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쵸쿠라 플라자를 이야기 하기 위해서는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제국호텔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실제로 쵸쿠라 플라자를 계획 할때 기존에 쓰였던 오타니석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라이트의 제국호텔에도 오타니석이라는 재료가 쓰였는데 이 작품에 영향을 많이 받고 또 쿠마겐고가 자기 나름 대로 해석해서 그의 쵸쿠라 플라자를 구축했다고 합니다. 2. 제국 호텔에의 외관은 대부분은 돌과 타일로 디자인되었습니다.. 하지만 라이트는 타일의 평면이 가진 단단함을 보고는, 지나치게 강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타일에 스크래치, 즉 세로의 흠을 내어 강함의 느낌을 죽이고, 내부에는 약해보이는 구멍이 숭숭 뚫려있는 오타니석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일화로 라이트는 일본에서 채석 할수 있는 돌을 수집해서 바닥위에 나열하도록 했다고 하는데라이트는 타일의 무수한 스크래치 자국의 홈과 오타니석의 무수한 구멍을 세상 밖으로 열고, 돌의 깊은 맛을 느끼게 하고싶었다고 합니다,
칼보는 십여년간 이상적인 세계 도처에 생태단지 개념의 건축물을 제시했습니다.미래의 진보된 친환경 도시 기반시설을 자연과 기술의 결합으로 어쩌면 꿈이라고 그려왔던 건축을 실현하는 건축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의 개념건축은 자연세계에서 영감을 받았고 수련의 평온함과 잠자리 날개의 정교함 같은 주로 동식물 에서 발견되는 완전함과 견고함을 창의적으로 해석하여 그의 작품에 주로 반영합니다이사진들은 그의 작품중 몇 개를 나열 한것인데요 사진에서만 봐도 미래지향적인 형태를 띠고식물들을 이용한 자연에너지를 이용하려고 하는 건축가임을 알 수 있습니다. <중 략>흔히 건물의 기본 요소로 지속가능한 에너지를 만들고 사용합니다. 그에너지원으로서 풍력터빈으로 만들어진 벽과 태양열 집열판 지붕이 있어 에너지 잉여 건물로서 소비보다 많은 에너지를 생산하는데요, 바다위라는 특이한 환경에서 에너지부터 시작해서 의식주 모두 자급자족할 수 있는 건물입니다
작은 대지위의 마술, 작은집.나의 부모님은 맞벌이 부부 이시다. 그래서 외동인 나는 어렸을 적부터 나는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내가 기억하는 어렸을 적 나의 집은 24평의 그렇게 크지도 작지도 않은 집이었다. 하지만 항상 늦게 퇴근하시는 부모님을 가진 나에게는 너무나도 크고 쓸쓸한 집이었다. 그때부터 였던 것 같다. 내가 작은집을 열망하기 시작한 순간은.내가 작은 집을 좋아하는 이유는 단지 작고 이쁘고 아기자기 한 공간들이 아니다. 어렸을 적부터 혼자 였던 나에게 24평의 집은 너무 크고 무서웠다. 그리고 외로웠다. 혼자이기 때문에 티비를 크게 틀어놓고 소리가 모든공간을 울리게 했으며, 온 방에는 불을 켜놓고 부모님을 기다리기도 했다 마치 사람이 많이 있는 공간인 것처럼 말이다. 나는 그때 집이 조금만 더 좁아서 내가 느낄 수 있는 허한 공간이 줄었으면 했다. 그게 내가 지금까지 작은집을 좋아하는 이유인 것 같다.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그리는 꿈의 집이 있다. 나는 그 꿈의 집이 작고 아기자기 한 집이다. 모든 사람은 나처럼 자신이 그리는 꿈의 집을 그리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강아지를 좋아하는 사람은 큰 마당을 가진 주택을 그리고, 작은집에 많은 사람과 함께 살아온 사람은 내 공간을 가지는 큰집을 그리고, 예술가를 꿈꾸는 사람은 작업실이 딸린 복층의 집을 그리는 등등 다 가지각색의 집과 가지각색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렇게 많은 집들 가운데 요즘 들어 나처럼 작은 집을 그리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나는 것 같다. 그 이유들을 사회적 이슈와 연결 시켜보니 내 눈에는 두 가지 이유가 가장 컷다.첫째, 결혼생활을 원하지 않는 싱글족이 많이 늘어나면서 작은 집을 많이 찾는다. 이 트렌드는 일본에서 먼저 시작된 듯 하다. 일본은 1인 가구 비중이 전체 인구의 30%를 넘었다고 한다. 그 만큼 혼자사는 싱글족이 계속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며 혼자 사는 사람들을 위한 작은 공간을 이용한 작은집을 많이 찾는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이러한 일본의 흐름에 따라 1인가구가 늘었다. 1990년대에 비해 지금의 1인가구는 4.4배가 늘었고 ‘솔로 이코노미’ 라는 신조어가 생겨날 정도 급증하는 추세이다. 싱글족은 아무래도 자기 지향적이고 저가 지향적이고 편리지향적인 공간을 원하기 때문에 큰집보다는 작은집을 원하는 사람의 비율이 많다. 일본만큼은 아니지만 우리나라도 싱글족에 맞춘 작은주택들이 도심 거주지에 많이 지어지고 있다. 사실 이 사회적 현상으로 인해 작은집을 늘어나는 현실이 바람직한지는 모르겠다.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없는 사회적 현상인 듯 하다. 하지만 작은 주택집이 늘어난다는 현상은 그 만큼 자기 혼자만의 공간을 실현 시키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고, 그만큼 자신이 가지는 공간에 대한 질을 높이고 어떠한 방식이든지 자신의 공간에 대한 고민을 한다는 것이다. 건축을 전공하는 나로서는 이러한 변화는 반가운 소식이다. 나는 싱글족으로 살아갈 마음도 없고 내가 꿈꾸는 작은집의 스케일은 1인가구의 스케일이 아니지만, 나와 같이 작은집에 대해 열망하는 사람이 많은 것은 왠지 기분이 좋다.둘째, 적은 돈으로 자신의 집을 짓는 땅콩집의 열풍이다. 누구나 알다싶히 우리나라는 아파트 공화국이라고 불릴만큼 아파트가 주거형태의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이러한 아파트 생활에 지친사람들이 도심교외지에 땅콩집을 하나둘씩 지어가면서 땅콩집촌을 만든다고 한다. 사실나도 작은집에 대한 이미지만 보다가, ‘두남자의 땅콩집 짓기‘라는 책을 읽으면서 땅콩집을 알게되었다. 그 책을 읽은 후에 작은집에 대해 더 관심이 커진 것 같다. 하지만 최근에 들은 소식은 이 땅콩집 때문에 설계수완이 더 적어졌다고 한다. 건축설계를 하는 나로서는 슬픈소식이긴 하지만, 난 이렇게 늘어나는 땅콩집이 내 꿈을 실현 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키워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아파트 문화는 사회적으로 반영된 거주지의 형태이다, 그 만큼 대단하고 효울적인 거주형태이기도 하지만 지나친 아파트의 급증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하나의 방법이 땅콩집이다.위에서 말한 사회적 이슈들로 인해 작은 집이 늘어 간다. 사회적 이슈가 아닌 작은집에 대한 철학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공간이 커지면 커질수록 그 크기에 맞게 자꾸 뭔가를 채우고 뭔가를 채운다는 것은 소비를 한다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진다. 결국 불필요한 소비는 낭비를 불러 일으킨다는 말이다. 반면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소비에서 행복을 찾고 삶의 목표를 집을 더 크게 짓는 것에 둔다. 작은집에 살게 되면 우리 삶에 정말 필요한 것들만 채울 수 있고 불필요한 소비는 하지 않는다는 것은 작은집을 열망하는 사람에 대한 효율적이고 무소유적 철학이다. 하지만 내가 작은집을 좋아하는 이유는 사회적 이슈의 이유에서도 아니고 딱히 무소유적 철학의 이유도 아니다. 내가 작은집을 좋아하는 이유는 재미있기 때문이다.내가 작은집을 좋아하는 이유는 심오한 이유도 아니고 그냥 단지 재미있기 때문이다. 건축과를 들어온 이유도 이러한 작은건축 속의 재미 때문이다. 내가 생각할 때 작은집은 큰집보다 훨씬 건축적으로 재미있는 요소를 많이 지닌다. 작은 공간에 효율적인 공간의 배치나 가구의 배치로 인해 이 작었던 공간은 무궁무진한 변신을 하게되고 신비한 공간으로 태어난다. 이러한 재미 때문에 난 작은집에 미쳐있다. 공간을 가지고 논다는 표현이 적합한 것 같다. 물론 큰집은 가지고 놀만큼 매력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단지 작은집은 큰집보다 더 재밌다는 것이다. 가구의 배치나 장치적 요소를 이용해서 작은 공간을 효율적으로 극복하고, 극복했을 때의 그 희열의 기분은 말할 수 없을 만큼 값지다. 이것이 내가 말하는 작은 건축의 매력이다. 마치 놀이터와 같은 작은집의 공간은, 공간에 대한 재미를 더하고 효율의 정점을 찍는다는 것이다. 여기서 작은집에 대해서 간과해서는 안 될 점은 내가 추구하고 꿈꾸고 열망하는 작은집은 좁은집이 아니다. 좁은집과 작은집은 전혀 다른 말이다. 작은집은 집의 면적은 작지만 좁아지지 않게 하기 위해 건축가의 노력을 담아낸 작품이고 좁은 집은 이러한 고려없는 컨테이너 박스와같은 공간이다. 그래서 작은집은 많은 요소를 필요로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나는 작은집은 큰집보다 훨씬 설계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공간의 요소적인 섬세함을 더필요로 하고 또 효율을 생각 해야하기 때문이다. 작은집은 건축가를 괴롭힐 수 있는 동시에 건축가에게 섬세함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라고 본다. 작은집은 큰집보다 똑같이 주어진 시간에 더 섬세함을 담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그럼 나를 건축과로 끌어들이고 그만큼 나를 미치게 한 작품을 보자.대부분의 작품들은 작은집의 천국인 일본의 작품이다. 소개할 작품은 22평규모에 설계된 3층짜리 집이다 별다를 것 없어 보이지만 내부는 말 그대로 경이하다. 대부분의 작은집이 그런 것처럼 작은 공간을 쪼개는 방법으로 활용도를 높혔고 커플과 아이가 있는 가정을 위해 설계되고 22평임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작은공간을 효율적으로 요리했다. 작은 공간에 아이를 위한 공부방, 다락방, 차고, 테라스 다다미방과 같은 여러 가지공간을 제시했다. 이공간에는 바닥의 레벨차를 다양화 하는 스킵플로어 방식으로 구별하고 계단과 사다리라는 요소를 통해 동선을 이어주고 아파트나 주택에서 일반화된 벽과 문의 사용을 줄이고 오픈 플랜의 구성을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대부분의 작은집들은 아이를 가지지 않는 부부이거나 1인을 위한 집인데 이 집은 특이하게도 아이가 있고 아이가 커도 충분히 사용할 수 있는 공간까지 계획을 했다. 아이를 가진 가정은 작은 집을 택하지 않는게 대부분이다. 아이가 자랐을 때는 이사를 가야하는 번거로움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한 현상까지 생각한 건축가의 섬세함을 찾을 수 있었다. 작은집의 특징은 다른 큰 주택들은 공간을 자세히 표현하기에는 여러 가지 사진이나 도면들이 필요 하지만 작은집은 집의 내부를 표현하기에는 많은 사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특히 이작품은 세가지 사진만으로도 표현가능 한데, 첫 번째 사진은 집의 메인 파사드인데 그냥 봐도 작은 대지위의 작은 집이다. 두 번째 상부 사진은 거실인데 작은집을 넓게 만들어주는 큰 창이 요소로 사용되었다. 저사진이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이다 복층구조와 큰 창은 작은집에 등장하는 단골 요소이다. 오른쪽 하단의 사진은 다다미 방과 그 앞에 있는 아이를 위한 피아노 공간이다. 작은집임에 도 불구하고 피아노를 칠 수 있는 공간까지 배려한 건축가의 세심함이 묻어난다. 이집은 전형적인 작은집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는 요소들을 많이 가졌다. 사다리, 거실을 비추는 큰창 그리고 복층. 사실 22평이면 그리 작은 평수는 아니다, 하지만 22평의 대지에 모든 요소를 다 넣었다 심지어 차고나 다락방 테라스까지 없는게 없다. 주택이지만 모든 것을 가지는 작은집의 매력은 이렇듯 공간짜임새의 컴팩트함에 있다.
시간의 흔적으로 다시 태어난선벽원(구 경성 농업학교)를 다녀와서.따뜻해져가는 햇살에 마중나와 얼굴을 붉으스름 하게 붉히는 울긋 불긋한 선벽원은 서울 시립대 한 구석에 자리잡고 있었다. 지긋이 나이든 할아버지의 얼굴을 보는 듯 오래된 외관을 가지고있었다. 오랜 시간동안 그 자리를 지켜온 선벽원은 오랜시간을 머금은 시립대의 역사적 건축물이다. 우리는 운이 좋게도 선벽원을 사회적 불도저들로부터 구해내신 이충기 시립대 건축대학 교수님의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이충기 교수님은 선벽원의 리모델링 디자인을 모두 총괄 하셨다고 한다. 사실 선벽원은 아무런 생각없이 허물어지거나 증축 될 위기에 놓여있었지만, 역사를 머금고 소중한 장소성을 지닌 선벽원을 한순간에 잃는다는 생각에 이충기 교수님은 앞장서 나섰다고 하셨다. 새로운 건축물을 짓고 새로운 장소성을 부여하고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일을 하는 사람이 건축가이다. 하지만 오래된 것을 지키는 것 또한 건축가의 크나큰 임무임을 몸소 우리에게 보여주신 분이였기에 내 머릿속에 이충기 교수님은 또 다른 색을 지닌 영웅적인 건축가였다. 이충기 교수님은 건축에서 가장 힘든 것이 시간의 흐름을 간직하고 흔적이 묻은 공간을 디자인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그 공간에 서있었다.리모델링은 여러 가지 종류가 있겠지만. 아마도 선벽원과 같이 오래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노화되고 그 시간만큼이나 공간들의 여러 가지 요소들이 제기능을 하지 못해서 리모델링 하는 건축물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선벽원은 다른 오래된 건물들의 경우와는 다르다. 선벽원에게는 역사성이있고, 장소성이 있고 마지막으로 상징성이 존재한다. 선벽원은 이 세가지 때문에 다른 흔한 리모델링과는 다른 의미를 가진다. 서울 시립대의 역사를 고스란히 가지고 있고 100년가까이 되어가는 서울시립대 역사의 상징물이기 때문에 그 가치는 돈으로 사지 못할만큼 소중하다. 그러므로 선벽원의 리모델링은, 노후화된 건축적 요소들과 기능들을 가장 현대적이고 편리하게 바꾸는 것이 아닌, 건물이 새겨진 흔적들을 최대한 남기면서 그 기능을 정상으로 작동하게 하는 것이 가장 궁극적인 목표인 셈이다. 그리고 이충기 교수님은 선벽원을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을 되돌린듯한 공간으로 그려놓으셨다. 사실 나는 선벽원의 문으로 들어서기 전까지는 아무생각이 없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한번도 와보지 않은 공간을 찾아서 오느라 힘들기도 했고, 사실 내가 알고있는 리모델링의 얕은 지식으로는 그냥 뻔하고 보편적인 또 다른 리모델링일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들어가는 순간 어두운 천장 속에서 내려온 펜던트 조명이 붉고 거친 벽돌의 표면을 쓸어 내리고 있었다. 마치 19년대 초의 이야기를 다루는 드라마들속에 나오는 한장면속에 들어와있는 듯 했다. 가장눈에띄는 것들은 벽돌, 높은 천장에 자리잡고있는 트러스구조 그리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쓰여진 가공되어지지않은 나무들과 그들이 구축된 방식들이었다. 물론 많은것들이 공간을 사로잡았지만 그중 가장 내 눈을 사로잡았던 두가지로 정리해보았다.1. 시간의 흔적이 묻어있는 벽돌공간을 가장아름답게 만들었던 벽돌이 이공간의 주역중 하나였다.오래된 벽돌들은 깔끔하지 않고 지저분했다. 우리가 현대에지은 조적식 건물이 가지고 있는 절제있고 깔끔한 벽돌을 찾기가 힘들었다. 부서지고, 갈라지고 본연의 색을 잃은 벽돌들에는 유난히 하얗고 회색의 무언가가 많이 묻어있었다. 나는 이하얀색이 벽돌의 색과 뿜어 내는 따뜻함이 좋았는데, 이충기 교수님의 말씀을 듣고는 이것들이 만들어내는 분위기가 당연할 수 밖에 없었다고 생각했다. 처음 이 건물을 지을때 벽돌을 막쌓기 공법으로 쌓고 그 표면에 시멘트를 발랐고 리모델링을 하면서 벽돌을 드러내기위해 시멘트를 까내다 보니 벽돌에서 완벽하게 떼어낼 수 없었던 모르타르가 있었던 것이다. 시간의 멋이다. 마치 벽돌이 세월을 보내면서 겪어왔던 고난과 역경을 자연스럽게 표현해 놓은 듯 했다. 시간의 멋, 교수님은 이것을 시간의 멋이라고 표현하셨다. 온몸에 전율이 오를만큼 격하게 공감했다. 이 아름다운 시간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디자인이었다. 그외에 벽돌벽에 묻은 여러가지 흔적들은 선벽원을 보는 내내 우리를 즐겁게 했다. 그리고 그벽돌들과 어울렸던 요소는 다름아닌 내부개구부에 설치된 유리였다. 투명하고 깨끗한 유리는 프레임 없이 자리잡고있었는데 허공에 떠 인는듯한느낌을 품고있었다. 거친벽돌들과 이질감 없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2. 오래된 트러스트러스 공간은 선벽원의 꽃이다. 트러스는 오래된 공간을 답답하지않고 자연그대로의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트러스가 만들어낸 공간은 소리는 공간의 균형에 이바지 했다. 또한 묘했던 것은 트러스 구조 가까이에 위치한 현대기술의 산물인 설비들이 형태적으로나 재료의 느낌으로나 대비를 이루었지만 뭔가 신기하게도 조화로웠다. 다른 목조 트러스 구조와 달리 눈에 띌 수 있었던 것은 트러스구조를 이루고 있던 가공되지않은 목재 때문이었다.부끄러운 일이지만 내 생에 이런 천장 공간과 이런 트러스는 본적이 없다. 목재를 가공하지 않고 나무 본래의 형태, 본래의 껍질 그대로가 공간의 온도를 더 높혔다. 사실 지붕 밑에 달려있는 저 창도 한 몫 했던 것 같다. 지붕밑 트러스 공간을 구석구석 밝혀 마치 공간이 숨기고 있던 은밀함을 낱낱이 드러내는 것 같았다. 부재마다 가지고 있는 다른 질감, 다른 선 이모든것들이 창으로 들어오는 빛에 벌거벗겨졌다. 그리고 벽돌과 함께 공간을 주황빛 따뜻함으로 데우고 있었다. 이공간을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공간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본다. 나는 선벽원의 공간을 차갑게 설명하고 싶지않았다. 감성적으로 묘사하고 싶었다. 그 만큼 내감정을 흔든 따스한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내가 건축학과에 들어와서 옆에서 보이는 공간의 아름다움을 느껴 본적이 몇번 없다. 이공간은 두고두고 기억될 것같다.
점프(jump)공연 본 작품에 대한 소개 (연혁 및 간단한 소개)점프는 마샬아츠를 소재로 한 뮤지컬이다. 점프는 2002년 12월 ‘별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초연을 한 후 2003년 4월 해외 진출을 목적으로 약간의 내용 수정 후‘점프’로 작품명을 변경했다. 이후 국내에서 여러 곳에서 작품성을 인정받고 2005년 이스라엘 예루살렘 페스티벌에서 초청작으로써 첫 해외공연이 시작되었다. 그 해 8월 세계 최대의 공연문화축제인 영국 에든버러프린지 페스티벌에 참가하여 총 1,800여 편의 참가공연들 중 박스 오피스 1위를 차지하는 대단한 업적을 이루어냈고, 유럽의 브로드웨이라고 불리는 웨스트엔드에 진출하여 10주간의 장기 공연동안 객석 점유율 90%를 기록했다. 그 외에도 16개국 해외 공연 투어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고 결국 2007년 10월 세계최고의 공연시장인 미국 브로드웨이 시장에 진출하게 된다. 이후 국내 공연의 두 번째 오픈 런 장기공연이지만 세계적인 공연 매니지먼트 회사인 CAMI와 라이센스 계약을 맺고 브로드웨이에 수출된 첫 번째 국내 공연이라는 점에서 큰 의의를 지니고 있다.공연 ‘점프’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무술 합이 117단인 일가족의 집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그린다. 특별한 하나의 내용이 전개 되는 것이 아니라 대략 4가지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진 넌 버벌(non-verbal)비언어 뮤지컬이다. 극은 말 그대로 대사가 없는 뮤지컬이다.작품에 대한 비평내용‘점프’는 뮤지컬을 좋아하지 않는 나조차 알고 있는 유명한 공연이다. 어렸을 적 처음 본 뮤지컬이 ‘난타’였는데, 난타에 대한 인상이 너무 깊어서인지, 점프를 보러간다는 말에 엄청난 기대와 설레임을 가졌다. 하지만 뮤지컬 ‘점프’는 나를 실망시켰다. 문화공간 탐방 수업을 들으면서 본 공연 중 가장 실망스러운 작품이었다. 그 만큼 기대가 커서 그랬는지, 실망도 매우 컸다. 이유를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첫째, 스토리의 단순함이다. 공연에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점프’가 코믹 뮤지컬이라필요로 하는 무술이고, 세트장에서 이루어지는 공연이라서 장치적 요소나 소품을 이용한 특이하고 참신한 무술을 기대했었다. 당연히 소품을 사용한 공연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 또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무술이었다. 마샬아츠와 공연의 조화라고 하면 일반적인 무술보다는 무엇인가 특별함을 가질 수 있을 법한데, 이점 또한 너무 아쉬웠다.물론 좋은 점들도 많았다. 수출을 위해 만들어진 작품이고, 전용 공연장이 있을 만큼 오랜 시간 동안 수정되고 다듬어져온 공연인 만큼 공연의 구성자체가 빈틈이 없었다. 예를 들면 아무래도 마샬아츠를 주로 하는 공연인 만큼 에피소드 중간중간에 준비할 시간이 길어지는데, 이때 나오는 무술 고수 할아버지가 그 사이 시간을 지루하지 않게 만들어 준 것 같다. 또한 할아버지의 깨알 같은 코믹 연기와 관객들 간의 소통을 통해 공연 전체의 완성도를 높혔다.아무래도 좋은 점들 보다는 아쉬운 점들이 더 컷기에 조금 실망한 공연이었던 것 같다. ‘점프’라는 공연이 해체되지 않고 계속 이루어진다면, 이러한 점들을 고려해 보고 다듬어 나가면 더욱 양질의 공연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무대내용은 실망했었던 반면, 무대의 구성은 확실히 탄탄해 보였다. 일단 가장 먼저 눈에 띄었던 것은 마샬아츠가 공연의 주가 되는 만큼 무대공간이 무술을 하는 배우들에게 최적화 되어있다고 느꼈다. 일단 가장 큰 배려는 바닥이다. 무술을 하다보면 높이 뛰게 되고 벽을 타고 굉장히 높은 곳에서 떨어져서 바닥에 착지하는 장면도 많다. 이런 장면들을 보면서 무술에 놀라기도 했지만, 발목관절이나 무릎에 너무 무리가 오겠다 싶었지만 수업이 끝난 후, 바닥 충격완화를 할 수 있게 특수 기법으로, 딱딱하지 않고 스프링처럼 반동을 줄 수 있도록 고안된 무대라는 것을 알게 되어 공연에 차질이 없는 탄탄한 무대라고 생각했다. 무대바닥 뿐만 아니라 소품들도 간단 명료하게, 실질적으로 쓰이는 소품 말고는 아무것도 무대에 존재하지 않았다. 무술을 하기 위해서는 무대에 거치는 것이 없어야 하고, 혹여나 발생할 수결론을 내렸다.연출비언어 연극은 연출에 있어서 대사가 있는 공연에 비해 훨씬 힘들었을 것이다. 대사를 통해서 배우의 감정이 표출되고 대사에 따라 무대의 모든 감정이 잡히는데, 대사가 없었으니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기 어려웠을 것 이라고 예상한다. 이 공연이 처음 ‘별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초연을 한 후 해외 진출을 목적으로 약간의 내용을 수정했을 때 만약 대사가 있는 공연이었으면 오히려 해외에서 그러한 결과를 얻지 못했을 수 도 있다. 무술과 의성어 배우들의 섬세한 움직임만으로 세계인들의 공감을 얻어내고 언어의 한계를 넘었기 때문에 이 뮤지컬은 성공했을 것이다. 무술자체를 공연에 주가 되는 언어로 사용하는 사례들은 흔치 않아서 연출에 참고할만한 자료들이 많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연출에 있어서 스토리와 무술의 접합, 그에 따른 무대장치들과 조명, 관객들과의 소통, 이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루어야 되는 과제를 해결한 것이 놀라웠다. 특히 공연 ‘점프’는 마샬아츠가 주가 되는 공연인 만큼 모든 것들이 안전과 연결이 된다. 공연 중 한명만 다쳐도 공연은 엉망이 되어버린다. 결국 배우들의 안전은 연출자의 손에 달려있는 것이다. 이제까지 이 공연이 브로드웨이에 진출하는 대업을 거두고 아직도 외국인에게 사랑받고 있는 것은 탄탄한 연출의 덕이 아닌가 싶다. 안전을 우선으로 두고 무대부터 의상 까지 모두 모두 배우의 안전을 먼저 생각했기 때문에 배우들도 연출자가 의도한 기대치에 부응 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공연의 특징 중 무술 다음으로 가장 일반적이지 않은 것은 역시나 비언어(non-verbal)퍼포먼스 라는 것이다. ‘넌버벌( Non-verbal : 대사가 없는)’퍼포먼스의 개념은 대사가 아닌 소리와 몸짓, 리듬과 비트만으로 의도를 전달해 나가는 극형식을 의미한다. 이러한 대사가 없다는 점은 배우들과 관객 사이의 언어장벽이 없다는 것을 말한다. 결론적으로 비언어적 퍼포먼스는 움직임과 음악이라는 인류 공통 언어로 세계적으로 통용된다는 이야기이다. 기존의 공연 예술과 같이 이 코믹 뮤지컬이고, 무술이라는 크나 큰 무기가 있다. 무술과 함께 소리를 지르고 서로를 가리키며, 웃고 얼굴을 찌푸리면서 당시의 감정을 표현한다. 그래서인지 대사가 없음에도 하나도 어색한 적이 없었다. 어쩌면 무술의 섬세함으로 감정을 표현하고 사람들을 웃게 한 것이 그 비법이 아닌가 싶다. 내가 공연을 보러갔을 때도 절반이 넘은 자리를 외국인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외국인들은 공연도중에 환호를 지르고 배우들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반응했다. 마치 관객들의 반응에 따라 배우들의 움직이는 더 흥에 차는 것 같았다. 공연장에 있던 사람들은 국가도, 언어도, 피부의 색도 다른 사람들이지만 공연을 보는 그 순간만큼은 배우들의 연기에 하나가 되고 있다는 사실에 뭔가 묘한 느낌이 들었다. 그 만큼 배우들의 연기는 빈틈없었다.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비언어 연극을 한번 체험해 보고 싶다. 대신 그때는 코믹이 아닌 다른 장르였으면 한다. 스토리 자체는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배우들의 연기로 인해서 비언어 연극에 대해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다. 말하지 않고 사람을 감동시킨다는 것은 참 힘듦에도 ‘점프’의 그들은 이미 관객들을 대사 없는 연기로 감동을 선사하고 있었다.기획점프는 난타와 함께 우리나라 뮤지컬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대단한 작품이다. 그 뒤에는 많은 사람들의 노력의 땀방울이 있다. 하지만 그 모든 것 의 시작은 기획에서 시작된다. 기획이 있음에 지금의 ‘점프’도 있는 것이다. 뮤지컬 ‘점프’의 탄생을 이루어낸 사람은 문화 예술 제작 컴퍼니의 김경훈 대표는 처음부터 수출을 목표로 만들어 냈다고 말한다. 그 과정에서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라는 말처럼 한국을 대표하는 태권도를 모티브로 전 세계인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마샬아츠를 택했다고 이야기한다. 또한 내가 느꼈던 바 그대로 배우들을 다치지 않게 하는 것을 가장 최우선으로 생각한다는 마음가짐 자체가 이미 성공을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해외 수출을 목표로 한만큼 기획의 탄탄함은 다른 공연과는 전혀 달랐다. 무술을 하는 공연팀인그가 본 공연에 감명 받아 그가 직접 그의 생각을 담은 공연을 기획하고 싶다는 꿈으로 출발 한 것이라 더 값진 뮤지컬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그는 우리의 한류문화 컨텐츠 수출에 이바지 한 애국자가 된 것이다. 분명 이러한 무술을 주제로 한 공연을 생각해본 사람은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생각만하고 도전하지 않았다. 생각과 다짐을 기획이라는 도전으로 만들어낸 그에게 박수를 치고 싶다.내가 이 극장의 극장장이라면.(본인의 구상)점프를 본 후 처음으로 전용극장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곳의 극장은 ‘점프’공연의 전용극장으로 종로구에 위치하는 건물에 있었다. 공연장의 위치도 그곳의 시설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조금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한 건물에 다른 여러 업체들과 같이 쓰는 게 아니라 오직 ‘점프’를 위한 건물을 지으면 어떨까 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엄청난 예산이나, 성공의 가능성 그리고 모든 면에서 어려움이 많을 것이라 예상된다. 말처럼 쉽게 되지 않는 다는 것은 알지만 어디까지나 나의 생각이니 말이다. 현재의 전용극장은 외부에서 전혀 점프의 공연이 이루어지는 곳인지 알 수 가없다. 단지 몇 개의 간판들만이 공연을 알리고 있을 뿐 종로의 어느 건물들과 같이 서 있다. 내가 극장장이라면 오직 ‘점프’를 위한 공연장이 아니더라도 이곳이 전용극장이라는 것을 알릴 수 있는 충분한 장치적 요소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현재 공연장의 위치가 외국인들이나 국내의 관객들도 찾기 쉬운 곳은 아니다. 결국 접근성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접근성은 공연장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기 때문에 간과하면 안된다. 불가피하게 접근성이 좋지 않은 곳이라면, 외부에서 이곳이 전용극장인지 알 수 있도록 하면 조금이라도 접근성에 플러스가 될 수 있다. 이곳을 많이 지나가는 편인데 이곳이 점프를 공연하는 곳인지 전혀 몰랐던 나의 경험에서 나온 견해이다. 또한 공연장 로비 내부도 홍보가 용이하게 조금 더 꾸몄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외에 공연장은 쾌적하고 넓어서 공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