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에 선 기독교저자는 하나의 종교가 공공생활에 침투하는 전체주의적인 입장과 모든 종교를 공공 생활에서 배제하는 세속적인 입장 모두에 대한 대안을 개략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모든 종교의 신자들에게 보편적인 종교인으로서 이 문제를 다루는 것은 근본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 저자는 공공 생활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의 역할에 대한 비전을 제시한다. 세상에서 ‘배제’되는 위험과 세상 전체로 ‘침투’하는 위험 모두를 극복하는 비전을 제시한다. 신앙과 문화의 관계는 매우 복잡하다. 문화에 대한 신앙의 입장은 신앙 자체의 핵심에 의해 정의되며 또 그렇게 정의되어야 한다. 그 핵심이란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말씀이며 세상 죄를 지고 가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시니 그리스도와의 관련성이다. 그래서 저자는 이에 대한 3가지 질문을 세워놓고 탐구하고 있다. 첫째, 기독교 신앙은 오늘날의 세계에서 어떤 방식으로 기능장애를 일으키며 우리는 이러한 기능장애에 어떻게 맞서야 하는가? 두 번째,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은 오늘날 세계에서 잘 살기 위해 어떤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 마지막으로 그리스도를 따른 ㄴ이들은 오늘날의 세계에서 잘 살고자 하는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같은 국가의 지붕 아래에서 함께 살아가는 바른 신앙을 가진 사람들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이다. 이런 질문에 대답하는 과정에서 저자는 공적 영역에서 종교를 배제하려는 세속적인 입장과 모든 형태의 ‘종교적 전체주의’ 양자에 대한 대안을 제시한다. 기독교의 신념을 약화시키지 않고 오히려 확실하게 지키며 그것을 기쁘게 실천하는 데 도움을 주는 대안을 말이다.기독교가 원래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해서 초래한 잘못된 결과들이 나타나는 현상을 ‘기능장애’라 부른다. 이 세상과 내세에서 인간의 번영을 위한 하나님의 도구가 되는 것을 궁긍적인 예언자적 종교로서 기독교가 존재하는 이유이다. 기독교 신앙이 신비주의 종교처럼 실천되어서 상승이 창조적인 회귀로 이어지지 않고 황량한 회귀가 될 때 기능장애가 일어난다. 이때 회기는 세상을 위한 있다. 상승기능장애는 우선 신앙의 기능 축소라는 형태로 일어난다. 이는 예언자적 종교의 수행자가 신과의 만남 그 자체의 의미에 대한 믿음을 잃음으로써, 겉으로 보기에 종교적 언어를 사용하여 전망하고 실천하나 실상은 그 내용과 추진하는 방법이 신앙의 핵심에 근거하지 않을 뿐 아니라 신앙의 핵심과 필연적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을 때 일어난다.회귀장애의 첫 번째 현상은 신앙의 나태함이다. 기독교 신앙의 주된 목적은 개인과 공동체의 삶을 형성하는 것이다. 그러나 다양한 모습의 삶속에서 신앙이 나태해져 마치 눈 속에 갇힌 자동차의 바퀴처럼 헛도는 경우가 빈번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신앙은 무의미하기 때문에 폐기되어버릴 것이다. 신앙의 나태함은 신앙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다.성경에는 신앙의 두 가지 기능에 부합하는 두 가지 전통이 있다. 구원의 전통과 축복의 전통이다. 신앙은 거칠고 장애물이 많은 일상생활에서 상처받고 실망하며 상한 우리의 몸과 영혼이 회복되도록 돕는다. 신앙은 또한 우리에게 힘을 불어넣어서 우리의 과업을 훌륭하게 수행하도록 힘과 집중력과 창의성을 부여한다. 그럼에 불구하고도 신앙이 이런 기능장애를 일으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신앙이 단지 치유하거나 힘을 북돋워 주기만 한다면, 신앙이란 필요할 때 우리가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목발과 같은 도구가 될 뿐 우리가 걸어가야 하는 인생의 길이 되지는 못한다. 예언자적 종교로서 기독교 신앙은 삶의 길이 되지 않으면 그 길에 대한 풍자가 될 뿐이다. 신앙은 우리로 하여금 여행을 떠나게 하고 그 길을 인도하며, 우리의 걸음걸음마다 의미를 부여할 때라야 고유한 과업을 수행하는 것이다.우리가 신앙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이 우리를 받아들이실 때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로 지음 받게 되고 하나님의 백성의 일원으로 부름 받는다. 이렇게 여행이 시작되고 하나님이 인간 세상으로 들어오시는 이야기가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우리가 여행을 시작하면 신앙은 우리 삶의 여로가 되어 어떤 곳으로 가야하고, 어떤 어두운 골짜기와 막다른 골목을 피있는 일이 되고 변치 않는 금처럼 빛날 것이다. 반면 우리가 하는 일이 이 이야기와 충돌한다면 우리가 해 본 어떤 일보다 스릴이 넘치고 보람 있는 활동일지라도 결국은 무의미하게 되며 지푸라기와 같이 불타 버릴 것이다.기독교 신앙이 이 세상에서 나태해지지 않으려면 의사든지 넝마주이든지, 기업체의 중역이든지 예술가든지, 가사를 돌보든지 과학을 연구하든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와야 한다. 이 이야기는 세상의 모든 영역에서 벌어지는 게임의 가장 기본적인 규칙을 제공한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게임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의 인격을 형성한다.회귀 기능장애의 두 번째 현상은 신앙의 강요다. 이 경우에 신앙은 나태하다기보다 지나치게 적극적이어서 원하지 않는 사람들마저 강제적으로 복종시킨다. 현대사회에서 기독교 전통은 회귀 기능장애의 두 극단을 오간다. 나태함을 극복하고자 신앙을 강요하거나, 강요하지 않으려다 나태해진다. 그리스도인은 대개 신앙이 나태해지는 것을 염려한다. 그들에게 신앙은 소중한 선이며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가장 가치 있는 것이다. 이들은 기독교 신앙의 가치가 실현되지 않으면 인간의 번영은 이루어질 수 없고 그리스도인의 이익만이 아니라 공공선이 훼손된다고 본다. 그러나 반대로 많은 비그리스도인에게 신앙의 나태함은 오히려 작은 축복이다. 이들은 적극적인 신앙은 위험하며 원래부터 유해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스도인은 신앙이 오용될 수 있을지라도 우리 삶에 유익한 길이라는 점을 보여주고 기독교의 비전의 모든 영역에서 제대로 이루이질 수 있도록 설득해야 한다. 기독교가 본질적으로 비폭력적이므로 제대로 실천된다면 인간의 번영에 기여할 수 있고 해를 끼치지 않는다고 믿는다 해도, 우리는 여전히 왜 많은 그리스도인이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태도를 보여 왔는지 자문해야 한다. 신앙이 억압적이 되는 이유는 신앙의 왜소화 때문이다. 조직의 힘은 신앙이 현실에 부적절하게 보이는 문제에 상응한다. 유혹은 좁은 길로 가기를 꺼리는 태도와 관련 있다. 사람들은 신앙에 더라도 그것을 이루는 수단에는 제대로 적용되지 못한다. 그러므로 종교가 폭력을 정당화하는 문제를 해결하려면 신앙을 덜어내야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신앙적이어야 한다. 경건한 사람들은 신실함과 용기로 신앙을 실천해 왔다. 책임감 있는 신학자들이 숙고하며 제안한 바에 따라 신앙은 전체적인 면모에 온전함으로 추구되어야 한다.다음으로 신앙이 현실에 부적절하게 보인다는 문제가 있다.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기독교 신앙의 비전을 왜 온전히 실현하려 하지 않는가? 그것은 신앙이 본래적으로 제시하는 가치가 구시대적이거나 현실적이지 않고 부적절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박해를 받으며 소수가 간직해 온 신앙이 대규모의 기업을 운영하거나 외적으로부터 국가를 방어하는 데 유용한 가르침을 줄수 있을까? 방대한 기술적 잠재력이 인류를 파멸에 이르게 하지 않고 인류의 번영을 위해 사용될 수 있도록 분투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2000년 전에 창시된 신앙이 어떤 적합성을 보일 수 있을까? 신앙인들의 마음 깊은 곳에는 우리의 신앙이 부적절한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있다. 우리는 신앙과 현실 사이의 긴장감을 느끼며 신앙이 제시하는 윤리적인 비전을 외면한 채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축복하는 데 신앙을 적용해 왔을 뿐이다. 변화하는 상황 속에서 신앙을 진정성 있게 이해하고 실천하기란 지적으로나 영적으로나 매우 어려운 일에 속한다. 그러나 이러한 과업은 신학자에게만 부여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학문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과 모든 사회계층에 속한 신실한 신앙이 감당해야 할 문제이다.마지막으로 좁은 길로 가기를 꺼리는 문제가 있다. 누군가가 우리 혹은 우리가 속한 공동체를 위협하고 해를 끼친다면 우리는 복수심을 느낀다. 그러면서 원수를 사랑하고 그들을 선대하며 자리를 베풀라는 계명을 멀리한다. 한편 우리는 이 시대의 문화가 파멸의 길을 향해 하고 있다고 믿으며 자멸을 향한 흐름을 바꾸고 싶어 한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이 중시하는 목표를 추구한다고 해도 적절한 수단을 선택할 때 고려해야 할 신앙의 지역에서 환경을 심하게 오염시키는 것도 합법적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일들이 도덕적인가? 물론 도덕적인 문제에도 회색지대는 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하든지 도덕적으로 선한 일의 경계를 넘어서는 것처럼 보이는 때도 있기 마련이다.적절하게 기능하는 신앙은 우리가 도덕적으로 허용되는 일을 넘어서 도덕적으로 탁월한 일을 하도록 우리를 자극한다. 삶을 변화시키는 진정한 신앙은 우리로 하여금 옳고 탁월하 ㄴ일을 분별하게 하고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한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일터의 도덕적인 영역 밖으로 하나님을 제한한다. 그들도 하나님이 영혼을 구원하시고 개인의 삶에서 도덕적인 방향을 지시해 주시고 우리가 일을 더 잘하게 도우시고 상처를 치유하신다고 믿는다. 그러나 사회생활에서 직면하는 도덕적인 결정을 내리는 일에서는 하나님이 멀리 떨어져 계신다고 여기는 것 같다. 우리가 하나님을 우리의 삶 전체를 견인하시도록 하지 않고 삶의 특정 영역으로 제한한다면 예언자적 신앙이 추구하는 가장 중요한 일을 수행하는 데 필패하는 것이고, 예언자적 신앙의 가장 중요한 기능을 나태하게 하는 것이다. 이보다 나쁜 것은 이러한 나태함이 우리의 신앙이 축복과 구언의 근거가 기능하지 못하게 망쳐 놓는다는 사실이다.창조는 강요행위가 아니다. 오히려 세계를 하나님의 창조물로 이해하지 못할 때 이세상 속 존재 간의 관계, 특히 인간의 관계가 폭력일수 있다는 주장이 가능해진다. 정체성을 창조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면 정체성의 경계는 존재 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나타나야 한다. 이러한 상호작용 자체가 폭력적이라고 묘사할 수 있다. 왜냐하면 경계는 자의적이어서 늘 다툼이 생기기 때문이다. 희소한 자원 때문에 경계가 협상의 방식을 띤다 해도 결국은 힘겨룸의 결과물이 되고 만다. 게다가 경합하는 주체간의 힘겨룸을 중재할 궁극적 외부 존재도 없다. 그러나 새창조의 경우는 어떤가? 죄의 결과로부터 창조 세계를 구속하시는 하나님의 행위는 어떠한가? 새창조는 무로부터의 창조가 아니라 옛 창조로부터 창조아닐까?
교사리바이벌을 읽고..1. 요약제1장 그 마음입니까?“무리를 보고 민망히 여기사..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자 가슴이 찢어지는 듯 마음 아파하셨으니 이는 저희가 괴롭힘을 당하고 있으며 내버려진 자가 되고 있음이라.” (마 9:35-36)위 말씀은 죄로 말미암아 사탄의 권세에 의하여 괴롭힘을 당하며 하나님에게서 버림받은 자처럼 내동 댕이 쳐진 인간들의 영혼의 원래 모습을 바라보시는 예수님의 시작을 보여준다.교사는 하나님의 시각으로 인간을 복음의 빛 아래서 그들의 영혼 상태를 바라봐야 한다. 그리고 이 마음을 갖고 영혼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사랑으로 품어야 한다. 그 사랑은 세상 사랑과 다르다. 세상 사람들의 사랑 고백은 말뿐일 때가 많지만 우리 주님의 사랑은 눈에 보이도록 확증된 사랑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교사들은 주님이 그렇게 사랑하신 영혼들을 책임지고 있다. 교사들의 마음속에서는 먼저 주님을 목자로 모시고 살아가는 영혼의 기쁨이 있어야 한다.현재 교회 안의 신자들은 진정한 복음이 무엇인지 잘 모르고,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은 바위처럼 굳어져 가며, 교회는 신령한 기쁨을 잃고 싸늘해져 가고 있다. 그들은 주님의 마음을 가진 교사의 불붙는 헌신이 아니면 아무 희망도 없다. 교사로 부름 받았으면서도 주님이 맡은 양떼에게 그 마음을 쏟지 아니하고, 형식적인 섬김으로 삯꾼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은 얼마나 불행한 사람일 것이다. 추수할 일꾼을 부르시는 주님의 피맺힌 외침을 외면하고 형식적인 섬김이 마치 우리의 기쁨이라도 되는 양, 영혼들을 향한 우리 주님의 가슴 저미는 아픔을 느끼지 못한 채 기능공처럼 성경을 가르친 나달들을 반성해야 한다.제 2장 그 이유입니까?부르심의 기초는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녀라는 사실을 자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처음 교사로 부르심을 받을 때뿐 아니라, 영혼을 섬기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우리의 모든 수고와 섬김의 동기가 되도록 해야 한다. 인생의 모든 일이 그러하듯이,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동기가 되지 않은 이다. 하나님을 향한 참된 사랑의 경배에서 우러나지 않는 수고는 단지 불에 타 버릴 지푸라기 같은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영혼을 섬기도록 허락하는 것은 위험한 모험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는 질문이 주님에 대한 사랑이 교사로서의 부르심의 기초가 되어야 한다. 영혼들을 향한 사랑에는 언제나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 붙들린 교사에게는 그 진리를 모르고 살아가는 영혼들을 지켜보는 일이 너무나 큰 고통이다.교사인 우리의 사명은 두 가지이다. 첫째, 아직 구원받지 못한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이고, 둘째는 구원받은 영혼들이 주님을 닮은 성품을 키우고 거룩한 삶을 살아가도록 가르치는 것이다. 교사로서의 섬김에 가장 중요한 두 가지 가치가 있는데, 하나는 하나님의 영광이고 또 하나는 영혼들의 하나님을 향한 변화와 성장이다. 진정한 교사라면, 영혼들이 잘되는 일에는 무엇을 바쳐도 아깝지 않을 것이다. 자신을 채워서 온 방을 밝게 비추는 것이 양초의 사명이듯, 우리 또한 주님의 사랑하시는 영혼들을 위하여 자신을 허비하도록 세워진 사람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기의 모든 것을 던져 헌신해야 한다.제 3장 그 동지입니까?사도 바울은 그의 주변에 항상 헌신적인 동지가 있었다. 그들은 사도 바울이라는 개인에게 매료된 사람들이 아니라 그를 사로잡고 계신 그리스도께 사로잡힌 사람들이었다. 사도 바울은 그들을 자기 사람으로 만드는데 추호도 관심이 없었고, 오직 사람들에게 예수의 복음을 전하고 그들 가슴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참 사랑을 심어 주는 데만 관심이 있었다. 동역자들을 만나게 하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므로 그런 목양 관계, 동역 관계를 통해서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것이 우리의 관심사가 되어야 한다. 진리의 말씀에 의한 감화와 성령의 은혜가 없는 곳에서 결코 신령한 의미의 연합이 있을 수 없다. 왜냐면 그리스도인들은 하나 되게 우리에게 전해 주신 복음은 공동체에 부여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을 경험하고 하나 됨에 대하여 알면 알수록 복음 진리의 참 뜻을 더 잘 이해하게 된다. 우리가 맡은 영혼들에게 그리스도의 참 사랑이 무엇인지 가르치기 전에, 먼저 교사들 사이에서 그 사랑을 몸소 보여주라.제 4장 교사와 말씀 생활교사 스스로 개인적인 경건 생활 속에서 성경을 깊이 사랑하고 그 진리를 깨닫고 거기서 하나님을 만나는 말씀의 위력을 체험하지 못하기 때문에, 공과 공부에서 성경교육이 약화되고 있다. 교회는 교사들을 훈련시키고 성경을 가르치기 위한 학습 자료들을 준비하고 연구하는 일에 투자하기를 힘써야 한다.주님의 말씀 사역에슨 중요한 요소가 몇 가지 있다. 첫째, 진리에 대한 깊은 깨달음이고, 둘째, 그 진리를 체험하는 것이며, 셋째 성령의 능력이고, 마지막으로 그 진리대로 산 인격이다. 교회 교육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하는 것 이외에 다른 요소들, 즉 즐기는 요소들이 우선순위를 차지해서는 안된다. 그러므로 교사된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기를 사모해야 한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연혼에 영향을 받는 영적 세계가 있어야 한다. 가장 훌륭한 교재는 진리의 말씀에 붙잡힌 교사 자신이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정확한 해석과 그것을 토대로 한 깊은 묵상만이 교사의 공과뿐만 아니라 자신의 내면을 향한 하나님께 순종하려는 마음을 품게 한다.제 5장 기도의 사람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은 교사들의 능력(겉모습)이 아니라, 그의 성품을 통해서 풍성한 목양의 열매를 맺게 하신다. 교회학교는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 교사들이 얼마나 헌신적으로 기도하고 있는지 체크해야 한다. 교사로서 자신에게 맡겨진 영혼들을 위하여 기도하지 않는 이유는 사랑이 없기 때문이고, 사랑이 없는 이유는 기도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이 기도할 영혼들의 절박한 영적 필요를 이해하는 사랑이 없이는 기도를 온전히 하늘에 전달할 수 없다. 진정한 기도는 영혼에 대한 관심에서 나온다. 무엇보다, 좀처럼 변 많이 기도하라,. 변화 받지 못하면 그들에게 닥칠 심판이 마치 내 자신의 몫인 것처럼 기도해야 한다.제 6장 독서의 사람그리스도인들이 책을 가까이 하는 세 가지 주요한 이유는 첫째, 인간과 세상에 관한 정보를 제공받아야 할 필요가 있다. 둘째는 성경에 관한 지식을 습득해야 할 필요가 있고, 셋째는 거룩한 감화를 받아 더욱 경건하고 헌신된 삶을 살도록 변화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분명한 성경적 원칙에 의거해 정리된 지식은 그 신앙의 선을 더욱 굵고 분명하게 만들어 준다.제 7장 교사가 전도할 때우리 교사들은 단지 학교 선생들이 아니다. 교사는 이 세상의 죽어가는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부름 받은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부름 받은 전도자이다. 교사를 섬길수록 주님의 마음을 잃어버리기 쉬운 이유는 전도하지 않기 때문이다. 부름 받은 교사로서 우리 마음에 잃어버린 영혼에 대한 그리움이 없다면 매우 심각한 질병을 앓고 있는 것이다. 잃어버린 영혼들을 향한 우리의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곧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결핍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전도해 본 교사들은 비로소, 한 사람이 기독교 신앙이 무엇인지를 배우기 위해 교회 안에 있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기적인지 알게 된다. 교사인 우리가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만드는 최대의 방해거리가 환경이 아니다. 간혹 우리가 돌보던 영혼들이 뜻대로 잘 성장하지 않거나 마음이 굳어져서 다시 그리스도를 떠나간다고 해도, 우리의 수고가 헛된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열정이 식어서는 안된다. 우리 안에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메마르지 않도록 우린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제 8장 교사가 심방할 때심방은 동기에 따라 두 가지 유형이 있다. 하나는 사교적 심방이고, 다른 하나는 목양적 심방이다. 사교적 심방은 교제를 위한 것으로서, 영혼의 아픔보다는 인간적인 친분을 통해 교회를 나오게 하는 것이다. 목양적 심방은 심방을 통해서 그 영혼이 주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교사이 섬김을 힘입어 하나님을 찾게 만드는 것이다. 심방을 앞두고 먼저 그 가급적이면, 쓸때 없는 말을 삼가고, 하나님께서 그 섬김을 통하여 그 영혼에게 유익을 주시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가야 한다. 심방을 할 때, 건네는 첫마디가 다그치는 질문보다는 변명할수 있는 여유를 주면서 말을 건네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설교보다 상담의 형태로 그 영혼을 섬기는 언어가 중요하다. 그리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한 마디 말이 중요하다. 심방을 마친 후에 함께 기도할때 인격적이고 간절하고 구체적으로 기도해야 한다.제 9장 교사가 가르칠 때교사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도록 부름을 받았다. 신령한 교사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 이해되는 곳에만 하나님의 은혜가 역사한다는 지극히 성경적이고 평범한 진술에 동의한다. 성경으로 기독교의 진리를 공부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성경 자체를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책별로 공부하는 방법이다. 두번째 방법은 성경 각 책이 아니라, 기독교 진리 체계에 대한 전체적인 내용을 공부하는 방법이다. 성경 각 책을 공부하는 것은 각기 다른 시대의 여러사람들이 경험한 사건이나 고백을 통해 다양하게 역사하신 하나님의 성품과 역사를 풍부하게 깨닫게 해준다. 교리 공부는 성경전체가 통일된 기독교 진리 체계를 깨닫게 해준다.?제?10장?교사가?가르칠 때?2오늘날?조국?교회의?영적?상태가?쇠퇴하면서?눈에?뛰게?나타나는?현상은?영혼을?돌보는?사역이?피상적으로?변질되었다.?진정한?회개를?통해?참된?믿음을?소유하고?살아가는?신자들이?너무?소수이기?때문이다.?하나님과의?만남도,?회개도?없는?형식화된?예배와,?동화?이야기를?들려주듯이?성경을?배우는?분반?공부와?프로그램에?그치는?기도회와?말씀에?대한?깨달음의?결핍은?모두?이러한?회심의?부족때문이다.?구원에?이르게?하는?회심을?위하여서는?성경에?나타나는?진리?중?두드러진?교리르?가르쳐야?한다.?누군가를?위해?참된?회심으로?인도하기?위하여?가르친다면?반드시,?인간의?죄와?하나님의?진노에?대하여?두려움을?느낄?수?밖에?없는?방식으로?설명해?줘야?한다.?우리는?잊지?말아야ㅑ?한다.?하을.
1.제목 : ‘부목회자의 비전과 리더십’2.저자미국은 사역자들에게 참 좋은 나라인 것 같다. 교회 부목사가 기업 컨설트 같은 다른 직업도 할 수 있으니 말이다. 본서의 공동저자 중 마이크 보냄은 휴스턴의 웨스트대학 침례교회의 부목사로 일하면서 리더십을 위한 Kingdom transformation Partner 대표를 맡고 있다. 그래서인지 경영학을 전공한 나로선 저자의 서술방식이 참 낯설지 않았고 참 좋았다. 그 외에 저자인 로저 패터슨은 전형적인 신학 코스를 밟고 ‘마이크 보냄’과 동일한 사역지에서 부목회자로 섬기고 있다. 두 저자는 본서를 통해서 부목회자로서 함께 교회를 섬기면서 배웠던 리더십 경험들을 성경의 원리로 결합시키려 노력했다. 그리로 이를 통해 독자들의 관심사와 난제들에 필요한 확신과 교훈을 상세히 전달하고 있다.3. 요약(1~2문단)차석 리더는 수석리더의 부하 역할을 하면서 조직 구성원들에게 영향력을 끼침으로 조직 전반에 가치를 부가하는 사람이다. 차석 리더의 리더십은 지위가 아니라 영향력과 관계를 통한 서번트 리더십으로 발휘된다. 그래서 차석 리더는 독특한 역설적인 역할이 3가지가 있다. 그중 첫 번째는 부하-리더의 역설이다. 차석리더는 수석리더와의 건강한 관계를 통해서 그를 신뢰하며 복종해야 한다. 그리고 선의 존재를 인정하고 선의 배치에 대해 유연성을 갖으며, 선을 침범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두 번째는 깊이-넓이의 역설이다. 차석리더는 자신의 역할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과 전문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동시에, 이를 뛰어넘어 조직 전체에 대한 시각을 갖고 있어야 한다. 조직에 대한 큰 그림을 볼 수 있으면, 수석리더의 요구와 마인드에 적합한 대안을 찾을 수 있으며, 조직 전체에 긍정적인 가치를 부가시킬 수 있다. 세 번째, 차석 리더십에는 만족-꿈의 역설이 있다. 차석리더십의 만족은 선택이다. 만족은 현재 상황에 상관없이 기대와 좌절 그리고 필요를 넘어서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기로 주도적으로 의도적으로 선택하는 것이다. 수석리더의 높은 기대치나, 현 조직의 상황에서 좌절과 불만족을 얻을 때, 잠 시 머물며 기다리며 인내와 성장을 이뤄가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다. 만족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현재 상황에서 하나님의 소명을 발견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만족의 근원이다. 또한, 차석리더는 사역을 하면서 자신의 꿈을 버리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이 당신의 마음에 넣어두신 꿈을 전심으로 찾고 추구해야한다.꿈을 이루기 위해선 그 꿈에 대하여 나눌 대상과 시기와 내용을 항상 조심해야 하며, 청지기의 마음으로 자만을 견제하고 끊임없이 훈련받아야 한다. 그리고 수석리더와 건전한 의사소통을 통해 그의 비전을 함께 품고 지지해야 하며, 최선의 결과를 낼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차석 리더의 자리를 넘어서는 꿈을 꾸어 더 높은 시야와 인식을 갖춰야 한다. 자신의 자리를 떠날 때는 사전에 철저히 대비하여 적절한 시기에 실행하며, 현 조직의 미래를 위해 유산을 남겨야 한다.4. 서평부목회자의 비전과 리더십은 본문의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솔직한 제목인 것 같다. 경영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기업이나 조직 경영에 관한 책들을 여러권 읽어보았다. 그래서 이 책에 대한 기대가 사실 별로 없었다. 하지만, 교회 경영과 차석 리더십이라는 생소한 개념에 대한 실제적인 교회론적인 방법을 다루고 있어서 읽어볼수록 재미있었다. 현재 부목회자로 활동하고 있는 사역자들을 인터뷰한 내용과 그들의 이야기들을 실려 있었고, 대학교에서 배웠던 기업 경영과 교회 경영의 차이점들을 느낄 수 있어서 참 좋았다. 소제목부터 역설적인 관계에 놓여있는 주제들을 함께 다룸으로써 균형과 신학적 논리를 잃지 않으려고 노력한 점들이 많이 보였다. 또한 책의 서문을 보면 차석리더십에 관한 책이지만, 수석리더들이 더 읽도록 권면하는 내용을 보면서, 저자가 차석 리더와 수석 리더간의 관계 발전을 위해 많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서 참 좋았다.그러나 단원마다 실례가 너무 많아서, 읽다보면 주제 개념이 무엇인지 혼돈될 때가 있었다. 그리고 차석 리더십의 요소들을 한 챕터 안으로 정리할 수 있는 내용들인데 너무 디테일하게 설명하려 노력한 나머지 점점 내용이 지루해질 때가 있었다.5. 새롭게 배운점이 책을 읽으면서 현재 내가 속해있는 청년부 목사님과, 담임목사님이 많이 떠올랐다. 예배인도자로서 항상 담임교역자의 목회적 마인드를 보완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왔었다. 예배인도자학교와 같은 세미나를 다니면, 예배인도자와 담임목회자간에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깊이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수석 리더들에 대한 내 소극적인 자세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들과의 관계에서 난 매우 수동인 것 같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사역을 할 때, 지켜야 하는 선에 대해 매우 민감히 반응하며 그들과의 신뢰관계가 깨지지 않도록 매우 조심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내 안에 현재 교회의 상황과 조직에 대하여 다 만족하는 것이 아니다. 청년부 목사님과 담임목사님과 대화과 질문을 적극적으로 나누라는 저자의 이야기를 듣고 많은 도전을 받았다. 청년부 목사님의 내 영적 멘토 이신데, 나는 그분에게 질문하는 것을 많이 참아왔던 것 같다. 그래서 답답함이 가득한 나머지, 지금은 '나랑 그분의 스타일이 맞지 않는구나'라는 결론을 맺고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서 그분과의 관계가 더 발전될 수 있다는 희망을 조금이나마 품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조직에 대한 리더십은 지위가 아니라 영향력이라는 말에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리더의 권위 앞에 이해보다 존중과 순종을 먼저 해야 한다는 리더십 문화를 현 교회에서 보고 배우며 자라왔다. 그래서인지 현재 리더의 지위와 역할에만 매우 몰입하고 있었다. 그러나 조직 구성원들과의 건실한 관계를 가장 먼저 추구해야 하며, 이를 통해서 리더십의 영향력이 발휘된다는 것이 매우 새로웠다. 내가 예배팀장으로서 우리 팀원들과 얼마나 관계를 형성하려고 노력했는지 되돌아보니, 많이 반성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차석리더는 자신의 역할과 조직뿐만 아니라 교회 전체를 볼 수 있는 시각을 갖고 있어야 함을 배울 수 있었다. 청년부 활동과 예배팀 활동 동선이 많이 겹쳤을 때 나는 우리 예배팀을 가장 먼저 생각했었다. 그래서 청년부의 사역 진행이 더디게 한 적이 많았던 것 같다. 지금도 나는 다른 팀과 다른 부서를 함께 생각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와 시야가 많이 부족한 것 같다. 내 고집과 좁은 시야 때문에 청년부 목사님께서 얼마나 마음이 상하셨을까 생각해 보니 참 부끄러워졌다. 남은 6개월 동안 차석 리더로서 청년부 전체를 바라보며, 섬기는 리더십으로 변하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해야 겠다. 그래서 하나님이 내게 주신 소명에 만족하며, 인내하며 온전히 주님의 교회를 세워가는 데 아낌없이 쓰임받는 주님의 종이 되어야 겠다.
열방에 빛을 온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선교 이야기를 읽고Ⅰ.내용 요약1장 교회의 정체성과 역할 누구의 이야기인가, 어떤 이미지인가교회론이 중요한 이유는 참된 소망과 진리의 꿈은 공동체적인 삶속에서 이미 실현해 낸 공동체가 존재하는 경우에만 믿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인류 역사의 한가운데서 자신의 치유사역을 구현할 공동체를 선택해 만드셨다. 바로 이스라엘 공동체에게 율법과 지혜를 주시고 창조의 의도를 삶의 방식으로 세상에 표현하셨다. 비록 그들은 실패했지만,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이방인을 포함한 새로운 이스라엘(현 교회)을 회복시키고 만드셨고, 그들의 공동체적 삶으로 새로운 세상의 실질적인 예표를 나타내셨다. 이것이 바로 우리(교회)의 정체성이고 본질이다. 즉, 교회의 본질은 선교적이다. 이 선교적이란 문화적 상황 중에 하나님의 이야기 속에 주어진 역할과 세상을 향한 그분의 선교에 참여하는 모습으로서 교회의 본질과 정체성을 뜻한다. 이렇게 선교의 이미지가 21세기 교회의 적절한 추구 표상된 이유는 첫째, 서구사회가 역사적으로 종종 내부적인 문제와 제도적인 삶에 우선적인 관심을 두는 내향적 조직이 되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선교라는 용어가 서구교회가 서구문화의 우상들과 깊이 타협해 왔다는 인식이 증대되면서 대중적이 되었다. 때문에 선교는 오늘날 교회에게 그리스도인들에게 자기중심적인 관심사와 교회가 속한 문화의 이야기에 죄악 된 순응으로부터 벗어나도록 도전을 주고 있다. 한스퀑은 교회는 자신이 출발한 장소로 되돌아가야만 하는데, 그 출발점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며, 복음이다 라고 했다. 복음에 대하여 우리가 교회론을 추구할 때 다섯 개의 표지들을 발견할 수 있다. 첫 번째로, 복음은 듣는 자들에게 그것이 이 세상에 대한 참된 이야기이며, 다른 모든 것이 의미를 밝혀 줄 단 하나의 사건으로 받아들일 것을 요구한다. 두 번째, 이 이야기의 중심주제로서 전 창조물과 인간의 삶을 회복하시는 하나님의 목적과 활동이다. 세 번째로 복음의 핵심주제는 하나 선교는 비그리스도인들을 믿음의 공동체에 편입하도록 만드는 의도적인 활동과는 다른 의미를 갖고 있다. 이를 세 가지 개념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첫 번째로 보편주의이다. 이 개념은 성경의 하나님 유일한 하나님, 창조주, 그리고 온 세상과 사람들의 주인이시지만, 다른 민족들이 하나님을 인정하도록 해야 하는 어떤 특별한 책임도 하나님의 백성에게 부여하지 않는다. 두 번째, 이방인들의 편입이다. 이방인들은 공동체의 의무, 곧 민족적 사회적 종교적인 의무를 받아들이고 난 뒤에 이스라엘 공동체의 온전한 일원이 된다. 마지막으로 개종주의는 유대인들에 의해 활기차게 이루어졌고, 예수님과 제자들의 시대에 절정에 도달했다. 선교는 바로 하나님께서 세상을 위해 하시는 일이며 세상을 회복하시기 위해 그분이 세우신 장기적인 목표다. 하나님 백성은 세상을 위한 하나님의 사역에 부름을 받았다는 점에서 선교적이다. 이스라엘 민족은 그들의 공동체적인 삶 속에서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본래적인 창조의 의도와 종말론적 목적을 구현하는 전시 백성이 되어야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들은 실패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선교 사역을 새롭게 끊임없이 이뤄가고 계신다. 이처럼 구약을 통해서 하나님 백성의 역할과 정체성을 추적할 수 있고 이는 신약에서 교회를 이해하기 위한 근거를 알 수 있다. 구약의 하나님 백성과 신약의 하나님 백성은 많은 유사성이 있다. 이는 우리에게 세상을 위해 이스라엘의 보편적 사명을 끊임없이 기억하는 것은 선교 사역의 신학뿐만 아니라 교회의 신학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것은 교회가 이 소명을 상속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새로운 언약 백성의 이야기로 넘어가기 전에, 우리는 이스라엘이 열방 가운데 그들의 선교적 사명을 어떻게 이루어 가는지를 추적해 봐야 한다.3장 이스라엘이 열방 가운데 선교적 역할과 정체성을 구현하다.하나님은 소수 이스라엘을 세상의 중심으로, 역사의 초점으로, 창조세계의 목적으로 삼으셨다. 때문에 구약은 우리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백성은 새로운 마음과 영이 필요했다. 이처럼 구약은 바로 그러한 사람들이 회집되고 회복되며,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목적이 성취되는 시간을 바라보게 한다.4장 예수님이 선교적 사명을 감당할 종말론적 백성을 모으다성경 이야기의 시작부터 하나님의 목적은 파괴적인 죄의 영향력에서 모든 창조세계를 회복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선택된 이스라엘은 그들의 임무를 실패한 후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뿔뿔이 흩어졌고. 구약과 신약 사이에서 소수만 돌아오게 되었다. 그들은 다가올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렸다. 그 뒤 마침내 하나님은 행동하셨고 예수님의 인격 안에서 그분의 나라를 가져오셨다. 예수님은 자신의 모든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종말론적 사역을 나타내셨다. 그리고 열방가운데 거룩한 백성을 세우시는 계획을 결정적으로 완수하기 위해 그분의 백성을 회복하시고 심지어 재건하신다. 예수님의 메시지에 회개와 믿음으로 반응하는 사람은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의 역할을 감당하게 될 것이다. 이처럼 우린 복음서를 통해서 예수님이 세우신 신약 교회의 근원을 발견하고 신약 공동체의 형태와 정체성을 찾을 수 있다.5장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교회의 선교적 정체성하나님의 백성이 그 나라의 권능에 참여할 수 있도록 예수님의 십자가형과 부활사건이 일어났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백성은 새롭게 회집되고 그들의 삶을 통해 열방에 하나님의 나라를 증거 하게 되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의 사건은 하나님이 한 백성을 택하시고 하나님의 은혜로 통치하시는 공동체적 삶 속에서 그분이 주신 회복의 약속을 구체화 시키는 이야기의 핵심적인 절정의 순간이다. 죄, 사탄의 세력, 악이 지배하는 옛 시대는 십자가에서 결정적으로 패해했다. 그리고 정의와 구원이 온 세상을 채우도록 예정된 새로운 시대가 부활을 통해 시작되었다. 하나님의 백성은 다가올 시대의 권능으로 변화된 그들의 삶을 통해 열방을 향해 세계의 역사적 전환점을 제공한다. 예수님이 회집하신 종말론적 공동체인 하나님의 백성은 다양한 문화 속에서 창조적인 방식으로 예수님의 선 가운데서 살아가도록 보냄 받는다. 다양한 문화에 참여하고 대적하면서, 복음, 교회, 문화들 사이의 복잡한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나라의 시민일 뿐만 아니라 세상 많은 문화의 시민으로서 살아가며 많은 문화적 표현들을 가진 하나의 종말론적 백성이 된다.7장 선교적 교회에 대한 신약의 이미지성경은 교회의 선교적 본질과 정체성을 성경 이야기 속에서 교회가 하는 역할과 또한 그 이야기로부터 나오는 많은 이미지와 상징들을 통해 드러낸다. 성경은 상상력과 마음, 생각을 자극하기 위해서 생생한 이미지, 상징, 그림과 비유들을 사용한다. 이런 이미지들은 환기적 힘을 통해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추상 개념적 사교의 힘을 훨씬 뛰어넘는 방식으로 우릴 형성할 수 있다. 신약성경이 기록된 뒤 약 2천년이 지난 오늘 완전히 다른 문화적 상황 속에서 이러한 성경적 이미지들의 본래의 명확한 기능하기 위해서 세 가지의 일을 성취해야 한다. 첫째. 그러한 이미지들이 발생한 원래 문화의 세계상을 이해하는 것이다. 둘째, 처음 몇 세기동안 하나님의 백성의 공동체적 상상력을 길러 낸 성경의 긴 내러티브 속에서 우리 자신을 깊이 빠지게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보다 추상적이고 과학적인 언어를 선호하는 시대의 문화적 흐름에 반하여 비유적이고 은유적인 언어의 힘을 전반적으로 회복하는 것이다.이와 더불어 이런 성경적 이미지들의 선교적 공명을 회복하기 위해서 5가지 표제를 알아봐야 한다. 첫 번째, 성경 이야기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의 긴 역사와 교회를 연결시키는 이미지들을, 두 번째, 하나님의백성이 새로운 종말론적 질서에 속해 있음을 나태는 이미지들을 회복해야 한다. 셋째로 하나님의 백성과 메시아의 관계를 보여주는 기독론적 이미지들, 네 번째, 공동체 안에 성령의 삶을 드러내는 이미지들을 찾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세상 안에서 교회의 자리와 관련된 이미지를 회복해야 한다. 교회의 선교적 정체성을 그려보면서, 구약 이스라엘과 교회의 연속성, 불연속성 모두를 분명히 염두에 두는 것은 언제러나 이는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세상 가운데서, 세상을 위해 구속의 대리인 또는 도구가 되도록 부름을 받았고, 다른 사람들을 교회가 경험하는 언약의 복으로 초청하도록 선택되었다. 사동행전은 이야기의 초반에 등장한 종말론적이고 선교적인 공동체의 사진첩을 제공하고 서신서의 교회적 이미지들은 그 기록을 진척시킨다. 이때 우리에게 네 가지의 중요한 점을 가르쳐준다. 첫째, 하나님 백성의 제도적인 삶은 선교적 교회에 필수적인 요소다.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 교제, 성만찬, 기도에 꾸준히 참여할 때 교회는 성령의 종말론적 삶속에서 세워져 간다. 둘째, 교회의 공동체적인 삶은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나타낸다. 교회 자체는 변형된 몸으로, 하나님이 인간의 삶을 위해 의도하신 사회적 질서의 표상이 되어야만 한다. 선교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백성이 문화적 우상에 대항할 때 드러나는 대조적 백성의 삶이며, 인간의 삶을 향한 하나님의 창조 계획에 빛나는 예증이자, 하나님의 구속 목적의 목표다. 셋째, 이 공동체는 세상 속에서 사명을 갖고 있다. 새로운 삶의 근원이신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말과 행동은 그들의 공동체적 삶으로부터 흘러나온다. 선교적 교회는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복된 소식을 말하며 전하는 교회다. 또한 자비와 정의의 행동으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한 예수님을 따른다. 그리고 선교적 대면 속에서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한다. 마지막으로 이 종말론적 공동체는 땅 끝까지 가는 사명이 있다. 하나님의 선교란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이며, 지역 회중은 이 과제에 대한 자신들의 책임을 감당해야 한다. 지역상황을 뛰어넘어 지역 선교를 위한 궁극적인 지평을 제공하고 활기찬 활동을 유지한다. 그리고 모든 만물 아래에서 무한한 선교를 행하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신실하도록 만든다.9장 선교적 교회는 오늘날 어떤 모습인가오늘날 선교적 교회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는다. 선교적 정체성을 양육하는 예배를 드리는 교회, 복음 설교를 통해 능력을 얻는 교회, 공동체 기도에 헌신한 교회, 대조적다.
21C 신유목민 시대와 이주자 선교를 읽고1. 내용요약1장 21시게 선교환경의 변화와 선교전략세계는 오래전부터 국경 없는 지구촌 시대로 나아가고 있다. 우리나라도 복음이 들어온지 120년이 지난 현재, 100만명이 넘는 이주자들이 체류하고 있다. 즉 우리나라는 더 이상 단일민족이 아닌 다문화 시대로 전환했다는 의미이다. 이는 한마디로 한국 교회는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선교적 패러다임이 필요함을 의미한다. 이주자 선교의 문제는 교회의 중요한 선교의 터닝 포인트가 될 것이다. 이를 위해 이주자 선교를 통해 조국을 떠나서 먼 나라에서 겪은 그들의 아픔과 애로를 같이 나누고, 문화적 충돌들을 우리 교회가 같이 해소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도록 복음을 전파해야 할 것이다. 또한, 이주민들을 교회 일원으로, 이주교회를 교단의 구성 단체로 받아들여야 한다.2장 세계화와 다문화 시대 그리고 선교의 새로운 패러다임세계화와 다문화 시대로의 변화는 선교와 목회의 패러다임도 바뀔 것을 요구한다. 우리는 이제 세계화와 다문화 시대로의 변호가 우리 삶과 목회 그리고 하나님의 선교에 대해 진지히 고민해야 하며, 새로운 선교의 패러다임을 만들어야 한다. 즉, 세계화와 다문화의 시대에 우리를 찾아온 사람들을 통한 선교로 바뀌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변화되 시대와 문화에 대한 선교적 가치와 의미를 정확히 인식하고, 그 방법과 전략도 그에 맞게 변화되어야 한다. 세계화와 다문화 시대는 하나님이 주신 선교의 마지막 기회이므로, 이에 적합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고민하고 결단해야 한다.3장 구약신학 - 구속사에서 본 외국이주민세상으로부터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모든 크리스천들은 존재론적으로 나그네들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영원한 본향을 바라보면서 살아가는 나그네들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성경에서는 나그네를 타향에서 온 외국 이주민으로 한정하지 않는다. 나그네로서의 삶의 의미를 깨닫고 사는 크리스천이라면 타지에서 건너와 이 땅에 사는 자들의 어려움을 알고 그들을 배려하여 그들의 필요를 도 안에서 성취되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공동체가 ‘제사장 나라’로서 온 세상에 하나님의 거룩함을 드러내야 했듯이 현 교회 공동체는 동일한 사역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으로 교회 부근에 있는 이주자들을 향한 관계전도를 통해, 그리고 그들의 질이 향상된 일자리와 노동환경을 제공하며, 사회보장권의 문제를 도와 줄 수 있다.4. 신약신학 - 하나님의 자녀 모티브로 본 외국인에 대한 성경사람을 유대인과 이방인, 그리스도인과 예비 그리스도인으로 구분하는 것을 배제하고,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아버지의 한 가족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고찰해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좋은 환경에서 환영 받으며 흩어져서 하나님을 계시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포로와 같은 비참한 자리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며, 하나님 아버지의 구원을 더 잘 계시하였다. 성전의 제사 중심적인 신앙생활에서 전쟁포로로 디아스포라로서 회당 말씀중심의 신앙생활을 하며 지배국가에 하나님을 계시하였다. 이로 인해 회당에는 순수한 유대인들과 개종자들. 그리고 경건한 이방인들이 함께 모여 모든 담을 헐고 복음으로 하나(한 형제자매) 될 수 있는 장소가 되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만민 중에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것은 타민족과 차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택하여 제사장 나라로 삼아 열방과 만인을 구원하여 자녀로 삼기 위한 하나님의 선교역사 때문이다. 그러므로 외국인 노동자가 다른 나라 사람이 아니라 천국에서 영원토록 함께 살아야 할 하나님의 자녀이며, 자녀가 될 자들이라는 인식을 성경을 통하여 가지게 될 때 외국인에 대한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5장 조직신학 - 이주자를 어떻게 볼 것인가?이세상과 관련하여 말할 때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에 있으나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 나그네요 우거자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의 관점에서 말할 때 그리스도인들은 더 이상 나그네와 우거자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요, 그 시민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도 전에 이집트 땅에서 나그네로 낯선 사람들로 나라를 잘 드러내는 것이며, 하나님 나라의 일이기도 하다. 이를 효과적으로 하는 방안의 하나는 기독교적인 의미의 반편견, 다문화교육을 제대로 시도하는 것이다. 가장 좋은 신학적 사유과정으로 우리의 평상적 이해를 성경이 제시하는 개념에 의해 전도시키고, 이런 변화된 이해를 통해 우리들로 하여금 성경적 개념에 부합한 활동을 하도록 인도해야 한다.6장 다문화 사회의 통합에 대한 교회적 접근다문화주의의 문제점들을 보완하기 위해 다문화적 사회를 위한 이상적인 다문화간의 전략적 모델과 이상적인 다민족 사회의 형성을 해야 한다. 그리고 이에 대한 교회의 역할이 검토하며 다문화적 전망을 개발해야 한다. 거의 모든 인종이주자들에게 공통적인 특성은 그들이 새로운 나라에 도착한 직후 복음을 접하는 것이 중요하다. 종교는 민족들에게 그들의 종교 배경이 무엇이든 간에, 매우 중요한데 어떤 문화들에는 기본 생존을 위해 종교가 중심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루빨리 그들에게 복음이 전파되도록 그들을 찾아가 만나야 한다.7장 동아시아 지역에서의 이주현황과 기독교적 함의국제 이주자의 흐름을 종교적 상황과 연결시켜 분석하여 보면, 복음전파가 제한적인 국가들이나 개신교의 비율이 매우 적은 국가들로부터 복음전파의 자유가 실질적으로 보장되어 있는 국가들로 이주자들의 물결이 이동하고 있다. 자유가 보장된 국가들의 대부분은 교회가 이주자들에 대한 선교를 담당할 수 있는 충분한 복음전파의 역량을 갖추고 있는 국가들이라 할 수 있다. 이런 배경을 인식하며 국제 이주자 선교를 위한 협력과제를 제안한다. 첫째 동아시아 지역에서 복음적인 개신교 인구규모와 교회의 선교역량이 높은 한국과 호주를 중심으로 중국과 남아시아 국가들의 교회간의 기독교 네트워크를 형성해야한다. 두 번째 언어민족간의 복음전파의 연계가 필요하다. 세번째 인력송출국가의 선교사와 인력 유입국가의 이주자 선교단체간의 네트워크를 결성해야 한다. 그리스도인로서 우리는 이런 과제들을 실행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그들에게 전해줘야 하는 사명을 감당해야호이해와 논의가 필요하다.9장 홍콩제일교회를 중심으로홍콩은 자유롭게 중국과 동남아 선교 전초기지로서 중국이 완전히 선교개방을 할때까지 그 역할을 감당할 것이다. 구체적으로 중국 교회 지도자 양성 훈련 사역과 영어사역을 통한 제 3세계 사역자 양성, 홍콩교회와의 활발한 교류 등을 실천해야 한다.10장 싱가포르에서의 이주자 선교Shachendra 목사는 흰두교 부모 밑에서 태어났고 한국에 유학을 가서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한 후 한국인 아내와 결혼했다. 그뒤 로 네팔로 돌아가 싱가포르에 거주하고 있는 수만 명의 네팔인들을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기 위해 평생을 받치고 있다.11장 암미선교회 사례 연구암미선교회는 지역의 이주노동자들에 주님의 사랑의 손길이 되어주며 복음을 전하고 있는 선교단체로 이 일을 통해 세계선교의 하나의 전초기지가 되는 것을 최종 목효로 하고 있다. 그리고 소외계층의 나그네선교와 타문화권선교를 통해 지역 외국인근로자들과 하나가 될수 있는 가교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선교 전문 인력 부족, 지역교회와의 긴밀한 유대 관계 형성, 효율적인 귀국자 관리, 타 단체들과의 협력문제 등을 해결하여 전체적인 이주노동자선교의 성숙을 도모하고 있다.12장 부산외국인근로자선교회부산 지역의 외국인 근로자들을 향한 선교를 지향하는 초교파적 선교단체이다. 사랑의 봉사와 복음전파라고 하는 총체적 선교를 지향하고 있다. 한국에서 외국인근로자 선교가 호의적 그리고 적극적인 형태로 진행되고 있지만, 보다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접근과 함께 한국교회의 성숙과 신중한 지원과 관심이 필요하다.13장 중국선교교회의 사역수년간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이주민들이 대한민국 법률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해 봉사하고, 복음을 위하여 정직성과 전문성이 구비되어가는 자원봉사 및 교회이다. 긍휼사역, 의료사역, 문화사역, Chuch Planting, 법률지원, 한국어교실, 나눔 공동체, 체육활동, 산업 안전교육 등 다양한 사역을 통해여 이주민들에게 적극적으로 도움과 복음을 전파한다.14장 태국내 미 비용으로 보다 많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선교지 신자들에게 희생과 섬김을 강하게 훈련하고, 바르게 교회가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필요하다.15장 필리핀 이주자를 통한 세계선교 사례 연구필리핀에 있는 WWCF 교회와 세계에 나가있는 수백만의 필리핀 이주 노동자들의 증인된 삶을 예로 이주 선교와 관련된 제안을 하고 있다. 그 제안으로 이주 선교는 성경적이여야 하며, 부정적인 선교환경에서도 이루지기 위해 준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인 이주자들은 각 문화 뒤편에 있는 읽어버린 자들에게 가야하며 이주자 선교에 대한 혁신적인 접근을 위한 전략이 필요함을 주장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교회는 민족에 관계없이 이주 선교를 후원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가 이주노동자들에게 진보적인 제자훈련을 제공하면, 하나님 나라는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 이라고 예상하고 있다.16장 디아스포라 몽골리안 선교디아스포라 몽골리안 선교전략으로 몽골인 교회를 개척하고, 교단과 선교단체가 총체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 그리고 언어권별, 사역별, 전문화가 필요하고 서로 사역 협력이 필요하다. 또한, 효과적인 후원체계를 구축하여 사역자와 자원봉사자들을 이끌어내야 한다. 마지막으로 한국에서 훈련을 잘 받아 본국에서 잘 정착하도록 현지 목회자들과 연결되어야 한다.17장 비정주 외국인 근로자를 통한 역파송지금까지 외국인 근로자 선교 정책은 그들의 인권, 지위향상 및 복지와 구제에 치중하는 정책과 복음을 우선적으로 제시하여 영혼구령과 제자양육에 중심을 두는 정책으로 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복음과 구제선교가 균형잡혀야 하고, 정주화 선교 뿐만 아니라 비정주 근로자들을 통한 역파송 선교를 지속적, 전문적으로 실행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선교사역의 전문성 개발과 외국인 근로자 선교전문가 양성, 선교 사역 단체간의 협력과 정보 공유 및 선교 전략 공동 연구 등이 필요하다.18장 교회가 이주외국인들에게 어떻게 도움을 줄 것인가?그들에게 쉼터를 마련해 주어 그곳에