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집회200910779 손현수미국산 소고기 수입에 대한 반대 의견을 내세운 촛불집회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시위 형태로 자리 잡았다. 인터넷에서 만난 시민들은 서로 연락을 취해서 촛불을 들고 시내로 나오고 그들은 한가지의 공통된 마음으로 정부에게 자신들의 의견을 제시했다. 하지만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를 둘러싸고 촛불집회가 일어난 것을 옳게 볼 수만은 없다. 왜 촛불집회가 정당하지 못했는지 촛불집회에 담겨있는 여러 키워드를 참고하며 알아보자.우선 촛불집회에는 탈 물질주의의 개념이 드러난다. 미국산 소고기가 ‘한우보다 싸다는 것’이 물질적 가치를 대표한다고 본다면 ‘광우병의 대한 위험성’을 탈 물질적 가치로 볼 수 있다. 어떤 것을 더 우선시 하느냐에 문화적 충돌이 일어 난 것이다. 결국 국민들은 싼 소고기의 이점보다 광우병의 대한 위험성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국민의 이러한 의견은 잘못된 정보의 유출 때문에 이루어 졌다. 모 프로그램은 허위사실을 유포한 것으로 검찰에서 판명 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언론들은 광우병의 위험성을 과장 되게 여론에 알렸다. 즉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끌어야 이익이 늘어나는 언론의 이익 추구 즉 물질주의적인 사상 때문에 탈 물질주의에 혼란이 발생한 역설적인 결과가 일어난 것이다.또 촛불집회에서는 개인주의도 드러난다. 사람들은 인터넷에서 촛불집회를 접했고 개인적으로 자신과 자신의 후손들의 건강을 생각하여서 촛불집회의 참여하였다. 그러나 현재 미국과 동맹관계가 약화 된다면 우리나라는 많은 것을 잃게 된다. 결국 개인적으로 건강을 생각하는 것으로 시위에 참여하게 되었다가 미국과의 관계가 악화되었다면 국가 전체적인 이익을 방해한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국가 전체의 이익을 방해한다면 결국 그 피해는 자신에게 돌아오게 된다. 진정 자신을 생각하고 후손을 생각하는 개인주의였다면 어느 것이 더 우선 이였는지 판단했어야 할 것이다.촛불집회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군중심리이다. 군중심리의 작용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눈앞이 흐려졌다. 우선 사람들은 무비판적으로 정보를 받아 드렸다. 정부에서는 분명 미국산 소고기의 안전성을 이야기했지만 시민들은 미국산 소고기는 광우병에 걸리는 소고기라고 얘기하는 언론을 무비판적으로 받아 드렸다. 또 피 암시성이 드러났다. 사람들은 미국산 소고기로 시작된 촛불집회에서 자연스럽게 이명박 정부의 퇴진까지 요구하게 되었고 나아가서 보수적인 정책들을 비판하기도 하였다. 또 시위가 격해져서 청와대를 들어가겠다고 전경의 차를 부수는 행위들을 통해 본래의 평화적 시위형식이 변환되는 사태를 초래했다.
정치와 사회 과제‘언론에서 일어나는 정치적 현상과 부정적 현황 및 해결책’200910779 손현수우리나라 최고의 포탈검색사이트로 불리는 ‘네이버’를 키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언론사별로 분류 해놓은 여러 기사들이다. 우리들이 매일같이 즐겨보는 TV는 방송사 자체가 하나의 언론이다. 아침마다 배달되어 오는 신문도 물론 언론이며, 잡지, 라디오, 각종 책 등 우리의 삶은 언론이라는 것에 둘러싸여서 살아간다. 아무리 피하려고 해도 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알기 위해, 아니 작게 말해 옆 사람과 대화를 하기위해서라도 우리는 정보가 필요하고 그 정보를 언론을 통해 얻는다. 이번 정치와 사회 과제로 교수님께서 정치와 관련된 어떤 것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쓰라고 하셨다. 우리가 삶을 살면서 언제나 접하는 이런 언론에는 정치적인 요소들이 많이 개입 되어있다. 이러한 정치적인 요소가 우리에게 여러 가지 혜택을 주지만, 부정적인 면을 드러내기도 한다. 어떤 부정적인 면들이 있는지도 알아보고, 그 해결책을 찾아보자.먼저 언론의 정의를 살펴보면 우선 ‘개인이 말이나 글로 자기의 생각을 발표하는 일 또는 그 말이나 글.’ 또 ‘매체를 통하여 어떤 사실을 밝혀 알리거나 어떤 문제에 대하여 여론을 형성하는 활동.’ (국어사전 참고)이라고 적혀있다. 언론이란 것은 결국 어떤 현상의 정보나 그 현상에 대한 한 사람의 주장을 다른 다수의 사람에게 전하는 것이다. 결국 전달하는 주체가 생기고 받게 되는 객체가 생기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치적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가장 근본적인 것은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가 설명되어야 하는 것 같다. 언론에서 객체는 주체에 사고에서 나온 정보와 주장을 보거나 듣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주체의 자신의 사고 전달은 한 번으로 끝내지 않는다. 이 곳 저 곳에서 처음에 주체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주체들로 인해서 정보를 얻게 된다. 결국 객체는 계속해서 나오는 주체에 정보에 대하여서 그 사고에 따른 주장이나 정보에 수긍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처음부터 그 주체의 입장에 반대했던 사람들도 계속해서 주체의 입장과 관련된 정보가 노출되고,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그 의견의 동의 하게 된다면, 군중심리적인 요소가 나타나서 얼떨결에 그 정보에 동의하게 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정치적인 요소가 발생 되는 것이다. 언론에서 주체가 끊임없이 사고가 가미되어진 정보를 노출 시키면 객체가 수긍하게 되는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가 나타나는 것이다. 물론 지배와 피지배로 나뉜다고 해서 이 과정이 나쁘다고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니다. 위 정의에서 보았듯이 언론은 어떤 문제에 대하여 여론을 형성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위해서는 위와 같은 정치적인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이다. 그 정보가 진실이나 진리라면 위에서 이야기했던 지배와 피지배는 정당하게 이루어진 것이다. 자신의 정보를 수용하는 객체들에게 ‘알권리’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실이나 진리를 따르지 않은 정보와 주장을 전한다면 그것은 지배자로서의 언론의 역할을 악용한 것이 된다. 이 때문에 우리사회에서는 많은 어려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진실이나 진리를 규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객체가 그 현상을 지켜보는 관점에 따라서 다를 수도 있고, 혹은 이념에 따라, 혹은 자신의 환경에 따라 진리와 진실은 상대적인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진리와 진실을 확실하게 규정 할 수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이 바로 과학적인 결과일 것이다. 이러한 과학적인 결과를 언론에서 왜곡해서 보도해서 큰 사건이 터진 적이 있었다. 바로 2008년에 있었던 광우병 쇠고기 파동이다. 다른 많은 부분들은 서로의 관점이 다르기 때문에 일어나는 상대적인 것이기 때문에 인정하고 넘어갈 수 있지만, 과학적 결과를 무시 ‘왜곡’한 일은 큰 사태를 초래했다. MBC에서는 다우너 소를 광우병에 걸린 소로 인식하게 보도했다. 그러나 사실 과학적으로 다우너 소는 광우병의 걸린 소가 아니지만, 언론에서 사람들이 그렇게 느끼게 방영하였다. 이로 인해 수많은 언론의 객체들은 주체에서 이야기한 다우너 소=광우병 소로 인식하게 되었고, 이러한 소를 식용으로 사용한다는 소리에 미국 소=광우병 소라는 인식까지 불러 일으켰다. 또 야콥병의 걸린 사람을 보여주면서 마치 그것이 광우병에 걸린 사람인 것처럼 방영하였다. 그 결과 수많은 사람들이 갑작스럽게 광우병에 대하여 걱정하고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오게 되었고, 그 결과 정국이 100일여 간 파국되는 사태까지 발생 하였다. 미국산 소고기는 과학적으로 광우병의 위험이 없는 것으로 적합을 받은 것 이였고, MBC에서 잘못 방영했던 프로그램은 검찰의 수사결과 위법행위로 드러나게 되었고, 공식적인 사과방송을 하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다른 언론사들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또 잘못된 여론을 형성하기 위해서 잘못된 정보를 계속 해서 퍼뜨리게 되었다. 그렇지만 이미 언론의 지배층에게 지배당한 피지배층은 자신의 주장과 생각을 잃어버리고, 이어지는 정부의 발표에 부정하면서 시위를 계속해 나갔다. 진실이 아닌 것에 대해서 언론이 지배력을 행사했을 경우 발생한 사건이다.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과 관련된 ‘음모론’에서도 이와 비슷한 사태가 발생 되었다. 언론에서는 음모론이 나오자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음모론을 퍼뜨리기 시작했다. 기사로 작성하고, 눈에 잘 보이는 곳에 음모론을 두었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음모론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하고, 계속해서 자살이라는 경찰의 발표를 귀 기울여 담지 않았다. 이 예는 내 친구에 상황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살한지 삼일 째 되는 날 메신저를 켜두었는데 친한 친구에게서 쪽지가 왔다. 음모론에 대한 내용 이였고, 이 글을 계속해서 퍼뜨려 달라는 글이 함께 써있었다. 나는 친구에게 무슨 생각으로 이러한 글을 유포하느냐고 물었는데, 친구에 대답은 무언가 확신에 차지 않았다. ‘그냥 말이 좀 되는 것 같아서’라고 말했을 뿐이다. 언론의 계속되는 정보전달의 의해서 어떤 사건에 대해서 정확히 생각해보지도 않고 무비판적으로 그 정보를 수용하고 있는 것 이였다. 그러나 경찰에 조사결과는 자살이 확실했다. 계속해서 조사를 하면서 결과를 보여주고 있는 상황이다. 결론적으로 노 전 대통령을 현 정부 측에서 죽인다면, 어떤 이득도 현 정부에서 얻을 수 없기 때문에 노 전 대통령을 타살했다는 이 음모론은 성립조차 되기 힘든 것이다. 그러나 언론에서 계속해서 음모론을 비추어준 결과 객체의 입장인 사람들은 그것에 대해 비판적인사고, 한 번 더 생각해 보는 것을 잃게 되었고 결국 자신의 의견을 버리고 눈에 보이는 대로 해석하고 믿게 되었던 것이다. 결국 이 음모론은 전국으로 퍼지게 되었고, 여러 혼란을 초래했다.위에 두 상황에서 본 것처럼 언론이 진실을 전달하지 않고 여론을 형성하고, 자신들의 이익을 더 얻기 위해서 잘못된 진실을 전하는 경우를 보았다. 그 결과는 처참한 정국 혼란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결국 언론의 지배적인 힘이 언론의 객체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막대하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언론들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 할 수 있을까? 그 해결책을 생각해 보았다.우선 첫 번째 방법은 흔히 사람들이 말하는 언론 악법이라고 말하고 있는 ‘언론 중재법’을 실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흔히 언론 중재법을 사람들은 나쁜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우리나라는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자유의 한계는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기 전까지라는 사실을 우리는 또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언론은 지금 우리나라 많은 국민들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피해를 입히고 있고, 또 잘못된 정보를 전달함으로써 많은 국민의 의식을 바꾸어 놓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언론의 표현의 자유만을 주장보고 하는 것일까? 언론 중재법이 흔히 사람들이 말하는 그러한 악법도 아니라고 본다. 선정성이 심하고, 폭력적인 것에 제제를 가하거나 등급을 높이는 것도 언론 중재법의 한 과제이다. 그렇다면 진실이 아닌 거짓된 사실을 전달하는 것을 막는 것도 정부의 큰 과제일 것이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진실’이라는 것에 대하여서 말이 많겠지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관점과 시점에 따라서 다르게 증명되는 진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과학적으로 증명되는 것. 그것을 여기서 진실이라고 말하고 싶다. 쉽게 말해 어떤 정책에 대해서 비판하는 것과 긍정하는 것 이 두 가지는 모두 진실이다. 하지만 어떤 사건에 대한 정보를 잘못 전달한다거나, 확대 해석, 사람들에게 눈속임을 통한 정보전달 등은 무조건 막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언론 중재법을 강화 시켜야 한다. 물론 현재도 실현되고 있지만, 계속해서 언론의 문제점 들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 현황이다. 언론 중재법을 더 강화하고, 진정한 ‘진실’을 방송하는 언론으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종교사상의 이해 과제‘종교 간의 대화는 가능 한가’200910779사회교육과 손현수종교와 사상의 이해 시간에 ‘종교 간의 대화는 가능 한가’를 과제로 한다는 말을 듣고 깊은 생각에 잠겼었다. TV에서 보았던 천주교의 신부와 불교의 중이 만나서 종교의 화합을 이야기 했던 것이 떠올랐던 것이다. 그것을 보면서 나도 한명의 종교인으로서 종교 간의 대화라는 것을 수긍 하여야하는 것인가, 아니면 종교 간의 대화는 불가능 하다고 말하여야 하는 것 일까 생각했었다. 종교 간의 대화는 불가능 한 것이라고 생각을 마치고 나는 결단을 내렸었다. 그 때의 생각과 과제를 하면서 조사한 것을 더 참고하여 생각해서 이 글을 적어 보았다.우선 종교들을 나누어서 그 나눈 기준에 따라서 어떻게 대립되고 있는가를 통해서 종교간의 화합은 힘들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그래서 무신교와 유신교로, 다신교와 유일신교로, 추구하는 목적으로 종교를 나누어 보았다.첫째. 무신교와 유신교. 우선 종교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신이 없다고 주장하는 무신교와 신이 있다고 이야기하는 유신교가 있다. 물론 종교를 초인적인 존재나 초자연적인 존재를 믿는 것이라고 정의 할 때 무신교를 인정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종교라고 생각하고 신념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이 부분에서 언급하도록 하겠다. 유신교는 대표적으로 기독교와 이슬람교를 들 수 있다. 무신교는 불교와 유교를 들 수 있다. 전자에서는 어떤 초자연적인 존재나 초인적인 존재를 두고 그 대상을 숭배하고 찬양하고, 복을 비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후자에서는 어떤 대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수양하고 현실 속에서 자신을 더욱 잘 가꾸어 나가는 것에서 시작 되었다. 이렇게 유신교와 무신교는 시작점부터 다르다. 유신교 측에서는 신을 숭배하고 섬겨야만 그들의 종교가 시작되는 것인데 무신교 측에서는 신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지 않다. 물론 무신교 측에서 신의 존재를 인정하고, 유신교를 믿는 다고 한다면 자신이 혼자 가꾸어오던 무신교에서의 규칙을 많은 부분 버려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던 유교의 사람이 개신교의 신의 존재를 인정하고 믿는다면 제사를 그만두어야 한다. 따라서 유교의 가장 중요한 의식인 조상에 대한 제사를 드릴 수 없게 된다. 따라서 믿고 있던 종교의 원칙을 포기해야 다른 종교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둘째, 다신교와 유일신교. 우리들의 삶에서 듣는 신은 너무도 많다. 전 세계적으로 퍼져있는 대표적인 종교를 봐도 믿는 신이 서로 다른데 하나하나 파고 들어보자. 흔히 토속신앙이라고 부르는 종교 까지 합쳐 본다면 각 부족마다, 각 민족마다 또는 각 마을마다 가지고 있는 신이 다르다. 또 사물의 하나하나 마다 신이 있다고 주장하는 종교들도 있다. 이처럼 다신교가 있는가 하면, 유일신을 주장하는 종교들이 있다. 그들의 교리는 하나 같이 자신 외에는 다른 신은 없다는 것이다. 유일신교에서는 자신 말고 다른 신을 섬기고 숭배하는 것은 즉 가장 큰 범죄로 여긴다. 그렇다고 해서 유일신교의 횡포로만 볼 수 없다. 현재 종교로 볼 때 다신교보다는 유일신교를 믿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다신교에서는 많은 신을 존중하고 섬긴다. 그렇다면 유일신교의 신도 섬길 수 있게 되고, 그 종교의 교리를 보면 다른 신은 버리라고 이야기 한다. 결론은 무엇인가? 많은 신들을 버리고 유일신을 따르던가 아니면 유일신을 믿지 않고 다른 많은 신을 따르던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한다. 그런데 이들 간의 대화를 주장할 수 있을까?셋째, 목적. 많은 종교들이 있지만 그 종교들에서 추구하는 것을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현세에서의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존재와 내세에서의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존재이다. 현세를 추구하는 종교는 내세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세를 추구하는 종교 현세에서의 삶을 짧고 순간적이며, 고통스러운 것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내세를 추구하게 되고, 만약 따르지 않는다면 또 다른 힘겨운 내세를 경험하거나. 아니면 고통의 현세를 다시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현세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기복신앙을 위주로 한다. 현재의 자신의 삶이 잘되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결국 종교를 통해서 그들은 성공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삶에서 행복이나 쾌락을 얻었을 때 종교의 정점에 도착했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내세를 추구하는 종교에서는 현실의 기복신앙 적 성격이 있다. 그러나 그들이 아무리 성공하고 행복해져도 그 행복보다 더한 삶을 자신들의 숭배에 대가로 내세에서 경험 한다고 생각한다. 결국 추구하는 방향이 다른 것이다. 내세를 추구하는 종교는 현세를 추구하는 종교에게 계속해서 내세의 중요성을 이야기 하지만 현세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그 내세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들을 가치가 없는 말로 취급된다. 결국 지향점이 다른 이 종교 간의 대화는 아예 필요도, 가치도 없는 것이 된다. 현세에서 해탈을 경험한 불교도에게 기독교의 천국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만약 그 불교도가 천국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해탈을 하지 못한 것일 것이다.종교를 나눈 것으로 파악하는 것은 여기서 마치고,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종교 간의 대립에 대해서 이야기 해 보고 싶다. 한 뿌리를 가진 종교들의 현황, 같은 종교 안에서의 파벌의 갈등, 이단의 등장의 따른 혼란을 예로 들어 현실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종교들의 분쟁을 파악하고 왜 그런 일이 벌어지는지 알아보고 이를 통해서 종교 간의 대화는 불가능 한 것을 말해 보겠다.첫째, 한 뿌리 종교들의 현황. 이번에는 한 뿌리에서 나온 종교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한 뿌리에서 나왔지만 함께 숭배하지 못하는 종교가 있다. 대표적으로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 또, 힌두교와 불교를 들 수 있다. 특히, 유대교와 이슬람교, 기독교는 하나의 유일신을 섬기고 있다. 그러나 이 종교들 사이에서는 서로 못 죽이고 안달이다. 분명히 같은 신을 믿고 같은 신을 경배하고 찬양하지만 그들은 융합되지 않고, 수천년간 피로 물들이는 전쟁을 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유대교와 기독교의 차이는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할 수 있는지에 문제고,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차이는 마호메트의 사상을 받아들이느냐 마냐이다. 유대교는 메시아를 현실에 고난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인물로 기리면 살았지만, 예수는 현실의 고난이 아닌 영적인 해방을 외쳤다. 따라서 유대교는 그를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기독교에서는 예수를 신의 아들로 섬기고 그의 복음을 전 세계의 알리게 되었다. 그런 예수를 박해한 사람은 바로 유대교인들 이었다. 자신들의 교리를 어지럽힌다는 이유였다. 그들은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았고, 결국 두 종교는 갈라서게 되었다. 또 예수를 신의 아들이 아닌 한명의 선지자로 본 유대교에서는 유대교의 십계명(물론 기독교에서도 함께 사용하고 있다.)에서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라는 계명을 따라서 예수를 신으로서 숭배한다면 그것은 즉 교리에서 어긋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에서는 삼위일체를 이야기 하면서 신의 아들인 예수를 숭배해야 한다고 이야기 한다. 결국 예수를 신으로 인정하느냐 마느냐가 큰 차이가 될 것이다. 이슬람교도 위에 두 종교와 같은 신을 섬기지만, 선지자인 마호메트의 사상의 의해서 갈려지게 되었다. 마호메트는 선택된 민족이라는 유대교의 개념에서 ‘모두는 신 앞에서 평등하다’라는 사상으로 사상을 달리 했고, 자신이 처음이자 마지막예언자 즉 ‘선지자의 봉인’을 통해서 그의 사상을 말했다. 따라서 앞서 있던 유대교의 모세와 같은 선지자는 물론, 예수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유대교는 물론 기독교와도 함께 할 수 없는 것이다. 이들이 화합하려면 자신들이 신이라고 생각하는 존재를 버려야만 하는 것이다. 결국, 대화라는 것은 단절될 수밖에 없다. 이들이 서로 대화를 하려면 자신들의 신의 존재를 부정하거나 자신이 지키고 살아왔던 교리를 부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선 힌두교와 불교의 가장 큰 차이점은 유신교와 무신교라는 것이다. 힌두교는 다수의 신을 믿는 유신교지만 불교는 그렇지 않았다. 또 힌두교와 불교의 교리적인 차이는 유대교와 이슬람교의 차이와 비슷하다. 힌두교에서는 브라만이라는 선택된 소수만이 해탈에 이른다고 말하지만, 불교에서는 모두가 해탈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또 많은 신을 믿던 힌두교와는 달리 붓다라는 한명의 선지자의 사상을 따르는 것을 볼 때도 이와 유사하다. 이와 같이 볼 때 현재 종교사를 살펴 볼 때 가장 화해가 되지 않고, 전쟁을 일삼는 종교들은 한 뿌리에서 나온 종교들로 볼 수 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이나, 믿는 것은 하나지만 탄생되고 전해지는 과정에서 생기는 여러 가지 교리와 선지자는 그들을 단절 시키게끔 만들게 되었다. 결국 이들 간의 대화는 자신의 교리를 부정해야만 이루어 질 수 있는 것이다. 대화를 위해서 교리를 부정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종교의 길일까?둘째, 같은 종교 안에서의 갈등. 같은 신을 섬기고 같은 이름을 가진 종교에서도 많은 분화가 이루어지고 서로 대립하고 있다. 기독교라고 부르는 종교는 카톨릭과 정교, 개신교(프로테스탄트), 성공회로 나누어진다. 또 불교는 선종과 교종으로 나누어진다. 이렇게 하나에 종교도 많은 분화가 이루어진다. 하나의 신을 믿고 중점적인 교리가 같은 이러한 종교에서도 분화가 되어서 서로 화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재의 상태이다. 서로 인정 하고 하나로 생각하는 부분도 있지만, 하나의 종교라고 보기에는 힘든 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위에 경우는 그래도 단순한 과에 속한다. 이슬람교의 수니파와 시아파는 서로 죽이지 못해서 안달이다. 두 종교 간의 내전으로 수많은 민간인들이 피해를 입고 죽는다. 이와 같이 같은 종교아래에 있으면서 통합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같은 종교에서 거의 같은 교리를 가지고 있는 모임들도 서로 통합되지 않는데 과연 다른 종교와의 대화가 원활하게 이루어 질 수 있을지 의문이다.
법과 생활 과제‘육일약국 갑시다’를 읽고200910779 손현수법과 생활시간에 교수님께서 독후감 과제를 내주셨고 이번엔 어떤 책을 읽을까 살펴보았다. 그 중 눈에 확 띄는 제목이 있었다. ‘육일약국 갑시다’ 도서목록을 보니 거의 다 희망을 주거나 인생 설계와 같은 지침서 같은 책들이 제목 이었는데, ‘육일약국 갑시다’라니. 어떤 책일까 호기심이 앞섰다. 결국 이 책을 읽기로 결심을 하고 도서관에서 책을 빌렸다. 알고 보니 책의 제목은 자신의 약국을 택시기사들에게 알리기 위해서 했던 작가의 말이었다. 이 책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색다른 경영의 방침을 우리들에게 소개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방침들을 우리에게 알려 주었는지 알아보자, 또 앞으로 나의 목표인 교사가 되어서 어떻게 이러한 방침들을 활용할까도 생각해 보고 싶다.우선 ‘고객을 영업부장으로 만들어라’ 라는 페이지에서 작가는 우리에게 고객을 섬기는 경영을 이야기 한다. 전국에서 가장 작은 약국이었던 육일약국을 알리기 위해 작가는 택시기사들에게 육일약국으로 가자는 말을 하며 자신의 약국을 알렸고, 손님 한 사람 한 사람을 생각해 가면서 자신의 약국을 경영했다. 손님을 위해서 책상을 낮추어서 손님과 깊은 상담을 통했고 환불은 무조건 해 주었다. 뿐만 아니라 손님이 아닌 사람들에게도 전화기를 대절하고, 택시기사들의 동전을 바꿔 놓는 등의 활동을 통해서 자신만의 경영을 보여 주었다. 그 결과 손님이 아니었던 사람들조차 육일약국의 단골이 되어갔다. 가게가 빚을 다 갚고 초등학교에서 장학금을 전달 할 때에는 나도 너무 감격해서 순간 울컥했다. 아이들이 “나도 육일약국 아저씨처럼 될 꺼야“라고 말할 때, 작가는 세상에서 그 누가 부러웠겠는가 생각도 해 보았다. 교사에게 있어 고객은 바로 학생이다. 위에서 작가 보여줬던 방식처럼, 한 사람의 학생 까지도 신경 써주고, 그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을 때, 학생들도 교사를 이해 해주고, 교사의 수업도 더욱더 흥미 있게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결국 학생들 위에 권위로서 군림하는 교사가 되기보다는 학생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생각하는 교사가 되어야 할 것이다.두 번째로 작가는 우리에게 고객에 앞서 함께 일하는 직원들과의 관계가 더 우선시 되어야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익 보다 우선 사람을 남기라는 말을 통해, 자신의 직원들을 믿고, 함께 자라나가면서 경영하라고 말 한다. 자신의 직원들을 신뢰하면서 정직하게 살아 갈 때에 진정으로 하나가 되는 관계를 얘기한다. 또 언제나 자영업자의 마음을 가지라고 이야기하는 것도 마음에 와 닿았다. 사람들의 실패요인은 직장인의 마인드로 살아가기 때문이라고 말한 부분이다. 그래서 작가는 직장인의 마인드를 버리고 직원들이 자영업자의 마인드로 살아가라고 말하고 있다. 교사로서의 삶을 생각 할 때도, 매달 월급이 나오는 것에 만족하면서 직장인의 마인드로 살아가면 안 된다. 학원 강사들에 비해서 학교 교사가 못 가르친다는 이야기도 이러한 교사의 무사안일주의 때문인 것이다. 학교 교사라고 직장인의 마인드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자영업자의 마인드로 학생들을 열정적으로 가르쳐야겠다. 또 많은 학생들이 바라보는 입장에 선 교사로서, 정직함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솔직하게 학생들을 대하고, 그들에게 거짓을 전하지 않는 것이 수업에 있어서, 학생들의 인성을 위해서 꼭 필요할 것이다.세 번째로는 이윤보다는 사람을 남기는 장사를 하라고 이야기 한다. 우선 서로간의 신뢰가 없을 때, 행동의 성실함을 통해, 정직성을 통해서 상대에게 신뢰감을 주는 행동을 했을 때, 이윤만을 생각하고 서로간의 관계를 무시했던 경영방침 보다 훨씬 큰 이득을 주게 되는 것을 이 책에서 볼 수 있다. 사장이었던 자신이 솔선수범하고 한 사람의 직원 까지도 생각하는 모습을 보여줄 때, 작가의 회사는 날로 발전 할 수밖에 없었다. 항공사 측의 실수로 중국에 갈 수 없게 되었을 때, 어떻게든 힘써서 중국으로 가서 앞서간 일행과 합류한 작가를 보면서 ‘사람을 남기려면 저러한 노력을 해야 하는 구나’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교사로서의 삶에서 비추어 볼 때, 이 부분이 상당히 중요한 부분이다. 교사는 많은 학생들이 바라보는 입장에 서있다. 그러한 학생들을 모두 남기는 경영을 해야 하는 것이다. 학생들이 자신의 존재 가치를 느끼지 못할 때 교사는 그러한 학생들을 잡아야 한다. 또 교사가 먼저 나서서 솔선수범하면서 그들에게 모범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모습을 통해 서로간의 신뢰가 형성되고, 효율적인 교사의 지도가 이루어 질 것이다.
법과 생활 과제 독서 감상문목적이 이끄는 삶을 읽고200910779 손현수기독교 신자라고 한다면 릭 워렌 목사님을 한 번 이상은 들어봤을 것이다.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목사님이시다. 나도 기독교 신자로서 이번 법과 생활 과제를 보고 참 반가웠다. ‘목적이 이끄는 삶’ 꼭 한번 읽어 보고 싶었던 도서였다. 계속 미루면서 읽지 못하다가 이번 기회를 통해 읽게 되어서 참 운이 좋은 것 같다. 사람들은 모두 자기 자신만의 ‘목적’을 안고 살아간다. 자신의 삶을 이끌어서 목적에 맞추어간다. 그런데 이 책의 제목은 목적이 이끄는 삶이다. 우리가 보통 생각 하는 개념과는 다른 방법으로 시작한다. 어째서 이런 방식의 삶이 가능한 것일까? 나는 그 답을 책을 읽으면서 찾을 수 있었다. 책의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자.책의 시작은 사람의 존재 이유에 대한 설명에서부터 시작된다. 많은 사람들이 목적을 가지지 못하고 살아가는데 그 이유는 바로 자신의 존재 이유를 모르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존재 이유를 깨닫기 위해서는 한 가지 사실을 인정해야만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을 만든 존재 즉 신인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책에서 말하고 있다. 자신을 만든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는 그 순간 우리의 존재 가치는 부상하기 시작한다. 나의 존재와 모든 생활은 우연이아니라 하나님이 예전부터 계획하심에 따라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것으로 자신의 존재가치는 시작되고, 또 지금의 삶은 일시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깨닫게 해준다. 일시적인 이곳에서의 삶이 끝나고 있을 영생의 삶. 바로 그 삶을 목적으로 하고 그 목적이 이끄는 대로 우리는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우리의 목적이 영생을 위한 삶을 살기위한 것이란 걸 알았다. 그렇다면 그 영생의 삶을 살기위한 방법은 무엇일까? 그 방법이 바로 새로운 우리의 목적이 되는 것이다.첫 번째 목적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있는 최고의 방책을 이 책에서는 ‘예배’라고 설명하고 있다. 예배를 드리는 것은 사람의 좋고 나쁨이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사람의 감정의 따라서 예배를 드리지 말고 하나님께 드리는 마음으로 언제 어디서나 항상 하나님을 품은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게 예배하는 자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두 번째 목적은 하나님과 가족이 되는 것이다. 성경에서는 하나님과 가족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가족이 되기 위해서 우선 거쳐야 할 부분은 세례(침례)라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지상명령이 세례를 주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례를 받은 후에는 가족으로서의 삶, 즉 교회 공동체에서 하나가 되는 삶을 살라고 말하고 있으며, 또 하나가되는 삶을 이루어 낼 수 있는 방법을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세 번째 목적은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것이다. 우리 자체는 그리스도를 닮게 창조되어 있다는 대전제를 앞에다 세우고 글을 시작하고 있다. 책에서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이 되어가는 방법을 설명 하고 있는데, 그 방법으로 진리로 인한 변화, 어려움으로 인한 변화, 시험을 통한 성장으로 얘기하고 있다. 결국은 그 시험을 이겨내고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이 되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이 되는 것이 빠르게 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천천히 기다리면서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이 되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네 번째 목적은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살라는 것이다. 저자는 하나님을 섬기면서 사는 것도 우리가 지음 받은 한 이유 중에 하나라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하나님을 섬기면서 사는데 우리가 지음 받은 모양인 S:영적인 은사들 H:마음 A:능력 P:성격 E:경험 한 단어로 바꾸면 SHAPE 영어로 모양이라는 뜻으로 쉽게 정리해서 우리에게 그 받은 SHAPE 대로 하나님을 섬기라고 말하고 있다.마지막 다섯 번째 목적은 사명 받은 삶을 살라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 사명을 받았고, 그 사명을 위해서 살아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사명이 가지고 있는 공통된 임무는 예수님의 지상명령을 지키는 것, 곧 복음을 전하는 일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목적의 끝은 바로 복음을 전파하는 것 이였다. 또 목적이 이끄는 삶을 위해서 목적 선언서를 작성하라고 우리에게 말하며 책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