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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페인 신비주의 문학과 산 후안 데 라 크루스의 어두운 밤
    스페인 신비주의 문학과 산 후안 데 라 크루스의「영혼의 어두운 밤 Noche Oscura del Alma」1. 들어가며북유럽과 이탈리아를 통해 스페인에 유입된 신비주의 운동은 단지 종교적인 움직임에 그치지 않고, 문학적 운동으로 이어져 신비주의 문학이라는 장르를 탄생시켰다. 비록 신비주의 철학에 관하여서는 스페인 신학자들의 독자적인 사상을 발달시키지 못하고, 외국의 흐름을 받아들여서 적용시킨 것에 불과하였으나, 스페인적 토양에 접목된 신비주의는 엄청난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고, 신비주의 문학에 있어서 역시 스페인뿐만 아니라 전 유럽 문학에 널리 영향을 끼친 작품들을 탄생시켰다.본격적인 르네상스 시대에 접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종교적 색채가 강한 신비주의 시가 그토록 각광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후안 라몬 히메네스, 미겔 데 우나무노 등 스페인 문학의 거장들까지도 스페인 신비주의 문학, 특히 산 후안 데 라 크루스에서 문학적 영감을 받았다고 밝히며, 오늘날까지도 지속적으로 연구되고 있다는 것은 언뜻 이해하기 힘든 현상이다. 신비주의 시의 문학적 의의와 르네상스의 시대적 분위기와의 연관을 살펴보기 위해 본 연구에서는 신비주의 문학의 태동과 성격을 살펴본 후, 대표적인 신비주의 시인, 산 후안 데 라 크루스의 시 「영혼의 어두운 밤 Noche oscura del alma」를 분석하면서 구체적으로 그 특징들이 어떻게 발현되었는지 보고자한다.2. 신비주의 운동의 역사적·종교적 배경16세기 유럽은 중세 교권이 교황청과 성직자들의 불건전한 생활과 비리, 부패에 대한 반발로 가톨릭 신앙은 혼돈스러워져 갔다. 유럽 각 지역에서는 기존 교권에 대한 신자들의 반발에 힘입어 종교개혁이 진행되었으나, 특수한 역사적,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스페인에서는 오히려 반종교개혁의 바람이 불었다. 그렇지만 스페인 내에서도 교회의 부패를 성토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왔고, 종교개혁과는 다른 가톨릭 내에서의 자정작용에 대한 요구가 강해졌다. 개인적으로 신을 경험하는 것을 추구하는 신비주의 운동은 이러한 자정작 16세기 스페인만의 특별한 상황으로는 여전한 기사소설에 대한 대중들의 애호를 들 수 있다. 다른 유럽 지역에서 기사소설은 중세적 장르로 이미 쇠퇴하였던 반면에 스페인에서는 콜롬버스의 신대륙 발견과 탐험이라는 역사적 사건으로 인해 기사소설의 환상적 요소들이 대중들의 모험심과 호기심을 더욱 자극하며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실제로 1504년 출판된 가르시 로드리게스 데 몬탈보(Garci Rodriguez de Montalvo)의 『아마디스 데 가울라 Amadis de Gaula』는 1580년대까지 30번 이상 재판되며 엄청난 대중적 인기를 끌었다.이러한 상황에서 신앙심이 깊은 작가들은 기사소설, 가르실소풍의 시, 궁정시(lirica cortesana), 카스티야 전통 서정시(lirica tradicional) 등의 인기 있는 세속적인 장르들에 종교적인 요소를 혼합하여 대중들을 종교적으로 교화시키고, 도덕적 가르침을 주고자 했다. 스페인에 앞서 이미 이탈리아에서 이와 같은 장르의 변환이 진행되고 있었는데 말리피에로(Malipiero)와 살바토리노(Salbatorino)는 각각 1537년과 1547년 페트라르카의 시들에 종교적 주제를 결합하는 것을 시도하였다. 이탈리아의 경향에 영향을 받은 세바스티안 데 코르도바(Sebastian de Cordoba)는 1575년 출판된 보스칸과 가르실라소 데 라 베가의 시를 종교화 시켜 개작한 『Obras de Boscan y Garcilaso trasladas en materias en cristianas y religiosas』를 출판하는데, 이 작품과 스페인에서도 본격적으로 시작된 세속적 장르에 종교적인 주제를 담는 신성함(lo divino)과 세속성(lo sagrado)의 혼합이 시작되었다.신성함과 세속성의 혼합이라는 현상이 비록 스페인에서 시작된 것은 아니지만 스페인에서와 같이 오랫동안 영향을 미치거나 높은 수준에 다다르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토록 다양한 장르에서 이루어지고, 풍부한 양상을 띤 곳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느낀 감정을 독자에게도 시를 통해 그대로 느끼게 해주는 방법을 선택했다. 그래서 신비주의 시는 상징성이 강하면서도 비논리적 은유, 불명료한 표현들이 빈번하게 사용되었다. 비록 표현은 소박하지만 역설로 가득 찬 부분이 많은데, 행복한 고통(gozasa pena), 달콤한 순교(martirio sabroso), 침묵의 음악(musica callada), 어둠의 빛줄기(rayo de tiniebla) 등이 그 예에 해당한다. 비록 본격적인 현대시의 등장까지는 시간적 거리가 있으나 작가의 주관으로 두 사물을 연결하는 기법인 상징주의 기법은 현대시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프란시스코 인두라인(Francisco Yndurain y Cristobal Cuevas)은 스페인 문학에서 산 후안 데 라 크루스가 최초로 상징주의 시를 시도한 시인이라고 주장한다.이전까지는 성직자들이 라틴어로 문학 작품을 썼던 것에 반해, 신비주의 작가들은 카스티야어로 작품을 쓰기 시작했다. 이 경향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명이 존재하는데, 첫 번째는 작품을 쓰기 위해 세속어를 쓰는 것이 당연했던 르네상스 시기의 전반적인 분위기에 기인한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신비주의 문학의 목적 중 하나가 포교였기 때문에 대중들에게 더 많은 영향을 끼치기 위해 세속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신비주의 문학의 또 다른 특성은 신비주의 신학을 르네상스 문학 기법을 표현했다는 것이다. 여러 신비주의 시에서 가르실라소 데 라 베가나 트로바도르들의 시구가 차용된 것이 확인되는데, 그 중에 한 예는 카스티야 민요에 흔히 나오는 표현인 vivo sin vivir... muero porque no muero라는 구절이 산 후안 데 라 크루스나 산타 테레사 데 헤수스의 시에 등장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앞에서 언급되었던 신성함과 세속성의 혼합이 신비주의 문학에서도 나타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5. 산 후안 데 라 크루스의 신비주의 문학스페인 신비주의 문학은 크게 세 분파로 나눌 수 있다. 산 프란시스코회와 산 아우문이다.산 후안 데 라 크루스의 시에는 비록 단편적이고 간략하기는 하지만 가르실라소의 시, 그리고 그에 앞어 가르실라소 시를 신성화시킨 세바스티안 데 코르도바의 시에서 차용한 부분이 자주 등장한다. 다음은 그 차용의 예이다.산 후안 데 라 크루스가르실라소... el aspirar del aire,el canto de la dulce Filomena...... el viento espira,Filomena sospira en dulce canto...산 후안 데 라 크루스세바스티안 데 코르도바El aire de la almenacuadno yo sus cabellos esparciaAlli entre dos almenas hice asiento,y acuerdeme que ya con ella estuvelas noches de verano al fresco viento전자의 두 시에서는 바람의 산들거림, 달콤한 노래라는 동일한 이미지가 비슷한 순서, 구조 내에서 사용되었고, 후자의 두 시에서는 한 밤중에 성벽 총안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는 두 다정한 연인의 이미지가 사용되어 가르실라소 데 라 베가와 세바스티안 데 코르도바에게서 산 후안 데 라 크루스가 받은 영향을 분명하게 보여준다.그의 신비주의 체험에서 신에 대한 고통스러울 정도로 깊은 갈망은 결국 신과 합일에서 느낀 엄청난 기쁨으로 변하기에 ‘llagas regaladas’, ‘cauterios suaves’ 등과 같은 사도-마조히즘적 이미지를 이용하여 고통을 통해 기쁨을 느끼는 신비주의 체험의 특성을 표현하였다. 이와 같은 표현은 산 후안이 진실로 깊이 신과의 내밀한 만남을 경험했던 높은 수준의 영성을 지닌 수도자였음을 보여준다.성경의 아가서와 같이 산 후안 데 라 크루스는 신에 대한 사랑을 남녀 간의 사랑에 빗대어 표현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적인 성직자의 시에서 기대할 수 없었던 에로틱한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주목할 점은, 겉으로 보기에는 가르실라소와 마찬가지로 세속적이고 관능적인 시어를 사용했을지저 첫 번째 단계인 1~3연부터 살펴보겠다.En una noche oscura,con ansias en amores inflamada,(¡oh dichosa ventura!)sali sin ser notada,estando ya mi casa sosegada.A oscuras y segura,por la secreta escala disfrazada,(¡oh dichosa ventura!)a oscuras y en celada,estando ya mi casa sosegada.En la noche dichosa,en secreto, que nadie me veia,ni yo miraba cosa,sin otra luz ni guiasino la que en el corazon ardia.여기에 등장하는 어두운 밤은 단지 외부의 객관적인 풍경과 시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빛을 찾아가고자 하는 화자의 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비록 칠흑같이 어두운 밤이지만 안전한 밤(A oscuras y segura)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불확실한 가운데에서도 신께서 나의 걸음을 이끌어주고 계심을 믿는 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집을 나선다는 것은 세상의 번뇌나 합일에 이르는 것을 방해하는 온갖 거추장스럽고 부수적인 요소들을 뒤로 하는 자기 부인의 단계와 결부된다.화자는 연인을 만나기 위해 나서는 여성으로 등장하기 때문에, inflamada와 sosegada는 각각 oscura와 casa를 수식하는 형용사로도, 부사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의도적인지 우연의 산물인지는 알 수 없지만 품사의 모호함으로 인해 ‘불타는 어두운 밤’ 또는 ‘사랑으로 불타서’라는 의미가 될 수 있고, ‘고요한 집을 나섰다’ 또는 ‘고요하게 집을 나섰다‘라는 두 가지 의미가 가능하다. 또 1연에서부터 가르실라소 시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다음은 가르실라소의 「목가시 Ⅱ」 중 일부이다.La quinta noche, en fin, mi cruda suerte,queriendome llevar do se roado
    인문/어학| 2013.10.07| 11페이지| 1,500원| 조회(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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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르네상스
    르네상스1. 르네상스의 발판이 되었던 중세의 산물중세 중기에 접어 들면서 전 유럽에 학교가 빠른 속도로 설립되었다. 이전까지는 성당이 담당하던 교육이 상당 부분 속인 교육 기관에 배분되었고, 이는 세속적 학문의 추구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학교 설립의 증가로 문자 해독률이 높아져 1340년에는 피렌체 인구의 약 40%가 글을 읽을 수 있을 정도였다. 초등교육 기관의 양적 향상뿐 아니라 질적 향상도 함께 이루어졌는데, 법률가와 숙련된 관료들을 양성하기 위해 라틴어를 강도 높게 가르쳤다. 라틴어를 배우기 위해 키케로와 베르길리우스의 작품을 비롯한 몇몇 로마 고전들이 학습되었다. 이는 이미 12세기부터 로마의 고전 문헌에 대한 관심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초등교육의 향상과 함께 고급 학문을 전문적으로 가르치기 위해 대학이 설립되었다.12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그리스나 아랍어로 된 책들 중 라틴어로 번역된 것은 드물었지만, 스페인과 시칠리아를 중심으로 활발해진 아랍어 번역본을 라틴어로 번역하면서 고대 그리스, 이슬람 지식이 유럽인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이러한 고전을 바탕으로 이미 유럽인들은 중세부터 독자적인 사상을 구축하기 시작했다.중세 말에는 획기적인 기술 발달이 이루어졌는데, 우선 빈번한 전쟁 발발로 전쟁 무기가 발달했다. 화약은 중국에서 처음 발명된 것이지만, 전쟁용으로 처음 사용한 것은 중세 말 서유럽이었다. 화약을 활용해, 대포와 총이 발명되었고 점차 무기의 완성도가 높아짐에 따라 좀더 쉽게 전투를 수행할 수 있게 되었고, 이는 기사 계급의 몰락으로 이어졌다.1300년경 나침반의 발명은 더 멀리까지 항해를 떠날 수 있게 했고, 이탈리아와 북유럽 사이의 직접적 해상 무역을 가능하게 했다. 그 후 선박 건조, 지도 제작 등 여러 분야의 발달과 함께 새로운 해로와 신대륙의 발명이 가능하게 되었다.2. 이탈리아에서의 르네상스이탈리아에서 르네상스가 태동할 수 있었던 데는 몇 가지 경제적, 역사적, 사회적 요인이 있다. 중세부터 베네치아, 피렌체, 밀라노 등 이탈리아 도시들은 무역도시로서 동방으로부터의 향료 수입을 독점, 사치품 생산, 군수 산업으로 많은 재물을 벌어들이며 번영을 누렸다. 무역과 상공업을 통해서 부를 축적한 상인들은 부르주아라는 새로운 계층으로 등장했다. 유서 깊은 가문의 명예를 저절로 물려받게 되는 귀족들과는 달리 신흥 계층이었기에 이어져 내려오는 명예가 없었던 부르주아 계급들은 명예를 쌓는 방법으로 예술가들을 후원하는 방법을 택했다. 이런 예술에 대한 지원활동이나 지원자를 가리키는 말로 로마 마에케나스의 이름에서 유래한 메세나 라는 말이 쓰였다. 대표적인 이탈리아의 메세나로는 다빈치, 미켈란젤로를 후원한 피렌체의 메디치가를 꼽을 수 있다. 전폭적인 예술 지원으로 이탈리아의 뛰어난 예술인적 자원들이 해외로 유실되지 않았고, 이탈리아는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을 거느릴 수 있었다.역사적 요인으로는 이탈리아가 고전 시기 그리스, 로마 문명의 중심지였다는 것을 꼽을 수 있다. 많은 그리스, 로마 유산이 이탈리아 전역에 산재되어 있었고, 이탈리아인들은 고전 시대에 대한 높은 친밀감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프랑스와의 적대감으로 프랑스와 긴말한 관계에 있던 스콜라 철학이 아닌 자신들만의 지적 산물을 개발하기 위해 고전시기의 저작을 연구하는데 더 매진하고 있었다. 여기에도 부르주아 가문들이 앞장섰다고 볼 수 있는데, 로마, 부르주아 가문들은 그리스 시기의 원전을 회복하기 위해 원전 부분 부분을 매우 값비싼 가격에 사들였다.3. 북유럽에서의 르네상스이탈리아의 르네상스는 중세에 구축되었던 북유럽과의 해로, 스페인의 침공으로 인해 북유럽까지 전파되었다. 북유럽과 이탈리아의 사회에 많은 차이가 있었기 때문에, 다른 양상으로 르네상스가 나타났는데, 북유럽의 르네상스는 가톨릭적 인문주의라는 말로 정의 될 수 있을 것이다. 르네상스, 토마스 모어로 대표되는 북유럽 르네상스 학자들은 성경 및 초대 기독교의 원전들을 편집하고 복음적인 도덕을 해설하는 작업에 힘썼다. 이들의 작업은 루터가 프로테스탄트 개혁을 일으키는 기반이 된다.4. 스페인에서의 르네상스비록 여러 공국으로 나뉘어져 있었지만, 민족적 통일성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에 국가 통일의 필요성이 없었던 이탈리아와 반대로, 아직 재정복(reconquista)의 시기에 있던 스페인에서는 이민족(아랍인, 유대인)의 혼재라는 국가적 상황으로 인해 통일이 절실했고, 군사적 가치가 최고의 가치의 자리에 있게 되었다.영토적 통일을 이룩한 후에도, 스페인 각 지역 사람들에게 하나의 국가로서 에스파냐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었고, 각 지방색이 강한 연방국에 가까웠다. 스페인이 이룬 불완전한 통일을 유지하기 위해서 가톨릭을 국민들의 정신적 통합을 이루는 도구로 활용했다. 게다가 카를로스 1세의 스페인 국왕이며,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인 위치는 스페인을 종교개혁에 맞서는 가톨릭의 수호국가의 역할을 수행하게 했다. 이로 인해 르네상스 초기에는 스페인도 개혁의 물결이 흘러왔으나 다시 반개혁으로 돌아서게 되었다.여전히 귀족들의 권위가 막강했고 보수적인 사회분위기가 지속되었기 때문에 부르주아의 성장이 어려웠던 점, 반종교개혁적 정책으로 상업적 이익을 내는 것이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소명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상업의 발달을 독려한 칼뱅의 사상이 유입되지 못한 점 때문에 스페인에서는 충분한 부르주아 계층의 성장이 힘들었던 것도, 스페인에서는 르네상스가 제대로 부흥할 수 없었던 원인이다.5. 르네상스를 바라보는 엇갈린 견해야곱 부르크하르트의 저서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를 중심으로 르네상스를 근대의 시작으로 보는 의견과 중세의 연장이라는 견해가 있다. 부르크하르트는 사업의 발달, 자본주의 경제시스템의 출현, 개인주의 및 세속주의의 출현 등을 들어 르네상스는 중세와의 단절을 의미하며, 근대의 시작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헤스킨스는 『12세기의 르네상스』에서 르네상스의 특징으로 꼽히고 있는 것들은 이미 중세시기부터 등장했던 것이라고 반박한다. 부르크하르트의 르네상스 시기의 개인주의의 출현에 대해서는 여전히 대가족 구조내의 집단적 상호 네트워크가 개인의 삶에 크게 영향을 미쳤고, 오히려 집단적, 중앙집권적 성격이 강화되었다는 반론이 존재한다. 메세나 제도에 대해서도 예술가의 역량이 마음껏 발휘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보다는 특정 가문이나 집단의 대변자 역할을 수행하거나 권력 관계 내의 피지배자였다는 해석도 나온다.대표적 르네상스 인문주의자인 에라스무스가 히브리어로 쓰여진 사복음서를 그리스어로 번역하는 등 상당 수 인문주의자들이 신부였다는 사실은 르네상스의 반 가톨릭적 주장을 약화시키는 근거가 된다. 르네상스의 인본주의적 성격으로 인한 반종교성에 대한 논쟁은 신과 교회권력을 일치하는 오류를 범함으로써 발생하는 것으로 보인다. 르네상스가 반가톨릭적 운동이 아니라는 사실은 르네상스 중심에 라이코(무신론자는 아니지만, 종교와 일상을 구분했으며, 성경을 인간적인 시각으로 본 사람들. 다빈치, 에라스무스, 가르실라소 등이 여기 속한다.)가 있었다는 것이 뒷받침한다. 르네상스 시기의 유럽인들이 진정으로 추구했던 것은 삶에서 신의 추방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에 억눌려왔던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회복함으로써, 인간과 신의 조화, 세계의 균형을 되찾고자 했던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인문/어학| 2013.10.07| 3페이지| 1,000원| 조회(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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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스타리카 환경 정책
    코스타리카를 중심으로 살펴본 중남미 환경 정치목차서론문제제기연구범주와 연구방법본론환경정치환경정치의 필요성환경주의의 개념 및 기원환경주의 발전과정환경주의의 기본 원리환경주의의 유형CASE STUDY: 코스타리카코스타리카 산림활용과 보존 과정코스타리카 환경 정책 – 산림직불제결론평가와 적용참고문헌1. 서론문제제기깨끗한 물과 공기, 지구온난화 등의 환경문제가 날로 심각해짐에 따라 환경오염에 대한 세계적 우려와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이번 정부의 새로운 비전으로 저탄소 녹색성장이 제시되었고 환경 오염에 대한 세계적 우려와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받은 도전 가운데 가장 큰 것은 인간이 환경에 어떻게 대처하는가에 관한 것이었으며 그 도전은 기술적인 것이었다. 따라서 지금까지 환경행정의 주요 임무도 기술공학적 영역에 속한 것이었다. 그러나 기술개발에 의한 하나의 문제해결은 종종 또 다른 문제를 낳는다. 특히 기술적으로는 해결 할 수 없는 문제가 있는데 이는 사람들마다 원하는 환경의 질과 가치에 대한 입장이 다른 데에 따른 가치의 우선순위를 결정하고 합의를 도출해 내는 것과 관련된 정치적인 문제이다. 이러한 점을 중요시하여 ‘Caldwell’은 “오늘날 환경행정에서 주된 임무는 정치적인 것이고 기술적인 것은 부차적임은 물론 마땅히 그래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같은 맥락에서 오늘날 환경문제가 대두된 원인으로서 인구증가, 기술진보, 경제성장 등이 보편적으로 지적되지만, 또 하나의 중요한 요인으로서 ‘정치’를 들 수 있다. 그러므로 날로 심각해지는 환경문제에 대해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환경정치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여겨진다.1.2연구범주와 연구방법중남미 환경에 대해 살펴보기 위해 비록 천연 자원 매장량은 다른 중남미 지역에 비해 낮고, GDP도 높지 않은 국가이지만 2021년까지 탄소 무배출 국가가 되는 것을 목표로 삼을 정도로 환경 선진국인 코스타리카의 사례를 살펴볼 것이다.연구 방법으로는 대표적으로 문헌 조사, 특히 아마존 지역 관련 책과 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에 대한 관심을 점차 갖고, 그들의 전통적인 학문적 역할에서 넘어서서 정책분석의 영역으로까지 관여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의 관심은 매스미디어의 주목을 끌었고, 성장과 경제발전의 전통적인 유형에 도전하는 사회운동을 전세계적으로 불러일으켰다. 어떤 운동도 이러한 환경운동만큼 극적으로 성장한 적이 없었으며, 그리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생활-일상용어에 이르기까지 심대하게 영향을 미친 적이 없었다.하지만 환경적 이념들은 훨씬 이전까지 소급되어 살펴볼 수 있다. 오늘날 환경주의 원리들은 만물의 어머니인 대지라는 개념을 강조했던 고대 우상숭배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고, 또한 힌두교, 불교, 도교 같은 종교들에서도 그 영향을 찾아볼 수 있으나 보통 환경주의는 산업화 과정에 대한 반발이었고 지금도 그런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러한 환경에 대한 관심이 더욱 민감해지고 과격해진 것은 경제성장이 인류는 물론이고 그들이 살아갈 지구 자체의 생존을 위협한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환경문제에 대한 적극적인 활동을 했던 학자들을 다음에서 소개하겠지만 무엇보다도 ‘그린피스’와 ‘지구의 친구들’과 같은 신세대의 적극적인 압력단체들은 핵무기의 위험, 지구에 잔존하한 화석연료의 수준 같은 환경문제들을 역설함으로써 대규모 집단들과 연계한 대대적인 환경운동이 확산되었다.② 1972년 6월: UN인간환경회의는 스톡홀름에서 ‘인간환경선언’채택하나뿐인 지구를 주제로 국제적으로 공해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고 공해추방은 지역, 국가, 국제간의 수준에서 유기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고 선언③ 1992년: 세계 환경 회의에서 ‘리우 환경선언’채택인간은 복지를 누리고 품위 있는 생활을 할 수 있는 환경에서 살 권리가 있으며 동시에 미래의 후손에게 빌려 쓰고 있는 지구의 환경을 보호하고 개선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강조2.1.3. 환경주의 발전과정(1) 환경문제의 정치화① 생태마르크스주의와 생태사회주의지금까지 사회의 지배적인 패러다임은 기본적으로 신고전파 경제학의 기초 위에 놓여 있는 자유시장원 것이 아름답다’는 원칙으로서 소규모, 지방적 조직의 미덕에 대한 찬양이다. 그는 조화롭고 적합한 관계가 회복될 수 있는 소규모적이고 분권화된 공동체의 미덕을 찬미하면서 ‘인간적 규모’로 복귀 필연성을 지적하였던 것이다. 인간적 규모로의 복귀는 생산을 진정한 인간 욕구 충족의 선으로 조절해야 함을 제시할 뿐만 아니라 분권적이고 자치적인 공동체에 기초하게 함으로써 보다 더 민주적인 문화를 발전시키기도 한다.둘째, 인구규모의 축소를 주장한다. 이는 멜서스의 (Essay on the principle of population)에 영향을 받은 ‘성장한계론’과도 관계가 깊다. 멜서스가 생태학적 사고에 미친 기여로는 ‘팽창하는 인구의 딜레마’를 특별한 수학적 방식으로 해석하고자 한 시도를 들 수 있다. 인구 증가는 그 자체로도 문제이지만, 여타의 모든 환경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보다 심각한 것은 인구 증가가 엔트로피를 가속화시킨다는 점이다.셋째로는, 개별적 책임의 강조이다. ‘지구적으로 생각하고 지방적으로 행동하라’라는 슬로건은 생태주의의 개별적 책임 원리를 잘 나타내준다. 녹색정치는 정치가 국가 수준에서만 발생한다는 가정에 암묵적으로 도전한다. 그래서 정치가 일상적이 모든 분야에서 발생한다는 신념에서 환경 문제에 접근한다. 국제적 수준에서 강력한 환경법을 제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개체들이 책임 있는 대행자로서 재충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넷째, 정신적 재 각성을 앞세운다. 산업 사회는 필수적인 인간적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신념이 생태주의 운동 안에서 정신주의를 권장하게 되었다. 기존 산업 체제는 인위적인 욕구 충족과 부패한 윤리적 가치 체계에 의해서만 구성원들의 동의를 얻을 수 있으므로, ‘의식’의 전환과 자연과의 상호 관계에 기초하여 기본적으로 재편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마지막으로, 녹색사회로의 이행을 주장한다. ‘자연으로의 복귀’를 주장하는 이 원리는 생태주의자들에 의해 별로 체계화되지 못했다. 생태주의가 기존 사회적 관행과 가치을 낳게 할 수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또한 근본생태론의 비판에 의하면, 그러한 문제들이 남성중심의 세계지배논리에서 나온 것임을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지적을 수용한다면 에코페미니스트들이 그리는 유토피아적 대안인 분권화, 비위계적 질서, 직접민주주의 구조, 가부장제 폐지 등의 실천 전략은 여성 문제의 해결을 매개로 이루어져야 할 것임을 시사한다.④ 에코 아나키즘에코 아나키즘은 아나키즘의 시각으로 생태문제를 해결하자는 입장이다. 아나키즘은 환경친화적 생태주의, 상호부조와 자유에 기초한 공동체주의 등 소규모 생활, 최소의 소비를 통해 환경친화를 실현하자는 구체적 프로젝트를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환경친화적 속성으로 인해 생태위기의 대안으로서 에코아나키즘으로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에코 아나키즘은 환경 문제의 해결에 있어 사회 정치 시스템의 문제, 즉 인간과 인간의 관계 문제를 핵심으로 꼽는다. 그것은 인간 사회의 위계 질서, 억압과 착취, 선진국과 제 3 세계간의 불균형 등을 문제로 압축한다. 그러나 환경친화적인 소규모 공동체주의 등에서 나타나듯 에코아나키즘은 아직은 이데올로기라기보다는 하나의 실천적 강령 내지는 삶의 양식에 가깝다. 협동적이고 사회적 관계를 중시한 점, 이념적 가치보다는 공동체적 삶의 가치를 중시한 점, 연대, 결속, 관용의 미덕을 중시한 점등은 인간 이성을 중시한 휴머니즘적 색채가 짙다. 에코아나키즘이 이처럼 인간 이성을 중시하는 것은 환경 문제 해결에 있어 놓은 도덕규범이 필요하다는 믿음에서이다.(4) 사회주의적 환경주의① 생태마르크스주의마르크스주의적 환경론에 의하면 환경 문제는 자본주의체제에서 자원을 소유한 계급과 이의 소유를 원하는 계급간의 이해관계의 대립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한다. 이와 같은 불가피한 대립은 자본주의 경제 체계의 내적 모순의 결과이므로 다원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점진적 사회개혁을 통해서는 환경 문제가 해결될 수 없으며 오직 전체 사회를 혁명을 통해 개조함으로써 가능하다는 것이 마르크스주의적 환경론자들이 입장이다.불제(1)FONAFIFO(국가임업발전기금)FONAFIFO의 역사는 1990년 산림법 No. 7174의 공표에서 비롯되었다. 이어서 1991년 예산법에 따라 기금이 조성되었고 이후 산림법 No. 7575의 제 46조에 의해 FONAFIFO가 설립되었다.FONAFIFO의 일반적 목적은 융자와 기타 방법으로 중소 생산자를 재정 지원함으로써 산림관리를 장려하여 조림과 재조림을 촉진하며 양묘장과 혼농임업을 지원하고 황폐지를 복원하며 임산물의 이용과 산업화에서 기술개발을 지원하는 것이다. 또한 FONAFIFO는 숲이 제공하는 환경 서비스에 대하여 지불할 수 있도록 자금을 지원하여 자연자원 부문의 발전을 강화한다.(2)개요코스타리카 산림직불제는 일차림의 보호와 이차림의 복원, 버려진 초지의 조림, 임산기업의 수요에 부응하는 산업조림의 추진을 목표로 한다. 토지와 산림 소유자는 숲과 생물다양성, 사람들의 생활의 질을 유지하는 토지이용 및 산림관리활동을 채택하였을 때 자신이 생산하는 환경 서비스에 대한 대가를 받을 수 있다. 제공되는 인센티브는 지구적으로 중요한 생물 다양성 보전을 위해 핵심적인 서식지를 유지하도록 하며, 국립공원과 생물보호구역에 연결되는 생물통로를 유지하는 잠재력이 된다. 모든 산림직불제 참여자들은 임업전문가가 인정한 지속 가능한 산림 경영계획을 제출해야 하며 계약 유효 기간에 지속 가능한 산림경영 및 보전활동을 수행해야 한다. 경영계획에는 토지의 생물, 물리적인 정보, 산불과 불법수렵, 불법벌채를 방지하는 구체적인 행동과 감시계획을 담아야 하고 환경 서비스 계약과 관련된 이행활동은 재산에 대한 실적으로 등록되며 계약 기간에는 다음 소유주에게도 계약의 의무가 이행된다.이 프로그램은 환경 서비스 편익의 수혜자로부터 생산자에게로 자금을 이전하는 역할을 한다. 이는 국가의 산림자원 보전을 촉진하기 위한 재정지원 메커니즘으로 설계한 것이며 산림소유자들이 지역사회에 제공하는 산림환경서비스에 대해서 재정적, 법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것이다. 산림직불제는 그 법적 근거를 센터
    사회과학| 2011.12.10| 16페이지| 1,500원| 조회(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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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엽상섭 제야 평가A+최고예요
    염상섭의『제야(除夜)』Ⅰ. 들어가며(『제야』의 배경, 1920년대 여성과 문학 )『제야』(1923)가 쓰여진 1920년대에는 여학교 교육을 받은 신여성층이 두텁게 형성되기 시작했다. 따라서 직업을 요구하는 현상도 나타나는데 이들의 전문직 분야는 주로 교사직으로서, 이들은 돈보다는 사명감이라는 명분을 더 소중히 하였다. 그러나 일부 여성들의 직업 요구와는 상반되게, 여학교를 졸업한 대부분의 여성들이 가정에 안주하여 중산층으로서의 문화생활을 누렸고, 이와는 달리 하층 가정의 여성들은 생계 난을 해결하기 위해 공장 등지의 산업전선에 뛰어 들어야만 했다.또한 192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3? 1운동 후의 전반적으로 활발해진 노동쟁의에 여성들도 적극 참여하면서 여러 단체들이 결성된다. 초기에는 주로 생존권적 차원에서의 투쟁이 이루어진다가 점차적으로 정치 사회 문제와 여성 문제를 인식하고 실천하는 차원으로 나아갔다.1922년 조선 여자 기독교 청년회에 의한 교육 계몽활동, 생활정화 운동에 이어 1924년 조선 여성 동우회가 결성되면서 여성의 인간적 평등권을 주장하고 여성과 서민의 편에서 본격적인 여성 해방 운동이 전개되었다. 신간회 결성에 자극을 받아서 1927년에 창립된 근우회는 근로 여성의 파업 지원, 여학생 동맹 휴학 연대 등을 통해 여성해방운동과 항일 운동의 일원화를 꽤했다. 그러나 1930년 신간회의 해체로 근우회도 내부의 갈등으로 분열을 일으켰고, 1930년대 이후의 여성 운동 활동은 근우회의 해체를 기하여 침체되기 시작했다.이와 같이1920년대는 여권이 신장하였고, 여성들의 활동이 이전에 비하여 늘어났던 시대이다. 이러한 1920년대에 나온 김동인의 『약한 자의 슬픔』(1919)과 염상섭의 『표본실의 청개구리』(1921), 『제야』(1923)에서 나오는 여성들은 이러한 현실속의 여성들의 현실과 의식, 활동상을 수용하고 있다. 특히, 세 소설에 나타나는 여성들은 자유분방하고 도덕적으로 타락한 극단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 전 시대의 소설에 나오는 전통적 미덕을통학교와 보성소학교를 거쳐서 1917년 교토부립제2중학교를 졸업했고 와세다 대학에서 수학 중이던 1919년 일본의 오사카에서 만세 운동을 주동하기도 했다. 서울로 돌아온 그는 1920년 ‘동아일보’창간과 함께 정치부 기자 생활을 시작하며, 잡지 ‘폐허’의 창간 동인으로 참여했다. 염상섭의 문단 활동은 1921년 잡지 ‘개벽’에 『표본실의 청개구리』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이루에 지는데, 이후 『만세전』,『삼대』,『무화과』,『두 파산』,『취우』에 이르기까지 44년간 500여편의 소설과 평론 등을 발표하면서 우리 문단의 보고(寶庫)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는 잡지 ‘동명’의 편집장을 지냈으며, ‘조선일보’ 학예부장, ‘만선일보’ 주필 및 편집국장 등을 역임했으며, 1954년에는 서라벌 예술대학의 학장을 맡기도 했다.염상섭의 문학은 작품의 성격과 관련하여 1919년부터 1926년을 초기로, 1927년부터 1945년을 중기로, 1946년부터 1962년까지를 후기로 각각 분절해 볼 수 있다. 초기의 그의 문학은 『표본실의 청개구리』로 대표되는 ‘자연주의’적 세계로, 식민지 시대 지성인들이 지녔던 암울한 내면 풍경의 주조로 하고 있다. 그는 이후 ‘사실주의’ 색채를 뚜렷이 하면서 『만세전』,『삼대』등의 작품을 통해서 식민지하 조선의 현실을 개인적 체험을 토대로 잘 형상화하고 있다. 해방이 되자 만주에서 돌아온 염상섭은 『두 파산』,『취우』연작 등을 통해서 물신화로 인해 파멸되어가는 세태의 문제나 위기에 봉착한 인간 군상들의 제 양상 등을 객관적 거리를 유지하면서 잘 포착해내고 있다. 우리 문학사상 일제로부터 해방, 전쟁을 두루 겪으면서 끈질기게 자신의 문학적 신념을 지켜온 작가는 그리 흔치 않다. 그런 점에서 염상섭의 문학은 우리 현대문학의 궤적을 그대로 보여주는 한 단면으로 귀중한 문화적 유산이 아닐 수 없다.2. 『제야』의 분석(1) 염상섭의 초기 3부작의 특징과 한계염상섭의 『제야』는『표본실의 청개구리』,『암야』등과 더불어 그의 초기 3부작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이는 아직 자기 자신의 의식 체계가 확립되지 않았다. 초기 3부작의 한계성은 개인 윤리의식의 과잉 노출이었다. 이 같은 개인 윤리의 한계성은 에 와서야 이인화를 통하여 사회 윤리의식으로 나타난다. 이 같은 데카당스적 기분과 개인 윤리의식의 극복은 식민주의적 허무주의의 청산을 의미한다. 동시에 데카당스적 의식으로부터의 벗어남이었다. 염상섭은 도스토예프키의 창작론과 ‘시라카바’파의 교양과 문체에 힘입어 자신의 내면 세계를 드러내기 시작함으로써 일단의 실험을 성공리에 끝내었다.(2) 줄거리 요약이 소설의 주인공 정인은 신여성이다. 비록 첩의 딸이지만 18세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동경에 가 6년간 수학한 뒤, 고국에 돌아와서는 모교의 교사로 재직한 엘리트이기도 하다. 그런데 귀국 후 그녀에게 중매에 의한 인습적 결혼이 들어오면서 갈등이 시작된다.정인은 사회명사 유부남E와 육체관계를 맺는 한편, 후처자리이긴 하나 건실한 동경고등상업출신의 대구지점장 C와 혼인을 한다. 그러나 신혼여행 차 동경에 들른 그녀는 남편을 옆에 두고 건달P와 밀회를 한다. 대구에 신혼살림을 꾸민 그녀는 임신을 하게 되어 P와의 밀회사실을 남편에게 들키게 된다. 그들 부부는 부부생활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혼 7개월 만에 남편에게서 쫓겨난 그녀는 서울로 와서 침모의 알선으로 방을 얻어 출산일만을 기다린다. 아기만 낳으면 처녀로 행세하여 남성들을 유혹하리라는 결심을 한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엉뚱하게도 모든 것을 용서하겠다는 남편의 편지를 크리스마스이브에 받는다. 아이를 낳기 9개월 전이었다. 이 남편의 편지로 충격을 받은 그녀는 섣달 그믐날 치마끈으로 목을 매어 자살한다.(3)작품 분석부정한 여자가 자기의 부정을 자각하고 자살하기 직전에 쓴 유언장이다. 따라서 남편에게 띄우는 편지 형식으로 되어있다. 『제야』는 『표본실의 청개구리』나 『암야』에서 볼 수 없었던 일상적 시민 사회와의 관계가 회복되었고, 불안한 자아의 문제가 어느 정도 해소되었으며, 한국 소설에서는 최초로 페미니즘의 문제가 제기되었 부끄러움과 자기 참회 때문이었다.최정인의 부끄러움과 자기 참회는 반강제의 중매 결혼과 혼전 이민의 문제에서 비롯되었다. 최정인의 행동의 극한성은 ‘자기의 생을 절대로 충족’시키려는 의지가 절망적 상황과 시한성에 부딪쳐 일어난 것이다.최정인의 인습적 정조 관념에 대한 부정성을 정당화 해주는 것은 그녀의 페미니즘과 허무주의적 세계관 내지 그의 유전 의식이었다. 자기 아버지의 음란성으로 말미암아 자기가 첩의 딸로 태어나게 되었음을 최정인은 고백하고 있다. 최정인의 고백과 참회는 죽음에 이르게 되지만 그녀의 죽음은 음란한 혈통에 대한 윤리적 극복이며, 죽음의 승리는 곧 정신적 재생이었다. 이는 당대 많은 방탕한 신여성에게 크나큰 경종과 각성제가 되었다.(4) 『제야』의 문체적 특징『제야』는 최정인이 과거를 회상하면서 남편이 알지 못했던 여러 가지 정황들을 낱낱이 고백함으로써 줄거리를 풀어나간다. 이 작품의 가장 커다란 특질은 ‘고백체’라는 형식적 문제와 당대의 신여성이 지녔던 내면 풍경이라는 현실의 문제로 볼 수 있다. 최정인이 고백하는 내용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자신의 죄를 실토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에 있어서는 자신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내, 외적 원인을 논리적으로 분석해 보이고 있다. 따라서 최정인은 ‘고백’이라는 형식을 차용하고는 있지만, 실상에 있어서는 편지를 읽게 되는 상대방(남편과 독자)에게 자신의 처지를 납득시키고 무엇인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자 했음을 유추해볼 수 있다.최정인이 사용하고 있는 어휘나 어투가 지니는 해학적 요소나 공격적 성격의 이해가 필요한데, 작품의 서두에서는 무슨 필요로 편지를 쓰느냐고 반문하고는 모든 것이 무의미한 일이라는 듯이 조소하고 있다. 이러한 모순적 태도는 ‘모든 것이 명료한 것 같기도 하고, 오리무중에 싸인 것 같기도’ 한 세상이치나, ‘소위 신이니 공동목적이니 사회니 국가니 하는’ 것이 피난처 구실 밖에는 하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태도를 의미한다. 특히, 그녀가 스스로 자신의 가계에 대하여 ‘절륜한 정력’이니 상황에 대해서 비판적인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인습적 결혼’이라는 부도덕한 제도가 개인의 자발적인 의사를 무시함으로써 파탄을 가져왔다는 인식이다. 이러한 인식은 정조란 남자가 여자에게 생활 보장을 조건으로 강요하는 소유욕의 만족이거나, 교양인을 자처하는 자가 고상한 취미성을 만족시키고자 한 명분에 불과하다는 당대의 ‘도덕’에 대한 공격으로 발전한다. 그 다음으로 자신의 몸에 흐르는 불결한 ‘피’의 문제를 제기한다. 그녀는 자신의 조부나 부모대에서부터 이미 성적 쾌락에 젖어있었음을 밝히고, 자신도 억제할 수 없는 ‘이상한 힘’에 이끌렸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것은 곧 ‘본능과 개성’에 대한 긍정을 의미한다. 개성이 환경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약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만, 성적 본능에 따라 행동했다는 그녀의 논리는 절대적 주관성을 옹호하고자 했던 근대정신과 맞물리는 것이 아닐 수 없다.(6) 『제야』에서 자살의 의미그녀의 자살에는 ‘두 생명’을 구하고자 하는 의도가 들어있다. 정인의 남편인 안씨는 정인과 그녀의 배 속에 들어있는 어린아이를 구하기 위하여 명예까지 내던지고 그녀를 용서하겠다는 편지를 보내온다. 그러나 그녀에게 이러한 그의 태도는 종교적인 영감의 시간일 뿐이다. 지극히 시혜적인 태도란 결국 그녀를 구원하기 위한 노력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종교적 귀의에 합당한 논리를 구축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그녀의 자실은 어찌할 수 없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두 사람의 생명’이다. 안씨에게 있어서는 정인과 태아이겠지만, 정인에게 있어서는 태아와 안씨이다. 즉, 정인은 자신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미구에 태어날 태아의 삶을 구원하고, 자신으로부터 명예를 실추당할 위기에 처한 안씨를 구원하고자 한 것이다.(7) 『제야』의 의의는 1922년 『개벽』지에 발표된 염상섭의 단편소설로 , 와 함께 3대 초기 단편소설로 꼽히는 작품이다. 일본에서 돌아온 염상섭이 본격적인 문학 활동을 하기 위해서 시도했던 초기 실험작의 의미를 갖는 이 작품은 서간문 형 있다.
    인문/어학| 2010.05.16| 5페이지| 1,500원| 조회(5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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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루소 자연주의
    대표적인 자연주의 사상가로서는 루소가 있다. 루소가 나타난 시기의 교육은 주입식이고, 어린이의 세계를 무시한다는 등의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고, 육체적인 면보다 정신적인 면을 더 중요하게 여겨 감정을 이성에 비해 값어치 없는 것으로 여기고 있었다. 루소의 자연주의 교육은 이러한 기존의 교육관에 대해 정면으로 대항하는 것이었는데, 루소의 자연주의 교육은 말 그대로 인간의 교육 과정을 자연 체계의 한 부분으로 보고, 자연에 따르는 교육을 이상적인 교육이라고 말한다. 루소의 자연주의 교육 사상에 대해 가장 잘 살펴볼 수 있는 책은 에밀이다. 이 책은 루소가 가상에서 에밀이라는 아이를 교육하는 과정과 방법에 대해 쓴 책인데, 루소는 이 책으로 인해 박해를 받게 되기도 했다.루소의 자연주의 교육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우선 루소에게 있어서 자연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알 필요가 있다. 루소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사람의 모습은 ‘고상한 야인’인데 이것은 야만인과는 다른 개념이다. ‘고상한 야인’이란 자연성을 잘 보존하고 있는 사람인데, 자연성을 잘 보존하는 ‘고상한 야인’을 교육할 수 있는 곳은 바로 자연이다. 루소에게 있어서 자연은 우리가 생각하는 초원, 밀림과 같은 것들을 의미하기 보다는 타락한 사회와 다르게 인공적인 것이 가미되어있지 않은 이상적인 상태를 의미한다. 이 자연에서만이 어린이가 타고난 자연적인 본성을 잘 발달시킬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이다.루소는 당시 절대적인 힘을 가지고 있던 기독교의 주장, 원죄설에 반대한 성선설을 주장한 사람이었다. 루소는 사회를 타락한 상태, 인위성이 가미되고 편견과 속박으로 가득 차있기 때문에 인간의 선한 자연성이 발현될 수 없다고 봤다. 루소는 사람의 선한 본성을 믿고 타락한 사회의 영향을 받지 않은 어린아이를 순수하고, 가장 가치 있는 존재로 보았다. 어린 아이를 바라보는 루소의 이러한 관점은 매우 혁신적이라고 생각하는데, 왜냐하면 그 때까지만 해도 어린이는 단지 어른의 축소판이라고만 생각했고, 어린아이의 고유한 정신세계가 는 좋은 교수설계라고 할 수 없다. 자연주의 사상이 가치 있는 것은, 그 때까지 간과되었던 학습자, 어린이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바탕으로 설립된 사상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루소의 이러한 어린이의 가치에 대한 새로운 발견은 후에 어린이 교육을 연구한 페스탈로치와 프뢰벨에게도 영향을 준 것 같다. 특히 페스탈로치의 교육 원리 중 하나인 인간성의 도야를 인간내부의 힘을 자연법칙에 따라 개발한다는 것은 루소의 자연주의에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한다.루소는 이러한 성선설을 바탕으로 소극교육론을 펼친다. 소극교육론이란, 억지로 지식이나 도덕적인 것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악이 들어오는 것을 막아주는 것, 아동의 타고난 선한 본성이 잘 발현될 수 없게 방해하는 사회의 악영향을 배제시키는 것으로 그 당시 아이의 나쁜 성향이 표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도덕적 규범들을 적극적으로 교육시켰던 적극교육론과는 반대되는 개념이다. 에밀에서 루소는 ‘이것을 당신 아이의 영혼 주위에 일찍이 담을 쌓으시오.’ 라는 말로 표현했다. 루소는 이성이 발달하기 전 아동에게 사회의 덕목이나 도덕 등을 인위적으로 가르치는 것은, 선에 대한 교육이라고 할지라도 악이 된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해서 소극교육론은 교사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아이를 방치∙방임하는 것이나 아이가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하게 두어서 버릇없는 아이, 도덕적이지 않은 아이를 길러내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 교육은 아동의 욕구나 관심 등을 강조해 아동이 자발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게 하도록 한다. 교사는 자신의 의지대로 아동을 이끌려고 하지 않고, 한 발짝 물러서서 아동이 스스로 느끼고 생각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동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에도 아동을 다그치면서 그것이 무조건 나쁘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아동이 왜 그 행동이 잘못된 것인지 스스로 깨우칠 수 있게 해준다. 스스로 깨우치게 된 아이는 자기가 깨달은 바를 바탕으로 정말 바르게 살아갈 수 있다고 본다. 적극적으로 교육했던 사람들처럼 선에 대한 입해서 이것저것 알려주고 싶을 것 같다. 이렇게 아이의 교육, 성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싶어하는 것은 우리나라 부모님들이 더 그러한 것 같다. 아이의 흥미∙적성과는 상관없이 하루 종일 미술학원, 음악학원, 영어학원, 수학학원에 정신 없이 옮겨 다니는 것을 보면 안타깝다. 이런 소극적 교육은 아이에 대한 온전한 신뢰가 있을 때, 또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많은 참을성과 인내심을 가지고 있어야 할 수 있을 것 같다.소극교육론을 바탕으로 루소는 아동의 발달단계에 따른 교육과정을 5단계(유아기, 아동기, 소년기, 청년기, 성인초기)구분한다.가장 먼저 유아기는 0세부터 말을 배우기 시작할 때이다. 루소는 인간에게는 3가지 스승-자연, 사물, 인간-이 있다고 봤는데 자연에 의한 교육은 우리가 지닌 능력과 기관의 내적인 발전, 인간에 의한 교육은 이 발달을 이용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 사물에 의한 교육은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물에 대해 우리들 자신의 경험에 대해 얻게 되는 것이다. 이 세 가지 교육이 잘 조화를 이루어야 좋은 교육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인간과 사물에 의한 교육은 인간의 힘으로 좌우 할 수 있지만, 자연에 의한 교육은 인간의 의지대로 할 수 없으니 자연에 따라가야 한다는 것이 루소의 주장이다. 유아기 시기의 아동은 본능과 감각에 의해 지배되는 상태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력한 상태로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유아기에는 건강하고 튼튼한 몸을 가질 수 있도록 아동에게 육체적 욕구를 채워주는 일과 욕망이 자연스럽게 표현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고 한다. 유아기의 아동에게 가장 좋은 교사는 부모인데 루소는 모유를 먹일 것과 아동이 욕구 표현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울음에 귀 기울일 것을 주장한다. 루소가 살던 시기도 과학이 발달하던 시기였지만, 오늘날 모유 수유의 이점에 대한 많은 연구가 나오고 있다. 모유에는 면역력을 길러주고 두뇌 개발에 좋은 성분들이 들어있다고 한다. 또 갓난아기들의 울음이 다 같은 것이 아니라 배고플 때, 졸릴 때 등등 욕구에 따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한다. 감각 기관을 통해 올바르게 판단하는 것을 배우고 이것은 지적 이성의 기초가 되기 때문에 아동기에는 아동의 감각과 체력을 발달시키는데 교육의 초점이 두어진다.소년기는 12세에서 15세를 가리킨다. 소년기는 아동의 이성이 싹터서 지적인 호기심을 갖게 되고 학문에 관심을 갖게 되는 시기이다. 소년기의 아동에게는 지리학, 천문학, 물리학, 기하학 등 자연현상에 관한 자연과학에 관련되어 아동의 생활과 관련 있는 내용을 배우게 되는데, 이 때 역시 교과서나 책으로 단지 이론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배운 지식들이 실생활에서 어떻게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지를 깨우쳐 주면서 진행되어야 한다. 그래서 루소는 소년기 때의 독서를 반대한다. 소년기의 에밀이 읽을 수 있는 책은 생존에 유익한 것들을 배울 수 있는 ‘로빈슨 크루소’ 뿐이다. 소년기 때는 지식교육이 이루어지기는 하지만, 많은 지식을 배우기 보다는 지식을 얻는 방식을 얻고 지식의 유용성을 알게 되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렇게 교육이 진행되면 학생들은 학문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입시교육을 받을 때는 수학과목에 사칙연산을 제외한 것들, 원주 구하기나 미분, 적분 같은 것들을 공부 할 때 내가 왜 이것을 배워야 하는지 늘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지금도 내가 왜 그 때 그런 것들을 배워야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시험을 잘 보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했던 것 같은데 그래서 수학은 공부하면서도 지겹고 하기 싫었다. 내가 수학을 공부할 때 이것이 나한테 어떻게 유익한 것인지 알고 배웠다면 열의를 가지고 공부했을 것 같다. 루소가 구분한 소년기는 우리나라 중학교 과정 정도에 해당하는데 루소는 지금에서야 학생에게 본격적인 학문을 가르치고 학문을 사랑할 수 있도록 했다. 또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우리나라 교실에 가보면 교과과목이 재미있어서 그 수업을 열심히 듣는 학생들이 별로 없는 것 같다는 것이다. 아직 중학생일 뿐인데 벌써 공부에 지친 모습들이다. 공부 그 불쌍한 처지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을 보여준다. ‘에밀’에 나온 종교교육 부분이 문제가 되어 박해를 받았는데 루소는 신은 모든 자연만물에 존재하고 자연이 곧 신이라는 자연종교관을 제시했다. 종교교육에 있어서도 어떤 종교를 강요한 것이 아니라 에밀이 직접 깨닫고 선택하도록 하는데 에밀은 자연종교를 선택하게 된다. 역사도 주관적인 해석이 들어간 역사를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있었던 그대로의 사실만을 알려주고 그것에 대한 판단은 에밀 스스로 하게 한다. 그렇지만 나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객관적으로 알려준다는 것이 가능한가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된다. 역사를 가르쳐주는 교사가 과연 한 역사적 사실에 대해 연관되어 있는 모든 원인들과 배경들에 대해서 완벽하게 파악하고 또 그의 가치관이나 관점은 완전히 배제하는 것은 불가능 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객관적인 역사교육을 한다는 것은 최대한 객관적으로 교육하려고 애쓴다는 것에 의의가 있는 것이지 정말 말 그대로 완벽한 객관적 역사교육이 이루어질 수는 없는 것 같다.마지막 교육단계인 성인초기는 20세 이후를 가리킨다. 이 시기의 교육에는 시민교육과 여성교육에 대해 나오는데, 루소의 여성교육을 읽으면 그 동안 진취적이고 혁신적은 교육을 주장한 진보적인 교육 사상가는 대체 어디로 갔는지 당혹스럽다. 루소의 여성교육은 너무나도 남성우월적인 사상이 담겨 있고, 남성을 위한 여성교육이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여성교육의 목표는 훌륭한 아내와 어머니를 육성하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물론 좋은 아내, 좋은 어머니가 되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지만 여성의 가치와 역할이 그것에만 국한되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루소에게 있어서 여성은 오로지 남성을 위한 피조물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나 보다. 물론 루소의 생애를 살펴보면 어렸을 때 충분히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랐고, 성인이 된 후에 살롱에 출입하면서 귀부인들의 문란한 생활을 본 것이 이런 루소의 여성교육에 대해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루소의 여성교육에 대한 사자료.
    교육학| 2010.05.16| 6페이지| 1,500원| 조회(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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