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민속박물관에 대한 감상문서론박물관 가기 전 계획본론1. 국립민속박물관을 관람하기 전 주변 전시물을 감상하며2. 국립민속박물관 상시전시를 감상하며3. 국립민속박물관 기획전시-선의미감 목가구 전시회를 감상하며결론박물관에 대한 전체적 후기박물관에 가기 전 단순히 박물관 위치가 아니라 민속박물관 주변의 유물들도 알아보고 갔습니다. 그 이유는 지난번 전통과 문화 수업에서 관람 갔던 국립중앙박물관의 경우 박물관이 너무 넓어서 시험관련 주제였던 것 제외하고 무엇을 관람해야하나 정하지 못해 여러 가지를 가볍게 보았고 박물관 밖의 유물들도 관람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기 때문입니다.그래서 이번에는 박물관 주변 환경과 박물관의 관람전시회 등을 알아보고 갔습니다.1. 민속박물관 주변 전시물을 감상하며여러 가지를 보았지만 그중 인상 깊었던 것은 문인,무인석으로 어릴 적 왕릉에 관람 갔을 때나 본 것을 여기서 다시 보게 되어 매우 반가웠습니다. 그리고 연자방아를 보고 추억의 거리를 지나가면서 이발관, 다방, 전차등을 보며 민속 박물관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근대 이전뿐만 아니라 근대 이후의 민속적 풍경을 보여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문화는 단순히 오래된 것을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 있으며 가치 있는 것을 보여주며 지치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박물관 앞 십이지신 또한 원으로 배열해 흥미로웠으나 관광객들이 너무 많아서 제대로 보기는 힘들었습니다. 여러 가지 주변 전시물 중에서 거대한 탑이 가장 인상적이었고 관람객들도 많은 촬영을 하는 것을 보았지만 그 탑이 무엇인지 가기 전 조사할 때는 몰랐기에 관람 후 조사해보았습니다. 법주사 팔상전이라는 탑을 참고해 만든 탑이었는데 사실 이 탑을 보며 법주사 팔상전을 찾아보고 두 탑 간의 유사점을 발견하긴 했으나 사실 저는 이 탑에 대해 조사할수록 실망하게 되었습니다.그 이유로는 지금까지 관람했던 박물관 중에서 이 박물관은 외국인 관람객들의 비중이 매우 높았습니다. 사실 관람한 날 대부분이 동남아계나 중국인 혹인 일본인등의 아시아계 관람객들이나 아니면 어린아이들이었습니다. 사실 한국인을 찾기가 더 어려웠습니다. 이렇게 많은 외국인 관람객들이 다른 한국의 전통적 유물보다는 대부분이 단순히 거대한 인공적이고 문화적 의미가 적은 탑을 관람하고 사진 찍는데 상당수 시간을 보내기 때문입니다. 관람객 한명의 경험은 적을지 몰라도 다수의 관람객의 경험은 고국으로 돌아가 다른 사람들에게 한국의 경험을 이야기할 때 그 탑을 찍은걸 보여주고 한국의 유물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2. 국립민속박물관을 감상하며사실 민속박물관을 감상하며 느낀 점은 관객들이 관람하기 편하게 전시를 잘 해 놓았다는 것입니다. 1전시관부터 3전시관까지 한국인의 민속을 생활사/일상/일생으로 나눠 전시한 것은 어느 박물관을 가도 이렇게 주제별로 나눠서 전시한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전시하며 주목한 점은 타 박물관들은 직사각형으로 이뤄지고 통로가 너무 넓어 전시물을 관람하기 힘든 반면에 통로의 폭이 적당하여 양 옆의 전시물을 편히 관람할 수 있었고 전시관 내부 곳곳에 영상물 및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장소를 여러 군데 마련해 놓은 것이 정말 좋았습니다.1관에서는 입구에서 년도 별로 주요사건들에 대한 표시와 그에 대한 사진을 보며 한국의 역사를 한눈에 보았습니다. 구석기와 신석기를 거치며 목축에서 농경문화로의 발전을 보며 실제 유물들인 채집활동에 사용하던 도구들이 농경용으로 변하는 것을 보았고 또한 청동기 시대의 마을을 모형으로 만들어 놓은 것을 감상하며 과거의 생활사를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그리고 청동기 시대를 지나 철의 주조 기술이 발달하며 발전한 농경사와 삼국의 발전을 보며 철기가 얼마나 고대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는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고구려 생활벽화를 보며 그 시대의 문화를 알 수 있었고 최근에 중국이 동북공정을 펼치는 것에 대해 생각하며 다른 삼국의 문화들과 비교해 보니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은 분명하지만 명백히 중국과는 다른 삼국의 특별한 특징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삼국의 여러 문화에 대한 전시물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신라의 수도인 경주를 재현한 미니 모형이었는데 현재에도 많은 유물을 볼 수 있으나 도심 속 유물들이 대부분이고 과거 경주의 민가부터 왕가까지 1/400으로 축소한 모형을 보면서 과거의 모습과 현대의 변화를 새삼 느꼈습니다.고려시대~조선시대에서는 역시 훈민정음이 가장 눈에 띄었습니다. 중국으로부터의 자주적 독립과 언어학적으로도 매우 뛰어난 한글이 적힌 훈민정음을 볼 수 있어 과거와 현대의 한글의 차이에 대해 배울 수 있었습니다. 다만 한 폐이지 씩 고정되어 있어서 답답했습니다. 원본이 아니고 복사본을 전시한 것이기 때문에 훼손 염려가 없기 때문에 폐이지를 넘겨주는 장치를 달아 주면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제 2 전시관에서는 한국의 계절적 특징인 4계절에 맞춰 삶의 방식을 발전해온 역사를 볼수있었습니다. 봄에서는 농사가 가장 주요한 테마였고 이에 대한 축제와 제사 그리고 농악기 등을 볼 수 있었습니다. 여름에서는 농사 중 가장 힘든 김매기등 과정과 그에 필요한 농기구들 그리고 여름 특성상 발전한 베짜기를 통한 모시,삼베옷등을 보며 더운 날씨를 이길려는 노력을 보았습니다. 가을에서는 농사의 추수와 관련된 것을 보았으며 겨울에서는 부족한 음식을 보완하기위한 수렵용 도구들을 보았고 여름과 마찬가지로 날씨에 적응하기 위한 솜옷짓기를 보며 4계절에 대해 적응하며 발전한 문화를 볼 수 있었습니다. 사실 한국처럼 4계절이 있는 나라가 그리 많지 않기에 한국의 문화적 특수성을 보며 자연이 인간 생활에 미치는 영향을 배웠습니다.3관 한국인의 일생에서는 조선시대 양반 집안의 개인의 일생사를 볼 수 있었는데 출생부터 교육, 관례, 혼례, 풍류, 제사등을 볼 수 있었는데 이를 보며 느낀 건 조선시대에 유교가 출생부터 죽음까지라고 표현해도 좋을 만큼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입니다. 사실 제 3관은 제일 아쉬움이 많았던 관입니다. 전체 역사 중 조선시대만은 집중적으로 전시한 것은 조선시대를 이해하기에 좋지만 사실 조선시대가 그나마 현대인들에게는 가장 가깝고 익숙한 것이기 때문에 3국이나 그 이전 시대의 생활사에 대한 전반적인 전시를 보고 싶었습니다.
‘이것은 미술이 아니다’에 대한 서평서론전체적으로 읽기보다는 개인적으로 관심이 가고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위주로 작가의 주장에 대해 생각해보았으며 이에 대한 저의 생각을 써보았습니다.본론이 책에서 작가는 기존의 사회적 인식을 깬, 미술에 대해 깊이 탐구하지 않았던 일반인에게는 다소 충격적일 수 있는 내용을 언급합니다. 미술의 정의에 관한 개념들을 재정립 하며 새로운 개념을 창출하고 있으며 기존 해석에 대해 재해석을 합니다.작가는 미술사를 크게 두 가지 부분으로 나눕니다. 1800년대 사회혁명 이전의 시대와 1800년대 이후 사회혁명 이후로 나누는데 그 이유는 사회혁명이 과학, 예술, 신념 등 사회전반적인 혁명으로서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말하여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1800년대 이전 미술은 종교적이나 정치적 힘에 의해 압박 받았습니다. 예술가가 자신의 의지에 의한 창조라기 보다는 사회 지배층에 의해 그들의 권위실현과 세력 확장을 위해 이용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시각에서 보면 현대에 당연히 미술로서 여겨지는 미켈란젤로의 아담의 창조,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등은 예술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작가는 이에 대해 현대에 이 작품들이 미술로서 인정받은 이유는 그 본래의 목적을 상실하고 미술관등에 가져와서 전시하고 평론가들이 비평하고 관람자들이 감상하면서 예술로 인정받은 것이라 말합니다. 결국 본래의 목적을 상실한 것들이 과연 미술이라 불릴 수 있느냐 묻는 것이 그녀의 핵심요지입니다.물론 이에 대한 비판으로는 작가가 미에 대한 확고한 기준을 내린 것도 아니고 또한 단순히 사회혁명 이전 고대 시대라고 해서 순수 미술이 없는 것도 아니라 단정 짓는 것도 힘들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작가는 현대의 인간이 사회에서 벗어나기 힘든 만큼 사회의 구속, 다른 말로는 선입견이 있을 수 밖에 없고 작품에 대한 잘못된 해석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는 강요되는 미술은 미술이 아니라는 점으로서 고대의 미적 목적 없이 제작된 것을 미술이라 했다고 수용자가 그것을 비판 없이는 받아들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작가는 현대의 미술은 강요 없이 자신의 의지에 의해 창작되었을 때야 미술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저는 그 예로서 본래의 자리에서 강탈당해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된 수많은 예술품과 그 중 가장 인기 있는 모나리자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본래 존재하던 곳에서 벗어난 예로서 아담의 창조의 경우에는 이 작품은 기독교에 의해 기독교를 위한 목적으로서 미켈란젤로에게 강요된 작품입니다. 종교적 자리에 있던 작품은 현대에 실재를 잃고 복제된 형태로서 존재하며 우리는 이것을 보고 진짜라 착각하고 예술이라 생각하기 쉽습니다. 과연 이것이 올바른 미술에 대한 인식인지 생각해보았습니다.결론저는 루브르 박물관에 대한 다큐를 본적이 있는데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나리자 등 명작을 구경하며 이들을 구경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소모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제가 왜 이 부분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냐 하면 저는 모나리자가 가장 유명한 예술 작품인 것은 인정하고 모나리자를 한번쯤 보는 것은 이해 할 수 있으나 그것이 과연 다른 수많은 알려지지 않은 예술품들이 있는 루브르 박물관에서 과연 그러한 감상이 올바른가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루브르 박물관을 한 번만 들른다면 그럴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자주 오는 사람들도 대부분 명작을 여러 번 감상하더군요. 명작이라면 볼 때 마다 새롭고 다양할 수 있겠지만 이러한 예술적 관점이 과연 스스로의 미술에 대한 감각인지 아니면 전문가들과 사회에 의해 심어진 선입견으로의 결과인지 궁금했습니다. 이점에 대해 이 서적은 저에게 미술 감상 시 일반 대중의 태도와 저 자신의 감상 태도에 대해 깊은 회고를 하게 하였으며 사물을 보는 새로운 시야를 넓혀 주었습니다.그러나 이 책에 대해 비판할 점도 적지는 않았는데 그 일례로 이 저자는 미술의 구별 기준을 말하며 일반적 미술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점에서는 좋으나 다만 그 기준의 모호함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미켈란젤로의 경우 교회 등 압박을 받아 만든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이것을 미술이라 논하는 것은 관점의 차이입니다. 고대의 미술가들을 평가할 때 저는 그들이 사회의 압박에 의해 만들었다고 그 작품이 미술이 아니거나 혹은 동일 작가의 다른 작품들의 창조성 즉 미술성이 비판 받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항저우의 서호 문화경관에 대하여.세계문화유산을 조사하며 자연유산과 문화유산 중 어떤 것을 선택해 쓸 것인가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성격을 모두 가지고 있는 것을 조사하기로 하였습니다.세계문화유산 중 서호문화유산에 대해 조사하게 된 이유는 인공호수로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것은 서호가 유일하기 때문이다. 항저우 서호 문화경관은 2011년 세계문화 유산에 등재 되었으며 이 서호가 인공호수임을 모른다면 자연유산으로 생각하기 쉬울 수도 있는데 그 만큼 자연스러운 호수는 문화와 어울려 복합유산으로서의 성격도 강하게 띄는 특별한 문화유산이다.서호에 대해 알려면 우선 항주에 대해 알아야한다. 항저우는 관광도시로 유명 둘레 15km 여의도의 3/2 정도 면적이며 항주는 중국의 7대 고도의 하나이다.7대 고도란 중국의 유구한 역사 속에서 수도가 되었던 도시들 중에서 지금까지 도시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는 곳을 말하는데 개봉, 낙양, 남경, 북경, 서안, 안양, 항주의 7 도시를 7대 고도라고 부른다. 이러한 항주는 도시이면서도 옛 모습을 많이 간직하고 있고 풍광이 아름답고 기후가 좋아서 중국에서 매년 가장 살기 좋은 도시를 꼽을 때에 항상 상위에 랭크되는 도시이기도 하다. 그런데 "항주에 서호가 없다면 항주를 갈 필요가 없다"는 말도 있다. 그만큼 항주에서 서호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뜻일 것이다.항저우의 서호 문화경관은 서호와 이를 삼면에서 둘러싼 언덕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다수의 탑과 정원 사찰 등으로 이루어져있는 다양한 문화적요소이다. 이 문화 요소 중 서호의 정원 설계는 중국 전역과 한국, 일본 등지의 정원 설계에 영향을 끼쳤으며, 인간과 자연의 이상적 융합을 반영하는 경치를 만들기 위해 경관을 개선시키려는 전통관습을 증명함.서호의 거대한 규모 때문에 그중에서도 탁월한 비경을 자랑하는 것이 서호 10경이 존재함.그 중 하나가 ‘단교잔설’로서 호수위에 놓인 다리이름의 유래는 눈이 쌓이고 녹아내릴 때 중간 부분의 다리가 끊어져 보여 그렇게 이름이 붙여졌으며 ‘삼담인월’-물속에 있는 1위안 지폐에 있을 만큼 중국내에서도 유명한 문화유산으로 800여전 세워진 석등은 밤이 되면 세 개의 석등에서 켜지는 불빛과 하늘의 달이 보여주는 비경을 보여줌. 이러한 서호십경은 계절이나 날씨에 따라 나눈 것이라 서호를 한 번에 와서 서호십경을 다 볼 수 있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1년 4계절 별로 볼 수 있는 서호의 경관은 한번 보고 지나치는 것이 아니라 어느 계절에 와도 새로운 경관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또한 북송시대의 유명한 시인 소동파가 관리재직 시 명해 만든 재방도 현재의 서호를 있게 만드는 데 기여하였으며 그를 빗대어 만든 동상이 존재하며 서호 주변에는 또한 뇌봉탑으로 불리는 70m 거대한 탑이 있으며 수 백년전에 만들어진 것이 붕괴하였지만 다시 재건하였다. 이 탑에서 보이는 현대의 건축물과 과거의 건물들 그리고 서호의 경치는 과거와 현재가 어울리는 멋진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또한 항저우의 녹차의 종류인 룽징차는 중국내에서도 명성이 높다. 그 이름의 유래는 근처 룽징 마을에서 유래되었으며 서호를 찾는 사람들이 접할 수 있는 차로서 그 마을에는 계단식 논처럼 차를 재배한다. 이처럼 차는 경치와 함께 서호에서 즐길 수 있는 오래된 문화 중 하나이다.
5분간의 청혼을 감상하고5분간의 청혼을 감상하기 전 간단히 줄거리에 대해 알아보고 러시아 귀족인 그녀와 농노인 그의 만남의 배경을 어떻게 보여줄지 기대하였습니다.왜냐하면 배우들의 연기에 앞서 배우들의 분장과 조명, 배경 등을 감상하며 배우들의 연기에 몰입하기 때문입니다.그러나 제가 화려할거라고 예상한 거와는 달리 소극장의 특성덕분인지 기획의도인지 생각보다 단조로운 배경과 의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줄거리에 어울리지 않는 배경과 의상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조명을 받아 어두운 장막을 둘러싼 듯한 배경과 스토리에 어울리는 조명으로 인해 시시각각 명암의 차이를 보이며 어떤 때는 하얕게 어떤 때는 나무느낌 보여주는 어둠속 명암의 차이를 보며 이 작품이 단지 화려한 배경으로 이루어져있다면 소극장에서 연출하기도 힘들었을 것이고 오히려 명암을 이용하였기 때문에 화려한 배경이 아닌 단조로운 배경으로 배우들의 연기에 몰입하는 것을 도와주었다고 생각합니다.배경을 보며 느낀 배우들의 연기 중 인상 깊은 부분으로는 일단 두 배우 모두 신발이 없이 맨발로 연기한다는 점입니다. 사실 시대적 배경에 근거하면 구두를 신고 연기하면 서로 쫓고 쫓기는 연기를 하는 경우 바닥의 재질로 인해 소극장 같은 경우 그 소리가 가감 없이 관객들에게 전해지기에 사실성을 높일 수도 있으나 어떤 의미로는 극의 집중도를 떨어트리는 요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저는 맨발로 연기한 배우들에게서 발레의 부드러운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발레같이 예술성만을 추구하기 보다는 발레 같은 가벼운 몸동작을 물건을 던지거나 코믹적인 연기를 섞은 모습은 저에게 있어 두 개의 자석이 서로를 밀어내는듯하며 서로를 끌어당기기도 하거나 대기 중 2개의 풍선이 바람에 따라 자유로이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주었습니다.이러한 배경과 연기 그리고 적절한 음악의 조화가 가장 잘 이룬 장면으로는 “시간을 흐른다고 외치며” 절규하는 두 사람의 연기 장면입니다. 오직 두 사람에게만 조명을 비추고 나머지는 어둠으로 둘러싼 장면에서 긴장감 있는 음악과 절규하는 여자와 남자의 모습은 시간의 흐름에 대한 사람의 절망을 잘 보여주는 장면으로 이러한 조명을 이용한 극의 진행이 많다는 것이 이 극의 특징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