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가 점점 발달함에 따라 사람들의 생활은 편리해졌을지도 모르지만 그에 따라 편협한 시각을 가지게 되었다. 자본주의라는 화려한 모습에 눈이 멀어 어두운 이면의 모습은 외면하게 된 것이다. 오래된 미래는 이러한 문제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라는 서양학자가 소개하는 라다크에 대한 내용이 기본이지만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면서 앞으로의 모습을 제시한 점이 눈여겨볼만했다. 먼저 part 1은 라다크의 과거모습을 설명하고 있다. 라다크의 과거는 인간과 대지, 동물을 하나로 연결하는 네트워크를 유지하는 삶을 살았다. 그 예로 라다크 사람들은 초원에서 동물의 먹이를 먹일 때 여기저기 이동한다고 하는데 아무것도 아닌 거 같지만 자연의 적당함을 유지하는 모습 중 하나이다. 적당함이라는 것이 유지하기 쉬워 보이지만 ‘조금 더’를 강조하는 현실에서는 그렇지가 않다. 라다크의 과거는 순박하고 사람들 사이의 연계가 뚜렷해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간다기보단 믿는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가깝다. 여기서 믿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기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나와 같다고 믿는 것을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해야 할 일과 상대방이 해야 할 일을 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누군가가 나서서 일을 정하지도 않고 그 일을 안 한다고 해서 뭐라고 꾸짖는 사람도 없다. 하지만 사람들의 생활모습은 마치 강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처럼 체제를 벗어나지 않고 자연스럽게 유지된다. 몇십 년 후 라다크에도 어김없이 개발이라는 반갑지만은 않은 손님이 찾아온다. 지혜롭지 않은 사람들은 아니지만 거침없이 쏟아지는 서구의 문물 앞에 라다크의 젊은이들은 현혹된다. 자본의 위력 앞에서 지방에 있던 사람들은 수도 레로 몰리고 인구의 몰림에 따라 수 많은 문제들이 뒤를 따랐다. 문화의 다양함에도 위협이 가해졌다. 라다크의 전통 의술자였던 사람들은 서양의 의술을 배우기 위해 떠나게되고 진흙으로 벽돌을 만들어 집을 짓던 사람들은 시멘트로 간단히 만들어 버린다. 사람들은 라다크의 모든 것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시간의 미학이 사라져 버린것이다. 과거에는 시간의 개념이 없어 날이 밝으면 일을 시작하고 어두워지면 잠을 자거나 모닥불에 모여서 얘기를 나누던 사람들은 이제 시계를 차고 다니며 시간을 자본과 같이 취급하게 되었다. 라다크에는 가난이라는 것이 없다고 웃으며 외치던 사람들이 이제는 가난 속에서 허덕이고 있다고 외친다. 자신들이 원래 가지고 있던 것들을 외면하고 부정하기 시작했다. 책의 마무리는 아직도 희망은 있다는 것을 제시하며 미래의 희망을 얘기한다. 많은 사람들이 라다크의 옛 모습과 문화를 사랑하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 그 예로는 라다크 프로젝트이다. 라다크 프로젝트는 개발을 무조건 막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것을 지키면서 받아들이도록 노력하고 원래의 모습을 유지하면서 더불어 살아가는 미덕을 지향하는 내용으로 마무리 된다. 책에서는 라다크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그 모습에서 우리나라의 모습도 보았고, 여러 나라의 모습이 동시에 보였다. 환경에 대한 언급이 많아 단순히 환경보호의 관점으로만 생각하였지만, 점차 읽어나갈수록 라다크의 환경파괴에 대한 우려가 아닌 전 지구적인 인간에 대한, 문화의 획일화에 대한 우려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이 책을 통해 과연 우리나라는 현재 어떤 길을 걷고 있나에 대해 생각하였다. 우리나라는 흔히 말하는 후진국은 아니다. 하지만 점점 사람들이 실감하는 빈부격차는 왜 커지고 경제가 힘들다고 하는 것일까? 이유는 좋은 삶을 살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이 지배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좋은 삶에 대한 나의 생각은 단순했다. ‘잘 먹고 잘 사는 것’ 이보다 이상적인 삶은 없으리라 생각하였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삶이 서구의 자본주의가 침투하여 만들어낸 단일화된 표준문화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 내 경직된 사고에서 나온 생각이라는 사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들이 추구해야 할 미래의 좋은 삶이란 자연과 비교하는 삶이다. 고급스런 음식과 호화스러운 집 이라는 개념이 생긴 이유는 저급음식과 허름한 집이라는 상대적 개념이 존재하므로 생겨난 것이다. 현재 우리의 삶은 자본주의와 비교하는 삶을 살고 있다. 오래된 미래를 인용하자면 라다크에는 옆집사람이 얼마만큼의 식량을 보유하고 쪼(우리나라 과거의 소와 같은 개념)의 마리 수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의 모습은 다르다. 누가 어떤 명품가방을 들고 다니며 자동차는 몇 마력의 외제차를 끌고 다니며, 상대방이 소유한 집의 땅값은 얼마인가 등등 끊임없는 비교를 하며 살아가고 있다. 비교를 통해 어떤 사람은 우월감을 가지면서 좋은 삶을 살고 있다고 자부할 수도 있고, 또 다른 사람은 패배감을 맛보며 좋은 삶이라는 것을 꿈꾸고 있을 것이다. 어찌 보면 라다크 개발의 시작은 관광객이었을지도 모른다. 관광객이라는 비교대상이 생기면서 자신의 문화와 비교를 하면서 겉모습에만 보이는 세련되고 풍부한 물질의 모습은 자신들의 문화를 저급하게 보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물론 지금 현대사회에서 경쟁의식보다 훌륭한 촉진제는 없으며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 여긴다. 하지만 생각을 바꿔보면 어떨까? 내가 지금 쓰고 있는 물건이 환경파괴에 영향을 주지는 않는가, 또한 내가 살고 있는 공간이 환경과 얼마나 어우러지는가에 대한 생각을 가져보면 내가 말하는 좋은 삶에 대한 접근을 더 쉽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추구해야 할 비교는 소유를 통한 만족이 아니라 자연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행복감이다.좋은 광고를 만드는 것이 좋은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미국인들은 태어나는 순간 광고와 상품 쇼핑의 노예라고 할 만큼 엄청난 소비문화에 길들여져 있다. 사람으로 태어나 소비자로 자라나는 것이다. 광고를 먹고 자란 아이들은 자연스레 광고가 만든 문화에서 광고에 의해 자신의 생각을 키워나간다. 광고가 한 나라의 소비문화와 가치관까지 만든 것이다. 좋은 광고란 문화의 다양성을 반영하며 자연과 비교하는 광고이다. 이 제품이 자연과 가까워 지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하였는가에 대한 광고가 좋은 광고라 생각된다. 자연의 생태계만큼이나 다양한 인간의 문화를 반영하고 상품에 대한 정보를 인위적이지 않게 표현한 것이 좋은 광고라 할 수 있다.먼저 좋은 광고에 부합하는 광고를 들자면 영국의 도브 광고를 예로 들고 싶다. 이 화장품 회사는 평범한 일반인을 광고에 등장시켰다. 사진적인 기교나 컴퓨터 조작도 하지 않았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라고 한다. 볼록 나온 배를 감추지도 않고 주름살을 창피하게 여기지도 않은 채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이다. 광고는 창의성으로 큰 주목을 받았고 매출에도 효과가 있었다. 내가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이 광고의 창의성이 아니라 인위적이지 않고 자연스러움을 최대한 표현했다는 점이다. 이 광고에서 나오는 모델을 보면 외모지상주의와는 반대되는 개념의 모델이다. 한동안 얼짱이라는 단어가 유행했듯이 몸짱이라는 단어가 생겨날 정도로 얼굴만이 아닌 몸까지 완벽한 외모지상주의가 만연한 것이 자본주의이다. 하지만 이 광고는 날씬한 몸매와 뚜렷한 이목구비가 아닌, 한 마디로 평범한 사람들이다. 화장품광고이지만 주름살과 피부의 잡티를 그대로 보여주면서 인위적이지 않은 세월을 자연스러움을 나타내준다. 이 광고에서는 누가 더 예쁜지가 관심사가 아니다. 그냥 자신의 모습을 과감히 보여주면서 아름다움의 정의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고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누군가와의 비교 없이 자신만의 모습을 보여주는 광고라는 점에서 좋은 삶에 기여하는 광고라고 생각된다.반면 나쁜 광고라고 생각되는 광고는 구몬학습의 광고이다. 이 학습지의 광고는 씩씩하게만 자라달라는 메시지에 그건 옛날의 얘기라며 ‘아이의 기를 살려주기 위해선 공부를 시켜라’ 라는 정보를 전달한다. 경쟁의 사회에서는 오직 승자만이 이기고 공부를 배우는 즐거움이 아닌 이기기 위한 수단으로 인식하게 한다. 문화의 일부분이기도 한 광고가 이러한 정보를 인식한다면 사람들의 생각을 경직되게 하고 오로지 경쟁에 대한 접근방식과 비교만 제시하여 다양한 관점을 무시하게 된다. 그러므로 경쟁유발이 가득한 이 광고는 좋은 삶에 부합되지 않는 광고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