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명 : 반대세의 비밀저 자 : 현대사상연구회사격을 잘하기 위해서는 삼박자가 고루 갖춰져야지 최고의 성과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바로 호흡, 자세, 격발이 그것이다. 하지만, '조준선 정렬'이 정확히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앞서 말한 세 가지를 모두 충족해도 결과는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다. 가장 중요한 부분 즉, 기본이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를 나무에 비유하자면 조준선 정렬이 '뿌리'이고, 호흡, 자세, 격발은 바람과 비, 햇빛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무도 마찬가지로 뿌리에 문제가 생긴다면 나머지 배경은 나무를 성장시키기는커녕 썩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반대세의 비밀 그 일그러진 초상'은 이러한 심각성을 깊이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현재 우리나라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이 전쟁의 상처를 딛고, 빠른 민주화와 산업화를 이룬 전무후무한 국가라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아시아의 오룡(五龍)'으로 주목받았을 뿐 아니라 '한강의 기적'을 이룬 국가로써 세계인에게 회자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이면에 숨겨져 있던 문제점들이 속속들이 나타나게 되었고, 현재 대한민국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뿌리' 즉, '정체성'의 부재였다.정체성의 부재는 앞서 비유한 것처럼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음에도 대한민국을 병들게 하고 있다. 정체성의 부재가 '반대한민국세력(이하 '반대세')'의 출현을 부추겼기 때문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지금까지 쌓아온 대한민국의 모든 역사성과 전통성을 통째로 부정하면서 대한민국이 하나로 응집되는 것을 방해한다.그 예가 대표적인 '남-남 갈등'이고, 남과 북이 휴전상태로써 총성 없는 전쟁을 하는 동안에도 계속되고 있다. 더 큰 문제점은 이러한 상태가 세대를 거듭될수록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왜곡되고 있으며, 마치 그것이 사실인양 후대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안보의식과 주적의 개념을 잊고, 맹목적으로 현 정부에 대한 불신을 표출하는 것이 그 예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상태를 계속 유지하게 된다면 대한민국은 통째로 흔들리는 상태가 될 것이다.그래서 이 책은 이들에 대한 분석과 역사적 행위에 대해 초점을 맞추었고, 철저하게 실증적 자료를 가지고 '반대세'를 이야기한다. 그들이 주장하는 관점의 '허(虛)'를 밝히고 있다는 것이다. 나 역시 이 책을 그동안 잘못 알고 있었던 '역사'와 대한민국의 '전통성'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을 뿐더러 충격을 받았다.왜냐하면 나는 '전교조'인 국사 선생이 있었던 고등학교에서 주입식으로 공부했던 수험생이었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서 한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촛불시위'나 '광우병 소동'과 같은 반 정부운동의 대부분이 역사적 관점을 이해하지 못할 시기의 청소년들이나 전교조와 같이 왜곡된 역사를 가르치는 이들에 의해 대학에 들어온 대학생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말이다. '진실'은 변하지 않지만 '삼인성호(三人成虎)'가 가능하기 때문이다.그래서인지 이 책은 계속해서 '남한 내 좌익'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고 있으며, 전쟁의 실제적 원인과 잠재적 위협이 이들이라고 이야기 한다. 왜냐하면 이들은 대한민국 사회에 뿌리내리고 왜곡된 것을 마치 사실인양 떠들고 있으며 정부에 대한 반감을 일으키도록 대한국민들을 규합하고 있기 때문이다.역사적으로 볼 때도 불법남침을 계획한 김일성이 가장 믿었던 것은 그의 군사력보다도 더 믿었던 것이 '남한 내의 좌익세력들' 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이는 전쟁을 허락받기 위해 스탈린에게 보낸 서문뿐만 아니라 그의 연설내용 대부분에서 찾을 수 있으며, 실제로 그의 믿음대로 좌익세력들은 무고했던 수많은 국민들을 참혹한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이러한 이유로써 '6.25전쟁'은 '군인보다 민간인이 더 많이 죽은 전쟁'으로 역사에 기록되었고, 국군과 미군이 민간인들을 대량 학살했다는 왜곡을 통해 통일을 막는 원인으로 작용했다.전쟁이 끝나고 국가의 좌파척결 노력을 통해 이들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들은 계속해서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뒤흔들고 있다. 그것도 손쉽게 말이다. 지난 몇 년 전 수많은 국민이 광화문으로 쏟아져 나오고, 수많은 국민들이 동요했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바로 '광우병사태'가 그것이다.이는 남한 내의 좌익들의 행위 중 하나인 검증되지 않은 유언비어 살포로써 대한민국 정부와 대통령의 정통성과 정체성까지 위협하는 초유의 사태였고, 전 세계에서도 대대적으로 보도하는 혼란한 상황까지 만들었다. 이뿐만 아니라 좌익사상을 그대로 드러내며 '반대세'를 부르짖는 단체들이 우후죽순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이들의 세력은 단순히 한 곳에 머물러 있지 않고, 점차 확대되어 사회단체, 노동계, 언론계, 교육계, 학계, 문화예술계는 물론 국가의 기반이 되는 정계, 관계, 군계 등에까지 물들이고 있는 형국이다. 이러한 일련의 흐름들은 좌익의 끊임없는 대한민국 흔들기로써 전쟁이 지금도 진행 중이고, 대한민국 내의 '트로이목마' 즉, 남한 내의 좌익세력이 있는 이상 대한민국은 언제라도 뼈아픈 전쟁의 역사를 반복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시사한다.그러므로 책의 제목처럼 그들의 '일그러진 초상'을 속속들이 밝혀야 하는 것이 우리의 자세이고, 사명이라 하겠다. 더욱이 장교가 되어 국토방위의 최전선에서 복무할 우리는 더욱이 그러하다고 생각한다. 이는 단순히 가슴으로 느끼기만 하는 것에서 벗어나 새로운 자세가 필요하다.첫 번째, 역사에 대한 공부가 선행되어야 한다. 앞서 말했듯이 반대세들은 검증되지 않은 유언비어가 무기이고, 감정적으로 사람들을 동조하는 것이 허점이다. 그러므로 정확하고, 실증적인 역사적 증거와 사실을 제시하면 그들은 꼼짝 못하게 된다. 흔히 우리는 '지피지기, 백전불태'라는 손무의 말을 전쟁은 물론 경영, 경제, 생활에서도 자주 인용한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서 지지 않는다.'이 이를 간단하게 말해주는 것으로 생각된다.두 번째, 정확한 역사를 알리도록 노력해야한다. 단순히 역사에 대한 공부와 관점을 자신만이 견지한다면 그것은 '우물 안에 고인 물'이라 할 수 있다. 흐르지 않는 물은 썩듯이 세상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지식은 결국 썩을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잘못 알고 있는 진실에 대해 바로 잡아 줄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 '장교'는 계급이 올라갈수록 많은 눈들이 보고 있으며 따른다. 그러므로 그 책임은 더 크다고 할 수 있기에 더욱 노력해야한다.
도서명 : 압록강은 흐른다.저 자 : 이미륵‘압록강은 흐른다.’ 라는 도서를 읽기에 앞서 이미륵 이라는 저자에 대해 궁금했다. 우선 이름으로 인해 나의 이목을 끌었다. 본명은 이의경. 황해도 해주 출생으로 1917년 경성의학전문에 입학하였다. 재학 중 3?1운동이 일어나자 반일 전단을 뿌리는 등 학생운동 주동자로 활약, 같은 해 상하이로 망명하여 임시정부의 일을 도우셨다고 한다. 젊은 시절에 독일에 가 공부를 하셨다는데 대표적인 작품들 중 독일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독일학생들에게도 애독되었다고 한다. 독일에서 독일어로 작품 활동을 한 유일한 한국작가이시다.이 글은 소설이라고 보기에는 독특한 형식을 지니고 있다. 소설이라기보다는 수필에 가깝다고 느껴졌다. 이 소설의 매력적인 점은 작은 에피소드 중심의 사건 전개가 읽는 이를 전혀 지루하게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20세기 초반 우리나라의 암울했던 기억들이 거창한 정치나 경제 논리로 접근된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재에서 주제를 찾아 서술하였다. 또한, 솔직한 삶의 모습 속에서 흔히 이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소설들이 갖고 있던 교과서적인 선입견에서 멀리 벗어나 있다.소설에서 사촌인 수암 이라는 인물이 나온다. 여기서 ‘나’ 는 사촌 수암과 함께 보낸 어린 시절, 가정과 학교생활, 구식 교육과 신식 교육, 일제의 침략과 탄압 정치, 압록강을 건너 상해를 거쳐 유럽에 도착하여 독일 생활이 시작되는 이야기까지 자전 소설 형식으로 묘사되어 있다. 작가는 한국의 역사적·전통적 배경을 바탕으로 신문명의 유입 과정과 유럽 세계와의 접촉을 1인칭 소설로 서술하면서 고향과 조국의 이야기를 외국의 독자들에게 들려주고자 했다. 한국의 풍습과 인정, 그리고 그가 태어난 황해도의 산천과 서당에서 한학을 배우던 시절의 추억들이 많은 독일인들에게는 매우 이색적이고, 동양적인 아름다움으로 비쳐진 것이다. 그의 작품에 나타난 간결한 독일어 문장 속에는 작가의 혼과 인격 그리고 사상이 생생하게 살아 있다. 그의 묘사는 객관적인 위치에서 배경, 인물, 장면 등을 간결하게, 그러면서도 구체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나’는 어린 시절 대부분을 사촌 수암과 놀았다. 그는 글공부에는 취미가 없었다. 당시 아버지는 우리에게 어려운 한문을 일찍부터 가르치고 있었다. 우리는 그 글공부가 너무나 싫었다. 나와 수암은 밖에 나와서 여러 가지 재미있고 신비한 일을 하는 것을 좋아했다. 수암은 운이 좋게도 곧잘 잠자리를 잡았고, 또 조심스럽게 채에서 내려 엄지와 장지로 두툼한 배를 잡고는 꼬리를 될 수 있는 대로 앞으로 굽혀 잠자리가 제 꼬리를 물도록 하였다. 또한 풍뎅이를 잡으면 넓고 반들반들한 돌 위에 거꾸로 뉘어 오랫동안 날개를 치며 춤추게 만들었다. 우리는 습자를 배우고 또 배웠다. 우리는 제각기 필통과 많은 종이를 받았고, 맨 처음으로 먹 가는 것을 배웠다. 우리는 지겨운 공부를 하지만, 금방 아버지 방에서 나가야 했다. 아버지 방에는 신기한 물건들이 잔뜩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들을 만질 수 없었다. 그러나 어느 날 오후 이 방이 비었을 때, 나와 수암은 자그마한 열쇠를 찾아 서랍을 하나하나 차례대로 열 수 있었다. 그러나 곧 큰 불행이 왔다. 수암은 연거푸 뒤지면서 많은 거무튀튀한 환약이며 알약을 먹고 있었다. 수암은 곧 쓰러졌고, 간신히 숨을 쉬었다. 아버지가 의원을 데려와서 겨우 목숨을 건진 수암은, 의원에게 버릇없이 굴었다.우리들은 아버지에게서 '천자문'을 배웠고, 여러 이야기를 들었다. 수암은 곧잘 ‘나’를 ‘미악’이라고 불렀다. 그것은 그가 'ㄹ'과 '으'를 발음할 수 없어서 그렇게 불렀던 것이다. 그는 습자지로 연도 곧잘 만들었다. 우리들은 집 안에 세운 서당에서 공부를 했다. 나와 수암은 훈장에게 맞아가면서 공부했다. 연을 만들려고 습자지를 함부로 써 버렸기 때문에 훈장 앞에서 우리는 바지를 높이 걷어 올려 종아리를 맞아야만 했다. 거의 모든 아이들은 나보다 나이가 들었으므로 공부가 우리 둘보다 훨씬 앞섰다. 수암과 나는 꼬마 아이들과 함께 '삼강오륜'과 짧게 간추려진 한국 역사책을 배웠다.우리는 가끔 종각에 있는 놀이터에 가 놀았다. 그 곳에서 다른 동네 아이들과 패싸움을 하기도 했다. 우리는 구월에게 이끌려, 연극을 구경하기도 했다. 우리들은 약 삼십 명의 탈을 쓴 광대들이 음악에 맞추어 온 거리를 통해 북문 앞 노천극장까지 행진하는 그 무리들 속에 휩쓸렸다. 무수한 사람들이 성벽 위의 문루며, 무대를 둘러싼 높은 언덕이며, 그늘진 큰 나무 아래에 앉아 구경하고 있었다. 설날에 우리는 어른들께 세배를 드렸다. 그리고 아버지와 놀음을 즐겼다. 그러나 항상 놀음에 진 수암은 고집불통이었고, 불만에 가득 차 있었다. 며칠 후, 나는 불공을 드려 준 여인을 만나게 되었다. 그 사람은 아주 먼 지방에서 온 한 할머니였다. 그는 자그마한 사내아이였던 나를 '내 아들'이라고 불렀다. 내 어머니도 그 할머니를 '어머니'라고 부르도록 하였다. 그가 비록 나를 낳지는 않았지만, 예전에 내 어머니를 위하여 아들을 낳게 해 달라고 빌었고 또 그랬기 때문에 나를 낳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 후 몇 달 뒤에 아버지가 병석에 누웠다. 아버지는 여행 중이었는데 며칠 후에 갑자기 돌아왔고, 온 집안은 그로 인하여 야단법석이었다. 어디가 편찮은지 나는 잘 몰랐다.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여러 의원들이 다녀갔다. 그 후 명의로 소문난 의원에게 아버지는 겨우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아버지는 점차 완치되어 갔다. 그런 중에 문중 회의가 열렸다. 수암을 어떻게 할 것인가? 사람들은 수암이 한문을 익히기 위해 계속해서 서당에 다녀야 한다고 결정을 내렸다. 그래서 수암은 그의 어머니와 함께 시골로 가야만 했다. 고전을 잘 가르쳐 주는 동네로 옮긴 것이다. 수암의 어머니는 거기서, 여태껏 아버지의 소유였고 또 아버지가 관리하던 농장의 경영을 맡아야 했다. 그리하여 함께 유년 시절을 보낸 나와 수암은 최초의 이별을 했다.나는 아버지와 함께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나는 아버지와 시를 읊기고 하고, 옛날 고전을 이야기하며, 술을 마시기도 했다. 아버지는 나를 새 학교에 보내기로 결정하셨다. 나는 아버지를 따라 새 학교에 갔다. 우리는 종로를 지나서 옆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곧 큼직한 건물의 문 앞에 이르렀다. 이것이 바로 모든 사람들의 입에 그렇게 오르내리던 무서운 학교였다. 학교 이름이 문패에 새겨져 있었다. 나는 엄청나게 크게 보이는 교정을 들여다보았다. 나는 거기서 두 권의 교과서와 석판 그리고 많은 연필을 받았다. 선생님은 상인이 나를 위해서 학교에 가져 온 것이라고 했다. 책은 '동양사'라 적혀 있는 것과, '자연 법칙'이라 적혀 있는 것이었다. 나는 새 학교에 가기 싫었으나 아버지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억지로라도 가야 했다. 내 옆자리에는 기섭이라는 학생이 앉아 있었다. 그는 가끔 내 빈 공책을 들여다보고는 몇 자씩 적어 주곤 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어려운 산수의 답이나마 집으로 가져 갈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나는 수소와 인력, 그리고 현자 중의 현자라는 아브라함 링컨에 대해서 배웠다. 그는 공자나 맹자처럼 위대한 현자였다. 나는 아버지와 새 학문에 대해서 여러 가지를 이야기했다. 서당에는 여름 방학이 없었으며, 아주 더워지면 공부를 보통보다 조금 덜 배우는 대신 목욕하러 갈 뿐이었다. 일요일도 없었고, 다만 한 달에 이틀만 쉬었다. 그러나 이 새 학교에서는 일요일은 휴일이었고, 여름이면 한 달을 편하게 보낼 수 있는 여름 방학이 있었다. 아버지는 나의 필적에 만족하지 않고 방학을 습자 연습에 이용하기를 요구했다. 나는 용마와 함께 새 학교에 다른 아이들을 입학시키는 일을 하였다. 용마는 일본에 대해서, 이제 그들은 유럽 사람에게 많이 배워 유신을 했기 때문에 지금은 문명국으로 간주해야 한다고 말했다.일본 상인들은 곧잘 이상한 물건을 팔았다.가을에는 학과가 더 오래 걸렸다. 새로이 지리와 세계사를 배우게 되었는데, 교과서가 없었기 때문에 언제나 칠판에 쓴 것을 받아 적어야만 했다.나는 아버지와 목욕을 하러 갔다. 우리는 깊은 산골에서 목욕을 하고 돌아오려 하였다. 얼마 후에 우리는 집에 도착하였다. 그런데 아버지가 문지방을 들어서자마자 의식을 잃어버린 것이다. 집안사람들은 아버지를 부축하여 안방으로 모셨다. 나는 밤새도록 이 의사 저 의사를 찾아다녔으나 소용이 없었다. 구월이 기다란 흰 베로 아버지의 침소에서 문지방까지 영혼의 길을 준비할 동안 온 집안사람들을 모두 기도만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아버지가 죽은 후, 나는 새 학교를 그만두었다. 학과 공부가 어려워서였고, 그것보다 나에겐 어떠한 의지도 남아 있지 않았다. 어머니는 나를 외로운 포구 송림 마을로 가게 하였다. 나는 거기에서 농부들과 보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나는 마을에서 조용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나는 어느 날씨 좋은 날, 심양으로 가는 기차표를 샀다. 나는 만주로 가고자 했다. 그리고 나는 유럽에의 꿈을 꾸었다. 그러나 나는 철도 역원에게 충고를 들은 후, 다시 송림 포구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 후 어머니는 나에게 다시 공부를 시작하라고 하셨다. 나는 정말로 더 공부하지 않으려고 했다. 새 시대는 나에게 너무나 낯설고, 또 확실히 새 학문에 관해서 나는 재주가 없다고 믿었다. 그러나 나는 마침내 어머니의 말을 거역할 수 없었다. 나의 동무들은 내가 다시 학교로 갔을 때 모두 즐거워했다. 그들은 내가 놓친 시간들을 어떻게 따라오며, 어떻게 하면 가장 빨리 전문학교 공부를 할 수 있는지 일러 주었다. 나는 중학 과정에 관한 유명한 통신 교육 기관의 강의록을 받아서 공부하기 시작했다. 강의를 시작한 지 몇 달 후에 시작한 영어만이 나를 곤란에 빠뜨렸다. 용마는 나에게 화학과 물리를 도와주었다. 기섭은 수학을 도와주고, 각성이라고 불리는 다른 학생은 낯선 이름 때문에 곤란했던 서양사를 도와주었다.
도서명 : 영혼을 지휘하는 리더십저 자 : 퍼이어원 제목이 Nineteen Stars인데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4명의 장군인 조지 마셜, 맥아더, 아이젠하워, 조지 패튼의 별을 모두 합하면 19개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패튼 장군만이 4성장군이시다.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네 명의 장군들의 리더십을 여러 각도에서 비교 분석한 책인 의 내용에는 2차 세계대전에서 가장 탁월한 리더십을 보여준 네 명의 장군, 조지 C. 마셜, 더글러스 맥아더,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조지 S. 패튼에 대한 비교 연구를 통해 그들이 어떻게 지휘관으로 다듬어 졌으며, 어떻게 사람들을 이끌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전쟁에서의 승리는 사람에게 달려 있다. 그래서 전쟁에서 이기려면 인간을 탐구해야한다. 전쟁은 그 시대의 문화양식이다.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끈 4명의 장군들. 군 지휘관은 부하들이 자발적으로 목숨을 걸고 총탄이 퍼붓는 전장으로 뛰어들게 만든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가. 지휘관의 솔선수범일 수도 있고, 훌륭한 인격일 수도 있으며, 혹은 지휘관의 카리스마일 수도 있다. 그것이 무엇이건 집단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구성원이 자발적으로 자기희생을 각오한다는 점에서 그보다 훌륭한 리더십은 없을 것이다. 성공한 군 지휘관들은 어떤 식으로든 전장에서 그런 리더십을 유감없이 발휘한 인물들이다. 그러므로 효과적으로 조직을 이끌어 목표를 달성하고자 하는 지도자, 혹은 지도자가 되기 위해 참다운 리더십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성공한 군 지휘관들의 리더십에서 그 전형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무엇이 그들을 승리로 이끌었을까? 미 공군사관학교에서 오랫동안 리더십을 강의한 저자 퍼이어는 천부적인 능력과 노력으로 만들어진 후천적 특징이 결합된 리더십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예를 들어 마셜에게서는 전문성과 사랑의 리더십을, 맥아더에게서는 신념과 용기의 리더십을, 아이젠하워에게서는 결단과 조정의 리더십을, 그리고 패튼에게서는 긍지와 솔선수범의 리더십을 발견할 수 있다. 이 같은 개별적인 요건 외에도 이들의 삶은 모든 이에게 적용될 수 있는 리더십의 유형이 있다. 그것은 사심 없는 마음, 배려, 창의성, 용병술, 훌륭한 스승을 만나는 행운 이런 것들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면 우리나라와 우리 직장은 어떠한가. 우리의 마음과 영혼을 감싸고 조직 내의 흩어진 민심을 바로잡는 그런 리더십은 있는가. 그저 답답할 뿐이다. 서로 삼삼오오 모여서 스산한 애기들만 만들어낼 뿐 우리가 진정으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사람들은 없는 것 같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더 늦기 전에 우리의 힘을 하나로 모아 새로운 방송, 새로운 문화,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국민 그리고 우리들의 후배들에게 떳떳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단순히 몇 가지 지침만을 나열하지는 않는다. 저자는 인터뷰와 자료 조사를 통해 흥미진진한 여러 사례를 제시함으로써 그들의 리더십이 어떤 모습으로 발휘되었는지, 즉 어떻게 부하들에게서 최고의 능력을 이끌어내어 승리를 이루었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최고의 지도자는 부하들의 영혼을 지휘한다. 지휘관에게 필요한 여러 가지 자질 중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은 배려와 사랑이다. 부하들의 복지에 관심을 가지고 대화를 나눔으로써 임무에 대한 자신감과 헌신을 불러일으키는 사람이 훌륭한 지휘관이라는 것이다. 즉 진정한 리더란 부하들을 사랑하고, 그들이 지휘관에게서 사랑 받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하여, 거꾸로 다시 그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다. 이런 면은 네 명의 지도자들에게도 공통적으로 나타난다.마셜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병사들의 가족까지 배려해 생계를 해결해주기도 했으며 병사들의 아내들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남편의 안부를 전하기도 했다. 맥아더는 비난을 받을 수 있는 하기 싫은 일(보상을 요구하는 퇴역 군인들을 진압하는 일)을 부하에게 시키지 않고 직접 했으며, 전사자들의 가족에게 일일이 편지를 썼다. 그 편지에는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가득했다. 즉, 상대방의 마음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아이젠하워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당번병의 결혼식에 참석했고, 영국 왕을 만나는 자리에 부하를 데리고 가 함께 소개했으며, 정기적으로 병영을 방문해 부하들을 격려했다. 거칠고 도발적인 패튼도 부하들에게는 굉장히 자상했다. 측근의 전사 소식을 듣거나 병원을 방문해 부상자들을 만날 때마다 패튼의 눈에는 눈물이 고이곤 했다. 군수품을 아끼지 않았던 그의 행동은, 진정한 군인이 되기까지는 18년이 걸리지만 탄약을 만드는 데는 불과 몇 개월밖에 걸리지 않는다는 말에도 잘 나타나고 있다. 우리 일터에서도 서로 상대방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가득했으면 한다. 경영진은 노조를 인정하고 노조는 경영진을 선배로 생각하면서 서로 신뢰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대화했으면 좋겠다.전문성과 사랑의 리더십을 가진 마셜. 트루먼 대통령은 2차 세계대전 시 마셜의 활약에 대해 “수백만의 미국인들은 조국에 대해 충실한 의무를 다했습니다. 그리고 마셜 원수는 그 헌신적인 노력을 값진 승리로 가져왔습니다.”라고 말했다. 마셜은 미 육군 참모총장을 역임하면서, 군의 모든 장병을 비롯해 언론과 의회, 그리고 국민들과 연합군에게 위대한 지도자였다. 그러한 그의 성공은 40여 년간 끊임없이 연구하고 모든 일에서 철저하게 준비했던 노력의 결과였다. 그러나 그가 지도자로서 성공한 데는 전문적인 지식을 배우려고 했던 것 뿐만 아니라, 자신이 습득한 지식들을 동료와 부하들과 함께 나누려고 했던 점이 크게 작용했다. 언제나 그는 개인적인 영광보다는 공동의 이익을 위해 애썼고, 이는 어떤 곳에서도 마셜만큼 하급 장교들에게 좋은 가르침을 주는 지도자를 만날 수는 없을 거라는 한 장교의 말에서도 입증되고 있다.신념과 용기의 리더십을 가진 맥아더 장군. 맥아더는 자기 자신과 자신의 운명, 그리고 역사에서의 자신의 위치에 대해 항상 신념과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실수를 한 후에는 진정으로 잘못을 시인했지만, 결정을 내릴 때에는 그 결정이 옳음을 확신했다. 그의 휘하에 있던 한 사단장은 그에 대해 “수많은 영웅적이고 용기 있는 행동들이 흔히 일어나고 있는 곳에서도, 그의 용기는 단연 으뜸이었다.”고 말했다. 폭격이 있을 때 다른 장교들은 방공호로 내려갔지만 그는 사무실에 남아 있거나 대공화기 사수와 이야기를 하면서 적들을 관찰했다. 이러한 그의 용기는 훈장을 받는 군인들에게 그가 했던 연설에서도 명백히 드러나고 있다. “모든 군인의 특질 중에서, 가장 위대한 찬양을 일으키는 것은 바로 용기입니다.”결단과 조정의 리더십을 가진 아이젠하워. 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 최고사령관이라는 자리는 군인으로서의 자질뿐만 아니라 정치가로서의 융통성, 언론과의 친밀한 관계가 필요한 자리였다. 몽고메리 원수는 연합군 최고사령관으로서 아이젠하워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그는 위대한 최고사령관이자 군 정치가였다. 어느 누구도 그처럼 연합군이 멋진 전투를 수행하도록 단결시킬 수 없었을 것이며, 함께 탄 배를 침몰시킬 수 있는 수많은 분쟁과 방해 요인들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줄 수 없었을 것이다.” 언론과의 관계에서도 그는 획기적인 방법을 사용했다. 그는 기자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근거 없는 추측 기사가 나오지 않도록 했으며, 기자들을 신뢰하고 있다고 느끼게 함으로써 책임감을 느끼고 위험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도록 함으로써 참으로 지혜롭게 많은 사람들을 관리하는 지도자였다.긍지와 솔선수범의 리더십을 가진 패튼. 많은 사람들은 패튼을 ‘지도자’라기보다는 ‘운전사’라고 말한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는 엄연히 ‘지도자’이고, ‘운전사’라는 말은 그가 이끈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패튼은 역동적이고 몸소 실천하는 지휘관이었다. 그는 어느 곳에나 직접 찾아갔다. 해변에서 공급 물자 싣는 것을 도왔고, 직접 총을 쏘며 최전방에 머물기도 했고, 자신의 지휘 구역에 있는 부하 지휘관들을 방문하고, 진흙탕에 빠진 트럭을 병사들과 함께 밀어 올리기도 했다. 또한 그는 병사들의 복지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는 병사들이 잘 먹고 있는지, 불필요한 위험에 노출되어 있지는 않은지, 옷은 따뜻하게 입고 충분한 휴식을 취하는지에 대해 깊은 관심과 배려를 보였다. 용맹한 공훈이 세워지면 그 자리에서 표창하기도 했지만, 용기 있는 전투병이 그로 인해 불운해지는 것은 막으려고 노력했다. 패튼은 조국을 열정적으로 사랑했고, 또한 자신이 이끄는 병사들을 너무너무 사랑했다. 어느 사단장이 말했듯이 패튼은 적과 싸우는 것만큼, 자신의 병사들을 위해 싸웠다. 병사들을 위해서라도 그 어떤 어려움도 참고 견디며 이겨내는 지도자였던 것이다.
도서명 : 정상에서 만납시다.저 자 : 지그 지글러처음 지그 지글러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정말 낯익다는 생각을 했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지난 학기에 같은 저자의 ‘시도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라는 책을 읽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을 한 학기 만에 잊어버리고 있었다니...... ‘시도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라는 책을 읽었을 때도 정말 ‘시도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어!’라고 느꼈었는데, 이 책을 읽고도 정상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책을 읽고 나니 제목처럼 하고 싶다고 느낀 것이다. 이 책은 예화를 적절히 들어 두고 조금 더 구체적인 목표설정을 가능하게 해 주어 지루하지 않고 다 읽고 난 후에는 내 삶의 자세를 조금 바꾸어야겠다는 다짐을 남기게 했다.이 책에서 정상으로 가는 여섯 단계는 첫째, 자기 이미지. 둘째, 대인관계.셋째, 목표. 넷째, 자세. 다섯째, 일. 여섯째, 욕망 이라고 했다.정상에 오르려면 첫째로, 건전한 자기 이미지를 가져야한다.건전한 자기 이미지는 모든 일의 기초가 된다.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의 재능이나 시간을 허비하며 살고 있다. 이것은 최고 나쁜 종류의 도둑이 될 수 있다. 많은 위인들이 학교 공부에서 열등생이었거나 부적응아로 낙인 되면서 시련을 겪었지만, 그들 스스로가 스스로를 긍정적으로 봄으로 인해 그들은 그들의 업적을 이룰 수가 있었다. 당신은 자신을 바라보는 태도와 다른 형태로 일을 수행할 수는 없다. 자만을 가진 사람은 자기 이외의 모든 사람을 병자로 취급한다. 자신감은 좋지만 자만은 금물이다. 인류의 최대 비극은 천연자원의 낭비가 아니라 인간자원의 낭비이다. 홈스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내부에 잠자고 있는 음악을 그대로 지닌 채 무덤으로 간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나의 이미지는 어떨까’ 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내가 되고 싶은 일종의 워너비는 지적이고 매력적인 사람이다. 이 책에서는 건전한 이미지를 확립하는 방법에서 외모를 고치고 치장하라고 했다. 단정하면 자신감이 생기는 법이라를 고치고 치장하는데 너무나 많은 노력과 시간을 소비한다. 물론, 그렇지 않은 여성들도 있지만, 나 역시도 외국에서 잠시나마 생활할 때와 한국에서 있을 때의 사고방식이 조금은 다름을 느낀다. 외모에 대한 관심을 늦추지 않는 것은 물론 좋은 자세라고 생각한다. 겉으로 드러나는 것도 좋지만, 나는 내면의 아름다움까지 함께 갖춘 사람이 되고 싶다.둘째로, 대인 관계에 명수가 되어야한다.자수성가한 100명의 백만장자의 특징은 어떤 상황에서도 타인의 장점은 보았다. 대인관계는 메아리와 같다. 심은 대로 거두는 것이다. 좋은 결과를 거두려면 황금률을 실천하면 된다.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해야한다. 타인을 만날 때에 그의 장점과 능력을 인정해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칭찬을 해라. 자신에게 유익이 돌아올 것이다. 정직하고 성실하고 진실한 칭찬을 해라. 타인의 격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출세하게 된다. 성공과 행복의 첫 단계는 자신의 잠재력을 아는 것이요. 두 번째 단계는 타인의 잠재력을 아는 것이다.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고 개발해라. 이것이 성공에 가장 중요한 원리이다. 또한 남의 재능을 발견하고 도와주면 자신의 재능도 더욱 계발된다. 남이 성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 자신도 발전하게 된다. 사람들의 필요를 알고 충족시키면 당신이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다. 인생은 남에게 도움을 주므로 자기가 원하는 것을 받게 된다. 행복한 자가 되려면 타인을 행복하게 만들어야한다. 타인의 능력을 계발하도록 도와주고 인간의 실수와 허물을 용납하고 용서해라. 당신이 타인을 가치 있게 도와주면 그는 더욱 가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진정으로 상대방의 소원성취를 도와주면 당신의 소원도 성취된다. 우리가 소중하게 여겨야 할 가장 중요한 타인은 자신의 배우자이다. 행복한 가정생활의 비결은 자신의 반려자를 정중하게 예의 바르게 대하는 것이다. 서로 예의를 가지고 존경해야한다. 아내의 행복은 남편이, 남편의 행복은 아내가 좌우한다. 부부관계는 일 년 내내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허물을 덮어주는 것이고 참아주는 것이다. 남편이 그의 자녀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축복의 선물은 그들의 어머니를 사랑하는 것이고, 아내가 그녀의 자녀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축복의 선물은 그들의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이다. 이상적인 결혼과 사랑은 그들의 수많은 시련과 고통을 극복하게 한다. 부부가 함께 매일 기도하며 아름다운 가정을 만들어 가야할 것이다.셋째로, 실천 가능성이 있는 목표를 설정해야한다.당신은 목표를 가져야한다. 목표가 없으면 그것을 달성할 수 없고 방향조차 잡을 수 없다. 목표가 없는 사람은 늘 제자리걸음을 하든지 퇴보하게 된다. 뚜렷하고 정확하고 확실한 목표를 설정할 때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다. 당신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당신은 어떤 사람이며 어떤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까? 목표가 없는 인생은 인생을 낭비하게 된다. 사람이 실패하는 것은 아무 목표도 세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목표와 계획은 참으로 중요하다. 목표가 없는 사람은 배에 키가 없는 사람과 같다. 목표가 없는 자는 떠돌아다니는 것이지 전진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실패와 좌절을 면치 못할 것이다. 목표가 중요하다. 뚜렷한 목표, 가치 있는 목표를 설정해야한다. 인간의 삶은 자전거를 타는 것과 같아서 목표를 세우고 전진하지 않으면 넘어지게 된다. 그래서 목표를 세우고 살아야 하는 것이다. 목표의 종류는 정신적인 목표, 지성적인 목표, 신체적 목표, 인격적인 목표, 영적인 목표, 가정의 목표, 경제적인 목표 등이 있다. 이러한 목표들을 뚜렷하게 설정해라. 모든 사람에게 목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방랑자는 인생에 주어진 귀한 시간을 낭비하는 사람이다. 일단 목표를 설정하게 되면 있는 힘을 다해 헌신하며 노력하여 더 좋은 결과를 얻게 될 것이다. 매일에 대한 목표와 미래에 대한 목표를 가져라. 목표를 크게 가지고 최선을 다해라. 성공한 사람은 누구나 목표가 있다. 목표 설정을 한 후에 계속 앞으로 나아가라. 구체적인 목표가 없는 사람은 어떤 일도 제대로 해낼 수 없다. 당신의 전쟁 포로의 상황에서도 미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어떤 뚜렷한 방법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인간의 상상으로 세계를 정복하고 우주를 정복한다. 엄청난 꿈이 이루어지기 전에 내가 그 자리에 있는 것을 상상해보라. 마음에 상상만으로 위대한 작품을 만들 수 있다. 인간의 사고의 능력은 참으로 놀랍다. 결코 환경에 억매여 나약해지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마라. ‘반복 암시 훈련’ 과 ‘목표 도달 훈련’을 해라. 목표를 향하여 필사적인 노력을 해라. 나는 반드시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확신을 가져라. 세상을 향하여 새롭게 도전하고 세계에서 제일가는 목표를 세워라. 목표 달성은 시간문제이다. 당신의 믿음대로 된다. 목표를 이미 정복한 것과 같이 믿고 도전할 때에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될 것이다. 매일 몇 분 동안이라도 그 성공적인 장면을 상상해보자. 목표를 설정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당신의 목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가만히 앉아 있지 말고 행동해야한다. 일이 안 된다는 이유만 찾지 말고 일을 해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라. 열심히 일하고 성공이 성공을 낳는 만큼 날마다 매일에 대한 목표에 실적을 올려라. 그리고 눈에 띄는 작은 성공을 경험하자. 특별한 상황이 오면 목표를 재조정하고 실패자의 기질에서 벗어나며 만약에 라는 말을 사용하지말자. 이는 실패에 대한 준비를 하는 사람이다. 꼭 이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가지고 엄격한 인생을 살도록, 후회 없는 인생을 살기를 원한다면 자신에게 충실해야한다.넷째로, 올바른 정신 자세를 가져야한다.어떤 분야의 사람이든지 올바른 정신 자세가 필요하다. 이것이 사람들의 성공을 좌우한다. 소극적인 사고방식을 가져선 안 되며 마음에 쓰레기들을 다 던져 버려야한다. 사람들이 실수 했을 때 죄책감에 시달리며 자신을 정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한 번 쓰러지면 어떻게 다시 일어나야 하는지를 모른다. 소극적인 상황을 당할 때에 적극적인 반응을 보이고, 희망 없는 상황은 절대로 있을 수 없다. 자신이 하는 일은 자신의 면 자신의 하는 일도 올바르게 될 것이다. 하루를 시작하는 방법을 바꿔라. 정열을 가지고 하루를 시작하자. 아침에 일어나 손뼉을 치면서 하루의 승리를 외치자. 인생이 타개할 수 없는 상황은 하나도 없다. 절대로 포기하지 말고 적극적인 사고방식을 가지자. 그러면 적극적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일하고 즐기는 것을 중단하기 때문에 늙게 되는 것이다. 정열적인 마음가짐이 당신의 운명을 더욱 굉장하게 만들 것이다. 사고와 언어는 행동을 낳고 행동을 습관을 낳고 습관은 성격을 낳고 성격은 운명을 낳는다. 자세를 변화시키면 인생을 변화시킬 수 있다. 당신의 자세를 변화시키므로 인생을 개조할 수 있다. 인생이 자기의 실력을 최대한 발휘하면 명성을 날리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조그마한 노력의 차이가 인생의 성공과 실패를 좌우하게 된다. 성공과 실패의 차이는 사소한 것에서 판가름 난다. 적극적인 정신자세를 가지자. 확고한 마음의 기본자세를 확립하여 자신의 마음에 용기를 불어 넣을 때 대승리를 가져올 것이다. 마음가짐을 바로 하여 상황을 변화시키자. 그러면 승리할 것이며 무한한 정열을 가질 것이다. 소극적인 상황에 대하여 적극적인 반응을 보이라. 사람은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에 따라 당신의 성공과 실패가 좌우된다. 정열이 없이는 어떠한 위대한 일도 성취할 수 없다. 좋은 버릇은 좋은 사람을 만들고 나쁜 버릇은 나쁜 사람을 만든다. 상습적인 습관에 억매이면 나중에는 벗어 버릴 수 없는 상황이 된다. 좋은 습관을 몸에 익혀야 멋진 생활이 가능하다. 바람직한 장래를 기대하려면 좋은 버릇을 가지도록 하고, 한 가지씩 새로운 습관에 도전해라. 자신을 도덕적으로 확고하고 강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도덕적 가치관이 분명해야한다. 잠재의식의 무한한 능력을 잘 활용하고 항상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표현을 하고 창조적인 말을 하고 암시를 강화해야한다. 잠자리에 누워 낮에 즐기던 아름다운 경험들을 회상하면 성공과 행복을 가능케 하는 놀라운 힘을 만들어 낸다. 좋은 일을 생각하자.
도서명 : 이순신과 임진왜란저 자 : 이순신 역사연구회이순신 장군은 덕수 이씨 12세손으로 1545년 4월 28일 한성부 건천동(서울 인현동)에서 부친 덕연군 이정의 4형제 중 셋째아들로 태어났다.어린 시절 병정놀이에서 꼬마 대장이 된 이순신은 책에서 읽은 작전을 병정놀이에서도 적용하며 훗날 조선수군의 통제사로서의 면모를 갖추었다. 일례로 "오늘은 새로운 작전을 지시하겠다. 공격하는 적군은 윗마을 병사들이 맡고 수비는 아랫마을 병사들이 한다. 수비하는 병사들은 반으로 나눠 따로 진을 치도록 하겠다." "수비하는 반은 나무 뒤에 진을 치고, 그 나머지 반은 저 아래쪽 개울가에 진을 친다. 그러면 반드시 이길 수 있을 거야. 뒤에 개울이 있어 뒤로는 절대 적군이 쳐들어 올 수 없다. 이것이 바로 '배수의 진'이라는 거야. 강이나 바다를 등지고 치는 진으로 옛날부터 많은 승리를 거둔 작전이다." 라는 일화가 있다.청년시절 이순신은 문무를 두루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이순신은 글공부에도 자신이 있었지만 무과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기로 작정하고 북쪽의 오랑캐와 남쪽 왜적들로부터 부모와 백성들을 지키고자 하여 군사에 관한 책을 읽을 뿐만 아니라 말 타기 연습, 활쏘기, 칼 쓰기, 창 쓰기 등의 무예를 연마하였다.이순신이 21세 되던 해, 1565년 8월 보성 군수 방진의 여식 상주 방씨와 결혼하여 22세 되던 해 10월 무인이 될 것을 결심하고 무술을 배우기 시작하였다.1567년에 2월 맏아들 회가 태어나고 27세 되던 1571년 2월 차남 울이 태어났다. 이순신의 나이 28세에 훈련원 별과 시험에 응시 중 말의 실족으로 왼쪽 다리에 골절상을 입어 과거에 실패하였고 32세 2월에 식년 무과 병과 4등으로 급제하여 동년 12월 함경도 동구비보 권관으로 임명되었다. 이순신의 나이 33세에 삼남 염이 태어났고, 후에 면으로 개명하였다.이순신 장군 하면 이것이 떠오른다. 바로 거북선이다. 거북선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거북선의 창제를 보면 국방과학문화유산으로서 임진왜란 당시 돌 대포를 쏘아 적선을 깨어 부수고 해전을 승리로 이끌었던 거북선. 우리나라의 국방과학문화유산 중에서도 가장 귀중하게 여기는 유산이다. 그러나 지금은 구 유물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아 그 실체를 알 길이 없어서 안타까움을 더해준다.이 책에선 거북배가 어떻게 발명되었는지 그리고 일본군의 침략에 대해서도 기술되어있다. 때는 1591년 음력 2월 이순신 전라좌도 수군절도사가 전라좌수영(지금의 여수)에 부임하자 장차 왜적의 침입을 염려하여 본영과 예하 5관(순천부, 낙안군, 보성군, 광양군, 흥양군) 5포(방답진, 여도진, 사도진, 녹도진, 발포진)의 성곽을 보수하고 성 둘레에 방어용 수렁(해자)을 깊이 파고 병기를 수리 정비하는 한편 전함도 새로 만들었다. 특히, 별도로 거북이와 같이 생긴 배 즉, 거북배를 고안하여 새로 만들었다. 1592년 음력 4월 12일에 전라좌수영 앞바다에서 함포 사격 시험을 겸한 훈련을 하였는데, 바로 그 다음날 일본의 쇼군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부산을 기습 공격하는 것을 시작으로 조선을 전면적으로 침략하여 왔다.이 때 거북배의 활약이 시작되었다. 이순신 수사는 앞을 내다보는 예지를 가지고 있었으며, 전란 중에는 항상 적의 공격에 대비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 실행에 힘썼던 것이다. 그리하여 임진왜란 7년 전쟁 기간 중 거북배를 돌격선으로 앞서 내세워 처음의 옥포(거제도) 해전에서부터 마지막 노량(남해도) 해전에 이르기까지 일본의 수군을 깨어 부수고 무찔러 일본 침략군을 이 땅에서 몰아내고 나라를 구하였다.일본 수군함대와 싸운 여러 해전에서 승리를 거두고 큰 공을 세운 거북배는 전술한 바와 같이 1592년에 이순신 전라좌도 수군절도사가 창제하였는데, 1592년 당시의 거북배나 203년이 지난 1795년의 거북배, 그리고 1895년 조선왕조 마지막 거북배에 대해서도 유물로 남아 있는 것이 없다. 다만, 이 거북배들의 형태와 구조 및 성능은 알 수 있었다.첫 번째로 이순신 수사가 발명한 1592년식 거북배는 1592년 전라좌수영의 이순신 수군절도사가 같다.「장차 왜적의 침입을 염려하여 따로 전선크기만한 배를 만들었는데, 배위를 둥그스름하게 판자로 덮고 그 위에 창칼을 꽂았다. 적군들이 배에 기어오르거나 뛰어 내리면 그 창칼에 찔려 죽게 된다. 배의 이물에는 용머리를 달고 그 용의 입을 열어 대포알을 쏘았다. 고물에는 거북꼬리를 달고 대포구멍을 냈다. 배의 포판의 좌우 방패에는 각각 6개의 태포 구멍을 냈다. 거북배에는 돌격장이 타고 함대의 선봉이 되어 나아간다. 적선이 에워싸고 덮치려 하면 일시에 대포를 놓아 가는 곳마다 적선을 깨고 부수어 임진왜란의 크고 작은 해전에서 크게 공을 세웠다. 모습이 엎드린 거북과 같으므로 ‘거북배’라 하였다.」그러나 임진왜란 때 큰 공을 세운 거북배의 구조에 대한 자세한 설계도나 치수는 전해 오는 것이 없다. 다만, 이순신 수사의 「난중일기」와 장계(지방에 파견된 관원이 서신으로 임금에게 올린 보고서), 조카인 이분의 행장 그리고 몇 가지의 단편적인 자료에서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있을 뿐이다.두 번째로 1795년 당시의 거북배이다. 임진왜란이 끝난 지 197년 뒤인 1795년에 편찬한「이충무공전서」가 있는데, 여기에는 당시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통제영 거북배와 전라좌수영 거북배의 45도 투시도, 거북배의 치수, 구조 및 성능에 대한 설명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를 통해서 1592년에 이순신 수사가 창제한 거북배의 형태와 구조를 짐작할 수 있었다.1795년식의 거북배는 통제영거북배로서, 정조19년에 편찬한「이충무공전서」의 책머리에 통제영거북배와 전라좌수영 거북배의 그림과 그 설명이 있다. 모두 694자로 되어 있는데, 거북배의 주요 치수와 만듦새 그리고 성능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이 거북배의 제도는 배 밑은 10쪽을 이어 붙였는데, 길이는 20.2m이고 머리쪽(이물) 너비는 3.7m, 허리(한판)의 너비는 4.5m, 꼬리쪽(고물) 너비는 3.3m이다. 좌우 삼판은 각각 7쪽을 이어 올렸는데, 높이는 2.3m 된다. 맨 아래 첫째 판(부자리)의 길이는 21.1m이. 두께는 다같이 0.13m이다. 이물비우는 가로 널판으로 4장을 이어 붙였는데 높이는 1.2m이고, 둘째 판 좌우에 현자 대포구멍을 각각 1개씩 뚫었다. 고물비우는 가로 널판으로 7장을 이어 붙였는데 높이는 2.3m 이고, 위쪽 너비는 4.5m, 아래쪽 너비는 3.3m이다. 여섯째 판 한가운데에 직경 0.37m 되는 구멍을 뚫어 치의 키다리를 꽂았다. 좌우 뱃전 밖으로 빠져 나온 멍에 뺄목위에 신방(도리)을 걸고 신방 머리 쪽에 멍에(덕판멍에)를 가로로 걸었는데, 바로 이룸(뱃머리) 앞에 닿게 되어 마치 소나 말의 가슴에 멍에를 메인 것 같다. 신방을 따라 가면서 안쪽으로 널판때기(포판)를 깔고 신방 위에 기둥을 세우고 방패를 둘러 세웠다. 방패 위에 또한 언방(건축의 창방)을 걸었는데, 신방에서 언방(패란)까지의 높이는 1.3m이다. 언방(패란)의 좌우에서 안쪽으로 각각 11장의 널판(덮개판)으로 고기의 비늘처럼 겹쳐서 올려 덮었다. 그 잔등 한 가운데에는 0.47m의 틈(등골)을 내어서 돛대를 세웠다 뉘었다 하기 편하게 하였다. 뱃머리에 거북대가리(용대가리)를 달았는데, 길이는 1.3m, 너비는 0.94m 된다. 안에서 유황과 염초를 불살라 입을 벌려서 마치 안개처럼 연기를 토함으로써 적을 혼미하게 하였다. 좌우에 노가 각각10척씩 있고, 좌우 방패에 각각 22개의 포혈을 뚫었고 12개의 문을 내었다. 뱃머리의 거북 대가리 위쪽에 2개의 대포 구멍을 뚫었고, 아래에 2개의 문을 내었다. 문 곁에 각각 1개씩의 대포 구멍이 있다. 거북 잔 등판 좌우에 각각 12개의 대포 구멍을 뚫었으며, 거북 ‘귀’자의 깃대를 꽂았다. 배의 좌우 포판(마루) 아래에 방이 각각 12칸이 있는데, 2칸은 철물을 쟁여두고, 3칸은 대포 활 화살, 창, 검 등을 나누어 재어 놓았으며, 19칸은 병사들이 휴식하는 곳이다. 배위 고물의 왼쪽 포판위에 있는 방 1칸은 선장실이고, 오른쪽 포판 위에 있는 방 1칸은 장교실이다. 군병들이 쉴 때는 포판아래 선창의 선실에서 쉬고, 싸울 때는 쟁이고 놓아댄다. 충무공행장에 이르기를 “공이 전라좌수사가 되어서, 장차 왜가 쳐들어올 것을 알고 지혜를 써서 큰 배를 만들었는데, 배위를 판자로 덮고 판자 위에는 십자로 좁은 길을 내어 사람이 다닐 수 있게 하고 그 외는 모두 다 칼 송곳을 꽂았다. 배 앞은 용대가리이고 배위는 거북 꼬리이며 총구멍은 전후 좌우에 각각 여섯 개 씩으로 큰 포탄을 사용한다. 적을 만나면 거적으로 덮개판 위를 덮어 칼 송곳을 가리고 싸움의 선봉이 된다. 적군이 배에 오르려 하면 칼 송곳에 부딪쳐서 찔리고 가까이 와서 덮치려 하면 한꺼번에 대포를 발포하여 가는 곳마다 휩쓰지 못하는 일이 없어서 크고 작은 싸움에서 이것으로 써 공적을 거둔 것이 심히 많다. 형상이 엎드려 있는 거북과 같으므로 이름을 거북배(귀선)라고 하였다.” 라고 하였다. 명나라의 화옥 이라는 사람이 쓴 ‘해방의’라는 책에 이르기를 “조선의 거북배는 돛을 세우고 눕히기를 임의로 하고 역풍이 불거나 바닷물이 썰거나 마음대로 행선한다.”고 하였는바 즉, 그것이 바로 공이 창제한 배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치수와 만듦새에 대하여 모두 자세하게 말한 것은 없다. 지금 통제영거북배가 대개 충무공의 옛 제도에서 나온 것이나 이 또한 치수의 보태고 빠지는 것이 없지 않다. 공이 배를 창제한 곳은 실제로 전라좌수영이었는데 지금 좌수영거북배가 통제영거북배의 제도와 비교하여 약간 서로 다른 것이 있다.거북배의 건조시기도 나오는데 전선을 새로 만드는데 1척당 최소 6개월간의 일정이 필요하다. 대체로 보아 벌목은 입추 후부터 입춘사이에 하게 되는데, 거북배에 사용할 목재는 1591년 가을걷이가 끝난 후에 즉, 농번기가 끝난 후 벌목을 하는 시기에 마련하고 이어서 착공을 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순신 수사는 임진년 2월 19일부터 2월 26일까지 예하 5관 5포를 순시한 바 있다. 이때 무기의 수리정비와 새 전함의 조선을 확인하고 새로 조선한 전함에서 함포의 방포시험도 하였다. 이순신 수사가 좌수영 본영에서 새로 조선한 거북배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