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muel P. Huntington 의‘문명의 충돌’ 에 대한 서평담당교수 :학과 :학번 :이름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이라는 책을 소제목으로 간략하게 살펴보면, ‘문명들의 세계’라는 소제목 부분에서는 문명이 주목을 받게 된 역사적 배경과 냉전에서 탈냉전 시대를 거치며 변화된 문명의 체계에 대해서 말한다. 두 번째 소제목인 ‘변화하는 문명의 균형’ 부분에서는 과거에는 강대국인 미국을 중심으로 모든 부분에서 서구 문명이 압도적인 우위에 있었지만 현재는 비서구 문명 중에서도 특히 아시아 문명의 힘에 주목하게 되었음을 이야기한다. 다음으로 세 번째 소제목인 ‘문명의 새로운 질서’ 부분에서는 세계의 정치가 문화의 경계선을 따라 재편되고 있음을 언급하며 지역주의와 지역화에 대해서 초점을 맞춘다. 또한 네 번째 소제목 ‘문명의 충돌’에서는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분쟁들 중에서 갈등이 가장 첨예하게 드러나는 관계는 문명과 문명 간의 관계임을 주장하며 이슬람 문화와 서구문화, 그리고 중화 문화의 갈등에 중점을 두고 글을 전개해 나간다. 마지막으로 다섯 번째 소제목 ‘문명들의 미래’ 부분에서는 앞으로 전개 될 문명 간의 갈등에 대해서 미시적 차원, 거시적 차원으로 분류하며 미래의 바람직한 문명들의 공존을 위해 모든 세계인들이 노력해야 함을 역설한다.지금까지는 ‘문명의 충돌’ 책의 소제목을 통해 책의 내용을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다음으로는 ‘문명의 충돌’이라는 책에서 저자인 헌팅턴이 말하고자 하는 바에 대해 살펴보며 그의 주장에서 타당한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 필자의 의견을 곁들여 이야기하고자 한다.40년이라는 오랜 기간 동안 지속되어 온 미국 중심의 민주주의 진영과 소련 중심의 공산주의 진영의 냉전이 막을 내리면서 전 세계는 탈냉전 시대에 들어서게 되었다. Cold War, 즉 냉전이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데올로기의 대립으로 인한 보이지 않는 전쟁은 가시적이지만 않을 뿐 여느 무력 전쟁만큼 치열했다. 그러한 시대가 짧은 기간이 아닌 오랜 기간 동안흐름에서는 모든 것이 하나가 되었으며, 문명에 있어서는 이분법이 아닌 다분화 된 모습을 보여주게 된 것이다. 그래서 후쿠야마는 이렇게 탈냉전이 도래한 사회에서는 더 이상 변증법적인 작용이 일어나지 않게 되었다며 변증법의 작용이 없는 역사는 의미가 없다는 ‘역사의 종말’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공산주의의 붕괴가 과연 공산주의 가치관의 소멸을 의미하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수 있으며, 정치적 이데올로기보다 더 첨예한 갈등을 일으킬 수도 있는 다른 분야, 특히 종교적 분쟁에 대해서 간과하고 있다는 점에서 후쿠야마의 주장은 그다지 설득력 있게 들리지 않는다. 바로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아닌 문명이라는 다른 분야에 대해서 주목하여 미래의 문명 간의 갈등에 대해 전망한 것이 Samuel P. Huntington의 ‘문명의 충돌’이라는 책이다.냉전이 흔히 말하는 평화와는 대립되는 언어 분류에 속하지만, 냉전 체제 하에 있기 때문에 서로 이해관계를 직접적으로 자극하지 않음으로써 역설적이게도 냉평화(Cold Peace)를 가져왔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탈냉전 시대를 맞이하게 된 현재의 세계는 냉전 시대에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눌려 억압되어 있던 갈등 요소들이 화산처럼 폭발해 나올 것이라고 헌팅턴은 주장한다. 필자도 역시 현재 세계가 정치적, 경제적 분야에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맞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문명 또는 문화라는 요소가 세계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음에 동의하며 냉전체제의 종식이 또 다른 불안정한 역사의 시작이라는 주장이 설득력 있어 보인다. 예를 들어 겉으로 보기에는 무력 전쟁으로 보이는 영토를 차지하기 위한 국가나 문명 간의 대립도 역시 문화적인 요인이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영토 분쟁과 같은 충돌은 문화적인 요인이 크게 작용했다는 것 보다는 경제적인 요인이 더 많은 영향력이 끼친 결과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주로 영토 분쟁이 일어나고 있는 지역에 대해서 살펴보면 우선 우리나라 동해의 독도, 남중국의 해의 서사군도 및 남사군도수 있다. 냉전 체제의 종식으로 인해서 세계 정치에서 이데올로기적 요소가 격하된 것은 사실이지만, 경제적 지구화의 시대에서 정치와 경제의 의미가 축소된다는 헌팅턴의 주장은 무리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그는 전 지구적인 경제적, 사회적 불평등을 거역할 수 없는 숙명이라고 이해하면서 가장 위험하고 첨예한 갈등은 여전히 상이한 문화적 배경에 속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날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사회적 불평등과 같은 문제처럼 사회가 주목하고 있는 사건에 대해 그가 보여주는 이러한 태도는 사회를 관찰하고 연구하는 사회과학자로서 부족한 부분이 아닌가 생각한다.헌팅턴은 전 세계의 문명을 7개의 문명으로 나누고 있다. 이렇게 일곱 개로 분류되어진 문명은 주로 종교에 초점을 맞춘 것인데, 모든 문명은 1. 서구 기독교 문명 (유렵, 북미, 오세아니아) 2. 동방 정교 문명(슬라브, 그리스) 3. 힌두 문명(인도) 4. 이슬람 문명(북부아프리카~중앙아시아~동남아시아 일부) 5. 일본 문명 6. 유교 또는 중화 문명(중국을 비롯한 그 주위의 동아시아 및 동남아시아) 7. 아프리카 문명으로 나누어진다. 헌팅턴에 의해서 이렇게 문명을 분류하여 세계를 이해하는 패러다임은 미래의 사태를 예측하고 각 국가 별로 정책을 결정하는데 있어 필요한 지침을 제공하여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지혜로운 분석들을 내놓을 수 있게 된다. 발전의 결과로 나타난 다문명 체제의 확산은 자문화주의적인 관점에서 자신들의 문명만을 문명으로 인정하는 유일 문명적 관점에 일침을 놓는 사건이 되었다. 그러나 세계를 종교에 주목하여 여러 문명으로 나누는 헌팅턴에 주장에 의문이 드는 점이 또 하나있다.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세계화 인한 지구촌 시대가 도래한 지금, 이러한 그의 분류가 얼마나 현재 상황에 들어맞는가에 대한 의문이다. 과학기술의 발달과 통신의 발달로 인해 전 세계가 현재 지구촌화 되어 가고 있으며, 다양한 무역을 통해서 국가 간의 또는 문명 간의 거래가 확산되고 는 학자들의 견해가 더욱 다탕하게 받아들여진다.또한 헌팅턴은 문명의 충돌에서 문명을 일곱 가지로 분류한 자신의 견해를 뒷받침하기 위해 극적인 종족 갈등을 예시로 많이 제시한다. 예를 들어 이슬람 지역의 분쟁, 보스니아와 헤르체코비나, 코소보 지역 등의 갈등을 제시하는데, 이는 앞에서 필자가 언급한 것처럼 오로지 종족의 문제만이 얽혀있는 것이 아니다. 형식적으로는 문명적, 종교적 갈등의 형식을 띄고 있지만 그 뒤에는 전쟁을 통해 겪은 아픔을 반복하지 않기 위한 미시적인 부분에서부터 경제위기, 정치적 불안과 같은 거시적인 문제까지 다양한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일어난 종족 갈등이었던 것이다.문명의 충돌에서 헌팅턴이 주로 주목하고 있는 문명은 서구의 문명보다는 비서구적 문명 특히, 그 중에서도 중국과 일본이 중심이 되는 아시아 문명과 중동 국가들이 중심이 되는 이슬람 문명으로, 이들 문명에 관심을 가지고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미국과 유럽은 포함하는 서구 문명은 과거에서부터 원래 막강한 힘을 가졌던 문명이고 현재도 그 힘이 전 세계에 영향을 끼칠 만큼 강대국의 문명이지만, 아시아 문명과 이슬람 문명의 힘이 서구 문명에 대항하여 과거에 비해 성장하게 되면서 상대적으로 서구 문명의 힘이 약해졌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비서구 사회의 문명도 근대화를 통해 성장하였는데, 구체적으로 ‘이슬람화, 힌두화, 아시아화’ 라는 말을 통해 비서구 문명의 성장을 가늠해 볼 수 있다. 문화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문화의 성장이 힘의 성장을 의미한다고도 할 수 있기 때문에 앞으로 국제적인 정세가 어떻게 변화할지에 대해 학자들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문명의 충돌에서 헌팅턴은 앞으로의 정세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 아시아의 경제 성장도 빠르게 이루어지다가 점점 속도가 늦춰지면서 그 수준을 유지하듯이, 이슬람 문화의 부활 현상이나 아시아 문화의 부상도 어느 시점에 가서는 누그러지게 되며, 또한 이로 인해 이 두 문명이 서구 문명과 부합하게 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이지양한 가치 체계의 복잡한 상호 관계를 추구하는 평화이기 때문에, 서구 문명에서 자라온 헌팅턴이 이러한 관계를 인정한다는 점에서 그의 생각은 과거의 서구 중심의 학자들과는 다르게 조금 더 객관적인 입장을 취했음을 알 수 있다.헌팅턴이 말하는 문명의 충돌은 문명 간의 문화적 단층선에서 발생한다. 왜냐하면 우선 문명들은 각각의 고유한 역사, 풍습, 문화, 종교 등을 가지고 있으므로 다른 두 문명의 경우 문명의 모든 것을 포함하는 문화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 문화적 단층선에서 문명들은 충돌을 맞이하게 된다. 또한 세계 교류의 증가가 문명의 충돌이 극심하게 일어나지 않도록 한다는 견해도 있으나 이와 반대로 헌팅턴은 세계 교류의 증가는 자신들의 문명과 다른 문명을 접하는 계기를 만듦으로써 자신들의 문명과 타 문명의 차이를 분명하고 명확하게 알게 되어 오히려 다시 한 번 자신들의 것을 자각하게 되며 타 문명에 대해서는 적개심의 일어날 수도 있게 한다고 주장한다. 게다가 주권 국가로서 지위가 낮아진 국민 국가를 대체하여 그 자리에 종교가 들어가게 됨으로써 사람들의 인식에 종교가 자리 잡게 되고, 그렇게 의식 속에 뿌리박힌 종교는 다른 외부적인 요소에 의해 변화되기 쉽지 않으므로 다른 문명과 충돌이 일어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는 지역 경제 블록 형성에 있어서도 같은 문명에 속하는 나라들에 있어서 지역적 무역이 증가하게 되며 다른 문명을 가진 나라들과의 교류는 충돌로 인해 어려워질 것이라고 언급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가 비판할 여지가 있는 헌팅턴의 견해가 있다. 다른 문명을 가진 나라들과의 무역이나 그들과 경제연합을 만들어 성공한다는 것에 대해 비관적인 입장을 취하는 그의 주장이 바로 비판 대상이 될 수 있다.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고 냉전이 막을 내리기 전에는 오히려 지역적으로 인접한 국가들 간의 교류만이 있었으며, 다른 문명들과의 무역은 생각하지도 않았었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서는 지역적 접근에서 벗어난 탈지역적이며 다자주의적인 무역이 증가하고 있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