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떤 부모가 될 것인가● 서론“부모는 아이의 거울이다.” 라는 말도 있듯이 인간이 태어나서 최초로 만나게 되는 교사이자 성장과 발달에 있어 가장 큰 영향을 주는 부모의 행동 중요성을 함축하는 표현일 것이다. 자녀들은 그 부모의 행동 양식을 관찰하고 모방하면서 초기의 사회화를 시작하고, 부모의 자녀 양육방식과 관계에서 비롯되는 특성의 차이에 따라서 개인적인 성격이나 가치관, 태도에 지대한 영향을 받는다. 물론 과거와는 다르게 현대 사회에서는 텔레비전과 같은 대중매체가 빠르게 보급되어 아이들의 정서적인 면에 영향을 주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가정이라는 울타리와 그 속에서의 부모의 영향은 무시할 수 없다.그렇다면 바람직한 부모상을 과연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있을까? 아마도 불가능한 일이 아닌가 싶다. 좋은 부모의 모습은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자녀가 어떻게 느끼는가의 주관적인 느낌에 따라 다르게 비추어 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타인의 눈에는 완벽한 모습을 자랑하는 부모일지라도 그 자녀에게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존경받지 못한다면 과연 좋은 부모라고 할 수 있을까? 나는 단호하게 ‘아니다’ 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리고 세상에 완벽한 부모는 없다는 것과 그렇기에 우리에게 더 인간적이고 노력하는 부모의 모습이 있으며 그런 모습들이 우리 자녀에게는 더 아름답게 비추어진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나는 어떤 부모가 될 것인가나는 아직 부모로서의 역할을 해보진 못했지만 바람직한 부모상에 대해서 나름대로의 생각을 정리해 볼까 한다. 아이들을 기르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다만 바람직한 방향으로 기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닌 것이다. 이렇게 자녀를 올바른 길로 향하도록 노력하지만 그만큼 쉽지 않은 게 부모의 역할이라 생각한다. 자녀들이 부모의 뜻대로 행동하는 것도 아니고, 자녀들이 부모의 소유물도 아니기에 부모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한 것 같다. 내가 되고자 하는 부모의 모습은 정말 많이 표현할 수 있지만 크게 네 가지로 요약해 본다.첫째로, 아이들이 쉽게 다가올 수 있는 부모가 될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이는 부모와 자녀의 관계라 생각한다. 주변의 친구들을 보면 부모님을 어려워 해서 다가가지 못하고 방황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가장 가까운 사이인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어렵고 멀기만 하다면 진정한 부모의 교육이 이루어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귀 기울일 줄 알고, 언제나 아이들을 사랑으로 보듬어 줄 수 있는 부모가 될 것이다. 아이들이 힘든 일, 어려운 일을 겪었을 때 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용기를 줄 수 있는 부모가 될 것이다. 사춘기 때 아이들의 연애 상담 이야기까지도 귀 기울여 들어주고, 좋은 조언을 해 줄 수 있는 부모가 될 것이다. 아이들의 눈빛만 봐도 통하는 부모, 아이들의 마음을 알 수 있는 부모, 그렇게 아이들과 항상 가까이 있는 부모가 될 것이다.둘째로, 아이들의 재능을 살릴 수 있는 부모가 될 것이다. 요즘 조기교육부터 해서 자녀지도에 대한 우리 부모들의 교육열은 정말로 대단하여, 집집마다 자식 잘 가르쳐서 좋은 학교와 장래성 있는 직장에 보내려는 어른들의 경쟁이 치열하다. 그러나 극성에 가까운 교육열 때문에 청소년들에게 본의 아니게 심리적 부담을 주고 실패하게 만들거나 사회를 어지럽게 하는 일도 적지 않다. 내가 부모가 된다면 아이가 흥미를 갖는 부분이 무엇인지, 어느 부분에 소질이 있는지 함께 찾아나가는 역할을 해주고 싶다. 즉, 아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루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들어 줄 수 있는 부모상이다. 이는 첫 번째 부모상과 상통하는데, 아이들과 친화력이 없다면 아이들이 마음을 닫고 사소한 고민거리도 툭 털어놓지 않기 때문에 친화력이 바탕이 되어야 할 것이다.셋째, 자녀에게 모범을 보여줄 수 있는 부모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녀는 부모의 모습을 스펀지처럼 흡수하고 그대로 모방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항상 행동과 몸가짐을 조심하고 올바른 가치관을 심어주기위해 반복해서 지루한 설교를 반복하기 보다는 직접 몸으로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부모가 되어야 한다. 백문이 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사실 모범이라는 것이 말이 쉽지 실천하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자녀에게 좋은 역할모델이 되어줄 수 있는 부모가 바람직한 부모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자기가정의 진단과 향상전략● 시작하면서나는 수업을 듣는 가운데서도 나에게는 가족문제라는 것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레포트를 준비하면서 생각해보니깐 우리 가족에게는 너무 많은 문제점들이 불거져 있었고,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진지한 고민을 해본 적이 없을 뿐더러, 너무 당연한 일상 습관이라는 형태로 남은 채 있었던 것 같다. 사실 불거져 있는 가족 간의 문제가 없으면 가족문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가정폭력 등의 문제를 가진 사람들의 가족문제는 그 중요성이 강하다 생각하고, 표면적인 문제가 없는 가정은 가족문제가 없다고 할 수 있지만, 우리는 그런 드러나지 않은 문제들에 대해서도 고민해 봄으로서 더 나은 가정을 만들어 갈 수 있게 될 것이며 이러한 논의를 통해 해결점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이번 기회를 통해 강의 시간에 접해봤던 내용을 가지고 우리 가족을 돌아보며 어떠한 문제점들이 있고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며 우리가족의 문제점을 파악해 보고자 한다.● 자아방어기제와 성격문제자아방어기제란 불안감을 느낄 때 나타나며 자신을 보호하는 기제라고 나와있다. 나와 동생은 공통적으로 ‘도피’의 특징을 나타낸다. 청소년기의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면서 동생과 나는 외모에 대한 관심도 부쩍 늘어나게 되고, 학교에서 경험하는 일, 등등의 스트레스를 더욱 신경질적으로 표현해 내는 경향을 보였다. 나보다 동생이 더 심하였는데, 이러한 성격은 엄마의 시시콜콜한 이야기와 부딪히는 경우가 생겼다. 모든 일에 민감하고 자아가 불안했던 청소년 시기에 그러한 일을 많이 겪었던 동생과 나는 꾸중을 들을 때 그 자리에서 대화를 통해 해결하기 보다는 그 자리를 떠나 피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럴 때 마다 방으로 들어가서 침대에 엎어져 있거나, 혼자 컴퓨터를 하는 둥 하는 행동을 보였던 행동이, 자기방어기제의 성향임을 알 수 있다. 집안에서 내 방은 불안정을 해소시켜줄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던 것 같다. 그 당시 나는 불안감을 해소시키고 안정을 찾기 위해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보다는 당장 그 자리에서 피하는 길을 택하였고 그로인해 잠시나마 안정을 되찾은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성향은 반드시 고쳐야 하겠지만 청소년기를 거치면서 형성된 이러한 성향을 쉽게 고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오늘은 잘 해야겠다. 마음은 먹어도 막상 그 상황에 닥치면 내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그 자리를 피하여 다른 일에 몰두하는 것에만 집착하고 있는 것이다.다음으로 엄마의 성향을 살펴보면 ‘합리화’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우리 가족 중에서 사랑을 주시는 존재이다. 하지만 무의식중에 가끔 하시는 실수나 잘못을 인정하지 못하고 합리화 하시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면 대화중에 물건을 떨어뜨리거나 그릇을 깨면 “네가 하도 못살게 굴어서 내가 실수 하는 거 아니야” 하면서 괜한 잔소리를 하시는 경우가 있다. 또 집안에서 주로 쓰시는 어떠한 생필품이 없어지면 “나는 절대 건들지 않았는데 분명히 너희들이 건들었으니 내가 정말 못 살겠구나” 라면서 하루 종일 신경이 곤두서 계신다. 그밖에 식사시간에 엄마의 기준만큼 밥을 많이 먹지 않으면 잔소리를 가끔 하신다. 이렇듯 자신의 기준이 확고하시며 융통성 없는 비이성적인 언행으로 가족을 당황스럽게 하시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이러한 것도 아직 잘 포장되지 않은 사랑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사랑이라고 해서 모든 행동을 받아들일 수 없는 내가 안타까울 뿐이다. 이러한 엄마의 성향을 구체적으로 분석해 보겠다. 전형적인 폭발 성격을 가지고 계신다. 가족 구성원 모두가 당황스러울 정도로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분노하시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앞에서도 언급하였는데 다시 다른 예를 들어보면 하루는 엄마가 몹시 피로해 보이는 나를 위해 꿀물 좀 타주신다고 꺼내는데 옆에서 내가 말거는 순간 꿀이 든 유리병을 깨트린 적 이 있다. 놀랜 나머지 너가 말시켜서 이렇게 됐잖아. 화를 내시고 무척이나 아까워 안타까워 하셨다. 왜 꿀물 타준다면서 애꿎은 나한테 화를 버럭 내냐고 물어보니깐, 아까워서 그랬다면서 멋쩍은 듯이 웃으면서 말하신다. 가끔 이런 비슷한 경우로 놀라는 경우가 종종 있다. 물론 역시 순간의 감정 표현이지 나를 걱정하시는 사랑은 분명하다.● 바퀴형 의사소통 유형우리 가족의 의사소통 유형은 바퀴형 으로 볼 수 있다. 이것은 평소 엄마를 제외한 가족과의 대화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가족의 대화를 비롯한 의사소통, 분위기에서 엄마께서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컸다. 의사소통 유형이 바퀴형 으로 확립된 다른 요인을 살펴보면 우선 말수가 적고 완고하신 아빠의 성향으로 들 수 있다. 원래 성격 자체가 말수가 적으신 데다 마음과는 달리 인자하고 따뜻한 말을 잘 못하시는 성격인 아빠와의 대화는 가면 갈수록 어색해 질 수 밖에 없었다. 다른 친구들을 보면 아빠와 거리낌 없이 친해서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지만, 우리 집에서는 언제부터인지 아빠와는 형식적인 대화만 오고가는 사이가 되었다. 어렸을 때는 그렇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그 이유를 파악해 보자면 내가 중학교,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귀가 시간이 점점 늦어지며, 어렸을 때는 가족여행을 가거나 휴가를 자주 갔지만 동생이랑 내가 크면서 그런 부분이 줄어든 것도 있으며, 무엇보다 부모님이 맞벌이 이신지라 바쁜 일상 등의 이유로 자연스럽게 대화 뿐 아니라 얼굴을 보는 시간 자체도 대폭 줄어들면서 이러한 결과를 나은 것 같다. 현재에도 이러한 성향은 마찬가지인데 대학에 진학하고 학교생활에 바빴던 나와 일찍이 취업을 하게 되어 집을 떠나 있는 동생과 자영업을 시작하신 아빠와 일을 나가시는 엄마. 한 가정의 그림은 이렇게 그려진다. 우리가족은 그나마 가족을 보살피며 관심이 많아 먼저 대화를 청하는 엄마 덕분에 주말에 맛있는 요리 해주시면서 대화하고, 낮 평일에 서로 떨어져 있는 시간에도 문자 통화 자주하면서 가족 형태를 유지 하고 있는 것 같다.● 가족 구성원의 의사소통 유형보다 구체적으로 가족 구성원의 의사소통 유형을 분석해 보겠다. 우선 엄마는 회유형의 특징을 보이시는데 가끔 비난형 으로 바뀌실 때가 있다. 자신보다 가족을 먼저 생각하시고 매우 헌신적인 엄마는 항상 가족의 의견을 먼저 물으시며 존중하신다. 반찬도 자신이 좋아하는 것 보다는 가족의 의견을 따르시고 외식을 나갈 때에도 “너희들 먹고 싶은 거 먹어,엄마는 아무거나 다 좋아해” 라는 말씀을 제일 많이 하신다. 그런데 가끔 비난형 으로 바뀌시는 경우가 있다. 자식의 행동이 자신의 바람과 다른 경우 종종 그러시는데 아래에 대화체로 나타내 보겠다.사례)난 컴퓨터를 하고 있었다.엄마:“딸 과일 줄까???”나:“지금 배부른데”엄마:“그러지 말고 빨리 먹어”(과일접시를 들고 오신다)나:“아 조금 있다가 먹을게요”엄마:“도대체 왜 그러니 엄마 마음을 편하게 안 해주고”이렇듯 처음에는 회유형 처럼 나의 의사를 물으셨다가 자신의 바람과 다르면 갑자기 비난형 으로 변하시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런 경우에 처할 경우 매우 당황스럽다.다음으로 아빠의 의사소통 유형을 살펴보겠다. 아빠께서는 일치형과 초이성형을 동시에 보이시는 경우라고 생각한다. 융통성 있으며, 일관성이 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집안의 가장으로써 권위를 지키려 하시고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으시며 차가운 유형도 보이신다. 어려서부터 이러한 점 때문에 나와 동생은 아빠를 무서워하였으며 가끔은 두려운 적도 있었다. 현재도 아빠와 대화하는 것이 약간 부자연스럽고 어색하긴 하지만, 내가 방학 때 잠시 타지에서 혼자 생활한 적이 있었는데 의외로 통화도 가끔 하시고 말을 많이 하려고 노력하고 계신 것 같다. 동생의 경우에는 집에 있는 것을 매우 좋아하고, 졸업 한 이후로 친구들과 많이 소통하지 않는 것 같다. 성격이 털털하면서도 분명한 성격이라, 싫은건 싫은 것 이여서 맘에 잘 맞지 않는 친구가 있으면 잘 만나지 않는다. 친구랑 통화 할 때면 흥분을 해서 목소리가 커진다. 나는 동생과는 달리 조금 이중적인 성격이 있다. 집안에서는 매우 털털하지만 밖에서는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해 사람들과 따뜻한 관계를 맺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사람들에게 먼저 말을 걸고 다가가며 도움이 필요할 때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도와주기 위해 노력한다. 나의 성격은 엄마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 자라 자신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법을 터득하였기 때문에 밖에서는 사람들과 다정한 관계를 맺기 위해 노력하는 의사소통 유형을 가지고 있고, 동생은 아빠의 분명한 성격을 닮아 융통적 이며 일관성 있는 유형의 성격인 것 같다.
아기들은 어떻게 배울까-엘리슨 고프닉-엘리슨 고프닉의 ‘아기들은 어떻게 배울까’는 전문적이지만 어렵지 않게 쓰인 훌륭한 발달 심리학 책이자 내가 어떤 방식으로 사회화 되었는지도 알려주는 책이다. 출생 직후 24개월 정도까지 인간의 사회화 과정과 아기들이 얼마나 많이 학습하는지 그리고 부모들이 그들을 얼마나 많이 가르치고 있는지에 관한 중요한 발견들을 다루며, 그것을 뒷받침 해주는 생득적 능력에 대해 재미있는 실험들과 함께 잘 설명하고 있다. 아직 아기를 다뤄본 적이 없는 나에겐 조금은 생소하지만, 아기를 키우게 되는 부모에게는 아기를 진정으로 이해하기 위해서 꼭 읽어보아야 할 책인 것 같다.저자는 우리가 진화의 결과로 가르치고 배우며, 학습 동기가 인간의 중요한 본능이라고 주장하는 것 같다. 어른들의 학습 능력에 관한 인상적인 통찰뿐만 아니라 아기들이 어떻게 사물을 인식하고 언어를 배우는지 그 메커니즘과 실험 결과를 다루고 있다. 저자는 비디오테이프에 아기들의 눈동자 움직임, 시선, 몸짓, 목소리 등을 녹음해 연구하여 아이들도 세상을 학습하는데 과학자들이 사용하는 것과 같은 방법을 사용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책의 내용은 수업시간에 교수님께서 보여주신 영상하고 같았다. 나는 어렸을때 3살배기에 기어 다니다가 뜨거운 주전자를 엎어뜨려서 팔목에 작은 화상상처가 있다. 아주 잠시 어른에 눈길에서 벗어난 순간, 사고가 일어난 걸 보면 나도 엄청난 호기심을 가진 아기였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이 책을 보면 왜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아이들이 하는지, 왜 아이들이 그런 행동을 하는지를 알려주고, 또 아이의 모습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 우리가 눈앞에서 어떤 기적을 보고 있는 것인지, 그리고 그 기적의 과정에 어른들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새삼 깨닫게 될 수 있다.아이들은 이미 태어나면서부터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것은 다름 아닌 호기심. 이로 인해 부모와 많은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지만, 그것이 아기가 생존을 위해 선택한 길이다. 책에서는 아기는 과학자로 태어난다고 하였다. 아기들은 공놀이를 통해서 공을 던지면 떨어지고 공이 굴러가는 모습을 보면서 신기하게도 중력의 법칙이라는 개념을 자연스럽게 이해하고 알게 되며, 도형 맞추기를 통하여 같은 범주를 이해하고 알 수 있게 된다.엘리슨 고프닉 교수는 그의 인지발달 연구를 통하여 아기들은 백지 상태로 태어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과학자가 그냥 메모하듯 끄적거리면서 연구하지 않고, 기존 이론을 토대로 실험? 검증 결과를 거치는 것처럼 태어나는 아기도 기본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인지 도식을 바탕으로 시도와 검증을 거쳐 인지 발달을 이룬다. 즉, 인간은 진화에 의해 아주 어린 아기도 학습 능력을 타고 나고 내어나는데 일종의 유전자에 내재되어 있는 학습프로그램화 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예로 모빌실험이 있는데 영상을 보면서 정말 신기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모빌에 아기의 발을 연결하였다. 발을 움직일 때마다 모빌이 함께 움직인다는 인과 관계를 파악한 아기들은 계속 역동적으로 발차기 행동을 하며 모빌을 주시하고 있었다.또다른 예로 대상영속성에 대해 알아보는 까꿍놀이 실험이 있었다. 6개월 된 아기는 딸랑이를 숨기자 딸랑이가 없어진 줄 알고 울음을 터트렸다. 이것은 사물이 보이지 않으면 사라졌다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9개월 된 아기는 숨긴 장난감을 찾아냈다. 11개월 된 아기는 엄마가 문 뒤에 있다는 사실을 알면 문을 두드려 엄마가 있는 것을 확인하려 했다. 연령이 높아지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사물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고 한다. 이렇게 우리의 뇌가 얼마나 유연한지를 나타내는 개념인 두뇌 가소성은 경험이 가지는 영향의 방향을 결정한다고 한다.
현대사회의 아동문제는 아동 문제만으로 한정시키는 것이 아니라, 포괄적인 의미의 사회문제의 하나로서 ‘아동문제’라고 규정할 수 있다. 즉, 아동문제는 아동과 그에 가족 뿐만 아니라 아동이 살고 있는 환경, 아동의 고민, 일상생활에 대한 모든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현대사회는 산업화 사회로 기계화된 대량 생산제가 보편화된 사회이다. 이러한 산업화는 도시화, 대중사회화, 핵가족화 등과 같이 맞물리면서 여러 가지 사회문제를 야기시키고 있다. 이런 산업구조의 변화로 도시화가 진행되었고 도시화는 여러 가지 혜택과 함께 여러 문제를 가져왔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아동에게 가장 큰 영향을 가져다주는 가정적 요인부터 아동문제와 관련지어보면 지난 20~30년간 우리나라의 산업화와 도시화는 가정의 구조와 기능에 큰 변화를 가져왔으며 이에 따라 아동문제를 생성시킬 수 있는 현대가정의 문제점을 다음과 같이 제기해 볼 수 있다.첫째, 먼저 도시화로 인한 어린이의 건강을 해치는 자연환경을 들 수 있는데 탄산가스로 인한 지구 온난화 현상, 성층권 오존의 파괴로 유독한 자외선의 조사량 증가, 산성비로 인한 산림피해 등 어린이의 건강에 결정적인 자연환경이 파괴되어 가고 있는 현실이다. 최근의 현대가정의 문제로서 여성들이 결혼 후에도 직장생활을 계속하는 것이 보편화됨에 따라 임신 중에 직장에서 과도한 스트레스와 유해 물질에 노출 가능성으로 기형아, 저체중출산, 유산, 등이 유발되고 어머니 자신 뿐 아니라 어린이의 건강을 해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둘째, 핵가족화의 가족 구조에 있어 취업 여성의 증가, 이혼의 증가, 주말부부의 증가, 자녀 수 감소, 주거생활 변화 등으로 문제가 많이 생겨나고 그 속에서 결손가정의 아동, 유기된 아동, 보호가 결핍된 아동, 신체적·정신적·정서적으로 장애를 가진 아동이 생겨날 뿐만 아니라 가출 및 비행청소년 등 각종 문제를 가진 청소년을 사회에 배출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되었다.셋째, 전통적인 가정의 기능이 현대에 와서 여러 전문적 기관에 흡수됨으로써 그 기능이 점차 축소·약화되어지고 있으며 그로 인해 부모-자식 간의 대화 단절, 부모의 자식에 대한 지나친 기대(조기교육 등)로 인한 아동의 심리적 압박감, 과잉보호로 인한 의존성, 빈곤 가정의 문제, 결손 가정의 문제 등이 있다. 또한 대중사회로 인한 아동문제도 제기된다.현대사회가 대중사회라는 것은 산업화에 따른 산업 및 경제구조의 변화, 정치 및 사회구조의 변화와 함께 대두된 인간소외, 획일화, 대중화 현상을 강조하는 견해에서 비롯된 것이다.대중사회에서는 문화생활도 상품화되어 대중화되며 획일화되기 쉽다. 대중문화는 대중매체에 의해 주도되고 전파되며 대중매체의 상업주의 때문에 선정성, 폭력성이 강조되고 저질화 되고 있다. 한 예로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TV만화 ‘짱구’가 선정-폭력 등 유해 내용의 노출로 방통심의위 심의대상으로 선정된 바 있다. 오늘날 청소년의 주요 여가이용 방법인 TV와 인터넷 등 대중매체의 상업성이 아동에게 악영향을 줄 수 있다. 이 밖에도 오락산업의 번창, 외설물과 폭력물의 범람, 황금만능주의, 편의주의, 편법주의 등 부정적인 사회풍조의 만연과 같은 현상이 아동의 건전한 성장에 유해 요인이 되고 있다. 무엇보다 요즘에는 인터넷의 발달에 아동들의 인터넷 접근성도 손쉬워 졌기 때문에 그로 인한 영향도 크다. 인터넷의 특성인 익명성으로 아동도 얼마든지 의견을 표현할 수 있고, 자신의 관심을 발달시킬 수 있는 다양한 모임도 가능하게 되었고 정보도 구할 수 있게 되었지만, 수많은 정보 중 아동이 양질의 정보를 선택하기 쉽지 않고, 익명성으로 인하여 아동은 사용하는 언어가 거칠어지고 인간에 대한 예의를 잃어버리기 쉽다. 또한 성 정체성이 부족한 아동 같은 경우 너무 일찍이 성에 대한 잘못된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통로가 될 수 있으며 상대적으로 오프라인의 만남이 부족해 개인주의적 성향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
나는 지금까지 ‘사랑’이라는 것이 두 남여가 서로 좋아하는 것, 또 이런 사랑을 하는데 별다른 기술은 필요하지 않다고만 생각했었다.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이라는 책을수업의 과제를 하기위해 우연히 접하게 되었다. 이 책에서는 사랑을 쉽게 잘 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그러한 기술이 아니라 사랑에 성공하기 위해서 사랑에 대한 여러 가지 조언들과 사랑에 대한 정의, 즉 사랑을 여러 방면으로 나눠보고 진정한 사랑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나와 있다. 이 책의 구성은 크게 네 가지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먼저 “사랑은 기술인가?” 라는 질문을 던져 쉽게 생각했던 사랑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 돌이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였고 “사랑의 이론”이라는 제목으로 사랑을 나누어 설명했는데 이 부분이 책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 만큼 사랑을 진정한 의미로 자세하게 분석하고 해석해 놓았다. 그리고 현대 서양사회에서 붕괴되어 가고 있는 진정한 사랑의 의미에 대해 돌이켜 보고 마지막으로 사랑의 실천에 대해 논했다.사랑을 진지하게 생각해보고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몇이나 될까. 이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은 대부분 사랑을 할 줄 아는 사람이 아니며, 배우는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우선 사람들은 사랑의 문제를 ‘사랑하는’, 곧 사랑할 줄 아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사랑받는’ 문제로 생각한다. 그리고 사랑의 문제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대상‘의 문제라는 가정이다. ‘사랑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고 사랑할 올바른 대상의 발견이 어려울 뿐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사랑에 대해서는 배울 필요가 없다는 가정에 이르게 하는 세 번째 오류는 사랑을 ‘하게 되는’ 최초의 경험과 사랑하고 ‘있는’ 지속적 상태, 혹은 좀더 분명하게 말한다면 사랑에 ‘머물러’ 있는 상태를 혼동하는 것이다. 이런 세 가지 전제로 인해 착각하고 사랑한다면, 그 사랑은 백퍼센트 실패한다. 그리고 의 결합을 추구하게 되는데 인간의 분리 상태, 즉 사랑에 의해 결합되지 못한 것은 수치심과 죄책감, 불안을 가져오게 된다. 그러므로 인간은 분리를 극복하여 고독을 탈출하려고 노력한다. 이 노력에 대해서 합일의 방법으로 도취에 의한 도취적 문화권과 비도취적 문화권으로 분리하여 나와 있는데 집단과의 합일에 의한 분리 상태의 극복과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평등의 종교적, 현대적인 평등 등에 관하여 얘기하였다. 또한 외부세계와 나와의 일치적 방법에 의한 합일, 창조적 방법에 의한 합일들을 사랑이라고 말할 수 없다고 하고, 사랑을 실존문제의 해답과 공서적 합일로 나누어서 말했다. 공서적 합일이란 공생하는 것이며 공서적 합일의 반대 개념인 사랑은 자신의 통합성, 곧 개성을 유지하는 상태에서의 합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사랑은 능동적인 형태로 주는 것을 의미하며, 준다는 것 이외에도 보호, 책임, 존경, 지식 등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인간의 분리 상태의 극복을 생물학적으로 보면, 남녀는 남성과 여성이라는 극 사이의 합일에 대한 요구가 일어난다. 남녀의 양극성은 대인관계의 창조의 기초이며, 정신적 영역에서 남녀의 사랑을 통하여 남녀는 재탄생한다고 할 수 있다면서 저자는 프로이드의 견해를 비판하였다.그리고 어버이와 자식 사이의 사랑에서 어머니의 사랑은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아버지의 사랑은 조건적인 사랑으로 나누어서 유아기에는 어머니의 무조건적인 사랑과 보호를 필요로 하고 6세 이후인 성장기에는 아버지의 권위와 지도를 필요로 하게 되며, 성숙한 사람이 되려면 자신이 아버지, 어머니가 되어 그들의 양심을 지녀야 한다고 보았다. 또한 성장기에서의 아버지나 어머니 한쪽에 의한 과도한 사랑과 한쪽의 무관심은 신경증의 근본원인으로 보고 있다. 먼저 어머니의 사랑이 과도하고 아버지가 냉담한 경우 누구나, 때로 여자나 권위나 권력에 따르는 지위에 있는 남자에게서 어머니를 찾아내려고 하는데, 아버지의 사랑이 과도하고 어머니가 냉담한 경우 부친지향적인 인간으로 발달해서 법률, 질서, 권위의 원움을 필요로 한다. 형제애의 시작은 도움이 필요한 인간에 대한 사랑, 가난한 자와 이방인에 대한 사랑에서 시작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모성애, 기본적으로 모성애의 특징은 어린애의 생명과 욕구에 대한 무조건적인 긍정이다. 생명에의 긍정에는 첫 번째로 어린애의 생명유지와 성장에 절대로 필요한 보호와 책임이다.두 번째로 단순한 생명의 유지를 훨씬 능가하는 것이다. 모성애는 연약한 갓난아이에 대한 어머니의 전자의 사랑이 아니라 어린애의 성장에 대한 후자의 어머니의 사랑에서 진정한 모성애의 실현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성애와 차이점은 성애는 분리된 두 사람이 한 몸이 된다는 것이며, 모성애는 한 몸이었던 두 사람이 분리되는 것을 말한다. 어린애가 어머니에게서 분리될 때 모성애는 비이기성, 모든 것을 주면서도 대상의 행복 외에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능력을 요구하는 과업으로 변하는데 이때 많은 어머니들이 실패를 겪는다. 이 단계에서는 참으로 사랑할 줄 알고 주는데서 행복을 느끼는 여자, 자신의 실존에 깊이 뿌리박고 있는 여자가 어린애가 분리의 과정을 밟고 있을 때에 성공하는 어머니일 수 있다.세 번째로 흔히 사람들은 사랑에 빠지는 폭발적인 경험과 성애를 혼동하는 오류를 범한다. 성애는 완전한 융합, 다른 한 사람과 결합하고자 하는 갈망으로써 본질적으로 배타적이며 보편적인 것이 아니다. 성적욕망은 대부분의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사랑이라는 관념과 짝을 이루기 때문에 육체적으로 원할 때 서로 사랑하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기 쉽다. 그러나 성애에 형제애가 결여된 상태라면 분리 후 심한 격리감을 느끼게 된다.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결코 강렬한 감정만은 아니며, 결단이고 판단이며 약속이다. 성애는 특수한 두 사람 사이의 독특하고 완전히 개인적인 매력이며, 의지의 행위이다.네 번째로 자기애이다. 보통 사람들에게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덕이고,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죄라는 신념이 널리 퍼져 있다. 이런 논리적인 오류는 만약 나의 이웃을 인간으로서 사랑하는 것이 덕이면, 나도 인간이므 적으로 가득 차 있으며 비 이기주의라는 표면 뒤에는 미묘하지만 매우 강렬한 자기본위가 숨겨져 있다.마지막으로 신에 대한 사랑인데 이는 분리 상태를 극복하고 합일을 이룩하려는 욕구에서 생긴다. 인간은 자연 세계와 하나로 남아 있으므로 합일을 발견하려고 초기에는 노력한다. 신인동형의 신을 숭배하려는 단계에 오면 신의 본성이 남성적이거나 여성적인 것과 관련되는 것과, 인간이 도달한 성숙도, 그리고 신의 본성과 신에 대한 인간의 사랑의 본성을 결정하는 정도와 관련된다. 신의 본성은 처음에는 여성적이었다가 중세 가톨릭으로 오면 남성적인 신으로 변하며, 여성적인 것은 숨겨지게 된다. 신에 대한 사랑의 모성적 및 부성적인 측면의 차이점은 사랑의 본성을 결정하는 하나의 요인이 된다. 부성적인 신의 성격은 초기에 전제적인 부족장의 형태에서 후기의 자애로운 아버지의 형태로 변한다. 인간이 신에 대해 적극적인 한정사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일시론 적 원리로의 진화는 신에 대한 사랑의 본성에도 온갖 차이를 생기게 한다.이 책을 읽으면서 왜 세계적으로 학자들·학생들의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봐야만 하는 중요한 서적인지 알게 되었다. 사람들 사이의 관계는 사랑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누군가가 다른 사람, 타인을 사랑할 수 있게 되고 사랑할 때 그 사람에게 마음이 열리고 그 사람과 생각을 공유하고 공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사랑은 간단한 것이 아니라 각자가 노력해서 배우고 이해해서 실천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현대 사회에서 나를 포함한 대다수의 현대인들은 사랑이라는 것을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숨쉬는 것처럼 배울 필요 없이 때가 되면 자동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라는 바보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사랑에는 기술이 있는 것이었고, 그 기술을 잘 배워야 만이 사랑을 더 잘 할 수 있게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었다.사랑의 이론부분을 읽다보니 정말 놀라웠다. 정말 저자의 말처럼 우리 인간들은 각자 개성을 가하나 유심히 관찰해보고 거기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내 개성이라는 것을 찾기 보다는 내가 속한 집단에서 흔히 말하는 ‘왕따’가 되지 않기 위해서 내 자신을 맞추어 나가는 모습이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약중독, 알콜중독, 성적도취행동 등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행동, 문제들이 사랑에 관한, 인간의 실존에 관한 문제에서 볼 수 있다는 점이 신기하고 새롭게 내 머릿속으로 들어왔다.그리고 사랑의 대상에 대해 논한 부분에서는 ‘정말 그러하다’ 하고 속으로 되새기며 읽은 부분이 많았다. 이 부분에는 형제애, 모성애, 성애, 자기애, 신에 대한 사랑 등의 대상을 논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중 나는 자기애 부분이 가장 눈에 먼저 들어왔다. 자기애는 말 그대로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내 좌우명은 어렸을 때부터 「사랑받는 사람이 되자」였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지금까지 믿고 지키려고 노력했던 내 좌우명에서 사랑이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했던 것인지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들었다. 그리고 내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만이 다른 사람도 사랑할 수 있는 것이고, 내 자신에게 사랑을 베푸는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사랑을 베푼다는 말이 떠올랐다.그런데 에리히 프롬은 책에서 인간에 대한 사랑은 덕이므로 인간인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도 옳은 일이라는 논증과 이기주의와 비이기주의 등의 언뜻 보면 혼동하기 쉬운 개념에 사람들이 자기애를 아주 안 좋은 것으로 취급해 왔다고 언급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애,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쉽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우리들은 일상생활에서 어떤 일에 실패하거나 할 때 대부분 자신을 자학하고, “내가 왜 그랬을까”, “내가 하지 말았어야 했어”, “모든 것이 나 때문이야”, “다 내 탓이야” 등의 이야기를 많이, 주로 하곤 한다. 그것도 반성이라는 의미에서 볼 수 도 있지만 거꾸로 생각해보면 어렸을 때부터 사회적으로 가정적으로 학교 내외에서 반성이라는 것은 좋은 것이고 필요한 것이고 나를 성찰하는 것이라고 교육 받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