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과 나무-생각의 지도 3장 ‘전체를 보는 동양과 부분을 보는 서양’“교수님, 교수님과 저의 차이점이라면, 저는 세상을 원이라고 생각하는 반면 교수님은 세상을 직선으로 생각하신다는 점입니다”책의 서론에 나와 있는 중국 출신의 한 대학원생이 저자 리처드 니스벳에게 한 말의 일부이다. ‘생각의 지도’라는 책은 소제목에 나와 있는 바와 같이 동양과 서양의 세상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선을 다루고 있다. 책은 8개의 파트로 나뉘어져 있으며 그 중에서 3장 ‘전체를 보는 동양과 부분을 보는 서양’을 골랐다. 3장을 고른 이유는 8개의 파트 모두 동양과 서양의 시선의 차이점을 기술하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포괄적이면서 근본적인 핵심에 접근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른 파트에서 기술하고 있는 철학, 사회 구조, 자기 개념, 실생활의 차이 등은 모두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 가에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3장에서 다루고 있는 세상을 지각하는 방법의 차이는 동양과 서양의 서로 다른 시선의 원인들의 가장 밑바닥에 깔려있는 배경이라고 할 수 있다.‘숲과 나무’ 3장의 내용을 한 마디로 나타낸다면 이렇게 말 하고 싶다. 숲은 많은 나무들이 우거진 곳을 말한다. 그러나 숲을 이해하고자 할 때, 숲 전체를 바라볼 수도 있고 나무 한 그루 한그루에 주목할 수도 있다. 이는 전체를 보는 동양과 부분을 보는 서양의 차이점을 대표한다고 말 할 수 있다. 3장은 4개의 소 단락으로 다시 나눠진다. 소 단락은 첫 번째, 동양의 종합과 서양의 분석. 두 번째, 세상을 지각하는 서로 다른 눈. 세 번째, 세상을 통제하려는 서양과 세상에 적응하려는 동양. 네 번째, 동양의 순환론과 서양의 직선론 이다.첫 번째, 동양의 종합과 서양의 분석은 고대 그리스와 중국 철학자들의 우주에 대한 관점으로 시작한다. 같은 물질을 보더라도 중국 철학자들은 연속적인 관점에서 물질을 바라보지만, 그리스 철학자들은 입자들의 결합으로 물질을 바라보았다. 이는 현대 동양인과 서양인 사이에서도 발견된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서 일본인과 미국인에게 특정 재료로 만들어진 어떤 모양의 물체를 보여주고, 하나는 모양은 같지만 재료가 다른 물체와 모양은 다르지만 재료가 같은 물체 중에서 처음 보여준 물체와 같은 것을 고르는 실험이 나온다. 이 실험에서 서양인은 개별적 ‘사물’을 보고 있고 동양인은 연속적인 ‘물질’을 보고 있는 것이 드러난다. 서양인이 사물에 집중한다는 점은 어느 지역에 가더라도 똑같은 물건을 판매하는 체인 제도에서 또한 찾아볼 수 있다. 회사에 대한 개념에 대해서도 서양과 동양의 차이는 드러났다. 서양인은 회사를 ‘업무를 조직화하는 시스템’으로 생각하는 반면 동양인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유기체’로 생각한다. 동양인의 유기체적 관점은 자연을 등장시키는 광고가 서양에서보다 동양에서 훨씬 더 효과적이라는 결과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유럽인들은 동양과 서양의 중간 정도의 시각을 가지고 있는데, 유럽 내에서도 대륙에 속해있는 독일, 프랑스 등에서는 거시적인 이론체계를 중시하는 반면에 영국은 좀 더 작은 이론체계를 중시한 다는 점이 제시되어있다.두 번째, 세상을 지각하는 서로 다른 눈에서는 동양인들은 주변 상황에 중점을 두는 반면에, 서양인들은 자기 자신에 중점을 둔다는 점을 보여준다. 때문에 동양인들은 서양인들보다 배경에 좀 더 많은 관심을 갖는다. 과거에 대한 기억에서도 동양인과 서양인의 차이는 드러난다. 동양인은 전체적인 사건들을 종합해서 기억하는 반면에, 서양인은 자신에게 중요했던 몇 가지 일만을 기억한다. 또한 서양인의 경우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의 표현이 동양인에 비해 높게 나타났다. 즉 서양인은 자신의 관점, 안에서 밖을 내다보는 관점을 갖는 반면에, 동양인은 제 3자의 입장에서 전체적인 것을 바라보는 관점을 갖는다. 애니메이션과 영화의 장면을 통한 실험에서도 동양인은 배경에 유의하여 세밀한 것까지 관찰하는 반면에, 서양인은 주된 사물을 중점적으로 관찰하는 특징을 나타내었다.세 번째, 세상을 통제하려는 서양과 세상에 적응하려는 동양에서는 동양인과 서양인의 세계관의 차이를 보여준다. 서양인은 세상은 통제 가능한 것이며, 자신의 노력여하에 따라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는 개척적인 세계관을 지닌 반면에, 동양인은 환경을 바꾸기보다는 스스로 환경에 맞추어가는 순응적인 세계관을 지닌다. 일 하는 환경에 따른 작업 능률 실험에서도 서양인은 혼자 일하는 경우가 가장 능률이 높았지만, 동양인은 내집단 조건일 때 가장 능률이 높았다. 이는 동양인이 서양인보다 주위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는 다는 것을 보여준다.네 번째, 동양의 순환론과 서양의 직선론 에서는 변화의 방향에 대해 동양과 서양의 견해 차이를 보여준다. 동양인들은 사물이란 항상 변하는 존재이며 앞으로의 방향을 예측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반면 서양인들은 사물이란 쉽게 변하지 않으며 변하더라도 일정한 방향과 속도로 예측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다. 이러한 변화에 대한 관점의 차이는 동양의 순응적 세계관과 서양의 개척적 세계관에 영향을 준다. 이에 대한 실험으로 동양인과 서양인에게 그래프를 주고 앞으로의 그래프 방향에 대해 예측해 보게 하였다. 결과는 역시나 동양인들은 그래프가 지금까지 일정한 방향으로 나타나있더라도 앞으로 충분히 다른 방향으로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한 반면, 서양인들은 지금까지 일정한 방향을 지닌 그래프는 앞으로도 일정한 방향으로 이동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결론적으로 동양인들은 세상을 종합적으로 보기 때문에 전체적인 맥락에서 수많은 요소들을 고려하여 세상을 복잡하고 가변적으로 보는 반면, 서양인들은 세상을 분석적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다른 요소들을 통제할 수 있으며 세상을 단순하고 직선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복수, 그대의 이름은 血박찬욱 감독의 복수 3부작 ‘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복수혈전’, 뜬금없는 소리 같지만 박찬욱 감독의 복수 3부작을 본 사람이라면 고개가 끄덕일 것이다. 복수혈전이라는 말 그대로 피가 흐르는 박찬욱 감독의 복수 3부작은 피가 낭자하고 튀기는 장면들이 머릿속에 각인될 만큼 강렬한 인상을 준다. 본격적으로 그의 영화들에 대해 이야기 앞서 ‘복수’ 그 자체에 대해 한번쯤 생각을 해보아야 한다.복수 : 해(害)를 받은 본인이나 그의 친족, 또는 친구 등이 가해자에 대해 똑같은 방법으로 해를 돌려주는 행위.-이 행위는 해를 받은 것에 대한 분노를 진정시켜 주는 작용을 가지고 있으므로, 본능적 행위를 강제로 억제시키는 법률제도, 특히 형벌제도가 발달되어 있지 않던 고대 사회에는 복수가 널리 행해지고 있었다. 예를 들면, 고대 게르만 사회에서는 혈수(血讐)라는 제도가 존재하여, 어떤 씨족의 구성원이 다른 씨족의 구성원으로 부터 살해되었을 때에는 피해자가 속한 씨족의 구성원은 가해자가 속한 씨족의 누 구에 대해서도 피의 복수를 할 권리와 의무가 부여되고 있었던 것과 같다.(출처 : 네이버 백과사전)복수라는 정의만을 읽더라도 소름이 돋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아주 오래전 고대사회부터 행해져 왔으며, 특히 게르만 사회에서는 가해자가 속한 씨족 누구에 대해서도 ‘피’의 복수를 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는 대목에서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로써는 상상도 못 할 일이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일어나는 복수 또한 게르만 사회와 같지는 않더라도 상대방에게 외부적으로나 내부적, 즉 내면에 상처를 준다는 점은 다를 바가 없다. 이처럼 복수는 본질적으로 피와 관련되어 있으며, 복수로 인한 사건들을 신문등과 같은 대중매체에서 종종 접할 수 있다. 한 가지 유심히 보아야 할 점은 복수를 하는 당사자는 복수 대상자에게로부터피해를 입은 사람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면에서 복수는 단지 힘이 있는 강자가 힘이 없는 약자에게 피해를 입히는 보통의 범죄와는 다르있다. 그런데 그의 영화에 나오는 복수는 앞에서 말한 일반적인 복수와는 조금 다른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일반적인 복수의 경우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힘이 강한 강자가 악한 짓을 하여 선한 약자에게 피해를 입히는 형식이다. 그러나 박찬욱 감독의 영화 속 에는 힘이 센 강자도, 악한 짓을 하는 악당도 존재하지 않는다. 복수를 하기로 마음을 먹은 주인공도, 복수를 당하는 당사자도 우리가 주위에서 너무나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이며 각자 그들만의 피치 못한 사정이 존재한다. 그러한 면에서 그의 영화의 복수 장면은 통쾌하지 않으며 오히려 어둡고 슬프다. 특히 이러한 면은 박찬욱 감독의 복수작 첫 번째 작품인 ‘복수는 나의 것’ 마지막 부분에 동진(송강호 역)의 대사에서 선명하게 드러난다.“나 너 착한 놈이란거 알아. 그러니까 내가 널 죽이는 것도 이해하지?”섬뜩하면서도 피비린내 나는 복수의 종결을 알리는 동진의 대사는 복수의 성공에 있어서의 통쾌함보다는 슬픈 느낌의 우울함이 짙게 깔려있다.또 다른 특징은 복수의 계기가 모두 ‘가족’에 있다는 점이다. 복수의 계기는 다양하다. 특히 돈에 관련한 복수가 가장 일반적이며 흔하게 일어나는 유형이다. 하지만 박찬욱 감독은 ‘가족’에 관한 복수를 세 영화 모두에 계기로 정했다. 그 이유로는 ‘돈으로 인한 복수’는 더러우면서도 추한 면을 많이 지니고 있다. 하지만 ‘가족으로 인한 복수’는 순결하면서도 극단적이다. 비록 복수의 방식이 피가 튀기고 선혈이 낭자한 잔인하고 극단적인 형식을 취하고 있더라도 가족에 대한 복수는 오히려 관객들에게 통쾌한 쾌감을 주거나 극단적인 공감대를 형성하게 만든다. 그만큼 돈보다는 가족이 우리에게 소중하며 그것에 위협이 가해졌을 때에 드러나는 사람들의 극단적인 성향은 충분히 그가 세 영화 모두를 ‘가족에 대한 복수’로 복수의 동기를 정하게 만들었을 것이다.실제로 가족에 대한 복수는 현실에서도 자주 일어나며 대부분의 복수는 피가 흐르는 극단적인 결말을 지니는 경우가 많다. 최근에 일어나는 러시아를 향한 체젠있다. 이들은 ‘검은 과부’라 불리며 가족에 대한 복수를 러시아라는 국가를 향해 행하는 중이다.영화 ‘모범시민’ 또한 어느 날 갑자기 들이닥친 괴한들에 의해 아내와 딸이 무참하게 살해당한 주인공이 살인범을 응징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만든 법 제도와 정부를 향해 도시 전체를 쥐락펴락하며 통쾌한 복수를 완성하는 내용이다. 영화 속 그는 가족을 살해한 살해범들과 그들과의 거래를 통해 살해범들을 옹호하는 정부에 대항하여, 가족을 죽인 살인범을 살해하고 스스로 감옥에 들어가 10년 동안 치밀하게 준비한 계획을 하나 하나 실행시키며 말 한마디, 손가락 하나로 도시 전체를 뒤흔든다.이처럼 가족에 대한 복수는 다른 복수와는 극단적으로 치달아가는 경우가 많다. 박찬욱 감독은 이러한 특성을 영화의 기본 플롯으로 잡아 순수하면서도 처절한 복수를 보여주고 있다.박찬욱 감독의 영화에서 나타나는 복수의 마지막 특징은 복수의 방법이 세밀하면서도 사실적이고 극단적이라는 점이다. 영화에 나타나는 착한 사람들 그리고 흔히 우리가 볼 수 있는 사람들의 복수방식은 전혀 착하지가 않으며 흔히 볼 수도 상상할 수도 없는 방식이다. 오히려 너무 잔인하고 극단적으로 치달아 관객들에게 충격을 안겨준다.‘복수는 나의 것’에서는 전기고문과 아킬레스건을 자르고, 토막 살인을. ‘올드보이’에서는 15년 동안의 감금과 혀를 자르며, ‘친절한 금자씨’에서는 유괴범을 잡아다가 유괴한 아이들의 부모들을 불러놓고 그들에게 차례차례 들어가 서서히 유괴범을 죽이는 방식을 보여준다. 너무 잔인하고 극단적인 이러한 복수방식은 박찬욱 감독만의 하드보일드를 그대로 보여준다. ‘무감정의 냉혹한 자세로 또는 도덕적 판단을 전면적으로 거부한 비개인적인 시점에서 묘사하는 것. 불필요한 수식을 일체 빼버리고, 신속하고 거친 묘사로 사실만을 쌓아 올리는 이 수법’ 이라는 뜻의 하드보일드답게 피가 튀고 선혈이 낭자한 복수장면은 차마 눈뜨고 보기 힘들 정도로 역하고 비린 피비린내가 풍겨온다.박찬욱 감독의 복수 3부작 ‘복수는 나의 면서 커다란 흐름을 갖고 있다.박찬욱 감독의 복수작의 서막인 ‘복수는 나의 것’은 제목에서도 드러나듯이 여러 가지 복수가 엉키고 엉켜있다.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장기밀매업자에게 사기를 당한 류(신하균 역)의 복수, 죽은 딸의 유괴범들을 찾아내서 복수하려는 동범(송강호 역), 영미(배두나 역)를 살해한 류에게 복수하려는 사회주의자들까지 여러 복수가 나타난다.비록 ‘복수는 나의 것’이 흥행 면에서 참패를 하였지만, 오히려 상업적 흥행을 고려하지 않고 마음껏 작품에 자신의 색깔을 넣은 박찬욱 감독의 무대뽀 정신으로 작품성과 영화의 완성도는 가장 높았다고 평가하고 싶다. 영화가 개봉한 2002년 당시에는 너무 잔인한 장면으로 인해 관객을 배제했다는 질타를 받기도 하였지만, 리얼리티가 중요시되는 요즘의 추세를 본다면, 오히려 박찬욱 감독의 앞서나간 영화를 관객들이 이해하지 못하였다고 본다.영화 ‘복수는 나의 것’은 ‘복수’라는 흐름에서 사회 문제로 나타나는 복수가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영미의 대사 중에 ‘세상에는 좋은 유괴가 있고 나쁜 유괴가 있다.’라는 말이 나온다. 사회의 음지에 있는 소외된 자들이 생계를 위하고 생명을 위해서 잠시 동안 유괴를 저지르는 것은 좋은 유괴라는 논리다.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영미에게 사회는 자본의 분배가 불공평한 잘못된 논리에 의해 돌아가고 있다고 비쳐졌을 것이다. 또한 입원비가 없어서 죽어가는 누나를 살리지 못하는 의료서비스 앞에서 류 또한 유괴라는 수단을 써서라도 가족을 살리고 싶었을 것이다. 이처럼 사회의 부조리 때문에 복수극의 발단인 유괴가 시작되고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사회의 문제를 박찬욱 감독은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두 번째로 감독이 던지는 사회 문제는 ‘커뮤니케이션’의 문제이다. 동진이 영미를 죽이기 전에, 영미는 동진에게 자신을 죽이면 동진 또한 죽게 된다며 당부를 한다. 그러나 동진에게 영미의 말은 신뢰성이 없었을 것이다. 영미의 죽음으로 동진에게 복수하는 사회주의자들은 동진에게 왜 죽어야만 하는가에 대해 알려주지 않은 점점 신뢰성을 잃어가는 커뮤니케이션의 문제 또한 관객들에게 물어보고 있다.두 번째 복수작인 ‘올드보이’ 또한 제목에서 여러 가지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 15년간 감금되어 늙어버린 오대수(최민식 역), 유년시절 누나의 죽음에 대한 복수만을 위해 살아온 이우진(유지태 역), 그리고 동창 앨범 속 그들이 자라버린 현재의 그들. 이들이 모두 올드(Old)보이(boy)이다.올드보이는 복수극의 전작인 ‘복수는 나의 것’ 과는 다르게 흥행에 성공하였다. 상업성뿐만 아니라 작품성도 인정받아 ‘국제 칸 영화제’에 수상되는 영광을 안기도 하였다. 전작보다 많아진 액션신과 원작 만화의 작품성, 탄탄해진 구성과 세련된 촬영기법이 관객들의 요구와 맞아떨어지면서 흥행에 성공한 듯 보인다.전작 ‘복수는 나의 것’이 사회문제와 결부되어 나타난 복수극이라면 ‘올드보이’는 오직 개인들 간의 복수를 나타내고 있다. 그러한 점에서 복수의 흐름이 넓은 시각에서 한층 세밀하고 구체적으로 바뀌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전작에서는 다루지 못하였던 등장인물들의 개개인적 이야기와 심리들을 좀더 자세히 볼 수 있었다.물론 박찬욱 감독의 영화답게 전작과 마찬가지로 사회문제가 대두된다. 바로 전작에서도 다루었던 커뮤니케이션의 문제다. ‘복수는 나의 것’에서 다루었던 커뮤니케이션의 문제가 신뢰성의 하락이었다면, ‘올드보이’에서 다루는 커뮤니케이션의 문제는 타인에 대한 무관심이다. 영화 속에서 오대수는 옥상에서 자살하려는 사람을 목격한다. 하지만 오대수의 이름 뜻이 ‘오늘 하루도 대충 수습하자’인 오대수는 ‘내 일도 아닌데’ 라는 생각으로 무시한다. 그리고 잠시 후, 옥상에서 그 사람은 뛰어내려 자살한다. 이처럼 현대 사회의 이기주의 풍조에 박찬욱 감독은 약간의 코믹성과 잔인성을 부과하여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복수극의 마지막이자 대미를 장식하는 영화 ‘친절한 금자씨’. 이름처럼 친절한 금자(이영애 역)는 친절하면서도 친절하지 않다. 백 선생(최민식 역)의 협박으로 13년간 교도소에 복역하면서 금자는 처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