 여기에 부르기 쉬운 댄스 리듬의 멜로디 첨가로 아무로 나미에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한다. 하지만 고무로 데츠야에 대한 평가는 음악적 평가라기보다는 상당 부분 비즈니스적인 쪽에 치우쳐있다. 오히려 노골적인 가사로 비행을 부추긴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분명 마케팅 적으로는 크게 성공했지만 이게 과연 바람직한 일인지 의문이 남는다. 일본은 인상적인 작가의 표현대로 백화점식 아이돌 시대에 도래했다. 우리나라도 HOT, 젝스키스 등 이런 경향을 따르고 있다. 이런 아이돌 그룹의 선두주자로는 자니스 주니어를 들 수 있다. 자니스 사무소는 일본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프로덕션이다. 청소년 아이돌 가수를 육성해왔으며 다노킨, 소년대, SMAP, Kinki Kids 등 수많은 가수들을 배출해 냈다. 그리고 아직 데뷔도 하지 않은 128명의 미소년들을 육성해 조만간 몇 명인가가 새로운 그룹을 결성해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SM이라는 우리나라 프로덕션을 보면서 자니스 주니어에 영향을 상당히 받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마케팅적인 면으로만 본다면 상당한 경쟁력을 갖춘셈이다.일본 문화 상품은 세계적으로도 인정을 받는다. 그 가장 큰 이유는 물론 ‘재미’에 있다. 그 재미는 그들의 탁월한 스토리 메이킹 능력과 캐릭터 창조력에서 나온다. 미국의 슈퍼맨이나 원더우먼처럼 세계를 지키지도 못하고 대담 무쌍한 모험활극을 펼치지는 않지만 무엇인가 내이야기라고 공감할 만한 것이 있는 것이다. 이들의 스토리 메이킹 능력은 일상적인 소재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그 정교함은 극에 달한다. 일본의 애니메이션이나 영화를 보면 주인공의 활약상등 영웅주의 적인 면모보다 무언가 따뜻해짐을 느끼는 것이 그들의 이런 능력에서 기인한 것 같다. 일본의 대중음악의 커다란 장점은 수많은 장르가 평화적으로 공존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처럼 ‘싹쓸이 문화’가 존재하지 않는다. ‘싹쓸이 문화’로 인해 한국의 대중 가요는 항상 다양성 부족증에 걸려있다. 이에 반해 일본의 대중가요는 머리가 아플 정도로 복잡하고 다양하다. 우리나라에 간간히 소개되는 일본 대중가요에는 일정 몇 명의 가수만 비춰진다. 하지만 일본에는 그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대중매체에 떠들썩하게 소개되지 않더라도 자기만의 음악을 묵묵히 해나가는 실력 있는 가수들이 많은 것이다. 이것이 한국을 위협하는 일본 대중 가요의 맹점인 것이다. 이 외에도 일본은 문학, 영화, 비디오 게임 등 문화의 전반에 걸쳐서 세계적으로 인정받을 만한 기반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물론, 거기에는 한계와 문제점들은 따르기 마련이다. 하지만 일본은 그런 문제점을 보완해 나감으로써 더 세계경쟁력 있는 문화를 구축해 나가고 있다. 세계경쟁력을 갖추고 성공하는 것은 일본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 역시 우리나라만의 특성을 살리고 경쟁력을 갖춘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